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장 (2) - 1절의 믿음
이재만
창세기 1장을 순수하게 접근하기 위해서 먼저 몇 가지 기본 방해 요소들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첫번째 진화론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있어야 한다. 둘째로 지질계통표, 즉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 하는 진화론적 역사를 머리 속에서 제거해야 한다. 실제로 지구상에 이러한 지층을 순서대로 보여주는 곳은 한 군데도 없기 때문이다. 셋째로 수억 년 되었다는 방사성 동위원소의 연대측정 결과에서도 자유해야 한다. 결과가 숫자로 나왔다 할지라도 그들은 진화론과 지질계통표의 신뢰 하에 얻어진 무의미한 숫자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문제점은 그 동안 많이 지적되었었다. 이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가졌다면 창세기 1장으로 들어갈 최소한의 준비작업은 마쳤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진리인 창세기 1장을 순수하게 보려면 비진리인 어떠한 개입도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사실이 아닌 진화론, 지질계통표,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 이 세 가지에서 벗어난 상태라야 창세기 1장을 읽을 사전작업이 되었다 할 수 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창 1:1). 성경 66권 중에 첫 번째 책인 창세기, 그 중에서도 첫째 장 첫 문장이다. 이 첫 번째 구절은 "시작(beginning)”, "하늘(heaven)”, "지구(earth)”를 동시에 "창조”하시는 모습을 그린다. 바로 시간, 공간, 물질을 동시에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그 중 첫번째 물질이 바로 우리가 거하는 지구인 것이다. 어려운 물리이론을 펴지 않더라도 시간 없이 공간과 물질의 존재는 불가능 하다. 공간 없이 시간과 물질이 있는 것도 생각할 수 없다. 물질이 없이 시간과 공간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성경에서 하나님의 창조 첫 행위가 '시간”, '공간”, '물질”을 동시에 창조하셨다고 기록되어있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세 가지 중에 공간에 대하여만 나누어보자. 공간이라는 것은 기능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인력이라는 매개체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는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공간이라는 것은 물질 존재에 필수 불가결한 매개 기능이 부여되었다는 것이다. 욥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욥에게 직접 말씀하신다. "티끌로 진흙을 이루며 흙덩이로 서로 붙게 하겠느냐?"(38:38). 누군가가 처음부터 그 공간의 기능을 부여하지 않았다면, 우주의 물질은 그 모양도 갖출 수 없다.
시간과 공간과 물질의 동시창조라는 의미는 언제나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의 창조를 말한다. 실제로 "창조(bara)” 라는 단어는 항상 하나님의 일에만 사용되는 단어인데, 존재하지 않는 것(no existence)에서 존재하는 것(existence)으로의 무에서의 창조(ex nihilo)를 의미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 가? 무에서 시간과 공간과 물질,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모습은 우리에게 "Nothing impossible”로 다가온다. 우리는 Nothing impossible 이신 하나님의 능력을 고백하며, 더 나아가 그의 6 일간의 모든 창조역사를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를 갖출 수 있다. 더 나아가 성경 전체에서 말하는 이적을 포함한 하나님의 구원사역까지 받아들일 자세가 된 것이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나는 창세기 1장 1절은 믿지만 연이어 행하신 6일간의 창조는 믿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아직도 창세기 1장 1절을 확실히 이해한 것이 아니며, 1장 1절 그 자체도 바르게 믿는 것이라 할 수 없다.
이러한 확실한 믿음은 우리의 삶에서도 바로 직결된다. 눈 앞에 응답이 없이 보일 때도, 하나님께서는 못하시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뜻이 있기에 참으시거나 하지 않으신다는 믿음이다. 분명히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 창세기 1장 1절을 믿는 것이 아니라, 창세기 1장 1절이 사실이라는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완전히 주관하심을 믿는 것이다. 순서상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믿음이 먼저이지, 나의 경험이 먼저가 아니라는 것이다.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골 1:16)
창세기 1장 (2) - 1절의 믿음
이재만
창세기 1장을 순수하게 접근하기 위해서 먼저 몇 가지 기본 방해 요소들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첫번째 진화론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있어야 한다. 둘째로 지질계통표, 즉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 하는 진화론적 역사를 머리 속에서 제거해야 한다. 실제로 지구상에 이러한 지층을 순서대로 보여주는 곳은 한 군데도 없기 때문이다. 셋째로 수억 년 되었다는 방사성 동위원소의 연대측정 결과에서도 자유해야 한다. 결과가 숫자로 나왔다 할지라도 그들은 진화론과 지질계통표의 신뢰 하에 얻어진 무의미한 숫자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문제점은 그 동안 많이 지적되었었다. 이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가졌다면 창세기 1장으로 들어갈 최소한의 준비작업은 마쳤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진리인 창세기 1장을 순수하게 보려면 비진리인 어떠한 개입도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사실이 아닌 진화론, 지질계통표,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 이 세 가지에서 벗어난 상태라야 창세기 1장을 읽을 사전작업이 되었다 할 수 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창 1:1). 성경 66권 중에 첫 번째 책인 창세기, 그 중에서도 첫째 장 첫 문장이다. 이 첫 번째 구절은 "시작(beginning)”, "하늘(heaven)”, "지구(earth)”를 동시에 "창조”하시는 모습을 그린다. 바로 시간, 공간, 물질을 동시에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그 중 첫번째 물질이 바로 우리가 거하는 지구인 것이다. 어려운 물리이론을 펴지 않더라도 시간 없이 공간과 물질의 존재는 불가능 하다. 공간 없이 시간과 물질이 있는 것도 생각할 수 없다. 물질이 없이 시간과 공간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성경에서 하나님의 창조 첫 행위가 '시간”, '공간”, '물질”을 동시에 창조하셨다고 기록되어있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세 가지 중에 공간에 대하여만 나누어보자. 공간이라는 것은 기능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인력이라는 매개체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는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공간이라는 것은 물질 존재에 필수 불가결한 매개 기능이 부여되었다는 것이다. 욥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욥에게 직접 말씀하신다. "티끌로 진흙을 이루며 흙덩이로 서로 붙게 하겠느냐?"(38:38). 누군가가 처음부터 그 공간의 기능을 부여하지 않았다면, 우주의 물질은 그 모양도 갖출 수 없다.
시간과 공간과 물질의 동시창조라는 의미는 언제나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의 창조를 말한다. 실제로 "창조(bara)” 라는 단어는 항상 하나님의 일에만 사용되는 단어인데, 존재하지 않는 것(no existence)에서 존재하는 것(existence)으로의 무에서의 창조(ex nihilo)를 의미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 가? 무에서 시간과 공간과 물질,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모습은 우리에게 "Nothing impossible”로 다가온다. 우리는 Nothing impossible 이신 하나님의 능력을 고백하며, 더 나아가 그의 6 일간의 모든 창조역사를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를 갖출 수 있다. 더 나아가 성경 전체에서 말하는 이적을 포함한 하나님의 구원사역까지 받아들일 자세가 된 것이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나는 창세기 1장 1절은 믿지만 연이어 행하신 6일간의 창조는 믿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아직도 창세기 1장 1절을 확실히 이해한 것이 아니며, 1장 1절 그 자체도 바르게 믿는 것이라 할 수 없다.
이러한 확실한 믿음은 우리의 삶에서도 바로 직결된다. 눈 앞에 응답이 없이 보일 때도, 하나님께서는 못하시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뜻이 있기에 참으시거나 하지 않으신다는 믿음이다. 분명히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 창세기 1장 1절을 믿는 것이 아니라, 창세기 1장 1절이 사실이라는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완전히 주관하심을 믿는 것이다. 순서상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믿음이 먼저이지, 나의 경험이 먼저가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