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물든 ‘진화론의 세기’

미디어위원회
2004-07-26

피로 물든 ‘진화론의 세기’ 

(The Blood-stained 'century of evolution')

Carl Wieland


     기독교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때때로 그리스도의 이름과 교회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많은 종교전쟁과 잔학행위들을 지적한다. 그들은 ‘크리스천’으로 자처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따르는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동서고금을 통해서 종교전쟁으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사람의 수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단지 20세기 한 세기 동안에 종교의 이름이 아닌 다른 이유로 해서 죽임을 당한, 그것도 대개는 자기 나라 정부에 의해서 학살된 인명의 수가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1) 문제는 이 살육(殺戮)행위가 기독교의 성경적 가르침에 공개적으로 적대적인 철학 때문에 저질러졌다데 있다. 이 철학은 진화론을 신봉하는 데서부터 발원(發源)한다.


나치주의는 그 이념적 근거를 다윈(Darwin)에 두고 있다고 공언하였다.2) 그들은 인종간에도 약육강식(弱肉强食)은 당연하고 도덕적이라고 까지 주장했다. 약한 인종을 동정(同情)하는 것은 자연법을 거부하는 행위라고도 했다. 이러한 잔인무도한 이념으로서의 진화론(進化論)이 ‘과학적’ 이라는 지주목이 없었더라면, 바흐(Bach)나 루터(Leuther)와 같은 위인을 우리에게 보내주었던 민족을 그렇게 까지 송두리째 현혹할 수 있었을까 의심스럽다.


또한 공산주의자들도 자기들 이념의 논리적 결론으로 진화론을 내세운다. 만약에 모든 것이 ‘자연법’에 따라 진화하고 있다면, 그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사람의 의사(意思)가 정(正)?오(誤)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가령 노동계급이 무장투쟁을 통해서 권력을 쟁취하는 게 마땅하다고 한다면, 그 때에는 사회주의 천국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의 과정에서 죽임을 당하는 생명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과는 관계없이 그 이론이 옳다고 해야 할 것이다. 공산주의에 의해 살해된 생명의 수가 나치주의의 그것을 훨씬 능가한다 - 아마도 전 세계에 걸쳐 9천만 명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3)


스탈린의 잔학 행위는 혁명의 이상(理想)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에 어쩔 수 없이 수반되는 일시적 ‘일탈행위(逸脫行爲)’ 라고 암시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다. 어쨌거나, ‘대량 살육의 과학을 완성한’ 사람, 그리고 정치적 통제의 궁극적 방법으로써 전체적이고도 무자비한 잔인성을 완성한 사람은 러시아 혁명의 ‘아버지’인 레닌 바로 그 사람이었다.4) 진화론은 공산주의자들이 대중을 ‘과학적 무신론자’로 세뇌하는 데 사용한 주된 도구였다. 만약 모든 것이 마땅히 진화된 것이라면, 그 때엔 모든 것은 강자(强者)의 변덕에 좌지우지될 것이며, 그 이후로는 인간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물을 창조주의 존재는 없어질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스탈린의 신념, 즉 수백만의 인명을 도살하는 것이 잔디를 깎는 것보다 나쁠 것이 없다는 믿음이 비롯되었다. (잔디는 진화론의 이념에 있어서는 우리 사촌이다.)


마오쩌둥의 공포와 허위의 통치는 결과적으로 수천 수백만의 생명을 주검으로 내몰았다. 그가 애독했던 책이 두 진화론자, 즉 다윈과 헉슬리(Huxley)의 저서들이라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그가 강요한 기아(飢餓)로 인해서 수백만의 생명이 죽어나가는 마당에 마오는, ‘우리 인민의 수가 무수히 많으니까, 몇 명쯤 잃어도 끄떡없다.’ 라고 했다는 기록을 그의 주치의가 남겼다.5)그 이후 그의 후계자들은 수천 수만의 생명을 억압하고 살해하였다.


이와 같은 국가적 악(惡)의 영향을 받아, 타락한 모든 인간들에 내재하고 있는 악에 대해서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내용을 우리들은 망각하기 쉽다. 지금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의 기본 철학은 아직도 단단히 지속되고 있다. (예: 신의 뜻이 아닌 인간의 의사가 궁극적인 권위다.) 더 이상 베를린 장벽을 넘으려는 사람들이 사살되지는 않지만, ‘민주주의’ 국가들 안에서조차 수억의 생명들이 어머니 자궁 내에서 찢기어 죽어가고 있다.


오늘날, ‘힘은 정당하다’ 라는 표어에 직결되는 소위 초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이념은 날로 높아만 가고 있다. 성경도 당연히 사유재산과 상품의 자유롭고 공정한 유통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성경은 정부가 사악한 인간 본성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음을 인정하고, 그러기를 권장한다. 심지어 억만장자 죠지 소로스(George Soros)조차 족쇄 풀린 자본주의의 ‘적자생존(適者生存)’ 이론에 반대하여 이를 경고하면서, ‘예전에는 교역의 수단이었던 것이 지금에 와서는 근본적 가치의 자리를 강탈하고 말았다.’ 라고 말했다. 성공한다는 것이 반드시 정당하다는 것과는 같을 수가 없다.6)


소로스의 논평은 불변의 가치와 절대권리가 존재할 때만 이치에 맞는다. 그런데 불변의 가치와 절대권리는 불변의 진리를 자신의 피조물에게 확실히 드러내 보이는 창조주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창조/진화의 문제는 단지 태생(胎生)에 관한 문제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사(人間事)의 근본을 따지는 데 있어서 어느 쪽 기원설이 정당한가 하는 문제 - 말씀으로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계시(啓示)인가, 아니면 인간의 의사인가 - 를 여는 열쇠가 된다. 하나님이시여, 원컨대 이 생명의 진리, 창조 진리의 복음을 널리 전파하고 있는 창조지(Creation magazine)를 축복하여 주옵소서.


References and notes

1. 약 1억3천만 명이 20세기 한 세기 동안에 무신론의 이름으로 살해됨 (낙태로 살해된 수억 명의 생명은 제외), 반면에 기록된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살해된 인명은 최대로 잡아 약 1천7백만 명이다. See James Kennedy and Jerry Newcombe, What if Jesus had never been born? Thomas Nelson, Nashville, 1994.

2. 진화론자 아더 키스 경(Sir Arthur Keith)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 나는 변함없이 독일 총통은 진화론자이다 라는 주장을 견지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의식적으로 독일에서 진화론의 이론을 실제 문제에 적용하는 실험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Evolution and Ethics (NY: Putnam, 1947), p. 230.

3.'Black Book of Communism', The Courier-Mail Weekend, Brisbane, December 13, 1997, p. 8.

4.'Men who taught the world to hate', The Sunday Mail, Brisbane, July 6, 1997, p. 67.

5.'The Great Dying', The Sunday Mail, Brisbane, February 2, 1997, pp. 59-60.

6. G. Soros, in News Weekly, February 8, 1997, p. 24.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ation.com/the-blood-stained-century-of-evolution

출처 - Creation 20(3), June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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