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환경
김정욱
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1. 창조질서에 대한 이해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말로는 하나님이 이 땅을 창조하셨다고 떠들면서 땅을 대하는 태도는 전혀 딴판이다. 물, 공기, 흙이며 거기 사는 생물들 각각이 왜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그 이유나 가치를 연구하고 더 좋은 모습으로 가꿈으로서 인류의 생활을 보다 풍성하게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돈벌이하고 정욕적인 쾌락을 위해서 이용하기 위한 재료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비능률적이고 무가치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보다 더 가치있는 모습으로 변형시키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굽은 강을 곧게 하고, 습지에서는 물을 빼고, 마른 땅에는 물을 넣고, 살림을 풀밭으로 만들고, 바다를 땅으로 만들고 하는 등등의 대규모의 토목공사들을 벌이고는 인간의 위대함을 자랑해 왔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이러한 인간의 노력들이 많은 경우에 형편없는 실패에 지나지 않았음이 드러난다. 원래 있던 자연의 모습들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오묘한 섭리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과 같은 예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플로리다에서 굽이쳐 흐르는 키시미(Kissimee)강을 곧은 수로로 만들고 나니 강에 살던 많은 생물들이 사라지고 말았다. 강은 굽이쳐 흐르면서 물살이 빠른 곳 느린 곳, 깊은 곳 얇은 곳 등이 있어야 수초가 자랄 수 있는 곳, 물을 잘 정화시킬 수 있는 곳, 수중생물들이 알을 낳을 수 있는 곳, 새끼가 자랄 수 있는 곳 등이 있어서 물도 깨끗하고 다양한 생물들이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키시미강을 원래 모습대로 돌리고 있는데 직강화(直江化)할 때보다도 그 모습을 복원하는데 훨씬 더 많은 돈이 들고 있다. 이디오피아에서는 10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 땅의 절반이 살림이었다. 그러나 그 삼림을 아무 짝에도 쓸데 없다고 생각하고는 목재도 팔고 목축도 하고 농사도 지어 꿩 먹고 알 먹겠다고 다 없애 버렸다. 그래서 지금은 삼림이 3퍼센트 정도 밖에 안 남아있다. 나무를 없애고 나자 이 땅에는 비가 내리지 않아 온 땅이 가물어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 참사가 벌어지게 되었다. 육지에는 나무가 있어야만 나무에서 증산(蒸散)된 수증기가 비가 되어 내리고 내린 비는 나무가 있어야만 땅에 저장이 되어 생태계가 유지되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서해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간척사업도 마찬가지이다. 밀물 때 잠기고 썰물 때 드러나는 간석지는 해일을 막아주고, 물을 정화시켜주고, 영양이 풍부한 퇴적물로 인하여 수많은 조간대(潮間帶) 생물들을 부양하기 때문에 해양생태계를 지탱하는 기본이 된다. 서해 바다 물고기의 90 퍼센트 정도가 간석지와 직,간접으로 이 갯벌과 연관되어 있다. 근래에 서해안의 건석지가 거의 사라지면서 해일의 빈도가 커져서 간척하느라고 쌓았던 많은 수산물을 값비싼 수입에 의존하게 되었다. 간척지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간척 이전에 생산되던 수산물에 비하면 그 수익은 아무 것도 아니다. 결국 엄청난 돈과 수고를 들인 끝에 얻는 이익보다는 잃는 손해가 훨씬 큰 것이다.
결국 가만히 따져보면 하나님께서는 강이 필요한 곳에 강을, 바다가 필요한 곳에 바다를, 간석지가 필요한 곳에 간석지를, 땅이 필요한 곳에 땅을, 산림이 필요한 곳에 산림을, 풀밭이 필요한 곳에 풀밭을, 저수지가 필요한 곳에 저수지를 이미 다 주셨던 것이다. 자연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모든 것이 다 뚜렷한 목적이 있고 질서가 있고 상호의존적으로 존재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억지로 뒤바꾸고 흐트러 놓는 것이 아니라, 그 기능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북돋우어 주는데 있어야 한다. 자연이 그 원래의 기능을 전혀 발휘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변형을 가해서는 어리석은 결과 밖에 얻는 것이 없다. 그리고 이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연고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창조질서의 파괴
지금 인류는 자연의 창조질서를 무시하고 무책임하게도 이 땅을 수많은 오염물질로 더럽히고 있다. 오염물질 중에서도 자연계에서 분해가 잘 되지 않는 농약이나 중금속과 같은 독성오염물질들은 두고두고 생물들에게 피해를 입히게 된다. 이들 독성오염물질들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내에서 생물체 사이를 순환하기 때문이다. 이들 오염물질들이 생태계에서 얼마나 정확하게 순환하면서 생물들에게 피해를 입히나 하는 것은 다음의 예들에서 잘 증명되고 있다. DDT는 2차대전 중에 발명된 살충제인데 모기와 같은 해충을 박멸하기 위하여 열대와 온대지방에 주로 뿌려졌다. 그런데 지금은 먹이순환법칙을 타고 지구상의 모든 생물에서 DDT가 검출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세대가 다 죽고 없어진 다음에도 이 DDT는 지구상에 그대로 남아서 생물들에게 피해를 입힐 것으로 예상된다. 이 DDT가 바로 간암을 비롯한 여러가지 암을 일으키는 발암물질 중의 하나이다. 통계조사에 의하면 DDT가 암환자에게서 정상인들보다 두 곱절 반 이상이 많이 검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DDT는 또 칼슘대사를 방해하기 때문에 많은 새들이 알껍질이 얇아져서 번식을 제대로 못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DDT는 플랑크톤의 광합성 능력을 떨어뜨리는데 오늘날 세계 각국의 연안의 생산성이 떨어진 것도 여기에 그 원인의 일부가 있을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먹이연쇄에 의한 독성물질의 순환이 얼마나 정확하나 하는 것은 일본에서 일어난 미나마타병이나 이타이이타이 병에 얽히 이야기를 보아도 명확히 드러난다. 산업폐수에서 미량 배출된 중금속이 바다로 나가서 희석되어 없어진 것이 아니라, 결국은 먹이연쇄를 타고 인체에 축적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인명을 빼앗아 가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미국에서 조사된 바에 의하면 독수리류의 알은 거의 60%가 부화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그 알에서 검출되는 오염 물질들이 DDT며, PCB(polychlorinated bipheny)며, dioxin이며, 각종 농약과 중금속 들이다.
지금 인류는 단지 자연을 좀 변형시키고 오염시키는데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생물들을 또한 죽여나가고 있다. UN의 조사에 의하면 앞으로 20년 내지 30년이 지나면 지구에 있는 생물 종의 1/4이 멸종하리라고 한다. 만약에 내가 성경 중에 디도서 같이 짧은 한 권 정도는 있으나 마나라고 생각해서 성경에서 영원히 찢어 없애려고 했다고 하자. 그러면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떼를 지어 몰려 와서는 나를 사단으로 몰아 찢어 죽일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 못지 않게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려주는 증거인 생물들이 떼죽음을 당하는데 대해서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눈도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그 존재를 나타내 보이시는 것이 아니라 그 피조물인 자연을 통해서도 알려 주고 계신다. 욥기에도 자연 그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능력을 알려주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자연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가장 잘 드러내 보이는 것이 생물들이다. 인간이 똑똑해서 문명을 이룬 줄로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은 다 자연을 모방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생물들을 모방한 것이 많다. 비행기는 새, 잠수함은 물고기, 레이다는 박쥐, 컴퓨터는 두뇌를 모방한 것이다. 인간이 생물들을 아무리 잘 모방한다 해도 생물들 그 자체만큼 훌륭한 물건들을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밥 떠 넣어주면 에너지가 나오는 기계, 나무 잎사귀 넣어주면 비단이 나오는 기계, 흙에 꽂아 두면 곡식이 나오는 기계 등등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가 병이 났을 때 병을 낫게 하는 약들도 대개는 생물들에서 나온다. 그리고 많은 생물들은 그 자체가 아름다워서 그것을 보는 것 만으로도 우리에게 큰 기쁨이 된다. 이 생물들이 바로 우리 생명의 기반이고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재료이고 생활의 지혜의 근원이다.
그러면서도 지금 인류는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명목하에 삼림이나 습지 같은 생물들의 가장 중요한 서식지들을 집중적으로 파괴하고 있다. 영종도에 공항을 짓는 것도 바로 이러한 경제개발의 논리로 이루어진다. 영종도의 갯벌은 여름을 시베리아에서 보내고 동남아와 호주에서 겨울을 나는 수십만 마리의 철새들이 봄과 가을의 이동 중에 잠간 들르는 중간 경유지이다. 여기 갯벌에 사는 생물들을 먹이로 하여 계속되는 비행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갯벌을 서해의 해양생태계를 지탱하는 기반이기도 하다. 영종도의 갯벌인 이런 생물들에게는 사활이 걸린 지역이지만 경제적인 논리로 주판을 튀기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주판알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 보인다. 하나님께서 뜻이 있어서 창조하신 생물들을 그것이 어떤 생물인지 알아보기도 전에 다 죽여 없애 버린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약도 안주시고 우리에게 병을 허락했다고는 절대로 믿지 않는다. 지금 암이나 에이즈가 잘 치료되지 않는 것은 그 약을 만드는 생물들을 인간이 이미 다 멸종시켰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류는 또 많은 땅들을 황무한 사막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생태학적으로 농경지로 부적합한 곳을 무리하게 개간함으로 인하여 일년에 600만 ha의 농경지가 완전한 사막으로 변하고 있으며, 또 일년에 1100만 ha, 즉 남한만한 면적의 삼림이 무리하게 농경지로 개간되고 있는데 이의 대부분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결국 사막으로 변하고 만다. 지금 아프리카에서만도 수백만의 인구가 삼림을 농경지로, 농경지를 다시 사막으로 만들면서 여전히 새로운 농경지를 찾아 국경을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남미나 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프리카에서 땅을 무리하게 혹사하면서 농사를 짓거나 목축을 하여 사막을 만들게 되는 동기가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가난한 나라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자연을 희생하였다가 다시는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환경이 황폐해진 나라들도 많이 있다.
3. 21세기의 환경문제
이러한 환경문제는 머지 않은 장래에 인류에게 큰 재난으로 닥칠 것이다. 현재 50억의 인구가 다음 세기의 들어서서 80억 내지 140억에서 안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인류의 끊임없는 경제개발 노력에 힘입어 지구의 경제규모가 앞으로 2025년이면 다섯 배, 2050년이면 열 배는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경제규모가 열 배 커진다는 말은 생산이 열 배 커진다는 말과 같고 생산이 열 배 커지기 위해서는 인류가 지금과 꼭 같은 방식으로 산다면 에너지와 자원이 열 배 더 필요하고 환경파괴 행위도 열 배 더 커진다는 말과 같다. 그런데 열 배나 더 커진 경제를 뒷받침할 많은 에너지와 자원이 이 지구상에 있느냐 할 것 같으면 한 마디로 말해서 '없다'. 이러한 경제는 대부분이 재생이 불가능한 에너지, 광물, 삼림, 흙, 바다 등으로부터 얻게 되는데 이러한 자원은 한정이 되어 있어서 언젠가는 거덜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이 지구가 지금보다 열 배나 더 커진 환경파괴 행위를 감당할 수 있나 할 것 같으면 그것도 한마디로 말해서 '없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석유의 매장량은 지금대로 쓰면 앞으로 약 50년 정도 쓸 수가 있고 석탄은 200년 쓸 것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것을 열 배 더 빨리 쓰면 50년이 5년, 200년이 20년 밖에 안된다. 에너지 뿐만이 아니라 다른 자원도 다 마찬가지이다. 모든 선진국들이 처음 산업을 일으켰을 때에는 자기나라에서 나는 자원으로 산업의 수요를 충족시켰지만, 지금은 선진국 치고 자기나라에서 나는 자원으로 자기나라 산업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나라가 없다. 모두가 후진국으로 부터 수입한 자원에 의존한다. 앞으로 몇십 년 지나고 산업화가 더욱 진전되면서 지금은 후진국으로 있는 중국이나 브라질 같은 나라가 자국의 산업에 충당하기 바빠서 더 이상 자원을 수출할 수 없다고 할 때, 그 때 지구 경제는 마비가 되고 말 것이다. 무한한 자원이란 것은 있을 수가 없다. 한 가지 자원이 모자랄 때마다 과학자들은 대체자원을 찾곤 하지만 대체자원이라는 것도 언젠가는 끝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무한한줄 알았던 물이나 흙까지도 유한하다는 것을 지금 우리는 절실히 깨닫고 있다.
열배나 더 커진 경제활동으로 인하여 야기되는 환경문제도 인류의 앞날을 위협한다. 그 중의 하나가 지구의 온실화 현상이다. 산업화 이전에 대기중에 250 ppm이던 이산화탄소가 지금은 350 ppm으로 증가하였고, 이것이 다음 세기의 중엽 이후에는 배가할 것으로 예상이 된다. 그래서 다음 세기의 말까지는 더워진 기온으로 인하여 빙하가 녹아 지구의 해수면이 65cm 이상 상승하리라고 예측하고 있다. 만약에 지구에 매장되어 있는 석탄과 석유를 한꺼번에 다 태운다면 이산화탄소는 지금의 다섯 배로 늘어나리라고 예상된다. 이럴 경우에 지구의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만약에 이 때 지구의 빙하가 다 녹는다면 해수면은 60 내지 70m 상승하게 되어 지구 대부분의 인간의 주거지와 농경지가 바다에 잠기게 된다.
오존층의 파괴도 두드러진다. 지난 10여년간 남극 상공의 오존층은 절반이, 칠레 남부의 상공은 1/4이, 북반구 지역은 3% 정도가 얇아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최근에는 북극의 상공에서도 남극에서와 비슷한 파괴현상이 나타났다고 보고되고 있다. 오존층은 태양이나 외계에서 오는 강한 자외선이나 우주선, 감마선 등을 차단하여 생물들을 보호한다. 앞으로 오존을 파괴하는 원인 물질인 CFC(chloro-fluoro-carbon: 염화불화탄소)를 전혀 규제않고 나간다면 2020년이면 북반구의 오존층이 평균 15%정도 파괴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그 파괴는 고위도로 올라 갈수록 파괴의 정도가 심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CFC를 더 이상 방출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이미 대기중에 방출해 놓은 오염물질 만으로도 오존층은 상당량이 더 파괴될 것으로 예상된다. 산성비를 비롯한 환경오염으로 인하여 생태계가 광범위하게 피해를 입고 있는 것도 문제이다. 지금 유럽과 북미에서 많은 삼림이 죽어가고 산성호수들이 생겨나고 있는데, 대부분이 그 원인을 산성비에 돌리고 있다. 산성비는 극동지역에까지도 확장되었다. 앞으로 21세기에 이르러 남미와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지역까지도 경제개발이 확산되어 산성비의 영향을 받게 된다면, 지구상에서 온전하게 남을 생태계를 찾을 수가 없을 것이다.
급속도로 사막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특히 아프리카에서 이 현상이 두드러진데 이로 인하여 해마다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는다. 21세기에 이르러 지구의 경제규모가 열 배 커지고, 이에 따라 사막화의 속도도 열 배 커진다면, 그 때는 2, 3년이면 인도대륙, 4, 5년이면 중국대륙이나 미국대륙이 사막으로 변하게 된다. 지금도 육지의 거의 30%가 사막인데, 이런 속도라면 머지않은 장래에 지구상의 대부분의 땅들이 사막으로 변할 것이다.
앞으로 20년 내지 30년 안에 지구 생물종의 1/4이 멸종될 것이라고 추산이 되고 있는데, 21세기에 이르러 경제규모가 열 배 커지면서 생물의 멸종속도도 열 배 더 커져서 2, 3년마다 1/4씩 멸종해 간다면 지구 생태계는 안정을 찾지 못하고 금방 파멸되고 말 것이다.
4. 교회의 사명
인류가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 살아가기를 고집한다면 머지 않은 장래에 인류가 자멸하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그렇기 때문에 21세기에 이르러 인류의 최대 과제는 환경문제를 해결하는데 촛점이 모아질 것이다. 환경위기에서 헤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된다. 현대의 물질 문명시대에 이르러 인간은 자연을 정복해서 길들이고 이용하기위하여 열심히 노력해왔다. 그리하여 자연에 가한 대규모의 파괴가 곧 인간의 승리인 것으로 인식하여 왔었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거스린 대규모의 자연파괴 혹은 변형행위는 인간의 승리가 아니라 오히려 대규모의 재앙으로 나타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과 싸워 이기는 행위를 미덕으로 기려 왔으나, 인간은 결코 자연을 거스려 싸워서는 이길 수가 없다. 자연법칙에 순응해서 자연을 지키고 가꾸며 살아야 한다. 성경에는 분명히 에덴동산을 '가꾸고 지키도록 (to dress and to keep)' 사람을 두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창세기 2:15). 인간이 이 땅을 마음대로 오염시키고 파괴하고 생물들을 죽여도 된다는 당위성은 성경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다.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따라 이 땅을 가꾸며 살아야 한다.
현실을 볼 때에 우리는 이 땅의 종말이 나날이 나날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이 우리에게는 큰 소망이 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어디에 만드실 예정인지 잘 모른다. 이 우주가 아닌 다른 곳인지, 아니면 이 우주 어디에 있는 다른 곳인지, 아니면 이 우주 어디에 있는 다른 별이 될런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혹은 이 땅을 다시 회복시켜서 만드실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만약 그렇다면 그 때에 교회는 이 땅을 회복시키는 일에 하나님의 충성된 동역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이 땅을 회복시킨다는 각오로 열심히 이 땅을 지키고 가꾸어야 한다. 교회가 이 땅도 간수를 못한다면 새 하늘과 새 땅인들 어떻게 간수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이 땅의 많은 기독인들은 큰 착각들을 하고 있다. 교회 안에서만 열심히 일하면 할 일을 다 한 줄 생각하는데 그것은 큰 의미가 없다. 바깥 세상을 향하여 무슨 일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사람들을 전도하고 구제하고 사랑하는 것만이 세상을 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큰 착각이다. 하나님이 사랑하신 '세상'은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다. 예수님께서도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다.(막 16:15, 롬 8:21, 골 1:23). 이 땅이 오염되고 그 안에 피조물들이 고통을 받는 것은 천만이나 되는 기독인들이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피조물들에게도 기쁜 소식을 전해야 참다운 기독인이라고 할 수 있다. 피조물들에게 진정 기쁜 소식은 인간의 죄악으로 고통받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회복하도록 실천하는 일일 것이다.
출처 - 창조지, 제 105호 [1997. 11~12]
성경과 환경
김정욱
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1. 창조질서에 대한 이해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말로는 하나님이 이 땅을 창조하셨다고 떠들면서 땅을 대하는 태도는 전혀 딴판이다. 물, 공기, 흙이며 거기 사는 생물들 각각이 왜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그 이유나 가치를 연구하고 더 좋은 모습으로 가꿈으로서 인류의 생활을 보다 풍성하게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돈벌이하고 정욕적인 쾌락을 위해서 이용하기 위한 재료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비능률적이고 무가치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보다 더 가치있는 모습으로 변형시키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굽은 강을 곧게 하고, 습지에서는 물을 빼고, 마른 땅에는 물을 넣고, 살림을 풀밭으로 만들고, 바다를 땅으로 만들고 하는 등등의 대규모의 토목공사들을 벌이고는 인간의 위대함을 자랑해 왔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이러한 인간의 노력들이 많은 경우에 형편없는 실패에 지나지 않았음이 드러난다. 원래 있던 자연의 모습들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오묘한 섭리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과 같은 예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플로리다에서 굽이쳐 흐르는 키시미(Kissimee)강을 곧은 수로로 만들고 나니 강에 살던 많은 생물들이 사라지고 말았다. 강은 굽이쳐 흐르면서 물살이 빠른 곳 느린 곳, 깊은 곳 얇은 곳 등이 있어야 수초가 자랄 수 있는 곳, 물을 잘 정화시킬 수 있는 곳, 수중생물들이 알을 낳을 수 있는 곳, 새끼가 자랄 수 있는 곳 등이 있어서 물도 깨끗하고 다양한 생물들이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키시미강을 원래 모습대로 돌리고 있는데 직강화(直江化)할 때보다도 그 모습을 복원하는데 훨씬 더 많은 돈이 들고 있다. 이디오피아에서는 10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 땅의 절반이 살림이었다. 그러나 그 삼림을 아무 짝에도 쓸데 없다고 생각하고는 목재도 팔고 목축도 하고 농사도 지어 꿩 먹고 알 먹겠다고 다 없애 버렸다. 그래서 지금은 삼림이 3퍼센트 정도 밖에 안 남아있다. 나무를 없애고 나자 이 땅에는 비가 내리지 않아 온 땅이 가물어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 참사가 벌어지게 되었다. 육지에는 나무가 있어야만 나무에서 증산(蒸散)된 수증기가 비가 되어 내리고 내린 비는 나무가 있어야만 땅에 저장이 되어 생태계가 유지되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서해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간척사업도 마찬가지이다. 밀물 때 잠기고 썰물 때 드러나는 간석지는 해일을 막아주고, 물을 정화시켜주고, 영양이 풍부한 퇴적물로 인하여 수많은 조간대(潮間帶) 생물들을 부양하기 때문에 해양생태계를 지탱하는 기본이 된다. 서해 바다 물고기의 90 퍼센트 정도가 간석지와 직,간접으로 이 갯벌과 연관되어 있다. 근래에 서해안의 건석지가 거의 사라지면서 해일의 빈도가 커져서 간척하느라고 쌓았던 많은 수산물을 값비싼 수입에 의존하게 되었다. 간척지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간척 이전에 생산되던 수산물에 비하면 그 수익은 아무 것도 아니다. 결국 엄청난 돈과 수고를 들인 끝에 얻는 이익보다는 잃는 손해가 훨씬 큰 것이다.
결국 가만히 따져보면 하나님께서는 강이 필요한 곳에 강을, 바다가 필요한 곳에 바다를, 간석지가 필요한 곳에 간석지를, 땅이 필요한 곳에 땅을, 산림이 필요한 곳에 산림을, 풀밭이 필요한 곳에 풀밭을, 저수지가 필요한 곳에 저수지를 이미 다 주셨던 것이다. 자연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모든 것이 다 뚜렷한 목적이 있고 질서가 있고 상호의존적으로 존재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억지로 뒤바꾸고 흐트러 놓는 것이 아니라, 그 기능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북돋우어 주는데 있어야 한다. 자연이 그 원래의 기능을 전혀 발휘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변형을 가해서는 어리석은 결과 밖에 얻는 것이 없다. 그리고 이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연고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창조질서의 파괴
지금 인류는 자연의 창조질서를 무시하고 무책임하게도 이 땅을 수많은 오염물질로 더럽히고 있다. 오염물질 중에서도 자연계에서 분해가 잘 되지 않는 농약이나 중금속과 같은 독성오염물질들은 두고두고 생물들에게 피해를 입히게 된다. 이들 독성오염물질들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내에서 생물체 사이를 순환하기 때문이다. 이들 오염물질들이 생태계에서 얼마나 정확하게 순환하면서 생물들에게 피해를 입히나 하는 것은 다음의 예들에서 잘 증명되고 있다. DDT는 2차대전 중에 발명된 살충제인데 모기와 같은 해충을 박멸하기 위하여 열대와 온대지방에 주로 뿌려졌다. 그런데 지금은 먹이순환법칙을 타고 지구상의 모든 생물에서 DDT가 검출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세대가 다 죽고 없어진 다음에도 이 DDT는 지구상에 그대로 남아서 생물들에게 피해를 입힐 것으로 예상된다. 이 DDT가 바로 간암을 비롯한 여러가지 암을 일으키는 발암물질 중의 하나이다. 통계조사에 의하면 DDT가 암환자에게서 정상인들보다 두 곱절 반 이상이 많이 검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DDT는 또 칼슘대사를 방해하기 때문에 많은 새들이 알껍질이 얇아져서 번식을 제대로 못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DDT는 플랑크톤의 광합성 능력을 떨어뜨리는데 오늘날 세계 각국의 연안의 생산성이 떨어진 것도 여기에 그 원인의 일부가 있을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먹이연쇄에 의한 독성물질의 순환이 얼마나 정확하나 하는 것은 일본에서 일어난 미나마타병이나 이타이이타이 병에 얽히 이야기를 보아도 명확히 드러난다. 산업폐수에서 미량 배출된 중금속이 바다로 나가서 희석되어 없어진 것이 아니라, 결국은 먹이연쇄를 타고 인체에 축적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인명을 빼앗아 가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미국에서 조사된 바에 의하면 독수리류의 알은 거의 60%가 부화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그 알에서 검출되는 오염 물질들이 DDT며, PCB(polychlorinated bipheny)며, dioxin이며, 각종 농약과 중금속 들이다.
지금 인류는 단지 자연을 좀 변형시키고 오염시키는데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생물들을 또한 죽여나가고 있다. UN의 조사에 의하면 앞으로 20년 내지 30년이 지나면 지구에 있는 생물 종의 1/4이 멸종하리라고 한다. 만약에 내가 성경 중에 디도서 같이 짧은 한 권 정도는 있으나 마나라고 생각해서 성경에서 영원히 찢어 없애려고 했다고 하자. 그러면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떼를 지어 몰려 와서는 나를 사단으로 몰아 찢어 죽일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 못지 않게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려주는 증거인 생물들이 떼죽음을 당하는데 대해서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눈도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그 존재를 나타내 보이시는 것이 아니라 그 피조물인 자연을 통해서도 알려 주고 계신다. 욥기에도 자연 그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능력을 알려주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자연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가장 잘 드러내 보이는 것이 생물들이다. 인간이 똑똑해서 문명을 이룬 줄로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은 다 자연을 모방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생물들을 모방한 것이 많다. 비행기는 새, 잠수함은 물고기, 레이다는 박쥐, 컴퓨터는 두뇌를 모방한 것이다. 인간이 생물들을 아무리 잘 모방한다 해도 생물들 그 자체만큼 훌륭한 물건들을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밥 떠 넣어주면 에너지가 나오는 기계, 나무 잎사귀 넣어주면 비단이 나오는 기계, 흙에 꽂아 두면 곡식이 나오는 기계 등등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가 병이 났을 때 병을 낫게 하는 약들도 대개는 생물들에서 나온다. 그리고 많은 생물들은 그 자체가 아름다워서 그것을 보는 것 만으로도 우리에게 큰 기쁨이 된다. 이 생물들이 바로 우리 생명의 기반이고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재료이고 생활의 지혜의 근원이다.
그러면서도 지금 인류는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명목하에 삼림이나 습지 같은 생물들의 가장 중요한 서식지들을 집중적으로 파괴하고 있다. 영종도에 공항을 짓는 것도 바로 이러한 경제개발의 논리로 이루어진다. 영종도의 갯벌은 여름을 시베리아에서 보내고 동남아와 호주에서 겨울을 나는 수십만 마리의 철새들이 봄과 가을의 이동 중에 잠간 들르는 중간 경유지이다. 여기 갯벌에 사는 생물들을 먹이로 하여 계속되는 비행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갯벌을 서해의 해양생태계를 지탱하는 기반이기도 하다. 영종도의 갯벌인 이런 생물들에게는 사활이 걸린 지역이지만 경제적인 논리로 주판을 튀기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주판알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 보인다. 하나님께서 뜻이 있어서 창조하신 생물들을 그것이 어떤 생물인지 알아보기도 전에 다 죽여 없애 버린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약도 안주시고 우리에게 병을 허락했다고는 절대로 믿지 않는다. 지금 암이나 에이즈가 잘 치료되지 않는 것은 그 약을 만드는 생물들을 인간이 이미 다 멸종시켰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류는 또 많은 땅들을 황무한 사막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생태학적으로 농경지로 부적합한 곳을 무리하게 개간함으로 인하여 일년에 600만 ha의 농경지가 완전한 사막으로 변하고 있으며, 또 일년에 1100만 ha, 즉 남한만한 면적의 삼림이 무리하게 농경지로 개간되고 있는데 이의 대부분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결국 사막으로 변하고 만다. 지금 아프리카에서만도 수백만의 인구가 삼림을 농경지로, 농경지를 다시 사막으로 만들면서 여전히 새로운 농경지를 찾아 국경을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남미나 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프리카에서 땅을 무리하게 혹사하면서 농사를 짓거나 목축을 하여 사막을 만들게 되는 동기가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가난한 나라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자연을 희생하였다가 다시는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환경이 황폐해진 나라들도 많이 있다.
3. 21세기의 환경문제
이러한 환경문제는 머지 않은 장래에 인류에게 큰 재난으로 닥칠 것이다. 현재 50억의 인구가 다음 세기의 들어서서 80억 내지 140억에서 안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인류의 끊임없는 경제개발 노력에 힘입어 지구의 경제규모가 앞으로 2025년이면 다섯 배, 2050년이면 열 배는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경제규모가 열 배 커진다는 말은 생산이 열 배 커진다는 말과 같고 생산이 열 배 커지기 위해서는 인류가 지금과 꼭 같은 방식으로 산다면 에너지와 자원이 열 배 더 필요하고 환경파괴 행위도 열 배 더 커진다는 말과 같다. 그런데 열 배나 더 커진 경제를 뒷받침할 많은 에너지와 자원이 이 지구상에 있느냐 할 것 같으면 한 마디로 말해서 '없다'. 이러한 경제는 대부분이 재생이 불가능한 에너지, 광물, 삼림, 흙, 바다 등으로부터 얻게 되는데 이러한 자원은 한정이 되어 있어서 언젠가는 거덜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이 지구가 지금보다 열 배나 더 커진 환경파괴 행위를 감당할 수 있나 할 것 같으면 그것도 한마디로 말해서 '없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석유의 매장량은 지금대로 쓰면 앞으로 약 50년 정도 쓸 수가 있고 석탄은 200년 쓸 것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것을 열 배 더 빨리 쓰면 50년이 5년, 200년이 20년 밖에 안된다. 에너지 뿐만이 아니라 다른 자원도 다 마찬가지이다. 모든 선진국들이 처음 산업을 일으켰을 때에는 자기나라에서 나는 자원으로 산업의 수요를 충족시켰지만, 지금은 선진국 치고 자기나라에서 나는 자원으로 자기나라 산업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나라가 없다. 모두가 후진국으로 부터 수입한 자원에 의존한다. 앞으로 몇십 년 지나고 산업화가 더욱 진전되면서 지금은 후진국으로 있는 중국이나 브라질 같은 나라가 자국의 산업에 충당하기 바빠서 더 이상 자원을 수출할 수 없다고 할 때, 그 때 지구 경제는 마비가 되고 말 것이다. 무한한 자원이란 것은 있을 수가 없다. 한 가지 자원이 모자랄 때마다 과학자들은 대체자원을 찾곤 하지만 대체자원이라는 것도 언젠가는 끝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무한한줄 알았던 물이나 흙까지도 유한하다는 것을 지금 우리는 절실히 깨닫고 있다.
열배나 더 커진 경제활동으로 인하여 야기되는 환경문제도 인류의 앞날을 위협한다. 그 중의 하나가 지구의 온실화 현상이다. 산업화 이전에 대기중에 250 ppm이던 이산화탄소가 지금은 350 ppm으로 증가하였고, 이것이 다음 세기의 중엽 이후에는 배가할 것으로 예상이 된다. 그래서 다음 세기의 말까지는 더워진 기온으로 인하여 빙하가 녹아 지구의 해수면이 65cm 이상 상승하리라고 예측하고 있다. 만약에 지구에 매장되어 있는 석탄과 석유를 한꺼번에 다 태운다면 이산화탄소는 지금의 다섯 배로 늘어나리라고 예상된다. 이럴 경우에 지구의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만약에 이 때 지구의 빙하가 다 녹는다면 해수면은 60 내지 70m 상승하게 되어 지구 대부분의 인간의 주거지와 농경지가 바다에 잠기게 된다.
오존층의 파괴도 두드러진다. 지난 10여년간 남극 상공의 오존층은 절반이, 칠레 남부의 상공은 1/4이, 북반구 지역은 3% 정도가 얇아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최근에는 북극의 상공에서도 남극에서와 비슷한 파괴현상이 나타났다고 보고되고 있다. 오존층은 태양이나 외계에서 오는 강한 자외선이나 우주선, 감마선 등을 차단하여 생물들을 보호한다. 앞으로 오존을 파괴하는 원인 물질인 CFC(chloro-fluoro-carbon: 염화불화탄소)를 전혀 규제않고 나간다면 2020년이면 북반구의 오존층이 평균 15%정도 파괴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그 파괴는 고위도로 올라 갈수록 파괴의 정도가 심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CFC를 더 이상 방출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이미 대기중에 방출해 놓은 오염물질 만으로도 오존층은 상당량이 더 파괴될 것으로 예상된다. 산성비를 비롯한 환경오염으로 인하여 생태계가 광범위하게 피해를 입고 있는 것도 문제이다. 지금 유럽과 북미에서 많은 삼림이 죽어가고 산성호수들이 생겨나고 있는데, 대부분이 그 원인을 산성비에 돌리고 있다. 산성비는 극동지역에까지도 확장되었다. 앞으로 21세기에 이르러 남미와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지역까지도 경제개발이 확산되어 산성비의 영향을 받게 된다면, 지구상에서 온전하게 남을 생태계를 찾을 수가 없을 것이다.
급속도로 사막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특히 아프리카에서 이 현상이 두드러진데 이로 인하여 해마다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는다. 21세기에 이르러 지구의 경제규모가 열 배 커지고, 이에 따라 사막화의 속도도 열 배 커진다면, 그 때는 2, 3년이면 인도대륙, 4, 5년이면 중국대륙이나 미국대륙이 사막으로 변하게 된다. 지금도 육지의 거의 30%가 사막인데, 이런 속도라면 머지않은 장래에 지구상의 대부분의 땅들이 사막으로 변할 것이다.
앞으로 20년 내지 30년 안에 지구 생물종의 1/4이 멸종될 것이라고 추산이 되고 있는데, 21세기에 이르러 경제규모가 열 배 커지면서 생물의 멸종속도도 열 배 더 커져서 2, 3년마다 1/4씩 멸종해 간다면 지구 생태계는 안정을 찾지 못하고 금방 파멸되고 말 것이다.
4. 교회의 사명
인류가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 살아가기를 고집한다면 머지 않은 장래에 인류가 자멸하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그렇기 때문에 21세기에 이르러 인류의 최대 과제는 환경문제를 해결하는데 촛점이 모아질 것이다. 환경위기에서 헤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된다. 현대의 물질 문명시대에 이르러 인간은 자연을 정복해서 길들이고 이용하기위하여 열심히 노력해왔다. 그리하여 자연에 가한 대규모의 파괴가 곧 인간의 승리인 것으로 인식하여 왔었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거스린 대규모의 자연파괴 혹은 변형행위는 인간의 승리가 아니라 오히려 대규모의 재앙으로 나타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과 싸워 이기는 행위를 미덕으로 기려 왔으나, 인간은 결코 자연을 거스려 싸워서는 이길 수가 없다. 자연법칙에 순응해서 자연을 지키고 가꾸며 살아야 한다. 성경에는 분명히 에덴동산을 '가꾸고 지키도록 (to dress and to keep)' 사람을 두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창세기 2:15). 인간이 이 땅을 마음대로 오염시키고 파괴하고 생물들을 죽여도 된다는 당위성은 성경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다.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따라 이 땅을 가꾸며 살아야 한다.
현실을 볼 때에 우리는 이 땅의 종말이 나날이 나날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이 우리에게는 큰 소망이 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어디에 만드실 예정인지 잘 모른다. 이 우주가 아닌 다른 곳인지, 아니면 이 우주 어디에 있는 다른 곳인지, 아니면 이 우주 어디에 있는 다른 별이 될런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혹은 이 땅을 다시 회복시켜서 만드실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만약 그렇다면 그 때에 교회는 이 땅을 회복시키는 일에 하나님의 충성된 동역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이 땅을 회복시킨다는 각오로 열심히 이 땅을 지키고 가꾸어야 한다. 교회가 이 땅도 간수를 못한다면 새 하늘과 새 땅인들 어떻게 간수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이 땅의 많은 기독인들은 큰 착각들을 하고 있다. 교회 안에서만 열심히 일하면 할 일을 다 한 줄 생각하는데 그것은 큰 의미가 없다. 바깥 세상을 향하여 무슨 일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사람들을 전도하고 구제하고 사랑하는 것만이 세상을 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큰 착각이다. 하나님이 사랑하신 '세상'은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다. 예수님께서도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다.(막 16:15, 롬 8:21, 골 1:23). 이 땅이 오염되고 그 안에 피조물들이 고통을 받는 것은 천만이나 되는 기독인들이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피조물들에게도 기쁜 소식을 전해야 참다운 기독인이라고 할 수 있다. 피조물들에게 진정 기쁜 소식은 인간의 죄악으로 고통받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회복하도록 실천하는 일일 것이다.
출처 - 창조지, 제 105호 [1997. 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