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과녁 : 루이스 리키에 관한 이야기

잃어버린 과녁 : 루이스 리키에 관한 이야기

(Missing the mark)


      한 선교사 가족이 어떻게  ‘유인원(apeman)’ 연구의 최정상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류학자인 '루이스 리키(Louis Leakey)'의 이름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그는 진화론자들이 추측하던 '인류가 진화한 장소'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놓은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아프리카 동부에서 원숭이와 비슷한(ape-like) 화석들을 발견하였고, 그때까지 가장 오래된 유인원 화석으로 알려진 인도네시아의 자바인(Eugene Dubois가 발견)과 중국의 북경인(Davidson Black이 발견)과 같이 아시아에서 발견된 것들보다 그 화석이 더 오래된 인류의 화석임을 선언함으로써, 기존 진화론자들이 생각하던 진화가 이루어진 장소에 대한 개념을 바꿔 놓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독자들은 그가 한때 강력한 기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다.

루이스는 1903년,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동부의 나이로비(Nairobi, 지금은 케냐의 수도) 근처의 카베테 선교구(Kabete Mission Station)에서 태어났다. 영국인이었던 그의 부모는 그곳에 있던 교회 선교협회(Church Missionary Society)의 선교사(missionaries)들이었다. 루이스는 영국 사람이기 보다는 아프리카 사람처럼 성장했다. 그리고 그는 키쿠유(Kikuyu)족의 말을 영어와 똑같은 수준으로 유창하게 했다. 그는 아프리카 아이들이 하고 노는 게임을 같이 즐겼고, 스스로 방 세 개가 딸린 진흙과 욋가지를 엮어 만든 오두막집을 지었으며, 동물들을 밧줄로 끄는 것, 창과 몽둥이로 사냥하는 법 등을 배웠다. 그래서 그 훈련을 통해 얻게 된 관찰력과 인내심은 그가 훗날 화석들을 발굴해내는 데에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그는 11세 때부터 키쿠유 족의 어린 전사로 들어갔다. 그는 부족의 어른들로부터 '매의 아들(Son of the Sparrow Hawk)' 이라는 뜻의 '와쿠루이지(Wakuruigi)'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그 의미는 그를 다른 어른 전사들과 동급으로 취급한다는 뜻이었다.

그가 13세 되던 해, 그는 흑요석(obsidian, 암석의 일종)1의 파편들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도끼의 머리와 화살촉에 그 돌 파편을 끼워 넣는 것을 배웠다. 그의 전기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 순간 이후로 그는 선사시대에 매혹되었다.” 2

그는 1922년에 캠브리지(Cambridge) 대학에 입학하여 고고학(archaeology)과 인류학(anthropology)을 전공하였고, 1926년에 졸업했다. 또 1930년에 박사 학위(Ph.D.)를 받았으며, 후에 다른 여러 가지 명예 박사 학위들을 받았다.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동아프리카에서 선교사로 헌신하겠다던 젊었을 때의 꿈을 포기했다. 그 대신에 그는 다윈(Darwin)이 주장한 인류의 진화가 아시아가 아닌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그의 삶 전체를 사용했다.3


아들도 아버지처럼

1933년 영국에서 루이스는 과학 삽화가(scientific illustrator)였던 메리 니콜(Mary Nicol)이라는 이름의 20살 난 여성에게 그의 첫 번째 책의 삽화를 그려달라는 부탁을 했다.4 그 일로 인해서 그들의 관계는 발전되었다. 당시 루이스 리키에겐 5 년간 같이 살던 아내와 어린 자녀가 하나 있었고 아내는 또 다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지만, 1936년 루이스는 아내와 이혼하고5 메리 니콜과 같은 해에 결혼하게 된다.

루이스와 인간 진화 학계에서 독자적으로도 이름을 내었던 메리는 세 명의 아이를 낳았다. 그 중 둘째 아들인 리차드 리키(Richard Leakey)는 루이스가 태어난 곳으로 잘 알려진 케냐(Kenya)에서 1944년 태어났다. 그리고 그는 고생물학자가 되었으며, 해석상 논란의 여지가 많은 화석을 발굴하기도 하였다. 리차드는 1966년 결혼했고, 그의 첫째 아들이 태어난 해인 1969년에 그의 아버지가 36년 전에 했던 것처럼 젊은 과학자와 불륜에 빠지기 시작한다. 그 부부는 이혼을 했고, 1년 후에 리차드는 미브 엡스(Meave Epps, 그녀는 화석화 된 원숭이의 전문가였다)와 재혼한다. 그리고 그들 부부의 딸 루이스 역시 고생물학자가 되었는데, 이렇게 3 대에 걸친 가족은 진화론자들로부터 '최초의 고생물학자 가족(the first family of paleontology)'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나중에 리차드 리키는 ‘인본주의자 선언 2000(Humanist Manifesto 2000)'에 서명한 개인 (동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처럼 진화론을 적극적으로 외치고 선전하는) 명단에 올라있다. 1984년, 케냐에서 발견된 유인원과 동물 화석들에 대한 큰 심포지움이 뉴욕에 있는 ‘미국 자연사박물관(American Museum in Natural History)’에서 열려 그가 초대 받았을 때, 그는 ”그러한 전시는 창조론자들이 판을 치는 미국 같은 나라에서 열리는 것 자체가 큰 모험이다”7 라며 참석을 거부했고, 창조론자들에 대한 강한 혐오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같은 심포지움에서 메리 리키는 박물관 스텝들을 강력하게 비난하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 화석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하나의 방 안에 그 화석들을 전시해 놓으면, 한 종교적 근본주의자가 폭탄을 들고 들어와 모든 인류의 유물들을 파괴해 버릴 수도 있다.”7 라고 말했다.

1959년, 메리 리키는 돌 연장들이 포함되어 있던 퇴적층에서, 큰 이빨을 가진 강건한 두개골을 발견했다. 루이스는 그것이 바로 인류 최초의 조상이었으며, 그것을 '진잔트로푸스 보이세이(Zinjanthropus boisei, 진잔트로푸스는 동 아프리카인 이라는 뜻)' 라고 명명했다.8 바로 그 이빨의 크기 때문에 (훨씬 몸집이 큰 고릴라의 이빨과 같음)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고, 또한 강력한 턱 근육들이 부착을 위한 커다란 시상골능(sagittal crest)을 가지고 있어서 '호두까기 인(Nutcracker Man)'이라는 별칭이 붙여졌다. 다른 대부분의 인류학자들은 그것은 사람의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리키 부부의 발견에 대한 많은 글들 중에서 '내셔날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 잡지는 최초로 그것을 기사로 게재했고,9 그들을 후원했다.

루이스는 나중에 진잔트로푸스가 인류의 직계 조상이 아님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그의 탐사팀이 올두바이 계곡(Olduvai George)에서, 1960~1963년 사이에 찾아낸 다른 화석인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 handy man으로도 불림)의 우수성에 대해서는 매우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는 호모 하빌리스가 더욱 진화된 호미니드(hominid)였으며, 이들 중 하나가 확실하게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현생인류)로의 진화 선상에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후로 호모 하빌리스는 대부분의 진화론적 고생물학자들로부터 하나의 '빈약한 분류군(invalid taxon, 생물학적 카테고리)‘으로 선포되어 오고 있는데, 이것은 다른 종들의 화석 쓰레기 상자(waste-bin of fossils)에서 만들어져 나온 하나의 유령 종(phantom species)들인 것이다.10


기독교적 영향

루이스는 젊었을 때 그의 일생을 선교사 일에 헌신하려고 했었다.11 아프리카에서 그는 물활론적 사회(animistic society, 정령숭배 사회)에서 기독교가 매우 강력하고도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을 보았었다. 그는 그의 자서전에서 두 명의 키쿠유(Kikuyu) 족 젊은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다. 나오미(Naomi)와 이스마엘(Ishmael)이 그 주인공들인데, 그들은 모두 기독교인이었고 서로 결혼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들의 할아버지들은 적대 관계였고, 특히 나오미의 할아버지는 만일 후손들이 적의 후손들과 결혼할 시에는 가족들은 매우 심한 고통에 처해질 것이라는 정신세계로부터 나오는 저주들을 퍼부으며 결사적으로 반대하였다. 나오미와 이스마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했고, 여러 해 동안 행복하게 살았다. 루이스는 그것에 대해 소견을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지역적으로 기독교화 되어있지 않은 곳의 원주민들도 크리스천들이 저주와 형벌을 무시하고 꿋꿋이 버티듯 똑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단지 그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관계 사이에서도 말이다.”12

또한 그는 키쿠유 족의 금기 사항인 죽은 시체를 만지는 것에 대해서도 기술하고 있다. 그것은 죽어가는 아픈 사람은 수풀 속으로 옮겨져 그곳에서 숨을 거두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곳에서 시체는 하이에나와 같은 동물들에게 먹혀져 매장이 필요 없는 것이다. 그는 그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기독교인이 된 키쿠유 족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관습과 오래된 생각들을 버리고 사람의 시체, 해골, 뼈 등을 만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키쿠유 족 가운데 기독교인들은 항상 그 부족의 장례를 도맡아 처리하게 되었다.” 13

루이스가 젊었을 때, 그는 기독교를 매우 열심히 믿었다. 보스콤(Boscombe, Bournemouth 근처)에서 그는 그 거리를 지나던 사람들을 상대로 비누 박스 위에 올라가 설교를 하기도 했고, 캠브리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는 자신과 친한 학생과 함께 있던 방을 ‘신실한 기독교인이 되지 않으려는 자들은 쫓아내는 방’ 이라 부르기도 하였다.14 1925년까지 그는 선교사와 과학자, 이 두 가지를 모두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어떤 원인이 그를 삶의 목표뿐 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세계관까지도 바꾸어 놓았는가를 생각해 보자. 그는 그의 자서전에서 말하고 있다.

 ”.....나는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와는 별개로, 진화론의 진리를 확신하게 되었다.”


결론

루이스 리키(Louis Leakey)의 삶은 세계적인 무대 위에서, 슬프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신실한 크리스천인 부모들까지도 너무도 자주, 우리의 자녀들에게 가르쳐지고 있는 ‘과학(science)'이 성경적 역사를 거부하도록 하는 기초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는 데에 실패하고 있다. 그리고 또한 '과학'은 직접적인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거부하는 철학적 믿음 체계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의 역사는 정말로 복음의 기초이다. 그래서 믿음의 학생들이 그러한 교육을 받은 후에, 특히 '믿음(faith)'과 '실제(reality)'가 서로 불일치하는 곳에 놓여졌을 때, 어린 시절의 신앙을 잃어버리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만약 루이스의 부모들이 성경적 세계관으로 자녀들을 가르치기 위한 장비과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래서 실제적인 증거들이 성경의 기록과 일치한다는 것을 가르쳤다면, 성경은 진정 과학과 불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녀들에게 가르쳤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루이스 리키는 1972년 10월 3일, 69세의 나이로 런던에서 세상을 떠났다. 우리 모두에게 그의 선택(choice, 진화론을 택했던)은 일시적인 삶과 영원한 삶을 결정하는 운명적인 선택이었음을 보여주었다. 그는 사라져 버릴 이 세상의 명예를 얻었으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될 기회를 놓쳤다. 물론 ”영생을 얻을 기회” 또한 놓쳤다 (요한일서 2:17).



References and notes

1. Known as 'volcanic glass', obsidian fragments can break with edges as sharp as the finest scalpels.

2. Cole, S., Leakey's Luck, Harcourt Brace Jovanovich, London, p.37, 1975

3. Darwin, C., The Descent of Man, John Murray, London, p.155, 1887

4. Leakey, L.S.B., Adam's Ancestors, Methuen &Co. Ltd., London (1934, rewritten 1953). Most of the drawings are of flint-type hand-tools.

5. In England in the 1930s, the only sure ground for divorce was adultery.

6. Morrel, V., Ancestral Passions, Simon & Schuster Ltd., New York, p.344, 1995.

7. Ref. 6, p.533.

8. It is now called Australopithecus (or Paranthropus) boisei.

9. Leakey, L.S.B., Finding the world's earliest man, National Geographic 118(3): 420-435, September 1960.

10. See interview with 'human evolution' authority Dr Fred Spoor on AiG's video The Image of God.

11. Leakey, L.S.B., White African, Holder and Stoughton, London, p.68, 1937.

12. Ref. 11, p.82-83.

13. Ref. 11, p.186-188.

14. Ref. 6, p.28.

15. Ref. 11, p.161.

* Russell Grigg, M.Sc. (Hons.) was an industrial chemist before serving 20 years with Overseas Missionary Fellowship. He is a staff member of Answers in Genesis in Australia.


*참조 : 왜 우리는 창조론과 진화론의 논쟁에 대해 배워야만 하는가?

http://creation.kr/Debate/?idx=1293606&bmode=view

무신론은 진화론을 필요로 한다 : 진화론은 사실로부터 생겨난 것이 아니다.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77&bmode=view

인본주의자 선언 2000 에서 언급된 현대 무신론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16&bmode=view

무신론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진화론 : 미국 대학생의 무종교 비율에 관한 새로운 조사

http://creation.kr/Faith/?idx=1293854&bmode=view

진화론의 뿌리와 열매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70&bmode=view

도킨스는 “하나님은 없다”라는 광고를 지원하고 있다 : 영국 런던의 버스에 등장한 무신론자들의 광고

http://creation.kr/Debate/?idx=1293647&bmode=view

도킨스의 최근의 책 : 지상 최대의 거짓말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51&bmode=view

스티븐 호킹의 무신론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56&bmode=view

나는 믿지 않는다! : 창조과학을 비판하던 한 젊은이에 대한 이야기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33&bmode=view

진화론으로 인해 불신앙의 늪으로 떨어졌던, 한때 유명했던 복음전도자 찰스 템플턴

http://creation.kr/Faith/?idx=5963913&bmode=view

템플턴, 그레함, 라이엘, 그리고 의심 : 어떻게 ‘거짓말’이 한 복음전도자를 실족시켰는가?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75&bmode=view

기독교 대학에서 창조론의 위기

http://creation.kr/Education/?idx=1293510&bmode=view

어떤 기독교 대학들은 예수님보다 다윈을 더 사랑한다.

http://creation.kr/Education/?idx=1293522&bmode=view

창세기에 대한 타협은 성경의 기초를 허무는 일이다.

http://creation.kr/BiblicalChronology/?idx=1289290&bmode=view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것이 기독교의 신뢰성을 손상시키는 일인가?

http://creation.kr/BiblicalChronology/?idx=1289287&bmode=view

기독교 신앙과 진화론은 양립할 수 없다.

http://creation.kr/Faith/?idx=1293785&bmode=view

복음의 진로를 가로막는 견고한 진 - 진화론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77&bmode=view

진화론이 신학에 미친 영향

http://creation.kr/Faith/?idx=1293812&bmode=view

진화론이 교회에 미친 영향

http://creation.kr/Faith/?idx=1293787&bmode=view

중국 복음 선교에 진화론이 미친 영향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67&bmode=view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6/i3/mark.asp 

출처 - Creation 26(3):24-27, June 2004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415

참고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26길 28-3

대표전화 02-419-6465  /  팩스 02-451-0130  /  desk@creation.kr

고유번호 : 219-82-00916             Copyright ⓒ 한국창조과학회

상호명 : (주)창조과학미디어  /  대표자 : 박영민

사업자번호 : 120-87-70892

통신판매업신고 : 제 2021-서울종로-1605 호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26길 28-5

대표전화 : 02-419-6484

개인정보책임자 : 김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