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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창조신앙

창조신앙으로 지혜롭게 살아가기!

미디어위원회
2021-11-29

창조신앙으로 지혜롭게 살아가기!


이은일 장로(성북공동체,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창조신앙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지식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를 지혜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창조를 알면 세상이 어떻게 시작했고, 어디로 가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창세기는 하나님의 완벽한 창조가 인간의 범죄로 훼손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시며 구원하시는 놀라운 은혜를 기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죄악에 대해 놀라지 않고, 그렇다고 실망하고 포기하지도 않는다. 이미 궁극적인 승리가 약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처음과 끝을 알고 있으니 중간 과정도 잘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드라마 애청자가 드라마 장면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는 것과 비슷하다. 드라마의 맥락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같은 장면을 보면서 왜 사람들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드라마의 맥락을 알고 있어야 중간에 전개되는 스토리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창조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드라마 애청자와 같이 인류 역사의 맥락을 알고, 지금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창조신앙의 지혜와 하나님의 성품 

그런데 인류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어쩌면 쉬운 일인지도 모른다. 드라마와 같은 역사가 나에게 펼쳐질 때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요셉이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 갔을 때 그런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창조신앙의 지혜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주인 되심과 선하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요셉은 노예가 되었을 때도 하나님 앞에서 충성된 사람으로 살았고, 이집트의 총리가 되지 못하고 그렇게 일생을 마쳤을지라도 결코 후회스러운 인생을 살지 않았을 것이다. 바울의 표현처럼, 그릇이 그릇을 만든 토기장이에게 항의할 수 없듯이 모든 상황에서 그분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는 것이 지혜이다. 물론 요셉도 자신의 어려움을 벗어나기 위해 기도하고, 바로의 신하들에게 탄원한 것처럼 우리도 어려운 상황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분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그러나 그분의 결정이 나의 뜻과 다르다고, 내가 원하는 때에 바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불평할 수 없다. 그분은 창조주이실 뿐 아니라 우리를 향한 그분의 선한 뜻은 반드시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분의 선한 뜻은 누구도 예외 없이 자신만이 가진 특별한 창조목적과 존재 이유를 알게 하시고, 그 뜻이 이뤄지도록 훈련시키고 전진하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주권자로 인정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에서 인내하고 기다리는 것뿐 아니라 어떤 행동을 해야 할 때도 반드시 필요하다. 모세의 예를 생각해보자. 

  모세는 바로의 궁전에서 왕자로서 누리고 있는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노예로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고난을 받겠다는 놀라운 신앙의 결단을 하였다. 그런데 그 결단 이후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던 이집트 사람을 죽이고 도망자 신세가 되고 만다. 모세의 결단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고 존경받을 만 했지만, 믿음의 결단 이후 모세의 행동은 급했고 잔인했다. 

  창조신앙의 지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다운 성품을 이루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다고 해도 우리의 힘을 사용해서 그 뜻을 이루려고 하는 것은 매우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동해야 할 때라고 믿는다면 이런 행동을 통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볼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온유함과 겸손함, 공의로움과 거룩함, 거짓 없는 깨끗함과 오래 참음, 무엇보다 사랑의 능력이 나의 행동을 통해 나타나는가?”


창조신앙의 지혜와 교회 공동체

창조신앙이 우리를 지혜롭게 하는 이유는 이세상의 모든 질서를 하나님께서 만드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코페르니쿠스가 천년 이상 정설로 받아들여졌던 천동설을 부정하고, 지동설을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태양계를 질서정연하게 만드셨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코페르니쿠스를 비롯해서 인류역사에 크게 기여한 많은 과학자들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믿었고, 그로 인해 과학의 큰 진보를 이루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없이 세상을 설명하려는 진화론이 교육과 학문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없이 지식의 탑을 쌓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세상이 얼마나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진화론은 하나님 대신 기원을 설명하려는 인간적인 노력일 뿐이며, 증명되지 않은 이론을 과학이라고 포장할 뿐이다. 과학적 발견들을 하나님의 설계로 설명하면 단순명료하게 해석될 수 있는데, 진화론자들은 수많은 논문을 써서 복잡하게 해석하려고 노력하면서 혼란만 가중할 뿐이다. 최근 유전자 정보에 대한 연구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 복잡하고 절묘한 설계들은 진화론적 해석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처럼 진화론은 자연과학의 영역에서 그 입지가 좁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자연과학의 범주를 벗어나 인문학에서도 주된 이론이 되어버렸다. 인간의 죄악과 다양한 행동들을 진화론으로 설명하려는 노력은 결국 인간의 죄를 정당화시키고, 사람을 물질과 동물의 수준으로 추락시키고 있다. 인간의 존재이유는 쾌락일 뿐이라며 인간의 성적인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결혼과 상관없이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것이라고 학교에서 교육을 받는다. 또한 성관계는 남자와 여자 사이가 아니어도 가능하며, 남자와 여자라는 기준 자체가 편협한 것이고, 스스로 자신의 성을 결정할 수 있다고 교육하고 있다. 창조신앙의지혜는 이러한 혼란스러움 속에서 더욱 돋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창조신앙의 지혜를 세상에 잘 전달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지켜야한다고 말하면 이해하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할 것이다. 그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논리적이고 따뜻한 스토리를 만들어야한다.

  창조신앙의 지혜는 창조신앙에 바탕을 둔 지식과 지혜를 세상에 나눠주는 것이다. 가정을 이루었을 때 얼마나 행복한지, 자녀를 갖게 되면 얼마나 기쁘고 복된 것인지 말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줘야 한다. 사회와 국가가 이런 일을 더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제도와 문화를 바꾸는 일에도 교회가 앞장서야 한다. 환경오염을 막고 창조질서를 복원하는 행동에도 세상의 논리가 아닌 기독교적 논리를 가지고 적극 참여해야 한다.

  창조신앙의 지혜는 교회 공동체를 통해 드러나야 한다. 몇 년 전 유행했던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책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최우선으로 하는 자유주의와 집단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공리주의와의 논쟁을 머리 아프게 다루었다. ‘ 개인의 자유’ 와 ‘ 사회의 공익’ 모두 매우 중요한 것이며, 어느 하나를 일방적으로 희생시킬 수 없는 것이 자명하다. 그런데 이 두 가지 귀중한 가치가 충돌할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이 책이 다루고 있다. 예를 들어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미국 대법원의 판결을 분석한다. 합헌 결정을 내린 근거는 개인의 자유와 선택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렇다면 왜 국가가 결혼에 대하여 관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결혼이 개인의 선택 문제라면 국가가 결혼제도를 관리하지 말고,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맡겨야 하는 것이 논리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국가가 결혼을 관리하는 것은 가정이 건강해야 국가사회가 건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동성 결혼 합헌 결정은 건강한 가정을 지키려고 하는 국가사회의 노력과는 상반된 가치를 지지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자유와 공익의 가치가 충돌할 때 어떤 해결 방법이 있을까? 저자는 그 해결책으로 ‘공동체’ 를 제안하였다. 공적인 이익에 의해 개인의 자유를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자유의지로 희생을 선택해서 집단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공동체를 제안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공동체가 세상에 있는가? 바로 교회 공동체만이 세상의 해결책이라는 것을 저자 자기도 모르게 결론내리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교회 공동체를 지금 이 시대에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교회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이 모여 있지만 진정 자신의 희생을 통해 모든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사례들이 얼마나 있는지 안타깝다.

  예수님께서 그 희생을 십자가에서 보여주셨다. 우리가 진정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라면 세상이 바라는 공동체의 모델이라고 교회를 소개할 수 있을 것이다. 진리 안에서 진정 자유롭고, 헌신과 희생을 통해 모든 사람을 복되게 하는 것이 교회와 그리스도인이라고.


출처 : 온누리신문(202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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