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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창조신앙

Headline News
2004-04-27

100명의 과학자들이 다윈이론에 도전하는 성명서에 서명하였다


      The Discovery Institute 1는 우연한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으로 복잡한 생명체들이 생겨났다는 설명은 매우 의심스러우며, 다윈의 이론들에 대한 증거들은 매우 주의 깊게 조사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성명서에 100 명의 과학자들이 서명하였다고 발표하였다.(2001년 9월). 덧붙여서 공공 여론 조사기관(national Zogby Poll)의 여론 조사3에 의하면, 81%의 미국인들이 “공공 방송에서 다윈의 진화 이론을 다룰 때, 진화론에 찬성하는 과학적 증거들뿐만 아니라, 진화론에 반대되는 과학적 증거들도 같이 소개하여야만 한다” 고 응답하였다.     


이것은 PBS가 그들의 “진화 (Evolution)” 시리즈를 TV에 방영함에 있어서 대중의 의견을 어떻게 무시하고 있었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모든 과학자들이 진화론을 인정하고 있다는 그들의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나타내는 것이다. The Discovery Institutes는 말한다.

  “반복적인 요구에도 불구하고, 시리즈의 제작자는 다윈 이론에 반하는 과학적 증거들을 소개하기를 거부했다. 대신 제작자는 시리즈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 과학적 반대자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단지 개인적인 신앙 이야기와 "하나님은 누구신가?"에 관한 이야기로 유도하여, 다윈 이론에 반대하는 주장들이 단지 종교적인 주장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1) http://www.discovery.org/

2) http://www.reviewevolution.com/press/pressRelease_100Scientists.php

3) http://www.zogby.com/soundbites/ReadClips.dbm?ID=3944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creationsafaris.com/crev0901.htm 

출처 - CEH, 2001. 9. 26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190

참고 : 3688

임번삼
2004-04-27

과학과 종교


      많은 사람이 오해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과학과 종교가 서로 상충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진화론은 과학이지만 창조론은 과학이 아닌 기독교의 교리라는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과학과 종교가 상충하고, 창조론이 기독교의 교리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잘못된 편견이다. 20세기의 위대한 물리학자로 추앙받는 아인슈타인(1879-1955)은 "종교가 없는 과학은 장님이고, 과학이 없는 종교는 절름발이"(Science without religion is lame, religion without science is blind)라 하였다. [Albert Einstein; Ideas and Opinons, Crown Publishers, New York, 1954] 뉴톤(Issac Newton 1642-1727)은 종교와 과학은 충돌하지 않으며, 이성(理性)은 종교의 적이 아닌 벗이라 하였다. 모두 종교와 과학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을 지적한 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과학계는 매우 이상한 풍조에 휘말리고 있는 것 같다. 과학의 영역이 비과학적인 편견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 극명한 예가 진화론에 대한 맹신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오늘날 진화론은 흡사 학문적으로 완전히 실증이라도 된 학설인 양 학교교육에서 배타적으로 가르쳐지고 있는 데, 이는 매우 비합리적이고 부당한 일이다. 생명의 기원문제나 동식물이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는 이유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과거에 일어났던 일로 실험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식물들이 무기물에서 저절로 발생했다는 자연발생설(自然發生說)만이 옳고, 창조주가 목적을 가지고 처음부터 종류대로 완벽하게 창조했다는 창조설(創造說)은 기독교의 교리에서 출발한 것이므로 비과학적이라고 진화론자들은 매도한다.

 

오늘날 3천여만 종에 달한다는 동식물의 다양성(多樣性 biodiversity)에 대해서도 이들 모두가 단세포인 아메바가 점진적으로 진화되어 생긴 것이라는 진화론(進化論)이 흡사 유일한 과학의 정설인 양 학교교육에서 가르쳐지고 있으며, 처음부터 생물이 종류대로 만들어졌다는 창조론은 철저히 배격되고 있는 실정이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동일한 사상(事象)에 대한 해석법은 다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교육계에서는 진화론적 해석만 가르치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흡사 중세시대에 잘못된 교회권력이 학문을 억압했던 것과 꼭 같은 상황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진화론은 분명히 실험적으로 증명이 안 된 가설(hypothesis)이라는 점에서 비과학적(非科學的 non-scientific)이라 할 수 있다. 증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창조론도 마찬가지이다. 두 이론 모두가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에 대해 그렇게 되었으리라고 믿는 해석체계(interpretation paradigm)요 신념(belief)이며 신앙(faith)이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사람들에게는 성경적 창조론(biblical creationism)이야말로 비과학으로 매도되어 온 초과학(超科學 super-science)이라 할 수 있다. 두 이론 모두 '과학적으로는 검증할 수도 없고(not falsifiable), 따라서 재현성이 없는(not reproducible), 자연을 바라보는 하나의 해석체계이며 세계관'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Thomas Kuhn;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Chicago, 1961] 창조론이 눈에 보이지 않는 창조주를 믿는다는 점에서 신앙적인 요소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무기질에서 생명이 저절로 발생했다고 믿는 진화론은 창조론자들보다 더 큰 믿음을 필요로 한다. 결국, 두 이론은 가치관의 충돌이라 할 수 있다.

 

성경은, 신앙에 따라 견해를 달리할 수는 있겠지만, 창조주인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다. 따라서, 창조원리를 추구하는 과학과 성경은 떼어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의 내용이 과학의 이론에 얽매이지 않는다. 과학적 지식은 시대가 흐르면 바뀔 수도 있으며 오늘의 정설이 내일은 잘못된 가설로 수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의 과학이론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하여 성경의 기술내용이 비과학적이라고 단언해선 안 된다. 만일, 하나님이 진실로 창조주이시며,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말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창세기를 덮어두고서 우주와 자연을 논한다는 것은 넌센스가 될 것이다. 이 경우, 성경은 과학의 이론으로 해석될 수 없으며 과학을 오히려 성경에 비추어 해석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우주를 만든 창조주이기 때문이다. 설사, 기독교와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창세기의 창조기사(創造記事)에 대해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오랜 세월을 성경에 근거한 창조과학이 세계학문의 구심점이 되어 왔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직접 연구하며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학교에서는 진화론뿐 아니라 창조론도 같이 가르치고 교육내용에 대한 선택은 학생들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 바람직하리라 생각한다. 우리나라처럼 중고등학교의 교과서가 국가의 검인정을 받는 나라에서는 더욱 더 그러하다. 누가 무슨 권리로 무신론적이며 유물론적인, 게다가 실험 검증도 거치지 않은 진화론만 가르치도록 강요할 수 있다는 말인가? 사람의 조상을 원숭이라 가르치면서, 인격을 운운하는 무신론적인 교육을 왜 우리 자녀들이 받도록 강요당해야 하는 것일까? 창조론은 기독교교리(biblical creationism)로서가 아니라 당당한 창조과학(scientific creationism)으로서 가르쳐져야 마땅할 것이다.



출처 -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서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42

참고 :

Kent Hovind
2004-04-08

호빈드 박사의 25만 불 제안 2 

(Dr. Hovind's $250,000 Offer 2)


25만 달러 제안에 대한 일반적 질문에 대한 대답


국가 세금으로 예산이 지원되는 공공학교의 학생들이 진화론은 사실이다 라는 가르침을 받아오고 있다. 진화론은 과학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종교임을 확신한다. 그리고 진화론은 어떠한 과학 교과 과정에서도 제외되어야 한다. 그것은 과학의 주제와 관계가 없다. 과학교과서에서 사용되는 진화(evolution)라는 단어에는 적어도 6 가지의 다른 의미들, 그리고 관련 없는 의미들이 들어 있다.

1. 우주 진화 (Cosmic evolution) - 시간, 공간, 물질의 기원. 빅뱅(Big Bang).

2. 화학 진화 (Chemical evolution) - 수소로부터 무거운 원소들의 기원.

3. 별과 행성 진화 (Stellar and planetary evolution) - 별들과 행성들의 기원.

4. 유기 진화 (Organic evolution) - 무생물로부터 생명체의 기원.

5. 대진화 (Macroevolution) - 주요한 종류(kinds)들의 기원.

6. 소진화 (Microevolution) - 종류(kinds)들 내에서의 변화들(variations).

단지 마지막 항목 하나만이 관측될 뿐이다. 그리고 처음의 5가지는 종교적이다. 그것들을 입증할 만한 어떠한 경험적 증거(empirical evidence)도 없음에도, 그들은 신념에 의해서 믿고 있다. 나는 처음의 5가지를 받아들이는 진화론자들의 위대한 신념에 감탄하면서, 이러한 종교적인 선전(religious propaganda)이 납세자들의 비용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에서 합법적인 과학으로 포함되는 것에 반대한다.


전형적인 공공학교의 교과서들을 살펴보면, 학생들은 위에 제시된 6 가지 진화의 종류들이 모두 입증되었다고 생각하도록 속임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소진화라고 불리는 작은 변화에 대한 증거 밖에 제시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속임수는 고전적인 유인 상술(bait and switch)이라고 할 수 있다. 진화의 한 정의만 주어지고(가령 변화를 나타내는 후손과 같은), 나머지 것들은 사실인 것처럼 가정하고 있다. 처음의 5가지 의미들은 결코 관측되지 않기 때문에 신념에 의해서 믿어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종교적이다. 단지 마지막 것만 과학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성경에서도 일어날 것을 예측하고 있다. 동물과 식물들은 종류대로 번성하라고 창세기 1장에 기록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진화의 과학적 증거에 대한 나의 25만불 제안에 대해서 반응해 왔다. 제안의 기간과 조건들은 나의 웹 사이트 ww.drdino.com 에서 명백하게 기술해 놓았다. 여기에 흔히 물어보는 질문들에 대해 대답을 해 놓았다.

1. 제안은 합법적이다. 나의 부자 친구가 은행에 돈을 가지고 있다. 제안된 조건이 충족된다면, 돈은 즉시 지불될 것이다. 나의 말은 사실이다.


2. 제시된 증거를 판단할 위원회의 과학자들은 모두 과학 분야에서 학위를 가지고 있고, 각자의 분야에서 오랜 기간 현장 일들을 수행한 경험이 있는 매우 잘 훈련된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그들은 동물학자, 지질학자, 우주공학자, 방사선, 생물물리학 교수, 이름이 알려진 방사성연대측정 전문가 등이다. 그들은 바쁜 사람들이고, 바보 같은 응답에는 시간을 낭비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또한 진정한 대답을 원하지 않는 어리석은 질문들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사실 이것이 나의 제안에 대한 전형적인 반응이다) 회의론자들과 조롱하는 자들과 논쟁하는 데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을 것이다. 만약 위원회가 구성된다면, 그때 그들 스스로가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제시된 증거가 명백하고 합리적이라면, 그들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3. 동식물의 같은 종류(kind) 내의 작은 변화에 대한 증거는 증거로서 간주하지 않을 것이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위원회에 보내지도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불임 잡종에서의 염색체 수의 배가는 새로운 유전 정보를 증가시키지 못한다. 그것은 부모 식물에서 이미 존재하던 유전정보를 복제하는 것이다. 새로운 유전 정보의 더해짐이 없기 때문에, 생겨난 식물은 새로운 종, 또는 다른 종으로 분류될 수 없다. 식물은 어떤 배수체(polyploid)의 식물에서 관측되는 것처럼, 많은 모습들이 (좀더 크고, 무성하고 등) 다를 수 있다. 그러한 쉽게 확인되는 표현형의 변화는 많은 혼동을 일으키고 있다.
일부 진화론자들은 하나의 새로운 종이 진화로 태어났다고 비약적인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종에는 어떠한 새로운 유전 정보도 증가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새로운 종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나의 제안이 요구하는 진화의 증거가 아니다. 나의 웹 사이트에서 250,000 달러 제안에 대한 내용들을 살펴보라. 일부 사람들은 종류(kind)라는 단어의 간단한 정의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성경에서 종류는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는 부류로 말해지고 있다. 서로 교잡하여 번식할 수 있는 동물들은 원래 같은 종류이다. 6000 여년이 지나 지금에는 많은 다양성들이 나타나, 원래 종류의 몇몇 변화체들은 이제는 서로 번식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알라스카의 토끼는 플로리다의 토끼와 번식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같은 종류의 동물이었다고 생각한다. 개와 늑대는 같은 종류의 동물임이 분명하다. (그들은 현재 다른 종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번식이 가능하다.
종(species)의 간단한 정의는 무엇인가?). 그러나 개와 물고기는 다른 종류이다. 원래의 종류(kind)란 무엇인지를 연구하는 것은 가치가 있는 일로 아직까지 약간 애매한 부분이기 때문에, 이것에 대한 질문을 개진하는 것보다, 개와 물고기의 비교와 같은 명백한 경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현명한 일일 것이다. 이들은 분명히 다른 종류의 동물이다. 그래서 명쾌함을 위하여, 개와 물고기가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진화되었음을 입증하면 된다. 정직한 과학자는 개와 물고기가 공통의 조상을 가진다는 것을 입증할만한 어떠한 증거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개와 물고기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과학이 아니다. 그리고 그 점이 내가 제안을 하게 된 점이다.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형태의 진화가 우연히 발생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순진한 학생들에게 사실로서 제시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나머지 4 개의 진화가 일어났었다는 증거는 확실히 없다.

4. 대다수의 과학자가 이 이론을 믿는다는 생각도 증거가 될 수 없다. 대다수 의견은 자주 틀렸었으며, 정정됐었다. 역사는 그러한 예로 가득하다.

5. 익명의 편지는 무시될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진화의 과학적 증거를 간단하게 제출하는 것보다는, 위원들은 누구인지, 은행에 돈은 정말 있는지, 종류라는 단어의 정의는 무엇인지 등등과 같은 핵심을 벗어난 문제들에 대한 질문 편지들을 보내며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내가 웹 사이트에 그러한 질문들에 대해 반응하지 않았을 때, 그들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거나, 나의 제안은 사기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주제와 상관없는 말로, 진화론 종교를 지지하는 증거가 전혀 없다는 사실로부터 주의를 멀어지게 하려는 전술을 사용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다시 한번 질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분명히 말하지만, 당신이 어떤 증거를 가지고 있다면, 둘러서 말하지 말고 그것을 나에게 보내라. 시간 낭비하지 말고 당신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증거를 우리에게 제출하라.

많은 사람들이 소진화의 증거를 제시한다. 그리고 나머지 5 가지 단어의 의미는 어떻게든 불가사의하게 연결되어졌다고 가정한다. 그들은 명백한 것에 대해 눈이 멀은 것처럼 보인다. 25만불의 제공은 그것을 이룬 사람에게 지급되도록 변호사가 취급할 것이다. 당신이 할 일은 우리들의 자녀들에게 사실로서 (위에서 언급한 진화라는 단어의 6가지 의미 모두) 가르쳐지고 있는 이론이 정말로 사실인지를 증명하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증명될 수 없다면, 진화론은 과학이 아니라, 하나의 종교임을 인정하여야만 한다.

몇몇 사람은 진화의 정의에 우주의 기원이 포함되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말한다. 그들은 진화란 단지 시대를 지나면서 유전자에 빈발하는 변화만을 지칭해야 한다고 말한다. 당신이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일은 교과서들을 읽어보라. 거기에는 위의 6 가지 의미들이 진화론으로 가르쳐지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진화론이 교과서에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에 당신이 동의한다면, 그리고 당신이 진실한 사람이라면, 그것을 교과서에서 제거할 수 있도록 나를 도와주기 바란다.

수 년 동안 나는 많은 진화론자들이, 당신은 중력을 믿지 않는가? 라고 하면서, 중력의 법칙이 하나의 이론인 것처럼, 진화도 하나의 이론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왔다. 그들은 마치 반복이 진실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이 말을 반복해왔다. 그들의 예는 물론 우스꽝스러운 것이다. 중력은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매순간 관측될 수 있다. 우리는 중력 이론을 입증하기 위해서 시험과 실험을 해볼 수도 있다. 누구도 그것의 예외를 일찍이 발견하지 못했다. 같은 표현으로, 누구도 진화를 관측하지 못했다. 그리고 종류 안에 소규모의 변화를 넘어서는 어떠한 진화도 설명하지 못한다. 중력과 같은 이론과 비유함으로서 진화가 과학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스꽝스럽다.  

나의 25 만불 제안에 대한 거의 모든 응답들은 이와 같은 것들이었다. 물론 누구도 진화를 입증할 수 없다. 당신은 창조를 입증할 수 있는가? 이 반응이 내가 기대하는 것이고, 원하는 것이다. 기원에 관한 이론들은 입증될 수 없다. 둘 다 볼 수 없기 때문에 많은 부분에서 신념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나의 논리적인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왜, 세금으로 지원되는 공공학교나 기관에서 학생들은 진화론이라는 종교만을 배우고 있는데, 나는 왜 세금을 내야만 하는가? 모든 납세자들이 공공학교에서 진화론만이 독점적으로 가르쳐지는 데에 비용을 지불하도록 강요당했기 때문에, 진화론자들은 지난 130 여년 동안 수십억 달러의 연구비를 그들의 종교를 입증하기 위한 일에, 그리고 그들 이론의 증거를 확보하려는 일에 사용하여 왔다.

나는 긴 시간 e-mail을 통한 토론에 참가할 시간도 없고, 관심도 없다. 그러나 어떠한 자격이 있는 과학자와 대학에서의 공개 토론 (진화론자가 진행을 맡아도), 또는 라디오나 TV 에서의 공개 토론이나 전화 토론에는 누구하고도 이야기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전화를 한다면, 물어볼 질문 또는 토론할 주제의 목록을 정하고, 원한다면 대화하는 내용들을 녹음할 수 있다. 다만 당신이 녹음한다는 것을 나에게 먼저 알려주면 된다. 나는 이러한 반응이 만족스러울 것으로 희망한다.

나는 진화론은 진정한 과학과 혼합된 하나의 종교임에 불과함을 수 년 동안 가르쳐왔다. 진화론은 그것을 믿는 많은 사람들을 멍청이로 만들어 버렸다. 어떤 동물이나 식물이 다른 종류의 동물이나 식물로 변화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 이제 전 세계의 많은 지식인들이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동물들의 종류들 사이에 변화가 있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종류대로 번성하라고 그들에게 말하셨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이 일찍이 관측된 전부이다. 같은 성경에 모든 사람들은 언젠가 창조주 앞에 서서 그가 말하고, 행하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심판받게 될 것임을 가르치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 날에,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주님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누구에게나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준비해야 된다고 권하고 싶다. 만약 당신이 크리스천이 되어 더 많은 것을 배우는 것에 관심이 있다면, 나에게 전화를 하기 바란다. 나는 자리를 비울 때가 많지만, 사무실에 있을 때에는 전화를 받을 것이다.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대부분 850-479-3466 번으로 전화를 받을 수 있다. 만약 부재 시에 나와 통화하기를 원한다면, 나의 웹 사이트에서 나의 스케줄을 확인하기 바란다. 가능하면 나의 세미나에 참석하기 바란다. 나의 세미나는 무료이며, 참석한 사람이 물어보는 질문에는 항상 충분한 대답을 하고 있다.

평안하기를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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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트 호빈드 (Kent Hovind)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drdino.com/cse.asp?pg=articles&specific=1 

구분 - 5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914

참고 : 1912

임번삼
2004-01-29

과학적 연구방법 이란? 

: 귀납법과 연역법, 그리고 진화론


    캠브리지 대학의 근대사 교수인 버터필드(H. Butterfly)는 <근대과학의 탄생>(Origin of modern science 1946)에서 인류역사상의 3대 혁명이 있었다고 하였다. 도시혁명, 그리스혁명, 과학혁명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과학혁명을 가장 중요시하였는데, 그 이유는 과학혁명이 다음과 같은 사건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라 하였다.

(1) 아리스토텔레스적 자연관의 붕괴

(2) 과학적 방법의 확립

(3) 과학과 기술의 결합

(4) 기계론의 승리

(5) 제도로서의 과학의 성립

이 중에서 주목할 사항이 과학적 방법 (Scientific Research Method)의 확립이다. 그는 모든 이론이나 학설이 과학적 방법으로 전개될 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정설로 수용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 과학적 방법이란 어떤 것인가?

우리가 자연계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연구하면, 그 속에 숨어있는 자연의 원리를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원리에 대한 연구로 지식이 증가한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이 학문적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실험과 검증을 통해 공인을 받아야 하며, 여러 번 반복해도 꼭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한다. 즉, 과학 이론은 인과율과 재현성에 기초하고 있다는 말이다. 과학의 세계에서는 원인이 있으므로 결과가 나타난다는 인과율(因果律 law of cause and effect)이 철저히 적용되기 때문에, 어떤 사실을 관찰하면 그러한 현상을 일으키는 원인에 대한 의문을 갖게 마련이다. 이처럼, 과학이란 자연이나 사물의 원리를 과학적 방법으로 추구하여 체계적인 지식을 세우는 작업이다.

이러한 과학적 방법론은 11세기의 이슬람의 실증적인 과학기술이 유럽으로 전달되면서 16-17 세기에 지금과 같은 이론으로 발전한 것이다. 베이컨, 로크, 데카르트, 갈릴레이 등이 그러한 방법론을 제시한 대표적인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한결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추상적인 방법론을 거부하고 각기 다른 과학적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베이컨과 로크는 귀납법을 주장한 반면, 데카르트는 수학적 연역법을, 갈릴레이는 수학적 연역법에 실험을 가미한 실험적 연역법을 주장하였다. 베이컨의 귀납법(歸納法)과 데카르트의 수학적 연역법은 이태리의 파두아 대학에서 꽃을 피웠다. 현재, 자연과학에서는 귀납법이 가장 널리 수용되고 있다.

 

1. 귀납법

귀납법(歸納法 inductive method)은 어떤 가설을 설정해 놓고서, 개개의 존재나 사실로부터 일반적인 원리를 유도해 내는 논법이다. 이 방법은 영국성공회의 임원이었으며 제임스Ⅰ세 때(1620)에는 수상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던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이 자연과학의 방법론(Baconian principle of inductive reasoning)으로 제시한 것이다 (사진 1). 그는 <새 기관>(Novum Organum 1620)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불충분한 관찰로부터 일반원리를 무리하게 도출했다고 비판하면서, 과학적 방법으로서 경험론(Empiricism)에 기초한 귀납법을 주장하였다. 그는 학문을 함에 있어서 먼저 네 가지 우상을 제거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사물을 우리와 관련하여 보려는 종족우상, 성격과 교육에 따라 편향된 시각으로 보려는 동굴우상, 사물을 해석할 때 사용하는 언어를 잘못 선택할 수 있는 시장우상, 그리고 마음속의 철학체계의 영향을 받게 되는 극장우상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성과 관찰간의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자연에 대한 자료를 수집, 분류, 도표화하여 일반화된 결론을 도출해야 하며, “경험주의자들은 자료를 모으는 개미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만큼 과학적 방법은 충분한 자료에 근거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학문하는 방법으로는 관찰성 (관찰이 가능하고 수량화할 수 있을 것), 객관성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관찰할 수 있을 것), 재현성 (누가 어디서 실험하든 동일한 결과가 나올 것)을 강조하였다. 이렇게 하여 얻은 결과는 과거에 일어난 사실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미래사실에 대해 예측이 가능해야 하며, 새로운 관측에 의해 수정이 가능하고, 잘못되었을 경우 그 잘못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처럼, 귀납법의 추진과정은 다음 순서에 따른 실험을 요구한다 (그림 2).

  (1) 자연현상을 관찰한다 (observation).

  (2) 관측으로부터 문제를 제기한다 (questionning).

  (3) 문제를 설명하기 위한 가정을 설정한다 (assumption).   

  (4) 가정을 증명할 수 있는 가설을 세운다 (working hypothesis).

  (5) 실험을 통하여 가설을 증명한다 (experimental demonstration).

  (6) 다시 반복실험을 하여 재현성이 있으면(reproducible) 자연법칙(natural law or principle)으로 인정을 받는다. [Randy L. Wysong; Creation-Evolution: The Controversy, p 42, Inquiry Press, Midland, Michigan, 1978]


이러한 귀납법의 등장은 그 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자연과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귀납법의 가장 성공적 사례가 뉴턴이 발견한 만유인력의 법칙이다. 그는 어느 날,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현상을 관찰하였다. 그리고, 왜 아래로 떨어지는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지구의 중심부에서 끌어 당기는 힘이 있으리라고 추리하였다. 그는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높은 곳에서 가벼운 물건과 무거운 물건을 떨어뜨리는 실험을 통하여 무거운 것이 더 빨리 떨어진다는 인력(引力 gravitation)과 가속도(加速度 degree of acceleration)의 원리를 입증했다. 그리고, 이러한 실험결과는 언제 어디서나 같은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재현성) 만유의 법칙(萬有法則 universal law)으로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하여 탄생한 것이 소위 만유인력의 법칙(law of universal gravitation)이다.

그러나, 이러한 귀납법은 경험세계에서만 유효하며, 형이상학적 요소를 무시함으로써 실험과학의 독선에 빠지게 된다는 지적이 최근에 일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학자가 쿤(Thomas Kuhn)이다. 그는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ce Revolution 1970)에서 귀납적인 점진적 발전론을 비판하고, 기존이론에 대한 혁명적 전환에 의해 과학발전이 급속히 이루어진다는 패러다임 쉬프트설(paradigm shift theory)를 주장하였다. 즉, 패러다임 혁명은 기존학문과는 전혀 다른 질문과 이론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상반되는 패러다임 간에는 의사의 소통이 없이 서로 대립하게 되므로, 격렬한 논쟁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새로운 이론이 옛 이론을 축출하고, 새로운 정설로 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천동설에 대한 지동설, 뉴톤역학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 등을 그 예로 들었다. 이러한 귀납법에 대한 비판에는 포퍼(Karl Popper)도 가세하였다. 그는 귀납모델이 가르치듯이 과학자들이 실제적으로는 객관적인 자료를 수집하여 관찰하지 않는다고 자연과학자들의 성실성을 비판하면서, 마르크스주의와 프로이드 사상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하였다.
 

2. 연역법

연역법 (演繹法 deductive method)은 일반원리에서 논리적인 방법으로 필연적인 결론을 유도해 내는 방식이다. 예컨데, “홍길동은 죽는다” 라는 명제를 증명해 보기로 하자. 연역적으로는 ”모든 사람은 죽는다“ 라는 대원리로부터 출발한다. 이는 누가 보아도 자명한 원리이다. 다음 단계로 ”홍길동은 사람이다“ 라는 보편적 사실을 설명한다. 마지막 단계로 ”따라서, 홍길동은 죽는다“는 자명한 결론을 유도한다. 이러한 삼단논법(三段論法)은 소크라테스가 처음으로 정립한 것이지만, 그 뿌리는 일원론(monism)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들은 우주의 원리로부터 세상에서 일어나는 제반 현상들을 연역적으로 설명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전통적인 삼단논법을 포함한 변증법(辨證法, dialectic)은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60)에 의해 수학적 연역법으로 체계화되었으며(사진 2), 지금은 철학의 원리나 종교의 교리로부터 일상적인 생활법칙을 유도해 내는 데 많이 활용되고 있다. 예컨데, 헤겔(Hegel)은 변증사관을 수립하여 역사의 인식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그의 변증사관은 다시 마르크스에 의해 유물사관의 수립에 이용되기도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이며 ‘근세철학의 아버지’로도 불리우는 데카르트는 예수회에서 철저한 교육을 받은 유신론적 과학자였다. 그는 철학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려 하였으며, 그의 학문은 의심에서 출발하였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말은 이러한 회의론을 극명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의 <방법적 회의>(la doute methodique)는 첫째는 사물인식에 대한 감각적 경험이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회의, 둘째는 우리 마음이 감각적인 경험을 넘어 외부세계에 대한 바른 지식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에 대한 회의이다. 그래서, 그는 감각을 부인하고 “이성(理性)은 신이 주신 자연의 빛(lumen naturale)이며, 이성에 의해 명석하고 확실하게(clair et distinct) 바른 것으로 인정된 것이 진리”라 하였다. 이처럼, 직관에 의해 자명하게 인정된 학문분야가 수학(數學)이라고 그는 주장하였다. <방법론에 대한 강연>(Discourse on Method 1637)에서는 “우주는 수학적 법칙이 지배하는 기구”로 보았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나 스콜라철학과는 다른 수학적 연역법을 도입하였으며, 가설과 수학적 추론으로 법칙을 유도하려 했으나, 경험(실험)을 무시하는 오류를 범한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학문적 방법으로 다음의 네 가지 기준을 제시하였다.

① 독단과 편견을 피하고, 진실이라고 생각되는 것 이외의 것은 받아들이지 말라. 자신이 의심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② 연구하려는 문제를 해결이 가능한 작은 부분으로 나누어라.

③ 사고순서는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방향으로 하라.

④ 전체를 종합하여 다시 보라. 그 문제를 완전히 설명할 수 있어야 진리이다.

그는 인간이 주관적으로 지식과 진리를 결정하는 주체라고 하여, 후일 서양학문이 인본주의적이며 반신적(反神的)인 방향으로 흐르는 길을 터놓았다. 그리고 “동물은 신이 만든 단순한 기계” 라는 생체기계론(生體機械論)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자연스럽게 라메뜨리의 생명기계론으로 연결되어, 생명사상에 관한 새로운 학술논쟁을 예고하게 하였다. 그러면서도 사람은 이성을 가진 존재이므로, 육체와 영혼은 별개의 것이라는 이원론적인 주장을 펼치기도 하였다 (‘Traite e l'homme' 1630).

 

3. 실험적 연역법

지동설로 유명한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의 방법론은 데카르트와 같은 연역법이지만, 수학적 추리에 실험적 검증을 가미한 것이다. 연역법에 실험이 가미됨으로써 데카르트의 미비점이 보완된 것이다.

이렇게 하여 관찰과 실험을 중시하는 현대과학의 방법론이 확립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 후, 서양을 중심으로 한 자연과학은 귀납법과 실험적 연역법에 의해 급속한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특히, 귀납법은 자연과학에서 가장 널리 이용되었으며, 지금은 페러다임 쉬프트이론과 더불어 자연과학을 포함한 모든 학문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4. 형이상학은 믿음의 문제

이 세상에는 실험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생명과학의 영원한 테마라 할 수 있는 생명의 기원과 생물의 다양성문제, 우주만물의 기원 및 인간, 내세, 영혼, 신, 진리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과제들은 실험과학으로는 증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러한 형이상학적 과제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해석방법이 있다. 하나는 종교적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해석의 틀을 미리 설정해 놓고서 제반 사상(事像)을 그 틀에 맞추어 해석하는 방식이다. 전자가 우리 주변에 있는 고등종교들이고, 후자는 창조론과 진화론이다.

종교적 해석의 특징은 직관적이며, 주관성이 강하고 선언적이라는 것이다. 종교는 우주와 세계를 바라보는 세계관이며 가치관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학문으로 성립하기가 어렵다.

학문적 해석의 틀(interpretation paradigm)에는 역사적으로 두 이론이 대립하여 왔다. 우주만물이 자연적으로 발생하여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발전해 왔다는 진화론이 그 하나요, 전능하신 창조주가 목적을 가지고 아무 것도 없는 상태로부터 우주만물을 종류대로 창조했다는 창조론이 다른 하나이다. 학문적 관점에서 볼 때, 이 두 이론 외에는 다른 해석체계가 없다는 것이 학계의 보편적 견해이다. 창세기에 기초한 창조론은 학문의 영역과 종교의 영역을 동시에 가진 셈이다. 그 이유는, 학문의 역사상 다윈의 진화론이 나오기 전까지는 창조론이 학문의 주류를 이루어 왔을 뿐 아니라, 창세기의 기록이 우주의 기원과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데 광범위한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창조론은 기독교의 교리라고 비판을 받아 온 반면, 진화론은 철저히 절대성을 부인하고 상대주의를 고수한다. 그러나 우주의 기원(origination)이나 생물다양성(biodiversity)과 같은 문제들은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므로, 추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두 이론은 모두 과거에 대한 추리(assumption)이며, 그렇게 되었으리라고 믿는 신념(belief)이며 신앙(faith)이라 할 수 있다. 창조론이 유신론적 신앙이라면 진화론은 무신론적이며 유물론적인 신앙이다. 진화론은 추리에서 출발하여 추리로 끝나지만, 창조론은 창조주가 우주만물을 만드셨다는 창세기(創世記 genesis)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우주의 기원에 대해 설명하는 창세기는 과거 3,500년간 원본대로 전해져 내려 온 인류 최고(最古)의 기록물이라는 사실은 그 동안 성경을 없애려고 노력했던 수많은 무신론자들에 의해 역으로 증명되고 있다. 문제는 성경이 거기에 기록된 내용대로 하나님의 말씀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진화론과 창조론의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이겠지만, 그것은 학문적 선택이면서, 동시에 믿음의 선택이며 개인적으로는 인생관의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창세기의 내용은 매우 요약적이지만, 우주만물의 기원에 관한 거의 모든 기록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기록들이 단순한 사람의 기록이 아니라, 창조주의 감동으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이 점은 분명히 신앙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비과학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성경은 초과학적이라 할 수 있다. 한 때는 성경의 일부 내용이 과학과 상충하는 듯이 보이더라도 과학이 발전하면서 성경의 기록이 옳았다는 사실이 입증되곤 하였던 많은 사례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따라서 창조론이 창세기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만으로 과학계에서 배척하려는 것은 학문적인 견지에서도 정당치 못하다. 중요한 사실은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 과학적 사실에 부합하느냐가 문제가 될 뿐이다.

불행스럽게도, 오늘의 자연과학계는 진화론 일변도로 물들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입만 열면 창세기를 특정종교의 교리라고 배척하면서 창조론자들을 편협한 근본주의자로 매도한다. 이러한 지적은 매우 부당한 것이다. 왜냐하면, 진화론이 오늘처럼 세력을 얻은 것은 불과 100 여년에 불과하며, 창세기에 근거한 창조론은 1,500 여년의 긴 역사를 통하여 과학계에 널리 수용되어 왔던 이론이기 때문이다. 무수한 창조과학자들이 오늘의 자연과학을 이끌어 온 원동력이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 할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진화론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증명될 수도 없는 가설이기 때문이다.

진화론은 유물론적이고 무신론적 신념이요 신앙이라는 사실이 여러 가지 증거로 드러나고 있다. 그들은 모든 것이 물질에서 출발한다는 유물론을 주장한다. 생명도 무기물에서 우연히 자연발생 하였고, 단세포에서 자연의 선택에 의해 다양한 동식물로 분화되었다고 주장한다. 인간도 동물의 일종일 뿐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초월적인 신의 개념이 개입할 여지란 전혀 없다. 모든 것이 옛날에 일어났던 일이라 알 수도 증명할 수도 없건만, 그들은 스스로 만든 가설의 틀에 갇히어 그렇게 되었으리라고 확신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자기 이론을 학술적으로 비판하는 창조론자들은 교조적이며 교리의 도그마에 붙잡힌 편협한 사람들이라고 매도한다. 진화론을 비판하지만 말고 대안을 제시하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쯤 되면 과연 누가 과연 편협하고 비과학적인지 혼란스럽게 된다. 그들은 오늘의 과학지식 대부분이 창조론적 과학자들에 의해 확립된 이론들임을 알고서 하는 말인지 의심스럽다.

그런데, 문제의 심각성은 다른 곳에 있다. 각자가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야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그러나, 잘못되고 위험스러운 이론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닐까? 더구나, 그 대상이 우리 자녀들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아니 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 교과서에서는 진화론만 가르치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진화론과 창조론은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주장이기 때문에 타협의 여지가 없음을 알게 된다. 두 이론을 굳이 조절해야 할 당위성도 없다. 두 주장이 극도로 상반된다는 것은 두 이론중 하나는 고의적이든 아니든 간에 분명히 거짓된 사설(邪說)임을 의미한다. 잘못된 이론에 일생을 맡긴다면, 그 사람의 일생은 물론이요 사회와 인류를 파멸로 이끌고 갈 뿐이다. 이러한 비극을 막기 위해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깊이 음미함으로써 교훈을 받아야 한다.


출처 -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서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591

참고 :

한국창조과학회
2003-09-24

과연 다윈주의와 유신론은 양립 가능한가? 
Darwinism : Science or Philosophy - Chap. 4


Introduction 

아칸소 재판 판결문에서 Overton 판사는 "창조주에 대한 믿음과 과학적 진화이론의 수용은 상호 배타적"이라는 창조과학자의 주장에 격분하면서, 이러한 의견은 "많은 사람들의 종교적 견해에 대하여 공격적인 것"이라고 하였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시민의 대략 40%가 유신론적 진화론을 받아들인다고 한다. 무목적적이고 무의식적이며 무방향적인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에 의해 모든 생물이 진화하였다고 믿는 동시에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하는 것은 과연 가능한 입장일까? 아니면, 많은 사람들이 중요한 요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일까?

Episode I 

카톨릭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는 어떤 신앙심 깊은 여교사는 수업시간에 창조론이 아니라 진화를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진화가 인도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한동안 침묵하다가 "No"라고 대답하였다.

'유신론적 진화론'이라는 용어는 진화가 하나님에 의해서 시작되고 인도되어 사람에 이르게 된 과정이라고 암시하는 듯 하다. 대부분의 유신론적 진화론자는 가슴으로는 진화가 하나님이 선택한 창조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의 머리는 이런 생각은 다윈주의자들이 '진화'라고 말할 때 의미하는 바가 결코 아님을 또한 이해하고 있다. 예컨대 다윈주의자 George Gaylord Simpson는 "사람은 사람을 염두에 두지 않은 목적없는 자연적 과정의 산물이다"라고 분명히 말한다. 여교사는 아마도 가슴과 머리가 갈등하는 동안 대답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Episode II 

Irving Kristol이 1986년에 New York Times에 다윈주의자들이 무신론을 퍼뜨리고 있다는 칼럼을 쓰자 지도적인 진화론자인 Stephen Jay Gould는 Discovery에 그에 대한 답을 썼다. Gould는 19세기 설교자 Henry Ward Beecher를 인용하면서 "매번 새로 설계하는 것보다 한 번에 모든 것을 설계하는 것이 더 위대하다"고 썼지만, 다윈주의는 어떠한 설계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독자에게 알리려 하지는 않았다. 또 Gould는 다윈주의가 '종교'에 적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Theodosius Dobzhansky가 위대한 진화론자이면서 평생 러시아 정교 신자였다고 썼지만 사실 Dobzhansky의 종교는 진화론적 자연주의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Dobzhansky의 제자였던 Francisco Ayala에 따르면 Dobzhansky는 인격적인 하나님의 존재나 사후의 삶과 같은 것은 믿지 않았으며, 우주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믿은 점에 있어서는 종교적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그 의미라는 것은 진화에 의해서 구현되는 것이었다.

Episode III 

다윈주의가 종교와 양립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Gould처럼 개인적인 경우에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 국립과학원은 1984년 공식 언급에서 "진화론이 종교와 과학간의 화해할 수 없는 충돌을 나타낸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라고 하였다. Frank Press박사는 많은 종교지도자들이 교리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은 채로 과학적인 근거로 진화를 받아들인다고 설명하였지만, 그들이 단순히 논리적 모순을 간과한 것인지 여부나 버릴 필요가 없었던 교리에 생명체를 설계하거나 구성하는 데 활발한 역할을 하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것이 포함되어 있는지 여부는 말해주지 않았다. 또한 Press박사는 1981년 국립과학원 위원회 결의를 인용하여 "과학과 종교는 서로 분리된 인간 사고 영역이다. 그것들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하게 되면 과학이론과 종교적 신앙 양자에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는 무목적적 진화나 우주의 역사에서 초자연적 창조주의 부재를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과학자들에게 과학과 종교의 분리가 암시하는 바가 무엇일지는 말하지 않았다.

William Provine은 국립과학원의 이러한 입장이 정치적으로는 이해할 만 하지만 지적으로는 정직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Reformulating problem 

많은 경우에 주어진 문제에 올바른 답을 얻는 것보다 올바른 문제를 구성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일 수 있다. 이 글은 다윈주의가 의미있는 유신론과 양립가능한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많은 경우 이런 질문은 다윈주의가 옳은 것으로 가정하고 유신론을 버려야 하는가를 묻고 있다. 그렇지만 질문을 반대 방향으로 돌리는 것도 유익하다. 인격적인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다윈주의가 말하는 바처럼 모든 생물이 전적으로 자연적인 진화과정을 통해 생겨났다고 믿을 이유가 있겠는가? 물론 아니다. 화학진화로 생명이 생성되는 것이나, 자연선택에 의해 새로운 신체형태나 복잡한 기관이 생긴다는 것은 전혀 증명된 바 없으며, 오직 이미 존재하는 형태 내에서의 변이만이 관찰되었을 뿐이다. 화석기록은 점진적 변화의 연속과정을 보여줄 수 없으며, 그래서 고생물학자들은 생물형태의 변화가 어떤 도약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화학진화와 생물진화가 생명체가 나올 수 있는 유일한 원천이라면 증거가 부족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자연주의적 진화는 유일한 대안이 아니며 따라서 유신론자가 진화를 믿을 이유가 없다.

Episode IV 

James Trefil은 그의 저서 1000 Things Everyone Should Know About Science에서 예를들면 다음과 같은 식으로 얘기한다. "지구상의 생명은 무기물질로부터 발전되었음에 틀림없다. 그것 말고 또 무엇이 있었겠는가?" 그의 태도는 자연주의 또는 실증주의적인 것이다. 실증주의에서는 과학을 어떤 신적인 활동을 사용하지 않고 세상을 설명하려는 것으로 정의한다. 따라서 그의 입장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자연주의적인 화학진화와 생물진화가 일어났다. 왜냐하면 그 외에 다른 일은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유신론자는 이러한 식의 논증을 받아들일 하등의 이유가 없다.

Darwinsim : Science or Philosophy 

다윈주의가 형이상학적 자연주의 - 이는 완전한 무신론이다 - 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다윈주의를 받아들이면서 거기에 유신론적 해석을 가하는 것은 일관성이 없다.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이 늘 헷갈리는 점은 다윈주의가 관측사실에 기반한 경험적인 학설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그렇다고 하면 유신론적 해석을 가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갈라파고스 제도에 사는 핀치새 부리 모양의 변이나 산업화에 따라 검은 나방의 생존률이 높아지는 것과 같은 현상에는 유신론적 해석에 반대할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G. G. Simpson의 과학적 결론 -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이 창조작업을 수행하였다 - 은 받아들이면서 그의 철학적 결론 - 우주는 목적이 없다 - 은 거부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진화론자들이 자연선택이 모든 생물을 설계할 수 있는 창조력이 있다고 믿을 때, 그럴 만한 충분한 경험적인 증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지적이지 않고 목적이 없는 과정만이 작동하였다고 철학적으로 가정하기 때문에 그렇게 믿는 것이다. 다윈주의자들은 자연선택이 캄브리아기 지층에 갑자기 나타나는 여러 생명형태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이런 결론을 뒷받침하는 관찰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연주의 철학이 다른 가능성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Conclusion I 

다윈주의가 유신론과 양립가능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이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를 사용할 수 없으시기 때문이 아니다. 다윈주의적 진화는 비성경적인 듯 하고, 하나님이 쓰시지 않을 듯한 방법이긴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 기대 밖의 일을 하실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다윈주의와 유신론이 양립불가능한 데에는 좀 더 깊은 이유가 있다. 다윈주의가 옳다고 논증하려면 자연주의적 진화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 가정해야만 한다. 그 말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거나 적어도 하나님이 창조할 수 없다고 가정한다는 얘기가 된다. 창조주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다윈주의가 옳다고 논증해 놓고 다윈주의를 하나님의 창조방법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Conclusion II 

다윈주의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아는 사람들이 다윈주의와 유신론의 양립불가능성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다윈주의자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면 할수록 그것이 유신론과 얼마나 충돌하는지 보게되어 모순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다윈이나 그 후계자들은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이 뭔가 빠뜨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자연선택의 창조적 역할이 하나님이라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올바르게 항의하지만, 실증주의적 과학의 입장은 자연세계에서 활발한 역할을 하는 초자연적 창조주의 존재와는 근본적으로 양립불가능하다는 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Conclusion III 

다윈주의자가 그 이론의 유신론적 종교에 대한 함의를 솔직히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 위험하다. 다윈주의자들은 그들의 이론이 공격받을 때 흔히 과학의 실증주의적 정의 - 과학은 모든 현상에 대해 자연주의적 설명을 찾는 것이다 -를 내세워 다른 활동은 과학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런 입장이 성립하려면 '과학'은 그저 하나의 지적인 게임이며 유신론자들은 아무 손실 없이 '종교'라는 다른 게임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이 두 게임의 위치가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다. 과학은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공교육을 통제한다. 유신론자의 아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의 아이든 상관없이 "진화는 사실이다"라고 배우게 된다. 이 말은 '진화'에 반대되는 것은 - 창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하나님의 존재를 포함하여 - 모두 틀렸다는 얘기가 된다. 만일 '진화'가 그렇게 유신론에 반하는 것이라면 정치사회에 속한 유신론자들이 다윈주의자에게 '진화'가 정말 옳으냐고 물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과학을 하는 방법입니다'라는 대답은 적절하지 않다.

Problems to Think together 

1. Johnson은 다윈주의와 유신론이 양립불가능하다는 것을 논증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이 놓치고 있는 요점 - 그 점을 이해한다면 유신론적 진화론을 포기하게 될 요점 - 을 지적하고 있을 뿐 유신론적 진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인 것은 아니다. 이것으로 충분한가?

2. Johnson은 Provine의 말을 인용해서 국립과학원의 입장이 정치적으로는 이해할만 하지만 지적으로는 정직하지 못하다고 꼬집었다. Johnson 자신의 입장은 어떤가?



출처 - 창조지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99

참고 :

김창환
2003-09-24

심판대 위의 다윈(Darwin on Trial) 1, 2, 3장


제 1 장. 법적 배경 - 시작하기 전의 예비적 고찰 


1-1. 용어 정리

- 창조와 진화는 반드시 상치되는 개념은 아니다. 'Life - How Did it Get Here? By Evolution or by Creation?'이라는 책 제목은 잘못 붙여진 것일 수도 있다. 진화가 완전히 자연주의적인 진화 - 어떤 목적이 있는 지능에 의하여 지시되지 않는 진화를 의미할 때에만 '진화'는 '창조'와 상치되고 창조가 점진적인 발전이 아니고 갑작스런 창조를 의미할 때에만 '창조'는 '진화'와 상치된다. 여기서 사실 3가지 입장이 있을 수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모든 종류의 창조와 상치되는 진화, 모든 종류의 진화와 상치되는 창조, 그리고 창조와 진화 모두에 상치되는 않는 입장이 그것일 것이다. 두 번째 것이 한국창조과학회와 미국 ICR (Institute of Creation Research)의 입장으로서 '창조과학(creation science)' 또는 '과학적 창조론(scientific creationism)'이라고 불린다. 두 번째 것과 세 번째 것을 합하여 '창조론'이라고 부르는 것이 보통이다. 첫 번째 것이 Richard Dawkins등이 견지하는 입장으로 저자는 이것을 '다윈론(Darwinism의 번역인 듯)'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이렇게 부르면서 저자는 이것을 첫 번째 것과 두 번째 것을 합한 의미의 '진화론'과 구분하려고 한 것 같다. 저자는 이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 진화론이 아닌 다윈론을 주로 공격한다. 


1-2. 두 번의 재판(trial)

♡ Scopes Trial ; 1925년 봄에 Tennessee주 Dayton에서 John Thomas Scopes라는 교사가 진화론 교육을 금지한 Tennessee주의 법령을 어겼다고 고백함으로써 시작된 재판이다. William Jennings Bryan이 검사측을 이끌고 Clarence Darrow가 변호사측을 이끌었는데 판결은 Scopes의 유죄였으나 사실상 반진화론은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이 사건은 반진화론자들의 의견이 일치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언론은 창조론자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았으며 비록 1926년 Mississippi, 2년 후에 Arkansas에서 창조론 측이 재판에서 계속 이겼으나 1920년대 말에 이르러 입법운동은 점차 사라지게 된다.

♡ Creation-Science ; 1968년에 대법원이 Arkansas주의 반진화론 법령을 위헌이라고 판정하였다. 창조론자들은 더 이상 진화론을 금지시키려 하지 않고 two-model approach를 주장하였고 자신들의 창조론(creationism)을 과학이라고 주장하여 '창조-과학(creation- science)'이란 이름을 붙였다. 1980년대 초에 Arkansas주와 Louisiana주에서 이러한 two-model approach를 허용하는 법령이 통과되었으나 Arkansas주의 법은 1982년에, Louisiana주의 법은 1985년에 연방판사에 의하여 발효되지 못하였다. 1987년 대법원 판결은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가 인간을 창조했다는 종교적 관점을 진작시키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William Brennan 판사의 의견이 다수를 대변했고 '진화론을 반대하는 어떠한 과학적 증거도 가질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Antonin Scalia 판사의 의견이 소수를 대변했다. 


1-3. 논쟁의 헛점들

♡ Osborne의 경우 ; Scopes trial이 진행되던 1920년대 진화론의 주된 대변인은 미국 자연사 박물관의 책임자였던 Henry Fairfield Osborne이었다. 그는 지금은 사기극으로 판명된 Piltdown Man에 크게 의존하였으며 돼지의 이빨에서부터 잘못 추론된 Nebraska Man을 확인하고 크게 기뻐하였다. 그가 법정에 서면 Bryan보다 나을지 알 수 없다.

♡ '과학'과 '종교'라는 용어 ; 자연주의적인 진화가 '과학'이고 초자연적인 창조가 '종교'라고 말할 때는 전자는 진리이고 후자는 환상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국립과학원은 '과학'은 자연주의적인 설명을 해야한다고 정의함으로써 초자연적인 창조는 용어의 정의상 과학적 연구가 불가능해진다. 그런데도 다윈론자들은 과학으로부터 다시 종교적인 결론을 이끌어낼 때가 많은데 이는 명백히 순환논법이다. 처음에 과학을 하기 위하여 자연주의를 가정한 다음 그로부터 필연적으로 이끌어져 나오는 자연주의적인 결론을 과학적 추론을 통하여 얻은 결론인 것처럼 얘기하는 것이다.

♡ Patterson의 경우 ; '여러분들은 진화에 대해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것으로서, ...진실이라고 확신하는 어떤 한 가지라도 말할 수 있습니까?' Collin Patterson은 1981년 미국 자연사 박물관에서 한 강연에서 특수 창조(special creation)와 진화론이 둘 다 믿음을 근거로 할 뿐 과학적으로는 공허하다고 말하였다.

♡ Kristol의 경우 ; Irving Kristol은 뉴욕 타임즈의 한 기사를 통해 다윈론적 진화가 종 내의 변이에서는 유효하나 한 종류의 생물을 다른 종류의 생물로 변형시킬 수 있다는 것은 가설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가르쳐지는 진화론이 부당한 반종교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일리가 있다고 말한다. 


1-4. 저자의 입장

♡ 법학자로서 ; 이 문제가 논리 형식이나 가정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에 법학자로서의 잇점이 있다. 일반인을 위한 수많은 문헌이 있기 때문에 이를 마치 판사가 증거와 증언을 다루는 것처럼 다룰 수 있다. 사실 위에서 본 것과 같이 이 문제가 법정에서 다루어진 전례가 있기도 하다. 'Darwin on trial'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저자는 이 책에서 마치 판사가 재판에 걸린 문제를 다루듯이 다윈론에 대한 자료를 다루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 Intelligent Design theorist로서 ; '하려고만 한다면 무로부터서도 창조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자연적 진화과정을 통하여 창조작업을 완수하기로 작정했을지도 모르는 어떤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나는 창조-과학의 옹호자도 아니고 사실 이 책에서 성경적 기술과 과학적 증거 사이의 모순에 대해 언급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제 2 장. 자연선택 - 자연주의적 다윈론의 핵심 


2-1. 다윈론에서의 자연선택의 위치

♡ 저자는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세 가지 중요한 명제를 내세웠다고 말한다. 그것들은 종의 가변성, 모든 생물의 공통기원, 자연선택이라고 한다. 한편 Ernst Mayr에 따르면 다윈론은 다섯 가지 소이론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다섯 가지 이론들이 세분할 수 없는 하나의 이론이 아니'라고 한다. 그 다섯 가지 이론은 다음과 같다.

1) 진화 그 자체 : 이 이론은 세계가 항상 일정하거나, 최근에 만들어졌거나, 영원히 순환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변화되고 있으며, 생물들도 시간에 따라 변화한다는 이론이다.

2) 공동 후손 : 이 이론은 모든 생물 무리들이 공동 조상에서 기원했으며, 동물, 식물, 미생물 등 모든 생물들이 궁극적으로는 지구상에 단 한 번 나타났던 생명체에서부터 유래했다는 이론이다.

3) 종의 증가 : 이 이론은 엄청나게 많은 생물 다양성의 기원에 관한 이론이다. 즉, 새로운 종으로 진화하게 될, 지리적으로 격리된 발견자 집단에 의해 한 종에서 두 자손 종이 만들어지거자, 한 종에서 다른 한 종이 만들어지게 되어 종의 수가 증가한다고 설명한다.

4) 단계주의 : 이 이론에 따르면, 진화적 변화는 개체군의 단계적 변화에 의해서 일어나지, 새로운 형을 대표하는 새로운 개체가 급작스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5) 자연선택 : 이 이론에 따르면, 진화적 변화는 각 세대마다 유전적 변이가 많이 만들어지고, 다음 세대로 전해진 유전 형질 가운데 특별히 잘 적응한 유전 형질의 조합을 지닌 상대적으로 작은 수의 개체들만이 살아남게 되어 다음 세대를 이루게 된다.

저자가 이러한 요소들 중에 자연선택을 맨 처음에 다루는 것은 매우 적절하다. 자연선택이야말로 다윈론이 자연주의적이게 하는 요소이며 전체 진화과정이 무의식적이고 무목적적이라고 말하는 근거이기 때문이다. 


2-2. 문제의 핵심이 아닌 것들

♡ 문제는 자연선택이 일어나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완전히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자연선택이 일어나며 소진화의 영역에서는 유전적 적합성을 유지하는 데에 기여한다는 점은 거의 틀림없다. 그러나 자연선택이 대진화를 일으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자연선택이 종분화를 일으킬 수 있느냐 하는 것도 역시 중요하지 않다.

♡ 인위선택 ; 다윈은 인위선택을 자연선택과 비슷한 것으로 보고 그것을 증거로 제시하고 있으나 이는 intelligent design theory의 입장에서 보면 명백한 오류이다. 인위선택은 지능과 목적이 있는 존재에 의해 주도되는 과정이다. 반면에 자연선택은 무목적적이고 무의식적인 과정이다. 이것은 근본적이고 중요한 차이이다. 사실 인위선택으로도 육종에 한계가 있어서 새로운 종이 생긴 경우는 없다. 자연선택에는 훨씬 많은 시간이 있기는 하나 인위선택에는 지능적인 목적이 있는 것과 상쇄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인위선택에 관한 증거는 오히려 반증이 될 수도 있다. 


2-3. 유어 반복법으로서의 자연선택

♡ 최적의 유기체가 최다의 후손을 생산한다. 이때 최적의 유기체란 최다의 후손을 생산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많은 진화론자들이 자연선택은 유어반복이라고 주장해왔으며 또한 '최적'을 위와 같이 정의해서 사용하였다.

♡ Karl Popper에 따르면 진정한 과학이론은 반증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만일 자연선택이 유어반복이라면 반증가능성이 전혀 없다. Popper에 따르면 자연선택이 무엇이든 설명할 수 있는 다목적 설명방식이기 때문에 사실상 과학이 아니다. 


2-4. 연역적 논증으로서의 자연선택

♡ Collin Patterson은 모든 유기체는 번식을 해야 하며, 유전적 변이를 보여주며, 유전적 변이는 번식에 대한 영향에 차이가 있으므로 이로부터 연역적으로 유기체가 변화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자연선택으로 대진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쩌면 소진화도 입증하지 못할 수도 있다. 주어진 형태가 최적이고 모든 변이는 해로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2-5. 과학적 가설로서의 자연선택

♡ 저자는 Douglas Futuyma를 인용하며 자연선택의 증거라고 주장되는 6가지 사항을 나열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소진화적 변화에 대한 증거는 될 수 있을지라도 (그것도 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어떠한 완전히 새로운 기관이 자연선택에 의하여 생길 수 있는가 하는 데 대한 증거는 전혀 없다. 


2-6. 철학적 필연으로서의 자연선택

♡ Richard Dawkins는 '누적적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이야말로 우리가 아는 한, 조직화된 복잡성의 존재를 원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이론인 것이다'라고 썼다. 만일 과학이 자연주의적인 설명만을 하여야 한다면 Dawkins는 확실히 옳다. 자연주의적인 기반에서는 자연선택에는 경쟁상대가 없다. 자연선택에 부정적인 증거가 아무리 많이 나온다고 할지라도 자연선택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연선택으로 잘 설명되지 않는 것들을 설명하기 위해 성선택, 집단선택, 친족선택, 이기적 유전자 같은 개념들이 계속 필요했던 것이다. 어쨋든 이러한 상황에서는 자연선택은 어떠한 증거에도 반박되지 않을 것이다.


제 3 장. 대소의 돌연변이 - Natura non facit saltum? 


3-1. 눈과 날개

♡ 눈과 날개와 같은 복잡한 부분들의 섬세한 결합을 필요로 하는 기관은 어떻게 진화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문제가 다윈 이래로 진화론자들에게 골치거리였다. 이러한 기관이 점진적이고 누적적인 자연선택에 의해 조금씩 조금씩 형성되었겠는가? 아니면 갑작스럽게 전체가 한 번에 생겼겠는가? 아니면 또 다른 가능성인가? 도대체 가능성이 한 가지라도 있기는 한 것인가? 


3-2. Dawkins의 입장

♡ Richard Dawkins는 점진적이고 누적적인 자연선택에 의하여 눈이나 날개가 생겼을 것이라고 제안한다. '눈의 5퍼센트만 있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는 유명한 질문에 그는 희미하게라도 보는 데에 사용하였을 것이라고 답한다. 완전하지 못하여 날 수 없는 날개도 추락시에 생존률을 높이는 데에 기여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눈의 경우에 시각 작용을 처리하는 신경작용까지 함께 고려할 때에는 곤란해진다. 날개의 경우 앞발에서 날개로 이행하는 중간형태는 양쪽 모두에 부적절하여 그러한 형태를 자연선택에 의해서 가지게 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3-3. Goldschmidt의 입장

♡ Richard Golschmidt는 점진적 자연선택으로 생길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되는 예들을 제시하고 다윈론은 소진화에만 적용할 수 있으며 대진화는 대돌연변이를 통하여 일어났다고 제안하였다. 좀 심하게 이야기 하자면 첫 번째 새는 파충류의 알에서 부화되어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거의 기적과 같은 이야기로 확률적으로 도저히 가능하지 않다. 이러한 도약진화는 사실상 특수 창조와 구별하기 어렵다. 


3-5. Gould의 입장

♡ Stephen Jay Gould의 입장은 다소 모호하다. 그는 Goldschmidt를 지지한다고 했다가 도약진화를 할 때에도 누적적 자연선택을 통해야 한다고 하기도 하고 자연선택 이외의 메카니즘이 있을 수도 있다는 다윈의 말을 인용하기도 한다. 눈이나 날개 같은 경우 중간단계에서는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한다. 


3-6. 그들의 입장들에 대한 가능한 하나의 설명

♡ 여기서 먼저 철학적 문제에 관하여 Francis A. Schaeffer가 했던 말을 인용함으로 시작하고자 한다. '비기독교적 입장을 붙잡는 사람이 자기의 전제에 논리적이면 논리적일수록, 그는 실제 세계에서 좀더 멀리 벗어난다. 그리고 그가 실제 세계에 더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그는 자기 전제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일관된 입장을 취할 수 없게 된다.' 비록 Schaeffer는 철학적인 입장에 관하여 말한 것이기는 하나 여기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Dawkins는 자기 전제에 철저하게 논리적이다. 그는 실질적인 문제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논리적으로 유일한 결론을 알고 있으므로 그에게 실질적인 문제들이란 사소한 기술적인 문제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되는 것 같다. 한편 Goldschmidt는 실질적인 문제들을 충분히 고찰해본 후에 다윈론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음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그 역시 자연주의적 진화를 믿고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그의 결론은 그의 전제와 명백히 모순된다. Gould는 실질적인 문제들과 전제의 논리적 결론에 함께 충실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다. 그는 애매한 태도를 많이 보여주는데 이는 분명한 태도를 보이면 어디선가 모순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Questions to Think 
1. 방법론적 자연주의는 Intelligent Design Theory와 조화될 수 있는가?

2. '자연주의'를 경험적으로 검증하는 것이 가능한가? 만일 그렇다면 위의 논의에 따라 '자연주의'를 기각할 수 있겠는가? 

3. '과학'과 '종교'가 각각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가? 용어에 대한 편견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4. 자연주의를 포기하고도 과학을 할 수 있는가?



출처 - 창조지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94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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