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 : 그 선전 배후에 감춰진 비밀

진화론 : 그 선전 배후에 감춰진 비밀 

(Evolution : The Secret Behind the Propaganda)


     진화론은 사실(facts)이고, 창조론은 신앙(belief)이라는 것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고 생각하기 쉽다. '진화론' 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던 PBS TV 시리즈가 전하는 메시지가 확실히 그랬다. PBS 방송국에 보내졌던 내부문건(memo)은 진화론에 관하여 이렇게 진술하고 있다. ”알려진 모든 과학적인 증거는 진화론을 지지한다. … 지난 150년 동안에 있었던 신발견들은 하나같이 진화론을 지지하고 있었다.” (PBS 내부문건 2001. The Evolution Controversy: Use It or Lose It. Evolution Project/WGBH Boston. June 15, p.5). 이 문건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과학적인 이론은 ”사실들을 묶는 보다 높은 수준의 이해”라고 정의하였다 (p.5). 하지만 창조론에 관해서는 ”과학이 아니다” 라고 간단히 처리해 놓았다 (p.6). 최근 다년간에 발표되었던 그와 유사한 여러 주장들로 인해서, 일반적인 과학이론은 물론 특히 진화론은 자연계에서 관찰된 증거에 근거하고 있어서 실험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사실에 입각하고 있다는 확신을 많은 사람들에게 심어주기에 충분하였다. 그런데 흥미 있는 것은 과학자들 중에는 이것이 현대적 해석이 아니라고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과학자들이 실질적인 데이터에 관한 걱정 따윈 포기한지 오래라고 생각한다.

과학에 관한 현대적 조망은 학문(discipline)에 관한 과학자 자신들의 평가에 잘 나타나고 있다. 유명한 과학철학자 데이비드 헐(David Hull)은 일찍이 1965년에 이렇게 기술한 적이 있다.

”…과학은 많은 과학자들이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실험적인 학문이 아니다. 관찰되지 않은 실체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관찰될 수 없는 실체까지도 과학이라는 학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과학은 그냥 관찰하는 것만으로 되는 학문이 아니다. 그것은 세워놓은 어떤 이론의 틀 안에서 시행된 관찰에 근거하는 추론이다.” 1

이 진술 안에서 우리는 사실과 그에 대한 해석, 즉 이론과의 사이에 일종의 균형(balance)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Dr. Hull이 데이터를 잘못 파악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의심을 해소할 수 없다. 지난 해에 그는 하나의 공동 조상으로부터 수정을 거쳐 태어나는 후손들에 관한 개념에 관한 이론(계통발생론 또는 진화론)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계통발생론 프로그램에 있어서 제일차적인 요소는 그리고 유일한 요소이기도 한 그것은 계통발생론의 실험적인 성질이다. 그러나 심지어 계통발생론까지도 마냥 쳐다보고 바라보는 것만으로써 발견되는 맹목적인 대상만이 전부는 아니다. 계통발생론의 주제 분류는 하나의 추상적인 문제다. 그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추상적이다. 첫째로 그것은 형태학적, 유전학적, 고생물학적, 그리고 그 어떤 형태의 학문적 증거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독립적으로 추론되는 학문으로 결코 직접적으로 관찰되지 않는다.” 2

우리가 알기로는 진화론적 후손에 관한 그의 사상은 그냥 내린 결론이지 결코 직접적인 증거에 의해 뒷받침된 이론이 아니다.

헐 박사가 이 논문을 쓸 당시엔 과학의 본질에 관한 관념이 실질적으로 일종의 유동상태에 있었다. 1934년 칼 포퍼(Karl Popper)는 과학에 관한 어떤 이론도 일찍이 진리로 증명될 수 있었던 것은 없었다고 지적한 적이 있었다. 그가 암시한 독특한 대안은 과학이론들은 허위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노력일 따름이라고 하였던 점이다. 그런대로 나름으로 충분한 실험을 거친 이론들은 실험결과의 데이터에 근거하여 허위로 밝혀지지 않든가 논박되지 않았을 때엔, 그것이 과학적인 이론이라는 자격으로 인정되었다. 이 때 유일하게 가려진 문제는 많은 분야에 걸친 과학적 탐구가 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허위가 입증될 수 없었던 이론은 과학적이기보다는 (믿음에 바탕을 둔) 형이상학적이었다. 따라서 과학 잡지 Nature 지는 1981년에 ”가정상의 과거 진화의 과정은 재현될 수 없기” 3 때문에 다윈사상과 하나님의 창조 사상은 똑같이 형이상학적인 이론이라고 지적한바 있었다. 그러나 다윈사상을 비과학적이라고 특징짓는 것처럼 어려운 작업은 모습을 드러낼 수 없을 것 같았다.

토마스 쿤(Thomas Kuhn)은 1962년에 출판한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 에서 그는 과학적인 이해에 일종의 포스트-실험시대를 도입하고 있다. 토마스 쿤에 의하면, 모든 과학은 일종의 사상의 통일된 틀에 준하여 진행되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와 같은 이론체계가 없다면 사상(事象, facts)은 의미가 없으며, 또 과학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과학철학자 델 라치(Del Ratzsch)의 최근 저서 ”과학과 그것의 한계(Science and its Limits)” 에서, 그는 이론을 데이터보다 우위에 두는 것이 과학실습에 엄청난 함축을 내포한다고 지적했다. 결과적 실험 데이터는 과학에 더 이상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라치는 ”과학자는 패러다임에서 동떨어져 독립적으로 일부 궁극적인 현실에 접근한다는 주장과, 선택된 패러다임도 부분적으로는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선택된 가치라는 주장을 하면서, 토마스 쿤은 현실의 정확한 양상에 관한 궁극적인 상소재판(판단)을 세계자체(데이터)와는 상관 않고 전문적인 과학자들의 의견일치에만 맡기려한다.” 4 라고 말했다. 라치는 한발 더 나아가,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완전하고 안정된 그리고 독립된 외적 현실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과학에 있어서의 진리라는 것에 관하여 왈가왈부할 특별한 이유는 없다…” 라고 지적하였다.

그러면 현대의 과학자들은 데이터를 가지고 무엇을 하는가? 그들이 하는 일은 현행 과학적 패러다임에 시각에서 데이터를 해석하는 일이다. 그들은 말하자면 진화론과 같은 패러다임을 거짓으로 입증해 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패러다임이란 전형은 쉽게 파괴할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의 허위성을 밝힌다고 해서 개별적으로는 결코 패러다임을 거부되게 만들 수는 없다. 심지어 패러다임에 반대되는 수없이 많은 데이터들도 패러다임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 한다. 진화론이야말로 가장 극명한 패러다임으로서 실험적인 데이터에 크게 면역이 되어있다. 우주론도 이에 준하는 다른 예다.

과학의 새로운 정의의 가장 명백한 피해자는 진실과 진리에 대한 새로운 정의다. 예컨대 생물학자 마크 시달(Mark Siddall)과 아놀드 클루즈(Arnold Kluge)는 1997년에 ”'진리의 탐구'는 출발부터 오도된 과학탐구이며, 그리고 아무런 현실적 기본도 없는 탐구이다.” 5 라고 암시하였다. 그들은 한 발 더 나아가서 ”비록 과학이 진리와 무관한 것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이론도 검증되기 전에는 진리와 상관이 없다.” 어쨌거나 이 저자들은 ”다행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우리는 과학탐구를 계속할 것이라는 소식이다.” 라고 결론짓는다. 그들은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이 진리라는 명사(名辭)의 포착하기 어려운 개념에 관한 우리들의 주장을 골칫거리로 혹은 허무주의적인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과학에 대한 연속적인 노력을 보장하고, 진리 그 자체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즉, 인식━을 우리가 영구적으로 인정하도록 보장하는 진리를 성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반격한다.

과학은 분명히 먼 길을 왔다. 애당초 18세기와 19세기에는 실제 관찰내용 (실험 데이터)이 높게 평가되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관찰내용들이 지나치게 높게 평가되기도 하였다. 18세기 스코틀랜드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David Hume)과 같은 일부 철학자들은 우리들의 감각이 인식하는 것 말고는 실체는 존재할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존재하는 것은 물질계뿐이라는 것이다. 이론의 중요도가 점차로 증대하더니만 마침내 현재에 이르러서는 실험 데이터가 무시되는 데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모든 과학자가 다 의견통일(consensus)에 대한 Kuhnian 호소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과학철학자 톰 세틀(Tom Settle)은 그 상황을 이렇게 비탄하였다. ”진리탐구가 끝이 없는 탐색으로 생각하고 (아마도 실망한 나머지) 노력을 포기하고 동료과학자들과 합의에 안주하는 사상가들이 많다. 만약 그들이 옳다면, 그들이 지향하는 과학탐구의 목표가 진리에 있지 않고 의견통일에 있다. 그렇다면 그 그림은 음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때의 상황에서 출현하게 될 최악의 양상은 과학자들이 오직 의견통일에 근거하는 독단적인 해석을 악착같이 옹호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때 넋 나간 짓은 다름이 아니라 규제력으로서의 진리를 포기하고 진리 아닌 그 무엇이 규제력이 있는 것으로 합의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것은 호소(呼訴)를 현실의 잣대에 맞추고 노력을 객관화의 잣대에 맞추기 때문에 과학을 굳히기는커녕 손상을 입힌다.”

현대의 과학자들은 패러다임이나 진화론과 같이 중요한 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시도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그냥 이론의 데이터들을 패러다임의 시각으로 해석할 뿐이다. 진화론은 관찰의 이론이 아니고, 어떤 철학의 시발점일 따름이다. 시달과 클루즈가 언급하였듯이 ”만약에 우리 직업이 단순히 감각경험들의 목록이나 작성하는 것이 아니고 그 이상의 무엇이어야 한다면 생물학자들은 건전한 철학의 기본적인 요구에 대해 면역이 될 수 없을 것임은 여타의 과학이 그렇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다. 진화론적 생물학, 특히 계통학이 물리학에서의 양자이론의 위치와 마찬가지로 설명하려 하는 그 내용을 우리는 관찰할 수 없는 것이다.”

또 한 사람의 생물학자 앤드류 브로워(Andrew Brower)는 '변형된 퇴보(descent with modification)'를 순환논리, 즉 하나의 형이상학적 가정이라고 특징지었다. ”개별적인 관찰에 대한 실험과 변형된 퇴보에 대한 실험과의 사이에는, 만약에 후자가 원인과 결과의 혼돈이 없이 실험할 수만 있다면, 일종의 존재론적 비약이 개재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만약에 진화의 파생을 함축하는 변형된 퇴보에 관한 배경지식이 독립적인 방법으로는 실험이 불가능하다면, 그것은 생기설(生氣說)이나 정향진화설(定向進化說)처럼 포퍼(Popper)의 가설-연역적 접근의 성분보다 더 형이상학의 제일원리로 보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진화는 허위로 증명될 수는 없으나 하나의 선험적인 가정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다른 한편, 크리스천들은 전형적으로 과학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 그 어떤 학설보다 더 전통적이고 또 실험적이다. 그들은 반대 데이터가 지적됐을 때엔 청취자는 그 패러다임이 거부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데 청취자는 그 데이터의 의미성을 최소화하고 그 데이터를 '이례적(異例的)'이라든가 이해하기엔 너무 조잡스럽다고 치부해버리기 일쑤다. 대부분의 진화론 지지자들은 명백한 문제들은 결국에는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패러다임의 덜 논쟁적인 측면에만 집중한다.

현재로서는, 과학자들의 의견통일이 패러다임을 지지하기 위한 주요 요소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소수 의견의 입장에서 펼치는 개별적인 주장은 이미 대대적인 반대의견에 의해 타격을 받았다. 일부 과학자들은 과학이란 어떤 학문의 개별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비평적인 평가의 여지를 조금도 허락하지 않고 ”전부가 아니거든 아무것도 없다.” 라는 이론이라고 주장한다. ”전부가 아니거든 아무 것도 없다”라는 원리를 주창한 사람은 Hull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유기체의 목록을 작성함에 있어서 진화론적 방법에 수(數)적 [실험적]인 방법을 대비(對比)시켰다. 그런데 바로 이 주장이 오늘날 창조론적 표본에 반대하는 논거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계통발생론을 재구성하는 작업에서 진화론자들이 구축한 연역추단은 충분히 입증되고 있는가? … 그 어떤 결정도 … 반드시 발견과 판단의 기술을 사용하는 다양한 과학적 접근에 근거하여야 한다. 이렇게 해서 추단은 연역에 의해서 정당화된다! 실험주의자들에 의해서 제기된 진화론적 재구성에 반대하는 주장은, 만약 그 주장이 건전하다면, 진화론적 분류만을 무효화할 뿐만 아니라 모든 실험과학도 역시 무효화한다.” 8 헐의 주장에 의하면, 데이터에 근거하여 과학적 공리를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것은 전체의 과학적인 기획은 어쨌든 유지되기 때문이다. 만약에 어떤 이론화가 인정됐다면, 그 다음으로는 그 이론의 모든 내용은 어떤 도전도 초월한다.

과학에 있어서 실험 데이터의 중요도가 오래전부터 이론에 비해서 부차적인 것으로 강등된 마당에서 진화론과 창조론에 관한 PBS TV 시리지의 진술은 한결 흥미를 더한다. PBS 메모는 진화론이 네거티브 증거들에 의해서 쉽게 그 허위성이 증명될 수 있다고 함축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과학자들은 진화론을 네거티브 데이터들로부터 진화론을 방어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에 헌신하고 있다. 사실상 오늘날 실험적인 증거들 (암호화된 DNA의 본질과 정보와 같은 것)에 그토록 빈번하게 호소하는 쪽은 창조 모델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진화론자들은 바로 이 데이터의 중요한 의미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차라리 다행한 일이다. 과연 그렇다. 모든 것을 다 까놓고 살펴보았을 때, 대부분의 현대 과학의 본질은 전혀 실험적이 아니고, 오히려 포스트-실험적이든가 다분히 이론 지향적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진실과는 차이가 있다. 이러다가는 아마 PBS가 진실을 일반에게 알리기 위하여 창조론에 근거한 새로운 시리즈를 발표하여야만 할 것 같다.

 


References

1. David Hull. 1965. The effect of essentialism on taxonomy??two thousand years of stasis (II). British Journal for the Philosophy of Science 16 (61): 1-18.

2. David Hull. 1964. Consistency and monophyly. Systematic Zoology 13 (1): 1-11.

3. Editorial. 1981. How true is the theory of evolution? Nature 290 March 12: 75-76.

4. Del Ratzsch. 2000. Science and Its Limits: The Natural Sciences in Christian Perspective. InterVarsity Press. pp. 191.

5. Mark Siddall and Arnold Kluge. 1997. Probabilism and phylogenetic inference. Cladistics 13: 313-336.

6. Tom Settle. 1979. Popper on 'When is a Science not a Science?' Systematic Zoology 28: 521-529.

7. Andrew Brower. 2000. Evolution is not a necessary assumption of cladistics. Cladistics 16: 143-154.

8. David Hull. 1967. Certainty and circularity in evolutionary taxonomy. Evolution 21 (1): 174-189.

* Dr. Helder is a botanist and President of Creation Science Association of America.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index.php?module=articles&action=view&ID=303

출처 - ICR, Impact No. 351, 2002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912

참고 : 4636|4635|4579|3591|3426|4548|4542|4585|4238|4549|4039|4146|3077|3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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