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날에 생각해보는 생명나무
프롤로그
유리는 소련의 첩보기관 KGB에서 인간무기 개발 프로젝트에 의해 모스크바의 비밀 연구소에서 태어난 복제인간이다. IQ 500의 천재인 그는 어느 날 호수의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조로증에 걸렸음을 깨닫게 된다. 자신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노화 억제제 치료를 받는 것이다. 접근 금지된 도서관의 논문을 몰래 읽은 후 파리의 세양 박사가 노화억제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된 유리는 경비원을 간단히 해치우고 모스크바의 극비 연구소를 탈출하게 된다. 8살 어린이 임에도 불구하고 운동신경이 매우 민첩하였고 근육의 힘은 성인보다 뛰어난 복제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소련의 첩보망을 피해야했기 때문에 자동차를 이용하지 못한 유리는 죽을 힘을 다해 하루에 150 Km씩 달려서 프랑스 파리에 도착하였고 단 몇 주 만에 프랑스어를 마스터한다. 그리고 천재적인 두뇌를 이용하여 분자생물학, 생화학 등을 공부하여 세양 박사의 연구를 돕게 된다. 그러나 결국 노화를 늦추는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병원에서 쓸쓸하게 죽어간다. 첨단 생명과학 정보가 담겨있는 유리의 시신을 쟁탈하기 위해서 벌이는 CIA와 KGB의 치열한 첩보전 앞에 유리의 인권은 무시되고 생명과학 지식을 쟁탈하려는 쪽과 지키려는 쪽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만이 묘사되고 있다.
이 소설의 밑바탕에는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인간들의 광기가 낱낱이 그려지고 있다. 이 점이 독자들을 섬찟하게 만든다. 복제인간을 탄생시켜 전쟁의 도구로 사용하려는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메드베제프 박사는 ”이 연구의 가장 큰 의미는 인간이 바야흐로 그 운명을 지배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창조주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된 것이다”라는 무서운 독백을 하고 죽는다. 이 소설의 바탕에는 생명공학 기술을 사용하여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겠다는 인간의 오만이 적나라하게 그려지고 있다. (복제 인간, 1997. 알렌 엔젤 지음. 문학마을)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는 매우 독특한 특징을 나타낸다. 자극에 반응한다, 성장한다, 생식한다, 규칙성이 있다, 물질대사를 한다 등등....이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특징은 아마도 ”생식한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생식은 자기를 닮은 후손을 남기는 일이다. 그리고 결국 자신은 죽음을 맞이하고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생명의 정한 이치다. 따라서 성경에서는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 3:19)”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두려워 질 수도 있다. 그래서 죽지 않는 방법을 연구할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 가운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외에도 생명나무를 두셨는데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난 이후 하나님께서는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을까 걱정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창3:22)”에서 알 수 있듯이 생명나무 열매를 먹으면 영생할 수 있다.
성경에 기록된 생명나무는 무엇일까? 생명나무는 에덴동산에 있는 실재했던 나무였을까? 아니면 상징적인 의미로 기록한 것일까? 생명나무가 무엇이기에 그 열매를 먹으면 영생할 수 있는 것일까? 실로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생명나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어는 ”베에쯔 하하임”으로서 육신적인 생명을 강건하게 함으로써 영생할 수 있는 나무인 동시에 구속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생명의 과실(떡)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자는 영원한 축복의 삶이 보장되기 때문이다(요 6:48~54).
그런데 생명나무 실과를 따먹는다고 어떻게 영생할 수 있을까? 에덴동산에는 분명히 생명나무가 실제로 있었을 것이고 생명나무 열매를 따 먹으면 죽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에덴동산도 없고 생명나무도 실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는 이 생명나무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생명나무 실과를 따 먹으면 영생할 수 있다는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생명나무에 대한 현대 생명과학적 가능성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앞으로 과학기술이 크게 발달한다면 복제인간을 사용하여 사람이 죽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지도 모른다. 복제인간을 어떻게 사용하면 영생할 수 있을까? 복제인간을 만드는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정상 난자에서 핵을 제거한 후 체세포의 핵을 이 난자에 이식한다. 핵을 이식 받은 난자는 분열하게 되고 일정기간이 지난 다음 자궁에 착상시키고 10달 후에 태어난 아기는 체세포 핵을 제공한 사람과 똑같은 복제인간이 되는 것이다. 체세포 핵을 제공한 사람이 우수한 지능을 가졌다면 복제인간도 우수한 지능을 가지고 태어나며 람보처럼 강인한 체력의 소유자라면 복제인간도 강인한 체력을 가진 아기로 태어나게 된다.
이런 방법으로 복제인간을 많이 만들어서 젊은 청년까지 잘 사육(?)한 다음 냉동시켜 장기간 보관할 수 있다.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 복제인간의 모체가 노화되어 일부 내장의 기능이 떨어지거나 이상이 생길 때 냉동된 복제인간을 해동시켜 살려낸 후 복제인간의 해당 기관을 모체에 이식하면 아무 문제없이 건강한 내장기관을 갖게 된다. 필요하다면 거의 모든 내장기관을 바꿔치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디 내장기관 뿐이랴? 쭈글쭈글한 피부는 물론, 백발의 머리까지, 사지는 물론 몸통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더 나아가서 뇌에 기록된 모든 정보까지도 컴퓨터 하드디스크 복사 하듯이 복사할 수 있다면 인간은 복제인간을 활용하여 죽지 않고 영생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어찌 생명나무 실과가 아니겠는가?
만약에 생명과학 기술이 이러한 일을 해 낸다면 이것은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는 하나님의 말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결과가 된다. 과연 그러한 날이 올 수 있을까? 과연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명체를 인간의 능력으로 조작하여 영생하도록 바꿀 수 있을까? 이 기술에는 심각한 문제가 또 하나 더 있다. 바로 복제인간의 생명이다. 영생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복제인간은 인격을 가진 인간 이라기보다는 훗날 장기를 제공할 실험재료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 존재다. 그러한 복제인간에 인권이 어디 있으며, 존엄성이 어디 있겠는가?
죽음은 비기독교인에게 있어서는 이세상과의 이별이요 끝이며 마지막인 반변에 기독교인에게는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이요 시작이며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 입학식이다. 따라서 죽음 이후에 맞이하는 새로운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고 이 땅에서의 육신적 생명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새로운 생명을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어야한다. 생명이 죽지 않고는 새로운 생명을 누릴 수 없다. 그런데 현대 생명공학을 활용한다면 죽지 않고 영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 방법이 생명나무 실과를 따먹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추방한 인간들이 생명나무 실과를 따먹고 영생할까 걱정되어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든든히 지키게 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 3:23-24)”에서 알 수 있듯이 그룹(천사)들과 불 칼을 이중으로 두어 생명나무 실과를 따먹지 못하게 지키고 계신 것이다.
만약 인간의 오만과 독선이 생명과학 기술을 잘못 사용하므로 생명나무 실과를 따먹기 위해서 생명나무에 접근하려 한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그룹들이 가만히 보고 있지 않을 것이다. 생명나무 길을 지키는 두루 도는 불 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복제인간을 탄생시켜서 영생하려는 인간의 시도는 하나님 앞에서 모두 무용지물이 될 것으로 믿는다. 하나님이 생명나무 길을 지키고 있어서 복제인간 탄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할렐루야!!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606
참고 : 5440|5333|5148|5015|4768|4227|2328|2292
생명의 날에 생각해보는 생명나무
프롤로그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는 매우 독특한 특징을 나타낸다. 자극에 반응한다, 성장한다, 생식한다, 규칙성이 있다, 물질대사를 한다 등등....이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특징은 아마도 ”생식한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생식은 자기를 닮은 후손을 남기는 일이다. 그리고 결국 자신은 죽음을 맞이하고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생명의 정한 이치다. 따라서 성경에서는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 3:19)”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두려워 질 수도 있다. 그래서 죽지 않는 방법을 연구할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 가운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외에도 생명나무를 두셨는데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난 이후 하나님께서는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을까 걱정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창3:22)”에서 알 수 있듯이 생명나무 열매를 먹으면 영생할 수 있다.
성경에 기록된 생명나무는 무엇일까? 생명나무는 에덴동산에 있는 실재했던 나무였을까? 아니면 상징적인 의미로 기록한 것일까? 생명나무가 무엇이기에 그 열매를 먹으면 영생할 수 있는 것일까? 실로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생명나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어는 ”베에쯔 하하임”으로서 육신적인 생명을 강건하게 함으로써 영생할 수 있는 나무인 동시에 구속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생명의 과실(떡)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자는 영원한 축복의 삶이 보장되기 때문이다(요 6:48~54).
그런데 생명나무 실과를 따먹는다고 어떻게 영생할 수 있을까? 에덴동산에는 분명히 생명나무가 실제로 있었을 것이고 생명나무 열매를 따 먹으면 죽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에덴동산도 없고 생명나무도 실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는 이 생명나무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생명나무 실과를 따 먹으면 영생할 수 있다는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생명나무에 대한 현대 생명과학적 가능성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앞으로 과학기술이 크게 발달한다면 복제인간을 사용하여 사람이 죽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지도 모른다. 복제인간을 어떻게 사용하면 영생할 수 있을까? 복제인간을 만드는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정상 난자에서 핵을 제거한 후 체세포의 핵을 이 난자에 이식한다. 핵을 이식 받은 난자는 분열하게 되고 일정기간이 지난 다음 자궁에 착상시키고 10달 후에 태어난 아기는 체세포 핵을 제공한 사람과 똑같은 복제인간이 되는 것이다. 체세포 핵을 제공한 사람이 우수한 지능을 가졌다면 복제인간도 우수한 지능을 가지고 태어나며 람보처럼 강인한 체력의 소유자라면 복제인간도 강인한 체력을 가진 아기로 태어나게 된다.
이런 방법으로 복제인간을 많이 만들어서 젊은 청년까지 잘 사육(?)한 다음 냉동시켜 장기간 보관할 수 있다.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 복제인간의 모체가 노화되어 일부 내장의 기능이 떨어지거나 이상이 생길 때 냉동된 복제인간을 해동시켜 살려낸 후 복제인간의 해당 기관을 모체에 이식하면 아무 문제없이 건강한 내장기관을 갖게 된다. 필요하다면 거의 모든 내장기관을 바꿔치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디 내장기관 뿐이랴? 쭈글쭈글한 피부는 물론, 백발의 머리까지, 사지는 물론 몸통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더 나아가서 뇌에 기록된 모든 정보까지도 컴퓨터 하드디스크 복사 하듯이 복사할 수 있다면 인간은 복제인간을 활용하여 죽지 않고 영생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어찌 생명나무 실과가 아니겠는가?
만약에 생명과학 기술이 이러한 일을 해 낸다면 이것은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는 하나님의 말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결과가 된다. 과연 그러한 날이 올 수 있을까? 과연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명체를 인간의 능력으로 조작하여 영생하도록 바꿀 수 있을까? 이 기술에는 심각한 문제가 또 하나 더 있다. 바로 복제인간의 생명이다. 영생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복제인간은 인격을 가진 인간 이라기보다는 훗날 장기를 제공할 실험재료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 존재다. 그러한 복제인간에 인권이 어디 있으며, 존엄성이 어디 있겠는가?
죽음은 비기독교인에게 있어서는 이세상과의 이별이요 끝이며 마지막인 반변에 기독교인에게는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이요 시작이며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 입학식이다. 따라서 죽음 이후에 맞이하는 새로운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고 이 땅에서의 육신적 생명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새로운 생명을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어야한다. 생명이 죽지 않고는 새로운 생명을 누릴 수 없다. 그런데 현대 생명공학을 활용한다면 죽지 않고 영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 방법이 생명나무 실과를 따먹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추방한 인간들이 생명나무 실과를 따먹고 영생할까 걱정되어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든든히 지키게 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 3:23-24)”에서 알 수 있듯이 그룹(천사)들과 불 칼을 이중으로 두어 생명나무 실과를 따먹지 못하게 지키고 계신 것이다.
만약 인간의 오만과 독선이 생명과학 기술을 잘못 사용하므로 생명나무 실과를 따먹기 위해서 생명나무에 접근하려 한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그룹들이 가만히 보고 있지 않을 것이다. 생명나무 길을 지키는 두루 도는 불 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복제인간을 탄생시켜서 영생하려는 인간의 시도는 하나님 앞에서 모두 무용지물이 될 것으로 믿는다. 하나님이 생명나무 길을 지키고 있어서 복제인간 탄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할렐루야!!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606
참고 : 5440|5333|5148|5015|4768|4227|2328|22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