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타는 진화론을 파괴했다
: 컴퓨터를 사용하여 수학적으로 부정된 진화론
(Wistar Destroys Evolution)
대용량의 컴퓨터가 진화론을 입증하기 위해 필요한 자료들을 모았다. 위스타(Wistar)는 진화론을 매장시켰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아직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진화론은 신화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했다. 수많은 증거들이 그것을 가리키고 있다. 자연에서 발견되는 증거들을 진화론은 설명할 수 없다. 이것은 과학 대 진화이다. Creation Evolution Encyclopedia는 당신에게 창조과학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려줄 것이다.
내용 : 위스타(Wistar)는 진화론을 파괴했다.
1. 1966년 필라델피아 회의 - 진화론은 Wistar에서 수학적 사실들에 의해 파괴됐다.
2. 1969년 알프바취(Alpbach) 회의 - 진화론에 반대하는 많은 증거들.
3. 1980년 뉴욕 회의 - 상황은 더 나빠졌다.
4. 1984년 켐브리지 회의 - 마무리
1. 1966년 필라델피아 회의
1960년대까지 신다윈주의자들은 열심 있는 진화론자들 사이에서 실제로 싸움을 시작하지 않았었다. 위스타(Wistar)에서 진화론은 수학적 사실에 의해서 무너졌다.
모든 변화의 귀속이 우연이라는 것은 오랫동안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원인이었다. 19세기 비평가들에 의해 제기된 문제들을 가지고 시간 낭비하지 말자. 왜냐하면 그 이슈들은 잠잠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1967년 극적인 형태로 그 추한 문제점들이 다시 고개를 들게 되었다. MIT 대학교수이자, 로스 알라모스(Los Alamos) 원자력 단체의 원로인 빅토르 와이스코프(Victor Weisskopf)가 제네바에 있는 자택에서 자연과학자들과 점심 파티를 열던 중에, 소수의 수학자와 생물학자들 사이에서 이 문제가 거론된 것이었다. 기묘한 토론이 열리게 된 것이었다. 주제는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였다. 수학자들은 우연히 진화한다는 진화론자들의 낙천적인 생각에 그저 놀랄 뿐이었다. 이러한 생각이 확산되면서 그들은 회의를 소집하게 되는데, 소위 '진화론의 신다윈주의(neo-Darwinism)에 대한 수학적 도전(mathematical challenges)' 이라 불리는 회의였다. 의장은 당시 런던 북부에서 의학연구협회 연구실 소장으로 있으면서, 이식 거부반응에 대한 업적으로 노벨상을 탄 피터 메다와(Peter Medawar) 경이 맡았다. 그러한 위치의 사람들은 사려 깊은 생각없이 과격한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당신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정표가 된 획기적인 모임은 1966년 4월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위스타 회의(Wistar Institute Symposium)였다. 의장인 피터 메다와 경은 다음과 같은 개회사를 하였다.
”우리가 회의를 열게된 직접적인 원인은, 영어권 나라에서 소위 '신다윈주의 이론(Neo-Darwinian theory)' 이라 불리는 진화론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불만족스럽고, 또 이런 불만이 만연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유행하는 신다윈니즘에 대한 거부는 일반적인 생물학자들 사이에도 널리 퍼져있고, 우리가 진화론자들을 위해 빛을 비춰주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 Peter Medawar, remarks by the chairman, *Paul Moorhead and *Martin Kaplan (ed.), Mathematical Challenges to the Neo-Darwinian Interpretation of Evolution, Wistar Institute Monograph No. 5.
많은 수학자들이 생물학적 문제점들을 다뤘는데, 1966년 위스타 회합에서 그것들을 발표했다. 그들은 신다윈니즘을 여러 분야에서 반박하고, 신다윈니즘의 적합성(fitness)과 적응성(adaptation) 이론은 순환논법과 다름없음을 보여줬다. 이에 반해 회의에서 연설한 생물학자중 몇은 그 빛을 볼 수 없었다. 벌레나 거북이는 잘 이해하면서, 진화론의 수학적 불가능성이나, 진화론이 정말로 완전히 틀렸다는 광대한 자료들은 이해하지 못하였다.
예를 들어, 수학자중의 한 사람인 MIT의 머레이 이든(Murray Eden)은 진화론의 기초 이론인 '무작위적 선택(random selection)'에 의한 생명체의 시작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설명했다. 그러면 ”'무작위'가 아니라면, 남는 것은 단 하나 '설계'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적능력에 의해 의도적으로 고안되어야만 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유명한 영국의 진화론자인 와딩톤(C.H. Waddington)도 통렬하게 신다윈니즘을 공격했는데, 그 이론을 입증하는 것은 식물이든 동물이든 모든 것들이 후손을 가질 수 있다는 것뿐이라고 하였다.
1966년에 열린 위스타 회의는 1년전 스위스에서 모인 수학자와 생물학자들의 모임에서 기초한 것이었다. 수학자들은 다윈의 이론이 각광받는 것에 대해 의심을 품었고, 몇 시간에 걸친 열띤 토론 결과 1년 뒤에 다시 많은 문제점들을 가지고 모이기로 한 것이었다. 그 뒤 마틴 카프란(Martin Kaplan) 박사가 이 일을 1966년 위스타 협회에서 갖기로 계획한 것이었다.
강력한 디지털 컴퓨터의 가공할만한 발전은 논쟁에 불꽃을 붙였다. 결국 수학자들은 진화의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수학적으로 결코 생명체가 우연히 생겨나거나 자연선택으로 진화해 나갈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흘 간의 위스타 회의가 계속되는 동안, 컴퓨터 과학자인 마르셀 폴 쉬첸베르제(M.P. Schutzenberger)가 주로 강의를 했는데, 컴퓨터는 진화론의 가능성을 수학적으로 산출해 내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그리고 진화론은 완전히 허구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대장균(E. coli) 이라는 미생물에 50억 년동안 DNA에 돌연변이가 일어난다 할지라도, 단 한 쌍의 유전자를 생산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머레이 에덴은 보여주었다. 그의 계산은 50억 년동안 1인치의 두께로 지구를 다 덮을 만큼의 5조 톤(ton)의 박테리아를 기준으로 계산한 것이었다. 그리고 대장균의 유전자에는 1조(1012) 비트 이상의 정보가 들어있다고 그는 덧붙여 설명했다. 이것은 10 뒤로도 0 이 12 개나 붙는 숫자이다. 이든은 우연히 단백질이 형성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해 보였다.
그는 또한 헤모글로빈의 유전 자료에 대해서도 방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헤모글로빈은 알파와 베타라 불리는 두 개의 고리를 가진다. 알파에서 베타로 변형되려면 최소한 120개의 유전자가 필요하다. 적어도 이러한 변화중 34개가 2개나 3개의 뉴클레오티드의 변환을 요구한다. 에덴은 이 점을 지적했다. 만약 단 하나의 뉴클레오티드에 유전자 변형이 일어난다면, 그 결과 혈액은 망가지고, 유기체는 죽게 되는 것이다.
조지 왈드(George Wald) 또한 헤모글로빈에 대해 방대한 연구를 설명했다. 어떤 종류든지 단 하나의 유전적 변화가 일어난다면, 그 헤모글로빈은 완전히 제기능을 할 수 없게 된다. 예를 들어, 헤모글로빈 속의 287개 아미노산중 단 하나의 변화가 겸상적혈구 빈혈증(sickle-cell anemia)을 유발시키며, 글루타민산 단위(glutamic acid unit)가 발린 단위(valine unit)로 변환되면, 이 빈혈로 고생하는 사람들의 25%가 죽게 된다는 것이었다.
2. 1969년 알프바취(Alpbach) 회의
다음 회의는 1969년 알프바취에서 열렸는데, 별 성과없이 진화론에 대한 방어적 논의에 그쳤다. 진화론적인 결론을 희망하는 일부 과학자들의 자포자기와 감정적인 단어들이 오가기도 하고, 이에 대해 능숙하게 방어하는 과학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진화론이 비과학적이라는 증거들이 부가적으로 발표되었다. 중요한 회의였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언론에게는 거의 공개되지 않았다.
3. 1980년 뉴욕 회의
몇 십년동안 사람들은 학위를 쓰고 졸업하며, 과학분야에 입문하기 위해 진화론을 조용히 받아들여 왔다. 사람들이 어떠한 분야를 선택하든지, 그들은 진화의 증거가 아닌 창조의 증거들을 보게 된다. 끝없이 방대하게 늘어가는 과학 지식 속에서 창조과학쪽의 증거들은 대량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결국 주의 깊은 연구가들은 공공연하게 개인적인 글에서 진화론을 비판하게 되었다. *진화론자인 굴드(Gould)와 스탠리(Stanley) 같은 권위 있는 고생물학자들도 다윈의 어리석음을 뻔뻔스럽게도 이야기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들은 사실, 상식, 유전학, 돌연변이 연구, 수학적 확률 등과 완전히 반대되는 불가능한 이상한 동화 같은 이야기로 대체하게 된다. 그들에겐 무엇인가가 빠진 것이다.
1980년 10월에 당대를 주도하는 진화론자들에 의해 진화론에 관한 특별회의가 시카고에서 개최되었다.
”시카고 회의의 중심 질문은 소진화를 일으키는 메커니즘이 대진화를 설명하기 위해 외삽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 Roger Lewin, 'Evolutionary Theory Under Fire,' in Science, November 21, 1980.
”소진화(microevolution)는 종 내에서 일어나는 변화이다. 그러나 이것은 적응하는 것이지, 진화가 아니라는 것을 대부분의 전문가들도 받아들이고 있다. 종을 뛰어넘어 다른 종으로 변하는 대진화(macroevolution)는 진화론의 핵심이다. 대진화가 없다면 진화는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1980년 10월 진화론 연구에서 핫이슈 중의 한 문제를 가지고 시카고에서 회의가 열렸다. 유명한 잡지이자, 미국의 진보적 과학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사이언스(Science) 지는 이 회의를 '역사적인 회의' 라고 명했다. '우리는 모두 머리가 빙빙 도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라고 한 참가자는 말했다. '인재들의 흥분으로 가득찬 분위기 속에서 개인적 의견충돌과 학문적 마찰 등이 알 수 없는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라고 사이언스 지는 보도했다.” - G.R. Taylor, Great Evolution Mystery (1983), p. 55.
진화론에 대해 공개적인 공격이 이루어졌지만, 사람들은 대답을 위한 해결책을 찾는데는 절망했다.
”퓨드(Feuds)는 진화이론의 폭발에 관하여......고지 위에 자리잡은 참호 앞 뒤 옆으로 쏟아지는 박격포탄처럼 비난들이 쏟아졌다.” - Francis Hitching, The Neck of the Giraffe (1982), p. 12.
그렇다, 논쟁이 있었고, 무엇인가가 터진 것이다. 주된 결론은 진화의 증거가 없다는 것과 지금 증거를 보여줄 수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수 없을 것이란 것이었다.
”회의에 참여한 사람들중 일부는 폭력까지 행사할 뻔했다. 대답은 분명히 '아니요(No)'로 내려졌다.” - Roger Lewin, The Neck of the Giraffe (1982), p. 12.
1980년 11월 3일자 뉴스위크 지는 시카고 회의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여러분들도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회의에 참석한 진화론자들 대부분은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설에 관한 신다윈니즘의 구조는 더 이상 과학적으로 인정되거나,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또한 생물의 기원과 다양성에 대해서도 진화론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1년 뒤 로버트 자스트로(Robert Jastrow)라는 지도적 과학자는 이렇게 썼다;
”그들(과학자들)의 답답함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없었다. 화학자들이 무생물에서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실험을 결코 성공시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과학자들은 이것이 어떻게 일어난 일인지 모른다.....과학자들은 창조라는 행위 결과로 생명체가 생기지 않는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 - Robert Jastrow, The Enchanted Loom: Mind in the Universe (1981), p. 19.
회의에 참석한 과학자들중 그 유일한 결론(진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에 실망한 일부는, 종의 변화가 갑자기 일어났다는(단속평형설) 굴드(Gould)와 스탠리(Stanley)의 괴물이론에 합류했다. 셰익스피어의 명언을 여기에 적용시킬 수 있지 않을까.
”오, 낙심이여, 네가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구나!”
1980년 시카고 현장 자연사박물관에서 열린 회의에는 160 여명의 고생물학자, 해부학자, 진화론적 유전학자, 발생 생물학자들이 참석했다.
”진화론은 근 50년 동안 넓고 깊은 변혁을 겪어왔다......정확히 어떻게 진화가 일어났는지에 대한 논쟁이 생물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이 회의에서 논쟁의 분명한 답은 없었다.” - Boyce Rensberger, 'Macroevolution Theory Stirs Hottest Debate Since Darwin,' in The Riverside (California) Enterprise, p. E9 ; *Roger Lewin, 'Evolutionary Theory under Fire,' Science, November 21, 1980, pp. 883-887.
창조론자들에게 유리한 무기를 안겨줄 수 없었기에, 그 회의 기록은 남기지 않기로 결정되었다. 진화론에 반대되는 증거들의 엄청난 증가는,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다윈의 기본이론을 버리기로 결정하면서, 엄청난 위기를 초래했다. 그들은 한 종 안에서 세대를 걸친 작은 변화들이 새로운 종을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로 축적될 수 없다는데 동의했다.
이 회의에서 '단속평형설(punctuated equilibria)'이라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이론이 두드러졌다. 이 견해는 갑작스럽게 밀집된 돌연변이가 'hopeful monsters(바람직한 괴물, 희망적 괴물)'을 만들어내고, 현재의 모든 종들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이것은 1980년 회의에서 절망한 당대의 주도적 과학자들 대다수가 골드슈미트(Goldschmidt), 스탠리(Stanley), 굴드(Gould)의 괴물이론을 채택한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마치 수레에 묶여서 수레가 가는 데로 가야만 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들이 (진화론을) 버리지 않고, 또 그렇게 하려고 하지도 않았기에, 스스로 기대하지 않은, 생각지도 못한 끔찍한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었다.
1980년 11월 3일자 뉴스위크 지의 한 기사에 따르면, 10월 중순 시카고 현장 자연사 박물관에서 열린 회의에서 160 여명의 고생물학자, 해부학자, 진화론적 유전학자, 발생 생물학자들이 다윈의 진화론을 포기하는데 동의하고, 바람직한 괴물이론으로 알려진 단속평형설에 찬성하였다고 보도하였다.
”분명하게 다윈의 이론은 중간화석 부재를 인용하는 그들로부터 방어될 수 없었다. 바람직한 괴물이론은 지층 속에 단순한 것으로부터 복잡한 것에 이르는 화석들을 배열하여, 믿을만한 지질학적 증거들이 존재함을 보여주려는 시도를 중지하게 만들었다.” - Randall Hedtke, 'Asa Gray Vindicated,' in Creation Research Society Quarterly, June 1981, p. 74.
4. 1984년 캠브리지 회의
진화론자들의 또 다른 중요한 회의가 뒤를 이어 개최되었다. 뉴욕에 있는 미국 자연사박물관에서 개최된 회의에서, 영국 자연사박물관의 선임 고생물학자인 *콜린 패터슨(Colin Patterson)은 자신이 쓴 회의 보고서에서, 진화론은 '확실히 지식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말하며, ”진화론이 진리일 것이라 믿고, 나의 모든 생애를 허비해 버렸다”는 말을 동료들 앞에서 선언하였다.
같은 해에 다른 과학자는 이렇게 썼다;
”과학자들의 증가, 특히 진화론자들의 증가는 다윈의 이론은 전혀 진실된 과학이론이 아니라는 주장들을 낳게되었다. 비평들 중 많은 수가 매우 높은 지적수준을 가지는 것이었다.” - Michael Ruse, 'Darwin's Theory: An Exercise in Science,' in New Scientist, June 25, 1981, p. 828.
미국 자연사박물관의 고생물학 수장인 엘드리지(Niles Eldredge)는 진화론 진영에 닥친 위기에 대한 의견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지난 20 년간 일찌기 진화론을 주장하는 생물학자들이 열정적으로 매달리고 확신했던 것들에 의심이 깃들기 시작했다....교전중인 진영내에서 의견일치가 총체적으로 결여되어 있고......요즘 들어 정말 자기 목소리를 높여 떠드는 소리들이 많다......이것은 때때로 생물학자들이 개별적으로 각각 존재하는 것처럼, 진화론도 매우 많은 종류가 각각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 Niles Eldredge, 'Evolutionary Housecleaning,' in Natural History, February 1982, pp. 78, 81.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www.sdadefend.com/pathlights/ce_encyclopedia/Encyclopedia/20hist12.htm
출처 - Creation-Evolution Encyclopedia
위스타는 진화론을 파괴했다
: 컴퓨터를 사용하여 수학적으로 부정된 진화론
(Wistar Destroys Evolution)
대용량의 컴퓨터가 진화론을 입증하기 위해 필요한 자료들을 모았다. 위스타(Wistar)는 진화론을 매장시켰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아직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진화론은 신화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했다. 수많은 증거들이 그것을 가리키고 있다. 자연에서 발견되는 증거들을 진화론은 설명할 수 없다. 이것은 과학 대 진화이다. Creation Evolution Encyclopedia는 당신에게 창조과학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려줄 것이다.
내용 : 위스타(Wistar)는 진화론을 파괴했다.
1. 1966년 필라델피아 회의 - 진화론은 Wistar에서 수학적 사실들에 의해 파괴됐다.
2. 1969년 알프바취(Alpbach) 회의 - 진화론에 반대하는 많은 증거들.
3. 1980년 뉴욕 회의 - 상황은 더 나빠졌다.
4. 1984년 켐브리지 회의 - 마무리
1. 1966년 필라델피아 회의
1960년대까지 신다윈주의자들은 열심 있는 진화론자들 사이에서 실제로 싸움을 시작하지 않았었다. 위스타(Wistar)에서 진화론은 수학적 사실에 의해서 무너졌다.
모든 변화의 귀속이 우연이라는 것은 오랫동안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원인이었다. 19세기 비평가들에 의해 제기된 문제들을 가지고 시간 낭비하지 말자. 왜냐하면 그 이슈들은 잠잠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1967년 극적인 형태로 그 추한 문제점들이 다시 고개를 들게 되었다. MIT 대학교수이자, 로스 알라모스(Los Alamos) 원자력 단체의 원로인 빅토르 와이스코프(Victor Weisskopf)가 제네바에 있는 자택에서 자연과학자들과 점심 파티를 열던 중에, 소수의 수학자와 생물학자들 사이에서 이 문제가 거론된 것이었다. 기묘한 토론이 열리게 된 것이었다. 주제는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였다. 수학자들은 우연히 진화한다는 진화론자들의 낙천적인 생각에 그저 놀랄 뿐이었다. 이러한 생각이 확산되면서 그들은 회의를 소집하게 되는데, 소위 '진화론의 신다윈주의(neo-Darwinism)에 대한 수학적 도전(mathematical challenges)' 이라 불리는 회의였다. 의장은 당시 런던 북부에서 의학연구협회 연구실 소장으로 있으면서, 이식 거부반응에 대한 업적으로 노벨상을 탄 피터 메다와(Peter Medawar) 경이 맡았다. 그러한 위치의 사람들은 사려 깊은 생각없이 과격한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당신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정표가 된 획기적인 모임은 1966년 4월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위스타 회의(Wistar Institute Symposium)였다. 의장인 피터 메다와 경은 다음과 같은 개회사를 하였다.
많은 수학자들이 생물학적 문제점들을 다뤘는데, 1966년 위스타 회합에서 그것들을 발표했다. 그들은 신다윈니즘을 여러 분야에서 반박하고, 신다윈니즘의 적합성(fitness)과 적응성(adaptation) 이론은 순환논법과 다름없음을 보여줬다. 이에 반해 회의에서 연설한 생물학자중 몇은 그 빛을 볼 수 없었다. 벌레나 거북이는 잘 이해하면서, 진화론의 수학적 불가능성이나, 진화론이 정말로 완전히 틀렸다는 광대한 자료들은 이해하지 못하였다.
예를 들어, 수학자중의 한 사람인 MIT의 머레이 이든(Murray Eden)은 진화론의 기초 이론인 '무작위적 선택(random selection)'에 의한 생명체의 시작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설명했다. 그러면 ”'무작위'가 아니라면, 남는 것은 단 하나 '설계'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적능력에 의해 의도적으로 고안되어야만 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유명한 영국의 진화론자인 와딩톤(C.H. Waddington)도 통렬하게 신다윈니즘을 공격했는데, 그 이론을 입증하는 것은 식물이든 동물이든 모든 것들이 후손을 가질 수 있다는 것뿐이라고 하였다.
1966년에 열린 위스타 회의는 1년전 스위스에서 모인 수학자와 생물학자들의 모임에서 기초한 것이었다. 수학자들은 다윈의 이론이 각광받는 것에 대해 의심을 품었고, 몇 시간에 걸친 열띤 토론 결과 1년 뒤에 다시 많은 문제점들을 가지고 모이기로 한 것이었다. 그 뒤 마틴 카프란(Martin Kaplan) 박사가 이 일을 1966년 위스타 협회에서 갖기로 계획한 것이었다.
강력한 디지털 컴퓨터의 가공할만한 발전은 논쟁에 불꽃을 붙였다. 결국 수학자들은 진화의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수학적으로 결코 생명체가 우연히 생겨나거나 자연선택으로 진화해 나갈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흘 간의 위스타 회의가 계속되는 동안, 컴퓨터 과학자인 마르셀 폴 쉬첸베르제(M.P. Schutzenberger)가 주로 강의를 했는데, 컴퓨터는 진화론의 가능성을 수학적으로 산출해 내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그리고 진화론은 완전히 허구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대장균(E. coli) 이라는 미생물에 50억 년동안 DNA에 돌연변이가 일어난다 할지라도, 단 한 쌍의 유전자를 생산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머레이 에덴은 보여주었다. 그의 계산은 50억 년동안 1인치의 두께로 지구를 다 덮을 만큼의 5조 톤(ton)의 박테리아를 기준으로 계산한 것이었다. 그리고 대장균의 유전자에는 1조(1012) 비트 이상의 정보가 들어있다고 그는 덧붙여 설명했다. 이것은 10 뒤로도 0 이 12 개나 붙는 숫자이다. 이든은 우연히 단백질이 형성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해 보였다.
그는 또한 헤모글로빈의 유전 자료에 대해서도 방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헤모글로빈은 알파와 베타라 불리는 두 개의 고리를 가진다. 알파에서 베타로 변형되려면 최소한 120개의 유전자가 필요하다. 적어도 이러한 변화중 34개가 2개나 3개의 뉴클레오티드의 변환을 요구한다. 에덴은 이 점을 지적했다. 만약 단 하나의 뉴클레오티드에 유전자 변형이 일어난다면, 그 결과 혈액은 망가지고, 유기체는 죽게 되는 것이다.
조지 왈드(George Wald) 또한 헤모글로빈에 대해 방대한 연구를 설명했다. 어떤 종류든지 단 하나의 유전적 변화가 일어난다면, 그 헤모글로빈은 완전히 제기능을 할 수 없게 된다. 예를 들어, 헤모글로빈 속의 287개 아미노산중 단 하나의 변화가 겸상적혈구 빈혈증(sickle-cell anemia)을 유발시키며, 글루타민산 단위(glutamic acid unit)가 발린 단위(valine unit)로 변환되면, 이 빈혈로 고생하는 사람들의 25%가 죽게 된다는 것이었다.
2. 1969년 알프바취(Alpbach) 회의
다음 회의는 1969년 알프바취에서 열렸는데, 별 성과없이 진화론에 대한 방어적 논의에 그쳤다. 진화론적인 결론을 희망하는 일부 과학자들의 자포자기와 감정적인 단어들이 오가기도 하고, 이에 대해 능숙하게 방어하는 과학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진화론이 비과학적이라는 증거들이 부가적으로 발표되었다. 중요한 회의였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언론에게는 거의 공개되지 않았다.
3. 1980년 뉴욕 회의
몇 십년동안 사람들은 학위를 쓰고 졸업하며, 과학분야에 입문하기 위해 진화론을 조용히 받아들여 왔다. 사람들이 어떠한 분야를 선택하든지, 그들은 진화의 증거가 아닌 창조의 증거들을 보게 된다. 끝없이 방대하게 늘어가는 과학 지식 속에서 창조과학쪽의 증거들은 대량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결국 주의 깊은 연구가들은 공공연하게 개인적인 글에서 진화론을 비판하게 되었다. *진화론자인 굴드(Gould)와 스탠리(Stanley) 같은 권위 있는 고생물학자들도 다윈의 어리석음을 뻔뻔스럽게도 이야기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들은 사실, 상식, 유전학, 돌연변이 연구, 수학적 확률 등과 완전히 반대되는 불가능한 이상한 동화 같은 이야기로 대체하게 된다. 그들에겐 무엇인가가 빠진 것이다.
1980년 10월에 당대를 주도하는 진화론자들에 의해 진화론에 관한 특별회의가 시카고에서 개최되었다.
진화론에 대해 공개적인 공격이 이루어졌지만, 사람들은 대답을 위한 해결책을 찾는데는 절망했다.
그렇다, 논쟁이 있었고, 무엇인가가 터진 것이다. 주된 결론은 진화의 증거가 없다는 것과 지금 증거를 보여줄 수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수 없을 것이란 것이었다.
1980년 11월 3일자 뉴스위크 지는 시카고 회의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여러분들도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회의에 참석한 진화론자들 대부분은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설에 관한 신다윈니즘의 구조는 더 이상 과학적으로 인정되거나,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또한 생물의 기원과 다양성에 대해서도 진화론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1년 뒤 로버트 자스트로(Robert Jastrow)라는 지도적 과학자는 이렇게 썼다;
회의에 참석한 과학자들중 그 유일한 결론(진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에 실망한 일부는, 종의 변화가 갑자기 일어났다는(단속평형설) 굴드(Gould)와 스탠리(Stanley)의 괴물이론에 합류했다. 셰익스피어의 명언을 여기에 적용시킬 수 있지 않을까.
1980년 시카고 현장 자연사박물관에서 열린 회의에는 160 여명의 고생물학자, 해부학자, 진화론적 유전학자, 발생 생물학자들이 참석했다.
창조론자들에게 유리한 무기를 안겨줄 수 없었기에, 그 회의 기록은 남기지 않기로 결정되었다. 진화론에 반대되는 증거들의 엄청난 증가는,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다윈의 기본이론을 버리기로 결정하면서, 엄청난 위기를 초래했다. 그들은 한 종 안에서 세대를 걸친 작은 변화들이 새로운 종을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로 축적될 수 없다는데 동의했다.
이 회의에서 '단속평형설(punctuated equilibria)'이라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이론이 두드러졌다. 이 견해는 갑작스럽게 밀집된 돌연변이가 'hopeful monsters(바람직한 괴물, 희망적 괴물)'을 만들어내고, 현재의 모든 종들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이것은 1980년 회의에서 절망한 당대의 주도적 과학자들 대다수가 골드슈미트(Goldschmidt), 스탠리(Stanley), 굴드(Gould)의 괴물이론을 채택한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마치 수레에 묶여서 수레가 가는 데로 가야만 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들이 (진화론을) 버리지 않고, 또 그렇게 하려고 하지도 않았기에, 스스로 기대하지 않은, 생각지도 못한 끔찍한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었다.
1980년 11월 3일자 뉴스위크 지의 한 기사에 따르면, 10월 중순 시카고 현장 자연사 박물관에서 열린 회의에서 160 여명의 고생물학자, 해부학자, 진화론적 유전학자, 발생 생물학자들이 다윈의 진화론을 포기하는데 동의하고, 바람직한 괴물이론으로 알려진 단속평형설에 찬성하였다고 보도하였다.
4. 1984년 캠브리지 회의
진화론자들의 또 다른 중요한 회의가 뒤를 이어 개최되었다. 뉴욕에 있는 미국 자연사박물관에서 개최된 회의에서, 영국 자연사박물관의 선임 고생물학자인 *콜린 패터슨(Colin Patterson)은 자신이 쓴 회의 보고서에서, 진화론은 '확실히 지식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말하며, ”진화론이 진리일 것이라 믿고, 나의 모든 생애를 허비해 버렸다”는 말을 동료들 앞에서 선언하였다.
같은 해에 다른 과학자는 이렇게 썼다;
미국 자연사박물관의 고생물학 수장인 엘드리지(Niles Eldredge)는 진화론 진영에 닥친 위기에 대한 의견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www.sdadefend.com/pathlights/ce_encyclopedia/Encyclopedia/20hist12.htm
출처 - Creation-Evolution Encyclo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