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에 간격이 있는가?
: 간격이론(Gap Theory)이란 무엇인가?
(From the beginning of the creation)
Russell Grigg
창세기 1장의 1절과 2절 사이에 수십억 년의 ‘간격(공백, gap)‘이 존재하는가? 그래서 진화론적 지질학자들이 주장하듯이 거기에 기독교인들이 장구한 시대를 편리하게 삽입할 수 있는가? [1, 2]
실제로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1. 모세는 무엇을 전달하려 했는가?
창세기 1장에 대한 가장 분명하고 직접적인 해석은, 그것이 초지혜자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어떤 신비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모세(혹은 그의 선조들)에게 계시하신 것들을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모세가 문자적이고 역사적으로 기록한 것(a literal historic account)으로, 이는 다른 확실한 반증이 없다면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만약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1절과 2절 사이에 수십억 년의 간격이 있어서, 그 기간 동안에 사탄, 죄, 심판, 형벌, 재창조(부록의 ‘간격이론‘을 보라) 등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이해시키려 했다면, 그에 관련된 사항들 중에 최소한 일부라도 하나님이 저자에게 알려주셨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그분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뿐만 아니라, 성경의 다른 어떤 곳에서도 그것들을 발견할 수 없다. [3]
사실상, 정통파 유대인들과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은 항상 창세기 1장을 문자적인 역사(literal history)로 읽어왔다. 유신진화론적 지질학자(theistic evolutionist geologist)인 데이비스 영(Davis Young)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인정했다.
”창세기 1장을 엄격히 문자적으로 해석하려는 것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종종 있기는 했지만, 18세기까지 기독교계에서 거의 대부분의 보편적인 견해는 지구의 나이가 수천 년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지구에 대한 현대 과학적 탐구가 이루어지고 나서야, 이런 관점이 교회 내에서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4]
2. 성경의 다른 부분들은 간격이론(Gap theory)에 대한 조종을 울리고 있다.
• 창세기 1:31은 이렇게 말씀한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very good)” (이 심히 좋았더라의 히브리 단어 ‘meod tov’ 는 완전하고, 어떠한 종류의 악도 전혀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그리고 이것은 칼빈(Calvin)과 많은 다른 주석가들이 지적해왔던 것이다).
만약 사탄이 이미 반역을 해버렸다면, 이것은 정확한 표현이 될 수 없다! 또한 만약, 아담 이전에 인간종족들을 모두 멸망시키고 동물계 전체의 멸종을 일으킨 ‘루시퍼-홍수‘들이 있어서, 질병, 폭력, 죽음, 부패의 흔적을 가진 수십억의 화석들이 만들어졌다면, 그리고 아담과 하와가 그러한 화석들이 묻혀 있는 땅 위를 걷고 있었다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보시고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을까? [5] (그들의 기념비적인 구약 주석에 의하면, Keil과 Delitzsch는 창세기 1:31절의 ‘심히 좋았더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모든 것은 그 종류대로 완벽했다..... 하나님의 창조에서 어떠한 악의 존재도 절대적으로 배제된다. 그것은 6일 창조를 부정하고 족쇄를 채우려는 반하나님적 악한 가설을 기각하고 있는 것이다.”)
• 창세기 6-9장은 전 지구적 홍수를 묘사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노아의 방주에 타지 않았던, 코로 호흡하는 모든 육상동물들이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간격이론가들은 화석이 ‘루시퍼의 홍수‘로 인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노아의 홍수는 실질적으로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거나, 아니면 단지 지역적인 홍수라고 결론을 내리려 한다. 분명히 화석의 원천에 대한 보다 나은 설명은, 성경이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은 가상적인 홍수보다, 성경에서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노아 홍수에 있다!
• 출애굽기 20:11은 이렇게 말씀한다.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 이것은 창세기 이외의 곳에서 창조의 시간 틀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결정적인 구절이다. 이 구절은 하나님이 6일 안에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고 단언적으로 말씀하고 있다. 간격은 전혀 허용되지 않고 있다. [6]
• 로마서 5:12은 이렇게 말씀한다. ”이러므로 한 사람(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아담은 여섯째 날에 창조되었는데, 고전적인 간격이론은 첫째 날 이전의 간격 동안에 죽음이 있었다고 말한다. 사도 바울에 의하면 그렇지 않다! 이 구절은 아담의 죄 때문에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죽음이 세상에 들어왔다고 평범하게 말한다. 이 구절을 인간의 죽음만으로 제한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오히려, 로마서 8:20에서는 모든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아담이 죄를 저지르기 이전에는 (증거 없이 주장된 ‘루시퍼의 홍수‘에서 죽은 화석과 같이) 세상에 죽음이 있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간격이론가들은 로마서 5:12과 창세기 3:3이 영적인 죽음만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지 않다. 아담은 육체적으로 죽어가기 시작했고(히브리어: ‘장차 죽는 죽음‘, 즉, 죽음의 과정이 시작되었다. 창세기 3:19은 창세기 5:5에서 완성되었다.), 또한 영적으로 죽었다.[7]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하여 육체적인 죽음과 영적인 죽음을 모두 겪으셨다(마태복음 27:46). 또한 고린도전서 15:21-22을 보라.
간격을 찬성하는 것으로 주장되는 성경적 증거들
간격이론가들은 소수의 히브리 단어들에 대한 수정론자의 번역(revisionist translations)에 심하게 의존하고 있다.
1. 히브리 단어 빠라(bara, '무로부터 창조하다‘)와 아싸(assa, '만들다‘). 창세기 1:1은 빠라를 사용하고 출애굽기 20:11은 아싸를 사용한다. 간격이론가들은, 빠라와 아싸를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출애굽기 20:11은 멸망한 세상의 재창조와 재형성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답: 창세기 1장에서 히브리 단어 빠라가 세 번 사용되었는데, 그때마다 완전히 새로운 실체 - 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의 창조를 나타낸다.
창세기 1:1에서 빠라는 하늘과 땅의 창조에 대해 사용되었다.
창세기 1:21에서 빠라는 최초의 정신을 가진 동물(또는 네페쉬) 생명의 창조에 대해 사용되었다.
창세기 1:27에서 빠라는 최초의 사람, 즉,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든 인간 생명의 창조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러나 창세기 1:26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아싸]”, 반면에 바로 다음 구절에서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빠라]”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빠라와 아싸를 둘 다 사용하여 같은 사건을 설명하고 있으므로, 그 동사들은 분명히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된 것이다. 더군다나, 창세기 2:4은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아싸] 때에 천지의 창조된 [빠라] 대략이 이러하니라”. 여기서 빠라와 아싸가 동의어를 의미하는 병행구로 함께 사용되었다. 이것은 또 다시 모세가 그 단어들을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했음을 나타낸다.
간혹 아싸는 간격이론가들의 반하는 주장에도 (예로 느헤미야 9:6) 불구하고, 무에서부터(ex nihilo, out of nothing)의 창조를 의미할 때 사용된다. 하나님은 홀로 주님이시다. 하나님은 하늘과 가장 높은 하늘까지 만드셨고(아싸), 그리고 별들의 주인이시며, 땅과 그 위에 모든 것들을 만드셨으며, 바다와 그 안에 모든 것들을 만드셨다. 하나님은 모두에게 생명을 주셨고, 하늘의 하늘들이 경배하고 있는 것이다.
2. ”'와우(waw)’는 히브리어 문자의 이름인데 접속사로 사용된다. 그것은, '그리고(and)', '그러나(but)', '이제(now)', '그리고 나서(then)' 등의 의미로 사용되며, 와우가 포함된 형태와 문맥에 따라 기타 몇 가지 다른 의미로도 사용된다.” [8] 이것은 창세기 1:2절의 앞부분에 있는데, KJV에서는 ”그리고(and, 와우) 땅은 형체가 없고 비어있었다”로 번역되었다.
간격이론가들은 이 번역을 간격이론을 지지하는데 이용한다. 그러나 원전을 가장 직설적으로 읽으면, 창세기 1장 1절은 주어 + 동사의 주절로 되어 있고, 2절은 3개의 종속절로 되어 있다. "이것은 히브리어 문법학자인 게세니우스(Gesenius)가 '와우 설명(wawexplicativum)' 혹은 설명적인 와우 라고 이름 붙인 것으로서, 영어의 '즉(to wit)'에 비견된다." [9] 그러한 와우 접속사는 비동사(non-verb)에 의해서 뒤따라지는 와우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히브리어에서 쉽게 말해진다. 그것은 삽입어구적 문장(parenthetic statement)을 소개하고 있다. 즉, 그것은 이를테면 이전 명사에 관한 서술적 어구임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독자들에게 다음 어구를 괄호에 놓도록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연속적인 시간이 흘러 뒤따르는 어떤 것을 가리키지 않는다. 이것은 와우 연결(waw consecutive)이라고 불리는 다른 히브리어 구조에 의해서 암시될 수 있는데, 여기서 와우는 동사에 의해서 뒤따라진다. (와우 연결은 사실 창조의 다른 날들 이전에 사용되었다. Creation at the academy (Dr Doug Kelly interview을 보라). 따라서 2절을 보다 낫게 번역하면, ”그런데 땅은(Now the earth) …”이 될 것이며, 의역을 하면, ”그런데 땅에 대해서 말하자면…”으로 할 수 있다. [10] 그것은 창세기의 저자가 (하나님의 지시 하에) 그러한 결합적인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의도적으로 두 구절 사이에 중단이 없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3. 창세기 1:2의 ‘was‘(히, '하야')를 간격이론가들은 ‘became‘으로 번역하여, ”그리고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게 되었다(became [or had become])”로 쓰고 있다. 간격이론가 쿠스탄스(A. C. Custance)는 그의 책 ‘혼돈하고 공허하며 (Without Form and Void)’‘에서 거의 5분의 4를 13개의 부록을 포함하여 이 번역, 특히 과거완료 시제인 ‘되었다(had become)’를 옹호하는 데 할애했다. 그러나 저명한 문법학자들과, 사전편찬자 및 언어학자들은 거의 한결같이 ‘되었다(became)’나 ‘되어왔었다(had become)’로 번역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11] 스트롱의 색인(Strong’s Concordance)에 하야(haya,)의 의미 중 하나로 ‘되었다(became)‘가 있는 것 때문에, 창세기 1:2절의 특별한 문장을 그렇게 번역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의 기본적인 주석 오류이다. 동사 하야가 접속사 와우와 결합되는 것은 단순하게 문법적으로도 불가능하다. 구약성서의 나머지 부분들에서 ’Waw + 명사 + haya‘ 는 항상 ‘was’ or ‘came’으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결코 ‘became’은 아니었다.
4. 창세기 1:2에서 히브리어 단어 토후와 보후는 ‘혼돈하고(형체가 없고)‘와 ‘공허하며(비어 있는)‘으로 번역되었는데, 간격이론가들은 이것이 지어져가는 과정 중에 있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심판에 의한 멸망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12] 그러나 토후는 성경에서 여러 번 나타나는데, 그것은 도덕적으로 중립의 상태에 대해 사용하며, 무언가 덜 끝나서 혼란스러운 것을 나타내지만, 그것이 반드시 악은 아니다! [13] 수세기 동안 히브리어 학자들과 교회에서는 창세기 1:2절이 천사의 타락에 의해 야기된 악의 상태나 심판의 장면이 아니라, 아직 개발되지 않은 원형의 우주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라는 관점을 취해왔다. 모세가 말한 평범하고도 단순한 의미는 첫째 날에 물로 덮인 큰 덩어리가 있었는데, 그 상태는 마른 땅이 없었으며(토후 = ‘아직 형성되지 않은‘), 아직 거주자가 없었다(보후 = ‘아직 채워지지 않은‘)는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간격이론을 가르치기 위해서 예레미아 4:23절의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들을 우러른즉 거기 빛이 없으며”을 오용하고 있다. 왜냐하면 거기에서는 심판의 결과를 묘사하는 ‘tohu va bohu’ 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쿠스탄스(Arthur Custance)와 같은 선도적인 간격이론가들은 '혼돈하고 공허하며(tohu va bohu, without form and void)‘라는 어구가 ”심판에 의해 황폐하게 되었다(laid waste by a judgment)"를 의미하고 있음이 틀림없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이 사실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것은 오류이다. 히브리어 단어에서 tohu VA bohu 자체가 그것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없다. 그들이 ‘황폐하게 되었다(laid waste)’와 관련짓는 유일한 이유는 그 단어가 발견된 문장에 기인한 것이다. 그 단어는 단순히 ”unformed and unfilled"를 의미한다. 이 언급은 창조되는 것, 또는 창조된 것이 제거되는 것에 기인될 수 없다. 예레미아 4장의 문장은 창조가 아니라, 예루살렘에 대한 바벨론의 약탈에 관한 예언이다. 사실, 예레미아 4:23절은 심판이 너무도 중하여, 마지막 상태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시기 이전의 공허했던 것처럼 될 것이라는, 창세기 1:2절에 대한 하나의 문학적 암시로서 알려져 있다. 예레미아 4:23은 하나의 심판으로서 창세기 1:2절을 해석하는 데에 사용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의 암시는 오직 일방향이기 때문에, 그것은 완전히 앞뒤가 뒤바뀌게 되는 것이다.
유사한 예를 들어보자. 컴퓨터에서 ‘아래 한글’을 열면, 문서창은 ‘공백(blank)’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내가 어떤 문서를 불러냈다가 전체 문서를 ‘삭제(delete)’ 하였다면, 문서창 역시 공백으로 될 것이다. 그래서 공백은 어떠한 글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문서는 내가 전혀 글을 타자치지 않아서 없고, 다른 문서는 있던 글을 삭제하여 없게 되었다면, 당신은 공백(blank) 이라는 단어 자체로부터 문서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쿠스탄스와 같은 유형의 해석에 의하면, ‘공백’은 모든 글들이 삭제되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된 스크린의 모습이라고 결론질 수 있다. 그래서 ‘공백’이라는 단어는 아무 것도 없었던 상태가 아니라, 모든 문서들을 삭제해버린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5. 창세기 1:28의 KJV 번역인 영어 단어 ‘replenish(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replenish) 땅을 정복하라)’는 간격이론가들이 주장하듯이 간격이론을 지지하지 않는다. 언어학자인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1611년 판에 번역되어 있는 'replenish”는 '채우다(fill)”와 동의어이며, 접두사 ”re-”는 ”다시”가 아니라 ”완전히”를 의미한다.”[14] 동일한 히브리 단어 마레(male)가 창세기 1:22에서 사용되었는데, 거기서는 ‘바다를 채우
라(fill)‘로 번역되어 있다. 따라서 이것을 28절에서는 다르게 번역할 필요가 없다. (What does replenish the earth mean?을 보라)
6. 흑암. ‘하나님은 빛(God is light)’ 이시 때문에(요한일서 1:5), 그리고 성경에서 ‘흑암(darkness)‘은 때때로 사악한 자에 대한 심판(출애굽기 10:21, 이사야 13:10, 요엘 2:31, 마태복음 27:45, 등)에 대한 은유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일부(전부는 아님) 간격이론가들은 창세기 1:2절이 악의 상태를 나타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것은 논리상의 실수이다. ”상징은 상징화된 것에 의해 혼동되었으며, 급기야는 바로 그 상징 자체가 지금은 악으로 간주되고 있다!” [15]
아직 빛이 창조되지 않았기 때문에 땅은 흑암일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고 하신 창세기 1:3절 말씀은 사실상 그 자체로도 간격이론을 충분히 반박할 수 있다. 새로운 간격이론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태초에‘ (창세기 1:1) 태양과 달과 별들이 모두 창조되었다면, 주장되는 1절과 2절 사이의 간격 이후에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실(3절) 필요가 왜 있었겠는가?
기타 문제들
1. 매우 많은 동물 화석들이 오늘날 살아있는 동물들의 모습과 사실상 동일하다. 전통적인 간격이론가들은 오늘날의 동물들이 과거에 존재했던 동물들의 직접적인 후손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왜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동일한 모습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2. 간격이론가들은 마가복음 10:6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간과했다. ”창조 시로부터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으니 (But from the beginning of the creation God made them male and female)”. 주님 자신은 분명히 창세기 1:1과 아담과 하와의 창조 사이에 어떤 의미 있는 간격을 염두에 두지 않으셨다.
3. 젊은 지구를 가리키는 수많은 우수한 과학적 증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16] (See Q&A: Young world evidence)
4. 간격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전체 개념은 ”뒤바뀌어진” 사고임을 보여준다. 그것은 성경을 기준으로 하여 사람의 견해를 살펴보려는 것이 아니라, 인본주의적인 진화론적 견해를 기준하여 성경을 해석하려고 하는 시도의 산물인 것이다.
결론
비록 간격이론이 그 선전자들에 의해 잘 정립되어 있기는 하지만, 언어학적, 성경적, 이론적, 또는 실제적 어떤 자료에 근거해서도 인증된 바 없다. 아담이 죄를 짓기 이전에 죽음이 있었다는 것을 옹호하는 것은 아담의 죄(Adam’s sin)로 인하여 죽음(death)이 들어왔다는 성경의 기록과 위배된다. 바로 그 아담의 죄 때문에 인간을 구속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상에서 죽으셨으며, 부활하시는 일이 필요했던 것이다.
References and notes
1. Proposed by Thomas Chalmers (1780–1847), founder of the Free Church of Scotland, the idea of a gap was ‘canonized’ for some Christians when C.I. Scofield included it in the footnotes of the Scofield Reference Bible in 1909.
2. The most academic presentation of the gap theory is to be found in Without Form and Void by Arthur C. Custance, Doorway Publications, Brookfield, Canada, 1970.
3. The two Bible passages that are usually invoked about the ‘fall’ of Satan are Isaiah 14:12–15 and Ezekiel 28:13–17. Both of these passages are in the context of prophecies about earthly kings (of Babylon and Tyre), and no explicit reference is made to Satan. However, even if these verses are so taken, there is no indication that any of the events described took place before Genesis 1:2.
4. Davis A. Young, Christianity and the Age of the Earth, Zondervan, Michigan, p. 25, 1982.
5. In other words, if Isaiah 14:12–15 and Ezekiel 28:13–17 do refer to the ‘fall’ of Satan (which certainly is not proven), this more consistently fits after Day Six of Creation Week, and not between verses 1 and 2 of Genesis 1. For further discussion, see my article, Who was the serpent?, Creation 13(4):36–38.
6. For further discussion see Weston W. Fields, Unformed and Unfilled, Burgener Enterprises, Collinsville, Illinois, p. 58, 1976.
7. In the Bible, spiritual death has the meaning of separation from God rather than of annihilation.
8. F. Brown, S.R. Driver, and C.A. Briggs, A Hebrew and English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Oxford, pp. 251–255, 1968, cited from Ref. 6, p. 81.
9. Kautzsch and Cowley, Gesenius’ Hebrew Grammar, p. 484, section 154a, footnote 1, cited from Ref. 6, p. 82.
10. For a more detailed explanation, see Ref. 6, pp. 81–86.
11. For a more detailed explanation see Ref. 6, pp. 87–112.
12. Ref. 2, p. 168.
13. Ref. 6, p. 129, which summarizes Fields’ arguments on pp. 113–130. Gappists sometimes claim that the two words are only used together (tohu wa bohu) in other parts of the Bible where judgment is in view; however, there is nothing in the context of Genesis, (which there is in these other references) which would independently suggest judgment.
14. Charles Taylor, The First 100 Words, The Good Book Co., Gosford, New South Wales, Australia, p. 74, 1996.
15. Ref. 6, p. 132.
16. See John D. Morris, The Young Earth, Master Books, Colorado Springs, 1994; as well as Dr. Russell Humphreys’ summary, Evidence for a young world, Creation 13(3):28–31, also available as a reprint from the UK, USA, NZ and Australian bookstores.
부록 1 : 간격이론(Gap Theory)이란 무엇인가?
간격이론은 일부 기독교 신학자들이 창세기를 우주가 대단히 오래 되었다는 통속적인 오래된 연대 개념과 맞추기 위한 타협적 시도이다. 간격이론가들은 문자적인 창세기를 믿지만, 지구에 대해 (막연히) 대단히 오래된 시대를 수용한다. 이런 견해와 일치시키기 위하여 그들은 창세기 1장의 1절과 2절 사이에 장구한 지질학적 시대를 끼워 넣는다. 하지만 그들은 진화론을 반대한다.
결정적인 반-간격(anti-gap) 이론 책인 '혼돈하지 않고 충만하지 않은(Unformed and Unfilled)'의 저자 웨스턴 필드(Weston W. Fields)에 따르면,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간격이론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고 하였다 :
”시기를 알 수 없는 아주 먼 과거에 하나님은 완전한 하늘과 완전한 땅을 창조하셨다. 사탄은 혼이 없는 인종이 살고 있는 땅의 통치자였다. 광물질로 이루어진 에덴동산에 살고 있던 사탄은(에스겔 28장) 마침내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여(이사야 14장) 반란을 일으켰다. 사탄의 타락으로 인하여 우주에 죄가 들어왔으며, 지구에는 홍수의 형태로 하나님의 심판을 가져왔고 (1:2의 물이 그것을 나타낸다), 그로 인하여 태양으로부터 빛과 열이 차단됨으로써 전 지구적인 빙하시대가 왔다. 오늘날 지구에서 보는 식물, 동물, 사람들의 모든 화석들은 이 '루시퍼의 홍수'에서 비롯된 것이며, 오늘날 지구상에 살고 있는 식물, 동물, 사람들과 어떠한 유전적인 관계도 지니고 있지 않다 …” (참고문헌 6, p.7).
오늘날의 생물들은 6일 동안의 재창조(recreation)에 의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멸망도 없었고(no ruin), 복구도 없었다(no reconstruction)는 새로운 형태의 간격이론이 등장했음을 주목하라. 이 이론의 제안자들은 단지 장구한 시간의 간격만을 가정하며, 오래된 우주, 오래된 지구, 또는 둘 다를 이야기 한다.
부록 2 : 천사를 어디에 끼워 넣어야 하는가?
출애굽기 20:11은 하나님이 천지의 모든 만물을 6일 동안에 만드셨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천사들과, 원래는 선하게 혹은 거룩하게 창조된 모든 존재들이 포함되어야만 한다 (골로새서 1:16, 유다서 1:6절).
욥기 38:4, 7에서는 하나님이 땅의 기초를 놓을 때, 즉 창조의 첫째 날(창세기 1:1)에 땅을 창조하셨고, 아직 그분이 빛을 창조하시기 이전에 천사들(‘하나님의 아들들‘)이 있었다고 제시한다. 천사들은 영적인 존재로서, 인간처럼 망막이 있는 눈을 가진 것이 아니므로, 아마도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어둠 속에서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존재들이 언제 반역하여 사탄과 그의 악마 추종자들이 떠났는가의 문제가 등장한다 (베드로후서 2:4, 유다서 1:6절). 이 반역사건은 창조의 마지막 6일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보시고 ”심히 좋았더라”고 선언하시기 이전에는 분명히 불가능하다 (창세기 1:31). 어떤 간격이론가들은 창조의 6일 이후와 창세기 3장의 사건 이전에는 이런 반역이 일어날 만한 시간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얼마나 긴 시간이었는가?
우리는 창조의 6일(혹은 제 7일?) 이후에 하와의 유혹이 일어나기까지(창세기 3장) 얼마의 시간이 걸렸는지 모른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가인이 죄성을 가지고 태어났으므로, 그의 부모가 타락한 이후에 그를 임신했어야 했기 때문에, 그것은 하와가 임신하게 되기(창세기 4:1) 이전이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창조의 6일과 (인간의) 타락 사이에 일주일밖에 없었다고 생각해 보자. 그것은 충분한 시간인가? 다음을 생각하자:
1. 천사들은 영적인 영역/차원에 산다. 우리는 이것이 우리 자신의 공간/물질/시간의 연속체와 어떻게 연관되는지 모른다. 아인슈타인 이후로, 우리는 시간은 일정하지 않으며, 예를 들면 중력 같은 것에 영향을 받으므로, 영적인 차원에서 시간은 (시간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우리가 아는 차원에서의 시간과 같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2. 위의 사항이 적용되지 않더라도, 한 주일의 시간도 충분할 시간일 수 있다. 그러나 창세기 1:2 이전에 간격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시간은 충분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인간적인 수준의 사고를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초인간적인 지능을 가진(전지하지는 않지만) 천사들은 분명히 사람들과 유사한 한계로 제한받지 않을 것이다.
3. 심지어 우리 사람들의 경우를 생각해 보더라도, 어떤 상황에 접근하여 만족할만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데 하루 혹은 한 시간으로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사람들을 선동하여 반역에 참가하게 하는데, 왜 꼭 오랜 시간이 필요한가? 평범한 시민들이 주먹질하고 폭도로 변하는 것은 수 시간 혹은 하루나 이틀의 선동만으로 충분하다. 참고로, 예수님의 재판에서 예루살렘의 군중들을 보라. 뒤이어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죄를 지은 천사들이 쫓겨나는 것도 그 이후의 매우 짧은 시간 내에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몇 분 이내도 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사들이 반역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창세기 1장의 1절과 2절 사이에 ‘간격‘이 있어야 함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그러한 관념은 창조의 6일 마지막에 모든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신 것과 상충된다.
*참조 : The gap theory—an idea with hole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294/
Morning has broken … but when?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386/
Unbinding the rules (critique of John Sailhamer’s sophistic version of the gap theory)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659/
What about the ‘gap’ and ‘ruin-reconstruction’ theories?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cabook/chapter3.pdf
‘Soft’ gap sophistry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553/
God of the Gaps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4/n1/god-of-gaps
The meaning of yôm in Genesis 1:1–2:4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2/j21_2_52-55.pdf
Days 1–4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3/j21_3_69-76.pdf
The Genesis 5 and 11 fluidity question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4754
The days of creation: A semantic approach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4100/
Who Begat Whom? : Closing the Gap in Genesis Genealogies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1/n2/who-begat-whom
Gap theory revisited
http://creation.com/gap-theory-revisited
Creation compromises—Gap Theory
http://creation.com/creation-compromises#gap
번역 - 이종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19/i2/beginning.asp
출처 - Creation 19(2):35–38, March 1997.
창세기에 간격이 있는가?
: 간격이론(Gap Theory)이란 무엇인가?
(From the beginning of the creation)
Russell Grigg
창세기 1장의 1절과 2절 사이에 수십억 년의 ‘간격(공백, gap)‘이 존재하는가? 그래서 진화론적 지질학자들이 주장하듯이 거기에 기독교인들이 장구한 시대를 편리하게 삽입할 수 있는가? [1, 2]
실제로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1. 모세는 무엇을 전달하려 했는가?
창세기 1장에 대한 가장 분명하고 직접적인 해석은, 그것이 초지혜자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어떤 신비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모세(혹은 그의 선조들)에게 계시하신 것들을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모세가 문자적이고 역사적으로 기록한 것(a literal historic account)으로, 이는 다른 확실한 반증이 없다면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만약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1절과 2절 사이에 수십억 년의 간격이 있어서, 그 기간 동안에 사탄, 죄, 심판, 형벌, 재창조(부록의 ‘간격이론‘을 보라) 등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이해시키려 했다면, 그에 관련된 사항들 중에 최소한 일부라도 하나님이 저자에게 알려주셨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그분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뿐만 아니라, 성경의 다른 어떤 곳에서도 그것들을 발견할 수 없다. [3]
사실상, 정통파 유대인들과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은 항상 창세기 1장을 문자적인 역사(literal history)로 읽어왔다. 유신진화론적 지질학자(theistic evolutionist geologist)인 데이비스 영(Davis Young)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인정했다.
2. 성경의 다른 부분들은 간격이론(Gap theory)에 대한 조종을 울리고 있다.
• 창세기 1:31은 이렇게 말씀한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very good)” (이 심히 좋았더라의 히브리 단어 ‘meod tov’ 는 완전하고, 어떠한 종류의 악도 전혀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그리고 이것은 칼빈(Calvin)과 많은 다른 주석가들이 지적해왔던 것이다).
만약 사탄이 이미 반역을 해버렸다면, 이것은 정확한 표현이 될 수 없다! 또한 만약, 아담 이전에 인간종족들을 모두 멸망시키고 동물계 전체의 멸종을 일으킨 ‘루시퍼-홍수‘들이 있어서, 질병, 폭력, 죽음, 부패의 흔적을 가진 수십억의 화석들이 만들어졌다면, 그리고 아담과 하와가 그러한 화석들이 묻혀 있는 땅 위를 걷고 있었다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보시고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을까? [5] (그들의 기념비적인 구약 주석에 의하면, Keil과 Delitzsch는 창세기 1:31절의 ‘심히 좋았더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모든 것은 그 종류대로 완벽했다..... 하나님의 창조에서 어떠한 악의 존재도 절대적으로 배제된다. 그것은 6일 창조를 부정하고 족쇄를 채우려는 반하나님적 악한 가설을 기각하고 있는 것이다.”)
• 창세기 6-9장은 전 지구적 홍수를 묘사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노아의 방주에 타지 않았던, 코로 호흡하는 모든 육상동물들이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간격이론가들은 화석이 ‘루시퍼의 홍수‘로 인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노아의 홍수는 실질적으로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거나, 아니면 단지 지역적인 홍수라고 결론을 내리려 한다. 분명히 화석의 원천에 대한 보다 나은 설명은, 성경이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은 가상적인 홍수보다, 성경에서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노아 홍수에 있다!
• 출애굽기 20:11은 이렇게 말씀한다.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 이것은 창세기 이외의 곳에서 창조의 시간 틀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결정적인 구절이다. 이 구절은 하나님이 6일 안에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고 단언적으로 말씀하고 있다. 간격은 전혀 허용되지 않고 있다. [6]
• 로마서 5:12은 이렇게 말씀한다. ”이러므로 한 사람(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아담은 여섯째 날에 창조되었는데, 고전적인 간격이론은 첫째 날 이전의 간격 동안에 죽음이 있었다고 말한다. 사도 바울에 의하면 그렇지 않다! 이 구절은 아담의 죄 때문에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죽음이 세상에 들어왔다고 평범하게 말한다. 이 구절을 인간의 죽음만으로 제한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오히려, 로마서 8:20에서는 모든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아담이 죄를 저지르기 이전에는 (증거 없이 주장된 ‘루시퍼의 홍수‘에서 죽은 화석과 같이) 세상에 죽음이 있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간격이론가들은 로마서 5:12과 창세기 3:3이 영적인 죽음만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지 않다. 아담은 육체적으로 죽어가기 시작했고(히브리어: ‘장차 죽는 죽음‘, 즉, 죽음의 과정이 시작되었다. 창세기 3:19은 창세기 5:5에서 완성되었다.), 또한 영적으로 죽었다.[7]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하여 육체적인 죽음과 영적인 죽음을 모두 겪으셨다(마태복음 27:46). 또한 고린도전서 15:21-22을 보라.
간격을 찬성하는 것으로 주장되는 성경적 증거들
간격이론가들은 소수의 히브리 단어들에 대한 수정론자의 번역(revisionist translations)에 심하게 의존하고 있다.
1. 히브리 단어 빠라(bara, '무로부터 창조하다‘)와 아싸(assa, '만들다‘). 창세기 1:1은 빠라를 사용하고 출애굽기 20:11은 아싸를 사용한다. 간격이론가들은, 빠라와 아싸를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출애굽기 20:11은 멸망한 세상의 재창조와 재형성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답: 창세기 1장에서 히브리 단어 빠라가 세 번 사용되었는데, 그때마다 완전히 새로운 실체 - 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의 창조를 나타낸다.
창세기 1:1에서 빠라는 하늘과 땅의 창조에 대해 사용되었다.
창세기 1:21에서 빠라는 최초의 정신을 가진 동물(또는 네페쉬) 생명의 창조에 대해 사용되었다.
창세기 1:27에서 빠라는 최초의 사람, 즉,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든 인간 생명의 창조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러나 창세기 1:26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아싸]”, 반면에 바로 다음 구절에서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빠라]”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빠라와 아싸를 둘 다 사용하여 같은 사건을 설명하고 있으므로, 그 동사들은 분명히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된 것이다. 더군다나, 창세기 2:4은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아싸] 때에 천지의 창조된 [빠라] 대략이 이러하니라”. 여기서 빠라와 아싸가 동의어를 의미하는 병행구로 함께 사용되었다. 이것은 또 다시 모세가 그 단어들을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했음을 나타낸다.
간혹 아싸는 간격이론가들의 반하는 주장에도 (예로 느헤미야 9:6) 불구하고, 무에서부터(ex nihilo, out of nothing)의 창조를 의미할 때 사용된다. 하나님은 홀로 주님이시다. 하나님은 하늘과 가장 높은 하늘까지 만드셨고(아싸), 그리고 별들의 주인이시며, 땅과 그 위에 모든 것들을 만드셨으며, 바다와 그 안에 모든 것들을 만드셨다. 하나님은 모두에게 생명을 주셨고, 하늘의 하늘들이 경배하고 있는 것이다.
2. ”'와우(waw)’는 히브리어 문자의 이름인데 접속사로 사용된다. 그것은, '그리고(and)', '그러나(but)', '이제(now)', '그리고 나서(then)' 등의 의미로 사용되며, 와우가 포함된 형태와 문맥에 따라 기타 몇 가지 다른 의미로도 사용된다.” [8] 이것은 창세기 1:2절의 앞부분에 있는데, KJV에서는 ”그리고(and, 와우) 땅은 형체가 없고 비어있었다”로 번역되었다.
간격이론가들은 이 번역을 간격이론을 지지하는데 이용한다. 그러나 원전을 가장 직설적으로 읽으면, 창세기 1장 1절은 주어 + 동사의 주절로 되어 있고, 2절은 3개의 종속절로 되어 있다. "이것은 히브리어 문법학자인 게세니우스(Gesenius)가 '와우 설명(wawexplicativum)' 혹은 설명적인 와우 라고 이름 붙인 것으로서, 영어의 '즉(to wit)'에 비견된다." [9] 그러한 와우 접속사는 비동사(non-verb)에 의해서 뒤따라지는 와우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히브리어에서 쉽게 말해진다. 그것은 삽입어구적 문장(parenthetic statement)을 소개하고 있다. 즉, 그것은 이를테면 이전 명사에 관한 서술적 어구임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독자들에게 다음 어구를 괄호에 놓도록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연속적인 시간이 흘러 뒤따르는 어떤 것을 가리키지 않는다. 이것은 와우 연결(waw consecutive)이라고 불리는 다른 히브리어 구조에 의해서 암시될 수 있는데, 여기서 와우는 동사에 의해서 뒤따라진다. (와우 연결은 사실 창조의 다른 날들 이전에 사용되었다. Creation at the academy (Dr Doug Kelly interview을 보라). 따라서 2절을 보다 낫게 번역하면, ”그런데 땅은(Now the earth) …”이 될 것이며, 의역을 하면, ”그런데 땅에 대해서 말하자면…”으로 할 수 있다. [10] 그것은 창세기의 저자가 (하나님의 지시 하에) 그러한 결합적인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의도적으로 두 구절 사이에 중단이 없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3. 창세기 1:2의 ‘was‘(히, '하야')를 간격이론가들은 ‘became‘으로 번역하여, ”그리고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게 되었다(became [or had become])”로 쓰고 있다. 간격이론가 쿠스탄스(A. C. Custance)는 그의 책 ‘혼돈하고 공허하며 (Without Form and Void)’‘에서 거의 5분의 4를 13개의 부록을 포함하여 이 번역, 특히 과거완료 시제인 ‘되었다(had become)’를 옹호하는 데 할애했다. 그러나 저명한 문법학자들과, 사전편찬자 및 언어학자들은 거의 한결같이 ‘되었다(became)’나 ‘되어왔었다(had become)’로 번역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11] 스트롱의 색인(Strong’s Concordance)에 하야(haya,)의 의미 중 하나로 ‘되었다(became)‘가 있는 것 때문에, 창세기 1:2절의 특별한 문장을 그렇게 번역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의 기본적인 주석 오류이다. 동사 하야가 접속사 와우와 결합되는 것은 단순하게 문법적으로도 불가능하다. 구약성서의 나머지 부분들에서 ’Waw + 명사 + haya‘ 는 항상 ‘was’ or ‘came’으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결코 ‘became’은 아니었다.
4. 창세기 1:2에서 히브리어 단어 토후와 보후는 ‘혼돈하고(형체가 없고)‘와 ‘공허하며(비어 있는)‘으로 번역되었는데, 간격이론가들은 이것이 지어져가는 과정 중에 있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심판에 의한 멸망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12] 그러나 토후는 성경에서 여러 번 나타나는데, 그것은 도덕적으로 중립의 상태에 대해 사용하며, 무언가 덜 끝나서 혼란스러운 것을 나타내지만, 그것이 반드시 악은 아니다! [13] 수세기 동안 히브리어 학자들과 교회에서는 창세기 1:2절이 천사의 타락에 의해 야기된 악의 상태나 심판의 장면이 아니라, 아직 개발되지 않은 원형의 우주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라는 관점을 취해왔다. 모세가 말한 평범하고도 단순한 의미는 첫째 날에 물로 덮인 큰 덩어리가 있었는데, 그 상태는 마른 땅이 없었으며(토후 = ‘아직 형성되지 않은‘), 아직 거주자가 없었다(보후 = ‘아직 채워지지 않은‘)는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간격이론을 가르치기 위해서 예레미아 4:23절의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들을 우러른즉 거기 빛이 없으며”을 오용하고 있다. 왜냐하면 거기에서는 심판의 결과를 묘사하는 ‘tohu va bohu’ 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쿠스탄스(Arthur Custance)와 같은 선도적인 간격이론가들은 '혼돈하고 공허하며(tohu va bohu, without form and void)‘라는 어구가 ”심판에 의해 황폐하게 되었다(laid waste by a judgment)"를 의미하고 있음이 틀림없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이 사실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것은 오류이다. 히브리어 단어에서 tohu VA bohu 자체가 그것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없다. 그들이 ‘황폐하게 되었다(laid waste)’와 관련짓는 유일한 이유는 그 단어가 발견된 문장에 기인한 것이다. 그 단어는 단순히 ”unformed and unfilled"를 의미한다. 이 언급은 창조되는 것, 또는 창조된 것이 제거되는 것에 기인될 수 없다. 예레미아 4장의 문장은 창조가 아니라, 예루살렘에 대한 바벨론의 약탈에 관한 예언이다. 사실, 예레미아 4:23절은 심판이 너무도 중하여, 마지막 상태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시기 이전의 공허했던 것처럼 될 것이라는, 창세기 1:2절에 대한 하나의 문학적 암시로서 알려져 있다. 예레미아 4:23은 하나의 심판으로서 창세기 1:2절을 해석하는 데에 사용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의 암시는 오직 일방향이기 때문에, 그것은 완전히 앞뒤가 뒤바뀌게 되는 것이다.
유사한 예를 들어보자. 컴퓨터에서 ‘아래 한글’을 열면, 문서창은 ‘공백(blank)’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내가 어떤 문서를 불러냈다가 전체 문서를 ‘삭제(delete)’ 하였다면, 문서창 역시 공백으로 될 것이다. 그래서 공백은 어떠한 글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문서는 내가 전혀 글을 타자치지 않아서 없고, 다른 문서는 있던 글을 삭제하여 없게 되었다면, 당신은 공백(blank) 이라는 단어 자체로부터 문서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쿠스탄스와 같은 유형의 해석에 의하면, ‘공백’은 모든 글들이 삭제되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된 스크린의 모습이라고 결론질 수 있다. 그래서 ‘공백’이라는 단어는 아무 것도 없었던 상태가 아니라, 모든 문서들을 삭제해버린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5. 창세기 1:28의 KJV 번역인 영어 단어 ‘replenish(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replenish) 땅을 정복하라)’는 간격이론가들이 주장하듯이 간격이론을 지지하지 않는다. 언어학자인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1611년 판에 번역되어 있는 'replenish”는 '채우다(fill)”와 동의어이며, 접두사 ”re-”는 ”다시”가 아니라 ”완전히”를 의미한다.”[14] 동일한 히브리 단어 마레(male)가 창세기 1:22에서 사용되었는데, 거기서는 ‘바다를 채우
라(fill)‘로 번역되어 있다. 따라서 이것을 28절에서는 다르게 번역할 필요가 없다. (What does replenish the earth mean?을 보라)
6. 흑암. ‘하나님은 빛(God is light)’ 이시 때문에(요한일서 1:5), 그리고 성경에서 ‘흑암(darkness)‘은 때때로 사악한 자에 대한 심판(출애굽기 10:21, 이사야 13:10, 요엘 2:31, 마태복음 27:45, 등)에 대한 은유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일부(전부는 아님) 간격이론가들은 창세기 1:2절이 악의 상태를 나타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것은 논리상의 실수이다. ”상징은 상징화된 것에 의해 혼동되었으며, 급기야는 바로 그 상징 자체가 지금은 악으로 간주되고 있다!” [15]
아직 빛이 창조되지 않았기 때문에 땅은 흑암일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고 하신 창세기 1:3절 말씀은 사실상 그 자체로도 간격이론을 충분히 반박할 수 있다. 새로운 간격이론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태초에‘ (창세기 1:1) 태양과 달과 별들이 모두 창조되었다면, 주장되는 1절과 2절 사이의 간격 이후에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실(3절) 필요가 왜 있었겠는가?
기타 문제들
1. 매우 많은 동물 화석들이 오늘날 살아있는 동물들의 모습과 사실상 동일하다. 전통적인 간격이론가들은 오늘날의 동물들이 과거에 존재했던 동물들의 직접적인 후손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왜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동일한 모습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2. 간격이론가들은 마가복음 10:6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간과했다. ”창조 시로부터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으니 (But from the beginning of the creation God made them male and female)”. 주님 자신은 분명히 창세기 1:1과 아담과 하와의 창조 사이에 어떤 의미 있는 간격을 염두에 두지 않으셨다.
3. 젊은 지구를 가리키는 수많은 우수한 과학적 증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16] (See Q&A: Young world evidence)
4. 간격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전체 개념은 ”뒤바뀌어진” 사고임을 보여준다. 그것은 성경을 기준으로 하여 사람의 견해를 살펴보려는 것이 아니라, 인본주의적인 진화론적 견해를 기준하여 성경을 해석하려고 하는 시도의 산물인 것이다.
결론
비록 간격이론이 그 선전자들에 의해 잘 정립되어 있기는 하지만, 언어학적, 성경적, 이론적, 또는 실제적 어떤 자료에 근거해서도 인증된 바 없다. 아담이 죄를 짓기 이전에 죽음이 있었다는 것을 옹호하는 것은 아담의 죄(Adam’s sin)로 인하여 죽음(death)이 들어왔다는 성경의 기록과 위배된다. 바로 그 아담의 죄 때문에 인간을 구속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상에서 죽으셨으며, 부활하시는 일이 필요했던 것이다.
References and notes
1. Proposed by Thomas Chalmers (1780–1847), founder of the Free Church of Scotland, the idea of a gap was ‘canonized’ for some Christians when C.I. Scofield included it in the footnotes of the Scofield Reference Bible in 1909.
2. The most academic presentation of the gap theory is to be found in Without Form and Void by Arthur C. Custance, Doorway Publications, Brookfield, Canada, 1970.
3. The two Bible passages that are usually invoked about the ‘fall’ of Satan are Isaiah 14:12–15 and Ezekiel 28:13–17. Both of these passages are in the context of prophecies about earthly kings (of Babylon and Tyre), and no explicit reference is made to Satan. However, even if these verses are so taken, there is no indication that any of the events described took place before Genesis 1:2.
4. Davis A. Young, Christianity and the Age of the Earth, Zondervan, Michigan, p. 25, 1982.
5. In other words, if Isaiah 14:12–15 and Ezekiel 28:13–17 do refer to the ‘fall’ of Satan (which certainly is not proven), this more consistently fits after Day Six of Creation Week, and not between verses 1 and 2 of Genesis 1. For further discussion, see my article, Who was the serpent?, Creation 13(4):36–38.
6. For further discussion see Weston W. Fields, Unformed and Unfilled, Burgener Enterprises, Collinsville, Illinois, p. 58, 1976.
7. In the Bible, spiritual death has the meaning of separation from God rather than of annihilation.
8. F. Brown, S.R. Driver, and C.A. Briggs, A Hebrew and English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Oxford, pp. 251–255, 1968, cited from Ref. 6, p. 81.
9. Kautzsch and Cowley, Gesenius’ Hebrew Grammar, p. 484, section 154a, footnote 1, cited from Ref. 6, p. 82.
10. For a more detailed explanation, see Ref. 6, pp. 81–86.
11. For a more detailed explanation see Ref. 6, pp. 87–112.
12. Ref. 2, p. 168.
13. Ref. 6, p. 129, which summarizes Fields’ arguments on pp. 113–130. Gappists sometimes claim that the two words are only used together (tohu wa bohu) in other parts of the Bible where judgment is in view; however, there is nothing in the context of Genesis, (which there is in these other references) which would independently suggest judgment.
14. Charles Taylor, The First 100 Words, The Good Book Co., Gosford, New South Wales, Australia, p. 74, 1996.
15. Ref. 6, p. 132.
16. See John D. Morris, The Young Earth, Master Books, Colorado Springs, 1994; as well as Dr. Russell Humphreys’ summary, Evidence for a young world, Creation 13(3):28–31, also available as a reprint from the UK, USA, NZ and Australian bookstores.
부록 1 : 간격이론(Gap Theory)이란 무엇인가?
간격이론은 일부 기독교 신학자들이 창세기를 우주가 대단히 오래 되었다는 통속적인 오래된 연대 개념과 맞추기 위한 타협적 시도이다. 간격이론가들은 문자적인 창세기를 믿지만, 지구에 대해 (막연히) 대단히 오래된 시대를 수용한다. 이런 견해와 일치시키기 위하여 그들은 창세기 1장의 1절과 2절 사이에 장구한 지질학적 시대를 끼워 넣는다. 하지만 그들은 진화론을 반대한다.
결정적인 반-간격(anti-gap) 이론 책인 '혼돈하지 않고 충만하지 않은(Unformed and Unfilled)'의 저자 웨스턴 필드(Weston W. Fields)에 따르면,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간격이론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고 하였다 :
오늘날의 생물들은 6일 동안의 재창조(recreation)에 의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멸망도 없었고(no ruin), 복구도 없었다(no reconstruction)는 새로운 형태의 간격이론이 등장했음을 주목하라. 이 이론의 제안자들은 단지 장구한 시간의 간격만을 가정하며, 오래된 우주, 오래된 지구, 또는 둘 다를 이야기 한다.
부록 2 : 천사를 어디에 끼워 넣어야 하는가?
출애굽기 20:11은 하나님이 천지의 모든 만물을 6일 동안에 만드셨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천사들과, 원래는 선하게 혹은 거룩하게 창조된 모든 존재들이 포함되어야만 한다 (골로새서 1:16, 유다서 1:6절).
욥기 38:4, 7에서는 하나님이 땅의 기초를 놓을 때, 즉 창조의 첫째 날(창세기 1:1)에 땅을 창조하셨고, 아직 그분이 빛을 창조하시기 이전에 천사들(‘하나님의 아들들‘)이 있었다고 제시한다. 천사들은 영적인 존재로서, 인간처럼 망막이 있는 눈을 가진 것이 아니므로, 아마도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어둠 속에서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존재들이 언제 반역하여 사탄과 그의 악마 추종자들이 떠났는가의 문제가 등장한다 (베드로후서 2:4, 유다서 1:6절). 이 반역사건은 창조의 마지막 6일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보시고 ”심히 좋았더라”고 선언하시기 이전에는 분명히 불가능하다 (창세기 1:31). 어떤 간격이론가들은 창조의 6일 이후와 창세기 3장의 사건 이전에는 이런 반역이 일어날 만한 시간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얼마나 긴 시간이었는가?
우리는 창조의 6일(혹은 제 7일?) 이후에 하와의 유혹이 일어나기까지(창세기 3장) 얼마의 시간이 걸렸는지 모른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가인이 죄성을 가지고 태어났으므로, 그의 부모가 타락한 이후에 그를 임신했어야 했기 때문에, 그것은 하와가 임신하게 되기(창세기 4:1) 이전이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창조의 6일과 (인간의) 타락 사이에 일주일밖에 없었다고 생각해 보자. 그것은 충분한 시간인가? 다음을 생각하자:
1. 천사들은 영적인 영역/차원에 산다. 우리는 이것이 우리 자신의 공간/물질/시간의 연속체와 어떻게 연관되는지 모른다. 아인슈타인 이후로, 우리는 시간은 일정하지 않으며, 예를 들면 중력 같은 것에 영향을 받으므로, 영적인 차원에서 시간은 (시간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우리가 아는 차원에서의 시간과 같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2. 위의 사항이 적용되지 않더라도, 한 주일의 시간도 충분할 시간일 수 있다. 그러나 창세기 1:2 이전에 간격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시간은 충분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인간적인 수준의 사고를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초인간적인 지능을 가진(전지하지는 않지만) 천사들은 분명히 사람들과 유사한 한계로 제한받지 않을 것이다.
3. 심지어 우리 사람들의 경우를 생각해 보더라도, 어떤 상황에 접근하여 만족할만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데 하루 혹은 한 시간으로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사람들을 선동하여 반역에 참가하게 하는데, 왜 꼭 오랜 시간이 필요한가? 평범한 시민들이 주먹질하고 폭도로 변하는 것은 수 시간 혹은 하루나 이틀의 선동만으로 충분하다. 참고로, 예수님의 재판에서 예루살렘의 군중들을 보라. 뒤이어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죄를 지은 천사들이 쫓겨나는 것도 그 이후의 매우 짧은 시간 내에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몇 분 이내도 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사들이 반역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창세기 1장의 1절과 2절 사이에 ‘간격‘이 있어야 함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그러한 관념은 창조의 6일 마지막에 모든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신 것과 상충된다.
*참조 : The gap theory—an idea with hole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294/
Morning has broken … but when?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386/
Unbinding the rules (critique of John Sailhamer’s sophistic version of the gap theory)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659/
What about the ‘gap’ and ‘ruin-reconstruction’ theories?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cabook/chapter3.pdf
‘Soft’ gap sophistry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553/
God of the Gaps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4/n1/god-of-gaps
The meaning of yôm in Genesis 1:1–2:4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2/j21_2_52-55.pdf
Days 1–4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3/j21_3_69-76.pdf
The Genesis 5 and 11 fluidity question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4754
The days of creation: A semantic approach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4100/
Who Begat Whom? : Closing the Gap in Genesis Genealogies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1/n2/who-begat-whom
Gap theory revisited
http://creation.com/gap-theory-revisited
Creation compromises—Gap Theory
http://creation.com/creation-compromises#gap
번역 - 이종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19/i2/beginning.asp
출처 - Creation 19(2):35–38, March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