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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 : 역사의 평가

한국창조과학회
2004-04-27

진화론 : 역사의 평가


     19세기 엄청난 발전을 이룬 과학 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에 의하여 제창된 진화론이었다. 이 진화론은 특이하게 학문적 영역에서보다도 사회에 더 큰 영향을 끼쳤다. 다윈은 뉴턴이 물리학에서 달성한 것을 생물학에서 이루었다. 생물학을 일반법칙에 토대를 둔 과학적 학문으로 만들며, 다윈은 코페르니쿠스와 비견될 지식혁명을 선도하였다.

계몽주의가 풍미하던 시대, 생명의 시작은 모두 신으로부터 비롯되었고, 성경말씀에 의지하여 만물은 하나님의 피창조물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온 우주와 자연에 그가 창조한 만물을 배치하였고, 만물은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솜씨를 찬양할 뿐이었다. 이 같은 생각은 신이 만물창조를 약 6천여 년 전에 끝냈다는 확고한 믿음 속에서 사람들의 머릿속에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1830년대초 찰스 라이엘(Chales Lyell)이 '지질학 원칙' 이라는 세 권의 책을 출판하여 별들이 오랜 시일에 걸쳐 진화하였다고 설명하였고, 찰스 다윈의 조부인 에라스무스 다윈은 '유기적 생명의 법칙(Zoonomia)' 이라는 책에서 '지구는 인간이 나타나기 수백만 년 전에 이미 생성되어 존재하였고, 동물들이 진화하였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같은 견해들은 가설로서는 자리를 잡을 수 있었으나, 실증적 증거가 없었으므로 별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 따라서 만물이 신의 창조로부터 존재한다는 믿음은 굳건히 그 지위를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1859년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판하고, 187l년 '인류의 혈통' 저술하였을 때, 이 글들이 사회에 던진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다. 왜냐하면 다윈은 많은 증거를 제시하며 동물들의 여러 변종이 수백만 년의 진화의 결과라고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맬서스의 이론 틀을 사용하여 자기 주장을 폈는데, 그것은 식량의 증가가 인구의 증가를 감당하지 못하므로 필연적인 '생존경쟁'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모든 어린 생명이 다 생존하는 것은 아니며, 더욱 늙어서 죽는 것이 아니다. 자연도태의 원칙에 있어 생존에 적합한 종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게 되고, 부적합한 종은 멸종한다. 예를 들면 기린은 살아남기 위하여 목이 그처럼 길게 발달되었으며, 카멜레온은 피부색을 바꾸는 생체조직을 개발하였다. 아주 조그마한 생체조직의 변화가 있어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종은 계속 그 생체조직을 발전시켜 수 세대에 걸쳐 이러한 변화가 지속되면 낡은 형태는 소멸되고 새로운 형질이 나타나서 새로운 종을 이룬다. 지구가 처음 생성될 때 존재하였던 종이 현존하는 것은 극히 드물고 현존하는 종은 원형으로부터 형질이 변화하여 현재에 생존하는데 유리하도록 바뀐 것들이다. 인간도 이 같은 자연의 법칙으로 진화되어 오늘의 모습에 이르렀다.” 

다윈의 주장은 우선 종교분야와 정면으로 충돌하였다. 약 6천여년 전 확정된 수의 생물이 순간적으로 신에 의하여 창조되었다는 종교적 믿음은 다윈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다윈의 주장은 '성경말씀' 을 거짓으로 밝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측에서는 다윈의 진화론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성경의 진리를 수호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일부 성직자들은 이와는 달리 다윈의 진화론까지 포용하며 신의 창조설을 확대 적용하려는 노력을 시도했다. 이들은 신의 창조가 있었고, 진화의 과정도 신의 섭리에 의한 것이라고 믿었다. 

결국 다윈의 진화론은 성경에 만사, 특히 과학의 문제에 있어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왔던 갈릴레이 이래의 종교적 권위주의를 끝장나게 만든 것이었다. 이것은 세속화의 경향을 가속화시켰고 자연과 인간을 종교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종교는 순수한 신앙의 차원으로 위축되었고, 과거와 같은 사회의 지도적 위치를 결코 되찾을 수 없게 되었다. 급진적 사회사상가들은‘신은 죽었다’고 공공연히 주장하였고, '인간은 창조주와 특별한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진화과정 중에서 우연히 나타난 종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코페르니쿠스가 우주의 중심으로서 지구를 부정하고 지구가 태양계에 위치한 혹성에 불과함을 밝혀내자 사람들은 무엇인가 불안함을 느꼈는데, 이제 다윈이 인간은 신의 특별한 창조물이 아니고, 원숭이 종으로부터 진화한 종에 불과함을 다시 밝혀내자, 사람들은 더욱 막연한 불안감에 빠지게 되었다. 인간이 신의 각별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그저 무수한 삼라만상 중 티끌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은 인간의 자기에 대한 신뢰를 상실케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다윈의 설은 다시 사회사상가들에게 수용되어 소위 '사회적 다윈주의(Social Darwinism)로 발전하였다. 다윈의 생물학적 생존경쟁을 경제, 사회, 정치 등 모든 분야로 확대시킨 사회적 다윈주의자들은 정치적으로는 보수주의와 경제적으로는 자유방임, 개인주의를 자연의 법칙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이들은 성공한 기업가란 치열한 기업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던 그 능력을 증거한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이들의 성공은 자연의 법칙을 따른 정당한 것이며 사회유지에 유익하게 기능한다고 주장한 사회진화론자들은, 그러므로 기존의 지배질서 전반을 자연의 질서로 정당화하였고, 이러한 질서에의 도전은 자연질서를 어지럽히는 나쁜 것으로 생각되었던 것이다. 더욱 다윈의 주장처럼 진화는 단기간에 급속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사회는 진화도 급격하게 진행되어서는 자연질서와 어긋나는 것으로 판단되어졌다. 따라서 보수주의자들은 다윈의 진화론에서 그들이 기댈 수 있는 좋은 의지처를 발견하였다. 

다윈의 영향은 여기에서 그친 것이 아니었다. 서구인들은 다윈의 설을 빌려 제국주의, 인종차별, 민족주의, 군국주의를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시행할 수 있었다. 현실에 가장 잘 적응한 생명체가 생존할 자격이 있고, 또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이들의 생각은 우수한 인종이 열등한 인종을 착취하는 것을 당연한 자연의 계율로서 받아들였고, 한 생명의 번성을 위하여 다른 생명이 말살되는 것도 당연시하였다. 미국의 의원 비버리지는'우리는 정복하는 민족이다. 따라서 우리는 피에 복종하여 필요하다면 새로운 영토를 점령하고 새로운 시장을 빼앗아야 한다.”라고 말하기조차 하였다. 프러시아의 장군 베른하르디는 '독일과 다음 전쟁' 에서'전쟁은 가장 본질적인 생물학적 욕구이다.”라고 지적하였다. 

그러므로 정복민족을 자처하는 여러 민족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앵글로색슨 계통의 영국과 미국인들, 튜튼 계통의 독일인들은 인종적 우월감에 빠져서 자신들이 아시아, 아프리카, 슬라브족을 정복하고 다스릴 사명을 위임받았다고 외치며 군사적 제국주의의 침략전쟁을 자연현상으로 덮어 씌웠다. 다윈의 설에 직접 영향을 받지 않았으나, 진화론에 동조한 월리스는 1864년 다음과 같이 썼다. '유럽인들은 신체적 자질에서와 마찬가지로 지적 및 도덕적 자질에서 다른 인종보다 우월하다. 방황하며 야만생활을 하던 유럽인들을 오늘의 문화와 진보로 이끈 그 능력과 힘은 유럽인들이 야만인과 접촉할 때 정복하고 자신의 수를 늘어나게 하였다' 

결국 사회진화론자들은 계몽철학의 전통을 위험하게 만드는 데까지 나아갔다. 즉 계몽철학자들의 주장인 평등과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천부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무시하고 진화론자들은 인류를 열등한 인종과 우월한 인종으로 가르는가 하면, 인종과 인종 사이, 또는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를 서로 적대시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민족과 국가는 생존할 권리가 있으며, 패배한 민족과 국가는 멸절되어야 하는 논리가 진화론자들에 의하여 정당화되었던 것이다. 이들에게는 휴머니즘과 범세계시민주의란 찾아볼 수 없는 덕성이었다. 따라서 진화론자들은 '무엇을 위한 진보인가?' 라는 궁극적 물음에는 답을 할 자격이 없었다. 

진화론 그 자체는 인간 이성이 이룩한 훌륭한 업적임에 틀림없으나 사회적 진화론자들은 이것을 변용하여 영토확장, 군비증대, 민족 간 불신, 국가 간 적대감을 악화시키는 일에 사용하여 제 1차 세계대전에 이르는 길을 예비하였다.

 

출처 - 도서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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