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의 확산과 선교사의 사명
김연수 선교사(SMI/KWMA)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적 작가 중의 한 사람인 에릭 머택서스(Eric Metaxas)는 2013년 7월에 크리스챤 포스트(Christian Post)에 ”젊은 무신론자에게서 배워야 할 점 – 왜 그들은 기독교를 떠났는가?”라는 글을 기고했다. 그는 거기서 그의 교회를 떠난 수많은 젊은이에 대한 설문과 인터뷰를 통해 얻게 된 결과를 설명하고 있는데, 그들이 기독교를 떠난 이유가 첫째로는 교회가 ”복음”을 가르치는 것을 포기했기 때문이며, 둘째로는 사역자들이 ”열정”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론 그들이 기독교를 떠나게 된 데에는 다른 여러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미국 교회가 더 이상 복음을 가르치지 않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열정을 잃어버린 것이 그들이 교회를 떠난 가장 중요한 이유라는 사실을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런가 하면 2009년에 미국에서 발간된 ”이미 떠났다(Already Gone)”에서는 유명 조사기관인 ”미국 연구 그룹(America’s Research Group)”이 그 당시를 기준으로 최근에 교회를 떠난 1,000명의 이십대를 대상으로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내어놓았다. 교회를 떠난 사람들 가운데 39.8%는 중학교 때에, 43.7%은 고등학교 때에, 10.6%는 대학교 때에 성경에 있는 모든 기사와 이야기들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그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고 다양하고 복합적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에 대한 가장 중요한 이유가 성경에 대한 신뢰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우리들에게 심각한 면을 시사해 주고 있다.
결국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진리 문제, 성경의 신뢰성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가르치는 일을 소홀히 한다면, 그 교회의 미래는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교회에서 성경적인 창조신앙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거나, 세상에서 마치 진리인양 버젓이 가르쳐지고 있는, 그리고 일부 교회 안에서까지 진화론을 인정하면서 성경을 해석하려는 유신진화론을 교묘하게 신앙과 함께 섞어서 가르치는 것은, 그것 자체가 기독교 존립에 가장 위협적인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창조론과 진화론이 타협점이 없는 완전히 상반된 이론임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사실 진화론의 등장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사상 중의 하나는 18, 19세기 유럽을 지배했던 ”자연주의”라고 볼 수 있다. 자연주의라는 것은 한 마디로, ”보이는 모든 것을 보이는 것만으로 설명하자는 사상”이며, 진화론이야말로 그 자연주의 사상의 최고의 걸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설명할 때에도, 성경이 말하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설명하기보다는 외형이 인간을 가장 많이 닮은 ”원숭이의 형상”에서 왔다고 말하는 것이 훨씬 쉽고 편하게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화론자들은 모든 것이 물질로부터 출발했다는 자연주의적 믿음만이 과학적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들은 결국 물질이 모든 것의 시작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점에서 진화론은 과학적 이론이면서, 동시에 신앙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세상의 과학자들이 진화론을 인정하는 것은 진화론이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타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창조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인 것이다.
1. 진화론이 인간사회에 끼치는 폐해
진화론은 검증된 이론도 아니며, 하나의 정립된 이론으로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과학적 타당성을 가진 사실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은 마치 사실인 것처럼, 과학적인 것처럼 가르쳐지고 있다. 이것이 인간사회에 들어오자 실로 거의 모든 방면에 치명적인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다. 그것은 정치, 사회, 학문, 종교, 문화 등에 깊숙이 파고들어 심각한 폐해를 만들어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정말 진화론이 옳은 것이라면, 신이 존재하는 증거도 없고, 사후 생명도 없으며, 인간에게 절대적인 윤리적 토대도 있을 수 없고, 인간 삶의 궁극적인 의미도 없게 될 것이다.
1) 인간의 존엄성 훼손
무엇보다도 진화론은 인간의 고유의 존엄성을 심하게 훼손시킨다. 그들은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존엄성, 즉 하나님의 형상으로부터 온 것을 부인하기에, 그리고 저급한 생물에서 진화를 통해 생겨난 것이 인간이기에, 그들에게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근본적이고 확고부동한 의미를 가질 수가 없다. 그들에게는 생명은 어쩌면 단순히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기계와 같은 것이기에, 인간이나 인간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생각을 가질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2) 인종차별에 대한 정당화
진화론은 하류 인종, 상류 문명, 인종우생학 등의 개념을 만들어 인종차별을 만들어냈다. 결국 그러한 사상은 흑인들의 노예화를 정당화했고, 히틀러 같은 사람은 진화 사상을 근거로 게르만족의 번창을 위해 기생충처럼 여겨졌던 유대인을 600만 명이나 학살하기도 했다. 호주에 사는 많은 백인들은 원주민들은 원시 미개인이어서 백인의 기술과 생활방식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오랫동안 믿었으며, 유럽인들은 아프리카 흑인들이나 몽골인에 대해 인종차별적 개념을 오랫동안 갖고 있었다. 지금도 진화론을 진실로 신봉한다면 백인우월주의나 인종차별적인 사상이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깊은 내면에 깃들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3) 제국주의나 식민지주의의 정당화
사실상 근세 역사에서 유럽의 오랜 동안의 제국주의는 진화론을 국가적으로 장려했던 나라들을 중심으로 일어났었다. 일본 또한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진화론을 가르쳤던 나라였다. 진화 사상에 따라 스스로를 우수한 민족이라고 믿게 되었던 그들은 아직 산업화가 되지 않았던 약한 나라들을 침공하고 그들을 강제로 지배하고 수탈하고 학살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4) 공산주의와 파시즘의 출현
헤겔이 말하듯이, 자연선택이론을 도입한 정치이념은 소수의 엘리트에 의한 통치체제를 말하는 것으로, 그것은 소수의 선택 받은 사람들은 번성하고, 대부분의 선택 받지 못한 사람들은 비참한 삶을 사는 것을 당연시한다. 이러한 사상은 극우 쪽에서는 퍄쇼주의를, 극좌 쪽에서는 공산주의가 출현하도록 만들었다. 그 둘은 전체주의라는 점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마르크스는 다윈의 ”생존경쟁”(struggle for survival)이라는 용어에서 ”계급투쟁”(class struggle)이라는 이론을 도출해냈다. 다윈이 일종의 생물의 진화법칙을 발견했다면, 마르크스는 인류역사의 진화법칙을 발견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공산주의 이론은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말로 그들의 창조기원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5) 극심한 경쟁주의–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ist)과 생명 경시 풍조
진화론이 주장하는 ”적자생존” 사상은 다른 개체를 죽여서라도 살아남아야만 된다는 의식을 부채질한다. 생존경쟁은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을 쓰러뜨려야 된다는 당위성을 정당화시킨다. 그런 점에서 인간사회의 극심한 경쟁주의는 그 깊은 뿌리를 진화론에서 찾을 수 있다. 남을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풍조는 결국 그러한 사상에서 연유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생물을 그 ”종류대로” 다르게 창조하셨다는 창조론과는 반대의 개념이다. 또한 인간 존재를 기계나 조직의 한 부품 정도로 생각하는 사상은 인간의 존재와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를 가져왔다. 얼마든지 잘라낼 수 있으며, 쉽게 대체할 수 있다는 전제를 그 바닥에 깔고 있다. 생명 자체가 우연히 존재하게 되었기 때문에 인간에게서 어떤 영원한 가치나 의미를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6) 모든 학문 분야에 끼치는 해악
진화론은 사회학, 인류학, 심리학, 교육학, 경제학, 철학, 문학, 역사, 예술, 신학 등 모든 학문 분야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여기서는 기독교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신학 분야에 대해서는 잠시 생각해 본다면, 무엇보다도 진화론의 영향으로 20세기에 일어난 ”고등비평주의”(Higher Criticism)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고등비평주의자들은 성경 자체와 성경의 진리가 진화를 해왔다는 ”성경진화론”(Biblical Evolutionism)을 주장했다. 그들의 주장 중의 하나인 ”문서설”은 헤겔주의적 진화론에 기초한 것으로, 성경의 신뢰성을 크게 실추시켰다. 그러한 자유주의적 신학 사상은 결국 성경적 창조론을 부인하고, 진화론적이고 범신론적인 창조를 주장하게 되었다.
특히, 1912년 주장된 ”필트다운인 화석” 사건은 그것이 1962년에 가짜라는 것이 공식적으로 발표되기 전까지 50년 동안 현대신학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진화론이 과학적인 증거를 갖추었다고 굳게 믿게 되었던 많은 신학자들은 그들의 창세기와 구약의 해석을 다르게 전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진화론자인 샤르댕 신부는 ”원숭이가 진화하여 인간이 되었고, 인간이 진화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되었다”는 웃지 못할 주장까지 했다.
2. 진화론이 선교지에 끼치고 있는 해악과 상황
진화론이 모든 인간사회에 그렇게 큰 폐해를 끼쳐왔다면, 선교지에도 예외일 수가 없을 것이다. 선교지의 거의 모든 나라의 공교육에서 진화론은 그것이 마치 이미 증명되고 확정된 사실로 가르쳐지고 있다. 과학 분야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역사 분야에서도 진화론이 직접적으로 가르쳐지고 있다.
1) 진화론적 세계관 형성
선교지의 공교육 현장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릴 때부터 진화론 교육을 자연스럽게 받게 되어 아이들은 정체성이 형성되는 시기부터 진화론으로 무장하게 된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진화론 교육을 통해 하나님이 없는, 인본주의적인 진화론적 세계관을 갖게 된다. 대부분의 선교지 국가들의 생물, 지리 교과서에는 우리나라의 경우처럼 왜곡된 진화론이 마치 실험적으로 확인된 사실처럼 기술되고 있다. 그러한 진화론의 교육에 따라 인간은 목적 없이 우연히 태어난 존재이며, 그에게는 영원한 의미가 없으며, 절대적인 윤리도 있을 수 없다고 그들은 믿게 된다. 그들이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려서는 안 된다는 철학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는 것이다.
2) 창조론은 한 종교의 신앙적 가르침에 불과하다고 가르침
어릴 때부터 그러한 진화론적인 교육을 받아 온 사람들은 창조론에 대해서는 아주 편협된 결론을 갖게 된다. 창조론은 기독교라는 종교에서 가르치는 하나의 신앙일 뿐이며, 진화론만이 과학적으로 이미 증명된 사실이고 학문이라고 가르쳐지는 것이다. 그런데 진화론은 결과적으로 복음을 파괴한다. 진화론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권능을 거부하는 근거를 제공해 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공립학교에서 창조론을 가르치지 않는 이유는 현대과학이 모든 물질과 자연법칙만으로 설명하려는 자연주의적 과학을 다루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우주와 생명의 기원은 궁극적으로 창조와 진화 두 가지 이론밖에 있을 수 없는데, 창조주를 언급하는 것은 특정 존재나 종교를 다루는 것으로 간주하여 창조론을 강하게 거부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고 될 수도 없는 진화론만을 과학적인 사실인양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3) 교회 안에서의 세상과 상반된 가르침과 타협
학교에서 진화론이 옳은 이론인 것처럼 배운 학생들이 교회에 와서 창조론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성장해 갈수록 성경 진리에 대해 심하게 흔들리게 되면서, 창조론을 단지 신앙적인 것으로만 치부하고 문제를 삼지 않든지, 아니면 창조론은 단지 신앙적인 면에서만 인정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또 다른 경우에는 그 두 가지를 혼합하여 타협적인 이해를 갖게 된다. 아마도 유신진화론이 그들에게 그럴듯한 타협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진화론이 혹시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성경의 말씀은 거짓이 되기 때문에, 신자로서 진화론과 창조론을 동시에 믿을 수는 없는 것이다.
4) 성경적인 창조론이 교회에서조차 제대로 가르쳐지지 않음
선교지의 대부분의 학교에서나 교회에서조차 성경적인 창조론은 제대로 가르쳐지지 못하고 있다. 교사들도 그에 대해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어떤 경우에는 성경적인 창조론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조차 두려워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은 창조론이나 진화론은 모두 믿음과 신념을 기반으로 하는 지식과 사상의 체계라고 볼 수 있으며, 진화론을 과학의 이름으로 가르친다면, 이와 함께 무신론에 대한 신앙과 신념을 결국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에서조차 진화론을 묵인한다면, 그리고 올바른 창조론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기독교가 갖고 있는 성경과 창조주에 대한 신앙을 결과적으로 소홀히 하게 되고 바른 신앙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3. 선교지 상황에 따른 선교사의 사명과 역할
”창조, 설계, 진화”, 이 세 개의 단어는 어쩌면 모든 인간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것들이 신의 존재, 우주의 생성, 신과 우주의 관계, 인간의 기원과 정체성 등을 모두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인간과 우주를 창조하셨다고 주장하는 성경을 근간으로 하는 기독교에서는 성경의 말씀을 근거로 모든 것을 주장하고 모든 사상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독교는 인간이 그 성경을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에 따라 그의 영원한 운명이 갈리게 되어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결국 한 인간이 복음을 받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그들의 영원이 결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선교지의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런데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대게는 이미 그들이 어떤 종교를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리고 사회적, 종교적 분위기가 다른 종교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그들의 깊은 마음을 붙잡고 있는 진화론적 사상 때문일 수 있다. 자신을 포함한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어떤 절대자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 아니고 진화에 의해 우연히 주어진 것이라는 신념은 기독교의 창조 신앙을 허황되게 보이게 만들며, 미신적이라고 판단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선교사는 그러한 선교지 사람들에게 복음수용의 커다란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는 진화론적 사상의 거짓과 폐해를 가르쳐 줌으로, 복음전파를 위한 마음의 준비를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사실상 이러한 창조신앙의 강조는 선교지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절실히 요청되는 부분이다. 교회의 근세 역사에서 교회의 변질과 쇠퇴는 진화론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성장과 침체 역시 진화론 교육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교회에서 성경적인 가르침과 신앙이 약해지면 그 다음은 반드시 교회의 쇠퇴로 이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1) 선교사의 창조신앙 교육 – 장기적인 안목에서 지속적으로 체계적으로 가르쳐져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온 우주와 모든 동식물과 인간을 창조하셨고, 그래서 우주와 인간의 존재 의미가 바로 그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가르친다. 그에 따라 하나님의 형상, 인간의 영혼, 원죄, 인간의 죽음과 부활은 핵심적인 신학적 논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선교지의 진화론 교육의 보편화는 창조 신앙을 전하는 기독교의 복음에 가장 장애 중의 하나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선교사들은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선교지의 학생들과 사람들에게 창조신앙의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유치원이나 학교 사역, 신학교 사역, 일반인 교육을 통해 창조신앙을 계속적으로 보급함으로, 기독교가 전파되었을 때 그들에게 예상되는 장애를 미리 제거해 나가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2) 창조신앙 교육의 효과적인 사용 – 창조과학 집중 강의 등을 활용.
선교사들은 본국에서나 선교지에서 한국창조과학회와 연계하여 본인들이 그러한 교육을 받고 그러한 훈련이나 교육을 선교지 사람들에게도 제공할 수 있도록 다각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본인들의 훈련을 지나 현지인 교육을 한국창조과학회를 통해 유치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선교지 상황에 따라 방학 중이나 특별한 기간에 집중강의 등도 유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3) 현지 학교 교사와 주일학교 교사에 대한 교육의 기회 제공.
일차적으로 선교사들이 관여하고 있는 현지 교회의 주일학교와 어른들에게 특별한 기간이나 정규적인 시간을 확보하여 창조신앙을 보급함으로 학생들이나 그곳 사람들로 하여금 학교에서 배우거나 배웠던 진화론의 허구성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우며, 현지 학교들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함으로 좋은 강사를 다양한 다른 과목들과 연계하여 그 학교들에게 창조신앙 교육에 대한 기회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진화론의 과학적 허구성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창조신앙의 필요성이 강조될 수 있을 것이다.
4) 현지 학교에서의 과학 교실 운영.
대부분의 선교지는 과학기구나 과학교실이 현저하게 열악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상황을 잘 선용하여 기구나 교실 등을 제공하여줌으로, 창조신앙 교육의 기회를 얻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순수한 과학 실험이나 교실을 통해서 그들의 과학 교육에 공헌하면서, 다양한 합법적인 기회를 얻어 내어 창조과학 교육을 함께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김광, 창조, 맞습니다, 서울: 세창미디어, 2016.
김홍석, '청장년을 위한 창조과학 교육-창세기 고고학”, 제2회 선교사와 목회자를 위한 창조과학 세미 나, 한국창조과학회, 2013.
윤철민, 개혁신학 vs. 창조과학, 개혁신학으로 본 창조과학의 신학적 문제, 서울: CLC, 2013.
이재만, 창조주 하나님, 창세기1장 vs 진화론, 서울: 두란노, 2014.
임번삼, 창조과학 원론(상, 하) -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서-, 서울: 한국창조과학회, 2007.
한국창조국과학회, 이병수 편역, 정확무오한 성경, 서울: 세창미디어, 2012.
한국창조과학회, 30가지 테마로 본 창조과학, 서울: 생명의 말씀사, 2012.
한국창조과학회, 당신이 몰랐던 유신진화론, 서울: 세창미디어, 2016.
Ham, Ken & Paul Taylor, 한국창조과학회 역, 창세기에 답이 있다, 서울: 한국창조과학회, 2010.
Haasma, Deborah & Loren D. Haasma, 오리진-창조, 진화, 지적설계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들, 서울: IVP, 2012.
Metaxas, Eric, 'Learning from Young Atheists – What Turned Them off Christianity”, Christian Post, July 1, 2013.
Strobel, Lee, 홍종락 역, 창조 설계의 비밀, 서울: 두란노, 2010.
*필자는 남서울교회(홍정길목사 시무)에서 대학부 사역자로 사역하다가 1990년에 위클립성경번역선교사(GBT)로 파송되어 2006년까지 인도네시아, 이리얀 자야, 끄웨르바 부족을 위한 성경번역 사역을 했고, 그 후에 한동대, 통번역대학원, 응용언어학과 교수로 사역하다가 2011년부터 현지 선교사를 돕는 성경 스토리텔링 사역(SMI대표)과 한국세계선교협의회의(KWMA국제총무)에서 사역하고 있다.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M.Div. & Ph.D. 신약신학)와 미국 텍사스주립대학원(M.A. 언어학)과 미국 풀러신학대학원(Th.M.)에서 수학했다.
출처 - 제5회 선교사와 목회자를 위한 창조과학세미나 자료집 (2016. 10. 10)
진화론의 확산과 선교사의 사명
김연수 선교사(SMI/KWMA)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적 작가 중의 한 사람인 에릭 머택서스(Eric Metaxas)는 2013년 7월에 크리스챤 포스트(Christian Post)에 ”젊은 무신론자에게서 배워야 할 점 – 왜 그들은 기독교를 떠났는가?”라는 글을 기고했다. 그는 거기서 그의 교회를 떠난 수많은 젊은이에 대한 설문과 인터뷰를 통해 얻게 된 결과를 설명하고 있는데, 그들이 기독교를 떠난 이유가 첫째로는 교회가 ”복음”을 가르치는 것을 포기했기 때문이며, 둘째로는 사역자들이 ”열정”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론 그들이 기독교를 떠나게 된 데에는 다른 여러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미국 교회가 더 이상 복음을 가르치지 않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열정을 잃어버린 것이 그들이 교회를 떠난 가장 중요한 이유라는 사실을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런가 하면 2009년에 미국에서 발간된 ”이미 떠났다(Already Gone)”에서는 유명 조사기관인 ”미국 연구 그룹(America’s Research Group)”이 그 당시를 기준으로 최근에 교회를 떠난 1,000명의 이십대를 대상으로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내어놓았다. 교회를 떠난 사람들 가운데 39.8%는 중학교 때에, 43.7%은 고등학교 때에, 10.6%는 대학교 때에 성경에 있는 모든 기사와 이야기들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그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고 다양하고 복합적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에 대한 가장 중요한 이유가 성경에 대한 신뢰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우리들에게 심각한 면을 시사해 주고 있다.
결국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진리 문제, 성경의 신뢰성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가르치는 일을 소홀히 한다면, 그 교회의 미래는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교회에서 성경적인 창조신앙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거나, 세상에서 마치 진리인양 버젓이 가르쳐지고 있는, 그리고 일부 교회 안에서까지 진화론을 인정하면서 성경을 해석하려는 유신진화론을 교묘하게 신앙과 함께 섞어서 가르치는 것은, 그것 자체가 기독교 존립에 가장 위협적인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창조론과 진화론이 타협점이 없는 완전히 상반된 이론임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사실 진화론의 등장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사상 중의 하나는 18, 19세기 유럽을 지배했던 ”자연주의”라고 볼 수 있다. 자연주의라는 것은 한 마디로, ”보이는 모든 것을 보이는 것만으로 설명하자는 사상”이며, 진화론이야말로 그 자연주의 사상의 최고의 걸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설명할 때에도, 성경이 말하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설명하기보다는 외형이 인간을 가장 많이 닮은 ”원숭이의 형상”에서 왔다고 말하는 것이 훨씬 쉽고 편하게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화론자들은 모든 것이 물질로부터 출발했다는 자연주의적 믿음만이 과학적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들은 결국 물질이 모든 것의 시작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점에서 진화론은 과학적 이론이면서, 동시에 신앙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세상의 과학자들이 진화론을 인정하는 것은 진화론이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타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창조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인 것이다.
1. 진화론이 인간사회에 끼치는 폐해
진화론은 검증된 이론도 아니며, 하나의 정립된 이론으로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과학적 타당성을 가진 사실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은 마치 사실인 것처럼, 과학적인 것처럼 가르쳐지고 있다. 이것이 인간사회에 들어오자 실로 거의 모든 방면에 치명적인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다. 그것은 정치, 사회, 학문, 종교, 문화 등에 깊숙이 파고들어 심각한 폐해를 만들어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정말 진화론이 옳은 것이라면, 신이 존재하는 증거도 없고, 사후 생명도 없으며, 인간에게 절대적인 윤리적 토대도 있을 수 없고, 인간 삶의 궁극적인 의미도 없게 될 것이다.
1) 인간의 존엄성 훼손
무엇보다도 진화론은 인간의 고유의 존엄성을 심하게 훼손시킨다. 그들은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존엄성, 즉 하나님의 형상으로부터 온 것을 부인하기에, 그리고 저급한 생물에서 진화를 통해 생겨난 것이 인간이기에, 그들에게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근본적이고 확고부동한 의미를 가질 수가 없다. 그들에게는 생명은 어쩌면 단순히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기계와 같은 것이기에, 인간이나 인간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생각을 가질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2) 인종차별에 대한 정당화
진화론은 하류 인종, 상류 문명, 인종우생학 등의 개념을 만들어 인종차별을 만들어냈다. 결국 그러한 사상은 흑인들의 노예화를 정당화했고, 히틀러 같은 사람은 진화 사상을 근거로 게르만족의 번창을 위해 기생충처럼 여겨졌던 유대인을 600만 명이나 학살하기도 했다. 호주에 사는 많은 백인들은 원주민들은 원시 미개인이어서 백인의 기술과 생활방식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오랫동안 믿었으며, 유럽인들은 아프리카 흑인들이나 몽골인에 대해 인종차별적 개념을 오랫동안 갖고 있었다. 지금도 진화론을 진실로 신봉한다면 백인우월주의나 인종차별적인 사상이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깊은 내면에 깃들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3) 제국주의나 식민지주의의 정당화
사실상 근세 역사에서 유럽의 오랜 동안의 제국주의는 진화론을 국가적으로 장려했던 나라들을 중심으로 일어났었다. 일본 또한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진화론을 가르쳤던 나라였다. 진화 사상에 따라 스스로를 우수한 민족이라고 믿게 되었던 그들은 아직 산업화가 되지 않았던 약한 나라들을 침공하고 그들을 강제로 지배하고 수탈하고 학살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4) 공산주의와 파시즘의 출현
헤겔이 말하듯이, 자연선택이론을 도입한 정치이념은 소수의 엘리트에 의한 통치체제를 말하는 것으로, 그것은 소수의 선택 받은 사람들은 번성하고, 대부분의 선택 받지 못한 사람들은 비참한 삶을 사는 것을 당연시한다. 이러한 사상은 극우 쪽에서는 퍄쇼주의를, 극좌 쪽에서는 공산주의가 출현하도록 만들었다. 그 둘은 전체주의라는 점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마르크스는 다윈의 ”생존경쟁”(struggle for survival)이라는 용어에서 ”계급투쟁”(class struggle)이라는 이론을 도출해냈다. 다윈이 일종의 생물의 진화법칙을 발견했다면, 마르크스는 인류역사의 진화법칙을 발견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공산주의 이론은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말로 그들의 창조기원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5) 극심한 경쟁주의–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ist)과 생명 경시 풍조
진화론이 주장하는 ”적자생존” 사상은 다른 개체를 죽여서라도 살아남아야만 된다는 의식을 부채질한다. 생존경쟁은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을 쓰러뜨려야 된다는 당위성을 정당화시킨다. 그런 점에서 인간사회의 극심한 경쟁주의는 그 깊은 뿌리를 진화론에서 찾을 수 있다. 남을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풍조는 결국 그러한 사상에서 연유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생물을 그 ”종류대로” 다르게 창조하셨다는 창조론과는 반대의 개념이다. 또한 인간 존재를 기계나 조직의 한 부품 정도로 생각하는 사상은 인간의 존재와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를 가져왔다. 얼마든지 잘라낼 수 있으며, 쉽게 대체할 수 있다는 전제를 그 바닥에 깔고 있다. 생명 자체가 우연히 존재하게 되었기 때문에 인간에게서 어떤 영원한 가치나 의미를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6) 모든 학문 분야에 끼치는 해악
진화론은 사회학, 인류학, 심리학, 교육학, 경제학, 철학, 문학, 역사, 예술, 신학 등 모든 학문 분야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여기서는 기독교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신학 분야에 대해서는 잠시 생각해 본다면, 무엇보다도 진화론의 영향으로 20세기에 일어난 ”고등비평주의”(Higher Criticism)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고등비평주의자들은 성경 자체와 성경의 진리가 진화를 해왔다는 ”성경진화론”(Biblical Evolutionism)을 주장했다. 그들의 주장 중의 하나인 ”문서설”은 헤겔주의적 진화론에 기초한 것으로, 성경의 신뢰성을 크게 실추시켰다. 그러한 자유주의적 신학 사상은 결국 성경적 창조론을 부인하고, 진화론적이고 범신론적인 창조를 주장하게 되었다.
특히, 1912년 주장된 ”필트다운인 화석” 사건은 그것이 1962년에 가짜라는 것이 공식적으로 발표되기 전까지 50년 동안 현대신학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진화론이 과학적인 증거를 갖추었다고 굳게 믿게 되었던 많은 신학자들은 그들의 창세기와 구약의 해석을 다르게 전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진화론자인 샤르댕 신부는 ”원숭이가 진화하여 인간이 되었고, 인간이 진화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되었다”는 웃지 못할 주장까지 했다.
2. 진화론이 선교지에 끼치고 있는 해악과 상황
진화론이 모든 인간사회에 그렇게 큰 폐해를 끼쳐왔다면, 선교지에도 예외일 수가 없을 것이다. 선교지의 거의 모든 나라의 공교육에서 진화론은 그것이 마치 이미 증명되고 확정된 사실로 가르쳐지고 있다. 과학 분야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역사 분야에서도 진화론이 직접적으로 가르쳐지고 있다.
1) 진화론적 세계관 형성
선교지의 공교육 현장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릴 때부터 진화론 교육을 자연스럽게 받게 되어 아이들은 정체성이 형성되는 시기부터 진화론으로 무장하게 된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진화론 교육을 통해 하나님이 없는, 인본주의적인 진화론적 세계관을 갖게 된다. 대부분의 선교지 국가들의 생물, 지리 교과서에는 우리나라의 경우처럼 왜곡된 진화론이 마치 실험적으로 확인된 사실처럼 기술되고 있다. 그러한 진화론의 교육에 따라 인간은 목적 없이 우연히 태어난 존재이며, 그에게는 영원한 의미가 없으며, 절대적인 윤리도 있을 수 없다고 그들은 믿게 된다. 그들이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려서는 안 된다는 철학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는 것이다.
2) 창조론은 한 종교의 신앙적 가르침에 불과하다고 가르침
어릴 때부터 그러한 진화론적인 교육을 받아 온 사람들은 창조론에 대해서는 아주 편협된 결론을 갖게 된다. 창조론은 기독교라는 종교에서 가르치는 하나의 신앙일 뿐이며, 진화론만이 과학적으로 이미 증명된 사실이고 학문이라고 가르쳐지는 것이다. 그런데 진화론은 결과적으로 복음을 파괴한다. 진화론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권능을 거부하는 근거를 제공해 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공립학교에서 창조론을 가르치지 않는 이유는 현대과학이 모든 물질과 자연법칙만으로 설명하려는 자연주의적 과학을 다루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우주와 생명의 기원은 궁극적으로 창조와 진화 두 가지 이론밖에 있을 수 없는데, 창조주를 언급하는 것은 특정 존재나 종교를 다루는 것으로 간주하여 창조론을 강하게 거부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고 될 수도 없는 진화론만을 과학적인 사실인양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3) 교회 안에서의 세상과 상반된 가르침과 타협
학교에서 진화론이 옳은 이론인 것처럼 배운 학생들이 교회에 와서 창조론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성장해 갈수록 성경 진리에 대해 심하게 흔들리게 되면서, 창조론을 단지 신앙적인 것으로만 치부하고 문제를 삼지 않든지, 아니면 창조론은 단지 신앙적인 면에서만 인정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또 다른 경우에는 그 두 가지를 혼합하여 타협적인 이해를 갖게 된다. 아마도 유신진화론이 그들에게 그럴듯한 타협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진화론이 혹시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성경의 말씀은 거짓이 되기 때문에, 신자로서 진화론과 창조론을 동시에 믿을 수는 없는 것이다.
4) 성경적인 창조론이 교회에서조차 제대로 가르쳐지지 않음
선교지의 대부분의 학교에서나 교회에서조차 성경적인 창조론은 제대로 가르쳐지지 못하고 있다. 교사들도 그에 대해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어떤 경우에는 성경적인 창조론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조차 두려워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은 창조론이나 진화론은 모두 믿음과 신념을 기반으로 하는 지식과 사상의 체계라고 볼 수 있으며, 진화론을 과학의 이름으로 가르친다면, 이와 함께 무신론에 대한 신앙과 신념을 결국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에서조차 진화론을 묵인한다면, 그리고 올바른 창조론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기독교가 갖고 있는 성경과 창조주에 대한 신앙을 결과적으로 소홀히 하게 되고 바른 신앙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3. 선교지 상황에 따른 선교사의 사명과 역할
”창조, 설계, 진화”, 이 세 개의 단어는 어쩌면 모든 인간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것들이 신의 존재, 우주의 생성, 신과 우주의 관계, 인간의 기원과 정체성 등을 모두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인간과 우주를 창조하셨다고 주장하는 성경을 근간으로 하는 기독교에서는 성경의 말씀을 근거로 모든 것을 주장하고 모든 사상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독교는 인간이 그 성경을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에 따라 그의 영원한 운명이 갈리게 되어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결국 한 인간이 복음을 받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그들의 영원이 결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선교지의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런데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대게는 이미 그들이 어떤 종교를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리고 사회적, 종교적 분위기가 다른 종교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그들의 깊은 마음을 붙잡고 있는 진화론적 사상 때문일 수 있다. 자신을 포함한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어떤 절대자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 아니고 진화에 의해 우연히 주어진 것이라는 신념은 기독교의 창조 신앙을 허황되게 보이게 만들며, 미신적이라고 판단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선교사는 그러한 선교지 사람들에게 복음수용의 커다란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는 진화론적 사상의 거짓과 폐해를 가르쳐 줌으로, 복음전파를 위한 마음의 준비를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사실상 이러한 창조신앙의 강조는 선교지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절실히 요청되는 부분이다. 교회의 근세 역사에서 교회의 변질과 쇠퇴는 진화론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성장과 침체 역시 진화론 교육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교회에서 성경적인 가르침과 신앙이 약해지면 그 다음은 반드시 교회의 쇠퇴로 이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1) 선교사의 창조신앙 교육 – 장기적인 안목에서 지속적으로 체계적으로 가르쳐져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온 우주와 모든 동식물과 인간을 창조하셨고, 그래서 우주와 인간의 존재 의미가 바로 그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가르친다. 그에 따라 하나님의 형상, 인간의 영혼, 원죄, 인간의 죽음과 부활은 핵심적인 신학적 논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선교지의 진화론 교육의 보편화는 창조 신앙을 전하는 기독교의 복음에 가장 장애 중의 하나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선교사들은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선교지의 학생들과 사람들에게 창조신앙의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유치원이나 학교 사역, 신학교 사역, 일반인 교육을 통해 창조신앙을 계속적으로 보급함으로, 기독교가 전파되었을 때 그들에게 예상되는 장애를 미리 제거해 나가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2) 창조신앙 교육의 효과적인 사용 – 창조과학 집중 강의 등을 활용.
선교사들은 본국에서나 선교지에서 한국창조과학회와 연계하여 본인들이 그러한 교육을 받고 그러한 훈련이나 교육을 선교지 사람들에게도 제공할 수 있도록 다각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본인들의 훈련을 지나 현지인 교육을 한국창조과학회를 통해 유치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선교지 상황에 따라 방학 중이나 특별한 기간에 집중강의 등도 유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3) 현지 학교 교사와 주일학교 교사에 대한 교육의 기회 제공.
일차적으로 선교사들이 관여하고 있는 현지 교회의 주일학교와 어른들에게 특별한 기간이나 정규적인 시간을 확보하여 창조신앙을 보급함으로 학생들이나 그곳 사람들로 하여금 학교에서 배우거나 배웠던 진화론의 허구성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우며, 현지 학교들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함으로 좋은 강사를 다양한 다른 과목들과 연계하여 그 학교들에게 창조신앙 교육에 대한 기회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진화론의 과학적 허구성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창조신앙의 필요성이 강조될 수 있을 것이다.
4) 현지 학교에서의 과학 교실 운영.
대부분의 선교지는 과학기구나 과학교실이 현저하게 열악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상황을 잘 선용하여 기구나 교실 등을 제공하여줌으로, 창조신앙 교육의 기회를 얻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순수한 과학 실험이나 교실을 통해서 그들의 과학 교육에 공헌하면서, 다양한 합법적인 기회를 얻어 내어 창조과학 교육을 함께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김광, 창조, 맞습니다, 서울: 세창미디어, 2016.
김홍석, '청장년을 위한 창조과학 교육-창세기 고고학”, 제2회 선교사와 목회자를 위한 창조과학 세미 나, 한국창조과학회, 2013.
윤철민, 개혁신학 vs. 창조과학, 개혁신학으로 본 창조과학의 신학적 문제, 서울: CLC, 2013.
이재만, 창조주 하나님, 창세기1장 vs 진화론, 서울: 두란노, 2014.
임번삼, 창조과학 원론(상, 하) -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서-, 서울: 한국창조과학회, 2007.
한국창조국과학회, 이병수 편역, 정확무오한 성경, 서울: 세창미디어, 2012.
한국창조과학회, 30가지 테마로 본 창조과학, 서울: 생명의 말씀사, 2012.
한국창조과학회, 당신이 몰랐던 유신진화론, 서울: 세창미디어, 2016.
Ham, Ken & Paul Taylor, 한국창조과학회 역, 창세기에 답이 있다, 서울: 한국창조과학회, 2010.
Haasma, Deborah & Loren D. Haasma, 오리진-창조, 진화, 지적설계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들, 서울: IVP, 2012.
Metaxas, Eric, 'Learning from Young Atheists – What Turned Them off Christianity”, Christian Post, July 1, 2013.
Strobel, Lee, 홍종락 역, 창조 설계의 비밀, 서울: 두란노, 2010.
*필자는 남서울교회(홍정길목사 시무)에서 대학부 사역자로 사역하다가 1990년에 위클립성경번역선교사(GBT)로 파송되어 2006년까지 인도네시아, 이리얀 자야, 끄웨르바 부족을 위한 성경번역 사역을 했고, 그 후에 한동대, 통번역대학원, 응용언어학과 교수로 사역하다가 2011년부터 현지 선교사를 돕는 성경 스토리텔링 사역(SMI대표)과 한국세계선교협의회의(KWMA국제총무)에서 사역하고 있다.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M.Div. & Ph.D. 신약신학)와 미국 텍사스주립대학원(M.A. 언어학)과 미국 풀러신학대학원(Th.M.)에서 수학했다.
출처 - 제5회 선교사와 목회자를 위한 창조과학세미나 자료집 (2016. 10.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