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는 과학적 사실인가? (생물학적 고찰)

미디어위원회
2004-07-26

진화는 과학적 사실인가? (생물학적 고찰)

한성 


      1859년 찰스 다윈(C. Darwin) 이 '종의 기원'을 발표한 이후 오늘날까지 그의 진화론은 생물학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철학,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서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창조주를 과학의 분야에서 제거하려는 시도가 인본주의적 세계관과 결합하여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빠르게 전파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진화론은 현재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세계관을 정립하는데 있어서 지금까지의 어떠한 사고방식보다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현재의 진화론은 이론의 단계를 넘어서서 하나의 완전한 법칙으로까지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막강한 영향력 때문에, 과학자들은 진화론이 너무나도 불완전한 가설임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이 불완전함을 진화론적 사고 안에서 조금씩 수정함으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려 하고 있다. 이번 장에서는 이러한 진화론의 허구성을 진화론의 근간이 되는 생물학적인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1.진화론 개요

사실 이러한 진화론 사상은 기원전 5, 6 세기부터 그리스의 자연 철학자들 간에도 있었다. 이를테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은 간단하고 불완전한 것으로부터 복잡하고 완전한 것으로 변하려고 애쓴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다윈 이전에는 이러한 진화론적 사고는 극히 일부 박물학자들만의 것이었으며,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창조론적 사고가 압도적으로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이러한 창조론적 세계관이 급격히 바뀌게 된 것은 1859년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하고 난 이후 부터였다. 청년 시절에 그는 박물학자로서 영국 측량선 비글호를 타고 5년 동안 전세계를 항해하면서 동식물들을 관찰하였고, 그때부터 진화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후 20여년간 널리 자료를 수집하여 1859년 11월 24일 ‘자연도태에 의한 종의 기원, 또는 생존경쟁에서 살아 남는 종의 보존에 대하여’ 라는 긴 제목의 책을 출판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다윈이 말한 진화론을 간단히 정리해 보면, 그는 다음과 같은 대략 5단계의 연역적 체계로 그의 이론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출발점은 ①생물은 일반적으로 많은 새끼를 낳는다는 사실이다. 다음은 ②수가 많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는 격심한 생존경쟁이 일어난다. 그런데 ③그들 중에는 변이를 수반하는 것들이 있어서 그 변이는 생존경쟁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 결과 ④유리한 변이를 일으킨 변종은 살아남을 가능성은 극히 적지만 진화의 가능성은 높아진다. ⑤이러한 과정이 오랜 시간동안 반복되어 그 변종은 드디어 해당 종 내에서 다수파가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종의 탄생, 즉 종의 진화인 것이다.

다윈은 이 이론의 출발점인 다산성과 생존경쟁에 대해서 맬서스(T. Malthus) 의 '인구론'에서 암시를 받았다. 멜서스는 그의 저서에서,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나, 식량은 직선적으로 밖에 증가하지 않아서 그 결과 생존경쟁이 일어난다고 논하였다. 다윈은 이것을 읽고, 인구와 식량의 차이는 인간 뿐만 아니라 생물전체에 해당한다고 사고를 확장하여 그의 이론을 전개해 나갔다.

그 다음 단계가 생물의 변이인데, 사실 다윈의 세대에선 예는 들고 있었지만 이것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것이 1901년 드 브리스(De Vries)가 큰 달맞이꽃의 연구에서 돌연히 나타난 형질이 자손에게 유전된다는 돌연변이 형질을 발견하자 사람들은 이것을 다윈의 진화론에 접목시켰다.

그러나 다윈은 이러한 변이와 변이의 유전에 대한 구체적인 기작을 설명하지 못하고, 단지 세포 내에는 '젬뮬(gemmule)' 이라는 입자가 함유되어 있어 이것이 증식하거나 다른 세포로 이동하여 변이와 유전이 일어난다는 '팬제네시스(pangenesis)'라는 가설을 세웠다. 이러하던 것이 1900년 멘델(G. J. Mendel) 의 '유전의 법칙'이 세상에 알려지고부터, 유전자(gene)가 젬뮬의 개념을 대체하게 되었다.

20세기 전반에 들어와서 사람들의 돌연변이와 유전의 법칙에 대한 이해가 늘어가자 여러 가지 새로운 이론들이 나타나게 된다. 그 중의 한 분야가 '집단유전학'이다. 집단 유전학이 진화론과 결합하여, 진화의 기본단위는 '개체'가 아닌 '집단'이며, 집단 중에서도 변화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소집단'이 '대집단'을 대신하여 진화의 단위라는 개념이 생겨나게 된다. 소집단 생성원인으로 '격리' 라는 개념이 도입되고, 이 격리는 다시 지리적 격리와 생식적 격리로 이분화된다.

이러한 돌연변이, 유전, 소집단, 격리 그리고 다윈 진화론을 종합하여 이른바 '종합설(modern synthesis theory)' 이 탄생하게 된다. 이 종합설이 현대 진화론의 근간을 이루게 된다. 또한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의 근간이 바로 이 종합설이다.

종합설에서는 진화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고 있다. 변이가 비교적 단기간에 무 방향으로 소규모로 일어나서 종 내의 변이를 유발할 때를 '소진화 (microevolution)' 라고 하며, 자연 선택된 집단이 격리에 의해 오랜 시간동안 일정한 방향으로 크게 진화하여 종을 뛰어넘는 변이를 유발할 때를 '대진화 (macroevolution)' 라고 한다. 예를 들어 다양한 품종의 개나 말 등이 나타나는 것이 소진화이고, 파충류에서 조류나 포유류로 변하는 것을 대진화라고 한다. 또한 이러한 소진화들이 축적되어 대진화가 일어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단세포 동물로부터 모든 동식물이 진화할 수 있다는 대진화의 기본 골격은 소진화의 개념을 확대한 것이 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대략적으로 살펴본 진화론이 과연 얼마나 설득력 있는 가설인지, 과연 그것이 현재와 같은 '법칙'으로 인정될 수 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2. 현대 진화론에 대한 고찰

현대 진화론에서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논법을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다산 ⇒ 생존경쟁 ⇒ 변이 ⇒ 자연선택 (자연도태) ⇒ 진화

다산과 생존경쟁은 지금도 관찰되고 있는 확실한 사실이다. 그것들의 인과관계도 대략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부터이다. 변이, 자연선택 그리고 진화...

지금부터 각각의 단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고자 한다.

 

A. 돌연변이 (mutation)

변이는 자연선택과 더불어 진화론의 가장 기본이 되는 논거이다. 변이의 메커니즘으로 진화론자들이 제시하고 있는 것이 돌연변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먼저 돌연변이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돌연변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유전자의 개념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유전자란, 간단히 말해 생명체를 만드는 설계도와 같다. 그 설계도를 기초로 여러 가지 생체 현상이 일어나 하나의 생명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어쩌면 유전자가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겠다. 왜냐면, 누군가가 만든 것과 저절로 생겨난 것의 가장 큰 차이점은 그것을 만드는 데 사용된 설계도가 있는가, 없는가 이기 때문이다.

분자생물학의 급속한 발달로 오늘날 우리는 유전자를 분자수준에까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유전자는 DNA라는 이중 나선 구조로 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얇은 필라멘트인데, 세포 한 개 속에 들어있는 DNA의 길이는 약 1.7 m로 우리 키와 거의 같다 (그림 1). 우리 몸은 약 60~100조 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것을 다 연결하면 지구에서 태양까지 여러 번 왕복할 만큼 길다. 그런데도 무게는 1g 도 되지 않는다. 이 DNA의 구조는 이중나선으로 되어 있고 이것은 다시 4개의 염기, 즉 아데닌(A), 구아닌(G), 티민(T), 사이토신(C)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염기들이 A:T G:C로 쌍을 이루어 이중나선 구조를 이루게 된다. 이러한 DNA가 꼬이고 꼬여 핵 속에 저장되어 있는 형태를 염색체라고 한다.

핵 속에 들어있는 염색체가 여러 가지 외부의 요인, 즉 자외선, X-선, 화학물질 세포내의 대사과정의 고장 등에 의해 파괴되거나 변형되어 일어나는 것이 바로 돌연변이이다.

앞에서 설명한 종합진화설에 있어서는, 생물에게 유리한 돌연변이가 야기되면 그것은 반드시 자연도태를 거치면서 생물집단으로 퍼진다고 본다. 여기서 말하는 유리한 돌연변이란, 생물의 번식률이나 생존율을 높이는 돌연변이를 뜻한다. 다윈론적인 사고에서는 새로운 종이 형성될 수 있는 돌연변이는 생물에게 유리해야만 하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이를 위하여 수많은 실험을 행해왔다. 가장 많은 실험재료로 사용된 것은 초파리(Drosophila)이다. 초파리는 여름에 흔히 볼 수 있는 과일껍질에 몰려드는 빨간 눈의 작은 파리이다. 미국의 유전학자 모건(T. H. Morgan)은 이 초파리로 돌연변이 연구를 한 최초의 과학자이다.

그는 초파리에 X-선을 쬐어 주면 엄청나게 다양한 모습의 돌연변이가 생성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고, 이것은 유전자에 의해 자손으로 이어져간다는 것을 관찰했다. 멘델의 유전법칙을 최초로 증명한 것이었다. 그는 이 업적을 인정 받아 1933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러나 돌연변이의 실험적 연구가 계속됨에 따라 밝혀진 사실은, 모든 돌연변이는 아무리 보아도 생물이 살아 나가는 데 유리하다고 보여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림 2). 1945년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탄으로 발생된 돌연변이의 경우 백혈병, 기형, 죽음 등 치명적인 증상만 보여주었지 유리한 돌연변이는 하나도 관찰되지 못했다. 진화론의 주장대로라면 오존층의 파괴가 오히려 반가운 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자외선과 우주선에 강한 새로운 종의 출현으로 인해 진화론을 설명할 수 있으니 말이다. 환경오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돌연변이 하면 떠오르는 것이 흉측한 괴물이지, 아름답고 유익한 생물체로 떠올리지 않는다.

생명은 이러한 사실을 인간보다도 먼저 인식했다. 아니 하나님께서는 이 사실을 미리 아셨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하셨을 때부터 모든 생명의 설계도인 유전자를 쉽게 변하지 않는 아주 안정한 상태로 유지하게끔 만들어 놓으셨다. 돌연변이가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여러 가지 장치들을 마련해 두셨던 것이다. 세포는 핵 내에서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교정하는 완벽한 교정장치(repair system) 를 가지고 있다. 세포는 여러 가지 효소와 단백질이 관여하여 돌연변이가 일어난 장소를 찾아내어 그것을 제거한 뒤 새롭게 합성하는 놀라운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가장 단순한 단세포 생물인 대장균(E. coli)까지도 이러한 완벽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만약 생명체가 돌연변이를 진화의 메커니즘으로 이용해왔다면 이러한 교정장치가 있을 필요가 없다.

초파리로 돌연변이 실험을 한지 거의 1세기가 다 되어가지만, 지금까지 초파리가 아닌 다른 종의 생명체가 나타나진 못하고 있다. 미생물학자들이 지금까지 박테리아로 수없이 많은 연구를 해 왔지만, 비록 성질은 변화시킬 수 있었어도, 돌연변이에 의해 박테리아가 아닌 전혀 다른 종의 생물을 만들어 내진 못했다. 즉 수평적인 변이는 일어나도 진화론이 뜻하는 수직적인 변이는 일어나지 않는 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야생동물을 자연상태에 내버려 두어도 자기 종류들 내에서만 번식해 간다. 간혹 잡종이 생길 수 있으나 잡종들은 그 당대에서 끝나고 더 이상 번식을 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말과 당나귀는 사로 다른 종이지만, 인공적으로 교배시켜 노새가 생기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노새는 번식을 하지 못한다. 식물이나 동물세계에서 혹 인공적으로 더 나은 품종을 개발했다 해도 대개 번식력이 약화되어 몇 세대 이상 가지 못하거나 존속하기 힘든 약체가 된다. 1845년 다윈이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관찰, 연구했던 그 유명한 13종의 핀치새는 오늘날도 여전히 13종의 같은 핀치새로 남아있다.

현대의 상당수의 진화론자들은 이 생각에 동의하고 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중립 진화설과 바이러스 진화설이다. 두 가지 가설 모두 현대 분자생물학의 눈부신 발전에 의해 생겨난 가설들이다. 이 가설들에 대해서는 뒤에 가서 다시 언급하기로 하자.

 

B. 자연선택 (Natural Selection)

다윈이 넘어야 했던 가장 큰 걸림돌 중의 하나는 생명체는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창조론이었다. 그는 자신의 진화론에 자연선택이라는 개념을 큰 지주로 삼음으로써 생명의 기원 문제에 인격적인 존재를 배제할 수 있었고, 그로 말미암아 지구상의 모든 생물 종들은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산물이 아니라 우연적으로 생겨난 것이라고 하는,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새로운 사상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그러나 자연을 하나님의 자리에 대신하여도 여전히 문제는 발생한다. 진화론에 따르면, 자연은 환경에 잘 적응하고 유리한 돌연변이 형질은 선택하고 해로운 것은 도태시켜, 오랜 세월이 지나면 한 종류의 생물체가 결국 더 진보된 다른 종류로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자연계에서의 돌연변이든 X-선이나 자외선을 사용한 인위적인 돌연변이든, 현재에 이르기까지 생존경쟁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 같은 돌연변이는 찾아볼 수 없다. 더욱이 생물의 종이란 벽을 넘어서 새로운 종이 탄생하는 것 같은 돌연변이는 전혀 없었다. 적자생존이나 자연선택의 진정한 뜻은 존재하는 것들 중에서 가장 유리한 것들이 살아남는다는 것이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생물체가 환경에 잘 적응해야 살아갈 수 있다는 원칙은 진화론 뿐 아니라, 온 생물체 존속의 원리라고도 볼 수 있다. 자연선택, 적응, 적자생존 등은 환경이 생물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은 보여주지만, 그것이 아메바에서 사람까지 진화했다는 대진화의 메커니즘은 될 수 없다.

자연 선택에 관하여 진화론자들이 자주 내세우는 증거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영국에서 발견된 회색 가지나방이라는, 나방의 체색깔이 공업화에 따라 검게 되었다는 공업암화(Industrial Melanism)라는 현상이다 (그림 3).

대기오염은 나무껍질에 붙어 있는 지의류를 말려 죽인다. 그 결과로 공업 지대인 리버풀 근교의 떡갈나무 숲에는 지의류가 거의 자라지 않으므로 떡갈나무가 검은 색을 띄고 있다. 따라서 검은 색의 회색 가지나방이 잘 적응하게 된다. 이 검은 회색 가지나방은 밝은 무늬의 야생 나방보다 새에게 잘 포식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에 걸쳐 잉글랜드의 공업지대에서는 자연선택에 의해 회색 가지나방은 거의가 검은 색의 나방으로 변해 버렸다. 이 현상을 진화론자들은 자연선택의 대표적인 예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 대기오염이 개선됨에 따라, 다시 검은 나방과 밝은 무늬의 나방을 동일한 비율로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진화의 절대조건의 하나는 변화한 형질이 절대로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진화는 불가역적인(irreversible) 현상이다. 환경의 선택에 의해 검게 된 회색 가지나방이 다시 원래의 밝은 색으로 되돌아갔다는 사실은 이 현상이 자연선택이 아닌 단순한 가역적인(reversible) 적응에 불과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설사 이러한 변이가 적응이 아닌 유전적인 변화라고 해도 이러한 변화는 어디에서든 관찰할 수 있다. 아프리카에 사는 한국인이 한국에 사는 한국인보다 더 검은 것은 사실이다. 아프리카의 한국인의 경우, 멜라닌(melanin)을 합성하는 효소가 환경에 의해 더 많이 발현되었다는 것은 실험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자연선택의 증거가 되진 않는다. 그것은 단지 개체의 가역적인 적응이었을 뿐이다.

사자와 얼룩말의 예를 들어보자. 사자가 얼룩말 무리를 습격하면 얼룩말은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사자는 전력을 다해 쫓아간다. 다윈식으로 말하면, 발이 빠른 얼룩말은 살아 남고, 발이 느린 얼룩말이 먹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얼룩말은 자연선택에 의해 점점 빨리 달리도록 진화할 것이고, 그에 따라 사자도 느린 사자는 도태되어 버리고, 빠른 사자만 살아 남아, 결국엔 사자도 빨리 달리도록 진화할 것이다. 그 결과 옛날의 얼룩말과 사자의 빠르기보다 오늘날의 사자와 얼룩말의 속도는 훨씬 빨라질 것이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 옛날과 오늘날의 사자와 얼룩말의 빠르기는 동일하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자는 느린 말만 골라서 습격하는 것이 아니라, 맨 처음 눈에 띈 목표를 향에 단숨에 습격한다. 사자는 순발력은 강하나, 지구력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사자에게 눈에 띈 얼룩말은 단순히 운이 나빴을 뿐이다. 다시 말해, '적자생존'이 아니라 '운 좋은 자의 생존'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C. 진화

다윈은 그의 가설의 마지막을 앞에서 살펴본 과정의 오랜 시간에 걸친 반복으로 새로운 종이 탄생한다고 결론짓고 있다. 즉 자연선택에 유리한 돌연변이가 연속적으로 일어나서 그것들이 축적됨으로써 비로소 진화한다는 것이다. 앞의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이 거짓이라면 더 이상 이 문제는 논의할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래도 '만약'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이 일어난다고 가정하더라도, 마찬가지로 문제가 발생한다.

가장 쉽게 이해하기 위해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파충류에서 조류로 진화하려면 앞다리가 날개로 진화해야 하는데, 이와 같은 큰 변화가 생기려면 많은 돌연변이가 질서 정연하게, 그리고 동시에 한 개체에 축적되어야 한다. 날개가 형성될 뿐만 아니라, 그 날개를 움직이기 위해 뇌도 동시에 진화해야 하고, 뼈의 구조를 변화 시켜 더욱 가볍게 해야 하고, 공기저항을 적게 할 수 있는 체형의 변화도 수반되어야 하고, 비늘에서 깃털로 바뀌어야 한다 (그림 4). 해부학적으로 살펴보면 새와 파충류의 심혈관계의 구조는 완전히 반대이다. 폐의 구조도 전혀 다르다. 파충류에서 새가 되기 위해선 이러한 변화들이 한 개체에 목적에 맞게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과연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다윈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한대의 시간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시간이 무한대로 주어진다고 가정해도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믿는 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 보다 더 큰 믿음을 소유해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3. 진화의 증거 자료에 대한 고찰

A. 계통 분류학적인 측면

계통 분류에 대해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모든 생물체 사이에서 볼 수 있는 보편적인 특징, 즉 그룹과 그룹간의 종속관계"라고 정의 내렸다. 다시 말하자면, 기본적으로 특성이 비슷한 생물체들끼리 그룹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개념은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 때부터 시도되어왔다. 그러던 것이 18세기 이후부터 근대 생물학의 등장과 함께 생물학적인 지식이 점점 축적되게 되고, 그러한 지식들을 기초로 자연의 질서 있는 계층구조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되면서 급격히 발전해 왔다. 그러한 시기에 진화론이 등장하게 되고, 단순한 것에서부터 복잡한 것으로의 점진적인 변화를 주장하는 진화론과 계통분류학의 계층구조적 양상이 비슷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진화론에 있어서 없어선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증거중의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현대 진화론자들도 이 계층 분류학적 측면을 진화론을 전개하는 가장 강력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칼 한 것은 계통분류라는 개념이 오히려 창조론적인 측면을 더욱 강력하게 증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계통분류에 대해 알아보고 과연 이것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기로 하자.

초기의 계통분류학자들은 분류기준으로 주로 해부학적인 유사성, 상동기관, 상사기관, 생식범위 등 주로 외적으로 관찰 가능한 기준들을 사용해 왔다. 그런데 요즘은 분자 생물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DNA 염기서열, 단백질 아미노산 서열 등 미시적 관점에서의 종 분류를 가능케 하고 있다.

이러한 분류기준으로 분류된 것들을 진화론자들은 '진화 계통수' (그림 5) 라는 분류구도로 표현한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처럼 이 계통수가 진화의 직접적인 증거라고 주장할 경우에는, 진화의 순서처럼 연속적인 배열형태로 분명히 나타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 자연 속에 존재하는 어떠한 생물상도 그러한 양상을 보이지 않고 있다. 쉽게 이야기하면, 계통수에 나타나는 마디, 즉 가지 쳐 뻗어나가는 각각의 마디라는 것은, 진화론자들의 주장 대로라면 실제로 존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있음 직한 가상의 조상형을 거기 끼워 넣은 것뿐이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현재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상은 진화 계통수에서 가장 끝단에 위치해 있고, 그러한 생물상은 거의 대등한 사촌 관계이며 어느 한쪽이 다른 한 쪽의 조상이라든가 후손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 분명히 나타나 보인다. 실제 진화론이 등장하기 이전의 분류학자들은, 자연계에 나타나는 너무나도 계층적인 체계와 개개의 생물군들에 나타나는 독립적인 특징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라고 이야기했다.

다윈 자신도 자연계의 분류체계가 너무나도 질서 정연하다는 것을 보고 매우 의아하게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그렇다면 왜 진화론자들은 이것을 진화론에 대한 증거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그들 자신의 선입관적인 편견을 배제하지 않은 채, 즉 생물은 진화했다는 가정을 먼저 한 다음 생물계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들어서 가능한 모든 편견을 배제하고 생물계를 바라보려는 시각들이 늘어나면서, 계통분류에 관한 새로운 이론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한 이론들을 하나하나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관점을 한마디로 이야기한다면 다음과 같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떠한 생물상도 더 진화되고, 덜 진화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들이 존재하는 환경에 가장 적합하게 진화되어 왔고, 따라서 진화계통수에서도 가장 끝 단에 위치할 수밖에 없다." 비록 그들은 진화론적인 개념으로 설명했지만, 달리 말한다면 "그들이 존재하는 환경에 가장 적합하도록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계층 구조적인 양상은 흔히들 추정하고 있는 것처럼 생물진화를 직접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즉, 무작위적이고 방향성 없는 진화적 과정과 같은 것에 의해 자연적으로 계층구조적 양상이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질서가 실제 자연계에 나타난다는 것은 한 분의 설계자에 의해 설계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납득할 만한 생각인 것이다.

 

B. 해부학적 유사성 (상동기관은 무엇을 증거하는가?)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진화론에 대한 강력한 증거의 하나로 상동현상을 채택하여 그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 당시의 생물학적인 지식으론 다윈의 이러한 주장이 상당히 설득력 있었음에 틀림없다. 또한 그 당시의 생각으론 이러한 다른 종간의 유사성이 골격구조 뿐 만 아니라 모든 생물형태에서 관찰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생물학적인 지식이 점점 축적되면서 그들의 생각을 지지하기 보다는 반대하는 쪽으로 밝혀지고 있다.

비록 골격구조를 비교해 보면 종간의 유사성이 매우 잘 관찰된다고 해도 다른 형태-예를 들면, 심장 혈관계, 호흡기, 신경계-들을 비교해 보면 종간의 유사성을 도저히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다른 종과는 구별되는 불변의 독특한 성질에 의해 구별된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척추동물의 심장 혈관계를 형태학적으로 관찰했을 때 어류, 양서류, 파충류, 포유류에 이르는 명확한 계통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진화론적인 관점이다. 그러나 그러한 계통체계를 조금만 자세히 관찰해 보아도 이러한 진화론적 연속성을 반박할 수 있는 비교 해부학적인 증거를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그 중 하나를 대동맥궁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림 6). 포유류에서는 산소를 함유한 혈액을 심장에서부터 전신에 보내는 대동맥이 좌측 제4동맥궁인 반면, 파충류에서는 우측 제4동맥궁이다. 혈액의 진행방향이 서로 반대라는 것이다. 파충류에서 포유류로의 점진적인 변화를 상상해 본다면 온 몸의 혈관계가 우측에서 좌측으로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골격구조는 비슷하지만 혈관계는 오히려 완전히 반대이다. 이러한 현상을 진화론자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호흡기도 마찬가지다. 조류와 파충류의 폐의 구조를 비교해 보면 그건 하늘과 땅 차이다. 파충류는 공기가 들어가는 입구와 출구가 하나인 반면, 조류는 입구와 출구가 각각 다르게 존재한다. 파충류는 허파꽈리에서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교환이 일어나지만 조류는 측기관지라는 독특한 기관에서 일어난다 (그림 7).

파충류에서 조류로의 진화는 폐의 구조적인 측면에서 볼 땐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상동구조가 진화를 증거하지 않는다는 또 다른 증거는 발생학에서 관찰된다. 상동구조가 그 발생과정도 상동현상으로 진행된다면 상동현상에 대한 진화론적 증명은 타당해 질 수 있으나 사실은 그 반대라는 것이다. 실제 상동 기관들은 서로 다른 경로로 발생한다는 것이 관찰되었다.

이러한 것들을 생각해 보면 해부학적 유사성이 과연 진화의 증거로 채택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자동차를 보면 작은 경승용차를 비롯해서 소형차, 중형차, 대형차, 트럭, 버스 등, 다양한 차종이 있음을 관찰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차들은 공통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바퀴도 4개이고, 몇 기통 이냐가 다르지 거의 비슷한 구조를 가진 엔진이 장착되어 있고, 헤드라이트가 2개이고... 수많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보고 작은 차에서 큰 차로 오랜 세월에 걸쳐서 진화해 왔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할까? 아니면 표준 설계도를 기초로 한 회사에서 약간씩 변형을 주어 다른 종류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타당할까?

해부학적인 유사성이 무엇을 증거하는가 하는 것은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전혀 논쟁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것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데 있다. 그 사람이 가진 시각은 바로 그 사람이 가진 세계관을 반영한다. 그 사람이 진화론적인 세계관을 가진다면, 어떠한 객관적인 사실도 진화론적인 세계관이라는 색안경을 끼고서 진화론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C. 분자생물학적 증거

다윈의 '종의 기원'이 발표된 이래로 진화론자들은 종과 종을 연결하는 중간형의 화석을 발견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화석 기록을 수집하면 할수록 중간형은 발견되지 않고 오히려 생물계는 너무나도 불연속적이라는 사실만 더욱 확실해졌다. 그러한 가운데 분자생물학이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어, 생물계의 비교를 더 이상 화석기록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지게 되었다.

1950년대 후반 들어서, 생명체를 구성하고 있는 단백질은 20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단백질마다 그 아미노산의 배열이 모두 다르고, 또한 같은 단백질이라도 종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두 생물간을 비교할 때, 특정 단백질의 아미노산 배열을 비교하여 그 차이를 결정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의 배열의 차이를 백분율 (%) 로 나타내면서 정량화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은 새로운 발견들이 종 사이의 차이를 정확히 정량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하였다. 화석을 붙잡고 있던 진화론자들에겐 이 소식은 복음과 같은 것이었다. 마침내 연결 고리 및 일어버린 중간형에 대한 객관적인 증거를 찾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객관적인 자료가 축적될수록 오히려 이러한 정량적인 생물분류는 종간의 불연속성을 증거하는 모습을 나타내었다.

가장 많은 비교의 수단이 되고 있는 사이토크롬 C (Cytochrome C)라는 단백질을 예로 들어보자. 그림을 자세히 보자 (그림 8). 언뜻 보면 하등생물로부터 고등생물까지의 아미노산 배열차이가 연속성을 띠는 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해 보면 어느 아미노산 배열이든 종과 종 사이의 중간형으로 간주되는 것은 없다. 한 종에서의 아미노산 배열은 다른 종과 항상 같은 거리만큼 떨어져있다는 것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그림에는 전이형태나 중간형의 배열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림 9) 가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박테리아와 진핵생물들과의 비교를 보면 그 사이에 어떠한 중간형도 존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즉 모든 진핵생물들은 세균으로부터 같은 거리만큼 떨어져 있는 것이다.

진핵생물끼리의 비교도 마찬가지다 (그림 9-C). 비록 원핵생물과 진핵생물과의 비교 보다는 짧게 나타나긴 하지만 모두가 똑같은 거리만큼 떨어져 있고 그 사이에 중간형으로 보이는 것은 하나도 없다. 사이토크롬의 아미노산 배열의 차이점으로부터 생물계를 몇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이러한 구분은 비교 해부학적 분류의 결과와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고, 마찬가지로 각각의 생물군은 다른 종으로부터 명확하게 떨어져 있다. 어느 종도 중간형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다른 종과 부분적으로 혼합된 경우란 없다. 분류계층의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종간의 격리현상은 더 강해진다. 그런데 아래쪽에 위치한 척추동물 간의 비교 또한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단백질의 유사성 정도를 바탕으로 척추동물을 분류해 보면 턱이 없는 무턱류의 원구류와 고등동물로서 유턱류의 척추동물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림 10). 그림에서 보듯이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진화 계열, 즉 원구류 ⇒ 어류 ⇒ 양서류 ⇒ 파충류 ⇒ 포유류로의 순서가 분자 수준에서는 흔적조차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즉 모든 종이 동일한 거리만큼 떨어져있는 것이다.

단백질뿐 만 아니라, DNA나 RNA의 염기 서열을 비교해 보아도 같은 결과가 얻어진다.

지금까지는 하나의 단백질 분자의 유사성을 서로 다른 종들 사이에서 비교해 보았다. 그러나 하나의 생물체 내에서도 유사한 단백질이 동시에 여러 개가 존재하는 예도 많이 알려져 있다. 예를 들면 혈액을 구성하고 있는 적혈구 내의 헤모글로빈 (hemoglobin) 이 그것이다. 사람에게는 4종류의 헤모글로빈이 존재한다. 그것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a 형, b 형, g 형의 헤모글로빈이고, 나머지 하나는 마이오글로빈 (myoglobin) 이다. 마이오글로빈은 주로 근육 내에 존재하면서 산소를 저장하는 역할을 감당한다. 그리고 a 형과 b 형은 성인의 적혈구 내에 존재하는 형태이고, g 형은 주로 태아나 신생아에게서 발견되는 형태이다. 이 네 가지 단백질들은 아미노산 배열, 형태, 역할 등이 매우 비슷하다. 이러한 현상을 보고 진화론자들은 이 네 가지 단백질들이 공통적인 선조 분자로부터 진화되어 나왔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학교에서 가르쳐지고 있는 대표적인 분자진화의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것 처럼 이 네 종류의 단백질의 아미노산 배열을 비교해 보면 모든 것이 일정한 거리만큼 떨어져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림 11). 마이오글로빈은 나머지 세 분자와 그 분자적 거리 (아미노산 배열의 유사성) 가 모두 같다. 나머지 세 헤모글로빈을 비교해 보아도 각각의 거리는 똑같다. 어느 것이 더 멀거나 가깝다는 것이 전혀 관찰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수천 종류의 단백질과 핵산의 배열이 수백 종의 생물에서 비교되어 왔지만, 어떤 아미노산 배열이 다른 종의 직계 자손이거나 선조였다는 결론은 전혀 관찰되지 않고 있다. 즉 분자 생물학적인 관점에서도 화석과 마찬가지로 진화론자들이 오랫동안 찾아왔던 중간형의 존재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생물학적인 지식이 증가함에 따라 진화론이 더욱더 확실해 진다고 하는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4. 진화론에 관한 새로운 학설들

다윈 이후, 새로운 세기에 접어들면서 과학은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서 눈부실 정도로 급속한 발전을 이룩했다. 다윈은 그것을 예견했고, 그러한 발전에 의해 진화론에 대한 증거들이 속속들이 발견될 것이고 진화론은 더욱더 굳건해 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후자는 그의 예견이 적중했지만, 전자는 그러지 못했다. 과학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그의 이론의 불완전성만이 더욱 대두될 뿐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너무나도 불완전한 이 가설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자 하는 노력들이 대두되었다. 그러한 예들을 설명하고, 불완전한 기반 위에 정립되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그러한 가설들의 불완전성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A. 중립진화설

다윈론의 대전제 중의 하나가 모든 생물은 변이, 즉 돌연변이를 수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돌연변이에 대한 연구 결과가 축적되면 될수록 거의 모든 돌연변이는 생물이 살아가는데 유익하지 않다는 결론을 도출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연선택에 의해 유리한 돌연변이가 축적되어 종 전체에 확산된다는 것이 진화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유리한 돌연변이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이러한 주장은 억지에 불과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진화론자들 또한 이러한 돌연변이의 맹점을 정확히 인식하게 되었고, 그러한 맹점을 극복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중립진화설이다. 이 이론은 1968년에 일본의 '기무라' 가 집단 유전학과 분자생물학을 결합하여 처음 제창하였다. 중립진화설이란 간단히 말해서 유전자의 진화는 다윈이 말하는 생존에 유리한 자연선택에 의해 유발되는 것뿐 만 아니라 생물에게 유리하지도 불리하지도 않은 중립적인 돌연변이가 우연히 확대됨에 따라 야기될 수도 있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을 더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분자생물학적인 지식이 요구된다. 먼저 그에 대해 설명해 보기로 하자. 유전자(DNA)는 4개의 염기가 쌍을 이루어 존재한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설명하였다. 유전자는 단백질을 생성하는 설계도라고 이해할 수 있는데, 4종류의 염기 중 3개가 한 조를 이루어 특정한 하나의 아미노산을 지정하게 된다. 그 3개의 염기를 코돈 (codon) 이라고 한다. 그런데 4개의 염기가 코돈을 이루는 경우의 수는 64인데 반해 아미노산은 20개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여러 개의 코돈이 하나의 아미노산을 지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GAT와 GAC는 세 번째 염기가 틀리지만 아스파라긴산 이라는 동일한 아미노산을 지정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T에서 C로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치환이 일어나더라도 동일하게 아스파라긴산이 만들어지게 된다. 만약 T가 돌연변이가 일어나서 C로 바뀐다 하더라도 실제적인 단백질의 구조와 배열은 전혀 바뀌지 않게 된다. 이러한 현상을 중립적 돌연변이라고 한다. 중립적 돌연변이의 다른 유형도 존재한다. 어떤 단백질을 구성하고 있는 많은 아미노산 중의 하나가 돌연변이에 의해 다른 아미노산으로 바뀌었다고 해도 그 단백질의 기능에는 전혀 영향이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중립적 돌연변이는 실제 생물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기 때문에 돌연변이가 일어난다 하더라도 자연선택과는 무관하게 된다. 따라서 중립적 돌연변이가 오랜 시간 동안 축적이 되더라도 생명체는 변이가 일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상태를 휴식상태라고 표현하는데, 어느 상황이 되면 이러한 중립적 돌연변이가 축적이 되어 생명체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게 되고 그것이 자연선택에 의해 종 전체로 퍼지게 된다는 것이 중립진화설이다. 이 이론으로 돌연변이에 대한 진화론자들의 주장이 더욱 설득력 있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이론 또한 진화론이라는 불완전한 이론을 기반으로 하였기 때문에 커다란 맹점을 안고 있다. 즉 중립진화설은 중립적인 돌연변이가 어떻게 생명체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실제적인 유전자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전혀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중립적인 돌연변이가 오랜 시간동안 축적되어서 드디어 생물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은 곧 유전자의 변화를 수반하는 돌연변이를 뜻하는 것이다. 생명체에게 전혀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는 돌연변이 그 자체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볼 때, 중립진화설은 언어적 유희에 불과한 가설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B. 단속평형설

극히 최근에 들어서 세계적으로 주목 받고 있는 새로운 진화론이 '단속평형설'이다. 이 이론은 고생물학이나 화석학에서 출발하고 있다. 앞에서 다뤘듯이, 진화론자들이 화석기록을 보고 가장 당혹해 하는 것은 그토록 기다리던 중간형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확실한 증거라고 믿었던 화석에서 오히려 종과 종간의 단절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자, 새로운 가설을 세우게 된다. 그것이 단속평형설이다. 1940년대 들어서 미국의 고생물학자 엘드리지(N. Erdridge)가 처음으로 주창한 이론이었는데, 그 당시엔 웃기는 소리라고 사장되었던 것이, 1980년대 들어서 하버드 대학교의 진화생물학자 굴드(S. Gould) 교수에 의해 정리되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굴드의 주장은, 진화는 다윈이 생각했던 것처럼 일정한 속도로 서서히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속평형설에 의하면, 진화는 짧은 기간의 급격한 변화에 의해 야기되나, 그 후는 긴 기간에 걸쳐 생물에는 변화가 생기지 않는 상태가 계속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이론은 다윈의 진화론의 일부를 부정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살아있는 화석(Living Fossil)'이라는 것이 있다 (그림 12). 진화 연대상 몇 억 년 동안이나 전혀 진화되지 않고 옛날의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생물을 뜻한다. 예를 들자면, 실러컨스, 투구게, 앵무조개, 뉴질랜드의 쐐기도마뱀, 은행나무 등 상당히 많은 수의 종들이 지금까지 진화되지 않은 채 태고의 모습대로 현재 살아 남아 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다윈 진화론에서는 생물은 종류에 따라 진화의 속도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여러 지층에 걸쳐 발견되는 화석을 연구하면 생물은 전혀 변화하지 않고 보존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인 것이 바로 단속평형설이다.

단속평형설에 의하면 화석에서 볼 수 있는 종간의 뚜렷한 단절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새로운 종이 형성될 때에 생물은 급격하게 형질이 변하나 그 변화가 일단 완료하게 되면 다시 안정된 상태가 유지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진화론은 생물이 끊임없이 변화한다고 주장한 나머지 생명체의 변화에 대한 저항성, 즉 생물은 변하지 않는다는 생물의 안정성을 너무나도 무시하여 왔다. 만약 다윈 진화론이 옳다면, 진화는 지금도 진행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진화가 현재 진행형인 것이라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이 지구상의 어디에서인가 진화는 진행하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관찰 할 수 있다는 것이 된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그러한 현상을 관찰할 수는 없다. 굴드는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여 생물은 급격히 변화한 다음 (매우 격변적으로) 그 후 안정된 상태를 유지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이론은 반박할 여지조차 없는 것 같다. 그의 이론을 쉽게 설명하자면 도마뱀이 알을 많이 낳았는데, 어느날 그 중의 하나가 날 수 있는 새로 태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림 13). 그러한 격변적 변화를 믿기 위해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보다 더 큰 믿음이 요구될 것 같다.

 

C. 바이러스 진화설

바이러스 진화설은 진화를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이라고 여기는 새로운 유형의 진화 가설이다. 바이러스가 종과 종 사이에서 유전자를 운반하는 도구 역할을 감당하여 유전자의 수평이동을 가능케 하여 진화를 일으킨다는 생각이다. 지금까지의 진화론적 관점은 오직 유전자의 수직적 이동에만 관심을 가졌었는데, 바이러스 진화설에서는 바이러스가 유전자 수평이동의 도구로 등장하여 진화를 유발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진화를 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되는 하나의 유전병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한 가설을 뒷받침해 주고 있는 증거들로 '슈퍼 생쥐 (super mouse)'를 들고 있다. 슈퍼 생쥐란, 사람이 인위적으로 성장호르몬 (growth hormone)을 생산하는 유전자를 생쥐에게 과다하게 주입하여, 성장이 보통 쥐보다 두 배 이상 빠른 생쥐를 의미한다. 이것은 또한 자손으로 유전된다. 여기서 사람의 역할을 바이러스와 자연선택이 감당하여 자연계 내에서도 이러한 일들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린도 이 가설의 입장에서 본다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기린의 목에 관해서, 정통 진화론에서는 목이 긴 기린일수록 높은 나뭇잎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살아 남을 확률이 높고, 그 때문에 조금이라도 목이 더 긴 기린이 자손을 많이 남기게 되므로 목이 길어졌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화석에서는, 목이 짧은 기린과 현존하는 목이 긴 기린의 화석만 출현할 뿐, 중간길이의 화석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정통 진화론의 입장에선 화석발굴의 불충분성을 이유로 들고 있다. 그러나 기린만이 아니라 모든 생물에 대해 중간형의 화석이 출현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무엇을 증명하는가!

이러한 다윈론의 약점을 바이러스 진화설에선 간단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기린은 목이 길어지는 괴이한 바이러스성 전염병에 걸렸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한 얼토당토않은 생각들이 최근의 '점프하는 유전자 (jumping gene)'와 '트랜스포존 (transposon)' 이라는 유전자 조각의 발견으로 상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점프 유전자와 트랜스포존 모두 바이러스처럼 유전자 사이를 건너 다닐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이처럼 종간의 수평적인 유전정보의 교환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것이 종을 뛰어넘는 변화를 야기한다는 것은 지나친 도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바이러스나 여러 도구에 의해 전달된 유전자는 거의가 올바른 유전자가 아닌 파괴된 유전자임이 밝혀져 있다. 바이러스에 의해 생물에 유리한 변화를 가져온 예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없었다. 거의가 생명체에 심각한 손상을 야기하거나 치명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것을 진화론에 도입하는 것은 잘못된 이론을 설명하기위한 그들의 억지일 수 밖에 없다.

 

결론

지금까지 진화론에 대해 생물학적인 견지에서 대략적으로 살펴보았다. 진화론의 불완전성과 허구성을 각각의 진화단계에 따라 분석해 보았으며, 진화론자들이 가장 대표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몇 가지 증거들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그런데 다윈론의 그러한 불완전성과 모순들은 현대 진화론자들 역시 잘 파악하고 있다. 그러한 모순과 불완전성들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가설을 제시하고 있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한지 140여년이 지났는데, 진화론은 더 미궁 속에 빠져드는 느낌이다. 수많은 이론들이 제시되고 있고, 앞으로도 꾸준히 제시될 전망이다. 진화론자들이 그러한 불완전한 진화론을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지는 이유가 뭘까? 더 이상 다른 대안이 없다고 진화론자들은 이야기하고 있다. 만약 진화론을 부정하게 되면 결국 남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밖에 없다. 그러한 사실들을 진화론자들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과학적인 증거의 확실성으로 진화론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하나님을 받아들이기 원치 않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너무나 불완전하고 모순 투성이인 진화론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마음이 바뀌지 않는 한 세상이 끝날 때 까지 그들은 진화론을 붙잡을 것이다. 결국, 진화론과 창조론의 문제는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의 문제일 수 밖에 없다. 내 마음에 하나님을 알기를 소망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의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출처 - 창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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