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의 역사 2 (1900 ~ 1950 년대)

진화론의 역사 2 (1900 ~ 1950 년대) 

(History of Evolutionary Theory 2)


      여기에 한 세기를 지나서 1950년대까지 놀라운 역사가 있다. 진화론이 신화라는 것은 분명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증거를 발견하려고 노력했지만 할 수 없었다. 이것은 과학 대 진화이다.  (* 표를 한 사람들은 비창조론자들이다.)

 

1900 ~ 1950 년대

*드 브리스 (Hugo de Vries, 1848~1935)는 네덜란드의 식물학자이자, 1900년대에 멘델의 유전법칙을 재발견한 세 사람 중의 하나였다. 어느 날, 달맞이꽃을 연구하던 중, 그는 그가 새로운 종(new species)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것이 '돌연변이(mutation)'에 의해 생겨나게 되었다고 이론화했다. 이것은 진화론자들에게 종의 전환이 일어나는 원인으로서(그것이 일어난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지만) 돌연변이 열풍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수십 년이 흘러, 돌연변이들은 늘 해로우며, 새로운 종을 만들어내지도 않고, 만들 수도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물론 드브리스는 그것들을 전부 알지 못했고, 달맞이꽃의 발견은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1914년에 *Edward Jeffries는 드브리스의 달맞이꽃이 그저 달맞이꽃의 한 종류이며, 새로운 종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다. (돌연변이의 실패에 대한 더 많은 정보는 '돌연변이'를 읽으시오.)


*서튼과 보베리(Sutton and *Boveri)는 멘델 연구에 대한 재발견 후부터 단지 2년 후인 1902년에, 각기 염색체(chromosomes)와 유전적 특성의 계통(linkage of genetic characters)을 발견했다. 이것은 훗날 DNA 코드 발견의 유래가 되었던 주요 연구의 시작이었고, DNA 코드는 각각의 종들 안에서 닫혀있었다.


*모간과 뮬러(Morgan and *Muller). *모간(Thomas Haunt Morgan)은 유전적 결정인자가 염색체 속에서 명확한 선형의 순서로 지도화되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 개척자가 되었다. 그는 초파리 연구에 있어서 선두주자였다.

또한 미국에서 연구하던 *뮬러(H.J. Muller)는 X-ray를 사용하여 초파리들의 돌연변이를 유도해 내는데 선두주자가 되었다. 유전학, X-ray 연구, 돌연변이에 관한 더 많은 정보는 '돌연변이'를 보라.


신다윈주의 (Neo-Darwinism). 다윈 이론은 스스로에 의한 '자연 선택(natural selection)'이 진화를 만들어낸다는 가르침이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그것이 아무 것도 만들어내지 않음을 발견했다. 사실은 종 안에서 자연적인 변화(variations)들이 있었던 것이고, 종을 뛰어넘는 변화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많은 과학자들은 돌연변이가 종을 뛰어넘는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신다윈설'로 옮겨가게 되었던 것이다.


스코프스 재판 (Scope Trial). 1925년 미국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일어났다. 고등학교 축구 코치였던 젊은 John Scopes는 테네시주의 반진화론 법을 검증하는 소송에서 피고가 되어 ACLU(미국시민자유연맹)에 의해 고소되었다. 모든 이야기는 책 {The Scopes Trial』에 자세히 나와있다. 거짓증거, 인신공격, 조롱, 과장된 언론보도, 그리고 일반적인 축제 분위기가 테네시 주의 결정에 효과적으로 작용하였고, 후에 다른 주 정부들은 진화론에 대한 반대를 철회하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진화론은 테네시주 데이튼 재판의 경우에서부터 이기기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조지 프라이스(George McCready Price, 1870~1963)은 20세기 처음 50년의 주요 창조론 작가였다. 그는 때때로 4개 대학에서 강의를 했고, 5번째 대학에서 총장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진화론에 반대하는 보고서를 작성하고 연구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전부 38권의 책과 많은 잡지에 글들을 썼다.


*트로핌 리센코(Trofim Lysenko, 1836~1976)은 열렬한 진화론자로서, 오늘날 그의 이름은 불명예로 가득 차있다. 소련연방의 힘이 점점 강해지던 1930년대에 그는 모든 과학적 연구를 조종했다. 그리고 오직 진화론의 막스적 해석에 동의한 것만을 받아 들였다. 반대하거나 혹은 인가되지 않은 연구를 실행하는 기미를 보인 과학자들은 살해당했고, 수 백명이 죽임을 당했다.


*오스틴 클락(Austin Clark, 1880~1954)은 스미소니언(Smithsonian) 협회의 직원으로 열광적인 진화론자였다. 그는 몇 권의 책과 5개 국어로 된 약 600여 개에 달하는 글들을 썼다. 제일 앞선 진화론의 대변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상황을 매우 완벽하게 분석하여, 진화론으로는 아무리해도 수많은 다른 종들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다른 이론을 개발해냈는데, 그 이론은 1930년 그의 책 'zoogenesis(동물기원론)'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이었다. New evolution인 zoogenesis는 모든 동식물의 주요 형태는 더 일찍 각각 먼지, 해수 또는 어떤 것들로부터 갑자기 생겨난 것이라는 이론이다. 전통적 진화론자들에게 교육받아온 Clark에 의하면, 생명 없는 것에서 살아 있는 생명체로의 첫 번째의 불가능한 기적적 변화는 한 번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계속 일어났다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그들의 이론에 대한 공격을 어떻게 막아내야 할 지를 거의 알지 못했다. 그 공격들은 그들의 이론들중 하나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이었다.


미국 인본주의자 협회(American Humanist Association, AHA). 1933년 미국인본주의자 협회가 만들어졌고, 즉시 미국시민자유연맹(ACLU)과 밀접히 일하기 시작했다. '인본주의(humanism)'는 20세기에 들어와 '무신론(atheism)'으로 불려졌다. 그들은 그들의 이름을 바꾸었다. 하지만 지구상의 모든 사람으로부터 종교와 신을 지우기 위한 관점이나 목적을 바꾸지는 않았다. 잘 알려진 여러 사람들이 AHA의 멤버로 있었다.


*리처드 골드슈미트(Richard Goldschmidt, 1878~1958)는 독특했다. 골드슈미츠(Goldschmidt)처럼, 진화론은 입증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는 진화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집시나방(gypsy moth)을 기르는데 25년을 소비했다. 그러나 그의 연구는 단단한 벽에 부딪혔다. 몇 대를 거치는 동안 일어났던 어떠한 변화들도, 멸종되거나 또는 원래대로 돌아감으로써 모두 지워져버리는 것이었다. 1940년이 되자, 골드슈미트는 더 이상 연구를 계속할 수 없었다. 그는 일찍이 출판된 글중 진화론에 대한 가장 강력한 공격으로 쓰여진 글을 출판했다. 이것은 종을 뛰어넘는 변화를 유도해보기 위해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 연구했던 전문가가 쓴 글이었다.

골드슈미츠의 이론은 이것이었다. 수천 년에 한번 새로운 종('hopeful monsters')이 갑자기 튀어 나와 (독일어로 'saltated(도약)')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도약이론(saltation theory)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어느 날 엄마 코뿔소가 코끼리를 낳고, 어떤 때는 떡갈나무가 소나무로 자라 도토리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골드슈미츠는 클락(A.H.Clark)이 제창한 'zoogenesis' 이론보다 훨씬 커다란 기적들을 바라고 있었다.

골드슈미츠가 다윈론(자연선택설)과 신다윈론(돌연변이설)에 휘둘렀던 과학적으로 정확한 채찍질이 멍청하고 어리석은 희망적 괴물(hopeful monster) 이론과 결합하여, 진화론자들을 얼떨떨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뭐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이 총체적으로 불가능한 이론에 대해 깊이 알기를 원한다면, '돌연변이'를 보시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pathlights.com/ce_encyclopedia/Encyclopedia/20hist03.htm 

출처 - Encyclopedia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35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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