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진화론

다윈의 진화론 

(Darwin's Evolutionism)


1. 비글호 여행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은 약관 22세의 나이에 피츠로이선장이 이끄는 10문의 대포를 장전한 영국해군의 측량선 비글호(The Beagle, 사진 6)를 타고서 데븐포트 항구를 떠나 다시 팔마우스 항으로 귀환하기까지 장장 5년간(1831.12-1836.10) 남태평양 일대와 갈라파고스 제도(Galapagos islands)를 항해하였다. 이처럼 긴 여행에서 그는 동식물군이 같은 종류사이에도 약간씩 차이가 있으며 갈라파고스군도의 인접한 섬에 살고 있는 동식물들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 라이엘과 말서스의 이론을 참고로 하여 생물진화론(biological evolution)의 골격을 만들었다. 이러한 그의 이론은 <제일원리>(First Principle 1862), <생물학원리>(Principles of Biology 1864-1867), 그리고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1859-1872) 등에 발표되었다(사진 7). 이 책의 원명은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 또는 생명을 위한 투쟁에 있어서 좋은 종의 보존에 관하여 (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 이다.

다윈(사진 8)은 여행 후 친구인 후커(Joseph Dalton Hooker 1817-1911)에게 보낸 편지(1844.11)에서 '갈라파고스의 생물분포는..인상적이었다..(마치 살인했다고 고백하는 심정이지만) 생물은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에 이르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이론의 골격은 이미 1837년에 완성했으나 다윈은 20여년간 발표하지 않고 있다가, 식물학자인 월레스((Alfred Russel Wallace 1823-1913)가 말레이에서 보내온 <변종이 원형에서 무한히 멀어지는 경향에 대하여>라는 글을 읽고, 그 내용이 자신의 주장과 대부분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고서 서둘러 <종의 기원>을 발간했다고 한다. 후커의 중재로 다윈과 월레스는 공동명의의 논문을 발표했으나(1858.7.1), 다윈은 다음 해 서둘러 <종의 기원>(1859.11.24)을 발표한 것이다.

다윈이 주장한 진화론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생물은 필요 이상으로 자손을 낳는다(Overproduction)

(2) 개체간에는 변이가 일어난다(Individual variation)

(3) 이들은 경쟁한다(Competition)

(4) 환경에 보다 잘 적응하는 개체가 확률적으로 생존하게 된다(Survival of the fittist)

(5) 자연은 이러한 방식으로 생존력이 강한 개체를 선택한다(Natural selection)

이러한 다윈의 진화론은 몇 가지 가상적인 조건들을 필요로 한다. 첫째는 장기간(long term)에 걸쳐서 일어났다는 시간개념이다.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 이행할 때마다 오랜 기간이 소요됐을 것이라 가정한다. 둘째는, 서서히 점진적으로(slowly & gradually) 진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환경에 적응하는 개체들을 자연이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서서히 점진적으로 진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라이엘의 지질학 이론에서 따온 것이다. 물론, 이러한 두 조건은 오늘날 창조론자는 물론 많은 진화론자들에 의해서도 부정되고 있다. 다윈은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오직 물질뿐이며 정신적이거나 영적인 현상들은 부산물에 불과하다'고 하여 유물론적 성향을 분명하게 드러냈다(M & N Note 1838/1839, Descent of Man 1871) 이러한 주장은 마르크스의 유물론과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고 받았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마르크스(Karl Marx)는 그의 친구인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1869)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비록, 영국식의 엉성스러운 스타일로 (진화론을) 전개했지만, 우리들의 이론에 대한 자연과학적 근거를 제공하였다.' 유물론에서도 정신은 물질의 산물로 해석하고 있어 진화론과 맥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만한 현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다윈은 <인류의 혈통>(1871)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어린 생명은 다 생존하는 것이 아니며 늙어서 죽는 것이 아니다. 자연도태의 원칙에 있어 생존에 적합한 종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고 부적합한 종은 멸종한다...지구가 처음 생성될 때 있었던 종이 현존하는 것은 극히 드물고 현존하는 종들은 원형으로부터 형질이 변화하여 생존에 유리하도록 바뀐 것이다. 인간도 이같은 자연의 법칙으로 진화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러한 다윈의 이론은 자연과학뿐 아니라 종교, 사회, 교육분야에 큰 영향을 끼쳤다. 사회적 다윈주의(Social Darwinism)는 생물학적 생존경쟁이론을 경제, 사회, 정치분야에 적용하였다. 그 결과, 정치적인 보수주의, 경제적 방임주의, 사회적 개인주의가 태동하였다. 서구인들은 다윈 이론에 기초하여 제국주의, 인종주의, 민족주의, 군국주의, 자본주의를 추구하였다. 이들은 평등과 인권을 주장한 계몽주의와도 충돌하게 되었다.

 

2. 옥스포드의 논쟁

그의 진화론이 발표되자 영국사회는 큰 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자연과학의 문제가 사회와 종교의 문제로 비화하게 된 것은 예견된 일이기도 하였다. 종의 진화여부, 자연선택이 과연 진화의 요인인가 하는 문제, 신의 설계에 관한 문제, 인간이 유인원의 후손인가 하는 심각한 문제들이 일시에 사회 전면에 대두되었다. 이리하여 진화론과 창조론 두 진영간에 공개적으로 첨예하게 부딪힌 사건이 '다윈의 불독'이라 불리운 헉슬리(Thomas H. Huxley 1825-1895)와 오웬(Owen)의 후원을 받은 윌버포스 주교 사이에 옥스퍼드 대학에서 벌어진 옥스퍼드논쟁(1860.6)이었다(사진 9). 오웬 (Richard Owen 1804-1892)은 당대에 저명한 해부학자로, 영국자연사박물관의 초대 관장직을 맡고 있었으며, 다윈의 진화론에 적극 반대하였다. 이렇게 하여 성경중심의 유신론적인 신학과 무신론적이며 유물론적인 진화론 사이에 서로 질 수 없는 한 판 승부가 전개되었는데, 논쟁결과 진화론이 우세를 보임에 따라 진화론은 전 유럽으로 급속히 퍼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 시대를 대표하는 세기적인 과학자였던 톰슨(William Thompson), 파라디(Michael Faraday 1791-1867) 및 맥스웰(James Maxwell) 등은 단호하게 진화론을 배척하였다. 그로부터 5년 후 진화론에 거부적인  영국과학자협회 소속의 과학자 617명이 모여서 다음과 같은 반진화론 선언(1865)을 하였다. "성경의 진리에 의심을 던지는 과학자들의 태도에 마음이 아프다. 우리는 자연과학은 완전치 않으며, 성경과 (실험)연구내용이 일치하지 않는다 하여도 언젠가 일치할 때가 오리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오웬이 죽은 후(1892) 자연사박물관 입구에는 아서 케이스를 비롯한 다윈의 추종자들에 의해 다윈의 좌상이 들어섰다.

 

3. <다윈의 불독> 헉슬리와 <진화론의 예언자> 헤켈

영국의 헉슬리는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적극 옹호하여 <다윈의 불독>이라 불리웠다. 그는 진화론의 전파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북대서양 심해의 진흙에서 발견한 원핵생물들을 독일의 진화학자인 헤켈의 이름을 따서 버티비우스 헤켈리(Bathybius heckelii)라 명명하기도 하였다. [Thomas Huxley; On some living organisma living at great depths in the North Atlantic Ocean, Quarterly J. of Microscopical Science, 8, p 204, London, 1868].

 <진화론의 예언자>라 불리운 헤켈(Ernst Haeckel 1834-1919)은 베르린 등지에서 커다란 홀을 빌려 일반인에게 강연하는 등 정열적으로 진화론을 전파하는 데 노력하였다(사진 10).

그의 사고방식은 매우 체계적이었으며, 처음으로 생물의 계통수를 만들기도 하였다(그림 3). 그리고, 무생물이 생명체로 이행된 과정이 무리라 생각하고 그 중간에 모네라(Monera)라는 가상적인 생명체를 삽입하였다. [Ernst Haeckel; Genelle Morphologie der Organismen, vol.2, 1;135, 1866]. 그리고, 핵이 없이 원형질로만 구성된 수많은 종류의 가상적인 모네라의 그림을 곁들여 인쇄하였다. [The History of Creation, 2 vols, New York, Translated by D. Appleton, 1868].

그때까지 다윈에 반대해 왔던 지질학자 라이엘이 결국 진화론을 수용하게 되자 진화론은 더욱 빠른 속도로 전 유럽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이렇게 하여 1870년대에는 자연선택설이 광범위하게 지지를 받는 기간이 되었다.

 

4. 신라마르크주의와 신다윈주의

그러나, 이웃 프랑스에서는 신(新)라마르크주의(Neo-Lamarkism)가 일어나 후천획득형질의 유전설을 인정하고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배척하였다. 영국의 철학자인 스펜서(Spencer)와 독일의 헤켈도 획득형질의 유전에 찬성하였다. 그러나, 바이스만은 자연선택설을 지지했으나, 후천획득형질의 유전설을 실험결과를 토대로 부인하고 다윈의 다른 주장들도 배격하는 신다윈주의(Neo-Darwinism)를 수립하였다.

1900년에 모계형질만이 유전이 된다는 멘델의 유전법칙이 드브리스 등에 의해 재발견되면서 진화론의 모순이 극명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이처럼, 초창기에 다윈의 진화론이 처음에는 위세를 떨치며 학계를 풍미했던 현상과는 달리,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진화론자들의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바그너(1813-1887)와 로마네스(1848-1894)는 생물종의 일부가 지리적으로 격리된 곳에서 생육하면 신종이 탄생한다는 격리설(Isolation Theory)를 주장하였다. 이 설은 후일 집단유전학(Population Genetics)으로 연결되었다.

 

5. 인종우생학의 등장

한편, 다윈의 종제(從弟)인 갤튼(Francis Galton 1822-1911)은 인종우생학(Eugenics 1883)을 창립하고 인종개량을 역설하여 많은 윤리적인 문제를 야기시켰다. 이들에 의하면, 인종은 백인, 황인, 흑인 순으로 우수하며, 백인 중에서도 북구인(Nordic White)이 우수하므로 그들을 중심으로 인종을 개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학회는 구미제국을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과거 10년간(1925-1934) 그들의 영향으로 제정된 단종법(斷種法)에 따라 9천여명의 유전병이나 선천적 불구자들이 강제로 금혼당했던 것으로 브리태니카는 기록하고 있다. 또한 우량인종을 보호할 목적으로 유색인종의 미국이민을 제한하는 이민제한법(移民制限法)의 제정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는 명백히 인권을 유린한 행위이며 인종차별을 시도한 범죄적 사건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여기에 대해서는 뒷장에서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6. 돌연변이설과 집단유전학의 등장

드브리스(Hugo de Vries 1848-1935)는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비판하고, 돌연변이에 의한 유전설을 주장하였다. 그는 "진화는 순계에 있어서 일련의 돌연변이로 일어나는 것이며, 자연선택은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하였다. 요한센(W.L Johansen)은 <순계설>(純系說 1903)에서 "선택은 순계의 분리에 소용될 뿐이고 환경에 의한 변이는 진화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하면서 유전자의 불변설을 주창하였다.

진화론자인 모건(Thomas Hunt Morgan 1866-1945)은 <초파리의 염색체 및 유전연구> (1933)로 유전자설(遺傳子說)을 주장하고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비판하였다. 그의 이론은 모건그룹(Morgan Group)이라 불리운 세 명의 제자인 스튜티벤트(Alfred H. Sturtevant 1891-1970), 브릿지(Calvin B. Bridges 1889-1938), 뮐러(Hermann J. Muller 1890-1967)에 의해 계승되었다. 뮐러는 진화론을 (1)라마르크의 용불용설, (2)돌연변이에 의한 도약진화설, (3)다윈의 자연선택설, (4)네겔리의 점진적 발달설로 구분하고, 자신은 다윈과는 달리 생물이 갑자기 진화한다는 도약진화설을 지지한다고 하였다. 로티(J.P. Rotti 1916)는 교잡에 의해 생물종이 진화가 일어난다는 교잡설(交雜說)을 주장하였다.

도브쟌스키(Theodosius Dobzansky 1900-1976)는 <유전학과 종의 기원>(1937)에서 진화요인으로 '격리'가 중요한 역할을 하며, 소수 개체군의 격리가 신종의 형성에 중요하다는 집단유전학(集團遺傳學)을 주장하였다. 집단유전학은 돌연변이나 격리에 의한 자연선택설을 생물통계학적으로 뒷받침하려는 이론으로, "다윈주의의 현대적 부활" 또는 "진화의 종합학설"로도 불리운다. 유전자나 염색체가 변이에 의해 생긴 돌연변이가 격리, 이주, 자연선택 등에 의해 고정이 되면서 신종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할데인( John B.S. Haldane 1892-1964)도 집단유전학자중 하나이다.

하아디(Godfrey H. Hardy 1877-1947)와 바인버그(Wilhelm Weinberg 1862-1937)는 '하아디-바인버그설'을 주장하였고, 쉰데볼프(Otto H. Schdewolf 1896-1971)는 정향진화설을 제창하였다. 이들은 다윈의 자연선택이론을 통계학적인 방법으로 유전학적으로 해석함으로써 두 학설간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시도하였다. 이렇게 하여 집단유전학이 탄생함으로써 다윈주의는 극적으로 부활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진화요인으로서 다시 생존경쟁과 자연선택론이 강조되었고, 여기에 돌연변이와 격리효과가 추가된 현대종합이론(modern synthetic theory)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7. 바람직한 괴물이론

1940년대에 특기할 사건은 비교생물학의 등장과 괴물론의 제기이다. 슈밋트(R. Gold Schmidt)는 종내 변화를 소진화(microevolution)라 하고 종간 변화를 대진화(macroevolution)로 구분했으며, 신종의 급격한 출현을 내용으로 하는 전체돌연변이설(systematic mutation theory)을 <진화의 물질적 기초>(1940)를 통하여 주장하였다. 그의 이론은 1970년대에 하버드 대학의 굴드(Stephene Gould)가 <바람직한 괴물이론>(hopful monster theory)으로 재탄생시켜, 지금은 진화론의 주된 이론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 이론의 수용은 전통진화론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들 최신 진화론에 대해서는 좀더 상세히 후술할 것이다. 이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이 에데노피테쿠스(Edenopithecus)라는 고등동물로 진화하리라고 이름까지도 지어 놓고 기다리고 있는 상태이다.

쥴리언 헉슬리(Julian Huxley)는 다윈의 <종의 기원>발표 100주년 기념학술대회(1959)에서 '다윈의 이론은 창조주인 하나님의 존재를 우리의 인식세계에서 완전히 제거하였다' 고 하였다. 그리고, 그의 저서인 <진화론의 문제>(Issues in Evolution 1960)에서 "다윈의 진화론은 이제 이론이 아니고 사실이다. 진화론을 부인하는 것은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도는 것을 부인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그런가 하면 시카고 진화회의(1980)에서는 "화석기록에서 빠진 고리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의 법칙이다. 과학자들이 종과 종 사이를 이어주는 전이형태의 화석을 찾으려면 찾을수록 실망만 한다"고 실토하기도 하였다.

1940년을 전후하여 탄생한 비교생화학(comparative biochemistry)은 생물 상호간의 생화학적 유사성을 비교함으로써 생물학적 유연관계를 진화과정으로 해석하려는 것이다. 여기에는 핵산염기의 상동성, 여러 단백질의 아미노산배열상의 상동성을 제시하고 있다. 비교발생학은 배아나 기관의 발생과정과 물질대사와의 관계를 규명함으로써 진화론의 옹호에 이용하려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헤켈의 배아 발생도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8. 분자생물학의 등장

1930년대에 태동한 분자유전학(molecular genetics)는 1950년대에는 핵산구조의 발견으로 이어졌다. 1960년대에는 핵산으로부터 단백질의 합성되는 과정이 밝혀짐으로써 센트랄 도그마(central dogma)가 수립되었다. 1970년대부터는 유전자조작시대로 접어들었고, 1980년대부터는 시험관아기의 탄생, 1990년대에는 인간유전체연구와 및 배아복제의 연구가 생명과학분야를 이끌었다. 그 결과, 생명의 구조가 부분적으로 밝혀지고 생명체의 일부를 인간이 조작하게 됨으로써 생명윤리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게 되었다.

분자생물학의 발달 자체는 진화론을 지지하는 증거가 아니다. 다만, 인간이 과거에는 접근하지 못했던 생명과학의 영역까지 침투해 들어갔다는 사실 때문에 진화론자들은 흡사 생명이 물질로 구성된 것임을 증명이라도 한 것인 양 홍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알려진 생명과학의 정보가 극히 미미한 것일 뿐 아니라, 점차로 밝혀지는 생명체의 신비는 오히려 창조의 가능성을 더욱 입증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2.3 진화론적 종의 분화설

생물은 전통적으로 동물계와 식물계로 대별되어 왔다. 그러나, 미생물을 포함한 새로운 종의 발견으로 생물의 분류체계는 재검토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지금은 동물계, 식물계, 균류계, 원생생물계, 모네라계의 5군으로 구분하고 있다. 또 다른 분류법으로는 세포내의 핵막(nuclear membrane)의 유무에 따라 분류하는 방법이다. 핵막이 없는 것은 원핵생물(原核生物 procaryota)이며 있는 것을 진핵생물(生物生物 eucaryota)로 대별하기도 한다. 이 분류에 의할 경우, 세균은 원핵생물군에 속하고 곰팡이, 효모를 포함한 균류이상의 고등생물은 진핵생물군에 속하게 된다. 이중에서 진화론에서 특히 중요시하는 분야가 동물계이다. 동물의 문(門)은 계통발생학적인 관계에서 동물군집간의 상대적인 형태와 배발생(胚發生)에 근거하여 구분하고 있다.

진화론자들은 진화에는 향상진화, 분기진화 및 수렴진화가 있다고 말한다. 향상진화(anagenesis)는 일명 계통진화(phyletic evolution)이라고도 하는 데, 전체 개체군이 일정기간중 원래의 한 종에서 새로운 종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분기진화(cledogenesis)는 모계로부터 수 많은 신종이 환경에 맞게 진화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분기진화가 반복됨으로써 모계의 생물도 생존하면서 수많은 신종 생물이 출현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적응방산(adaptive radiation)에 의해 생물학적 다양성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계통의 생물이 진화에 의해 비슷한 형질을 나타내는 경우 수렴진화(covergent evolution)이라고 부른다.  예컨데, 새와 박쥐, 고래와 어류는 상동성이 없으나, 다른 생물로부터 같은 조류나 어류가 되었다는 것이다. 습성과 외관이 유사한 호주의 유대류는 태반포유류가 수렴진화한 것이라 진화론자들은 추리한다. 이러한 다른 종의 분화요인으로서 지역적으로 격리되어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것을 이지역 종형성(異地域種形成 allopatric speciation)이라고 부른다. 진화론자들은 그 대표적인 예로 다윈이 관찰했던 갈라파고스 제도의 방울부리새(Finch birds)를 든다(그림 4). 이와는 반대로, 같은 지역에서도 새로운 종이 형성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동지역종형성(同地域種形成 sympatric speciation)이라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식물에서 많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배수성(polyploidy)을 갖진 종 사이에 염색체가 결합하는 경우 이질배수(alloploidy)라 하는 데, 이는 배수체가 감수분열시 짝을 지을 수 있기 때문에 잡종을 형성한 것이며, 현화식물에서 많이 발견되는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동물분류를 최근의 과학적 시각으로 생물의 계통수로 나타낸 것은 헤켈(E. Haeckel)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분류는 화석의 결과와 상충되는 것이 많은 모순된 것이었다. 고생물학자들의 오랜 연구결과들은 생물이 단계적으로 출현한 것이 아니라, 캄브리안기에 갑자기 출현했다는 데 의견들이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5S-rRNA를 이용한 실험으로도 확인되었으며, 이러한 사실을 참고로 마굴리스(Margulis & Schwartz, 1982)는 새로운 동물계통수를 제안하였다(그림 5). 워스((Woese et al, 1987)는 16S-rRNA의 유사성을 기준으로 생물의 계통도를 만들djT고,  원핵생물과 진핵생물외에 또 다른 생물군이 있다고 하였다. 이 고세균군(古細菌群)은 5S-rRNA로 분석한 결과 진핵세포에 가깝기 때문에 호리(Hori)등은 <후생세균>으로 명명하자고 제안하였다.

척추동물의 기원은 여러 설이 있으나, 미국의 고생물학자인 로머(Romer)가 주장한 대로 후구동물이나 원색동물에서 유래한 설을 채택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실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생물의 제반 유사성을 근거로 한 가설인 것이다. 척추동물의 기원은 원색동물→무악류→무악류→판피류→어류로 진화되었으리라 추정한다. 일곱 개의 아가미를 가진 칠성뱀장어는 원구류인데 무악류(3.5~5억 년 전)에서 진화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데본기에는 어류의 조상이라는 경골어류 외에 연골어류도 출현하므로 어류시대라 불리운다. 이중 경골어류가 육지생활에 적응하여 양서류가 되었으리라 추측하고 있다. 데본기에 살았다는 담수어인 선기류(rhipidistians)와 바다에 살았던 관추류가 총기류에 속한다. 그러나,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관추류인 실라칸스(Latimeria)가 최근에 동부 아프리카의 코모르제도의 심해에서 잇달아 발견되고 있는 데, 7천만년 전의 모습과 조금도 변함이 없어 진화론자들을 당혹케 하고 있다.

진화론에서는 육상에 척추동물이 처음 출현한 때를 진화론자들은 3.5억 년 전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총기류의 일종인 관추류가 양서류로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이 시대는 진화지질학적으로 석탄기와 이첩기에 해당한다. 석탄은 양치식물(지름 1.5m, 높이 30m)이 탄화된 것인 데, 당시에는 고온다습한 열대기후였기 때문에 개구리와 같은 양서류의 서식에 적합했으리라고 추측한다. 중생대에는 양서류가 파충류(공룡포함)로 진화했으리라 추측한다. 파충류는 거북, 도마뱀, 뱀, 악어가 대표적인 동물종이다. 3억5천만 년 전부터 수중생활을 한 고공류(Anthracosurus)와 단궁류인 오피아코돈(Opiacodon)에서 유식동물인 반용류(Pelycosaurus)를 거쳐 수궁류(Therapsids)인 시노그나터스(Cynognathus)로, 여기에서 다시 포유류로 진화했다는 것이다(그림 6). 파충류의 일종인 공룡은 삼첩기에 나타나 쥐라기와 백악기에 번성하였는데, 조반목(Ornithischia)과 용반목(Saurischia)로 나눈다. 조반목에 속하는 것으로는 초식성이며 뿔이 달린 트리세라톱스(Triceratops)와 거대한 몸집(길이6m, 8톤)에 육식성의 티라노사우루스(Tyranosaurus), 최대의 몸집(길이 20-25m, 50톤)을 가진 브론토사우루스(Brontosaurus)가 있다.

그 후, 파충류에서 조류와 포유류가 되었다고 한다. 포유류는 단궁류→반용류→수궁류(이첩기후기)→견치류(Cynognathus)→포유류(삼첩기말기)의 순서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원시 포유류는 고양이나 쥐처럼 작은 체구를 가졌으며, 적응방산에 의해 여러 종류로 분화되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고 한다. 그러다가 백악기 후기(7,000만년 전)부터 포유류시대라 불리우는 신생대로 접어들게 된다. 이후 4천만 년간(시신세-점신세)에 걸쳐서 소형포유류가 대형포유류, 원시영장류, 유인원을 거쳐서 인간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들은 모두 추리에 기초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진화의 속도에 대해서는 장기간에 걸쳐서 서서히 이루어진다는 전통적인 점진설(gradualism)과 진화가 급격히 일어난 후 긴 정지기로 들어간다는 단속평형설(punctuated equibrium theory)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다. 그러나, 단속평형설이 점점 진화론자들의 지지의 폭을 넓혀가고 있으며, 이는 창조주가 모든 생물을 처음부터 종류대로 만들었다고 하는 창조모델로 접근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출처 -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서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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