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이상한 질병

미디어위원회
2021-03-10

다윈의 이상한 질병

(Darwin's Strange Sickness)

Creation-Evolution Encyclopedia


       찰스 다윈은 36년 동안 알 수 없는 병을 가지고 있었고, 그로 인해 점점 쇠약해져 갔다. 1959년에 콜프(내과 의사이자 정신과 의사)는 원인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18년 후에 그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것이 바로 다윈의 이상한 질병과 원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름 앞에 * 표는 비창조론자).

내용 : 다윈의 이상한 질병

 1. 콜프(Colp)는 이 미스터리를 풀기로 결심했다 - 다윈이 수십 년간 아픈 이유는 무엇일까?

 2. 문제의 배경 - 왜 강하고 건장한 젊은 남자에게 그러한 상황이 발생하였는가?

 3. 깊은 공포 - 다윈은 밤낮을 쉴 수 없었다.

 4. 불가능한 이론을 팔기 위한 다윈의 캠페인 - 그는 그를 지배하는 영과 교제했다.

 5. 그는 그의 진로를 신중히 선택했다 - 그리고 그의 삶을 강력한 존재에게 넘겼다.

 6. 결론 - 콜프의 심도 깊은 연구는 분명한 해답을 제공한다.

 

1. 콜프(Colp)는 이 미스터리를 풀기로 결심했다.

왜 다윈은 몇 십년 동안 병을 앓게 되었는가?

거기에는 많은 것들이 있다. 다윈은 그의 유명한 항해를 통해서 진화의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할 뿐만 아니라, 그 여행 기간동안 내내 매우 건강했고, 강인했음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다윈은 그 후에 왜 병자가 되었단 말인가? 그는 그의 생애동안 늘 아내의 의무적인 보살핌 속에서 지냈으며, 여러 가지 육체적 질병증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의학자들은 여행기간 동안 그토록 정력적이었던 다윈이 왜 만성적인 질병을 겪게 되었는지 궁금해하며 이 문제를 풀고자 수년동안 고심해 왔다. 그럴 즈음, 내과 의사이자 정신과 의사인 *랄프 콜프(Ralph Colp Jr.)가 다윈의 병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다윈이 책을 낸 다음 세기인 1959년에 다윈에게서 찾을 수 있는 모든 자료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콜프는 이 문제에 대해 18년 동안 아주 철저하게 연구했고, 그의 결론을 책으로 내기에 이른다. ('To Be an Invalid : The Illness of Charles Darwin')

어떤 면에서 보면 콜프는 어디서나 찾아볼 수 없는 다윈 전문가 중에서도 전문가라 할 수 있었다. 콜프는 다윈이 쓴 모든 글과 다윈에 대한 모든 글을 다 분석했다. (콜프는 이런 자료의 기본적인 내용들을 사진자료로도 가지고 있었다.) 의학적, 정신분석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다윈의 생애와 행동, 병적 증상들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책을 쓰기 위한 준비를 하였던 것이다.

 

2. 문제의 배경

왜 강하고 건장한 젊은 남자에게 그러한 상황이 발생하였는가?

”5년여에 걸친 탐험에서 돌아온 몇 년 후부터 다윈은 남은 여생을 매일 고통 속에 사는 환자가 되었다. 의사들도 그 원인과 치료법을 찾지 못해 고심했다.”

”젊은이로서 다윈은 예사롭지 않은 건강과 인내심을 가지고 있었다. 비글호(Beagle) 탐험동안, 험한 바다에서도 견뎌내었고, 아르헨티나에선 원시적인 환경에서 불구하고 거친 가우초(남미 카우보이; 스페인 사람과 인디언의 혼혈)와 함께 야생마를 타고 건너다녔다. 산과 만나면 그때마다 그 산을 넘었다. 그러나 몇년 뒤 다윈은 허약, 구토, 만성적인 피로에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 갔다.”- R. Milner, Encyclopedia of Evolution (1990), p. 113.

다윈의 건강문제에 관한 많은 이론들이 나왔지만, 콜프의 것만큼 완벽하게 조사된 것은 없었다. 정말로 콜프의 견해에 더욱 믿음이 가게 하는 다윈에 관한 이상한 점들이 있었다. 이 Encyclopedia의 글중 어디에서나 인용된 다윈의 말들을 회상하여 보면, 다윈은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이 그를 아프게 했고, 그것을 생각하는 것조차 싫어했다. 다윈은 왜 그런 생각과 견해를 가지고 스스로를 그리도 괴롭혔던 것일까? 다윈은 자신의 이론이 너무도 잘못된 것임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다윈은 결혼 초에 부인으로부터 받은 편지를 보면서 자주 울곤 했다.

”1839년에 다윈은 사촌인 엠마(Emma Wedgwook)와 결혼했는데, 그녀의 전통적, 종교적인 믿음은 종의 기원에 관한 다윈의 이교도적 탐구와 대립되는 것이었다.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앞으로 영원히 갈라서지 않기 위해서, 성경이 말하는 창조에 도전하는 것을 제발 재고하라는 편지를 다윈에게 쓴다. 평생동안 다윈은 부인의 감동적인 편지를 소중히 여기지만(여러 번 편지에 입맞추며, 읽다가 울곤 함), 자신의 과학적 행보를 고수한다.” - R. Milner, Encyclopedia of Evolution (1990), p. 110.

편지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그가 믿지 않았다면, 왜 다윈은 그 편지를 보면서 여러 번 울었겠는가? 그가 내면적으로 받아들이지를 못했지만, 편지에는 자신이 믿는 것을 말하고 있었기에 그는 평생동안 편지를 보면서 반복해서 울었던 것이다. 같은 이유로 그는 창조가 분명해보여 반박할 수 없는 증거들, 예를 들어 눈과 같이 복잡한 구조, 칠면조 깃털의 질서정연한 패턴 등을 생각할 때, 아픔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진화론이 사실이 아님을 스스로가 알았기 때문에, 이러한 증거들은 그를 괴롭혔던 것이다.

 

3. 깊은 공포

다윈은 밤낮을 쉴 수가 없었다.

다윈은 증거도 없는 오류(error)로 서구 사회를 확신시키려했고, 그러한 자신의 행동에 대한 끔찍한 징벌을 두려워하는 공포감을 느꼈던 것이다. 이러한 오류는 자신에게 상처를 준 것과 같이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상처를 입혔다.

”다윈은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킴으로서 극도의 근심으로 고통 당했다. 콜프는 다윈의 병이 진화론의 일로 시작되었음을 추적했다. 첫 번째로 부인 엠마는 그의 과학적 조사가 그의 영혼을 빼앗아갈 것을 걱정했다. 다윈은 목이 잘리거나, 교수형에 처해지는 꿈을 꿨다. 그는 성경의 권위에 맞서는 신념은 살인자임을 자백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 R. Milner, Encyclopedia of Evolution (1990), p. 113.

다윈이 남미에서 샤가스병(Chagas disease, 잠만 자는 병)에 걸렸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의 증상은 그 병과 맞지 않는다. 콜프가 분명히 제시한 것과 같이, 다윈의 병은 자신의 생각에서 비롯된 극심한 갈등에서 연유한 것이었다. 수많은 증거들은 분명하게 한 길을 제시했지만, 다윈은 완강하게 다른 길을 택했던 것이었다.

건강상 문제를 보인 것은 다윈만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도 이러한 일을 겪었다. *휴 밀러(Hugh Miller, 1802-1856))는 크리스천으로 시작했지만, 동료들 때문에 오류를 범하게 된다. 그는 지질학과 퇴적지층에 관한 책을 몇 권 출판했는데, 책('Testimony of the Rocks')의 마지막 부분에서 공개적으로 'millions of years(수백만 년)'의 이론으로 말을 바꾸었던 것이다. 그는 일시적 규폐증 외에는 항상 건강한 편이었다.

”암석들의 증거(Testimony of the Rocks)' 라는 책을 집필하는 동안, 휴는 무서운 꿈과 환상에 시달렸고, 깨어보면 밤새 거리를 방황하고 다닌 것을 깨닫곤 하였다.(그때 그는 자기 옷에 진흙이 묻었으니 조사하여 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종종 밤새도록 글을 썼는데, 강도나 침입자가 들어오는 상상 때문에 늘 곁에다 칼과 총을 두고 있었다. 휴는 너무 극심한 두통에 시달려서 자신의 머리가 타버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 R. Milner, Encyclopedia of Evolution (1990), p. 305-306

휴 밀러는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판하기 3년 전에 총으로 자살한다.

”비글호에서의 젊은 다윈과 나이들고 병들어 집(Down House)에서 생활하는 철학자 다윈은 매우 구별된다. 그는 쉽게 지쳤고, 두통, 복통, 구토에 시달렸다. 젊은 사람으로서 그는 혼혈인디안과 같이 말을 타고 대초원을 누비며, 400마일에 걸친 광야길을 가고, 지질학자들의 망치를 손에 들고 화석을 발굴하며, 아무도 오르지 않은 산을 오르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었다.” - R. Milner, Encyclopedia of Evolution (1990), p. 449

과학에 있어서 다윈의 공헌은 한 생물이 다른 생물로 바뀐다는 이론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증거에 의해 입증된 적이 전혀 없기에, 그 이론에 대한 어떠한 과학적인 정당성도 없는 것이다.

 

4. 불가능한 이론을 팔기 위한 다윈의 캠페인

그는 그를 지배하는 어떤 영과 교제했다.

”다윈이 영국 박물관에 있는 실험실 테이블에서 자신의 견본을 조사하고 있을 때, 나중에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반자가 된 *토마스 헉슬리(Thomas Huxley, '다윈의 불독'이라는 별칭을 가지게 됨)를 처음 만났다. 젊은 헉슬리는 ”자연 생물체 그룹들 사이에는 중간단계가 없이, 분명한 경계가 있다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라고 말했다. 다윈은 보고있던 표본에서 눈을 떼며 조용히 대답했다. ”그것이 전혀 거짓말은 아니라는 것이 내 견해일세” 후에 헉슬리는 이렇게 회상한다. ”그의 친절한 대답에 뒤따른 다윈의 익살스런 미소가 오랫동안 떠오르며, 나를 수수께끼에 휩싸이게 했다.” - R. Milner, Encyclopedia of Evolution (1990), p. 111.

헉슬리는 다윈을 지배하고 있는 정신세계에 의해 포로가 되는 대신에, 그 이상한 미소가 있었던 장소로부터 도망쳤어야만 했다. 증거가 부족했지만, 다윈은 어쨌든 자신의 이론을 밀고 나갔고, 진화론을 믿지 않았던 헉슬리 같은 사람들을 확신시켰다.

다윈이 여행에서 돌아온 뒤, 또 한 명의 부유한 아마추어 과학자인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이 처음으로 동물진화 이론에 동조한다.(인간 진화에 대해서는 전혀 설득을 시키지 못하지만). 얼마 후 어릴 때부터 다윈을 우상시해온 *조셉 후커(Joseph Hooker)가 같은 편이 된다. 그 다음은 부족한 증거에 대한 관심보다도 다윈을 더 우상시하였던 헉슬리였다. 

그리고 나서 다윈은 영국의 과학계에 최대 영향력을 끼치게 된다.

”다윈이 '종의 기원(Origin of the Species)'을 쓰기 시작했던 처음에는(1859) 의심으로 확신이 서지 않아 괴로웠지만, 정신적으로 도망치고 싶을 때, 다윈은 식물학자 조셉 후커경, 비교해부학자 토마스 헉슬리, 지질학자 찰스 라이엘, 세 명의 판단으로 그의 마음을 고정시켰다. 라이엘은 셋 중에서 유일하게 다윈의 생각을 전폭적으로 지지하지 않았다. 그의 방어적인 자세는 다윈을 불편하게 했다. 그들이 자신의 접근과 결론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위험한 불안을 떨쳐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윈은 자연 진화를 믿는 다른 십여명의 전문가들을 확신시키는데(개인적 설득으로) 열심이었다. 심지어 명단을 작성하고 목표를 정해, 확신이 서지 않은 사람들에게 집요하게 달라붙었다. 이들을 동료로 만들지 못한다면, 내 이론은 안전하지 못해 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 R. Milner, Encyclopedia of Evolution (1990), p. 356.

그러나 그들 중에서도 다윈은 다른 길을 잘 알고 있었다. 어렸을 적에 윌리암 페일리(William Paley)의 '자연신학(Natural Theology, 1816)'을 읽었고, 부분적으로나마 감동을 받았으며, 하나님의 자연에 대한 설계를 공부하는데 매료되었었기 때문이었다. 왜 이러한 차이가 생기게 된 것일까?

 

5. 그는 그의 진로를 신중히 선택했다.

그리고 그의 삶을 강력한 어떤 존재에게 넘겼다.

다윈이 남미에서 주술사들의 모임에 참석한 적인 있다는 것은 알려져 있다. 다윈의 생애에 관해 연구한 학생들 중에는 그때 악령이 다윈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어쨌든 찰스 다윈은 혼자 힘으로 영국 과학계에 새 이론을 이끈 장본인이다. 그러나 그는 위험한 불안(awful misgivings)과 밤의 공포에 시달렸으며, 편지를 보며 울기를 계속했다.

다윈은 자신의 일을 신중히 했고, 자기 행동의 중요성도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도 잘했고, 그들을 안내하고 가르치며, 자신의 말을 믿게 했다. 그들은 그렇게 들었던 것이었기에, 자기들이 믿는 것을 믿었다. 그러나 가파른 산을 올라, 산꼭대기에서 조사한 지식들을 전달했던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이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의 욕망을 위해, 진실을 왜곡했을 때, 다른 많은 사람들을 잘못 이끌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진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비난할 수 없었다. 다윈이 그런 사람이었다. 그의 내면의 갈등은 그의 생애를 슬픔으로 가득 채웠던 그의 선택에 의해 원인되었던 것이다.

반면 헉슬리나 후커는 이러한 갈등이 없었다. 왜냐하면 모든 미래 과학의 기초로서 진화론이 확고히 확립되어갈 것이라는 것을 다윈이 보증했기 때문이었다. 자신들의 지도자인 다윈이 어떤 문제에 부딪쳐도 해결해 줄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의심을 싹틔울리 만무했다. 헉슬리와 후커는 심신에 아무런 병이 없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진화론의 선두주자였던 다윈은 진실을 알고 있었기에, 죄책감과 긴장, 공포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일생을 보냈던 것이다.

 

6. 결론 

콜프의 심도 깊은 연구는 분명한 해답을 제공한다. 콜프에 의하면, 다윈의 허약, 구토, 무력감, 우울증, 불면증, 기타 증상들은 자신의 업적에 관한 극도의 갈등으로 원인된 복합 정신질환에 의한 장애라는 것이다. 콜프가 보는 바와 같이,  진화에 관한 다윈의 이론은 스스로가 그 안에서 너무 많은 갈등 요인을 보았기에, 자신의 건강을 해쳤던 것이다. 콜프는 다윈이 내면적인 고통의 결과로서 '정체성의 위기(identity crisis)' 까지도 경험했다고 말한다.

콜프는 다윈이 그의 이론을 정립하면서 육체적인 질병이 시작됐고, 그 이후 계속 악화되었다고 결론지었다. 다윈은 이러한 죄책감과 모순 때문에 그의 책을 수년동안 집필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월리스(Wallace)가 그와 같은 책을 그보다 먼저 쓰려고 하자 완성하였다고 콜프는 믿고 있다.   



참조 : 1. 찰스 다윈은 정신이상자였는가? : 그의 정신 건강에 대한 연구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66&bmode=view

2. 사냥과 살생에 대한 다윈의 열정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78&bmode=view

3. 다윈의 전 세계 항해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89996&bmode=view

4. 다윈 사상, 모든 게 그 집안 내력이다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44&bmode=view

5. 다윈의 불법적인 발명품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45&bmode=view

6. 비글호의 항해 - 창조주를 위한 봉사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29&bmode=view

7. 다윈의 무덤과 교회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73&bmode=view

8. 다윈주의를 격렬히 비판한 비글호의 선장, 피츠로이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092&bmode=view

9. 다윈의 불독 - 토마스 헉슬리 : 그리고 헉슬리와 윌버포스의 옥스포드 논쟁

http://creation.kr/HistoryofEvolution/?idx=1290169&bmode=view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www.sdadefend.com/pathlights/ce_encyclopedia/Encyclopedia/20hist06.htm

출처 - Creation-Evolution Encyclo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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