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의 역사 1 (20세기 이전)

진화론의 역사 1 (20세기 이전) 

(History of Evolutionary Theory 1)


      진화론의 역사는 거짓과 사기극과 절망의 이야기이다. 이것은 탁상공론이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같은 동화이다. 또한 이것은 공산주의와 나치즘의 여행 동료였다.

진화론의 역사 1
20세기 이전 : 오히려 일관되고 훌륭한 과학자들은 이 이론을 거부했다.

진화론의 역사 2
1900 ~ 1950년 : 이 이론을 구조하려는 절망적인 노력

진화론의 역사 3
1950 ~ 현재 : 위스타(Wistar)나 다른 회의들은 그것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마지막 희망을 무너뜨렸다.

 

진화론의 역사 1 (History of Evolutionary Theory 1)

시종일관 진화론의 기초를 만들어 낸 사람들은 과학적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그들이 꿈꾸었던 탁상공론에 올라 앉아있다. 1장에서는 20세기 이전에 이루어진 진화론의 역사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과학 대 진화이다. Creation-Evolution Encyclopedia은 당신에게 창조과학의 진실을 알려줄 것이다. ( * 표를 한 사람들은 비창조론자들이다.)

 

진화론자들은 우주의 모든 것들이 스스로 만들어졌다는 이론을 논리적으로 입증하기 위하여 상당히 애를 먹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입장을 지지해줄 사람이 충분할 때까지, 그들의 입장을 고수하였다. 이 글은 당신에게 이러한 사실들을 밝히 알려줄 것이다. 이것은 몽상가들이 서양과학을 어떻게 탈취해왔나에 대한 이야기이다.

 

20세기 이전

일찍이 사람들은 우리의 세계와 우주를 이해하려고 애썼다. 이들은 뛰어난 이성을 가진 신중한 사람들이었다.

대부분의 사실들 속에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걸 만들었다고 믿었다. 자연의 사실들은 이러한 위대한 진리를 가리키고 있었다. 에거시, 베비지, 보일, 페러데이, 플레밍, 허셀, 주울, 켈빈, 케플러, 린네, 리스터, 맥스웰, 멘델, 모르스, 뉴튼, 파스퇴르 등은 그 당시의 과학을 이끌어 나가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현대 과학의 기반을 닦았다. 그 때는 진화론자가 없었기 때문에, 당신이 진화론자가 아니라고, 과학선생이나 과학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하는 위원회는 없었다. 그때는 지금과 같이 철저하게 통제되는 과학위원회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윌리엄 페일리(William Paley, 1743~1805)는 하나님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지으신 유일한 분이라는 것에 대한 이유를 자세히 기술한 고전적 책인 '자연이론(Natural Theology)' 을 저술한 18세기의 특출한 사상가이다. 그가 가르친 그것은 '설계에 의한 논쟁(the argument by design)'이라 불린다. 그것은 식물과 동물의 놀라운 구조, 그것들의 뛰어난 적응능력, 그리고 그들을 만들어낸 지적설계들은 창조자로서, 또 생명을 주신 자로서의 하나님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놀라운 과학적 성취들을 이루어낸 현자들은 창조론자들이었고, 그러한 생각들을 비웃던 사람들은 비겁하고, 깊은 연구를 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뷔퐁(Georges Louis Comte de Buffin, 1707∼1788)이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가치 있는 어떠한 것도 성취하지 않았으며, 신에 대한 믿음을 거부하는 자였다. 생명체의 기원을 다른 곳에서 찾으면서,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떨어져 나왔다는 연구를 했다.


린네(Calrolus Linnaeus, 1707∼1778)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동식물의 유형을 연구하고 공부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많은 수의 동식물이 그에 의해서 이름지어졌다. 많은 정보자료를 모으면서 그가 알아낸 것은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지 않고서는 종들의 구별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라마르크(Jean-Baptiste Lamarck, 1744∼1829)은 많은 부인과 첩을 거느리고, 일생의 대부분을 가난하게 보낸 사람이다. 과학계에서 그는 '후천적 획득형질의 유전' 이론으로 유명하다. 그는 또한 'Lamarckism' 이란 이론으로도 유명한데, 그 내용은 만약 당신이 다리를 잃으면 후대의 자식도 다리가 없는 채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퀴비에(Baron Cuvier, 1769∼1832)는 프랑스의 개신교인으로서, 뛰어난 동식물학자이고 연구자이었다. 파리 박물관의 총책임자인 그는, 하나의 뼈조각 화석으로 생물을 규명해낼 수 있는 학자로 세계적 명성을 갖고 있었다. 수년간의 연구분석결과 그는 생명체를 가진 종은 하나에서 다른 것으로 바뀔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에라스무스 다윈(Erasmus Darwin, 1731∼1802)은 인정받기 원했으나, 가치 있는 아무 것도 이루어낸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항상 동경하던 라마르키즘(Lamarckism)과 진화론의 내용을 담은 'Zoonomia' 라는 책을 써낸다. 자유개혁주의자들은 그의 책을 좋아했다. 그는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였기에 후에 더 큰 명성을 얻게된다.

*제임스 허튼(James Hutton, 1726∼1797)은 스콜틀랜드의 지질학자이다. 그는 오랫동안 만들어져온 굽어진 지층이나 굴곡이 있는 지형이 대홍수와 같은 것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수백 년간에 걸쳐 지구가 조금씩 침전하고 눌려서 형성된 것이라 주장했다. 그는 그의 이론 '동일과정설(uniformitarianism)'에서 '현재는 과거를 알아내는 열쇠이다.' 라는 모토를 주장한다.


*로버트 챔버스(Robert Chambers, 1802∼1883)는 스코틀랜드 사람으로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은 첫 번째 진화론 책인 '자연역사의 흔적(Vestiges of natural History)'을 썼다. 그의 이론에서 보면, 종은 하나가 다른 것의 기원임을 말하고 있다.

챔버스의 책에서 강하게 영향을 받은 자들 중에는 3명의 심령술사(spiritualist)가 있었다. *임마누엘 스웨덴보그(Immanuel Swedenborg)는 1734년에 모든 별과 행성은 소용돌이치는 가스로부터 만들어졌다는 '성운 가설(nebular hypothesis)'을 창안해낸 사람이고, 또 다른 심령술사는 *알프레드 월리스(Alfred Wallace)와 종의 기원의 저자 *찰스 다윈이다. 심령술사들은 악령들과의 대화를 계속하고 있었다. (스웨덴보그에 대한 더 많은 정보는 책 3권을 보시오 : 'Origin of the Solar system from the Order Sheet)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 1797∼1875)은 찰스 다윈과 더불어 가장 영향력있는 19세기의 진화론자였다. 어떠한 과학적인 노력 없이도 그들의 이론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라이엘은 과거의 기록들이 여러 사실들과 일치하지 않으며 나타날 때 매우 고심했다. 그는 그것을 '지질학적 기록의 불완전함'에 기인한다며 변명했다. 그는 3권의 책인 '지질학의 원리(Principles of Geology)'를 저술했다.


*알프레드 월리스(Alfred Wallace, 1823∼1913)은 앞에서 언급한 심령술사이다. 동남 아시아에서 열병에 걸려있는 동안, 진화의 원인으로서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라는 문구를 생각해 내었다. 그는 영국으로 돌아가 기록하기를, 이 생각은 나에게 영감처럼 떠올랐다고 하면서, 그것은 진화의 원인임에 틀림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생존은 진화가 아니다. 만약 당신이 70살까지 살았다고 하자. 그만큼 진화한 것인가? 월리스는 그러한 생각들을 정리하는 동안, 찰스 다윈에 의해 그 이론을 도둑맞았다. 1875년 월리스는 공공연히 자신은 심령술과 막시즘주의자 라고 말하였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은 그의 아버지에 의해 대학으로 보내어졌는데, 신학과정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공부에는 조금의 관심도 없었다. 그는 부유한 자들과의 관계를 통해 전 세계를 여행하는 배를 자연학자(naturalist)로서 동승하게 된다. 다윈은 많은 곳은 여행했는데, 진화이론의 증거를 발견하게 되는 갈라파고스(Galapagos) 섬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 섬에는 18종류의 핀치새를 발견한다. 그것들은 확실히 모두 같은 종이었지만, 몇몇은 다른 것보다 긴 부리를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그는 진화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핀치새들에 관한 한 그들은 진화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이후, 다윈은 결혼하여 가정생활을 꾸렸고, 유산으로 생계를 유지해 나갔다. 그는 비둘기를 가지고 새로운 종으로 바꿔보려고 계속 실험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옆 가게에서 발견한 연장으로(잣대로) 다른 것들을 측정해 버렸던 것이다. 그는 편지들을 썼고, 생각하고 생각했다. 그의 이론에 근거하여 그는 사람들에게 한 세기 안에 백인들이 모든 열등한 민족들을 짓밟아 버릴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Shrewsbury에서 고양이 꼬리를 잘랐을 때 새끼들도 짧은 꼬리를 가졌다는 소리를 듣고 매우 흥미를 느꼈다. 이것은 그가 책으로 쓰고 싶은 꿈같은 정보들이었다. 하지만 몇 년뒤 그는 너무 게을러서 이러한 사실들을 가지고 책을 쓰지 못했다. 그때 그의 경쟁자가 유사한 생각을 출판하고자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생각이 맨 처음으로 인쇄되어야 한다고 결정한다.

무엇보다도 다윈은 그의 할아버지 에라스무스 다윈(Erasmus Darwin) 처럼(무신론적 책을 출판한) 유명해지기를 바랬다. 그 결과가 '종의 기원(Origin of the Species)' 이라는 책이었다. 그것은 너무도 터무니없어서 현재 진화론자들도 쉽사리 적용될 수 없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다윈은 여러 종들이 기원될 수 있는 방법을 결코 고안하지 않았다. 그가 해낸 최선은 그렇게 일어나길 바란다는 것뿐이었다.

다윈은 전문적인 과학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시대에 열악한 조건을 가지고 연구한 아마추어였다. 그는 과학과정을 학교에서 결코 공부한 적이 없다. 다윈이 남아메리카의 나라들로부터 마술(witchcraft)을 시작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그 지방의 종교의식에 참여했고, 어떤 것이 그에게 발생했다. 그가 영국에 돌아왔을 때, 창조자를 가리키고 있는 자연세계와 사실들을 오로지 부정하면서 살았다.


그레고르 멘델(Gregor Mendel, 1822∼1884)은 동유럽에서 살며 연구하던 창조론자이다. 그는 과학과 수학선생이었다. 그는 혼돈스러운 Darwin과 추종자들의 생각과 주장들을 읽어본 뒤에, 실제로 과학연구를 하는 사람에 대한 글들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완두콩에 관한 연구로부터, 그는 유전학에 대한 여러 개념들을 확립하게 된다.

그는 1865년에 그의 발견을 정리해 발표하였으나, 전부 무시당하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다윈의 진기한 생각이 대중들에게 전해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1900년에 과학자들은 멘델의 연구결과의 가치를 발견하였고, 그의 실험은 현대 유전학의 기초로 확립되었던 것이다.

그의 발견은 종의 진화에 대한 기초를 무너뜨릴 만큼 영향력이 있었다. 왜냐하면 동물이나 식물은 오직 같은 종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를 통해서만 다시 태어난다는 사실을 명확히 밝혔기 때문이었다.


루이스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1895)는 화학, 의학, 산업에 지대한 공헌을 세운 화학자이다. 그는 또한 창조론자이었다. 진화론이 대두되어 과학계를 흔들어놓고 지지를 얻을 때, 파스퇴르는 이에 맞서 싸우면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했음을 선포했다.


오구에일 운석(The Orgueil Meteorite). 진화론의 역사에 대한 연구에서, 우리는 자주 속임수나 몽상적인 생각, 거짓, 그리고 오류 등을 보게된다. 그 예중에 하나가 프랑스 남부지방에서 유기물질을 함유한 운석이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사건이었다. 결국 그것은 사기극으로 밝혀졌다.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는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칼 막스(Karl Marx), *프로이드(Sigmund Freud),*존 듀이(John Dewey)와 같은 사람들과 함께 했던 인물로, 사회분야(사회학, 심리학, 교육학, 경제학 등)에 진화론적인 가르침과 도덕을 도입했다. 이것에 대해서는 진화와 사회(Evolution and Society)를 보라. 스펜서는 또 한 명의 심령술사로 진화론이라는 동전에 영감을 불어넣은 사람이었다. 그는 *월리스의 '적자생존'이라는 문구를 *다윈에게 전달하였다. 그는 결코 연구를 하지 않았고, 이론들에 대해서 논평만 하였다.


*토마스 헉슬리(Thomas Huxley, 1825∼1895)는 다윈의 '불독' 이라고 불려지던 사람이다. 그들은 한 팀이었다. 다윈은 연약한 몸으로 자신의 이론을 꿈꾸었고, 헉슬리는 강인하고 끈끈한 힘으로 모든 곳에 그 이론을 전파했다.


*에른스트 헤켈(Ernst Haeckel, 1834∼1919)은 진화론자로서 과학분야 학위를 취득한 진화론자였다. 그러나 그는 거짓도표들과 사기적 주장들로 진화론을 발전시켰다. (그에 대한 더 자세한 자료는 Recapitulation을 보시오)

다른 여러 진화론자들을 따라, 그는 '열등한 종족'을 없애버리자는 투사이었다. (진화와 사회의 부분에서 이것에 대한 자료가 나온다.) 후에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가 그의 진화론에 관한 책에서 그 의견을 차용하여 쓰게된다. 히틀러는 다윈과 그의 동료들이 자신의 생각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고 말하였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pathlights.com/ce_encyclopedia/Encyclopedia/20hist02.htm 

출처 - Encyclopedia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34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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