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키와 요한슨
이재만
현재 대표적인 진화론 인류학자를 꼽으라면 리처드 리키(Richard Leakey, 1944- )와 도날드 요한슨(Donald Johanson, 1943- )을 든다. 리처드 리키는 유인원 Homo habilis를 발표해서 유명한 루이스 리키 (Louis Leakey, 1903-72)의 셋째 아들로서 정규교육을 받지 않고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인류의 진화를 지지할 빠진 고리를 찾기에 열심인 사람이다. 도날드 요한슨은 에디오피아에서 유인원 루시(Lucy)를 발표해서 유명해졌다. 모두가 진화론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사람들일 뿐 아니라, 학계나 일반인들에게 마치 유인원이 살아있었던 것으로 알게 한 장본인들이다. 물론 이들이 발표한 유인원들은 나중에는 원숭이나 인간으로 결론이 났다. 이들 진화론 리더들의 사고를 이해하는 것은 바로 진화론자들의 생각을 반영하는 것이기에 나누어 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리처드 리키는 자신의 저서 “오리진(Origin, 1977)”의 도입부에서 “인류의 기원을 탐구하는 데는 우리를 끊임없이 흥분 시키는 요소가 있다. 그 이유는 우리들에게 자신들의 과거에 관하여, 즉 사고와 감정을 지닌 문화적 동물이 어떻게 해서 유인원 같은 조상으로부터 등장하게 되었는가에 관한 호기심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동물인가를 제대로 이해함으로써 우리의 미래를 푸는 열쇠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시작했다.
유인원(ape-man)이라는 것은 진화론이 대두되면서 언급된 상상의 산물인데, 이들의 존재가 틀림없다는 전제로 시작할 뿐 아니라, 우리가 “과거”의 “문화적 동물”이었다는 것을 이해하므로 우리의 “미래”를 풀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진화론은 진화 그 자체에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스스로 알리고 있는 것이다. 즉 진화론은 인간을 해석하는 기준을 설정하게 되는 것이며, 과거에 우리가 동물이었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인간자체로 창조된 존재 인지하는 것이 내일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이들 스스로 알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은 인간은 동물 중에 하나라는 것을 버릴 생각이 없이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저서인 “제 6의 멸종(The Sixth Extinction, 1995)”에서는 그는 “우리는 변화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은 연속적인 생물 흐름에서 한 순간에 불과할 뿐, 결코 종착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호모 사피엔스는 진화의 창조 과정과 이따금씩 일어나는 변덕스러운 멸종 사이의 복잡하고 예측하기 힘든 상호작용에 의한 산물, 즉 지극히 많은 종들 가운데 단지 하나일 뿐이다.” 리키의 이 언급은 정말로 놀라운 믿음이 아닐 수 없다. 놀랍게도 멸종이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멸종이라는 것은 하나의 종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는데, 어떻게 멸종과 창조과정을 연결할 수 있을까? 이것은 엄청남 믿음임에 틀림없을 뿐 아니라 자신 스스로도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 모르는 태도이다. 이어서 “복잡하고 예측하기 힘든 상호작용”이라고 얼버무리는 모습 속에서 우리는 그러한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인간의 삶은 생물이 진화하는 과정의 “한 순간”이며, 인간 자체도 진화 산물 중에 “한 종”으로 처리해 버린다.
요한슨도 “인류시대에서(In the Age of Mankind, 1988)”의 머리말에서 “우리는 우리를 만든 자연세계와 유전적으로 아주 밀접하고 의존적 이라는 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라고 하였다. 자연이 우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다아윈이 자연선택이라는 용어를 쓴 배경에는 벌써 자연이 무엇이 살 것인가 살지 못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전제가 깔린 내용이다. 요한슨도 여느 진화론자들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자연이 우리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정말 인간은 자연세계와 유전적으로 밀접한가? 어떤 과학적 근거에도 그러한 결과를 이끈 내용이 없다. 이것은 자신의 “느낌”이며, 앞으로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자신의 “희망”일 뿐이다.
성경은 인간을 하나님의 계획 속에 그의 형상으로 태어난 귀중한 존재라고 말한다. 자연이 탄생시킨 것도 아니고 자연의 한 부분도 동물 중에 한 종도 아니며 다른 동물들을 다스려야 할 귀한 존재라고 말한다. 우리는 자연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의지해야 한다. 우리는 잠깐 살기 위해 태어난 것도 아니며, 물론 이 순간이 진화의 과정의 일부도 아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영원히 살도록 창조되었으며, 우리는 앞으로 영원히 살 존재로 지음 받았다. 문제는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 것이냐 아니면 영원히 하나님 없이 저주아래 살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진화론은 사실이 아닌 것에서 시작하였기에 사실인 성경역사와 대치될 수 밖에 없을 뿐 아니라, 복음조차도 거부케 한다. 진화론 인류학자인 리키와 요한슨의 생각을 보면서도 잘 알 수 있다.
리키와 요한슨
이재만
현재 대표적인 진화론 인류학자를 꼽으라면 리처드 리키(Richard Leakey, 1944- )와 도날드 요한슨(Donald Johanson, 1943- )을 든다. 리처드 리키는 유인원 Homo habilis를 발표해서 유명한 루이스 리키 (Louis Leakey, 1903-72)의 셋째 아들로서 정규교육을 받지 않고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인류의 진화를 지지할 빠진 고리를 찾기에 열심인 사람이다. 도날드 요한슨은 에디오피아에서 유인원 루시(Lucy)를 발표해서 유명해졌다. 모두가 진화론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사람들일 뿐 아니라, 학계나 일반인들에게 마치 유인원이 살아있었던 것으로 알게 한 장본인들이다. 물론 이들이 발표한 유인원들은 나중에는 원숭이나 인간으로 결론이 났다. 이들 진화론 리더들의 사고를 이해하는 것은 바로 진화론자들의 생각을 반영하는 것이기에 나누어 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리처드 리키는 자신의 저서 “오리진(Origin, 1977)”의 도입부에서 “인류의 기원을 탐구하는 데는 우리를 끊임없이 흥분 시키는 요소가 있다. 그 이유는 우리들에게 자신들의 과거에 관하여, 즉 사고와 감정을 지닌 문화적 동물이 어떻게 해서 유인원 같은 조상으로부터 등장하게 되었는가에 관한 호기심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동물인가를 제대로 이해함으로써 우리의 미래를 푸는 열쇠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시작했다.
유인원(ape-man)이라는 것은 진화론이 대두되면서 언급된 상상의 산물인데, 이들의 존재가 틀림없다는 전제로 시작할 뿐 아니라, 우리가 “과거”의 “문화적 동물”이었다는 것을 이해하므로 우리의 “미래”를 풀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진화론은 진화 그 자체에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스스로 알리고 있는 것이다. 즉 진화론은 인간을 해석하는 기준을 설정하게 되는 것이며, 과거에 우리가 동물이었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인간자체로 창조된 존재 인지하는 것이 내일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이들 스스로 알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은 인간은 동물 중에 하나라는 것을 버릴 생각이 없이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저서인 “제 6의 멸종(The Sixth Extinction, 1995)”에서는 그는 “우리는 변화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은 연속적인 생물 흐름에서 한 순간에 불과할 뿐, 결코 종착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호모 사피엔스는 진화의 창조 과정과 이따금씩 일어나는 변덕스러운 멸종 사이의 복잡하고 예측하기 힘든 상호작용에 의한 산물, 즉 지극히 많은 종들 가운데 단지 하나일 뿐이다.” 리키의 이 언급은 정말로 놀라운 믿음이 아닐 수 없다. 놀랍게도 멸종이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멸종이라는 것은 하나의 종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는데, 어떻게 멸종과 창조과정을 연결할 수 있을까? 이것은 엄청남 믿음임에 틀림없을 뿐 아니라 자신 스스로도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 모르는 태도이다. 이어서 “복잡하고 예측하기 힘든 상호작용”이라고 얼버무리는 모습 속에서 우리는 그러한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인간의 삶은 생물이 진화하는 과정의 “한 순간”이며, 인간 자체도 진화 산물 중에 “한 종”으로 처리해 버린다.
요한슨도 “인류시대에서(In the Age of Mankind, 1988)”의 머리말에서 “우리는 우리를 만든 자연세계와 유전적으로 아주 밀접하고 의존적 이라는 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라고 하였다. 자연이 우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다아윈이 자연선택이라는 용어를 쓴 배경에는 벌써 자연이 무엇이 살 것인가 살지 못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전제가 깔린 내용이다. 요한슨도 여느 진화론자들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자연이 우리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정말 인간은 자연세계와 유전적으로 밀접한가? 어떤 과학적 근거에도 그러한 결과를 이끈 내용이 없다. 이것은 자신의 “느낌”이며, 앞으로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자신의 “희망”일 뿐이다.
성경은 인간을 하나님의 계획 속에 그의 형상으로 태어난 귀중한 존재라고 말한다. 자연이 탄생시킨 것도 아니고 자연의 한 부분도 동물 중에 한 종도 아니며 다른 동물들을 다스려야 할 귀한 존재라고 말한다. 우리는 자연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의지해야 한다. 우리는 잠깐 살기 위해 태어난 것도 아니며, 물론 이 순간이 진화의 과정의 일부도 아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영원히 살도록 창조되었으며, 우리는 앞으로 영원히 살 존재로 지음 받았다. 문제는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 것이냐 아니면 영원히 하나님 없이 저주아래 살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진화론은 사실이 아닌 것에서 시작하였기에 사실인 성경역사와 대치될 수 밖에 없을 뿐 아니라, 복음조차도 거부케 한다. 진화론 인류학자인 리키와 요한슨의 생각을 보면서도 잘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