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과 살생에 대한 다윈의 열정

사냥과 살생에 대한 다윈의 열정 

(Darwin's Passion for Hunting and Killing)


       대중 잡지와 과학 문헌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은 다윈(Darwin)의 한 면은 그의 강한 가학적(sadistic) 취향이었다. 이것을 반영하고 있던 그의 열정 중의 하나는 사격(shooting), 사냥(hunting), 그리고 총에 대한 그의 애정이었다. 사격과 사냥에 대한 다윈의 관심이 19세기 영국 사회에서 그리 유별난 것은 아니었으나, 그 당시의 대부분의 사람들에 비해 그의 열정은 정도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다. 지금처럼 그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식량이나 스포츠를 위해서 사냥을 했지만, 단지 사냥만을 위한 악의적인 살생은 정당화될 수 없다. 다윈의 경우, 그것은 적어도 사디즘(sadism)에 해당하는 행동들을 포함하고 있는 하나의 강박 현상(obsession)이었다.

어릴 적 성장 과정에서의 이런 어두운 면에 대한 암시로, 다윈은 흥분을 느끼기 위해서, 그리고 남의 주목을 받기 위해서 물건을 훔친다거나 거짓말을 자주 했었던 성향을 들 수 있다. 다윈 자신의 말에 의하면, "꼬마였을 적에 나는 필사적으로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기질이 많았는데, 그것은 항상 흥분을 일으키기 위해서였다”(1958, p. 23). 다윈은 또한 재미로 훔치는 일들을 했다는 것을 인정했다.(p. 24). 가학적인 감정에 대한 명백한 예는 다윈이 소년이었을 적에 "단지 힘의 감각을 즐기기 위해...강아지를 때렸을” 때였다. 그는 심지어 나중에 자신의 행동에 대해 심한 죄책감을 느꼈다고 인정했는데, 그것은 자신의 행동이 나빴다는 것을 그가 알고 있었음을 보여준다.(p. 27). 이 당시, 그는 여전히 하나님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러한 사실이 그의 죄책감을 부분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p. 25).

 

다윈의 가학적 충동

다윈은 약 15살이 되기 전에 총을 다루는 법을 처음으로 배웠었지만, 처음으로 동물을 죽이고 나서야 명백하게 열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의 ”사격에 대한 열정은... 학교를 다니는 내내, 그리고 졸업한 후에도 남아있었다”(Gale, 1982, p. 9). 다윈은 살생을 너무나 많이 좋아해서 그가 처음으로 새를 죽였을 때, 그는 말 그대로 흥분으로 몸을 떨었다. 그가 자서전에서 기록한 대로, 동물을 죽이는 것이 그에게 얼마나 중요했는가에 대해 그 자신의 말로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학교생활 후반부에, 나는 열정적으로 사격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새를 쏘기 위해서 가졌던 가장 거룩한 명분에 대한 열정을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처음으로 도요새(snipe)를 죽였을 때를 얼마나 잘 기억하고 있는지, 그리고 나의 흥분은 너무나 커서 손이 떨려 총을 다시 장전하는데 무척 어려웠다. 이러한 취향은 오래도록 지속되었고 나는 매우 뛰어난 사격수가 되었다”(1958, p. 44).

그는 또한 자신의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사격을 얼마나 즐겼던가!”(p. 55), 그리고 "만약 지구상에 더없는 기쁨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격이다”(Browne의 말에서 인용, p. 109). 그는 심지어 다음과 같이 표명하기도 했다. "나의 열정은 너무나 커서 나는 잠자리에 들 때, 아침에 부츠를 신는 데에 일 초도 허비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내 침대 옆에 사격 부츠를 벌려둔 채 놔두곤 했다”(p. 54).

1828년 무렵, 동물 사냥에 대한 그의 야망은 그의 장비를 통해 나타났다. 그는 좀 더 성능이 좋은 강력한 총(double-barrelled gun)을 원했고, 그래서 새로운 총을 사기 위해서 그의 부친과 누이들에게 돈을 부탁했다. 그는 주장하기를, 만약 구식 총을 계속해서 사용한다면, 당장이라도 그 총이 "찰스 다윈의 다리, 팔, 몸과 머리를 파괴할” 수도 있는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그들을 위협했다.(Browne, p. 110). 그는 곧 새 총을 샀고, 나중에 캠브리지 대학의 학생이 되었을 때, 그것을 가지고 연습하곤 했다. 그가 밖에 나갈 수 없었을 땐, 자신의 방에서 총 쏘는 것을 연습했다! 캠브리지에 있는 동안, 스포츠 동아리에 가입해서 "음주, 사냥, 승마를 엄청나게 즐겼다."(Gale, p. 13).

브라운(Browne)은, 1826년 이후 다윈은 젊은 시절의 매년 여름과 가을 동안을 새와 다른 동물들을 죽이는데 전념했었다고 주장했다. 사격을 하지 않는 달에는 다른 동물을 죽이는 데 필요한 "총에 대한 안내서를 공부하거나 탄환의 직경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적으면서” 보냈다.(Browne, p. 110). 다윈은 이미 동물을 죽이는데 있어서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이를 더욱 향상시키기 위해서 ‘젊은 사냥꾼을 위한 노련한 사냥꾼의 지침서(Instructions for Young Sportsmen by an Old Sportsman)’와 같은 많은 책들을 모으고 탐독하였다.(Gale, p. 144).

심지어 사냥에 대한 다윈의 열정은 수렵기까지 기다리는 것을 너무나 어렵게 하여, 사냥감에 몰래 접근하도록 하였다. 그래서 그는 ‘금렵기에 사냥감을 죽인 것에 대한 금전적 벌금’을 물기도 하였다. 그리고 심지어 "일반인이나 사냥터 관리인은 자신의 허가증을 취득함 없이 상대방의 허가증을 요구할 수 없다"는 법률 이후 그 법을 무시할 것을 고려하기조차 했다.(Browne, p. 110). 그는 또한 자신이 사격과 동물 사냥에 대한 강박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한 때 다음과 같이 말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열정에 대해 반의식적으로 수치스러워 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사냥은 지적인 활동이라고 나 자신을 설득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p. 55).

비록 삶의 후반부에 과학(science)에 대한 그의 애정도 또한 매우 중요하게 되었지만, 사냥에 대한 그의 열정은 잘 알려져 있었고, 청년이었을 적에 다른 어떤 활동보다 열정적이었다. 브라운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

"그 당시 다윈의 애정에서 현미경에 비교할 수 있었던 유일한 물건은 총이었다. 그리고 그는 총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 사냥은 딱정벌레에 대한 생각 이외의 모든 생각들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다.”(p. 109).

다윈은 사격이 오랫동안 과학보다 훨씬 더 중요했었다고 인정했다.

"나는 캠브리지에서 공부하고 있었던 몇몇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 바머쓰(Barmouth)를 방문했고, 거기서 쉬루즈베리(Shrewsbury)와 매르(Maer)로 사격을 하러 되돌아왔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지질학이나 다른 어떤 과학 때문에 새 사냥(partridge-shooting)의 중요한 날을 포기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나 자신이 생각했기 때문이다” (p. 71).

다윈은 심지어 그의 수많은 사냥들을 정확하게 기록하기 위해서 정교한 분류법으로 집계했다. 그의 목록은 "수렵기동안 내내 그가 죽인 모든 것"의 현재 총계를 기록하기 위해서, 엽조, 산토끼, 그리고 꿩으로 세분하였다.(Browne, p. 110). 동물 사냥이 그에게 얼마나 중요했는가도 또한 다음 경험담에서 나타난다 :

"전 수렵기간 동안 나는 내가 쏜 모든 새들에 대해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하루는 사격을 할 때... 나는 내 자신이 수치스럽게 이용당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내가 발사한 후 내가 새를 죽였다고 생각할 때마다 다른 친구 하나가 마치 그가 총을 쏘고 나서 장전하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소리쳤다. "넌 저 새를 헤아려서는 안 돼. 왜냐하면 내가 동시에 발사했으니깐” 그리고 그 농담을 사냥터 관리인은 지지했다. 몇 시간 후에 그들은 내게 그것이 농담이었음을 말했으나, 수많은 새를 쏴왔었기 때문에 내게는 전혀 농담이 아니었다. 나는 나의 사냥 목록에 그것들을 추가할 수 없었다.... 이것을 나의 못된 친구들이 알아챘다."(Darwin, p. 54).

다윈의 사냥 도구는 정서적으로 그에게 사격 그 자체만큼 중요했었는데, 그것은 매번 살인을 한 후에 자신의 총에 새김 줄을 그려 넣는 살인자와 유사한 강박증을 나타낸다고, 브라운은 결론 내리고 있다. 다윈의 부친은 그의 강박증을 문제점으로 보았다. 한번은 찰스 다윈이 ‘사격, 개, 그리고 쥐잡기’에만 신경을 쓰고 다른 일은 하지 않는다고, 부친은 말했다. 그리고 그 결과 자신과 그의 전 가족에게 다윈은 "수치가 될 것이다" 라고 말했다.(Darwin, p. 28). 심지어 다윈 자신도 젊었을 적에 사냥에 너무나 많은 시간을 보낸 것에 대해서 후회했으나, 그는 결코 그의 가학적인 행동, 즉 사냥에 대한 그의 극단적인 강박증에 대해서는 어떠한 후회감도 표현하지 않았다.

보울러(Bowler, p. 39)에 따르면, "결국엔 쓸모없는 도살자(useless slaughter)로서 거절당하지 않고 그의 대학 시절에 살아남기 위해서, 다윈은 사냥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행동은 단지 쓸모없는 도살자였을 뿐만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나쁜 결과를 초래했다. 혹자는 이러한 사냥과 죽임에 대한 그의 ‘열정(passion)’이 그의 무자비한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라는 자연선택의 이빨과 발톱 이론(tooth-and-claw theory)을 개발하는 데 있어서 역할을 했을 수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찰스 다윈의 태도는 그의 여러 가족 구성원들과는 무척 대조를 이룬다. 그의 누이는 채집을 위해 곤충을 죽이는 것조차 꺼려하여, ‘죽은 곤충을 수집해야만 했었다’고 결론내리고 있다.(Desmond & Moore, p. 16). 처음에 다윈도 그녀의 생각에 동의를 하면서 "수집을 위해서 곤충을 죽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었다.(Darwin, p. 45). 그러나 나중에 그는 이러한 생각을 무시하고 거리낌 없이 수집을 했다.(p. 62). 수집용 살생에 대한 다윈의 태도는 어떤 유명한 생물학자들의 태도와도 또한 대조를 이룬다. 아우구스트 포렐(August Forel) 교수는 자신은 아이였을 적에 단지 죽은 곤충만 수집하도록 허락되었다고 말했다. 1859 년도에, 포렐은 곤충학자였던 그의 삼촌에게 생물체를 고통 없이 죽이는 법을 배운 후에, 살아있는 표본을 채집하도록 허락되었다.(1937, p. 33).

다윈은 그의 아버지(비록 그는 의사였음에도 불구하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아버지는 생애 마지막까지 수술에 대한 생각은 그를 병이 나도록 만들었으며, 아버지는 피 흘린 사람을 보는 것을 거의 참을 수 없어했다”(1958, p. 30). 다윈이 두 번의 ‘조악한 수술’ 때 참석했었다는 것은 흥미롭다. 한 번은 아이였을 적인데, 수술이 끝나기 전에 자리를 떴다. "이때는 클로로폼이 사용되기 오래 전이었다."(p. 48). 그는 자신의 박제사(taxidermist)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 배웠던 ‘새의 박제(stuffing birds)’ 시에 전혀 괴로움(qualms)을 가지지 않았다.(p. 51).

하나님은 가학적이라고 불평했던 그의 관점으로 볼 때, 다윈의 행동은 아이러니하다. 그의 친구인 후커(Hooker) 교수에게 보낸 1856년 7월 13일자 편지에서, 다윈은 꽃가루(pollen)에 대해 말하면서, "자연은 우리에게 너무나 서툴고 낭비적인 것처럼 보인다. 이 서툴고, 낭비적이고, 어쭙잖게 저속하고, 무시무시하게 잔인한 자연의 일들에 대해서 악마의 사제가 책을 쓸지도 모르겠구나!” 라고 하였다.(Darwin, p. 1990, p. 178).

1860년 5월 22일에 아사 그레이(Asa Gray)에게 보낸 또 다른 편지에서, 다윈은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비참함(misery)이 있기 때문에, 기독교적 창조주인 하나님을 믿을 수 없었다고 쓰고 있다. 그가 쓴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나는 자비롭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획적으로 살아있는 애벌레의 체내에서 그것들을 먹고사는 맵시벌과(Ichneumonidae, 기생곤충)를 설계하여 창조하셨다는 것이나,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노는 것 등의 사실들이 나 자신을 설득할 수 없네”(Darwin, 1993, p. 224).

어떤 사람들은 다윈이 젊었을 적에 자신이 즐겼던 것(살생)과 똑같은 것을 하나님이 즐겼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독교적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이러니의 극치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

다윈은 명백히 그의 대부분의 생애동안, 특히 삶의 황금기인 청년이었을 때, 동물을 죽이고자 하는 과도한 욕구로 고통을 받았다.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작가들은 단지 다윈이 사냥을 좋아했었다고만(그의 행동에 대해 정확하지 않은 평가로) 이야기하면서, 다윈의 이러한 취향에 대해 표현하기를 피해왔었다. 많은 작가들이 이러한 주제를 피한 이유는 다윈이 지금 많은 과학자들과 일반 사람들에 의해 우상화되어 있지만, 무자비한 동물 사냥은 비난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기존의 모든 과학자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과학자는 아닐지라도, 종종 19세기의 위대한 과학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리스트에 올라있는 다윈은,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 알려져 있는 소수의 과학자들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러나 한 인간으로서의 다윈과 그의 연구 동기들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의 거의 병적인 수준의 살생 충동을 평가하고, 그것이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에 대한 그의 결론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을 것인지를 고려해야만 한다.

 


References

Bowler, Peter J. 1990. Charles Darwin; The Man and His Influence. Cambridge, MA: Basil Blackwell.
Browne, Janet. 1995. Charles Darwin: Voyaging.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Darwin, Charles. 1958. The Autobiography of Charles Darwin 1809-1882. New York: Norton. Autobiography. New York: W. W. Norton. Edited by Nora Barlow.
_____ 1990. The Correspondence of Charles Darwin. Volume 6 1856-1857.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Edited by Frederick H. Burkhardt
and Sydney Smith.
_____ 1993. The Correspondence of Charles Darwin. Volume 8.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Edited by Frederick Burkhardt.
Desmond, Adrian and James Moore. 1991. Darwin: The life of a Tormented Evolutionist. NY. Warner Books.
Forel, August. 1937. Out of My Life and Work. New York: W. W. Norton.
Gale, Barry G. 1982. Evolution Without Evidence: Charles Darwin and The Origin of Species. Albuquerque, NM: University of New Mexico Press.

* Dr. Bergman is on the Biology faculty at Northwest State College in Ohio.

 

*참조 :

1. 찰스 다윈은 정신이상자였는가? : 그의 정신 건강에 대한 연구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66&bmode=view

2. 다윈의 이상한 질병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89995&bmode=view

3. 다윈의 전 세계 항해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89996&bmode=view

4. 다윈 사상, 모든 게 그 집안 내력이다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44&bmode=view

5. 다윈의 불법적인 발명품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45&bmode=view

6. 비글호의 항해 - 창조주를 위한 봉사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29&bmode=view

7. 다윈의 무덤과 교회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73&bmode=view


번역 - 한국창조과학회 대구지부

링크 - http://www.icr.org/pubs/imp/imp-383.htm ,

출처 - ICR, Impact No. 383, May 2005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633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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