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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창조신앙

김홍석
2012-01-10

2012 성경위원회가 신년을 맞아 드리는 말씀


     할렐루야!  한국창조과학회 모든 회원님들께 올 한해도 하나님의 평강을 빕니다.

우리는 올해도 여전히 과학과 인간이성을 모든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인본주의 가치관으로부터 많은 도전을 받게 될 것입니다. 새해 들어 창세기 1장의 빛에 관한 질문을 받고 답변을 정리하면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창조 6일 간의 활동 가운데 지구와 태양을 함께 만드시지 않고 태양은 제4일이 되어서야 만드신 이유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편리하게 생각한다면 태양과 지구를 함께 만드시고 태양으로부터 빛이 나와서 지구를 비추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게 여겨집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러한 창조의 순서가 아무런 의미가 없을까요? 그렇지 않겠지요! 

근 40년 간 광야에서 만나를 먹이신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먹고 사는 일이 가능한 근거는 땅에 곡식을 심고 거두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해결된다는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신 8:3). 땅에 곡식을 심어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도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도록 질서(자연법칙, 과학)를 세워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빛과 태양의 창조 순서에도 분명 의미와 의도가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태양이 만들어진 제4일 이전의 빛과 태양빛에 대하여 ”어떻게 태양이 없이 지구에 빛이 비추어져서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될 수 있었는가? 태양이 만들어지기 전의 빛과 태양이 만들어진 이후 지구를 비추는 빛은 어떻게 다른가?”라는 궁금증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빛과 태양의 순서에 대한 분명한 기록을 통하여 우리가 무엇을 깨닫기를 원하신 것일까요? 우리는 적어도 한 가지의 교훈을 찾아낼 수 있어야합니다. 그것은 빛이 존재하게 된 것이 태양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빛이 있게 된 것은 태양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창 1:3). 그렇습니다. 만유의 근원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창세기 1장은 만유의 존재가 ”하나님께서 이르시니 그렇게 되었다”(창세기 1장 3, 6, 9, 11, 14, 20, 24, 26, 29절)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과학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록된 그대로 실제 일어났던 사건입니다. 과학은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과학이 이해할 수 없는 초과학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도,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도, 물 위를 걸으시고 죽은 자를 살리신 것도, 부활도, 우리의 부활의 소망도 모두 과학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에는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기본적인 질서로서 자연법칙(올바른 과학)이 존재하며 동시에 과학의 범주를 넘어서 일어나는 초과학적 현상들이 공존합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자연법칙을 초월한 7가지 기적의 사건을 얼개로 예수님의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하는 전개를 보여주고 그것을 위해 요한복음을 기록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과학주의를 포함한 인본주의는 성경을 과학의 틀, 이성적 틀로 바라보고 해석하려고 하며 초과학적, 초이성적인 사건 기록들은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여 상징화 시키고, 메세지를 담은 우화처럼 바라보려는 잘못된 관점을 가지고 있으며, 그로 인하여 성경의 본래 의미와 의도가 왜곡되는 현상들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창조과학회는 과학으로 성경을 해석하려는 것이 아니라, 과학을 넘어선 초과학적, 초이성적 사건들이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일어났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과학을 사용하여 탐구하고 전하는 활동을 하며, 그러므로 성경의 기록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성경위원회는 이를 위해 여러분들과 함께 올 한해도 열심히 노력하고자 합니다. 할렐루야!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267

참고 :

이하백
2012-01-06

창조 세계를 폭넓게 배우는 새해를 소원하면서


      새해 첫 해돋이를 바라보는 감회가 새롭습니다.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은 해야 솟아라…”를 읊고 시인은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떠오르는 해는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두신 달과 별을 내가 보오니 (시 8:3)” 말씀과 같이 온 우주 만물을 창조 하시고 자연법칙을 세워 운행하시는 창조주를 자연 현상 가운데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밝아온 한 해 동안 창조 세계의 원인되시는 창조주와 창조 세계를 더 깊이 배우는 우리 모두가 되도록 학술원은 앞장서 나아가고자 합니다.

21세기 지구촌의 환경은 유사이래 가장 무서운 속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마치 첨단 과학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듯한 착시 가운데, 무신론과 진화론은 교육, 문화,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더 깊고 단단하게 뿌리를 내려서 현대인들의 올바른 세계관을 쓰나미로 무너뜨리고 있는 오늘입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학술원이 계획 후원하고 있는 ”차세대 창조과학자 영입, 기원에 관한 학술적 연구 및 자료개발, 학술교류 및 학술지 발간, 창세기 1-11장의 난제들에 대한 주석서 준비, 교과서진화론개정을 위한 협력” 등에 쉼 없이 다가갈 것입니다. 더욱이 최근 이어서 보도되고 있는 창조-진화 논쟁의 주요 이슈인 우주 생성에 대하여 ”빅뱅의 비밀, 우주 탄생의 비밀 또는 우주 생성의 키워드 중성미자” 등 상상 가능한 주장들은 창조과학자들에게 귀한 학습을 매진하도록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 대전에서 열리는 ‘학술원과 교육원 합동 2012 워크샵’을 통하여 ”우주 창조론”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며, 적극적인 동참을 제안합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저는 일반의 마음을 지으시며 저희 모든 행사를 감찰하시는 자로다(시33:12)”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2012년 내내 여기에 화답하는 학술원으로서 귀한 역할을 넉넉히 감당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학술원장  이 하 백  배상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261

참고 :

미디어위원회
2012-01-04

다음 세대에 전해야 할 창조신앙

이은일 


      새로운 한해가 밝았습니다. 우리 모든 창조과학 동역자님들께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새해 더욱 가득하길 기도드립니다. 지난 한 해 창조과학 교육 사역을 위해 애쓰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부회장으로 교육원장으로 섬기면서 얼마나 많은 분들이 함께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셔서 동역해주셨는지, 그 감동과 기쁨, 감사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두 기억해 주시고 갚아주시겠지만, 이런 훌륭한 분들과 이 시대 함께 동역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작년 한 해 동안 창조신앙 회복을 위해 ‘모든 성도님들을 위한 쉽고 감동 있는’ 새로운 창조과학 교육 과정을 개발하고 수행하는데 많은 진보가 있었습니다. 새해는 작년의 수고 토대 위에 더 많은 발전이 있길 소망합니다. 창조과학 교육사역이 더 부흥하여 한국 교회 모든 성도님들은 물론, 선교지 교회의 성도님들에게까지도 하나님 말씀의 정확무오함과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더욱 굳건해지길 기도드립니다.

새해는 또 다른 소망이 있습니다. 바로 청소년들에게 창조신앙에 기초한 삶을 살게 하는 일입니다. 어릴 때부터 진화론의 거짓을 알고 창조주 하나님을 알고 더 나아가, 그들의 삶이 정결하고 거룩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되도록 차세대 창조과학 사역의 새로운 부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사역에 동참할 젊은 창조과학 동역자들이 불일듯 일어나길 기도합니다. 이 일을 생각하면 교육원장으로 섬기면서 마음에 부담이 많습니다. 이 문제는 단지 창조과학 사역의 문제만이 아니라, 교회 전체의 운명이 걸려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잃어버리고,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으면서도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한 것은 우리 앞선 세대의 기도와 믿음 덕분이었습니다. 그분들의 희생과 기도로 우리는 누리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풍요함은 하나님을 잃게 하였고, 교회가 세속화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이 붕괴되고 부모의 돌봄이 이기적이 되었고, 학교 교육은 황폐해졌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불확실성의 사회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초중고등학교의 청소년들입니다. 이 아이들에게 확실한 기준이 있는 새로운 삶의 모델이 필요합니다. 이 일은 창조신앙의 토대 없이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이런 일들이 여러 창조과학 동역자들을 통해 이뤄지고 있습니다. 어린이 및 청소년 창조과학캠프, 어린이 과학교실, 청소년 창조과학 세미나들이 수년 전부터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또한 교사 선생님들 통해 학교 교육현장에서 과감하게 창조과학 교육이 이뤄지기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대형 캠프 사역은 전주지부가 중심되어 섬기고 있고 다른 지역 캠프등 기타 사역들도 소수의 사역자들에 국한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교회 교육 자체가 창조신앙 회복과 삶의 기준을 제시하는데 새롭게 변화되어야 할 터인데 아직은 미흡한 실정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신실한 사람들을 통해 이뤄집니다. 모든 사역보다 앞서는 것이 사람을 세우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모든 창조과학 사역자들이 다음 세대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 있는 이 때, 2월 3-4일 대전에서 열릴 창조과학 교육원-학술원 합동 워크샵은 다음 세대를 세우기 위한 것에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다음 세대를 위한 부르심을 느끼고 있는 분들이 함께 모여 노하우를 나누고, 네트웍이 이뤄지길 소망합니다.

새해는 대한민국와 세계의 미래를 책임질 십대를 하나님의 말씀과 창조신앙으로 양육할 젊은 세대가 세워지는 발판이 마련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일을 위해 예비된 동역자님들의 많은 참여를 기대합니다.

동역자 모든 분들, 새해 주님의 사랑과 기쁨과 평강이 가정과 사역과 일터 위에 더욱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박창성(세계창조선교회)
2011-07-29

창조신앙과 선교

: 왜 창조는 복음 전도와 영적 성숙에 중요한가 

(Faith of Creation and Missions 

: Why Is Creation Important in Evangelism and Spiritual Maturity?)


요약 :  창조는 기독교의 신앙, 윤리, 복음과 전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기초이다. 그러나 현재 이 기초는 진화론에 의해서 크게 도전을 받고 있으며, 기독교는 몇가지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첫째, 대다수의 기독교인들, 심지어 상당수의 목회자들까지도 성경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

둘째, 교회를 다니는 교인들 중에서 거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구원자로 고백하지 않고, 기독교의 행동 표준을 지키지 않는 명목상의 기독교인들이다.

셋째, 상당수의 기독교인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윤리의 절대적 표준이 없다고 믿는다.

넷째, 대부분의 비기독교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데 장애가 되는 진화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이 모든 문제들은 창조를 포함한 성경적 세계관과 반대되는 진화론적 세계관이 만연되어 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립 학교에서 진화론을 사실로 배우기 때문에, 성경에 대해서 편견을 갖게되고 의심하게 된다.

이와 같은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하여, 저자는 '창조 선교”를 성경적, 선교학적으로 타당성 있는 전략으로 추천하면서, 그 효율성을 증명하였다. 창조선교 프로그램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을 바꾸어 주고 성경적 진리에 대한 믿음을 강화시켜 줌으로써, 비기독교인들이 복음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고, 기독교인들이 영적으로 성숙하도록 인도하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Abstract : Creation is the very important foundation of Christianity along with its faith, morality, gospel, and evangelism. However, now this foundation is greatly challenged by evolutionism, and Christianity faces several serious problems.   First, a majority of Christians, even a large proportion of pastors, do not hold to a biblical worldview. Second, almost half of Christians attending churches remained as notional Christians who have neither confessed Jesus Christ as their Savior nor adopted Christian behavioral standards. Third, a majority of people, including a significant proportion of Christians, believe that there is no moral absolute. Fourth, most non-Christians hold to an evolutionary worldview that serves as a stumbling block to the gospel.   All of these problems have been resulted from the prevalence of an evolutionary worldview opposed to a biblical worldview includes creation. Because most people were taught evolution as truth in their public schools, they become biased and skeptical about the Bible.  In order to overcome the problems, the author recommends 'Creation Evangelism' as a biblically and missiologically-relevant strategy, having proved its effectiveness. Creation evangelism programs are very effective in helping non-Christians to become favorable to the gospel and in leading Christians to spiritual maturity by changing their worldview and strengthening their belief in biblical truths. 


1. 서 론

2005년 8월 미국의 기독교 여론조사 기관인 바아나 그룹(Barna Group)은 미국 성인의 약 5%, 개신교 교인의 8%만이 기독교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통계를 발표하였다.  이것은 매우 적은 미국인들만이 성경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며, 비기독교인과기독교인 사이에 별로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미국 복음주의 목회자의 51%만이 성경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비율들은 지난 수년간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으며 더 이상 나아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주목할 만한 다른 통계는 1991년 이후로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의 수가 92%나 증가하였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통계들은 성경의 권위가 심각하게 약화되고 있으며, 성경적 진리에 대한 믿음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동성애, 음란, 마약, 낙태, 폭력, 이혼과 같은 사회적 문제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원인과, 오늘날 복음 전도의 효율성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원인이 무엇때문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2. 창조 신앙의 중요성

창조는 진정한 종교라고 할 수 있는 기독교와 기독론, 복음, 윤리의 기초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2.1. 진정한 종교-기독교의 기초 (Foundation of True Religion, Christianity) 

진정한 종교는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서 다른 종교들은 위대한 인물을 신격화 하여 숭배하거나, 인간이 만든 체계, 혹은 이 세상 자체를 믿는 것이다. 이것은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는'(롬1:25) 인본주의(humanism)의 여러가지 형태일 뿐이다.

다른 종교들의 경전들은 모두 피조물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하는데 비해서, 유일하게 성경만이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하나님께서 성경의 맨 처음 창세기1장 1절에 자신을 창조주로 계시하셨기 때문에, 창조는 기독교의 첫 출발점이 되어야만 한다. 

 

2.2. 기독론의 기초 (Foundation of Christology)

이슬람교도들과 유대인들도 유일신으로서의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온전하게 알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창조주로서 뿐만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신 자비로운 구원자이심을 알아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서만 알고 있다면, 그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온전히 알고있지 못한 것이다.

골로새서1:16-20에 명백히 기록된 바와 같이, 예수님은 구원자가 되시기 전에 창조주이셨다. 따라서, 진정으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리려면, 무엇보다 먼저 그분이 전능하신 창조주이심을 말해야 하고, 그 다음 인간을 위해 이땅에 오셔서 희생당하신 구원자라는 것을 전해야 한다.

 

2.3. 복음의 기초 (Foundation of the Gospel)

우리는 창조에 대한 언급없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복음은 명백히 창조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불가능하다. 예수님의 구원은 과거, 현재, 미래의 세단계 사역, 즉, 만물의 창조, 이 세상의 보존, 하나님 나라의 완성 (creation, conservation, consummation)으로 이루어져 있다 (골1:16-20, 히1:2-4, 롬11:36). 

우리가 전파해야 할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의 대속적인 죽음과 승리하신 육체의 부활이지만, 그분의 위대한 창조와, 앞으로 오게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메시지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 요소들이 모두 갖추어져 있지 않은 복음은 진정한 복음이라고 말할 수 없다.

 

2.4. 윤리의 기초 (Foundation of Morality)

창조주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은 우리가 그분께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분의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릴 수 있는 주권을 가지고 계시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 표준을 정하실 수 있다. 사실상, 하나님은 많은 윤리의 원칙들(예, 결혼, 가정)을 성경을 통해 알려주셨고, 그것을 지키라고 우리들에게 명령하셨다 (마28:20). 기독교 윤리의 절대적 기초는 하나님이며, 그보다 높은 표준은 없다. 

그러나 진화론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있다는 인본주의적 윤리의 기초를 제공하고 있다. 아무도 인간을 지배하는 존재가 없으므로, 절대적으로 옳거나 그른 것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창조와 절대적 윤리를 기초로 한 기독교와, 진화론과 상대적 윤리를 기초로한 인본주의가 충돌하는 양상을 나타내고 있으며, 윤리의 기초가 급속히 붕괴되어가고 현실을 느낄 수 있다. 우리 사회를 윤리적 타락으로부터 회복시키려면, 윤리의 기초인 ‘창조’에 대한 믿음을 다시 복구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3. 창조 선교 (Creation Evangelism)

예수님은 창조주이시다. 이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해주시는 구원자가 되실 수 있다. 따라서  창조는 기독론과 복음의 기초이기 때문에, 진정한 선교의 가장 중요한 기초 역시 창조라고 말할 수 있다.   

 

3.1. 창조선교와 복음 (Creation Evangelism and the Gospel)

3.1.1. 사도 바울의 변증과 전도

사도행전 17장에 기록된 사도 바울의 복음 전도는 타당성 있는 전도의 좋은 예로 볼 수 있다. 바울이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복음을 전할 때는 성경이 영감을 받아 기록된 권위있는 책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그렇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것도 역시 사실로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곧바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성경에 기록된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그분이 진정한 메시아라는 것을 변증하였다.

그러나 바울이 아덴에 가서 그리이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무신론자였거나 범신론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성경을 믿지 않았고, 전능하신 하나님에 의한 창조도 믿지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기초를 세우기 위해서 창조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한 다음, 예수님과 그의 부활에 대해서 설명했던 것이다.  

사도 바울의 전도를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은, 성경을 이미 믿고있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할 수 있지만, 믿지않는 사람들에게는 창조의 사실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복음의 진리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 가운데서 이해되어져야만 한다. 바울의 변증과 전도는 현시대의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상황하에서 어떤 전도 방법이 타당하고 효과적인가를 우리에게 암시해 주고 있다.

 

3.1.2.포스트모더니즘의 상황에 대한 창조선교의 타당성 (Relevance of Creation Evangelism to the Postmodern Context)

우리가 현시대의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는, 그들의 대부분이 복음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하나님, 창조, 죄, 타락, 심판, 구원이라는 용어에 대해서 기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이들은 공립학교의 교육을 통해서 복음에 반대되는 진화론으로 세뇌되어 있다.

오늘날 복음을 외쳐도 세상사람들의 반응이 별로 없거나,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주된 원인은, 이와 같은 시대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복음 전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효과적인 전도를 하려면, 우선 먼저 그들의 세계관을 진화론에서 창조론으로 바꾸어 준 다음,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현대인들에게는 바울이 그리이스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것처럼 해야하는 것이다. 이 전략이 바로 '창조선교'(Creation Evangelism)이다. 

 

3.2. 창조선교와 영적 성숙(Creation Evangelism and Spiritual Maturity)

어느 사람의 문화와 행동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 반영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실용주의, 상대주의, 다원주의와 같은 비성경적인 포스트모더니즘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만약 크리스천이 된 이후에도 이와같은 세계관을 계속 가지고 있다면, 영적으로 성숙하는데 장애가 될 것이다.

따라서, 창조선교 프로그램은 교인들의 세계관을 성경적 세계관으로 바꾸어주고, 성경적 진리에 대한 믿음을 강화시켜줌으로써 영적으로 성숙한 생활을 하도록 인도할 수 있다. 

 

4. 창조선교 이론 (Creation Evangelism Theory)

일반적으로 창조과학자들은 책, 세미나, 비디오, 탐사여행, 창조 박물관,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불신자와 믿는자를 위한 사역을 하고 있다. 저자는 이와 같은 프로그램들이 불신자의 회심과 믿는자들의 영적성숙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창조선교 이론'(Creation Evangelism Theory)을 주장하고, 그것을 통계적으로 입증하는 연구를 하였다.    
 

4.1. 창조선교 이론의 내용

창조선교 프로그램은 세계관을 바꾸어 주고 성경적 진리에 대한 믿음을 강화함으로써 불신자들이 복음에 대하여 호감을 가지도록 돕고, 믿는자들이 영적으로 성숙하도록 인도할 수 있다.


4.2. 창조선교 이론 연구 결과

저자는 2009년 미국 오레곤주에서 다양한 인종, 종교, 세계관, 학력을 가진 516명을 대상으로, 창조선교 이론을 입증하기 위해 피어슨 상관관계 테스트(Pearson’s Correlation Test)와 카이 스퀘어 테스트(Chi-square Test)를 이용하여 독립변수(X1, X2, X3)와 종속변수(Y1, Y2) 사이의 상관도(strength of association)를 조사하였다. 

그 결과, 각 변수들 사이에는 모두 의미심장한 수준의 정비례적인 상관관계가 있음이 입증되었다. 즉, 창조선교 프로그램을 경험하면 기원에 대한 세계관이 바뀌어지고, 세계관이 바뀌어지면 성경적 진리에 대한 믿음이 커지기 때문에, 불신자는 복음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되고, 믿는자는 신앙이 성숙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저자의 논문 Biblical and Missiological Foundations and Effectiveness of Creation Evangelism as a Strategy in a Postmodern Context를 참고할 것)

 

5. 결 론

창조선교 프로그램은 사람들의 세계관을 바꾸어 주는데 매우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불신자들이 복음을 쉽게 받아들이도록 하는데 매우 효과적이며, 믿는 자들이 영적으로 성숙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따라서 창조선교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상황에 성경적, 선교학적으로 매우 부합하며 효과적인 선교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끝으로 다음과 같이 교회 지도자들을 위한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성도들을 위해 창조선교 프로그램을 활용하자.

둘째, 목회자, 선교사, 주일 학교 교사, 그 외의 교회 지도자들이 창조선교로 무장하자.

셋째, 창조선교를 신학대학 학생들에게 가르치자.

넷째, 창조선교 단체를 후원하자

 


6.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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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2011 한국창조과학회 국제학술대회논집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115

참고 : 5462|5461|5413|5272|5211|5210|5112|4766|4765|4636|4635|4542|4140|4039|3812|3682|3426|3423|3244|3241|3077|3055|3041|3039|3037|3024|2864|2579|2359|2353|2330|2307|2114|2039|2016|1174

미디어위원회
2011-07-26

과학자의 신학 탐구, 신학자의 과학 탐구 

: 요하네스 케플러와 조나단 에드워즈의 학문과 신앙 

(Scientist's Theological Quest, Theologian's Scientific Quest)

박형진 


요약 : 진정한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학문의 세계를 분리하지 않고 통합적으로 이해하려고 시도한다. 지난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 기독교인 과학자로서 신학적 탐구를 추구한 이도 있고 신학자로서 과학적 탐구를 시도한 이도 있다. 17세기의 천문학자인 요하네스 케플러와 18세기의 신학자였던 조나단 에드워즈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과학자의 신학탐구와 신학자의 과학탐구는 서로의 영역을 침범한 다기보단 학제간 연구를 통해 시각과 문맥을 넓히고 상호교감을 통해 오히려 성경의 해석과 이해에 큰 빛을 던져주었다. 이로 인해 복음의 이해를 더욱 선명하게 고양시키고, 그 영역을 확장시키며, 그 의미를 풍성하게 해준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창조과학활동은 충분한 선교적 의미를 지닌다.

Abstract : Authentic Christian faith demands integration between the Word of God and academic disciplines. Christian history has demonstrated such attempts among scientists' quests for theological truth as well as theologians' quests for scientific truth. Johannes Kepler, the seventeenth-century astronomer, and Jonathan Edwards, the eighteenth-century theologian are such cases. Interplay between science and theology actually brought hermeneutic contributions to the understanding of the Bible with perspectives and contexts expanded and through border-crossing experiences. Thus, the understanding and implications of the Gospel have been enhanced, enlarged, and enriched. In this sense, creation science exerted its missional task.


1. 들어가면서

  한국창조과학회가 창립 30주년을 맞이함에 진심어린 축하와 아울러 학술발표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됨에 먼저 감사를 드린다. 그 30년의 시간은 필자에게도 개인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30년 전 창립이 되던 해 나는 대학에 입학을 하였다. 입시준비로 각박한 고등학교 시절 각별한 의미를 주던 시간이 있었으니 바로 화학시간이었다. 당시 화학 선생님 가운데 한분은 창세기의 창조기사가 자연과학적 사실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역설하고 여러 예를 들어 설명하였다. 교회강단에서 조차 들어보지 못한 내용을 기독교학교도 아닌 학교교실에서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중학교 때부터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고 특히 물리학을 통해 자연과학에 매료된 나에겐 그 시간이 특별한 시간으로 다가왔다. 지나고 보니 당시 선생님은 한국 내에 창조과학이 태동하기도 전에 창조과학을 수업시간에 몸소 주장하던 분이었었다. 자연과학 전반에 걸쳐 관심을 갖고 열심을 내던 나는 과학도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평생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아름다움과 질서를 탐구하는 삶만으로도 충분한 가치와 보람이 있다고 생각하여 그 뜻을 좇아 이학계열로 진학하였다. 당시 캠퍼스에서 열띤 논쟁과 토론으로 등장하던 ‘창조냐 진화냐’라는 세미나가 있을 때마다 거의 빠짐없이 쫓아다녔다. 바로 그해 나의 대학생활은 창조과학회의 태동과 함께 맞물려 간 것이다. 

  그러나 대학 생활 중 나에게는 또 한 번의 지적인 전환이 있었다. 그것은 성경을 접하면서였다. 교회생활을 10여년 가까이 하였고 수많은 설교도 들었지만 정작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군 생활을 하는 기간 성경을 통독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 결심대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읽다보니 이전과는 다른 성경의 깊이와 묘미에 빠져들게 된 것이다. 장엄히 펼쳐지는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전개됨이 보이면서 자연스레 나의 관심은 신학적이며 역사적인 탐구에 빠져든 것이다. 이제 창조의 공간에서 뿐 아니라, 구속의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찾고 싶은 관심과 함께 나의 진로에도 점진적인 변화가 뒤따르게 되었다. 긴 여정의 과정을 거두절미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이제는 선교역사가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하잘것 없는 개인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나의 신앙은 과학과 신학의 길목에 서있었다. 걸어야 할 길은 한길 밖에는 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 갈래길 중 어느 길을 걸었던 결국은 하나님께로 향한 길이었음을 돌아보며 고백한다.

  이번 논고의 제목을 '과학자의 신학탐구, 신학자의 과학탐구'라고 잡아본 것은 개인적인 편력에서만 아니라, 지나온 2000년의 기독교역사를 공부하면서 신앙의 선현들 가운데도 학문과 신앙의 통합적 시도로 과학과 신학간의 인터플레이(interplay)를 한 이들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과연 이러한 상호 교차적 학문행위가 가져다 준 결과는 어떠하였는가라는 질문을 해 볼 수 있다.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열정이 자연과학과 기독교의 지적 유산에 풍성한 결과를 가져다 준 예가 있을까? 그리하여 이번 논고에서 필자는 이러한 기독교의 풍요로운 지적 유산을 남긴 이들을 생각해 보고 그 가운데 두 사람을 뽑아보았다. 한사람은 16세기 독일출신의 수학자요 천문학자로서 근대 천문학 발전에 탁월한 기여를 한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 또 다른 한사람은 18세기 신대륙 뉴잉글랜드의 목사요 선교사요 신학자요 독창적인 사상가였던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이다. 전자는 목회자가 되고자 했으나 천문학자로 생을 살다 마감하였고, 다른 한 이는 목회자의 길을 걸었으나 자연철학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가진 학자였었다.

  이 논문에서는 이 두 영역간의 학문행위가 성경과 복음의 이해에 어떻게 기여하였는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케플러나 에드워즈 모두 다윈의 진화론이 나오기 이전 시대에 있었으므로 그들의 논의는 오늘날과 같은 ‘창조론 대 진화론’적인 특정한 대결의 구도에서 다루어지고 있진 않다. 한 가지 공통적인 것은 두 사람 모두 개신교적 전통에서 성경의 권위를 믿고 있었으며 과학적 사실이 더 엄밀히 밝혀지면 밝혀질수록 성경적 창조를 더욱 잘 증거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이 그들의 학문행위에 박차를 가한 원동력이 되었다. 그 결과 근대과학의 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가져온 발견들을 가져왔고, 그러한 발견은 거꾸로 성경적 사실을 더욱 확실하게 해석해주는 효과를 가져다 준 것이다. 

  모든 진리가 하나님의 진리인 이상 신앙과 학문이 분리될 수 없고, 마찬가지로 과학적 진리나 신학적 진리나 모두 한 진리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학제간 연구는 혼동이나 해악보단 유익을 가져다주어야 할 것이다. 창조과학활동이 선교학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필자는 창조과학이 성경말씀과 복음에 대한 이해에 중요한 유익을 가져다주었다고 보고 논점을 전개해 나가고자 한다.

 

2. 요하네스 케플러의 학문과 신앙

  2.1. 케플러의 배경

  요하네스 케플러는 1571년 독일 바일(Weil) 태생이었고, 그에 관한 전기적인 기록들을 보면 그의 출생배경은 결코 여유롭지 못한 출신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아버지는 용병으로 집을 떠나 일하고 있었으며, 케플러의 어머니는 한때 전쟁 중에 싸우던 남편과 함께 지내려고 자녀를 내버려두기까지 하여 정서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가정의 환경 속에서 자라나질 못하였다. 다행이도 철저한 개신교 신앙을 가졌던 할아버지가 누구보다 그에게 신앙적 영향을 끼쳤으리라 본다. 어린 케플러의 기억 속에 그의 삶을 이끈 몇 가지 일들이 있었으니 그의 부친과 모친에 의해서 어린나이에 볼 수 있었던 혜성과 월식 등은 그로 하여금 결국 천문학의 길로 접어들게 한 우주에 대한 신비와 관심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그는 더구나 조산아로 태어남으로 건강한 체질이 아니었으나 머리는 명석하였고 특히 수학에 있어 뛰어난 재능을 나타내었다. 

  그는 목회자로의 길을 생각하고 개신교학교에서 수학했고, 후에 튜빙겐대학에 들어가 석사과정에서 철학을 공부하였다. 튜빙겐 시절 그는 미카엘 마에스트린(Michael Maestlin)으로부터 수업과목의 일환으로 천문학 수업을 받게 되는데 특히 코페르니쿠스(Copernicus)의 이론을 접하면서 그 월등함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다. 그때까지 케플러는 목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뜻밖에도 졸업을 앞두고 오스트리아 그라츠(Graz)의 루터교학교의 수학교사로 취업을 하게 된다. 사실 그는 이 직위를 꺼림칙한 마음으로 받아들였으나 그것은 그의 타고난 재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준 천혜의 길목이었다. 그는 곧이어 《우주구조의 신비》(Mysterium Cosmographicum, 1596)라는 천문학연구를 첫 출간하게 되는데 이것은 당시 위대한 두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Tycho Brahe)와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의 관심을 끌어 결국 그들과 친분과 교류를 맺게 하는 물꼬를 터주게 해주었다. 케플러는 티코 브라헤의 청에 의해 프라하(Prague)에 있던 관측소에서 그의 조수로 일을 돕게 되고 곧 이어 죽게 된 브라헤의 뒤를 이어 제국의 궁중 수학자가 되었다.

 

  2.2. 케플러의 신학적 탐구

  케플러는 무엇보다 그가 확신하고 있었던 코페르니쿠스의 입장을 성서와 조화시키려는 작업을 시도하였다. 그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와 우주를 지배하는 질서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우주구조의 신비》에서 케플러는 당시에 지구를 포함해서 6개로 알려진 행성들(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과 플라톤의 5개 정다면체(정팔면체, 정이십면체, 정십이면체, 정사면체, 정육면체)사이에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고 가정하였다. 이들 행성이 나열된 우주의 모습은 마치 이들 다면체들을 다른 다면체 안에 들어가게 할 때 각각의 다면체를 감싸는 구형의 천구의 배열과 상응한다고 보고 거기서 행성간의 거리를 측정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적 가정과 실제적인 천문 관측 데이터들이 맞아 떨어지지 않음을 발견하고 이러한 가정을 포기하게 된다. 

  우주와 기하학적 구조사이의 유추를 통해 우주의 신비를 캐어 보려는 케플러의 사변적인 발상은 우주가 기하학적 조화와 질서를 가지고 있다고 본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본다. 케플러는 우주의 구조에 신의 이미지가 반영되어 있다고 보았고 영적인 구조와 물질적 구조사이에도 무슨 상관관계가 있으리라 믿었던 것이다. 특히 행성운동의 중심에 자리 잡는 태양은 태양계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의 원천이라고 생각했다. 이토록 태양을 중심적으로 사고한 데는 적어도 신플라톤주의적 영향 때문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 수학과 천문학의 시행착오 과정에서 케플러는 뜻하지 않은 발견을 하게 되니 곧, 행성들의 공전은 태양을 한 초점으로 도는 타원계도임을 발견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케플러 제1법칙이 된다.

  케플러의 또 하나의 걸작인 《우주의 조화》(Harmonices Mundi,1619)는 위에 언급된 여섯 행성의 운동을 중심으로 천상계의 조화를 음악으로 묘사하려는 시도였다. 그는 태양계의 운동을 네 가지 목소리 (soprano, contralto, tenor, bass)로 나타낼 수 있다고 보고 그 움직임이 연주하는 우주의 교향곡을 들어보고자 했다. 이 책에서 그 유명한 케플러 제3법칙인 행성의 공전주기의 제곱은 궤도의 장반경의 세제곱에 비례한다는 법칙을 도출해낸다. 이는 훗날 아이삭 뉴튼(Isaac Newton)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추론할 때 근거가 되었다. 케플러는 그의 서문에서 이르기를,

  가장 뛰어나고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영감과 열정을 불러 일으켜 주시고 나의 삶을 연장해 주셨습니다… 나는 천체의 운동이 충만한 조화로 움직이고 있음을 관측했습니다...  나는 이집트의 황금기구를 훔쳐 하나님의 성막을 짓는 일에 사용한 것입니다.

  이러한 시도는 초기교부가운데 하나인 오리겐에게서도 볼 수 있다. 즉, 케플러는 신앙의 영역에서 배제되어온 과학이라는 것을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재료로 삼겠다는 신앙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다.

  케플러는 천문학적 지식에 근거하여 성서에 나타난 연대기적 연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특히 1604년 초신성(SN1604)의 출현을 보고 2년 후인 1606년 《뱀주인자리의 발부분에 있는 신성》을 집필하였다. 1613년 출간된 《진실한 1년에 대해》는 마리아로 부터 나신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보충 논문이었다. 1603년 12월 목성과 토성의 회합(conjunction)이 있었고 1604년 9월 26일 화성이 토성과 회합하고 연이어 10월 9일 화성이 다시 목성과 회합하면서 이즈음 상간엔 일부 천문학자와 점성가들은 아마도 혜성과 같은 것이 형성되거나 출몰하게 되는 현상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기대 속에 1604년 10월 10일경 목성보다 더 밝은 별이 프라하의 하늘에서 목격되었다. 당시 케플러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BC 4년이라 주장한 라우렌티우스 수스리가(Laurentius Suslyga)의 견해를 발전시켜 자신의 천문학적 지식으로 실제 그리스도의 탄생을 BC 5년으로 산정하였다. 그리고 목성과 토성과 회합이 그리스도의 탄생 보다 조금 앞선 BC 7년에 일어났던 것으로 계산하였다. 그리고 BC 6년 2월엔 화성이 토성과, 같은 해 3월엔 화성과 목성이 회합하는 일이 발생하였다고 계산하였다. 바로 이시점이 그리스도가 수태된 때로 보며 이즘에 일어난 베들레헴의 별이 동방박사들을 인도하였을 것으로 믿었다. 그러므로 1603년에서 1605년 사이에 일어난 일련의 행성들 간의 회합과 초신성의 출현은 BC 7년에서 BC 5년 상간에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던 베들레헴의 별이 보였던 때와 비슷한 상황을 설명해 준다고 믿고 있었다. 

  케플러는 목성과 토성간의 회합이 이루어지는 패턴의 관측으로부터 산정하기를 매 800년 마다 천체에는 주기가 있었으며 각각의 주기의 시작은 중요한 역사적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고 믿었다. 세상은 창조된 후 그가 살던 때까지 여덟 번의 주기를 갖고 있었으며 첫 번째 주기가 세상의 창조로부터 시작되었다면 노아의 홍수는 세 번째 주기의 시작에, 그리스도의 탄생은 여섯 번째 주기의 시작에 있었다고 설명한다. 일곱 번째 주기의 시작에 해당되는 때(AD 800)에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샤를마뉴대제의 대관식으로 보고 여덟 번째 주기가 시작되던 케플러 당대를 중요한 역사적 전환기로 믿어 그는 사람들에게 각각 그 양심을 돌아보고 회개해야한다고까지 하였다. 그러므로 케플러의 천문학적 관찰로부터 나온바 우주의 연대로 보면 그는 BC 4000년경에 창조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당대의 전통적 입장과 성경의 연대기에 근거한 젊은 지구에 대한 견해를 견지하고 있었다.

 

3. 조나단 에드워즈의 학문과 신앙

  3.1. 에드워즈의 배경

  조나단 에드워즈는 1703년 뉴잉글랜드 코네티컷(Connecticut)에서 태어나 청교도적 전통을 지닌 목회자 가문 속에서 성장하고 예일대학에서 수학하였다. 그의 아버지와 외할아버지는 하바드대학에서 수학한 목회자들이였으며 특히 외할아버지 솔로몬 스토다드(Solomon Stoddard)는 이미 매사추세츠(Massachusetts)주 노스햄프톤(Northampton)에서 영향력 있는 목회를 하고 있었다. 에드워즈의 부인이 된 사라 피에르폰(Sarah Pierpont)의 부친은 예일대학 설립자 가운데 하나였으며 그녀의 모친은 영향력 있는 청교도지도자가운데 한사람인 토마스 후커(Thomas Hooker)의 증손녀였다. 

  대학을 졸업한 에드워즈는 1727년부터 그의 외조부의 교회에서 목회수련을 시작하여 1750년 사임하기까지 20년 이상 목회사역에 전념하게 된다. 이 기간 중 그는 자신의 목회지에서 대각성(The Great Awakening) 현상이 일어남을 목격하게 된다. 즉, 죄에 대한 회개와 중생(당시에는 'New Birth'라고 부름)에 대한 체험이 회중가운데 일어남을 보게 되었다. 1730년대부터 일기 시작하여 1740년대에 이르러 영국으로부터 온 부흥사 조오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에 의해 신대륙을 강타한 1차 대각성운동에 대해 에드워즈는 이를 신학적으로 대변하는 지도자가 되었다. 성찬의 자격에 대한 그의 엄격한 입장 때문에 결국 그가 20년 이상 목회하였던 현장에서 떠나야만 했던 에드워즈 목사는 매사추세츠주 스톡브릿지(Stockbridge)에서 인디언들을 위한 선교사역(1750-1757)에 헌신하게 된다. 그는 1758년 대각성운동의 여파 속에 출범한 장로교학교인 프린스턴대학의 3대 총장으로 요청을 받고 부임하게 되나 아쉽게도 몇 달 안 되어 천연두접종의 부작용으로 인해 아쉬운 생을 마감하게 된다. 과학적 정신으로 접종에 몸소 본보기로 나섰으나 결국 희생자가 된 셈이다. 에드워즈는 설교가요 목회자요 선교사요 신학자요 집필가로서 미국역사상 가장 뛰어난 사상가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3.2. 에드워즈의 과학적 탐구

  예일대학을 다닐 때부터 에드워즈는 자연과학에 관한 노트를 작성하며 자연세계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있었다. 이러한 에드워즈의 과학적 관심은 자연철학에 대해 논한 그의 일련의 노트들, 즉, '자연철학에 관해'('Natural Philosophy”, ca. 1720)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원자에 대해”('Of Atoms”), '무지개에 대해”('Of the Rainbow”), '빛에 대해('Of Light Rays”), '곤충에 대해”('Of Insects”)등과 같은 다양한 소고들이 거기에 포함되어 있다. 자연철학에 관해 논하는 에드워즈의 과학적 탐구영역은 동물의 변형, 식물의 번식, 호흡, 혈액순환, 감각기관, 신경계, 뇌, 정기, 영혼과 육체의 결합, 대기, 구름, 무지개, 번개, 습곡, 계절, 온천, 심연, 유성, 혜성 등등에 걸쳐 다양하고 방대함을 볼 수 있다. 

  물리학의 영역에 있어서 그는 모든 것은 원자로 되어있다고 보는 일종의 원자설을 이야기하고 있고, 뉴튼의 광학을 읽고 빛은 입자로 되어있다고 믿고 있었으며 중력에 관한 안목도 갖고 있었다. 생물학의 영역에 있어서는 곤충, 특히 거미에 대한 예리한 관찰을 하고 있었으며 지질학과 해양학에도 관심을 갖고 논하기를 지구의 지각 밑에 지표면보다 무겁고 밀도가 높은 물의 심연이 있다고 보았고 바다물의 심층부는 짜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하기도 하였다. 에드워즈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러한 방대한 관심의 영역에 대해 언급하기를 그가 아마도 자연과학의 총체적 영역에 대한 야심찬 저술을 계획했었을 것으로도 보고 있다.

  당시 스콜라주의적 전통에서 과학을 가르치던 학부의 한계를 뛰어 넘어 에드워즈는 독자적으로 근대 과학적 자료들(Descartes, Gassendi, Boyle, Newton)을 폭넓게 접하였음을 보여준다. 특히, 로버트 보일과 아이삭 뉴튼과 같은 유신론적 과학자(theistic scientists)들의 글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에드워즈의 과학에 대한 나름대로의 확신이라고 본다. 그는 과학이 더욱 완전해 질수록 그 안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는 더욱 명백히 드러날 것이라 믿고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18세기에 창조과학적 작업을 시도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한 예로 거미에 관해 관찰한 그의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글은 자연과 생태계속에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주로서의 지혜에 관심을 가짐을 보여주고 있다.

  거미에 대한 관찰은 '곤충에 대하여”('Of Insects')라는 글에서 가장 먼저 기록되어 있고 에드워즈는 이 글을 기초로 나중에 소위 거미서한(The 'Spider' Letter)을 쓰게 된다. 이 서한은 1723년 10월 31일 쓰여졌음이 밝혀졌다. 이때 에드워즈는 이미 예일대학으로부터 학사 및 석사학위를 마친 시점이었다. 수령인은 폴 더들리(Paul Dudley)로 당시 매사추세츠주 대법원의 부대법관이었으며 왕립런던학회(Royal Society of London)의 펠로우(fellow)이기도 하였다. 

  에드워즈는 소위 '날아가는 거미”(flying spider)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거미들을 일컬어 경이로운 공중의 곡예사로 묘사하면서 거미줄 치는 과정의 단계들을 상세히 관찰하며 논하고 있다. 나뭇가지에서 밑으로 거미줄로 내려오자마자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동작으로 공중에 달린 채 방향을 바꾸어 또 거미줄을 분비하게 된다. 이렇게 분비된 거미줄이 공기로 인해 부상하여 또 다른 가지나 나무에 닿게 되면 그 감촉이 거미줄을 통해 마치 신경을 통해 감각이 전달되는 것처럼 거미에게 전달되며 거미는 이를 느끼게 된다. 이로 인해 연결된 줄은 다리와 같은 기능을 하게 되고 이를 통해 거미는 이동할 수 있는 것이다. 줄의 길이로 인해 부상력과 낙하력이 결정되기도 한다. 이것은 여러 종류의 거미가운데, 소위'날아가는 거미”(flying spider)라는 종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에드워즈는 이러한 관찰 속에서 창조주의 솜씨를 찬양하고 있다:

  창조주의 지혜는 놀랍기 그지없다. 놀라운 체액을 그 몸에서 외부에 미세한 가닥으로 뽑아내면 공기 중에 부상케 되면서 즉시 건조해 지며 그 목적에 맞게 쓰이는 과정을 보라
  우리는 모든 생물, 심지어는 하찮은 곤충에게까지 생존에 필요한 필수적인 것만 아니라 삶을 여유 로이 즐길 수 있는 것까지도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에드워즈는 또한 생태학적 통찰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그는 관찰하기를 미대륙 동북부인 뉴잉글랜드의 경우, 8월말에서 9월초 날씨가 청명하고 건조할 때 거미를 포함한 곤충들이 내륙에서 바다로 바람을 타고 이동함을 보았다. 에드워즈는 생각하기를 거미들은 바람을 타고 이동하여 종국적으로 바다에 이르러 죽게 된다고 보았다. 바다의 수분에 거미줄은 무거워져 내려 결국 거미들은 물속으로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토록 다음해에 지속할 알을 낳아 내륙에 남겨놓고는 겨울철에 바다로 이르러 생을 마감하는 것은 다른 곤충들에게도 적용된다고 보았다. 에드워즈는 가끔씩 나무보다 높은 높이로 떼 지어 가는 일군의 곤충들을 관찰하면서 자연에 나타난 생태학적 질서와 하나님의 지혜를 언급하고 있다. 즉, 만일 그렇지 않으면 엄청난 양의 번식으로 불어날 곤충들로 인해 애굽의 재앙 이상의 재해를 겪게 될 것이다. 곤충의 양이 매년 일정량 이상 되지 않도록 수학적으로 유지하는 것도 하나님의 놀랍고 오묘한 섭리이다.

 

4. 과학자의 신학탐구, 신학자의 과학탐구

  4.1. ‘회심된’ 학문행위

  지금까지 케플러와 에드워즈의 예를 통해 창조에 관한 깊은 신앙을 지닌 과학자와 신학자의 학문탐구의 예를 살펴보았다. 이러한 일은 자연스러운 신앙의 발로로 이해될 수 있다. 복음으로 거듭난 자는 이 창조세계를 복음의 시각에서 재조명하고 해석하는 일을 하게 된다. 그가 과학자라면 과학을 재조명할 것이고, 역사가라면 역사를 재조명할 것이고 철학자라면 철학을 재조명할 것이다. 이렇게 재조명된 과학과 역사와 철학을 필자는 각각‘회심된’(converted) 과학이요 역사요 철학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토록 회심된 학문행위 (즉  converting science, converting history, converting philosophy)등은 복음으로 거듭난 신앙인이 학문과 신앙을 통합하고자 하는 시도로 지난 2000년간의 기독교역사 가운데 적지 않은 예들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물론 어느 누구도 하나님이 아닌 이상 완벽한 통합은 불가능하다. 아직까지 우리의 과학지식, 역사지식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케플러의 경우 고대와 중세전반을 지배해온 점성술적인 요소도 있었고 철학에 영향을 받아 사변적인 요소도 많았음을 본다. 에드워즈의 경우도 전문적으로 과학훈련을 받지 못한 아마추어적인 수준에서 과학을 이해하였다. 이들 역시 그 시대적 환경에 있었기에 그 한계에 또한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이러한 시도가 어떠한 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을까?

 

  4.2. 학제간 연구(interdisciplinary studies)의 의미

  그렇다면 과학자의 신학탐구와 신학자의 과학탐구와 같이 학제간 연구가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일각에선 신학과 과학의 엄격한 학문적 분리를 주장할지도 모른다. 더구나 오늘날과 같이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시대에는 타학문영역을 시도하는 것은 서로 남의 영토를 침범하는 것과 같이 인식되어 허용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수세기 전만 해도 여러 과학자와 신학자들은 학문과 신앙의 통합을 위해 학제간 연구의 시도들을 하였음을 보게 된다.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학제간의 연구는 오히려 장려되어야 할 일이라고 믿는다. 과연 이러한 학제간의 소통이 우리에게 해악을 가져다 줄 것인지 아니면 유익을 가져다 줄 것인지에 대해 물을 수 있겠다. 필자는 방금 언급한 바와 같이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라는 명제에서 볼 때,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학제간 연구는 결국 유익을 가져다주었다고 주장한다. 먼저 학제간의 연구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시사한다.

  첫째는 시각의 확장(perspectival expansion)이다. 학문을 하는 시각의 범위가 넓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우주선을 타는 경험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자동차로 이 땅을 아무리 넓게 활보하고 다닌다 하더라도 여행자의 시각이 이 땅에서의 수준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지형을 국지적(local)으로 밖에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게 된다면 우리는 높은 고도에 올라 같은 땅을 바라보더라도 다른 차원의 경험을 하게 된다. 즉 시각이 확장된 것이다. 국지적인 시각으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부분을 비행기로 파악하게 된다. 하지만 대기권 안에서만 운항하는 비행기로 지구를 보는 관점은 겨우 지구적(global)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가 우주선을 타고 지구 대기권 밖으로 나가게 되어 우주공간속에 여행을 하면 우리의 시각은 그만큼 우주적(cosmic)인 시각에 놓이게 된다. 현대문명과 과학은 이러한 면에서 우리의 시각을 확장해 주었다. 이러한 시각의 확장에서 이제 성경을 대하면 전에는 깨달을 수 없었던 많은 언급들이 더 분명한 사실로 드러난다. 예를 들어 과학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지구 밖에서 지구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우주공간에 떠있는 지구의 모습에 대해 욥기에서 언급되어진바 "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earth)을 공간에 다시며”(욥26:7)라는 구절은 이제는 단순히 문학적이거나 수사적 표현이 아님이 입증되었다.

  둘째는 문맥의 확장(contextual expansion)이다. 같은 사건이나 사물도 어떠한 문맥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 의미와 모습이 달라진다. 한 가지 문맥이나 시각에서만 보는 것 보단 여러 문맥과 시각에서 살핀다면 좀 더 총체적인 이해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일각에선 성경은 과학책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면서 그 문맥을 신학적인 면으로만 국한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구약성경만 해도 모세오경에서 법을 다루고 있고, 선지서에서 역사를 다루고 있고, 시가서에서 문학을 다루고 있는 만큼 성경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를 총망라한 인간세계의 모든 범주를 다 다루고 있기에 성경을 이해하는 문맥도 그만큼 확장해 볼 때 성경의 이해가 깊어지고 풍요로워 질뿐만 아니라 복음의 의미도 더욱 명확히 드러날 수 있다. 학제간의 연구는 이러한 면에서 성경이해의 폭을 넓히는 공헌을 한다고 본다. 창조과학의 공헌은 성경을 과학적인 문맥에서 제외시켜 단지 종교적, 문학적인 면에서만 보려했던 해석의 제한성을 뛰어넘어 여러 과학적 반증을 통해 그 과학적 접근방법이 해석학적으로도 타당함을 보여주고 있다. 성경은 비과학적(심지어 비역사적)이라고 주장하는 신학적 해석의 방법론에 대해 과학적인 문맥에서의 해석이 오히려 성경의 사실성을 더 확증해 줄 수 있다고 본다. 

  셋째는 경계간 넘나들기의 경험(border-crossing experience)이다. 이것은 마치 타문화 경험(cross-cultural experience)을 통해 얻어지는 것과 같은 효과라 본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의 관찰에 의하면 인간은 타문화 경험을 통해서 비로소 자기정체성(self-identity)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선교사들의 경험과도 일치한다. 타문화 권에 들어가 지내다보면 전에는 노출되지 않았던 새로운 상황 속에서 타문화만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론 자신이 자라고 속해왔던 문화를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정체성의 자각은 곧 자신의 한계를 본다는 것과도 같다. 전에는 자기경험만이 다인 줄 알고 우월감과 이데올로기로까지 높아진 것에 도전을 받고 수정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16세기에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비롯한 여러 과학적 발견들은 당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교회의 잘못된 전통과 가르침에 대해 수정을 요구하는 도전이었다. 이러한 역동적인 인식과정은 학제간의 연구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과학과 신학이라는 두 영역의 경계선을 넘나들면서 비로소 신학은 신학의 한계를 과학은 과학의 한계를 보게 되며 수정적(corrective) 시각을 갖게 될 것이다.

 

  4.3. 창조과학의 선교적 의미

  선교의 정의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진리로 선포하는 것이라 할 때 창조과학의 공헌은 성경의 이해와 해석에 있어서 또한 복음을 이해하고 증거하는데 있어 유익을 가져다주었다. 그 유익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표현해 볼 수 있겠다.

  첫째, 복음의 이해가 더 ‘풍요’(enrichment)로와 진다는 것이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창조의 진리는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이끌어 준다. 우리는 진리를 도적질 하여 우리를 빈곤케 하며 결국은 멸망과 죽음을 가져다주는 거짓된 이론을 경계해야 한다.

  둘째, 복음의 이해가 더 ‘확장’(enlargement)되어 진다는 것이다. 복음은 모든 창조의 영역에 선포되어지고 적용되어져야 한다. 단지 개인의 영혼 구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된 인간에게 주신 소위 ‘문화명령’(창 1:26-28)대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영역에서 청지기로서의 사명도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복음의 이해가 더 ‘선명’(enhancement)하여 진다는 것이다. 과학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성경의 진실성은 부정되어 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긍정되어 진다. 창조와 부활의 사실에 있어서 더욱 그럴 것이다. 욥은 창조주 하나님을 경험함으로 비로소 깨달음을 얻고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다(욥 42:1-6 참조).

  욥기에 하나님에 의해 친히 언급되어진 창조세계의 섭리와 질서는 현대과학을 무색케 한다(욥 38-41 참조).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와 고대인의 지혜에서 배울 것들이 많음을 본다. 현대과학문명은 우리에게 많은 지식을 자랑할지 모르지만 놀랍게도 미개하였으리라 여겨지던 고대세계에서 우리를 놀라게 하는 고대인의 지혜를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시대적으론 더 앞설수록 진리에 대해 많은 지혜가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지식과 지혜가 더 발전할 것이라는 진화론을 반박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바로 현대과학이 겸손해져야 할 부분이라고 본다.

 

5. 나가면서

  30년 전 시작되었던 한국창조과학회는 1960년대와 1970년대 한국교회가 부흥의 시기를 거쳐 양적 성장을 한 이후 1980년대에 들어가는 문턱에 소개되었다. 창조과학은 이때부터 성경공부를 중심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은 한국교회의 질적 성장에 나름대로 기여를 해왔다. 젊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캠퍼스를 중심으로 확산된 창조과학회 활동과 기독교세계관 운동은 무엇보다 개혁주의적(Reformed) 세계관에 기초한 평신도운동이었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이 운동이 목회자나 신학교 주도적이었다기 보단 대학생과 전문지식을 갖춘 교수들을 중심으로 번져나갔다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한국기독교사에 있어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며 그 가치와 공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들 활동의 공헌은 학생운동, 학원운동으로 한국교회의 다음 세대를 향한 지적, 영적인 기반을 제공해 준 것이다. 특히 성경을 비과학적이라고 여겨 진리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에게 ‘진리와의 만남’(truth encounter)이라는 구도를 통해 복음을 전해왔다는 점이다. 또한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였으나 다분히 감성적이고 이원론적이고 균형 잡히지 못한 자들에게 통합적 신앙관을 제공해줌으로 그간 부흥과 성장가도로 치우쳐온 한국교회의 방향을 다시 성경적인 방향으로 조명해주었다. 구속의 메시지로만 한정된 복음을 창조의 영역으로까지 끌어올리고 회복시켜 선포했다는 점에서 지역교회(modality)가 담당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선교단체가 지닌 소댈리티(sodality)적 기능을 담당한 것이다. 이상의 논의에서 창조과학은 충분히 선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고 그 역할을 해왔다고 할 수 있겠다. 앞으로 창조과학의 제2의 세대를 맞으며 향후 30년도 변함없이 하나님이 성경대로 창조주 되심을 선포해야 할 것이다. 이에 발맞추어 꾸준히 전개될 과학기술의 발전과 발견들은 성경의 진리를 더욱 확증시켜줄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과학의 이름으로 추방된 하나님이 과학의 이름으로 다시 모셔 들여져야 할 것이다.

 

6. 참고 문헌

1. DuBose, Francis M., ed. Classics of Christian Missions. Nashville, TN: Broadman, 1979.
2. Great Books of the Western World, Volume 15, Ptolemy, Copernicus, Kepler. Chicago: Encyclopaedia Britanica, 1952.
3. Hall, Edward T. The Silent Language. Garden City, NY: Doubleday and Company, 1959.
4. Hummel, Charles E. The Galileo Connection: Resolving Conflicts between Science & the Bible. Downers Grove, IL: IVP, 1986.
5. The Works of Jonathan Edwards, Volume 6, Scientific and Philosophical Writings.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80.
6. 김성환. 『17세기 자연철학』. 서울: 그린비, 2008.
7. 김정훈, 『이브의 배꼽, 아담의 갈비뼈』. 서울: 예영, 2004.


출처 - 2011 한국창조과학회 국제학술대회 논집

미디어위원회
2011-07-01

하나님이 주신 두 권의 책

이웅상 


       하나님은 자신을 인간에게 계시하는 두 권의 책을 주셨다. 하나는 신학에서 말하는 일반계시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이 하나님이 창조자 되심을 계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성령의 감동을 통한 인간의 문자로 계시된 성경을 의미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성경은 윤리, 도덕적으로는 위대한 책일지 몰라도, 과학적으로는 무엇인가 문제가 많은 책이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다. 특히 중세 때 카톨릭 교회의 과학에 관한 부정적 태도가 큰 원인을 제공하였고, 오늘날에 와서는 학문의 영역, 특히 과학과 신앙의 영역을 따로 구분하고 서로 건드리지 말자 하는 이원론적인 사고가 만연하게 되었다. 즉 성경과 과학의 영역을 구분하여 별개의 것으로 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옳지 않은 자세이다. 신앙과 학문은 별개의 것일 수가 없다.  비록 성경은 과학이 태동하기도 전에 쓰여진 오래 된 책이지만, 성경과 과학의 관계는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갈등의 관계가 아니다. 이는 오늘날 진화론 일색의 교육이 사람들을 세뇌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초과학적인 기적들을 포함하고 있어 과학으로 다 설명할 수 없을 뿐이지, 많은 내용들이 현대과학과도 자연스럽게 화합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창조섭리 안에서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왜냐하면 우주만물을 지으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과학의 탐구영역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 세계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러한 사실은 기독교인들의 믿음에 의한 것만이 아니고, 실제로 과학적으로 증명된 많은 증거들이 있다. 성경과 과학의 조화를 잘 보여주는, 과학이 밝혀내기 수백 년 내지 수천 년 전에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과학적 진리들을 몇 가지 살펴보도록 하자.

 

1. 창세기의 유전 법칙

  멘델은 1866년에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우성의 법칙, 분리의 법칙이란 유전법칙을 발견했다. 그러나 당시의 과학자들은 이 놀라운 유전에 관한 창조의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50년 가까이 사장해 놓았었다. 보라색의 꽂을 피는 완두와 흰색의 완두를 교배하면 제 1대에선 보라색만 나오는데, 그 이유는 보라색이 우성이요  흰색이 열성이기 때문이며, 이를 우성의 법칙이라 한다. 그러나 열성인 흰색도 같은 열성인자와 만나면 흰색이 발현 되므로, 제 2대에선 우성과 열성이 3:1로 분리되어 나온다. 이를 분리의  법칙이라 한다. 과학자들이 20세기에 와서야 겨우 이해되기 시작한 이 이론이 3450년 전에 기록된 창세기에 언급되어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창세기 31:12]  ”가라사대 네 눈을 들어 보라.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 아롱진 것이니라.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

야곱은 외삼촌이요 장인인 라반이 자기에게 주기로 약속한 아롱진 양, 점 있는 것, 검은 양을 많이 낳게 하기 위해 주위의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암수가 교배하는 구유에 세워 보게 한다. 이 결과로 얼룩진 것, 점 있는 것과 아롱진 양을 많이 얻는데 성공함으로, 유전 보다는 환경의 변화가 후손의 형질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신했다. 그러므로 야곱은 라반이 열 번이나 약속을 변역하면서 지키지 않지만 동일한 수고를 반복하였던 것이다(창 30:37-43). 이러한 생각은  라마르크와 다아윈과 같은 19세기의 진화론자들과 같은 생각이었다. 그러나 성경은 라반이 열 번이나 약속을 지키지 않지만, 그 때마다 야곱의 몫이 많이 태어나게 된 것은  야곱이 유도한 환경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라반의 악한 행위를 보시고 빼앗아 주신 것을 꿈에 천사를 통해 알려 주신다 (창 31:7-12). 라반은 의도적으로 위의 열성형질을 갖고 있는 양을 따로 분리하고 흰 양만을 야곱에게 맡겼지만, 교배하는 수양은 모두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 아롱진 것이 되도록 하여 이런 열성형질의 양이 많이 나오도록 하신 것이다. 사람이 보기에는 흰 양들이지만 그 속에 숨어 있는 열성인자를 하나님이 보시고 주로 교배하도록 하셨던 것이다. 물론 19세기 진화론자들이 믿고 있던 용불용설과 같은 이론 들은 후천적 획득형질이 유전하지 않은 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멘델의 유전법칙이 알려지면서 수정 되었다. 하나님이 꿈을 통해 야곱에게 보여주신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은 유전형질은 다른 성경에도 언급되어 있다.

[시편 139:16]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이 말씀은 생명을 창조하시고 그 모든 형질(유전인자)을 기록하신 하나님이 이미 우리를 보고 계시다는 표현인 것이다.

 

2. 전형설과 유전자설

  부모에게 있는 쌍가풀과 귀의 모양이 어떻게 자녀에게 유전될까?  사람은 사람만 낳고 돼지는 돼지만 낳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로 16세기까지 과학자들은 정자 속에 이미 다 형성된 작은 아이가 있는 것으로 설명해왔는데, 이를 Preforemed theory 라고 한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르러 범유전자설이 제기되면서 온 몸에 있는 세포가 정자와 난자를 만드는 생식세포에 특별한 정보를 주어 부모를 닮은 후손을 생산하는 것으로 믿게 되었다. 그러나 1953년에 DNA의 구조가 밝혀지면서 모든 정보는 ATCG 라는 네 종류의 염기의 배열순서에 따라 다른 종류의 아미노산이 결정되고 이들의 순서에 따라 만들어진 단백질에 의해 여러 형질이 결정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과정을 종합해 보면  DNA에 기록된 유전정보는 핵에서 정보RNA에 모든 정보를 전달하여 세포질에서 리보솜에 의해 단백질을 합성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부모에게 있던 정보가 후손에게 DNA를 통해 전달된 후 형질로 나타나게 되어 닮게 되는 것이다.

[시편 139:13]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3000년 전에 기록된 시편 139:13절은 나의 모든 장기(원어의 켈라요츠는 신장을 의미)가 모태에서 하나님이 조직하셨다는 말씀을 통해 16세기까지 과학자들이 믿고 있던 Preformed theory가 옳지 않음을 밝히고 있다. 위에서 이미 언급한 시편 139:16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모태에서 조직하시되 이미 기록된 정보대로 지으신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현대생물학이 밝힌 모든 형질에 필요한 정보는 DNA에 기록되어 있다는 유전자설인 것이다.

 

3. 지구의 구조 

  이제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지구에 관한 몇 가지 사실들을 생각해 보도록 하자.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지구는 둥글게 생겼으며 허공에 떠서 태양주위를 돌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언제부터 이해하기 시작했을까? 오랫동안 과학자들은 지구는 평평하며, 태양이 지구주위를 도는 것으로 이해해 왔다, 이를 천동설이라고 하며 중세의 교회들도 이렇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1543년 코페르니쿠스가 지구는 둥글며, 태양주위를 돌고 있다는 지동설을 주장하게 되었다. 이 새로운 이론을 뉴튼은 17-8세기에 두 물체는 질량의 곱에 비례하며, 거리 제곱에 반비례하는 힘이 작용한다는 중력의 법칙으로 훌륭히 설명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다면 성경은 과연 지구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이사야 40:21-22]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냐.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의 거민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 같이 펴셨으며 거할 천막같이 베푸셨고”

놀랍게도 위 성경의 ”땅 위 궁창”이라고 한 궁창은 원형의 모양을 의미한다. 그래서 NIV 영어성경은 ”above the circle of the earth”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 궁창은 잠언 8:27에도 말씀하고 있다. 또한 욥기 26:10에는 ”수면에 경계를 그으셨으되...”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경계라는 말의 의미가 역시 '원'이라는 의미이다.

[욥기 26:7-8] ”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공간에 다시며 물을 빽빽  한 구름에 싸시나 그 밑의 구름이 찢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과학자들이 18세기에 와서야 정확히 이해한 지구가 허공에 떠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공간에 다시며'하는 말은 허공에 띄워 놓으셨다는 말로 NIV 영어 성경은 이 의미를 ”suspends the earth over nothing”으로 표현하고 있다. 지동설이란 표현과 만유인력의 법칙과 같은 과학적 표현은 성경에 없지만, 2700년 전에 기록된 이사야와 3800 여 년 전에 기록된 욥기의 말씀들이 지구에 대해 이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것을 히브리서 1:3절은 만물을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으로 붙들고 계시다고 표현해 주고 있을 뿐이다.

 

4. 공기의 무게 발견 

  욥기 28장25절에 보시면 ”바람(공기)의 경중을 정하시며, 물을 되어 분량을 정하시며” 라는 놀라운 기록이 있다. 물리, 화학, 생물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욥기에 나오는 중에 공기도 무게가 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과연 과학자들이 공기의 무게가 있다는 사실을 언제 알기 시작했을까? 16세기에 이르러서야 갈릴레오가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을 그의 제자인 토리첼리가 1640년에 공기의 무게(압력)을 재는 기계인 압력계를 최초로 만들어, 수은으로 치면 760mmHg에 해당되는 무게로 이를 1기압이라고 하며, 이 단위를 자기 이름을 붙여 torr(토르)라고 하였다. 16-17세기에 알게 된 공기에 관한 사실을 성경은 이미 수천 년 전에 밝히고 있는 것이다.

 

5. 해로의 발견 

  시편 8편 8절에 보면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서, 바다에는 '해로'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 해양학의 아버지 마태 마우리 박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던 과학자였다. 이분이 한 때 병에 걸려 장기간 누워있을 때, 그의 부인이 성경을 읽어 드리곤 했는데, 마우리 박사는 이 시편 구절을 듣다가 큰 충격을 받고 영감을 받아서 ”내가 해양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였는데 해로라는 것이 있다는 것은 처음 들어보았다. 그런데 성경이 그렇게 말씀 하니, 병이 나으면 한 번 조사해 보아야 겠다” 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병이 나은 후 연구한 결과 세계 최초로 1860년 해로를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마우리 박사의 고향인 미국 버지니아 주의 리치몬드 시에 있는 마우리 박사의 기념비문에는, ”해양학의 아버지 마태 마우리는 시편 8편 8절을 읽고 해로가 있음을 깨달아 최초의 해양지도를 만들었다.”라고 씌어 있다. 이 예는 성경이 비과학적이고 신화나 설화를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라, 앞서가는 과학자를 더 앞서가게 하는, 우주와 자연에 있는 창조의 놀라운 진리를 시대를 초월해 선포하고 있는 놀라운 책임을 보여주는 좋은 경우라고 볼 수 있다.

 

6. 한 명의  하와 

  성경은 인류의 기원에 대해서도 놀라운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 흔히 인류는 황하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 문명 등 여러 문명으로 각각 다르게 시작하였다고 믿고 있었다. 과학적으로 인간은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진화를 통해 현생인류로 진화되었다는 다지역 진화설을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에 이르러 인류는 한 지역에서 한 여인에 의해 시작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가능하게 된 이유는 바로 미토콘드리아 때문이다. 세포 속에는 핵이 있고, 핵 안에는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유전정보가 DNA 라는 형태로 들어 있다. 그런데 핵 바깥 즉 세포질 내에 있는 에너지 만드는 공장인 미토콘드리아 안에도 독자적인 DNA 가 따로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이를 '미토콘드리아 DNA(mitocondrial DNA)' 라고 하는데, 이것을 이용해서 인류의 기원을 조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정보는 정자와 난자가 반반씩 기여를 하는데 반해, 미토콘드리아의 DNA는 난자에게서만 받는다. 그러므로 여러 인종의 미토콘드리아 DNA의 특징을 조사해 올라가면 모계혈통을 통해 기원을 밝힐 수 있게 된다. 이 연구 결과로 흑인이나, 황인종, 백인이건 관계없이 모든 인류의 여자 조상은 단 한 사람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라는 것을 미토콘드리아 DNA 조사를 통해 증명하기에 이른 것이다. 20세기 말에 이르러 서야 유전공학이 발견한 놀라운 개가이었다. 이를 'African Eve' 혹은 ’Mitochondrial Eve' 설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3450 년 전에 기록된 창세기 3장 20절에 보면 ”아담이 그 여자의 이름을 하와라 하였으니 하와는 모든 산자의 어미가 되었음이더라”며 모든 사람들은 하와의 후손임을 선포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성경과 과학의 관계는 사람들이 생각하듯 갈등의 관계가 아니라, 단순히 진화론의 영향과 잘못된 과학관으로 인해 오해하고 있을 따름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로 기록된 책으로 때로는 초자연적인 기적을 기록하고 있으며, 어떤 것은 그 당시 과학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창조의 신비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 창조의 신비한 능력과 신성(롬1:20)이 현대과학을 통해 계속 밝혀짐으로 성경과 과학은 자연스럽게 잘 화합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창조섭리 안에서 잘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김만복
2011-03-18

방사능 vs 창조/진화


      최근 일본의 유례없는 대지진과 쓰나미의 영향으로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안타까움과 불안에 휩싸이고 있다. 대재앙의 결과로 일본내 수많은 인명과 물적 손실뿐만아니라 원자력발전소가 손상을 받아 방사능이 일부 누출되어 일본뿐만아니라 어쩌면 모두에게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방사능이 유출되면 왜 인체에 위협이 되는 것일까? 그것은 방사능이 인체의 유전정보에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방사능 입자들은 인체세포의 핵안으로 침투하여 DNA 유전정보에 손상을 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돌연변이는 결국 암들의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돌연변이는 정말로 인체에 유해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은 아메바로부터 오랜 시간에 걸쳐 돌연변이, 적자생존 등을 거쳐서 어류, 양서류, 원숭이조상 등을 거쳐 현재 인간으로 진화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진화론적 과학관에 따르자면 돌연변이를 유발시킬 수 있는 방사능의 유출은 어쩌면 인류의 진화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해석될 수 있으나, 현재 어떤 과학자도 이번의 방사능유출이 인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방사능의 영향을 피하고자 온갖 노력을 하고 있는 실상이다. 그래서 교과서에서 열심히 가르치고 있는 진화론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참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비과학적인 가설인 것이다. 

성경적 창조론에 따르면 인간은 태초(약 6,000여년 전) 6일째에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 유전적으로 완벽하게 피조되었으며 (창세기 1장 27절 :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아담의 원죄 이후 죽음을 겪는 불완전한 존재로 되어버렸다. 에덴동산에서 쫒겨난 이후에는 방사능 등의 각종 돌연변이 유발적 요인들에 의해 인간은 질병과 죽음을 겪는 존재가 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인간의 죽음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이를 믿는 피조물은 원죄이전의 죽음이 없는 존재로서 회복되었다. 

금번 방사능 유출사건을 계기로 그리스도인들은 오히려 창세기 3장의 말씀을 묵상하고 경이로운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과 섭리에 순응하며 하루빨리 일본땅이 회복되도록 중보기도하여야 할 것이다.

창세기 3장 17-19절 :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구분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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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249|2398|2400|2407|2739|3095|2564|2560

Creation Moments
2010-10-29

당신이 들어본적이 없는 가장 흥미로운 소리 

(The Most Interesting Sounds You've Never Heard)


”구름이 물을 쏟고 궁창이 소리를 내며 주의 화살도 날아갔나이다” (시편 77:17))

우리가 사는 곳은 소리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들 중 일부는 비행기가 이륙할 때 나는 소리보다 더 시끄러울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소리들을 전혀 듣지 못한다. 인프라사운드라고 불리는 이것은 실제적인 소리로 장비만 있으면 기록할 수 있다.

인프라사운드의 파장은 인간이 들을 수 있는 가장 낮은 파장인 20헤르쯔보다 낮은 소리로 파장은 길고 수백 심지어 수천 마일까지도 전달될 수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밤 하늘을 색칠하는 그 아름다운 북극 빛(Northern Lights) 또한 인프라사운드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 소리는 들어오는 태양입자들이 공기를 바깥쪽으로 밀어내면서 만들어진다. 우리가 이 인프라사운드를 들을 수는 없지만, 이것은 분명히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영국의 과학자들이 콘서트홀에 인프라사운드를 만들어내는 기계를 설치하고서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 지정한 순간에 인프라사운드를 첨가시켰다. 연주회가 끝난 후 청중들에게 특정 부분의 음악을 들었을 때의 감정들 혹은 연주회 동안에 어떤 이상한 감정을 느꼈는지에 관하여 질문하였다. 과학자들은 인프라사운드가 음악을 듣는 동안 사람들이 느끼는 어떠한  감정의 상태라도 더욱 강렬하게 만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북극 빛을 바라볼 때 무언가가 들리는 듯한 느낌이 들거든 그것은 아마도 당신이 감지하는 인프라사운드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창조에 관하여 더 많이 알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하심이 얼마나 경이로운지를 발견하게 된다.

 

Notes: Science News, 1/10: 2004, pp. 26-28, Kate Ramsayer, 'Infrasonic Symphony.'

Copyright 2010 Creation Moments. All Rights Reserved.


번역 - 김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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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3838|3112|3229|2913|2863|2602|2447|968

Creation Moments
2010-10-08

데이비드 리빙스턴의 사자 

(David Livingstone’s Lion)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6~7)

여기에 의료선교사였던 데이비드 리빙스턴 박사가 1872년에 썼던 일기를 통하여 오늘날 우리에게 말한다. 그는 ”이빨과 발톱이 붉은” 사자의 표적이 되었던 경험을 토대로 하나님의 자비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나는 고함 소리를 들었다. 내가 돌아보려고 반쯤 몸을 돌렸을 때 나를 덮치려고 달려드는 사자를 보았다. 내가 약간 높은 곳에 있어서 사자가 내 어깨를 물었고 우리 둘은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내 귀 가까이에서 무시무시하게 으르렁거리면서 이 사자는 사냥개가 쥐를 흔들듯이 나를 흔들어 댔다. 이 흔듦이 고양이가 쥐를 처음 흔들었을 때, 쥐가 느낄 것 같은 것과 유사한 멍청한 상태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을 의식은 하고 있으나, 고통이나 공포를 느낄 수 없는 일종의 몽롱한 상태였다. 마치 부분적으로 클로로포름 마취 하에서 모든 수술을 보고 있지만, 칼을 느낄 수 없는 환자가 설명하는 것 같은 것이었다. 이 순간의 상태는 어떠한 정신적으로 진행된 일련의 과정이 아니었다. 그 흔듦이 공포를 제거했으며, 그 맹수를 바라보는 동안에 어떠한 공포에 대한 여유를 주지 않았다. 이 특이한 순간은 아마도 육식동물에 의해 잡아먹히는 모든 동물에서 만들어질 것인데, 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죽음의 고통을 줄여 주시려는 은혜로우신 창조주의 자비이다.” 

 

 References: Livingstone, David, 1872. Adventures and Discoveries in the Interior of Africa (Philadelphia: Hubbard Brothers. pp. 96, 102, 103)

Copyright 2010 Creation Moments. All Rights Reserved.


번역 - 김계환

링크 - http://www.creationmoments.com/content/david-livingstones-l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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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갑
2010-06-28

창조론 시대를 향하여


     과학사를 공부하다 보면 과학자들의 연구결과가 발표 당시에 인정받지 못하다가, 수 년내지 수십 년이 지난 후에 인정받는 경우를 보게 된다. 멘델의 법칙도 이러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1866년 멘델이 완두의 유전현상에 관한 결과를 The Brunn Societyfor Study of Natural Science의 회의에 발표하였을 때, 모든 참석자가 이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당시에 멘델이 사용했던 정량적이고 실험적인 방법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멘델의 연구보다 7년 전인 1859년에 다윈이 진화에 관한 이론을 발표하여 이미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즉 멘델의 결과는 다윈의 내용과 상반되는 창조론을 지지하는 결과였던 것이다.


자신의 연구업적이 인정받지 못한 채 쓸쓸하게 발길을 돌렸던 멘델은 결국 1884년 죽으면서 ”나의시대는 올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의 예언은 그대로 적중하였는데 1902년 네델란드의 De Vries, 독일의 Correns, 오스트리아의 Tschermak 등 세 사람은 각각 독립적인 연구를 하다가 자신들의 연구결과가 30여년 전에 멘델에 의해 이미 밝혀진 내용이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들 세 사람은 자신들의 연구결과인 유전의 기본 법칙에 멘델의 이름을 붙여서 ”멘델의 유전법칙”이라고 함으로써 드디어 멘델의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따라서 1902년을 ”멘델의 법칙 재발견의 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비록 멘델의 유전법칙이 1902년 이후에 인정되었다고 해도 진화론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이미 지난 40여년에 걸쳐 다윈의 진화론이 너무나 많이 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유전 법칙의 핵심인 창조가 받아들여지기에는 시기적으로 늦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우리로서는 통한의 7년인 셈이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만약 멘델의연구결과가 다윈의 진화론보다 7년 앞서 발표되었더라면 어떠한 일이 일어났을까? 아마도 진화론이 발표되었을 때 아무런 지지를 받지 못하였을 것이고 현재는 창조론이 창조법칙으로 인정되고 있지 않을까?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러한 이유 때문에 헌신할 명분이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든다. 창조섭리를 증거하기 위해서 각자의 전공분야를 통하여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고 있다는 사실이 감사할 따름이다. 지금은 우리가 진화론과 싸우기 위해서 힘들여 노력하지만 우리의시대(창조의 시대)는 올 것이다. 우리를 이렇게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창조과학회를 위해서 헌신할 것을 다짐해 본다. 할렐루야!!!


구분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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