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교 국가에서 창조의 복음
(The Gospel of Creation in a Moslem Land)
내 아내와 나는 지난 13년 동안 매우 친절한 나라 터키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터키어를 배운 다음, 기독교 교회는 물론이고 우리가 아는 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전혀 없는 인구 40만의 도시로 이주하였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지는 구속의 복음과 영생에 관한 지식을 그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었다.
당신이라면 무슬림 친구에게 복음을 전할 때 어디서부터 시작하겠는가? 복음을 요약한 구절로는 요한복음 3:16의 말씀이 훌륭하다. 그렇지만 무슬림들에게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을 연관짓는 것은, 하나님이 아내를 가진다는 상상에 버금가는 신성모독이라는 가르침을 받아왔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고린도전서 15:1-4도 복음을 훌륭히 요약하고 있다. 하지만 무슬림들은 하나님이 예수를 십자가 형틀에서 구출하신 후, 대신에 다른 사람이 희생되었다는 가르침을 받아 왔었음을 또한 알아야 한다. 그 뿐이겠는가? 당신의 무슬림 친구는 하나님은 원하시면 어떤 일도 하실 수 있다고 반론을 펼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를 원하신다면, 그 어떤 대속자의 희생도 요구하지 않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cf., 히브리서 9:22, 로마서 3:25, 26).
성경공부는 태초의 말씀부터 시작하는 것이 적절하다. 성경의 시작은 선하시고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온 천지를 창조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과 친교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인간도 또한 창조하셨다고 기술하고 있다. 성경은 아담의 반역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친교관계가 끊긴 이후에도, 인간이 그를 인식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역사하셨는가에 대한 경이로운 기록이다. 창세기는 하나님의 모습을 이해시켜 준다. 그리고 창세기 말씀은 인간이 근본적인 문제를 이 세계에 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가치 있는 존재인지, 그리고 이 세계는 선하신 하나님이 창조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토록 많은 악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이유와, 그리고 인류가 해결할 필요가 있는 심각한 문제에 대한 하나님이 계획하신 해결방법은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다.
내 아내와 나는 새로운 터키인 이웃을 이해할 수 있었고, 또 그들의 친절에 감사하였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들도 우리와 같이 창조주와의 친교관계를 맺기를 원했다. 우리는 그 이웃과 친구관계를 유지하고부터는 심방하여 성경(그 터키인들이 명목으로는 믿으면서도 실제로는 무슨 뜻인지를 모르는 책)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시작하기에 가장 적절한 책인 창세기부터 시작하였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자신의 힘과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는 내용을 공부하였다. 이 내용은 성경의 다른 장들 (요한복음 1:1-3; 이사야 40:25-28; 요한계시록 22:13)에서도 상세하게 가르치고 있는 내용으로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본성은 물론 만물보다 먼저 존재하신 것과 전지전능하신 속성을 담고 있다. 우리 피조물들은 본래적으로는 매우 좋았다는 것과,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심을 받아 지성과 의지와 감정과 창조력은 물론 도덕적이고 영적인 선택에 대한 능력과 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을 공부하였다. 이 교리는 개인의 책임을 최소화하는 운명론적인 무슬림의 사상과는 대조적임을 알게 하였다. 그런 다음 우리는 악이 어떻게 해서 이 세상에 등장하게 되었는가, 그것으로 어떤 필연적인 결과가 초래 되었는가, 그리고 하나님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구세주를 보내시어(창세기 3:15) 무엇을 하시겠다고 약속하였는가를 공부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왜 하나님이 동물의 희생제물 제도를 마련하였다가 나중에는 유월절을 제정하였는지를 공부하였다. 그리고 그 제도가 어떻게 구세주의 오심을 설명하고 있는 가를 공부하였다. 우리는 이 메시아의 오심에 관한 예언을 읽었다. 그리고 그 예언을 예수님이 어떻게 완성하셨는가를 공부하였다. 그 성경공부를 끝낼 쯤 해서 무슬림 친구들 중 네 사람이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도 여러 해를 걸쳐서 우리는 동역자들과 함께 성경 공부를 그전처럼 연대순을 따라 세밀하여 살펴보면서 반복하였다. 결국 성경공부는 신약에서 시작하기 보다는 구약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복음을 이해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총 14 시간의 교습시간을 통하여 우리는 성경의 총체적 맥락은 인간 역사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일관된 역사(役事)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 주목하였다. 성경은 서로 연관성이 없는 개별적인 선량한 이야기라든가, 혹은 전설 같은 내용들을 집대성해 놓은 책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성경은 우리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알려주고자 하시는 역사의 주재자 하나님에 의해서 연출된 실질적이며 믿을 수 있는 역사인 것이다.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아담과 하와와 정상적인 친교관계를 유지하셨는가를 가르쳐주고 있다 (창세기 1:26-3:8). 요한계시록은 믿는 자들이 하나님과 일상적인 친교관계를 다시 회복하게 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요한계시록 21:1-4, 22:1-4). 성경 이야기의 중간에는 인간이 창조주와의 친교관계를 어떻게 해서 상실하게 되어 그 죄 값을 받게 되었는가를 설명하고 있고, 하나님께서 그런 우리를 용서하시고 친교관계를 되찾아주기 위한 방도를 어떻게 마련하셨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고린도후서 6:18-21).
우리 무슬림 이웃들은 그들의 Kurban Bayram (희생의 聖日에 능력 있는 자들은 희생의 제물을 바친다)의 교리에서 이해하기를, 제물로 드렸던 동물의 고기를 3분의 1은 자기들 스스로가 차지하고, 나머지 3분의 2는 이웃과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어 자기들의 후덕함을 증명하여 하나님에게 인정받는다고 믿고 있었다. 우리는 성경을 인용하여 이렇게 설명하였다. 즉, 하나님은 처음부터 아담에게 경고하시기를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에 대한 벌은 죽음이라고 하였다 (창세기 2:16, 17). 하나님은 이 죽음의 벌은 즉각적이라고 아담에게 경고한 대목을 흥미있게 주목하였다. 그런데 뱀의 형태로 나타난 사탄은(요한계시록 20:2) 아담과 하와가 절대로 죽지 않는다고 확언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하지만 비록 아담과 하와가 그 이후로도 여러 해 동안 육신으로는 살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였다는 것에(디도서 1:2) 우리는 주목하였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당장에 죽었던 것은 하나님의 시각에서 볼 때 그들의 영적 현실이 단순한 육신의 현실보다 더욱 의미 있고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죽음의 근본적인 의미는 분리(separation)되는 것이다. 육신의 죽음은 영혼이 육신에서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야고보 2:26). 그런데 영적으로 죽은 자는(실은 더욱 심각한 죽음이다) 생명의 창조자와의 친밀한 관계에서 떠난 자로서, 그들의 삶은 파괴와 부끄러움으로 충만하게 된다 (창세기 3:7-11, 에베소서 2:1-5). 하나님은 죄인이 받아야 마땅한 죽음의 벌을 상징적으로 동물이 받게 하는 희생 제물을 정하여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셨다. 희생제물의 죽음은 오실 메시아의 최종 희생으로 얻게 될 구속의 역사를 상징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제 | 터키의 독실한 무슬림 | 터키의 일반인 | 성경 |
창조 | 코란에는 6일간의 창조가 언급되어 있으나, 상세한 내용은 없다. | 진화론 | 6일 동안 창조하신 내용이 각 날마다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
신의 본성 | 신은 특성이나 약속에 의해 제한받지 않는 통치자로서, 그의 행동은 예측할 수 없고, 자신의 말을 폐기할 수 있다. | 개인들의 의견이 다양함. 그러나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의 중요성은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한 사람의 노력만큼 중요하지 않다. | 하나님은 자신의 특성인 사랑, 공의, 진리, 자비하심에 신실하시다. 그는 약속을 하시고, 그것을 이루신다. |
사람의 가치 | 사람은 알라의 종(servant) 이다. | 한 유명한 지도자가 말했다. '당신이 구하고자 하는 것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기 위해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 |
세계문제의 본질 | 코란과 이슬람의 의무를 따르는데 실패했기 때문. | 종교, 정치, 경제 등에 있어서의 불일치. | 사람의 죄로 인해 거룩한 하나님과 멀어졌기 때문. |
제안하는 해결책 | 영향력 있는 곳에서 더 많은 독실한 무슬림들이 역할을 해야 함. | 더 많은 일과 더 좋은 정치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를 개선해야 함. |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마음과 삶에 변화가 일어나야 함. |
예수 그리스도 | 과거에 있었던 선지자로 다른 많은 선지자처럼 알라의 종 중에 하나임. | 일부 사람에게는 좋은 사람, 다른 이들에게는 정치적으로 실패한 사람. |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 다른 것으로는 구원 받을 수 없음. |
성경 | 코란은 이전의 성서보다 더 새로운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에 힘이 더 있다. | 단순히 다른 사람들을 돕기위한 사람들의 좋은 의도이다. 또는 대중들을 조용하게 하기 위한 종교적 지도자들의 계획이다. |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관한 영적 메시지이고, 계시록으로 완성되어진다. |
희생 | 희생의 기념은 종교적 의무이다. 고기를 나눔으로서 그들의 자비를 나타내 보이는 좋은 일이다. | 기념일을 지키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휴식의 시간으로 사용하며 도시를 떠난다. | 믿는 자들은 죄의 결과는 사망이라는 것과 동물의 희생은 오실 메시야를 가리킨다는 것을 인정한다. |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반항의 심각성은 대홍수와 바벨탑 사건에 관한 이야기 속에서 다시 보게 되었다. 터키에서의 심방 성경공부에서 우리 동역자들과 나는 구세주의 오심에 관한 실마리를 구약성경에서 찾아보게 되었다.
그런 다음에 우리는 신약성경으로 옮겨와서 예수님의 독특한 생애와 죽음, 그리고 부활을 공부하였다. 우리의 가정심방 성경공부에 참가하였던 터키 친구들은 죽은 자들의 무덤에서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영혼이 죽은 자들을 구원하실 수 있는 이유를 서서히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무슬림 교사들로부터 성경에 있는 계시의 말씀들 (모세의 율법, 다윗의 시편, 예수의 복음, 그리고 모하메드의 코란)은 제각기 뒤에 오는 말씀이 앞서 있던 말씀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에 뒤의 오는 말씀이 더 새롭다는 가르침을 받아왔다. 그러나 공부를 신약에서부터 시작하는 대신에 구약에서부터 시작하였던 결과로 그들은 복음이야말로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계속되어온 테마라는 것과, 코란의 메시지는 전적으로 이와는 상관없는 말씀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비록 공식적으로는 터키 사람들의 99%가 무슬림인 것으로 보고 되고 있지만, 많은 터키인들은 명목상의 무슬림으로서 물질주의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그 일부는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한다. 우리가 연대순으로 성경을 공부하였던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목적을 알게 되었고, 인간원죄의 본성과 성경의 계시의 말씀을 알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야말로 사람들의 속사람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켜 혁명과 전체주의적 국가체제 없이 사회정의의 실현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가정심방 성경공부에 참석하였던 터키 친구들 가운데 한 사람은 공산주의자로 자처하고 있었다. 그도 정치나 경제의 상황변화가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들의 역사관(진화론)과 인간본성(성선설적인 인간관)에 관한 총체적 이해가 허구이기 때문에, 이상적이며 조화로운 사회를 창출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1998년 6월 판 Acts & Facts 지의 이슈는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ICR 강사들에 의해서 진행된 창조과학 회합에 관한 내용이었다. 앙카라에서 있었던 그 후속 회합에 나는 어느 터키 친구와 함께 참석하였다. 그의 아내는 크리스천이 되었으나 그는 무신론자였다. 그는 Dr. Gish 가 제시한 화석증거들을 보고, 그때가지 과학이라고 생각하였던 진화론이 전적으로 비과학적이라는데 크게 감명 받았다. 위에서 언급한 가정심방 성경공부를 통하여 구원받은 터키 친구들을 포함하여 일부 크리스천 터키인들도 그 회합에 참석하고 있었다. 그들은 과학적 창조론의 주제에 관한 가르침을 이해하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다. 이제 싹트기 시작한 터키의 교회에는 지금 창조론적 성경에 대한 훌륭한 과학적 교재나 번역된 자료들이 매우 부족하다. 비록 종교적인 무슬림들 중에 창조론을 믿는 사람들이 없지 않지만, 터키 사회의 적지 않은 부분이 진화론이나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이념에 물들어 있다. 앞으로 기독교적 창조과학 문헌들이 터키 사회에 답지하여, 과학이 성경에 대한 신앙을 거부한다는 그릇된 관념을 떨쳐버릴 수 있게 되기를 나는 기도하여 마지않는다. 결국 모든 과학자들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슬기로운 과학자이신 우주의 창조자께서, 성경 속에 우리들에게 주시는 당신의 말씀을 기록하여 놓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성경을 마땅히 믿어야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시여, 노아 방주의 땅인 터키에 터키 말로 된 창조과학 책들이 출판되게 도우사 창조의 가르침이 넘치게 하옵소서!
다양한 믿음과 종교적 태도가 서로 엇갈리고 있는 터키에서 복음을 설명하려면, 언제나 '태초부터 시작'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저자는 신변안전을 위하여 익명으로 남기를 원하고 있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index.php?module=articles&action=view&ID=461
출처 - ICR, Impact No. 318, 1999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946
참고 :
회교 국가에서 창조의 복음
(The Gospel of Creation in a Moslem Land)
내 아내와 나는 지난 13년 동안 매우 친절한 나라 터키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터키어를 배운 다음, 기독교 교회는 물론이고 우리가 아는 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전혀 없는 인구 40만의 도시로 이주하였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지는 구속의 복음과 영생에 관한 지식을 그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었다.
당신이라면 무슬림 친구에게 복음을 전할 때 어디서부터 시작하겠는가? 복음을 요약한 구절로는 요한복음 3:16의 말씀이 훌륭하다. 그렇지만 무슬림들에게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을 연관짓는 것은, 하나님이 아내를 가진다는 상상에 버금가는 신성모독이라는 가르침을 받아왔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고린도전서 15:1-4도 복음을 훌륭히 요약하고 있다. 하지만 무슬림들은 하나님이 예수를 십자가 형틀에서 구출하신 후, 대신에 다른 사람이 희생되었다는 가르침을 받아 왔었음을 또한 알아야 한다. 그 뿐이겠는가? 당신의 무슬림 친구는 하나님은 원하시면 어떤 일도 하실 수 있다고 반론을 펼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를 원하신다면, 그 어떤 대속자의 희생도 요구하지 않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cf., 히브리서 9:22, 로마서 3:25, 26).
성경공부는 태초의 말씀부터 시작하는 것이 적절하다. 성경의 시작은 선하시고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온 천지를 창조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과 친교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인간도 또한 창조하셨다고 기술하고 있다. 성경은 아담의 반역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친교관계가 끊긴 이후에도, 인간이 그를 인식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역사하셨는가에 대한 경이로운 기록이다. 창세기는 하나님의 모습을 이해시켜 준다. 그리고 창세기 말씀은 인간이 근본적인 문제를 이 세계에 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가치 있는 존재인지, 그리고 이 세계는 선하신 하나님이 창조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토록 많은 악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이유와, 그리고 인류가 해결할 필요가 있는 심각한 문제에 대한 하나님이 계획하신 해결방법은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다.
내 아내와 나는 새로운 터키인 이웃을 이해할 수 있었고, 또 그들의 친절에 감사하였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들도 우리와 같이 창조주와의 친교관계를 맺기를 원했다. 우리는 그 이웃과 친구관계를 유지하고부터는 심방하여 성경(그 터키인들이 명목으로는 믿으면서도 실제로는 무슨 뜻인지를 모르는 책)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시작하기에 가장 적절한 책인 창세기부터 시작하였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자신의 힘과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는 내용을 공부하였다. 이 내용은 성경의 다른 장들 (요한복음 1:1-3; 이사야 40:25-28; 요한계시록 22:13)에서도 상세하게 가르치고 있는 내용으로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본성은 물론 만물보다 먼저 존재하신 것과 전지전능하신 속성을 담고 있다. 우리 피조물들은 본래적으로는 매우 좋았다는 것과,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심을 받아 지성과 의지와 감정과 창조력은 물론 도덕적이고 영적인 선택에 대한 능력과 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을 공부하였다. 이 교리는 개인의 책임을 최소화하는 운명론적인 무슬림의 사상과는 대조적임을 알게 하였다. 그런 다음 우리는 악이 어떻게 해서 이 세상에 등장하게 되었는가, 그것으로 어떤 필연적인 결과가 초래 되었는가, 그리고 하나님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구세주를 보내시어(창세기 3:15) 무엇을 하시겠다고 약속하였는가를 공부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왜 하나님이 동물의 희생제물 제도를 마련하였다가 나중에는 유월절을 제정하였는지를 공부하였다. 그리고 그 제도가 어떻게 구세주의 오심을 설명하고 있는 가를 공부하였다. 우리는 이 메시아의 오심에 관한 예언을 읽었다. 그리고 그 예언을 예수님이 어떻게 완성하셨는가를 공부하였다. 그 성경공부를 끝낼 쯤 해서 무슬림 친구들 중 네 사람이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도 여러 해를 걸쳐서 우리는 동역자들과 함께 성경 공부를 그전처럼 연대순을 따라 세밀하여 살펴보면서 반복하였다. 결국 성경공부는 신약에서 시작하기 보다는 구약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복음을 이해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총 14 시간의 교습시간을 통하여 우리는 성경의 총체적 맥락은 인간 역사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일관된 역사(役事)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 주목하였다. 성경은 서로 연관성이 없는 개별적인 선량한 이야기라든가, 혹은 전설 같은 내용들을 집대성해 놓은 책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성경은 우리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알려주고자 하시는 역사의 주재자 하나님에 의해서 연출된 실질적이며 믿을 수 있는 역사인 것이다.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아담과 하와와 정상적인 친교관계를 유지하셨는가를 가르쳐주고 있다 (창세기 1:26-3:8). 요한계시록은 믿는 자들이 하나님과 일상적인 친교관계를 다시 회복하게 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요한계시록 21:1-4, 22:1-4). 성경 이야기의 중간에는 인간이 창조주와의 친교관계를 어떻게 해서 상실하게 되어 그 죄 값을 받게 되었는가를 설명하고 있고, 하나님께서 그런 우리를 용서하시고 친교관계를 되찾아주기 위한 방도를 어떻게 마련하셨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고린도후서 6:18-21).
우리 무슬림 이웃들은 그들의 Kurban Bayram (희생의 聖日에 능력 있는 자들은 희생의 제물을 바친다)의 교리에서 이해하기를, 제물로 드렸던 동물의 고기를 3분의 1은 자기들 스스로가 차지하고, 나머지 3분의 2는 이웃과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어 자기들의 후덕함을 증명하여 하나님에게 인정받는다고 믿고 있었다. 우리는 성경을 인용하여 이렇게 설명하였다. 즉, 하나님은 처음부터 아담에게 경고하시기를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에 대한 벌은 죽음이라고 하였다 (창세기 2:16, 17). 하나님은 이 죽음의 벌은 즉각적이라고 아담에게 경고한 대목을 흥미있게 주목하였다. 그런데 뱀의 형태로 나타난 사탄은(요한계시록 20:2) 아담과 하와가 절대로 죽지 않는다고 확언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하지만 비록 아담과 하와가 그 이후로도 여러 해 동안 육신으로는 살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였다는 것에(디도서 1:2) 우리는 주목하였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당장에 죽었던 것은 하나님의 시각에서 볼 때 그들의 영적 현실이 단순한 육신의 현실보다 더욱 의미 있고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죽음의 근본적인 의미는 분리(separation)되는 것이다. 육신의 죽음은 영혼이 육신에서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야고보 2:26). 그런데 영적으로 죽은 자는(실은 더욱 심각한 죽음이다) 생명의 창조자와의 친밀한 관계에서 떠난 자로서, 그들의 삶은 파괴와 부끄러움으로 충만하게 된다 (창세기 3:7-11, 에베소서 2:1-5). 하나님은 죄인이 받아야 마땅한 죽음의 벌을 상징적으로 동물이 받게 하는 희생 제물을 정하여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셨다. 희생제물의 죽음은 오실 메시아의 최종 희생으로 얻게 될 구속의 역사를 상징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제
터키의 독실한 무슬림
터키의 일반인
성경
창조
코란에는 6일간의 창조가 언급되어 있으나, 상세한 내용은 없다.
진화론
6일 동안 창조하신 내용이
각 날마다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신의 본성
신은 특성이나 약속에 의해 제한받지 않는 통치자로서, 그의 행동은 예측할 수 없고, 자신의 말을 폐기할 수 있다.
개인들의 의견이 다양함. 그러나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의 중요성은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한 사람의 노력만큼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은 자신의 특성인 사랑, 공의, 진리, 자비하심에 신실하시다. 그는 약속을 하시고, 그것을 이루신다.
사람의 가치
사람은 알라의 종(servant) 이다.
한 유명한 지도자가 말했다. '당신이 구하고자 하는 것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기 위해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
세계문제의
본질
코란과 이슬람의 의무를 따르는데 실패했기 때문.
종교, 정치, 경제 등에 있어서의 불일치.
사람의 죄로 인해 거룩한
하나님과 멀어졌기 때문.
제안하는
해결책
영향력 있는 곳에서 더 많은 독실한 무슬림들이 역할을 해야 함.
더 많은 일과 더 좋은 정치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를 개선해야 함.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마음과 삶에 변화가 일어나야 함.
예수
그리스도
과거에 있었던 선지자로 다른 많은 선지자처럼 알라의 종 중에 하나임.
일부 사람에게는 좋은 사람, 다른 이들에게는 정치적으로 실패한 사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
다른 것으로는 구원 받을 수 없음.
성경
코란은 이전의 성서보다 더 새로운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에 힘이 더 있다.
단순히 다른 사람들을 돕기위한 사람들의 좋은 의도이다. 또는 대중들을 조용하게 하기 위한 종교적 지도자들의 계획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관한 영적 메시지이고, 계시록으로 완성되어진다.
희생
희생의 기념은 종교적 의무이다. 고기를 나눔으로서 그들의 자비를 나타내 보이는 좋은 일이다.
기념일을 지키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휴식의 시간으로 사용하며 도시를 떠난다.
믿는 자들은 죄의 결과는 사망이라는 것과 동물의 희생은 오실 메시야를 가리킨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반항의 심각성은 대홍수와 바벨탑 사건에 관한 이야기 속에서 다시 보게 되었다. 터키에서의 심방 성경공부에서 우리 동역자들과 나는 구세주의 오심에 관한 실마리를 구약성경에서 찾아보게 되었다.
그런 다음에 우리는 신약성경으로 옮겨와서 예수님의 독특한 생애와 죽음, 그리고 부활을 공부하였다. 우리의 가정심방 성경공부에 참가하였던 터키 친구들은 죽은 자들의 무덤에서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영혼이 죽은 자들을 구원하실 수 있는 이유를 서서히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무슬림 교사들로부터 성경에 있는 계시의 말씀들 (모세의 율법, 다윗의 시편, 예수의 복음, 그리고 모하메드의 코란)은 제각기 뒤에 오는 말씀이 앞서 있던 말씀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에 뒤의 오는 말씀이 더 새롭다는 가르침을 받아왔다. 그러나 공부를 신약에서부터 시작하는 대신에 구약에서부터 시작하였던 결과로 그들은 복음이야말로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계속되어온 테마라는 것과, 코란의 메시지는 전적으로 이와는 상관없는 말씀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비록 공식적으로는 터키 사람들의 99%가 무슬림인 것으로 보고 되고 있지만, 많은 터키인들은 명목상의 무슬림으로서 물질주의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그 일부는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한다. 우리가 연대순으로 성경을 공부하였던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목적을 알게 되었고, 인간원죄의 본성과 성경의 계시의 말씀을 알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야말로 사람들의 속사람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켜 혁명과 전체주의적 국가체제 없이 사회정의의 실현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가정심방 성경공부에 참석하였던 터키 친구들 가운데 한 사람은 공산주의자로 자처하고 있었다. 그도 정치나 경제의 상황변화가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들의 역사관(진화론)과 인간본성(성선설적인 인간관)에 관한 총체적 이해가 허구이기 때문에, 이상적이며 조화로운 사회를 창출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1998년 6월 판 Acts & Facts 지의 이슈는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ICR 강사들에 의해서 진행된 창조과학 회합에 관한 내용이었다. 앙카라에서 있었던 그 후속 회합에 나는 어느 터키 친구와 함께 참석하였다. 그의 아내는 크리스천이 되었으나 그는 무신론자였다. 그는 Dr. Gish 가 제시한 화석증거들을 보고, 그때가지 과학이라고 생각하였던 진화론이 전적으로 비과학적이라는데 크게 감명 받았다. 위에서 언급한 가정심방 성경공부를 통하여 구원받은 터키 친구들을 포함하여 일부 크리스천 터키인들도 그 회합에 참석하고 있었다. 그들은 과학적 창조론의 주제에 관한 가르침을 이해하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다. 이제 싹트기 시작한 터키의 교회에는 지금 창조론적 성경에 대한 훌륭한 과학적 교재나 번역된 자료들이 매우 부족하다. 비록 종교적인 무슬림들 중에 창조론을 믿는 사람들이 없지 않지만, 터키 사회의 적지 않은 부분이 진화론이나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이념에 물들어 있다. 앞으로 기독교적 창조과학 문헌들이 터키 사회에 답지하여, 과학이 성경에 대한 신앙을 거부한다는 그릇된 관념을 떨쳐버릴 수 있게 되기를 나는 기도하여 마지않는다. 결국 모든 과학자들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슬기로운 과학자이신 우주의 창조자께서, 성경 속에 우리들에게 주시는 당신의 말씀을 기록하여 놓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성경을 마땅히 믿어야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시여, 노아 방주의 땅인 터키에 터키 말로 된 창조과학 책들이 출판되게 도우사 창조의 가르침이 넘치게 하옵소서!
다양한 믿음과 종교적 태도가 서로 엇갈리고 있는 터키에서 복음을 설명하려면, 언제나 '태초부터 시작'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저자는 신변안전을 위하여 익명으로 남기를 원하고 있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index.php?module=articles&action=view&ID=461
출처 - ICR, Impact No. 318, 1999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946
참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