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질시대로서 제안되고 있는 ‘인류세’ 

(Welcome to the Anthropocene)


     진화론적 지질학자들은 인류가 지구 행성을 다루기 시작했던 시기로서, ”인류세(Anthropocene)”라는  새로운 시대를 지질주상도(geologic column) 상에 추가시키려 하고 있다.


분류는 사람이 만들어낸 게임이다. 왜 우리는 ”캄브리아기”를 갖고 있는가? 아담 세드윅(Adam Sedgwick)이 웨일즈의 특정 지층암석에 그 이름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다른 지층암석들에 하나씩 하나씩 ~대, ~기, ~세 등의 시대와 기간이 지역적 이름으로부터 부여되었고, 지구 역사에 대한 사람이 만든 그림이 만들어졌다. 다른 시대의 다른 문명들은 동일한 퇴적지층에 대해,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분할하여, 완전히 다른 이름과 카테고리를 갖고 있었다.


동일한 일이 생물학적 분류(biological classification)에서도 있었다. 그 분류는 린네(Linnaeus)로부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모든 동물과 식물들을 우아하게 분류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그 같은 방식은 자연의 모든 동식물들을 분할하기에는 불완전했다. 분류 체계는 과학자들에게 공용어를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 만든 도구에 불과하다. 그들이 유용하게 사용하는 만큼만 좋은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과학자들은 어떤 데이터를 이전에 결정된 카테고리 안으로 강제적으로 집어넣으면서, 열려진 마음의 사람이라면 생겨나는 자연스러운 질문들을 억누르고 있다.


이제 우리는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분류 철학(philosophy of classification)의 새로운 예를 보고 있다. 일부 지질학자, 생물학자, 사회과학자들은 이 행성이 인간으로 인해 변경된 것을 지정할 수 있는 새로운 지질시대를 만드는 것이 유용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이것은 기후변화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묻고자 하는 기후과학자들에게는 유용할 수 있다. 그래서 여기에 인류세의 시대(The Anthropocene Epoch)가 준비되고 있다 :

• 행성 지구는 새로운 '인류세' 시대로 접어들었는가? (Live Science, 2016. 8. 30)

• '인류세‘ : 잠재적인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 (Science Daily, 2016. 8. 29)

• 인류세의 '골든 스파이크'에 대한 지질학자들의 연구 (BBC News, 2016. 8. 30)

그 마지막 헤드라인은 한 질문을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 인류세는 언제 시작했는가? 지질학자들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지정하기 위한 ”골든 스파이크(Golden Spike)”를 찾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이 기간의 시작을 지정하기 위해서, 인류세 설정 그룹(Anthropocene Working Group, AWG)은 작업을 하고 있다. 

”우리 대부분은 그것이 진짜라고 생각하고 있다. 분명 어떤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인류세를 하나의 구별되는 단위로 만들어주는, 환경에 인식할 수 있는 어떤 분명한 표식을 남겨놓았을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공식적으로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 정당화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인류세가 공식적으로 정해질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제출 과정을 통하여 계속 추진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BBC News와 Live Science 지는 원자폭탄의 폭발 사진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설명하고 있었다. 원자폭탄이 투하됐던 1945년이 골든 스파이크로 표시될 것인가? 우리는 방사성탄소 연대측정이 조정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원자폭탄의 지상 폭발들은 대기 중 방사성탄소의 비율을 비정상적으로 증가시켰을 것이기 때문이다. 분명 사람이 지구를 변경시켰다는 지표들이 있다. 하지만 다른 많은 생물들도 지구를 변경시킨 일을 하지 않았는가? 미생물들은 지구 대기를 변화시킨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각 생물들도 자신들의 시대를 정할 수 있는가? 누군가가 그 이름을 제안하기 이전에도, 인류세는 존재 했는가? 그들은 왜 그 이름에 그리스어(anthropos)를 사용하는가? 그 모든 것은 임의적이고, 임시적이며, 틀에 박힌 것이고, 인간의 이해가 미치는 범위 내에서만 유용한 것이다.



분류(Classification)는 과학 철학의 중요한 측면을 가리키고 있다. 사람이 명명한 이름과 카테고리는 인간 밖에서는 '진짜'가 아니다. 쥐들은 ”쥐세(Ratocene)”를 가지고 있지 않다. 삼엽충들은 캄브리아기를 그들의 전성기였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이름을 짓는 일이 유용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담의 첫 번째 일은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주고 분류하는 것이었다. 즉, 그것은 인간이 하는 일이다. 그것은 인간이 지성적 존재라는 증거이다. 우리의 이름은 우리의 생각을 나타내는 데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 밖의 존재에 대해서, 우리의 생각을 구체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잘못 가르쳐지고, 잘못 인도될 수 있다. ”펜실베이니아 기”는 그랜드 캐니언에서는 '진짜'가 아니다. 그것은 어떤 화석 종류들이 나오는, 어떤 퇴적지층 부분에 대해서 지질학자들이 부르고 있는 이름이다. 그것에 해당하는 유사한 지층이 중국에서 발견될 수 있을까? 깔끔하게 적합한 동일한 지층은 발견되지 않는다. (들어있는 화석 생물들이 다르다). 그리고 많은 비정상적인(지층 연대와 맞지 않는) 화석들에 대한 설명이 필요해지고 있다.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기에는 너무 많아지고 있다.)  


이름은 원래의 생각을 감추고 있는, 구속하는 옷이 될 수 있다. 그랜드 캐니언에서 지질학자들은 어떠한 침식의 증거도 없지만, 오르도비스기 전체와 석탄기를 잃어버렸다고 추론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이전에 받아들여진 지질주상도에는 그 시대가 있기 때문이다. 지질주상도에 있는 각 지질시대의 명칭들은 19세기 영국 과학자들에 의해서 결정됐던 것들이다. 그들이 붙인 이름들이 왜 미국에서도 사용되어야 하는가? 그 대답은, 그렇게 하는 것이 유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뒤따르는 질문은 이것이다. ”누구에게 유용한 것인가?” 


교과서에서 가르쳐지고 있는 지질주상도는, 어떤 발견들을 진화론적 틀 안으로 적합시키도록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 의식 있는 과학자라면 한 번 쯤은 상자 밖으로 나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만약 어떤 발견이 진화론적 지질주상도와 맞지 않는다면,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인가? 당신의 용기있는 행동에 동조해줄 수 있는 동료들을 충분히 얻을 수도 있다. 한번 붙여진 이름을 교과서에서 바꾸는 일은 매우 힘들다. 과거 영국에서 이름 붙여진 퇴적지층들을 미국에서 사용하는 것은 유용하지 않다. 러시아에서는 퇴적지층들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변화는 과학적 혁명을 일으킬 수도 있다. 만약 혁명이 장점을 가진다면, 패러다임은 결국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러한 비정상적인 발견들을 했다면, 용기를 내어 그것들을 차곡차곡 쌓아두라. 그리고 기회가 되면 발표하라. 남들이 모두 걸어가고 있는 길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특히 그것이 진리의 길이 아닐 때는 더욱 그렇다. 과학자들은 증거를 따라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과학적 혁명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추종자들이 거대한 기득권 세력이 되어, 모든 곳을 장악하고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진실은 사람이 발명해낸 이론이나 사상보다 더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만 한다.



*관련기사 : '지금 지구는 ‘인류세’…지표 화석은 닭뼈” (2016. 8. 30.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8301723001&code=970100

'새 지질연대 '인류세' 1950년 시작'…급속한 산업화로 지구변화 (2016. 8. 30. 연합신문)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8/30/0200000000AKR20160830002200085.HTML

지구 '인류세의 시대'로…‘닭뼈’ 화석이 남는다 (2016. 8. 30. 헤럴드경제)
http://hooc.heraldcorp.com/view.php?ud=20160830000768

인류세와 황금못 (2016. 9. 1. 부산일보)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subSectionId=1010112000&newsId=20160902000051

'새 지질연대 ‘인류세’ 1950년대부터…원자탄이 전환점' (2016. 1. 10. 전자신문)
http://www.etnews.com/20160110000014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v.info/2016/09/welcome-to-the-anthropocene/

출처 - CEH, 2016. 9. 5.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451

참고 : 2804|6104|4198|4275|4235|4473|4490|4607|4610|6417|6431|6415|6413|6255|6240|6225|6223|6222|6076|6030|5556|5951|5898|5721|5639|5400|5399|5286|4211|4217|4132|3948|3111|4363|3044|3278|2912|3032|925|926|927|928|6325|6284|5448|2752|4548|6260|2947|2945|634

미디어위원회
2016-08-18

그랜드 캐년의 코코니노 사암층은 풍성층이 아니다! 

지질주상도 2 : 코코니노 사구들 

(The Coconino Sand Dunes)

Sean D. Pitman 


      그랜드 캐년에 있는 사막 모래에 의한 것처럼 보이는 오래된 사구(모래 언덕)들은 무엇인가? 오늘날 동일과정설적 지질학에서는, 코코니노 사암층(Coconino sandstone, 위에서 세 번째 지층)은 광대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사막이었다고 주장되고 있다. 코코니노 사암층은 정말로 아주 흥미롭다. 평균 두께는 96 m(315 피트)이고, 200,000 평방마일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모래의 총 용적은 대략 10,000 입방 마일로 추정된다.14 모래 입자는 거의 전부 사막 모래처럼 미세한 입자의 석영으로 이루어져 있다.14

또한, 오늘날의 사막에서처럼, 코코니노 사암층에는 '사층리(cross bedding)'가 나타나 있다. 사구 내의 사층리는 한 사구의 모래가 다른 방향(각도)으로 형성되는, 또 다른 사구의 모래에 의해 덮이는 지역에 나타난다. 코코니노 사암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얼어붙은 사막 사구처럼, 이러한 사층리들로 가득차 있다.15   

.코코니노 사암층에 나있는 네발보행 동물의 발자국화석. 그랜드 캐년의 South Rim에 있는 Natural History Association's Yavapai Point Museum 에 전시되어있다.

모래 입자 자체는 건조한 '사막' 환경에 오랫동안 노출된 듯한 현미경적 특징을 보여준다. 이러한 특징으로 각각의 모래 입자 표면에 '무광택화(frosting, 광물 표면에 광택이 지워지는 현상으로 바람에 의해 날렸던 수많은 모래 입자들이 부딪쳐서 형성됨)'와 '얽은 자국(pitting)'이 있다. 코코니노 사암층과 오늘날의 사막 모래 사이의 이런 유사성은 오래 전의 사막이 코코니노 사암층을 형성했으리라는 생각을 뒷받침했다.16   

그러나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게 된다. 이 사암층 전반에 걸쳐 도마뱀(lizards) 혹은 다른 유사한 파충류 같은 척추동물의 발자국과 흔치않은 벌레(worm)와 절지동물의 흔적들(arthropod trails)이 보존되어 있다. 척추동물의 발자국들은 양서류 또는 파충류의 것으로 보여지는데, 그들 대부분의 발자국 구조 중 양서류의 것은 가장 쉽게 확인될 수 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많은 양서류들이 어떻게 사막환경에서 살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발자국화석들은 사구의 표면에 나타나고, 이동하는 사구에 의해 뒤덮여, 이와 같이 오랜 시간동안 보존됐다고 생각했던 것이다.17

코코니노 사암층에는 어떤 식물체의 증거를 포함하여 다른 화석들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 모든 사실을 고려해 볼 때, 코코니노 사암층은 사실 매우 커다란 오래 전의 사막이 보존되었다는 것이 명백한 것처럼 보였다.

자세한 관찰이 이루어질 때까지, 많은 것들은 어떤 것으로 보여지곤 한다. 코코니노 사암층은 사막에서 기원됐다는 대중적인 생각은, 1930년대 초 맥키(McKee)로 하여금 이 분야의 연구를 시작하게 했다.27 맥키는 사구는 바람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물에 의해서 퇴적되지 않았다는 그의 결론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사암의 물리적 특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후에 그는 발자국들에 대해 연구했고, 발자국들은 마른 모래에서 형성되었을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28, 29

그러나 브랜드(Leonard Brand)에 의하면, ”바람에 의한 퇴적으로 예전에 진단했던 퇴적 모습들이 지금은 진단할 수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하였고, 스탠리(Stanley) 등은(1971) ”입자의 무광택(grain frosting)은 더 이상 바람에 의한 수송의 특징으로 간주될 수 없다. 입자 크기의 분포에 대한 통계는 애매했고(Navajo에 대해서), 나바조(Navajo) 사암층 또는 다른 유사한 사암층에서 보이는 거대한 꽃줄 모양의 사층리들은 더 이상 바람에 의한 사구의 퇴적으로만 우선적으로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과거 수십년 동안의 연구에 의하면, 바다 속에서의 모래 파도 등에 의한 물 속에서의 모래의 경사적 퇴적 모습과 근본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e.g., see d'Anglejan 1971; Harvey 1966; Jordan 1962; and Terwindt 1971). 25

코코니노 사암층에는 섬세하고 분명한 발자국이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이것이 건조한 사막 모래에서 일어날 수 있을까? 도마뱀이 건조한 모래 위를 걷거나, 달릴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발자국 인상(impressions)이 만들어지긴 한다. 하지만 코코니노 사암층에 보존된 것과 같은 섬세하고 분명한 발자국은 남기지 않을 것이다. 물론 모든 발자국들이 다 분명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수의 발자국들은 매우 섬세해서 발톱의 형태까지 새겨져 있다.

이제, 건조한 모래에 새겨진 매우 작고 섬세한 발자국을 변화되는 모래가 보존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 이것은 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 실시간의 실험실 실험은 코코니노 사암층에서 발견되는 섬세한 발자국 모습은 물 속 모래(underwater sand)에서, 또는 매우 젖은 모래(very wet sand)에서 가장 잘 형성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브랜드의 실험에 따르면, 축축한 모래(damp sand)의 발자국은 분명한 발자국을 남겼지만, 발가락은 거의 알아볼 수 없었다. 축축한 표면은 동물이 그 위를 걸어갔을 때 모래 지각(sand crust)이 많은 조각으로 깨뜨려지면서 형성되었다.

때때로 지각 모래의 이러한 조각들은 발자국 후면으로 모래더미들을 밀어 올리거나, 발자국 주변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모래 표면의 물기가 동물의 체중에 의해서 깨뜨려지지 않을 정도로 두껍고 충분하다면, 모래는 오히려 단단해져서 발자국 형성에 저항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젖은 모래에서 유일하게 형성되는 것은 발가락에 의해서 남겨진 일련의 작은 움푹 들어간 자국뿐이었다. 화석화된 코코니노 사암층의 발자국들은 브랜드가 실험실에서 여러 방법으로 만들어 본 마른 모래발자국이나, 축축한 모래발자국과 일치되지 않았다.

마른 모래나 축축한 모래는 발가락 자국(toe marks)이나 다른 섬세한 부분들을 거의 남기지 못했다. 반면에 화석화되어있는 발자국들은 일반적으로 발가락 자국까지 보존되어 있었다. 마른 모래 발자국은 발자국 뒤로 큰 모래 마루(ridge)를 남기고 있었는데, 이것은 자주 발자국 앞쪽으로 흘러 내려와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화석 발자국들은 이러한 마루를 보이고 있지 않았으며, 발자국 주위의 모래 표면에 엉클어진 조각들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발자국의 비율도 또한 달랐다. 브랜드는 마른 모래 발자국은 폭보다 더 길었으나, 화석화된 발자국은 그들의 폭이 상대적으로 짧았다는 것에 주목했다. 축축한 모래에서 만들어진 발자국은 너무 불명료해서 적당한 측정을 할 수 없었다.

브랜드는 또한 모래의 경사가 수면 위로 올라가는 실험을 실시했다. 동물이 물 밖으로 걸어감으로서, 수면으로부터 점점 올라감에 따라 그들의 발자국은 변했다. 수면에 가까운 발자국은 한계가 불명확했다. 반면에 약간 높은 것들은 선명했고, 발가락과 발바닥 인상까지 분명했다. 그러나 동물이 더 높은 데로 올라가 더 단단한 모래를 밟게되면, 발자국은 더욱 희미해졌고, 단지 발가락이 찍힌 자국만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선명하게 새겨진 발자국으로부터 희미한 발가락 자국이나 긁힌 자국으로의 이러한 변화되는 모습들은 코코니노 사암층에서는 볼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 도롱뇽(salamanders)의 발자국은 물 속에서 걸어갈 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물 속에서 걷는 대신에, 수영을 하거나, 물 속에서 걸어갈 때에 부분적으로 부력을 받아 발자국이 흐릿하게 새겨졌다고 말했던 피보디(Peabody)라는 고생물 학자의 영향 때문에, 맥키는 사막에서 발자국이 형성되었다는 그의 이론에 강한 충격을 받았다. 맥키는 실험적으로 이와 같은 피보디의 생각을 확인하고자 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맥키(McKee, 1947)는 코코니노 사암층에 보존된 화석 발자국들은 그의 실험에서 만들어진 마른 모래 발자국과 가장 유사했다고 결론지었다. 왜냐하면 단지 마른 모래에서 각개의 발자국들이 분명하게 새겨졌기 때문이었다. 이상한 것은 맥키가 도룡뇽이 어떻게 물 속에서 걷는지, 어떻게 수영을 하는지에 대한 관찰 기록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브랜드는 그의 연구에서, 실험 욕조 내에 5 종의 동물들이 물 속 바닥 모래에서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할 때 수영보다는 걸었다고 기록했다. 브랜드는 이러한 행동은 또한 필드에서도 관측되었다고 기록했다. 수중의 모래 위를 걸을 때, 브랜드에 의해 선택된 5 종의 동물들은 발가락과 발바닥 자국이 선명히 새겨지는 분명한 발자국들을 남겼다. 이러한 발자국들 몇은 또한 모래 가장자리를 발자국 뒤로 밀어 올렸다. 그러나 이러한 마루는 앞발자국 뒤로 확장되지는 않았다.

브랜드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수중의 발자국은 코코니노 사암층의 화석 발자국과 가장 유사했다. 물 속에서 새겨진 수중 발자국은 화석발자국에서와 같이 분명한 발가락 자국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모양은 화석발자국과 같이 모래 경사의 전 길이에서 일정했다. 또한, 화석의 발자국의 비율은 수중 발자국의 그것과 가장 유사했다.” 25

보통 문헌에서 결코 언급되지 않는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은 코코니노의 엄청난 수의 발자국들이 언덕 위쪽을 향해 나있다는(Coconino tracks all head uphill) 것이다.18 명백히, 오래 전 사막의 도마뱀은 언덕 아래쪽으로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종종 발자국은 생물체가 갑자기 대기 속으로 사라지거나, 혹은 물 속으로 헤엄쳐 사라지는 것처럼, 모래의 변화나 흐트러진 증거 없이 갑자기 시작되고 갑자기 끝나있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기존의 이론에 들어맞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가설들을 검증한 연구에 따르면, 코코니노 사암층의 발자국들은 거대한 물의 흐름 아래에서 형성된 지층과 훨씬 더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8, 19, 20   

맥키는 내리막길 발자국들의 상대적인 결여를 다음과 같이 가정함으로서 설명하려고 시도했었다. 즉, 동물들은 아래쪽으로는 '미끌어지는(slide)' 경향이 있다. 이것은 모래에 새겨지는 자신의 발자국을 지우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제안에 대해 브랜드가 실시한 실험은 맥키의 가정을 지지하지 않았다.

브랜드는 그의 실험에서 동물들을 경사 위쪽으로 뿐만 아니라, 아래(downhill) 쪽으로도 걷게 했다. 물 속 모래, 젖은 모래, 축축한 모래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거의 모든 발자국들은 쉽게 분명한 발자국들을 만들었다. 다만 마른 모래에서는 도룡뇽(salamanders)의 발자국은 선명하지 못했지만, 비교적 보존은 잘 되었다. 반면에 도마뱀(lizards)의 발자국은 걷거나 천천히 달릴 때 모두 분명한 발자국을 남겼다. 단지 매우 빠르게 달릴때에만 발자국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코코니노 사암층에서 경사면 아래로 향하는 발자국이 거의 완벽하게 없다는 사실은, 발자국들이 진정 사막에서 형성되었다면, 미스터리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브랜드는 또한 코코니노 발자국들의 일부에서 흔치 않은 모습들에 주목했다. 간혹, 몇몇 발자국들은 경사면을 오르는 진행 방향과 약간의 각도를 가지고 발자국들이 나있는데, 그러나 앞 뒷발의 발가락들은 경사면을 향해 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이 발자국들을 만든 동물들이 그러한 거리를 약간 옆으로 걸었던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이것에 대한 가장 가능성있는 설명은 이 동물들은 어떤 흐름이 있는 물 속에서 걸었다는 것이다.      

또한 코코니노 층의 모래 사구 자체의 구조(architecture)는 오늘날의 사막의 사구 언덕과 같지 않았다. 코코니노 사구의 평균 경사각은 25°인 반면, 건조한 모래의 평균 경사각은 30-34°(건조한 모래의 ”안식각; 모래가 사면에 머물 수 있는 최대각”) 이었다.21 물 속 아래의 흐름에 의해 형성된 사구는 사막 사구만큼 높은 평균 경사각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사막 사구에서 자주 일어나는 '사태(avalanche)'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래 입자의 현미경적 특징(pitting and frosting)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사막 모래에만 흠집이 생기고, 표면의 광택을 잃게 되는 것은 아님이 밝혀졌다. 사암이 형성되는 교결작용(sand cementation) 중의 화학적 과정을 통해서도, 또한 흠집이 생기고 표면의 광택을 잃을 수 있었던 것이다.22

그래서, 코코니노 사암층은 수면 아래에서 형성되었다는 것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코코니노 사암층 내의 사구에 나타나는 구체적인 특성인 매우 순수한 석영 사구는 물의 흐름에 의해서 만들어질 수 있다.23 거대한 해류는 사실상 매우 빠른 시간 내에  엄청난 양의 모래를 쌓을 수 있다. 사층리를 가진 사구들은 발자국들이 씻겨 없어져 버리기 전에 선명한 발자국을 쉽게 보존하면서, 매우 빨리 만들어질 수 있다.

또한 코코니노 사암층과 위에 있는 지층(Toroweap 층)이나 아래에 있는 지층(Hermit 층) 사이의 경계면에는 어떠한 현저한 침식도 없다는 것에 주목하기 바란다. 이 모든 지층들은 여러 장의 유리가 서로 서로 겹쳐져 있는 것처럼 평탄하고 매끄럽게 놓여져있다. 지층의 경계면들이 위에 놓여있는 지층들이 쌓이기 전까지 어떠한 풍화, 침식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는가? 만일 이 지층들이 장구한 기간 동안에 형성되지 않고, 물에 의해 빠르게 퇴적되었다면 이상할 것이 없다. 이러한 증거들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것은 어느 이론인가?

  .그랜드 캐년 도처에서 허밋 셰일(Hermit Shale) 지층은 표면으로부터 7m에 이르는 깊은 균열들을 가지고 있는데(위 그림의 녹색 별표), 이 균열들은 위에 놓여있는 코코니노 사암층의 모래로 채워져 있다. 어떻게 균열은 수백만 년 동안 채워지지 않다가, 후에 순수한 코코니노 사암으로 채워지게 되었는가?    

  

 

References

14. Baars, D.L., 1962. Permian System of the Colorado Plateau. American Association of Petroleum Geologists Bulletin, vol. 46, pp. 200~201.
15. Middleton, L.T., Elliott, D.K. andMorales, M., 1990. Coconino Sandstone. In: Grand Canyon Geology, S.S. Beus and M. Morales (eds), Oxford University Press, New York, and Museum of Northern Arizona Press, chapter 10, pp. 183~202.
16. Young, D.A., 1990. The discovery ofterrestrial history. In: Portraits of Creation, H.J. Van Till, R.E. Shaw, J.H. Stek and D.A. Young (eds), William B. Eerdmans, Grand Rapids, Michigan, chapter 3, pp. 80~81.
17. McKee, E.D., 1947. Experiments on the development of tracks in fine cross-bedded sand. Journal of Sedimentary Petrology, vol. 17, pp. 23~28.
18. Brand, L.R. and Tang, T., 1991. Fossil vertebrate footprints in the Coconino Sandstone (Permian) of northern Arizona: Evidence for underwater origin. Geology, vol. 19,pp. 1201~1204.
19. Monastersky, R., 1992. Wading newts may explain enigmatic tracks. Science News, vol. 141 (1), p. 5.
20. Geology Today, vol. 8(3), May-June 1992, pp, 78~79 (Wet tracks).
21. Visher, G.S., 1990. Exploration Stratigraphy, 2nd edition, Penn Well Publishing Co., Tulsa, Oklahoma, pp. 211~213.
22. Kuenen, P.H. and Perdok, W.G., 1962. Experimental abrasion-frosting and defrosting of quartz grains. Journal of Geology, vol. 70, pp. 648~658.
23. Amos, C.L. and King, E.L., 1984. Bedforms of the Canadian eastern seaboard: a comparison with global occurrences. Marine Geology, vol. 57, pp. 167~208.

  

* 그랜드 캐니언에 관한 자료들은 다음의 웹주소로 들어가 참조하세요.

New Creation Network, The Grand Canyon : Evidence in Support of Biblical Catastrophe

http://nwcreation.net/grandcanyon.html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naturalselection.0catch.com/Files/geologiccolumn.html

출처 - Revolution against Evolution, 2002. 4. 20.  창조지 제 136호 [2003. 4~6].

미디어위원회
2016-07-25

퇴적지층 사이의 ‘평탄한 간격’들은 

진화론적 장구한 지질연대 개념에 도전한다. 

(‘Flat gaps’ in sedimentary rock layers challenge long geologic ages)

Ariel A. Roth


    일반적으로 준정합(paraconformities)으로 알려진 '평탄한 간격(flat gaps)'은 수백 수천만 년에 해당하는 퇴적지층이 없는, 잃어버렸다고 말해지는 퇴적 층서 내의 접촉면이다. ‘평탄한 간격’은 현저하게 평탄하고, 간격의 위 아래 퇴적 지층들은 수평적으로 평행하게 놓여있으며, 얇은 두께를 가지면서, 광대한 지리적 범위에 걸쳐 확장되어 있다. 간격에 걸렸다는 수백 수천만 년 동안, 엄청난 깊이의 퇴적지층을 파낸 침식과, 매우 불규칙한 지표면의 형성이 예상된다. 그러나 침식의 증거는 찾아볼 수 없고, 그들의 경계면은 너무도 매끄럽게 평탄하게 이어져 있다. ‘평탄한 간격’은 지질주상도 상에서,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매우 흔하다. ‘평탄한 간격’들은 오래된 연대를 주장하는 동일과정설 패러다임 내에서 설명하기 매우 어렵고, 수억 수천만 년의 개념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되고 있는 문제이다. 반면에 ‘평탄한 간격’은 젊은 지구에 대한 강력한 증거를 제공하며, 성경적인 전 지구적 홍수 패러다임 내에서는 매우 쉽게 설명된다. ‘평탄한 간격’은 성경의 진실성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표준 지질학적 시간 틀은 지구의 지표면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퇴적지층의 나이에 수백만 년에서 수십억 년의 시간을 할당해놓았다. 그러나 이러한 퇴적지층 사이에는 수백 수천만 년 동안 퇴적물이 쌓이지 않았다는, 지층 순서에 빠진 부분으로 해석되는 미묘한 지평선들이 종종 존재한다. 이들 미묘한 간격들은 대부분의 지질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느리고 점진적인 퇴적 및 장구한 지질시대 개념과 심각하게 충돌하고 있다. 오히려, 그것들은 성경적인 전 지구적 홍수에서 예상되는 것과 같이, 퇴적지층이 매우 빠르게 형성되었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퇴적지층 내의 모든 간격들이 평탄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당수가 평탄하다. 이러한 광범위한 ‘평탄한 간격’은 장구한 지질시대에 대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예상되는 침식의 결여

침식의 과정은 이들 간격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하다. 침식의 특성은 매우 불규칙한 지형을 만든다는 것이다. 빗물에 의해 시내와 강이 흐르면서 고랑, 계곡, 협곡 등이 만들어진다.  매우 평탄한 경향이 있는 호주에도, 많은 지역에서, 많은 불규칙한 지형들을 가지고 있다. 침식은 대부분의 대륙에서 매우 불규칙한 지표면을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퇴적지층들 사이에 존재하는 간격들은 예상되는 불규칙한 침식의 모습이 없기 때문에, 추정되고 있는 장구한 지질시대에 문제가 되고 있다. 독자들은 이러한 흥미로운 특성에 대해 두 가지를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첫째, 국소적으로 그곳에 있어야만 하는 퇴적지층들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퇴적지층 사이에 주요한 간격들이 존재한다. 둘째, 그 간격 위와 아래에 놓여있는 지층들은 평행적이고(parallel) 평탄하다(flat). 그것이 우리가 평탄한 간격에 대해 말하고 있는 특성이다.

장구한 지질시대를 믿고 있는 지질학자들은 이러한 평탄한 간격을 준정합(paraconformities)이라고 부른다. 약간의 침식의 증거가 있다하더라도, 각 층들은 서로 여전히 평행하다. 지질학자들은 평행부정합(disconformity)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고, 때때로 nonsequence 라는 용어도 사용하지만, 그러한 용어들은 적절하지 못하다. 부정합(unconformity)이라는 용어가 이들 간격에 대해서 드물게 사용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 용어는 지층 기록에 있는 모든 종류의 간격들에 대한 총칭적인 용어이기 때문이다. 명심해야할 것은 퇴적지층의 모든 간격들이 평탄하지는 않지만, 상당수가 평탄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보편적인 평탄한 간격들은 장구한 지질시대에 대한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잃어버린 지층들

이들 간격에서는 다른 곳에서 발견되는 표준 지질주상도(geologic column) 상의 일부 지층들을 잃어버렸다. 예상되던 지층들과 화석들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지역에서 결코 퇴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림 1에서 오른쪽의 어두운 갈색 지층(”Distant layer...”로 설명되고 있는)은 그림의 중앙과 왼쪽에서는 잃어버린 것으로 나타난다. 지질학자들은 퇴적지층에 간격이 있는지, 어떤 부분을 잃어버렸는지를 결정하기 위해서, 지질주상도의 표준 화석과 지층 순서를 사용한다. 그들은 간격의 시간 길이를, 잃어버린 지층이 퇴적되는 데에 필요했다고 가정하는 시간의 길이와 동일한 기간으로 간주한다.

그림 1. ‘평탄한 간격’ 또는 준정합(paraconformity)을 보여주고 있는 퇴적지층의 단면도. 준정합은 그림 중간의 붉은 선이다. 오른쪽의 어두운 갈색 지층은(”Distant layer … ”로 설명되는) 그 윗 지층이 퇴적되기 전에 퇴적되었다. 동일과정설적 지질학자들은 갈색 지층이 퇴적되는 데에 매우 오랜 기간이 걸렸을 것으로 가정하고, 그 시간만큼의 기간이 간격의 위 아래 지층 사이에 있었다고 결정한다. 만약 갈색 지층의 퇴적에 2천만 년의 시간이 걸렸을 것으로 가정한다면, 그 간격은 2천만 년의 시간 차이를 나타낸다고 가정된다. 그 아래에 있는 불규칙한 녹색 선은 그러한 장구한 시간 동안에 예상되는 침식을 표시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불규칙적 침식면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간격에서 말해지는 잃어버린 사라진 시간은 수백만 년에서 수억 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 시간은 진화론적 지질주상도에 있는, 각 퇴적지층들의 느리고 점진적인 퇴적에 걸렸을 것으로 간주되고 있는 시간이다. ‘평탄한 간격‘은 식별하기가 꽤 어렵다. 왜냐하면 자주 간격을 가리키는 흔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때로는 선으로 보여질 수 있다. 오직 암석 형태의 순서와 다른 지역의 함유된 화석들을 주의 깊게 비교해보는 것으로만, 간격은 식별될 수 있다. 

 

침식은 불규칙한 표면을 만들어야만 한다.

이러한 ‘평탄한 간격’이 장구한 지질시대 개념에 심각하게 도전하는 것은 아래 놓여있는 지층 표면에 침식의 흔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림 1에서 불규칙한 녹색 선으로 그려진 바와 같이, 이들 간격에 수백 수천만 년의 시간이 흘렀다고 가정한다면, 불규칙한 침식면이 예상될 것이다. 따라서 간격은 평탄해서는 안 된다. 평균적 침식 속도에 의하면, 아래에 놓여있는 많은 또는 모든 지층들은 침식으로 사라졌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평탄한 간격’의 존재는 이들 간격에 할당해놓은 수백 수천만 년의 연대가 결코 흐르지 않았음을 가리키는 것이다.[1] 이들 평탄한 간격은 너무도 흔해서, 전체 지질학적 시간 틀의 유효성에 심각한 도전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 간격들에 어느 정도의 침식이 예상되는가? 침식 속도는 강이 바다로 매년 운반하는 퇴적물의 양을 측정하고, 그것을 강바닥의 크기와 비교해봄으로서 결정될 수 있다. 이것은 세계의 모든 주요 하천들에 대해 여러 번 수행되어 왔다. 십여 편의 지질학적 논문들에서 결론내린 평균적인 침식률(erosion rates)에 의하면, 대륙들은 천 년에 약 6cm의 속도로 침식되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2]

오늘날의 농업은 침식률을 2배 정도 증가시키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따라서 이전의 침식률은 천 년 당 3cm 정도가 될 것이다. 이것은 1백만 년에 3,000cm(=30m) 정도가 침식된다는 것이다. 이 속도는 느린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대륙들의 나이가 25억 년으로 추정되고 있기 때문에 (25억 년은 1백만 년의 2500배, 그러므로 75,000m), 이것은 바다 깊이보다 100배 이상의 지층들이 침식됐어야만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대륙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것은 대륙들이 그 연대보다 훨씬 젊다는 것을 가리킨다. 장구한 연대를 믿고 있는 지질학자들이 이 딜레마를 풀기위해 제안했던 것처럼, 아래로부터 대륙이 재건(renewal)되었다는 주장은 대륙과 산맥들의 존재에 대한 유효한 설명인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아주 오래된 연대로 주장되는(선캄브리아기 등의) 지층들이 아직도 대륙에 존재하고 있다. 이것은 지질주상도가 아직 한 번도 완전히 다 침식되지 않았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랜드 캐니언 근처의 사례

그림 2의 퇴적지층은 진화론적 표준 지질시대에 따라 표현된 지층 그림이다. (지층 두께와 시간은 관련을 보이는 경향이 있지만, 지층의 두께는 척도대로 반영되지는 않았다). 표준 지질시대의 시간은 두 번째 칸에서 백만 년(millions of years, Ma) 단위로 제시되어 있다. 존재하는 퇴적지층들의 추정 시간은 백색 지층의 두께로 표현되었다. 간격에서 잃어버린 것으로 가정되고 있는 시간의 길이는 회색 지층((백색 지층들 사이)의 두께로 표현되었다. 백색 지층들은 실제로 현장에서 서로의 꼭대기에 직접 놓여져 있는 여러 퇴적지층들을 나타낸다. 일반적으로 백색 지층의 꼭대기는 준정합의 아래 지층임을 나타낸다는 것을 주목하라.

그림 2. 표준 지질학적 시간 틀을 가정하여, 미국 유타주 동부에 있는 퇴적지층에 대한 수직 지질단면도. 추정되고 있는 연대는 백만 년(millions of years, Ma)의 단위로 두 번째 칸에 표시되어 있다. 백색 지층들은 실제로 그 지역에 존재하는 암석지층들이다. 지층들 사이에 본질적으로 평탄한 간격을 가지고 서로의 위에 놓여져 있다. 어두운 회색 지층은 간격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것들이 두터울수록 더 오랜 시간이 흘렀다고 가정되고 있다. 점선과 실선(적색과 녹색 화살표가 가리키는)은 그 지역의 불규칙하게 침식되고 있는 지표면을 나타내고 있다. 현재 지형의 불규칙한 표면과 과거 암석지층들의 평탄한 표면은 극적으로 대조된다. 그림은 133km에 걸친 지역을 나타내며, 전체 암석지층의 두께는 3.5km 이다. 그림은 수직적으로 약 14배가 과장되었다.[9]


그림 2는 가상적 그림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랜드 캐니언의 북동부에 놓여있는, 유타주의 133km에 걸친 지질단면도를 나타낸 그림이다. 그 그림에서 중첩되어 있는 점선과 실선은 그 지역에서 현재 침식되고 있는 표면(지형)의 두 사례이다. 점선은 주 고속도로를 따른 것으로 그 지역의 일부 평탄한 지형을 나타냈고, 실선은 더 남쪽에서 발견되는 지형이다.

현재 그 지역에서 매우 불규칙하게 침식되고 있는 지표면 지형과, 간격들 사이에서 보여지는 평탄한 패턴의 현저한 대조를 주목해 보라. 이러한 대조는 이러한 간격에 장구한 시간을 부여하는 지질학적 시간 틀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만약 회색 층의 두께가 정말로 수백 수천만 년의 시간 간격을 의미한다면, 백색 층의 모습은 매우 불규칙하게 발생되어 있어야만 한다. 그 모습은 그 지역의 현재 지형(실선과 점선)과 비슷해야만 한다. 백색 층은 너무도 평탄하기 때문에, 그것은 지질주상도에서 수백 수천만 년이 결코 흐르지 않았으며, 퇴적지층들은 가정되는 장구한 시간 간격 없이, 서로 서로 각 지층들 위에 빠르게 놓여졌음을 의미한다. 또한, 한 지역에서 지질학적 시간을 잃어버렸다면, 전 지구적으로도 그러한 시간은 잃어버린 것이 되는 것이다.

 

간격은 분명하지 않다.

때때로 준정합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아, 암석기록에서 그 위치를 찾아보기 어렵다. 유명한 고생물학자인 노먼 뉴웰(Norman Newell)은 말했다 :

”지층 단위의 경계에서, 그리고 다른 주요 층서학적 경계(다른 군집의 화석들이 나타나는 경계)에서 보여지는 한 수수께끼 같은 특성은 대기 중 노출에 대한 증거가 일반적으로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아래 놓여진 암석이 처트 석회암(cherty limestones)인 경우에도, 깊은 침출(용해), 침식, 수로화, 잔류 자갈 등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들 경계는 오직 고생물학적 (화석) 증거들에 의해서만 식별될 수 있는 준정합이다.”[3]   

준정합의 특성은 그림 3 ~ 그림11에서 제시된 평탄한 간격 사례들에서 볼 수 있다. 화살표는 간격을 가리키며, 추정되는 시간은 백만 년 단위(Ma)로 표시되어 있다. 설명글은 예상되는 침식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때때로 준정합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아, 암석기록에서 그 위치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림 3. 유타주 Dead Horse Point에서 바라본 콜로라도 강의 계곡. 화살표는 각각 1천만 년과, 2천만 년의 두 간격(준정합)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위 아래 지층은 어떠한 침식의 흔적도 없이 평탄하게 이어져 있다. 이러한 간격 기간 동안에 예상되는 침식 정도는 300m와 600m 정도이다. 이 협곡의 깊이는 600m 이다. 위쪽 화살표에서 트라이아스기 중기를 잃어버렸다. 반면에 아래쪽 화살표는 페름기 말의 일부를 잃어버렸다. 

그림 4. 그림 3에서 볼 수 있는 동일한 1천만 년 시간 간격을 또 다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간격은 유타주 허리케인(Hurricane) 근처 남서쪽으로 300km 이상에 걸쳐 존재한다. 또한 그림 3의 2천만 년의 시간 간격도 존재하지만, 지표면 조금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예를 들어, 그림 5의 그랜드 캐니언에서 아래쪽 화살표는 1억 년 이상의 시간 간격으로 가정되고 있다. 왜냐하면 진화론적 지질주상도에서 추정하고 있는 오르도비스기와 실루리아기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평균적 침식 속도에 의하면, 이 기간 동안에는 3km 깊이의 침식이 예상된다. 그러나 이 지역을 세밀하게 연구했던 지질학자 스탠리 베우스(Stanley Beus)는 이 간격의 접촉면과 위에 놓여있는 지층 형태에 대해서 이렇게 논평했다 : ”여기에서 부정합(즉, 간격 또는 준정합)은 1억 년 이상을 나타냄에도 불구하고, 식별하기가 어렵다.”[4]

그림 5. 애리조나의 그랜드 캐니언에 있는 3개의 지층 간격들. 그 간격들에서 예상되는 침식은 180m, 420m, 3,000m이다. 협곡은 약 1,600m 깊이이다. 아래쪽 간격에서는 오르도비스기와 실루리아기 전부와 더 많은 지층들을 잃어버렸다. 그러한 장구한 시간 간격에도 불구하고, 아래쪽 두 간격의 정확한 위치는 자주 찾아내기가 어렵다. 그러한 간격에도 불구하고, 위 아래 지층의 일반적으로 평행한 정렬은 침식이 거의 또는 전혀 일어나지 않았음을 가리킨다.

그림 5의 중간 화살표가 가리키는 1천4백만 년의 시간 간격에 대해서, 지질학자인 로널드 블래키(Ronald Blakey)는 말했다 : ”맥키(McKee’s)의 연구 의미와는 반대로, 마나카차 지층(Manakacha Formations)과 웨스코가미 지층(Wescogami Formations) 사이의 경계 위치는 먼 거리에서도 가까운 거리에서도 결정하기 어려울 수 있다.”[5] 

그림 6. 애리조나 북동부에서 발견되는 한 주요한 간격은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인 친리 지층(Chinle Formation)과 위에 놓여진 신생대 선신세(Pliocene)의 비다호키 지층(Bidahochi Formation) 사이에 존재한다. 이 간격은 쥐라기, 백악기 및 제3기의 대부분을 잃어버렸다. 간격은 화살표의 끝 부분에서 완만한 경사를 가진다. 준정합은 두 화살표의 끝 사이에 직선으로 놓여있다. 비다호키 지층은 아래에 놓여있는 친리 지층보다 약간 밝은 회색이다. 그 접촉면은 여기에서와 같이 항상 평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약간의 변형은 1억9천만 년 동안 예상되는 침식인 5,700m 깊이에 비교해볼 때 매우 미미하다.


또 다른 지질학자 반 안델(T.H. Van Andel)은 베네수엘라에 있는 퇴적지층의 간격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

”나는 나의 경력 초기에 베네수엘라에서 30cm 두께의 회색 점토층에 의해서 분리되어 있는, 연안 늪지에서 퇴적된 두 개의 얇은 석탄층을(팔레오세 초기와 시신세 말기) 확인하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 노두는 뛰어났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곳에서의 조사도 1천5백만 년의 간격을 나타내는 정확한 위치를 찾아내는 데에 실패했다.”[6]   

장구한 시간 간격이 존재한다는 그 어떠한 모습도 나타나있지 않다.


간격은 대륙의 상당 부분에 걸쳐 이어져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유념해야하는 것은, 이러한 간격들은 국소적로 일어나있는 지역적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 간격의 상당수는 준대륙(semi-continent)적으로, 광대한 지역에 걸쳐서 나있다는 것이다. 그 간격들은 자주 지리적으로 광범위하고, 매우 얇은(그들의 광대한 범위에 비해) 지층들 사이에 놓여있다. 퇴적지층들의 광대함은 대륙 위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퇴적 패턴을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다. 퇴적지층들의 상대적 얇은 두께와 확장되어 있는 측면의 연속성은 퇴적지층들이 그 지역에서 평탄하게 놓여져 있으며, 아래 지층에 침식이 결여되어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림 7. 유타주 북동쪽의 버널(Vernal) 시에서 바라본 전경. 백악기의 시더산 지층(Cedar Mountain Formation)이 화살표 위로 놓여 있다. 화살표 아래는 다중의 층으로 된 쥐라기 모리슨 지층(Morrison Formation)이다. 두 지층 사이의 간격은 2천만 년으로, 주로 백악기 초기의 시대를 잃어버렸다. 화살표 위의 언덕에 있는 밝은 비탈면은 백악기 다코타 지층(Dakota Formation)이다.

예를 들어, 그림 7과 그림 8에서 식별되는 백악기의 다코타 지층은 평균적으로 약 30m 두께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은 미국 서부의 800,000km2 이상으로 확장되어 있다. 과거의 지질학은 오늘날과는 극도로 매우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과거의 지질학은 창세기 홍수의 대격변적 사건에서 기대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다. 그 홍수를 지지하지 않는 한 지질학자는 썼다 :

”많은 경우에서 현재의 층서학적 기록(퇴적암)의 축적은 현대 환경에서는 관측되지 않는, 또는 관측될 수 없는 과정들을 포함하고 있다... 아마도 과학적으로 관측되지 않는, 아니 관측될 수 없는 엄청난 크기로 지구를 파괴시켜 버렸던... 극단적인 사건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7]   

그림 8. 4천만 년의 시간 간격을 나타내는, 그림 7과 동일한 간격이 여기에 존재한다. 백악기의 시더산 지층(Cedar Mountain Formation)이 여기에서도 잃어버렸다. 쥐라기의 모리슨 지층 위로 백악기의 다코타 지층이 직접 놓여져 있다. 화살표는 이 두 지층 사이를 가리킨다. 이곳은 뉴멕시코주 서부로, 그림 7의 동일한 간격이 위치하는 곳에서 남쪽으로 600km나 떨어진 곳이다. 다코타 지층과 모리슨 지층 사이의 이 간격 접촉면은 뉴멕시코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200km는 더 추적할 수 있다. 모리슨 지층의 윗부분은 얇은 다코타 지층을 맞이하기 위해서 4천만 년을 극도로 평탄한 채로 남아있어야만 했다. 다코타 지층은 모리슨 지층 위로 수천 평방 킬로미터로 확장되어 놓여있다. 4천만 년 동안 예상되는 평균 침식은 1200m 이다. 이것은 4천만 년이라는 연대가 매우 잘못되었음을 나타낸다. 

그림 9. 스위스 론(Rhone) 계곡에서 바라본 모클레스 나페(Morcles Nappe)의 전경. (나페 : 단층이나 습곡작용에 의해 원래의 자리에서 약 2㎞ 또는 그 이상 위치가 이동한 커다란 암체 또는 암상). 4500만 년(아마도 그 이상)의 간격이 화살표로부터 사진을 가로지르며 있는 약간 어두운 지층의 바닥에 존재한다. 여기에서 백악기 말의 많은 시간과 팔레오세(Paleocene)를 잃어버렸다. 모클레스 나페의 가로누운 습곡에 기인하여, 이 지역의 지층은 역순으로 놓여있지만, 접촉면은 여전히 평탄하다.


몇 가지 일반적인 질문

1. 지구에서 매우 평탄하게 퇴적작용이 일어났던 곳일 수 있지 않은가? 호수 바닥과 대양의 심해 평원과 같은 땅의 매우 평탄한 퇴적 지역이 있다. 하지만, 이들 두 장소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속적으로 퇴적물이 축적되는 장소이다. 거기에서 간격은 발생되지 않는다.

2. 침식 또는 퇴적이 일어나지 않았던 곳에 위치했던 것은 아닐까? 수백 수천만 년 동안 지구 표면에서 기상 현상(강우, 강설 등)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대륙의 표면이 수백 수천만 년 동안 침식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퇴적이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3. 침식이 평탄하게 일어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 개념은 한 세기 전(1899년)에 가정됐었는데, 데이비스(W. M. Davis)는 그러한 개념을 침식윤회(cycle of erosion, 지형윤회)라고 불렀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 이론은 거의 폐기됐는데, 대륙 표면에 평탄한 침식 사례가 현저하게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4. 이러한 간격들은 위에 놓여진 지층들에 의해서 일정 시간 보호될 수 있었을까?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위에 놓인 지층이 제거될 때, 아래 지층들이 매우 단단하지 않다면, 침식은 매우 불규칙한 지형을 남겼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들 간격들에서 해당되는 경우가 아니다.

그림 10. 호주 NSW, 클리프턴 시 북쪽의 시드니 분지(Sydney Basin) 내의 한 간격(평행부정합).[10] 지질도 정보의 평가에 기초하여, 이 간격은 약 600만 년으로[11], 검은 색의 불리석탄층(Bulli Coal seam) 바로 위로 매우 얇은 셰일 층이 가끔 발견된다. 이 간격의 특징은 광범위한 3m의 석탄층 바로 위에 그 층이 놓여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석탄층이 언제 어떻게 형성됐는지에 관한 질문들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6백만 년이라는 기간이면, 180m 이상의 부드러운 석탄층의 침식이 예상된다. 그러나 이 접촉면에는 아주 약간의 침식만이 보고되고 있다.

5. 이들 간격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른 풍화작용의 증거가 있는가? 대게 없다.[8] 풍화작용으로 보고되는 곳들의 모습은 풍화작용으로 해석되는 물질의 운송, 또는 위의 지층이 퇴적된 이후 발생한 변화(속성작용, diagenesis)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간격에 매우 오랜 시간을 가정한다면, 단지 풍화 정도가 아니라, 모는 것이 불규칙하게 침식되어 사라졌어야 한다.

6. 이들 간격에서 침식의 증거가 있는가? 그렇다. 때때로 약간 관측된다. 하지만, 간격들에 제안되고 있는 장구한 기간 동안의 예상되는 거대한 침식에 비하면 미미하다. 더군다나, 전 지구적 홍수 동안에, 일부 침식은 어떻게든 예상되는 것이다.

7. 침식 속도가 과거에는 느렸을 수 있지 않을까? 아마도 약간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의 일반적인 기상 패턴이 오늘날과 극적으로 달랐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화석기록에 풍부한 물의 공급을 필요로 했던 식물 및 동물 화석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침식률을 볼 때, 발견되는 평탄한 간격들이 보존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대륙들의 주요 지역에서 풍화작용이 완전히 없어야만 한다.

8. 이들 간격들이 물속에 있었다면, 침식으로부터 보호되지 않았을까? 아니다. 대륙붕의 침식과 같이 많은 침식들이, 얕은 바다와 깊은 바다 모두에서 물속 흐름에 의해서 발생한다.

그림 11. 미국 텍사스 북부의 팔로듀로 캐니언(Palo Duro Canyon)에는 ‘평탄한 간격’들이 노출되어 있다. 위쪽 화살표의 끝에는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트루질로 지층(Trujillo Formation) 바로 위에 신생대 플라이오세의 오갈랄라 지층(Ogallala Formation)이 놓여있다. 진화론적 시간 틀로 2억 년의 기간인, 쥐라기, 백악기, 팔레오세, 에오세, 올리고세, 마이오세를 잃어버렸다. 아래 화살표의 끝에는, 페름기의 쿼터마스터 지층(Quartermaster Formation) 바로 위에 트라이아스기 말기의 테코바스 지층(Tecovas Formation)이 놓여있다. 트라이아스기의 초기 및 중기의 1600만 년을 잃어버렸다. 표준 지질시대에 기초하여, 이러한 평탄한 간극들에는 평균적으로 6,000m 및 480m의 침식이 예상된다.


결론

준정합(Paraconformities), 또는 평탄한 간격(flat gaps)은 장구한 지질시대의 개념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매일, 매월, 매년, 기상 활동이 일어나는 지표면에서, 그리고 풍화작용, 지각 활동, 대륙 표류 등이 일어났다는 수백 수천만 년 동안, 퇴적 지층들에 침식이 일어났든지, 퇴적이 일어났든지, 하나는 일어났어야만 한다. 퇴적이 일어났었다면, 지층은 계속 만들어지고 있었으므로, 간격은 없다. 침식이 일어났었다면, 접촉면(아래 지층)은 평탄한 면이 아니라, 매우 불규칙하게 남아있어야 한다. 즉, 평탄한 간격은 그 간격에 시간이 거의 흐르지 않았음을 가리킨다.

평탄한 간격은 위 아래에 놓여있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광범위한(어떤 지층들은 대륙을 횡단하고 있다) 퇴적지층과 함께 수억 수천만 년의 진화론적 표준 지질시대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 간격에서 주장되는 장구한 시간 동안 예상되는 상당한 침식이 전혀 없다는 것은, 오래된 연대를 주장하는 동일과정설적 패러다임에서는 설명하기 매우 어렵다. 이에 반해, 성경에 기록된 전 지구적 홍수 패러다임으로 해석할 때, 이들 평탄한 간격은 쉽게 설명된다. 노아 홍수는 지구상 퇴적지층들의 대부분을 짧은 기간 내에 퇴적시켰다. 평탄한 간격들은 성경의 진실성을 강하게 지지해주는 과학적 데이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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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rther Rea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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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1.For further discussion see: Roth, A.A., Those gaps in the sedimentary layers, Origins 15:75–92, 1988. For a briefer version see: Roth, A.A., Implications of paraconformities, Geoscience Reports No. 36:1–5, 2003. These references can be accessed through grisda.org. The topic is also discussed on pages 222–229 of Roth, A.A., Origins: Linking Science and Scripture, Review and Herald Publishing Association, Hagerstown, MD, 1988. For a historic note see: Roth, A.A., Science Discovers God: Seven Convincing Lines of Evidence for His Existence, Autumn House Publishing, Hagerstown, MD, pp. 150–151, 2008.
2.For references, a summary, and calculations see: Roth, A.A., Origins: Linking Science and Scripture, Review and Herald Publishing Association, Hagerstown, MD, pp. 263–267, 272–273, 1998.
3.Newell, N.D., Mass extinction: unique or recurrent causes? in: Berggren, W.A., Van Couvering, J.A., (Eds.), Catastrophes and Earth History: The New Uniformitarianism, Princeton University Press, Princeton, NJ, pp. 115–127, 1984.
4.Beus, S.S., Temple Butte Formation; in: Beus, S.S. and Morales, M., (Eds.), Grand Canyon Geology, Oxford University Press, Oxford, England, pp. 107–117, 1990.
5.Blakey, R.S., Supai Group and Hermit Formations; in: Beus, S.S. and Morales, M., (Eds.), Grand Canyon Geology, Oxford University Press, Oxford, England, pp. 147–182, 1990.
6.Van Andel, T.H., Consider the incompleteness of the geologic record, Nature 294:397–398, 1981.
7.Brett, C.L., A slice of the 'Layer Cake”: the paradox of 'Frosting Continuity”, Palaios 15:495–498, 2000.
8.Newell, ref. 3, pp. 115–127, 1984.
9.Based on: Bennison, A.P., Geological highway map of the Southern Rocky Mountain region: Utah, Colorado, Arizona, New Mexico, Revised edition, U.S Geological Highway Map No. 2, Tulsa, OK; American Association of Petroleum Geologists, Tulsa, OK, 1990; Billingsley, G.H. and Breed, W.J., Geologic Cross Section from Cedar Breaks National Monument through Bryce Canyon National Park to Escalante, Capitol Reef National Park, and Canyonlands National Park, Utah, Capitol Reef Natural History Association, Torrey, UT, 1980; Molenar, C.M., Correlation chart; in: Fassett, J.E., (Ed.), Canyonlands Country: A Guidebook of the Four Corners Geological Society Eighth Field Conference, Four Corners Geological Society, USA, p. 4, 1975.
10.Herbert, C. and Helby, R., (Eds.), A Guide to the Sydney Basin, Department of Mineral Resources, Geological Survey of New South Wales Bulletin No. 26, p 511, 1980.
11.Pogson, D.J., Geological Map of New South Wales, 1:1,000,000, Geological Survey of New South Wales, Sydney, 1972.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ation.com/flat-gaps

출처 - Journal of Creation 23(2):76–81, August 2009

구분 - 5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422

참고 : 549|552|4607|616|6222|6030|5266|4610|4473|6240|6223|6076|6175|4198|3948|3044|6417|6415|4490|4722|4786|4805|5185|5260|5264|5286|5307|5399|5400|5419|5429|5468|5517|5527|5556|5675|5717|5721|5737|5834|5841|5897|5898|5951|5955|5958|5957|5973|6006|6049|6097|6104|6123|6130|6136|6170|6215|6225|6228|6254|6255|6311|6316|6330|6413|6422|6431|6453|6462|6469|6485|6507|6508|6523|6524|6531|6535|6542|6543|6545|6547|6551|6552|6558|6559|6563|6566|6638|6645

미디어위원회
2016-06-01

찰스 라이엘의 숨겨진 행동 강령

 - '모세로부터' 자유로운 과학을 위해

 (Charles Lyell’s hidden agenda—to free science ‘from Moses’)

David Catchpoole 


     19세기 지질학자이자 변호사였던 찰스 라이엘(1797~1875)은 전 세계의 지질학이 오래된 지구 나이(성경 역사의 6000년 기간 보다 훨씬 더 오래된) 개념을 받아들이도록 인도했고, 찰스 다윈의 진화론적 생각을 견인하고, 그 길을 닦은 것으로 유명하다.


.찰스 라이엘의 ‘지질학의 원리(Principles of Geology)’ 속표지 (1830년).


그렇지만, 찰스 라이엘은 정말 과학적으로 객관적인 관점에서 그 지층 암석들을 관찰했던 것일까?

그의 개인 서신에서, 찰스 라이엘은 자기 생각의 강력한 반-성경적(반-모세적) 본질을 인정하고 있었다. 1829년 그의 책 ‘지질학의 원리(Principles of Geology)’의 초판이 출간되기 단지 몇 달 전에, 동료인 오래된 지구 연대를 믿고 있는 지질학자 로더릭 머치슨(Roderick Murchison)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쓰고 있었다 :

”나는 지질학의 진보에 대한 나의 생각이 대중화될 것이란 걸 믿고 있다네. 늙은 플레밍(존 플레밍 목사)은 두려워했고, (지구의) 나이는 나의 반-모세적 결론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네. 적어도 그 주제는 성직자에게 인기가 없고 불편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두렵지 않다네.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할 것이지만, 가능한 회유적인 방법으로 할 것이라네.” [1]

에드워드 베일리(Edward Bailey)가 쓴 찰스 라이엘의 자서전은 그 당시에 그것을 기록하고 있었다. ”파리에서 며칠 동안, 라이엘은 ‘홍적층과 (석회) 동굴에 대하여, 엉터리 대홍수 이론에 대한 논리적 비판’이라는 강의를 즐기고 있었다.”[2]

1831년 25살의 영국 청년 찰스 다윈은 비글호로 타고 5년 간의 세계 항해를 떠난다. 긴 항해의 여정 동안 찰스 다윈이 즐겨 읽었던 책은 찰스 라이엘의 '지질학의 원리’였다. 지질학에 대한 찰스 라이엘의 개념은 찰스 다윈에게 장구한 지구 연대를 확신하도록 영향을 주었고, 그의 진화론이 탄생하도록 하는 길을 닦았다. (Image from ‘Voyage that Shook the World’)


다음 해에, 찰스 라이엘은 명백한 행동 강령을 가지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그의 의도는 ”모세로부터 자유로운 과학”이었다.[3] 이것은 라이엘이 1830년 6월 14일에 조지 스크로프(George Poulett Scrope, 1797~1876)에게 쓴 편지에서 드러나 있다 :

”나는 자네가 모세로부터 과학을 자유롭게 할 Q.R.(Quarterly Review) 지에 들어오리라 확신한다네. 교회는 이것을 심각하게 여기고 있고, 상당한 준비를 하고 있다네. 버클랜드(Buckland) 주교는(우리는 섬너(Sumner) 주교로 추정) ‘British Critic and Theological Review’ 지에서 꾸지람을 주고 있었지. 그들은 마침내 모세의 체계 하에서 발생한 혼란과 치욕을 보았을 것이네. 아마도 시작(beginning)이 있었고 - 그것은 형이상학적이며 신학자에게는 가치 있는 질문이지 - 아마도 끝이 있겠지. 당신이 말한 것처럼, 종들(species)은 시작되었고 끝이 있었지. 그렇지만 그 비유는 약하고 동떨어져 있네. 아마도 그것은 하나의 비유겠지. 그러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허튼(James Hutton)이 말했듯이, ‘시작의 흔적도 없고, 끝의 전망도 없다’는 것일세... 내가 요구하는 것은, 나에게 나타난 것처럼 ‘자연의 또 다른 상태‘가 모두 하나였던, 시작(태초)으로 말해지고 있는 과거의 어떤 주어진 시기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지. 그러나 나에 대한 자네의 공격이 시작에 대한 가능성이 아니라, 내가 부정하는 증거를 지적하는 것이라면, 나에게는 해롭지가 않다네. 나는 자네가 Q.R.에서 할 수 있었던 만큼, 모세에 관한 도덕적 판단을 지적하는 것이 두려웠네. 아마도 나는 코란에 대해 관대한 사람이었나 보네. 그것에 대해 많은 간섭을 하지 말아주길 바라네.

(역사를 통해) 일어날 지도 모르는 일이 두렵지만, 우리를 자극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전할 것이네. 만약 자네가 그것에 대해 승리하지 못하고, 현재의 나이에 대한 관대함과 솔직함을 지지해준다면, 주교들과 계몽된 성도들은 고대와 현대의 자연 신학자들 모두를 경멸하는 일에 우리와 함께 할 것일세. 자네와 같은 죄인이 기뻐할 동맹파업(strike)을 일으킬 시기가 된 것이지. Q.R.은 자네에게 열려있네.”  

추신… ”나는 5~6년 전(1824–25)에 그 개념을 생각했다네. 모세의 지질학이 끌어내려질 수 있다면, 그것(성경)은 역사적인 스케치가 될 것이고, 자네는 나의 생각을 훔쳐야만 할 것이네. 그들에게 그것을 살펴보게 하고, 도덕적 판단을 해보라고 하게.” [4]

변호사였던 라이엘은 과학적 조사를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의 동일과정설(균일설)이 성경의 가르침과 명백히 모순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교회에서 수용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정치적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던 것이다.[5] 오늘날의 지질학자들이 인식하고 있듯이, 라이엘의 비밀스러운 계획은 복음을 훼손하고 있는 그의 잘못된 생각이 교회내로 수용되도록 기만했을 뿐만 아니라, 지질학이 한 세기 이상의 기간 동안 잘못된 경로로 나아가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

”또한 라이엘은 지질학에 가짜 약(snake oil)을 팔았다. 그는 지질학자들을 설득했다 … 모든 과거의 지질학적 과정들이 본질적으로 현재의 (느린) 속도로(역사적 시간 내에서 관찰된 속도로) 작용했다는 것이었다. 이 극단적인 점진주의(extreme gradualism)는 점진적이지 않음을 가리키는 수많은 긍정적 증거들을 가지고 있는, 급작스럽거나 대격변적이었던 사건들을 거부하는 것을 포함하여, 수많은 불행한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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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1. From Mortenson, T., The Great Turning Point: The Church’s Catastrophic Mistake on Geology—Before Darwin, Master Books, Inc., P.O. Box 726, Green Forest, AR 72638, USA, 2004, pp. 225–226, citing Brooke, J., 'The Natural Theology of the Geologists: Some Theological Strata”, in Jordanova, L. and Porter, R., Images of the Earth (British Society for the History of Science, Monograph 1, 1979), p. 45.
2. Bailey, E., British men of science: Charles Lyell, Thomas Nelson and Sons Ltd, London, Great Britain, 1962 p. 75.
3. Ref. 2, pp. 77–78. Bailey adds re Lyell: 'In this matter, he thinks, ‘Prévost has done a little but is a diluvialist, a rare thing in France’.” Diluvium was the term used for the surface sediments attributed at the time to Noah’s Flood but later recognized as being formed by glaciers during the Ice Age.
4. From Mortenson, T., The Great Turning Point: The Church’s Catastrophic Mistake on Geology—Before Darwin, Master Books, Inc., P.O. Box 726, Green Forest, AR 72638, USA, 2004, pp. 226–227, citing Lyell, Katherine (Lyell’s sister-in-law), Life, Letters and Journals of Sir Charles Lyell, Bart. (London: Murray, 1881), I:p. 268–271.
5. Lyell further promulgated his uniformitarian views in a lecture at King’s College, London, on 4 May 1932, when he said 'the physical part of Geological inquiry ought to be conducted as if the Scriptures were not in existence”. Lecture II at King’s College London on 4 May 1832—quoted in Rudwick, Martin J.S., Charles Lyell Speaks in the Lecture Theatre, The British Journal for the History of Science 9(2):147–155, 1976, DOI:10.1017/S0007087400014734. Such a view might be reasonable if the Bible did not describe any events relating to the formation of rocks on earth. But the Bible does speak of such events, i.e. Creation Week and the Flood. Thus Lyell’s approach is like trying to write a history of British settlement in Australia in the 1700s by merely studying surviving buildings and other remnant artifacts around Sydney but intentionally ignoring written eyewitness testimony from that time. Or like writing about the life of Jesus on earth without reference to the Gospels of Matthew, Mark, Luke and John.
6. Allmon, W.D. Post Gradualism, Science 262:122–123, October 1, 1993. Warren Allmon, Director of the Paleontological Research Institution in Ithaca, NY, and Adjunct Associate Professor of Earth and Atmospheric Sciences at Cornell University, was reviewing Ager, D., The New Catastrophism: The Importance of the Rare Event in Geological History, Cambridge University Press, New York, 1993.


*참조 : Darwin, Lyell and Origin of Species
http://creation.com/darwin-and-lyell

St Hutton’s Hagiography
http://creation.com/st-huttons-hagiography

Niagara Falls and the Bible
http://creation.com/niagara-falls-and-the-bible


번역 - 도은철

링크 - http://creation.com/charles-lyell-free-science-from-moses

출처 - Creation. 2009. 8. 19.

미디어위원회
2016-02-12

찰스 라이엘 : 역사를 고쳐 쓰려고 했던 사람

(Charles Lyell: the man who tried to rewrite history)

Russell Grigg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 1797-1875)은 <지질학 원리, Principles of Geology>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다.[1] 다윈은 그 유명한 HMS 비글호(His Majesty’s Service Beagle) 여행 기간에 <지질학 원리> 세 권 중에 첫 두 권을 읽었다. 다윈은 이때 장구한 지질학적 연대를 믿게 되었으며, 자신의 진화론이 작동하는데 필요한 오랜 시간을 확보하게 되었다.


찰스 라이엘은 ‘과학을 모세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한 지질학 체계(동일과정설)를 고안했다.


교육

찰스 라이엘은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으며, 열 명의 자녀 중 첫째 였다. 그는 사립학교와 옥스퍼드 대학교를 다녔으며, 1819년에 학사 학위를, 1821년에 석사 학위를 받았다. 찰스 라이엘은 윌리엄 버클랜드(1784~1856)의 지질학 강의를 들었으며, 또 그와 함께 스코틀랜드에서 지질학 탐사도 했다. 라이엘은 후에 유럽에서 지질학과 화석수집 활동을 계속했다.[2]   

라이엘의 목적은 과학을 모세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라이엘은 법학을 공부했으며, 1825년에 법정변호사에 임명되었지만[3], 시력이 약하여 어려움을 겪었고, 1827년에는 법조인의 삶을 포기하고, 지질학에 몰두했다. 라이엘은 1831년부터 1833년까지 런던에 있는 킹스 칼리지(King’s College)에서 지질학 교수로 있었다.


19세기의 지질학

19세기 초의 지질학에는 두 주류 학파가 있었다. 선도적 지질학자들은 격변론자(catastrophists)들이었는데, 말하자면 그들은 지질학은 격변의 결과로 가장 잘 설명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들 중 다수는 오랜 시간과 다중격변(multiple catastrophes)을 믿는 격변론자들이었지만, 창세기에 기록된 것처럼 노아 홍수가 전 세계적이었으며, 가장 중요한 격변적 사건이었음을 믿는 성경적 지질학자들도 많았다. 

이와 다른 견해는, 지질학의 모든 것들은 현재 지구상에서 작동 중인 과정의 결과일 뿐이라는 것이었다.[4] 이러한 믿음은 성경을 거부하며, 따라서 모세가 기록한 창세기의 창조와 노아 홍수의 중요성을 거부한다. 이러한 견해의 주창자들은 은밀한 무신론자(無神論者)들이거나, 자연신론자(自然神論者)들이었데, 그들은 이 땅에 원인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 원인을 성경의 하나님께 돌리려고 하지 않았다. 찰스 라이엘은 그와 같은 자연신론자였다. 라이엘은 자신의 <지질학 원리>에서 ”통찰력과 지혜와 권능”을 가진 ”창조의 신(神)”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이 ”무한하고 영원한 존재”[5]가 실제로 인간과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은 부정했다.   

라이엘은 반대 증거를 제시함으로써가 아니라, 어떤 격변적 사건이라도 연구조사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로 지구 역사상의 격변적 사건들을 반대했다.[6] 그러나 똑 같은 연구조사의 어려움은 라이엘이 주장하는 조용한 과거에도 적용해야했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확증하는데 필요한 것은 목격자의 증언이다. 그러나 라이엘은 모세가 기록한 창세기의 노아 홍수에 대한 증언을 수용하기를 거부했다.

찰스 다윈은 비글호 여행 기간 동안에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를 읽고, 자신의 진화론이 작동되는데 필요한 오랜 시간을 확보했다.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

라이엘이 쓴 세 권의 책(1830-33)의 목적은 ”과학을 모세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었다.[7] 다시 말하자면, 지질학을 창세기의 시간 틀로부터 해방시킴으로써, 성경의 초기 역사를 제거하려는 것이었다. 라이엘은 Quarterly Review 지에 실렸던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 1권에 대한 논평을 준비하고 있던, 그의 친구이며, 지질학자이며, 동료 자연주의자인 조지 스크로프(George Poulett Scrope, 1797-1876)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속셈을 다음과 같이 드러내고 있었다. (※ 역자 주: Quarterly Review는 1809년 3월에 시작하여 1967년에 폐간된 정기 간행물이다.) :  

”나는 당신이 '과학을 모세로부터 해방시켜 줄 이 논문'을 Q.R. 지에 실어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나는 5~6년 전에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공격을 가함 없이 모세의 지질학이 폐기될 수 있다면, 그것(창세기)은 역사적 스케치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당신은 나의 논문을 요약 게재해주어야만 합니다”[8]

그리고 라이엘은 또 말하기를, ”나는 사람들이 역사 기록으로부터 이론을 만들어내지 않기를 바랍니다.”[8] 말하자면,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는 창조 역사와 하나님의 초자연적 권능과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증거인 노아 홍수로부터 어떤 이론도 만들어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질학 원리>의 부제는 ”현재 작동하는 현상을 참조하여 과거에 일어난 지구 표면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한 시도”였으며, 1832년에 윌리엄 휴얼(William Whewell, 1794~1866)에 의해 ‘동일과정설’(uniformitarianism)이란 단어로 축약되어, 지질학 용어로 정착되었다.

스크로프에게 쓴 편지를 통하여, 라이엘은 성경의 권위와 기독교 신앙에 대한 (자신의) 공격을 반대할 것 같은 사람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말로 경멸감을 드러내었다.[8] ”당신이 그들을 이기지 못하고, 현 세대의 관용과 공정성을 핑계로 타협한다면, 주교들과 진보적 성도들이 우리와 합세하여 고대와 현대의 자연신학자들을 경멸하게 될 것입니다.”[9]   


스티븐 굴드의 평가

작고한 하버드 대학의 지질학 교수였으며 진화 고생물학자였던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 1941~2002)는 이렇게 썼다. ”라이엘의 탁월한 업적은, 흔히 말하듯이, 주요한 모든 지식을 체계적으로 요약한 교과서가 아니라, 훌륭하게 짜 맞춘 하나의 주장[동일과정설]을 표현하는 인상적이고 간결한 글귀로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는 것이다 … 진실은 논리적 주장과 풍부한 문서들에 의해 전파되는 것이지, 수사적인 화술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10]

굴드는 말했다 : ”찰스 라이엘은 직업적 변호사였으며 … [그리고 그는] 자신의 동일과정 견해를 유일하고 진실한 지질학으로 확립하는데 두 가지 작전을 사용하였다. 우선 그는 허물어 버릴 허수아비를 만들었다… 사실, 격변론자들은 라이엘보다 훨씬 더 경험적이었다. 지질기록은 격변론을 필요로 하는 것 같은데, 그 이유는 지층암석들은 부서지고 뒤틀려 있으며, 전체 생물상(faunas)이 파괴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명백해 보이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라이엘은 창의적 상상력으로 증거를 보강하였다.”[11]              

굴드는 이렇게 요약했다 : ”라이엘은 사실(truth) 탐구와 현장연구(fieldwork)의 백마를 탄 기사는 아니었지만, 시간 순환의 지속적 상태(steady state of time’s cycle)에 뿌리를 둔 매력적이고 특별한 이론의 전파자였다. 그는 수사적(修辭的)으로 이 현실적 이론을 합리적이 되게 하려고 노력했다.”[12] 그리고 ”역사적으로 아이러니하게도 라이엘이 승리했다는 것이다. 그의 행적은 지질학계의 공식적 영웅전(英雄傳)이 될 정도였으며, 오늘날까지 교과서를 통하여 전파되고 있다. 물론 전문 역사학자들은 더 자세하게 알고 있지만, 정작 이러한 단순하고 영웅적 이야기를 열망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장 지질학자들은 거의 알지 못하고 있다.”[13]


라이엘과 다윈

다윈은 라이엘의 잘못된 가정인 오래된 지구에 근거하여 자신의 진화론을 만들었다.

다윈은 비글호에서 라이엘의 첫 두 권의 책을 읽었다. 그 결과 다윈은 라이엘의 잘못된 가정인 오래된 지구에 근거하여 자신의 진화론을 만들었다.[14] 1836년 9월 다윈이 영국으로 돌아 왔을 때, 주로 찰스 라이엘을 통하여 당시의 유명한 과학자들을 소개받았다.   

1858년 다윈이 자신의 이론과 유사한 적자생존 이론을 설명하는 편지를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 1823~1913)에게서 받은 후[15], 1858년 7월 1일 린네 학회[16]에서 아직 출판하지 않은 다윈의 1844년 논문의 요약문과 1857년의 다윈이 미국 식물학자 아사 그레이(1810-1888)에게 보냈던 요약문과 함께 이 편지를 발표하도록 제안했던 사람이 라이엘이었다. 라이엘은 다윈의 것을 먼저 발표하고, 다음에 후커, 그리고 월리스의 것을 발표했다. 

이 발표는 설득력 없는 년도 순과 알파벳 순으로 발표됐는데, 다윈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라이엘은 1875년에 사망했고,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에 묻혔다. 7년 후에 라이엘의 친구이자, 같이 성경을 부인했던 사람인 찰스 다윈이 뒤를 따랐다. 



나이아가라 폭포

1841년 찰스 라이엘은 나이아가라 폭포를 방문했다. 최초 정착민들은 나이아가라 폭포가 자신들이 살았던 40년 동안에, 1년에 약 1야드(91.44cm)씩 뒤로 후퇴하는 것을 관측해왔다. 이 속도에 의하면, 전체 협곡의 침식은 1만 년 이내에 일어났을 것이다.[1] 이 연대는 창세기를 부정하는 라이엘의 세계관에 비추어 보면 너무 짧았다. 그래서 미국에서 출판된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 9판에서 라이엘은 (후퇴 속도와 관련하여) 1년에 1피트(30.5cm)가 훨씬 더 신빙성이 있는 추측(conjecture)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퀸스타운의 절벽으로부터 현재 장소까지 폭포가 후퇴하는 데, 35,000년이 필요했을 것이었다.[2]

이것은 라이엘에게 책임이 있는 위선적인 행동이었다. 왜냐하면 현재 작동 중인 1년에 1야드의 침식속도를 사용하지 않고, 과거에 다른 속도를 적용한 것은 (자신의) 동일과정설을 자신이 부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폭포의 첫 거주자가 40년 동안 목격한 증거를 반박하는 아무런 증거도 제시함 없이, 라이엘은 오만하게도, ”폭포 지역을 구성하고 있는 것과 같은 무르고 침식에 취약한 물질이 아니라, 전에는 단단한 암석층이 소용돌이 바로 아래 어딘가에 있었을 것이다. 그 단단한 암석층에 의해 폭포 절벽의 침식에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고 선언했다.[2] 

.7마일(11.3km) 길이의 나이아가라 폭포는 지난 3,800년 이상에 걸쳐 아메리칸 폭포(American Falls, 왼쪽)와 호스슈 폭포(Horseshoe Falls, 오른쪽)의 물에 의해 침식되었다. 

어딘가에 침식에 저항하는 단단한 장애물이 있었다는 가정이 왜 항상 필요했는가? 오로지 성경 연대기와 역사를 훼손하려는 목적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사실, 라이엘의 속임수에 불과한 35,000년이라는 연대는 지질학 문헌에서 오래 전에 폐기되기는 했지만, 애석하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실족시켰고, 창세기 연대기의 신빙성을 의심하게 만든 후에 폐기되었다. 노아 홍수에 의한 영향들, 즉 엄청난 량의 물과 퇴적부하, 그리고 홍수 후 빙하기의 얼음과 얼음이 녹은 물들에 의한 침식 등을 고려한다면, 나이아가라 폭포의 연대는 약 3,800년 전쯤 얼음덮개가 퇴조했을 때의 기간으로 줄어든다.[3]


References
1.With the strong possibility that the rate was more rapid in the past when the gorge was narrower, and hence the water-flow rate greater.
2.Lyell, C., Ref. 1, 9th Ed., Little, Brown & Co., Boston, USA, 1853, p.214–218. Note: Queenstown is now called Queenston.
3.See Pierce, L., Niagara Falls and the Bible,Creation 22(4):8–13, 2000; creation.com/niagara.



Related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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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 Lyell’s hidden agenda—to free science 'from Moses”
Darwin, Lyell and Origin of Species
Calvin said: Genesis means what it says


References and Notes
1.Lyell, C., Principles of Geology, Editions 1–8 & 10–12, John Murray, London, 1830 to 1875; 9th Edition, Little, Brown & Co., Boston, USA, 1853.
2.One of these, along the Rhine and across Switzerland, was on an extended honeymoon following his marriage to Mary Honer on 12 July 1832. They had no children. (Encyclopaedia Britannica).
3.In Britain, a lawyer who has the right to argue in higher courts of law.
4.James Hutton (1726–1797), who declared there to be 'No vestige of a beginning,—no prospect of an end” in the earth’s geology was then chief proponent. See Grigg, R., James Hutton: the man who warped time, Creation 36(3):20–23, 2014; creation.com/james-hutton. See also the more technical Reed, J., St Hutton’s Hagiography, J. Creation 22(2):121–127, 2008; creation.com/st-huttons-hagiography.
5.Lyell, C., Ref. 1, 1st Ed., Vol. III, pp. 384–85.
6.Gould, S.J.,Time’s Arrow, Time’s Cycle, Harvard University Press, 1987, p. 124.
7.Catchpoole, D., and Walker, T., Charles Lyell’s hidden agenda—to free science 'from Moses”. creation.com/lyell, 19 August 2009.
8.Letter of Charles Lyell to George Poulett Scrope, June 14, 1830, Life, Letters and Journals of Sir Charles Lyell, Edited by his Sister-in-law, Mrs Lyell, John Murray, 1881, Vol. I, pp. 268–71.
9.I.e. those who claim evidence for the existence of God from things seen in nature (such as purpose and design).
10.Gould, S.J., Ref. 6, pp. 104–105, 107.
11.Gould, S.J., Catastrophes and steady state earth, Natural History, 84(2):15–16.
12.Gould, S.J., Ref. 6, p. 115.
13.Gould, S.J., Ref. 6, pp. 111–112.
14.Lyell also believed that a ‘creative force’ had made species in their present form in their current location. This was contrary to the biblical view of dispersion and variation after the Ark landed in the mountains of Ararat. Such antagonism to Genesis would have encouraged Darwin in his rejection of Genesis.
15.See Grigg, R., Alfred Russel Wallace: ‘co-inventor’ of Darwinism, Creation 27(4):33–35, 2005, creation.com/alfred-wallace.
16.Note: named after the ‘father of taxonomy’, Carl von Linné (1707–1778) aka Linnaeus.

 

번역 - 홍기범

링크 - http://creation.com/charles-lyell 

출처 - Creation 36(4):36–39, October 2014.


미디어위원회
2016-01-27

영국 해안 절벽의 일부 붕괴가 가리키고 있는 것은? 

: 빠른 침식률은 창조모델을 지지한다. 

(Rapid Erosion Supports Creation Model)

by Frank Sherwin


      최근에 영국 도싯(Dorset)에서, 악천후로 인해 해안 절벽의 거대한 부분이 바다로 무너져 내렸고, 많은 암모나이트(ammonite) 화석들을 노출시켰다.[1, 2] 창조과학자들은 이 절벽의 붕괴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상당한 침식이 말 그대로 몇 초 만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절벽의 침식은 수천 수백만 년에 걸쳐 조금씩 점진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도싯에서 절벽의 붕괴는 빠르고 대대적인 침식에 대한 최근의 유일한 사례가 아니다. 동일과정설적 지질학자들은 탄산칼슘으로 이루어진 도버(Dover)의 유명한 백색절벽(White Cliffs)은 6500만~1억4천만 년 전 사이의 기간 동안에 형성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매 십년 마다 상당한 균열의 증거들이 보고되고 있으며, 관광객들은 절벽 가장자리로부터 상당한 거리까지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들이 취해지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방문자들이 절벽이 붕괴될 때 같이 떨어져 내릴 것이다. 2001년에 거대한 암석덩어리가 영국해협으로 떨어져내렸고, 2012년에도 또 다른 거대한 부분이 떨어져나갔다. 동일과정설 지질학자들은 절벽 침식률을 매년 0.39인치(1cm)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침식률은 이것보다 훨씬 컸으며, 짧은 시간 내에 격변적 침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격변적 침식 속도라면, 도버의 백색절벽은 1백만 년 보다 훨씬 이전에 사라져버릴 것이다.


2015년 7월에는 캘리포니아의 요세미티 국립공원(Yosemite National Park)의 하프 돔(Half Dome)의 수직면으로부터 대략 800평방피트 크기의 거대한 화강암 조각(약 2,400톤)이 떨어져내렸다.[3] 지질학자들은 요세미티 계곡에서 이러한 암석 붕괴가 1년에 한 번 정도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분명히 상당한 연간 침식 속도이다. 이러한 연간 침식 속도가 '정상적'이라면, 1백만 년 후의 하프돔의 운명은 무엇일까?


최근 ScienceDaily 지의 한 헤드라인은 이렇게 보도하고 있었다. ”기후는 산들을 재형성되는 것보다 더 빠르게 분쇄시킬 수 있다.”[4] 이것으로부터 생겨나는 과학적 질문은 이것이다 : ”만약 지구의 나이가 수십억 년이라면, 왜 아직도 산과 절벽을 볼 수 있는 것인가?” 앞에서 기술한 그러한 급격한 변화는, 짧은 시간 내에 현저한 지질학적 과정들이 일어날 수 있음을 가리키며, 이것은 성경의 격변적 모델을 지지하는 것이다.



References

1.Ward, V. Fossil hunters flock to Jurassic coast after cliff fall. The Telegraph. Posted on telegraph.co.uk December 29, 2015, accessed January 5, 2016.
2.Sherwin, F. 2004. Ammonite Evolution? Acts & Facts. 33 (12).
3.Massive rock falls off Half Dome in Yosemite. Yosemite News. Posted on myyosemitepark.com July 5, 2015, accessed January 5, 2016.
4.University of Florida. Climate can grind mountains faster than they can be rebuilt. ScienceDaily. Posted on sciencedaily.com November 30, 2015, accessed January 15, 2016.

*Mr. Sherwin is Research Associate, Senior Lecturer, and Science Writer at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관련기사 : 영국 '쥐라기해안'에 화석사냥 인파…절벽 붕괴로 화석 드러나 (2015. 12. 30. 연합뉴스)

요세미티, 하프 돔 바위 절벽 일부 붕괴 (2015. 7. 8. 재경일보)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9164 

출처 - ICR News, 2016. 1. 25.


미디어위원회
2016-01-13

한 전문 지질학자의 간증 

(Testimony of a professional geologist)

by Roger Sigler


     성장하면서, 나는 암석과 화석, 그리고 공룡에 대해 흥미가 있었다. 나는 하나님의 존재와 그 분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는데 한번도 어려움이 없었다.

내가 처음으로 공룡 티라노사우르스 렉스(Tyrannosaurus rex) 장난감을 조립했을 때를 기억한다. 그 공룡뼈를 다 조립하고 난 뒤, 나는 그 놀라운 모습을 놀라서 쳐다보았었다. 나의 공룡 소책자에는 티라노사우르스의 키가 6미터, 길이가 15미터가 되었다고 써 있었다!

이것이 내가 이른바 중생대인 트라이아스기, 쥐라기, 백악기에 대해서 최초로 알게 되었던 때였고, 티라노사우르스가 6500만 년에서 7000만 년 전에 멸종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때였다. 이러한 생각은 나를 괴롭혔는데, 왜냐하면 하나님이 왜 서로 다른 시대에 따라 동물들을 만드셨는지 이해하지 못했었고, 내가 다니던 교회에서도 이러한 문제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펜실바니아에서 성장한 나는 자연을 관찰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가졌었다. 숲은 나의 두번째 집이었다. 숲 속에 난 작은 길 옆에는 애추(talus, 낭떠러지 아래로 부스러져 떨어진 돌더미의 사면)가 있었다. 그 돌들은 애추 바로 위의 절벽의 층으로부터 침식되어 무너져 내린 것이었다. 나는 양치류의 잎 화석을 발견하기도 했는데, 그것들은 매우 아름다운 양치류 모습을 완전히 가지고 있는 인상(impressions) 화석들이었다. 나는 식물들을 진흙에 파묻어서 내 자신이 화석을 만들 수 있을지를 시도해 보기도 했었는데, 그 아이디어는 성공하지 못했었다.

1978년에서 1982년까지 대학에 다닐 때, 진화론은 물리지질학(physical geology), 지사학(historical geology), 인류학(anthropology), 사회학(sociology)과 같은 많은 정규 수업의 근본 철학이었다 (나의 전공은 지질학이었다). 인류학에서는 전이형태로 추측되는 것들을 포함한 전형적인 원숭이에서 사람으로 변화 도중의 상징물(icon)들에 대해서 배웠다. 이것들은 사실로서 가르쳐졌고,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었다.

사회학 시간에 교수는 여성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말했는데, 그것은 여성의 뇌가 작으며, 따라서 남성만큼 지적이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그 강의를 듣는 여성들조차도 그것에 대해서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야 나는 이러한 엄청난 무지가 초기 19세기부터 시작된 진화론적 믿음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뇌의 크기는 지적인 능력과 전혀 관련이 없다.


성경적 연대를 지질학 교실에서 몰아내기

나는 첫 지질학 수업을 받았던 날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교수님은 성경을 언급했는데, 그것은 어떻게든 즉각적으로 내 주의를 끌었다. 그는 어셔 주교(Bishop Ussher)에 대해 설명했는데(이것은 내가 처음으로 그 사람의 이름을 들어본 때였다), 어셔 주교는 성경을 읽고서는 지구가 BC 4004년에 창조되었다는 것을 알아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교수는 말했다. ”이제 우리는 지구가 6000년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구는 실제로 약 40억에서 50억년 전에 생성되었습니다.”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동의했고, 교실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이미 지구가 수억 년의 나이를 가진 것을 알고 있었는데, 그것은 우리가 어릴 때부터 들어왔던 공룡 이야기에 익숙해졌기 때문이었다.


6 일은 여섯 지질시대?

이때까지 나는 성경을 읽어본 적이 없었지만, 하나님이 지구를 6일만에 창조했다는 것을 들은적이 있었다. 나중에 교수님의 말을 곰씹어 생각하고 있을 때, 번뜩이는 것이 내 머리를 스쳤고, 놀라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것은 내가 들었던 6일만의 창조는 6 지질시대를 나타내고 있음에 틀림없다는 생각이었다.

나의 지질학 과목 첫 시험에서 첫 문제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다음 중 어느 것이 지구의 나이와 가장 가까운 숫자인가? (1) 6,000년 (2) 60,000년 (3) 600,000년 (4) 6,000,000년 (6) 6,000,000,000년” 나는 6번을 선택했고 그것은 정답이었다. 내 기억에 학생들 누구도 그 문제를 틀리지 않았고, 그것이 교수님이 원하던 답이었다.

이 특별한 교수가 나의 조언자였고, 많은 지질학 과목들을 가르쳤다. 한때 그는 나에게 머리부터 꼬리까지 완벽하게 원래 크기로 남아있는 화석화된 두 마리 물고기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화석화가 일어날 그 시점에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삼키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그 사진을 보고 놀랐고, 그 교수는 이런 순간이 화석이 되었다는 것이 주목할만 하다고 말했었지만, 더 이상 이에 대해 부연설명을 하지는 않았다. 


진화론과 인종차별주의

재학 동안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나는 사람이 적어도 동굴인(cavemen)에서 진화되었다고 확신했었다. 슬프게도 이것 때문에 '흑인(Negroes)'들은 사람으로의 진화가 덜 된 형태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하나님 안에서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 조화시켜야할 지 몰랐지만, 그러나 나는 계속 교회를 다니고 있었다.

1982년에 나는 지질학 석사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졸업 이후에 바로 텍사스의 휴스톤(Houston)으로 이사했는데, 그것은 많은 지질학자들을 위한 일자리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생각에 나는 이때 아마도 유신론적 진화론자(theistic evolutionist, 비록 이 용어를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였지만, 무신론자가 된 적은 결코 없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없다는 무신론을 믿는다는 것은 나에게 비논리적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24살이 된 이후 언제쯤인가부터 교회에 나가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러나 이것은 1986년 가을에 모두 바뀌기 시작했다. 무선리모콘을 가지고 TV 채널을 이리저리 넘기고 있다가 그 때 당시  TV에서 전도를 하는 유명한 복음전도자의 설교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는 낙태에 반대하는 설교를 너무나 열정적으로 하고 있었고, 또한 그때까지 낙태를 반대하는 그러한 설교를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정말로 그것에 귀기울여 듣게 되었다. 그는 목소리를 높여 낙태가 무서운 죄이며, 하나님의 다가올 심판에 대해서 선언하고 있었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는 교회를 다닌 적이 있었지만, 그  설교에 대해서 관련이 있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설교자에게 기부금을 보내게 되었다.

또 다른 흥미로운 일이 이 일이 있었을 때쯤 발생했다. 내 차가 고장이 나서 고생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멈춰서서 나를 도와주었다. 우리가 고장난 차를 길 가로 밀어내고 나서 나는 그에게 고마워서 내가 뭐 해줄 수 있는게 없습니까 라고 물어보았다. 그 때 그 사람은 ”아니에요. 개인적으로 나에게 해 줄 일은 없지만, 우리 동네 기독교 라디오 방송국인 KSBJ에 기부를 좀 하시면 어떨까요”라고 말했고, 나는 그 사람이 말한대로 하기로 하였다. 내가 기부를 하고 난 뒤 그를 다시는 보지 못했지만, 그는 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었음이 틀림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 TV 복음전도사로부터 많은 정보를 받기 시작했고, 또 ‘기독교의 매력(The Seduction of Christianity)’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또한 내가 사업차 여행 중일때는 묵는 호텔 방에 비치된 기드온 성경을 열어보게 되었다.

1987년에 그 모든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 인디애나의 한 호텔방에서 요한계시록을 읽던 중에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예수님이 내 삶에 들어와 주시기를 요청했다. 이런 거듭남(born-again)의 경험은 정말 강력한 것이었다. 나는 내 죄를 회개하고, 그에 대해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다.

이 때에 나는 내가 진화론의 타당성에 대해서 교회(유신론적 진화론을 가르치는), 언론, 그리고 대학 등에 의해서 속아왔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거듭난 이후 진화론은 거짓임을 그 즉시로 깨달았다.

이후 내 모든 삶은 180도로 바뀌었다. 나는 모든 것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보게 되었고, 나는 새로운 피조물(고린도후서 5:17)이었다. 나는 매우 흥분했고, 나의 여자친구와 성경구절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한 달 뒤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또 한 달 뒤에 우리는 약혼했다. 마침내 우리는 그 다음 달에 결혼하게 되었다.


창세기, 간격이론, 그리고 지질학

나는 계속 여행을 다니고 있었고, 그 텔레비전 복음전도자로부터 많은 연구들을 받아보고 있었다. 그는 간격이론(Gap theory)를 지지하는 ‘시대들을 통한 하나님의 계획(God's Plan for the Ages)’이라는 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내 생각에 그것은 내가 들어본 것 중에 가장 훌륭한 것이었다. 그것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처럼 보였고, 특별히 화석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생각했다. 거듭난 순간 진화론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아직도 지구의 나이가 많다고 생각했었다.

1988년에, 우리는 특정 종파에 속하지 않는 지방의 교회에 나갔고, 그 해 말에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나는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가르쳤는데, 계속해서 진화론에 관한 주제가 부각되는 것이었다. 비록 내가 '간격이론(Gap theory)'에 빠져 있었지만, 그리고 또한 교회의 누군가는 지구의 나이가 젊다는 사실을 믿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그 이슈를 피해 가려고 노력했다. 왜냐하면 그 주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다양한 각도에서 엄청난 양의 공부를 해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때즘 내가 다니던 교회에 헨리 모리스(Henry Morris) 박사의 친척이 우리 교회에 다니고 있었고, 누군가 ICR(Institure for Creation Research)의 메일링 리스트에 내 이름을 넣어서 그 단체의 카탈로그를 받기 시작했다.

내 눈을 가장 사로잡았던 책은 켄햄(Ken Ham)이 쓴 ‘거짓말 : 진화론(The Lie: Evolution)’ 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의 표지는 내 호기심을 무척이나 자극하는 것이었는데, 금단의 열매 아래 머리에 '진화론(evolution)'이라고 씌여진 뱀이 있는 것이었다. ICR 팜플렛에 소개된 이 책 표지를 두 달 쯤 보고 있다가 결국엔 그 책을 샀다. 이 책은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내 눈을 뜨도록 했고, 간격이론을 지지한다는 성경구절들을 실제로 찾아보도록 하게 하였다. 그 즉시 그 구절들은 문맥에 맞지 않게 인용되었고, 가상적인 루시퍼(Lucifer)의 홍수를 지지하는 것으로 생각되던 구절들은 사실 노아의 홍수(Noah’s Flood)를 말하고 있는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약 2년 정도가 지나, 나는 간격이론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젊은 지구 창조론자(young-earth creationist)가 되었다. 솔직히 그 2년의 시간은 내게는 투쟁의 기간이었다.

그 당시 한 해에는 ICR의 헨리 모리스 박사가 근처 교회에서 설교를 했다. 모리스 박사님이 지구의 나이는 10,000년 이상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나는 그를 비웃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지구의 나이가 그렇게 젊다는 것을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나는 우리 교회 목사님께 물었었고, 그는 ”그것은 가능할 수 있습니다”라고 한 마디 하셨다. 그것이 그가 말한 전부였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바꾸기 사작하셨다. 마침내 나는 지구가 젊고, 하나님이 아닌 과학자들은 지식과 힘에 있어 제한된 자들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지구가 젊다는 것을 확신하는 창조론자가 되었다. (이것은 내가 구원을 받고 대략 2년 후의 일이다.)

나는 매년 텍사스의 휴스톤 남쪽에서 열리는 ‘베이 지역 창조론 회의(Bay Area Creation Conference)’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그중 몇몇 회원은 NASA에서 일한적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때가 처음으로 듀안 기쉬(Duane Gish) 박사와 ICR의 스티븐 오스틴(Steven A. Austin) 박사와 같이 잘 알려진 창조론자들을 개인적으로 만나고 이야기할 수 있었던 자리였다. 또 ICR의 대학원 과정 팜플렛도 가져왔다.

많은 생각과 기도(그리고 아내의 격려와 더불어)를 통해 ICR의 지질학 과정에 신청하여 합격했다. 내 직업은 휴스톤의 지하수 관리를 하는 것이었는데, 회사 소유주이기도 한 나의 상사에게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를 설명했다. 그는 은혜롭게도 내가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고, 심지어 월급까지 계속 주었다! ICR 과정은 여름에 있었기 때문에 그 다음 3년동안 매년 여름 6-7주 가량의 시간을 보냈고, 석사 학위논문을 위한 연구를 위해 현장에서 8주를 보냈다. 1998년에 지질학 석사학위를 받고 졸업을 했다.


그런데 사무실로 돌아와서...

내 상사는 내 믿음에 대해 어떤 것도 귀찮게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 동료들로부터는 반발을 조금 받게 되었다. 1999년의 가을이 되어서는 지열(geothermal) 에너지 공급소의 새로운 자리에서 일하게 되었다. 새로운 경영자가 오자마자 나는 그의 사무실로 불려가게 되었다. 그는 누군가 내 방에 걸려있는 창조론자 포스터가 눈에 거슬린다고 했다며 말했다. 사무실은 종교적인 색채가 없었으면 한다는 그의 생각을 말했다.

사무실 안에 있는 모두는 내가 회사의 긴 복도에 벽 크기의 지질도를 걸어두었기 때문에, 내가 지질학적으로 무엇을 믿고 있는지 다 알고 있었다. 이들 지도를 사용해서, 나는 창조와 대홍수를 같이 일하는 근무자들과 동료들에게 설명할 수 있었다.

2002년 봄이 되어서 미국 지질학회(Geological Sciety of America)의 한 회의에 참석했었다. 나와 같이 승합차를 탔던 몇몇 지질학자들 중에서 한 동료 지질학자는 내가 ICR에서 공부했었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되었다. 그는 실제로 그곳을 다녔다는 누군가를 만났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어했다. 그는 ICR이 그의 마을에서 학회를 열 때면 언제나 항상 제일 먼저 소리높여서 질문을 했었고, 많은 성가신 일들을 일으켰었다고 했다. 그 여행을 하는 동안 같이 차를 타고 가던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었고, 우리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조용했다.

나는 펜실바니아의 피츠버그에서 있었던 창조론 국제회의(International Conference on Creationism)에서 전문적 논문을 쓰고 발표하는데 관여해오고 있다. 나는 1998년의 홍수지질학 논문의 주 저자였는데, 그 논문은 ICR의 학위논문에 기초한 것이었다. 2003년에는 대홍수의 자세한 연대기에 대한 논문을 히브리 학자인 배릭(Bill Barrick) 박사와 공동저자로 발표하였다. 1997년부터 2001년까지 Greater Houston Creation Association의 회장역을 맡았고, 현재까지 그 위원회에 소속되어 있다.


결론

그것은 정말 믿을 수 없는 배움의 과정이었다. 이제 나는 세상의 기원(Origins)에 대해 다룰때면 성경이야말로 맨 처음, 그리고 으뜸으로 찾아보아야 하는 것임을 믿는다. 결과적으로 성경은 가장 올바른 역사적 문서(물론 역사 그 이상의 것이다)임이 반복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성경의 몇몇 구절은 시적이고, 상징적인 반면에, 역사적인 방식으로 씌여진 (창세기에 기록된 역사들처럼) 기술이며, 그것은 진지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조사하고 연구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당신이 누구든지 지금 저의 간증을 읽어야 할 이유가 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일은 적어도 성경의 창세기를 읽고, 그것(그리고 다른 성경의 65권의 책)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고려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경이 말하고 있는 복음(gospel message)에 대해 깊이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는 바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answersingenesis.org/creation-scientists/testimony-of-a-professional-geologist/

출처 - AiG, 2006. 2. 28.

미디어위원회
2015-10-12

안산암질 용암의 기원은? 

(How does andesite lava originate in the earth?)

by Michael J. Oard, Ph.D.


     안산암(Andesite)은 전형적으로 화산 폭발과 관련이 있으며, 유문암(rhyolite)과 지구의 표면을 따라 벌꿀처럼 흘렀던 현무암(basalt) 사이의 중간형태의 용암 타입이다. 안산암은 매우 흔하며, 화산원뿔(volcanic cones) 또는 성층화산(stratovolcanoes)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특히 '불의 고리(ring of fire)'라 불리는 태평양 주변을 따라 풍부하다. 판구조론(plate tectonic theory)이 등장하고 발달하면서, 안산암은 선캄브리아기 시기 이후의 새로운 대륙지각의 형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가정되고 있다.[1]

선캄브리아기 대륙지각(Precambrian continental crust)도 또 하나의 논란이 되고 있는 주제로, 어떻게 그것이 자연적으로 기원했는지는 아직 잘 이해되지 않고 있다. 몇몇 사람들은 그 지각의 30%는 4억5천만 년 전 이후에 형성됐다고 가정하고 있다.[2] 그리고 이것의 한 중요한 부분은 안산암의 더해짐(addition)에 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안산암은 섭입대(subduction zone)에서 한 지각 판(일반적으로 해양지각 판)이 다른 지각 판 아래로 이동했을 때 형성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초기 판구조론 모델에 의하면, 안산암은 해양지각의 용융으로부터 직접 형성되는 것으로 생각했었지만, 나중 모델에 의하면, 위의 뜨거운 맨틀 내로 물(water)이 주입된 결과로 간주되고 있다. 이것은 융점(melting point)을 낮추어, 부분적으로 용융된 안산암 용암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화산암인 안산암은 판구조론의 발달 초기에 대륙지각에 새롭게 더해진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안산암은 섭입대에 풍부했고, 구성 면에서 대륙지각을 닮았다. 섭입대에서 한 지각판이 다른 지각판 아래로 이동해 들어갈 때, 이동되고 있는 마그네슘과 철분이 풍부한 해양지각은 부분적으로 녹으면서 안산암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론에 의하면, 섭입되던 지각판으로부터 물은 탈출했고, 그 위의 뜨거운 맨틀을 부분적으로 녹이는 원인이 되었다. 그러한 마그마는 고형의 출처로부터 형성되어 본체 안으로 모여졌을 때 일차적(primary)이라고 불려진다. 대륙은 안산암의 더해짐으로 인해 계속 자라났다고 주장되었다...”[3]

그러나 이러한 비교적 간단한 판구조론 설명은 미국 오레곤주 후드 산에서의 최근 데이터에 의해서 도전을 받게 되었다.[4]

Figure 1. 거울 같은 호수에 비친, 미국 오레곤의 후드산(Mount Hood).

안산암의 기원에 관한 이 새로운 아이디어는 여러 동일과정설적 수수께끼들을 만들어내었다.


하부지각(lower crust)으로부터 안산암?

'카스카디아 섭입대(Cascadia subduction zone)'와 관련된 화산인 후드산(Mount Hood)의 분출은 주로 안산암이었다. 안산암은 성격이 다른 두 종류의 마그마, 즉 하나는 현무암(basalt)에 가까운, 다른 하나는 유문암(rhyolitic)에 가까운 특성을 갖는 마그마의 혼합에 의해서 기원한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뜨거운 현무암질 마그마가 덜 뜨거운 유문암질 마그마방 안으로 상향 주입되면서, 분출을 시발했다. 이 개념은 산에서 발견된 다른 지화학적 성질을 가지는 두 구별되는 결정체 집단으로부터 추론되었다.

그 혼합은 결정들에서 (빠르게 분출하지 않는다면, 신속하게 확산되어야만 하는) 분명한 지화학적 차이를 만들었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후드산을 형성했던 안산암은 대륙지각의 얕은 깊이에서, 화산이 분출하기 단지 며칠 전에 기원했음에 틀림없다고 추론했다. 연구자들은 안산암이 섭입대의 깊은 곳에서 기원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은 안산암의 기원에 대한 현재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론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화산 폭발을 일으키는, 마그마가 혼합되는 이러한 현상은 또한 이전 연구에서도 보고되어 왔었다. 예를 들어, 그것은 또 다른 불의 고리인 필리핀의 피나투보 산(Mount Pinatubo)의 폭발로부터 지진학적으로 추론됐었다. 혼합된 안산암의 분출로 인해, 12일 후에 지진 활동이 뒤따랐다.[3]


동일과정설적 수수께끼

안산암의 기원에 대한 이 새로운 주장은 여러 동일과정설적 수수께끼들을 생겨나게 한다. 예를 들어, 유문암질 마그마의 기원은 무엇인가? 그리고 왜 그것은 위쪽으로 누출되는 현무암질 마그마에 의해서 천천히 오염되거나 고체화되지 않았는가?[3]

(새로운 연구 결과처럼) 안산암의 분출이 지각 자체 내에서 기원했다면, 진화론적/동일과정설적 체계 내에서 더 심각한 수수께끼는 대륙지각(continental crust)의 기원이다. 새로운 지각형성이 없다면, 섭입 홀로 현생대(Phanerozoic)의 안산암질 구성의 대륙지각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현무암만을 만들었다고 가정되고 있기 때문이다.[1] 섭입에 의한 현생대의 대륙지각의 기원은 이제 의문으로 남게 되고, 명백히 동일과정설(uniformitarianism)과 모순된다. 왜냐하면 대륙은 성장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대륙이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고 믿을만한 강력한 이유가 없다... 이 모든 것은 대륙들은 장구한 세월에 걸쳐 천천히 구축되었다는 오늘날의 동일과정설적 섭입이라는 개념에 의구심을 가지게 한다.”[5]

섭입은 대륙 충돌, 또는 대륙 분리를 통해서, 또는 대륙 위로 이질적인 층군(terranes)을 붙임을 통해서, 단순히 대륙을 모으고 분리시키는 원인으로서 간주되어 왔다. 대륙은 섭입에 의해서 대륙 가장자리의 아래쪽이 잘게 부서지는 섭입침식(subduction erosion)으로 불려지는 것 때문에, 그리고 대륙으로부터 침식된 퇴적물의 섭입 때문에, 땅을 잃어버리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5]

이 연구 결과는 진화론적 지질학 체계에서 모든 대륙지각의 기원을 지구 역사의 초기로 끌어내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 중 일부는 맨틀로부터 지각 생성의 격변적 맥동과 초기 대폭격기(heavy bombardment) 동안 소행성들 폭격에 의해 지각 분화를 포함한다.[5] 동일과정설적 지질학자들이 성경을 믿지 않으면서도 격변설(catastrophism)로 회귀하고 있다는 것은 흥미롭다 :

”1세기 이상 오래된 격변론자들의 생각을 극복했던 동일과정설(uniformitarianism)이 이제 새로운 격변설에 의해서 조정되고 있는 중이다.”[5]

주류 과학자들의 안산암에 대한 이 새로운 연구는 몇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6] 첫째, 현재의 지질학 및 지구물리학 분야는 신격변설(neocatastrophism)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새로운 데이터들은 종종 사실로서 인용되던, 확고한 것으로 보여지던 동일과정설적 이해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창조론자들에 대한 의미

창조론자들에게, 이러한 연구 결과는 (현대 지질학의 주류 패러다임인) 동일과정설적 해석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주의해야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또한 안산암의 기원은 판구조론(plate tectonics) 또는 섭입(subduction)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 수 있음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지질학적 이론으로는 대륙의 기원이 설명되기 매우 어렵기 때문에, 대륙은 창조주간 3일째 또는 노아 홍수 초기에 형성되었다는 개념은 훨씬 더 사실적인 설명이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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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rther Rea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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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and notes
1. Eichelberger, J., Messy magma mixture, Nature Geoscience 3:593-594, 2010 | doi:10.1038/ngeo951.
2. Fowler, C.M.R., The Solid Earth: An Introduction to Geophysics, Cambridge University Press, New York, p. 378, 1990.
3. Eichelberger, ref. 1, p. 593.
4. Kent, A.J.R., Darr, C., Kolszar, A.M., Salsbury, M.J. and Cooper, K.M., Preferential eruption of andestic magmas through recharge filtering, Nature Geoscience 3:631-636, 2010 | doi:10.1038/ngeo924.
5. Eichelberger, ref. 1, p. 594.
6. Reubi, O. and Blundy, J., A dearth of intermediate melts at subduction zone volcanoes and the petrogenesis of arc andesites, Nature 461:1269-1273, 2009 | doi:10.1038/nature08510.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ation.com/what-is-andesite-lava-and-how-did-it-originate 

출처 - Journal of Creation 25(3):4–5, December 2011

미디어위원회
2015-08-05

빠르게 형성된 화산섬과 생태계

 (Instant Islands and Ecology)


      일본 근처에서 최근에 생겨난 한 화산섬(volcanic island)은 아이슬란드에 생겨났던 서트지 섬(Surtsey island, 쉬르트세이 섬)의 재빠른 식물 번성을 기억나게 하고 있었다.

만약 이 섬의 형성을 직접 보지 못한 과학자가 있었다면, 그 섬은 형성된 지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고 추정했을까? 1963년에 아이슬란드 해안에서 솟아 올라왔던 서트지 섬과 마찬가지로, 일본 해안에서 새로 형성된 니시노 섬(Nishinoshima island)은 과학자들을 놀라게 할지도 모른다. PhysOrg지는 2년도 안되어 서트지 섬에 새로운 생태계가 형성되었음을 보고하고 있었다, :

”1964년에 서트지 섬을 연구하기 시작한 이래로, 과학자들은 해류에 의해 운반된 씨앗들의 도착, 균류(moulds), 박테리아, 곰팡이류의 출현을 관찰해 왔고, 1965년에는 유관속식물(vascular plant)이 처음으로 관찰되었다”고 유네스코(UNESCO)는 웹 사이트에서 말했다.

”2004년 까지 서트지 섬에서 선태류 75종, 지의류 71종, 균류 24종이 유관속식물 60종과 함께 관찰되었다. 89종의 조류(birds)도 보고되었는데, 그중 57종은 아이슬란드의 도처에서 살고 있던 것들이었다. 141헥타르의 서트지 섬은 또한 335종의 무척추동물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단지 반세기만에 그렇데 많은 생물 종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놀랍다.

이러한 정보를 토대로, 과학자들은 일본 니시노 섬에서도 유사한 생태계가 빠르게(지질학적 의미에서) 형성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서트지 섬이 아이슬란드에서 300km 떨어진 것에 비해, 니시노 섬은 일본 본토에서 1,000km나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미 니시노 섬은 서트지 섬의 크기 정도가 되었다. 과학자들은 조류(birds)들이 처음 이주자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새들의 배설물, 부화된 지 얼마 안 되는 어린 새끼들의 구토물, 잔해물들이 최초의 단순한 식물들을 위한 기질(토대)을 만들 것이다. ”연구자들은 2013년 11월에 파도 위로 머리를 내밀은, 여전히 활동적인 활화산을 가진 섬에서, 새의 배설물들이 어머니 대자연의 광대한 실험을 시작하기 위한 비밀재료(영양분)가 될 것으로 보았다.” 서트지 섬에 생물 군집의 빠른 서식은 당시에 과학자들에게 놀라움이었다.


일부 과학자들은 그들의 생각 속에 다윈만이 들어있었다. ”우리 생물학자들은 새로운 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진화과정의 시작점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 과학자는 말했다. 그 논문은 또한 ”한 서식지의 진화”를 말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진화라는 단어를 매우 다르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진화가 느리고 점진적인 것이라면, 정말로 수백만 년을 기다려야 하지 않겠는가? 서트지 섬의 이주 생물들은 모두 알려진 생물들이었다.


*2015. 5. 27. 추가 : 최근 두 개의 새로운 화산섬이 예멘(Yemen) 해안에 나타났다. 데이브 맥그라비(Dave McGarvie)는 The Conversation 지의 기사에서, 화산분출 동안에 조종사가 촬영한 비디오 영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새로 생겨난 화산섬의 대부분은 빠르게 침식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섬들은 팽창하는 군도의 일부분이 되어 완전하게 남아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새로운 연구의 아마도 가장 흥미로운 발견은, 이 섬들의 출현은 쥬바이르 군도(Zubair archipelago)가 왕성하게 확장되고 있음을 가리키며, 해저 분출과 섬을 만드는 화산분출이 예상된다”고 맥그라비는 말했다. Live Science지는 ”홍해(Red Sea)의 일부가 된 2개의 새로운 섬”이라는 제목으로, 연기가 나는 화산의 멋진 그 군도의 항공사진을 게재하고 있었다.


세인트 헬렌산

2015년 5월은 세인트 헬렌산(Mt. St. Helens)이 폭발한지 35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제 이 산의 또 다른 모습은, 1980년 5월 18일 운명의 날 아침에 일어났던 대폭발로 완전히 황폐화 되었던 생태계가 빠르게 회복될 수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당시 화산폭발로 인해 수 분 안에 230평방마일의 숲이 초토화됐었다. PhysOrg 지는 빠르게 회복된 생태계로 인해 과학자들이 놀라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


.새로워지고 있는 세인트 헬렌산(Mt. St. Helens). by David Coppedge

”여전히 빠른 변화 속에 있다”고 미국 산림청의 생태학자인 찰리 크리사풀리(Charlie Crisafulli)는 말했다. ”생물 종들은 늘어나고 있다. 그들은 이곳 밖에서부터 들어오는 것들이다. 이 땅은 점점 더 채워지고 있다.”

눈에 띠는 한 가지 주요한 변화는 우점식생(dominant vegetation)의 변화로서, 우세하게 점령하고 있는 식물들이 초본(grass) 식물과 루핀(lupine)에서부터, 버드나무와 오리나무 같은 낙엽관목으로 변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낙엽수림은 국소적 기후의 변화, 빛과 다른 조건들의 변화, 생물 종들의 재편성을 이끌면서 풍광을 회복시키고 있다.

그 기사는 세인트 헬렌산을 ”세계적 수준의 화산, 생태계, 산림 연구를 위한 외부 현장 실험실”로 설명하면서, 인기 있는 관광명소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갈라파고스 제도의 새들

여전히 부분적으로 활화산이 남아있는 오래된 일련의 화산섬들로는 갈라파고스(Galápagos) 제도가 있다. 다윈의 상징물인 핀치새(finches)로 유명한 이 섬의 생태계는 외래 침입 종들로 인해 고통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National Geographic 지는 슬프게도 망그로브 핀치새(mangrove finch)는 멸종위기의 경계에서 몸부림치고 있다고 말했다. 1960년대에 도착한 어떤 외래종 파리(fly)가 둥지의 새끼들에 침범하여, 그들의 혈액과 조직을 먹고 살아, 번식기 한 달 동안에 새끼들의 95%를 죽여 버렸다. 현재 진행 중인 포획-번식 프로그램이 그 개체군을 구할 수 있을지 아직 알 수 없는 상태이다.

*2015. 5. 27. 추가 : 이사벨라 섬(Isabella island, 에콰도르령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가장 큰 섬)에 있는 울프 화산(Wolf volcano)이 분출했다. 우선 걱정되는 것은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이 지역의 멸종위기 종인 '핑크 이구아나(pink iguana)”가 위협을 받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PhysOrg). New Scientist지는 이제 그들은 위험지역을 벗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극심한 건조지역의 생명체들

지구의 어떤 지역은 화성만큼이나 건조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체가 있다. 나사(NASA)의 지구생물학(Astrobiology) 지는 박테리아의 어떤 종은 ”건조 한계점”인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Atacama Desert)에서도 번성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그 논문에서 아타카마 사막과 화성의 지리적 조건을 비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화성에서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타카마 사막의 건조한 현장은 화성의 차세대 탐사차량에 장착되는 생명체 탐지장치를 시험해 보는 데에는 유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삼단 논법, 즉 ”대전제: 생명체는 지구의 극한 환경에서도 존재한다. 소전제: 화성은 극한 환경 조건이다. 결론: 화성에는 생명체가 있다”에서 문제점은 무엇인가?

이 삼단 논법은 ‘매개념 부주연의 오류(fallacy of the undistributed middle)’ (= ”모든 X는 Y이다. Z도 Y이다. 따라서 Z는 X이다”라는 형식의 오류. 예를 들어, ”미인은 사과를 좋아한다. 나도 사과를 좋아한다. 그러므로 나는 미인이다”)를 범하고 있다. ”사람은 모두 죽는다”에 모든 사람이 포함되는 방식으로, 생명체가 있는 환경에 모든 극단적 환경들이 포함될 수 없다. 그러나 나사의 논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러한 잘못된 삼단논법이 우주생물학의 많은 부분에서 기초가 되고 있다.


서트지 섬, 니시노 섬, 세인트 헬렌 산은 인간의 실제 시간 속에서 목격된, 급격한 지질학적 변화와 생태학적 변화의 사례들인 것이다. 사람이 갈라파고스 제도의 형성과 식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했던 것은 아니지만, 관측되는 것들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수백만 년이라는 오랜 시간은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삼단 논법으로 해보자 : ”대전제: 일부 다양한 생태계가 화산 분출지에서 빠르게(과학자들도 놀라고 있는 수 년 혹은 수십 년 내에) 나타났다. 소전제: 갈라파고스 제도는 다양한 생태계를 지닌 화산 분출지이다. 결론 : 갈라파고스의 생태계를 설명하는 데에 수백만 년이 필요치 않다”.  


밥 엔야트(Bob Enyart)의 ”오래되지 않은 것들의 목록(List of Not-So-Old Things)”에는, 서트지 섬에서 빠르게 진행된 지리적 생태적 변화를 관측하고 놀라고 있는 과학자의 말을 인용하고 있었다 :

서트지 섬, 아이슬란드 : New Scientist 지는 1963년에 형성된 화산섬인 서트지 섬에 관해 2007년에 보고했다. ”지리학자들은 전통적으로 수천만 년 혹은 수백만 년이 걸렸을 것으로 보이는 협곡, 계곡, 다른 모습들이 10년 이내에 만들어졌다는 것에 놀라고 있었다”. 그렇다. 아이슬란드의 한 지질학자는 서트지 섬이 형성되고 몇 달 후에 이렇게 적고 있었다. ”(그가 배워왔던) 지질학적 시간의 틀 안으로 이러한 형성 과정을 결합시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수천 년이 걸린다고 말해졌던 것들이... 여기서는 몇 주 혹은 며칠 밖에 걸리지 않았다. 지형 모습은 너무나 다양하고, 성숙되어 있어서, 거의 믿지 못할 지경이다. 넓은 모래 해안들, 깎아 지르는 험한 바위들.... 자갈언덕, 석호, 인상적인 절벽들, 골짜기들, 협곡들, 그리고 부드러운 물결모양의 땅.....단구(fractures), 단층애(faultscarps), 수로, 무너져 내린 바위부스러기... 당신의 눈이 닿는 곳마다 당황하게 된다. 밀려오는 파도에 의한 닳아버린 둥근 돌들, 그것들 중 일부는 거의 둥글다...” 


번역 - 문흥규

링크 - http://crev.info/2015/05/instant-islands-and-ecology/ 

출처 - CEH. 2015. 5. 19.

미디어위원회
2015-06-16

격변적 사건들을 과소평가해왔던 지질학자들 

: 한 번의 폭풍우가 수천 년에 해당하는 침식을 일으켰다.

(Geologists Have Underestimated Catastrophes)

David F. Coppedge


        2013년 미국 콜로라도 주의 한 차례의 폭풍우로 말미암아, 수백 또는 수천 년에 해당하는 산의 침식이 일어났다. 이것은 격변적 사건들의 힘에 대해 재고하도록 만들고 있었다.

2013년 9월에 커다란 폭풍우가 콜로라도 주를 강타했다. 콜로라도 대학의 스콧, 수잔, 로버트는 로키 산맥의 일부인 프론트 산맥(Front Range, 미국 콜로라도 주 중부에서 와이오밍 주 남부에 걸친 로키산맥의 한 지맥)에 나타난 지질학적 변화를 조사하러 갔다. 그들은 Geology(June 2015) 지에 ”역사적으로 조용했던 지형”에서 1100개의 산사태와 암설류(debris flows)를 보고했다.

우리의 결과를 알려져 있는 장기적 침식율과 비교했을 때, 이러한 매스 무브먼트(mass movements)는 수백 년에서 수천 년에 걸친 사면풍화산물과 동일한 양을 이동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1)드물게 일어나는 암설류가 프론트 산맥의 동부 가장자리를 따라서 급경사의 하도들(steep channels) 내에서 대부분의 퇴적물 운반과 하도 침식을 일으켰다. 그러한 운반과 침식은 오늘날의 퇴적물 산출량과 장기적 침식율 사이의 부조화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2)급경사의 협곡에서 쏟아져 내려갔던 고밀도의 암설류는 천이점(knickpoints, 강바닥의 기울기가 갑자기 변화하는 지점)이 협곡을 따라 상류를 지나가면서, 지형이 암설류 우세 지형으로 교체되었음을 가리킨다.

이 한 번의 폭풍우가 극적이었던 만큼, 지질학적 사고에 끼친 그것의 영향도 엄청날 수 있다. 네바다 대학의 스콧 맥코이(Scott McCoy)는 같은 호의 Geology 지의 논문에서, 지질학적 변화 속도에 대한 수세기에 걸친 오랜 논쟁을 이야기하면서,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

지표면의 지질작용이 우리가 살고 있는 경관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강물이 고지대로부터 바다의 분지로 날마다 흐르면서, 육지 표면을 지속적으로 조금씩 침식시켜, 골짜기를 파내고, 퇴적물을 운반해서 만들었는가? 아니면, 드물긴 하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격변적 사건들을 통해 지구의 표면이 만들어졌는가? 이 질문은 지질학이라는 학문만큼 오래된 것으로서, 지표면의 형태를 만들었던 극적인 사건들의 상대적 중요성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켜왔다. 비록 지질학자들이 자료들을 모아 허튼(1795)과 라이엘(1830)의 동일과정설(uniformitarianism)과 퀴비에(1818)의 격변설(catastrophism)을 각각 지지하는 이론들을 200년 이상에 걸쳐 제안해왔을 지라도, 그 논쟁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으며, 새로운 도구를 가지고 오늘날 퇴적물 운송 과정에 대한 관측을 했더라도, 지형을 형성한 사건의 전체 규모를 정량화하는 데에는 알아야할 것이 많음을 앤더슨 등(2015, Geology, 391p)의 논문은 보여주었다. 

만약 2013년의 폭풍우처럼 드문 한 폭풍우가 지질학에서 매스 무브먼트의 주요 원인이었다면, ”극적인 사건을 포착하지 못했던, 퇴적물의 유량에 대한 짧은 역사적 기록은 실제적인 장기 퇴적물의 량을 극도로 과소평가하게 할 수 있다.” 미국에서 공식적인 역사적 기록은 단지 1세기 조금 넘을 뿐이라는 것을 유념해야만 한다. 서부지역에 사람들이 정착되기 이전에, 그리고 남북전쟁 이후에 웨슬리와 같은 지질학적 선구자들이 콜로라도 고원의 협곡을 연구하기 이전에는, 단지 인디언의 전설들과 산발적으로 흩어진 정착민들에 의한 구전만 있었다. 콜로라도에서 일어났던 거대한 규모의 격변적 사건들을 아리조나나 오레곤 주의 사람들은 전혀 관측하지 못했을 것이고, 역으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 문제는 오늘날까지 계속된다. 앤더슨 팀은 불과 20년 전에만 해도 없었던 현대적 측정 도구와 모델을 사용했다고, 맥코이는 말한다.

맥코이는 실제적인 침식율을 과소평가한 것의 결과는 엄청나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

오늘날의 침식율과 장기적 침식율 사이의 그러한 불일치에 대한 오해는, 저수지의 한계 수명의 예측, 변화하는 토지 사용에 대한 영향 평가, 도달할 수 있는 수질 기준의 설정, 산사태나 암설류 같은 급격한 매스 무브먼트로 인한 퇴적물 관련 위험성의 경감, 극단적인 강 하도의 매적작용... 등과 같은 것에서 오류를 일으킬 수 있다. 긴 시간 스케일에서, 퇴적물 유동의 규모와 공간적 시간적 양상에 대한 정확한 기술은 경관이 어떻게 바뀌는지, 퇴적물 유동이 기후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그리고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얼마의 퇴적물과 영양분의 유동이 필요한 지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엄청난 격변적 사건에서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실제적으로 측정해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앤더슨 등은 실험적 관측에 근거해서, 암설류가 가파른 산사면을 따라 나있는 대부분의 지형적 특성을 만들었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강물과 달리, 암설류에 의해서 기반암이 잘려지는 것을 고려하고 있는 받아들여진 메커니즘은 없다.” 그러므로 ”가끔씩 발생하는 암설류의 효과를 고려하지 않은 모델에서, 경사진 지표면의 변화 속도와 장소적 패턴에 대한 예측은 그 정확성이 의심되는 것이다.”라고 맥코이는 말했다.

맥코이는 기본적으로 지질학자들의 모델과 도구는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낙관적인 어조로 끝을 맺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자신도 놀랐다는 것은 분명하다. ”일회적인 사건에서, 암설류가 수백 수천 년에 해당하는 언덕사면에 쌓여있던 물질을 강의 본류로 운반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결과이다.”



이것은 과학자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추측할 때, 어떻게 잘못된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인 것이다. 백 년이 넘도록 전문가들과 교과서는 지형의 변화 속도에 대해서 ”오류”를 가르쳐 왔다. ”배워야 할 것이 많다”라고 맥코이는 말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교과서와 TV 다큐멘터리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현대 지질학자들과 교과서들은 지구의 느리고 점진적인 변화를 사실처럼 가르치고 있다. 생명체 내에서 오랜 시간에 걸친 느리고-점진적인 변화를 주장했던 찰스 다윈에게, 영감을 불어넣은 것은 찰스 라이엘의 점진주의(동일과정설) 지질학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만약 어떤 원인이 충분한 에너지를 갖고 있다면, 급격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이제 단지 2년 전의 한 폭풍우가 수백 수천 년에 해당하는 지질학적 변화를 만들어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 어떻게 진화론적 지질학자들은 그러한 변화를 수천 년에 걸쳐서 일어났던 것이라고 주장했던 것일까? 콜로라도의 프론트 산맥을 수천 년 동안 지켜봤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제 그들이 알게 된 것은, 한 차례의 폭풍우가 수천 년에 해당되는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관측할 수 없는 과거의 일을 상상할 때, 수치는 정말로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진화론적 패러다임 내에서의 과학은 찰스 다윈이 필요한 장구한 시간을 지지하도록 연대를 추정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우려자들은 지형 변화율에 대해 형편없는 자료를 사용한 모델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는가? 예를 들면, ”퇴적물의 유동은 변화하는 기후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모델들은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은 이렇게 당혹스러운 발견이 세속적 지질학자들을 조금 겸손하게 만들어서, 그들이 대안(격변설)을 좀 더 심각하게 고려하기를 바랄 것이다. 창조 지질학자들은 수십 년 동안 격변설을 입증하는 증거들을 제시해왔다. 스티븐 오스틴(Steven Austin) 박사는 신속하고 대대적인 변화를 기록했던 게재된 논문들의 데이터베이스를 편찬했다. 앤드류 스넬링(Andrew Snelling) 박사가 저술한 두 권짜리 책 ‘지구의 대격변적 과거(Earth’s Catastrophic Past)’에는 점진적으로 형성될 수 없는 거대한 지층들뿐만 아니라, 많은 기록된 격변적 사건들이 기술되어 있다. (이것은 1962년에 출간되어 현대의 창조과학 운동을 출발시켰던, 모리스와 윗트콤의 ‘창세기 대홍수(The Genesis Flood)’를 계승한 새로운 작업이었다.) 지금까지 50년 동안 계속 간행되고 있는, 동료 검토(peer reviewed)를 거친 CRSQ(Creation Research Society Quarterly) 저널은 격변적 변화를 보여준 지질학적 현상들을 정기적으로 게재해오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위와 같은 바램(세속적 지질학자들이 격변설을 고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일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진화론적 점진주의자들은 앤더슨의 논문을 보고 ”음, 흥미롭군”이라고 말하고 나서는, 그들의 오류적 패러다임 속에 계속 편안하게 머물러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 지질학에서 점진주의(gradualism)는 계속 작동되고 있다. 오래된 지구 연대라는 다윈의 교리로 철저하게 세뇌된 사고를 가진 채, 실험적 관측 자료들에 의해 전혀 구속받지 않으며, 수억 수천만 년의 시간을 아무렇게나 말하는 동일과정설적 모이보이(moyboys)들의 상상 속에서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v.info/2015/04/geologists-have-underestimated-catastrophes/ 

출처 - CEH, 2015.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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