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환경문제 진단과 창조질서 회복을 위한 교회의 역할 1
김정욱
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I.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환경윤리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선조들은 자연에도 다 이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했고 그 이치에 따라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고자 노력했다. 자연의 이치를 거슬러 환경을 파괴하거나 오염시키는 행위를 천벌을 받을 죄악으로 알아왔고 그런 행위에 대해서 지금 우리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들 정도로 큰 형벌로 다스려 왔었다. 옛날에 공자가 제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어느 나라에서는 재를 버린다고 곤장 스무 대를 치는데 이는 너무 가혹한 형벌이 아닙니까?” 공자가 대답하기를, “재를 안 버리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인데 이런 쉬운 범죄를 엄한 벌로 막아서 백성들을 행복하게 살게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옛날 마을에서 발견되는 돌 판에 ‘棄灰者 杖三十, 棄糞者 杖五十’(기회자 장 30, 기분자 장 50 : 재를 버리는 자는 곤장 30대, 똥을 버리는 자는 곤장 50대), 혹은 ‘棄灰者 杖八十, 放牲畜者 杖一百’(기회자 장 80, 방생축자 장 100 : 재를 버리는 자는 곤장 80대, 가축을 방목하는 자는 곤장 100대) 이라고 새긴 금표(禁標)가 발견된다 1). 똥과 재를 버린다는 것은 이들이 다 유용한 거름 자원인데 이 자원을 낭비하고 강이나 길에 버려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뜻이다. 그리고 가축을 방목하여 산림을 훼손하는 행위도 엄한 벌로 다스렸다는 말이다.
특히 우리 민족은 나무에 대하여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집을 짓거나 땔감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산림을 훼손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송목금벌(松木禁伐)을 강조했다고 전해진다 2). 그리고 산림을 보호하되 특히 소나무 숲을 가꾸기 위해 「송금작계절목(松禁作契節目)」이라는 규정을 두고 주민들은 나무를 심기 위해서 계(契)까지 모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렇게 해서 만든 숲을 송계림(松契林)이라고 불렀다 3). 지금 우리나라에 그린벨트가 있지만 조선시대에도 이와 비슷한 제도가 있어서 특별히 보호해야할 산림을 금산(禁山) 혹은 봉금구역(封禁區域)으로 묶었었다. 서울 주변의 산들은 대개 금산으로 지정되었고 지방에서도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설정되었다고 한다. 조선의 헌법인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금산에서 벌목을 하거나 채석을 한 자는 곤장 90대에 벌목한 수만큼 나무를 다시 심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더 엄격하게 시행하여 세조 때 기록에 의하면 금산의 소나무 한 그루를 불법으로 베어내는 대가는 곤장이 100대, 두 그루면 곤장 100대를 친 후에 군복무를 시키고, 열 그루면 곤장 100대를 친 후 오랑캐 지역으로 추방하기도 했었다 4).
모세의 율법에서 곤장을 40대 이상 때리는 것을 금하는 것을 보면 우리의 형벌이 얼마나 엄한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5). 곤장은 20대만 해도 공자의 제자들이 분개할 정도로 엄한 형벌이고 100대면 거의 죽는 것으로 알기 때문에 더 때릴 수도 없을 정도로 극형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나무를 함부로 베면 천벌을 받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제사를 먼저 지내고야 나무를 베었었다. 나무와 산림을 신성시했기 때문에 예전에는 산에 올라가면 산을 더럽힐까봐 오줌도 누지 않았고 똥은 싸들고 내려 왔다고 한다. 이런 풍습은 지금도 일부 전통을 존중하는 노년층에 전해지고 있다.
환경범죄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냉엄하고 형벌이 무거웠기 때문에 환경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은 보통사람들로서는 감히 생각하기 어려웠으리라고 짐작된다. 그래서 우리의 전통적인 생활문화는 자원을 철저히 아끼고 재활용하며 환경오염을 최소화하도록 생태학적으로 짜여져 있었다. 가정생활에서는 버리는 쓰레기가 생기지 않도록 집집마다 마당을 두어 가축을 기르고 텃밭을 집 가까이 두었었다. 그래서 작은 곡식 알갱이는 닭이 쪼아 먹고, 큰 음식 덩어리는 개나 돼지가 먹고, 설거지한 개숫물은 소여물 삶는데 쓰고, 재나 분뇨는 농지에 비료로 쓰고, 버리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뜨거운 물을 마당에 붓는 것도 땅을 죽인다 해서 용납되지 않았으며 그 밖의 거의 모든 자원이 재활용되었었다. 제주도에서는 인분마저도 돼지에게 사료로 먹일 정도로 자원의 재활용이 철저했다. 만약에 제주도에서 육지에서와 같은 재래식 변소를 만들었다면 투수성이 큰 지질의 특성상 지하수가 오염되어 물을 마시기 어려웠을 것이다. 쓰레기를 아무 데나 함부로 버리는 행위는 윤리적으로 용납되지 않았었다. 쓰레기가 없었기 때문에 쓰레기를 국가에서 별도로 치운 적도 없었다.
취락이나 주택구조 자체도 생태학적으로 올바른 형태를 보이고 있다. 산꼭대기나 경사가 급해서 생태학적으로 취약한 지역은 보존하고, 그 아래 경사가 좀 완만하지만 다른 용도로는 쓸 수가 없는 곳에 무덤을 두었다. 취락은 그 아래에 산을 북쪽으로 등지고 남향집을 지음으로 가장 에너지 효율적인 취락을 만들었다. 집 뒤에는 대나무 같은 나무를 심어 토사의 유실과 우물을 더럽힐 수 있는 오염물질들을 여과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집 자체도 환경친화적이었다. 초가지붕은 썩으면 퇴비로 쓴다. 집을 짓는데 나무는 최소한으로 써서 산림자원을 아끼고 벽은 흙과 짚으로 만들어 보온과 습도 조절이 잘 되도록 만들었다.
특히 온돌은 어떤 난방장치보다도 열효율이 뛰어나고 오염이 작은 난방구조이다. 난방을 따로 하는 것도 아니고 아침저녁으로 밥만 지으면 저절로 난방이 되는 것이 온돌이다. 난방을 우리나라만큼 효율적으로 하는 나라가 세계에 없다. 일본은 두터운 이불에 더운 물통을 안고 자거나 화로를 피우는 정도가 고작이다. 유럽 사람들은 벽난로를 피우는데 이것은 열효율도 형편없고 실내 공기 오염이 심각하다. 유럽 사람들이 난로에 석탄을 태울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연탄가스를 마시고 피해를 입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부 부유한 집에서는 유럽을 본 떠서 집에 벽난로를 달아 놓는데, 벽난로에 불을 때서 방을 데우자면 에너지 소모가 많고 실내공기 오염도 심해진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이 도시를 가장 농사짓기 좋은 평야에다 만들어 땅을 낭비를 하는데, 우리나라는 평야는 농사를 짓도록 그대로 아껴두고 도시는 평야 가장자리에 산을 끼고 건설하여 도시가 비대해지는 것을 막았다. 서울의 인구는 1660년에 20만에 이른 후 19세기말에 개방이 이루어지기까지 늘지도 줄지도 않고 항상 20만 명을 유지했다 6). 지금 유럽의 도시들이 환경친화적인 도시 인구의 규모를 20만 명 정도로 잡고 있는 것을 보면 서울도 주위의 환경에 무리를 주지 않고 환경적으로 건전한 도시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이 인구 규모를 유지하지 않았나 하고 짐작이 된다. 도시에 필요한 땔감은 산림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는 선에서 인근 지역으로부터 반입되었고 도시의 분뇨는 인근의 논밭으로 환원되었다. 그리고 물도 하천이나 지하수를 오염시키지 않도록 생태학적으로 건전한 지역사회를 이루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유럽 사람들이 산 모습은 우리와는 전혀 달랐다. 유럽 사람들은 예전에 집에 변소도 없이 살았다. 집을 지으면 벽 하나에 두 집이 같이 지붕을 올려 짓는다. 유럽의 도시에 층수가 꼭 같은 건물들이 죽 늘어선 이유가 바로 벽 하나를 양쪽 집이 같이 썼기 때문이다. 이렇게 집을 지으면 마당을 가질 수가 없다. 그리고 마당이 없는 집에서는 변소를 지을 수가 없다. 그래서 유럽의 도시 사람들은 오랫동안 변소도 없이 살았다. 호화스럽기로 유명한 베르사이유 궁전에도 변소가 없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분뇨는 요강에 받았다가 길이고 하천이고 아무 데나 창 밖으로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재수 없으면 길 가다가 오물 벼락을 맞는 것이 예사였다고 전해진다. 중절모가 바로 이 오물 벼락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7). 영국의 어떤 도시들은 길 가운데를 아예 파놓고 오물을 그곳에 버리도록 했다고 전해진다. 길에 오물이 하도 많이 널려 있어서 오물을 밟지 않기 위해서 만든 신이 하이힐이라고 전해진다. 부인들은 외출할 때면 변소가 없기 때문에 곤란을 겪어야 했다. 유럽 여자들이 이상하게 크게 벌어진 치마를 입게 된 이유가 변소문제를 쉽게 해결하기 위한 한 방법이었다고 전해진다. 그 치마를 입으면 아무 데나 앉는 곳이 바로 변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의 하천이라는 것은 냄새가 나서 귀부인들은 코를 막고 다리를 건넜다고 한다. 도시의 하천은 오물이 두텁게 쌓인 시궁창이어서 한 번 빠지면 죽음을 각오해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여기에 비해서 서울의 청계천은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말 그대로 깨끗한 물 그대로였다.
유럽의 도시에서 물을 그냥 마신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었다. 유럽에서 큰 전염병이 자주 돈 이유도 그곳이 대단히 불결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1348년에서 1349년 사이에 페스트가 전염되었을 때에는 인도북부에서 아이슬란드에 이르기까지 전 인구의 1/3이 죽을 정도였다. 유럽의 도시에서는 맹물을 마신다는 것은 금기사항이었다. 유럽 사람들이 식사 때 포도주와 맥주를 통상 마신 이유도 물이 오염되었기 때문이었다. 군대에서 술을 안 마시고 물을 마시는 것은 처벌의 대상이었다 8). 근세에 들어서면서 유럽의 도시들이 필요 이상으로 엄청난 규모의 하수도를 건설한 것도 물로 인한 전염병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다.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은 90% 이상이 유럽 사람들이 옮긴 전염병으로 인하여 죽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미국에서 몇 명 안 되는 유럽의 이주민들이 전쟁도 안하고 그 큰 나라를 다 뺏을 수 있었던 이유도 천연두와 같은 전염병을 옮겼더니 많은 인디언들이 죽어서 전쟁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삼림도 제대로 보존이 되지 않았다. 집 짓고 땔감하고 목초지 만들기 위해서 일찍이 거의 다 훼손되어 수종도 몇 십 종 밖에 남아 있지 않다. 영국에는 600 종 정도의 식물이 남아있을 뿐이다. 우리나라는 최근에 많이 훼손이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 만여종에 이르는 다양한 수종들이 남아 있다.
옛날 우리나라의 지역사회는 하나하나가 생태학적인 단위로서 기능하여 태양만 있으면 돌아가는 그런 사회였다. 물질은 그 자체 안에서 완전한 순환이 이루어 졌고 폐기물이나 오염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었다. 고대 문명국들은 땅이 거의 다 황폐해졌다. 중국의 땅도 산림이 황폐하여 국토의 절반 이상이 사막으로 변했고 황하와 양자강은 하천 바닥이 인근의 지면보다 높아졌으며 농경지들도 많이 척박해졌다. 유럽의 육상 생태계도 그 모습이 크게 왜곡되어 있다. 미국의 농경지들은 그 좋던 땅들이 100년을 견디지 못하고 황폐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수천 년간 이 땅에서 농사짓고 살면서도 농경지와 산림이 비교적 최근까지도 잘 보존되어 왔는데 그 이유가 바로 우리 선조들이 지속가능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앞으로 21세기에 들어서 에너지와 자원이 고갈되어 가고 환경문제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게 되어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할 때, 그 때에 우리는 우리 선조들의 삶의 지혜로부터 인류에게 새로운 미래의 비전을 제시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옛날과 똑 같은 삶의 양식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아니라 그 개념과 철학을 배운다는 뜻이다.
II. 우리나라의 환경문제 진단
그러다가 우리나라는 1962년에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추진하기에 이르러서는 환경윤리관이 완전히 뒤바뀌어 환경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를 국가적이 반역행위로 간주하였다. 부산수산대학교(지금의 부경대학교)의 원종훈 교수가 수산양식장의 환경오염도를 논문으로 발표한 적이 있는데 이 사건으로 인하여 이 대학의 학장은 면직되었고, 그의 제자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원 교수는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몇 년 후에 사망했는데 고문 후유증이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밖에도 많은 환경 전문가들이 언론에 정보를 제공하였다는 등의 이유로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공해방지법이 있었지만 이 법은 공해방지의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였다. 기준이 너무 느슨하여 기준을 어기기도 어려웠고 기준을 어겼는지 조사를 하여 처벌을 한 적도 전혀 없었다. 이 시기의 이러한 정책으로 인하여 우리나라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환경오염의 피해를 크게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개발계획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면서 이의 결과로 우리나라는 자원의 낭비가 심하고 환경오염이 심한 사회로 탈바꿈하였다. 우리나라의 GNP당 에너지 사용량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편에 속하여 OECD 평균보다 50%가 높다. 또 환경오염 성장이 경제성장을 앞질러 1982년에서 1996년 사이에 경제가 연 9.6% 성장한데 비하여 산업폐수와 산업폐기물은 연 13% 이상 증가하였다 9). 결과로 우리나라의 환경오염밀도는 다른 어떤 선진국보다도 앞선다. 일본과 비교하자면 우리나라는 인구가 1/3, 국토면적이 1/4, GNP가 1/12 정도이지만 아황산가스 배출밀도가 5배, BOD 배출밀도 20배, 유독성폐기물배출밀도 4.5배에 이른다. GNP당 에너지 사용량은 우리가 일본의 3.5배에 이른다. 1인당 소득은 일본의 1/4 수준이나 1인당에너지 사용량은 일본의 1.2배이다. 우리의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은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독일을 다 앞질렀다 10).
경제학자들은 1인당 소득이 5,000 달러를 넘으면 환경이 개선된다는 Kuznets 이론을 자주 내세우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소득이 10,000 달러에 이르기까지도 환경오염물질 배출량이 계속 증가하기만 했다 11). 결과로 우리나라의 환경은 급속히 악화되었다. 울산, 온산 공단은 주민 37,000여명을 이주시키는 방법으로서 공단의 환경문제를 해결하고자 했고, 여천공단에서도 주민들이 환경오염을 이유로 이주를 요구한 바가 있다. 1991년에 낙동강 페놀오염사고가 있은 이후로 정부는 ‘맑은 물 대책’에 17조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했다고 하나 물을 오염시키는 정책이 더 잘 추진되어 물은 더 나빠졌다. 그래서 현재 수돗물을 안심하고 그대로 마시는 사람은 전 인구의 1% 밖에 되지 않는다 12). 또 세계에서도 자동차가 가장 바쁘게 돌아다니는 나라가 되어 대기오염도 세계에서 가장 심한 나라로 항상 선정되곤 한다. 한국 사람들의 승용차 대당 주행거리는 1년에 2만6천 km 인데 반하여 미국의 평균 주행거리는 1만9천 km, 영국이 1만5천 km, 프랑스가 1만4천 km, 독일이 1만2천 km, 일본은 1만 km에 지나지 않는다. 계속 건설되는 도로로 인하여 우리나라 승용차의 주행거리는 앞으로도 이에서 더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예측이 되고 있다 13). 우리나라는 교통 에너지가 전체 에너지 수요의 23%에 이를 정도로 교통 에너지 소모가 많다. 이것이 결국은 우리나라의 도시들을 공기 나쁘고 시끄럽고 교통소통이 안 되는 곳으로 만들게 된 이유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런 성장위주의 경제개발정책을 아직도 계속 밀고 나가고 있다. 우리 정부가 세운 2020년까지의 장기발전전략에 의하면, 인구는 장차 5천만에서 안정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은 2020년까지 30,000 달러로 올리고, 자동차는 지금보다 두 배 반이 늘어 2,500 만대를 보급하여 2인에 한 대 꼴이 되도록 하고, 공장면적도 지금의 두 배반이 되도록 380 km2를 공급하는 것으로 계획되었다 14). 이러한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에너지는 1990년을 기준으로 2030년까지 4배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내놓은바 있다 15). 수자원은 또 1996년에 발간된 수자원장기종합계획에 의하면, 1997년 생활용수와 공업용수를 합하여 1인1일당 535 리터에서 2011년에는 760 리터를 공급하기 위하여 대목적 댐 20개를 더 건설하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다 16). 그리고 2001년에 건교부에서 새로이 작성한 계획에 의하더라도 2020년까지 생활용수가 연간 90.21억톤, 공업용수가 45.65억톤이 필요하여 둘을 합치면 여전히 1인1일당 744 리터가 필요한 것으로 계획되어 있다 17).
이런 장기발전계획을 구체화하기 위하여 각종 대형국책사업들이 추진되고 있다. 지금 추진되고 있는 국책사업들은 대개가 공개적인 논의를 거쳐 결정된 것이 아니라 먼저 정치적으로 결정해 놓고, 거기에 맞추어 사업타당성조사보고서가 꾸며진다. 그리고는 사업을 먼저 시작한 후에 환경영향평가를 형식적으로 거친다. 일단 사업이 착수되면 ‘시작된 국책사업은 중단되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예산을 서너 배, 대개는 그보다 훨씬 더 크게 올려 현실화한다. 비판의 소리는 모든 수단방법을 동원하여 사업을 합리화시키고 밀어 부친다. 이들 타당성조사 보고서나 환경영향평가 보고서에는 많은 사실들이 왜곡되어 있다. 다음에 지금 추진되고 있는 몇 가지 국책 사업들의 문제점을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다음에 계속 됩니다)
출처 - 창조과학학술대회 논문집
우리나라의 환경문제 진단과 창조질서 회복을 위한 교회의 역할 1
김정욱
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I.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환경윤리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선조들은 자연에도 다 이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했고 그 이치에 따라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고자 노력했다. 자연의 이치를 거슬러 환경을 파괴하거나 오염시키는 행위를 천벌을 받을 죄악으로 알아왔고 그런 행위에 대해서 지금 우리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들 정도로 큰 형벌로 다스려 왔었다. 옛날에 공자가 제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어느 나라에서는 재를 버린다고 곤장 스무 대를 치는데 이는 너무 가혹한 형벌이 아닙니까?” 공자가 대답하기를, “재를 안 버리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인데 이런 쉬운 범죄를 엄한 벌로 막아서 백성들을 행복하게 살게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옛날 마을에서 발견되는 돌 판에 ‘棄灰者 杖三十, 棄糞者 杖五十’(기회자 장 30, 기분자 장 50 : 재를 버리는 자는 곤장 30대, 똥을 버리는 자는 곤장 50대), 혹은 ‘棄灰者 杖八十, 放牲畜者 杖一百’(기회자 장 80, 방생축자 장 100 : 재를 버리는 자는 곤장 80대, 가축을 방목하는 자는 곤장 100대) 이라고 새긴 금표(禁標)가 발견된다 1). 똥과 재를 버린다는 것은 이들이 다 유용한 거름 자원인데 이 자원을 낭비하고 강이나 길에 버려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뜻이다. 그리고 가축을 방목하여 산림을 훼손하는 행위도 엄한 벌로 다스렸다는 말이다.
특히 우리 민족은 나무에 대하여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집을 짓거나 땔감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산림을 훼손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송목금벌(松木禁伐)을 강조했다고 전해진다 2). 그리고 산림을 보호하되 특히 소나무 숲을 가꾸기 위해 「송금작계절목(松禁作契節目)」이라는 규정을 두고 주민들은 나무를 심기 위해서 계(契)까지 모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렇게 해서 만든 숲을 송계림(松契林)이라고 불렀다 3). 지금 우리나라에 그린벨트가 있지만 조선시대에도 이와 비슷한 제도가 있어서 특별히 보호해야할 산림을 금산(禁山) 혹은 봉금구역(封禁區域)으로 묶었었다. 서울 주변의 산들은 대개 금산으로 지정되었고 지방에서도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설정되었다고 한다. 조선의 헌법인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금산에서 벌목을 하거나 채석을 한 자는 곤장 90대에 벌목한 수만큼 나무를 다시 심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더 엄격하게 시행하여 세조 때 기록에 의하면 금산의 소나무 한 그루를 불법으로 베어내는 대가는 곤장이 100대, 두 그루면 곤장 100대를 친 후에 군복무를 시키고, 열 그루면 곤장 100대를 친 후 오랑캐 지역으로 추방하기도 했었다 4).
모세의 율법에서 곤장을 40대 이상 때리는 것을 금하는 것을 보면 우리의 형벌이 얼마나 엄한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5). 곤장은 20대만 해도 공자의 제자들이 분개할 정도로 엄한 형벌이고 100대면 거의 죽는 것으로 알기 때문에 더 때릴 수도 없을 정도로 극형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나무를 함부로 베면 천벌을 받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제사를 먼저 지내고야 나무를 베었었다. 나무와 산림을 신성시했기 때문에 예전에는 산에 올라가면 산을 더럽힐까봐 오줌도 누지 않았고 똥은 싸들고 내려 왔다고 한다. 이런 풍습은 지금도 일부 전통을 존중하는 노년층에 전해지고 있다.
환경범죄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냉엄하고 형벌이 무거웠기 때문에 환경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은 보통사람들로서는 감히 생각하기 어려웠으리라고 짐작된다. 그래서 우리의 전통적인 생활문화는 자원을 철저히 아끼고 재활용하며 환경오염을 최소화하도록 생태학적으로 짜여져 있었다. 가정생활에서는 버리는 쓰레기가 생기지 않도록 집집마다 마당을 두어 가축을 기르고 텃밭을 집 가까이 두었었다. 그래서 작은 곡식 알갱이는 닭이 쪼아 먹고, 큰 음식 덩어리는 개나 돼지가 먹고, 설거지한 개숫물은 소여물 삶는데 쓰고, 재나 분뇨는 농지에 비료로 쓰고, 버리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뜨거운 물을 마당에 붓는 것도 땅을 죽인다 해서 용납되지 않았으며 그 밖의 거의 모든 자원이 재활용되었었다. 제주도에서는 인분마저도 돼지에게 사료로 먹일 정도로 자원의 재활용이 철저했다. 만약에 제주도에서 육지에서와 같은 재래식 변소를 만들었다면 투수성이 큰 지질의 특성상 지하수가 오염되어 물을 마시기 어려웠을 것이다. 쓰레기를 아무 데나 함부로 버리는 행위는 윤리적으로 용납되지 않았었다. 쓰레기가 없었기 때문에 쓰레기를 국가에서 별도로 치운 적도 없었다.
취락이나 주택구조 자체도 생태학적으로 올바른 형태를 보이고 있다. 산꼭대기나 경사가 급해서 생태학적으로 취약한 지역은 보존하고, 그 아래 경사가 좀 완만하지만 다른 용도로는 쓸 수가 없는 곳에 무덤을 두었다. 취락은 그 아래에 산을 북쪽으로 등지고 남향집을 지음으로 가장 에너지 효율적인 취락을 만들었다. 집 뒤에는 대나무 같은 나무를 심어 토사의 유실과 우물을 더럽힐 수 있는 오염물질들을 여과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집 자체도 환경친화적이었다. 초가지붕은 썩으면 퇴비로 쓴다. 집을 짓는데 나무는 최소한으로 써서 산림자원을 아끼고 벽은 흙과 짚으로 만들어 보온과 습도 조절이 잘 되도록 만들었다.
특히 온돌은 어떤 난방장치보다도 열효율이 뛰어나고 오염이 작은 난방구조이다. 난방을 따로 하는 것도 아니고 아침저녁으로 밥만 지으면 저절로 난방이 되는 것이 온돌이다. 난방을 우리나라만큼 효율적으로 하는 나라가 세계에 없다. 일본은 두터운 이불에 더운 물통을 안고 자거나 화로를 피우는 정도가 고작이다. 유럽 사람들은 벽난로를 피우는데 이것은 열효율도 형편없고 실내 공기 오염이 심각하다. 유럽 사람들이 난로에 석탄을 태울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연탄가스를 마시고 피해를 입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부 부유한 집에서는 유럽을 본 떠서 집에 벽난로를 달아 놓는데, 벽난로에 불을 때서 방을 데우자면 에너지 소모가 많고 실내공기 오염도 심해진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이 도시를 가장 농사짓기 좋은 평야에다 만들어 땅을 낭비를 하는데, 우리나라는 평야는 농사를 짓도록 그대로 아껴두고 도시는 평야 가장자리에 산을 끼고 건설하여 도시가 비대해지는 것을 막았다. 서울의 인구는 1660년에 20만에 이른 후 19세기말에 개방이 이루어지기까지 늘지도 줄지도 않고 항상 20만 명을 유지했다 6). 지금 유럽의 도시들이 환경친화적인 도시 인구의 규모를 20만 명 정도로 잡고 있는 것을 보면 서울도 주위의 환경에 무리를 주지 않고 환경적으로 건전한 도시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이 인구 규모를 유지하지 않았나 하고 짐작이 된다. 도시에 필요한 땔감은 산림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는 선에서 인근 지역으로부터 반입되었고 도시의 분뇨는 인근의 논밭으로 환원되었다. 그리고 물도 하천이나 지하수를 오염시키지 않도록 생태학적으로 건전한 지역사회를 이루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유럽 사람들이 산 모습은 우리와는 전혀 달랐다. 유럽 사람들은 예전에 집에 변소도 없이 살았다. 집을 지으면 벽 하나에 두 집이 같이 지붕을 올려 짓는다. 유럽의 도시에 층수가 꼭 같은 건물들이 죽 늘어선 이유가 바로 벽 하나를 양쪽 집이 같이 썼기 때문이다. 이렇게 집을 지으면 마당을 가질 수가 없다. 그리고 마당이 없는 집에서는 변소를 지을 수가 없다. 그래서 유럽의 도시 사람들은 오랫동안 변소도 없이 살았다. 호화스럽기로 유명한 베르사이유 궁전에도 변소가 없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분뇨는 요강에 받았다가 길이고 하천이고 아무 데나 창 밖으로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재수 없으면 길 가다가 오물 벼락을 맞는 것이 예사였다고 전해진다. 중절모가 바로 이 오물 벼락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7). 영국의 어떤 도시들은 길 가운데를 아예 파놓고 오물을 그곳에 버리도록 했다고 전해진다. 길에 오물이 하도 많이 널려 있어서 오물을 밟지 않기 위해서 만든 신이 하이힐이라고 전해진다. 부인들은 외출할 때면 변소가 없기 때문에 곤란을 겪어야 했다. 유럽 여자들이 이상하게 크게 벌어진 치마를 입게 된 이유가 변소문제를 쉽게 해결하기 위한 한 방법이었다고 전해진다. 그 치마를 입으면 아무 데나 앉는 곳이 바로 변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의 하천이라는 것은 냄새가 나서 귀부인들은 코를 막고 다리를 건넜다고 한다. 도시의 하천은 오물이 두텁게 쌓인 시궁창이어서 한 번 빠지면 죽음을 각오해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여기에 비해서 서울의 청계천은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말 그대로 깨끗한 물 그대로였다.
유럽의 도시에서 물을 그냥 마신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었다. 유럽에서 큰 전염병이 자주 돈 이유도 그곳이 대단히 불결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1348년에서 1349년 사이에 페스트가 전염되었을 때에는 인도북부에서 아이슬란드에 이르기까지 전 인구의 1/3이 죽을 정도였다. 유럽의 도시에서는 맹물을 마신다는 것은 금기사항이었다. 유럽 사람들이 식사 때 포도주와 맥주를 통상 마신 이유도 물이 오염되었기 때문이었다. 군대에서 술을 안 마시고 물을 마시는 것은 처벌의 대상이었다 8). 근세에 들어서면서 유럽의 도시들이 필요 이상으로 엄청난 규모의 하수도를 건설한 것도 물로 인한 전염병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다.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은 90% 이상이 유럽 사람들이 옮긴 전염병으로 인하여 죽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미국에서 몇 명 안 되는 유럽의 이주민들이 전쟁도 안하고 그 큰 나라를 다 뺏을 수 있었던 이유도 천연두와 같은 전염병을 옮겼더니 많은 인디언들이 죽어서 전쟁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삼림도 제대로 보존이 되지 않았다. 집 짓고 땔감하고 목초지 만들기 위해서 일찍이 거의 다 훼손되어 수종도 몇 십 종 밖에 남아 있지 않다. 영국에는 600 종 정도의 식물이 남아있을 뿐이다. 우리나라는 최근에 많이 훼손이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 만여종에 이르는 다양한 수종들이 남아 있다.
옛날 우리나라의 지역사회는 하나하나가 생태학적인 단위로서 기능하여 태양만 있으면 돌아가는 그런 사회였다. 물질은 그 자체 안에서 완전한 순환이 이루어 졌고 폐기물이나 오염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었다. 고대 문명국들은 땅이 거의 다 황폐해졌다. 중국의 땅도 산림이 황폐하여 국토의 절반 이상이 사막으로 변했고 황하와 양자강은 하천 바닥이 인근의 지면보다 높아졌으며 농경지들도 많이 척박해졌다. 유럽의 육상 생태계도 그 모습이 크게 왜곡되어 있다. 미국의 농경지들은 그 좋던 땅들이 100년을 견디지 못하고 황폐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수천 년간 이 땅에서 농사짓고 살면서도 농경지와 산림이 비교적 최근까지도 잘 보존되어 왔는데 그 이유가 바로 우리 선조들이 지속가능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앞으로 21세기에 들어서 에너지와 자원이 고갈되어 가고 환경문제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게 되어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할 때, 그 때에 우리는 우리 선조들의 삶의 지혜로부터 인류에게 새로운 미래의 비전을 제시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옛날과 똑 같은 삶의 양식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아니라 그 개념과 철학을 배운다는 뜻이다.
II. 우리나라의 환경문제 진단
그러다가 우리나라는 1962년에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추진하기에 이르러서는 환경윤리관이 완전히 뒤바뀌어 환경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를 국가적이 반역행위로 간주하였다. 부산수산대학교(지금의 부경대학교)의 원종훈 교수가 수산양식장의 환경오염도를 논문으로 발표한 적이 있는데 이 사건으로 인하여 이 대학의 학장은 면직되었고, 그의 제자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원 교수는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몇 년 후에 사망했는데 고문 후유증이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밖에도 많은 환경 전문가들이 언론에 정보를 제공하였다는 등의 이유로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공해방지법이 있었지만 이 법은 공해방지의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였다. 기준이 너무 느슨하여 기준을 어기기도 어려웠고 기준을 어겼는지 조사를 하여 처벌을 한 적도 전혀 없었다. 이 시기의 이러한 정책으로 인하여 우리나라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환경오염의 피해를 크게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개발계획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면서 이의 결과로 우리나라는 자원의 낭비가 심하고 환경오염이 심한 사회로 탈바꿈하였다. 우리나라의 GNP당 에너지 사용량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편에 속하여 OECD 평균보다 50%가 높다. 또 환경오염 성장이 경제성장을 앞질러 1982년에서 1996년 사이에 경제가 연 9.6% 성장한데 비하여 산업폐수와 산업폐기물은 연 13% 이상 증가하였다 9). 결과로 우리나라의 환경오염밀도는 다른 어떤 선진국보다도 앞선다. 일본과 비교하자면 우리나라는 인구가 1/3, 국토면적이 1/4, GNP가 1/12 정도이지만 아황산가스 배출밀도가 5배, BOD 배출밀도 20배, 유독성폐기물배출밀도 4.5배에 이른다. GNP당 에너지 사용량은 우리가 일본의 3.5배에 이른다. 1인당 소득은 일본의 1/4 수준이나 1인당에너지 사용량은 일본의 1.2배이다. 우리의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은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독일을 다 앞질렀다 10).
경제학자들은 1인당 소득이 5,000 달러를 넘으면 환경이 개선된다는 Kuznets 이론을 자주 내세우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소득이 10,000 달러에 이르기까지도 환경오염물질 배출량이 계속 증가하기만 했다 11). 결과로 우리나라의 환경은 급속히 악화되었다. 울산, 온산 공단은 주민 37,000여명을 이주시키는 방법으로서 공단의 환경문제를 해결하고자 했고, 여천공단에서도 주민들이 환경오염을 이유로 이주를 요구한 바가 있다. 1991년에 낙동강 페놀오염사고가 있은 이후로 정부는 ‘맑은 물 대책’에 17조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했다고 하나 물을 오염시키는 정책이 더 잘 추진되어 물은 더 나빠졌다. 그래서 현재 수돗물을 안심하고 그대로 마시는 사람은 전 인구의 1% 밖에 되지 않는다 12). 또 세계에서도 자동차가 가장 바쁘게 돌아다니는 나라가 되어 대기오염도 세계에서 가장 심한 나라로 항상 선정되곤 한다. 한국 사람들의 승용차 대당 주행거리는 1년에 2만6천 km 인데 반하여 미국의 평균 주행거리는 1만9천 km, 영국이 1만5천 km, 프랑스가 1만4천 km, 독일이 1만2천 km, 일본은 1만 km에 지나지 않는다. 계속 건설되는 도로로 인하여 우리나라 승용차의 주행거리는 앞으로도 이에서 더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예측이 되고 있다 13). 우리나라는 교통 에너지가 전체 에너지 수요의 23%에 이를 정도로 교통 에너지 소모가 많다. 이것이 결국은 우리나라의 도시들을 공기 나쁘고 시끄럽고 교통소통이 안 되는 곳으로 만들게 된 이유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런 성장위주의 경제개발정책을 아직도 계속 밀고 나가고 있다. 우리 정부가 세운 2020년까지의 장기발전전략에 의하면, 인구는 장차 5천만에서 안정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은 2020년까지 30,000 달러로 올리고, 자동차는 지금보다 두 배 반이 늘어 2,500 만대를 보급하여 2인에 한 대 꼴이 되도록 하고, 공장면적도 지금의 두 배반이 되도록 380 km2를 공급하는 것으로 계획되었다 14). 이러한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에너지는 1990년을 기준으로 2030년까지 4배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내놓은바 있다 15). 수자원은 또 1996년에 발간된 수자원장기종합계획에 의하면, 1997년 생활용수와 공업용수를 합하여 1인1일당 535 리터에서 2011년에는 760 리터를 공급하기 위하여 대목적 댐 20개를 더 건설하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다 16). 그리고 2001년에 건교부에서 새로이 작성한 계획에 의하더라도 2020년까지 생활용수가 연간 90.21억톤, 공업용수가 45.65억톤이 필요하여 둘을 합치면 여전히 1인1일당 744 리터가 필요한 것으로 계획되어 있다 17).
이런 장기발전계획을 구체화하기 위하여 각종 대형국책사업들이 추진되고 있다. 지금 추진되고 있는 국책사업들은 대개가 공개적인 논의를 거쳐 결정된 것이 아니라 먼저 정치적으로 결정해 놓고, 거기에 맞추어 사업타당성조사보고서가 꾸며진다. 그리고는 사업을 먼저 시작한 후에 환경영향평가를 형식적으로 거친다. 일단 사업이 착수되면 ‘시작된 국책사업은 중단되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예산을 서너 배, 대개는 그보다 훨씬 더 크게 올려 현실화한다. 비판의 소리는 모든 수단방법을 동원하여 사업을 합리화시키고 밀어 부친다. 이들 타당성조사 보고서나 환경영향평가 보고서에는 많은 사실들이 왜곡되어 있다. 다음에 지금 추진되고 있는 몇 가지 국책 사업들의 문제점을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다음에 계속 됩니다)
출처 - 창조과학학술대회 논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