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
황승아
”나 자살할 거예요. 구공탄을 사서 거기에 불을 피우고 냄새 맡으면 자살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게 실패하면 칼로 손목을 그어서...” 지난 해 6월 어느 날 내가 담임을 맡고 있던 중학교 2학년 A여학생의 입에서 스스럼없이 나온 말이었다. A여학생은 그 무렵 친구 관계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사춘기의 여학생들이 흔히 겪는 정도의 갈등 상황이었다. 멀쩡한 가정에서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자라는 그 아이의 입에서 자살하겠다는 말이 이렇게 쉽게 나오는 현실이 난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며칠 동안 밤잠을 설쳐가며 드린 간절한 기도,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일깨움, 그리고 계속적인 관심과 전문상담교사와의 연결, 학부모와의 상담 등을 이어갔고, 다행히도 A여학생은 조금씩 안정을 찾는 듯 했다.
십여 년 전, 내가 어렵게 과학교사가 되었을 때, 진화론 일색의 과학 교과서 속에서 어떻게든 창조주를 전하는 과학 교사가 되겠다는 당찬 다짐을 했다. 학교에서 창조과학 동아리를 만들었다가 교감 선생님께 불려가서 종교 편향 교육 하지 말라는 경고를 들었고, 아침 기도모임을 믿음의 아이들과 시작했지만 교장 선생님의 제재로 접어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해프닝은 나에게 또 다른 돌파구를 찾는 열정을 심어주었고,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여러 창조과학 동역자들과 함께 ”착한과학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창조과학 청소년 사역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은 과학 교과서 속에서 진화론을 배우고 익힐 뿐 아니라 게임, 광고, 만화, 영화, 교양서적 등을 통해 진화론에 친숙해지며, 적자생존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입시 경쟁을 겪으며 진화이론을 몸으로 경험하고 있다. 진화론은 아이들의 사고 깊은 곳에 꽈리를 틀고, 생명의 가치를 외면하고 허무하게 살아가도록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사실 과학 교과서 속의 진화론은 여러 가지 반증 사례들을 제시하고 설득할 수 있겠지만, 아이들의 사고체계 속에 깊이 박힌 진화론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난 우리 반 A여학생의 경우가 그저 독특하고 예외적인 사례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자신의 생명에 대한 가치를 모른 채 목적 없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학급의 학생들에게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자신의 진로에 대해 물어보면 뚜렷한 답을 하는 학생은 한 반에 두세 명 정도에 불과하다. 심지어 되고 싶은 게 없는데 왜 이런 걸 물어보냐며 따지는 아이도 있다.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이 세상에 발표된 이후 다양한 내용들이 추가 혹은 수정 되었지만 진화론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생명은 오랜 시간에 걸쳐 저절로 생겨났다는 추론이다. 즉, 진화론은 생명의 탄생을 하나님 없이 설명하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이다. 따라서 생존에 성공한 하나의 동물 종에 불과한 인간에게 특별한 존엄이나 가치는 없다. 그래서 진화론은 성경 말씀과 정면으로 대치되며, 청소년을 전도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또한 이미 신앙을 가진 청소년들에게는 학교에서의 사고체계와 교회에서의 사고체계를 이원화 하도록 강요하고, 갈등 속에서 교회를 아예 떠나도록 만들어 버린다.
이렇게 다음 세대가 사라지고 있는 교회의 현실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질문을 생각하면 내게 항상 떠오르는 성경 말씀이 있다. 늑대 무리 속에 양을 보내는 목자의 마음으로 주님은 제자들에게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 (마 10:16)”고 말씀하셨다. 마치 진화론 일색의 교육현장에 있는 나에게 신중하고 분별력 있게 그리고 순결하게 다음 세대를 양육하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같다. 그 말씀에 힘입어 오늘도 자신들이 적자생존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 믿으며 소망을 상실한 아이들에게 ”네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이 세상에서 감당할 역할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열렬히 전하고 싶다. 또한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를 청소년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열정이 샘솟길 간구한다. 주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부어주소서...
진화론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
황승아
”나 자살할 거예요. 구공탄을 사서 거기에 불을 피우고 냄새 맡으면 자살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게 실패하면 칼로 손목을 그어서...” 지난 해 6월 어느 날 내가 담임을 맡고 있던 중학교 2학년 A여학생의 입에서 스스럼없이 나온 말이었다. A여학생은 그 무렵 친구 관계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사춘기의 여학생들이 흔히 겪는 정도의 갈등 상황이었다. 멀쩡한 가정에서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자라는 그 아이의 입에서 자살하겠다는 말이 이렇게 쉽게 나오는 현실이 난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며칠 동안 밤잠을 설쳐가며 드린 간절한 기도,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일깨움, 그리고 계속적인 관심과 전문상담교사와의 연결, 학부모와의 상담 등을 이어갔고, 다행히도 A여학생은 조금씩 안정을 찾는 듯 했다.
십여 년 전, 내가 어렵게 과학교사가 되었을 때, 진화론 일색의 과학 교과서 속에서 어떻게든 창조주를 전하는 과학 교사가 되겠다는 당찬 다짐을 했다. 학교에서 창조과학 동아리를 만들었다가 교감 선생님께 불려가서 종교 편향 교육 하지 말라는 경고를 들었고, 아침 기도모임을 믿음의 아이들과 시작했지만 교장 선생님의 제재로 접어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해프닝은 나에게 또 다른 돌파구를 찾는 열정을 심어주었고,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여러 창조과학 동역자들과 함께 ”착한과학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창조과학 청소년 사역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은 과학 교과서 속에서 진화론을 배우고 익힐 뿐 아니라 게임, 광고, 만화, 영화, 교양서적 등을 통해 진화론에 친숙해지며, 적자생존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입시 경쟁을 겪으며 진화이론을 몸으로 경험하고 있다. 진화론은 아이들의 사고 깊은 곳에 꽈리를 틀고, 생명의 가치를 외면하고 허무하게 살아가도록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사실 과학 교과서 속의 진화론은 여러 가지 반증 사례들을 제시하고 설득할 수 있겠지만, 아이들의 사고체계 속에 깊이 박힌 진화론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난 우리 반 A여학생의 경우가 그저 독특하고 예외적인 사례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자신의 생명에 대한 가치를 모른 채 목적 없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학급의 학생들에게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자신의 진로에 대해 물어보면 뚜렷한 답을 하는 학생은 한 반에 두세 명 정도에 불과하다. 심지어 되고 싶은 게 없는데 왜 이런 걸 물어보냐며 따지는 아이도 있다.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이 세상에 발표된 이후 다양한 내용들이 추가 혹은 수정 되었지만 진화론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생명은 오랜 시간에 걸쳐 저절로 생겨났다는 추론이다. 즉, 진화론은 생명의 탄생을 하나님 없이 설명하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이다. 따라서 생존에 성공한 하나의 동물 종에 불과한 인간에게 특별한 존엄이나 가치는 없다. 그래서 진화론은 성경 말씀과 정면으로 대치되며, 청소년을 전도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또한 이미 신앙을 가진 청소년들에게는 학교에서의 사고체계와 교회에서의 사고체계를 이원화 하도록 강요하고, 갈등 속에서 교회를 아예 떠나도록 만들어 버린다.
이렇게 다음 세대가 사라지고 있는 교회의 현실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질문을 생각하면 내게 항상 떠오르는 성경 말씀이 있다. 늑대 무리 속에 양을 보내는 목자의 마음으로 주님은 제자들에게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 (마 10:16)”고 말씀하셨다. 마치 진화론 일색의 교육현장에 있는 나에게 신중하고 분별력 있게 그리고 순결하게 다음 세대를 양육하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같다. 그 말씀에 힘입어 오늘도 자신들이 적자생존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 믿으며 소망을 상실한 아이들에게 ”네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이 세상에서 감당할 역할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열렬히 전하고 싶다. 또한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를 청소년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열정이 샘솟길 간구한다. 주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부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