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와 환경오염
이용희
우리는 홍수와 무지개 사이에서 살고 있습니다 : 이는 곧 우리가 한편으로는 생명에 대한 위협 속에서 살고 있으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살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 우리 시대는 심각한 위기의 시대, 곧 머지 않은 장래에 극도로 파국을 앞에 두고 있는 시대입니다.1)
봄이 되어도 꽃이 붉지를 않고
비를 맞고도 풀이 싱싱하지 않다.
햇빛에 빛나던 바위는 누런 때로 덮이고
우리들 어린 꿈으로 아롱졌던 길은
힘겹게 고개에 걸쳐져 있다.
썩은 실개천에서 그래도 아이들은
등 굽은 고기를 건져 올리고
늙은이들은 소주 집에 모여 기침과 함께
농약으로 얼룩진 상추에 병든 고기를 싸고 있다.
한낮인데도 사방은 저녁 어스름처럼 어둡고
골목에는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없다.
바람에도 화약냄새가 난다.
종소리에도 가스냄새가 난다.2)
성경의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공해(환경오염)로 인하여 하나님이 창조하신 바다, 땅, 하늘이 더러워지고 있다. 1990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 주최 정의, 평화, 창조의 보전(JPIC) 세계대회에서 오늘의 시대를 가리키는 표제어로 '홍수와 무지개 사이에서' 라는 성서적 은유가 사용되었다. 이는 노아의 홍수 때와는 다르게 많은 사람들이 세기말 임박한 묵시론적 종말의 가능성을 예감하고 두려워 떨고 있는 오늘의 시대에 무지개로 상징되는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계약)을 바라보게 하는 일이야말로 기독교인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지개를 통하여 맺어주신 언약에(계약)에 인간만 아니라 다른 피조물들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는 데서 사회, 정치적 비전만이 아니라 생태,환경적비전을 전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창 6:8-16) 이에 본 강의에서는 환경오염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파괴위기에 대하여 그 원인, 하나님의 창조원리에 따른 환경문제의 해결 및 몇 가지 실천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생태계(eco-system)라는 말은 근대부터 쓰인 용어로 독일의 생물학자 에른스트 헤켈(Ernst Haeckel)이 1866년 처음 제창하였다3) Eco는 희랍어의 Oikos에서 유래한 것으로 집 또는 생활의 장을 의미한다. 즉 생태계라는 것은 '생활의 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생태계에서는 모든 생물이 환경과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생물들은 환경 속에서 하나의 거대한 유기적인 조절 계를 형성하여 하나의 동적 평형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한 환경인자의 변화는 연쇄반응을 유발하여 다른 평형상태로 전이될 수 있으며 어느 정도는 균형을 이루려는 힘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구상의 생명체는 종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빛, 공기, 물, 온도 등 물리적 환경이 적정한 범위 내에서만 생존 번성하기 때문에 환경의 파괴나 오염에 의한 지나친 환경의 변화는 생태계의 조절기능을 약화시키거나 손상을 입혀 위기를 초래한다. 인류는 죄악으로 에덴동산에서 쫒겨난 이래로 다시 타락하여 노아의 홍수를 겪었으며 노아 홍수 이후에는 지구상의 큰 환경변화의 영향으로 인간의 수명도 짧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이후로 인류는 발전을 거듭하여 현대에 이르렀다. 옛날에는 인구도 적었으며 인류도 동식물등 천연의 산물을 생활에 이용하였고 그 폐기물은 자연 속으로 희석되어 자연의 자정작용에 의하여 정화되거나 미생물에 의하여 분해되는 생태계의 균형을 통하여 재활용되었다. 그러나 산업이 발달됨에 따라 인류는 더 편안한 생활을 추구하게 되었고 이를 위하여 더 많은 산업생산과 소비가 일어나게 되었다. 즉 환경오염은 산업생산과 소비등 경제활동과 사람의 생활을 통하여 유발되는 대기, 수질, 토양, 해양 등의 오염, 방사능오염, 소음, 진동, 악취에 의한 환경, 생태계 및 인체에 피해를 주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환경오염 및 공해는 인구증가, 도시화 그리고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위한 산업화 등 경제규모의 팽창에 수반되는 필연적인 현상이다.
산업혁명이후 과학은 급속하게 발달하였고 서구사회에는 기술지향주의라 부르는 것이 공공연한 지배개념으로 자리잡고 있다. 기술지향주의는 강력한 힘을 행사하는 이익집단의 견해이기도 한데, 이는 환경오염 방지를 위한 세심한 관리가 행하여질 수 있다면 인간은 자신의 목적에 따라 자연을 적절히 조절이 가능하다고 함으로써 인간의 자연에 대한 지배행위를 정당화한다. 이는 지구의 자원은 무한하고 아무리 남용해도 원상을 회복하며, 세상은 점점 잘되어 간다는 진화론적 낙관론과 결합하여 환경에 대한 지배적인 태도 즉 인간은 생태계로부터 따로 떨어져 나와 지구상의 모든 생물 및 자원을 마음대로 쓰고 버리는 것이 곧 문명이고 발전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임을 알 수 있다 인류는 여러 가지의 모든 노력을 쏟아 환경오염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고, 최고라고 생각하는 환경오염방지 기술을 적용해 보지만 오염된 환경은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과학기술로 인하여 더럽혀진 환경을 과학기술로 해결해 보려는 기술지향주의로는 더 이상 오염된 환경 회복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님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우리는 환경오염문제는 인간이 에덴동산을 나온 후 자신의 지식과 노력으로 이 땅에 유토피아를 만들어 보겠다는 집요한 반항의 산물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환경과 생태계에 대한 인간의 범죄를 시정하기 위한 노력은 입법이나 과학기술로는 되지 않고, 피조세계를 바라보는 사고의 전환 즉 창조신앙의 회복에 있음을 강조한다.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한 청지기의 직분을 잘 수행하기 위하여 환경오염의 근본적인 원인을 잘 살펴보며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가져야 한다.
물 오염의 현실을 보자. 가정에서 버리는 오물,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폐수는 하천을 오염시키며 농경지에서 농약으로 오염된 물이 하천으로 흘러오는 경우, 가축사육장에서 흘러나온 물도 하천과 지하수를 오염시킨다. 우리의 몸은 70%가 물로 이루어져 있어서 며칠만 물을 마시지 못하면 죽게 된다. 물은 밥하고 빨래 등의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농업용수, 공업용수 등 없어서는 안될 천연자원이다. 그 만큼 물이 오염된다는 것은 우리의 목숨과 생활이 오염된다는 것과 똑같은 이야기인 것이다. 우리는 물이 풍부한 것으로 생각하나 지구가 가지고 있는 물중 97%는 바닷물이고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담수는 3% 이며 이중에도 강 호수의 지표수는 0.0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대기오염은 지구온난화, 오존층파괴, 산성비등 대기조성에 따른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지구환경문제가 있으며 인체 건강에 대한 국소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일반적인 대기오염문제도 있다. 대기오염물질은 기체 또는 먼지 형태인데, 기체는 아황산가스, 황화수소, 일산화질소, 이산화탄소, 암모니아, 일산화탄소, 오존, 탄화수소 등이 있다. 이들은 눈 점막, 천식등 호흡기 질환, 폐암을 유발하고 악취나 시야거리 악화 등을 초래한다. 자동차에서 나온 배기가스, 공장들의 굴뚝에서 나오는 매연, 먼지, 아황산가스는 우리의 건강을 해치고 표준 치를 넘어 하늘의 어두워지는 스모그 현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산화탄소, 이산화질소, 메탄, 염화불화탄소는 햇빛은 통과시키고 열은 잡아두는 역할을 하며 이런 현상을 온실효과라고 하는데 지구의 기온이 전반적으로 상승하게 되는 지구온난화의 원인이 된다. 이 현상 때문에 지구의 평균기온이 100년전 보다 0.6도 높아졌다고 하며 앞으로 백년 뒤에는 2.5도 내지 5.5도가 올라갈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것 때문에 해수면이 상승하여 육지가 점점 잠길 위험이 있으며 실제로 지면이 낮은 뉴욕, 런던, 도쿄, 홍콩과 같은 곳은 자꾸 물에 잠겨가고 있다고 한다. 대기 중에 아황산가스가 많이 배출되면 비와 함께 내릴 때 산성비의 원인이 된다. 순수한 물의 pH는 7.0 이지만 비는 대기중의 탄산가스등이 녹아 약간의 산성을 띄어 pH가 5.6-6.5 정도가 되는 것이 정상이다. 산성비는 공기 가운데 있는 오염물질인 황산화물이나 질소 산화물이 빗물에 녹아 pH 5.6 이하의 강한 산성을 가진 빗물로 변하게 된 것을 말한다. 이 산성비는 농작물 등에 큰 피해를 주며, 나무들을 말라죽게 만들기도 하며 부식성을 가지므로 문화유적등을 부식시키기도 한다. 또한 pH4.6 이하에서는 토양 중에 알루미늄, 수은, 카드늄, 납 등의 금속을 용출하게 하여 생태계에 심한 타격을 준다. 우리 나라에서도 서울, 인천, 대구, 부산, 울산 등지에서 pH4.9-5.6 의 산성비가 기록되고 있다. 대기오염물질에 의한 오존층파괴 또한 심각한 문제이다. 지상 20-30km 에 해당하는 성층권에 있는 오존층은 태양에서 오는 인체와 동식물에 해로운 자외선을 흡수 차단함으로써 지구상의 생태계를 보호해준다. 오존층은 CFC, 메탄, 암모니아, 이산화탄소 등이며 특히 영향을 주는 것은 프레온가스로 불리는 CFC이다. 이미 세계는 20세기 말 까지 프레온가스의 사용을 금지하는 협약을 맺고 있는 상태이며 현재는 가시적인 개선효과를 보고있다.
다음은 쓰레기들에 의한 오염을 들 수 있는데 가정과 공장에서 나오는 쓰레기, 등산객과 여행객들이 버리는 쓰레기들은 산과 강을 오염시키고 있다. 우리 나라는 현재 국민 1인당 하루에 1㎏의 쓰레기를 버리고 있는데 물론 분리수거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예전보다는 가정에서 버리는 쓰레기는 많이 감소하였다. 이들 쓰레기는 땅에 묻거나 태우고 있는데, 인구에 비해 땅이 좁은 우리 나라는 뭍을 곳을 찾지 못하여 많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최근 쓰레기를 태워 없애기 위한 소각장을 많이 건설하고 있지만 이 또한 소각하는 동안 발생하는 다이옥신이라는 대기오염물질 때문에 그 소각장 주위의 주민들의 반대가 심한 형편이다. 특히 병원, 화학공장, 건설현장등에 나오는 특수한 쓰레기(특정폐기물)는 거의 줄지 않고 있으며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은 부족한 현실이다.
땅의 오염도 심각하다. 땅은 우리의 살아가는 터전이다. 성경에도 우리는 흙에서 나와 흙으로 간다고 하였고, 매 7년마다 1년씩 땅을 쉬게 하는 땅의 보호를 위한 하나님의 말씀도 있다. 땅은 화학비료의 사용으로 지금은 대부분의 농토가 pH4.5-5.5의 강한 산성을 띠게 되었다. 땅에 사는 각종 균들 중에서 병원균들은 대부분 이 산성 속에서 잘 번식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산성을 띤 토양에서는 끊임없이 질병이 발생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농약을 많이 쓸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농약들은 빗물에 의하여 씻겨져 내려와 물을 오염시키며 농촌의 자연 생태계를 파괴시키는 원인이 된다. 실제로 예전에는 논에서 흔히 발견되는 미꾸라지, 우렁이, 메뚜기, 잠자리 등이 구경하기 힘들게 되었다. 또한 맹독성 농약 때문에 농민들이 중독 되는 사례도 많이 있다. 퇴비대신 사용하는 화학비료는 땅의 흙을 단단하게 만들어 식물의 생육을 부진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밖에 화학물질의 과다사용으로 인한 피해, 1억종의 생물중 98%가 이미 멸종한 생물종의 멸종문제, 열대우림의 파괴(지구상에 생존하는 종의 50-90%는 열대 우림에 살고 있는데 지금 목재채취, 목축지, 농경지를 하루에 약 1900평씩 파손되고 있다), 사막화, 핵폐기물 오염문제등 많은 문제들이 있다.
환경오염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의 욕심과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심 때문이다. 점점 발달된 과학기술로 우리는 더 편하게 살 수 있게 되었고, 우리는 우리의 욕심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한계를 지켜야 할 때 지켜야 할 때 지키지 못하고 그르쳐 놓는 일들이 많은데 환경오염도 이러한 욕심으로 인하여 발생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사람은 편해지기 위하여 계속 바라며 끝이 없게됩니다. 결국 자기자신을 위하여 무엇이든지 해야 한다는 생각이 굳어져서 결국 환경오염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에서 관련된 말씀은 다음과 같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후 내리신 명령이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베푸셨다. 하나님이 그 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위에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하셨다.' (창 1:28) ' 주 하나님이 사람을 데려다가 에덴동산에 두시고 그 곳을 맡아 돌보게 하셨다"(창 2:15)
여기서 '충만하여라', '정복하여라', '다스려라', '맡아 돌 보라' 우리환경을 보호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이야기 해 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린 화이트, 법정스님, 카프라등)은 여기서 땅을 우리가 사는 환경으로 대체하여 자연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울 강조하는 것으로 해석하여 기독교가 자연환경을 정복하고 파괴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위 본문을 잘못 이해한데서 온 것이다. 인간은 자연 환경의 모든 분야에 손을 미치고(충만) 봉사를 통하여 이김으로써(정복하여) 관리하여야(다스려야)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맡아서 잘 돌봐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정복과 욕심을 나타내는 것이 없어야 하며 오직 우리 하나님이 좋다고 말씀하실 수 있도록 그것이 보전될 수 있게 인간이 최선을 다하여 봉사하고 땀 흘려 돌 보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은 자연환경과 더불어 살아야 하고 자연환경은 인간에게 함께 살아가는 것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자연환경을 지키고 보전해야하는 우리는 스스로 타락으로 인하여 보전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게 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를 사랑하시고 비록 에덴동산에서 쫒겨 났지만 취한 땅에서 농사를 지어먹도록 하였다. 그러면서도 사람은 자연환경에 대하여 땀흘려 가꾸고 돌봐야 할 사명이 있었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의 욕심을 발동시키고 자연을 악하게 이용하며 이익을 위하여 환경오염을 일으켰고 현재에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자연환경 가운데서 먹을 수 있는 것은 음식물로 먹고,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기 위하여 필요한 것만 사용하는 같이 더불어 산다는 생활방식을 택하여 생활하여야 한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받은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겸손하게 이것을 받아들여 욕심이 없이 지나치지 않게 살아야한다는 교훈을 깨달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은 자연환경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보전하도록 우리에게 명령하셨으니 이것은 왜 자연환경을 보호하고 전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확실한 대답을 주고 있는 것이다. 땅은 하나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이며 동시에 하나님은 이 땅의 창조주이시다. 따라서 이 땅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보전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라는 말씀은 이 세상이 어떻게 해서 생기었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확실히 대답을 주는 것이며, 또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이 진화하여 생겼다고 주장하는 진화론자에게 확실한 대답을 주는 것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만드시고 '참 좋았다'라고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은 보전되어야 합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우리 인간이 죄악으로 에덴동산에서 나와 하나님의 은혜로 흙을 갈며 살도록 허락하셨는데 그 인간이 오늘까지 이르면서 자기의 욕심대로 자연환경을 대하다가 우리의 환경이 오염되기에 이른 것이다. 사람들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 자연의 회복을 위하여 외치고 노력하지만 잘 안되고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은 사람이 자기의 생각으로 판단하며 자기 중심적으로 협동을 외치고 있기 때문에 결국은 사람이 자기를 중심한 개인주의로 변해버리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길이 있다. 성경에서는''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서 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우셔서 우리를 하나님과 화복 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라는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과를 따지지 않으시고 화해의 말씀을 우리에게 맡겨 주심으로써,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와 화해하게 하신 것입니다."(고후 5:17-19) 라고 쓰여져 있다. 즉 우리는 예수님안에서 우리자신이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을 뿐 만 아니라 우리의 자연환경과 화목함으로써 진정으로 환경을 보호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는 고난과 절제의 삶을 살 때 소유지향의 세계에서 환경을 근본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유일의 길임을 알 수 있다. 절제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로 인간의 힘만으로는 어려우며 성령의 도움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즉 환경의 문제는 믿음의 문제이며, 영성의 문제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삶에서도 절제의 영성이 필요하며 이를 위하여 생명의 보호, 에너지절약, 음식물의 적당한 섭취, 자원의 절약, 쓰레기의 재사용, 나누어 쓰기 등의 부분에서 하나씩 하나씩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1) JPIC 제 2차 초안 문서, 정의, 평화, 창조 질서의 보전 세계대회 자료집, 기독교 사회문제 연구원, 1990, 58쪽
2) 신경림 시인의 시 , '이제 이 땅은 썩어만 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에서 발췌
3) 환경연구회 편저, '환경논의의 쟁점', 나라사랑, 1994, 19쪽
출처 - 창조지
창조와 환경오염
이용희
우리는 홍수와 무지개 사이에서 살고 있습니다 : 이는 곧 우리가 한편으로는 생명에 대한 위협 속에서 살고 있으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살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 우리 시대는 심각한 위기의 시대, 곧 머지 않은 장래에 극도로 파국을 앞에 두고 있는 시대입니다.1)
봄이 되어도 꽃이 붉지를 않고
비를 맞고도 풀이 싱싱하지 않다.
햇빛에 빛나던 바위는 누런 때로 덮이고
우리들 어린 꿈으로 아롱졌던 길은
힘겹게 고개에 걸쳐져 있다.
썩은 실개천에서 그래도 아이들은
등 굽은 고기를 건져 올리고
늙은이들은 소주 집에 모여 기침과 함께
농약으로 얼룩진 상추에 병든 고기를 싸고 있다.
한낮인데도 사방은 저녁 어스름처럼 어둡고
골목에는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없다.
바람에도 화약냄새가 난다.
종소리에도 가스냄새가 난다.2)
성경의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공해(환경오염)로 인하여 하나님이 창조하신 바다, 땅, 하늘이 더러워지고 있다. 1990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 주최 정의, 평화, 창조의 보전(JPIC) 세계대회에서 오늘의 시대를 가리키는 표제어로 '홍수와 무지개 사이에서' 라는 성서적 은유가 사용되었다. 이는 노아의 홍수 때와는 다르게 많은 사람들이 세기말 임박한 묵시론적 종말의 가능성을 예감하고 두려워 떨고 있는 오늘의 시대에 무지개로 상징되는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계약)을 바라보게 하는 일이야말로 기독교인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지개를 통하여 맺어주신 언약에(계약)에 인간만 아니라 다른 피조물들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는 데서 사회, 정치적 비전만이 아니라 생태,환경적비전을 전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창 6:8-16) 이에 본 강의에서는 환경오염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파괴위기에 대하여 그 원인, 하나님의 창조원리에 따른 환경문제의 해결 및 몇 가지 실천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생태계(eco-system)라는 말은 근대부터 쓰인 용어로 독일의 생물학자 에른스트 헤켈(Ernst Haeckel)이 1866년 처음 제창하였다3) Eco는 희랍어의 Oikos에서 유래한 것으로 집 또는 생활의 장을 의미한다. 즉 생태계라는 것은 '생활의 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생태계에서는 모든 생물이 환경과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생물들은 환경 속에서 하나의 거대한 유기적인 조절 계를 형성하여 하나의 동적 평형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한 환경인자의 변화는 연쇄반응을 유발하여 다른 평형상태로 전이될 수 있으며 어느 정도는 균형을 이루려는 힘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구상의 생명체는 종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빛, 공기, 물, 온도 등 물리적 환경이 적정한 범위 내에서만 생존 번성하기 때문에 환경의 파괴나 오염에 의한 지나친 환경의 변화는 생태계의 조절기능을 약화시키거나 손상을 입혀 위기를 초래한다. 인류는 죄악으로 에덴동산에서 쫒겨난 이래로 다시 타락하여 노아의 홍수를 겪었으며 노아 홍수 이후에는 지구상의 큰 환경변화의 영향으로 인간의 수명도 짧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이후로 인류는 발전을 거듭하여 현대에 이르렀다. 옛날에는 인구도 적었으며 인류도 동식물등 천연의 산물을 생활에 이용하였고 그 폐기물은 자연 속으로 희석되어 자연의 자정작용에 의하여 정화되거나 미생물에 의하여 분해되는 생태계의 균형을 통하여 재활용되었다. 그러나 산업이 발달됨에 따라 인류는 더 편안한 생활을 추구하게 되었고 이를 위하여 더 많은 산업생산과 소비가 일어나게 되었다. 즉 환경오염은 산업생산과 소비등 경제활동과 사람의 생활을 통하여 유발되는 대기, 수질, 토양, 해양 등의 오염, 방사능오염, 소음, 진동, 악취에 의한 환경, 생태계 및 인체에 피해를 주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환경오염 및 공해는 인구증가, 도시화 그리고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위한 산업화 등 경제규모의 팽창에 수반되는 필연적인 현상이다.
산업혁명이후 과학은 급속하게 발달하였고 서구사회에는 기술지향주의라 부르는 것이 공공연한 지배개념으로 자리잡고 있다. 기술지향주의는 강력한 힘을 행사하는 이익집단의 견해이기도 한데, 이는 환경오염 방지를 위한 세심한 관리가 행하여질 수 있다면 인간은 자신의 목적에 따라 자연을 적절히 조절이 가능하다고 함으로써 인간의 자연에 대한 지배행위를 정당화한다. 이는 지구의 자원은 무한하고 아무리 남용해도 원상을 회복하며, 세상은 점점 잘되어 간다는 진화론적 낙관론과 결합하여 환경에 대한 지배적인 태도 즉 인간은 생태계로부터 따로 떨어져 나와 지구상의 모든 생물 및 자원을 마음대로 쓰고 버리는 것이 곧 문명이고 발전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임을 알 수 있다 인류는 여러 가지의 모든 노력을 쏟아 환경오염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고, 최고라고 생각하는 환경오염방지 기술을 적용해 보지만 오염된 환경은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과학기술로 인하여 더럽혀진 환경을 과학기술로 해결해 보려는 기술지향주의로는 더 이상 오염된 환경 회복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님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우리는 환경오염문제는 인간이 에덴동산을 나온 후 자신의 지식과 노력으로 이 땅에 유토피아를 만들어 보겠다는 집요한 반항의 산물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환경과 생태계에 대한 인간의 범죄를 시정하기 위한 노력은 입법이나 과학기술로는 되지 않고, 피조세계를 바라보는 사고의 전환 즉 창조신앙의 회복에 있음을 강조한다.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한 청지기의 직분을 잘 수행하기 위하여 환경오염의 근본적인 원인을 잘 살펴보며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가져야 한다.
물 오염의 현실을 보자. 가정에서 버리는 오물,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폐수는 하천을 오염시키며 농경지에서 농약으로 오염된 물이 하천으로 흘러오는 경우, 가축사육장에서 흘러나온 물도 하천과 지하수를 오염시킨다. 우리의 몸은 70%가 물로 이루어져 있어서 며칠만 물을 마시지 못하면 죽게 된다. 물은 밥하고 빨래 등의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농업용수, 공업용수 등 없어서는 안될 천연자원이다. 그 만큼 물이 오염된다는 것은 우리의 목숨과 생활이 오염된다는 것과 똑같은 이야기인 것이다. 우리는 물이 풍부한 것으로 생각하나 지구가 가지고 있는 물중 97%는 바닷물이고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담수는 3% 이며 이중에도 강 호수의 지표수는 0.0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대기오염은 지구온난화, 오존층파괴, 산성비등 대기조성에 따른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지구환경문제가 있으며 인체 건강에 대한 국소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일반적인 대기오염문제도 있다. 대기오염물질은 기체 또는 먼지 형태인데, 기체는 아황산가스, 황화수소, 일산화질소, 이산화탄소, 암모니아, 일산화탄소, 오존, 탄화수소 등이 있다. 이들은 눈 점막, 천식등 호흡기 질환, 폐암을 유발하고 악취나 시야거리 악화 등을 초래한다. 자동차에서 나온 배기가스, 공장들의 굴뚝에서 나오는 매연, 먼지, 아황산가스는 우리의 건강을 해치고 표준 치를 넘어 하늘의 어두워지는 스모그 현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산화탄소, 이산화질소, 메탄, 염화불화탄소는 햇빛은 통과시키고 열은 잡아두는 역할을 하며 이런 현상을 온실효과라고 하는데 지구의 기온이 전반적으로 상승하게 되는 지구온난화의 원인이 된다. 이 현상 때문에 지구의 평균기온이 100년전 보다 0.6도 높아졌다고 하며 앞으로 백년 뒤에는 2.5도 내지 5.5도가 올라갈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것 때문에 해수면이 상승하여 육지가 점점 잠길 위험이 있으며 실제로 지면이 낮은 뉴욕, 런던, 도쿄, 홍콩과 같은 곳은 자꾸 물에 잠겨가고 있다고 한다. 대기 중에 아황산가스가 많이 배출되면 비와 함께 내릴 때 산성비의 원인이 된다. 순수한 물의 pH는 7.0 이지만 비는 대기중의 탄산가스등이 녹아 약간의 산성을 띄어 pH가 5.6-6.5 정도가 되는 것이 정상이다. 산성비는 공기 가운데 있는 오염물질인 황산화물이나 질소 산화물이 빗물에 녹아 pH 5.6 이하의 강한 산성을 가진 빗물로 변하게 된 것을 말한다. 이 산성비는 농작물 등에 큰 피해를 주며, 나무들을 말라죽게 만들기도 하며 부식성을 가지므로 문화유적등을 부식시키기도 한다. 또한 pH4.6 이하에서는 토양 중에 알루미늄, 수은, 카드늄, 납 등의 금속을 용출하게 하여 생태계에 심한 타격을 준다. 우리 나라에서도 서울, 인천, 대구, 부산, 울산 등지에서 pH4.9-5.6 의 산성비가 기록되고 있다. 대기오염물질에 의한 오존층파괴 또한 심각한 문제이다. 지상 20-30km 에 해당하는 성층권에 있는 오존층은 태양에서 오는 인체와 동식물에 해로운 자외선을 흡수 차단함으로써 지구상의 생태계를 보호해준다. 오존층은 CFC, 메탄, 암모니아, 이산화탄소 등이며 특히 영향을 주는 것은 프레온가스로 불리는 CFC이다. 이미 세계는 20세기 말 까지 프레온가스의 사용을 금지하는 협약을 맺고 있는 상태이며 현재는 가시적인 개선효과를 보고있다.
다음은 쓰레기들에 의한 오염을 들 수 있는데 가정과 공장에서 나오는 쓰레기, 등산객과 여행객들이 버리는 쓰레기들은 산과 강을 오염시키고 있다. 우리 나라는 현재 국민 1인당 하루에 1㎏의 쓰레기를 버리고 있는데 물론 분리수거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예전보다는 가정에서 버리는 쓰레기는 많이 감소하였다. 이들 쓰레기는 땅에 묻거나 태우고 있는데, 인구에 비해 땅이 좁은 우리 나라는 뭍을 곳을 찾지 못하여 많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최근 쓰레기를 태워 없애기 위한 소각장을 많이 건설하고 있지만 이 또한 소각하는 동안 발생하는 다이옥신이라는 대기오염물질 때문에 그 소각장 주위의 주민들의 반대가 심한 형편이다. 특히 병원, 화학공장, 건설현장등에 나오는 특수한 쓰레기(특정폐기물)는 거의 줄지 않고 있으며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은 부족한 현실이다.
땅의 오염도 심각하다. 땅은 우리의 살아가는 터전이다. 성경에도 우리는 흙에서 나와 흙으로 간다고 하였고, 매 7년마다 1년씩 땅을 쉬게 하는 땅의 보호를 위한 하나님의 말씀도 있다. 땅은 화학비료의 사용으로 지금은 대부분의 농토가 pH4.5-5.5의 강한 산성을 띠게 되었다. 땅에 사는 각종 균들 중에서 병원균들은 대부분 이 산성 속에서 잘 번식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산성을 띤 토양에서는 끊임없이 질병이 발생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농약을 많이 쓸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농약들은 빗물에 의하여 씻겨져 내려와 물을 오염시키며 농촌의 자연 생태계를 파괴시키는 원인이 된다. 실제로 예전에는 논에서 흔히 발견되는 미꾸라지, 우렁이, 메뚜기, 잠자리 등이 구경하기 힘들게 되었다. 또한 맹독성 농약 때문에 농민들이 중독 되는 사례도 많이 있다. 퇴비대신 사용하는 화학비료는 땅의 흙을 단단하게 만들어 식물의 생육을 부진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밖에 화학물질의 과다사용으로 인한 피해, 1억종의 생물중 98%가 이미 멸종한 생물종의 멸종문제, 열대우림의 파괴(지구상에 생존하는 종의 50-90%는 열대 우림에 살고 있는데 지금 목재채취, 목축지, 농경지를 하루에 약 1900평씩 파손되고 있다), 사막화, 핵폐기물 오염문제등 많은 문제들이 있다.
환경오염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의 욕심과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심 때문이다. 점점 발달된 과학기술로 우리는 더 편하게 살 수 있게 되었고, 우리는 우리의 욕심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한계를 지켜야 할 때 지켜야 할 때 지키지 못하고 그르쳐 놓는 일들이 많은데 환경오염도 이러한 욕심으로 인하여 발생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사람은 편해지기 위하여 계속 바라며 끝이 없게됩니다. 결국 자기자신을 위하여 무엇이든지 해야 한다는 생각이 굳어져서 결국 환경오염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에서 관련된 말씀은 다음과 같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후 내리신 명령이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베푸셨다. 하나님이 그 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위에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하셨다.' (창 1:28) ' 주 하나님이 사람을 데려다가 에덴동산에 두시고 그 곳을 맡아 돌보게 하셨다"(창 2:15)
여기서 '충만하여라', '정복하여라', '다스려라', '맡아 돌 보라' 우리환경을 보호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이야기 해 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린 화이트, 법정스님, 카프라등)은 여기서 땅을 우리가 사는 환경으로 대체하여 자연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울 강조하는 것으로 해석하여 기독교가 자연환경을 정복하고 파괴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위 본문을 잘못 이해한데서 온 것이다. 인간은 자연 환경의 모든 분야에 손을 미치고(충만) 봉사를 통하여 이김으로써(정복하여) 관리하여야(다스려야)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맡아서 잘 돌봐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정복과 욕심을 나타내는 것이 없어야 하며 오직 우리 하나님이 좋다고 말씀하실 수 있도록 그것이 보전될 수 있게 인간이 최선을 다하여 봉사하고 땀 흘려 돌 보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은 자연환경과 더불어 살아야 하고 자연환경은 인간에게 함께 살아가는 것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자연환경을 지키고 보전해야하는 우리는 스스로 타락으로 인하여 보전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게 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를 사랑하시고 비록 에덴동산에서 쫒겨 났지만 취한 땅에서 농사를 지어먹도록 하였다. 그러면서도 사람은 자연환경에 대하여 땀흘려 가꾸고 돌봐야 할 사명이 있었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의 욕심을 발동시키고 자연을 악하게 이용하며 이익을 위하여 환경오염을 일으켰고 현재에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자연환경 가운데서 먹을 수 있는 것은 음식물로 먹고,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기 위하여 필요한 것만 사용하는 같이 더불어 산다는 생활방식을 택하여 생활하여야 한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받은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겸손하게 이것을 받아들여 욕심이 없이 지나치지 않게 살아야한다는 교훈을 깨달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은 자연환경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보전하도록 우리에게 명령하셨으니 이것은 왜 자연환경을 보호하고 전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확실한 대답을 주고 있는 것이다. 땅은 하나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이며 동시에 하나님은 이 땅의 창조주이시다. 따라서 이 땅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보전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라는 말씀은 이 세상이 어떻게 해서 생기었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확실히 대답을 주는 것이며, 또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이 진화하여 생겼다고 주장하는 진화론자에게 확실한 대답을 주는 것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만드시고 '참 좋았다'라고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은 보전되어야 합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우리 인간이 죄악으로 에덴동산에서 나와 하나님의 은혜로 흙을 갈며 살도록 허락하셨는데 그 인간이 오늘까지 이르면서 자기의 욕심대로 자연환경을 대하다가 우리의 환경이 오염되기에 이른 것이다. 사람들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 자연의 회복을 위하여 외치고 노력하지만 잘 안되고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은 사람이 자기의 생각으로 판단하며 자기 중심적으로 협동을 외치고 있기 때문에 결국은 사람이 자기를 중심한 개인주의로 변해버리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길이 있다. 성경에서는''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서 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우셔서 우리를 하나님과 화복 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라는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과를 따지지 않으시고 화해의 말씀을 우리에게 맡겨 주심으로써,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와 화해하게 하신 것입니다."(고후 5:17-19) 라고 쓰여져 있다. 즉 우리는 예수님안에서 우리자신이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을 뿐 만 아니라 우리의 자연환경과 화목함으로써 진정으로 환경을 보호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는 고난과 절제의 삶을 살 때 소유지향의 세계에서 환경을 근본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유일의 길임을 알 수 있다. 절제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로 인간의 힘만으로는 어려우며 성령의 도움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즉 환경의 문제는 믿음의 문제이며, 영성의 문제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삶에서도 절제의 영성이 필요하며 이를 위하여 생명의 보호, 에너지절약, 음식물의 적당한 섭취, 자원의 절약, 쓰레기의 재사용, 나누어 쓰기 등의 부분에서 하나씩 하나씩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1) JPIC 제 2차 초안 문서, 정의, 평화, 창조 질서의 보전 세계대회 자료집, 기독교 사회문제 연구원, 1990, 58쪽
2) 신경림 시인의 시 , '이제 이 땅은 썩어만 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에서 발췌
3) 환경연구회 편저, '환경논의의 쟁점', 나라사랑, 1994, 19쪽
출처 - 창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