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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기독교

성경적 환경관

미디어위원회
2003-10-02

성경적 환경관

김성현

건국대 시스템생명공학과 교수 


    인간에게는 다른 피조물에 대한 권위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권위는 한정되고 파생된 것이며 하나님의 궁극적 권위를 반영하기 위한 것이다.  

 

1. 서론

요즈음처럼 환경문제가 모두의 관심이 된 적은 없었다. 매스컴에서는 연일 무분별한 개발에 의한 환경파괴를 고발하고 있고, 많은 환경단체에서도 민감하게 환경오염과 파괴에 대해 반응하고 있다. 학계에서도 환경파괴에 의해 매일 수십 종의 생물이 멸절되어 종의 다양성이 줄어든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수많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환경은 나아지는 것 같지 않으며 오히려 더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 4월 22일은 '지구의 날'이었다. 지구의 날이 제정 된지 30년이 지난 지금 각종 미디어에서는 이날을 특집으로 다루어 많은 환경관련 글들을 발표하였다. 주간지인 타임지 역시 어떻게 '지구를 구할 것인가(How to save the Earth)'란 제목의 특별판을 찍어내어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높였다. 필자는 대학에서 환경화학을 가르치면서 이 환경문제야말로 단순히 몇몇 기술의 개발로 해결될 것이 아니라, 성경적인 세계관에 입각해서 접근해야 하며, 이런 면에서 기독교인들에게 책임감과 사명감이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창조지에 실린 두 편의 글을 통해 독자들은 이미 성경적 환경관의 개념을 파악했으리라 생각한다. 이 글은 앞의 글의 연장선상에서 좀더 깊이 논의한 것이다.

 

2. 지구, 그 미묘한 균형

하나님께서 지구를 창조하셨다는 말씀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지구는 이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이다. 세이건(Carl Sagan)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외계의 지적 생명체(ET,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를 찾아봤지만 결코 존재한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우주에서 찍은 지구의 모습은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바다는 푸른색으로, 대륙의 많은 부분은 녹색으로 덮여있다. 우선 지구의 크기와 태양으로부터의 거리도 매우 경이적이다. 만약 지구가 지금보다 더 크다면 지구의 중력이 커져서 메탄이나 암모니아와 같은 가벼운 기체들의 농도가 지금보다 더 높아질 것이요, 만약 지금보다 더 작다면 산소가 외계로 빠져나가 농도가 낮아질 것이다. 그 어느 쪽도 지금의 조건보다 안 좋게되어 생명체가 살기에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태양으로부터의 거리도 지금보다 가깝거나 멀다면 지구의 온도가 상승하거나 하강하여 역시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조건이 될 것이다. 현재 지구의 평균온도가 약 15도인데 생명체가 살아가기에 아주 적당한 온도이다.

생명체는 이런 지구의 표면에서만 살아간다. 물론 지구 내부에서는 아무 생명체도 살 수 없다. 지표면에서부터 대기가 존재하는 상층부를 대기권(atmosphere)이라 부른다. 대기권은 온도의 분포에 따라 4개의 권역(sphere)으로 나누는데 대기의 순환이 있는 지표면에서 약 10-12km까지의 부분을 대류권(troposphere)이라 하며 그 이상으로부터 약 50km까지를 성층권(stratosphere), 그 이상을 각각 중간권(mesosphere), 열권(thermospher)이라 한다. 각 권역마다 온도의 분포, 화학반응, 대기의 조성 등이 특징적이다. 그러나 생명체의 생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권역은 대류권과 성층권이다. 대류권에선 모든 기상현상이 일어나며 생명체의 호흡에 필요한 산소가 많이 존재한다. 성층권은 많은 오존을 함유하고 있어 자외선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대류권의 두께를 한번 살펴보자. 약 10km 정도인데 지구의 직경이 약 6300km가 넘는 것을 생각하면 약 0.16%도 채 안 되는 두께이다. 사과를 지구로 생각하면 사과 껍질에도 못 미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대류권이다. 성층권까지 고려해도 그 두께는 매우 미미하다. 여러분들은 아마 원자폭탄이 터지는 사진을 본적이 있을 것이다. 굉장한 폭발력으로 위를 향해 올라가다가 옆으로 퍼져 마치 버섯모양으로 폭발이 진행되는데 그 이유는 폭발이 대류권 끝까지 올라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들의 삶은 바로 그 밑의 공간이 어떠하냐에 달려있다. 만일 핵전쟁이 일어나면 그 대류권은 온전치 못할 것은 불문가지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구가 계속 더워지고 있다고 말한다. 최근 몇 십년 동안의 지구온도의 변화를 보면 약간 상승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원인으로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의 증가를 꼽는데 이의가 없다. 이산화탄소는 대기 중 약 0.3%로서 질소, 산소 다음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산화탄소는 녹색식물의 광합성에 필수불가결이다. 만약 이산화탄소의 양이 지금보다 적으면 식물의 광합성이 둔화되어 이산화탄소의 소모가 적어지고 따라서 대기의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증가하기 시작한다. 반대로 이산화탄소의 양이 많아지면 식물의 광합성이 활발하게 되어 이산화탄소 소모가 빨라져 결국 대기 중의 농도가 적정한 값을 유지하게 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이산화탄소의 대기 중 방출량이 너무 많다는데 있다. 전 세계의 에너지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석유, 석탄, 천연가스와 같은 화석연료는 연소하면 이산화탄소가 나오는데 그 방출량이 현재 식물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많아 공기 중에 계속 축적이 되며, 지표면에 도달한 태양광이 적외선 형태로 우주로 방출이 되어야 하는데 마치 온실처럼 이산화탄소가 적외선을 흡수하여 지구의 온도가 서서히 상승한다고 한다. 더구나 지구의 허파라고 불려지고 있는 아마존 유역의 열대우림(rain forest)이 개간 등으로 계속 줄어들고 있어 이러한 현상은 가속화되고 있다. 이러한 지구온난화의 직접적인 효과는 기상이변 현상이다. 작년 유난히 엘리뇨에 의한 기상이변이 전 세계적으로 심했는데, 그 이유는 여름철에 태평양의 수온이 예년보다 몇도 더 상승하여 이와 맞닿고 있는 공기층이 어마어마한 열을 흡수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 대기의 순환에 의해 예측치 못한 기상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3. 환경을 보는 시각

슈마허(E. F. Schmacher)는 그의 명저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를 통해 자본주의 경제원리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가했다. 비록 기독교적 관점에서 고찰한 것은 아니지만 환경문제에 관련하여 매우 통찰력 있는 분석을 했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자원은 자본과 소득으로 나눌 수 있는데 자본주의적인 경제개념으로는 부존자원들, 예를 들면 화석연료나 기타 다른 광물들은 모두 소득에 속한다. 자기 자본을 갖고 장사를 할 때 소득이 생기면 누구라도 소비하게 되어있다. 반면 자본은 소비하지 않고 가능한 보존하려고 애쓰기 마련이다. 그런데 자본주의에선 자연을 소득이라고 생각하는데 문제가 있다. 어느 누구에도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라도 기술력이 있고 자금력이 있으면 마음대로 캐내어 이용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이 현재의 서구문명을 이룩했지만 한편 자연을 황폐케 하였던 것이다. 그러면 동양적인 사고방식은 어떠한가. 도교사상으로 대표되는 동양사상은 자연을 글자 그대로 스스로(自) 그러한(然) 것으로 보았고 자연과 일체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소위 무위자연(無爲自然)설을 말하는데 인공적인 것을 가하지 않고 자연과 합일되는 사상을 말한다. 이러한 사상에서는 과학의 발달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성경적인 관점은 무엇인가? 성경은 자연을 정복이나 숭배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자연도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6일 동안의 창조사역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이 가시적인 우주, 자연을 만드셨다. 하나님의 창조사역은 인간의 창조에서 그 절정을 맞게 되는데 이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인간도 피조물임에는 분명하지만 다른 피조물과는 분명히 구별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주신 사명을 흔히 문화명령(cultural mandate)이라고 부르는데 이 피조세계를 다스리고 가꾸라는 것이다. 창세기 1:28절에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였다. 린 화이트(Lynn White Jr.)로 대표되는 많은 사람들은 환경파괴의 원인을 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성경 말씀 탓으로 돌리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 인간의 다른 피조물에 대한 권위(dominion)를 뜻한다(창 9:1-7; 시 8:4-8). 그러나 우리의 권위는 한정되고 파생된 것이며 하나님의 궁극적 권위를 반영하기 위한 것이다. 이 땅에서 하나님을 대변할 수 있는 유일한 피조물은 인간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자연을 본래의 의도에 맞게 잘 활용하도록 지음 받았다. 이렇게 인간이 부여받은 직위를 청지기직(stewardship)이라고 하는데 청지기는 주인을 대신해서 집안을 다스리는 자이다. 분명 집 주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종도 아니다. 아담이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준 것처럼 우리들도 피조세계를 잘 관찰하고 연구하여 적절히 활용할 줄 알아야한다. 이러한 사명은 한 세대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에 함축되어 있듯이 대대로 이루어 가야하는 사명이며, 이 사명을 수행함으로써 인간과 피조물간의 온전한 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다.

 

4. 피조물의 신음소리를 들어야

 지금처럼 신록이 우거진 계절에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더욱 잘 느낄 수 있다.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 물고기 한 마리에 이르기까지 아름답고 신기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하나님의 오묘한 창조섭리를 맛보려면 자연을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한편 잘 살펴보면, 이 아름다운 자연에 생존경쟁,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투쟁이 일어나고 있음을 본다. 약한 것은 강한 것에게 잡혀 먹힐 수밖에 없고 자연에 부적합한 것은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다.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 같은 자연에 실은 엄청난 부조리, 모순이 공존하고 있다. 무언가 잘못되어도 철저히 잘못되어 있음이 틀림없다. 진화론적인 관점을 가지고 이러한 상황을 당연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성경은 그에 대한 답을 명확히 말한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함으로 인간뿐 아니고 다른 피조계까지 타락하였다. 아무 죄 없는 땅까지 저주받은 것을 보면 인간의 다른 피조물에 대한 우월성이 있음이 명백하다. 땅은 이제 아름다운 소산뿐아니라 가시덤불과 엉겅퀴도 내게 되었다. 즉, 열역학 제 2법칙이 말하는바 붕괴의 원리가 적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창조시 완벽한 샬롬의 상태에 있었던 피조물들 간의 관계도 왜곡되어 생존경쟁의 사태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일전에 누군가가 '바이러스의 전자현미경 사진을 보았더니 매우 아름답더라. 하나님이 유해한 바이러스조차 그렇게 아름답게 만드셨나보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이러한 견해는 상당히 잘못된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쓸데없는 것, 해로운 것, 무익한 것은 하나도 만드시지 않았다. 인간의 타락의 결과 그러한 것들이 생겨난 것이다. 엉겅퀴를 하나님이 만드시지 않으셨지만 타락의 결과 그러한 것들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또는 기존의 피조물의 기능이 악하게 바뀐 것이다.

 지금 피조물들은 신음하고 있다. 강한 자건 약한 자건 모두 신음하며 궁극적인 구속을 기다리고 있다(롬 8:19-23). 우리는 아름다운 자연의 이면에 감추어져 있는 이러한 신음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5. 해결책은 있는가?

 환경단체 중 그린피스(Green peace)나 지구의 친구들(Friends of the earth) 같은 단체는 환경보존에 매우 적극적이다. 이들은 포경선 앞에서 조그만 보트를 타고 시위함으로써 고래를 못 잡게 하거나 핵물질을 수송하는 배가 출항을 못하도록 하기도 한다. 이들은 압력단체로서의 역할을 자청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단체나 환경보존을 강조하는 개인의 이면에 흐르고 있는 사고 방식은 과연 무엇인가? 이들이 우려하는 것은 환경으로부터의 인간의 고립이다. 인간이 환경을 오염시켰고 결국 인간도 환경으로부터 고립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역으로 환경을 보존하면 인간도 잘 될 것이요, 따라서 세계평화도 올 것이며 결국 지상낙원이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지구가 인간을 위하여 만들어졌다는 사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인간의 다른 피조물에 대한 우월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과연 환경으로부터의 인간의 고립이 궁극적 문제인가? 성경은 결코 그렇다고 말하지 않는다. 성경은 분명하게 모든 문제의 근원은 인간의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라고 말한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의 결과, 모든 관계가 왜곡되기 시작하였다.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는 물론이요 인간과 자연 또는 자연계 내에서도 왜곡된 관계가 발견된다. 그러나 이 모든 왜곡과 모순의 근원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분리이다. 타락한 인간의 마음은 그 속에 하나님 모시기를 싫어해 우상을 만들어 경배하거나 환경주의(environmentalism)라는 고상한 이름 아래 자연을 신성시하고 숭배하는데 까지 나아간다. 바울이 잘 지적했듯이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로마서1:25)." 자연을 보호해야 하지만 신성시하거나 경배의 대상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이는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한 것과 같다(히브리서3:3). 환경운동을 하는 자들에게 말해야 하는 것은 궁극적인 해결책은 창조주 하나님께로 돌아가 그분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인간은 지금 진정 큰 위험에 직면해 있다. 자연으로부터의 분리가 아닌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 때문이다.

 

6. 결론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환경위기의 뿌리는 인간의 타락이며 타락한 인간의 본성 때문에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궁극적인 해결책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그때는 모든 것이 태초의 샬롬의 상태를 회복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 무엇을 할 것인가. 작게는 물자 아껴쓰기, 함부로 쓰레기 버리지 않기로부터 크게는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의 감축, 대체 에너지의 개발 등이 있을 것이다. 필자의 생각은, 많은 경우 충분히 환경을 깨끗이 할 수 있는 기술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오염이 되는 이유는 환경정화에 드는 비용을 아까와하고 모든 것을 경제논리로만 풀려고하는 자본주의적 사고방식 때문인 것 같다. 단적인 예가 현재 경제성장의 지표에 환경파괴의 영향은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피조계의 청지기로 부르셨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환경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명확해질 것이다.


출처 - 창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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