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역사의 일곱 C : (4) 혼돈 (Confusion)
어린이를 위한 성경적 창조론 4
복음 역사의 일곱 C는 Creation(창조), Curse(저주), Catastrophe(격변), Confusion(혼돈), Covenant(언약), Christ(그리스도), Consummation(완성)이다. 그것들은 세상과 우리들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대홍수 이후에 세상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노아와 그의 가족뿐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의 후손들이 전 지구상에 널리 퍼져 살기를 원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자녀를 많이 낳으라고 말씀했다. 그래서 노아의 가족은 많은 자녀를 낳았고, 그들은 또 많은 자녀를 낳았고, 또 그들은 계속해서 많은 자녀를 낳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수백 명이 되었고, 그리고는 수천 명이 되었다. 그들은 방주가 머물렀던 아라랏 산을 떠나 이동하여 시날이라고 하는 넓은 평지에 도달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지구의 여러 지역에서 살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다.
꼭대기가 하늘에 이르는 탑
대신에 그들은 서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그들은 진흙을 이용하여 벽돌을 만들었는데, 벽돌은 가마에서 구워 단단하고 강했으며, 역청을 이용하여 벽돌끼리 서로 달라붙게 했다. 위로, 위로, 위로 탑이 올라갔으며, 더 높이, 더 높이, 더 높이 올라갔다. 하나님은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을 보셨는데,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므로 왜 그들이 그것을 하는지를 아셨다. 그분이 하실 수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당시에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조상인 노아가 했던 것과 동일한 언어를 말했다. 그래서 어느 날 하나님은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다른 언어를 말하도록 하셨다. 갑자기, 한 가족의 사람들은 다른 가족의 사람들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의 성읍과 탑을 계속해서 건설할 수 없게 되었다.
가족들과, 서로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들은 하나의 그룹으로 모였다. 그리고 각 그룹은 동서남북으로 흩어져서, 가능하면 다른 그룹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멀리 갔다.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은 그분께 불순종한 사람들을 심판하셨을 뿐 아니라 그들을 지면에서 멀리 흩어지게끔 하셨다. 와우! 하나님은 무엇이든 일어나기를 원하시는 일은 일어나게 하실 수 있다. 그것도 매우 쉽게 그리고 아무도 막을 수 없도록.
그 도시는 바벨이라고 알려졌다. ‘바벨(babel)’이라는 말은 ‘혼돈’이라는 히브리 단어와 발음이 비슷하다. 영어에서는, 이제 사람들이 말하는 언어를 하나님이 ‘떠듬거리게(babble)’ 만드셨다고 말할 수 있다.
오늘날의 언어는 모두 바벨에서 시작되었는가?
언어는 사람들이 새로운 단어를 추가하거나 단어에 새로운 의미를 줄 때 변화한다. 오늘날에는 약 7,000개의 언어가 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십여 개의 ‘어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인도-유럽 어족, 뉴기니 어족, 호주 원주민 어족 등이 있다. 이들 어족은 서로 간에 닮은 점이 없지만, 각 어족 내에는 유사한 언어들이 많이 있다. 하나의 어족 안에 있는 모든 언어는 하나님이 바벨에서 만드신 언어 중의 하나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것일 것이다. 이들 바벨 언어가 오늘날 세상에 있는 7,000개의 언어로 확장된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진화론에서 요구되듯이, 짐작되는 어떤 동물 조상으로부터 언어가 발생했는지 설명하는 데에 매우 큰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동물들은 그들이 내는 소리와 그들의 얼굴 표현 및 몸의 자세, 그리고 그들의 냄새를 통하여 의사소통을 할 뿐,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 같이 단어와 문장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특별히 그들은 작은 부분의 언어를 큰 부분으로 결합하는 우리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 예를 들면, 가장 똑똑한 침팬지라 할지라도 ”그 남자는 소년이 소녀에게 책을 주는 것을 보았다”라는 문장을 이해할 수 없지만, 당신은 매우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소년이 소녀에게 책을 준다”는 부분이 '그 남자가 보았다”라는 부분 안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인간과 동물 사이에 왜 그런 큰 차이가 존재하는가? 그 이유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으며, 하나님은 우리에게 동물에는 없는 말이라는 은사를 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간에 말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도로써 하나님께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 정직한 자의 기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신다(잠언 15:8)고 말하고 있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온 세상의 사람들은 왜 그렇게 다른가?
각각 다른 그룹의 사람들이 바벨에서 멀리 떠나면서, 다른 언어를 말할 뿐 아니라, 또한 피부색이 어둡고 밝은 것, 눈의 색깔이 서로 틀림 등의 다른 특징들을 가졌을 것이다. 어두운 피부색은 멜라닌이라는 색소로 기인한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것을 약간 가지고 있다. 어두운 피부의 사람들은 단지 밝은 피부의 사람들보다 그것을 조금 더 가지고 있을 뿐이다. 더 어두운 피부를 가진 사람들은 볕에 타는 것이나 피부암 등에 덜 걸리기 때문에, 열대지방에서 더 잘 살아남는다. 더 밝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은 보다 추운 기후에서 더 잘 살아남는다.
그런데, 이것이 이전에 없던 새로운 특징이 생겨나는 ‘진화’란 말인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첫 번째 조상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는데, 그들 안에는 이미 그러한 특징들에 대한 지시, 즉 유전자가 이미 프로그램 되어 있었다. 그들은 피부에 멜라닌을 많이 만드는 유전자와 작은 양의 멜라닌을 만드는 유전자를 다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이들 유전자를 다 가지고 있을 때는 중간 갈색의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노아의 후손의 일부가 이들 유전자의 일부를 잃었다. 어두운 피부의 사람들은 작은 양의 멜라닌을 만드는 유전자를 잃어버렸다. 밝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은 많은 양의 멜라닌을 만드는 유전자를 잃어버렸다. 사람들의 집단이 크다면 누군가가 유전자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유전자를 더 안 잃어버릴 수 있다. 그러나 작은 그룹 안에서는, 일부 유전자를 영원히 잃어버릴 확률이 더 높다.
바벨을 떠나 각각의 어족에 있는 사람들은 같은 그룹 내에서 결혼하는 경향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그룹에 유리한 것으로 보이는 그러한 특질들을 보존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것은 오늘날 세상에 있는 다양한 그룹의 사람들 간에 차이를 초래했다. 어떤 그룹의 사람들은 건설 기술이 더 좋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이 이집트 및 세상의 다른 곳에 정착한 이후에 피라밋을 건설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인 성경은 세상의 진정한 역사를 드러낸다. 이 중의 한 부분이 바벨에서의 언어의 혼돈이다. 이것은 오늘날 세상에 있는 많은 ‘인종’, 혹은 사람 그룹 및 여러 어족을 완벽히 설명해 준다.
번역 - 이종헌
링크 - ,
출처 - Creation ex nihilo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837
참고 : 5832|5816|5813|4400|4382|4996|2545|4557|5337|4281|4237|5349|4228|4119|736|1427|512
복음 역사의 일곱 C : (3) 격변 (Catastrophe)
어린이를 위한 성경적 창조론 3
복음 역사의 일곱 C는 Creation(창조), Curse(저주), Catastrophe(격변), Confusion(혼돈), Covenant(언약), Christ(그리스도), Consummation(완성)이다. 그것들은 세상과 우리들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그들에게 먹지 말라고 명하셨던 열매를 먹음으로써 하나님께 불순종한 이후, 하나님은 그들을 에덴동산 밖에서 살도록 내보내셨다. 거기서 그들은 자녀들을 많이 낳았고, 그들이 자라나서 또 자녀들을 많이 낳았고, 그들이 또 자라나서 또 많은 자녀들을 낳았다. 이 사람들 대부분이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고 순종하지도 않았으며, 항상 악한 것만 생각하고 행했다. 상황이 매우 나빠져서, 하나님은 사람 만드신 것을 후회하셨다. 약 1,500년 후에 단 한 사람 노아만이 하나님을 예배했으며, 그분께 순종했다.
방주를 짓다
어느 날 하나님은 노아에게, 전 지구를 덮을만한 홍수를 보내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거대한 방주를 지으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일부 동물들과 노아의 가족이 대홍수 이후에 땅에서 다시 번성하도록 그들을 살려주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 방주의 크기는 약 140 × 23 × 13.5 미터 였다. 이것은 축구장보다 길고, 4차선 도로 폭 정도이며, 4층 건물보다 약간 더 높다. 3개의 층으로 되어 있으며, 모든 동물들과 그들이 먹을 음식을 위해 많은 방들이 있고, 비를 막기 위한 지붕, 그리고 전 길이에 걸쳐 윗부분에 빛과 신선한 공기가 들어올 수 있는 창들이 있었다.
거기에 있던 사람들은 노아와 그의 아들들이 방주를 지을 때 거대한 방주가 모양을 갖춰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방주가 완성되었을 때 대홍수가 올 것이고, 방주에 탄 사람들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노아의 경고를 아무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모두 방주에 들어가다!
여러 해가 지난 이후에,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하나님은 동물들과 새들을 노아에게 보내셨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한 쌍씩, 그러나 몇몇 종류는 일곱 쌍씩(제물로 사용할 수 있는 ‘정결한’ 동물들 - 나중에 히브리인들은 이들 동물만 먹을 수 있었다) 들어갔다. 그들 모두를 위한 공간이 있었을까? 그렇다. 동물들 모두가 수천 마리밖에 안되었다. 그 이유는 방주에 들어간 많은 동물들이 대홍수 이후에 많은 종들로 분화됐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리, 코요테, 딩고, 자칼, 그리고 당신이 애완동물로 키우고 있을 개 등은 방주에 탔던 한 쌍의 동물로부터 나왔다. 그리고 사자, 표범, 치타, 호랑이 등은 모두 방주에 탔던 한 쌍의 동물로부터 나왔을 것이다.
또한 노아는 몇몇 종류의 공룡들을 한 쌍씩 태웠을 것인데, 하나님은 그들의 조상을 창조주간 6일째에 다른 동물들과 함께 창조하셨다. 방주에는 제일 큰 공룡도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완전히 자라기 이전에 어린 상태에서 방주에 탔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방주에는 약 50종류의 공룡들이 탔을 것이다. 물론, 노아는 물고기, 고래, 게와 같이 물속에서 사는 동물은 태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곤충 또한 코로 숨을 쉬지 않기 때문에 태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창 7:22). 어쩌다가 방주에 딸려 들어온 것도 있었겠지만 어떤 것들은 방주 밖에서도 생존할 수 있었다. (곤충들과 식물들은 홍수 물위에 떠다니는 거대한 식물 매트 등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캥거루나 펭귄처럼 오늘날 멀리 떨어진 지역에 살고 있는 동물들은 어떻게 방주에 탈 수 있었을까? 노아의 대홍수는 지구 표면을 변화시켰다. 대홍수 이전에는 대륙이 지금처럼 일곱 조각이 아니라, 하나로 되어 있었다. 따라서 모든 동물들이 노아가 사는 곳과 같은 지역에 살고 있었다.
전 지구가 물로 뒤덮였다.
노아와 그의 가족과 모든 동물들이 방주에 탔을 때, 하나님은 물을 보내셨다. 먼저, 그것은 '(모든) 큰 깊음의 샘”들인 바다와 땅 아래 깊은 곳에 있던 거대한 저장고로부터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40일 낮과 40일 밤 동안 내린 역사상 가장 강력한 비였다! 마른 육지에서 코로 숨을 쉬고 살았던 모든 생물들이 죽었다.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었던 사람들만 살아남았다(창 7:22-23).
대홍수는 약 1년간 지속되었다. 그렇다면 그 많던 물은 어디로 갔는가? 여기에 생각할 무언가가 있다. 육지 표면이 완전히 평탄했다고 생각해 보라. 모든 산들이 평평했고 해양저는 똑 같은 깊이였다고 생각해 보라. 그렇다면 오늘날 바다에 있는 물로 지표면을 덮으면 깊이가 3km가 된다. 그러므로 전 지구를 뒤덮을 만큼 충분한 물이 지구에 있다. 단 과거에는 높은 산들이 없었고, 평탄했어야 한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나이다”(시 104:8). 이것은 그 당시에, 오늘날 우리가 보는 산들이 지금의 높이로 밀려 올라가도록 만든 거대한 움직임이 지구에 있었음을 나타낸다. 에베레스트 산과 다른 많은 산들 꼭대기에 조개껍질이 있다는 것은 그들이 한때 노아의 홍수 시기에 물 아래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모든 융기는 대륙을 뒤덮은 물들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깊은 해양저로 흘러들어가게 했다. 그것은 육지 여러 곳의 골짜기들을 파내는 등 지구 표면에도 거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물들이 충분히 빠져 나갔을 때, 노아의 방주는 ‘아라랏 산들’ 위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오늘날 그곳이 어디인지 우리는 모른다.
그들 모두 밖으로 나오다.
마침내 땅이 마르고 식물이 다시 돋아나자, 하나님은 노아에게 모든 동물과 새들을 데리고 방주에서 나오라고 말씀하셨다. 때를 맞추어, 그들 모두는 가족을 이루었으며, 가족이 또 가족을 이루고, 그 가족이 또 가족을 이루어, 대홍수 때 죽었던 동물과 새들을 대신했다. 그들은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을 향해 이동했다. 이들 중 일부는 궁극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호주라고 알고 있는 땅까지 이르렀다. 또 다른 사람들은 땅으로 이어진 육지다리를 건너 북아메리카까지 갔으며, 시간이 흘러 남아메리카까지도 내려갔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는 대홍수 이후에 빙하기가 도래되어 거대한 양의 물이 육지 위에 얼음으로 갇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해수면을 낮추었고, 긴 육지다리가 드러남으로써 동물들이 건널 수 있었다.
노아는 대홍수 동안에 그들을 보호해 주심을 감사하여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다. 그 때에 하나님은 특별한 약속을 하셨다. 즉, 다시는 전 지구적 대홍수를 보내어 모든 땅과 그 위에 살고 있는 모든 생물을 멸망시키지 않을 것을 약속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신 이 약속의 증표로 비 온 뒤에 구름 사이에서 우리가 종종 보는 무지개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셨다. 그때로부터 무지개는 하나님의 이러한 약속에 대한 표징이 되었다. 그때 이후로 국지적 홍수는 많이 있어왔지만, 전 지구적 홍수는 결코 없었다.
우리는 그러한 대홍수가 있었다는 것을 안다. 첫 번째 이유로는 그것이 성경이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그것이 남긴 증거들로 확증된다. 전 세계에서 대륙들을 뒤덮고 있는 두터운 퇴적지층들 속에서 무수히 많은 동물과 식물 화석들이 발견된다. 진흙과 모래가 물에 빠진 동물들을 급속히 뒤덮어서, 그들이 썩거나 다른 물고기에게 잡아먹히기 전에 그들을 잘 보존했다. 이렇게 파묻힌 동물들은 화석이 되었고, 오늘날 땅에서 발견되고 있다. 지구 육지 표면의 4분의 3에 화석들이 들어있다. 우리가 오늘날 보고 있는 대부분의 석탄은 4,500년 전에 노아의 대홍수 때 묻혔던 식물로부터 형성된 것이다.
전 세계적인 홍수 심판이 다시는 있지 않을 것이지만, 우리 각자는 자신들이 살았던 삶의 방식에 대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당신 주변에는 이것을 모르거나 믿지 않는 친구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노아의 시대에 곧 대홍수가 있을 것임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과 같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심판을 막을 수는 없다.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우리는 노아 때와 같은 방주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우리에게는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 그분은 우리의 죄에 대한 형벌을 갚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고, 죽음에서 살아나셔서, 그분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들의 구세주가 되셨다.
부록 : 노아의 대홍수가 전 지구를 덮었는가?
그렇다. 성경이 그렇다고 말한다. 그것이 지역적 홍수였다면, 새들은 멀리 안전한 곳으로 날아갈 수 있었을 것이며, 노아와 그의 가족과 동물들은 지역적 홍수가 일어나기 전에 걸어서 모두 안전한 곳으로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동물들이 지역적으로 일부만 죽었다면, 다른 곳에는 그들을 대체할 동물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노아의 방주가 전혀 필요 없었을 것이다.
노아는 방주 안에 1년 10일 동안 있었다. 지역적 홍수는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홍수 전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예상할 수 있듯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노아와 그의 가족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노아의 홍수가 지역적 홍수였다면, 하나님이 다시는 그와 같은 홍수를 내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것은 잘못된 것이며 어기시는 일이 된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도 지역적인 홍수는 계속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약속을 결코 깨뜨리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맞다. 노아의 대홍수는 전 지구를 덮었었다.
번역 - 이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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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reation ex nihilo Vol. 35(2013), No. 3, pp.24-27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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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새해 아침에
예수님이 오실 날이 이제 또 한 해가 가까워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래 지금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셨고, 33년 전에 한국창조과학회를 이 땅에 세워주셨습니다. 지금까지 김영길 초대회장님을 비롯하여 많은 분들의 헌신으로 창조과학회가 발전해 왔고 전국에서 창조과학 사역이 불일 듯 일어나고 있습니다.
매일 드리는 9시 합심기도와 주중 중보기도, 기도월력으로 섬기는 기도와 함께 매년 두 차례 진행되고 있는 워크샵을 통해 창조과학 동역자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역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고 있습니다.
작년 한 해를 돌아보면 감사한 일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선교사와 목회자를 위한 창조과학세미나를 통해 많은 선교사님들과 목회자들께서 창조과학 사역이 선교와 목회 현장에서 유용하게 활용되길 소망합니다.
매년 개최되는 창조과학 국제학술대회도 각 학술대회마다 다양한 열매들을 주셨는데, 작년에는 한동대학교에서 열려 젊은 대학생들에게 풍성한 잔치가 되었습니다.
매년 창조과학으로 선교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는 중에 작년은 중국, 일본, 네팔과 몽골 등에서 창조과학 선교활동이 이어졌고, 향후 선교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헌신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미국에서 열린 국제창조과학학회에 우리 학회를 소개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고, 미국을 비롯하여 호주, 일본 등의 창조과학 사역자들과 긴밀한 협조와 동역이 이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내부적으로도 새로운 사역에 맞는 조직들이 만들어져 ‘대외협력원’이 발족되었고, 출판회사도 ‘착한과학’으로 명칭을 개칭하여 도서 뿐만 아니라, 다양한 창조과학 정보를 교회와 세상에 전파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작년부터 시작된 군선교사역도 활성화되기 시작하여 복음을 한 번도 듣지 못한 청년들이 창조과학을 통해 복음을 듣게 되고, 성경에 의심을 가졌던 기독청년들이 변화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작고 연약한 교회를 섬기기로 한 결정을 금년부터는 실천에 옮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창조과학회와 교회의 미래는 청소년들에게 달려있다고 하는데, 매년 개최되고 있는 청소년 창조과학캠프와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착한과학운동은 새로운 소망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 이 땅에 창조신앙을 회복시키는 일은 계속되겠지만, 우리 창조과학 동역자들은 지치지 않고 주님의 부르심에 따라,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올 해도 전진할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 청소년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하나님의 위대한 길을 선택해 나아가며, 젊은 군인들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만나 인생을 드리고, 주의 복음을 위해 외롭게 선포하던 작은 교회가 위로와 힘을 얻는 소망을 품습니다. 사역의 현장마다 주님이 주시는 감동과 축복과 귀한 만남들이 이뤄지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2014년 새해를 맞이하여 창조과학 동역자 모든 분들, 새해 주님의 은혜와 축복이 가정과 섬기시는 일터와 교회, 그리고 창조과학 사역에 더욱 넘치게 임하시길 기도드립니다.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821
참고 :
복음 역사의 일곱 C : (2) 저주 (Curse)
어린이를 위한 성경적 창조론 2
복음 역사의 일곱 C는 Creation(창조), Curse(저주), Catastrophe(격변), Confusion(혼돈), Covenant(언약), Christ(그리스도), Consummation(완성)이다. 그것들은 세상과 우리들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아담과 하와는 그들의 사랑스런 정원으로 된 에덴에서 사는 것이 대단히 즐거웠다. 거기에는 맛있는 과일과 견과류 및 여러 종류의 멋진 먹거리들이 많이 있었다. 온순한 티라노사우루스를 가볍게 치는 등의 일이 어땠을 지를 상상해 보라. 그러나 그런 일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았다.
하나의 규칙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셨을 때, 그분은 그에게 단 한 가지의 규칙을 주셨다. 아담은 동산에 있는 모든 것을 먹어도 되었으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으면 안 되었다. 그렇게 하는 경우에 그는 죽을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경고하셨다. 그 과일에 독이 있었던 게 아니다. 죽음은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에 대한 벌이었다.
그 이전까지 아담과 하와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 나무의 열매를 먹는다면 그들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죄’라고 한다.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 사랑하는 것을 택하기를 원하셔서 그들에게 선택권을 주셨다. 그 나무는 시험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선택할 만큼 그분을 사랑했을까 아닐까?
사탄의 전술
어느 날, 하와는 아담 말고 다른 누군가가 그녀에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 음성은 뱀이 있는 방향에서 들려왔다. 그것은 마귀인 사탄이었다. 그는 이렇게 물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와는 대답하기를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지만 단 하나는 예외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녀는 하나님이 그것을 만지지도 말라고 말씀하셨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무를 만지지 말라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아마도 그것은 아담 스스로 그 나무를 만지지 말 것을 경고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사탄이 하와에게 말했다 :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그러나 사탄의 말은 거짓이었다. 사탄은 하나님의 적이었으며,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부정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시도했다. 세상에서 첫 번째 유혹이 바로 하와를 대상으로 했던 것이며, 그 내용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진리를 의심하게 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사탄은 성경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과 성경이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에 대해 의심을 던진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서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라는 것을 부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탄이 이 일을 수행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은 진화의 개념을 이용하는 것으로써, 이는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 없이 저절로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존재하시며, 그분은 우리의 창조주이시고, 성경에서 그분은 우리에게 그분이 우리로 하여금 따르기를 원하시는 규칙들을 주셨다. 여기에는 진리를 말하는 것과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과 우리가 대접 받고 싶은 대로 다른 사람을 대접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하나님의 규칙을 위반하는 것을 ‘죄’라고 부른다.
하나님이 존재하시지 않는다면 죄와 같은 것은 없을 것이며, 우리는 옳고 그른 것을 우리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죄와 같은 것이 없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왜 그분의 규칙을 지키지 않았냐고 물으실 수도 없다. 또한 우리는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분이 필요하지도 않다.
TV에서 누군가가 ‘진화는 사실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때, 당신은 당신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당신이 왜 그렇게 말하는지 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진화는 사실이 아니다.”
사탄이 약속한 것이 아니다.
하와는 나무를 살폈다. 그것은 참으로 아름다웠으며, 열매는 달콤해 보였다. 그녀는 하나님처럼 지혜롭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지를 생각했다. 그녀는 열매 하나를 따서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 아담에게도 주어서 그도 열매를 먹었다.
오호라. 결과는 그들이 예상한 대로가 아니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했다는 것을 갑자기 인식했다. 그리고 이제는 선과 악의 차이를 알고 느끼게 되었다. 그들은 죄의식을 느끼고 부끄러워했다.
이것은 사탄이 약속했던 것처럼 진기한 결과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라, 사탄이 거짓말 한 것임을 밝혀주는 일이었다. 죄는 항상 이와 같다. 우리는 잘못된 것임을 아는 어떤 일을 행할 때, 우리가 그것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것을 행하고 나면,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부끄럽고 후회하게 만든다. 이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졌다.
그날 늦게 하나님은 동산에 오셨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그분을 피해 나무 사이에 몸을 감추었다. 이것은 선한 일일 수 없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피하여 숨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은 ”네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셨다. 이는 하나님이 그들을 찾으실 수 없어서가 아니라, 그분은 그들이 스스로 나오기를 원하셨다. 대신에, 그들은 나와서 그분을 만나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물론 하나님은 그들이 행한 일을 알고 계셨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그들의 죄를 자백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들은 누군가를 비난하려고 했다. 아담은 하나님께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아담은 하와만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위해 하와를 만들어주신 하나님까지 비난했다. 그리고 이어서 하와는 사탄이 그녀에게 말할 때 이용한 뱀을 비난했다.
벌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정의로우시므로, 죄에 대해서는 항상 벌이 뒤따른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이제 땅이 저주 아래 있다고 말씀하셨다.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다. 그리고 아담은 일생동안 땅을 파고 수고하여야 먹을 음식을 생산할 것이다. 그리고 가장 최악의 벌은 하나님이 경고하셨듯이 그가 죽을 것이며, 그의 몸은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하와에게, 그녀가 행한 일 때문에, 자녀를 출산하는 고통이 크게 더할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녀의 딸들은(그리고 그녀들의 딸들은) 여전히 남편을 갖기를 원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대신에 사탄을 따르기로 선택했으므로, 우리 모두도 같다. 우리 모두는 옳은 것을 행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바라며 태어난다.
하나님은 여전히 아담과 하와를 사랑하시듯이,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당신도 역시 사랑하신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들에게(그리고 우리에게) 사탄에 대항하는 한 선지자의 형태로 약속을 주셨다. 하와의 후손 중에 주 예수 그리스도가 어느 날 오셔서 이 땅에서 사실 것이다. 그분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으로, 우리의 죄에 대한 값을 지불하심으로써, 사탄의 일을 멸하실 것이다. 이 일은 약 2,000년 전에 일어났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으로부터 그들을 가리기 위해 무화과 잎을 입었지만, 하나님을 그것을 대신하여 아담과 하와를 위해 동물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히셨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한다. 따라서 최소한 한 동물이 죽었어야 한다 - 그들의 죄 때문에.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 밖에 두셨다. 이는 그들로 하여금 생명나무라고 하는 다른 나무를 먹지 못하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들이 그렇게 했다면 그들은 죄를 가진 상태로 영원히 살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천사로 하여금 그들이 돌아오지 못하도록 지키게 하셨다. 그날부터 아담과 하와는 더 이상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갖지 못했다. 그리고 비록 그들이 여러 해를 더 살기는 했지만, 그들의 몸은 오늘날의 우리와 마찬가지로 죽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알듯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 11:25).
번역 - 이종헌
링크 - http://www.creationmagazine.com/creation/2013vol35iss2?pg=26#pg24
출처 - Creation ex nihilo Vol. 35(2013), No. 1, pp.24-27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816
참고 : 5813|5832|5837|5844|5875|5965|6033|6083|5643
복음 역사의 일곱 C : (1) 창조 (Creation)
어린이를 위한 성경적 창조론 1
복음 역사의 일곱 C는 Creation(창조), Curse(저주), Catastrophe(격변), Confuion(혼돈), Covenant(언약), Christ(그리스도), Consummation(완성)이다. 그것들은 세상과 우리들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우주에 있는 모든 것들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자, 성경은 모든 것을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그분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기 위해 일 주일을 사용하셨다. 우리는 이 주간을 ‘창조 주간’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실제 지구가 회전한 날이 여섯 번 포함되어 있으며, 쉬신 날이 하루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성경 창세기 1장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첫째 날
처음에는 하나님 외에 아무 것도 없었다. 그리고 창세기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고 시작하고 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이 일을 행하셨을까? 단지 그것이 일어나라고 명령하심으로 이를 행하셨다. 와우, 얼마나 놀라우신 하나님이신가? 모든 것을 그분 말씀의 능력과 권위만으로 창조하시다니!
하나님이 이것을 행하실 때, 다른 일도 같이 일어났다. 즉, 시간이 시작되었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빛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창 1:3). 이 빛은 태양빛이 아니다. 하나님은 넷째 날 이전에는 태양을 만들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빛의 근원으로서 태양 없이도 빛을 창조하실 수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천국에서는 등불이나 태양이 필요 없다고 말씀하신다.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계 22:5).
첫째 날의 빛이 회전하는 지구에 대해 ‘낮’과 ‘밤’을 제공하였다. 그래서 그 첫 번째 낮과 바로 그 첫 번째 밤이 각각 약 12시간씩이었다. 그것은 장구한 기간의 시대도 아니고, 수십억 년 전도 아니다.
둘째 날
창조 주간의 둘째 날에, 하나님은 식물이 안에서 자라고 동물과 사람이 그 위에서 살 수 있도록 지구를 준비하시는 일을 계속하셨다. 이를 위해 지구 주위에 대기를 만드셨다. 그 대기에는 우리가 숨 쉬는 공기가 포함된다. 그것은 산소, 질소, 그리고 소량의 다른 가스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 모두는 당신이 살 수 있도록 적절히 혼합되어 있었다. 대기에는 수증기가 있어서 응축되어 구름을 형성한다.
하나님이 그것이 일어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났다. 그것은 화산 폭발이나, 남조류가 수억 년 동안 산소를 만들었다거나, 어떤 사람들이 추정하고 있는 다른 것들의 결과가 아니다.
셋째 날
하나님이 지구를 창조하셨을 때, 지구는 완전히 물로 덮여 있었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래서 창조 주간의 셋째 날에 하나님은 마른 땅이 드러나라고 명령하셨다. 일부분의 해양저가 가라앉아서 땅에서 물이 물러갔다. 지구에 언덕과 평평한 땅이 형성되었다. 그때 대륙이 몇 개 있었는지 우리는 모른다. 성경은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창 1:9)라고 말씀하고 있으므로, 아마도 대륙은 하나였을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보고 있는 일곱 개의 대륙들 일부는 노아 홍수의 결과로 나중에 형성되었을 것이다. 그때도 다시 한번 지구가 완전히 물로 덮였었다.
또한 셋째 날에 하나님은 땅이 모든 종류의 초목을 내라고 명령하셨다. 여기에는 식물과 씨와 과일과 나무가 포함되어 있어서 동물들이 서로를 잡아먹는 대신에 그것들을 먹을 수 있었다. 또한 사람은 곡물과 풀과 채소와 과일을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를 기쁘게 하기 위해 모든 종류의 아름다운 꽃과 향기 나는 식물들이 있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이들 각각을 그들의 종류대로 만드셨다고 말씀하고 있다(창 1:11~12). 이것은 식물들은 어떤 한 식물에서 다른 식물들로 진화된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넷째 날
넷째 날에 하나님은 태양과 달과 태양계의 행성들뿐만 아니라, 우주안의 수십억의 은하계들 속에 수십억의 별들을 창조하셨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그것들을 만드셨다고 말씀한다. ”밤과 낮을 나뉘게”, 그리고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그리고 ”땅을 비추게” 하셨다(창 1:14~18). 하나님은 단지 이 모든 것이 존재하라고 명령하심으로써 이것을 행하실 수 있었다. 하나님이 그것들을 만드신 또 다른 이유는,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기”(시 19:1) 위함이다.
별들은 빅뱅으로부터 수십억 년에 걸쳐 형성된 것이 아니다. 무언가가 폭발하여 모든 것이 되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폭발하는 모든 에너지가 어디서 왔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또한 그런 폭발이 어떻게 해서 우리가 우주에서 보고 있는 모든 정교한 법칙들과 질서를 만들어 낼 수 있었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당신도 알다시피 폭발은 질서를 만들어내지 못하며, 오직 큰 혼란과 무질서만을 가져올 뿐이다. 그들은 왜 우주가 존재하는지도 설명하지 못한다.
다섯째 날
다섯째 날이 되기까지 하나님은 땅이 생명을 지탱할 수 있도록 준비하셨다. 따라서 다음으로 하나님은 바다가 물고기와 함께, 물에서 사는 서로 다른 모든 동물들로 충만하라고명령하셨다. 여기에는 고래와 사경룡 같은 큰 어류와 크릴과 동물성플랑크톤 같은 작은 어류가 포함된다. 하나님은 또한 이 날에 나는 생물, 즉 새, 박쥐, 벌, 익룡 등을 창조하셨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이 모든 물고기와 모든 새들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으며, 그 모두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명령하셨다고 말씀한다. 이것은 각 생물들이 자기 자신을 닮은 아기 생물을 만들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들 중 어떤 하나도 다른 어떤 것으로부터 진화되지 않았으며, 그들 중 어떤 것도 다른 어떤 것으로 진화하지 않았다.
여섯째 날
여섯 째 날에 하나님은 땅에게 육지동물을 ”내라”고 명령하셨다. 여기에는 요즘 가축이라고 부르는 모든 종류의 동물들이 포함된다. 예를 들면, 애완동물과 양과 소 등. 또한 요즘 야생동물이라 부르는 모든 것들, 즉 코끼리, 호랑이 및 캥거루가 포함된다. 그때는 그들 중 어떤 것도 사납지 않았으며, 그 어떤 것도 서로를 먹지 않았다. 그 날에 하나님은 기어다니는 것과 공룡도 만드셨다. 성경은 하나님이 모든 동물을 ”그 종류대로” 만드셨다고 말씀하며, 우리는 이미 이 말의 의미를 알고 있다. 공룡이 알을 나면 거기서 아기 공룡이 태어나지, 아기 새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다. 그분은 흙으로부터 아담을 만드신 다음 아담의 옆구리로부터 하와를 만드셨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자녀를 낳아서 땅의 모든 곳에 사람이 있게 하라고 말씀하셨다(창 1:28). 이것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합하는 결혼이라는 것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의미한다. 가정 안에서 이런 방식으로 자녀가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
따라서 아담과 하와는 당신의 증, 증, 증, 증, .... 증조부 증조모이다. 그들은 원숭이로부터 진화하지 않았고, 따라서 당신도 원숭이로부터 진화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고, 따라서 당신도 역시 ”하나님의 형상”대로이다. 이것은 당신이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할 수 있음을 의미하며, 당신은 하나님께 직접 기도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드릴 수 있으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다. 동물들은 그분의 형상대로 만들지 않으셨으므로, 이런 일을 전혀 할 수 없다.
주 예수님 역시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실 뿐 아니라, 인간이 되셨으며, 완전한 하나님-인간으로 죄 없이 사셨다. 십자가에서 그분의 죽으심은 우리의 죄값을 지불하시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시기도 하며, 우리 중의 하나이기도 하신 분만이 그 일을 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창조 주간에 만들어 내신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목적에 완벽했으며 아름다웠다. 아무것도 나쁘거나 악하지 않았다. 동물이나 사람에게는 죽음이 없었다. 돌연변이도 없었고, 생존경쟁도 없었으며, ‘적합하지 않은(열등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일곱째 날
오늘날 칠 일의 한 주는 어디서 왔는가?
그것은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왔다. 하나님은 6일에 걸쳐 엿새 동안에 모든 것을 창조하셨으며, 일곱째 날에는 쉬셨다. 그분은 피곤하지는 않으셨지만(히브리 단어의 의미는 ”멈추다”이다), 우리를 위한 본보기로 이것을 행하셨다. 그분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던 십계명에 그것을 포함시키셨다. 네 번째 계명은 칠일 중 하루를 안식하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출 20:8~11).
예수님 - 하나님의 말씀
창조 주간 동안에 일어난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명령 혹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에 일어났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칭 중의 하나가 ”말씀”(요 1:1~14)이라는 것을 아는가? 신약은 우리에게 말씀하기를, 하나님이 그분의 아들 예수님을 통하여 우주를 만드셨으며(히 1:2), 모든 것들이 예수님에 의하여, 그리고 예수님을 위하여 창조되었다(요 1:3, 골 1:16)고 말씀한다.
우리는 우주 먼지로 만들어졌는가?
어떤 사람은 우주가 빅뱅으로 시작되어 다량의 수소가스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이 수소가 별들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이 별들 중 일부가 폭발하였으며, 이로부터 사물을 만들 수 있는 다른 모든 물질들이 형성되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들은 지구에 있는 모든 것들이 별에서 형성된 물질, 혹은 ‘우주먼지’로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지구를 만드셨으며, 바다도, 우리에게 필요한 공기도, 흙에서 자라는 식물들도 모두 하나님이 별들을 만드시기 이전에 만드셨다고 말씀하신다.
빅뱅이 있었는가?
진화론자들은 우주가 수십억 년 전에 빅뱅으로부터 시작했다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것도 없는 무(nothing)’에서 ‘모든 것(everything)’은 고사하고, 어떻게 ‘어떤 것(something)’이 될 수 있는지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모든 것에 목적이나 이유는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빅뱅이 ‘작동’하는 데에 필요한 충분한 중력을 제공하기 위해서 ‘암흑물질(dark matter)’이라는 보이지 않는 물질을 고안해야만 했다. 그리고는 충분한 ‘추진력’을 제공하기 위해 ‘암흑에너지(dark energy)’라는 것을 고안해야만 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창세기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 말씀의 능력과 권위는 모든 것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훨씬 더 잘 설명해 준다. 그리고 그 목적도 말이다. 즉, 그것은 아름다운 우주 안에서 우리를 살게 하기 위한 장소를 준비하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이었다.
진화는 사실인가?
아마도 당신은 진화론자들이 TV 프로그램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거나, 그들이 쓴 책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과거에 일어난 일을 알고 싶다면, 단 하나의 방법은 거기에 있어서 일어난 일을 목격했던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우주가 시작되었을 때, 어떤 진화론자도 거기에 없었지만, 하나님은 계셨다. 따라서 하나님은 증인이시다. 사실상 그분은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 당신은 창세기 1장에서 그분이 무엇을 하셨으며, 왜 그 일을 하셨는지에 대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우주는 수십억 년이 되지 않았다. 모든 창조는 대략 6천 년 밖에 되지 않았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어느 관점이 옳은가?
비록 진화론자들이 진화론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지만, 그들은 그들 자신의 문제에 대해 답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성경에 기록된 기사가 어떻게, 그리고 왜 모든 일이 일어났는지를 훨씬 더 잘 설명해 준다. 하나님을 믿으라. 그러면 많은 과학자들이 깨달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진실된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해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번역 - 이종헌
링크 - http://creation.com/seven-cs-1
출처 - Creation ex nihilo Vol. 35(2013), No. 1, pp.24-27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813
참고 : 5816|5832|5837|5844|5875|5965|6033|6083|5643|3384|4039|1984|2497|3728|5559|2535|5122|5906|4140|3771|4628|4501|5110|2864|5859|4643|4069|3722|6332
미국인의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한 여론조사
: 진화론을 믿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Urgency & Opportunity: Poll Shows Evolving Trends)
Brian Thomas & Mic
최근의 한 설문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37%는 성경의 기록처럼 하나님께서 최근 과거에 인간을 창조하셨음을 믿고 있었다.[1] 그리고 25%는 인간은 수백만 년에 걸쳐 진화해왔지만, 그 과정은 어떻게든 하나님의 손에 의해 인도되었다고 믿고 있었다(유신진화론). 이 두 그룹을 합하면, 미국인의 62%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음을 믿고 있었다. 조사자의 17%는 ”모르겠다”로 응답했다.
그러나 미국인의 21%는 인간은 하나님 없이, 수십억 년에 걸쳐서 진화된 존재라고 믿고 있었다. 이 수치는 비교적 낮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전에 비하면 조금 늘어난 수치이다. 2004년에는 단지 13%가 인간은 오직 자연적 과정을 통해 진화된 존재라고 믿고 있었고, 2008년에는 단지 15%가 믿고 있었다.
이러한 증가 추세는 계속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18~29살 그룹에 있는 미국인들의 31%가 인간은 하나님의 간섭 없이 하등한 생물로부터 진화한 존재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진화론을 믿는 자들의 증가 추세는 수십 년 동안 공교육에서 진화론만이 일방적으로 가르쳐지고 있는 현실 상황을 반영하고 있을 수 있다. 1998년의 한 여론 조사는 미국의 선도적 과학자들의 72%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으로 보고했다. 이는 1933년에 비해 4%가 증가한 수치이다.[2] 이것이 반기독교적 교육가들이 미국의 젊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십 년 동안 진화론 세뇌 교육을 시켜온 결과일까?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무엇을 위해 살다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에 대한 인류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하나님을 배제한 무신론적인 진화 이야기는 구체적인 증거나 건전한 이유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파멸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그 연구의 다른 세부 사항들은 yougov.com에서 볼 수 있는데, 앞으로의 일들을 예측해볼 수 있게 한다.[3] ”모르겠다”라고 응답한 사람들 중 가장 높은 19%가 비판적인 18~29살의 그룹에서 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들이 창조-진화 논쟁에 대한 양측의 의견을 들어보려 하지도 않을 것임을 가리킨다. 또한, 유대교, 이슬람교, 불교를 믿고 있는 많은 수의 응답자들은 각각 32%, 36%, 40%의 비율로 ”모르겠다”로 답했다.
이러한 세속화 경향은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어린 학생들과 젊은이들에게 진화론의 허구성과 창조주 하나님을 전하는 것이 매우 긴급한 과제임을 가리키고 있다. 긴급함은 곧 기회이다.
References
1.Hallowell, B. Did God Really Create the Universe and Mankind? Yahoo News. Posted on yahoo.com July 23, 2013, accessed July 24, 2013.
2.Larson, E.J., and L. Witham. 1998. Leading scientists still reject God. Nature. 394 (6691): 313.
3.Henderson, B. Belief in Evolution up Since 2004. YouGov. Posted on today.you.gov.com on July 22, 2013, accessed on July 26, 2013.
*관련기사 : 영국인들 절반 이상 진화론 안 믿어 (2009. 2. 2. 국민일보)
http://www.kukinews.com/news/article/view.asp?page=1&gCode=int&arcid=0921178374&code=41131111
캐나다인 60% 창조론 수용 (2007. 7. 5.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070705098500009
美 국민 78%는 창조와 신 인정해 : 진화론은 15% 신뢰... 2년 전보다 창조론 지지 늘어 (2012. 6. 6. 기독일보)
미국 목회자들, 대체로 진화론 거부 (2012. 1. 19. 크리스찬투데이)
http://www.christiantoday.us/19652
기독교사 97% '진화론만 가르치면 안돼' : '진화론과 비판 관점 동시에 가르쳐야' (2009. 7. 1. 뉴스파워)
http://www.newspower.co.kr/14161
한국인 30.6%, 진화론 불신 (2009. 2. 10.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2/10/2009021001447.html
진화론 지지 비율 10년새 29% -> 45% (2012. 7. 23.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science/technology/543903.html
출처 : ICR News, 2013. 7. 29.
링크 : http://www.icr.org/article/7570/
번역 : 미디어위원회
필로의 박하사탕 (이은일 회장)
인터넷방송인 ISTV에 출연한 이은일 회장 방송내용입니다.
제목 : 필로의 박하사탕 - 멘토를 찾아서
진행 : 주선태 교수
출연 : 이은일 교수 (한국창조과학회 회장, 고려대 의대 교수)
번역 -
링크 - ,
출처 - http://www.youtube.com/watch?v=IuGelQBg9Gk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644
참고 :
창세기에 답이 있다를 읽고
** 이 글은 2013년 4월28일 창조과학교육원 기본과정(새순교회)을 수료한 전진규 집사님의 필독도서 독후감입니다. 전진규 집사님은 새순교회에서 4년째 초등부 주일학교 교사로 섬기고 계십니다. 저자의 허락을 얻어 홈페이지에 전문을 공개합니다.
'창세기에 답이 있다'를 읽고
사실인 성경의 내용을 사실로 받아 들이지 못한 저를 오늘의 창조과학 세미나를 새롭게 눈 뜨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두꺼운 성경을 집사님과 함께 공부하면서 집사님의 말씀이 창세기 1장~11장이 전체 성경 공부 기간의 반이 될거라고 말씀하시면서, 창세기의 1장~11장을 이해하며 받아들여야만 그 뒷장을 이어 나갈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죽음, 부활, 심판,복음에 대해 믿어질 것이라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말로는 성경 말씀을 믿는다고 하면서, 또한 한편으로는 학교에서 배운 과학(진화론)이라는 지식과 배치되는 것에 많은 혼란을 겪어 왔습니다.특히 최신 과학 장비인 연대 측정기라는 기계로 화석이 수억년 전이라든지, 동물 및 사람의 뼈가 몇 만년 전이라든지 하는 발표에는 의심 없이 그대로 믿어 왔으며, 그 사람들(과학자 및 고고학자들)이 대단하구나하는 생각을 했었으며, 또한 동,식물을 다루는 다큐멘트를 좋아하는 저는 그 동,식물들이 진화되어 지금 이렇게 생존하고 있다는 것에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였습니다. 학교에서의 배운 지식과 살아오면서 들어온 정보에 꽉 매여 있었기에,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천지 창조의 날들에 대해 본 책에서 언급한 창조한 날들을 내 맘대로 해석하여, 그 날이 하루가 아닌 창조의 하루는 수억 년이 아니였을까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일학교 섬김이를 하면서 얼마나 잘못된 신앙관으로 학생들을 섬겼던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창세기에 답이 있다' 첫 장을 넘기면서 ”과학은 과거의 사실을 직접 다룰 수가 없다”라는 이야기에 잠시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책의 내용을 요약하면 ”그들(과학자들)은 시간을 뒤로 돌릴 수가 없으며, 직접 과거를 관찰할 수 없으며, 현재에 존재하고 있는 것만으로 시험하고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 실상인데 저는 그들이 수 년동안 연구해서 발표한다는 그들의 말(과거에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하는 말)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연구한 내용들이 그럴 것이라는 믿음속에 살고 있으며, 그들도 평범한 인간이며 초인간이 아니라는 저자의 말에 앞으로 전개될 내용이 궁금해졌습니다.
책의 내용 중에서 중요하게 읽은 부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성경책의 내용이 다 중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창세기는 더욱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왜 기독교의 적들(진화론자)은 창세기를 훼손하려고 애를 쓰는 것일까? 의 물음의 답은 창세기는 성경에서 가장 바탕이 되는 책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물의 의미는 그것의 기원과 연관되어 있다. 창세기에 나오는 결혼의 근본적인 의미, 죄의 의미, 안식일의 의미, 주가 오신다는 예언 등은 기독교의 교리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헨리 모리스 박사는 ”만약 어떤 경우로 인하여 성경에서 창세기가 삭제되었다면 성경에 남아 있는 부분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일층이 없는 고층 건물이요, 교각이 없는 다리와 같다”고 창세기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창세기에는 천지창조, 타락, 대홍수, 바벨탑 사건의 중요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이 사건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진화론자들은 이 사건을 부인하고 있다. 기독교인들 조차도 이 사건들을 열거 못하는 사람이 많으며 창세기에 기록된 사실을 믿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이해해야 된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를 창조 하셨고. 그들은 순전하고 죄가 없었으며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규정을 거부하고 반항하였고, 이 반항이 바로 죄라는 것이다. 그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죽음의 저주를 내리셨다. 이 사건들은 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죽음에서 부활하게 되었는지를 말해주는 근본적인 이유들이다. 그러므로 창세기와 복음의 연관성이 있다. 복음의 궁극적인 약속에서 미래에 대한 놀라운 소망 즉, '만유를 회복하실(행3:21)' 것이며 원래 창조되었던 모습으로 회복되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혼동을 일으키는 복잡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6일에 걸친 창조, 흙으로 창조된 아담' 등 천지 창조로부터 예수님의 탄생까지 매우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것으로 믿어 왔는데, 오랜 세월의 흐름에 따라 진화되어졌다는 진화론자들의 주장을 박물관, 공공학교 등을 통해서 홍보하고 가르침에 따라 기독교인들이 많은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창조과학이 등장하면서 과학적인 연구 결과로 진화론에 반증이 되고 창조론을 뒷받침하는 다량의 증거들이 나타나면서 기독교인들이 서서히 그 혼돈에서 벗어나고 있다.
날-시대설, 점진적 창조설, 간격설, 창세기 비유설 등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나는 날-시대설과 창세기 비유설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참으로 위험한 생각이었다. 진화론은 아담과 하와가 창조되었던 본래적 낙원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 진화론에 의하면 생명은 혼란속에서 시작하여 보다 나은 완벽함을 향하여 조금씩 진화되어진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성경은 이 세상이 처음부터 완벽하였고 질서 정연했다고 말한다. 우리의 세상은 향상되는 방향으로 진화하지 않고 오히려 타락하고 퇴보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어린이들에게 사람은 단지 우연에 근거한 적자생존의 진화과정을 통하여 고도의 개발단계에까지 다다른 고등 동물인 영장류에 불과하다고 가르치고 있다. 진화론에 입각한 교육은 수백만 어린이들과 그 부모들의 세계관과 그들의 인생에 있어서의 중요한 판단들과 그에 따르는 행동들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알수 있다.
우리 자신들이 우연히 현존하게 되었다면 삶의 가치를 잃어버릴 것이다. 진화론의 교육은 사회 질서 및 복음을 파괴한다.(결혼의 감소, 노동윤리의 감소, 자살의 증가, 혼음의 증가, 포르노의 증가, 낙태의 증가등) 많은 사람들의 삶은 생명체에 대한 거짓된 견해인 진화론에 근거하여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사는 사회의 퇴락은 창조주를 배척하는 내면 세계가 바깥으로 표현된 결과들이며, 그이유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위에 굳건히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오랫동안 진화론의 진입을 대단치 않게 생각하여 무시하거나 그 이론과 적당히 타협해 왔다. 그러한 견해를 취함으로서 과학적으로, 신학적으로 어떤 문제가 야기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독교인들이 깨어 일어날 것을 외치고 있다. 저자는 복음을 파괴하고 있는 진화론자들과 싸워 이길 것을 주문하고 있다. 진화론에 기초를 둔 세속적인 인본주의자들과의 싸움인데, 그들의 포는 창조론이라는 기초에 겨냥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기초가 파괴되면 기독교라는 성이 괴멸될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인들은 포를 세속적인 인본주의자들 성에 쏘아야 되는데, 교인들간에 서로를 향해 쏘고 있으며, 아무 의미없는 곳을 향해 쏘고 있으며, 자신들의 기초를 향해 쏘고 있으며, 개개의 문제들을 향해 쏘고 있다. 세속적 인본주의의 기초인 진화론을 공격하지 않고 단순히 겉으로만 나타내는 개개의 문제들만 공격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를 생각봐야 한다. 진화론자들은 하나님을 창조주로서 믿고 창세기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믿음이 이 땅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창조론이라는기초를 재건하여 진화론의 허구성과 비과학성을 세상에 알림으로서 진화론을 효과적으로 공격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눈을 크게 떠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깨닫고 필요한 행동을 취해야 한다. 기독교적 바탕을 지키며 적극적으로 거짓된 진화론적 가르침에 반대해야 한다. 끝으로 저자는 예수님의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말하고 있다. 씨는 십자가의 복음이다. 우리가 뿌리는 씨 중 많은 씨들이 진화론적인 철학의 가시밭과 돌밭에 떨어진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복음전도를 하기 위해서는 이 돌과 가시밭을 없애야만 한다. 창조론적 복음전도는 먼저 길을 닦고 십자가 복음의 씨를 심는다. 설계로부터의 증거를 포함한 하나님의 존재하신다는 증거, 과학이 진정 무엇이며, 그것이 증명할 수 있는 것과 증명할 수 없는 것, 진화론의 과학적 허구성에 대한 증거, 공룡들이 성경과 역사에 어떻게 부합되는지, 노아의 홍수에 대한 증거, 인류가 하등동물에서 진화해 오지 않았다는 증거 등을 진화론을 추종하는 사람들과 위와 같은 주제로 토론하여 창세기의 전체적인 복음에 관한 확실히 그리고 명료하게 설명을 해주어야 한다. 이 모든 행위는 항상 기도하는 것과 성령을 잊지 않을때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금번 창조과학 세미나를 통해 나의 변화된 모습을 '창세기에 답이 있다'는 책을 통해 적어봅니다.
1. 나의 성경에 대한 믿음은 회복되었다.
2. 이제는 하나님이 더 가깝게 느껴지고 나와 항상 함께 하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3. 생전 처음으로 내가 기독교를 진정 이해한다고 느낀다.
4.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다.
5. 진짜 과학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바를 그대로 뒷받침한다.
이번 세미나를 마련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641
참고 :
생명의 날에 생각해보는 생명나무
프롤로그
유리는 소련의 첩보기관 KGB에서 인간무기 개발 프로젝트에 의해 모스크바의 비밀 연구소에서 태어난 복제인간이다. IQ 500의 천재인 그는 어느 날 호수의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조로증에 걸렸음을 깨닫게 된다. 자신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노화 억제제 치료를 받는 것이다. 접근 금지된 도서관의 논문을 몰래 읽은 후 파리의 세양 박사가 노화억제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된 유리는 경비원을 간단히 해치우고 모스크바의 극비 연구소를 탈출하게 된다. 8살 어린이 임에도 불구하고 운동신경이 매우 민첩하였고 근육의 힘은 성인보다 뛰어난 복제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소련의 첩보망을 피해야했기 때문에 자동차를 이용하지 못한 유리는 죽을 힘을 다해 하루에 150 Km씩 달려서 프랑스 파리에 도착하였고 단 몇 주 만에 프랑스어를 마스터한다. 그리고 천재적인 두뇌를 이용하여 분자생물학, 생화학 등을 공부하여 세양 박사의 연구를 돕게 된다. 그러나 결국 노화를 늦추는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병원에서 쓸쓸하게 죽어간다. 첨단 생명과학 정보가 담겨있는 유리의 시신을 쟁탈하기 위해서 벌이는 CIA와 KGB의 치열한 첩보전 앞에 유리의 인권은 무시되고 생명과학 지식을 쟁탈하려는 쪽과 지키려는 쪽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만이 묘사되고 있다.
이 소설의 밑바탕에는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인간들의 광기가 낱낱이 그려지고 있다. 이 점이 독자들을 섬찟하게 만든다. 복제인간을 탄생시켜 전쟁의 도구로 사용하려는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메드베제프 박사는 ”이 연구의 가장 큰 의미는 인간이 바야흐로 그 운명을 지배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창조주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된 것이다”라는 무서운 독백을 하고 죽는다. 이 소설의 바탕에는 생명공학 기술을 사용하여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겠다는 인간의 오만이 적나라하게 그려지고 있다. (복제 인간, 1997. 알렌 엔젤 지음. 문학마을)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는 매우 독특한 특징을 나타낸다. 자극에 반응한다, 성장한다, 생식한다, 규칙성이 있다, 물질대사를 한다 등등....이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특징은 아마도 ”생식한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생식은 자기를 닮은 후손을 남기는 일이다. 그리고 결국 자신은 죽음을 맞이하고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생명의 정한 이치다. 따라서 성경에서는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 3:19)”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두려워 질 수도 있다. 그래서 죽지 않는 방법을 연구할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 가운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외에도 생명나무를 두셨는데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난 이후 하나님께서는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을까 걱정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창3:22)”에서 알 수 있듯이 생명나무 열매를 먹으면 영생할 수 있다.
성경에 기록된 생명나무는 무엇일까? 생명나무는 에덴동산에 있는 실재했던 나무였을까? 아니면 상징적인 의미로 기록한 것일까? 생명나무가 무엇이기에 그 열매를 먹으면 영생할 수 있는 것일까? 실로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생명나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어는 ”베에쯔 하하임”으로서 육신적인 생명을 강건하게 함으로써 영생할 수 있는 나무인 동시에 구속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생명의 과실(떡)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자는 영원한 축복의 삶이 보장되기 때문이다(요 6:48~54).
그런데 생명나무 실과를 따먹는다고 어떻게 영생할 수 있을까? 에덴동산에는 분명히 생명나무가 실제로 있었을 것이고 생명나무 열매를 따 먹으면 죽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에덴동산도 없고 생명나무도 실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는 이 생명나무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생명나무 실과를 따 먹으면 영생할 수 있다는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생명나무에 대한 현대 생명과학적 가능성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앞으로 과학기술이 크게 발달한다면 복제인간을 사용하여 사람이 죽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지도 모른다. 복제인간을 어떻게 사용하면 영생할 수 있을까? 복제인간을 만드는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정상 난자에서 핵을 제거한 후 체세포의 핵을 이 난자에 이식한다. 핵을 이식 받은 난자는 분열하게 되고 일정기간이 지난 다음 자궁에 착상시키고 10달 후에 태어난 아기는 체세포 핵을 제공한 사람과 똑같은 복제인간이 되는 것이다. 체세포 핵을 제공한 사람이 우수한 지능을 가졌다면 복제인간도 우수한 지능을 가지고 태어나며 람보처럼 강인한 체력의 소유자라면 복제인간도 강인한 체력을 가진 아기로 태어나게 된다.
이런 방법으로 복제인간을 많이 만들어서 젊은 청년까지 잘 사육(?)한 다음 냉동시켜 장기간 보관할 수 있다.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 복제인간의 모체가 노화되어 일부 내장의 기능이 떨어지거나 이상이 생길 때 냉동된 복제인간을 해동시켜 살려낸 후 복제인간의 해당 기관을 모체에 이식하면 아무 문제없이 건강한 내장기관을 갖게 된다. 필요하다면 거의 모든 내장기관을 바꿔치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디 내장기관 뿐이랴? 쭈글쭈글한 피부는 물론, 백발의 머리까지, 사지는 물론 몸통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더 나아가서 뇌에 기록된 모든 정보까지도 컴퓨터 하드디스크 복사 하듯이 복사할 수 있다면 인간은 복제인간을 활용하여 죽지 않고 영생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어찌 생명나무 실과가 아니겠는가?
만약에 생명과학 기술이 이러한 일을 해 낸다면 이것은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는 하나님의 말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결과가 된다. 과연 그러한 날이 올 수 있을까? 과연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명체를 인간의 능력으로 조작하여 영생하도록 바꿀 수 있을까? 이 기술에는 심각한 문제가 또 하나 더 있다. 바로 복제인간의 생명이다. 영생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복제인간은 인격을 가진 인간 이라기보다는 훗날 장기를 제공할 실험재료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 존재다. 그러한 복제인간에 인권이 어디 있으며, 존엄성이 어디 있겠는가?
죽음은 비기독교인에게 있어서는 이세상과의 이별이요 끝이며 마지막인 반변에 기독교인에게는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이요 시작이며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 입학식이다. 따라서 죽음 이후에 맞이하는 새로운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고 이 땅에서의 육신적 생명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새로운 생명을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어야한다. 생명이 죽지 않고는 새로운 생명을 누릴 수 없다. 그런데 현대 생명공학을 활용한다면 죽지 않고 영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 방법이 생명나무 실과를 따먹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추방한 인간들이 생명나무 실과를 따먹고 영생할까 걱정되어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든든히 지키게 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 3:23-24)”에서 알 수 있듯이 그룹(천사)들과 불 칼을 이중으로 두어 생명나무 실과를 따먹지 못하게 지키고 계신 것이다.
만약 인간의 오만과 독선이 생명과학 기술을 잘못 사용하므로 생명나무 실과를 따먹기 위해서 생명나무에 접근하려 한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그룹들이 가만히 보고 있지 않을 것이다. 생명나무 길을 지키는 두루 도는 불 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복제인간을 탄생시켜서 영생하려는 인간의 시도는 하나님 앞에서 모두 무용지물이 될 것으로 믿는다. 하나님이 생명나무 길을 지키고 있어서 복제인간 탄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할렐루야!!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606
참고 : 5440|5333|5148|5015|4768|4227|2328|2292
욥의 십자가
욥은 아브라함과 거의 동시대에 선지자적 삶을 사셨던 분입니다. ‘욥의 십자가’라는 말은 매우 어색하게 들립니다. 왜냐하면 욥은 예수님의 조상인 아브라함 시대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욥은 장차 자신을 구해주실 분이 이 땅에 오실 것을 예언(욥기 19장 25절: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합니다.
욥은 고난 중에 하나님과 만나서 인생의 문제를 풀려고 호소(욥기 23장 3 ~ 5절: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의 처소에 나아가랴 어찌하면 그 앞에서 내가 호소하며 변론할 말을 내 입에 채우고 내게 대답하시는 말씀을 내가 알며 내게 이르시는 것을 내가 깨달으랴”) 하려 합니다.
욥은 세 친구와 젊은 현인 엘리후와 ‘인간과 하나님’이란 주제를 놓고 기나 긴 논쟁을 합니다. 욥의 극한 고난은 인생과 하나님에 대한 깊은 생각들을 펼치게 하였습니다. 당대의 내노라 하는 현자들이 토론하였지만, 끝내 결론을 내리지 못합니다.
욥은 인생에 대한 토론을 더 할 수 없을 만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재산도 자녀도 잃고 하나님도 자신을 버린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자신이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할 정도로 몸은 만신창이 되였습니다. 하나님을 찾아도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욥에게 나타나셔서 창조의 역사를 들려 줍니다. 창세기에 설명되지 않았던 창조의 자세한 사건들을 풀어나가면서 설명하십니다. 아마도 욥이 조물주로부터 듣고 기록한 부분들은 극히 일부분일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창조의 사건만을 설명하고, 욥이 겪은 고난을 위로하시거나, 왜 고난이 오는지에 대한 설명은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창조의 사건만 계속 말씀하십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는 타조에게는 새끼를 잘 기르는 지혜를 주시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욥기 39:17: ”이는 하나님이 지혜를 베풀지 아니하셨고 총명을 주지 아니함이라”) 하나님께서는 여러 동물을 설명하시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드셨는지 그리고 어떤 특징을 각각 주셨는지를 자세히 설명하십니다. 어떤 동물은 총명하게 어떤 동물은 덜 지혜롭게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만드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욥도 하나님에게 고난을 왜 그렇게 모질게 주셨는지 묻지도 않았습니다. 욥은 그렇게 찾던 하나님을 만났지만, 감히 한 마디도 묻지 못하고 창조의 사건 설명만 들었습니다. 욥은 절대 주권자이시고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에게 자신이 무지한 말로 인생과 하나님의 속성을 논한 것을 회개(욥기 42장 2~6절: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합니다.
욥은 이제서야 인생의 해답을 얻게 되고 모든 것을 회복하게 됩니다. 욥이 얻은 해답은 전능하신 절대 주권자 창조주를 바로 인식하는 것이었습니다. 욥의 구원은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욥은 고난의 때에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멀리 바라보고 대속주를 기다렸습니다. 그 대속주 곧 창조주가 찾아 오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가로의 나무와 수직의 긴 나무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수직의 긴 나무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회복을 말하고, 수평의 짧은 나무는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 회복을 말한다고 합니다. 욥은 친구와의 관계도 용서를 통해 회복하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욥기 42: 10절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욥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창조 사건을 구체적으로 열거하시면서, 동물의 모든 특성을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만드셨다고 설명하십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유신진화론적 신학자들은 모든 동식물이 진화로 만들어 졌고, 그 특성들은 진화의 산물이라고 강변합니다. 이와 같은 사상이 자유주의 신학계뿐만 아니라 보수 신학계에도 슬금슬금 들어와 주인 노릇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오병이어의 기적도 물이 포도주로 변한 사건도 모두 부정합니다. 세상의 자연과학이 창조주 하나님보다 더 위에 군림하는 것을 담담하게 받아드리고, 자연과학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성경의 각 부분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별 저항 없이 부정합니다. 그들은 십자가의 수직 막대기를 가볍게 버렸습니다. 수직 막대기 없는 수평 막대기는 땅에 떨어져서 굴러다니고 있습니다. 그들이 외치는 십자가의 도는 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화론자는 돌무더기에 쓰러진 무가치하고 실패한 십자가라고 조롱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절대 주권적인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없이는 바로 설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의 성도들은 인간들 간에 지은 죄에 대해서 교회에 나아가 회개하지만, 하나님을 바로 알고 인정하지 아니하는 보다 근본적인 죄에 대해서는 둔감합니다. 조금만 고난이 와도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욥은 어떤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았고, 끝까지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대하였습니다. 욥의 구원은 하나님을 바로 알고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인간이 고난과 역경을 견디는 믿음은 전능하시고 절대 주권자인 하나님을 바로 믿는 창조 신앙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욥은 신앙고백에서 태양을 신격화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합니다. (욥기: 31장 26절 ~ 28 절: ”만일 해가 빛남과 달이 밝게 뜬 것을 보고 내 마음이 슬며시 유혹되어 내 손에 입맞추었다면 그것도 재판에 회부할 죄악이니 내가 그리하였으면 위에 계신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리라.”) 진화론자들은 만물이 스스로 주인이라고 생각하여 거대하고 신기한 물체나 동식물을 신격화합니다. 진화론자들이 동물의 멸종을 특별히 안타까워하는 것은 진화가 만들어 낸 하나의 가상의 신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도 피조물을 만드신 창조주께 찬양하기 보다는 그 피조물을 경외하기도 합니다. 일본인의 신관과 인도인들의 신관도 이와 같은 범신론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십자가 상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고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의 고통을 깊이 인식하고 그 사랑을 느끼는 것 만으로는 구원이 이루어 지지 않고 그 분이 누구이신가를 바로 알고 믿는 믿음에서 구원이 나오는 것이 아닌지요? 창조주 하나님을 바로 인정하지 않고, 성경을 부분적으로 믿고 의심하면서 구원을 바라는 것은 가장 큰 모순이 아닌지요?
예수님이 그 창조주이심과 예수님의 창조적 기적을 일부러 부정하고, 십자가의 희생적 사랑만 강조하는 것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첫 창조는 인정하고,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의 기적을 부인하는 모양새도 참 안타깝습니다.
요한복음 1 장은 예수님이 창조주 이심을 선포하고 있으며, 그 창조주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음을 선포합니다.
1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절.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절.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절.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욥의 십자가를 마음 속에 그려 봅시다. 욥의 십자가는 고난을 통해서 나타나고 창조 신앙과 용서를 통해 온전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천수를 누리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욥기 42장 17절: ”욥이 늙어 나이가 차서 죽었더라.”).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607
참고 : 5555|2524|2308|1430|5269|5163|4870|3795|3320|26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