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본 생명의 발생과 기원
1-1.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
고대 그리스 이오니아(lonia) 학파의 자연철학자들은 열과 공기 그리고 태양에 의해 생물은 우연히 발생하였다고 보았다. 그중 대표적인 철학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물은 양친으로부터 태어나기도 하지만 무생물로부터 우연히 발생하기도 한다는 자연발생설을 주장하였다. 당시에는 실험으로 통한 검증의 단계 없이 관찰만을 통해 바로 학설이 만들어지던 시기였다. 예를 들어 연못 속의 생물들이 물이 마르면 사라져버렸다가 비가 와서 물이 고이면 다시 나타나는 것을 보고, 생물들이 연못 밑바닥의 진흙으로부터 생겨난다고 믿었으며, 또 많은 사람들이 썩은 고기에서 구더기가 생기고, 축축한 흙에서 지렁이가 생긴다고 믿었다. 생명기원에 대한 고대인들의 인식이 세계적으로 동일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연한 계기로 생명이 발생되었다는 생각은 널리 퍼져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진화론적 생명관은 고대 인도의 경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2. 헬몬트(1579-1644)
벨기에의 의학자 헬몬트(4) 헬몬트 Jan Baptistavan Helmont 1577∼1644
인물소개 : 헬몬트
벨기에 화학자·의학자. 브뤼셀 출생. 1599년 루뱅에서 철학과 의학을 공부하고 스위스·이탈리아·프랑스 등지를 여행하였다. 1609년 박사학위를 받고 브뤼셀 근교에 정착하여 빈민에 대한 의료봉사와 화학실험에 전념하였다. 생리·병리현상을 화학적 과정으로 생각하는 P.A.파라켈수스의 사상을 신봉하였으며, 주로 마술적·연금술적 색채의 실험을 수행하였다.
자연발생·만능용매(萬能溶媒)·원소전환(元素轉換) 등을 믿는 한편 물질의 불멸을 확신하여, 산에 녹은 금속이 적당한 수단으로 같은 양의 금속으로 환원될 수 있음을 예시하였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설에 반대하여 기체와 물을 원소로 여겨, 유명한 <버드나무 실험>으로 물이 중요한 원소임을 증명하려 하였으며, 일산화탄소 등을 처음으로 공기와는 다른 물질로 보고 <가스>라는 명칭을 부여하였다. 저서로 《상처 자기요법(1621)》 《의학의 기원(1648)》 등이 있다.는 밀이나 치즈를 더러운 아마포로 덮어두면 생쥐가 태어난다고 주장했다.
1-3. 데카르트(1596-1650)
데카르트는 습기 있는 흙에 햇빛이 비치거나 생물이 부패할 때, 생물은 그 속에서 우연히 발생한다고 보았다.
1-4. 레디(1626-1697)
1668년 레디는 아래의 그림 같은 실험을 하고 처음으로 자연발생설에 대한 반대 의견을 제시하였다. 즉 병 속에 생선을 넣고 하나는 헝겊을 덮어 파리가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다른 하나는 헝겊으로 막지 않아 파리가 자유로이 드나들도록 하면 구더기는 헝겊을 덮지 않은 병의 생선에서만 발생했다. 그는 이와 같은 실험을 통해 생물의 자연발생설을 부인하였다. 레디는 구더기가 썩은 고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파리가 그 위에 낳은 알에서 깨어난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 결과로 자연발생설이 수그러들지는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세계를 보여주는 현미경의 등장으로 인해, 사람들은 생쥐나 구더기는 자연적으로 생겨나지 않지만 미생물들은 자연 발생한다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인물소개 : 레디 Francesco Redi 1626∼1697
이탈리아 의사·박물학자·시인. 토스카나 대공(大公)의 시의(侍醫)로 1668년에 출판된 《곤충에 관한 실험》에서 고기를 천 등으로 씌워 놓고 파리가 알을 낳지 못하게 하면 그 고기가 아무리 썩어도 구더기가 생기지 않는 데서 구더기가 고기에서 자연 발생한다는 것을 부정하였다. 그러나 내장의 기생충과 충영(곤충의 기생으로 이상발육을 하여 혹처럼 된 식물체) 속의 곤충은 자연 발생하는 것으로 믿었다. 과학적 탐구에 쏟은 정열을 문학에도 쏟아, 이탈리아 14세기의 시인에 정통(精通)하였으며, 시작품으로 술의 신(神)을 찬양한 다운율시(多韻律詩) 《토스카나지방의 바커스(1685)》 등이 있다.
1-5. 뷔퐁(1707-1788)
뷔퐁은 진화론자의 시조로 불리운다. 그는 '박물지'라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지구의 최초생명은 약 2만년 전 원시바다에서 우연히 발생한 생명체가 계속 진화를 해 왔다고 주장했다.
1-6. 뿌세(1809-1872)
19세기 프랑스의 뿌세(Pouchet)는 산소와 질소를 혼합한 공기를 만들고, 수소를 태워 물을 만들어 외부로부터의 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실험을 한 후 미생물이 자연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인물소개 : 뷔퐁 (Georges Louis Leclercde Buffon, 1707∼1788)

프랑스의 박물학자·계몽사상가. 부르고뉴의 몽바르 출생. 영국의 자연과학의 급격한 발전에 관심을 갖고, 1년간 영국에서 수학·물리학·식물학을 공부하였다. 1739년 이후 파리의 왕립식물원 관리자가 되어 박물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47년부터 많은 협력을 받아 《박물지》의 간행을 시작하였는데 총 44권이 된다. 그는 <유인원은 인간의 미발달상태 혹은 퇴화한 것>이라는 글을 써서, 진화론의 선구자가 되었다. 또 지구의 나이를 성서보다 길게 상정하여 신학자들의 비난을 사기도 하였다.
1-7. 파스퇴르(1822-1897)

18세기 중엽까지 생물의 자연발생에 대한 논쟁이 매우 활발하였다. 이러한 자연발생설에 대한 길고 지루한 논쟁은 1861년 프랑스의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에 의해 끝이 났다. 그는 고니의 목을 닮은 주둥이를 가진 S자형 플라스크를 만들어 공기는 통하되 박테리아는 들어갈 수 없게 했다. 그리고 플라스크에 고기즙을 넣고 열을 가한 후 식혀 놓았다. 그 결과 플라스크 안에는 어떤 미생물도 자라지 않았다.
미생물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온도와 습도, 공기 및 영양분이 갖추어져야 하며, 이런 조건이 갖추어진 연후에 공기 중에 있는 미생물이 작용해야 한다. 파스퇴르의 S자형 플라스크는 1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생물이 발생하지 않은 상태로 파스퇴르 연구소의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파스퇴르는 생명체는 또 다른 생명(공기중의 미생물)이 함께 해야만 발생된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입증시킨 것이다. 자연발생설을 지지하던 뿌세는 파스퇴르의 실험을 지켜보면서 비로소 파스퇴르의 견해가 타당함을 인정했다고 한다.
인물소개 : (1) 파스퇴르 Louis Pasteur 1822∼1895

프랑스 화학자·미생물학자. 쥐라주 돌 출생.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에서 물리·화학을 공부한 뒤 1849년 스트라스부르대학 화학교수가 되었다. 타르타르산에 의한 광회전성에 대한 연구를 통해 분자 내 원자 배열의 문제에 도달, 화학조성·결정구조·광학활성의 관계를 연구하여 J.H. 반트호프 입체화학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때 생물이 입체이성질(立體異性質)의 한쪽만을 이용, 합성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우주의 <비대칭성>을 강조하였다. 1854년 릴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1857년 젖산균에 의한 젖산 발효를, 1860년 효모에 의한 알코올 발효를 증명하여 발효의 의의를 확립하였다. 1861년 비등점에서 공기를 단절한 플라스크 안에서는 물질이 썩지 않음을 증명함으로써 생물의 자연발생설을 부정하였다.
1862년 아세트산의 발효와 알코올에서 아세트산으로 변하는 것을 연구하여 식초의 새로운 공업적 제법을 확립하였다. 1865년 포도주의 산패(酸敗) 원인균을 연구하여 약 60℃의 저온살균법을 고안함으로써 프랑스의 포도주제조에 크게 공헌하였다. 또 J.B.A.뒤마로부터 누에의 미립자병(微粒子病)과 연화병(軟化病)에 관한 연구를 의뢰받고 연구한 결과, 감염된 병충의 알에 의한 전염예방법 등을 발표하여 양잠업의 어려움을 덜어 주었다. 1867년 소르본대학 교수가 되었다가, 이듬해 뇌출혈로 반신불수가 되었으나, 연구를 계속하여 1877년 탄저병(炭疽病)·패혈증(敗血症)·산욕열(産褥熱) 등의 병원체를 밝혀냈다. 이 연구의 영향을 받은 영국의 외과의사 J.리스터는 외과수술에서 방부법(防腐法)의 응용에 관한 연구를 하게 되었다.
1879년 닭콜레라의 독성을 약화시킨 배양균을 닭에게 주사하면 면역이 된다는 것을 발견하고, 백신접종에 의한 전염병 예방법을 일반화하였다. 1881년에는 양(羊)의 면역실험에 성공하였고, 탄저병 면역에 관한 공개실험을 하여 그 유효성을 실증하였다. 1882년 프랑스학사원 회원이 되었다. 그가 인류에 남긴 최대의 공헌은 광견병백신 제조에 성공한 것으로서, 1885년 광견에 물린 소년에게 처음으로 백신을 접종하여 생명을 구하였다. 1888년에 전 세계로부터 답지된 기부금으로 파스퇴르연구소가 세워져, 초대소장에 취임하였다.
출처 : 야후백과사전
결론 : 이같이 생명이 또 다른 생명에 의해서만 발생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감지할 수 없는 존재가 있으며, 맨 처음 그에 의해 생명이 창조되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반면 우연한 계기로 발생된 원시생명체가 진화와 분화를 거듭하면서 오늘날의 동식물로 나타나게 되었다고 하는 종래의 견해는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었다. 생물이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은 파스퇴르 실험에 의해 입증되었다.
출처 - 창조지
역사로 본 생명의 발생과 기원
1-1.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
고대 그리스 이오니아(lonia) 학파의 자연철학자들은 열과 공기 그리고 태양에 의해 생물은 우연히 발생하였다고 보았다. 그중 대표적인 철학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물은 양친으로부터 태어나기도 하지만 무생물로부터 우연히 발생하기도 한다는 자연발생설을 주장하였다. 당시에는 실험으로 통한 검증의 단계 없이 관찰만을 통해 바로 학설이 만들어지던 시기였다. 예를 들어 연못 속의 생물들이 물이 마르면 사라져버렸다가 비가 와서 물이 고이면 다시 나타나는 것을 보고, 생물들이 연못 밑바닥의 진흙으로부터 생겨난다고 믿었으며, 또 많은 사람들이 썩은 고기에서 구더기가 생기고, 축축한 흙에서 지렁이가 생긴다고 믿었다. 생명기원에 대한 고대인들의 인식이 세계적으로 동일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연한 계기로 생명이 발생되었다는 생각은 널리 퍼져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진화론적 생명관은 고대 인도의 경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2. 헬몬트(1579-1644)
벨기에의 의학자 헬몬트(4) 헬몬트 Jan Baptistavan Helmont 1577∼1644
인물소개 : 헬몬트
벨기에 화학자·의학자. 브뤼셀 출생. 1599년 루뱅에서 철학과 의학을 공부하고 스위스·이탈리아·프랑스 등지를 여행하였다. 1609년 박사학위를 받고 브뤼셀 근교에 정착하여 빈민에 대한 의료봉사와 화학실험에 전념하였다. 생리·병리현상을 화학적 과정으로 생각하는 P.A.파라켈수스의 사상을 신봉하였으며, 주로 마술적·연금술적 색채의 실험을 수행하였다.
자연발생·만능용매(萬能溶媒)·원소전환(元素轉換) 등을 믿는 한편 물질의 불멸을 확신하여, 산에 녹은 금속이 적당한 수단으로 같은 양의 금속으로 환원될 수 있음을 예시하였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설에 반대하여 기체와 물을 원소로 여겨, 유명한 <버드나무 실험>으로 물이 중요한 원소임을 증명하려 하였으며, 일산화탄소 등을 처음으로 공기와는 다른 물질로 보고 <가스>라는 명칭을 부여하였다. 저서로 《상처 자기요법(1621)》 《의학의 기원(1648)》 등이 있다.는 밀이나 치즈를 더러운 아마포로 덮어두면 생쥐가 태어난다고 주장했다.
1-3. 데카르트(1596-1650)
데카르트는 습기 있는 흙에 햇빛이 비치거나 생물이 부패할 때, 생물은 그 속에서 우연히 발생한다고 보았다.
1-4. 레디(1626-1697)
1668년 레디는 아래의 그림 같은 실험을 하고 처음으로 자연발생설에 대한 반대 의견을 제시하였다. 즉 병 속에 생선을 넣고 하나는 헝겊을 덮어 파리가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다른 하나는 헝겊으로 막지 않아 파리가 자유로이 드나들도록 하면 구더기는 헝겊을 덮지 않은 병의 생선에서만 발생했다. 그는 이와 같은 실험을 통해 생물의 자연발생설을 부인하였다. 레디는 구더기가 썩은 고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파리가 그 위에 낳은 알에서 깨어난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 결과로 자연발생설이 수그러들지는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세계를 보여주는 현미경의 등장으로 인해, 사람들은 생쥐나 구더기는 자연적으로 생겨나지 않지만 미생물들은 자연 발생한다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인물소개 : 레디 Francesco Redi 1626∼1697
이탈리아 의사·박물학자·시인. 토스카나 대공(大公)의 시의(侍醫)로 1668년에 출판된 《곤충에 관한 실험》에서 고기를 천 등으로 씌워 놓고 파리가 알을 낳지 못하게 하면 그 고기가 아무리 썩어도 구더기가 생기지 않는 데서 구더기가 고기에서 자연 발생한다는 것을 부정하였다. 그러나 내장의 기생충과 충영(곤충의 기생으로 이상발육을 하여 혹처럼 된 식물체) 속의 곤충은 자연 발생하는 것으로 믿었다. 과학적 탐구에 쏟은 정열을 문학에도 쏟아, 이탈리아 14세기의 시인에 정통(精通)하였으며, 시작품으로 술의 신(神)을 찬양한 다운율시(多韻律詩) 《토스카나지방의 바커스(1685)》 등이 있다.
1-5. 뷔퐁(1707-1788)
뷔퐁은 진화론자의 시조로 불리운다. 그는 '박물지'라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지구의 최초생명은 약 2만년 전 원시바다에서 우연히 발생한 생명체가 계속 진화를 해 왔다고 주장했다.
1-6. 뿌세(1809-1872)
19세기 프랑스의 뿌세(Pouchet)는 산소와 질소를 혼합한 공기를 만들고, 수소를 태워 물을 만들어 외부로부터의 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실험을 한 후 미생물이 자연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인물소개 : 뷔퐁 (Georges Louis Leclercde Buffon, 1707∼1788)
프랑스의 박물학자·계몽사상가. 부르고뉴의 몽바르 출생. 영국의 자연과학의 급격한 발전에 관심을 갖고, 1년간 영국에서 수학·물리학·식물학을 공부하였다. 1739년 이후 파리의 왕립식물원 관리자가 되어 박물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47년부터 많은 협력을 받아 《박물지》의 간행을 시작하였는데 총 44권이 된다. 그는 <유인원은 인간의 미발달상태 혹은 퇴화한 것>이라는 글을 써서, 진화론의 선구자가 되었다. 또 지구의 나이를 성서보다 길게 상정하여 신학자들의 비난을 사기도 하였다.
1-7. 파스퇴르(1822-1897)
18세기 중엽까지 생물의 자연발생에 대한 논쟁이 매우 활발하였다. 이러한 자연발생설에 대한 길고 지루한 논쟁은 1861년 프랑스의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에 의해 끝이 났다. 그는 고니의 목을 닮은 주둥이를 가진 S자형 플라스크를 만들어 공기는 통하되 박테리아는 들어갈 수 없게 했다. 그리고 플라스크에 고기즙을 넣고 열을 가한 후 식혀 놓았다. 그 결과 플라스크 안에는 어떤 미생물도 자라지 않았다.
미생물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온도와 습도, 공기 및 영양분이 갖추어져야 하며, 이런 조건이 갖추어진 연후에 공기 중에 있는 미생물이 작용해야 한다. 파스퇴르의 S자형 플라스크는 1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생물이 발생하지 않은 상태로 파스퇴르 연구소의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파스퇴르는 생명체는 또 다른 생명(공기중의 미생물)이 함께 해야만 발생된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입증시킨 것이다. 자연발생설을 지지하던 뿌세는 파스퇴르의 실험을 지켜보면서 비로소 파스퇴르의 견해가 타당함을 인정했다고 한다.
인물소개 : (1) 파스퇴르 Louis Pasteur 1822∼1895
프랑스 화학자·미생물학자. 쥐라주 돌 출생.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에서 물리·화학을 공부한 뒤 1849년 스트라스부르대학 화학교수가 되었다. 타르타르산에 의한 광회전성에 대한 연구를 통해 분자 내 원자 배열의 문제에 도달, 화학조성·결정구조·광학활성의 관계를 연구하여 J.H. 반트호프 입체화학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때 생물이 입체이성질(立體異性質)의 한쪽만을 이용, 합성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우주의 <비대칭성>을 강조하였다. 1854년 릴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1857년 젖산균에 의한 젖산 발효를, 1860년 효모에 의한 알코올 발효를 증명하여 발효의 의의를 확립하였다. 1861년 비등점에서 공기를 단절한 플라스크 안에서는 물질이 썩지 않음을 증명함으로써 생물의 자연발생설을 부정하였다.
1862년 아세트산의 발효와 알코올에서 아세트산으로 변하는 것을 연구하여 식초의 새로운 공업적 제법을 확립하였다. 1865년 포도주의 산패(酸敗) 원인균을 연구하여 약 60℃의 저온살균법을 고안함으로써 프랑스의 포도주제조에 크게 공헌하였다. 또 J.B.A.뒤마로부터 누에의 미립자병(微粒子病)과 연화병(軟化病)에 관한 연구를 의뢰받고 연구한 결과, 감염된 병충의 알에 의한 전염예방법 등을 발표하여 양잠업의 어려움을 덜어 주었다. 1867년 소르본대학 교수가 되었다가, 이듬해 뇌출혈로 반신불수가 되었으나, 연구를 계속하여 1877년 탄저병(炭疽病)·패혈증(敗血症)·산욕열(産褥熱) 등의 병원체를 밝혀냈다. 이 연구의 영향을 받은 영국의 외과의사 J.리스터는 외과수술에서 방부법(防腐法)의 응용에 관한 연구를 하게 되었다.
1879년 닭콜레라의 독성을 약화시킨 배양균을 닭에게 주사하면 면역이 된다는 것을 발견하고, 백신접종에 의한 전염병 예방법을 일반화하였다. 1881년에는 양(羊)의 면역실험에 성공하였고, 탄저병 면역에 관한 공개실험을 하여 그 유효성을 실증하였다. 1882년 프랑스학사원 회원이 되었다. 그가 인류에 남긴 최대의 공헌은 광견병백신 제조에 성공한 것으로서, 1885년 광견에 물린 소년에게 처음으로 백신을 접종하여 생명을 구하였다. 1888년에 전 세계로부터 답지된 기부금으로 파스퇴르연구소가 세워져, 초대소장에 취임하였다.
출처 : 야후백과사전
결론 : 이같이 생명이 또 다른 생명에 의해서만 발생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감지할 수 없는 존재가 있으며, 맨 처음 그에 의해 생명이 창조되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반면 우연한 계기로 발생된 원시생명체가 진화와 분화를 거듭하면서 오늘날의 동식물로 나타나게 되었다고 하는 종래의 견해는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었다. 생물이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은 파스퇴르 실험에 의해 입증되었다.
출처 - 창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