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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Andy Mcintosh
2017-08-22

죽음에 대한 성경적 이해, 그리고 창조와 십자가 

: 유신진화론자들의 죽음에 대한 왜곡 

(What Is the Scriptural Understanding of Death? Creation and the Cross)


      하나님이 진화를 사용하셨다는 견해(유신진화론)는 점차 우리 복음주의 교회내로 스며들고 있다. AiG의 연사 중 테리 몬테슨(Terry Mortenson) 박사와 나다니엘 진슨(Nathaniel Jeanson) 박사는 최근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서 개최된 복음주의 신학 연례회의에 참석했다. 15년 전에는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았을 것같은 논문들이 올해에는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었다. 아담의 역사적 실존에 대해 의심을 하고 있는 일부 논문들이 여전히 복음주의적이라고 말해지고 있는 것이었다. 참으로 심각하다. 복음주의 운동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존 스토트(John Stott) 조차도 하나님이 유인원과 같은 생물체를 사용하셔서, 그중 하나를 택하고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영적 존재(아담)가 되었다는 견해를 지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스펄젼(Spurgeon)은 당시 ‘내리막길 논쟁(Down-Grade Controversy)’에서, 성경의 권위에 대해서, 특히 창세기의 권위에 대해서 이야기했었다.

창세기가 왜 신학적으로 중요한가?를 물었는데, 창세기는 죽음(death)이 타락의 결과로 온 것이지, 과거부터 존재하고 있던 것이 아님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음 내용에서 우리는 죽음이 분리(separation)를 포함한 두 가지 측면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은 타락으로 인해, 영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죽었다.

창조에 대한 타락과 저주의 영향

죄가 세상에 들어왔을 때, 사람은 영적으로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죽었다. 이전까지 사람은 죽어가고 있지 않았다. 모든 죽음(사망)에 대한 기원이 확실히 영적이란 것은 로마서 6:23절에서 가르치고 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히브리서 2:14절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하셨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세기 2:17).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죽어갈 것이다, 그래서 죽을 것이다(dying, thou shalt die)”를 의미한다. 창세기 저자의 관점에서 창세기 2:17절은 두 가지 사망을 가리키고 있다.(이것은 나중에 요한계시록 20장에서 분명해진다.) 히브리어 단어의 반복 사용은 종종 강조를 하기위해서 사용된다. 육체적인 죽음이 포함되었는가? 그렇다. 왜냐하면 타락 이후에 창세기 3:19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세기 3장의 끔찍한 사건을 읽을 때, 우리는 죽음이란 무엇인지 보게 되는데, 바로 분리됨(separation)이다. 첫째로 영적 사망이 있다. 아담과 하와는 그들이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분리된다는 것을 알았다. 반면에 죄 이전에 그들은 그분과 완전한 교통을 누렸다. (일부 사람들은 창세기 3:8절에서 하나님께서 이전에 아담과 동행하셨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생각한다.) 주님은 아담이 어디에 있었는지 알고 계셨지만, 9절에서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신 질문은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우리는 좀 더 확장하여 로마서 5:18절을 보면,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하나님께서는 인류 전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외치고 계신 것을 볼 수 있다. 아담은 시들어버릴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삼으며, 하나님의 면전에서 하와와 함께 숨으려고 애쓸 때에, 그는 이미 영적인 분리를 경험하고 있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육체적으로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세기 3:19). 그리고 약 9백년 후 아담은 육체적인 죽음을 겪게 된다.(아담의 창조와 아담의 타락 사이에 얼마의 기간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타락의 즉각적인 결과로 하나님과 영적으로 분리되었다는 것은, 아담이 선악과를 먹었을 때, 즉시 육체적으로 죽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의 주장을 다룰 때, 중요한 점이 된다. 그들의 말대로 저주로 인해 아담은 육체적으로 바로 죽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즉시 영적으로 죽었다. 유신진화론을 믿는 사람들은 따라서 저주로부터 온 죽음은 오직 영적인 죽음만을 의미한다고 잘못 가르치고 있다. 이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서, 우리는 창세기 2:17절에서 선악과를 먹은 결과로 아담은 하나님과 즉각적인 분리됐을 뿐만 아니라, 육체적 죽음도 뒤따른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셨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영적 사망이 타락의 유일한 결과라는 그릇된 주장을 하는 유신진화론자들의 거짓 가르침에 대항하기 위해서, 우리는 죽음이 실제로 무엇인지를 성경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다음 세 부분을 살펴볼 것이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과 가죽옷을 입히신 것의 의미

안타까움 속에 나무 잎으로 가린 것을 하나님께서 동물 가죽으로 대체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 3:21). 하나님께서는 아마도 염소/양의 종류로 동물(아마도 두 마리)을 죽였을 것이다. 죽음의 첫 번째 기록은 하나님 자신이 수행하신 것을 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다가올 구속 사역은 이미 에덴동산을 가로 질러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또한 죄에 대한 저주는 아담과 하와와 더불어, 땅에도 임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하나님은 창세기 3:17 절에서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람을 영원한 죽음(지옥에서 영원토록 하나님과의 분리)으로 곧 바로 사라지게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피의 희생제물에 대한 모범을 보이셨던 것이다. 그것은 얼마 후, 창세기 4장에서 하나님이 가인의 것이 아니라, 아벨의 희생제물을 받으셨던 중요한 차이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뱀을 저주하시지만, 이 시점에서 저주는 아담에게 내려진 것이 아니었다.

 

타락과 인류에게 온 두 죽음

두 가지 죽음(영적 및 육체적)의 신학적 중요성은 성경 말미에 있는 요한계시록 20장 14~15절에서 확인될 수 있다.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리라.” 이처럼 둘째 사망은 또한 요한계시록 20:6절에도 언급되어 있다.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또한 요한계시록 2:11절도 보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되는 끔찍한 경험을 하지 않을 것이지만,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들은 마지막에 돌이킬 수 없는 형벌, 둘째 사망을 받게 될 것이다.(요한계시록 21:8). 다음 섹션에서 보겠지만,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죄에 대한 아버지의 진노를 경험하며, 참혹한 둘째 사망을 우리를 대신하여 당하셨기 때문이다.(고린도후서 5:21)

성경은 끝부분에서 두 차례의 죽음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첫 번째 죽음은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경험할 것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듯 육체가 영혼과 분리되는 것이다. 이것은 에덴동산에서의 죄의 결과로 일어나게 된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 5:12 절에서 이러한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영적 재앙 이전까지, 육체의 죽음은 알려지지 않았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21~22절에서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와의 대조를 다시 요약하고 있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린도전서 15장은 육체의 죽음과 육체의 부활에 관한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고린도전서 15장과 로마서 5장은 의심할 여지없이 육체의 죽음은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나타났다는 사실을 확증하고 있다.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죄에 대한 완전한 대가를 치루셨다.

죄에 대한 형벌은 사람과 하나님을 분리시키고, 육체와 정신을 분리시키는, 이중 처벌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이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구속을 통해서, 이 두 사망이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해 볼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의 죄를 위해서 자신의 몸으로 온전히 처벌을 받으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총 6시간 동안 달려계셨다. 그는 제 삼시에 십자가에 달리셨고(마가복음 15:25) 제 육시에서 제 구시까지 어둠이 온 땅에 임했다.(마태복음 27:45; 누가복음 23:44). 대부분의 저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 달리시고, 성경에 기록된 처음 세 번의 발언을 앞의 3시간에서 말씀하신 것으로 생각한다. (그림 1 참조) 이제 그리스도는 제 구시에(막 15:34) 마지막으로 네 번의 말씀을 차례로 말씀하셨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정말 강력하게 부르짖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시편 22:1절을 인용하고 습관적으로 부르던 ”아버지”와 다르게 하나님이라고 부르셨다. 그는 지금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거리가 있고, 분리되어 있었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영원한 지옥이 되었을,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두 번째 죽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담당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은 결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짐작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분은 아버지로부터 분리된 경험을 하신 것이다. 아마도 십자가의 신학에 관한 가장 심오한 진술은 이 두 구절에 있는 것 같다 :

”곧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고린도후서 5:19)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요한일서 2:2)

그런 다음 예수님은 ”내가 목마르다”고 말씀하시고 나서, 헬라어로 ”테텔레스타이(Tetelestai, 다 이루었다)”라고 외치신 후에 영혼이 떠나가셨다. 이 단어는 ”끝내다/마치다 (Complete/Done)” (의무가 이행됐거나 끝이 남)을 의미하는 법률적 용어이다.  지불이 다 되었다는 것이다. 만약 죄의 유일한 대가가 영적 사망뿐이라면, 왜 예수님은 이 시점에서 십자가에서 내려오시지 않으셨는가?

유신론적 진화론자들과 하나님이 먼저 살고 있던 유인원들 중에서 한 명을 골라 아담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여기에서 신학적으로 치명적인 문제점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적인 죽음을 겪을 이유가 없으며,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누가복음 23:46)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육체의 죽음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요한복음 19:30절에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그리스어: ”그가 그의 영을 넘겨주셨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시제는 능동태이며, 수동태가 아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육체적 죽음을 적극적으로 통제하셨다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분은 요한복음 10:17~18절에서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창조세계에 생명을 주신 분이 이제 자신의 죽음과 자신의 부활을 모두 통제하고 계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신다. 사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다시 살리셨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삼위일체 모두가 관여하신 것이다.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사도행전 17:31). 로마서 8:11 절에 따르면, 성령님께서도 또한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그림 1. 예수님의 십자가 상의 칠언.

왜 예수 그리스도는 육체적으로 죽으셨는가? 그것은 참으로 죄에 대한 형벌의 일부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의 영광의 부활은 결국 우리에게 새로운 몸을 받게 될 것을 확증하고 있다. 이제는 육신 안에 죄와 죽음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보게 될 것이다. 영광스럽고 부활한 새 몸으로 말이다. 이 부패하고 썩을 몸이 변하여, 불멸하고 썩지 않게 될 것이다.(고린도전서 15:53).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높이와 크기와 깊이를 이해할 때, 아담의 죄 이전에 죽음을 허용하고, 유인원들 중에서 한 명을 골라 아담(사람)을 만드셨다는 유신진화론자들의 주장과 하나님을 일치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유신론적 진화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훼손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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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s
1. 'But my acceptance of Adam and Eve as historical is not incompatible with my belief that several forms of pre-Adamic 'hominid” may have existed for thousands of years previously. These hominids began to advance culturally. They made their cave drawings and buried their dead. It is conceivable that God created Adam out of one of them. You may call themHomo erectus. I think you may even call some of themHomo sapiens, for these are arbitrary scientific names. But Adam was the firstHomo divinus, if I may coin a phrase, the first man to whom may be given the biblical designation ‘made in the image of God.’” John R. W. Stott, Understanding the Bible: Special Edition(Grand Rapids, MI: Zondervan, 2011), 43.
2. Some have suggested the possibility that the saying of Jesus recorded inLuke 23:34might have been said toward the end of His crucifixion (because ofJohn 19:28following immediately after the record ofJohn 19:27, 'Woman, behold thy son.”). In this interpretation, Jesus would have asked the Father to forgive them just before He says, 'It is finished.” This author would not subscribe to that view because of the statement inLuke 24:34band35which describes the soldiers casting lots over Jesus’ garments and people looking at Him with some speaking to Jesus on the Cross—all suggestive of the initial three hours of light. So the cry, 'Father, forgive them,” inLuke 23:34aseems to be just prior to this (see alsoJohn 19:23–24). Whichever order one takes, the argument concerning Christ’s atonement and taking both aspects of death as the penalty for our sin does not rest on the suggested order of Figure 1.



번역 - 류지열

링크 - https://answersingenesis.org/death-before-sin/scriptural-understanding-of-death/

출처 - AiG, 2016. 5. 23.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669

참고 : 6642|6376|3589|3689|6283|6305|3379|5969|5870|5725|5628|6657|4452|3628|3302|3168|2638|6152|6153|6285|6146|6110|6099|3241|3244|3242|2314|1790|1922|2016|2138|2797|2936|2942|2982|3020|3024|3331|3640|3641|3654|3731|3901|3932|4204|4297|4351|4375|4380|4440|4487|4492|4540|4869|5033|5035|5084|5094|5265|5275|5381|5394|5542|5627|5923|6044|6064|6066|6071|6107|6135|6189|6351|6360|6414|6477|6480|6491|6512|6581|6639

Simon Turpin
2017-07-11

아담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유신진화론 

: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아담이 없다 하느냐? 

(How Do Some Among You Say There Is No Adam? : 1 Corinthians 15: Adam and the Gospel)


서론 : 그리스 철학, 아담을 거부함

사도 바울은 종종 기독교 신앙에 대한 많은 반대들에 대처해야만 하는 문화 속에 자신이 속해있음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고린도전서 15장에서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미래에 믿는 자들의 부활을 의심하고 있었다.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고린도전서 15:12).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육체의 부활이라는 개념이 그들의 문화나 세계관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고린도 도시에는 그리스 철학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리스인들은 사색적인 철학을 사랑했으며, ”사람의 지혜”를 추구하고(고린도전서 1:22, 2:5) 신뢰하면서, 그들의 지혜를 자랑스러워했다. 자신들의 지혜에 스스로 빠져서, 고린도교회 교인들 중 일부는 육체와 분리된 혼의 불멸에 관한 그리스 철학으로 인해,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을 거부했다. 많은 사람들이 육체(물질)가 썩는 것을 보았으므로, 불멸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겼으며, 따라서 그것이 부활할 것이라는 생각을 조롱했다.(사도행전 17:32).

2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리 달라진 것이 없다. 바울 시대의 문화에 그리스 철학이 스며들어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그렇다. 다윈의 진화론에 기초한 세계관은 그 핵심이 근본적으로 그리스 세계관인 것이다.[1] 여전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에 그리스 철학을 혼합시키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람들은 거기에 철학이라는 이름 대신에, 과학이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바울이 특별히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어찌하여 부활이 없다 하느냐”고 물었지만,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아담이 없다 하느냐?”라고 물어야 한다. 그리스식의 사고가 성경적 사고와 혼합되었기 때문에, 많은 복음주의자들 사이에 역사적 아담(a historical Adam)을 거부하는 것이 점점 인기를 얻고 있다.[2] 유신론적 진화론자(진화적 창조론자)인 데니스 라무뤼(Denis Lamoureux)는 아담이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 사실이 기독교의 근본적인 믿음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고린도전서 15:1~7절에 관한 주석을 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이 성경에 기록된 복음이며, 여기에는 아담에 관한 어떤 언급도, 그의 존재 여부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기독교 신앙은 아담이 아니라, 예수님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아담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예수님의 역사적 실재성과 그분의 죽으심과 육체의 부활을 연결시키지 말고, 분리시켜야 한다.”[3]

라무뤼는 사도 바울이 아담을 실재했던 사람으로 이해했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담에 대한 바울의 견해가 고대의 과학관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 또한 역사적 아담을 믿어야 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면서, 이것을 거부하였다.[4]

부활이 복음의 중심이기 때문에, 첫 번째 사람인 아담이 실재했었다는 개념은 복음 및 복음에 근거한 교리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1~5절

기독교는 유일하게도 역사(history)에 기초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바울의 설명처럼,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의 역사성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이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고린도전서 15:1~5).

복음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이미 행하신 일과, 지금도 행하시고 계시는 일에 관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은 복음의 핵심적 사건이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다고 말하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셔야만 했는가?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울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다고 주장했다(로마서 5:12~16). 아담이 죄와 죽음을 세상에 가져 왔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담의 죄를 속죄하셨듯이(창세기 3:21)[5], 우리는 ”아담 안에”(고린도전서 15:22)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속죄하셨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죄를 위한 속죄의 희생이셨다.

속죄에는 폭력과 죽음을 암시하는 피의 제사(히브리서 9:22)가 필요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폭력과 죽음이 수억 수천만 년에 걸친 하나님의 창조 과정의 일부분라고 말하는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의 세계관에서 이것은 의미가 없다. 사람의 창조와 타락 이전에 수백만 년 동안 동물들과 사람들의 죽음이 있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역사에 대한 가르침이 손상된다. 유신론적 진화론은 단지 창세기와 아담의 초자연적 창조만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그리스도의 대속의 교리까지도 훼손시키는 것이다.[6]

더욱이 바울이 고린도전서 15:1~5절에서 아담에 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복음을 전하는 것에 아담이 기초가 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이교도 문화에서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는, 창조에 대한 성경적 이해(사도행전 14:15~17, 17:24~28)로부터 시작하는데, 특히 한 사람에게서 모든 사람이 나왔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사도행전 17:26). 그리고 나서, 예수님과 부활에 관해 이야기함으로써,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비추어 모든 사람이 회개할 것을 권하고 있었다.(사도행전 17:30~31).


고린도전서 15:20~22절

고린도전서 15장 21~22절에서 바울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창세기 1~3장의 기초적인 역사적 사건과 연결시키고 있었다. 기독교 신앙은 이 사건들의 역사성에 의존하는 것이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전 15:21~22)

21절에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죽음은 한 사람, 즉 아담을 통해 온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 다음 아담-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론을 사용하여, 부활의 이유를 설명한다. 22절에서 바울은 우리가 아담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인류가 사망에 이른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시 부활할 것이다.[7].
 
아담이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의 평행적 언급이 너무도 가까워서, 하나는 역사적 인물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이다. 더욱이, 아담이 신화적 인물이라면, 어떻게 신화적 인물이 그러한 부정적인 방식으로 인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그러나 고린도전서 15장 전체의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부터의 부활, 즉 영적인 의미가 아니라, 육체적인 부활에 맞춰져 있다. 아담이 세상에 가져온 죽음이 영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육체적으로 죽으셔야 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하나님이 아담을 초자연적으로 창조하셨다는 성경의 계시를 거절한다면, 우리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육체적인 죽음이 왔다는 것도 거절해야 한다. 그렇다면 십자가, 속죄, 또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정말로 필요 없게 된다. 성경적으로, 창세기 3장(로마서 5:12~21, 8:19~22, 요한계시록 21:4, 22:3)에서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써, 창조세계에 죽음과 고통이 들어왔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고린도전서 15:26절
 
죽음이 세상에 들어온 것은 아담을 통해서이고, 죽음이 정복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이다.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고린도전서 15:26)

사망을 ”원수”라고 부른 것은 그것이 자연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그것은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하신 원래의 창조 상태의 일부분일 수 없다. 로마서 5:14절에서 바울은 아담의 때로부터 사망이 왕노릇 하고 있다고 말하며, 로마서 5:21절은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이래로 사망의 지배가 죄의 지배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에 죽음을 가져온 것은 아담의 불순종이며(창세기 2:17, 3:6~19), 그래서 바울은 사망을 멸망 받아야할 원수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신론적 진화론의 관점에서 보면, 죽음은 원수가 아니다. 그것은 지구에 생물들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정하신 부분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궁극적으로 사망에 대한 승리였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이 나사로의 육체적인 죽음에 대해 분노하신 것을 볼 수 있다.(요한복음 11:35). 33절에서 예수님은 ”심령에 비통히 여기셨다”고 말하는데, 여기서 그리스어 동사 ‘엠브뤼마오마이(embrimaomai)’는 ”항상 깊이 자리잡은 분노를 말하고, 단순한 감정의 기복을 뜻하지 않는다.”[9] 예수님은 왜 화가 나셨는가? 죄와 사망의 권세가 세상에서 왕노릇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망을 이기기 위해 오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 사실에 비추어 살아갈 필요가 있다.
 
 
고린도전서 15:45~49절
 
42~44절에서 바울은 우리의 새로운 몸은 현재의 몸이 가지고 있지 않은 영광을 갖게 될 것임을 시사한다. 우리에게 새로운 몸이 필요한 이유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한 타락의 결과이다.(창세기 3:19). 그러나 사후 세계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견해와는 달리, 바울은 우리의 미래 몸이 영(spirit)으로 만들어질 것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몸(body)의 본질에 관한 그의 견해를 피력하기 위해, 바울은 전형적으로 성경에 호소한다. 45절에서 바울은 창세기 2:7절에 하나님이 아담을 땅의 흙으로부터 만드시고, 그에게 혼을 주셔서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인용하고 있다 :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고린도전서 15:45~49)

바울은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의 대조를 이끌어내기 위해, ”사람” 앞에 ”첫 번째”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는 창세기 2:7절에 나오는 사람에 대한 정체성을 나타내기에 적절한 사람으로 아담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바울은 인류에 관한 순서의 관계에서 첫 번째 사람으로서의 아담을 분명하게 확립하고 있다. 더욱이 바울이 아담을 첫 번째 사람이라고 언급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가 ”종족의 우두머리”[11], 또는 ”신석기 시대의 농부”[12]였다는 개념을 반박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개념은 모두 아담 이전에도 인간이 존재했다는 것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재 몸과 부활한 몸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바울의 ”육적인”에 대한 언급은 아담을 가리키는 것이고, ”영적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바울이 사용한 대구법은 아담의 육적인 존재와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몸에 관한 것이다.[13]
 
47절에서 바울은 ”육”과 ”영”의 대조에서, ”땅”과 ”하늘”의 대조로 옮겨간다. 이것은 두 사람의 기원을 강조함으로써, ”육적인”과 ”영적인”이라는 말에서 바울이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정의하게 해준다. 아담이 땅에서 났으므로 인류의 원조가 되었듯이,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새로운 인류의 원조가 되시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인류의 구속과 창조에 관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로마서 8:19~22)을 아담의 불순종과 분리하지 않았다. 고린도전서 15:21~22, 45~49절에서 바울은 우리 주 예수님의 육신의 죽음과 부활의 기초를 창세기 역사의 실제성에 두고 있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세상에(창세기 1:31) 육체의 죽음과 타락을 가져왔던 것은 실제의 사람 아담이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첫 번째 사람의 일을 원상태로 되돌리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실제의 사람으로 오셨다고 말하고 있는 이유이다. 우리가 초자연적인 아담의 창조를 거부한다면, 장차 죽음으로부터의 초자연적인 부활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뭘까? 많은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아담의 초자연적인 창조를 거부하면서도, 모순되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장차 죽은 자들의 육체의 부활은 현실로 받아들인다. 이것은 어떤 형태의 초자연적인 부활도 부인하는 다수의 세속적 과학자들의 주장과 충돌된다. 이러한 불일치는 그 주장이 실패라는 표시이다.
 
 
결론

역사적 아담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사람의 지혜를 하나님의 계시보다 높은 위치에 두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바울은 사람의 지혜에 의존하는 모든 것을 거부함으로써, 사람의 지혜가 하나님보다 앞서 우리에게 유익을 줄 수 없다는 것을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상기시켰다.(고린도전서 1:20~25, 3:19).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고린도전서 1:24, 골로새서 2:3)가 어떤 철학보다 훨씬 우월함을 그들에게 상기시켰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런 도전을 받았을 때, 모든 것들 중에 가장 심오한 지혜를 그들의 지혜로는 인식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첫 번째 사람 아담의 창조에 관한 진리는 참된 지혜, 즉 시대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를 나타내는 것이다.
 
 
Footnotes
1. Jerry Bergman, 'Evolutionary Naturalism: An Ancient Idea,” Answers in Genesis, August 1, 2001, https://answersingenesis.org/theory-of-evolution/evolutionary-naturalism-an-ancient-idea/.
2. For example, see influential evangelical theologian Alister McGrath, 'What Are We to Make of Adam and Eve?,” BioLogos, March 31, 2010, http://www.biologos.org/blog/what-are-we-to-make-of-adam-and-eve/.
3. Denis Lamoureux, 'Was Adam a Real Person? Part 3,” BioLogos, September 17, 2010, http://biologos.org/blog/was-adam-a-real-person-part-iii/P60.
4. Denis Lamoureux, 'Evolutionary Creation View,” in Four Views on the Historical Adam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3), 61–62.
5. Since Adam and Eve were the only humans at this point, the skin God used to clothe them must have been that of an animal. Although Genesis 3:21 does not explicitly say that the skins were from animals, it is a reasonable implication and one that would make sense to the original audience(Mosaic Community) where the skin of an animal was offered to make atonement for sin (Leviticus 7:8).
6. The Biologos website had many different authors present various ways to understand the atonement in light of evolution. See Joseph Bankard, 'Substitutionary Atonement and Evolution, Part 1,” BioLogos, June 9, 2015, http://biologos.org/blogs/archive/substitutionary-atonement-and-evolution-part-1. See AiG’s response, Tim Chaffey, 'Evolution and the Atonement of Jesus Christ,” Answers in Genesis, August 28, 2015, https://answersingenesis.org/jesus-christ/evolution-and-atonement-of-jesus-christ/.
7.It is important to note that Paul is not teaching universalism here, as the 'all” who are made alive in verse 22 is qualified in verse 23 as 'those who belong to him.” Paul clearly believed in a final judgement for unbelievers: Romans 2:5; 2; 1 Corinthians 1:18; 2 Thessalonians 1:9.
8.Romans 5 and 1 Corinthians 15 are dealing with human death. For an explanation of how all animal death is a result of Adam’s sin, see Bodie Hodge, 'Biblically, Could Death Have Existed before Sin?,” Answers in Genesis, March 2, 2010, https://answersingenesis.org/death-before-sin/biblically-could-death-have-existed-before-sin/.
9.Grant Osborne, Cornerstone Biblical Commentary: The Gospel of John (Carol Stream, Illinois: Tyndale House, 2007), 171.
10.The Greek word for corruption, phthora, (1 Corinthians 15:42) is the same word used in Romans 8:21 where Paul refers to the creation’s bondage to decay.
11.See C. John Collins, Did Adam and Eve Really Exist? Who They Were and Why You Should Care (Wheaton, IL: Crossway, 2011), 120–121.
12.See Denis Alexander, Creation or Evolution: Do We Have to Choose? (Oxford, UK: Monarch Books, 2008), 236, 243. Alexander acknowledges that this is his view on page 243.
13.Paul does this in order to make the point that '(1) there are two very different kinds of bodily existence; (2) so far they [the Corinthians] have experienced only the one that is common to all Adam’s children; thus (3) they should look forward to the bodily existence that comes only after this first one (and is experienced only by God’s own people).” Roy E. Ciampa and Brian S. Rosner, The First Letter to The Corinthians: The Pillar New Testament Commentary (Nottingham, England: Apollos, 2010), 821.

 

*관련기사 : '아담의 존재'에 대한 새로운 해석 (2015. 2. 2. 뉴스앤조이)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98385


번역 - 이종헌

링크 - https://answersingenesis.org/bible-characters/adam-and-eve/how-do-some-among-you-say-there-no-adam/

출처 - Answers, 2017. 3. 2.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642

참고 : 6639|6283|6376|5870|5628|3689|3628|3168|3589|6305|5969|5725|3302|1756|6480|6477|6135|5923|6152|6153|6146|6099|6285|6110|5627|5275|2797

Jake Hebert
2017-03-13

영화 ”창세기는 역사인가?“에 대한 감상 후기 

(Reviewing 'Is Genesis History?')


      2017년 2월 23일, 미국의 몇몇 영화관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창세기는 역사인가?(Is Genesis History?)”에 대한 특별 일일 상영이 있었다.[1] 이 영화는 ‘Focus on the Family’의 변증론 시리즈인 ‘진실 프로젝트(The Truth Project)’에서 사역하고 있는 델 태킷(Del Tackett) 박사가 주관하여 제작했다. 우리는 달라스 지역의 많은 관객들과 함께 ”창세기는 역사인가?”를 감상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
 
이 영화는 창세기의 처음 11 장을 실제 역사로 이해해야한다는, 사려 깊고, 설득력 있는 사례들을 제시하고 있으며, 종종 진화론과 수억 수천만 년의 증거로 잘못 주장되고 있는 지층암석과 화석들은 노아 시대에 있었던 전 지구적 홍수의 결과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제시된 정보의 질과 제작 가치 면에서, 이 영화는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여러 주제들에 대한 창조과학자들의 다양한 의견들이 있음을 고려할 때, 창세기에 정통한 성경 전문가들에게는 참여한 과학자들의 진술에 애매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과학자들은 창세기가 실제 역사라는 것을 통합적으로, 강하고, 설득력 있게, 확신을 가지고 증거하고 있었다.


다큐멘터리에는 지질학, 천문학, 생물학, 화석학, 성서학... 등의 전문가를 포함하여, 13명의 박사(Ph.D.)들과의 인터뷰가 포함되어있다. 델 태킷(Del Tackett)은 이들 전문 연구자들과 함께, 그랜드 캐니언, 와이오밍의 공룡 발굴지, 박물관, 심지어 바다 밑까지도 동행했다. 각 장소들은 최근 창조(recent creation) 및 최근의 전 지구적 홍수(a recent global Flood)에 대한 새로운 증거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영화의 여러 장면들이 두드러졌다. 영화가 현미경 하에서 아직도 부드럽고, 탄력 있는 공룡의 연부조직 사진을 보여줄 때, 관객들은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공룡의 연부조직 발견 영상은 여기를 클릭!).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최근 창조에 대한 이 강력한 증거를 보지 못했음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ICR은 2013년에 Acta Histochimica 지에서 이 연부조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보고했었다.[2] 카터 박사(Dr. Carter)가 DNA 유전정보가 4차원적으로 극도로 복잡하게 상호 연결되어 있음을 설명했을 때(관련자료는 여기를 클릭!), 델 타켓이 놀라는 장면에서, 그리고 우드 박사(Dr. Wood)가 동물원에 남아있는 원숭이와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 사이에 유전적 차이를 익살스럽게 설명했을 때, 관객들은 경악했다.


태킷 박사와 Compass Media는 창세기가 실제 역사라는 분명한 입장을 견지하는 고품질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했다. 그 영화를 보았던 ICR의 사람들은 전적으로 그것을 지지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ICR 및 여러 창조과학 단체들의 자료들과 함께, 이 영화를 사용하여 주실 것을 기도한다. 이 영화와 많은 자료와 영상물들이 성경의 첫 번째 책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신화 또는 비유라고 주장하며, 일축하거나 무시하고 있었던, 일부 크리스천들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도전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영화를 보지 못했던 사람들을 위해 3월 2일과 3월 7일에 두 번의 앙코르 상영이 예정되어 있다. 티켓은 웹 사이트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1]



References
1. For more information: www.IsGenesisHistory.com
2. Thomas, B. Triceratops Horn Soft Tissue Foils 'Biofilm' Explanation. Creation Science Update. Posted on ICR.org March 18, 2013, accessed February 26, 2017.

*Dr. Hebert is Research Associate at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and earned his Ph.D. in physics from the University of Texas at Dallas. Mr. Thomas is Science Writer at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and earned his M.S. in biotechnology from Stephen F. Austin State University.

 

*추천 : 성경의 역사성을 밝혀주고 있는 두 편의 다큐멘터리
1) ‘Patterns of Evidence: Exodus’
 https://www.youtube.com/watch?v=2skx69TxLXk

2) ‘The Exodus Revealed: Search for the Red Sea Crossing’
https://www.youtube.com/watch?v=9BQ_x0kaw7o
https://www.youtube.com/watch?v=yTnqRpXKcaQ

 

*Genesis Hits the Big Screen (CEH, 2017. 2. 23.)  
http://crev.info/2017/02/genesis-hits-the-big-screen/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9868

출처 - ICR News, 2017. 3. 1.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564

참고 : 5275|6477|3249|6360|6351|2942|6254|6255|4198|6066|6044|5686|5094|5035|5033|4440|4375|3945|3783|3654|2982|2797|6387|6283|6133|5969|6064|5753|5723|5882|6639

Don Batten
2016-11-17

창세기 1장과 2장은 창조 순서에 모순이 있는가? 

(Genesis contradictions?)


      창세기 1장과는 다르게, 창세기 2장에서의 창조 순서는 아담이 창조되고(2:7), 동물들이 창조되는(2:19)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성경 자체에 오류가 있다는 것인가?

아담의 창조와 하와의 창조 사이에 있었던 일로, KJV/AV 성경은 창세기 2:19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out of the ground the LORD God formed every beast of the field, and every fowl of the air)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라고 말씀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이 문장은 각종 들짐승과 새들이 아담과 하와 사이에 창조된 것을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유대 학자들은 아담과 하와는 각종 들짐승과 새들이 창조된 이후에 창조되었다는 창세기 1장의 설명과 어떠한 모순도 되지 않음을 확인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히브리어에서 동사의 정확한 시제(tense)는 문맥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창세기 1장으로부터, 동물과 새들은 아담 이전에 창조되었음이 명백하다. 따라서 유대 학자들은 창세기 2:19절의 동사 ‘지으시고(formed)’를 '지으셨던(had formed)‘ 또는 ”지어오시고 있었던(having formed)’의 의미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2:19절을 (널리 사용되는 번역처럼[1], NIV 성경은 ‘had formed(과거완료)’로 번역되어 있음)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지으셨던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로 번역한다면, 창세기 1장과의 불일치는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다.


그 의문은 창세기 2장은 창세기 1장의 창조와는 다른 창조를 설명하고 있다는 잘못된 가정으로부터 유래하고 있다. 명백히 창세기 2장은 창조에 대한 ‘또 다른(another)’ 설명이 아니다. 왜냐하면 창세기 2장에는 천, 지, 궁창, 바다, 육지, 태양, 별, 달, 바다생물 등의 창조에 대해서 전혀 언급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창세기 2장은 단지 아담과 하와의 창조와 직접 관련된 것들과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특별히 준비했던 에덴 동산에서의 삶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 관점(God’s perspective)에서의 창조에 대한 개관(overview)으로, 전체 창조에 대한 ‘큰 그림(big picture)’ 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창세기 2장은 사람의 관점(man’s perspective)에서 중요한 면들을 좀더 자세히 다루고 있는 것이다.


창세기 2:4절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These are the generation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 when they were created, in the day that the LORD God made the earth and the heavens)” 이것은 창세기 1장에 대한 단락(a break)의 표시이다. 이 어법(phraseology)은 다음 창세기 5:1절에서도 나온다. 그곳에서는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This is the book of the generations of Adam. In the day that God created man)”라고 되어있다.


‘Generations(대략, 세대, 후예)’ 이란 단어는 히브리어 단어 ‘톨레돗(toledoth)’을 번역한 것이다. 이 단어는 ‘기원(origin)’ 또는 ‘기원에 관한 기록(record of the origin)’을 의미한다. 그 단어는 사건들에 대한 설명 또는 기록을 확인하는(identifies) 것이다. 이 어구는 창세기에서 각 단락(section)의 끝에서[2], 주로 언급되었던 족장(아담, 노아, 노아의 아들들, 셈 등)들을 확인하는 데에 명백히 사용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기록에 대한 책임을 지고있을 가능성이 있다. 창세기에는 그러한 구분(divisions)이 10군데나 있다. 


각 기록은 원래에는 아마도 돌(stone) 또는 점토판(clay tablet)에 기록되어 있었을 것이다. 천지의 기원(창세기1:1–2:4)에 대한 설명을 확인할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특별한 어떤 사람이 아닌, 전 우주의 기원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로 아담과 이브는 이름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다). 또한, 오직 하나님만이 창조 사건을 알고 계신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 사건을 아마도 그것을 기록했던 아담에게 나타내셔야만 했다. 창세기의 저자인 모세는 성령의 감동 하에 설명들을 추가하면서, 여러 단락들에 대한 편집자 또는 편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톨레돗(toledoths)은 모세가 사용했던 역사적 기록들에 대한 출처(sources)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이해는 창세기(Genesis)와 그 기록의 지위(status)에 대한 역사적 본질이 실제 목격되었던 역사(eyewitness history)였다는 사실로 강조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신학대학들에서는 아직도 잘못된 ‘문서가설(documentary (JEDP) hypothesis)’이 가르쳐지고 있다. (이 폐기된 그리고 반기독교적인 이론에 대한 비판은 Did Moses really write Genesis?을 보라. 번역글은 '모세는 창세기를 정말로 썼는가?' 를 보라).


창세기 2:4절과 5:1절의 문장에서 톨레돗의 차이는, 창세기 1장은 ‘천지(heavens and earth)’의 기원에 대한 개관이나 (2:4), 창세기 2장은 아담과 하와와 관계된 것으로, 아담과 하와의 창조에 대한 자세한 설명임을(5:1,2) 확언하고 있다. 또한 창세기 2:4절의 표현(wording)은 강조점이 변동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2:4절의 앞 부분에 ‘천지(heavens and earth)’ 라는 단어가 있는데, 절의 끝 부분에도 ‘천지(heavens and earth)’ 라는 단어로 되어있다. 성서학자들은 4절의 앞 부분에 있는 ‘천지’는 우주의 기원을 기록한 돌판이나 점토판의 마지막에 있었던 단어로, 그리고 절의 뒷부분에 있는 ‘천지’는 특별히 아담과 하와를 포함한 땅의 사건을 설명하는 두 번째 점토판(창2:4b-5:1a)의 시작부분에 해당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이해를 또 다른 반대에 적용해 보자. 일부 사람들은 창세기 2:5절의 초목(plants)과 채소(herbs), 그리고 창세기 2:9절의 나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우리는 이미 창세기 2장은 일반적인 창조가 아니라, 아담과 하와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목할 것은 초목과 채소는 창세기 2장에서는 ‘들과 밭’과 관련되어 기술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그것들을 경작할 사람이 필요했다 (창2:5). 이것들은 분명히 일반적인(in general) 식물들이 아닌 경작될 식물들에 관한 기술이다. 또한 나무들도(창2:9) 일반적인 나무들이 아닌 에덴동산에 있는 나무들이다.


창세기는 가장 관심있었던 결과를 유발하였던 여러 사건들을 개관(overview)하는, 또는 요약(summary)하는 역사적 설명처럼 쓰여져 있다. 거기에는 개괄된 사건을 더욱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서 관련된 사건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자주 뒤따라졌다. 큰 그림인 창세기 1장은 명백히 사건들의 순서에 관심이 두어졌다. 사건들은 연대기적인 순서에 따라서 첫째 날, 둘째 날, 저녁, 아침 등에 따라 기록되었다. 창세기 2장에서는 사건의 순서가 주 관심사가 아니다. 다시 보충 설명되는 사건에서 연대기적인 순서는 언급될 필요가 없다. 단지 가장 집중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을 순서대로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창세기 2장에서 동물들은 아담이 창조된 후에, 2:19절에서 언급되었다. 그러나 그때는 아담이 창조된 후였다. 동물들은 아담이 창조되고 그 후에 창조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과 2장은 창조 사건에 대해서 서로 모순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창세기 1장은 ‘큰 그림(big picture)’이다. 그리고 창세기 2장은 아담과 하와의 창조와 여섯째 날에 대한 좀더 자세한 설명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결정적인 말은 예수님께서 직접하신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마태복음 19:4-5절에서 결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신다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찌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주목해야할 것은, 같은 문장 안에서 예수님은 창세기 1장의 말씀(27절,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과 창세기 2장의 말씀(24절,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을 같이 한 번에 인용하셨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양쪽을 결합함으로서, 예수님은 분명히 창세기 1장과 2장이 서로 분리된, 그리고 서로 모순된 설명으로 간주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Reference and notes

1. The NIV.
2. Charles Taylor, Who wrote Genesis? Are the toledoths colophons? TJ 8(2):204–211, 1994.

 

*관련기사 : 성경의 오류? - 창세기 1장과 2장에 모순이 존재하는가? (2017. 1. 1. 기독일보)

An understanding of Genesis 2:5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1_1/106-110genesis.pdf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18/i4/genesis.asp

출처 - Creation 18(4):44–45, September 1996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020

참고 : 2996|2982|2942|2936|2808|2805|2797|2737|2688|2552|2549|2545|2534|2530|2525|2515|2458|2432|2362|2330|2323|2321|2245|2121|2075|2054|2030|1805|1798|1793|1790|1756|1536|1413|1412|910|721|720|665|630|629|568|522|512|421|370|67|3162|3166|3208|3218|3148|3233|3249|4387|4399|4402|4413|4414|4416|4450|4451|4452|4488|4480|4514|4540|4578|4608|4492|4663|4599|4713|4714|4878|4872|4870|4868|4726|4725|4723|4718|5402|5415|5463|5625|5627|5741|5852|5969|5985|6017|6066|6089|6179|6283|6351|6353|6387|6401|6432

Brian Thomas
2016-05-27

새로운 미토콘드리아 DNA 연구는 노아를 확증하고 있다.

(New DNA Study Confirms Noah)


     진화론에 의하면, 모든 인류는 침팬지 같은 원숭이 조상으로부터 진화하여 생겨났다고 주장된다. 그러나 창세기와 성경의 여러 부분에서, 그리고 예수님은 모든 인류는 노아의 세 아들과 그 아내들로부터 기원했다고 말씀하고 있다. 사람의 미토콘드리아 DNA(human mitochondrial DNA)에 대한 새로운 분석은 인류의 성경적 기원을 확증하는 두 개의 새로운 증거를 제공하고 있었다.

미토콘드리아 DNA(mtDNA)는 모체로부터 온다. 모체의 난자세포는 태어난 모든 어린이의 세포 미토콘드리아에 자신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전달한다. 이 독특한 DNA는 아데닌, 구아닌, 시토신, 티민(A, G, C, T)으로 암호화 되어 있는 16,569 개의 염기들을 포함한다. 그들은 사용설명서처럼 세포에 필요한 모든 정보들을 가지고 있다.

과학자들은 전 세계의 모든 주요 종족들 간의 유전적 차이를 비교해왔다. 그러한 유전적 차이는 어떻게 발생했을까?

하나님이 하와에게 이상적인 미토콘드리아 DNA 염기서열을 넣어놓으셨다고 가정하면, 모든 차이는 약 6,000년 전 창세기 3장의 저주 이후 돌연변이들에 의해서 발생했다. 다른 과학자들은 이들 DNA의 복제 오류가 발생하는 비율을 측정했다. 여섯 세대마다 하나의 돌연변이가 일어나는 매우 느린 속도를 가정하더라도, 수천 년이면 수십 개의 돌연변이들이 발생할 수 있다.   

이것은 연구자들에게 측정된 미토콘드리아 DNA의 차이를 예측하는 경쟁 모델들을 비교해볼 수 있게 해주었다.

성경을 믿는 분자생물학자인 나다니엘 젠슨(Nathaniel Jeanson) 박사는 정확하게 그것을 살펴보기 위해서 공개된 사람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체 시퀀스 데이터를 다운로드 받았다. Answers Research Journal에 게재된 그의 연구 결과는 오늘날의 미토콘드리아 DNA 차이의 수가 정확히 성경적 인류 역사인 6천 년 동안 예측된 숫자와 일치함을 보여주었다.[1] 세계 여러 나라에서 수집된 미토콘드리아 DNA는 진화론 모델이 예측하는 20만 년 분량의 돌연변이 흔적을 보여주지 않았다.

유전학자들은 가장 유사한 유전적 염기서열을 서로 근처에 위치시키고, 가장 유사하지 않은 염기서열을 가장 긴 가지에 위치시키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나무 도형(tree diagrams)을 구축할 수 있었다. 젠슨은 사람의 미토콘드리아 DNA 나무 도형에서 창세기를 확증하는 적어도 두 가지 패턴을 발견했다.

도형의 중심에서 세 가지 주요한 줄기를 볼 수 있다. 각 가지는 다른 두 개와 단지 소수의 차이만을 보이는 한 특별한 미토콘드리아 DNA 염기서열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 세 줄기는 셈과 함과 야벳의 아내들로부터 유래한 고유한 미토콘드리아 DNA를 나타내는 것일까?

두 번째 패턴 또한 노아의 세 며느리에 대한 설명과 적합한 것으로 나타났다. 홍수 전에 성경에 기록된 수명에 따라 각 세대 사이에 오랜 시간을 가정하고, 오늘날의 느린 돌연변이 속도를 사용하면, 아담과 노아 사이의 1656년은 각 가지 사이의 짧은 선이 나타내는 작은 수의 차이를 만들었을 것이다.

젠슨은 각 줄기 사이, 또는 중심 마디 사이의 작은 수의 mtDNA 차이를 가지에 있는 비교적 많은 수의 차이와 비교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창조로부터 노아 홍수까지 약 1660년과 노아 홍수로부터 현재까지 4365년의 시간 비는 1 : 2.6 의 비율이다. 이것과 일치하여, 중심 마디에 서로 연결되어 있는 가지들은 중심 마디로부터 뻗어나간 가지들보다 훨씬 짧다. 마치 짧은 가지가 홍수 이전의 돌연변이들을 나타낸다면, 긴 가지들은 홍수 이후의 돌연변이들을 나타내는 것처럼 말이다.”[1] 

현대 유전학은 창세기를 확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노아가 그 아들들과 그의 아내와 그 며느리들과 함께 나왔고” (창 8:18)

이 연구는 창세기를 확증하는 두 결과를 보여주었다. 첫째, 사람의 미토콘드리아 DNA 나무 가지는 3개의 가지를 가진다는 것이고,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세 어머니(셈과 함과 야벳의 아내들)로부터 후손되었다는 창세기 모델과 정확하게 들어맞는다는 것이다. 둘째, 오늘날의 느린 돌연변이 속도로 6,000년은 오늘날 측정되는 미토콘드리아 DNA의 차이의 수를 정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유전학은 다시 한 번 창세기를 확증해주고 있었다.



References

1.Jeanson, N.T. 2016. On the Origin of Human Mitochondrial DNA Differences, New Generation Time Data Both Suggest a Unified Young-Earth Creation Model and Challenge the Evolutionary Out-of-Africa Model. Answers Research Journal. 9 (2016): 123-130.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9325

출처 - ICR News, 2016. 5. 16.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387

참고 : 6286|5725|5536|5441|5105|5094|5514|3730|512|921|3611|3935|5458|5952|5969|4982

창세기 1장의 하루는 여섯 번의 태양일(24hr의 하루)을 

가리킨다고 히브리어 교수는 말한다! 

(Hebrew professor: Genesis teaches six solar days!)


 앤드류 스타인만(Andrew Steinmann) 박사는 신시내티 대학의 화학공학 이학사, 콩코디아 신학대학의 신학석사(Ft. Wayne, IN), 미시건 대학의 근동학(Near Eastern Studies)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교회와 은퇴자 시설 두 곳에서 목사로서 근무했다. 현재 스타인만 박사는 시카고 콩코디아 대학(Concordia University Chicago)의 학장이며, 신학과 및 히브리어학과 석좌교수이며, 구약성경에 대한 해설집을 포함한 십여 권의 저서들과 많은 신학 논문들을 남긴 저자이고, 국립 히브리어 교수 연합회(National Association of Professors of Hebrew)의 멤버이다. 스타인만 박사는 어린이병원의 간호사이자, 널리 사용되는 ‘응급간호학(Sheehy’s Emergency Nursing)‘의 공동저자인 레베카(Rebecca)와 결혼했고, 그의 아들은 루터교 고등학교의 교장이며, 딸은 회계사이다.


  대부분의 교회 역사에서, 유대인과 기독교인 학자들은 창세기 1장의 창조주간의 하루는 문자적인 하루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해 왔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이해한 사람들은 비단 고대 히브리 학자들만이 아니다. 현대의 히브리어 학자들 대부분 역시 창세기의 저자는 문자적인 ‘하루’를 알려주기 위해 의도했음으로 이해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옥스포드 대학의 히브리어 흠정교수(Regius Professor)였던 제임스 바르(James Barr, 1924~2006)는 말했다 : 

”아마도 내가 아는 한, 세계적인 수준의 대학에 있는 히브리어 혹은 구약학 교수들 중에서, 창세기 1-11장의 저자가(혹은 저자들이) 독자들에게 하나님의 창조는 우리가 지금 경험하는 것과 동일한 24시간의 날(日)들로 연속된, 여섯 날들 동안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전달하기 위해 서술되었다는 것과, 창세기 족보에 포함된 숫자들은 세상의 시작부터 성경 기록의 후반부까지 단순한 합산을 통해 연대기로 제공되고 있으며, 노아의 홍수는 전 지구적인 홍수로서, 방주에 타지 않은 모든 인간들과 동물들은 멸절한 것으로 믿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1]

제임스 바르 박사는 신학적으로 꽤 자유주의 성향이었던 만큼, 그는 창세기를 믿지 않았지만, 창세기가 가르치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창세기를 같은 방식으로 이해한 (또한 그것을 믿는) 한 히브리어 학자가 콩코디아 대학의 앤드류 스타인만 박사이다.


맥락과 저자의 의도

창세기 1장에서 사용된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라는 구절은 명백하게 첫째 날의 빛의 창조와 함께 낮-밤 순환이 시작되었음을 가리킨다. 더욱이, 이 구절은 다섯 번이나 더 반복되고 있어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는 동안의 여섯 번의 연속적인 태양일이 있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창세기 1:8, 13, 19, 23, 31).

일부 사람들은 ’날(day)’ 이라는 의미를 가진 히브리어 욤(yôm, יום)이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창세기 1장에서의 날은 그리 명확하지는 않다고 주장한다. 유사하게, 영어에서도 ‘내 아버지의 날에(in my father’s day)’라는 표현은 문자적인 하루를 의미하지 않는다. 스타인만 박사는 영어와 히브리어 모두, ”맥락과 저자(혹은 화자)의 의도가 의미를 결정한다”고 답했다. 확실히 ‘내 아버지의 날에’라는 구절은 날의 의미에 대해 맥락적인 단서들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의 단서는 전치사 in(~중에)의 사용인데, 이는 무엇인가가 일어나는 시간(예로, 시대)을 암시하는데, 이와 대비되게 전치사 on(~때에) 등을 사용하는 것은 시간의 한 시점, 특정한 날(예로, 주의 첫째 날)을 암시한다. 또 다른 하나의 단서는 과거에 살았던 사람(아버지의)의 사용이며, 마찬가지로 과거의 시대를 암시한다. 이러한 단서들은 그 언어의 원어민에게는 분명하지만, 해당 언어의 원어민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분명하지 못하다. 그렇기에, 창세기에서, 우리가 맥락적인 단서들을 찾을 때에는, 오늘날의 어느 누구도 고대 히브리어를 사용하던 원어민이 아님으로, 매우 신중해야 한다.”

앤드류 스타인만(Andrew Steinmann) 박사와 그의 아내 레베카(Rebecca). 런던 아이에서 빅벤(Big Ben)을 배경으로.


창조의 날들

그렇다면 이제, 창세기 1장의 맥락은 무엇인가? 창세기 1장의 날은 ‘내 아버지의 날에’와는 매우 다르다. 여섯 번의 모든 창조의 날들은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는 구절로 끝을 맺고 있다. ‘날-시대(Day-Age)’ 이론가들이 가르치는 것처럼, 이러한 창조의 날들이 수백만 년의 시대가 될 수 있겠는가? 스타인만은 ”절대적으로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러면서 주장하기를, ”이 맥락에서 사용된 이러한 구절은 명백하게, 첫째 날 빛의 창조와 함께 낮-밤 주기가 시작되었음을 가리킨다. 더욱이, 이 구절은 다섯 번이나 더 반복되면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는 동안 여섯 번의 연속적인 태양일이[3] 있었음을 강조하고 있다(창세기 1:8, 13, 19, 23, 31)”.

전문적 논문에서 스타인만은, 이 구절은 24시간의 하루 전체를 의미하는 메리즘(merism, 양단법)이라고 주장했다.[4] 메리즘은 전체를 의미하기 위해서 두 개의 상반되는 것을 사용하는 언어적 기법으로, 예를 들어, ‘open day and night’은 새벽과 황혼을 포함하여 항상 문을 연다는 것을 의미하며, ‘searched high and low’는 것은 ‘모든 곳을 찾아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그 날들은 숫자를 가지고 있다. 창조주간(Creation Week)의 시작 날은 ”한 날(Day one)”이다. (히브리어로는, yom echad, יום אחד). 이것은 24-시간의 하루를 더욱 지지한다.[5, 6] 스타인만 박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째 날이니라’는 분명히 ‘저녁 + 아침 = 한 날(evening + morning = one day)’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이 맥락에서 날은 명확하게 보통의 (정상적 길이의) 날(day)로써 정의되고 있다. 이것은 낮 기간 동안을 의미하는 날도 아니고, 시대를 의미하는 날 또한 아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것과 관련된 시간적 경과는 날(day)이라는 단어가 빛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으로 측정되는 시간의 경과로 구성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결정적인 맥락적 단서가 된다.”

역사에 어떠한 다른 날(days)들이 있기 전에, 누구도 ‘첫째 날(a first day)’이라고 말할 수 없다. 즉 서수(첫째, 둘째, 셋째 등)를 사용하여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은 한 날(Day One)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즉 기수(하나, 둘, 셋, ……)가 사용되었다. 한 날(Day One)이 있은 후에는, 서수를 사용하여 둘째 날, 셋째 날... 등으로 표현하는 것은 타당하다.

”첫째 날을 ‘한 날’로 정한 이후에는(개역 성경은 ‘첫째 날’로 번역함), 다음 날들은 순차적으로 세어졌다. 창세기는 둘째 날, 셋째 날, 넷째 날, 다섯째 날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패턴은 창조주간의 마지막 이틀에서는 약간 변했는데, 왜냐하면 거기에서는 히브리어 관사 'ha (the, 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스타인만은 이유를 ”여섯째 날과 일곱째 날은 특별한 날로서 강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여섯째 날에 하나님은 지구를 다스리도록 사람을 창조하셨고, 일곱째 날에 하나님은 모든 창조 사역을 마치셨던 날이라고 선포하고 계셨다. 히브리 성경에서 이들 날에 대한 표현은 다소 흔치 않은 것으로 되어 있다. 정상적인 히브리어 문장 형태인 ‘the sixth day’과 ‘the seventh day’로 쓰여 있지 않다. 대신, 그 문장은 ‘day, the sixth one’ 과 ‘day, the seventh one’으로 쓰여 있는데, 이것은 창조주간에서 중요한 이 두 날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창세기는 역사인가?

만약 아담이 문자 그대로 첫 사람이 아니고(창세기 2:7), 첫 죄인이 아니라면, 우리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건지시는 위해서, ‘마지막 아담’과 ‘둘째 사람’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믿을 어떠한 이유도 없다. (고린도전서 15:21-22, 45-47)

창세기의 날에 대한 분명한 의미를 회피하려는 한 방법은 1924년에 아리 누르체(Arie Noordtzij)에 의해 착안된 ‘구조가설(Framework Hypothesis)’이다. 구조가설은 창세기 1장이 문자적인 창조의 날들을 가르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이 날들은 역사적 날들이 아닌, 문학적인 구조라고 주장한다. 스타인만 박사는 물론 그 가설을 잘 인지하고 있었고, 이렇게 요약하고 있었다 : 그 구조는 ”두 세트의 세 날들, 즉, 첫째 날-빛의 창조, 둘째 날-궁창들과 하늘, 셋째 날-땅, 넷째 날-하늘의 빛, 다섯째 날-바다생물과 조류, 여섯째 날-육상생물과 인간”이라는 것이다.

스타인만은 기초적인 논리적 오류를 지적하고 있었다 : ”이것을 양자택일의 문제로 삼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논리적으로 오히려 그것은 문학적이며, 동시에 역사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덧붙여 설명했다 :

”설령 그곳에 어떠한 타입의 구조(framework)가 있었다 할지라도, 이 관측되는 구조는 창세기 1장의 글 밖에서 온 것임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유일한 일반적 관측이며(어떤 특별한 경우에만 진실인 것이 아닌), 저자(모세)가 하나님에 관한 진실을 전달하기 위해서 역사적으로 얼마나 정확한 이야기를 하려 했는지를 알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그 날들이 실제로 역사적인 날들임을 배제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문학적 구조를 이끄신 방법으로 창조하신 질서정연한 창조주시라는 것은 창세기 1장에서 분명하다.[1] 그러나, 또한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는 하나님이시기에 시간을 창조하셨고, 6일 동안에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더욱이, 문맥에서 창세기가 실제 역사적 사건들을 가르치길 의도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구약 역사와 연대기에[8] 저명한 전문가이기도 한 스타인만 박사는 말하기를 :

”창세기의 여러 장(chapters)들은 사람들과 그들의 행동들에 대한 서술을 포함할 뿐 아니라, 족보학적 설명을(예로 창세기 5, 10, 11:10–32) 통해 개인들과 연결되어 있다. 이 족보들은 이야기에 언급된 사람들이 실제로, 역사적으로 존재했었음을 증거하고 있다.”

더욱이, 창세기 1-11장은 창세기 12-50장으로 빈틈없이 섞여 들어가며, 후자는 이전의 역사 없이는 이해될 수 없다. 스타인만은 상술하기를 :

”창세기의 서술은 창세기 12장부터 아브라함, 이삭, 야곱 생애의 사건들을 더 자세하게 설명을 위해서 다소 느려지지만, 이런 설명 속에서도 족보들(예를 들어 창세기 25:12-18에 있는 이스마엘의 후손들)과 함께 기술되어 있다. 사실, 창세기 후반부의 여러 장들에서 사건들은 성경에 아주 잘 기록되어 있어서, 우리는 이스라엘 족장들의 생애 중에 많은 사건들을 확실하게 연대를 매길 수 있도록 해준다.”


기독교에서 문자적 창세기의 중요성

진화론과 장구한 연대 개념이 과학자들 사이에서 너무도 넓게 퍼져있기 때문에, 그리고 오늘날의 세계가 그것을 너무도 깊이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많은 보수적 성경주석가들은 창세기의 창조에 대한 설명이 어떻게든 널리 인정된 진화론과 조화를 이루며, 설명될 수 있는 어떤 것을 제공해야 할 필요를 느껴왔다. 그러나 많은 과학자들이 믿고 있는 (진화론에 반드시 필요한) 수십억 년의 연대와 조화시키려는 설명들은, 어쩔 수 없이 성경의 가르침을 벗어나게 된다.

많은 크리스천들은 문자적으로 창세기의 날들을 이해하는 것이 ‘부차적인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스타인만 박사는 목사로서, 그리고 신학 교수로서의 풍부한 경험과 함께, 이를 단호하게 부정한다 :

”창세기는 매우 중요한데, 이는 복음 자체의 성패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진화론은 인간집단이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성경은 명확하게 죄가 한 사람으로부터 세상에 들어 왔으며, 죄에서의 구속도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일어났다고 밝히고 있다(로마서 5:12-15). 만약 아담이 문자 그대로 첫 사람이 아니고(창세기 2:7), 첫 죄인이 아니라면, 우리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건지시는 위해서, ‘마지막 아담’과 ‘둘째 사람’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믿을 어떠한 이유도 없다.” (고린도전서 15:21-22, 45-47) [10]

그러면 생물학적 진화는 부정하지만, 수십억 년의 우주 진화와 지질시대를 수용하고 있는 ‘점진론적 창조론자(progressive creationist)’들의 견해는 어떠한가? 스타인만이 말하는 것처럼, 그 개념도 또한 해로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왜냐하면, 오래되었다고 주장되는 지층암석들은 동물들과 심지어 사람의 화석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담 이전의 수백 수천만 년 전부터 그들이 살았고, 죽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성경은 명백히 죄와 그 결과인 죽음은 한 사람, 아담을 통해서 이 땅에 들어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만약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전에도, (오래된 연대 창조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생물들이 살았었고 죽었다면, 성경은 틀렸고, 사망을 물리치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는 아담의 범죄에 대한 회복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이 그렇게 명확하다면, 어째서 많은 신학자들이 창세기가 명확하게 말하고 있는 것을 부정하고 있는가? (그것은 골로새서 2:8절과 반대되는, 세상의 철학과 헛된 속임수에 대한 일종의 항복이다). 스타인만 박사는 그 이유를 설명했다 :

”진화론과 장구한 연대 개념이 과학자들 사이에서 너무도 넓게 퍼져있기 때문에, 그리고 오늘날의 세계가 그것을 너무도 깊이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많은 보수적 성경주석가들은 창세기의 창조에 대한 설명이 어떻게든 널리 인정된 진화론과 조화를 이루며, 설명될 수 있는 어떤 것을 제공해야 할 필요를 느껴왔다. 그러나 많은 과학자들이 믿고 있는 (진화론에 반드시 필요한) 수십억 년의 연대와 조화시키려는 설명들은, 어쩔 수 없이 성경의 가르침을 벗어나게 된다. 이러한 설명들은 창세기의 분명한 의미들을 부인할 뿐 아니라, 필연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와 같은 기초적인 기독교 교리에 대한 부인으로 이어진다. 더욱이, 이들은 종종 창세기를 비문법적이고, 불합리한 이야기로 만들고 있다.”


기독교인의 믿음

마지막으로, 위의 문제도 스타인만 박사가 크리스천이 아니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행히도, 그의 부모는 그가 태어난 시점부터 그를 교회로 이끌었고, 그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복음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부모가 자식에게 기독교의 진리에 대해 어린 시절부터 가르치는 것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던 때를 기억할 수 없다. 사실, 나는 이러한 방식의 믿음을 가진, 적어도 1695년 독일 북부의 팔라틴 지역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루터교도(Lutheran Christians)의 긴 계보 가운데 태어났다. 오래된 루터교인의 전통으로, 부모는 자녀들이 기초적인 기독교의 진리들(종종 루터의 소요리문답을 사용한다)을 배울 수 있도록, 어려서부터 집에서 자녀들에게 신앙을 가르친다. 부모는 또한 그들의 자녀를 교회로 이끌고, 그곳에서 자녀들은 성경과 예배드리는 삶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창조과학 단체들은 어린 자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일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는 스타인만 박사와 같이 창조에 대한 성경적 기초를 가장 고차원의 수준에서 변증해주는 전문가들에게 감사한다.



Related Articles
.Theologian: Genesis means what it says! (interview with Old Testament scholar Dr Robert McCabe)
.Hebrew scholar affirms that Genesis means what it says! Interview with Dr Ting Wang, lecturer in biblical Hebrew


Further Reading
.Genesis Questions and Answers


Related Media
.15 Reasons to Take Genesis as History


References and notes
1. Barr, J., letter to David C.C. Watson, 23 April 1984.
2. For another explanation of this, see Catchpoole, D., and Sarfati, J., In my father’s day … ’: To determine whether ‘day’ means a long period of time, the hours of daylight, or a 24-hour period, you need to look at the context, creation.com/fathers-day, 26 March 2013.
3. A common meaning of ‘solar day’ is 'a division of time equal to 24 hours and representing the average length of the period during which the earth makes one rotation on its axis,” thefreedictionary.com/solar+day. This is what is meant here; these were normal-length days. Before God created the sun, the 24-hour day-night cycle was provided by the rotating earth and the light God created on Day 1. See Sarfati, J., How could the days of Genesis 1 be literal if the Sun wasn’t created until the fourth day? creation.com/daysbeforesun, 13 May 1998.
4. Steinmann, A. Evening and Morning, The Bible Translator 62(3):145–150, 2011.
5. Steinmann, A., אחד as an ordinal number and the meaning of Genesis 1:5, Journal of the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 45(4):577–584, 2002.
6. Sarfati, J., The numbering pattern of Genesis: Does it mean the days are non-literal? J. Creation 17(2):60–61, 2003; creation.com/numbering, based on Steinmann, אחד as an ordinal number, Ref. 5.
7. For example, the luminaries (Day 4) were placed in the raqia‘ (expanse, firmament) created on Day 2; whales and fish (Day 5) in the seas (Day 3).
8. Steinmann, A., From Abraham to Paul: A Biblical Chronology, Concordia Publishing House, 2011.
9. Cosner, L., Romans 5:12–21: Paul’s view of literal AdamJ. Creation 22(2):105–107, 2008; creation.com/romans5.
10. Cosner, L., Christ as the last Adam: Paul’s use of the Creation narrative in 1 Corinthians 15, J. Creation 23(3):70–75, 2009; creation.com/1-corinthians-15. 


번역 - 박수빈

링크 - http://creation.com/steinmann-hebrew-professor-interview

출처 - Creation 36(1):48–51, January 2014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360

참고 : 4440|4540|3932|4297|1790|3331|4375|2016|2638|3640|3689|5035|5033|5275|6351|2942|6283|6071|5969|5870|5628|3628|3641|2797|3186|4204|3024|6414|6107|6581

3000년 전 가장 초기의 중국 갑골문자의 3D 모델 제작 

: 한자와 창세기의 관련성이 확인될 것인가? 

(Earliest Chinese Language Revealed)


      학자들은 연구를 위해, 중국에서 발견된 가장 초기의 문자로 새겨진 명문(inscriptions)에 대한 3-D 모델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초기 중국의 문화 역사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새로운 도구를 가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가장 초기의 한자로서 갑골(oracle bones)에 새겨진 문자들에 대한 3차원 이미지이다. 케임브리지 대학은 웹상에서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3-D 이미지로 스캔된 이 갑골문자의 숨겨진 형태를 공개하였다.(클릭하면 3D 사진을 볼 수 있음) 이것은 학술 연구자들에게 제공된 후에, 사해사본(Dead Sea Scrolls)처럼 온라인으로 검색 가능하게 만들려고 하고 있다.

올해로 600주년이 되는 케임브리지 대학 도서관은, 갑골문자로 새겨진 614자의 한자들에 대한 수집물을 보유하고 있다. 그 글자들은 BC 1339~1112년 사이로 평가된, 한자로 쓰여진 가장 오래된 현존하는 기록물이다. 소의 어깨뼈(견갑골)와 거북 껍질의 평탄한 아래 면(배딱지)에 새겨진, 그 글자들은 당시 중국 북중부를 지배하고 있던 상(Shang) 왕조의 궁정에서 예지(divination, 신의 뜻)를 얻으려는 질문들과 구해진 답들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뼈에 새겨져있는 명문은 초기 중국 사회의 여러 측면들, 가령 전쟁, 농업, 사냥, 의료 문제, 기상학, 천문학 등에 관한 많은 통찰력을 제공하고 있다.

BC 1192년 명문에는 일식(solar eclipse)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포함되어 있었다. 독자들은 3-D 이미지를 회전시키면서 어느 각도에서도 그 유물을 볼 수 있다.

이미지는 뼈의 표면에 미세하게 조각되어 있는 질문뿐만 아니라, 거꾸로 새겨진 점괘, 그리고 균열을 만들기 위해 열로 인해 그을려진 자국들을(영적 세계로부터의 대답으로 해석되는) 자세히 볼 수 있다. 이것들은 실제 사물을 보는 것보다, 원래 뼈를 다룰 때의 손상 위험 없이, 더 명확하게 보여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단지 하나의 뼈만 스캔되었지만, 대학은 연구자금이 조달되어 더 많은 뼈들을 스캔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많은 창조론자들은 ‘창세기의 발견(The Discovery of Genesis)’이란 책을 쓴 에델 넬슨(Ethel Nelson)의 연구로 인해(C. H. Kang의 도움을 받아) 매료되어 왔다. 그 책은 초기 중국의 상형 문자에는 에덴동산과 노아 방주를 포함하여 창세기의 이야기들이 들어있다는 것이었다. (ICR article을 참조 하라). 그 주장은 논란 중이었고(AiG), 자주 무신론자 및 안티창조론자들에 의해서 조롱당해 왔다. 그 주장이 맞는지 아니지를 확인해줄 수 있는 고대 자료(raw data)는 아무 것도 없었다. 우리는 학자들이 이 고대 갑골문자를 연구하여, 더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아는 한 중국인은 창세기에 대한 암시를 포함하고 있는 한자는 여전히 홍콩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모택동 정권 하에서 한자는 간체로 변경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실을 확인하려면, 간체 이전의 한자로 돌아가야 한다.

의심할 여지없이, 3000년 전에 쓰여진 갑골문자는 20세기에 사용되는 것과는 매우 다르게 보일 것이다. 그 문자들이 창세기의 내용과 가까운 상관관계를 보여줄 것인가? 시간이 지나면 그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상관관계가 있다 하더라도, 바벨탑 사건으로부터 상나라(Shang Dynasty) 까지는 많은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특별히 글자를 새겨 넣은 사람이 그 뼈를 점괘를 얻기 위해 사용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많은 변형이 있을 것이다. 글자를 새겨 넣은 사람은 구전으로 내려오던, 창세기의 문화적 기억을 가지고 있던, 이전 조상들에 의해서 디자인된 문자를 사용했을 것이 추론될 수 있다. (가장 초기라는 BC 1339년도 출애굽 이후의 연대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모세의 기록과 분리된, 중국 문자에서 창세기와 관련성이 발견된다면, 그것은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에 대한 독립적인 강력한 증거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중국인들이 아담과 노아의 기억을 가지고, 바벨로부터 이주해왔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른 유일한 가능성은 BC 2000년 경에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중국으로 그 이야기를 가져온 이주자들이 있었을 가능성이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왜냐하면, 그 시기에 자신들의 문화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글자에 서양의 이야기를 집어넣었을 가능성은 매우 낮기 때문이다. 이제 그 원본 글자들을 살펴볼 수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보고될 새로운 연구 결과가 기대된다.



*관련 도서 : 설문해자에 나타난 창세기 - 임번삼
http://www.kacr.or.kr/mall/mall_view.asp?no=6257

지명 속에 숨겨진 창세기 - 임번삼
http://www.kacr.or.kr/mall/mall_view.asp?no=6256

고대한자 속에 감추어진 창세기 이야기 – 에델 R. 넬슨, 리차드 브로드베리
http://www.kacr.or.kr/mall/mall_view.asp?no=3954

한자에 담긴 창세기의 발견 - C.H. Kang, E.R. Nelson
http://www.kacr.or.kr/mall/mall_view.asp?no=1012

 

*참조 : The Lamb of God hidden in the ancient Chinese characters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magazines/tj/docs/tjv13n1chinese_lamb.pdf

Noah’s Ark hidden in the ancient Chinese characters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9_2/j19_2_96-108.pdf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v.info/2016/03/earliest-chinese-language-revealed/

출처 - CEH, 2016. 3. 24.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353

참고 : 1536|302|3945|512|6066|5094|6283|6189|4797|5275|3641|3730|6133|5969|4819|4382|2545

Brian Thomas
2015-12-07

역사적 아담을 지지하는 과학적 사실들

(Was Adam a Real Person?)


      오늘날의 반-성경적 세계는 아담(Adam)이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을 조롱하고 있다. 또한 (유신진화론자들을 포함하여) 많은 기독교인들도 아담의 실존을 의심하고 있다. 구약학 교수인 존 왈튼(John Walton)은 최근 아담과 하와는 아마도 ”하나님이 초기 호미니드(hominids) 중에서 한 쌍을 선택하셨다”라고 썼다.[1] 우리는 유인원의 후손인가? 아담의 후손인가? 아담과 역사 사이에 두 연결고리는 최초의 사람이었던 아담의 실존에 대한 타당성을 나타내고 있다.

기독교 외부와 내부에서 진화론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진화론이 과학적으로 입증됐기 때문에, 역사적 아담은 없다고 주장한다. 과학적 권위로 아담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진화론에 의하면, 멸종된 유인원 같은 생물이 자신보다 인간의 특성을 조금 더 닮은 아이를 낳았다. 다음 세대에도 그랬고, 점차적으로 계속 변화되어, 수많은 세대가 흘러간 후에 우리와 같은 인간을 낳았다는 것이다. 진화론적 인류 역사에 의하면, 우리는 유인원과 연결되어 있지, 아담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성경적 역사에 의하면 우리는 아담과 연결되어 있다. 성경에 의하면, 우리 각 사람은 아담의 죄성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죄를 짓고, 죽음을 형벌로 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결코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게” 된 것이다.[2] 만약 아담이 역사적으로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믿을 이유가 없으며,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 죽으실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담은 중요하다! 진화론자들에게 아담은 존재하지 않아야만 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특별한 창조로 존재하지 않았다면, 시간과 물질도 하나님의 창조로 생겨났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성경적 기독교에서 아담은 존재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달리심과 무덤에서의 부활은 완전히 쓸모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성경은 이것에 대한 많은 증거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예수님이 '마지막 아담(last Adam)'으로 표현된 것은[3] 최초의 아담에 관한 타당성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지지하는 세 가지 과학적 사실들이 있다.

첫째, 작은 변화들이 축적되어 원숭이 같은 생물이 사람으로 변했다는 진화 이야기는 해부학을 위반하는 것이다. 원숭이는 두 다리로 걸을 때 서투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의 뼈를 네 다리로 걸으며, 나무에 매달리는 데에 적합하도록 만드셨기 때문이다. 만약 진화가 이들 뼈들을 조금씩 조정하여 사람이 되도록 만들었다면, 그것은 단지 기형을 가진 유인원을 만들었을 것이고, 그들의 친척보다 살아남기 어려워 빠르게 도태되었을 것이다.      

둘째, 진화론자들 사이에서도 제시된 인간 조상 화석들에 대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호모 나레디(Homo naledi)라 명명된 이상하게 보이는 화석이 최근의 사례일 것이다. 사람과 관련된 이름이 붙여진 것과 관계없이, 고인류학자들은 그 화석에 대해서 논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4] 앞으로의 연구에 의하면, 나레디 화석은 사람과 멸종된 원숭이 뼈들의 단순한 혼합으로 간주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유전학은 아담을 확인해주고 있다. 사람은 매 세대마다 약 100개 정도의 새로운 돌연변이들이 축적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매우 많은 유전적 '오타(typos)'들을 보유하고 있다.[5] 돌연변이들은 천천히 정보들을 지워버린다. 손상된 유전정보의 축적으로 인해 인류는 수천 년 내에 멸종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돌연변이 속도에서, 왜 우리 인류는 오래 전에 멸종되지 않았는가? 인류는 유전체 내에 단지 수천 년에 해당하는 돌연변이 축적만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성경의 기록처럼, 우리의 조상이 아담이었다는 것과 일치한다.

해부학, 고생물학, 유전학은 우리가 동물이 아닌, 아담과 하와로부터 후손되었음을 가리킨다. 이것은 우리에게 오실자의 모형이신, 아담의 역사적 실존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해주는 것이다.[6]   



References

1.Walton, J. H. 2015. The Lost World of Adam and Eve.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77.
2.1 Corinthians 15:22.
3.1 Corinthians 15:45.
4.For example, see Chris Stringer’s comments in Ghosh, P. New human-like species discovered in S Africa. BBC News. Posted on bbc.com September 10, 2015, accessed October 7, 2015.
5.Kong, A. et al. 2012. Rate of de novo mutations and the importance of father’s age to disease risk. Nature. 488 (7412): 471-475.
6.Romans 5:14.


*참조 : 유전적 엔트로피 - 진화가 아닌 퇴화 (youtube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VNF5GPcdmS0

과학이 발견한 아담과 이브 (2017. 1. 3. 기독일보)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9007

출처 - ICR, Acts & Facts. 44 (12). 2015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283

참고 : 5870|5628|5935|5969|5725|5536|4998|3730|6119|5544|5443|5952|6190|5863|5094|4824|6250|6251|6253|6271|5525|5025|5768|6376|6642

Jeffrey P. Tomkins
2015-07-08

고대 인류에 대한 DNA 분석은 바벨탑의 인류 분산을 확증하고 있었다. 

(Bronze-Age DNA Confirms Babel Dispersion)


      과학자들은 새로운 기법을 사용하여, 유럽에서 발굴된 청동기시대의 인류로 믿어지는 101명의 고대 인간 유전체(human genomes)의 염기서열을 분석했다. 연구 결과는 단지 수천 년 전에 유전적 다양성의 대규모 이주성 유입을 가리키고 있었다. 또한 이 데이터는 알려져 있는 언어의 다양화 패턴과 일치했는데, 이것은 바벨탑(Tower of Babel)에서 그룹별 사람들의 분산에 대한 강력한 증거를 제공하고 있었다.


세속적 과학자들에 의해서 BC. 1,000~3,000 년의 기간으로 추정되고 있는 소위 청동기시대(Bronze Age)는 매장된 사람의 유골과 함께 발견된 다양한 공예품들로 인해, 커다란 문화적 변환의 시기로 생각되고 있다. 이 최근 보고서에서 연구자들은 ”청동기시대는 유럽과 아시아 모두에서 현재 인구학적 구조의 주요 부분을 형성했던, 대규모의 인구 이주와 교체를 포함하는, 매우 역동적인 시기였다.”고 말했다.[1]


이 청동기시대 이론을 시험해보기 위해서, 꽤 큰 그룹의 과학자들이 유라시아에 걸쳐서 발견된 청동기시대와 관련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101 명의 서로 다른 사람들에 대한 가장 대규모의 고대 DNA 염기서열 분석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또한, 그들은 데이터의 정확성을 크게 향상시켰던, 그리고 현대인으로부터의 DNA 오염(고대 DNA 연구에서 주요한 문제)을 크게 감소시켰던, 새로운 일련의 DNA 추출 및 시퀀싱 프로토콜을 사용했다.


수천 년 동안 유전자들이 함께 혼합되어왔던 현대의 유라시아인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이들 고대의 사람들은 비교적 뚜렷한 혼합되지 않은 다양한 유전적 계통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유전적 병목현상(genetic bottleneck)에 뒤이은 대규모의 이주 직후에 채취된 사람들의 DNA에서 기대되는 것과 정확히 같은 것이었다. 사실, 이전의 연구들은 이러한 타입의 유전적 데이터는 지리적 분산과 언어의 분포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줬었다.[2, 3] 또한, 현대 사람들의 유전체의 단백질 암호 영역에서 극히 드문 변화를 분석했던 여러 다른 최근의 연구들은, 사람 유전체는 약 5,000년 전보다 더 다양하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4~7]


이러한 결과는 많은 진화 과학자들에게 충격적이며, 그들의 진화론적 역사 패러다임의 실패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반면에 점점 축적되고 있는 많은 데이터들은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고대 인류의 역사와 너무도 정확하게 일치되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이, 인류는 대략 4400여년 전에 유전적 병목현상을 경험했다. 지구상 인류는 전 지구적 홍수였던 노아 홍수에서 살아남은 노아의 가족 8명으로부터 재번성하기 시작했다.


또한 노아의 홍수 직후에, 인류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다. 대신, 인류는 한 지리적 위치에 모여 있었고, 부패와 포악함으로 가득했던, 하나님의 홍수 심판을 불러왔던, 홍수 이전의 이방 문화를 다시 건설하고자 시도했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고, 그들의 반역적 야망을 좌절시키셨고, 그들을 다른 언어 그룹들로 나누셨고, 온 지면에 흩으셔서 이주하도록 하셨다. 이것이 고대 유라시아 인류에서 새롭게 관찰된 유전적 데이터에 대한 설명을 포함하여, 우리가 오늘날 보고 있는 민족과 종족들의 다양성에 대한 설명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References

1.Allentoft, M. E. et al. 2105. Population genomics of Bronze Age Eurasia. Nature. 522 (7555): 167-174.
2.Tomkins, J. 2014. Out of Babel—Not Africa. Creation Science Update. Posted on icr.org February 16, 2015, accessed June 22, 2015.
3.Creanza, N. et al. 2015. A comparison of worldwide phonemic and genetic variation in human population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12 (5): 1265-1272.
4.Tomkins, J. 2012. Human DNA Variation Linked to Biblical Event Timeline. Creation Science Update. Posted on icr.org July 23, 2012, accessed June 22, 2015
5.Tomkins, J. 2013. Genetics Research Confirms Biblical Timeline. Creation Science Update. Posted on icr.org January 29, 2013, accessed June 22, 2015.
6.Tennessen, J. et al. 2012. Evolution and Functional Impact of Rare Coding Variation from Deep Sequencing of Human Exomes. Science. 337 (6090): 64-69.
7.Fu, W. et al. Analysis of 6,515 exomes reveals the recent origin of most human protein-coding variants. Nature. 493 (7431): 216-220.

*Dr. Tomkins is Research Associate at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and received his Ph.D. in genetics from Clemson University.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8821 

출처 - ICR News, 2015. 6. 26.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189

참고 : 3730|4998|4237|1536|2545|4382|4996|4400|5337|5153|4281|4228|4119|736|5627|5514|512|921|3945|6133|6066|5969|5935|5870|5634|4557

David Catchpoole
2015-04-28

채식을 하던 오색앵무새가 육식을 

(Easy meat for the lorikeet)


     조류애호가들과 조류학자들은 정상적으로 채식을 하던 오색앵무(rainbow lorikeets) 새가 육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인해 충격과 혼란에 빠졌다.

freeimages.com

”육식을 하는 오색앵무새는 조류 전문가들에게 수수께끼가 되고 있다”고 최근 뉴스는 보도하고 있었다.[1] 오색앵무(rainbow lorikeets, 진홍앵무)는 호주에 사는 아름다운 앵무새 종(Trichoglossus haematodus)이다. 이 새는 오로지 과일, 씨앗, 과즙, 화분 등을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 야생에서 이들의 개체 수는 급증하고 있어서, 많은 과수 농가들은 염려하고 있었다. (오색앵무는 3일 만에 과수원 하나를 황폐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호주 퀸즈랜드 남동부의 사람들은 오색앵무새와 다른 조류 종들이 과수원에서 떠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기뻐하고 있었다.   

”오색앵무새가 고기를 먹고 있는 장면은 나에게 완전한 놀라움이었다.” 다릴 존스(Darryl Jones, Griffith University) 교수

충격적인 반전이 있었다. 몇 년 동안 호주 브리즈번의 한 농장주는 그 지역의 새들을 위한 먹이 공급처를 설치했다. 그는 오색앵무, 물총새(galahs), 황제앵무(king parrots) 등과 같은 채식성 새들을 위해 곡물 씨앗들을 놓아두었다. 또한 웃는물총새(kookaburras), 까치(magpies), 때까치(butcher birds), 종까치(currawongs) 등과 같은 육식성 새들을 위해서 갈아진 고기를(애완동물 먹이로 제공되는 형태로) 제공하였다. 다음은 그 장소를 모니터링 했던 대학 연구자들의 말을 인용하여 보도하고 있는 뉴스 내용이다 : 

”호주 브리즈번 북부의 한 먹이 공급처를 자주 찾아오는 오색앵무새들의 행동은 조류 전문가들을 당황시키고 있었다. 오색앵무새들이 고기를 먹고 있었다. 그리피스 대학의 다릴 존스(Darryl Jones) 교수는 충격을 받았다.”

”뒤뜰 먹이 공급처를 살펴보다가 충격을 받은 존스 교수는 말했다. 오색앵무는 대게 식물 및 관목에서 얻게 된 과즙과 화분을 먹는다.”

”나는 전 세계에서 조류들이 무엇을 먹는지에 대해 연구해왔다.” 존스는 말했다. ”나는 호주에서 새들의 이상한 먹이 행동에 대해서도 조사해오고 있었다. 오색앵무새가 고기를 먹고 있는 장면은 나에게 완전한 놀라움이었다. 나는 이전에 그러한 일을 결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또한 놀라고 있었다. 야생동물 보호자인 샌더스(Fran Sanders)는 브리즈번 지역에서 25년 동안, 재래종의 동물과 새들에 대해서 조사해오고 있었다. 그는 오색앵무새가 고기를 먹는 것을 이전에 결코 보거나 들은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완전히 놀랐고, 그것은 소름끼치는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말했다. ”그들은 육식성 조류가 아니에요. 그것은 확실합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군요. 그것은 정말로 기절할만한 일입니다.”


사실 이것은 최근의 일탈이 아니다. 농장 소유주인 빌(Bill)은 앵무새들이 고기를 먹는 것을 최초로 목격한 것은 7년 전이었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앵무새들은 그 이후로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앵무새들이 먹이통에 놓아두었던 씨앗들을 잘 먹었던 것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번 그들은 고기 먹기를 시도하더니, 고기를 좋아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고기를 찾을 뿐만 아니라, 식물보다 선호했고, 다른 새들이 고기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공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처음에 오색앵무새는 씨앗을 찾아 다녔는데, 이제는 다른 새들을 고기로부터 멀리 쫒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나에게 완전히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빌은 회상했다. 

'처음에 오색앵무새는 씨앗을 찾아 다녔는데, 이제는 고기로부터 다른 새들을 멀리 쫒아내고 있었다.”

”먹이 공급처와 주변 지역에서 여러 먹이들을 접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오색앵무가 고기를 먹도록 미혹했을 수 있다”고 존스 교수는 말했다. ”그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앵무새가 육식성으로 전환된 것은 최초의 사례가 아니다. 뉴질랜드에 사는 잉꼬새 종인 케어(kea of New Zealand) 새는 육식성 동물로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동물이다.[3] 오늘날 완전 채식성 동물로서 알려져 있지만, 갑자기 매우 다른 식이 행동에 적응한 많은 새들과 생물들이 있다. 그들은 관측자들에게 놀라움과 충격을 주고 있는데, 예를 들어 갈라파고스의 ‘뱀파이어 핀치새(Vampire Finches)’ 같은 것이다.(다른 예들은 아래 ‘Related articles’ 참조). 오늘날 육식성 조류나 동물 종들은 사실상 원래는 채식성이었다. 그들 모두는 100% 채식성이었다가, 역사적으로 어떤 시점에서 변환된 것이다. 성경적 역사에 의하면, 그 사건은 대략 6,000년 전인 아담의 범죄 이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 사건 이전에는 모든 동물들은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서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창 1:30)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들을 보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다. 그곳에는 죽음도 없었고, 고통도 없었고, 아픔도 없었고, 육식도 없었다.

그래서 호주의 오색앵무가 쉽게 육식성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우리가 오늘날 타락한 세계(fallen world)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또 하나의 증상(symptom)인 것이다. 미스터리와 같은 많은 수수께끼들은 성경적 시각으로 바라볼 때, 완전히 풀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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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and notes
1. Unless otherwise indicated, all quotes in this article come from the following reference and the ABC News website front page linking to it: Watson, M., Rainbow lorikeets eating meat leaves bird experts astonished, abc.net.au, 23 March 2015.
2. ABC Gardening Australia fact sheet: Growing lychee trees, abc.net.au, 28 March 2009.
3. Weston, P., The kea: clever, clownish and … carnivorous?!, Creation 27(1):28-32, 2005; creation.com/Air-attack.


*오색앵무 1 (Rainbow Lorikeet) (youtube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1h0LjVHF1IU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ation.com/meat-eating-lorikeets 

출처 - CMI, 2015. 4. 14.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145

참고 : 5903|2245|3046|2291|5031|5739|3174|6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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