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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기독교

우리나라의 환경문제 진단과 창조질서 회복을 위한 교회의 역할 3

미디어위원회
2005-04-12

우리나라의 환경문제 진단과 창조질서 회복을 위한 교회의 역할 3

김정욱
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V.  지구적인 환경문제 진단


인류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삶을 살아나가면 이 환경문제는 머지않아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현재 60억의 인구가 21세기 말에는 100억 내지 140억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지구의 경제규모는 지난 100년 동안에 50 배가  증가했다 35). 특히 2차 대전 이후에 급격한 성장을 이루어 단지 50년 동안에 인구가 20억에서 62억으로 36), 지구 경제가 15 배 37), 화석연료의 사용이 25 배 38), 공업생산이 40 배 늘었다 39) 성장하지 않으면 파탄이 날 수밖에 없는 현재와 같은 자본주의 시장경제구조 아래서는 지금과 같은 성장이 당분간은 앞으로도 계속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21세기 말이면 지구 경제는 다시 10 배 혹은 50 배가 성장할 수도 있다. 경제규모가 10 배 커진다는 말은 생산을 10 배 많이 한다는 말과 같고 생산이 10 배 많아지기 위해서는, 인류가 지금과 꼭 같은 방식으로 산다면, 에너지와 자원이 10 배 더 필요하고 폐기물이 10 배 더 생기며 환경파괴행위도 10 배 더 커진다는 말과 같다. 그런데 10 배, 혹은 50 배나 더 커진 경제를 뒷받침할 만한 에너지와 자원이 이 지구상에 있느냐 할 것 같으면 한 마디로 말해서 없다. 이러한  경제는 대부분이 재생이 불가능한 에너지와 광물자원 그리고 삼림, 흙, 바다 등으로부터 얻게 되는데 이러한 자원은 한정이 되어 있어서 언젠가는 고갈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이 지구가 지금보다 열 배나 더 커진 환경파괴행위를 감당할 수 있나 할 것 같으면 그것도 한 마디로 말해서 아니다.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환경용량도 일정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석유의 매장량은 지금대로 파내 쓰면 30년 쓸 것밖에 없고 더 찾으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희망 매장량까지 보태서 한 60년을 보고 있다. 그래서 2010년 이전에 생산량이 최고에 달했다가 2050년이면 고갈될 것으로 전망된다. 석탄도 2100년대에 이르러 고갈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40). 우라늄도 알려진 매장량은 25년 쓸 것밖에 없다. 희망 매장량까지 보태서 약 50년을 볼뿐이다 41).

 

에너지뿐만이 아니라 다른 자원도 다 마찬가지이다. 선진공업국들이 처음에는 다 자국에서 나는 자원으로 산업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선진국들이 후진국으로부터 수입한 자원에 의존하고 있다. 앞으로 몇 년이 지나고 지금은 후진국으로 있는 자원수출국들이 산업이 성장하면서 더 이상 자원을 수출할 수가 없게 될 때, 그 때 지구의 경제는 파탄이 나고 말 것이다. 로마클럽이 1972년에 발표한 ‘성장의 한계’에 의하면 알루미늄, 구리, 납, 아연, 텅스텐, 니켈 같은 광물 자원들의 알려진 매장량도 거의 석유, 석탄, 우라늄 정도에 지나지 않아 수십 년 정도 쓸 것밖에 되지 않는다. 무한한 자원이란 것은 있을 수가 없다. 한 가지 자원이 모자랄 때마다 과학자들은 대체자원을 찾곤 하지만 대체자원이라는 것도 언젠가는 끝이 있을 수밖에 없다. 무한한 줄 알았던 물이나 흙까지도 유한하다는 것을 지금 우리는 절실히 깨닫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닥치게 될 환경의 변화도 우리는 주시해야 한다. 적외선을 흡수하여 지구를 따뜻하게 하는 기체들인 이산화탄소, 메탄가스, 냉매로 쓰이는 CFC 등이 지난 100년 사이에 갑자기 늘어남으로 인하여 생기는 지구의 기후변화현상, CFC(chloro-fluoro-carbon: 염화불화탄소)의 사용으로 인한 성층권의 오존층 파괴, 과다한 벌목과 무리한 목축과 농업으로 인한 지구의 사막화, 삼림과 습지와 같은 서식지의 파괴와 남획으로 인한 생물의 멸종, 환경호르몬과 같은 독성물질의 축적으로 인한 생태계 교란 등이 지구의 앞날을 어둡게 한다. 21세기에도 지금과 같은 경제성장이 계속 되고 그에 따라 에너지와 자원이 고갈되고 지구는 더워지며 사막이 늘어나고 오염이 축적되고 생물들이 죽어가고 생태계가 위협받을 때에 인간이 지금처럼 생존이 가능할 것인가? 답은 절망적이다. 많은 사람들은 지구의 경제가 무한정 계속 성장할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지구가 크지 않고 가만있는데 지구의 경제가 어떻게 계속 커질 수가 있는가? 이 지구 생태계에서 멈출 줄 모르고 계속 성장하는 것은 암 밖에 없다. 암의 종말은 죽음이다.



VI.  창조질서 회복을 위한 국토환경 방안


국토는 단지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쓰여서는 안 되고 환경생태학적인 측면에서 황폐해지지 않고 풍성한 생산성을 유지하면서 안정될 수 있도록 가꾸어야 한다. 경제정책은 때에 따라 변할 수가 있지만 우리 자손만대가 살아야 할 국토 생태계의 기본적인 골격은 변해서는 안 된다. 영구히 이 땅이 사람과 생물들을 부양하기에 부족함이 없이 풍성한 생태계를 지속할 수 있도록 변하지 않는 목표를 가지고 지켜나가야 한다. 이 목표는 국가의 어떤 정책보다도 우선순위가 앞서야 한다.

 

국토를 가꾸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지켜야 할 곳이 산림, 갯벌, 농지, 세 곳이다. 산림은 육상 생태계를 지탱하는 기반이고, 갯벌은 해양 생태계의 기반이며, 농지는 사람이 먹고 살 식량을 생산하는 기반이다.

 

산림은 필요한 강수량을 얻고 적당한 하천용수를 유지하며 바람직한 수질을 유지하고 생물들에게 서식지를 제공하고 깨끗한 공기를 유지하고 기상을 적당하게 조절하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지난 수천년간 역사상에 많은 고대문명국가들이 망해왔는데 그 나라들은 모두가 산림이 황폐해지면서 나라들도 같이 망해왔다. 산림을 어디에 얼마나 확보하고 가꾸어야 하는지 어떤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는 국가의 확고한 목표가 세워져야 한다. 지금 무분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산지개발은 다시 검토가 되어야 한다.

 

지난 수천 년간을 인류가 산림을 훼손해온 역사라고 한다면 지난 백년 동안에는 해양생태계가 급격히 파괴되어 왔다. 그 이유는 갯벌을 파괴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긴 해안선은 우리에게 큰 축복이다. 이 해안선만 잘 지키면 수산자원은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서해안에다가 무턱대고 간척사업을 벌이고 공단을 조성해서는 안 된다. 지금 간척 예정지로 되어 있는 곳들은 대개가 만으로서 어족들의 산란지들인데 이들을 무분별하게 없앨 때 서해의 해양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평가가 제대로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서남해안 어족의 약 2/3는 생애 주기에 한번씩은 반드시 갯벌을 거쳐야만 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간접적으로 갯벌과 연관되어 있는 어족까지 합치면 90% 이상의 어족이 갯벌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42).

 

하구에다가 무조건 둑을 세우는 것은 위험하다. 해양 생태계의 기반이 갯벌이고 갯벌 중에서도 가장 생산성이 높아 핵심이 되는 곳이 바로 하구 갯벌이다. 그런데 지금 서해안에는 하구가 거의 다 막아져 간척되었고 새만금 지역의 만경강과 동진강 하구가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하구 갯벌인데 이 갯벌도 사라질려고 한다. 지금 해운대를 비롯해서 많은 해수욕장에서 모래가 사라지고 있는데 이의 주된 이유도 하구에 둑을 세워 모래의 유입을 막았기 때문이다. 특히 서해안의 해수욕장들은 거의가 뻘밭으로 변해가고 있다.

 

농경지는 일정량을 반드시 확보해 놓아야 한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쌀 농사를 포기하고 대신에 공장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었지만 IMF를 맞으면서 이런 주장들은 쑥 들어갔다. 인류 역사상 도시국가들은 대개가 백년도 채 넘기지 못하고 다 망했는데 그 이유는 식량을 자급자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세계의 강대국들은 다 식량을 자급자족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스위스나 이스라엘 같은 작은 나라들도 식량은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태국, 러시아, 브라질 같은 나라들은 경제위기가 닥쳐 무역을 못하게 되더라도 농사를 지어먹고 살면 된다. 그러나 식량자급율이 25%도 안 되는 우리는 다 굶어죽게 되어 있다. 경제위기는 앞으로 언제든지 다시 올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인구가 너무 많고 땅이 좁아 농사는 이미 글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나 꼭 그렇지 않다. 농사는 잘만 지으면 한 사람이 먹고사는데 200평이 필요 없다. 지금 식량자급율이 25% 미만이라 하지만 축산만 안 해도 자급율은 70%까지 쉽게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수입하는 식량의 대부분이 사료이기 때문이다. 담배나 술 같이 급하지 않은 농사를 줄이고 품종을 잘 계획하여 재배하면 훨씬 더 올릴 수 있다. 이스라엘은 전국토의 절반이 사막이고 나머지 절반도 강우량이 우리의 절반 밖에 안 된다. 그것도 비가 겨울에만 내리고 여름 농사철에는 비가 오지 않는다. 그러나 물 사용량은 우리의 1/3도 안되어 1인당 하루 170 리터의 물로 생활용수와 공업용수로 쓰고 또 이 물로 농사까지 지어 식량이 자급자족하고도 남아 수출을 한다 43).

 

비록 쌀 농사가 대단히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갯벌을 간척해서 논을 확보하는 것은 옳지 않다. 식량에서 가장 생산이 잘 안되고 부족하기 쉬운 것이 단백질이다. 단백질이 가장 비싼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육지에서는 단위면적당 단백질 생산을 가장 많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쌀 농사를 짓는 것이다. 그러나 쌀 농사보다 훨씬 더 단백질을 많이 생산하는 방법이 수산자원을 얻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산자원은 비료나 농약을 칠 필요도 없고 밭 갈고 김맬 필요도 없고 해안선을 가만히 놓아두기만 하면 저절로 생기기 때문에 농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새만금 사업으로 28,000 ha의 농지를 만들더라도 여기에서 나는 농업 소득보다는 갯벌이 사라짐으로서 잃게 되는 어업 손실이 더 큰 것으로 평가된바 있다.



VII.  지속가능한 지역사회


그리고 각각의 지역사회를 국토의 전체적인 환경계획의 테두리 안에서 재생 에너지에 기반하여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쓸 수 있고, 자원을 순환하며, 환경을 깨끗이 지킬 수 있도록 생태학적으로 가꾸어 나가야 한다. 즉, 지역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지역사회 안에서 최대한으로 공급하고 지역사회에서 나오는 폐기물도 그 안에서 최대한 처리를 하되 최소한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고 물질순환체계를 구축하고 환경오염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법으로 지역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캘리포니아를 이상형으로 삼아 용도지역들을 멀찍이 띄어 놓고 각 지역들을 거미줄처럼 도로로 얽어 자동차로 다니게 하고 에너지와 자원을 무한정 투입하고 쓰레기는 딴 데다 갖다 버리는 그런 도시는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다.

 

경제가 지구화된 지금 세상은 일면 편리한 점도 있으나 다른 일면으로는 대단히 위험한 세상이다. 지구촌의 어느 구석에서 금융이나 에너지나 자원의 흐름에 이상이 생기더라도 이는 우리나라의 지역사회에도 곧 영향을 미쳐 기능을 마비시킬 수도 있다. 동남아시아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곧장 우리나라의 위기로 이어졌고, 아시아의 위기가 세계를 위협했던 몇 년 전의 금융위기가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다. 이런 판에 세계화를 부르짖고 우리나라의 구석구석을 다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파랑에 휩쓸리도록 방치해 놓는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 지구화 혹은 세계화된 현실에서 다른 나라에는 위기가 닥치더라도 그것이 우리나라에는 그대로 전파되지 않도록 완충 혹은 차단장치를 잘 갖추어 놓는 것이 현명한 대책이다.

 

올바른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먼저 시작해야할 일은 지역사회의 규모를 줄이는 일이다. 도시가 지금처럼 천만 명이 넘는 규모가 되면 이는 근본적으로 지속가능한 지역사회를 만들 수가 없다. 어느 정도의 인구가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에 적합한가에 관한 과학적인 답이 나와 있지는 않다. 그러나 많은 나라들에서 인구 20만명 정도의 도시 환경이 가장 살기에 쾌적하다는 평을 자주 듣고 있다. 환경친화적인 도시로 거론되고 있는 도시들도 대개 그 정도의 규모이다. 도시가 어느 정도 작아야만 주위의 농촌과 어우러져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맞출 수가 있고 순환형의 지역사회를 만들 수가 있다. 서울의 인구가 조선시대의 19세기 말 이전에는 항상 20만에서 일정하게 유지되었었다 44). 이 규모가 자원순환형 도시를 유지하기 위한 적절한 크기였기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도시 자체는 근본적으로 지속가능한 사회가 아니다. 외부로부터 식량과 에너지와 자원 등을 공급받아야 하고 또 폐기물을 내 보내야 한다. 그러므로 도시로 식량과 자원을 공급할 수 있고 또 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는 넓은 생산지를 끼고 있어야 생태학적으로 안정될 수가 있다. 도시에서 나오는 하수나 음식 쓰레기 같은 많은 폐기물들은 농지로 돌아가야만 할 것들이 많다. 농지에서는 그런 자원이 없어서 농토가 척박해지고 도시는 그런 지원이 낭비되어 오염이 발생한다. 그리고 농촌에서 발생하는 많은 쓰레기들도 그것을 재활용할 수 있는 산업시설들은 도시에 있다. 도시와 농촌이 공동체로 묶어져야 농촌은 농산물을 필요한 만큼 정성껏 생산하고 도시는 농촌이 생산한 농산물을 올바로 소비하게 된다. 그래서 자원순환사회를 만들려면 도시는 생산지인 농촌과 협동을 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지역사회라 하는 것은 도시와 농촌이 따로 독립적으로 지역사회를 만들기보다는 서로 연계하여 공동 지역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도시들이 광역화하면서 인근의 농촌을 행정구역에 포함시키고 있는데 이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새로운 에너지원에 대비하여 지역사회는 교통체계를 개편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어떤 형태의 국토개발도 그에 따라 발생하는 교통수요를 공급해 주면된다는 방식, 즉, 공급위주로 교통문제를 해결해 왔으나 새 천년에는 더 이상 맞지 않는 방법이다. 첫째는 가장 교통 수요가 적도록 지역사회를 구축해서 교통을 가장 적게 이용하고도 불편 없이 살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분당이나 일산 같이 일터와 멀리 떨어진 곳에 bed town 을 만드는 방법은 환경적으로 적절하지 못하다. 그리고 안산이나 창원 같이 자동차를 타야만 다닐 수 있는 도시도 적절하지 못하다.

 

그 다음은 가장 에너지가 적게 들고 오염이 작도록 교통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래서 지역사회 내에서는 자전거, 혹은 소형 자동차를 이용하고 지역사회간에는 기차(혹은 소형 자동차를 실을 수 있는 기차)를 중심으로 하는 교통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미래의 자동차 연료로는 태양 에너지 혹은 수소 전지가 거론이 되고 있다 45). 이들 연료로는 자동차를 대형화하거나 고속화하기가 어렵다.

 

물질순환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물을 쓰는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 빗물도 지금처럼 되도록 빨리 배수해서 하천을 범람하도록 하여 홍수를 조장하기보다는, 되도록 많은 양을 지하로 흡수시켜 홍수를 막을 뿐만 아니라 지하수를 채우도록 해야 한다. 외국에 새로이 건설되는 도시 중에는 아예 우수관을 깔지 않고 자연배수가 되도록 시도를 하는 곳도 있다. 그리고 빗물을 시민들이 이용하도록 해야 한다. 하천 옆의 유수지들은 단지 홍수를 막기 위해서 물을 가두어 둘 뿐만 아니라 모은 물을 처리해서 중수도로 쓸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각 가정이나 빌딩들도 빗물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중수도를 만들어 생활하수를 처리해서 쓸 뿐만 아니라 지하철이나 큰 빌딩에서 나오는 지하수도 이용해야 할 것이다. 지금 30% 이상이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는 상수관도 잘 정비하여 쓸데없이 많은 물을 멀리서 가져오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지역사회의 환경문제는 그 지역에서 해결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어떤 지역사회도 다른 지역의 환경부담을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지역의 쓰레기는 그 지역 안에서 처리를 해야지 광역 쓰레기 처리장을 지어 딴 데다 부담을 안겨서는 안 된다. 그리고 녹지도 그 지역 내에서 그 지역주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확보해야 한다. 그래서 지역의 환경문제는 그 지역 안에서 완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지역사회가 혐오시설을 기피하고 환경파괴 행위를 반대할 때에 이것을 단순히 지역이기주의라고 매도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것이 바른 환경정책이 못되기 때문에 그런 마찰이 일어나는 것으로 알고 경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환경문제는 지역 내 소수의 시민들이 불평을 할 때에 이를 해결해 줘야 한다. 만약 환경문제가 다수 시민들의 문제로 번질 때에는 이미 해결하기에는 늦기 때문이다. 지역의 환경을 가장 잘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바로 그 지역의 주민들이기 때문에 주민들의 환경운동을 활성화해야 한다.



VIII.  창조질서 회복을 위한 교회의 역할


인류가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 계속 나아간다면 인류의 앞날은 절망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를 파멸로 몰고 가는 그 흐름이 너무나 도도하고 거세기 때문에 이 세대의 흐름을 거스른다는 것은 달걀로 바위를 치듯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죽은 물고기는 물결 따라 흐르지만 산 물고기는 물을 거슬러 오르듯이 산 믿음을 가진 교회는 세상 풍습을 따를 것이 아니라 망해가는 세상에 소망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세상을 잘못한다고 탓만 할 것이 아니라 교회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그 본을 보여줘야 한다. 교회가 새로운 가치관을 세우고 그 가치관을 실천하고 새로운 지역사회를 가꾸어 나가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세상이 경제적인 논리에 따라 움직인다고 해서 교회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교회가 그린벨트 같은데 땅 사다 놓고 규제가 풀리고 땅 값 오르기를 기다린다든지, 교회 헌금 수입으로 성공여부를 따진다든지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해서는 입으로 아무리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가르쳐야 다 헛일이다. 오히려 가장 소중한 땅을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으로 시민들에게 녹지로 내 놓는다든지,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는 생태계를 구입해서 자연에 돌려준다든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이자 없는 은행을 운영한다든지 하여 세상의 경제적인 논리를 뛰어 넘는 그런 가치관을 교회가 실천으로 보여야 한다. 그래서 교회가 경제적인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생명을 추구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을 이 세상에서 세상이 할 수 없는 참신한 방법으로 보여 줘야 한다.

 

그리고 돈과 정성을 쏟는 곳도 세상 풍습과는 달라야 한다. 세상에서는 돈이 벌리는 곳에 그리고 사람과 생물을 죽이는 데에 온갖 돈과 정성을 다 쏟지만 교회는 달라야 한다. 선교사업에 돈을 썼다고 자랑하지만 실은 자기 교회에 성도들을 끌어 모아 자기 교회 키우는데 온갖 정성을 다 쏟고 있는 교회가 많다. 이는 세상 사람들이 돈을 자꾸 긁어모아 자기 사업 확장하는 것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그리고 한국교회가 교회 건물 짓는데 돈을 가장 많이 쓰고 있는데 그래서 결국 기독교가 우리 사회에 남긴 것은 수많은 십자가와 교회 건물뿐이고 기독교 정신은 부패한 사회에 파묻혀서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교회는 사회를 위해서는 유익하지만 수익이 없는 그런 사업에도 열심히 투자를 해서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돈도 아니고 자기과시도 아니고 죽어가는 생명을 구원하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 교회는 돈이나 재산이 나고 사랑을 모아두는 곳이 아니고 나누는 곳이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부동산 투기로 번 돈을 하나님의 축복인양 즐거워해서는 안 된다. 교회가 그런 식으로 가만 앉아서 부동산으로 돈을 벌고는 세상에 대해서 세금제도를 공평하게 하라고 큰 소리를 칠 수가 없다. 그리고 정부가 세금으로 거두어들인 돈을 올바로 쓰도록 하기 위해서는 교회부터가 헌금을 바로 써야 한다. 성경이 십일조를 말할 때에는 내라고만 말하는 것이 아니고 거두어들인 십일조를 어떻게 써서 고아와 과부들을 구제하라는 것까지도 다 말하고 있다(신14:28-29). 교인들을 향하여 십일조를 도적질하지 말라고 고함을 지르면서 거두어들인 십일조를 올바로 쓰지 않는 교회는 도적질하는 교회이다.

 

교회가 세상의 잘못된 사회구조를 바로 잡는데 가장 직접적으로 그리고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분야는 아마도 지역사회를 가꾸어 나가는데 있을 것 같다. 교회는 지역사회의 주민들이 적어도 매주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교회만큼 지역사회에서 큰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곳도 별로 없을 것이다. 교회는 지역사회가 지속가능한 사회가 되고 또 지역사회의 주민들의 생활이 또한 지속가능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를 이끌어 나가야 할 것이다.

 

올바른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먼저 시작되어야 할 운동 중의 하나는 흩어지는 운동이다. 도시가 지금처럼 천만 명에 이르는 규모가 되면 이는 근본적으로 지속가능한 지역사회가 되기에는 너무나 크다. 성경은 우리더러 항상 흩어지라고 하고 있는데 주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들이 떼로 모여서 성을 쌓고 도시를 만들고 탑을 쌓고 하는 모습을 우리는 성경에서 볼 수 있다. 도시가 어느 정도 작아야만 주위의 농촌과 어울어져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맞출 수가 있고 순환형의 지역사회를 만들 수가 있다.

 

도시 자체는 근본적으로 지속가능한 사회가 아니다. 외부로부터 에너지와 자원과 식량 등을 공급 받아야 하고 또 폐기물을 내 보내야 한다. 그러므로 도시로 식량과 자원을 공급할 수 있고 또 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는 넓은 생산지를 끼고 있어야 생태학적으로 안정될 수가 있다. 따라서 도시의 지역사회는 생산지인 농촌과 협동을 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지역사회라 하는 것은 도시와 농촌이 따로 독립적으로 지역사회를 만들기보다는 서로 연계하여 생활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도시교회와 농촌교회가 맺어져서 생산과 소비를 이어주고 순환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역할을 교회가 해야 할 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서로 유대관계가 맺어져서 생산과 소비의 양태가 다 올바른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이끌어 나가야 할 것이다.

 

교회 자체도 지역사회 안에서 할 일이 많이 있을 것이다. 재활용센터를 운영한다든지, 환경상품을 판매한다든지, 환경시설을 정직하게 운영하여 지역에 봉사한다든지, 환경교육을 한다든지, 그 밖에 교인들의 생활을 올바로 이끌 수 있는 여러 가지 형태의 활동을 벌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교회가 벌이는 이런 활동을 꼭 교인들에게만이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개방하여 기독인들이 땅의 관리인으로서의 역할을 보다 적극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자세도 필요하다 하겠다.

 

지금 우리나라의 교회는 세상과 꼭 같이 돈과 권력을 따르고 거짓과 위선에 빠져있어서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할 교회가 오히려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이 허망하게 파괴되어가는 땅을 구하는 사명을 교회가 감당하기 위해서 교회는 가치관을 돌려야 한다. 나라의 경제를 우선시하고 부자가 되는 것만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알고 땅을 망치는 일에 앞장서고 협력해서는 안 된다. 경제적인 판단은 사물을 크게 왜곡할 수가 있다. 돈 가진 사람과 사업 시행주들이 경제성을 평가하기 때문에 대체로 이들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경제성을 왜곡하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효율성을 따지는 가치관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이자 개념을 도입하여 모든 금전적인 가치를 현재 시점에서의 가치로 환산하는 데에 있다. 이자 혹은 할인율은 현재를 중요시하고 미래를 무시한다. 지금과 같은 이자율로 경제성을 계산하면 우리나라가 백년 후에 통째로 망해도 현가로는 전혀 손해로 계산되지 않고 천년 후에 지구가 통째로 망해도 현가로 계산하면 하나도 손해로 계산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런 가치판단은 항상 미래의 환경파괴를 대가로 현재 돈벌이가 되는 그런 사업을 조장하게 되어 있다. 산을 깔아 엎고 갯벌을 간척하면 개발업자는 당장 큰돈을 번다. 그러나 나라는 결국에는 망하게 되어 있다. 경제성을 평가해서 할 일 안 할 일을 정해 나가면 결국은 지구는 망하게 되어 있다. 미래 세대는 이런 평가과정에 참여할 수도 없고 또 정책결정과정에 투표를 할 수도 없다. 경제적인 논리가 아니라 먼저 환경적인 논리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지금까지 과학기술은 지구의 자원을 착취하는 방법을 연구하는데 온 정성을 다 기울여 왔다. 그래서 크고 편리하고 빠르고 아름답고 비싼 상품들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개발되었지만 환경적으로 타당한 상품들은 찾기가 어렵다. 그리고 이 땅의 법칙에 맞게 환경적으로 올바로 사는 방법을 제시하는데 있어서도 과학은 유치한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그 방법을 모를 만큼 어리석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그런 것을 연구할 뜻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과학기술의 목표가 사람들을 일 안하고 편하게 살도록 만드는데 있었지만 앞으로는 이 땅에서 환경적으로 올바르게 사는 방법을 찾는데 궁극적인 목표를 두어야 한다.



IX.  맺는 말

 

오늘날의 환경문제가 ‘땅을 정복하라’는 기독교의 정신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이 자주 제기되고 있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한 16세기 영국의 기독교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은 자연이란 것은 인간에 의해 길들여져야 하고 인간은 이 자연을 길들이기 위해 지식을 쌓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런 정신을 이어받아서 미국의 청교도들은 자연이 인간의 적이라도 되는 듯이 자연과 싸워 이기는 정신을 ‘개척정신’이라고 하여 미덕으로 기렸던 것이다.

 

창세기 1장 28절을 보면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에게 제일 먼저 내린 명령이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생물을 다스리라’이다. 많은 사람들은 땅에 ‘충만하라’ 했으니 땅이 비좁도록 자식을 많이 낳아 퍼뜨리고, ‘땅을 정복하라’ 했으니 백두산이고 한라산이고 다 불도저로 깔아 엎어 버리고, ‘생물을 다스리라’ 했으니 생물을 다 잡아 먹으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도 이 땅에서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고 섬기러 왔다고 한데서 잘 나타나듯이, 인간이 땅을 마음대로 이용해도 된다는 메시지는 성경에 없다. 히브리 원어에서 ‘충만하라’는 것은 채워라, 충족시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말은 땅이 제 기능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땅이 필요로 하는 것을 순리대로 채워주라는 것이다. 우리가 땅의 필요를 채워 주면 땅이 우리의 필요를 채워 준다는 뜻이다. 또 ‘정복하라’는 것은 히브리 원어에서 가꾸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땅을 아름답고 풍성하게 가꾸면 우리의 삶도 아름답고 풍성하게 되고 북 아프리카나 북한 같이 땅을 황폐하게 만들면 우리의 삶도 황폐하게 된다는 뜻이다. ‘생물을 다스리라’고 한 것은 생물들이 잘 살 수 있도록 보살피면 우리의 삶도 보살핌을 받는다는 뜻이다.

 

지금 이 땅의 많은 기독인들이 큰 착각들을 하고 있다. 교회 안에서만 열심히 일하면 할 일을 다 한 줄 생각하는데 그것은 큰 의미가 없다. 바깥 세상을 향하여 무슨 일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사람들을 전도하고 구제하고 사랑하는 것만이 세상을 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큰 착각이다. 하나님이 사랑하신 ‘세상’은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다. 예수님께서도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다(막 16:15, 롬 8:21, 골 1:23). 이 땅이 오염되고 그 안에 피조물들이 고통을 받는 것은 천만이나 되는 기독인들이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피조물들에게도 기쁜 소식을 전해야 참다운 기독인이라고 할 수 있다. 피조물들에게 진정 기쁜 소식은 인간의 죄악으로 고통 받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회복하도록 실천하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마땅히 순리대로 이 땅을 가꾸며 살아야 한다. 그리고 파괴되어 가는 이 땅을 바로잡아 후손들에게는 우리가 물려받았던 것보다 더 나은 환경을 물려 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인류가 이 땅에서 생존할 뿐만 아니라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길이고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따르는 길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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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2004. 11. 27. 창조과학학술대회 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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