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장의 하루
김홍석
창세기 1장의 ‘날’에 해당하는 단어 히브리어 ‘욤’은 날, 시간, 해, 낮, 생애, 시대, 어제, 오늘, 내일 등의 뜻으로 문맥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창세기 사용된 이 단어의 용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창 1:5> ”하나님이 빛(히. 오르)을 낮(히. 욤)이라 부르시고 어둠(히. 호쉐크)을 밤(히. 라예라)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히. 욤)이니라”
<창 2:4>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히. 욤)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창 2:17> ”…네가 먹는 날(히. 욤)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그러므로 ‘욤’은 문맥 속에서 그 의미를 살펴야 한다. 창세기 1장의 ‘하루’가 특별히 긴 어떤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문자적인 하루를 의미한다는 것을 왜곡하지 않도록 하는 문학적인 장치들이 존재한다. 성경의 최종본문의 모습(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성경, final form)이 왜 이렇게 서술되어 있는가를 깊이 사색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본문에 대한 이러한 탐구로부터 분명히 창세기 1장의 ‘하루’가 문자적으로 실제의 하루를 의미한 것인지 아니면 아닌 다른 어떤 긴 시간을 의미한 것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게 해주는 분명한 문학적 장치들을 발견할 수 있다.
1. 본문의 내부적 관계
첫째, 창조 주간의 여섯 번의 하루 앞에는 빠짐없이 각각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바예히 에레브 바예히 보케르)라는 수식어가 분명히 반복적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그 의도하는 바의 하나는, 하루가 다른 긴 기간이 아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길이의 시간 그저 하루라는 것이다.
둘째, 유독 첫째 날에 대한 서술에서만 서수가 아닌 기수를 사용하여(‘리숀’ 대신에 ‘에하드’) 맨 처음의 하루였다고 말한다. 이것은 맨 처음 하루는 아직 다른 날이 존재하기 전이므로 서수가 적절하지 않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하루’라고 하는 시간 단위가 만들어 진 것이다. 즉, 하루가 정의되었다. 그리고 이후로 이 ‘하루’라는 시간 단위가 일정하게 기능하기 시작한 것이다.
셋째, 하나의 열린 문단으로 구성된 넷째 날에 대한 서술인 창 1:14-19 내에 낮(욤), 밤(라예라), 계절(모에드), 날(욤), 해(솨네; 년, 해, year),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째 날이니라”는 시간 단위의 표현들이 공존하도록 서술함으로써 이는 단지 하루임을 의미하며 어떤 다른 시간으로도 해석할 수 없도록 하는 서술적 전략이며 문학적 장치이다.
넷째, 모든 날에 동일한 수식어를 사용한 것은 당연히 의도적인 것이며, 이는 태양이 만들어진 제4일 이후나 이전의 하루가 동일한 하루임을 의미한다. 아울러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은 해가 있어야 빛이 있는 것이 아니라, 빛이 있으라 하시므로 이미 빛이 존재하게 되었고, 하루라는 시간단위를 이루는 질서가 있게 된 연후에 넷째 날 만들어진 태양과 달 등은 하나님의 의도대로 첫날부터 기능하기 시작된 질서에 맞춰 넷째 날부터 기능하도록 임직을 주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태양과 달에 의해 하루가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이미 창조된 하루에 맞춰서 태양과 달이 기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2. 정경적 상호관계
첫째, 창세기 5:15~17은 하나의 닫힌 문단(히, 쓰투마)이다. 짧은 한 문단 내에 65세에 자식을 낳은 사실과 895세를 살았다는 사실을 연결시켜 서술하고 있는 것은 그 나이는 기록된 그대로임을 강조하고자 하는 전략적 배치로 보인다. 즉 895세가 믿기지 않아서 10분의 1로 줄이거나, 1개월을 한 살로 해석을 시도해보면 65세에 자식을 낳은 것은 6.5세나 65개월 나이에 자식을 낳게 되는 부조화를 초래하므로 다른 어떤 해석도 불가하도록 장치해 놓은 것이다.
창세기 5:15~17 ”마할랄렐은 육십오 세에 야렛을 낳았고 야렛을 낳은 후 팔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팔백구십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둘째, 출애굽기 20:8~11, 31:15-18에서 명하신 7일째 안식일로 지켜야 하는 날은 다른 긴 시간이나 시대가 아니라 실제 ‘우리의 하루’였다. 그러므로 동일 문단 내 서술된 6일 또한 ‘우리의 6일’이다.
출애굽기 20:8~11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 31:15-18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죽일지니라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일곱째 날에 일을 마치고 쉬었음이니라 하라…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손가락으로) 쓰신 것이라”
우리의 생각이 어떠하든 간에 성경은 창세기 1장의 '하루'가 실제의 '하루'였다고 분명하게 서술하고 있다.
창세기 1장의 하루
김홍석
창세기 1장의 ‘날’에 해당하는 단어 히브리어 ‘욤’은 날, 시간, 해, 낮, 생애, 시대, 어제, 오늘, 내일 등의 뜻으로 문맥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창세기 사용된 이 단어의 용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창 1:5> ”하나님이 빛(히. 오르)을 낮(히. 욤)이라 부르시고 어둠(히. 호쉐크)을 밤(히. 라예라)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히. 욤)이니라”
<창 2:4>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히. 욤)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창 2:17> ”…네가 먹는 날(히. 욤)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그러므로 ‘욤’은 문맥 속에서 그 의미를 살펴야 한다. 창세기 1장의 ‘하루’가 특별히 긴 어떤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문자적인 하루를 의미한다는 것을 왜곡하지 않도록 하는 문학적인 장치들이 존재한다. 성경의 최종본문의 모습(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성경, final form)이 왜 이렇게 서술되어 있는가를 깊이 사색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본문에 대한 이러한 탐구로부터 분명히 창세기 1장의 ‘하루’가 문자적으로 실제의 하루를 의미한 것인지 아니면 아닌 다른 어떤 긴 시간을 의미한 것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게 해주는 분명한 문학적 장치들을 발견할 수 있다.
1. 본문의 내부적 관계
첫째, 창조 주간의 여섯 번의 하루 앞에는 빠짐없이 각각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바예히 에레브 바예히 보케르)라는 수식어가 분명히 반복적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그 의도하는 바의 하나는, 하루가 다른 긴 기간이 아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길이의 시간 그저 하루라는 것이다.
둘째, 유독 첫째 날에 대한 서술에서만 서수가 아닌 기수를 사용하여(‘리숀’ 대신에 ‘에하드’) 맨 처음의 하루였다고 말한다. 이것은 맨 처음 하루는 아직 다른 날이 존재하기 전이므로 서수가 적절하지 않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하루’라고 하는 시간 단위가 만들어 진 것이다. 즉, 하루가 정의되었다. 그리고 이후로 이 ‘하루’라는 시간 단위가 일정하게 기능하기 시작한 것이다.
셋째, 하나의 열린 문단으로 구성된 넷째 날에 대한 서술인 창 1:14-19 내에 낮(욤), 밤(라예라), 계절(모에드), 날(욤), 해(솨네; 년, 해, year),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째 날이니라”는 시간 단위의 표현들이 공존하도록 서술함으로써 이는 단지 하루임을 의미하며 어떤 다른 시간으로도 해석할 수 없도록 하는 서술적 전략이며 문학적 장치이다.
넷째, 모든 날에 동일한 수식어를 사용한 것은 당연히 의도적인 것이며, 이는 태양이 만들어진 제4일 이후나 이전의 하루가 동일한 하루임을 의미한다. 아울러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은 해가 있어야 빛이 있는 것이 아니라, 빛이 있으라 하시므로 이미 빛이 존재하게 되었고, 하루라는 시간단위를 이루는 질서가 있게 된 연후에 넷째 날 만들어진 태양과 달 등은 하나님의 의도대로 첫날부터 기능하기 시작된 질서에 맞춰 넷째 날부터 기능하도록 임직을 주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태양과 달에 의해 하루가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이미 창조된 하루에 맞춰서 태양과 달이 기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2. 정경적 상호관계
첫째, 창세기 5:15~17은 하나의 닫힌 문단(히, 쓰투마)이다. 짧은 한 문단 내에 65세에 자식을 낳은 사실과 895세를 살았다는 사실을 연결시켜 서술하고 있는 것은 그 나이는 기록된 그대로임을 강조하고자 하는 전략적 배치로 보인다. 즉 895세가 믿기지 않아서 10분의 1로 줄이거나, 1개월을 한 살로 해석을 시도해보면 65세에 자식을 낳은 것은 6.5세나 65개월 나이에 자식을 낳게 되는 부조화를 초래하므로 다른 어떤 해석도 불가하도록 장치해 놓은 것이다.
창세기 5:15~17 ”마할랄렐은 육십오 세에 야렛을 낳았고 야렛을 낳은 후 팔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팔백구십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둘째, 출애굽기 20:8~11, 31:15-18에서 명하신 7일째 안식일로 지켜야 하는 날은 다른 긴 시간이나 시대가 아니라 실제 ‘우리의 하루’였다. 그러므로 동일 문단 내 서술된 6일 또한 ‘우리의 6일’이다.
출애굽기 20:8~11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 31:15-18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죽일지니라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일곱째 날에 일을 마치고 쉬었음이니라 하라…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손가락으로) 쓰신 것이라”
우리의 생각이 어떠하든 간에 성경은 창세기 1장의 '하루'가 실제의 '하루'였다고 분명하게 서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