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론적 진화론

유신론적 진화론


Q : 유신론적 진화론은 무엇이며 그 문제점은 어떤 것인가? 

A : 140년전, 진화론의 열렬한 신봉자였던 토마스 헉슬리는 인류기원의 문제를 인간에게 있어 '가장 근본적인 문제' 라고 말했다. 오늘날에 와서도 인류기원의 제문제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다수의 학자들은 다윈의 이론에서부터 출발한 진화론을 기원론의 해답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교육을 받아 왔던 일반 대중들 역시 진화론을 인류기원의 해답을 풀어주는 진리인 양 받아들여 왔다.

진화론은 성경의 창조론을 탈피하여 생명의 세계를 설명하려는 하나의 이론이다. 그리고 진화론적 사고 방식은 생물학 등의 자연과학뿐 아니라, 인문과학(사회학, 교육학, 심리학, 인류학, 법학)이나 심지어는 신학(神學)에까지도 깊숙이 파급되어 왔다. 신학자들은 진화론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직면했을 때, 거부와 수용이라는 뚜렷한 이원론적인 양상을 띄게 되었다. 

그러나 일찍부터 타협이라는 제3의 입장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프랑스의 철학자 베르그송(H. Bergson: 1859~1941)이었다. 베르그송은 폴란드계와 영국계 부모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그의 태어난 해가 「종의 기원(Origin of species)」이 출판되었던 해와 맞아 떨어져서인지 몰라도 이론은 평생 동안 그를 사로잡았다.

베르그송은 일찍이 기독교 신학과 생물 진화론을 접합시키려고 노력한 최초의 기독교 진화론자가 되었다. 그는 기독교 신학과 진화론을 모두 만족스럽게 여기지 않은 나머지, 양쪽 모두를 종합하여 나름대로 하나의 체계를 세우려 시도하였다. 그 결과 그는 어느 한 쪽도 만족시킬 수 없는 불합리한 학설을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베르그송의 타협설 

베르그송은 진화론의 역사적인 측면을 인정하였으나, 진화 현상을 물질적 또는 기계적 입장에서 설명하려는 입장을 배척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우주의 생명 현상을 볼 때 단순한 생물학적 사실 외에도 그것보다 더 깊은 내면 속에 잠재한 생명 탄생의 측면을 견지하게 된다. 쉽게 말해 진화론도 초월자의 창조적 힘의 영향을 빌어야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 말은 하나님도 진화의 과정을 택해 온갖 종류의 생물을 창조했다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창조 역사가 진화라는 메커니즘을 이용, 생물을 창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윈의 '자연 선택' 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다윈은 생물이 증식하는 과정에서 개체간의 차이에 의한 변이가 나타나는데, 변이의 요인으로 생물 부위의 사용과 불사용, 교배, 생활 상태 등이라 하였다. 이러한 과정의 반복으로 결국 새로운 변종(變種)들이 생겨, 그 변종들은 유기체의 생존 및 생식에 필요한 최대의 가치를 가지고 '자연 선택' 이라는 혜택을 받고 그 나머지는 도태된 후, 선택된 변종들은 보존되어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반면 다른 변종들은 도태된다고 다윈은 믿었다. 

그러나 베르그송의 생각으로는 단세포동물이나 하등생물은 접어둔다 치더라도 척추동물과 같은 다세포동물, 즉 여러 기관이 긴밀하게 조화되어 전체적 기능을 발휘하는 고등동물은 우연하게 이루어지는 변종의 이론으로는 도저히 설명될 수 없다고 단언하였다. 변종 현상은 다만 부분적으로 생길 수 있는 현상으로 전체적 기능을 증진시키기보다는 지장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풀이하였다. 그러므로 동물이 진화의 단계를 뛰어넘으려면 복잡한 기관의 모든 부분이 똑같은 시기에 변종을 산출해야만 제대로 그 기능을 가지고서 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베르그송은 그러한 다양한 변종의 동시순응이 우연하게 생긴다는 다윈의 이론은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고 보았다. 만약에 이러한 각 부위의 변종이 같은 시기에 생겨났다면, 그것은 우연히 생겼다고 볼 수 없는 기적과 같은 현상이라고 보아야 하며, 이것은 자연도태라는 이론 이외에 특수한 힘이 작용한 것으로 관측되어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변종의 한계 

진화론은 세계의 모든 동물과 식물들이 모두 하나의 단세포 유기체에서 발전해 왔다고 주장한다. 이 개념을 도식화한 것이 바로 생물의 계통수(family tree)인데, 이 나무는 대부분의 고고학, 역사학, 생물학 교과서 등에 수록되어 있다. 또 오늘날 자연과학 분야에서 석사 이상의 학위를 부여하는 대학의 교육기관 중 일반 진화의 계통수 개념을 배척하는 곳은 한 군데도 없다. 하지만 놀랍게도, 백사십년 동안 수만 명의 학자들이 열심히 노력해 왔지만 생물이 그 종류대로 창조되었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반증할만한 명확한 증거는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진화론이 제시하는 단 하나의 생물 계통수 대신, 성경의 창조론은 생명의 거대한 숲 개념을 제시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숲의 각 '나무' 들은 변이 혹은 분화의 유전자적 잠재력을 지닌 채 초자연적으로 창조되었으나, 그 변이는 창조된 '나무' 의 본성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엄격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예컨대 인류는 많은 종족으로 변이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채 창조되었다. 그 가운데는 구약시대 블레셋 사람 골리앗과 같은 3m가 넘는 장신의 소유자가 있는가 하면, 중앙 아프리카에 거주하는 신장 150cm 미만의 왜소한 피그미족들도 있다. 그러나 시간상의 격차와 상당한 공간적, 환경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과연 인간이며 동일한 계통수에 속하는가 라는 질문이 심각하게 제기된 적은 없다. 

또 어떤 종류의 생물들은 인류보다 더 큰 변이 가능성을 지닌 채 창조된 듯이 보인다. 예를 들어 과거 수세기 동안 수백 가지 형태의 개들이 새로 생겨났는데, 유럽산 닥스훈트(Dachshund)로부터 우리 나라의 진도견(珍島犬)에 이르기까지 모두 제 각각이다. 그러나 그 개들도 역시 동일한 종류에 속한다. 이는 진화의 증거가 결코 아닌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변종들은 대개 생물의 야생에서의 생존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변종은 부분적으로 생길 수 있는 현상이며, 부분적으로 생기는 변종 현상은 전체적 기능을 증진시켜 주지 못하고 오히려 지장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베르그송의 생각은 옳았다.

 

창조적 진화 (creative evolution) 

베르그송은 이 밖에도 다윈의 기계론적 혹은 무의식적 진화론(無意識的 進化論)으로써는 설명할 수 없는 진화의 요소가 있다고 보았다. '왜 생명체는 어찌하여 점진적으로 더 많은 복잡성을 향하여 나아가야만 하는가?' 라는 맹점을 다윈의 이론은 구체적으로 세세하게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시초에 이 지구상에 출현했던 생물은 매우 단순하게 생겨서 자연 환경에 비교적 적응하기에 용이했을 것이라고 진화론자들은 주장한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진화의 과정들은 '현상태에 안주해 있지 않고, 더욱더 복잡한 상태로 옮겨가면서까지 더 많은 위험 부담을 자초하는가? '라는 생각을 자아내게 한다.

이 문제는 단순하게 무의식적 진화론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어질 수 없으며, 어떤 그 무엇인가가 생명체를 위험성이 내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점차 더 상위 영역으로 이끌어 갔을 것이라는 생각을 품게 만들었다.

베르그송은 이를 '생명의 원동력'(vital impulse: 佛語 elan vital)이라고 명했으며, 이 생명의 추진력은 진화의 모든 과정에 스며들어 있고 그로 인해 진화의 다양한 형태가 나타났다고 했다. 그러므로 생명 기원의 역사는 무의식적 측면이 아닌 창조적 진화의 입장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생명의 원동력이란? 

그렇다면 베르그송이 창조적 진화 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역설했던 생명의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관념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는 이 생명의 추진력을 생명에 스며들어가 내부에 퍼져 있는 의식의 흐름(a stream of consciousness)이라고 정의했다.

이 의식의 흐름 또는 추세의 경향이 생명체를 생기게 하고 진화의 방향을 결정해줄 것으로 믿었다. 이 의식의 흐름은 일정한 유기체인 경우에 생식세포가 생식작용을 통하여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끊임없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전달된다고 하였다. 이 생명의 힘의 작용을 통해 변종들이 끊임없이 산출되고 축적되는 과정들을 되풀이한 끝에 신종(新種)들이 생겨난다고 보았다.

또한 그는 생명의 추진력을 '초월적 의식'이라고 달리 말하기도 했으며, 이것을 또 '하나님은 초월적 의식'이라 지칭하여 하나님과 생명의 원동력을 동일시하기도 하였다.

베르그송은 진화의 궁극적 원인, 곧 왜 진화가 생겼는가 할 때에 인간이 태어나는 것이 그 목적이며 지상 위에 생명이 존재할 수 있게 된 이유라는 자신의 주장을 거듭 밝혔다.

 

창조적 진화의 문제점 

19세기 당시 유럽을 풍미했던 진화론은 그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패러다임이었다. 이 이론에 수많은 지성들이 매료되거나 동조했으며, 베르그송과 같이 유신론적 사상은 고수하면서 진화론을 조심스럽게 섭취했던 미온적 학자는 이의 근본 해결을 위해 끝내 진화론과 창조론과의 타협을 시도하게 된 것이다.

이에 베르그송은 양자를 종합하여 하나의 체계를 제나름대로 이루어 본 것이다.

그러나 성서적인 생명관은, 유물론적 진화론이나 기계론적 진화론 모두를 거부한다. 또한 하나님의 개입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진화가 거듭되고 거듭된 끝에 계속해서 신종(新種)들을 창출해 나간다는 베르그송의 유신론적 진화론(有神論的 進化論)도 부정한다.

어찌됐건 이러한 타협으로 베르그송은 그 어느 쪽도 만족시킬 수 없는 불합리한 학설을 만들어 냈다. 서로 공존할 수 없는 진화론과 창조론 이라는 판이한 두 개의 이론을 결합, 소위 '새로운 변종 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 자기 모순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이렇게 신학적으로 타협하고 양보하면서 자기네 이론을 수정해 나갈 때, 이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만약 19세기 후반에 소위 과학적으로 정립되었다는 균일론적 진화론에 의한 엄청난 압력이 없었더라면, 이 베르그송과 같은 학자들은 아마도 궁극적 기원에 대한 그들의 성서적 확신들을 털끝만큼도 양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론은 역시 창조론 

창세기에는 모든 수생생물과 날아다니는 생물이 종류대로(창 1:11),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이 종류대로(창 1:24) 창조되었음과, 완성된 모습으로 창조되었음을 재삼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각종 생물은 그 나름대로의 중요한 특징과 개성이 있고 그것을 부여하신 자의 목적을 명백히 지니고 있다. 많은 생물종들은 비록 유전적인 탄력성은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일정한 범주 내에서만 변이될 수 있다는 것이 지금까지 학문적으로 입증된 사실들이다. 특히, 생명체 중에서 사람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특수 창조되었으므로 다른 생물들과는 그 차원을 달리하고 있음을 확연히 못박아놓고 있다(창 1:26). 또 과학이 발전되어 갈수록 그 나타난 증거는 진화가설보다는 창조에 의해 더 잘 설명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기독교 창조론과, 진화론과의 조화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성서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창조하셨다는 사실 이외에 진화의 방법을 사용하였다는 기록은 없다. 따라서 무신론적 진화론뿐만 아니라, 과학적 견해에다 神의 실재를 결합시킨 유신론적 진화론도 옳지 못하다. 생명의 기원을 찾기 위해 진화론과 기독교 창조론 사이에서 갈등하다 변증법적 원리에 의거해 창조적 진화를 고안해 낸 베르그송의 노력은 어찌 보면 가상하다고 할 수도 있다.

허나 성경의 창조론 보다는 진화론에 입각한 이론을 전개함으로써, 진화론이라는 허위를 결국은 벗지 못하고 말았다. 베르그송의 오류를 거울 삼아 창조론 인식에 있어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evolution/e1/e11/e11c1.htm 

출처 - 창조지, 제 88호 [1993. 10~12]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26

참고 : 5462|5461|5413|5272|5211|5210|5112|4766|4765|4636|4635|4542|4140|4039|3812|3682|3426|3423|3244|3241|3077|3055|3041|3039|3037|3024|2864|2579|2359|2353|2330|2307|2114|2039|2016|1174|6107|6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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