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진화론의 역사 - 4 : 여러 모양의 진화론자들

미디어위원회
2005-10-31

현대 진화론의 역사 - 4 

: 여러 모양의 진화론자들

유종호 


7. 잘못을 시인한 진화론자들

비록 다윈과 그의 동료인 월리스가 진화를 마음에 품고 진취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을지라도, 그들은 생명의 기원을 설명할 수 없었고, 그 문제는 그들에게 미해결 과제로 남아있었다. 다윈은 태초의 어디에선가 창조주가 계셨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말했다.

"창조주께서 여러 가지의 힘을 가지고 첫 형상에게 최초로 숨을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한 방식에는 웅장함이 있다.”

만약 생명이 창조되어야만 했었다면, 왜 그 밖의 다른 것들은 창조될 수 없었겠는가? 다윈은 여기서 우연히 자신의 전 진화론이 잘못된 것임을 시인했던 것이다.

알프레드 월리스는 생명이 식물의 세계에서 동물의 세계로 진화한다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것은 물질과 그것의 법칙과 힘에 의한 설명의 가능성을 완전히 초월하고 있다.”

다시 한번 원조 진화론자가 자신의 이론이 근거가 없으며 빗나간 것임을 시인했다.

다윈의 사상을 확산하려 애를 썼던 ‘다윈의 불독” 토머스 헉슬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반적 단어의 의미에서 창조는 있을 법한 일이다. 나는 이러한 우주가 이전의 어떤 기간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나, 존재 이전의 어떤 분의 의지에 상응하게 6일 간에 걸쳐 출현하게 되었다라고 쉽게 생각하게 되었다.” (레오나드 헉스리 저, 토마스 헉스리의 생애와 편지들 p429).

물고기 연구에 최우선적이었던 에롤 화이트는 말했다.

"나는 법정에서 유기적 진화를 입증할 방법이 없다고 자주 생각했다.” 


8. 토론하기를 거부하는 진화론자들

미국과 전 세계에 걸쳐 수많은 대학에서 1972년 10월부터 16년 동안 창조과학회의 헨리 모리스와 듀안 기쉬 등 창조론자들과 여러 제목들로 기원과 관련된 교수 및 박사 등 진화론자들 사이에 토론이 진행되어왔다. 헨리 모리스 박사는 『현대 창조론의 역사』p.263-265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러나 최초의 공식적인 조직을 갖춘 창조과학회(ICR)에 관하여 캔자스 주 미주리 대학의 교수인 로봇 갠틸과 내가 1972년 10월에 토론했다. 나는 다른 모임 때문에 캔자스에 가 있었고, 어쨌든 그 지역에 머무르게 되었음으로 크리스천 모임에 소속된 어떤 학생이 나에게 대학 캠퍼스에서 토론할 용의가 있는지를 물어왔다. 나는 다른 대중연설 혹은 토론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마지못해 동의했다. 나는 진화론의 전문가가 토론에서 무슨 새로운 증거와 논쟁을 전개할는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나의 두려움은 괜한 걱정이었다. 갠틸 박사의 경우도 그 문제에 취약했고 거의 관련이 없는 상태였다. 그는 단지 나의 논지에 답하는 정도로 미약했다. 나는 그가 더 잘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하지만, 그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준비가 거의 되어있지 않았다. 여하튼 학생신문에 따르면 창조론의 확실한 승리였고, 그 말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곧 기쉬 박사와 나는 다른 대학 캠퍼스에서 비슷한 토론에 참가해 달라는 또 다른 초대장들을 받고 있었다..... 대학신문과 사회단체신문에서조차도 창조론자들의 승리에 동의하는 것 같았다. 최초의 4사람의 토론은 오클라호마 대학에서 1973년 1월에 있었다. 진화론자 2명은 지질학자인 데이비드 키츠와 생물학자인 허버트 프링스였다. 2명 모두 훌륭한 과학자였으며, 그 분야에서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다시 청중과 신문들은 토론에서 창조론의 승리가 확실했다고 보도하였다..... 나는 신속하게 이 상황에서 두려울 것이 없음을 알았다. 그러나 그러한 토론의 재미를 알 수 없었다.... 나는 여전히 그러한 토론을 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36번 정도의 토론에 참가했다.”

"기쉬 박사는 토론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는 엄청난 지식의 소유자이며 기억력이 대단하다. 그는 열정적인 토론자이다. 그는 지금까지 100번 이상의 토론에 참가했다. 우리는 항상 진화가 과거에 발생한 적이 없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화석을 이용하는 등의 과학적 논리에 집착하는 편이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그러한 과학적 논리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들은 성경을 공격하고, 창조론자들이 종교적 동기를 가지고 있으며, 사람들은 종교적일 수 있고, 아직도 진화를 믿고 있다고 주장하며, 창조론은 과학적이지도 않고, 우리의 인격 또는 자격을 공격한다.”

"그러나 그들이 할 수 없었던 한 가지는 진화에 대한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대진화의 진짜 과학적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창조론자들이 토론에서 항상 승리하는 이유이다. 우리는 토론을 잘하기 때문이 아니라, 창조가 진리이고, 진화가 거짓이며, 진정한 과학이 이 점을 뒷받침해 주기 때문이다.”

‘Macro’는 거대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대진화(macroevolution)'는 한 동식물 종이 또 다른 종으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물고기가 지상의 동물로 변하는 것이나, 고양이가 개로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진화라는 고통의 바다』p.121 에서 헨리 모리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본인과 창조론의 많은 동료들은 대학 캠퍼스에서 저명한 진화론자들과 많은 공식적인 토론에 참가했었다. 진화론자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엔트로피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다룰 수 없었다. 그들의 상대방이 토론에서 그것을 주요 문제로 다룰 때조차도 그들 대부분 그것을 무시한다.”

이 책에서 내가 쓴 열역학 제2법칙 부분을 참고하라.

듀안 기쉬 박사는 1975년 2월에 예정된 토론자로의 참가를 취소하고, 학생들이 토론하도록 후원하는 방식으로 뉴올리언스 대학에서 스케줄을 잡았다. 학생들은 뉴올리언스의 여러 대학에서 진화와 생물학이라는 주제의 공식적인 강의에서조차도 진화론을 옹호할 수 있는 생물학자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기쉬 박사는 1974년 10월과 11월에 캐나다의 서해안에서 동해안에 걸쳐 있는 13개의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온타리오, 킹스턴에 위치한 퀸 대학에서 어떤 교수에게 기쉬와의 토론이 권장되었으나, 그는 기쉬의 저작물들이 부정직하고 심지어 극악무도한 기반 위에 서있다는 이유를 들어 토론을 거절했다. 그러나 기쉬는 거기서 강의를 했고 지속적인 찬사를 받았다. 토론하기를 거절했던 교수도 그 자리에 있었으나, 다른 사람들은 질문을 하는 데도 기쉬에게 도전하지 않았고,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1985년과 1986년에는 토론을 거절하는 일이 규칙적으로 발생하고 있었다. 조지아 대학에서 1986년 2월 6일에 학생들은 진화론 교수들에게 기쉬와 토론하도록 청했다. 부탁받은 교수들이 모두 거절했다. 결국 고생물학의 박사학위를 취득한 콜럼버스 대학의 조교수인 슈위머 박사는 처음에 우주의 기원에 관하여 언급하지 않겠다고 말했으나 토론하기로 동의했다. 그는 화석이 진화의 직접적인 증거라고 피력했다. 그러나 기쉬는 화석에 있어서 연결고리의 결여를 지적했다. 진화론의 전도사와 옹호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에 대한 과학적 기반의 결여를 드러냈다. 1987년 11월 9일에 헨리 모리스와 휴스턴 대학의 교수 사이의 토론이 과학적 창조론을 원치 않았던 학교직원으로 인해 취소되었다. 일상적으로 진화론자들은 자신의 이론을 발표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모리스 박사는 자신의 책 『창조와 현대 크리스천』p.102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진화론자들은 진화와 창조에 관한 과학적 토론에 참석하기를 두려워한다. N.A.S(Nation Academy of Sciences)의 모임에서 한 사람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창조론자들과의 토론을 피해야한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이것은 모리스 박사가 1981년 11월 6일자 『과학』에서 인용한 것이다. 『사기재판, 1982』 p.17-18에서 닐 엘드리지는 이 모든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창조론자들은 미국 전역의 대학 캠퍼스를 방문하고 생물학자들, 지질학자들, 그리고 인류학자들과 토론을 하면서 돌아다녔다. 창조론자들이 항상 승리한다. 청중들은 개종한 사람들과 신앙이 깊은 사람들로 채워졌다. 최근까지 과학자들은 전혀 준비 없이 토론에 임해왔다. 그들은 폭 넓은 과학적 주제에 대한 직접적인 맹공에 의해 곧 패배한다. 어떠한 과학자도 천문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지질학, 인류학의 상관관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오늘날 창조론자들은 지적이고 교양이 높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뛰어난 토론자들로서 자신의 임무를 완수해왔다. 그들은 항상 상대방들보다는 학식 있어 보였다. 그러나 창조론자들의 입장을 면밀히 조사해 보면 분명한 것처럼 그들의 주장은 실제 지적인 내용이 결여되어 있다. 창조론자들은 투명한 논리나 증명이 아닌 이상한 무대 출현 때문에 승리한다. 이러한 토론은 진화에 대한 진지한 사색이기 보다도 쇼에 불과하다.”

이러한 마지막 진술은 과학적 증거도 없이 창조론자들을 무작정 공격하는 진화론자들에 의한 것이다. 진화론에 입각한 모든 토론자들이 다른 과학에 해박한 것만이 아닌 이러한 주장은 매우 약점이 있다. 토론에 있어서 특정한 분야에 학식이 있는 다른 진화론자들은 진화에 대한 과학적 증거를 제공해 줄 수 없다.

1987년 3월 판『행위와 진실』이라는 팜플릿을 보면 미국의 집요한 3명의 진화론자들이 토론을 거부했다. 그들은 코넬 대학의 칼 세이건, 미국의 인문학회장인 아이삭 애쉬모프, 그리고 하버드 대학의 스티븐 굴드였다.

3월 23일 밤에 국회의사당이 예약되었고 기쉬 박사는 즉시 참석하기로 동의했다. 그 후에 진화론을 대표할 세이건 박사를 나오게 하려는 라헤이(LaHaye) 박사와 다른 사람들의 노력이 시작되었다. 진화론에 대한 그의 헌신과 창조론을 비과학적으로 비난하기 때문에, 이것은 진화론의 과학적인 타당성을 증명할 수 있는 이상적인 포럼이 될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그렇지 않았다. 그의 진화론적 세계관을 옹호하려던 수 주일의 시간이 흐른 후에 칼 세이건은 "아니, 참석하지 않겠다.” 라고 통보하였다. 다음으로 유명한 진화론적 과학자는 아이삭 애쉬모프이다.... 그는 세이건보다 더욱 신랄한 반창조론자였다. 그러므로 그는 기쉬 박사와 토론하도록 초대되었으나 세이건의 경우와 마찬가지 이유로 참석하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스티븐 굴드 박사 역시 미래의 토론에 초대를 받았으나, 그 역시 거절할 의사를 표시했다.

<결국은 어린 세상> p.12에서 폴 액커만은 이러한 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과학적인 창조론자들이 열정적으로 활동한 지난 10년의 세월을 보내며 대부분의 진화론 교수들은 창조론 교수들과 토론하기를 꺼린다. 대부분의 진화론자들은 그런 토론에서 자신의 부족한 학식과 이론의 취약성으로 인해 공식적으로 수치심을 느끼게 되었다.”


9. 조급한 진화론자들

그러나 앞 장에서 언급된 점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자들은 매우 조급하여, 창조론자들을 무식하고 비과학적이라고 조롱하려고 한다. 진화론자들은 창조론자들을 비판할 때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우스꽝스러운 말을 한다. 사기재판에서 닐 엘드리지는 창조론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들의 글들은 과학적인 세련된 용어를 사용하기 보다는 미경험자들을 납득시키기 위하여 아주 단순한 용어로 쓰인다. 더욱이 창조론자들은 나약하고 감상적이다. 그들은 과학자들을 인용할 때 단순한 철자 상의 에러를 범한다.”

고대의 라틴어와 그리스어의 파생어를 포함한 단어들을 쓴다고 해서 글이 과학적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영어의 보편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어떨까? 식물(plants)과 동물(animals) 대신에 flora와 fauna와 같은 용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논문이 세련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창조론자들과 토론을 할 때 그들은 이론에 대한 과학적 증거를 왜 탐구하지 않는가? 그러나 p.130에서 엘드리지는 쓸데없는 말만 한다.

"창조론자들은 형편없는 학자들이다 라고 이전에 나는 말했다.”

로봇 솔로몬이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쓴 기사가 「LA 타임스」(1984년 1월호)에 실렸다.

"태초에..... 진화-지성과 맞서 싸우는 무지의 전쟁”

진화 이야기는 명백히 과학적 지성에 근거하지 않는다.

알프레드 레윈켈은 『창조의 경이, 1974』p.31에서 이러한 태도를 다음과 같이 잘 요약했다. 

"한편 그들의 입증된바 없는 이론(진화론)은 절대적 진리로서 지식인과 문맹자들 모두에게 받아들여지게 될 것이고, 중세 암흑시대의 편협한 신앙과 버금가는 광적인 옹졸함으로 방어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진화를 절대적인 도그마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꿈꾸는 바보로 여겨지거나 단지 계몽반대주의자로서 무시당할 것이다. 그런 사람은 이러한 이론과 반대되는 시각을 표현하는 원고에 후원자를 찾지 못할 것이다. 만약 발행된다 해도 그 책은 고등학교 혹은 대학의 교재로 추천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가 대학의 과학부서에 자리를 확보하는 일 역시 어려울 것이다. 현대적 우상숭배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이단자이고 그런 취급을 받을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창조론적인 시각에 매우 인색한 반응을 보인다. 헨리 모리스는 <진화라는 문제의 바다> p.81 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진화의 타당성에 관하여 과학적 질문이 제기될 때마다 진화론자들이 신랄하게 분노의 반응을 보이는 것은 왜일까? 진화에 대한 ‘종교적인’ 열정이 있는 것인가?”

1981년 초 새크라멘토 진화론 재판에서 창조과학회의 터너 변호사는 진화론자들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들은 오만하고 거만한 사람들이다.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의 헌법을 수정해야할 정도로 위험한 사람들이다.”

워포드 대학의 화학 교수인 스콧 모로우는 로버트 겐트리가 쓴 『창조의 신비』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창조라는 주제에 관하여 기독교인이 쓴 책을 받았을 때, 불가지론자들인 진화론자들이 세운 지침을 이해한 사람은 빨리 대충 읽어보고, 그 책을 가까운 쓰레기통에 말없이 던져버릴 것이다. 결국 돌이 아닌 두뇌를 소유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고 있다: 1)과학과 종교는 혼합될 수 없다. 2)진정한 과학자는 창조론자일 수 없다. 3)창조론자들은 과학자가 될 수 없고 과학적일 수도 없다. 4)더구나 근본주의적 창조론자들은 더욱 그러하다.... 앞의 계명들은.....애쉬모브(Asimov)와 세이건(Sagan)을 뜻하는 ‘A&S 독트린’으로 간주될 수 있다.”

로버트 겐트리는 그 책 p95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즉;

"우리가 취해야 할 두 번째 입장은 예절과 겸손이다. 나는 가장 비과학적이고 잔인한 방식으로 종교적 생각을 경멸하고 공격하는 과학과 인문 수업이 끝난 후에 교실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근본주의적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는 학생들이 불쾌한 고양이처럼 취급당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러한 종류의 취급이 과거에 갈릴레오를 다루었던 고위 성직자들의 태도보다 나을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당신의 자녀가 근본주의적 기독교인들을 조롱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조직된 공립학교에 다니도록 강요된다면, 비인격적인 사회문제에 대해 외치는 대신에 이곳을 먼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진보냐? 퇴보냐? 어느 편인가?』에서 힐버트 시글러는 그의 책 마지막 두 문장에서 다음과 같이 진화론에 대해 말했다.

"진화론은 다른 환경 아래서 많은 진화론적 과학 교수들을 배출했다. 그들의 학생들은 모든 주제에 의문을 제기하는 마음으로 접근하고 있고, 많은 과학자들은 상식을 벗어난 이러한 이론에 의문을 품고 있는 학생들을 귀찮게 여기고 있다. 우리의 희망은 의문을 품고 질문하는 지적인 정직함을 소유한 오늘과 내일의 젊은이들에게 있다.”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26길 28-3

대표전화 02-419-6465  /  팩스 02-451-0130  /  desk@creation.kr

고유번호 : 219-82-00916             Copyright ⓒ 한국창조과학회

상호명 : (주)창조과학미디어  /  대표자 : 박영민

사업자번호 : 120-87-70892

통신판매업신고 : 제 2021-서울종로-1605 호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26길 28-5

대표전화 : 02-419-6484

개인정보책임자 : 김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