LIBRARY

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창조신앙

과학은 도덕적 상대주의를 방어할 수 없다.

과학은 도덕적 상대주의를 방어할 수 없다. 

(Science Cannot Defend Moral Relativism)


      만약 도덕성(morality)도 진화(변화)한다면, 왜 일부 과학자들은 도덕적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일까?

과학 기자들은 가끔 도덕적 상대주의(moral relativism)를 말한다. 즉, 도덕적 판단은 각 문화권에서 가르치는 선악의 기준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한다. 가령 Live Science지는 ”옳고 그름 : 당신의 문화적 환경에 따라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는 기준”이라는 글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른 기사에서, 그들은 낙태할 권리, 동성애자의 권리, 다른 도덕적 문제 등에 대해 절대적으로 옹호하고 있었다.(e.g., 3/13/2016)

또 다른 경우로, PNAS 지는 사람들이 어떤 일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할 때, 이성을 어떻게 사용하는 지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행동의 이유가 대부분 도덕적 판단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인간의 도덕적 심리작용의 보편적 특징”이라고 서두를 시작한다. 이러한 도덕적 의도설(moral intent hypothesis)의 증거들 대부분은 거대 산업화 사회로부터 나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옳은 것인가?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 단계에서 수렵-채집인들은 원시인에 가까운 유인원들이고, 산업화 사회는 최근에 발생한 이례적인 것이 아닌가? 만약 그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면, 그것은 그 논문을 쓰는 이유를 훼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선택은 수백만 년 동안 아무런 이유도 없이, 우리 조상들의 행동을 적합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의 세속적 과학은 절망적 딜레마에 빠져있다. 진화과학자들과 언론매체의 기자들은 도덕성도 변화되어왔다고 가르치고 있지만, 정작 옳고 그름에 대해서 말할 때, 권위를 가지고 말하고 싶어한다.

최근의 몇 가지 예들을 살펴보자.

1. 미국 오레곤 주는 새로운 산아제한법의 시행을 준비하고 있지만, 아직 보충할 부분이 많이 있다.(Science Daily). 헤드라인 기사는 오바마 행정부가 ‘가난한 자들의 위한 작은 자매회(Little Sisters of the Poor, 경로수녀회)를 포함한 일부 종교단체들과 대립하는 정책을 세워 연방대법원을 분열시킨 문제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기사의 배후에 있는 학자들은 ”이 법은 피임과 불임수술을 가능케 하는 전 단계”라고 말한다.

2. 경구 ”임신중절약(Abortion Pill)이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다: 미페프리스톤(Mifepristone)에 대해 알아야 할 5가지 사실들”(Live Science). 라헬 레트너(Rachael Rettner)는 경구 임신중절약에 대해 알아야 하는 5가지 사실들을 상세하게 직설적으로 설명하고 있으면서도, 가장 중요한 점(약이 태아를 살해할 수도 있는지에 대한 여부)을 누락시키고 있었다. 일부 사실과 용어들은 알 필요가 있지만, 사람들은 국가와 세계를 분열시키고 있는 한 중요한 도적적 문제에 있어서는 중립적일 수 없다. 그녀는 오직 산모에게 있을 수 있는 잠재적 위험과 부작용에 대해서만 중점을 두고 글을 마치고 있었는데, 그녀는 또 다른 인간인 태아의 권리를 전적으로 누락시키고 있었다. 독자들은 그 기사에서 ‘아기’, ‘태어나지 않은’, ‘태아’ 등의 단어를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3. ”품종 개량되는 인간: 근대 초기의 유토피아”(Science Daily. 2016. 3. 29). 이 제목은 도덕적 상대주의를 보여주고 있다. ”인류를 개량하고, 출산을 최적화시키기 위해 생겨난 그 개념은 유전공학 훨씬 이전에 등장했다.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그 개념은 현대적 관점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그 개념을 상상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도덕적으로 옳았던 것인가?

거대과학(Big Science)은 도덕적으로 난감한 문제를 다루지 못한다. 수 년 전에는 ”강간의 진화”라는 악명 높은 논쟁도 있었다(7/18/2003). 더 최근에는 과학자들이 PNAS 지에 일부다처제(polygyny)를 옹호하는 글을 게재하기도 했다. 그것은 아이들의 건강에 긍정적이거나 최소한 해롭지는 않다는 것이다. 리에거(Rieger)와 바그너(Wagner)는 ”일부다처제가 정말로 자녀들에게 장기적으로 해로운 것인지에 측정해보기 위해, 일부다처, 유산상속 갈등, 일부다처가족 자녀의 장기적 영양과 교육... 등에 관한 추가적인 증거들이 수집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도덕적인지 여부는 유해한지 여부를 측정해보는 것일 수 있다. 그 점에 대해서, 저자는 자신의 입장을 고수한다. 그들은 PNAS 지에서, 그들의 의견을 순전히 실용적인지 아닌지 만을 통해서 방어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남성 중심의) 일부다처제 가정은 일부일처제 가정에 비해 식생활이 안정되고, 부유하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중립적인 해석인가? 문화적 악습에 대해 연구할 때에는 반드시, 결과가 어떠한가, 또는 전통적 기대를 부정하는가 등의 여부와 상관없이, 동등한 기준 근거를 제시해야만 한다. 하지만 만약 그것이 단지 관습의 문제라면, 그것들은 상대적인 것이 돼버린다. 일부다처제는 탄자니아의 가정에서는 완전히 관습적인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 무엇이 해로운지를 측정할 것인가? 만약 그것이 자녀에게는 해롭지만, 일부다처제의 가장에게는 이득이라면, 왜 가장의 이득을 아이들의 이득보다 우선해서는 안 되는가?

과학자들 스스로에게 그들이 주장하는 도덕적 상대주의를 적용해보자. 다른 인종들에 대해 연구하고, 그들에 대해 학술지에 게재하는 것은 그저 관습인가? 만약 IS(이슬람 원리주의 과격단체)가 그들의 실험실을 공격하여 폭파했다면, 뭐라 말할 것인가? 그것은 그저 이슬람 문화의 관습일 뿐인가? 앞에서 언급했던 주제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라헬 레트너의 어머니가 임신중절약을 복용하여, 라헬 레트너가 태어나지 못했다면, 이 또한 관습인가? 우리가 서로의 의도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추론 과정이 과거로부터의 진화되어온 과정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만약 도덕성이 진화되고, 변화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판단과 도덕성의 기초를 완전히 파괴하는 것이다. 만약 한 사회가 사람들을 품종 개발하여 길러낸다면, 그리고 품종 개발된 사람들이 도덕성을 거부한다면, 그들은 자유의지를 가질 수 있는 존재인가? 도덕적 상대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자가당착에 빠지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세계관(worldview)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자신의 세계관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도 그의 세계관이 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철학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도 그러하다. 아무도 도덕적 판단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자기 자신의 판단이 정당하다고 믿고 있다. 심지어 도덕성이 상대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그러하다. 이것이 진실인지를 알고 싶다면, 도덕적 상대주의를 믿고 있는 과학자들에게 그들이 쓴 글과 진행한 연구들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라. 만약 그들이 아니라고 대답하거나 망설인다면, 그들은 스스로 모순을 만드는 사람이 될 것이다.

도덕적 상대주의의 자기모순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도덕의 절대성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위에게 절대적인 도덕을 제시하실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은 오직 영원하시고 전지하시며 거룩하신 창조주 하나님뿐이다. 그렇다면 도덕적 판단의 기준은 자신의 주장을 절대적 기준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만약 도덕성이 변화(진화)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도덕이 아니다. 진리 또한 마찬가지이다.



번역 - 정윤상

링크 - http://crev.info/2016/04/moral-relativism/ 

출처 - CEH, 2016. 4. 3.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450

참고 : 3039|496|4154|2909|3237|5869|5859|6082|6186|4766|4636|3057|690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26길 28-3

대표전화 02-419-6465  /  팩스 02-451-0130  /  desk@creation.kr

고유번호 : 219-82-00916             Copyright ⓒ 한국창조과학회

상호명 : (주)창조과학미디어  /  대표자 : 박영민

사업자번호 : 120-87-70892

통신판매업신고 : 제 2021-서울종로-1605 호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26길 28-5

대표전화 : 02-419-6484

개인정보책임자 : 김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