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퀴슬링 : 다윈을 도왔던 믿음의 변절자, 찰스 킹즐리

미디어위원회
2020-04-08

다윈의 퀴슬링 

: 다윈을 도왔던 믿음의 변절자, 찰스 킹즐리 

(Darwin’s quisling : Charles Kingsley)

Russell M. Grigg

 

*퀴슬링(Quisling) : 적을 도와준 사람. 배신자, 매국노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노르웨이를 점령한 독일의 나치당에 협조했던 노르웨이 육군 장교인 Vidkun Quisling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단어).


     믿음을 배반한 성직자들은 언제나 있어왔다. 그러나 아마도 다윈의 길을 확장하였던 유명한 저자처럼 파괴적인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이 쓴 책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의 1,250부 제1판은 1859년 11월 24일에 출판되었다. 책은 공공연한 소동을 일으키게 되었고, 제1판 전체는 당시 출판물에 열심이었던 한 사람에 의해서 모두 사들여졌다는 항간의 이야기에도 불구하고[1] 영국을 가로질러 종교계로부터 신속히 비난받았다.


한 협력자의 발견

창세기의 창조 설명을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이러한 이론에 대한 교회의 적의는 다윈과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 조셉 후커(Joseph Hooker)와 같은 그의 매니저들에게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 이론의 전파를 촉진시켜줄 과학을 조금 알고 있는 저명한 성직자를 열심히 찾았다. 그리고 그들은 찰스 킹즐리 신부(Rev. Charles Kingsley)를 발견했다. 킹즐리는 1842년에 영국 국교회(성공회, Anglican)의 보좌사제로서, 그리고 2년 후에 교구사제로 임명되었던 아마추어 박물학자(naturalist)였다. 그는 기독교 사회주의자 운동(Christian Socialist movement)의 설립 멤버 중 하나였다. 그는 가난한 자의 원인을 다루었던 소설의 작가로서 알려져 있었고, 역사 소설인 ‘히파티아(Hypatia, 1853)’와 ‘이봐 서쪽이야(Westward Ho, 1855)’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1859년에 그는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의 예배당 근무 사제(Chaplain)로 임명되었다.


다윈은 킹즐리에게 ‘종의 기원’ 제1판의 복사본을 보냈다. 킹즐리는 그에 대한 감사 편지에서 과도하리만큼 다윈을 칭찬했다. 킹즐리는 "당신의 명망과 직관력, 그리고 내가 알게된 많은 사실들은 나를 두렵게 합니다. 만약 당신이 옳다면, 내가 믿어왔고 저술해왔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합니다” 라고 썼다 [2]. 확실히 이것은 그에게 어떠한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이 각 종류의 생물체들을 종류대로 창조하셨다는 ‘미신(superstition)’으로부터 이제는 자유롭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윈은 영국 국교회의 고위 성직자로부터 이러한 지지를 받는 것에 너무도 기뻐서 그는 ‘종의 기원’ 제2판의 마지막 장에 킹즐리의 편지를 서둘러서 첨부시켰다. 그 책은 단지 2달 후에 출판되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유명한 책의 저자이며 성직자인 분이 나에게 편지를 하였다. 그는 하나님이 소수의 원래 형태를 창조하시고, 이들이 다른 필요한 형태로 스스로 발달해가도록(self-development) 하셨다는 개념을 점점 배워가고 있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창조의 새로운 행위로서 하나님의 법칙에 의해서 빈 공간이 채워지도록 하셨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3]      

이것은 하나의 전략적인 움직임이었다. 다윈은 유신론적 진화론(theistic evolution)과 조화되려고 하였다.[4, 5] ‘종의 기원’에서 다윈이 킹즐리의 편지를 익명으로 인용하자, 그 글을 읽은 한 비판가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서 부름 받은 성직자가 믿음에 치명적인 그러한 개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며[6] 다윈에게 그의 이름을 밝힐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다윈은 이것을 거절했다. 그리고 이러한 성직자의 시인은 다른 교회 지도자들의 반발을 무마시키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익명성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1863년에, 킹즐리는 ‘물의 아이들(The Water Babies)’ 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은 여러 가지로 진화를 암시하는 괴기스런 어린이 책이었다. 예를 들면, 톰(Tom, 아가미를 가지고 물 속에서 살아가는 양서류가 된 어린이)은 어머니 캐리(Mother Carey, Mother Nature와 비슷함)에게 다가와서 말한다. "어머니, 어머니는 오래된 짐승에서 새로운 짐승을 만들어내느라고 항상 바쁘다고 들었습니다.” 그녀는 대답한다. "새로운 짐승들을 만드는 데에 그렇게 어려운 것은 없단다... 여기 앉아 있으면, 그것들은 스스로 만들어져 나오기 때문이지.”[7] 또 다른 장에서, 세대가 지나가면서 점차로 원숭이로 변해가는 인간 종족에 대한 놀림조의 이야기가 있다. 킹즐리는 동화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이제 사람들은 환경, 선택, 경쟁 등등에 의해서 짐승(beasts)이 사람으로 되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만약 짐승이 사람으로 될 수 있다면, 환경, 선택, 경쟁의 똑같은 법칙에 의해서 사람도 짐승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이다.”[8]  


헉슬리의 친구

킹즐리는 진화론 편을 드는 데에 매우 열심이었다. 그는 다윈과 라이엘(Lyell)과 관계를 갖고 있었고, 반기독교적 영국 생물학자로서 ‘다윈의 불독(Darwin’s bulldog)‘으로 알려진 토마스 헉슬리(Thomas Huxley)와 친구 관계를 유지하였다. 헉슬리는 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킹즐리에 관해 이렇게 쓰고 있었다 : "그는 누구보다도 뛰어난 다윈 신봉자였다. 그리고 그러한 이설에 그가 찬성하는 것에 대해서 놀라움을 표현했던 에일즈버리 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녀와 내가 같은 두꺼비로부터 생겨났다는 것을 아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은 무엇이겠는가! 경박한 나이 많은 부인이 그러한 표현에 자기가 놀림을 당했는지, 아니면 킹즐리를 숭배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9]    

1867년에 킹즐리는 왕립연구소에서 주최한 ‘과학과 성경(Science and Scripture)’이라는 제목의 두 번의 강연에서 공개적으로 사람은 원숭이의 후손이며, 이 세계는 수백만 년이 되었다는 그의 믿음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1867년 프레이져 매거진(Frasers Magazine) 6월, 7월호에 실리게 되었다.[10]

킹즐리가 그의 위치에서 창세기의 창조 설명을 거부하고 진화론을 받아들인 것이 그를 인종차별주의적 견해(racist views)를 신봉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만약 인간들 그룹이 오랜 세월 동안 격리되어 다양한 특성들로 진화되어 왔다면, 덜 진화된 종족이 있었을 것이며, 이들은 다른 종족들 보다 덜 사람이 되었을 것이었다. 킹즐리는 그의 설교집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아프리카의 흑인들과 정확히 같은 종족인 호주의 검은 원주민들은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려는 모든 시도는 인간의 모습을 한 짐승들에게는 결국은 실패할 것이다... 그들은 다른 짐승들처럼 이 땅에서 멸망되어야만 한다.” [11, 12]          


패튼(Paton)에 의해서 논박되다

뉴헤브리디스(New Hebrides) 제도의 선교사였던 존 패튼(John G. Paton, 1824–1897)은 킹즐리의 설교집을 읽었을 때 매우 마음이 아팠다. 그는 자서전에서, 자기가 알고 있었던 호주 원주민 크리스천 여자인 노라(Nora)의 이야기를 전함으로서 반응했다. 그것은 마치 유명한 설교자가 주장했던 모든 것을 산산조각내는 것 같았다. 패튼은 썼다 :

"...그녀는 비참한 오두막집 안에서 아파하며 누워있었다. 방문자들은 그녀가 자기의 불쌍한 동족들에게 예수님의 대속의 사랑을 설명해주기 위해서 성경을 읽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나의 친구인 로더릭 우쿠하트(Roderick Urquhart, Esq.)는 그 장면을 극복하기 위해 말했다. ”노라, 내가 당신을 여기서 보게되어 마음이 아픕니다. 당신의 아픔에 모든 위로를 드립니다."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내 삶의 변화가 정말로 나를 건강하지 않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것 역시 하나님이 더 좋은 것을 이루시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침내 나의 불쌍한 남편(알콜중독에 빠져있던)이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만약 하나님이 그를 주님의 발 앞으로 인도하신다면, 나는 아무 것도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12] 

패튼은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

"복음은 근처의 같은 호주 원주민 종족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우리가 있던 아네이티움(Aneityum) 섬의 3,500명의 식인종들이 그들의 이교 숭배를 포기하였고, 문명화되었고, 크리스천의 삶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사모아(Samoa)에서는 34,000명의 식인종들이 기독교 신앙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뉴헤브리디스 제도에서는 12,000명 이상의 식인종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발 앞에 엎드리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들 모두가 완전한 크리스천들이라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133명의 원주민들이 훈련을 받았고, 복음 설교자와 교사로 세워졌고 퍼져 나갔습니다. 그리스도는 영국과 호주에 있는 크리스천들에 의해서 그를 따르는 호주 원주민들의 마음과 삶속에 동일한 방법으로 들어오셨고 축복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 [12]     

킹즐리는 진화론을 찬성하고 창세기의 창조를 거부한 것과 마찬가지로 호주 원주민에 관한 모든 설명들에서 틀렸다. 다윈과 헉슬리에 대한 킹즐리 신부의 협력은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 말씀의 권위와 정확성에 의문을 일으키고 훼손하고자 했던 그들의 작업을 돕게되었다. 따라서 그는 시대는 조금 틀리지만 이 글의 제목과 같은 이름을 부여받을만 한 사람인 것이다.

다윈주의자들에 대한 그의 지지를 통해, 킹즐리는 1863년에 찰스 라이엘의 후원에 의해서 지질협회(Geological Society)의 특별회원(Fellow)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1873년에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참사회원(Canon of Westminster Abbey)이 되었고, 1875년 그가 죽은 후에, 대리석 흉상이 그곳 창문턱에 놓여지게 되었다. 다윈은 1882년에 이곳에서 가까운 거리에 묻혔다. 기독교 신앙의 기초인 창세기를 훼손하는 데에 앞장섰던 두 사람이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교회 중의 한 곳에 명예롭게 묻혀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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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and notes

1. Apparently the book was not even advertised. Freeman has suggested that most, if not all, of the first edition was bought up at the dealer’s auction before the official publication date, by an agent of Lyell and Hooker, and that these copies were then sent free to sympathisers and other prominent people whom the principals wished to influence. (Taylor I., ; In the Minds of Men, TFE Publishing, Toronto, Canada, pp. 355–56, 1984, who cites Freeman, R., The Works of Charles Darwin, an annotated bibliographical handlist, Dawsons of Pall Mall, London, p. 21, 1965.)

2. Kingsley’s letter of thanks was dated 18 November 1859, which means he received his copy at least a full week before the official publication date. ‘Kingsley to Darwin, November 18, 1859’, Life and Letters of Charles Darwin, D. Appleton and Co., London, Vol. II, pp. 81–2, 1911.

3. Darwin, C., On the Origin of Species, 2nd edit.,John Murray, London, p. 481, 1860. Note that this is slightly different from the wording that appears in Ref. 2. Himmelfarb suggests that either Kingsley altered it when he gave permission for it to be used or Darwin himself altered it for greater clarity. See Ref. 6, p. 400, note 41.

4. Darwin wrote : "I would give absolutely nothing for the theory of Natural Selection, if it requires miraculous additions at any one stage of descent." ‘C. Darwin to C. Lyell, October 11th 1859’, Life and Letters of Charles Darwin, D. Appleton and Co., London, Vol. II, p. 7, 1911.

5. See also Brentnall, J.H. and Grigg, R.M., Darwin’s slippery slide into unbelief, Creation18(1):34–37, 1995. Also Wieland, C., Darwin’s real message: have you missed itCreation14(4):16–19, 1992.

6. Himmelfarb, G., Darwin and the Darwinian Revolution, Chatto and Windus, London, p. 246, 1959, who cites Bree, Species not Transmutable, p. 244.

7. Kingsley, C., The Water Babies, Penguin Books Ltd, London, Puffin abridged edition, p. 191, 1984. Original edition 1863.

8. Ref. 7, pp. 158–165.

9. Desmond, A., and Moore, J., Darwin, Michael Joseph, London, p. 488, 1991, who cite ‘Huxley to F. Dyster, 29 February 1860’, Thomas Huxley Papers, Imperial College of Science and Technology, London.

10. Chitty, S., The Beast and the Monk: A Life of Charles Kingsley, Hodder and Stoughton, London, p. 215, 1974.

11. Kingsley, C., Sermons on National Subjects, Sermon XLI, Macmillan & Co., pp. 414–17, 1880, cited in Ref. 12.

12. John G. Paton, Autobiography, ed. by Paton, J., Banner of Truth Trust, Edinburgh, pp. 263–65, 1965.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ation.com/charles-darwins-quisling-charles-kingsley

출처 - Creation 22(1):50–51, December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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