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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창조신앙

과학자의 신학 탐구, 신학자의 과학 탐구 : 요하네스 케플러와 조나단 에드워즈의 학문과 신앙

과학자의 신학 탐구, 신학자의 과학 탐구 

: 요하네스 케플러와 조나단 에드워즈의 학문과 신앙 

(Scientist's Theological Quest, Theologian's Scientific Quest)

박형진 


요약 : 진정한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학문의 세계를 분리하지 않고 통합적으로 이해하려고 시도한다. 지난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 기독교인 과학자로서 신학적 탐구를 추구한 이도 있고 신학자로서 과학적 탐구를 시도한 이도 있다. 17세기의 천문학자인 요하네스 케플러와 18세기의 신학자였던 조나단 에드워즈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과학자의 신학탐구와 신학자의 과학탐구는 서로의 영역을 침범한 다기보단 학제간 연구를 통해 시각과 문맥을 넓히고 상호교감을 통해 오히려 성경의 해석과 이해에 큰 빛을 던져주었다. 이로 인해 복음의 이해를 더욱 선명하게 고양시키고, 그 영역을 확장시키며, 그 의미를 풍성하게 해준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창조과학활동은 충분한 선교적 의미를 지닌다.

Abstract : Authentic Christian faith demands integration between the Word of God and academic disciplines. Christian history has demonstrated such attempts among scientists' quests for theological truth as well as theologians' quests for scientific truth. Johannes Kepler, the seventeenth-century astronomer, and Jonathan Edwards, the eighteenth-century theologian are such cases. Interplay between science and theology actually brought hermeneutic contributions to the understanding of the Bible with perspectives and contexts expanded and through border-crossing experiences. Thus, the understanding and implications of the Gospel have been enhanced, enlarged, and enriched. In this sense, creation science exerted its missional task.


1. 들어가면서

  한국창조과학회가 창립 30주년을 맞이함에 진심어린 축하와 아울러 학술발표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됨에 먼저 감사를 드린다. 그 30년의 시간은 필자에게도 개인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30년 전 창립이 되던 해 나는 대학에 입학을 하였다. 입시준비로 각박한 고등학교 시절 각별한 의미를 주던 시간이 있었으니 바로 화학시간이었다. 당시 화학 선생님 가운데 한분은 창세기의 창조기사가 자연과학적 사실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역설하고 여러 예를 들어 설명하였다. 교회강단에서 조차 들어보지 못한 내용을 기독교학교도 아닌 학교교실에서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중학교 때부터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고 특히 물리학을 통해 자연과학에 매료된 나에겐 그 시간이 특별한 시간으로 다가왔다. 지나고 보니 당시 선생님은 한국 내에 창조과학이 태동하기도 전에 창조과학을 수업시간에 몸소 주장하던 분이었었다. 자연과학 전반에 걸쳐 관심을 갖고 열심을 내던 나는 과학도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평생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아름다움과 질서를 탐구하는 삶만으로도 충분한 가치와 보람이 있다고 생각하여 그 뜻을 좇아 이학계열로 진학하였다. 당시 캠퍼스에서 열띤 논쟁과 토론으로 등장하던 ‘창조냐 진화냐’라는 세미나가 있을 때마다 거의 빠짐없이 쫓아다녔다. 바로 그해 나의 대학생활은 창조과학회의 태동과 함께 맞물려 간 것이다. 

  그러나 대학 생활 중 나에게는 또 한 번의 지적인 전환이 있었다. 그것은 성경을 접하면서였다. 교회생활을 10여년 가까이 하였고 수많은 설교도 들었지만 정작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군 생활을 하는 기간 성경을 통독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 결심대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읽다보니 이전과는 다른 성경의 깊이와 묘미에 빠져들게 된 것이다. 장엄히 펼쳐지는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전개됨이 보이면서 자연스레 나의 관심은 신학적이며 역사적인 탐구에 빠져든 것이다. 이제 창조의 공간에서 뿐 아니라, 구속의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찾고 싶은 관심과 함께 나의 진로에도 점진적인 변화가 뒤따르게 되었다. 긴 여정의 과정을 거두절미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이제는 선교역사가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하잘것 없는 개인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나의 신앙은 과학과 신학의 길목에 서있었다. 걸어야 할 길은 한길 밖에는 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 갈래길 중 어느 길을 걸었던 결국은 하나님께로 향한 길이었음을 돌아보며 고백한다.

  이번 논고의 제목을 '과학자의 신학탐구, 신학자의 과학탐구'라고 잡아본 것은 개인적인 편력에서만 아니라, 지나온 2000년의 기독교역사를 공부하면서 신앙의 선현들 가운데도 학문과 신앙의 통합적 시도로 과학과 신학간의 인터플레이(interplay)를 한 이들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과연 이러한 상호 교차적 학문행위가 가져다 준 결과는 어떠하였는가라는 질문을 해 볼 수 있다.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열정이 자연과학과 기독교의 지적 유산에 풍성한 결과를 가져다 준 예가 있을까? 그리하여 이번 논고에서 필자는 이러한 기독교의 풍요로운 지적 유산을 남긴 이들을 생각해 보고 그 가운데 두 사람을 뽑아보았다. 한사람은 16세기 독일출신의 수학자요 천문학자로서 근대 천문학 발전에 탁월한 기여를 한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 또 다른 한사람은 18세기 신대륙 뉴잉글랜드의 목사요 선교사요 신학자요 독창적인 사상가였던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이다. 전자는 목회자가 되고자 했으나 천문학자로 생을 살다 마감하였고, 다른 한 이는 목회자의 길을 걸었으나 자연철학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가진 학자였었다.

  이 논문에서는 이 두 영역간의 학문행위가 성경과 복음의 이해에 어떻게 기여하였는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케플러나 에드워즈 모두 다윈의 진화론이 나오기 이전 시대에 있었으므로 그들의 논의는 오늘날과 같은 ‘창조론 대 진화론’적인 특정한 대결의 구도에서 다루어지고 있진 않다. 한 가지 공통적인 것은 두 사람 모두 개신교적 전통에서 성경의 권위를 믿고 있었으며 과학적 사실이 더 엄밀히 밝혀지면 밝혀질수록 성경적 창조를 더욱 잘 증거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이 그들의 학문행위에 박차를 가한 원동력이 되었다. 그 결과 근대과학의 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가져온 발견들을 가져왔고, 그러한 발견은 거꾸로 성경적 사실을 더욱 확실하게 해석해주는 효과를 가져다 준 것이다. 

  모든 진리가 하나님의 진리인 이상 신앙과 학문이 분리될 수 없고, 마찬가지로 과학적 진리나 신학적 진리나 모두 한 진리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학제간 연구는 혼동이나 해악보단 유익을 가져다주어야 할 것이다. 창조과학활동이 선교학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필자는 창조과학이 성경말씀과 복음에 대한 이해에 중요한 유익을 가져다주었다고 보고 논점을 전개해 나가고자 한다.

 

2. 요하네스 케플러의 학문과 신앙

  2.1. 케플러의 배경

  요하네스 케플러는 1571년 독일 바일(Weil) 태생이었고, 그에 관한 전기적인 기록들을 보면 그의 출생배경은 결코 여유롭지 못한 출신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아버지는 용병으로 집을 떠나 일하고 있었으며, 케플러의 어머니는 한때 전쟁 중에 싸우던 남편과 함께 지내려고 자녀를 내버려두기까지 하여 정서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가정의 환경 속에서 자라나질 못하였다. 다행이도 철저한 개신교 신앙을 가졌던 할아버지가 누구보다 그에게 신앙적 영향을 끼쳤으리라 본다. 어린 케플러의 기억 속에 그의 삶을 이끈 몇 가지 일들이 있었으니 그의 부친과 모친에 의해서 어린나이에 볼 수 있었던 혜성과 월식 등은 그로 하여금 결국 천문학의 길로 접어들게 한 우주에 대한 신비와 관심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그는 더구나 조산아로 태어남으로 건강한 체질이 아니었으나 머리는 명석하였고 특히 수학에 있어 뛰어난 재능을 나타내었다. 

  그는 목회자로의 길을 생각하고 개신교학교에서 수학했고, 후에 튜빙겐대학에 들어가 석사과정에서 철학을 공부하였다. 튜빙겐 시절 그는 미카엘 마에스트린(Michael Maestlin)으로부터 수업과목의 일환으로 천문학 수업을 받게 되는데 특히 코페르니쿠스(Copernicus)의 이론을 접하면서 그 월등함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다. 그때까지 케플러는 목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뜻밖에도 졸업을 앞두고 오스트리아 그라츠(Graz)의 루터교학교의 수학교사로 취업을 하게 된다. 사실 그는 이 직위를 꺼림칙한 마음으로 받아들였으나 그것은 그의 타고난 재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준 천혜의 길목이었다. 그는 곧이어 《우주구조의 신비》(Mysterium Cosmographicum, 1596)라는 천문학연구를 첫 출간하게 되는데 이것은 당시 위대한 두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Tycho Brahe)와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의 관심을 끌어 결국 그들과 친분과 교류를 맺게 하는 물꼬를 터주게 해주었다. 케플러는 티코 브라헤의 청에 의해 프라하(Prague)에 있던 관측소에서 그의 조수로 일을 돕게 되고 곧 이어 죽게 된 브라헤의 뒤를 이어 제국의 궁중 수학자가 되었다.

 

  2.2. 케플러의 신학적 탐구

  케플러는 무엇보다 그가 확신하고 있었던 코페르니쿠스의 입장을 성서와 조화시키려는 작업을 시도하였다. 그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와 우주를 지배하는 질서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우주구조의 신비》에서 케플러는 당시에 지구를 포함해서 6개로 알려진 행성들(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과 플라톤의 5개 정다면체(정팔면체, 정이십면체, 정십이면체, 정사면체, 정육면체)사이에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고 가정하였다. 이들 행성이 나열된 우주의 모습은 마치 이들 다면체들을 다른 다면체 안에 들어가게 할 때 각각의 다면체를 감싸는 구형의 천구의 배열과 상응한다고 보고 거기서 행성간의 거리를 측정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적 가정과 실제적인 천문 관측 데이터들이 맞아 떨어지지 않음을 발견하고 이러한 가정을 포기하게 된다. 

  우주와 기하학적 구조사이의 유추를 통해 우주의 신비를 캐어 보려는 케플러의 사변적인 발상은 우주가 기하학적 조화와 질서를 가지고 있다고 본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본다. 케플러는 우주의 구조에 신의 이미지가 반영되어 있다고 보았고 영적인 구조와 물질적 구조사이에도 무슨 상관관계가 있으리라 믿었던 것이다. 특히 행성운동의 중심에 자리 잡는 태양은 태양계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의 원천이라고 생각했다. 이토록 태양을 중심적으로 사고한 데는 적어도 신플라톤주의적 영향 때문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 수학과 천문학의 시행착오 과정에서 케플러는 뜻하지 않은 발견을 하게 되니 곧, 행성들의 공전은 태양을 한 초점으로 도는 타원계도임을 발견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케플러 제1법칙이 된다.

  케플러의 또 하나의 걸작인 《우주의 조화》(Harmonices Mundi,1619)는 위에 언급된 여섯 행성의 운동을 중심으로 천상계의 조화를 음악으로 묘사하려는 시도였다. 그는 태양계의 운동을 네 가지 목소리 (soprano, contralto, tenor, bass)로 나타낼 수 있다고 보고 그 움직임이 연주하는 우주의 교향곡을 들어보고자 했다. 이 책에서 그 유명한 케플러 제3법칙인 행성의 공전주기의 제곱은 궤도의 장반경의 세제곱에 비례한다는 법칙을 도출해낸다. 이는 훗날 아이삭 뉴튼(Isaac Newton)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추론할 때 근거가 되었다. 케플러는 그의 서문에서 이르기를,

  가장 뛰어나고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영감과 열정을 불러 일으켜 주시고 나의 삶을 연장해 주셨습니다… 나는 천체의 운동이 충만한 조화로 움직이고 있음을 관측했습니다...  나는 이집트의 황금기구를 훔쳐 하나님의 성막을 짓는 일에 사용한 것입니다.

  이러한 시도는 초기교부가운데 하나인 오리겐에게서도 볼 수 있다. 즉, 케플러는 신앙의 영역에서 배제되어온 과학이라는 것을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재료로 삼겠다는 신앙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다.

  케플러는 천문학적 지식에 근거하여 성서에 나타난 연대기적 연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특히 1604년 초신성(SN1604)의 출현을 보고 2년 후인 1606년 《뱀주인자리의 발부분에 있는 신성》을 집필하였다. 1613년 출간된 《진실한 1년에 대해》는 마리아로 부터 나신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보충 논문이었다. 1603년 12월 목성과 토성의 회합(conjunction)이 있었고 1604년 9월 26일 화성이 토성과 회합하고 연이어 10월 9일 화성이 다시 목성과 회합하면서 이즈음 상간엔 일부 천문학자와 점성가들은 아마도 혜성과 같은 것이 형성되거나 출몰하게 되는 현상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기대 속에 1604년 10월 10일경 목성보다 더 밝은 별이 프라하의 하늘에서 목격되었다. 당시 케플러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BC 4년이라 주장한 라우렌티우스 수스리가(Laurentius Suslyga)의 견해를 발전시켜 자신의 천문학적 지식으로 실제 그리스도의 탄생을 BC 5년으로 산정하였다. 그리고 목성과 토성과 회합이 그리스도의 탄생 보다 조금 앞선 BC 7년에 일어났던 것으로 계산하였다. 그리고 BC 6년 2월엔 화성이 토성과, 같은 해 3월엔 화성과 목성이 회합하는 일이 발생하였다고 계산하였다. 바로 이시점이 그리스도가 수태된 때로 보며 이즘에 일어난 베들레헴의 별이 동방박사들을 인도하였을 것으로 믿었다. 그러므로 1603년에서 1605년 사이에 일어난 일련의 행성들 간의 회합과 초신성의 출현은 BC 7년에서 BC 5년 상간에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던 베들레헴의 별이 보였던 때와 비슷한 상황을 설명해 준다고 믿고 있었다. 

  케플러는 목성과 토성간의 회합이 이루어지는 패턴의 관측으로부터 산정하기를 매 800년 마다 천체에는 주기가 있었으며 각각의 주기의 시작은 중요한 역사적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고 믿었다. 세상은 창조된 후 그가 살던 때까지 여덟 번의 주기를 갖고 있었으며 첫 번째 주기가 세상의 창조로부터 시작되었다면 노아의 홍수는 세 번째 주기의 시작에, 그리스도의 탄생은 여섯 번째 주기의 시작에 있었다고 설명한다. 일곱 번째 주기의 시작에 해당되는 때(AD 800)에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샤를마뉴대제의 대관식으로 보고 여덟 번째 주기가 시작되던 케플러 당대를 중요한 역사적 전환기로 믿어 그는 사람들에게 각각 그 양심을 돌아보고 회개해야한다고까지 하였다. 그러므로 케플러의 천문학적 관찰로부터 나온바 우주의 연대로 보면 그는 BC 4000년경에 창조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당대의 전통적 입장과 성경의 연대기에 근거한 젊은 지구에 대한 견해를 견지하고 있었다.

 

3. 조나단 에드워즈의 학문과 신앙

  3.1. 에드워즈의 배경

  조나단 에드워즈는 1703년 뉴잉글랜드 코네티컷(Connecticut)에서 태어나 청교도적 전통을 지닌 목회자 가문 속에서 성장하고 예일대학에서 수학하였다. 그의 아버지와 외할아버지는 하바드대학에서 수학한 목회자들이였으며 특히 외할아버지 솔로몬 스토다드(Solomon Stoddard)는 이미 매사추세츠(Massachusetts)주 노스햄프톤(Northampton)에서 영향력 있는 목회를 하고 있었다. 에드워즈의 부인이 된 사라 피에르폰(Sarah Pierpont)의 부친은 예일대학 설립자 가운데 하나였으며 그녀의 모친은 영향력 있는 청교도지도자가운데 한사람인 토마스 후커(Thomas Hooker)의 증손녀였다. 

  대학을 졸업한 에드워즈는 1727년부터 그의 외조부의 교회에서 목회수련을 시작하여 1750년 사임하기까지 20년 이상 목회사역에 전념하게 된다. 이 기간 중 그는 자신의 목회지에서 대각성(The Great Awakening) 현상이 일어남을 목격하게 된다. 즉, 죄에 대한 회개와 중생(당시에는 'New Birth'라고 부름)에 대한 체험이 회중가운데 일어남을 보게 되었다. 1730년대부터 일기 시작하여 1740년대에 이르러 영국으로부터 온 부흥사 조오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에 의해 신대륙을 강타한 1차 대각성운동에 대해 에드워즈는 이를 신학적으로 대변하는 지도자가 되었다. 성찬의 자격에 대한 그의 엄격한 입장 때문에 결국 그가 20년 이상 목회하였던 현장에서 떠나야만 했던 에드워즈 목사는 매사추세츠주 스톡브릿지(Stockbridge)에서 인디언들을 위한 선교사역(1750-1757)에 헌신하게 된다. 그는 1758년 대각성운동의 여파 속에 출범한 장로교학교인 프린스턴대학의 3대 총장으로 요청을 받고 부임하게 되나 아쉽게도 몇 달 안 되어 천연두접종의 부작용으로 인해 아쉬운 생을 마감하게 된다. 과학적 정신으로 접종에 몸소 본보기로 나섰으나 결국 희생자가 된 셈이다. 에드워즈는 설교가요 목회자요 선교사요 신학자요 집필가로서 미국역사상 가장 뛰어난 사상가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3.2. 에드워즈의 과학적 탐구

  예일대학을 다닐 때부터 에드워즈는 자연과학에 관한 노트를 작성하며 자연세계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있었다. 이러한 에드워즈의 과학적 관심은 자연철학에 대해 논한 그의 일련의 노트들, 즉, '자연철학에 관해'('Natural Philosophy”, ca. 1720)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원자에 대해”('Of Atoms”), '무지개에 대해”('Of the Rainbow”), '빛에 대해('Of Light Rays”), '곤충에 대해”('Of Insects”)등과 같은 다양한 소고들이 거기에 포함되어 있다. 자연철학에 관해 논하는 에드워즈의 과학적 탐구영역은 동물의 변형, 식물의 번식, 호흡, 혈액순환, 감각기관, 신경계, 뇌, 정기, 영혼과 육체의 결합, 대기, 구름, 무지개, 번개, 습곡, 계절, 온천, 심연, 유성, 혜성 등등에 걸쳐 다양하고 방대함을 볼 수 있다. 

  물리학의 영역에 있어서 그는 모든 것은 원자로 되어있다고 보는 일종의 원자설을 이야기하고 있고, 뉴튼의 광학을 읽고 빛은 입자로 되어있다고 믿고 있었으며 중력에 관한 안목도 갖고 있었다. 생물학의 영역에 있어서는 곤충, 특히 거미에 대한 예리한 관찰을 하고 있었으며 지질학과 해양학에도 관심을 갖고 논하기를 지구의 지각 밑에 지표면보다 무겁고 밀도가 높은 물의 심연이 있다고 보았고 바다물의 심층부는 짜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하기도 하였다. 에드워즈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러한 방대한 관심의 영역에 대해 언급하기를 그가 아마도 자연과학의 총체적 영역에 대한 야심찬 저술을 계획했었을 것으로도 보고 있다.

  당시 스콜라주의적 전통에서 과학을 가르치던 학부의 한계를 뛰어 넘어 에드워즈는 독자적으로 근대 과학적 자료들(Descartes, Gassendi, Boyle, Newton)을 폭넓게 접하였음을 보여준다. 특히, 로버트 보일과 아이삭 뉴튼과 같은 유신론적 과학자(theistic scientists)들의 글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에드워즈의 과학에 대한 나름대로의 확신이라고 본다. 그는 과학이 더욱 완전해 질수록 그 안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는 더욱 명백히 드러날 것이라 믿고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18세기에 창조과학적 작업을 시도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한 예로 거미에 관해 관찰한 그의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글은 자연과 생태계속에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주로서의 지혜에 관심을 가짐을 보여주고 있다.

  거미에 대한 관찰은 '곤충에 대하여”('Of Insects')라는 글에서 가장 먼저 기록되어 있고 에드워즈는 이 글을 기초로 나중에 소위 거미서한(The 'Spider' Letter)을 쓰게 된다. 이 서한은 1723년 10월 31일 쓰여졌음이 밝혀졌다. 이때 에드워즈는 이미 예일대학으로부터 학사 및 석사학위를 마친 시점이었다. 수령인은 폴 더들리(Paul Dudley)로 당시 매사추세츠주 대법원의 부대법관이었으며 왕립런던학회(Royal Society of London)의 펠로우(fellow)이기도 하였다. 

  에드워즈는 소위 '날아가는 거미”(flying spider)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거미들을 일컬어 경이로운 공중의 곡예사로 묘사하면서 거미줄 치는 과정의 단계들을 상세히 관찰하며 논하고 있다. 나뭇가지에서 밑으로 거미줄로 내려오자마자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동작으로 공중에 달린 채 방향을 바꾸어 또 거미줄을 분비하게 된다. 이렇게 분비된 거미줄이 공기로 인해 부상하여 또 다른 가지나 나무에 닿게 되면 그 감촉이 거미줄을 통해 마치 신경을 통해 감각이 전달되는 것처럼 거미에게 전달되며 거미는 이를 느끼게 된다. 이로 인해 연결된 줄은 다리와 같은 기능을 하게 되고 이를 통해 거미는 이동할 수 있는 것이다. 줄의 길이로 인해 부상력과 낙하력이 결정되기도 한다. 이것은 여러 종류의 거미가운데, 소위'날아가는 거미”(flying spider)라는 종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에드워즈는 이러한 관찰 속에서 창조주의 솜씨를 찬양하고 있다:

  창조주의 지혜는 놀랍기 그지없다. 놀라운 체액을 그 몸에서 외부에 미세한 가닥으로 뽑아내면 공기 중에 부상케 되면서 즉시 건조해 지며 그 목적에 맞게 쓰이는 과정을 보라
  우리는 모든 생물, 심지어는 하찮은 곤충에게까지 생존에 필요한 필수적인 것만 아니라 삶을 여유 로이 즐길 수 있는 것까지도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에드워즈는 또한 생태학적 통찰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그는 관찰하기를 미대륙 동북부인 뉴잉글랜드의 경우, 8월말에서 9월초 날씨가 청명하고 건조할 때 거미를 포함한 곤충들이 내륙에서 바다로 바람을 타고 이동함을 보았다. 에드워즈는 생각하기를 거미들은 바람을 타고 이동하여 종국적으로 바다에 이르러 죽게 된다고 보았다. 바다의 수분에 거미줄은 무거워져 내려 결국 거미들은 물속으로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토록 다음해에 지속할 알을 낳아 내륙에 남겨놓고는 겨울철에 바다로 이르러 생을 마감하는 것은 다른 곤충들에게도 적용된다고 보았다. 에드워즈는 가끔씩 나무보다 높은 높이로 떼 지어 가는 일군의 곤충들을 관찰하면서 자연에 나타난 생태학적 질서와 하나님의 지혜를 언급하고 있다. 즉, 만일 그렇지 않으면 엄청난 양의 번식으로 불어날 곤충들로 인해 애굽의 재앙 이상의 재해를 겪게 될 것이다. 곤충의 양이 매년 일정량 이상 되지 않도록 수학적으로 유지하는 것도 하나님의 놀랍고 오묘한 섭리이다.

 

4. 과학자의 신학탐구, 신학자의 과학탐구

  4.1. ‘회심된’ 학문행위

  지금까지 케플러와 에드워즈의 예를 통해 창조에 관한 깊은 신앙을 지닌 과학자와 신학자의 학문탐구의 예를 살펴보았다. 이러한 일은 자연스러운 신앙의 발로로 이해될 수 있다. 복음으로 거듭난 자는 이 창조세계를 복음의 시각에서 재조명하고 해석하는 일을 하게 된다. 그가 과학자라면 과학을 재조명할 것이고, 역사가라면 역사를 재조명할 것이고 철학자라면 철학을 재조명할 것이다. 이렇게 재조명된 과학과 역사와 철학을 필자는 각각‘회심된’(converted) 과학이요 역사요 철학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토록 회심된 학문행위 (즉  converting science, converting history, converting philosophy)등은 복음으로 거듭난 신앙인이 학문과 신앙을 통합하고자 하는 시도로 지난 2000년간의 기독교역사 가운데 적지 않은 예들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물론 어느 누구도 하나님이 아닌 이상 완벽한 통합은 불가능하다. 아직까지 우리의 과학지식, 역사지식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케플러의 경우 고대와 중세전반을 지배해온 점성술적인 요소도 있었고 철학에 영향을 받아 사변적인 요소도 많았음을 본다. 에드워즈의 경우도 전문적으로 과학훈련을 받지 못한 아마추어적인 수준에서 과학을 이해하였다. 이들 역시 그 시대적 환경에 있었기에 그 한계에 또한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이러한 시도가 어떠한 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을까?

 

  4.2. 학제간 연구(interdisciplinary studies)의 의미

  그렇다면 과학자의 신학탐구와 신학자의 과학탐구와 같이 학제간 연구가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일각에선 신학과 과학의 엄격한 학문적 분리를 주장할지도 모른다. 더구나 오늘날과 같이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시대에는 타학문영역을 시도하는 것은 서로 남의 영토를 침범하는 것과 같이 인식되어 허용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수세기 전만 해도 여러 과학자와 신학자들은 학문과 신앙의 통합을 위해 학제간 연구의 시도들을 하였음을 보게 된다.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학제간의 연구는 오히려 장려되어야 할 일이라고 믿는다. 과연 이러한 학제간의 소통이 우리에게 해악을 가져다 줄 것인지 아니면 유익을 가져다 줄 것인지에 대해 물을 수 있겠다. 필자는 방금 언급한 바와 같이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라는 명제에서 볼 때,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학제간 연구는 결국 유익을 가져다주었다고 주장한다. 먼저 학제간의 연구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시사한다.

  첫째는 시각의 확장(perspectival expansion)이다. 학문을 하는 시각의 범위가 넓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우주선을 타는 경험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자동차로 이 땅을 아무리 넓게 활보하고 다닌다 하더라도 여행자의 시각이 이 땅에서의 수준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지형을 국지적(local)으로 밖에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게 된다면 우리는 높은 고도에 올라 같은 땅을 바라보더라도 다른 차원의 경험을 하게 된다. 즉 시각이 확장된 것이다. 국지적인 시각으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부분을 비행기로 파악하게 된다. 하지만 대기권 안에서만 운항하는 비행기로 지구를 보는 관점은 겨우 지구적(global)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가 우주선을 타고 지구 대기권 밖으로 나가게 되어 우주공간속에 여행을 하면 우리의 시각은 그만큼 우주적(cosmic)인 시각에 놓이게 된다. 현대문명과 과학은 이러한 면에서 우리의 시각을 확장해 주었다. 이러한 시각의 확장에서 이제 성경을 대하면 전에는 깨달을 수 없었던 많은 언급들이 더 분명한 사실로 드러난다. 예를 들어 과학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지구 밖에서 지구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우주공간에 떠있는 지구의 모습에 대해 욥기에서 언급되어진바 "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earth)을 공간에 다시며”(욥26:7)라는 구절은 이제는 단순히 문학적이거나 수사적 표현이 아님이 입증되었다.

  둘째는 문맥의 확장(contextual expansion)이다. 같은 사건이나 사물도 어떠한 문맥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 의미와 모습이 달라진다. 한 가지 문맥이나 시각에서만 보는 것 보단 여러 문맥과 시각에서 살핀다면 좀 더 총체적인 이해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일각에선 성경은 과학책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면서 그 문맥을 신학적인 면으로만 국한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구약성경만 해도 모세오경에서 법을 다루고 있고, 선지서에서 역사를 다루고 있고, 시가서에서 문학을 다루고 있는 만큼 성경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를 총망라한 인간세계의 모든 범주를 다 다루고 있기에 성경을 이해하는 문맥도 그만큼 확장해 볼 때 성경의 이해가 깊어지고 풍요로워 질뿐만 아니라 복음의 의미도 더욱 명확히 드러날 수 있다. 학제간의 연구는 이러한 면에서 성경이해의 폭을 넓히는 공헌을 한다고 본다. 창조과학의 공헌은 성경을 과학적인 문맥에서 제외시켜 단지 종교적, 문학적인 면에서만 보려했던 해석의 제한성을 뛰어넘어 여러 과학적 반증을 통해 그 과학적 접근방법이 해석학적으로도 타당함을 보여주고 있다. 성경은 비과학적(심지어 비역사적)이라고 주장하는 신학적 해석의 방법론에 대해 과학적인 문맥에서의 해석이 오히려 성경의 사실성을 더 확증해 줄 수 있다고 본다. 

  셋째는 경계간 넘나들기의 경험(border-crossing experience)이다. 이것은 마치 타문화 경험(cross-cultural experience)을 통해 얻어지는 것과 같은 효과라 본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의 관찰에 의하면 인간은 타문화 경험을 통해서 비로소 자기정체성(self-identity)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선교사들의 경험과도 일치한다. 타문화 권에 들어가 지내다보면 전에는 노출되지 않았던 새로운 상황 속에서 타문화만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론 자신이 자라고 속해왔던 문화를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정체성의 자각은 곧 자신의 한계를 본다는 것과도 같다. 전에는 자기경험만이 다인 줄 알고 우월감과 이데올로기로까지 높아진 것에 도전을 받고 수정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16세기에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비롯한 여러 과학적 발견들은 당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교회의 잘못된 전통과 가르침에 대해 수정을 요구하는 도전이었다. 이러한 역동적인 인식과정은 학제간의 연구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과학과 신학이라는 두 영역의 경계선을 넘나들면서 비로소 신학은 신학의 한계를 과학은 과학의 한계를 보게 되며 수정적(corrective) 시각을 갖게 될 것이다.

 

  4.3. 창조과학의 선교적 의미

  선교의 정의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진리로 선포하는 것이라 할 때 창조과학의 공헌은 성경의 이해와 해석에 있어서 또한 복음을 이해하고 증거하는데 있어 유익을 가져다주었다. 그 유익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표현해 볼 수 있겠다.

  첫째, 복음의 이해가 더 ‘풍요’(enrichment)로와 진다는 것이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창조의 진리는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이끌어 준다. 우리는 진리를 도적질 하여 우리를 빈곤케 하며 결국은 멸망과 죽음을 가져다주는 거짓된 이론을 경계해야 한다.

  둘째, 복음의 이해가 더 ‘확장’(enlargement)되어 진다는 것이다. 복음은 모든 창조의 영역에 선포되어지고 적용되어져야 한다. 단지 개인의 영혼 구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된 인간에게 주신 소위 ‘문화명령’(창 1:26-28)대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영역에서 청지기로서의 사명도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복음의 이해가 더 ‘선명’(enhancement)하여 진다는 것이다. 과학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성경의 진실성은 부정되어 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긍정되어 진다. 창조와 부활의 사실에 있어서 더욱 그럴 것이다. 욥은 창조주 하나님을 경험함으로 비로소 깨달음을 얻고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다(욥 42:1-6 참조).

  욥기에 하나님에 의해 친히 언급되어진 창조세계의 섭리와 질서는 현대과학을 무색케 한다(욥 38-41 참조).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와 고대인의 지혜에서 배울 것들이 많음을 본다. 현대과학문명은 우리에게 많은 지식을 자랑할지 모르지만 놀랍게도 미개하였으리라 여겨지던 고대세계에서 우리를 놀라게 하는 고대인의 지혜를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시대적으론 더 앞설수록 진리에 대해 많은 지혜가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지식과 지혜가 더 발전할 것이라는 진화론을 반박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바로 현대과학이 겸손해져야 할 부분이라고 본다.

 

5. 나가면서

  30년 전 시작되었던 한국창조과학회는 1960년대와 1970년대 한국교회가 부흥의 시기를 거쳐 양적 성장을 한 이후 1980년대에 들어가는 문턱에 소개되었다. 창조과학은 이때부터 성경공부를 중심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은 한국교회의 질적 성장에 나름대로 기여를 해왔다. 젊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캠퍼스를 중심으로 확산된 창조과학회 활동과 기독교세계관 운동은 무엇보다 개혁주의적(Reformed) 세계관에 기초한 평신도운동이었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이 운동이 목회자나 신학교 주도적이었다기 보단 대학생과 전문지식을 갖춘 교수들을 중심으로 번져나갔다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한국기독교사에 있어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며 그 가치와 공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들 활동의 공헌은 학생운동, 학원운동으로 한국교회의 다음 세대를 향한 지적, 영적인 기반을 제공해 준 것이다. 특히 성경을 비과학적이라고 여겨 진리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에게 ‘진리와의 만남’(truth encounter)이라는 구도를 통해 복음을 전해왔다는 점이다. 또한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였으나 다분히 감성적이고 이원론적이고 균형 잡히지 못한 자들에게 통합적 신앙관을 제공해줌으로 그간 부흥과 성장가도로 치우쳐온 한국교회의 방향을 다시 성경적인 방향으로 조명해주었다. 구속의 메시지로만 한정된 복음을 창조의 영역으로까지 끌어올리고 회복시켜 선포했다는 점에서 지역교회(modality)가 담당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선교단체가 지닌 소댈리티(sodality)적 기능을 담당한 것이다. 이상의 논의에서 창조과학은 충분히 선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고 그 역할을 해왔다고 할 수 있겠다. 앞으로 창조과학의 제2의 세대를 맞으며 향후 30년도 변함없이 하나님이 성경대로 창조주 되심을 선포해야 할 것이다. 이에 발맞추어 꾸준히 전개될 과학기술의 발전과 발견들은 성경의 진리를 더욱 확증시켜줄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과학의 이름으로 추방된 하나님이 과학의 이름으로 다시 모셔 들여져야 할 것이다.

 

6. 참고 문헌

1. DuBose, Francis M., ed. Classics of Christian Missions. Nashville, TN: Broadman, 1979.
2. Great Books of the Western World, Volume 15, Ptolemy, Copernicus, Kepler. Chicago: Encyclopaedia Britanica, 1952.
3. Hall, Edward T. The Silent Language. Garden City, NY: Doubleday and Company, 1959.
4. Hummel, Charles E. The Galileo Connection: Resolving Conflicts between Science & the Bible. Downers Grove, IL: IVP, 1986.
5. The Works of Jonathan Edwards, Volume 6, Scientific and Philosophical Writings.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80.
6. 김성환. 『17세기 자연철학』. 서울: 그린비, 2008.
7. 김정훈, 『이브의 배꼽, 아담의 갈비뼈』. 서울: 예영, 2004.


출처 - 2011 한국창조과학회 국제학술대회 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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