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본주의자 선언 2000' 에서 언급된 현대 무신론

미디어위원회
2004-05-05

인본주의자 선언 2000 에서 언급된 현대 무신론

Bob, Gretchen Passantino


 '천국이 없다고 상상해보자 (Imagine there's no heaven)' 

                             
제 1부

(이 논설은 최초로 Christian Research Journal 의 Vol. 22/No.3 Issue에 발표되었다. )

존 레논 (John Lennon)이 지금은 유명해진 자기 노래의 가사를 처음 창작하고 있을 때, 그는 하나님을 부정하기보다는 인간의 노력을 통해서 평화와 번영, 그리고 나눔을 지향하는 지구의 황금시대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었다. 상상해보자─만약에 남자와 여자가 서로 나누는 사랑이 그토록 충족되어 남의 사랑을 탐낼 필요가 없는 사랑. 상상해보자─다양한 문화의 혼재를 인정함으로써 전쟁이 근절된 세계를. 상상해보자─남자와 여자 그리고 어린이들이 생물학적 사회학적 진화를 거쳐 생육된 동일한 보편적 인간의 권리에 기쁘게 헌신하는 세계를. 우리가 이곳에 이상향(Utopia)을 보장받고 있으며, '우리가 삶을 영위하고 있는 세계가 하나인데', 별도로 하나님, 또는 천국을 필요하다고 할 사람이 누구겠는가?

이런 것들이 하나님이나 초자연적인 존재, 그리고 사후의 삶이 진실이 아니고, 또 부적절하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상상하는 세계의 정확한 모습들이다. 비종교적인 세계관이 보다 더 광범하게 받아들여지고, 더 많은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는 지금, 크리스천들은 저 사색적인 비종교인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현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 여부에 관한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려 하는지를 재평가해 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하겠다.1 흔히 '인본주의(humanism)' 라고 불려지는 그들의 운동은 무신론자(atheists), 불가지론자(agnostics), 회의론자(skeptics), 그리고 의심하는 자(doubters) 들로 구성되어있다. 인본주의 운동은 그 자체의 철학적 논거와 정치적 행동주의, 그리고 크리스천들과의 실제적인 대결에 있어 점점 더 복잡하게 세련되고 있다.

인본주의자들에게 보다 명료하게 복음을 이해시키고 복음과 교통하게 하는 일이야말로 변증론(apologetics)이 하여야할 중요한 의무다. 예수님은 우리들이 세상에 나가 모든 족속들을 '제자로 삼으라고'2 명령하셨을 때, 그는 믿는 자들보다 지적으로 우수하다고 자처하는 자들을 배제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기에 회의론자와 철학적 사상가를 위하여 죽으셨음은 너무도 당연하다.

 

용어의 정의

하나님에 관한 회의론자들은 '무신론자(atheist)' 즉,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 는 것을 믿는 사람이라는 딱지를 수용하기를 점점 꺼리는 경향이 있다. 회의론자들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 는 정의를 수용하게 되면, 무신론자(atheist)가 되어 공격에 취약해진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무신론자를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정의하는 대신에 믿음의 결여로 정의한다.3 이 조직은 저변을 확대하여 어떤 신이나 초자연적인 현실에 관련된 것을 배제하는 다른 용어들을 포함한다.

”세속적 인본주의자는 전형적으로 스스로를 무신론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다든지, 신의 존재 가능성에 관해서 확신이 없는)로 묘사한다. … 세속적 인본주의자는 문제해결과 행동의 선도(先導)를 위하여 신의 힘이나 초자연적인 힘에 의지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그들은 윤리적/도덕적 기초의 형성과 삶의 의미를 창출하기 위하여, 이성과 역사의 교훈,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의 적용에 의지한다.” 4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하는 사람으로서 '무신론자' 라는 꼬리표를 지키려는 노력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무신론자 (Atheist)

첫 번째로, 무신론자는 '보편적 부정(universal negative)'을 증명하는 문제에 봉착한다. 보편적 부정은 실제로 적용하기가 매우 어렵다.5 (하지만 언제나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예컨대, 세상 어디에도 흰색 까마귀는 없다는 사실을 완전한 확신을 가지고 증명하기 위해서는 세상 모든 곳을 철저하게 동시적으로 (조사를 위해 접근할 때 날아가 버릴 수도 있겠기에) 조사하여야할 것이다. 유추컨대, 완전한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려 한다면, 물질 세계와 비물질 세계에 관한 무한한 지식과 존재의 두 상태를 '초월한' 것으로 가정되는 그 어떤 것에 대한 무한한 지식을 실질적으로 모두 알고 있어야할 것이다.

두 번째로, 무신론자는 지성적인 설계자가 있음을 가리키는 경험적이고 과학적인 풍부한 증거를 세우기 위하여 보다 나은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한다. 이 실체 (지성적인 설계자)는 생산된 우주보다 반드시 더 커야만 할 것이다.

세 번째로, 대부분의 무신론자들은 물질주의자들로서, 오직 물리적 우주만이 현실이라고 믿고 있다. 그들은 수(數), 도덕적 가치, 이념, 그리고 양심과 같은 비 물질적 실체들의 존재에 대해 적절한 정의를 내리지 못한다. 다른 이유 때문도 있지만, 이 이유 때문에 대부분의 불신자들은 '무신론자' 라는 딱지를 회피한다.

 

불가지론자 (Agnostics)

위에서 언급된 하나님-의심자들은 '회의론자' 라는 용어를 비신론자 (nontheist)라는 뜻과 동일하다고 생각되는 '불가지론자'로 재정의한다. 어쩌면 그들은 어떤 신, 또는 신들의 존재를 믿는 길로 인도하게 할 '지식을 거의, 또는 전혀 갖지 못하고 있다' 는 뜻으로 스스로를 그냥 '불가지적'이라고 표현되기를 선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불가지적'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고안한 헉슬리 (T. H. Huxley)는 사람은 ”이성이 미치는 한계까지” 이성을 따라야한다라고 하면서, 브리태니가 백과사전 이 지적한 바처럼, ”인간은 자신의 지식의 한계를 솔직하게 인식한다.” 6 라고 부언했다. 비록 우리는 이 글에서 불가지론 이론을 특별히 하나님의 존재에 관해서만 언급하려 하지만, 불가지론 이론은 다양한 세계관 분야에 제한적으로나마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불가지론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믿을 수 있게 할만한 충분한 정보를 갖지 못했다고 변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정보를 누군가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며, 따라서 장차 언젠가 그들도 갖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부류의 불가지론자들과의 대화는 쉬운 편이다. 그것은 그들이 새로운 이론이나 증거에 대한 평가에 열린 마음 자세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부류의 불가지론자들은 복음에 마냥 거부적인 자세가 아닐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신념을 바꾸는 것을 꺼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부류의 불가지론자들은 현재로서는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장차 언젠가 (예컨대, 과학이 충분하게 발전하였을 때, 또는 인간이 지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충분히 진화하였을 때가 오면) 알 수도 있을 것이라고 공언한다.

또 어떤 불가지론자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안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일” 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하나님은 너무도 '다른 존재 (other)', 즉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지하기(to know)'에 전혀 불가능한 존재로 치부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들은 이런 비유로 논쟁을 펼칠는지도 모른다. 즉, 달팽이가 수학공식을 이해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또한 남자가 여자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를 안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하나님을 이해한다든가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또 다른 부류의 불가지론자들은 인간의 언어는 물질 세계에서 쌓은 인간의 경험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래서 그것은 물질 세계의 사물들을 기술하는데 한정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비물질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할 수 없을뿐더러, 하나님도 당신의 존재를 우리 인간들에게 전달할 수 없다. 이들 뿐만 아니다. 여전히 또 다른 불가지론자들은 우리들은 실험할 수 있는 것만을, 그런 의미에서 오직 실험실에서 실험되는 것들만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은 비물질적이기 때문에 (만약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는 실험적으로 식별이 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존재를 결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 마지막으로 예를 든 두 부류의 불가지론자들이야말로 대화하기에 가장 어려운 상대들이다. 그렇지만 그들에게도 우리는 기독교 교리의 주장을 숙고하여 보도록 도전장을 건네 볼 수 있다. 사람이라면 언제 어디에 있건 모두가 양심을 가지고 있기에 하나님의 능력과 그의 창조의 지혜와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될 것이다. (로마서 1:20-32, 2:14-15를 참조하시오.)

 

회의론자 (Skeptics)

하나님-의심자들은 때때로 자신들을 '회의론자' 라고 말한다. 이들은 대상이나 이념, 또는 사건들을 만나는 족족, 아무런 편견이나 선입관 또는 세계관도 없이 제 나름으로는 중립적인 입장에 섰다면서, 신랄하게 분석하려 든다. 회의론자와 관련이 있는 용어로 '합리주의자 (rationalist)'가 있다. 이들은 그냥 직관, 경험, 또는 감정이나, 아니면 남의 지령에 따르는 대신, 이성에 의해서 결론에 도달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심자들이 자신들을 '합리주의자' 라고 호칭할 때, 그들은 사람이란 합리적인 동시에 종교적일 수는 없다는 전제를 가정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이 가정은 허구인 것이다.

크리스천은 성경의 말씀, 즉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데살로니가 전서 2:21-22) 라는 가르침에 따라 '회의적' 이고도, '합리적 유신론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날마다 성경을 상고(相考)하여야” (사도행전 17:11) 한다7. 유태종족이나, 무슬림, 그리고 크리스천이 다 받아드리고 있는 히브리어 성경은 증거채택의 기준, 다시 말해서 회의적 심문을 강구하고 있는데, 이 기준이야말로 오늘날의 대부분의 법률체계의 근거가 되어있는 것이다, (예컨대 신명기 17:6, 19:15). 예수님도 이와 같은 건전한 회의론의 원칙을 거듭거듭 가르쳤던 것이다. (마태복음 18:16, 요한복음 5:31-47, 8:14-18).

하지만 인본주의자가 자신을 회의론자라고 표현할 때엔, 그는 어떤 특정한 종류의 회의론자라는 뜻을 의미한다. 특히 이 문제의 토론에서, 그는 우리들을 둘러싸고 있는 물질세계의 현실에서 하나님의 존재는 당치도 않고, 어떤 경우에도 탐지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만약에 존재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우리 세계에 간섭할 능력이 없다는 ”전제를 이미 견지하고 있는” 회의론자이다.

인본주의자 (Humanists)

이들과 비슷한 철학을 가지는 부류들을 묶을 수 있는 어떤 하나의 포괄적인 그룹이 없는 가운데, 대부분의 하나님-의심자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용어는 '인본주의(Humanism)' 이다. 비종교적인 인본주의자들을 대변하는 '신 인본주의자 선언 2000 (The New Humanists Manifesto 2000)' 에서 '그들 자체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신 프런티어로 진출하기 위하여 인간의 능력에 대한 신념을 새롭게 한다.' 라고 선언하였다.때때로 인본주의자들은 스스로를 '세속적' 인본주의자로 정의를 내린다. 즉, 그들은 어떤 종교적 신앙도 갖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무런 종교 행위도 종교 연구도 하지 않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들의 정의는 더 나아가 '인본주의자는 초자연적, 권위주의적, 반민주적 신앙이나 이념을 거절한다.'라고 결론내리고 있다. 이 선언에 담긴 세속적 인본주의의 인본 사상은 넘치도록 명백하다:

”초자연주의로부터 자유로운 입장에서 세속적 인본주의는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인식하고 모든 가치─종교적, 윤리적, 사회적 또는 정치적 가치 어느 것이든 상관없이─는 그 원천을 인간의 경험과 문화에 있다는 생각을 견지한다. 그런 까닭에 인본주의는 인생의 목적을 신학적 또는 이념적 추상개념에서 찾기보다는, 인간적 필요와 흥미에서 도출하려고 하면서 인간은 스스로의 운명에 책임을 질줄 알아야한다고 단언한다.” 10

기독교적 회의론자와 합리주의적 크리스천이 있듯이, 비록 매우 제한적인 의미이기는 하지만, 기독교의 유지자라는 세계관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인간도 창조적이며 완성하는 존재라는 맥락 속에 인본주의의 위치를 설정한다. 그렇지만, 훨씬 더 일반적으로 쓰이는 인본주의자라는 용어는 삶의 의미와 개인적 완성을 인간들 안에서 또는 그들 사이에서 추구하면서, 하나님을 포함한 어떠한 초자연적인 존재와는 상관하지 않는 하나님-의심자를 가리킨다.
 

크리스천이 인본주의자 (무신론자)의 세계관에 접근하다.

우리가 인본주의자 또는 하나님-의심자에 접근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 있다. 첫 번째 방법은 인본주의자의 인생철학과 그 원천을 검토하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합리적 찬반토론을 검토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인본주의자의 주장을 비평하는 동시에 우리 자신의 신앙을 방어하는 양면작전이어야 한다.

우리는 인본주의자의 세계관을 조심스럽게 살피면서, 그 속에 어떤 합리적인 또는 증거가 확실한 정당성이 있는지를 발견하려 기도하여야 할 것이다. 진리를 발견하기 위한 합리적 탐구에 의존하는 인본주의자라면, 합리적 탐구에 대한 그의 신념 속에 어떤 정당성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그 사람이 자기 이론에 합리적 이유가 있는가?, 혹은 자기 이론을 맹목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합리주의자들은 ”이성은 정당하다”, 또는 ”이성은 물질의 본질적 성질이다”, 혹은 ”이성은 진화의 생존 메커니즘이다”라고 대답하는 인본주의자들은 자신의 세계관에 대한 적절한 정당성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을 인정할 것이다. 합리적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성을 주셨기 때문에 이성을 진리발견에 쓰일 연장으로서 신임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대비해서, 이성이 신임을 받을 만 하니까 이성을 신임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어느 쪽이 더 합리적인가?

 

지도자들과 그들의 신념들

폴 커츠(Paul Kurtz) : 인본주의자들의 21 세기에 대한 근본적 주장은 인도주의 선언 2000 (Humanist Manifesto 2000; HM2K) 속에 포함되어있다. 이 주장은 세계적인 세속적 인도주의들의 선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 폴 커츠가 제창한 것으로서, 그는 종전의 인본주의자 선언문을 작성하고 공표하는데 크게 도움을 주기도 했었다.

*Paul Kurtz is Professor Emeritus of Philosophy at the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Buffalo, founder and chairman of the Committee for Scientific Investigation of Claims of the Paranormal (CSICOP), the Council for Secular Humanism, and Prometheus books. He is a former Co-Presidient of the International Humanist and Ethical Union (IHEU). BA, New York University; MA and Ph.D., Colombia University. He is a fellow of the 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and Humanist Laureate and President of the International academy of Humanism.11

 

그 외에 다른 HM2K 지도자들

HM2K에 서명자들은 광범위한 학계의 여러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그의 저서, '눈먼 시계공 (The Blind Watchmaker: Why the Evidence Reveals a Universe without Design)' 으로 유명한 영국 과학자로서 1990년에 영국 왕립협회(the British Royal Society)로부터 ”과학을 일반 대중들이 이해하는데 크게 기여한 과학자”에 수여하는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 상을 받았다.12 다른 서명자들로는 고인류학자 리처드 리키(Richard Leakey), 물리학자 헤럴드 크로토(Harold W. Kroto), 국제우주대학 총장 아더 클락(Arthur C. Clarke), 화란의 생물물리학자 옌스 스코우(Jens C. Skou), 화학자 마리오 몰리나(Mario Molina), 그리고 허버트 하우프트만(Herbert Hauptman), 등 그밖에 많은 노벨상 수상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무신론자들 가운데 한 사람의 별종 : 매덜린 머레이 오헤어 (Madalyn Murray O'Hair)

위에 거명된 학자들은 더 활동적이었던 전 세대의 몇몇 무신론자들과 상당히 대조적이다. 미국 무신론자들(American Atheists)의 발행자인 매덜린 머레이 오헤어는 지성적인 행적보다는 종교의 공개적인 활동을 반대하기 위하여 서슴없이 내뱉던 터무니없는 폭언에 가까운 거친 언행으로 인해서 더 많이 알려졌던 사람이다. 그녀의 아들이 연루된 그녀의 송사가 1959년에 대법원의 판결을 받았던 일로 인해서, 그녀는 1963 년에 들어서서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Marray v. Curtlett 에서 법원은 공립학교에서의 필수적 기도 시간을 불법이라는 판결을 내렸던 적이 있었다. 이 사건이 머레이로 하여금 종교로부터 자유로운 미국을 창조하기 위해 30 년이 넘도록 사회활동에 발벗고 나서게 된 동기가 되었다. 머레이는 빈번하게 공개 토론에 참여하여 목청껏 기독교 교리를 비난하고 무신론 운동을 옹호하였다. 그녀는 종교 없는 미국 사회를 옹호하기 위하여 소송을 제기하면서, 미국의 지폐와 화폐에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 안에서 (In God We Trust)” 라는 글귀를 삭제하라고 요구하였다.13

그녀는 유사한 이념 조직들을 거의 예외 없이 소원케 하고 말았던 것 같다. '미국무신론자(American Atheists, 오헤어의 단체)' 와 '무신론자 연합(United Atheists)' 은 물론 '종교로부터의 자유 재단 (Freedom from Religion Foundation)' 과의 사이에 오랜 동안 지속되던 반감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어떤 동료 무신론 비평가는, ”그녀는 누구보다도 가장 빈번하게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비속한 행동이 멋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됐던 것이죠. 그리고 말입니다. 비속어를 사용하면서 어떻게 점잖을 수 있겠습니까? -욕지거리 말입니다.” 14 한 때는 그녀의 AA 회원 수가 75,000 명이 넘는다고 호언한 적도 있었으나, 정확하게는 대략 5,000 명 언저리에서 왔다 갔다 했을 것이다.

1995 년 그녀와 그녀의 친족 일단은15 그녀가 거느리던 여러 조직체의 자산에서 큰 몫을 챙겨 가지고 잠적하였다. 나중에 그들은 살해 된 것으로 판명되었다.16 저널리스트 루이 두보우스 (Louis Dubose)는, ”그 여자는 두둑한 배짱에, 겁도, 절조도 없었으며, 비속하고, 용감했다... 세상에서 가장 미움을 받던 부인으로서 보기에는 쾌활한 여인네로 알려졌었다.” 17 고 평했다.

 

그 밖의 기라성 같은 무신론자들

폴 쿨츠(Paul Kurtz)처럼 철학적 소양으로 해서 유명한 학자들이나, 매덜린 머레이 오헤어처럼 방종한 분노 표출 때문에 알려진 자들과 같은 무신론자들이 하나님의 존재의 모든 증거들에 대한 독단적 부정과 물질적 세계관의 우월성에 대한 숭배라는 그들의 공동 이념으로 인해서 한데 뭉쳤다. '무신론 인사들(Atheist Celebrities)' 웹 사이트에는 저명한 무신론자들이 관련 문서자료들과 함께 명단이 등재되어 있다. 그 중에 철학자로는 Thomas J. Altizer, Paul and Patricia Churchland, Paul Edwards, Antony Flew, Michael Martin, Kai Nielsen, 과학자로는 Fracis Crick, Richard Leakey, Stephen J. Gould, 정치가로는 Fidel Castro, 유명인사로는 Woody Allen, Ingmar Bergman, Bill Blass, Marlon Brando, Warren Buffett, George Carlin, Dick Cavett, George Cloone, Patrick Duffy, Katherine Hepburn, Arther Miller, Jack Nicholson, Penn and Teller, 사업가로는 Bill Gates, 그리고 그밖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들 - 또한 악명높은 인사들까지 Larry Flynt, Bob Guccione, Derek Humphry, Kack Kevorkian, Marily Manson, Howard Stern 등이 있다.18 기타 이름있는 무신론자/인본주의자로서는 Michael Shermer, Dan Barker, Jim Pippard, 그리고 Steve Allen 도 포함되어 있다.

 

인본주의자의 신념 선언 (Humanists Statements of Belief)

인본주의자들이 선언한 많은 신념들 가운데서 어떤 일정한 주제들만은 거의 보편적이라고 할 만큼 빠지지 않고 포함되어있다. 그것은 이런 것들이다. 즉, (1) 하나님의 존재 그리고, 또는 초자연적인 존재는 기껏 해봐야 적절하지도 않고 또 알 수도 없다. (2) 인간의 의미성과 인간의 완성은 인간만의 노력을 통해서 달성할 수 있다. (3) 종교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현실에 관한 지식을 획득하고 성장시키려는 순수한 인간의 노력에 정반대 입장에 있다. 그리고 (4) 물질(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존재만이 우리가 알 수 있고 또 경험하는 유일한 현실이다.

그런 다음, 문제가 하나님 즉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신앙 또는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에 대한 것에 관련되면, 인본주의자들은 중립적인 태도를 버린다. 인본주의자는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증거들을 인정하는 모든 종교적 신앙을 특히 기독교 신앙과 종교행위를 포함한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 반대한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왜 인본주의자들이 자신들이 세운 가정들이 합리적이라고 믿는지, 그리고 왜 크리스천들과 다른 종교 신봉자들에 대한 자기들의 반감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믿는지를 조사하려한다. 우리는 그들의 주장들이 실패할 것임을 곧 알게 될 것이다.

'미국무신론자들(American Atheists)'는 우리가 이미 위에서 간단하게 기술한 정의들과 궤를 같이하는 철학이념을 선양한다. 현재의 American Atheists의 행동강령은 다음과 같다.

”무신론자는 신을 사랑하는 대신에 자신을 그리고 동료 인간을 사랑한다. 무신론자는 지금 우리가 공헌할 수 있는 이곳─여기 이 지구 위에서─모든 인간이 다 함께 즐기기 위하여 우리가 일 할 수 있는 이곳을 천국으로 받아들인다. 무신론자는 기도를 통해서는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한다. 그러나 무신론자는 삶을 맞아, 삶과 맞붙어 싸워, 삶을 굴복시키고, 삶을 즐기게 할 수 있는 내재적 확신과 힘을 자기 자신 안에서 찾아야한다는 명제를 받아들인다. 무신론자는 오직 자기 자신을 알고, 동료 인간을 알고 나서야 삶의 완성을 도울 수 있는 이해력을 발견할 수 있다고 인식한다.”19  

다른 인본주의 단체들은 이와 유사한 반복구절을 그들의 결정적인 선언에 삽입한 것이 보인다. 종교로부터의 자유 재단 (The Freedom from Religion Foundation)은 이렇게 선언한다 :

”어느 누구라도 성경과 사도신경을, 또는 메시아를 따르라고 요구하는 사람은 자유사상가가 될 수 없다. 자유사상가한테는 계시나 신앙은 가치가 없으며, 종교를 신봉하는 것은 진리로 가는 길을 보장하지 못하게 한다...”

”자유사상가는 자연주의자이다. 진리는 지론(持論)과 현실의 합치의 정도 만큼이다. 현실이란 직접적으로는 우리의 오관을 통해서 인식이 가능한 한도이고, 간접적으로는 이성의 적절한 사용을 통해서 확인되는 한도이다...”

”의미는 반드시 마음속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자유사상가는 안다. 우주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우주체계는 괘념하지 않기 때문에, 당신이 만약에 목적을 가지려한다면 당신 자신이 괘념하여야 한다...”

”자유사상가는 종교의 주장이 이성의 시험을 이겨내지 못하였다고 확신한다... 대부분의 자유사상가는 종교가 진실이 아닐 뿐만 아니라, 유해하다고 간주한다. 종교는 전쟁, 노예제도, 성차별, 인종차별, 호모혐오, 문서훼손, 좁은 도량, 그리고 소수 민족에 대한 억압 등등의 정당화에 사용되었다. 종교적 절대라는 전제주의가 진보를 압살한다... 세속적 인본주의는 그 어떤 신도, 성경도, 구세주도 가지지 않는다. 세속적 인본주의는 합리적 자연 원리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것은 신축적이고도 상대적이다. ─ 즉 그것은 종교가 아니다.” 20

미국 무신론자 협회(The American Atheists Association)은 '우리는 교-정 분리를 위해 일한다. 우주를 이해하기 위하여 신이나 초자연적인 존재에 묻지 않고 과학과 철학을 이용하며, 유신론적 신앙을 수용하지 않는 사람들의 권익을 지적으로 옹호하기 위하여 나선다.' 21 라고 선언한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세속적 인도주의 평의회 (Council for Secular Humanism)는 '원리의 선언'을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우리는 비관주의보다는 낙관주의를, 절망보다는 희망을, 교의의 자리에 교습을, 무지대신에 진리를, 유죄판결이나 죄지음보다는 기쁨을, 공포의 자리에 관용을, 증오대신에 사랑을, 이기심보다는 동정심을, 추악한 것 대신에 아름다움을, 맹신이나 비합리적인 것보다는 이성을  신앙으로 여긴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달성 가능한 최선의 것과 가장 고상한 것을 완전하게 성취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다.” 22

미국 인본주의자 협회 (American Humanists Association)는 그들의 인본주의의 정의를 다음과 같은 대담한 선언으로 끝을 맺는다. ”인본주의는 철학이자 세계관이다, 또는 자연주의 기초 위에 선 삶의 자세 ─ 우주 곧 자연이 존재의 전부이고 진리라는 확신이다.” 23

미국 인본주의자 협회의 전임 회장이었던 세계적인 작가이자 무신론자인 故 아이작 아시모브 (Issac Asimoc)는 하나님을 거부하는 인본주의의 주장을 이렇게 두드러지게 표현했다.

”나는 내 생애에서 단 한 순간도 종교 같은 것에 마음이 쏠렸던 적이 없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결코 정신적 공허 따위를 느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내 나름의 인생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어떤 형태로건 초자연적 존재자를 포함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것 그자체로서 전적으로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요컨대 나는 합리주의자인 것이다.” 24

 

정당화되지 않는 무더기 가정 (A Massive Presupposition with No Justification)

앞서 열거된 인본주의에 관한 그 많은 정의, 선언, 그리고 단정들 (그리고 기독교적 유신론에 관해서는 거의 관계가 없는 것들)이 마치 어떤 보편적 기준처럼 가정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아무런 합리적 설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또 왜 우리가 정당성이 없는 그것들을 수용하여야 하는가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인본주의의 핵심은 개인의 개발이나 인간적 완성, 그리고 전 지구적 발전은 오직 물질만이 실체인 완전한 자연계를 대상으로 하는 인간의 노력을 통해서만 보장될 수 있다는 사상이다. 그렇지만 인본주의자는 어떻게, 그리고 왜 이 명제가 진실이란 것을 알 수 있는가를 확신을 가지고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에 인간성이라는 것은 장구한 진화의 과정 (모든 물체들은 시간 속에서 무작위로 운동하는 에너지와 물질로부터 발전된다)을 지나서 등장한 상대적으로 짧은 생애에 불과하다면, 그 때엔 과연 우리는 우리 種 안에 구원과 세상의 완성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무엇으로 정당화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인본주의 과학자 리차드 도킨즈 (Richard Dawkins)가 HM2K를 '종차별적'이라고, 또한 무보증 종의 자기본위라고 비난했을 때, 그의 생각이 앞에 말한 우리의 질문과 그다지 먼 데 있지 않았던 것 같다.25 보편적 인권에 관한 HM2K 선언에 관해서 언급하면서, 그는 ”HM2K의 윤리 규정은 의심할 바 없이 종 차별적이다. 이 선언문(Manifesto)은 토론이나 질문을 거치지 않고 윤리 문제에 관한 한 '호모 사피엔스' 종만이 고려의 대상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당연한 듯이 가정하고 있다. 내 생각으로는 이 선언은 비 진화론적이다.”26 라고 지적하였다.

인본주의자들이 그들이 내린 정의와 선언, 그리고 단언에서 가정한 보편적 기준이란 것들도 도킨즈가 인본주의자의 윤리 규정에 지적하였던 비평과 같은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인본주의자들이 근거 없이 오만스럽게 단정하는 소위 보편적 원리라는 것들에 대한 대응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을 뿐이다.27

첫째 : 그들의 주장에 증거를 요구하면, 그들은 합리적 근거를 제시할 기도는 조금도 하지 않고 단순히 ”그냥 그런 것이 있어” 라고 하던가, ”그것이 물질의 본래적인 속성이야”, ”그것은 자명한 것이야”, 또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일이거든” 이라고 한다. 그런데 인본주의자가 크리스천에게 신앙의 증거를 요구하면, 크리스천도 당연한 듯이 그들과 비슷하게 대답한다면 (”하나님은 당연히 계신다” ”당신도 내면 깊은 데서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있다.” 또는 ”믿음을 가져보세요”라고), 인본주의자들은 일각의 여유도 주지 않고 당장에 크리스천의 대답을 거절하고는 크리스천의 믿음을 정당화할 수 없는 논리로 조소하기 일쑤다. 그와 같은 보편적 원리에 대한 '맹신'이야말로 Free Inquiry 잡지와 HM2K, 그리고 그밖에 많은 출판물에 발표된 인본주의의 실상이다.

둘째 : 근거 없는 세계관은 '맹신' 이라고 할 수 있는 바, 그것은 불합리하다. 그리고 합리주의자한테는 보편적 가치와 원리를 정당화하는 근거를 찾아야 할 의무가 있다. 여기에 속하는 합리주의자들은, 단연 소수 집단이지만, 기독교 교리의 합리적인 주장에 가장 열린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부류들이다. 기독교 교리의 합리적 주장이라 하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긍정적인 토론과 같은 것을 말한다. 이 글의 후반부에서 거론하려 한다.

셋째 : 인본주의자의 주장을 만났을 때, 우리는 낙담이라도 했다는 듯이 비유적으로 두 팔을 들어올리는 반응을 해 보이는 것이 어떨까? 그리고 보편적 진리와 가치 그리고 원리를 포기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이와 같은 대응은 불합리하겠지만, 그런 반응이 인본주의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세계관을 정당화하려는 기도를 포기시키고 기독교적 유신론으로 전향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범주에 속하는 인본주의자들은 수적으로는 많은 편이지만, 그들의 무의미한 상대론을 현재 유행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급진적인 표현으로 일반화시키는 데 매우 성공적이다.28

 포스트모던 인본주의 (Postmodern Humanism)

포스트모던이즘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 침투하였다.29 많은 포스트모던 인본주의자들은 종전의 인도주의가 모든 물질적 현실 (과학적인 법칙, 보편적 인권, 절대치, 진리와 진리 인식의 가능성, 그리고 절대윤리)을 관장하는 보편적 절대가치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정당화하려 하지만 근거가 없다고 인식한다.

그 좋은 예가 여기 있다. 1999년에 있었던 어떤 인본주의자들의 모임에 우리도 참석하였었다. 그때 한 젊은 강사는,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고 윤리의 보편적 절대 체계가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궁극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기독교 교리는 협소하고 바보 같다고 강의를 했다. ”천하에 옳은 것 (things of right)은 없는데”, 크리스천들은 오만하게도 감히 자기들이 옳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의 강의가 끝난 후에 우리는 그와 토론을 벌리던 중, 우리는 그의 말━천하에 옳은 것이 없는데 그는 어떻게 감히 자기 자신은 옳고 크리스천은 틀렸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이 오만한 말이 아닌가? 하고 지적하였다.

우리는 급기야 길고 긴 싸움과 난장판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했으나, 뜻밖에 그는 재빨리 손을 들고는 세속적 인본주의도 기독교 교리도 다 같이 참인 것 같다, 그래서 절대론도 상대론도 둘 다 정확한 것 같다, 그리고 우리들은 다 같이 모르는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는 것 같다 라고 답변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황당할 정도로 불합리한 그의 대답은 그의 일상적인 삶의 태도를 고스란히 반영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그렇지만 그의 대답은 일관성이 없는 급진적 포스트모던주의에 대한 그의 헌신을 잘 반영하고 있었다.

불행하게도 이 젊은 강사와 마찬가지로 포스트모던 인본주의자들도 오직 기독교 유신론에 의지하여야만 합리적 강론과 탐구에 필요한 논리적 근거를 얻을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를 않는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정당한 설명 없이 보편적 절대치에 대한 자신감을 붙들고 늘어지는 동료 인본주의자 (포스트모던 인본주의자가 아닌)들과도 손을 잡지 않는다. 그 대신 포스트모던 인본주의자들은 그냥 철학적 허무주의에, 즉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심지어 그 존재자체나 사상, 가치 그리고 행동까지도 최종 분석의 결과로 드러나는 것은 무의미와 무意義 그것뿐이라는 이념으로 전락하고 만다.

인본주의자 선언 2000 (Humanist Manifesto 2000)에 서명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포스트모던 주의자들이 표방하는 상대론을 거부하는 절대론자 라고 밝혔다.

”과학의 객관성을 부인하고, 현대기술의 사용을 한탄하며, 인권과 민주주의를 공격하는 소위 포스트모던 사상이 서유럽의 여러 나라에 대두하였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한 형태는 패배주의를 권장한다. 최선의 경우라고 해봐야, 그들은 세계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그 어떤 프로그램도 제안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문제의 해결 가능성이나 달성 개연성조차도 부정하는 일이다. 이들의 철학-문학 운동의 효과는 역생산적 (逆生産的)이든가, 나쁘게 말해 허무주의적이다.” 30

크리스천은 이 비평에 동의하지만, 그들과는 전적으로 다른 유신론적 세계관의 시각에서 하는 비평이다. 허무주의는 비합리주의와 절망감이 표방하는 반-신앙 (anti-faith)이다. 그래서 허무주의는 ”스스로의 보조(步調)만으로는 자기 자신을 이끌어 갈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허무주의가 자기모순이라는 모래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절대론적 인본주의는 또 어떤가? 그도 별반 좋아 보이지 않는다. 이 사상은 모래수렁에서 빠져나왔다는 환상에 매달리려고 하지만, 주의 깊게 뜯어보면 그들의 발을 모래수렁 밖에서 붙들어 주는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쉽게 알게 된다. 그래서 이 이념도 어쩔 수 없이 모래수렁 속에 빠져 자취를 감출 운명에 있음은 포스트모던 인본주의와 마찬가지다.

Free Inquiry 지의 최근 판 전체 지면은 포스트모더니즘과 주관주의, 그리고 상대론 같은 이념들의 주장을 반박하는데 할애하고 있다.31 작가인 매트 체리 (Matt Cherry)의 논설인 '진리 그리고 결과'에서 아래와 같이 선언했다.

”[포스트모더니스트 사상가들은] '진리' 라는 개념 그 자체를 거부한다. 그들은 '객관적 지식'은 물론 '사실들' 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고, 오직 개인적인 해석만이 존재한다 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그들은 '이성' 과 '과학' 은 '신화' 나 '이야기' 또는 '마술적인 표현' 들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비록 과학이 문화간의 진리를 주장할 수 없는 경우에도, 도덕적 관념만은 역시 완전하게 상대적이어야 한다 ─ 즉, 그것은 취미나 전통의 문제와 마찬가지다. 자연과 진리에 관한 이 이론들은 실물-세계의 결과를 만든다. 만약에 이 이론들이 심각하게 채택되면, 그것들은 예컨대 과학에 대한 지지, 사회 개형에 대한 지지, 그리고 보편적 인권에 지지를 파괴할 것이다.”32

하버드 대학의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nson) 교수는, 자신의 논설 ”다시 계몽사상으로 돌아가서 (Back to the Enlightenment)”에서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알 것이다.” 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계몽 사상가들은 우리가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포스트모던니스트들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라고 믿는다.”고 지적했다.33

체리와 윌슨 이들 두 사람의 주장은 마치 합리적인 크리스천 유신론의 절대론 즉, 절대 가치는 존재한다, 진리는 존재한다, 그리고 안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등등을 환영하는 듯이 보인다. 그렇지만 그들은 기독교가 ”영원, 무한, 전지, 전능하셔서 우리가 현실에서 조우하는 균형, 질서, 도덕, 가치, 그리고 진리를 창조 유지하시는 하나님 위에 근거하고 있다” 는 이유 때문에 가차없이 합리적 기독교 유신론을 거부해 버린다. 절대론적 인본주의는 기독교 유신론에 접근해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현실, 즉 실존하는 물질계의 총괄적 결과로 인식하는 자연주의에 대한 그들의 선입관을 얼마만큼이라도 접어보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진리로부터 몇 광년이나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하겠다.

중국에 있는 인권단체의 시아오롱 리 (Xiaorong Li)는 Free Inquiry 지의 같은 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보편적 인권에 관한 그 어떤 사상에도 치명적이라는 이론에 동의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더는 학문적 토론이나 철학적 사색이 아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인간의 고통, 핍박, 그리고 심지어 죽음에 미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절대 윤리라든가 보편적 인권, 그리고 확실한 문화적 규범과 같은 가치 기준이 없다고 단언할 때, 개인이나 사회, 그리고 문화적 고립주의에 초래할 그 결과는 최악의 성질의 것이다. 리 여사는 클린턴 대통령이 중국에서의 인권위반 문제를 제기하였을 때, 중국정부가 ”정치적 억압은 전통적 '문화 가치' 기준에 의해서 정당화된다” 라고 대답했다고 지적하였다. 리 여사는 중국정부의 권위주의를 정당화하는 장쩌민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였다.

”우리 두 나라는 사회제도, 이념, 역사전통 그리고 문화배경이 상이하다. 두 나라는 인권이나 기본자유를 성취하는 방법이 다르다.” 34

보편적 가치기준을 거부하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을 통렬하게 해부한 리 여사의 비평은 그토록 강력하고도 합리적이어서 여러 곳에서 자주 인용된다. 기독교 유신론은 급진적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리 여사의 통렬한 비평에 동의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더 한 발 나아가서, 크리스천은 보편적 인권이 인간의 직관, 경험, 진화 또는 '그냥 옳음 (just-is-ness)'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유신론적 세계관의 입장에서 리 여사의 비평을 정당화할 수 있음을 말해야 한다. 보다 진실한 것은, 정의가 앞서 열거한 '빼앗을 수 없는 권리들'을 인간에게 '부여하여 주신' 영원하신 하나님한테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인본주의자인 리 여사는 이렇게 주장한다.

”그러나 다양한 도덕규범이 존재한다고 해서 다른 도덕 가치를 존중하여야 한다는 명제를 정당화 할 수 없는 것은, 병고, 기아, 고문, 노예제도가 존재한다고 해서 우리가 그것들의 가치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와 같이 경험적 주장들은 ”다른 문화를 판단하지 마라.” 또는 ”우리는 다른 가치도 인정하여야 한다.” 따위의 도덕적 원칙을 개발하기 위한 근거로서는 합당하지 않다.”

”만약에 존중되고 또 인정된 문화가 그 문화를 거역하는 개인을 존중하지 않고 인정도 하지 않을 때엔 어떻게 해야 좋다는 것인가? 한 소녀가 여성거세나, 발-묶기 또는 사전에 결정된 혼인을 피하기 위하여 싸울 때, 또는 과부가 죽은 남편을 섬기기 위한 분신을 원하지 않을 때에도, 상대론자는 이와 같은 개인들이 원하지 않는 문화 또는 전통적 관습이라도 그것들을 '반듯이 존중' 하여야만 할 것이 아닌가. 그럴 경우 상대론자는 개인을 존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고문, 간음 그리고 살인을 위한 도덕적 기초를 효과적으로 인준하여 주는 꼴이 된다. 도덕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윤리적 상대론자는 중립을 지켜낼 수는 없는 것이다. ─ 그들은 개인의 편에 서던가 아니면, 그 문화에 속한 군림하는 지배세력 편에 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상대론자들은 다른 삶의 방법에 대한 동등한 존중과 인정, 즉 그들이 절대적이고 보편적이라는 하나의 정교한 중심 가치를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윤리적 상대론자들은 스스로를 거부하고 말았다.” 35

같은 판 Free Inquiry 지에 올라있는 다른 논설들도 객관적 절대 윤리를 거절하는 급진적인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리 여사의 철퇴와 같은 비평에 힘을 실어주었다. 데오도르 쉬크 (Theodore Schick Jr.)는 ”문화는 도덕적으로 무오성이 아니기 때문에 - 동시에 문화가 비도덕적인 행위를 제재할 수 있기 때문에 - 문화적 상대론은 정확할 수 없다.” 라고 주장했다.36하비 시겔 (Harvey Siegel)은 ”왜 모든 것은 상대적이 아닌가 (Why Every Thing is Not Relative)” 에서 상대론자들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의 자체부조리의 문제를 지적했다.

”'상대론의 반대자들은 그 이론에 대한 비평을 수없이 많이 하였다. 가장 뛰어난 근본적인 비평은 이런 것이다. 즉, 상대론은 자기부조리를 스스로 밝힘으로써 자기반박적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의 이론에 대한 변호는 그 이론을 포기하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가장 강력한 [고발]은 상대론이 진리를 결정할 수 있는 가능성, 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이론적인 주장이나 논설의 인식론적 장점을 배제하고 말았다는 점이다.” 37

우리는 절대론적 인주의자들이 인본주의적 상대론이 파산되었다는 지적에 동의할 수 있다. 더욱이 본 논설의 2부에서 제시하겠지만, 절대론적 인본주의도 다른 인본주의와 마찬가지로 파산하였다는 것이 우리 주장이다. 하나님의 존재에 반대하는 주장들 중에는 주목할만한 것이 없는 대신에, 하나님의 존재에 찬성하는 주장들은 가히 압권이라 하겠다.

 

NOTES

1. 많은 사람들이 삶의 의미나 자신의 존재 이유를 심사숙고하는데 전혀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이나 다른 종류의 궁극적 가치와 이념에 관하여 이야기하는데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Seinfield 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그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만족한다. 이 논설은 삶의 의미와 인생의 존재를 사유하기를 원하는 사람들과 하나님의 존재와 그 적절성에 관한 토론에 기쁘게 참여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2. 마태복음 28:19
3. 이 정의는 George Smith가 Atheism에서 일반화시켰다. The Case Against God (Amherst, NY: Prometheus, 1980).
4. 'Are Secular Humanists Atheists?' The Secular Humanism Organization.
5. 그 자체가 이미 보편적 부정인 명제, 즉 ”보편적 부정을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와 같은 진술의 허위인 것과 같이, 어떤 '보편적 부정'은 입증될 수도, 반증될 수도 있다. 매개변수들이 주의 깊게 알려지고 탐색되고 있는 한에서, 보편적 부정은 증명될 수 있다는 가설은 성립된다. 또 다른 하나의 예는 이런 것이 될 것이다. 즉, ”우리 집 연못 밑에서 살고 있는 호흡기관이 없는 낯익은 종류의 코끼리들은 없다.” 어쨌거나 보편적 부정은 증명하기가 어렵다.
6. 'Agnosticism,' in Encylopedia Britannica 2000. (on-line version at www.britannica.com).
7. An excellent book on this subject is J.P. Moreland's Love Your God with All Your Mind (Colorado springs, CO: NevPress, 1997).
8. Paul Kurtz, 'Humanists Manifeto to 2000 : a Call for a New Planetary Humanism,' Free inquiry, Fall 1999, 4.
9. 'Definitions of Humanism,' The American Humanist Association Web site (https://americanhumanist.org/), 1997, 2.
10. Ibid.
11. Council for Secular Humanism.
12. Quoted in Philip Johnson, Reason in the Balance (downers Grove, IL: Inter Varsity, 1995), 176.
13. A popular rumors attributed to her is false. It concerns a petition to the FCC to remove religious broadcasting from U.S. airwaves. This is completely fabricated and was never pursued by O'Hair or any other atheist organization and is beyond the power of the FCC to consider. See Bob Passantino, Fatasies, Legends, and Heroes (Costa mesa, CA: Answers In Action, 1989), 28.
14. Louis Dubose, 'Whatever Happened to the World's Most Famous Atheist?' The Progressive. Feb. 1999, 5
15. Excepting her son, William Murray (the subject of her original lawsuit), who had been estranged from his mother since his conversion to Christ.
16. See news reports, including Dubose.
17. Ibid.
18. (www.primenet.com/~lippard/atheistcelebs).
19. (www.atheists.org)

20. Dan Barker, 'What Is a Freethinker?' ('Nontract #11') (Madison, WI: Freedom from Religion Foundation, 1993), 1-3 (also at www.ffrf.org/nontracts/freethinker.html).
21. 'Welcome to the American Humanist Association Website,”
22. 'The Affirmations of Humanism: A Statement of Principles,” Council for Secular Humanism.
23.'Definitions of Humanism,” The American Humanist Association Web site, 1997, 3.
24. 'Rationalism,” American Rationalist: The Alternative to Religious Superstition Web site.
25. From the humanist's viewpoint is unwarranted, but from God's relvelation we are told that humans alone out of all of God's creation were made 'in His image.'
26. 'Manifesto 2000 Commendations and Comments,' Free inquiry, Winter 1999/2000, 8.
27. Christian auther Gregory Koukl explains the three responses as: 'One: Morality is simply an illusion. Two: Moral rules exist but are mere accidents, the product of chance. Three: Moral rules are not accidents but are the product of intelligence.' (Frances J. Beckwith and Gregory Koukl. Relativism: Feet Planet Firmly in Mid-Air [Grand Rapids: Baker, 1998, 167.)
28. 많은 사람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용어의 정확한 정의에 숙지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리고 그들이 포스트모더니스트가 어떤 부류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념들을 신봉한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원하는 사람은 Christian Research Journal 22, no.2 (1999): 56-58에 실린 Stephen Ross 의 'A Postmodern Promenade,'를 참조하세요.
29. 이 증거들을 요약한 재료가 Beckwith and Koukl 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도덕적 상대론의 역사와 광범한 내용은 Beckwith and Koukle의 제 8장 (가치의 해설과 교육)에서 그리고 정치의 정당성과 다중 문화주의는 제 10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30. HM2K Article II, 8.
31. What Happened to Truth? issue of Free Inquiry, Fall 1998.
32. Matt Cherry, 'Truth and Consequences,' Free Inquiry, Fall 1998, 20.
33. E. O. Wilson, 'Back to the Enlihtenment,' Free Inquiry, Fall 1998, 21.
34. Xiaorong Li, 'Postmodernism and Universal Human Rights: Why Theory and Reality Don't Mix,' Free Inquiry, Fall 1998, 28.
35. Theodore Schick, Jr., 'Is Morality a Matter of Taste?' Free Inquiry, Fall 1998, 32-34. 아마 그는 알지 못했는지 모르지만, 그가 설명하였던 원리는 2000년 전에 바울 사도가 로마서 2:1에서 이미 언급하였었다.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그런데, 바울의 대답은 Schick의 대답보다 훨씬 더 만족스럽다. 그것은 바울이 인간 내면의 양심을 윤리적 판단의 근거로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마서 2:21,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36.  Harvey Siegel, 'Why Everything Is Not Relative,' Free Inquiry, Fall 1998, 35-38.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equip.org/free/DR503-1.htm 

출처 -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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