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혹한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에 대한 다윈의 영향
: 카네기, 록펠러 등의 자본가들과 진화론
(Darwin's Influence on Ruthless Laissez Faire Capitalism)
개요 (Abstract)
몇몇 지도자적 위치의 '강도 귀족(robber baron, 착취로 축재한 19C 자본가)'들에 대한 글들을 검토하여 보면, 그들의 많은 수가 강자가 궁극적으로 약자를 지배한다는 다윈 사상의 영향을 극명하게 받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윈 사상을 신봉하였던 자본가들은 결국 강자의 약자 지배가 도덕적으로 정당하고 완전히 자연스럽다고 믿었기 때문에, 무자비한(때로는 비윤리적이며 불법적인) 상거래 관행이 과학적으로도 정당화된다고 확신하였다. 다시 말해서 다윈주의가 표방하는 관념과 결론은 '역사 전개'에 불가피한 부분이라고 확신한 그들은 무자비한 상거래관행이 정당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서론 (Introduction)
다윈의 세계관은 나치즘이나 공산주의의 발전뿐만 아니라, 1800년대와 1900년대에 번창한 냉혹한 자본주의의 융성에도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Morris and Morris, 1996). 자본주의에 따라다니는 오명의 핵심은 남은 중요하지 않다는 극단적 개인주의에서 출발하여, 마침내 '약한' 회사를 착취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동시에 타당한 상행위라는 그들의 확신에서 연유되었다. 소위 robber baron들은 그들의 행동이 자연법에 의해 정당화되는 불가피한 역사의 소산이라고 추단(推斷)하였던 것이다.(Josephson, 1934). 그들 중 크리스천으로 성장한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그들은 기독교교리를 거부하든가, 사회주의적 다윈주의를 포용하기 위하여 기독교 교리를 수정하려 하였다. 겔트루드 힘멜파브(Gertrude Himmelfarb)는 다윈사상이 영국에서 수용된 데는 부분적으로나마 그것이 어떤 특수층의 탐욕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르기를, 자연선택 이론이 영국 땅에서 발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이론이야말로 냉엄한 영국의 국가이념이 필요로 하는 원자론적(原子論的)이며, 이기적(利己的)인 의식구조에 기여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에서 다윈은 기본 단위는 개인이며, 기본 본능은 이기심이며, 기본 활동은 투쟁이라고, 사뭇 유순한 척 말하였다. 스펭글러(Spengler)는 기원을 '생물학에 대한 경제학의 적용' 이라고 기술하면서, 그것은 영국에서 빅토리아여왕 시대에 풍미하던 자본주의 윤리와 맨체스터 경제학의 '탐욕 철학'이었기 때문에…영국 공장의…자연선택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풍기고 있다(1962, p. 418)고 지적했다.”
라셀(Rachels)은 자본가들이 생물학의 '적자생존' 이론을 "살인적 경쟁을 승인하는 경제계의 윤리적 권유"로 해석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였다.(1990, p. 63, see also Hsu, 1986, p. 10). 쥴리안 헉슬리(Julian Huxley)와 키틀웰(H.B.D. Kittlewell)은 다윈주의 사회학은 ”자유기업에 영광을 돌린 결과 경제사회를 무자비한 상행위와 전쟁, 비과학적인 우생학과 인종주의로 인도하여 마침내 히틀러와 나치의 이념을 낳았다”고 결론지었다.(헉슬리와 키틀웰에서, 1965, p. 81).
냉혹한 자본주의 (Ruthless Capitalism)
다윈주의는 공산주의자들의 무자비한 착취뿐만 아니라, 앤드루 카네기(Andrew Carnegie)와 존 록펠러 (John D. Rockefeller)와 같은 독점 자본가들의 무자비한 상행위를 정당화하였다. 켄네스 슈(Kenneth Hsü) (1986, p. 534)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다윈주의는 영국과 미국에서 경쟁적 개인주의와 자유방임적 자본주의 상행위를 변호하는데 이용되었다.”
스탈린, 마르크스, 레닌, 그리고 히틀러와 마찬가지로 카네기(Carnegie)도 한 때는 기독교 교리를 믿었으나, 결국에는 포기하고 다윈주의를 수용한 후, 저 유명한 다윈주의 사회학자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와 친밀한 친구관계를 유지했다. 카네기는 자서전에서 친구 몇 사람과 함께 기독교 교리에 회의를 품게 되었을 때를 이렇게 회고하였다.
”… 기독교 교리 뿐만 아니라, 초자연적인 요소, 그리고 대속을 통한 인간구원의 계획과 그 위에 세워진 온갖 조직구조까지도 포함하여, 내가 회의를 품게 되었을 때, 다윈과 스펜서의 저작물을 만났던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 나는 빛이 홍수와 같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으며, 모든 것이 분명하게 밝아지던 경험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나는 신학과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을 물리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진화의 진리를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더 좋게 자라가는 것은 다 좋은 것이다' 라는 격언이 내 좌우명이 되었으며, 나의 진정한 위안의 원천이 되었다. 사람은 원죄를 가지고 지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저급한 모습에서부터 고급한 모습으로 높여졌던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완성을 지향한 행진을 가로막는 어떤 막힘도 상상할 수 없다” (1920, p. 327).
아래 인용된 카네기의 말은 그의 지론을 가장 잘 요약하고 있다.
”경쟁의 법은 그것이 선의냐 악의냐 와는 상관없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경쟁을 피할 수 없다. 경쟁의 대체 개념은 아직 발견된바 없다. 법이 때로는 개인한테는 가혹할 수도 있을 것이나, 그것이 경주의 최선이 되는 이유는 그것이 모든 삶의 현장에서 적자의 생존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Hsu의 글을 인용함, 1986, p. 10).
기록에 의하면, 존 록펠러는 언젠가 한 번 ”대기업의 성장은 단지 적자생존의 결과다 … 자연의 법칙이 성취됐을 따름이라는 말이다 … ”라고 말했다.(Ghent, 1902, p. 29). 명목상의 크리스천 명사로 행세하던 록펠러 가문의 사람들은 진화론을 전폭적으로 수용하다 못해 성경 앞부분의 책들을 신화라고 치부해버렸다.(Taylor, 1991, p. 386). 어떤 박애주의자가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William Jenning Bryan, 스코프스 재판에서 창조론을 변호함)의 이름을 딴 대학의 설립을 위해 1만 달러의 희사를 약속하였을 때, 존 록펠러 2세는 이에 응수하기 위해 바로 그 날 공개적인 反창조주의 대학교인 시카고 신학교(Chicago Divinity School)에 100만 불을 기부하였다.(Larson, 1997, p. 183). Morris and Morris는 록펠러의 철학이 철도계의 거물인 제임즈 힐(James Hill) 뿐만 아니라, 아마도 당시의 대부분의 자본가들에 의해서 수용되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1996, p. 87). 모리스가 암시하는 바에 의하면, 수많은 현대의 진화론자들도
”…사회주의적 진화론자들의 극단적인 경향을 한탄한다. 그러나 사실은 이렇다. 즉, 다윈주의야말로 사업계와 정치계에 고루 팽배하던 무자비한 경쟁에 과학적인 재가를 허락해주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19C의 자유방임주의적인 자본가들 사이에서 크게 인기가 있었다.” (p. 83).
이런 암시뿐만 아니라 Morris and Morris는 다시 이렇게 지적한다. 즉, 좌익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냉정한 극우 자본가들도 한 가지로 反창조론자들이다. 그리고 '심지어 상호간에 싸움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도 그들이 창조론에 대항할 때만은 공동전선을 펼친다 … (p. 82). 기독교를 포기하지 않는 자본가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들은 기독교 신앙을 다윈주의에 대한 신념과 혼합하려 한다. 그 결과 그들의 신앙은 유신론적 진화론이라는 절충 형태가 되어버렸다. 비록 대부분의 미국 사업가들이 짐작컨대 의식화된 사회주의적 다윈주의자는 아닐지라도,
”… 그들은 자신들이 거둔 것과 같은 성공은 상대적으로 덜 성공적인 경쟁자들을 유린하여 얻어진 것이라기 보다는, 자신들의 근면과 덕행의 소산이라고 정의하였다. 어쨌거나 그들은 결국 스스로를 크리스천으로 인정하였으며, '너희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과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만큼 남을 대접하라'는 가르침을 충실하게 지켰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비록 그들은 불가능한 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부라는 신을 동시에 섬기려하였지만, 그들은 기독교 교리를 다윈의 생존투쟁과 적자생존 이념에 순응시키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동업자들과 결코 경제전쟁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의식하고 있었다.”(Oldroyd, 1980, p. 216).
자유방임적인 자본주의에 대한 다윈의 중요한 기여를 기록한 몇 가지 연구발표가 있다. 무연탄 파업연대(Anthracite Coal Strike Commission) (1902-1903)의 청문회를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 석탄 트러스트는 '적자생존' 이론에 개인의 자유와 권한을 가미하여 다윈의 이념을 설교하였다'(Doukas, 1997, P.367). 이 연구는 '미국의 국가 이념 안에서 엿볼 수 있는 사회주의적 다윈주의의 인기를 법인자본주의의 쇄신으로 이해되어야 한다”(Douka, 1997, p. 367)라고 하였다.
로젠탈(Rosenthal, 1997)은 역사적으로 보아 생물속생설(생물은 생물에서만 발생한다는 이론)은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전쟁, 그리고 자본주의들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들을 수용하는 태도를 증진시키는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생물발생 이론은 인간의 사회적 행동이 어떤 생물발생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새로운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서 생물속생설은 사업/사회에서의 경쟁, 남성우월주의, 공격적인 사회현상, 영토주도권 싸움, 외국인을 싫어함, 그리고 심지어 애국심, 이를 위한 전쟁, 그리고 인종간의 대량학살까지도 유전학적인 근거를 가진 인간의 보편적 특질이라는 새로운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물발생 이론은 미국사회학 역사의 대부분을 통하여 두드러진 위치를 점하여왔다. 로젠탈(Rosenthal)은 쿨리(Cooley)나 소로킨(Sorokin)나, 섬너(Sumner), 그리고 로스(Ross)는 물론 심지어 파크(Park)까지도 지나날 반동적 사회정책을 권장하던 생물학적 인종주의 이론에 추파를 던지고 충실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오늘날 비즈니스에 집요하게 남아있는 다윈사상
비즈니스에 적용되고 있는 다윈주의 개념은 오늘날까지도 우리 곁에 팽배하다. 로버트 블레이크(Robert Blake)는 1996년에 출판한 Corporate Darwinism의 공동저자들과 더불어 현대적 다윈주의를 비즈니스에 적용하려 기도하였다. 그들은 비즈니스가 매우 예측 가능한 방법으로 진화할 뿐만 아니라, 특히 인간진화의 단계들과 매우 흡사한 단계들을 거치어 진화한다고 결론지었다. 이와 같은 '비즈니스 진화'는 자연스러운 진화라고 하였다. 즉 비즈니스는 경쟁상대를 먹든가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경쟁자에게 먹힌다는 다윈의 원리를 따랐던 것이다.
요약 (Summary)
다윈사상이 나치즘이나 공산주의의 발전과 성장에만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던 것이 아니고, '강도 귀족(robber baron)'이라는 말로 훌륭하게 설명되고 있는바와 같이, 자본주의가 무자비한 형태로 성장하고 발전하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것은 사실이다. 만약에 다윈이 그의 진화론을 발전시키지 않았어도 과연 냉정한 자본주의가 실제로 꽃을 피울 수 있을까에 대해 결정적으로 대답하기는 어렵지만, 만약에 카네기나 록펠러, 그리고 다른 자본가들이 어린 시절에 품고 있던 순수한 유태교적 그리스도교적 세계관을 계속 포용하고 있었다면, 그리고 다윈주의자가 되지 않았다면, 자본주의는 1800년대 후반에서와 1900년대 초반에 그랬던 것처럼 무자비한 이념이 되지 않았을 것은 명백하다. Morris and Morrs(p. 84)가 암시하는 바에 의하면, 다윈이 출현하기 오래 전에 이미 다른 동기들(탐욕이나 야망, 그리고 심지어 일종의 선교사적 열정까지 포함된 동기들)이 포악하고 무원칙한 robber baron 상거래 행위를 자극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다윈주의는 자본주의에게 일종의 외양상의 과학적인 합리성을 부여하여 주었기 때문에, 지난 세기(20세기)의 초반에 자본주의가 너무도 두드러지게 극단으로 흐르게 된 원인을 제공하였던 것이다.
*Acknowledgements: I want to thank Bert Thompson, Ph.D. Wayne Frair, Ph. D., and John Woodmorapper, M.A., for their comments on an earlier draft of this article.
References
Blake, Robert, Warren Avis and Jane Mouton. 1966. Corporate Darwinism. Houston, Tx: Gulf Pub.
Caarnegie, Andrew. 1920. Autobiography of Andrew Carnefie, ed. John C. Van Dyke. 1986; reprint, Boston: Northeastern Uninversity Press.
Doukas, Dimitra. 1997. 'Corporate Capitalism on Trial: The hearings of the Anthracite Coal Strike Commission, 1902-1903. 'Identities: Global Studies in Culture and Power, 3(3): 367-398.
Ghent, William. 1902. Our Benevolent Feudalism. New York: Macmillan.
Himmelfarb, Gertrude. 1962. Darwin and the Darwinian Revolution. New York : W.W. Norton.
Hsu, Kenneth. June 1986. 'Darwin's Three Mistakes,' Gerlogy, (vol. 14), p. 532-534.
Hsu, Kenneth. 1986. The Great Dying:Cosmic Catastrophe, Dinosaurs and the Theory of Evolution. NN. Harcourt, Brace, Jovanovich.
Huxley, Julian and H.B.D. Kittlewell. 1965. Charles Darwin and His world. New York: Viking Press.
Josephson, Matthew. 1934. The Robber Barons. New York: Harcourt and Brace.
Larson, Edward J. 1997. Summer for the Gods: The Scopes Trial and America's
Continuing Debate Over Science and Religion. New York: Basic Books.
Oldroyd, D.R. 1980. Darwinian Impacts. Atlantic Highlands, NJ: Humanities Press.
Oxford University Press.
Rosenthal, Steven J. 1977. Sociobiology: New Synthesis or Old Ideoloy? American Sociological Association.
Taylor, Ian. T. 1991. In the Minds of Men: Darwin and the New World Ordr. Minneapolos: TFE Publishing.
Jerry Bergman, Ph.D., is on the Biology faculty at Northwest State Sollege in Ohio.
*참조 : Darwin’s critical influence on the ruthless extremes of capitalism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5601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index.php?module=articles&action=view&ID=454
출처 - ICR, Impact No. 333, 2001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82
참고 :
냉혹한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에 대한 다윈의 영향
: 카네기, 록펠러 등의 자본가들과 진화론
(Darwin's Influence on Ruthless Laissez Faire Capitalism)
개요 (Abstract)
몇몇 지도자적 위치의 '강도 귀족(robber baron, 착취로 축재한 19C 자본가)'들에 대한 글들을 검토하여 보면, 그들의 많은 수가 강자가 궁극적으로 약자를 지배한다는 다윈 사상의 영향을 극명하게 받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윈 사상을 신봉하였던 자본가들은 결국 강자의 약자 지배가 도덕적으로 정당하고 완전히 자연스럽다고 믿었기 때문에, 무자비한(때로는 비윤리적이며 불법적인) 상거래 관행이 과학적으로도 정당화된다고 확신하였다. 다시 말해서 다윈주의가 표방하는 관념과 결론은 '역사 전개'에 불가피한 부분이라고 확신한 그들은 무자비한 상거래관행이 정당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서론 (Introduction)
다윈의 세계관은 나치즘이나 공산주의의 발전뿐만 아니라, 1800년대와 1900년대에 번창한 냉혹한 자본주의의 융성에도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Morris and Morris, 1996). 자본주의에 따라다니는 오명의 핵심은 남은 중요하지 않다는 극단적 개인주의에서 출발하여, 마침내 '약한' 회사를 착취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동시에 타당한 상행위라는 그들의 확신에서 연유되었다. 소위 robber baron들은 그들의 행동이 자연법에 의해 정당화되는 불가피한 역사의 소산이라고 추단(推斷)하였던 것이다.(Josephson, 1934). 그들 중 크리스천으로 성장한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그들은 기독교교리를 거부하든가, 사회주의적 다윈주의를 포용하기 위하여 기독교 교리를 수정하려 하였다. 겔트루드 힘멜파브(Gertrude Himmelfarb)는 다윈사상이 영국에서 수용된 데는 부분적으로나마 그것이 어떤 특수층의 탐욕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라셀(Rachels)은 자본가들이 생물학의 '적자생존' 이론을 "살인적 경쟁을 승인하는 경제계의 윤리적 권유"로 해석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였다.(1990, p. 63, see also Hsu, 1986, p. 10). 쥴리안 헉슬리(Julian Huxley)와 키틀웰(H.B.D. Kittlewell)은 다윈주의 사회학은 ”자유기업에 영광을 돌린 결과 경제사회를 무자비한 상행위와 전쟁, 비과학적인 우생학과 인종주의로 인도하여 마침내 히틀러와 나치의 이념을 낳았다”고 결론지었다.(헉슬리와 키틀웰에서, 1965, p. 81).
냉혹한 자본주의 (Ruthless Capitalism)
다윈주의는 공산주의자들의 무자비한 착취뿐만 아니라, 앤드루 카네기(Andrew Carnegie)와 존 록펠러 (John D. Rockefeller)와 같은 독점 자본가들의 무자비한 상행위를 정당화하였다. 켄네스 슈(Kenneth Hsü) (1986, p. 534)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스탈린, 마르크스, 레닌, 그리고 히틀러와 마찬가지로 카네기(Carnegie)도 한 때는 기독교 교리를 믿었으나, 결국에는 포기하고 다윈주의를 수용한 후, 저 유명한 다윈주의 사회학자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와 친밀한 친구관계를 유지했다. 카네기는 자서전에서 친구 몇 사람과 함께 기독교 교리에 회의를 품게 되었을 때를 이렇게 회고하였다.
아래 인용된 카네기의 말은 그의 지론을 가장 잘 요약하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존 록펠러는 언젠가 한 번 ”대기업의 성장은 단지 적자생존의 결과다 … 자연의 법칙이 성취됐을 따름이라는 말이다 … ”라고 말했다.(Ghent, 1902, p. 29). 명목상의 크리스천 명사로 행세하던 록펠러 가문의 사람들은 진화론을 전폭적으로 수용하다 못해 성경 앞부분의 책들을 신화라고 치부해버렸다.(Taylor, 1991, p. 386). 어떤 박애주의자가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William Jenning Bryan, 스코프스 재판에서 창조론을 변호함)의 이름을 딴 대학의 설립을 위해 1만 달러의 희사를 약속하였을 때, 존 록펠러 2세는 이에 응수하기 위해 바로 그 날 공개적인 反창조주의 대학교인 시카고 신학교(Chicago Divinity School)에 100만 불을 기부하였다.(Larson, 1997, p. 183). Morris and Morris는 록펠러의 철학이 철도계의 거물인 제임즈 힐(James Hill) 뿐만 아니라, 아마도 당시의 대부분의 자본가들에 의해서 수용되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1996, p. 87). 모리스가 암시하는 바에 의하면, 수많은 현대의 진화론자들도
이런 암시뿐만 아니라 Morris and Morris는 다시 이렇게 지적한다. 즉, 좌익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냉정한 극우 자본가들도 한 가지로 反창조론자들이다. 그리고 '심지어 상호간에 싸움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도 그들이 창조론에 대항할 때만은 공동전선을 펼친다 … (p. 82). 기독교를 포기하지 않는 자본가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들은 기독교 신앙을 다윈주의에 대한 신념과 혼합하려 한다. 그 결과 그들의 신앙은 유신론적 진화론이라는 절충 형태가 되어버렸다. 비록 대부분의 미국 사업가들이 짐작컨대 의식화된 사회주의적 다윈주의자는 아닐지라도,
자유방임적인 자본주의에 대한 다윈의 중요한 기여를 기록한 몇 가지 연구발표가 있다. 무연탄 파업연대(Anthracite Coal Strike Commission) (1902-1903)의 청문회를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로젠탈(Rosenthal, 1997)은 역사적으로 보아 생물속생설(생물은 생물에서만 발생한다는 이론)은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전쟁, 그리고 자본주의들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들을 수용하는 태도를 증진시키는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생물발생 이론은 인간의 사회적 행동이 어떤 생물발생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새로운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서 생물속생설은 사업/사회에서의 경쟁, 남성우월주의, 공격적인 사회현상, 영토주도권 싸움, 외국인을 싫어함, 그리고 심지어 애국심, 이를 위한 전쟁, 그리고 인종간의 대량학살까지도 유전학적인 근거를 가진 인간의 보편적 특질이라는 새로운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물발생 이론은 미국사회학 역사의 대부분을 통하여 두드러진 위치를 점하여왔다. 로젠탈(Rosenthal)은 쿨리(Cooley)나 소로킨(Sorokin)나, 섬너(Sumner), 그리고 로스(Ross)는 물론 심지어 파크(Park)까지도 지나날 반동적 사회정책을 권장하던 생물학적 인종주의 이론에 추파를 던지고 충실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오늘날 비즈니스에 집요하게 남아있는 다윈사상
비즈니스에 적용되고 있는 다윈주의 개념은 오늘날까지도 우리 곁에 팽배하다. 로버트 블레이크(Robert Blake)는 1996년에 출판한 Corporate Darwinism의 공동저자들과 더불어 현대적 다윈주의를 비즈니스에 적용하려 기도하였다. 그들은 비즈니스가 매우 예측 가능한 방법으로 진화할 뿐만 아니라, 특히 인간진화의 단계들과 매우 흡사한 단계들을 거치어 진화한다고 결론지었다. 이와 같은 '비즈니스 진화'는 자연스러운 진화라고 하였다. 즉 비즈니스는 경쟁상대를 먹든가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경쟁자에게 먹힌다는 다윈의 원리를 따랐던 것이다.
요약 (Summary)
다윈사상이 나치즘이나 공산주의의 발전과 성장에만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던 것이 아니고, '강도 귀족(robber baron)'이라는 말로 훌륭하게 설명되고 있는바와 같이, 자본주의가 무자비한 형태로 성장하고 발전하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것은 사실이다. 만약에 다윈이 그의 진화론을 발전시키지 않았어도 과연 냉정한 자본주의가 실제로 꽃을 피울 수 있을까에 대해 결정적으로 대답하기는 어렵지만, 만약에 카네기나 록펠러, 그리고 다른 자본가들이 어린 시절에 품고 있던 순수한 유태교적 그리스도교적 세계관을 계속 포용하고 있었다면, 그리고 다윈주의자가 되지 않았다면, 자본주의는 1800년대 후반에서와 1900년대 초반에 그랬던 것처럼 무자비한 이념이 되지 않았을 것은 명백하다. Morris and Morrs(p. 84)가 암시하는 바에 의하면, 다윈이 출현하기 오래 전에 이미 다른 동기들(탐욕이나 야망, 그리고 심지어 일종의 선교사적 열정까지 포함된 동기들)이 포악하고 무원칙한 robber baron 상거래 행위를 자극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다윈주의는 자본주의에게 일종의 외양상의 과학적인 합리성을 부여하여 주었기 때문에, 지난 세기(20세기)의 초반에 자본주의가 너무도 두드러지게 극단으로 흐르게 된 원인을 제공하였던 것이다.
*Acknowledgements: I want to thank Bert Thompson, Ph.D. Wayne Frair, Ph. D., and John Woodmorapper, M.A., for their comments on an earlier draft of this article.
References
Blake, Robert, Warren Avis and Jane Mouton. 1966. Corporate Darwinism. Houston, Tx: Gulf Pub.
Caarnegie, Andrew. 1920. Autobiography of Andrew Carnefie, ed. John C. Van Dyke. 1986; reprint, Boston: Northeastern Uninversity Press.
Doukas, Dimitra. 1997. 'Corporate Capitalism on Trial: The hearings of the Anthracite Coal Strike Commission, 1902-1903. 'Identities: Global Studies in Culture and Power, 3(3): 367-398.
Ghent, William. 1902. Our Benevolent Feudalism. New York: Macmillan.
Himmelfarb, Gertrude. 1962. Darwin and the Darwinian Revolution. New York : W.W. Norton.
Hsu, Kenneth. June 1986. 'Darwin's Three Mistakes,' Gerlogy, (vol. 14), p. 532-534.
Hsu, Kenneth. 1986. The Great Dying:Cosmic Catastrophe, Dinosaurs and the Theory of Evolution. NN. Harcourt, Brace, Jovanovich.
Huxley, Julian and H.B.D. Kittlewell. 1965. Charles Darwin and His world. New York: Viking Press.
Josephson, Matthew. 1934. The Robber Barons. New York: Harcourt and Brace.
Larson, Edward J. 1997. Summer for the Gods: The Scopes Trial and America's
Continuing Debate Over Science and Religion. New York: Basic Books.
Oldroyd, D.R. 1980. Darwinian Impacts. Atlantic Highlands, NJ: Humanities Press.
Oxford University Press.
Rosenthal, Steven J. 1977. Sociobiology: New Synthesis or Old Ideoloy? American Sociological Association.
Taylor, Ian. T. 1991. In the Minds of Men: Darwin and the New World Ordr. Minneapolos: TFE Publishing.
Jerry Bergman, Ph.D., is on the Biology faculty at Northwest State Sollege in Ohio.
*참조 : Darwin’s critical influence on the ruthless extremes of capitalism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5601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index.php?module=articles&action=view&ID=454
출처 - ICR, Impact No. 333, 2001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82
참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