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장 (27) - 남자와 여자의 창조
이재만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 1:27)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상태가 남자와 여자였음을 묘사하고 있다. 성경에서는 일련의 사건을 시간에 따라 기록하다가 그 가운데 중요한 부분은 따로 자세히 기록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창세기 10장에서 바벨탑 사건을 통해 흩어진 종족과 나라를 나열하면서 11장 전반부에는 특별히 바벨탑 사건의 그 동기와 방법에 대하여 따로 기록하고 있다. 긴 하루가 기록된 여호수아서에 아모리사람과 싸우는 전투에서도 일련의 전쟁을 묘사하다가(수 10:6-11), 나중에 그 전쟁 가운데 중요한 부분인 여호수아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12-14)을 따로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이 창세기 1장에서 2장 3절까지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창조사실을 그대로 기록한 반면에 2장 4절부터는 그 창조하신 상태와 함께 특별히 인간 창조에 대하여 초점을 맞추고 있다. 2장에는 창조된 지구의 상태(4-6), 아담을 지으시는 모습(7), 아담을 이끄시는 에덴동산의 모습(8-15), 선악과(16-17), 하와의 창조(18-25)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즉 1장 27절 한 절에 대한 내용이 2장 7절부터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을 창조하시는 2장 7절부터 하와를 창조하시는 장면까지는 모두가 엿새째 하루동안 일어난 내용인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안식을 취하신 일곱째 날 전인 엿새째 날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고 분명히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하와를 만드신 이유는 아담의 독처함을 좋게 여기지 않으셨기 때문이며 그 목적은 돕는 배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2:18). 그리고 아담에게 동물들의 이름을 짓는 도중에,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갈빗대를 취하여 살로 대신 채우셔서 하와를 창조하셨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고 1장 27절에 기록하였다. 또한 남자와 여자 모두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했다. 바로 동등한 인격체로써 서로 돕는 관계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나님이 하와를 아담에게 이끌어 오셨을 때 아담의 첫마디가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2:23)"고 했다. 하와가 얼마나 아담에게 꼭 맞도록 꼭 필요하게 창조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닐까? 한마디로 나의 모든 것이란 표현이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직접 디자인 하시는 모습이고 그 가정의 처음이 얼마나 완벽했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24). 가정도 시간이 지나다 보니까 만들어졌을까? 동물처럼 살다 보니까 필요에 의해서 시작됐을까? 그렇다면 가정도 점점 발달해 왔단 말인가? 그러나 성경은 살다 보니 가정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 스스로 우리를 위하여 완전한 가정을 만들어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진화론은 바로 근원을 희미하게 만들므로 가정도 파괴시켜버렸다. 진화론자, 특별히 진화론자라고 하지 않더라고 성경적 가정의 기원을 믿지 않은 사람은 가정의 기원에 대하여 한가지밖에 생각할 수 없다. 살다 보니 필요에 따라 가정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인간의 한계인 것이다. 깨달아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그 기원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가족의 기원에 대하여 분명히 말한다. 처음이 완전한 가정이었으며 나중에 죄가 들어온 다음에 완벽한 가정이 깨어졌다고 말한다. 우리는 완전했을 때가 있었다. 그러나 죄 때문에 깨어진 것이다. 어떻게 살다 보니 지금의 가정이 된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디자인된 가정이 있었으나 죄로 인하여 오늘날의 불안정한 가정으로 타락한 것이다.
진화론적 교육을 받은 세속적 인본주의가 들어오게 된 이래로 오늘날의 가정이 어떤 위기를 맞고 있는지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다. 이혼율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아져서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기본적 질서가 깨어지고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까? 답이 있는 책, 사실인 책을 통하지 않고는 어떠한 해답도 얻을 수 없다. 창조주께서 시작하신 가정이라는 근본적인 생각으로 돌아가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창세기 1장 (27) - 남자와 여자의 창조
이재만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상태가 남자와 여자였음을 묘사하고 있다. 성경에서는 일련의 사건을 시간에 따라 기록하다가 그 가운데 중요한 부분은 따로 자세히 기록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창세기 10장에서 바벨탑 사건을 통해 흩어진 종족과 나라를 나열하면서 11장 전반부에는 특별히 바벨탑 사건의 그 동기와 방법에 대하여 따로 기록하고 있다. 긴 하루가 기록된 여호수아서에 아모리사람과 싸우는 전투에서도 일련의 전쟁을 묘사하다가(수 10:6-11), 나중에 그 전쟁 가운데 중요한 부분인 여호수아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12-14)을 따로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이 창세기 1장에서 2장 3절까지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창조사실을 그대로 기록한 반면에 2장 4절부터는 그 창조하신 상태와 함께 특별히 인간 창조에 대하여 초점을 맞추고 있다. 2장에는 창조된 지구의 상태(4-6), 아담을 지으시는 모습(7), 아담을 이끄시는 에덴동산의 모습(8-15), 선악과(16-17), 하와의 창조(18-25)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즉 1장 27절 한 절에 대한 내용이 2장 7절부터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을 창조하시는 2장 7절부터 하와를 창조하시는 장면까지는 모두가 엿새째 하루동안 일어난 내용인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안식을 취하신 일곱째 날 전인 엿새째 날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고 분명히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하와를 만드신 이유는 아담의 독처함을 좋게 여기지 않으셨기 때문이며 그 목적은 돕는 배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2:18). 그리고 아담에게 동물들의 이름을 짓는 도중에,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갈빗대를 취하여 살로 대신 채우셔서 하와를 창조하셨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고 1장 27절에 기록하였다. 또한 남자와 여자 모두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했다. 바로 동등한 인격체로써 서로 돕는 관계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나님이 하와를 아담에게 이끌어 오셨을 때 아담의 첫마디가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2:23)"고 했다. 하와가 얼마나 아담에게 꼭 맞도록 꼭 필요하게 창조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닐까? 한마디로 나의 모든 것이란 표현이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직접 디자인 하시는 모습이고 그 가정의 처음이 얼마나 완벽했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24). 가정도 시간이 지나다 보니까 만들어졌을까? 동물처럼 살다 보니까 필요에 의해서 시작됐을까? 그렇다면 가정도 점점 발달해 왔단 말인가? 그러나 성경은 살다 보니 가정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 스스로 우리를 위하여 완전한 가정을 만들어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진화론은 바로 근원을 희미하게 만들므로 가정도 파괴시켜버렸다. 진화론자, 특별히 진화론자라고 하지 않더라고 성경적 가정의 기원을 믿지 않은 사람은 가정의 기원에 대하여 한가지밖에 생각할 수 없다. 살다 보니 필요에 따라 가정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인간의 한계인 것이다. 깨달아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그 기원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가족의 기원에 대하여 분명히 말한다. 처음이 완전한 가정이었으며 나중에 죄가 들어온 다음에 완벽한 가정이 깨어졌다고 말한다. 우리는 완전했을 때가 있었다. 그러나 죄 때문에 깨어진 것이다. 어떻게 살다 보니 지금의 가정이 된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디자인된 가정이 있었으나 죄로 인하여 오늘날의 불안정한 가정으로 타락한 것이다.
진화론적 교육을 받은 세속적 인본주의가 들어오게 된 이래로 오늘날의 가정이 어떤 위기를 맞고 있는지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다. 이혼율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아져서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기본적 질서가 깨어지고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까? 답이 있는 책, 사실인 책을 통하지 않고는 어떠한 해답도 얻을 수 없다. 창조주께서 시작하신 가정이라는 근본적인 생각으로 돌아가지 않고는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