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uglas W. Phillips
2004-07-26

법과 규범은 진화하는가? 

(Do Laws and Standard Evolve?)


       모든 지적, 또는 문화적 투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가설의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말의 뜻을 명확히 정의하는 자는 승리한다. 진화론과 성경의 창조론과 사이에서 벌어지는 논쟁은 화석이나 유인원 차원 이상에 것에 관한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 논쟁이 관여하는 기본적인 전제들에 비추어 인생, 법률, 그리고 인간관계에 관련된 질문에 대답한다. 가장 중요한 논쟁의 주제는 지배권(Lordship)에 관한 싸움이다. 즉, 누가 주인인가? … 하나님인가, 아니면 사람인가?

금세기(20C)의 대부분을 통하여 다윈의 진화론이 문화 투쟁에서 승리자로 부상하였다. 진화론은 미국의 생물학 교과서를 재구성하는 일을 훨씬 넘는 성과를 이룩하여, 쟁점 사항인 자연에 새로운 정의를 내렸다. 뱀이 하와에게 던졌던 질문, ”하나님이 말씀하시더냐?” 바로 그 질문을 다윈이 현대인들에게 물으면서 선언하기를, 권위의 궁극적인 원천은 인간이라고 부추겼다.

이로 인해서 초래된 결과는 가히 파괴적이었다. 기독교를 공공의 장에서 배제하는 일, 모태 안에 있는 9개월 짜리 제 자식을 죽이는 일, 그리고 동성결혼의 합법화를 공공연하게 토론할 수 있을 만큼 우리 사회가 타락의 길을 걸어온 것이다. 많은 크리스천들은 물론 이런 것들을 승인하지 않지만, 일단 수세에 몰리면 그들도 도덕이 정치의 본령이 아니라는 항의에 순순히 침묵하고 만다.

그와 같은 논쟁에 사회가 취할 대응방법은 다음의 3 가지 원초적 질문에 대답하는 방법과 직결된다. (1) 인간은 도덕률을 입법화할 수 있는가? (2) 가능하다면, 어떤 규범에 따라서 입법화할 수 있는가? 그리고, (3) 그와 같은 규범은 진화하는가? 이 질문들이 그것이다. 이 질문들 하나하나에 대한 대답은 기원의 문제에 접근하는 태도 여하에 따라서 결정된다. 법률은 도덕적으로 중립이며, 인간 이성은 진리의 전권 결정자이다, 규범은 문화의 성숙도에 따라서 변한다는 화두를 가지고 다윈주의는 수많은 크리스천들을 설파하여 문화에 대한 성경적 기독교의 억제력을 무력화 시켰다. 많은 크리스천들은 진화론의 전제들을 정식으로 수용하기를 거부하지만, 그들은 그 이론이 근거하는 가정들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였다.

 

사람은 도덕률을 법제화할 수 있는가?

도덕률이 함축되어 있지 않는 법은 법제화가 불가능하다. 그런데 실질적인 질문은 과연 인간은 도덕률을 법제화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고, 도덕률의 어떤 체계를 법제화할 것인가에 있다. 모든 법률은 명시적으로 도덕적이든가, 아니면 어떤 확실한 도덕적 개념을 지향하는 절차이다. 심지어 교통 신호등을 규제하는 법규까지도 도덕률을 내포한다. 교통신호등의 목적은 사람들이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게 하여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교통신호등도 다음의 명제들을 도덕적 개념으로 전제한다. 즉, (a) 질서는 선이고 혼돈은 악이다, (b) 재산권은 존중되어야한다, (c) 생명은 보전되어야 한다, 이런 것이 그것이다. 이 하나 하나의 원칙은 기원에 대한 창세기의 규명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즉, (a) 당신의 사역을 '심히 좋았더라'(창세기 1:31)라고 선언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무질서의 창시자가 아니다(고린도전서 14:33), (b) 그는 사람으로 땅을 다스리게 하시며, 피조물에 질서를 마련하게 하사 재산권의 기초를 놓으셨다 (창세기 1:26), 그리고 (c) 그는 생명의 신성함을 합법적인 정부의 제1 원리로 정하셨다 (창세기 9:5, 6). 이런 명제들이 하찮은 신호등에도 그 기조를 이루는 무언의 도덕적 전제들이다.

물론 법률은 사람을 구원할 수도 죄를 씻을 수도 없다. 하나님은 민법으로 악행을 억제하려 하시지, 영혼구원의 원천으로 삼으려는 의도가 없다 (로마서 13:4). 아이러니컬하게도 실정법을 통한 인간구원을 주장하는 자들은 다른 사람이 아닌 진화론적 인본주의자들이다. 인간의 문제는 상황적인 것이지 죄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에, 진화론자들은 그 해결을 정부 차원에서의 계획이나 교육개선으로 도모할 수 있을 것으로 희망한다. 그런 세상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 국가가 참 구세주로 존경받을 것임은 당연하다 하겠다.

 

법제화가 준거하는 규범은 무엇인가?

인간이 통치에 적용할 수 있는 규범은 단지 두 가지뿐이다. 즉, 하나님의 법이 아니면 인간의 의지다.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은 이 두 규범들 사이에서 중간적인 바탕은 없다고 이해했다. 그들은 창조주에 대한 충성을 선언하였으며, 하나님께서 초월적인 원리로서 법질서를 설정하셨음을 인정하였다. 우리들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창조주로부터 고유한 권한을 부여받았음을 자명한 진리로 확신한다.

이와 같이 선언하면서 독립선언서는 창세기의 기원설에 견고하게 근거하고 있는 서유럽의 1000년에 걸친 법의 전통을 미국의 헌장에 구현하였다. 수십년 동안 미국의 법학도들은 윌리엄 블랙스톤 경(Sir William Blackstone)으로부터 법 이론의 기초를 창세기에서 배워왔다. 블랙스톤의 영국 법률에 대한 논평(Commentaries on the Laws of England)은 미국 법학도의 주요 교재였다. 그의 논평은 법 연구의 접근방법일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법이었다.


1. 블랙스톤 전통 (The Blackstone Tradition)

블랙스톤은 법에 대한 총체적 분석의 근거를 일반계시(자연)에 대한 특별계시(성경)의 우월성 위에, 문자적 24 시간으로 된 6 일간의 창조주간 위에, 문자적 아담과 그의 원죄가 인간이성의 타락을 결과한 이유 위에, 그리고 재산권의 법률적 근거로 온 땅을 다스리게 허락하신(Dominion Mandate) 창세기의 기록 위에 세웠던 것이다. 블랙스톤은 성경의 권위를 사회의 유일한 합법적 근거로 단정하고 법은 사회의 변화에 따라서 진화한다는 사상을 반박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람은 법을 만들지 않는다. 그 대신에 사람은 법을 찾아낸다. 법은 대다수의 의지 이상의 그 무엇에 의해 정당화되어야만 한다. 법은 영원한 의(義)의 기초 위에 서야만 한다. … 이에서 정해진 원리를 우리는 계시된 법률이라, 또는 신성한 법률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런 법률은 성경 속에서만 발견된다. … 그리고 만약에 우리 이성이 우리의 최초의 조상이 죄를 범하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언제나 정욕에 의해 어지럽혀지지 않은 상태로 있고, 편견에 의해 흐려지지 않은 상태로 있고, 질병이나 방종에 의해 손상되지 않은 상태로 있다면, 우리 과업은 쉬울 것이다. … 그러나 사람마다 경험하는 자기 자신은 이에 역행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즉, 자기 이성이 타락하였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

계약, 재산권, 사범(私犯, 개인적 불법행위), 그리고 증거에 관한 기본적 관습법의 이론의 기원은 창세기의 처음 열한 장(章)들 안에 들어있다. 창세기는 하나님을 법의 부여자로(창세기 2:17) 명시하고 있다. 창세기는 하나님이 의(義)와 자비의 의미를(창세기 3:15), 최초의 관례로서의 결혼의 취지를(창세기 2:21), 범죄자에게 속죄와 복원의 필요성을 (창세기 2:17, 3:17, 9:6), 성약(聖約)의 뜻을(창세기 9:12, 13, 15:18), 국가의 살인자 사형집행 관할권을(창세기 9:6), 가족의 자손양육권을(창세기 1;28), 가족에 대한 가장의 지휘권을(창세기 3:16, 18:19), 환경에 대한 인간의 지배권(창세기 1:31), 등등을 제정하신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법에 대한 블랙스톤의 명백한 창조주의적 접근의 엄청난 영향에도 불구하고, 그의 저작물은 대부분의 학교에서 무시되고 천대받았다. 미국변호사협회 저널(American Bar Association Journal)의 1978년 7월 판에서 역사학자 헨리 스틸 코매거(Henry Steele Commager)는 벌어진 이 일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진화의 법으로 대체해버렸다.'


 2. 법에 대한 '과학적' 접근 (The Scientific Approach to Law)

”19세기 한 세기 내내 진화론의 영향 하에서 역사, 법률, 그리고 정치경제와 같은 구시대의 학문들에는 철저한 변화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인류학, 사회심리학, 비교신학, 범죄학, 사회지리와 같은 새로운 학문들이 대두하였다 …” (Julian Huxley).

1000년을 이어온 크리스천 법의 전통은 1870년에 들어와 맥이 끊겼다. 그 해 하버드 법과대학 신임학장 크리스토프 콜럼버스 랑델(Christopher Columbus Langdell)은 법학교육에 진화론적 접근을 시작하였다. 특히 법에서 창세기적 근본을 버리고 다윈주의에 뿌리를 대고 있는 철학을 취하였던 것이다.

랑델은 관습법에서 기독교 원리의 전통적 교수법을 포기하고 새로운 '케이스 북 방법'을 택하였다. 케이스 북 방법은 꾸준히 진화하는 판사들의 의견들을 통하여 법을 찾아내라고 가르치고 있었다. 최초로 출판된 그의 '케이스 북'인 Cases on Contrasts의 서문에서 랑델은 과학과 법률, 그리고 동일과정설과의 사이에 개재하는 상호관계를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과학으로 간주되는 법은, … 현재의 상태로 되기까지는 그 진전이 완만하였다. 환언하면, 법은 하나의 성장하는 생명체로서 많은 경우 신장하는데 몇 세기를 걸리기 일쑤였다. 법의 성장과정은 대체로 일련의 사건 사례들(cases)을 통하여 추적해볼 수 있다. 그런데 법 이론이 구현된 사건사례들을 연구하는 것이 법 이론을 통달하는데 유일한 방법이 아닌 이상, 많은 경우 가장 짧은 사례들의 연구가 최선의 방법이라 하겠다.”

법학자 허브 티투스(Herb Titus)는 설명하기를, ”랑델은 사건사례들은 법 이론들과 원리들의 '원천'이라고 믿었다. 사건사례는 법규를 탄생시켰다. 탄생된 법규는 완만하게나마 일련의 사건사례들을 통하여서 완숙한 법의 원리로 진화한 것이다”라고 했다. 랑델은 한 세기를 풍미하던 전통을 세웠다. 그 전통에 따라서 판관들은 스스로를 선재(先在)법을 해석할 의무에서 해방되었다고 내다봤다. 그들은 이제는 무슨 법을 적용할 것인가를 자력으로 결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랑델은 ”무슨 규범에 따라서 사람은 법을 제정하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인간의 자유이성을 지목하면서 대답에 대신하였던 것이다.

 

법률은 진화하는가? (Do laws evolve?)

랑델의 법의 진화설은 1765년에 블랙스톤의 Commentaries가 출판된 이후 유일하게 미국의 법률에 크게 영향을 미친 이론이었다. 케이스 북 방법이 출판된 이후 여러 해를 통하여 학자들과 법학자들은 진화론을 미국의 법체계에 통합하려는 노력을 계속하였다. 랑델의 주된 영향은 법률 교육에 분명하게 다윈주의 방법론을 도입하는 일이었으나, 법 이론에 진화론적 인본주의 형상을 갖추는 과업은 그의 후배 법학도들과 지적 후계자들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미합중국 대법원 판사 올리버 웬델 홈즈 2세(Oliver Wendell Holmes Jr.)는 누가 뭐라고 해도 20세기를 통틀어 최대의 영향력이 발휘하였던 독보적 법학자였다. 그의 묵중한 논문, The Common Law는 블랙스톤의 Commentaries를 법학도들의 입문교재의 자리에서 밀어내고 대신 들어앉았다. 홈즈는 "법의 생명은 논리가 아니고 경험"이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법원은 법의 진화를 가르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옳고 그름은 절대적 의미로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판관들은 어떤 주어진 시점에서 진화하는 사회에 가장 적절한 규범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스스로 결정하여야만 한다고 설파하였던 것이다.

30여 년 간 홈즈는 그의 명백한 진화론적 편견을 법정에 도입하였다. 그는 지나가는 말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사람에게 개코원숭이나 한 톨의 모래알과 다른 의미를 부여해야할 이유를 모르겠다.”

지조 굳은 진화론자 홈즈는 '인간 생명을 신성시하는 것은 관할지역 밖에서는 효력이 없는 순전히 제한적인 이상에 불과하다'고 선언하였다. 그는 Buck v. Bell에서 획기적인 결심을 피력하였다. 즉, 그는 버지니아 주정부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간주한 사람들에게 강제로 거세를 명령하는 우생학 법을 공포하였을 때 이를 지지 격려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퇴보한 후손들이 범죄로 사형집행 되기를 기다리는 대신에, 또는 그들이 기아로 저능인간으로 영락하게 내버려두는 대신에, 사회가 나서서 명시적으로 적절치 못한 자들이 후손을 이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세상을 위해 좋은 일임을 알아야 한다.”

홈즈와 그의 동료들은 임신중절의 합법화, 이유 없는 이혼, 동성결혼의 입법화, 그리고 헌법입안자들의 이상을 거부하는 헌법해석, 이런 목표를 위한 기초를 놓았던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법정은 헌법을 입안자들이 의도하였던 의미에 비추어 해석하여야 한다는 개념을 거부하고 진화론적 기준을 헌법해석에 적용하고 있다.

 

결론 (Conclusion)

악(惡)이 문화 전쟁에서 승리하는데 있어서 진화론이 광범위한 호응을 얻는 일까지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만 그 이론의 배후에 있는 가정들만으로도 족할 것이다. 진화론과 창조론과의 사이에 벌어지는 싸움은 그것이 주도권의 싸움이기 때문에 포괄적이다. 법의 원천은 언제나 문명의 참 주인이어야 한다. 법의 수여자는 변화하지 않기 때문에 규범은 절대로 진화할 수 없다(히브리서 13:8). 인간을 위한 주님의 도덕법은 그것이 의롭고 거룩한 하나님의 불변의 속성을 반영하기 때문에 결코 변할 수 없다. 이 원리들의 특정한 적용은 문화와 문화와의 사이에서는 다를 수 있겠지만 원리 그 자체는 변화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도덕과 정치의 분리, 아동 권리, 과다인구, 환경주의, 동성결혼, 교육, 극형, 형법체계의 목적, 이런 문제들에 관한 논쟁은 창세기에 근거하여 토론을 펼쳐야만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들은 창세기 말씀으로 무장하고서만이 권위를 가지고 오늘날의 문제들을 명료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Douglas W. Phillips, Esq., is an attorney and adjunct professor of apologetics at ICR.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pubs/imp/imp-303.htm

출처 - ICR, Impact No. 303, 1998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90

참고 :

Jerry Bergman
2004-07-26

냉혹한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에 대한 다윈의 영향

: 카네기, 록펠러 등의 자본가들과 진화론

(Darwin's Influence on Ruthless Laissez Faire Capitalism)


개요 (Abstract)

몇몇 지도자적 위치의 '강도 귀족(robber baron, 착취로 축재한 19C 자본가)'들에 대한 글들을 검토하여 보면, 그들의 많은 수가 강자가 궁극적으로 약자를 지배한다는 다윈 사상의 영향을 극명하게 받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윈 사상을 신봉하였던 자본가들은 결국 강자의 약자 지배가 도덕적으로 정당하고 완전히 자연스럽다고 믿었기 때문에, 무자비한 (때로는 비윤리적이며 불법적인) 상거래 관행이 과학적으로도 정당화된다고 확신하였다. 다시 말해서 다윈주의가 표방하는 관념과 결론은 '역사 전개'에 불가피한 부분이라고 확신한 그들은 무자비한 상거래관행이 정당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서론 (Introduction)

다윈의 세계관은 나치즘이나 공산주의의 발전뿐만 아니라, 1800년대와 1900년대에 번창한 냉혹한 자본주의의 융성에도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Morris and Morris, 1996). 자본주의에 따라다니는 오명의 핵심은 남은 중요하지 않다는 극단적 개인주의에서 출발하여 마침내 '약한' 회사를 착취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동시에 타당한 상행위라는 그들의 확신에서 연유되었다. 소위 robber baron들은 그들의 행동이 자연법에 의해 정당화되는 불가피한 역사의 소산이라고 추단(推斷)하였던 것이다 (Josephson, 1934). 그들 중 크리스천으로 성장한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그들은 기독교교리를 거부하든가, 사회주의적 다윈주의를 포용하기 위하여 기독교교리를 수정하려 하였다. 겔트루드 힘멜파브(Gertrude Himmelfarb)는 다윈사상이 영국에서 수용된 데는 부분적으로나마 그것이 어떤 특수층의 탐욕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르기를, 자연선택 이론이 영국 땅에서 발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이론이야말로 냉엄한 영국의 국가이념이 필요로 하는 원자론적(原子論的)이며, 이기적(利己的)인 의식구조에 기여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에서 다윈은 기본 단위는 개인이며, 기본 본능은 이기심이며, 기본 활동은 투쟁이라고 사뭇 유순한 척 말하였다. 스펭글러(Spengler)는 기원을 '생물학에 대한 경제학의 적용' 이라고 기술하면서, 그것은 영국에서 빅토리아여왕 조에 풍미하던 자본주의 윤리와 맨체스터 경제학의 '탐욕 철학'이었기 때문에…영국 공장의…자연선택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풍기고 있다(1962, p. 418)고 지적했다.”

라셀(Rachels)은 자본가들이 생물학의 '적자생존' 이론을 "살인적 경쟁을 승인하는 경제계의 윤리적 권유"로 해석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1990, p. 63, see also Hsu, 1986, p. 10). 쥴리안 헉슬리(Julian Huxley)와 키틀웰(H.B.D. Kittlewell)은 다윈주의 사회학은 ”자유기업에 영광을 돌린 결과 경제사회를 무자비한 상행위와 전쟁, 비과학적인 우생학과 인종주의로 인도하여 마침내 히틀러와 나치의 이념을 낳았다”고 결론지었다 (헉슬리와 키틀웰에서, 1965, p. 81).

 

냉혹한 자본주의 (Ruthless Capitalism)

다윈주의는 공산주의자들의 무자비한 착취뿐만 아니라, 앤드루 카네기(Andrew Carnegie)와 죤 록펠러 (John D. Rockefeller)와 같은 독점 자본가들의 무자비한 상행위를 정당화하였다. 켄네스 슈(Kenneth Hsü) (1986, p. 534)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다윈주의는 영국과 미국에서 경쟁적 개인주의와 자유방임적 자본주의 상행위를 변호하는데 이용되었다.”

스탈린, 마르크스, 레닌, 그리고 히틀러와 마찬가지로 카네기(Carnegie)도 한 때는 기독교교리를 믿었으나, 결국에는 포기하고 다윈주의를 수용한 후 저 유명한 다윈주의 사회학자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와 친밀한 친구관계를 유지했다. 카네기는 자서전에서 친구 몇 사람과 함께 기독교교리에 회의를 품게 되었을 때를 이렇게 회고하였다.

”… 기독교교리 뿐만 아니라, 초자연적인 요소, 그리고 대속을 통한 인간구원의 계획과 그 위에 세워진 온갖 조직구조까지도 포함하여, 내가 회의를 품게 되었을 때, 다윈과 스펜서의 저작물을 만났던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 나는 빛이 홍수와 같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으며, 모든 것이 분명하게 밝아지던 경험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나는 신학과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을 물리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진화의 진리를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더 좋게 자라가는 것은 다 좋은 것이다' 라는 격언이 내 좌우명이 되었으며, 나의 진정한 위안의 원천이 되었다. 사람은 원죄를 가지고 지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저급한 모습에서부터 고급한 모습으로 높여졌던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완성을 지향한 행진을 가로막는 어떤 막힘도 상상할 수 없다” (1920, p. 327).

아래 인용된 카네기의 말은 그의 지론을 가장 잘 요약하고 있다.

”경쟁의 법은 그것이 선의냐 악의냐 와는 상관없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경쟁을 피할 수 없다. 경쟁의 대체 개념은 아직 발견된바 없다. 법이 때로는 개인한테는 가혹할 수도 있을 것이나, 그것이 경주의 최선이 되는 이유는 그것이 모든 삶의 현장에서 적자의 생존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Hsu의 글을 인용함, 1986, p. 10).

기록에 의하면, 죤 록펠러는 언젠가 한 번 ”대기업의 성장은 단지 적자생존의 결과다 … 자연의 법칙이 성취됐을 따름이라는 말이다 … ”라고 말했다 (Ghent, 1902, p. 29). 명목상의 크리스천 명사로 행세하던 록펠러 집안사람들은 진화론을 전폭적으로 수용하다 못해 성경 초두의 책들을 신화라고 치부해버렸다 (Taylor, 1991, p. 386). 어떤 박애주의자가 윌리엄 제닝즈 브라이언(William Jenning Bryan, 스코프스 재판에서 창조론을 변호함)의 이름을 딴 대학의 설립을 위해 1만 달러의 희사를 약속하였을 때, 존 록펠레 2세는 이에 응수하기 위해 바로 그 날 공개적인 反창조주의 대학교인 시카고 신학교(Chicago Divinity School)에 100만 불을 기부하였다 (Larson, 1997, p. 183). Morris and Morris는 록펠러의 철학이 철도계의 거물인 제임즈 힐(James Hill) 뿐만 아니라, 아마도 당시의 대부분의 자본가들에 의해서 수용되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1996, p. 87). Morris and Morris가 암시하는 바에 의하면, 수많은 현대의 진화론자들도

”…사회주의적 다윈주의자들의 극단적인 경향을 한탄한다. 그러나 사실은 이렇다. 즉, 다윈주의야말로 사업계와 정치계에 고루 팽배하던 무자비한 경쟁에 과학적인 재가를 허락해주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19C의 자유방임주의적인 자본가들 사이에서 크게 인기가 있었다.” (p. 83).

이런 암시뿐만 아니라 Morris and Morris는 다시 이렇게 지적한다. 즉, 좌익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냉정한 극우 자본가들도 한가지로 反창조론자들이다. 그리고 '심지어 상호간에 싸움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도 그들이 창조주의에 대항할 때만은 공동전선을 펼친다 … (p. 82). 기독교를 포기하지 않는 자본가들도 많다. 그러나 그들은 기독신앙을 다윈주의에 대한 신념과 혼합하려 한다. 그 결과 그들의 신앙은 어쩐지 유신론적 진화론이라는 절충형태가 되어버렸다. 비록 대부분의 미국 사업가들이 짐작컨대 의식화된 사회주의적 다윈주의자는 아닐지라도,

”… 그들은 자신들이 거둔 것과 같은 성공은 상대적으로 덜 성공적인 경쟁자들을 유린하여 얻어진 것이라기보다는 자신들의 근면과 덕행의 소산이라고 정의하였다. 어쨌거나 그들은 결국 스스로를 크리스천으로 인정하였으며, '너희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과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만큼 남을 대접하라'는 가르침을 충실하게 지켰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비록 그들은 불가능한 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부의 신을 동시에 섬기려하였지만, 그들은 기독교교리를 다윈의 생존투쟁과 적자생존 이념에 순응시키는데 아무런 어려움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동업자들과 결코 경제전쟁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의식하고 있었다.” (Oldroyd, 1980, p. 216).

자유방임적인 자본주의에 대한 다윈의 중요한 기여를 기록한 몇 가지 연구발표가 있다. 무연탄 파업연대(Anthracite Coal Strike Commission) (1902-1903)의 청문회를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 석탄 트러스트는 '적자생존' 이론에 개인의 자유와 권한을 가미하여 다윈의 이념을 설교하였다' (Doukas, 1997, P.367). 이 연구는 '미국의 국가 이념 안에서 엿볼 수 있는 사회주의적 다윈주의의 인기를 법인자본주의의 쇄신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Douka, 1997, p. 367)라고 하였다.

로젠탈(Rosenthal, 1997)은 역사적으로 보아 생물속생설(생물은 생물에서만 발생한다는 이론)은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전쟁, 그리고 자본주의들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들을 수용하는 태도를 증진시키는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생물발생 이론은 인간의 사회적 행동이 어떤 생물발생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새로운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서 생물속생설은 사업/사회에서의 경쟁, 남성우월주의, 공격적인 사회현상, 영토주도권 싸움, 외국인을 싫어함, 그리고 심지어 애국심, 이를 위한 전쟁, 그리고 인종간의 대량학살까지도 유전학적인 근거를 가진 인간의 보편적 특질이라는 새로운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물발생 이론은 미국사회학 역사의 대부분을 통하여 두드러진 위치를 점하여왔다. 로젠탈(Rosenthal)은 쿨리(Cooley)나 소로킨(Sorokin)나, 섬너(Sumner), 그리고 로스(Ross)는 물론 심지어 파크(Park)까지도 지나날 반동적 사회정책을 권장하던 생물학적 인종주의 이론에 추파를 던지고 충실하였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오늘날 비즈니스에 집요하게 남아있는 다윈사상

비즈니스에 적용되고 있는 다윈주의 개념은 오늘날까지도 우리 곁에 팽배하다. 로버트 블레이크(Robert Blake)는 1996년에 출판한 Corporate Darwinism의 공동저자들과 더불어 현대적 다윈주의를 비즈니스에 적용하려 기도하였다. 그들은 비즈니스가 매우 예측 가능한 방법으로 진화할 뿐만 아니라, 특히 인간진화의 단계들과 매우 흡사한 단계들을 거치어 진화한다고 결론지었다. 이와 같은 '비즈니스 진화'는 자연스러운 진화라고 하였다. 즉 비즈니스는 경쟁상대를 먹든가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경쟁자에게 먹힌다는 다윈의 원리를 따랐던 것이다.

 

요약 (Summary)

다윈사상이 나치즘이나 공산주의의 발전과 성장에만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던 것이 아니고, '강도 귀족(robber baron)'이라는 말로 훌륭하게 설명되고 있는바와 같이, 자본주의가 무자비한 형태로 성장하고 발전하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것은 사실이다. 만약에 다윈이 그의 진화론을 발전시키지 않았어도 과연 냉정한 자본주의가 실제로 꽃을 피울 수 있을까에 대해 결정적으로 대답하기는 어렵지만, 만약에 카네기나 록펠러, 그리고 다른 자본가들이 어린 시절에 품고 있던 순수한 유태교적 그리스도교적 세계관을 계속 포용하고 있었다면, 그리고 다윈주의자가 되지 않았다면, 자본주의는 1800년대 후반에서와 1900년대 초반에 그랬던 것처럼 무자비한 이념이 되지 않았을 것은 명백하다. Morris and Morrs (p. 84)가 암시하는 바에 의하면, 다윈이 출현하기 오래 전에 이미 다른 동기들(탐욕이나 야망, 그리고 심지어 일종의 선교사적 열정까지 포함된 동기들)이 포악하고 무원칙한 robber baron 상거래 행위를 자극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다윈주의는 자본주의에게 일종의 외양상의 과학적인 합리성을 부여하여 주었기 때문에, 지난 세기(20세기)의 초반에 자본주의가 너무도 두드러지게 극단으로 흐르게 된 원인을 제공하였던 것이다.


*Acknowledgements: I want to thank Bert Thompson, Ph.D. Wayne Frair, Ph. D., and John Woodmorapper, M.A., for their comments on an earlier draft of this article.

 


References

Blake, Robert, Warren Avis and Jane Mouton. 1966. Corporate Darwinism. Houston, Tx: Gulf Pub.

Caarnegie, Andrew. 1920. Autobiography of Andrew Carnefie, ed. John C. Van Dyke. 1986; reprint, Boston: Northeastern Uninversity Press.

Doukas, Dimitra. 1997. 'Corporate Capitalism on Trial: The hearings of the Anthracite Coal Strike Commission, 1902-1903. 'Identities: Global Studies in Culture and Power, 3(3): 367-398.

Ghent, William. 1902. Our Benevolent Feudalism. New York: Macmillan.

Himmelfarb, Gertrude. 1962. Darwin and the Darwinian Revolution. New York : W.W. Norton.

Hsu, Kenneth. June 1986. 'Darwin's Three Mistakes,' Gerlogy, (vol. 14), p. 532-534.

Hsu, Kenneth. 1986. The Great Dying:Cosmic Catastrophe, Dinosaurs and the Theory of Evolution. NN. Harcourt, Brace, Jovanov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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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ephson, Matthew. 1934. The Robber Barons. New York: Harcourt and Brace.

Larson, Edward J. 1997. Summer for the Gods: The Scopes Trial and America's

Continuing Debate Over Science and Religion. New York: Basic Books.

Oldroyd, D.R. 1980. Darwinian Impacts. Atlantic Highlands, NJ: Humanities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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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enthal, Steven J. 1977. Sociobiology: New Synthesis or Old Ideoloy? American Sociological Association.

Taylor, Ian. T. 1991. In the Minds of Men: Darwin and the New World Ordr. Minneapolos: TFE Publishing.

Jerry Bergman, Ph.D., is on the Biology faculty at Northwest State Sollege in Ohio.

 

*참조 : Darwin’s critical influence on the ruthless extremes of capitalism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5601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index.php?module=articles&action=view&ID=454

출처 - ICR, Impact No. 333, 2001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82

참고 :

Henry M. Morris
2004-07-26

진화론은 과학이 아닌 종교이다.

(Evolution Is Religion - Not Science)


       필자는 최근 2편의 Impact 글에서1, 2 진화론자들의 이야기를 인용하여 무기입자들로부터 사람으로 진화했다는 생각이 과학적 이론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얘기한 바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나 과거 화석의 기록에서도 진화적인 전이형태들이 관찰되지 않았고, 보편적 법칙인 '엔트로피 법칙(열역학 제2법칙)'은 그러한 것들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렸다.

진화론자들은 진화가 과학적 사실이라고 주장하지만, 창조과학자들과의 과학적 논쟁에서 항상 패배하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 진화론자들은 과학적 논쟁의 기회는 갖으려하지 않고 창조론자들에 대한 일방적인 공격만을 가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창조론자들과의 공식적인 논쟁은 피해야하는데, 그 이유는 그러한 논쟁들이 득이 되지 않고 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여전히 창조론자들의 메시지를 반박할 필요가 있다.” 3

그들은 창조론자들의 주장에 그토록 반대해야 하는가? 왜 그들은 철저한 반창조론자들이 되어야 하는가?

진화론자들이 진화를 믿는 것은 그들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억지로라도 창조주가 없이 모든 생명의 근원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진화론은 그러므로 무신론 종교인 셈이다. 어떤 이는 이것을 인본주의라고도 부르고 있다. 그리고 신세대 진화론자들은 범신론의 한 종류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모두 같은 것을 의미한다. 무신론이든지 인본주의(혹은 범신론)든지 간에, 그 목적은 우주나 인간을 포함한 모든 구성물에 대한 기원을 설명하는 이론에 있어서 신이라는 존재를 없애고자 하는 것이다.

”인본주의 철학의 핵심은 자연주의이다. 자연세계의 일들은 그들 자체의 원리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며, 신이나 초자연적인 조절과 안내 따위는 없으며, 우리 인류는 그러한 과정 중의 산물이다. 초기 인본주의 운동의 철학자들이 인본주의나 자연주의 중 어느 용어가 자신들의 입장을 더 잘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토론한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 두 개념은 상호보완적이며, 분리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4

자연주의와 인본주의는 일반적으로 과학이나 생명의 유지, 우주 등에서 신의 존재를 배제하기 때문에, 그들의 입장이 분명 무신론인 것은 분명하다. 무신론은 유신론이 아닌 이상 하나의 종교인 셈이다! 광신적인 무신론 진화론자인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 조차도 무신론이 진실인 것은 증명할 수 없다고 했다.

”물론 우리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5

그러므로 그들은 그것을 믿어야만 하고, 진화론을 종교로 만들었다. 진화론의 무신론적 성향은 허용되는 것뿐만 아니라, 진화론적 생각의 지도자들에 의해서 주장되고 있다. 예를 들면 Ernst Mayr는 이렇게 말했다.

”다윈주의는 모든 초자연적 현상이나 원인들을 거부한다”6

캔사스 주립대의 한 생물학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데이터가 지적 설계자를 설명한다해도, 그러한 가설은 자연주의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과학에서부터 배제된다.”7

매우 영향력 있는 진화론자인 하버드 대학의 굴드(Stephen Jay Gould)와 윌슨(Edward Wilson), 영국의 도킨스(Richard Dawkins), 코넬 대학의 프로바인(William Provine), 수많은 다른 진화론자들이 무신론자임은 과학계에 잘 알려져 있는 바이다. 심지어 저명한 과학철학자이자 열렬한 다윈주의 무신론자인 마이클 루즈(Michael Ruse)는 진화론은 그들의 종교라고 얘기한바 있다.

”진화론은 단지 과학이라기보다는 견습자(practitioner)에 의해 발전되었다. 진화론이 의미와 도덕성을 지닌 기독교를 완전히 대신할 수 있는 이상, 특정한 종교로서 공표 되었다… 진화론은 종교인 셈이다. 이것이 초기 진화론의 실체였고 오늘날도 여전히 그렇다.” 8

'종교(religion)'를 말하는 다른 방법은 실재사물을 바라보는 '세계관(worldview)' 이다. 진화론적 세계관은 생명체의 진화뿐 아니라, 전체 우주의 진화에도 적용된다. 우주적 진화론의 영역에서 자연주의 과학자들은 생명과학자가 실험하는 것보다 훨씬 실험적인 면에서 멀리 떨어져있다. 그들은 난해한 수학과 형이상학적 고찰을 통해 진화론적 우주론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Jeremy Rifkin은 이런 놀라운 놀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주론들은 사회에 의해 엄청난 기만(deceptions)들로 재구성된 물리적 실체의 작은 조각들로 구성된다.”9

그들은 모든 (진화론에 반하는) 과학적 근거들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믿어야만 한다. 그것은 과학적 근거가 그것을 증명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러한‘기만’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다음의 놀라운 구절을 주목하기 바란다.

”우리는 자연의 구성물중 일부가 들어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물질주의에 대해 확실치 않은 것에 대해 과학계가 관용적임에도 불구하고, 과학의 한 면을 취했다.....… 우리는 관찰되는 사물에 대해 물질적 요인을 먼저 고려하도록 되어있으며, 물질주의적 설명만을 생산해내도록 개념이 잡혀있다. 더욱이 물질주의는 절대적인데, 이는 우리의 영역 안으로 신의 발걸음을 허락할 수 없기 때문이다.” 10

이렇게 솔직한 말을 한 사람은 하버드 대학의 Richard Lewontin 이다. 진화가 실험적 과학이 아니기 때문에, 그 실험을 평가할만한 방법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종류의 이야기들이 교과서를 장식하는 데에는 쓰일 수는 있어도, 그것을 사실로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최근에 다른 진화론자에 의해 쓰여진 것에는 진화론자들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연결고리가 빠진 조상을 규명할 수 없고, 진화가 어떤 식으로 일어났을 것인가를 설명해줄 만한 실험 가능한 이론을 짤 수가 없다. 애석하게도 어떻게 파충류가 마른 땅을 처음으로 정복하게 되었는지, 새들이 어떻게 날기 위한 날개와 깃털을 갖게 되었는지, 어떻게 공룡이 멸종했는지, 어떻게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는지 등은 편견에서 오게 된 상상의 산물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11

놀랍게도 물리학자에 의한 이러한 정직한 고백은 과학자들의 근본이 자연주의임을 암시하고 있다. 믿음의 학생들은 가르치고 있는 고등교육을 받은 대학교수들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나는 효과적으로 그들의 머리를 말끔히 비우기 위해서 신뢰를 사용한다. 우리의 교육방법은 1차적으로는 선전의 방법이다. 우리는 설명없이 우리의 입장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를 제시한다. 우리는 단지 현재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론들에 대한 증거와 논증만을 소개하고 반대되는 어떠한 근거도 제공하지 않는다.”12

진화론자 교수에게 과학을 배우고 있는 창조론자 학생들은 진화론에 관한 진술들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것인가를 증명할 수 있다. Ruse가 지적했듯이 실제로 진화론은 종교성을 띄는 무신론을 기초로 하고 있는 비과학적 토대를 가지고 있다. 코넬 대학의 Will Provine은 이것에 대해 솔직하게 말한 과학자 중 한 명이다.

”창조론자들이 주장하듯이 현대 진화론에 대한 믿음은 사람을 무신론자로 만든다. 종교적 관점이 무신론과 구별될 수 없을 경우에만, 진화론과 같이 양립될 수 있다.”13

다시 한번 강조하면 진화론은 진화론자들의 장황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과학이 아니다. 진화론은 하나의 철학적 관점일 뿐이다. 다른 저명한 진화론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진화론은 그들이 느끼듯이 모든 것을 설명해야만 한다… 모든 것을 설명하는 하나의 이론은 실제 설명할 가치를 가지지 못할 때 폐기되어야 할 것이다. 진화론에 반대되는 것도 거짓임을 증명할 수가 거의 없기 때문에 논의될 수 있다. 실험적 증거들은 미미하다.”14

이러한 주장은 매우 일반적이다. 실제 진실된 진화(대진화를 의미)를 설명하는 실험적 증거는 적은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적 형태의 진화라는 개념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하나님에 대항하는 오랜 전쟁(The long war against God)’15 이란 나의 책에서 역사의 초기부터 진화론의 일부가 반창조론자들에 의해 가짜 증거들이 근거로 제시되었음을 밝혔다. 이런 반창조론자들은 모든 고대 종교를 포함하며 오늘날의 세계적인 종교인 불교, 힌두교 등을 포함한다. 심지어는 창조론자들이 갖는 종교(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내에서의 자유주의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포함하고 있다.

20세기 진화론자들의 리더는 일반적으로 신다윈주의의 창시자인 줄리안 헉슬리(Julian Huxley)로 생각된다. Huxley는 진화론은 ”계시가 없는 종교 (religion without revelation)”라고 부르며, 그것을 제목으로 책을 썼다. 최근 책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 진화는… 지구상에서 나타난 생각 중 가장 강력하고 가장 설득력 있는 생각이다”16

그 책에서 그는 열정적으로 하나님 중심의 종교적 관점으로부터 진화론 중심의 사고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7 그리고는 계속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에 대한 가설은 지혜를 필요로 하며 도덕적 부담이 된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결론을 맺고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대신할만한 어떤 것을 만들어야 한다.”18

물론 여기서 말한 어떤 것이란 진화 인본주의의 종교이며, 오늘날 진화 인본주의자들이 시도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진화론에 반대되는 과학적 예의 요약을 마치며, 독자들은 모든 인용문들이 광신적인 진화론자들의 글들임을 주목하기 바란다. 성경의 인용은 전혀 없으며, 창조론자들의 진술도 전혀 없다. 진화론자들 스스로 진화는 과학이 아니라, 무신론으로서 종교적 신념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References
1 Morris, Henry M., 'The Scientific Case Against Evolution - Part I,' (Impact No. 330, December 2000), pp. i-iv.
2 Morris, Henry M., 'The Scientific Case Against Evolution - Part II,' (Impact No. 331, January 2001), pp. i-iv.
3 Scott, Eugenie, 'Fighting Talk,' New Scientist (vol. 166, April 22, 2000), p.47. Dr. Scott is director of the anti-creationist organization euphemistically named The National Center for Science Education.
4 Ericson, Edward L., 'Reclaiming the Higher Ground,' The Humanist (vol. 60, September/October 2000), p. 30.
5 Dawkins, Richard, replying to a critique of his faith in the liberal journal, Science and Christian Belief (vol. 7, 1994), p. 47.
6 Mayr, Ernst, 'Darwin's Influence on Modern Thought,' Scientific American (vol. 283, July 2000), p. 83.
7 Todd, Scott C., 'A View from Kansas on the Evolution Debates,' Nature (vol. 401. September 30, 1999), p. 423.
8 Ruse, Michael, 'Saving Darwinism from the Darwinians,' National Post (May 13, 2000), p. B-3.
9 Rifkin, Jeremy, 'Reinventing Nature,' The Humanist (vol. 58, March/April 1998), p. 24.
10 Lewontin, Richard, Review of The Demon-Haunted World, by Carl Sagan. In New York Review of Books, January 9, 1997.
11 Bowler, Peter J., Review of In Search of Deep Time by Henry Gee (Free Press, 1999), American Scientist (vol. 88, March/April 2000), p. 169.
12 Singham, Mark, 'Teaching and Propaganda,' Physics Today (vol. 53, June 2000), p. 54.
13 Provine, Will, 'No Free Will,' in Catching Up with the Vision, Ed. by Margaret W. Rossiter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9), p. S123.
14 Appleyard, Bryan, 'You Asked for It,' New Scientist (vol. 166, April 22, 2000), p. 45.
15 Morris, Henry M., The Long War Against God (Grand Rapids, Michigan: Baker Book House, 1989), 344 pp.
16 Huxley, Julian, Essays of a Humanist (New York: Harper and `Row, 1964), p. 125.
17 Ibid., p. 222.
18 Ibid.
* Dr. Morris is Founder and President Emeritus of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pubs/imp/imp-332.htm

출처 - ICR, Impact No. 332, 2001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59

참고 : 6553|6486|6550|6149|6132|5081|5130|4639|5740|5683|5420|5994|6449|4821|6263|6018|6468|6148|6474|5510|5947|5954|5591|6211|5589|5602|5966|4837|6090|485|3890|390|2349|3782|6438|4510|5474|6495|5458|6243|5863|2698|6399|5460|6489|5135|5000|4828|6118|6394|6168|6138|5996|774|5497|5827|5158|5962|6358|6258|6119|4066|5544|5443|6556|6501|6096|5459|5274|5450|5909|6461|6436|5586|4542|5041|3391|6393|6476|6292|5796|5768|6271|5462|6146|6439|3591|6125|3426|6285|6152|6153

Henry M. Morris
2004-07-26

진화론에 반대되는 과학적 사례 2 

(The Scientific Case Against Evolution : A Summary Part Ⅱ)


      우리는 현 진화론을 주장하는 과학자들의 진술로부터 한 종류의 개체로부터 더욱 복잡한 종류의 개체로 수직적 진화를 한 예를 인류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음을 지적했다.

진화론자들의 비슷한 진술들도 과거의 지질학적 시대에서 발견된 수십억 개의 화석들 중에서 그러한 진화 중간단계에 해당하는 예들은 아직 보고되지 않았다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

실제로, 이렇게 진화에 반대되는 증거들은 동시에 특별한 창조의 강력한 증거들이다. 사실 그것들은 기원의 창조모델에 기초한 특이적인 예견들인 것이다.

창조론자들은 명백히 창조된 것들간의 산재해있는 벽들을 분명히 예견해왔다. 비록 각 종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변이들이 있지만, 그것들은 멸종되지 않고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창조론자들은 또한 복잡하게 조직된 것에서의 수직적 변화는 좋게 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악화되는 것이라는데 동의한다. 왜냐하면 창조주는 시작될 때부터 정확하게 모든 것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화에 반대되는 논쟁과 증거들은 동시에 창조에 대한 긍정적인 증거가 되는 것이다.

 

유전학의 애매한 증거

진화에 대한 직접적인 어떠한 증거도 턱없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진화론자들은 DNA나 다른 생화학적 물질 같은 애매한 증거들이 진화가 과학적인 사실이라는 점을 증거해 준다는 입장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많은 진화론자들조차도 DNA 자체가 진화의 증거가 된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DNA가 모든 개체에 있어서 공통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다른 두 개체간의 유사한 DNA 구조가 공통조상으로부터 진화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주장하곤 한다.

그러한 주장은 근거가 없는 얘기다. 창조주가 생명체들을 창조할 때 같은 종류의 DNA 정보를 사용하지 않거나,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히려 진화의 증거가 아니라, 지적설계와 창조의 증거인 것이다.

DNA 유사성의 예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예는 단지 DNA 유사성이 90% 이상이 되는 사람과 침팬지의 유사성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과 침팬지의 생리학적 유사성을 고려할 때 그리 놀라울만한 것은 아니다. 왜 그들은 사람과 거미간의 DNA 유사성을 비교하지는 않는가?

유사성(유전학적, 해부학적, 발생학적 등 어느 것이든)은 진화와의 관계보다는 동일한 설계자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것을 더욱 잘 설명해준다. 유사성보다는 개체간의 큰 차이가 더욱 중요하다. 진화론은 모두가 공통 조상을 갖는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지만, 이것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이 없다. 어떻게 자연적 과정에 의해서 이렇게 커다란 틈이 도대체 발생했단 말인가?

사람과 침팬지의 명백히 적은 DNA의 차이는 해부학적으로 지성 등 여러 면에서 큰 차이를 나타낸다. 모든 유인원들과 인류와의 피상적인 유사성은 실제 관찰에서 보는 차이와 비교할때 아무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진화론자들은 중간단계가 비어있는 틈을 발전하는 DNA나 다른 증거들이 메워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진화의 증거가 화석기록이라는 마법에 걸려 있다. 그러나 화석증거나 비교형태학도 때론 그 결과가 앞뒤가 맞지 않을 때도 있다. 유전학 얘기에서 일관성 없는 많은 것 중 일부를 이야기하자면 Roger 박사가 Part I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이러한 상황을 이렇게 요약했다.

”전반적인 영향은 분자 계통발생학이 결코 처음의 진화론자들이 믿었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유전체 변화의 복잡한 역동성은 분자 계통발생학에 여러 다른 결과들을 갖게 된다. 다른 유전자들이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을 포함해서 말이다.” 1

Lewin은 전통적인 다윈주의의 증거들과 관련된 계통발생학적 증거들이 낳는 몇 개의 전형적인 자기모순을 언급했다.

”전통적인 분류방식에 의해 식충류에 분류되는 'elephant shrew'는 사실 진짜 코끼리와 매우 근접해있다. 소는 말보다는 돌고래에 더욱 가깝다. 오리너구리는 캥거루와 코알라와 진화적으로 같은 위치에 있다.” 2

이러한 접근 방법은 매우 이상한 비교가 되곤 한다.

유전자 암호에서 소위 '정크 DNA(Junk DNA)'가 많은 것이 진화의 특별한 증거로써 제시되었다. 특히 이들 Junk DNA는 돌연변이가 일어났던 것으로 생각되었고, 때론 pseudogenes(가짜 유전자-역자주)3 라고 불린다. 그러나 쓸모 없는 유전자로 간주되던 것이 실제로는 유용한 기능을 하는 것이라는 증거가 빠르게 축적되고 있다.

많은 유전자가 유전자 더미 속에서 이미 밝혀지고 있고, 쓰레기로 간주되던 것들이 과학적 암호인 것으로 밝혀지는 것을 보게 된다. 4

그러므로 정크 DNA (Junk DNA, 심지어는 pseudogene이라 불리던)가 기능이 없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단지 무지를 드러낸 것이었고, 유익한 연구에 대한 방해였던 것이다. 사람의 흔적기관도 진화의 증거로써 한때 간주되었지만, 현재 모두가 특이한 쓰임새가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이것은 단지 그것의 쓰임새가 과학자들에 의해서 아직 밝혀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기껏해야 이런 류의 증거들은 엄밀히 얘기하면 부수적인 것이다. 이런 증거들은 창조모델에서 기대되는 것처럼, 태초의 창조 후 점차 쇠퇴되어 가는 과정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진짜 문제는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진화에 과연 목격할만한 증거가 현재 있는지, 또는 과거에 있었는지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보아왔듯이 심지어 진화론자들조차도 진화의 실제적인 과학적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진화에 대항하는 가장 좋은 질문은 ”왜 목격 가능한 진화적 변화들은 모두가 수평적이거나, 소진화로 불리는 사소한 변화이거나, 퇴화나 멸종의 방향으로 향해 가는가?”이다. 그 대답은 과학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열역학 법칙에서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진화는 불가능한 일이다

현재에나 과거에나 진화에 대한 증거가 없는 가장 과학적 이유는 자연의 가장 기본이 되는 법칙 중 하나가 이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 법칙은 바로 열역학 제 2법칙이라고 알려져 있는 엔트로피의 법칙인데, 이는 실제 세계에서 모든 시스템은 쇠퇴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질서가 파괴되고, 복잡성이 감소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경향을 말한다.

엔트로피의 법칙은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잘 증명된 자연법칙 중 하나이다. 이 법칙은 단지 물리학이나 화학 시스템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이나 지질학, 모든 시스템에서 예외 없이 적용되는 법칙이다.

”열역학 제 2법칙에 어떠한 예외도 발견되지 않았다. 심지어는 매우 작은 것에서조차도 말이다. 제 1법칙인 에너지에 관한 것에서처럼 정확하고 모델의 세부사항에 영향을 받지 않는 법칙이 존재하기 위해선 구성하고 있는 상호작용하는 물질들에 영향을 받지 않는 논리적 기반이 있어야만 한다.” 5

이 인용문의 저자는 일차적으로 물리학을 언급하고 있지만, 열역학 제 2법칙이 모델의 세부사항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게다가 실제적으로 모든 진화론자들은 환원주의자들(reductionists)이다 - 즉 그들은 생명체 내에는 생명의 기원이 되는 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모든 생물학적 과정들은 물리, 화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생물학적 과정들은 또한 열역학 법칙에 따라 조정되어야하고, 실제로 모든 생물학자들은 이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에너지의 유입이 있는‘열린계 (open system)’이고, 이를 통해 모든 시스템이 자연적으로는 쇠퇴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진화가 유지될 수 있으므로 논쟁은 해결될 수 있고, 진화는 어쨌든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뎀스키(W.A Dembski)의 지적설계(Intelligent Design) 라는 최근의 감명 깊은 책을 진화 곤충학자가 거들떠보지 않는 이유이다. 이 과학자는 열역학 제 2법칙에 위반되는 진화의 결점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라고 함으로서, 자연적인 과정으로 복잡성이 증가될 수 있다는 자신의 생각을 지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결점은 무엇인가?

”비록 닫힌계(closed system)에서 전체적인 무질서도가 감소되지 않을지라도, 커다란 시스템 내의 국소적 질서(local order)는 지적 요소의 작용 없이도 증가할 수 있다.” 6

이러한 엔트로피 법칙에 대한 얕은 생각의 답변은 전형적인 진화론의 위선이다. 열린계에서 어떤 조건에서는 부분적인 질서는 증가할 수 있지만, 진화는 그러한 조건들을 만나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이다. 간단하게 얘기하면 지구는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오는 에너지로부터 열려있다는 것이 어떻게 태양열이 열린계나 닫힌계에서 복잡성을 증가시키는 변화를 했는지에 대한 아무런 해답을 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가장 잘 알려지고 가장 근본적인 열역학 방정식은 열린계에서 열의 유입이 그 시스템의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증가시킬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열린계에서 알려져있는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경우는 어떤 종류의 안내 프로그램을 따를 때와 하나 이상의 에너지 전환 메커니즘이 있는 경우에서이다.

진화는 이 두 가지의 경우에 다 해당되지 않는다. 돌연변이는 질서화되는 메커니즘이 아니라, 제 2법칙에 따라 질서가 파괴되는 메커니즘이다. 그것들은 모두 해롭고, 때론 아무런 해가 없는 정도이지, 유익하진 않다 (적어도 지금까지 관찰된 돌연변이에 있어서는). 자연선택은 질서를 만들어낼 수 없고 단지 질서가 와해된 돌연변이를 걸러줄(제거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질서가 유지되는 것이지, 새로운 질서가 생성되는 것이 아니다.

원칙적으로 모든 시스템이 즉시 또는 나중에 와해되는 경향에도 불구하고, 진화가 열린계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아무도 이러한 우주적인 경향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 사람은 없었다. 이것은 과거나 현재나 진화를 믿을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진화론자들 스스로가 말한 것처럼, 실제 진화에 대한 과학적인 증거는 없다. 유일하게 관측되는 증거는 엄격한 한계 내에서 매우 제한된 수평적 변화뿐이다. 진화는 과거에 결코 발생하지 않았고, 현재에도 발생하지 않고 있으며, 전혀 발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References
1 Roger Lewin, 'Family Feud,' New Scientist (vol. 157, January 24, 1998), p. 39.
2 Ibid., p. 36.
3 Rachel Nowak, 'Mining Treasures from `Junk DNA',' Science (vol. 263, February 4, 1994), p. 608.
4 Ibid.
5 E. H. Lieb and Jakob Yngvason, 'A Fresh Look at Entropy and the Second Law of Thermodynamics,' Physics Today (vol. 53. April 2000), p. 32.
6 Norman A. Johnson, 'Design Flaw,' American Scientist (vol. 88. May/ June 2000), p. 274.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pubs/imp/imp-331.htm

출처 - ICR, Impact No. 331, 2001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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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y M. Morris
2004-07-26

진화론에 반대되는 과학적 사례 1 

(The Scientific Case Against Evolution : A Summary Part I)


      진화에 대한 믿음은 매우 놀라울만한 현상이다. 이는 대진화를 뒷받침할만한 과학적 증거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토양 위에 열렬히 보호되고 있는 믿음이다. 이런 이상한 상황은 진화론자들이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최근의 말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언급들은 진화가 현재에도 일어나지 않으며, 과거에도 절대 일어나지 않았음을 무의식중에 보여주고 있다.

 

진화는 현재 일어나지 않고 있다.

첫째로, 진화의 예가 적다는 것은 진화를 관찰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볼 때 명백하다. 진화가 실제 일어나는 과정이라면, 진화는 현재에도 일어나야만 하고,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전이 형태 (transitional forms)'가 수없이 존재해야만 한다. 물론 그 대신에 우리가 보는 것은 종 내에서 서로 다른 많은 변이종들을 가지고 있는, 식물과 동물의 분명한 '종류들(kinds)'의 나열뿐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분명히 연결할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면, 많은 종류의 개들이 있고, 많은 종류의 고양이들이 있을 뿐이지, 이들을 합쳐놓은 듯한 동물은 없다. 이러한 변이들은 소위 소진화(microevolution)라 불리고, 이러한 작은 수평적인 변화들은 엄연히 일어나지만, 이것이 수직적인 진화로 이어지지 않는다.

진화 유전학자들은 초파리로 실험을 하거나, 매우 빠르게 번식하는 다른 종들을 사용하여 새롭고 좋은 변이종을 만들기를 희망하며 돌연변이를 유도하곤 하였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목표를 성취하지 못했다. 어떤 새로운 종도 만들어지지 않았고, 단지 원래의 종(basic kind)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오늘날의 진화론을 이끄는 진화론자이며, 피츠버그 대학의 인류학 교수인 Jeffrey Schwatz는 최근에 이렇게 말했다.

”... 어떤 방식에 의해서든 새로운 종이 형성되는 것은 과거에도 관찰되지 않았고, 현재에도 관찰되지 않는다.” 1

전통적인 과학적 방법은 실험적 관찰(observation)과 재현성(replication)을 요구한다. 한 번도 관찰된 적이 없는 (소진화와 분명히 구별되는) 대진화(macroevolution)는 진정한 과학의 영역에서 추방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현재 살아있는 진화론자 중 최고참 격인 하버드대 생물학과 교수였고, 진화는 '단순한 사실(simple fact)' 이라고 우겨댔던 Ernst Mayr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는 '역사적 과학(historical science)' 이며, 법칙과 실험은 진화를 설명하기에는 부적절한 기술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진화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진화는 과거에도 일어나지 않았다.

진화론자들은 오늘날 진화는 매우 느리게 일어나기 때문에 관찰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비판에 대해 답변한다. 그들은 진화의 실제 증거들은 과거의 화석이라고 주장하곤 한다. 그러나 발굴된 수십억 개의 화석들에서 진화과정 중의 모습인 전형적인 전이형태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이다.

”다윈에 의하면 진화는 움직이는 점진적인 과정이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논리적으로 하등한 것에서부터 고등한 것으로 진화하는 전이형태의 화석증거들을 수없이 가져야할 것이다.” 3

심지어는 빠른 진화를 믿는 사람들조차도, 하나의 구별된 종(kind)이 다른 더욱 복잡한 종으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세대가 거쳐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화석에는 상당한 수의 전이형태의 구조가 있어야한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

소위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s)라는 화석기록의 간격을 채우는 대신에, 대부분의 고생물학자들은 화석종 간의 중간형태에 대한 증거가 없고, 화석기록에는 간격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직면하고 있다.4

무생물에서 생명체로의 진화, 무척추동물로부터 척추동물로의 진화, 유인원에서 사람으로의 진화의 역사는 놀랍게도 그 중간단계가 빠져있다. 화석기록에서의 그 중간단계는 모두 빠져있다. 단지 현재의 세계에만 있을 뿐이다.

생명의 기원을 중요시하는 이 분야의 앞서가는 연구가인 Leslie Orgel은 단백질은 DNA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으며, DNA 또한 단백질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음을 이야기한 후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일견하여, 생명체는 사실 화학적 수단에 의해 기원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려야할 것으로 보인다” 5

전적으로 진화론에 몸담고 있는 Dr. Orgel 로서는 그러한 결론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RNA가 제일 처음에 있었던 물질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는 다음 내용을 인정하고 있다.

”RNA가 생겨나는 정확한 원리는 아직 분명치 않다. ....과학자들은 많은 가설들을 내놓고 있지만 그 증거들은 기껏해야 조각에 불과하다.” 6

번역 (Translation) : ”생명이 자연적으로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해선 알려진 바 없다.”

불행하게도, 두 세대에 걸쳐 학생들은 스탠리 밀러(Stanley Miller)의 가스 혼합을 이용한 유명한 실험 (실제적으로 생명의 자연적 기원을 증명하였다는)을 배워왔다. 그러나 실제로 증명한 것은 아니었다.

밀러는 플라스크 안에 모든 것을 넣고 전기적 전하를 주고 기다렸다. 그는 실험장치의 바닥에 아미노산과 다른 기본적인 화합물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발견은 생명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실제로 얼마간은 시험관 속에서의 생명의 창조가 실험적으로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러한 실험은 원시적인 물질이상으로는 더 진전되지 않았고, 원시수프로부터의 쓴맛을 우리에게 남겨놓았다.7

또한 캄브리아기의 다세포 생물인 무척추동물들이 원시세계의 단세포 생물로부터 어떻게 진화했는지에 대한 어떤 단서도 없다. 심지어는 고집스러운 진화론자인 굴드 조차도 이 부분은 인정했다.

”캄브리아기의 폭발은 생명의 역사 중 가장 놀랍고도 이해되지 않는 사건이다.” 8

그리고 또 이해되지 않는 것은, 어떻게 원시 바다에서 살면서 겉은 딱딱한 부분으로 쌓여있던 무척추동물이 현재의 물고기와 같이 안의 구조만 딱딱한 척추동물로 진화했는지에 관한 것이다.

”아직도 가시 없는 무척추동물에서 첫 번째 척추가 있는 물고기로의 전이는 미스터리로 남아있고, 많은 이론들이 분분하다.” 9

중간단계가 없는 다른 벽들도 매우 많다. 매우 까다로운 창조과학의 반대자인 고생물학자 엘드리지(Niles Eldredge)는, 화석기록에서 진화의 중간단계에 해당하는 증거는 거의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대신에 문제는 똑같이 남는다.

”사실상 생물군(biota)의 모든 종류들이 그들이 존재했던 기간을 통하여 기본적으로 안정한 상태로 (소수의 변동만을 가진 채) 있었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10

어떻게 진화론자들은 화석 생물들이 존재했던 기간동안 변하지 않았던 개체 화석들을 가지고 진화계통나무를 만들 수 있었을까?

”화석의 발견은 간단한 진화 나무(중요 시기의 화석들은 자주 중간단계의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여러 다른 그룹의 잡동사니 모습을 하고 있다)를 만들려는 시도를 엉망으로 만들곤 한다. 일반적으로 주요 그룹들은 같은 선상이나 점진적인 방향의 것들과 함께 묶이지 않는다. 새로운 종들은 다른 시기에 다른 그룹으로 잘려지고 붙여지곤 한다.” 11

유인원과 사람의 중간단계에 관해 얘기하자면 진실은 똑같다. 비록 인류학자가 수십년동안 그것을 찾으려 했지만 말이다. 많은 증거들이 제안되긴 했지만, 차례로 모두 거절(reject)되었다.

”고생물학자들이 100년 이상 발굴하였던 것들은 2000 이 조금 안 되는 조상들의 유품들이었다. 그들은 현재 살아있는 종들의 분자적 증거들과 함께 턱뼈, 치아, 화석화된 뼈조각들로 분류되었고, 침팬지와 사람이 공통조상으로부터 갈려나온 시기인 5백만년에서 8백만년 이후에 인류의 진화계통(line)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었다.” 12

인류학자들은 자신들의 진화 시나리오에 맞추기 위해, 현재 살아있는 동물들의 DNA나 다른 분자 유전학적 증거들을 극히 단편적인 화석증거들을 보충하기 위해 사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유전학적 증거들은 사실상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화석증거들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분자 계통발생학(molecular phylogenetics)은 결코 진화론의 창시자들이 믿었던 것들에 직접적이고 전반적인 영향을 주지 못한다.... 유전체(genome)의 변화의 복잡한 역동성은 다른 유전자마다 다른 스토리를 이야기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포함해서 매우 많은 다른 결과들을 가지고 있다.” 13

인간의 유전학적 자료들을 요약해보면 차라리 비관적이다.

”심지어는 DNA 염기서열 데이타에서도 진화과정에 대한 직접적인 접근을 할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과거의 재현은 창조적인 상상으로만 가능하다.” 14

현재나 과거나 진화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실제로 없음을 볼 때, 진화는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고 결론 내리는 것은 당연하다. 사실 진화는 과학이 아니라, 보편적인 자연주의 믿음에 기초한 하나의 임의적인 체계(an arbitrary system)일 뿐이다.



References
1 Jeffrey H. Schwartz, Sudden Origins (New York. John Wiley, 1999), p. 300.
2 Ernst Mayr, 'Darwin's Influence on Modern Thought,' Scientific American (vol. 283. July 2000), p. 83.
3 Jeffrey H. Schwartz, op. cit., p.89.
4 Ibid.
5 Leslie E. Orgel, 'The Origin of Life on the Earth,' Scientific American (vol. 271. October 1994), p. 78.
6 Ibid, p. 83.
7 Massimo Pigliucci, 'Where Do We Come From?' Skeptical Inquirer (vol. 23. September/October 1999), p. 24.
8 Stephen Jay Gould, 'The Evolution of Life,' chapter 1 in Evolution: Facts and Fallacies. ed. by J. William Schopf (San Diego, CA., Academic Press, 1999), p. 9.
9 J. O. Long, The Rise of Fishes (Baltimore: John Hopkins University Press, 1995), p. 30.
10 Niles Eldredge, The Pattern of Evolution (New York; W. H. Freeman and Co., 1998), p. 157.
11 Neil Shubin, 'Evolutionary Cut and Paste,' Nature (vol. 349. July 2, 1998), p.12.
12 Colin Tudge, 'Human Origins Revisited,' New Scientist (vol. 146. May 20, 1995), p. 24.
13 Roger Lewin, 'Family Feud', New Scientist (Vol. 157. January 24, 1998), p. 39.
14 N. A. Takahata, 'Genetic Perspective on the Origin and History of Humans,' Annual Review of Ecology and Systematics (vol. 26, 1995), p. 343.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pubs/imp/imp-330.htm

출처 - ICR, Impact No. 330, 2000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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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번삼
2004-07-26

진화론 비판


      이상으로 진화론과 창조론을 비교하면서 살펴보았다. 두 이론이 근본적으로는 모두 추리요 추측이지만 창조과학자들이 생명속생설, 세포설, 유전설 등에서 보듯이 실험적으로 창조론의 과학적 타당성을 증거한 반면 진화론자들은 주로 추리나 간접적인 실험결과를 진화론적으로 해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간접실험은 정황근거는 될지언정 진화론 자체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드러나고 있는 진화론의 모순은 앞으로 커다란 학술적 논쟁을 예고하는 것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진화론이 성립될 수 없는 대표적인 이유 몇 가지를 정리해 보기로 하자.

 

1. 진화론은 열역학법칙에 위배된다.

열역학 제1법칙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量的)으로, 이 우주계에서는 에너지가 생성이나 소멸이 되지 않고 항상 일정하다는 것이다. 에너지의 형태는 열, 빛, 힘, 물질로 서로 전환될 수가 있는 데 이는 아인슈타인에 의해 다음의 공식이 발견됨으로써 확인된 것이다. 이 공식은 질량(물질)도 에너지의 한 형태로서 '질량-에너지의 등가성(等價性)'을 잘 보여 준다. 즉, 에너지(E)는 질량(M)에 빛의 속도(C)를 제곱한 수치와 같다는 것이다.

                 E = MC2

예컨데, 장작개비를 태우면 열과 빛을 발하면서 타 없어진다. 그러나, 그러한 에너지는 하늘로 올라 가 구름층에 흡수되었다가 비가 되어 지표에 흡수되며, 일부는 다시 식물의 뿌리를 타고서 잎으로 올라가 과일을 만드는 데 이용된다. 그리고, 과일은 동물과 사람에게 섭취되어 몸속에서 체온으로 바뀐다. 이처럼, 에너지는 물질로, 물질은 다시 에너지가 되어 우주 안에서 돌고 도는 것이며, 생성도 소멸도 되지 않고 총량은 항상 일정하다. 그러면 저절로 생성되지 않는 에너지가 태초에는 어디서 생긴 것일까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인과율에 따르면 원인이 있기에 결과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화론으로는 이러한 질문에 답변을 할 수 없는 이론의 벽에 봉착하게 된다.

열역학 제2법칙은 에너지의 질적 쇠퇴에 대한 것으로, 자연계의 물리화학적인 반응은 모두 무질서도(disorderness)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열역학적으로는 자유에너지(F)가 가장 낮은 쪽으로 반응이 진행한다는 것이다. 일명 ”엔트로피증가의 법칙”이라고 하며 다음 식으로 나타낸다. 엔트로피(entropy)란 사용할 수 없는 에너지로서 무질서도를 나타내는 단어이다.

               F = H - TS

자유에너지(F)는 엔탈피(H)에서 절대온도(T)와 무질서도인 엔트로피(S)를 곱한 숫치를 공제한 것과 같다. 예컨데, 높은 곳에 있는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 잠재에너지(potential energy)가 가장 낮은 상태가 되도록 함으로써 안정적 상태를 유지한다.

모든 물질이 일정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그것을 붙들어 주는 힘(에너지)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만물은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힘은 쇠퇴하고 질서도는 깨어지는 쪽으로 작용한다. 동식물은 나이가 들면 노화하고 결국 죽어서 흙으로 돌아감으로써 무질서도가 극에 달하며 마침내 일에너지(기계적 에너지)가 가장 낮은 상태가 된다. 새것은 낡아지며 질서는 사라지는 방향으로 세상의 모든 반응계는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이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기 때문에, 그 형벌로 만물은 쇠패하며 동식물은 일정한 수준으로 자란 후에는 반드시 노화하여 죽게 된 것이라고 성경은 증언한다.

우주만물은 시간이 흐르면서 엔트로피가 증가하여 언젠가는 물리화학적 반응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 열사상태(熱死狀態 thermal death point)에 도달할 것으로 물리학에서는 전망한다. 한 컴퓨터의 계산에 의하면 태양은 80억 년 후에는 완전히 먼지로 바뀔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처럼, 인류는 어차피 사라져 없어질 우주 속에서 한정된 기간을 살고 있는 시한부적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우주에는 시작이 있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우주만물이 지금과 같은 질서체계를 갖게 된 것은 외부로부터 의도적인 에너지의 주입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진화론에서는 질서도가 더 발달하는 쪽으로 자연계의 반응들이 진행되어 왔다고 말한다(그림 11). 우주는 태초에 가스들이 폭발하여 준성, 은하계, 태양계를 거쳐 질서의 극치인 오늘의 지구가 탄생하였으며, 무기물이 유기물과 단세포로 발전한 후 장기간에 걸쳐서 오늘과 같이 고도의 질서체계를 갖춘 동식물로 진화해 왔다는 것이다. 즉,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우주의 반응이 진행한다는 열역학제2법칙과는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화학진화설을 주장했던 오파린은 ”진화론의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의 변천과정은 복잡하고 조직화된 기관으로의 진화과정이다. 열역학제2법칙에 비추어 볼 때 화학진화의 반응이 고분자로 합성되기보다는 분해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솔직히 시인하였다. [A.I. Oparin; Problem of Origin of Life, Present State and Prospects in Chemical Evolution and Origin of Life, American Elsvier, p 6, 1871]

이처럼, 열역학 제2법칙으로는 우주의 시작이 있었음을 말하는 것이며, 제1법칙으로는 우주가 저절로 탄생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따라서, 우주는 초자연적인 위대한 힘에 의해 설계되고 창조된 것을 알 수 있다.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이라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1)

 

2. 진화론은 멘델의 유전법칙에 위배된다.

주지하듯이 멘델은 실험적으로 유전의 법칙을 확립하였다. 그러나, 실증도 안된 진화론의 풍조에 밀려 그의 생전에 인정을 받지 못 했다. 왜냐 하면 두 이론이 상충되었기 때문이다. 멘델은 임종하면서 ”언젠가 나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하였으며, 베잇손(William Bateson)은 ”만일, 멘델의 실험결과를 보았더라면 다윈은 종의 기원을 내 놓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였다. 멘델의 법칙은 생명체에는 유전자라는 것이 있으며 모계의 유전형질이 자손으로 유전된다는 것이다. 반드시 모계의 형질이 유전되는 것이지 모계에 있지도 않은 형질이 외부에서 나타나 유전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전에는 불변하는 법칙이 있다는 것이다.

제1법칙은 독립의 법칙으로 유전자의 상이한 형질(유전자는 한 쌍으로 되어 있음)은 독립적으로 분리했다가 수정에 의해 재결합한다는 것이다. 열성형질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후대에 언젠가 다시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시 나타날 때 새로운 형질이 추가됨 없이 과거의 모계형질에 있었던 것이 다시 나타나는 것뿐이다. 그러나, 다윈은 불안정하게 형성된 작은 변이들이 축적되어 변종이 생긴다고 하였다. 돌연변이로 우량종을 만드는 것은 이미 있는 형질을 선별하여 강화하는 것일 뿐이다. 생명은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진화할 수 없는 이유는 거기에 아무 것도 추가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제2법칙은 우열의 법칙으로 우성형질이 열성형질을 누르고 자손의 유전형질로 발현된다는 것이다. 제3법칙은 분리의 법칙으로 생식세포의 형성에 있어서 특성을 지배하는 각 쌍의 유전자는 각각 분리하여 다른 생식세포가 된다는 것이다. 모계의 유전자(2n)는 각각의 대립유전자가 분리되어 자손에게 일정한 비율로 유전이 된다.

그러나, 진화론에서는 모계에 없었던 형질이 외부요인에 의해 변화를 받아 전혀 다른 종으로 진화해 왔다고 주장한다. 어류가 양서류로, 양서류가 파충류로, 파충류가 새로, 새가 포유류로, 침팬지에서 사람으로 모계와는 전혀 다른 종으로 바뀌어 왔다고 하는 것은 멘델의 유전학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이다. 멘델의 법칙은 실험적으로 증명된 과학법칙이요, 학계에서 인정된 정설인 반면 진화론은 어디까지나 가설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설사, 인접한 종들 사이에서 잡종이 나온다 할지라도 그 후손은 번식능력이 없어서 당대에 없어지고 만다.

말과 당나귀를 교배시키면 잡종인 히니(Hinny)가 태어나지만 히니를 말과 교배시키면 말이, 당나귀와 교배시키면 당나귀가 태어날 뿐이다(그림 12). 즉, 종은 혼잡되지 않고 불변하도록 창조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잡종과 잡종을 교배하면 후손은 태어나지 않는다.

최근에 발견된 DNA 수리기구(DNA Repair System)는 변이가 일어났을 때, 그 부위를 신속하게 제거함으로써 원상이 유지되도록 하는 놀라운 기능을 수행하는 기구로 알려져 있다.

창세기에서 동물들을 잡종으로 만들지 말며, 한 밭에 두 종류의 씨앗을 뿌리지 말도록 경고한 내용을 재음미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는 창조질서의 파괴에서 오는 혼란을 막으시려는 경고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3. 돌연변이는 진화가 아닌 퇴화를 일으킨다.

다윈의 진화론에서 자연선택의 전제조건은 변이(individual variation)이다. 이러한 변이의 개념은 드브리스가 달맞이꽃을 가지고 연구한 후 돌연변이설(mutation theory)로 발전하였다. 돌연변이가 진화의 요인이라는 이론이 신다윈주의(Neo Darwinism)인데, 이 이론이 부정된다면 전통진화론의 근거는 사실상 사라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몰갠, 뮐러, 집단유전학자 및 분자진화주의자들이 돌연변이를 진화의 요인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연변이는 무방향적이고 비연속적이며 자연발생확률이 매우 낮고 일어난다 해도 유해한 방향으로 일어난다. 수많은 실험결과에 의하면 돌연변이는 108 세대에 한번 정도 발생하며 무방향적이고 역돌연변이(back mutation)도 일어나기도 한다. 진화론자인 심프손(Simpson)은 말하기를 ”돌연변이가 만에 하나 일어난다 해도 다섯 개의 돌연변이가 한 핵에서 일어날 확률은 10^-22에 불과하다”고 하였고, 초파리연구로 유명한 진화론자인 뮐러(H.G. Muller)도 '대개의 돌연변이는 해롭게 나타나고 유익한 변이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돌연변이가 다 해롭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라고 하였다.

몰갠이나 뮐러가 실험한 초파리들도 초파리의 종내에서만 변이가 일어날 뿐, 단 한 마리의 신종도 아직까지 태어난 적이 없다. 바뀐 것은 눈의 색과 형태, 날개의 길이와 모양, 몸체의 색깔만이 바뀔 뿐이다(사진 14). 이렇게 탄생한 변종들은 거의가  생존력이 취약한 기형종들 뿐이다. 인제대학장이며 생물학교수인 정계헌 교수(2000)는 이렇게 말한다.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연구하면 할수록 자연상태에서는..염기서열이 총체적으로 다 바뀌어 다른 종이 되는 경우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될 것이다.” [정계헌; 종은 변하는가?, 창조 121호(7-8월호), pp 9-12, 2000].

진화론자인 도브쟌스키도 "돌연변이는 생존능력의 약화, 유전적 질병, 기형을 만들므로 그런 변화는 진화를 일으키는 요인이 될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실제로, 1945년에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탄으로 많은 돌연변이가 유발되어 기형아와 백혈병이 발병하여 오늘까지 고통을 당하는 환자들이 많이 있다. 그 폭탄의 피해자중 돌연변이적으로 몸이 더 좋아졌다거나 '바람직한 괴물'로 진화한 사례는 사람은 물론이고 어떠한 동식물에서도 보고된 바가 없다. 모두가 기형과 불구로 고통을 겪고 있으며, 그리고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었다.

로브트롭(S. Lovtrup 1987)은 ”작은 변이는 일어난다. 그러나 이것으로 진화를 설명하려는 것은....모든 과학분야가 이런 거짓 이론에 중독이 된다면 큰 불행이라는 것을 부인치 않겠다. 그러나, 이런 불행이 생물학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다윈의 신화가 과학사에서 가장 큰 사기극으로 밝혀질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실제로 그렇게 될 때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반문하게 될 것이다...돌연변이는 진화가 아닌 퇴화의 메커니즘이다”고 하였다. 무신론자이면서 반진화학론자인 덴튼은 이렇게 말한다.

”과거 100 여년간 다윈의 진화설이 지지다운 지지를 받은 것은 소진화(종내 변화) 밖에 없다...지구상의 모든 생명이 유리한 돌연변이가 축적이 되었다가 생긴 것이라 주장은 ..진리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가설이다.” [임번삼외; 진화론과 과학, p  ,한국창조과학회, 1994, 원저는 Michael Denton; Evolutionism: A Theory in Crisis, 1986]

지난 1980년에 160여명의 진화론자들이 <대진화>(Macroevolution)라는 주제로 모인 시카고진화학술회의(1980.10.16-19, Chicago Field Museum)에서는 전통주의자들과 개혁주의자들간에 격론이 벌어졌다. 회의 후, 그들은 이례적으로 ”소진화(microevolution)는 대진화(macroevolution)로 연결될 수 없다”고 파격적인 선언을 했는데, 이는 전통진화론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다. [Roger Lewis; Evolution theory under fire, Science, 1980]

더구나, 최근에는 모든 생명체에는 유전자수리장치(DNA-repair system)가 있어 돌연변이에 의해 유전자구조가 손상을 받으면 재빨리 응급조치를 하며 이차, 삼차적 방법을 동시적에 동원하여 파손된 유전기구를 수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바꾸어 말해서 모든 생물은 변화가 아니라 자기 종을 연원히 불변하게 보존하려는 방향으로 상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장치가 가동하고 있는 상태에서 어떻게 진화가 일어났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4. 화석생물은 중간종이 없이 불연속적이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진화론자들이 진화를 증명하기 위하여 내세운 근거 중 하나가 화석이었다. 그러나, 화석은 연구할수록 오히려 진화론이 잘못되었음을 증거할 뿐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진화론자들이 화석을 점차 회피하고 있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진화론에서는 모든 생물이 한 조상에서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고등한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반드시 두 지층 사이에는 중간종(中間種 transitional form)이 수없이 있어야만 한다(그림 13). 그리고, 아직 지구상에 태어나지 않은 고등생물이 원시지층에서 발견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생물들은 아직 지구상에 태어나지도 안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화석들은 이러한 두 가지 조건들이 모두 잘못 되었음을 보여준다.

다윈은 "수많은 중간 형태의 화석들이 있어야 하는 데, 실제로 지층에서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라고 자문한 적이 있다. 그리고, 언젠가 보다 많은 화석들이 발굴되면 수없이 많은 중간종들이 나타날 것으로 예측하였다. [Charles Darwin; The Origin of Species(1872), 6th ed,, Colliers Books, p309, New York, 1962] 다윈은 그의 친구인 유신진화론자인 아사 그레이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잃어버린 많은 간격들은 상상력으로 메꾸지 않으면 안 된다.”[C. Darwin; A Letter to Asa Grey, September 5, 1857, Zoologist, 16, p6299, 1858]

그러나, 덴튼(Micheal Denton 1985)은 ”현재, 육상 척추동물의 329과(科)의 79.2%(261과), 조류를 제외할 경우 87.6%, 연체동물의 50%가 화석으로 발견되었다...그러나, 중간형태는 여전히 수수께기로 남아 있으며 일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중간형태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화석기록에서 읽을 수 있는 주요한 특징이며...다윈의 진화론은 20세기의 대우주적 신화 그 이상이 아니다.”고 하였다.

바안즈(Robert D. Barnes 1980)는 ”화석에서 문(門)과 강(綱)의 기원에 대하여 어떠한 기록도 읽을 수 없다. 중간형태는 존재하지 않으며 발견도 안 되었고 흔적도 없다”고 하였다.  픽테트(Francis J. Pictet 1860)도 ”중간형태가 실제로 있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고 하였다. 지질학자인 클라우드(1973)는 선캄브리아기의 화석에는 다세포인 후생동물의 화석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Preston Cloud; Geology, 1, p123, 1973]

시카고에서 열렸던 ”다윈 100주년 기념 심포지엄”(Chicago 1959)을 주관했던 대표적 진화론자인 심프손(G.G. Simpson)은 ”화석기록에는...새로운 생물들이 갑자기 출현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공식선언을 하였다. [The History of Life in Evolution of Life, Chicago, 1960] 그는 진화학계에서 권위가 있었기 때문에 그의 발언은 진화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현대종합이론의 권위자인 아얄라(Francisco Ayala)는 ”화석학자들이 말하는 작은 변이들이 축적된 것이 아님을 이제 확신한다”고 하였고, 피터슨(1976)은 ”조상의 형태는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으며..분류학자들의 생각속에 있을 뿐이나 (진화론자들은) 조상형을 얘기할 때에는 언제나 그것이 실제로 있었던 것처럼 말하고 있다”고 하였다. [C. Peterson; Major Patterns in Vertebrate Evolution. 1976]

현재, 가장 영향력이 있는 진화학자중 하나인 하버드대학의 굴드(Stephene J. Gould 1973)는 ”'조상과 자손사이에 기능을 잘 발휘하여 생존할 수 있는 전이형태의 계열을 추측할 수 있을까?...대답은 불가능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뉴엘(N. Newell)은 ”화석기록은 수집하면 할수록 불연속성이 확대된다”고 하였다. [N. Newell; Nature of Fossil Record, 1959] 과학전문지인 뉴스위크는 ”과학자들이 종 사이를 연결하는 중간형태의 전이화석을 찾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낙담하게 된다. 화석기록에는 중간형태의 전이화석이 없다는 것이 법칙이다”고 하였다.[News Week, Nov, 3, 1980]. 사이언스 지도 최근호에서 말하기를 ”실제로 발견되는 화석의 모습은 대진화의 가설을 부정하고 있다”고 하였다. [R. Lewin; Evolution Theory Under Fire, Science, No, Vol. 210, pp 883-887, 1980]

인류의 조상으로 제시되고 있는 유인원은 극소수의 뼈와 이를 조립하여 만든 허구로서 인류의 기원에 대한 해답은 아직 없다고 워시번(S.C. Washburn 1987)은 말한다. [Scientific American, September, p154, 1987] 타임 지는 최근에 3회에 걸쳐 진화론특집 기사를 실었는 데 마지막 장에서 이렇게 결론을 맺고 있다. ”진화론이 나온 지 130년이 넘었으나 과학적 증거는 하나도 없고, 오히려 최근에 확인된 화석들은 다윈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사실만을 입증하고 있다.” [Times; 93.10.13,  94.3.4,  95.12.4]

진화론이 발표된 지 수십년간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화석고리들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그 고리를 찾으려는 노력이 화석발굴과 울창한 밀림 속이나 깊은 바다에 대한 탐사였다. 여기에는 코난 도일(Connan Doyle)의 탐험소설인 <잃어버린 세계>(The Lost World)가 한 몫을 하였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한 다음 해인 1860년대는 심해야말로 신비에 싸인 비밀의 세계였다. 마침내, 영국의 대서양연안과 노르웨이의 르포텐 피요르트 해역에서 역사적인 심해탐사가 개시되었다. 그 결과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어류들이 발견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심해야말로 가장 안전한 은신처이므로 오랜 지질시대의 생물들이 발견될 것이 확실하다”는 분위기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 속에는 중간종의 생물들이 발견되리라는 희망이 들어 있었다. 1972년에 영국군함인 체린저호가 본격적인 탐사작업에 들어갔는데, 그 당시에 동승했던 과학자중 한 사람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저인망이 올려질 때마다 배 위의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몰려들었다. 그러나, 잃어버린 고리는 나타나지 않았다.”[N.B. Marshall; Aspect of Deep Sea Biology, pp 8-9,  Hutchinson Publishing Co, London, 1954]. 그 후의 계속된 해양탐사에서도 잃어버린 고리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임번삼 외; ibid, p 179]

마이클 덴턴은 이렇게 단언한다. ”자연계에서 발견되는 모든 실험적 사실은 유형학적 모델로 설명할 수 있다. 유형학의 기본적 논리는 각 강(綱)은 독특성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그 구성원들은 자신이 속한 강의 특징적인 유형을 만족시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는 모든 생물계에 보편적으로 적용된다. ...불연속성은 생명체가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적용되는 특성이다...유사성은 진화를 암시하지만 구분은 변화에 대한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임번삼 외; ibid, p 130, p 173]

 

5. 살아있는 '멸종생물'은 진화를 부정한다.

지금도 세계도처에서는 진화론자들이 수천만년 전에 멸종했다고 주장한 생물들이 산채로 발견되고 있어 우리의 비상한 관심을 끈다. 그 이유는 어떻게 진화론에 의하면 그토록 오래 전에 출현했던 생물들이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과, 그들의 모습이 과연 진화론에서 주장하듯이 다른 형태로 진화되었는가 하는 관심에서이다.

실제로 발견된 <멸종생물들>의 모습은 크기만 다를 뿐 놀랍게도 옛날이나 지금이나 거의  동일하여 진화론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 7천만년 전에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실러캔스가 지난 1938년에 이어 1987년과 1989년, 그리고 최근까지도 동아프리카의 해저 300m의 심해에서 살고 있는 장면이 촬영되었으며, 180마리 이상이 잡혔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이 기대했던 지느러미는 다리로 바뀌지 않은 채, 예나 지금이나 동일한 모습이었다. 진화론에 의하면 이들은 어류에서 양서류로 이행하는, 실루리아기에서 데본기에 살았던, 2억 년 전의 생물로서 7천만 년 전에 멸종된 것으로 주장되어 왔었다.

오르도비스기(4억5천만년 전)에 살았다는 개맛(lingula)과 투구게(horseshoe crab), 그리고 데본기(4억년 전)에 출현했다는 폐어(lung fish)도 옛날과 같은 모습으로 세 종류가 살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그림 14). 데본기에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갈라치아(Nepillina galathiae)라는 연체동물은 지금도 아카펄크 트랜치(중앙아메리카)의 심해(해저 3,500m)에서, 조개의 조상이라는 앵무조개는 필리핀의 팔라오섬에서 잡히고 있다.

쥬라기(1억6천만년 전)에 살았다는 소나무가 호주의 월레미 공원(Wollemi National Park)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최근에 확인되었다. 1억3,500만년 전에 멸종되었다던 투아타라(Tuatara)라는 부리머리를 가진 파충류도 뉴질랜드에 살아 있다고 한다. 이 밖에도, 5만년 전에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바다거북(라바라크룸 엘세야가)도 현재 호주의 북부해안에서 살고 있는 모습이 발견되었다고 한다[조선일보 1996.6.2].

그리고, 7천만년 전에 멸종했다는 공룡의 일종인 사경룡(Plesiosaur)의 시체가 일본어선에 의해 1977년에 뉴질랜드연안에서 인양되었던 사건은 아직도 우리 기억에 생생하다. 욥기(3,500~4,000년 전)나 다른 구약성경에 악어나 하마로 번역된 리워야단(Leviathan)이나 베헤모쓰(Behemoth)는 공룡을 의미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6. 화석생물의 모습도 현재와 비슷하다.

화석생물들은 지금의 생물종과 거의 비슷하다. 간혹, 다른 점이 있다면 크기가 줄어들었다는 것 뿐이다. 선캄브리아기의 박테리아나 캄브리아기인 4~6억년 전에 살았다는 달팽이나 미국의 블랙힐즈(Black Hills, South Dakoda)의 쥬라기 암석층(5억년전)에서 발견된 불가사리의 화석도 지금 것과 동일하다. 미국(일리노이주)에서 발견된 바퀴벌레의 화석이나 발트해에서 발견된 화석(3천만년 전)은 모두 오늘의 바퀴벌레와 동일하며 진화의 흔적도 없다. 그리고, 2억5천만년 전의 거미와 지네, 신생대 제3기의 시신세(5천만년 전)에 살았다는 박쥐의 화석도 지금과 동일하다(Science 1966).

수천만년이 되었다는 호박(amber)속의 화석들은 지금의 생물종과 완전히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곤충화석은 고생대의 펜실바니아기 지층에서 수백종이 발견되었으나, 그보다 앞선 데본기나 미시시피기 지층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가장 오래되었다(3억년 전)는 호박 속에서 발견되는 1억년 전의 개미도 형태가 지금 것과 동일하기는 마찬가지이다.

5천만년 전에 출현했다고 추정되는 스칸디나비아산의 화석곤충도 현대의 것과 거의 일치한다. 곤충이 5천만년간 계속 존재하여 온 것이라면, 과실파리는 매미보다 10억 회나 많은 세대교체를 하여 온 생물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곤충은 같은 종 내에서의 변이현상만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C.T. Brues; Insects in Amber, Scientific American, 185(5), pp 56-61, 1951]. 곤충학자인 브루스(1951)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의 곤충집단은 옛날의 모습과 유사한 형태로 남아 있다...어느 것은 거의 변화지 않은 채 7억년을 존재해 오고 있다.” [C.T. Bruce; Insects in Amber, Scientific American, Vol. 185, p 60, 1951]

식물의 경우, 실루리아기의 고사리류, 현화식물류, 백악기에 갑자기 나타났다는 수많은 식물류는 벌써 수천만년에서 수억년이 흘렀지만 지금의 것과 변한 것이 없다. 백악기에 살았다는 버드나무, 종려나무, 포도나무, 목련의 화석들도 지금의 것들과 동일하다 볼드(Herlord C. Bold)는 꽃의 화석은 풀리지 않는 신비라 하였고, 코너(Corner 1961)는 식물화석을 보면 볼수록 창조설을 지지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E.J.H. Corner; in Contemporary Botanical Thought edited by A.M. MacLeod and L.S. Cobly, Quadrangle Books, Chicago, p 97, 1961]

1960년대까지 알려진 십여만 종의 화석들은 다윈시대에는 거의 없었던 종들이다. [G.G. Simpson; the History of Life, in The Evolution of Life edited by Sol Tax, University of Chicago Press, pp 117-180, 1960] 그러나, 이들 대부분의 화석종들은 그 때까지 이미 알려진 화석형태와 같거나 유수동물처럼 어떤 종과도 관련이 없는 독립적인 특이형태를 취하고 있을 뿐이었다. [임번삼 외; ibid, p 181]   

 

7. 시생대에는 아무런 후생생물의 화석이 발견되지 않는다.

캄브리아기에 수천 종의 생물들이 갑자기 나타난다는 것은 이미 기술한 바와 같다. 이러한 각 생물마다 전 단계의 생물화석이 발견되어야 상식적이지만 단 한 건의 후생생물도 발견되지 않는다. 진화론자이며 지질학자인 클라우드(Preston Cloud 1973)는 ”캄브리아기에서는 다세포 후생생물의 화석기록이 전혀 없다.”고 말한다. 더구나, 미국의 지질학자인 버딕(Burdic 1971)은 그랜드캐년의 선캄브리아기의 지층에서 중생대의 소나무와 느룹나무의 화분을 발견했다고 한다.

캄브리아기에 가장 많이 나타나는 삼엽충은 큰 것은 45cm에 이른다. 바닷가재와 같은 속(屬)으로, 지금은 멸종했지만 그 구조는 단순하기는커녕 매우 복잡하고도 정교하다. 또한, 캄브리아기에서는 나올 수 없는 사람의 발자국 속에 삼엽충이 들어있는 화석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화석은 최근(1999) 우리나라의 남해안(전남 해남)에서도 발견된 바 있다.

 

8. 확률론적으로 생명의 자연발생은 불가능하다.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듯이 생명이 과연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지 확률적으로 따져 보면 전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호일 등(1981)은 이렇게 말한다. ”단백질 한 종의 출현확률을 10-20이라고 할 때 생명이 출현할 확률은 2,000종의 효소가 무작위적으로 결합되어야 하므로 10-20×2,000 = 10-40,000이다. 이러한 확률은 우주 전체가 유기스프로 가득 차 있다 해도 결코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Fred Hoyle, C. Wickramasinghe; Evolution From Space, 1981]. 그는 <우주의 본질>이라는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우주의 나이를 100억 년이라 하고 포유류 세포핵에 들어 있는 2,000개의 유전자가 자연적으로 생성될 가능성을 계산해 보았더니 시간이 충분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돌연변이에 의해 지금과 같이 복잡하면서도 질서정연한 생명시스템이 만들어질 수 있는 확률은 회오리바람이 티끌을 날려 제트기를 만든 것과 같이 황당무계한 것이다.”

생명체의 구성요소인 단백질은 20종의 L-아미노산이 수백에서 수만 개가 결합된 것이다. 자연발생설에서 주장하는 화학합성법으로는 아미노산이 두 가지 형태(D형, L형)가 반반씩 만들어진다. 따라서, 가장 짧은 단백질(L형 아미노산 100개로 구성)이 자연적으로 합성될 수 있는 확률은 10-130이다. "생명체의 형성확률이 10-130이라면 이는 생명은 주는 자가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카프란(Kaplan)은 말한다. [R.W. Kaplan; Chemical evolution and the origin of life, p 320, 1971]. 덴턴은 평균적인 단백질의 생성확률은 10-13, 20개 아미노산의 특이적 배열순서는 10-26, 30개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단백질은 10-39이며 지구상의 단백질이 10-40 이상을 넘을 수 없으므로 기능성 단백질의 존재확률이 10-40 이하의 확률로 존재해 왔다면 기능성단백질이 우연히 지구상에서 발견될 수 있는 확률은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임번삼 외; ibid, p 364]

단백질과 더불어 생명의 핵심요소가 유전자(DNA)이다. 이들은 오탄당, 인산, 핵산염기가 한 분자씩 연결된 뉴클레오타이드가 에스텔결합을 한 폴리뉴클레오타이드(polynucleotide)이다. 오탄당(D-ribose)은 자연계에서는 D형만 합성되는데 반하여 화학합성 시에는 두 가지 형태(D형, L형)가 반반씩 만들어진다. 이러한 세 요소로부터 유전자(DNA)가 자연적으로 합성될 수 있는 확률은 잘스버그에 의하면 10-600에 지나지 않는다. [F.B. Sallsburg; Dought of Modern Systhetic Theory of Evolution, American Biology Teacher, p 336, 1971]

이웬(Ewen 1973)에 의하면, 단백질합성의 유전정보를 가진 유전자의 염기배열이 변화를 일으키는 형태는 단백질의 기능에 변화를 주지 않고 유전변화만 일으키는 중립돌연변이(neutral mutation)과 유익성돌연변이(advantageous mutation)가 있다. 그 어느 경우든 단백질 집단에 균일한 진화율을 일으키는 기구로서는 적합치 않다. 돌연변이율이 커지면 유전적 변화의 속도도 커진다. 다른 계통간에 유전적 변이가 균일하게 나타나려면 생물마다 일정시간 내의 돌연변이율도 일정해야 한다. 그러나, 조사결과들은 세대시간이 다르고 돌연변이율도 종에 따라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각 생물의 연간 뉴클레오타이드당 돌연변이율은 대장균(0.7×10-6), 초파리(2.5×10-8), 생쥐(3.0×10-9), 사람(1.0×10-10)이 각기 다르다. 따라서, 진화가 일정한 속도로 진행되는 유전적인 변화의 가능성은 부정되고 있다. 각 유전자들은 서로 다른 속도로 유전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W.J. Ewens; Comments on Dr. Kimura's Paper, Genetics Supplement, Genetics, 73:36-38, p 36, 1973]

더구나, 단백질과 유전자가 결합되어 자기복제능력을 가진 정상세포 한 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확률은 10-167,626에 지나지 않는다고 와이송(1978)은 말한다. [R. W. Wysong; The Creation-Evolution; Controversy, Inquiry Press, p 118, 1978]. 수학자 보렐(Borrel)은 우주에서 10-50 이하의 확률이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라 하였다. 이러한 세포 한 개가 조직을 이루고 더 나아가 기관을 형성하며 뇌의 명령을 받아 일사분란하고 정교하게 동작을 하는 인체가 합성되려면 그 확률은 천문학적인 숫자로도 가히 표현할 수 없게 된다. 생명의 자연적 합성은 이처럼 확률론적으로 볼 때 불가능에 불가능일 뿐이다. 인체의 세포는 60~100조 개로 추산되며 30억의 염기쌍, 3~4만 개의 유전자, 46개의 염색체, 2,000여종의 효소, 100만 개 이상의 단백질, 오장육부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처럼 방대한 인체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는 것은 자연발생적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세포와 같은 자동복제기능을 갖춘 기계가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수학자인 노이만(Von Neumann)은 ”진보된 기계는 간단한 문제를 풀 수 있지만 미리 설정된 프로그램에 의하지 않고는 임의적 선택에 의해 스스로를 진화시킬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앞으로 언젠가 조금이라도 스스로 진화할 수 있는 기계가 만들어진다면 이는 인공지능을 넣어 준 것일 뿐”이라고 하였다. [J. Von Neumann; Theory of Self Reproducing  Automata,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Urbana, 1966].  쥬크스(Jukes)는 진화이론의 발전과정이 비행기의 발전과정과 유사하다고 하면서, 여러 종류의 비행기가 독자적인 설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며 진화하거나 우연히 태어난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T.H. Jukes; Aircraft Evolution, Nature, 295, p 548, 1982]. 지난 1965년에 열렸던 국제진화론전문가들의 연구보문 심포지움에서 미국국립보건원(NIH, Maryland)의 모라박사(Peter T. Mora)는 <확률론의 어리섞음>(The Folly of Probability)라는 글을 통해 ”자동복제기구의 자연발생확률은 제로”라고 발표하여 큰 논란을 야기하기도 하였다. [Sydney W. Fox; The Origins of Prebiological Systems, p 45, New York Academic Press, 1965). 이처럼 생명의 자연발생은 확률론적으로 볼 때에도 일어날 수 없는 시나리오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9. 현재도 아무런 진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진화론에서 주장하듯이 모든 생물들이 진화를 계속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 사실이라면 현존하는 생물들은 이미 수천만년에서 수억년을 경과한 생물종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왜 하나같이 지금은 진화를 멈추고 있는 것일까? 무척추에서 척추로, 어류에서 양서류로, 양서류가 파충류로, 파충류가 조류와 포유류로, 설치류와 같은 포유류에서 유인원으로, 유인원이 사람으로 바뀌는(진화하는) 현상이 무수히 쏟아져 나와야 하는 데, 왜 최근 수천년간, 그리고 지금은 한 건의 이행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일까? 과거의 중간종들도 어디에 숨어 있기에 그 모습을 감추고 있는 것일까?

참으로 상식적이면서도 근본적인 이러한 질문에 진화론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부분적으로는 왜 진화가 멈추었는지 해명하려는 시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그러한 설명들은 극히 지엽적인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만일, 점잖은 진화학자에게 당신의 조상이 원숭이였었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아마도 대노하면서 가족 모독죄로 당신을 법정에 고소할 것이 틀림없으리라고 생각한다.

 

10. 자연현상은 진화론과 상반된다.

다윈의 진화론은 적자생존에 의한 자연선택을 주장하지만 자연계에는 이와 반대로 약한 생물들이 더욱 번성하여 먹이사슬을 이루고 있다. 동물의 왕이라는 사자나 호랑이의 숫자는 매우 적지만 연약한 초식동물들은 번성하고 있다. 만일, 쥐를 잡아먹는 강한 고양이만 번성한다면 고양이들도 먹이인 쥐가 사라졌으므로 멸종하고 말 것이다. 이처럼, 자연계에는 먹이사슬이 작동하면서 생태계가 조화롭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자연계의 공생현상(symbiosis)도 그러하다. 나비와 벌들은 꽃이 없으면 아예 존재하지 못 한다. 악어와 악어새의 공생도 신비롭기는 마찬가지이다. 공생의 원리는 동물뿐 아니라 식물의 세계에도 무수히 적용되는 법칙이다.

적자생존이론에도 반론의 여지가 많다. 예컨데, 강한 사자가 사슴을 공격할 때 운이 없이 무리에게서 떨어져 있는 사슴을 사냥했다면 이렇게 죽은 사슴은 약해서 죽은 것이 아니다. 단지, 운이 없어서 죽었을 뿐이다. 살아 남은 사슴들도 강해서 생존한 것이 아니다. 운이 좋았을 뿐이다. 더구나, 자연계에는 약한 짐승들이 더 잘 번식하며, 힘센 육식동물들은 그 숫자가 점차로 줄어 들어가는 추세이다. 이러한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본능(本能 instinct)도 창조주의 지적 설계를 암시하는 증거중 하나이다. 의도적인 정보가 유전자 내로 입력되지 않고서는 각종 생명체가 보여주는 본능적 행위에 대해 해석이 불가하다. 연어가 산란하기 위하여 먼 바닷길을 헤엄쳐서 자기가 태어났던 하천으로 되돌아오는 신비를 진화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철새들이 때를 따라 차질없이 머나 먼 대륙을 차질없이 이동하는 비행능력도 마찬가지이다. 거북이 새끼들은 알에서 부화하자마자 바닷 속을 향해 기를 쓰고 달린다. 제비갈매기의 새끼는 알에서 부화되면서 자기를 품어 준 어미새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어미새만 따라 다닌다. 다른 새들에게 접근하면 쪼여 죽기 때문이다. 모든 새들은 모성애를 어디서 배웠는지 자기가 품어서 낳은 새끼들이 자립할 때까지 쉬지 않고 먹이를 물어다 주며 양육한다. 그리고, 새끼들이 다 자라면 둥지 밖에서 먹이로 유인하여 자연에 적응하는 훈련을 시킨다. 종달새의 알을 분석하면 화학성분만이 분석될 뿐이다. 그러나, 봄이 되면 성장한 종달새는 하늘 높이 떠올라 무슨 사연인지 몰라도 온 종일 조잘거리며 노래한다. 그러한 노래는 화학적으로 분석되지 않는다. 이러한 노래의 정보는 어디서 온 것일까?

언젠가 필자가 부란기에서 갓 태어난 병아리 두 마리를 길가에서 구입하여 방바닥에 내려놓고 좁쌀을 뿌려 준 적이 있었다. 그러자, 병아리들은 기분이 좋다는 듯 조잘거리더니 뒷발로 흙을 헤집는 시늉을 하던 장면을 기억한다. 어미닭이 아닌, 기계에서 부화한 병아리의 이러한 거동은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이러한 본능적 행위는 동물의 유전자 속에 미리 정보가 주입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들이다. 자연계에는 이처럼 진화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현상들로 가득 차 있다.

 

 11. 물질의 화학구조가 창조론을 증거한다.

화학이 밝혀낸 특정원소들의 무기화학적인 역할들도 설계의 강력한 증거이다. 모든 생명체의 골격을 구성하고 있는 비금속성의 탄소(C)는  모든 종류의 원자들과 결합할 수 있는 연쇄(catenation)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성질 때문에 핵산, 단백질, 섬유소와 같은 생명구성성분들이 존재하게 된다. 이러한 탄소는 지구상에 0.017%, 모든 생명체의 9-10%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지만, 탄소가 없이는 생명이 유지되지 못 한다.

비금속 주족원소인 산소(O2)도 특이한 분자구조를 하고 있다. 산소를 제외한 비금속 주족원소는 짝수개의 전자쌍으로 있을 때에만 안정하므로 모두 공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나, 산소만이 두 개의 비공유전자(unpaired electron)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소는 화학적으로 안정하며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이러한 비공유결합이 없다면 산소가 혈관 속으로 들어가 헤모글로빈과 결합할 수 없을 것이다.

아연(Zn)은 시스테인이나 히스티딘과 같은 아미노산과 결합할 때 손가락처럼 행동하면서 DNA의 위치를 인식하도록 한다. 이를 아연손가락단백질(Zinc finger protein)이라 한다. 이 밖에 생리작용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원소들(Na, K, Cl, Mg, Ca)도 생리작용에 적합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자연계에서 합성되는 20종의 아미노산들은 예외 없이 L-형만 만들어지는 반면, 오탄당(ribose)은 D-형만 만들어진다. 수많은 당류 중에 오직 간단한 구조를 가진 D-형 오탄당만이 핵산의 구성성분으로 작용하고 있다.

핵산의 단량체인 모노뉴클레오타이드를 연결하고 있는 에스텔결합은 오직 인산염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 이 인산염은 결합의 정확도가 뛰어나며 체내의 화학에너지인 ATP, GTP등의 구성성분이 되기도 한다. 모든 생명체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물의 구조(H20)는 화학결합보다 약한 수소결합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액체(물), 고체(얼음), 기체(수증기)의 구조를 잘 유지하게 한다. 이러한 모든 화학적 구조들은 섬세하게 설계된 것임을 보여준다. [에드워드 부드로; 기초화학: 창조의 증거, 창조 121호, pp 17-21, 2000, 원문은 ;Edward A. Boudreaux;  Impact No. 324, ICR] 더구나, 물(H2O)은 수소(H) 두 분자와 산소(O) 한 분자로 구성되어 있으나, 이들을 분리하면 물의 성질은 없어지고 가스성분만 남을 뿐이다.

 

12. 진화론은 추리에서 출발하여 추리로 끝나는 비과학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을 흡사 자연과학의 대명사인 양 혼돈하고 있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진화론은 그 속성상 자연과학이 될 수 없다. 그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물질의 기원에 대하여 설명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주계 최초의 원인물질(또는 에너지)이 어디서 어떻게 유래했는지 대답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형이상학적으로 사고해야만 해답이 나오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진화론처럼 모든 것을 오직 물질적인 것에서만 찾으려는 해석체계로서는 한계에 봉착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두 번째 이유는 진화론은 모든 주장을 주관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진화론에서는 모든 분야에 대해 항상 ”...할 것이다, ...라고 생각된다, ...라고 추측된다, ...일 것이다” 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자세는 자연과학의 속성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과학은 본질적으로 '과학적 방법'(scientific methodology)에 따라 사물 속에 숨어 있는 원리나 법칙을 찾아내고 실험적으로 검증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가 어디서 실험을 하든 동일한 결과가 변함없이 나올 때, 즉 재현성이 있을 때 비로소 자연과학의 법칙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화론의 연구대상인 생명의 기원이나 생물종의 다양성문제는 실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 이유는 이러한 문제들이 과거에 단 한번 밖에 일어나지 않았던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과학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자기 나름의 주관적인 해석을 하는 것뿐이다. 따라서, 진화론은 그 스스로 정설이 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영국 자연사박물관의 고생물학자인 패터슨(Colen Paterson)은 뉴욕의 자연사박물관(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에서 행한 한 공개강연(Nov. 5, 1981)에서 지질학자들에게 ”진화론이 사실이라고 하는 증명된 것이 있으면 하나만이라도 말해 보시오”라고 했으나 아무도 대답을 하는 사람이 없이 침묵만 흐르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같은 질문을 시카고대학에서 열렸던 진화론 세미나(Evolutionary Morphology Seminar)에서 제기했는 데, 그 중 한사람이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한다. ”내가 아는 한 가지 일은 진화론이 학교에서 가르쳐져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Albert Sippert; Evolution is not Scientific; 32 Reasons Why, p  353, Sippert Publishing Company, Mankato, MN, 1995]

 

13. 진화론의 주요 이론들은 이미 부정되었기 때문이다.

강자만이 살아 남는다는 적자생존 이론은 초식동물이 육식동물보다 더 번성하고 있는 현실로 볼 때 타당성을 잃게 된다. 그리고, 초식동물들이 잡혀 먹히는 것은 대개의 경우 약해서가 아니라 운이 나빴기 때문이다. 후천적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 장기간에 서서히 진화한 흔적도 자연계에선 찾아 볼 수 없다. 진화의 요인이라는 돌연변이는 진화가 아닌 퇴화의 메커니즘일 뿐이다. 그리고, 물질로부터는 어떠한 정보도 나오지 않는다. 정보는 누군가가 외부에서 넣어 주어야만 한다.



출처 -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서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46

참고 : 6553|6486|6550|6149|6132|5081|5130|4639|5740|5683|5420|5994|6449|4821|6263|6018|6468|6148|6474|5510|5947|5954|5591|6211|5589|5602|5966|4837|6090|485|3890|390|2349|3782|6438|4510|5474|6495|5458|6243|5863|2698|6399|5460|6489|5135|5000|4828|6118|6394|6168|6138|5996|774|5497|5827|5158|5962|6358|6258|6119|4066|5544|5443|6556|6501|6096|5459|5274|5450|5909|6461|6436|5586|4542|5041|3391|6393|6476|6292|5796|5768|6271|5462|6146|6439|3591|6125|3426|6285|6152|6153

임번삼
2004-07-26

최근의 진화론 (신다윈주의, 현대종합이론, 단속평형설, 분자진화설, 형질발현 단계설 등)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다윈의 진화론은 최근의 학계를 지배하고 있으면서도 이론적인 모순들이 꾸준히 지적되어 왔다. 그리고, 학계의 비판이 일어날 때마다 새로운 이론으로 끊임없이 그 얼굴을 바꾸어 왔다. 그렇게 하면서 학문이 발전하는 것이라는 미명 하에 말이다. 그 중 대표적인 이론 몇 가지를 소개한다.

  

1. 신다윈주의 (Neo Darwinism)

  이 설은 화란의 드브리스가 <왕달맞이꽃의 연구>(1901)로 인공돌연변이에 의한 변종을 만든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돌연변이설에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가미하여 바이스만(August Weismann 1834-1914)이 <진화론 강의>(1902)를 통해 제시한 이론이 신다윈주의이다. 즉, 자연은 돌연변이에 의해 생성된, 그래서 환경에 보다 잘 적응하는 종을 선택하여 진화하도록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그 후, 밀러의 (1928)에 계승되었다. 바이스만은 라마르크가 예로 들었던 기린의 화석에서도 목의 길이가 현재보다 약간 짧은 중간길이의 화석생물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려고 후천적 획득형질이 유전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쥐의 실험으로 보여 주었다. 즉, 수정하기 전에 생쥐의 꼬리를 잘라 낸 후에 20대 이상 교미를 반복하였으나 꼬리가 없는 쥐는 태어나지 않았다.

그는 변이(變異 variation)는 생식시 자웅의 불변적인 유전단위인 생식질(生殖質)이 결합하여 생기는 것이며, 이 때 자연선택이 작용하여 진화를 일으킨다고 하였다. 생식질 내에서 생긴 이러한 미세한 변이가 축적되어 큰 변이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는 몸이 환경의 영향으로 변하는 경우에도 생식세포에는 있는 생식질은 변하지 않고 자손에게 유전된다는 '생식질의 연속성'도 주장하였다. 이들은 후천획득형질의 유전설을 주장하는 스펜서(Spener 1820-1903), 헤켈, 기어드(Giard), 페리어(Perrier) 등의 신라마르크주의(Neo-Lamarkism)와 충돌하였다. 신라마르크주의자들은 자연에 의한 도태설을 부인하고, 환경요인이 진화의 직접적인 요인이라고 주장하였다. 집단유전학자들도 돌연변이설을 부정하였다.

 

2. 정향진화설 (定向進化說 Orthogenesis)

다윈진화설에 대한 반론으로 코프, 네겔리(Negeli), 에이머(Eimer 1871) 등은 진화가 자연선택이 아니라, 생물체내에 있는 어떤 '고차원적인 섭리'에 의해 어느 정해진 방향으로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쉰데볼프(Otto H. Schindewolf 1896-1971)도 생물은 일정한 방향으로 정향적으로 진화하며 말발굽 계열을 그 예로 들었다. 그러나, 저명한 진화학자인 심프손(Simpson)을 비롯한 고생물학자들은 화석의 진화경로에서 정향성을 발견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 설을 반박하였다. 그리고, 쉰데볼프가 제시한 말의 계열도 그 순서대로 진화한 것이 아니라 학자들이 짜 맞춘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3. 집단유전설(集團遺傳說 Population Genetics)

생물군이 지리적으로나 생리적으로 격리되면 변종이 생긴다는 이론은 일찍이 바그너(Wagner 1813-1887)와 로마네스(Romanes 1848-1894)등에 의해 제기된 바 있었다. 이러한 이론은 그 후 하아디-바인버그법칙, 할데인, 심프손, 그리고 현대종합이론이 가미되어 집단유전설로 발전하였다. 특히, 영국의 수학자인 하아디(Godfrey H. Hardy 1877-1947)와 독일인 의사인 바인버그(Wilhelm Weinberg 1862-1937)가 제창한 하아디-바인버그설(Hardy-Weinberg's principle 1908)은 집단유전학을 출범시킨 계기를 만들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교배는 무작위로 일어난다.

 (2)대립인자와 인자형은 적합성에 있어서 차이가 없다.

 (3)대립인자는 유전자의 이동에 의해 증가하거나 감소하지 않는다.

 (4)돌연변이는 일어나지 않거나 무시할 정도이므로 대립인자의 빈도는 항상 일정하다.

 (5)집단은 크기 때문에 여기에 무작위적인 부동이 작용하지 않는다.

 (6)윗 조건중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유전자빈도에 변화가 일어나 대진화를 촉발한다.

율(G.H. Yule 1873-1949)과 할데인(John B.S. Haldane 1892-1964), 라이트(Sewell Wright(1889-?), 피셔(Fischer), 심프손(Simpson) 등은 격리집단에서 돌연변이에 의한 자연선택으로 진화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하였다. 피셔의 <자연선택의 유전학적 이론'(1930)은 자연선택설에 대한 유전학적 기초를 수립했고, 할데인은 '자연선택 및 인위선택의 수학적 이론>(1924)에서 여러 종류의 자연선택이 유전자빈도의 변화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수리적으로 연구하였다. 이 설에서는 진화의 단위가 격리된 집단(isolated population)이며 진화의 기본기구는 한 집단내의 개체에서 나타나는 유전적 변이(genetic variation)라고 주장한다. 즉, 한 집단이 격리된 상태에서는 격리집단의 모든 유전자가 섞인 유전자 풀(gene pool)을 형성하며, 이 상태에서 유전자빈도(gene frequency)의 점진적인 변화가 진화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한 집단이 유전적으로 평형일 때(환경변화가 없을 때) 진화는 일어나지 않지만, 유전적평형이 파괴될 때에는 유전자빈도의 상승으로 급격한 진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소수의 개체군이 지리적 또는 기능적으로 모집단에서 격리되어 있을 때 종의 분화는 더 빨리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종으로 관찰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는 것이 이 설의 취약점이기도 하다. 피셔와 할데인은 진화요인이 자연선택이라 했으나, 라이트는 유전적 부동현상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은 돌연변이와 같은 급격한 변화를 부인하고, 집단내의 유전적 변이와 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 점진적으로 진화가 일어난다고 보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진화가 유전적 변이에 대한 자연의 선택으로 이루어진다는 주장은 다윈의 진화론과 같으나, 획득형질의 유전을 인정치 않는 점에서 서로 다르다. 환경변화가 없을 때에는 유리한 변이는 선택되고 불리한 변이는 배제하여 형질의 안정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작용하지만, 환경이 변할 경우 자연선택은 환경에 적응한 형질을 집단 내에 확산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주장은 자연선택설과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진화의 단위를 집단으로 해석한 점이 신다윈주의와 다르다.

 

4. 현대종합이론 (Modern Synthesis Theory)

1930년대에는 다윈의 자연선택설과 멘델의 유전학을 연결시키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쥴리언 헉슬리(Julian S. Huxley 1887-1975)는 <진화-현대적 총합>(1942)이라는 저술에서 지금까지 제창된 진화론을 종합하여 설명하고자 하였다. 도브쟌스키(Theodosius Dobzansky 1900-1975)는 이 설의 초석을 놓은 것으로 평가되는 <유전학과 종의 기원>(1937)에서 초파리의 자연집단에 대한 연구로 소수개체의 격리에 의해 새로운 종이 형성된다고 하는 창시자원리(創始者原理/先驅原理)를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유전자돌연변이가 유전자풀에서 일어나면 좋은 종이 자연에 의해 신종으로 선택되어 진화한다는 것이다.

뮐러(Muller 1928) 역시 초파리에 대한 X-선 조사로 자연돌연변이율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설을 주장하였다. 심프손(Simpson)은 <진화의 속도와 양상>(1944)에서 고생물학적 사건들을 집단유전학으로 해석하고자 하였으며, 마이어(Mayer)도 <계통분류학과 종의 기원>(1942)에서 돌연변이가 유전자변이를 가져오는 요인이며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요인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현대종합이론(Modern synthesis theory)은 계통분류학, 유전학, 생태학, 분류학, 고생물학 등의 학문을 총합하여 짜깁기한 이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연계에서는 돌연변이가 유리한 방향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설의 취약점이다. 최근에, 현대종합이론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를 위해 모인 시카고의 자연사박물관에서 열렸던 진화론학술대회(1980.10.16-10.19)에서 이 분야의 일인자인 아얄라(Francisco Ayala)는 '화석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작은 변이들이 축적되지 않았음을 이제 확신한다' 면서 점진진화론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그리고, 굴드와 엘드리지(Gould & Eldridge) 역시 전통적 진화론을 비판하고 '바람직한 괴물설'을 주장하였다. 삼일간 걸쳐 진행된 이 회의에서는 이례적으로 '소진화는 대진화로 연결될 수 없다'는 중대한 성명이 발표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선언은 전통진화론에 치명적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R. Lewin; Evolution Theory Under Fire, An Historic Conference in Chicago, Challenges the Four Decade Long Dominance of the Modern Synthesis, Science, Vol. 210, pp 883-887, Nov. 21, 1980].

 

5. 도약진화설/단속평형설 (Punctuated Equilibria Theory)

이 설은 네겔리(Carl W. von Naegeli 1817-1891)의 정향진화설이나 헉슬리 등의 현대종합이론이 주장하는 점진진화론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1940년대에 슈밋트와 엘드리지(Gold Schmidt & Niels Eldrege)가 주장한 것이다. 즉, 전통적인 점진진화설에서 생물의 중간종이 발견되지 않은 데 대한 보완책으로 나온 것이다. 화석이나 자연계의 생물종들은 중간형태가 없이 갑자기 완벽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진화가 단속적으로 휴면상태에 들어갔다가 어느 순간에 갑자기 다른 종으로 발전한다는 것이 이 이론의 요지이다. 그래서, 도약진화설(saltatory(jump) evolutionism) 또는 퀀텀진화론(quantum evolutionism)이라고 불리운다.

엘드리지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누구도 (점진진화론자들이 기대하는) 중간종 형태의 증거를 발견한 적이 결코 없었다.' [Niles Eldredge; Alternate Theory of Evolution Considered; Lack of Fossil 'Missing Link Evidance Causes Change in Thought, Los Angeles Times, Nov. 19, 1978]. 슈밋트(R. Gold Schmidt)는 <진화의 물리적 기초>(Material Basis of Evolution 1940)에서 종내 변화(소진화/변이)와 신종의 형성(대진화/진화)은 별도의 기구에 의한 것이며, 신종의 생성은 염색체구성의 전체적인 변화에 기인하는 것이라는 전체돌연변이설(systematic evolutionism)을 주창했으며, 이 때의 진화요인은 돌연변이라고 하여 '바람직한 괴물론'의 사고를 제시하였다.

이 설은 당시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72년에 하버드대학의 굴드(Stephene Jay Gould)가 '바람직한 괴물이론'(hopful monster theory)으로 변형하여 재등장시킨 것이다. 굴드는 이렇게 말했다.

"돌연한 변형으로 나타나는 화석기록들은 점진진화설을 지지하지 않는다...대진화는 바람직한 괴물들이 희귀하게 나타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지 집단내의 작은 연속적 변화에 의한 것이 아니다."

"나는 다음의 10년간(1980's) 골드 슈밋트의 이론이 진화생물학계에서 널리 정당화될 것으로 예견한다."

이들에 의하면(1973), 집단의 유전자가 평시에는 유전적 평형을 이루고 있다가 5천-5만 년 간격으로 갑자기 신종으로 교체가 된다는 것이다. 신종출현은 당시에 살고 있는 생물의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괴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더 좋은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났으므로 '바람직한 괴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다윈의 전통진화론과 정면으로 대립되는 개념이다. 이들은 대진화를 일으키는 요인은 근본적이고도 급속한 염색체의 재배치나 조기분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조절유전자나 초월적 유전자(super gene)의 격변적인 변이의 결과라고 말한다. [Stephene Jay Gould; The Return of Hopeful Monsters, Natural History, June/July, 1977].

이들은 중간형이 화석에서 발견되지 않는 이유는 신종이 갑자기 탄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예컨데, 파충류의 알에서 종자가 전혀 다른 새(鳥類)가 부화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파충류-새의 진화모델에 대해 디스커버지(誌)가 창조론자인 모리스(Henry Morris), 블리스 (Richard Bliss), 기쉬(Duane Gish) 등의 창조론자들과 진화론자인 굴드(Stephene Gould) 및 세이건(Carl Sagan)에게 공개토론을 제의했으나, 진화론자들이 거절하는 바람에 좌절되었고, 그 대신 간단한 편지로 몇 마디로 논쟁이 이루어졌을 뿐이다. [Discover, May-June, 1981].

먼저, 기쉬가 물었다. "최초의 새가 파충류의 알에서 나왔는가?"

굴드가 대답했다. "혹자들이 (진화론적인) 지적단계를 웃어 넘기게 하려고 당신처럼 진화론을 오해하는 발언을 하는 것이 아니겠소."

그러자, 기쉬박사가 "파충류와 조류 사이의 도약(reptile-bird jump)은 잘못된 발상"이라고 반박했으나 진화론자들이 대답을 피하는 바람에 논쟁은 중단되었다고 한다.  

그 후, 미국과학진흥협회(American Association of Advancement of Science)는 어린이교육협회와 공동으로 교재를 만들었는데(사진 11), 그 책에는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새끼공룡이 알을 낳고 있는 공룡엄마에게 묻는다.

"엄마는 지금 새끼공룡이 들어 있는 알을 낳고 있나요?"

어미공룡은 대답한다.

"그 알은 전혀 새롭고 놀라운 알이란다...그 알에서 세계 최초의 어린 새가 태어났으며, 그 새는 자라면서 깃털이 나오고...높은 나무가지에 앉아 처음으로 노래하는 아름다운 새가 되었단다... 아주 먼 옛날 옛적에." [Dahlov Ipucar; The Wonderful Egg,  Doubleday, Garden City, New York, 1958]

그러나, 이러한 도약진화설에는 굴드도 인정하듯이 몇 가지의 문제점이 있다.

첫째는, 어째서 괴물이 아닌 바람직한 괴물이 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은 불행스럽게도 염색체 재배치나 돌연변이에 의해 나타나는 생물은 예외 없이 기형적인 것만 보아왔다. 그 누구도 바람직한 괴물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둘째로, 파충류가 새로 도약한다는 것도 비논리적인 데, 하물며 다리가 어떻게 날개가 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셋째로, 새로 태어난 괴물은 누구와 짝을 이루어 후손을 번식시킬 수 있었겠느냐 하는 점이다. 즉, 이러한 괴물이 우연히 태어났다 하더라도 다른 성을 가진 또 다른 괴물이 반드시 같은 시기에 같은 지역에서 태어나지 않으면 당대에서 끝이 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태어난 괴물이 성장하기까지 누가 키웠으며, 새끼새가 성숙할 때까지 어미공룡이 먹이를 가져다 주었어야 한다. 수많은 동물들이 과연 이런 식으로 출현했겠는가 하는 점이다.

따라서, 이러한 도약설이 점진진화설보다 나은 점이 무엇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창조론자와 도약진화론자간에 논쟁은 계속되고 있지만, 그러한 분쟁 중에도 양자간에 중요한 공통점 한가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잃어버린 고리는 영원히 잃어버린 것"이라는 사실이다(The missing links are the missed, forever).


*참조 : Eviscerating Eldredge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810

Just-so-stories for the punctuated evolutionist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8_1/j18_1_48-51.pdf
Punctuated equilibrium: come of age?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774

 

6. 분자진화설 (Molecular Evolutionism)

이 설은 훌로킨(Marcel Florkin 1900-)이 <생화학적 이론>(1944)에서 주장한 비다윈적 진화론이다. 예컨데, 어떤 단백질(Hb의 글로부린)이 척추동물의 진화에 따라서 어떻게 변화했는지 화석 등으로 추정되는 진화햇수에 대응하는 한 아미노산을 치환하는데 소요되는 햇수를 산출하는 것이다. 생물대표종의 특정 단백질(예; 사이토크롬 C, Hb)에 대해 조사하여 구성아미노산의 상동성에 따라 계통수를 작성하기도 한다. 이렇게 하여 쥬커칸(E. Zuckerkan과 폴링(Pauling)은 헤모글로빈(Hb)분자에 대한 진화연구를 토대로 분자시계(分子時計)를 만들었고, 말고리어쉬(E. Margoliash 1965)는 사이토크롬 C의 진화에 대해 연구했으며, 핏치(W.M. Fitch 1967)는 생물계통수(生物系統樹)를 작성하였다.

이러한 연구들은 1960년대에 전기영동법이 개발되면서 집단생물이 가지고 있는 유전적 변이의 정도를 측정할 수 있게 되어, 연구가 활기를 띠게 되었다. 아울러, 유전적 변이가 환경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아얄라와 죤슨(Ayala & Johnson)은 유전자변이가 환경에 적응현상을 나타낸다고 하였다. 그러나, 윌슨과 살리취(Wilson & Sarich)는 전기영동법으로 얻을 수 있는 데이터는 진화에 관계되는 조절유전자가 아니라, 구조유전자에 대한 것이라고 반론을 제기하였다.

쿄토대학의 키무라(Motoo Kimura 1924- )는 <분자수준에 있어서의 진화속도>(Nature 1968)라는 글에서 분자진화중립설(Neutral theory of molecular evolution)을 주장하여 관심을 끌었다. '돌연변이는 자연선택과는 무관하게 중립적이며, 우연히 집단 내에 축적이 되면서 진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현대종합설이 주장하듯이 유리한 변이는 선택되고 불리한 변이는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변이는 중립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집단유전학과 분자생물학을 접목한 비다윈적 진화론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킹(King & Jukes) 등이 <비다윈진화>(Science 1969)에서 이 설을 지지하면서 진화론자들간의 찬반논쟁을 유발시키기도 하였다. 그의 분자중립진화설은 이러하다.

네 종류의 핵산염기가 둘씩 짝을 이루어 유전자쌍을 만들며 세 쌍이 하나의 아미노산을 만들도록 암호화(triple codon)되어 있다. 예컨데, GAT와 GAC는 모두 아스파라긴산을 만들도록 지시하는 암호이다. 즉, 끝자리의 T와 C가 서로 바뀌어도 결국 아스파라긴산이 만들어진다. T→C이든 C→T이든 같은 아아스파라긴산이 만들어지므로 그 아미노산을 함유한 단백질의 생성에는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게 된다. 이런 현상을 중립적 돌연변이(neutral variation)라 했으며, 이러한 현상은 자연선택과는 무관하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중립적 돌연변이가 쌓이면 '휴식상태'에 있는 돌연변이가 그 생명체에 유리하게 작용하게 되고 자연선택에 의해 종 전체로 확산이 된다는 것이다. 즉, 중립적 변이는 유전적 변이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중립설은 유전자형(genotype)에 관한 것이며, 표현형(phenotype)에 대한 자연선택설을 수용한다.

그러나, 이 이론으로 분자진화의 특징인 '진화속도의 일정성'과 '진화의 보수성'은 잘 설명이 되지만 분자진화와 표현형진화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리고, 중립설의 결정적인 문제점은 중립적 돌연변이가 왜 생명체에 유리한 방향으로 유전적 변이를 일으키는지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돌연변이는 일반적으로 유해한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것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7. 형질발현 단계설(Stepwise Control Theory)

고려대학교의 생물학 교수였던 이영록(李永綠 1989)은 형질발현단계설(形質發現段階說)을 주장하였다. 표현형의 진화는 분자진화에 근거하나 유전형질의 발현은 분자, 세포, 개체 등 각기 다른 수준에서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며, 각 단계마다 환경요인이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표현형의 진화속도는 분자진화의 속도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영록 교수 정년기념논총 간행위원회; 생물의 역사, p 17, 법문사, 서울, 1996] 그러나, 이 설 역시 진화가설에 대한 추상적인 설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증명할 아무런 실험적 증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추론적 설명범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범균비래설(Panspermia)

전술했듯이, 생명포자(sperm)가 우주에 가득하게(pan) 날아 다니다가, 운석이나 외계의 우주선에 의해 원시지구에 떨어져 생명이 부화하여 오늘의 동식물들로 분화되었다는 설이다. 리히터(Hieronymus T. Richter 1824-1898), 헬무홀츠(Helmuhortz 1884), 캘빈(Lord Kalvin 1824-1907), 아레니우스(Svante A. Arrhenius 1859-1927)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최근에,  크릭(Francis H. Crick 1916-)은 <유전정보의 기원>(1968)에서 문명이 발달한 다른 혹성에서 생명의 종자를 우주선으로 보낸 것이라는 정향적 범균설(定向的 汎菌說 directed panspermia)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설은 결국 우주계의 생명이 최초에 자연발생한 것인지, 아니면 창조된 것인지 하는 근원적인 문제로 귀결하게 된다.

 

*참조 : Which Evolution Should Be Taught? (Headlines, 2008. 12. 19)
http://creationsafaris.com/crev200812.htm#20081219a


출처 - 도서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45

참고 :

임번삼
2004-07-26

다윈의 진화론 

(Darwin's Evolutionism)


1. 비글호 여행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은 약관 22세의 나이에 피츠로이선장이 이끄는 10문의 대포를 장전한 영국해군의 측량선 비글호(The Beagle, 사진 6)를 타고서 데븐포트 항구를 떠나 다시 팔마우스 항으로 귀환하기까지 장장 5년간(1831.12-1836.10) 남태평양 일대와 갈라파고스 제도(Galapagos islands)를 항해하였다. 이처럼 긴 여행에서 그는 동식물군이 같은 종류사이에도 약간씩 차이가 있으며 갈라파고스군도의 인접한 섬에 살고 있는 동식물들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 라이엘과 말서스의 이론을 참고로 하여 생물진화론(biological evolution)의 골격을 만들었다. 이러한 그의 이론은 <제일원리>(First Principle 1862), <생물학원리>(Principles of Biology 1864-1867), 그리고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1859-1872) 등에 발표되었다(사진 7). 이 책의 원명은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 또는 생명을 위한 투쟁에 있어서 좋은 종의 보존에 관하여 (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 이다.

다윈(사진 8)은 여행 후 친구인 후커(Joseph Dalton Hooker 1817-1911)에게 보낸 편지(1844.11)에서 '갈라파고스의 생물분포는..인상적이었다..(마치 살인했다고 고백하는 심정이지만) 생물은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에 이르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이론의 골격은 이미 1837년에 완성했으나 다윈은 20여년간 발표하지 않고 있다가, 식물학자인 월레스((Alfred Russel Wallace 1823-1913)가 말레이에서 보내온 <변종이 원형에서 무한히 멀어지는 경향에 대하여>라는 글을 읽고, 그 내용이 자신의 주장과 대부분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고서 서둘러 <종의 기원>을 발간했다고 한다. 후커의 중재로 다윈과 월레스는 공동명의의 논문을 발표했으나(1858.7.1), 다윈은 다음 해 서둘러 <종의 기원>(1859.11.24)을 발표한 것이다.

다윈이 주장한 진화론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생물은 필요 이상으로 자손을 낳는다(Overproduction)

(2) 개체간에는 변이가 일어난다(Individual variation)

(3) 이들은 경쟁한다(Competition)

(4) 환경에 보다 잘 적응하는 개체가 확률적으로 생존하게 된다(Survival of the fittist)

(5) 자연은 이러한 방식으로 생존력이 강한 개체를 선택한다(Natural selection)

이러한 다윈의 진화론은 몇 가지 가상적인 조건들을 필요로 한다. 첫째는 장기간(long term)에 걸쳐서 일어났다는 시간개념이다.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 이행할 때마다 오랜 기간이 소요됐을 것이라 가정한다. 둘째는, 서서히 점진적으로(slowly & gradually) 진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환경에 적응하는 개체들을 자연이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서서히 점진적으로 진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라이엘의 지질학 이론에서 따온 것이다. 물론, 이러한 두 조건은 오늘날 창조론자는 물론 많은 진화론자들에 의해서도 부정되고 있다. 다윈은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오직 물질뿐이며 정신적이거나 영적인 현상들은 부산물에 불과하다'고 하여 유물론적 성향을 분명하게 드러냈다(M & N Note 1838/1839, Descent of Man 1871) 이러한 주장은 마르크스의 유물론과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고 받았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마르크스(Karl Marx)는 그의 친구인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1869)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비록, 영국식의 엉성스러운 스타일로 (진화론을) 전개했지만, 우리들의 이론에 대한 자연과학적 근거를 제공하였다.' 유물론에서도 정신은 물질의 산물로 해석하고 있어 진화론과 맥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만한 현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다윈은 <인류의 혈통>(1871)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어린 생명은 다 생존하는 것이 아니며 늙어서 죽는 것이 아니다. 자연도태의 원칙에 있어 생존에 적합한 종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고 부적합한 종은 멸종한다...지구가 처음 생성될 때 있었던 종이 현존하는 것은 극히 드물고 현존하는 종들은 원형으로부터 형질이 변화하여 생존에 유리하도록 바뀐 것이다. 인간도 이같은 자연의 법칙으로 진화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러한 다윈의 이론은 자연과학뿐 아니라 종교, 사회, 교육분야에 큰 영향을 끼쳤다. 사회적 다윈주의(Social Darwinism)는 생물학적 생존경쟁이론을 경제, 사회, 정치분야에 적용하였다. 그 결과, 정치적인 보수주의, 경제적 방임주의, 사회적 개인주의가 태동하였다. 서구인들은 다윈 이론에 기초하여 제국주의, 인종주의, 민족주의, 군국주의, 자본주의를 추구하였다. 이들은 평등과 인권을 주장한 계몽주의와도 충돌하게 되었다.

 

2. 옥스포드의 논쟁

그의 진화론이 발표되자 영국사회는 큰 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자연과학의 문제가 사회와 종교의 문제로 비화하게 된 것은 예견된 일이기도 하였다. 종의 진화여부, 자연선택이 과연 진화의 요인인가 하는 문제, 신의 설계에 관한 문제, 인간이 유인원의 후손인가 하는 심각한 문제들이 일시에 사회 전면에 대두되었다. 이리하여 진화론과 창조론 두 진영간에 공개적으로 첨예하게 부딪힌 사건이 '다윈의 불독'이라 불리운 헉슬리(Thomas H. Huxley 1825-1895)와 오웬(Owen)의 후원을 받은 윌버포스 주교 사이에 옥스퍼드 대학에서 벌어진 옥스퍼드논쟁(1860.6)이었다(사진 9). 오웬 (Richard Owen 1804-1892)은 당대에 저명한 해부학자로, 영국자연사박물관의 초대 관장직을 맡고 있었으며, 다윈의 진화론에 적극 반대하였다. 이렇게 하여 성경중심의 유신론적인 신학과 무신론적이며 유물론적인 진화론 사이에 서로 질 수 없는 한 판 승부가 전개되었는데, 논쟁결과 진화론이 우세를 보임에 따라 진화론은 전 유럽으로 급속히 퍼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 시대를 대표하는 세기적인 과학자였던 톰슨(William Thompson), 파라디(Michael Faraday 1791-1867) 및 맥스웰(James Maxwell) 등은 단호하게 진화론을 배척하였다. 그로부터 5년 후 진화론에 거부적인  영국과학자협회 소속의 과학자 617명이 모여서 다음과 같은 반진화론 선언(1865)을 하였다. "성경의 진리에 의심을 던지는 과학자들의 태도에 마음이 아프다. 우리는 자연과학은 완전치 않으며, 성경과 (실험)연구내용이 일치하지 않는다 하여도 언젠가 일치할 때가 오리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오웬이 죽은 후(1892) 자연사박물관 입구에는 아서 케이스를 비롯한 다윈의 추종자들에 의해 다윈의 좌상이 들어섰다.

 

3. <다윈의 불독> 헉슬리와 <진화론의 예언자> 헤켈

영국의 헉슬리는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적극 옹호하여 <다윈의 불독>이라 불리웠다. 그는 진화론의 전파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북대서양 심해의 진흙에서 발견한 원핵생물들을 독일의 진화학자인 헤켈의 이름을 따서 버티비우스 헤켈리(Bathybius heckelii)라 명명하기도 하였다. [Thomas Huxley; On some living organisma living at great depths in the North Atlantic Ocean, Quarterly J. of Microscopical Science, 8, p 204, London, 1868].

 <진화론의 예언자>라 불리운 헤켈(Ernst Haeckel 1834-1919)은 베르린 등지에서 커다란 홀을 빌려 일반인에게 강연하는 등 정열적으로 진화론을 전파하는 데 노력하였다(사진 10).

그의 사고방식은 매우 체계적이었으며, 처음으로 생물의 계통수를 만들기도 하였다(그림 3). 그리고, 무생물이 생명체로 이행된 과정이 무리라 생각하고 그 중간에 모네라(Monera)라는 가상적인 생명체를 삽입하였다. [Ernst Haeckel; Genelle Morphologie der Organismen, vol.2, 1;135, 1866]. 그리고, 핵이 없이 원형질로만 구성된 수많은 종류의 가상적인 모네라의 그림을 곁들여 인쇄하였다. [The History of Creation, 2 vols, New York, Translated by D. Appleton, 1868].

그때까지 다윈에 반대해 왔던 지질학자 라이엘이 결국 진화론을 수용하게 되자 진화론은 더욱 빠른 속도로 전 유럽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이렇게 하여 1870년대에는 자연선택설이 광범위하게 지지를 받는 기간이 되었다.

 

4. 신라마르크주의와 신다윈주의

그러나, 이웃 프랑스에서는 신(新)라마르크주의(Neo-Lamarkism)가 일어나 후천획득형질의 유전설을 인정하고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배척하였다. 영국의 철학자인 스펜서(Spencer)와 독일의 헤켈도 획득형질의 유전에 찬성하였다. 그러나, 바이스만은 자연선택설을 지지했으나, 후천획득형질의 유전설을 실험결과를 토대로 부인하고 다윈의 다른 주장들도 배격하는 신다윈주의(Neo-Darwinism)를 수립하였다.

1900년에 모계형질만이 유전이 된다는 멘델의 유전법칙이 드브리스 등에 의해 재발견되면서 진화론의 모순이 극명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이처럼, 초창기에 다윈의 진화론이 처음에는 위세를 떨치며 학계를 풍미했던 현상과는 달리,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진화론자들의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바그너(1813-1887)와 로마네스(1848-1894)는 생물종의 일부가 지리적으로 격리된 곳에서 생육하면 신종이 탄생한다는 격리설(Isolation Theory)를 주장하였다. 이 설은 후일 집단유전학(Population Genetics)으로 연결되었다.

 

5. 인종우생학의 등장

한편, 다윈의 종제(從弟)인 갤튼(Francis Galton 1822-1911)은 인종우생학(Eugenics 1883)을 창립하고 인종개량을 역설하여 많은 윤리적인 문제를 야기시켰다. 이들에 의하면, 인종은 백인, 황인, 흑인 순으로 우수하며, 백인 중에서도 북구인(Nordic White)이 우수하므로 그들을 중심으로 인종을 개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학회는 구미제국을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과거 10년간(1925-1934) 그들의 영향으로 제정된 단종법(斷種法)에 따라 9천여명의 유전병이나 선천적 불구자들이 강제로 금혼당했던 것으로 브리태니카는 기록하고 있다. 또한 우량인종을 보호할 목적으로 유색인종의 미국이민을 제한하는 이민제한법(移民制限法)의 제정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는 명백히 인권을 유린한 행위이며 인종차별을 시도한 범죄적 사건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여기에 대해서는 뒷장에서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6. 돌연변이설과 집단유전학의 등장

드브리스(Hugo de Vries 1848-1935)는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비판하고, 돌연변이에 의한 유전설을 주장하였다. 그는 "진화는 순계에 있어서 일련의 돌연변이로 일어나는 것이며, 자연선택은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하였다. 요한센(W.L Johansen)은 <순계설>(純系說 1903)에서 "선택은 순계의 분리에 소용될 뿐이고 환경에 의한 변이는 진화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하면서 유전자의 불변설을 주창하였다.

진화론자인 모건(Thomas Hunt Morgan 1866-1945)은 <초파리의 염색체 및 유전연구> (1933)로 유전자설(遺傳子說)을 주장하고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비판하였다. 그의 이론은 모건그룹(Morgan Group)이라 불리운 세 명의 제자인 스튜티벤트(Alfred H. Sturtevant 1891-1970), 브릿지(Calvin B. Bridges 1889-1938), 뮐러(Hermann J. Muller 1890-1967)에 의해 계승되었다. 뮐러는 진화론을 (1)라마르크의 용불용설, (2)돌연변이에 의한 도약진화설, (3)다윈의 자연선택설, (4)네겔리의 점진적 발달설로 구분하고, 자신은 다윈과는 달리 생물이 갑자기 진화한다는 도약진화설을 지지한다고 하였다. 로티(J.P. Rotti 1916)는 교잡에 의해 생물종이 진화가 일어난다는 교잡설(交雜說)을 주장하였다.

도브쟌스키(Theodosius Dobzansky 1900-1976)는 <유전학과 종의 기원>(1937)에서 진화요인으로 '격리'가 중요한 역할을 하며, 소수 개체군의 격리가 신종의 형성에 중요하다는 집단유전학(集團遺傳學)을 주장하였다. 집단유전학은 돌연변이나 격리에 의한 자연선택설을 생물통계학적으로 뒷받침하려는 이론으로, "다윈주의의 현대적 부활" 또는 "진화의 종합학설"로도 불리운다. 유전자나 염색체가 변이에 의해 생긴 돌연변이가 격리, 이주, 자연선택 등에 의해 고정이 되면서 신종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할데인( John B.S. Haldane 1892-1964)도 집단유전학자중 하나이다.

하아디(Godfrey H. Hardy 1877-1947)와 바인버그(Wilhelm Weinberg 1862-1937)는 '하아디-바인버그설'을 주장하였고, 쉰데볼프(Otto H. Schdewolf 1896-1971)는 정향진화설을 제창하였다. 이들은 다윈의 자연선택이론을 통계학적인 방법으로 유전학적으로 해석함으로써 두 학설간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시도하였다. 이렇게 하여 집단유전학이 탄생함으로써 다윈주의는 극적으로 부활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진화요인으로서 다시 생존경쟁과 자연선택론이 강조되었고, 여기에 돌연변이와 격리효과가 추가된 현대종합이론(modern synthetic theory)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7. 바람직한 괴물이론

1940년대에 특기할 사건은 비교생물학의 등장과 괴물론의 제기이다. 슈밋트(R. Gold Schmidt)는 종내 변화를 소진화(microevolution)라 하고 종간 변화를 대진화(macroevolution)로 구분했으며, 신종의 급격한 출현을 내용으로 하는 전체돌연변이설(systematic mutation theory)을 <진화의 물질적 기초>(1940)를 통하여 주장하였다. 그의 이론은 1970년대에 하버드 대학의 굴드(Stephene Gould)가 <바람직한 괴물이론>(hopful monster theory)으로 재탄생시켜, 지금은 진화론의 주된 이론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 이론의 수용은 전통진화론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들 최신 진화론에 대해서는 좀더 상세히 후술할 것이다. 이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이 에데노피테쿠스(Edenopithecus)라는 고등동물로 진화하리라고 이름까지도 지어 놓고 기다리고 있는 상태이다.

쥴리언 헉슬리(Julian Huxley)는 다윈의 <종의 기원>발표 100주년 기념학술대회(1959)에서 '다윈의 이론은 창조주인 하나님의 존재를 우리의 인식세계에서 완전히 제거하였다' 고 하였다. 그리고, 그의 저서인 <진화론의 문제>(Issues in Evolution 1960)에서 "다윈의 진화론은 이제 이론이 아니고 사실이다. 진화론을 부인하는 것은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도는 것을 부인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그런가 하면 시카고 진화회의(1980)에서는 "화석기록에서 빠진 고리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의 법칙이다. 과학자들이 종과 종 사이를 이어주는 전이형태의 화석을 찾으려면 찾을수록 실망만 한다"고 실토하기도 하였다.

1940년을 전후하여 탄생한 비교생화학(comparative biochemistry)은 생물 상호간의 생화학적 유사성을 비교함으로써 생물학적 유연관계를 진화과정으로 해석하려는 것이다. 여기에는 핵산염기의 상동성, 여러 단백질의 아미노산배열상의 상동성을 제시하고 있다. 비교발생학은 배아나 기관의 발생과정과 물질대사와의 관계를 규명함으로써 진화론의 옹호에 이용하려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헤켈의 배아 발생도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8. 분자생물학의 등장

1930년대에 태동한 분자유전학(molecular genetics)는 1950년대에는 핵산구조의 발견으로 이어졌다. 1960년대에는 핵산으로부터 단백질의 합성되는 과정이 밝혀짐으로써 센트랄 도그마(central dogma)가 수립되었다. 1970년대부터는 유전자조작시대로 접어들었고, 1980년대부터는 시험관아기의 탄생, 1990년대에는 인간유전체연구와 및 배아복제의 연구가 생명과학분야를 이끌었다. 그 결과, 생명의 구조가 부분적으로 밝혀지고 생명체의 일부를 인간이 조작하게 됨으로써 생명윤리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게 되었다.

분자생물학의 발달 자체는 진화론을 지지하는 증거가 아니다. 다만, 인간이 과거에는 접근하지 못했던 생명과학의 영역까지 침투해 들어갔다는 사실 때문에 진화론자들은 흡사 생명이 물질로 구성된 것임을 증명이라도 한 것인 양 홍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알려진 생명과학의 정보가 극히 미미한 것일 뿐 아니라, 점차로 밝혀지는 생명체의 신비는 오히려 창조의 가능성을 더욱 입증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2.3 진화론적 종의 분화설

생물은 전통적으로 동물계와 식물계로 대별되어 왔다. 그러나, 미생물을 포함한 새로운 종의 발견으로 생물의 분류체계는 재검토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지금은 동물계, 식물계, 균류계, 원생생물계, 모네라계의 5군으로 구분하고 있다. 또 다른 분류법으로는 세포내의 핵막(nuclear membrane)의 유무에 따라 분류하는 방법이다. 핵막이 없는 것은 원핵생물(原核生物 procaryota)이며 있는 것을 진핵생물(生物生物 eucaryota)로 대별하기도 한다. 이 분류에 의할 경우, 세균은 원핵생물군에 속하고 곰팡이, 효모를 포함한 균류이상의 고등생물은 진핵생물군에 속하게 된다. 이중에서 진화론에서 특히 중요시하는 분야가 동물계이다. 동물의 문(門)은 계통발생학적인 관계에서 동물군집간의 상대적인 형태와 배발생(胚發生)에 근거하여 구분하고 있다.

진화론자들은 진화에는 향상진화, 분기진화 및 수렴진화가 있다고 말한다. 향상진화(anagenesis)는 일명 계통진화(phyletic evolution)이라고도 하는 데, 전체 개체군이 일정기간중 원래의 한 종에서 새로운 종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분기진화(cledogenesis)는 모계로부터 수 많은 신종이 환경에 맞게 진화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분기진화가 반복됨으로써 모계의 생물도 생존하면서 수많은 신종 생물이 출현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적응방산(adaptive radiation)에 의해 생물학적 다양성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계통의 생물이 진화에 의해 비슷한 형질을 나타내는 경우 수렴진화(covergent evolution)이라고 부른다.  예컨데, 새와 박쥐, 고래와 어류는 상동성이 없으나, 다른 생물로부터 같은 조류나 어류가 되었다는 것이다. 습성과 외관이 유사한 호주의 유대류는 태반포유류가 수렴진화한 것이라 진화론자들은 추리한다. 이러한 다른 종의 분화요인으로서 지역적으로 격리되어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것을 이지역 종형성(異地域種形成 allopatric speciation)이라고 부른다. 진화론자들은 그 대표적인 예로 다윈이 관찰했던 갈라파고스 제도의 방울부리새(Finch birds)를 든다(그림 4). 이와는 반대로, 같은 지역에서도 새로운 종이 형성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동지역종형성(同地域種形成 sympatric speciation)이라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식물에서 많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배수성(polyploidy)을 갖진 종 사이에 염색체가 결합하는 경우 이질배수(alloploidy)라 하는 데, 이는 배수체가 감수분열시 짝을 지을 수 있기 때문에 잡종을 형성한 것이며, 현화식물에서 많이 발견되는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동물분류를 최근의 과학적 시각으로 생물의 계통수로 나타낸 것은 헤켈(E. Haeckel)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분류는 화석의 결과와 상충되는 것이 많은 모순된 것이었다. 고생물학자들의 오랜 연구결과들은 생물이 단계적으로 출현한 것이 아니라, 캄브리안기에 갑자기 출현했다는 데 의견들이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5S-rRNA를 이용한 실험으로도 확인되었으며, 이러한 사실을 참고로 마굴리스(Margulis & Schwartz, 1982)는 새로운 동물계통수를 제안하였다(그림 5). 워스((Woese et al, 1987)는 16S-rRNA의 유사성을 기준으로 생물의 계통도를 만들djT고,  원핵생물과 진핵생물외에 또 다른 생물군이 있다고 하였다. 이 고세균군(古細菌群)은 5S-rRNA로 분석한 결과 진핵세포에 가깝기 때문에 호리(Hori)등은 <후생세균>으로 명명하자고 제안하였다.

척추동물의 기원은 여러 설이 있으나, 미국의 고생물학자인 로머(Romer)가 주장한 대로 후구동물이나 원색동물에서 유래한 설을 채택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실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생물의 제반 유사성을 근거로 한 가설인 것이다. 척추동물의 기원은 원색동물→무악류→무악류→판피류→어류로 진화되었으리라 추정한다. 일곱 개의 아가미를 가진 칠성뱀장어는 원구류인데 무악류(3.5~5억 년 전)에서 진화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데본기에는 어류의 조상이라는 경골어류 외에 연골어류도 출현하므로 어류시대라 불리운다. 이중 경골어류가 육지생활에 적응하여 양서류가 되었으리라 추측하고 있다. 데본기에 살았다는 담수어인 선기류(rhipidistians)와 바다에 살았던 관추류가 총기류에 속한다. 그러나,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관추류인 실라칸스(Latimeria)가 최근에 동부 아프리카의 코모르제도의 심해에서 잇달아 발견되고 있는 데, 7천만년 전의 모습과 조금도 변함이 없어 진화론자들을 당혹케 하고 있다.

진화론에서는 육상에 척추동물이 처음 출현한 때를 진화론자들은 3.5억 년 전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총기류의 일종인 관추류가 양서류로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이 시대는 진화지질학적으로 석탄기와 이첩기에 해당한다. 석탄은 양치식물(지름 1.5m, 높이 30m)이 탄화된 것인 데, 당시에는 고온다습한 열대기후였기 때문에 개구리와 같은 양서류의 서식에 적합했으리라고 추측한다. 중생대에는 양서류가 파충류(공룡포함)로 진화했으리라 추측한다. 파충류는 거북, 도마뱀, 뱀, 악어가 대표적인 동물종이다. 3억5천만 년 전부터 수중생활을 한 고공류(Anthracosurus)와 단궁류인 오피아코돈(Opiacodon)에서 유식동물인 반용류(Pelycosaurus)를 거쳐 수궁류(Therapsids)인 시노그나터스(Cynognathus)로, 여기에서 다시 포유류로 진화했다는 것이다(그림 6). 파충류의 일종인 공룡은 삼첩기에 나타나 쥐라기와 백악기에 번성하였는데, 조반목(Ornithischia)과 용반목(Saurischia)로 나눈다. 조반목에 속하는 것으로는 초식성이며 뿔이 달린 트리세라톱스(Triceratops)와 거대한 몸집(길이6m, 8톤)에 육식성의 티라노사우루스(Tyranosaurus), 최대의 몸집(길이 20-25m, 50톤)을 가진 브론토사우루스(Brontosaurus)가 있다.

그 후, 파충류에서 조류와 포유류가 되었다고 한다. 포유류는 단궁류→반용류→수궁류(이첩기후기)→견치류(Cynognathus)→포유류(삼첩기말기)의 순서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원시 포유류는 고양이나 쥐처럼 작은 체구를 가졌으며, 적응방산에 의해 여러 종류로 분화되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고 한다. 그러다가 백악기 후기(7,000만년 전)부터 포유류시대라 불리우는 신생대로 접어들게 된다. 이후 4천만 년간(시신세-점신세)에 걸쳐서 소형포유류가 대형포유류, 원시영장류, 유인원을 거쳐서 인간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들은 모두 추리에 기초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진화의 속도에 대해서는 장기간에 걸쳐서 서서히 이루어진다는 전통적인 점진설(gradualism)과 진화가 급격히 일어난 후 긴 정지기로 들어간다는 단속평형설(punctuated equibrium theory)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다. 그러나, 단속평형설이 점점 진화론자들의 지지의 폭을 넓혀가고 있으며, 이는 창조주가 모든 생물을 처음부터 종류대로 만들었다고 하는 창조모델로 접근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출처 -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서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44

참고 :

임번삼
2004-07-26

진화론의 태동


       진화가 무엇인지 그 개념을 학술적으로 정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커티스 등은 '진화란 유전자풀에서 한 세대로부터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형질빈도(alleles frequency)의 모든 변화'라고 말한다. [Helena Curtis, N. Sue Barnes; Biology, 5th ed, Worth Publishers, p974, 1989] 이러한 진화론의 핵심을 컬쿳(Kerkut 1960)은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로 요약하였다. [G.A. Kerkut; Implication of evolutionism, p6, 1960]

(1) 무생물에서 생물이 자연적으로 발생하였다.

(2) 자연발생은 단 한번 일어났다.

(3) 바이러스, 세균, 동식물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4) 원생동물에서 후생동물이 발생하였다.

(5) 여러 무척추동물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6) 무척추동물에서 척추동물이 발생했다.

(7) 척추동물인 어류에서 양서류, 양서류에서 파충류, 파충류에서 조류와 포유류가 발생했다.

  진화론은 세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첫 단계는 무기물에서 유기물이 합성되어 안정된 반응계를 형성한 화학진화(chemical evolution)이다. 둘째 단계는 안정된 반응계가 자기복제능력을 가진 원시세포로 발전하는 생명발생(origination of life)의 과정이다. 셋째 단계는 원시세포가 장기간에 걸쳐서 서서히 오늘날과 같이 다양한 동식물과 미생물종으로 분화한 생물진화(biological evolution)이다. 첫 단계는 오파린의 <생명의 기원>(Origin of life 1937)에 집약되어 있으며, 밀러와 유레이 및 폭스가 실험적으로 증명하고자 시도했음은 앞장에서 기술한 바와 같다. 둘째 단계는 중세기의 생명의 자연발생설이며, 셋째 단계는 다윈의 <종의 기원>(Origin of Species 1859)에 의해 점화된 것이다.

  진화론의 탄생근거는 동식물의 형태적 유사성, 생명현상이나 유전자기능의 동일성, 같은 종 내에서의 변종출현 등에 근거를 두고 있다. 따라서, 하등한(?) 생물로부터 고등한 생물로 발전했으리라고 판단하고, 그러한 믿음 위에 가설을 설정한 것이다. 따라서, 진화론은 자연과학의 방법론에서 경계하는 선입관(先入觀)을 가지고 출발한 것이다. 생물의 진화론은 다윈이 주장하기 이전부터 있어 온 사상을 다윈이 자기 이론으로 정리하였을 뿐이라고 드프리스는 이렇게 말한다. '조상의 생물종으로부터 변이에 의해 신종이 생성된다는 진화론은 다윈 이전의 많은 학자들에 의해 주창된 것이다.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95), 라마르크(1809), 에라스무스 다윈(Erasmus Darwin) 및 체임버스(Robert Chambers 1844) 등이 그 예이다' [A. De Veris; The Enigma of Darwin, Clio Medica 19(1-2), 136-155, p 145, 1984]

  유럽의 18세기는 <이성의 시대>이면서 <자연과학과 신학간의 전쟁시대>였다. 이러한 싸움은 그리스의 자연에 대한 점진적 적응사상이 자극을 준 것이다. 다윈이 한 일은 오직 세계관적인 이론을 체계화한 것에 불과하였다. [A. Desmond; The Politics of Evolution, p 1,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2]

  진화론의 성립과정을 정리하면 표에서 보는 바와 같다(표 1). 이 표에서 보듯이 진화론은 명백히 상상에 의존하여 만든 추리소설과 같은 것이다. 그 내용은 비약의 연속이기 때문에 매우 드라마틱하며 강한 믿음이 없이는 수용하기 힘든 시나리오이다. 첫 장면은 원시대기의 주성분으로 추측되는 환원성 가스들이 번개의 방전에너지로 결합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것이 비에 녹아 원시해양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러한 물질들이 교질상의 원시바다에서 햇빛의 작용으로 서로 결합하여 코아세르베이트라는 입자가 되고, 이것이 외부에 있는 핵산과 단백질분자를 흡수하여 단백질상의 구형입자(proteinoid)로 발전하면서 무기호흡계가 발생한다. 이것이 발달하여 광합성능을 가진 독립영양체인 원시세포(protocell)가 되면서 산소를 방출하기 시작한다. 산소는 대기권으로 올라가 오존층을 형성한다.

  이러한 원시세포들이 해중의 세균류가 된다. 그리고,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다양한 동식물로 방산진화한다. 유해로운 우주광선이 오존층에 의해 차단되면서 해중생물이 육상으로 올라  온다. 그 과정은 해양척추동물이 양서류, 파충류, 설치류, 조류, 포유류(類人猿), 영장류를 지나 마침내 오늘의 인간으로까지 진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나리오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모든 생물들은 진화를 계속하고 있으므로 사람은 또 다른 동물로 바뀔 것이라는 예고편이 기다리고 있다. 새로운 인류의 이름을 그들은 이미 에데노피테쿠스(Ethenopithecus)라고 명명까지 해 놓은 상태이다. 이러한 내용들은 완전히 추리에서 출발하여 예측으로 끝을 맺는다. 이러한 추리는 자연과학이 될 수 없다.

  이처럼, 진화론은 모든 생물이 물질에서 출발하여 스스로 생성된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유물론적이며 무신론적인 사상임을 알 수 있다. 사람도 동물의 일종이므로 인간존엄성을 굳이 내세울 근거도 없어지게 된다. 다른 동식물들보다 머리가 좋은 탓에 만물을 지배하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따름이다. 따라서, 다른 동물집단의 공격을 받을 우려가 있으므로 이에 대비하여 인종을 개량하자고 진화론자들이 인종우생학(人種優生學 Eugenics)을 설립한 것이 120 년전(1883년)의 일이다. 흡사 공상소설에서나 나옴직한 이러한 가설이 오늘날 거의 모든 학문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불가해한 현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러한 진화사상의 기원은 그리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밀레토스학파(700 BC)는 물질에서 생명이 저절로 발생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아낙시만드로스(611-546 BC)는 흙으로부터 식물과 하등동물이 생겼고, 인간은 어류로부터 진화한 것이라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384-322 BC)는 특히 동물학에 대해 깊은 연구를 하였다. 그는 동물의 종류를 에이도스(eidos)라 하였고 비슷한 에이도스를 모아 게노스(genos)로 분류하였다. 그리고, 생물의 진화를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생물의 계통을 나열한 자연의 사다리를 작성하기도 하였다(그림 2).

  다윈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우연'이라는 개념을 배우게 되었다고 종의 기원(1859, 1872년판)에서 주장했으나,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잘못 해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엠페도클레스의 우연론이 어떻게 불가능한 것인지 논증하였다. 그는 자연의 과정에서 우연으로는 자연계의 현상이 일어날 수 없으며, 자연 속에 내재하는 어떤 힘(계획과 아이디어)에 의해 수행된다는 목적론적 자연관을 설파하였다. 이는 우연에 의해 자연선택이 이루어진다는 다윈의 자연선택론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로마시대부터 1,500여년 간은 기독교적 창조론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 시기였다. 중세기가 지나면서 생명의 자연발생설이 나타나면서 현대진화론이 태동하기 시작하였다. 헬몬트, 뷰퐁, 니이담, 푸셰 등의 생명의 자연발생설, 라이엘의 지질학(geology), 라마르크 등의 생물진화론, 라매뜨리의 인간기계론, 생물분류학(taxonomy), 해부학(anatomy), 자연철학(natural philosophy), 그리고 말서스 등의 인구론을 비롯한 사회과학(social science)의 출현이 다윈의 진화론 형성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준 요인들이라 할 수 있다.

  영국에서 라이엘 등을 중심으로 한 지질학이 확산되고 있을 때, 생물진화론의 씨앗이 프랑스에서 뷰퐁과 라마르크를 중심으로 싹을 피워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 두 요소가 합하여져 다윈에게서 꽃을 피우게 된 것이다.

 

1. 생물분류법의 수립

  18세기까지는 '종(種 species)은 불변'(immutability)이라는 개념이 지배적이었다. 종이란 마이어(E. Mayre)가 제안했듯이 '상호교배가 가능한 집단'을 말하며, '자연집단 내에서 같은 유전자 풀(pool)을 이루고 있으면서 다른 무리와는 생식적으로 격리되어 있는 무리'라 정의할 수 있다. 진화론에서는 종이 분화를 일으키는 요인으로서 지리적 격리(geographic isolation), 생식적격리(reproductive isolation), 이질배수성(allodiploidy)을 든다.

 18세기에 창조과학자인 스웨덴의 린네(Carl von Linne 1707-1778, 사진 1)는 <자연의 체계>(Systema Naturae 1735)라는 불후의 저서를 통하여 생물의 이명분류법(二名分類法)을 확립하였다(사진 2). 그 분류체계에서 인간을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로 분류하였다. 그 자신은 진화론에 반대하고 창조주에 의한 창조를 믿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그러나, 그의 생물분류체계는 그의 생각과는 달리 역설적으로 하등생물에서 고등생물로 '종은 변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도록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왜냐하면, 린네는 사람을 영장류의 일종으로 분류했으며, 분류학상 어느 종으로도 분류하기에 애매한 잡종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2. 용불용설과 후천획득형질 유전설

 프랑스의 뷰퐁(Buffon 1707-1788)은 <박물지>(1749)에서 '생물은 환경의 영향, 특히 먹이와 온도가 생물의 변화를 일으키는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생물의 자연발생설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뷰퐁의 박물지에 영향을 받은 사람이 다윈 이전의 최대의 진화론자로 알려진 프랑스의 해부학자 라마르크(Jean Beptiste de Lamak 1744-1829)였다. 그는 <동물철학>(Phylosopie Zoologique 1809)과 <척추동물지>(1815)에서 '생물은 환경이 변하면 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변한다. 생물의 기관은 사용할수록 발달하고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한다. 그리고, 퇴화하거나 발달한 형질은 다음 자손에게 전하여 져서 진화가 일어나게 된다.'고 진화에 시간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하였다. 그리고, 생물은 간단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서서히 변한다고 하였다. 또한, 동물의 기관은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하고 많이 사용하면 발달한다는 용불용설(用不用說, Theory of Use and Disuse 1809)과 후천적으로 얻어진 형질은 유전된다(aquired character inherited)는 획득형질유전설도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실험적인 비교해부학과 분류학을 주장한 큐비에의 '종의 불변설'과 대치되어 빛을 보지 못 했다. 이러한 가설들은 후일 학문적으로 부정되었으나 종의 진화사상을 확산시키는 데에는 큰 역할을 하였다. 다윈은 라마르크의 자연선택현상을 설명하면서 용불용설을 인용하였다. [S.J. Gould; Leonardo's Moutains of Clams and the Diet of Worms, Harmony Books, p 4, 1989]

  오켄(Lorez Oken 1779-1851)은 <자연철학 개요>(1809-11)에서 '동물은 그 발생기간에 동물계 전체과정을 경과하며 태아는 전체의 동물망을 일시적으로 대표한다'고 하는 계통발생설(系統發生說)을 주장하였다.

 

3. 인간의 진화론

   뷰퐁(1707-1788)은 '원숭이와 사람은 공통조상을 가졌었다'고 하였다. 다윈의 조부이며 박물학자인 에라스무스 다윈(Erasmus Darwin 1731-1802)은 <동물학>(Zoonomia 1794-1796)에서 생명은 해중에서 발생하여 양서류, 육상동물, 원숭이를 거쳐 사람이 되었다고 했으며, 환경에 대한 적응(adaptation)이 진화의 요인이라 주장하였다. 그는 다윈이 태어나기 7년전에 죽었지만 독일어로 쓰인 에라스무스의 영어번역본은 다윈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Ernst L. Kraus; Erasmus Darwin, translated by W.S. Dallas, J. Murray, London, 1879] 후일, '다윈의 불독'으로 알려진 헉슬리(Thomas H. Huxley 1825-1895)는 <자연계에서 인간의 위치>(1863)라는 저서에서 인간의 동물기원설을 주장하였다. 다윈의 또 다른 추종자인 독일의 헤켈도 인간이 원숭이에서 진화했다고 주장하였다.

 

4. 지질학과 화석

  생물학계의 움직임과는 별도로 다윈의 진화론형성에 큰 영향을 준 분야가 19세기에 부상한 지질학(geology)이었다. 당시에 학계에서 수용하고 있었던 격변설(激變說 catastrophism)에서는 지층이 대홍수에 의한 격변적 변화로 급격히 형성된 것이라 가르치고 있었다. 이에 반해, 라이엘(Charles Lyell 1797-1875)은 <지질학 원리>(Principle of Geology 1830-33)에서 지층은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형성된다는 동일과정설(同一過程說 uniformitarianism)을 주장하였다(사진 3). 라이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준 허튼(James Hutton 1726-1797)은 <지구의 이론> (Theory of Earth 1795)에서 '지형은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서서히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들이 축적되어 형성되는 것'이며 '현재는 과거의 열쇠'(The present is the key of the past)라고 하였다. 동일과정설의 핵심이론은 '장기간'과 '서서히'라는 말속에 압축되어 있는데, 이 용어들은 후일 다윈의 진화론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격변설에서는 지구의 역사가 매우 짧다(10만년 이내)고 했으나, 동일과정설에서는 지층을 12개로 구분하고 지구역사가 운석의 분석결과를 토대로 46억년이라고 주장하였다. 라이엘은 다윈에게 영국에서 과학연구를 계속하려면 저서 속에 종교문제를 다루지 말도록 충고를 받았으며, 다윈은 이 충고를 끝까지 지켰다고 한다. [Himmelfarb 1968) 여기에 곁들여 지층 속에서 발견되는 화석(化石 fossil)이 또 다른 논쟁거리로 등장하였다. 화석은 라틴어 포실리티스(fossilitis; 땅에서 파낸 기묘한 물건)에서 유래한 말이다. 진화론자들은 옛 화석에 나타난 생물의 종류가 현재의 생물종과 다른 이유는 그러한 생물들로부터 현재의 생물로 진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라이엘은 화석종과 현재 생물이 다소 차이를 나타내는 이유는 종이 변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종류의 것이기 때문이라고 진화론자들을 비판하였다.

  층서학(層序學)의 시조로 불리우는 큐비에는 화석은 홍수에 의한 격변시 생성되었다는 격변설(또는 천변지이설 catastrophism)을 주장하였다. 그는 파리근교의 몽마르뜨에서 발굴한 화석들(1796)을 연구 분석한 <화석골에 대한 연구>(1812)를 발표했으며, 화석뼈들을 모아 처음으로 동물의 모습을 복원하였다(사진 4). 그는 27회의 격변 후 최종적으로 전지구적인 노아 홍수에 의한 격변이 일어났었다고 주장하였다(1812). 격변설에서는 화석이 격변에 의해서만 생성되며 중간종이 발견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으나, 다윈은 더 많은 화석이 발견되면 중간종(transitional forms)도 무수히 나타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러한 중간종의 화석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어, 화석은 진화론을 괴롭히는 최대의 미스테리로 남게 되었다.

 

5. 자연신학과 자연철학

  19세기에 풍미한 자연철학(natural philosophy)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 속에는 자연을 이끌어가는 신비한 힘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후일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로 하여금 범신론적인 경향으로 흐르게 하였다. 그의 사상은 중세기에 아퀴나스의 스콜라철학에 영향을 주었으며, 이에 따라 카톨릭교회에 신비주의적 요소가 침투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자연철학은 자연을 신비화함으로써 환경보호에 기여했으나, 자연과학의 발전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도 평가되고 있다.

  자연철학의 영향을 받은 자연신학(自然神學 natural theology)은 자연계에 나타난 신의 능력과 신성(롬1;20)을 노래하면서 모든 생물이 자연에 적응하면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신비속에서 신의 설계와 신의 의지를 찾고자 하였다. 큐비에의 제자인 하버드 대학의 아가시즈(L. Agassiz)는 <분류에 대한 고찰>(1857)에서 '생물계는 유일한 지혜와 위대성, 전지성, 통찰, 섭리를 잘 보여준다. 이런 사실들을 통하여 인간은 창조주를 알 수 있다'고 하였다.

  다윈은 캠브리지 대학에서 배웠던 그의 스승 패일리(William Paley 1743-1805)에게 일생동안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자연환경에 대한 생물계의 오묘한 적응현상을 신의 존재론적 증명의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다윈은 생물들이 자연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현상에서 생물의 적자생존에 의한 자연의 선택(natural selection) 현상으로 이해하였다. 다윈은 학부과정에서 고전, 수학, 신학을 공부했는데, 패일리의 <기독교의 증거>와 <도덕과 정치철학>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패일리는 자연계의 오묘한 조화는 지적설계자(Master Designer)인 창조주의 솜씨(Creator's Hand)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표현에 대해 연구한 진화론자인 헉슬리는 해석하기를, 패일리가 신이 자연을 창조한 후에는 우연에 의해 발전해 가도록 내버려 두었다고 주장함으로써 자유주의적이며 진화론적인 사고를 받아들인 경향이 있다고 분석하였다. [Francis Darwin ed; Charles Darwin, life and letters, 3 vols, 2;202, John Murray, London, 1887] 그래서, 패일리의 신은 종종 아리스토텔레스의 신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자연선택사상은 다원 이전에 웰스(William Charles Wells 1813), 월레스(Alfred Russel Wallace 1858), 체임버(Robert Chamber)등에 의해 주창된 것으로. 다윈은 스스로 말하기를 자기가 체임버의 <창조의 자연사적 증거들>(1844)을 보지 못했더라면 <종의 기원>을 쓸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F.G. Crookhank; The Mongol of Our Midst, p 4, E.P. Dutton & Company, New York, 1931] 체임버는 인종이 진화와 퇴보에 의해 유래된 것이라 믿었다고 한다(Crokshank 1931).

  다윈은 그 후, 보수주의적인 캠브리지나 옥스퍼드대학 대신 자유주의적인 에딘버러대학으로 전학하여 지질학자 및 라마르크주의의 동식물학자들과 만나면서 진화에 대한 기초를 쌓게 되었다. 그는 불신자들(부모, 형제, 친구들을 포함한)이 영원한 형벌에 처해진다는 성경내용에 대하여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불신자로 돌아서게 된 것으로 전한다. [Nora Barlow; The autobiography of Charles Darwin, 1809-1882, p 87, Collins, London, 1958]

 

6. 유물론과 사회과학

  다윈이 후일 비글호(The Beagle)로 항해하면서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와 더불어 가장 애독한 책이 말서스(Thomas Robert Malthus 1766-1834)의 <인구론>(人口論 Essay on the Principles of Population 1798)이었다. 인구론에 나오는 '식량생산의 증가는 산술급수적이나 인구증가는 기하급수적이다...이러한 불균형은 기근, 지진, 혁명, 전쟁 등에 의해 인구가 조절된다'는 글을 읽고 적자생존(適者生存)의 개념을 도출하였다. 그는 후커에게 보낸 편지(1838. 10)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나는 말서스의 인구론을 읽었는데..... 생물이 경쟁상황에서 적절한 변화를 일으킨 것은 살아 남고 적응치 못하면 도태한다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이런 생존경쟁의 결과라면 신종(新種)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공산주의자인 엥겔스(Engels)는 생명을 '단백질의 한 존재양식'으로 규정하였으며, '진화론은 유물론의 한 기둥'이라 하였다. 막스(Karl Marx)는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연환경에서 생물들의 경쟁은 계급간의 경쟁과 관련된다'고 했으며 다윈의 생존경쟁을 계급투쟁(class struggle)이라는 말로 바꾸었다. 그는 자신의 저서인 <자본론> 속표지에 '챨스 다윈 선생님께, 당신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칼 막스로부터' 라고 서명하여 다윈에게 기증하였다(사진 5). 이러한 사실에서도 진화론과 유물론간의 긴밀한 학문적 관련성을 엿볼 수 있다.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The Wealth Nation 1776)에서 '자유경쟁의 시장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이 수요와 공급을 조절함으로써 생산과 소비가 균형을 이룬다'고 하였다. 다윈은 이러한 현상을 자연도태에 의해 모든 것이 스스로 진보한다는 뜻으로 해석하였다고 한다. 그러한 영향으로 진화론은 당시에 부르조아 계급의 주요한 정치이념으로 이용되었다.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는 사회를 하나의 통합적인 생명체로 해석하는 <사회진화론>을 주장하면서 '진화'(evolution)라는 용어의 보급에 앞장을 섰고,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라는 용어를 만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획득형질의 유전과 자연선택설을 지지하였다. 그가 만든 사회진화론은 적자생존원리를 합리화함으로써 인종차별과 강대국에 의한 식민지정책의 합리화에 이용되었다.

 미국의 프랭크린(Benjamin Franklin 1706-1790)도 영국의 사회주의적인 단체(Moon Club)의 회원이었으며 [Taylor; ibid, p 55], 유니테리언이었던 프리스틀리(Joseph Priestley 1733-1804)는 사회주의적인 프랑스혁명을 지지하다가 미국으로 추방되기도 하였다. [Taylor; ibid, p 56]

 

7. 인공육종실험

  다윈은 당시에 유행했던 동식물의 육종실험으로 변종이 탄생하는 것을 보고 여기에 '장기간'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면 계속되면 신종이 탄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실험적 세계에 상상의 날개를 달게 한 것이다. 그는 <종의 기원>(1859)에서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자연계에서의 도태는 인공교배보다 훨씬 더 정교한 것이다...자연계의 생물들은 한없이 복잡하며 격심한 조건에 순응치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것이다.'

 

8. 계몽주의와 산업혁명

  이 밖에도, 오랜 중세 암흑기에 인간을 억압했던 종교에 대한 반발로 촉발된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및 18세기에 영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산업혁명도 다윈의 진화론 형상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생물진화론을 처음으로 주장한 사람은 몽테스큐(Chales de Secondat Montesquieu 1689-1755)로 그는 '태초에 매우 적은 종으로부터 다양한 생물로 증식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마일레(Benoit de Maillet 1656-1738)는 '물고기가 조류, 포유류, 사람의 조상'이라고 했으며(1748), 백과사전학파인 디데로(Diderot)는 '원시동물로부터 자연에 의해 오늘의 모든 동물들로 발전했다'고 하였다.

 

9. 유니테리언 가문과의 교제

  다윈의 가문은 유니테리언인 웻지우드 가문(Josiah Wedgewood's family)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죠시아 웻지우드는 다윈의 조부인 에라스무스 다윈의 친구였다. 이들이 다니는 유니테리언 교회에는 산소의 발견자인 화학자 플리스틀리(Joseph Priestley)도 포함되어 있었다. 챨스 다윈도 청년시절에는 유니테리언이었다. 죠시아의 딸인 수산나(Susannah)는 다윈의 아버지인 로버트 다윈(Robert Darwin)과 결혼하였다. 챨스 다윈은 어머니의 조카인 에마(Emma Wedgewood)와 근친결혼을 하였다. 다윈의 큰 누나는 웻지가문으로 시집을 갔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다윈가문과 유니테리언신앙의 웻지가문이 3대에 걸쳐 겹사돈관계를 맺으면서 긴밀한 혈연관계를 갖게 되었다.

  유니테리언은 후일 다윈의 진화론을 교회 내로 이끌어들이는 중심적 역할을 함으로써 유신진화론의 확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하버드대학을 유신진화론으로 바꾸게 한 아사 그레이이다. 그는 다윈의 친구로서 교제를 계속하였으며, 미국에 진화론을 도입한 <진화론 전도사>였다. 여기에서 의문이 되는 점은 왜 다윈 가문이 웻지 가문과 대대로 결혼했는가 하는 점이다. 그 해답은 그 당시 빅토리아시대의 영국사회에서는 명문계급간에 우수한 집안끼리 결혼하는 것이 관습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다른 이유는 이미 부정된 라마르크의 후천 획득형질의 유전설을 다윈이 믿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Taylor; ibid, p 127]

  그러나, 이렇게 의도적으로 육종되어 태어난 근친간의 자손은 병에 걸리게 된다. 챨스 다윈의 10명의 자손이 이를 증명한다. 한 딸(Marry)은 태어나자마자 죽었고, 앤(Anne)은 10세에 죽었다고 한다. 장녀(Henrietta)는 15세에 정신분열증에 걸렸고, 6남중 3명은 다윈이 표현한대로 잦은 병으로 '쓸모 없는'(semi-invalid) 존재가 되었으며, 막내아들(Charles Jr.)은 지능저해자로 태어나 9개월만에 죽었다고 한다. 레오날드 다윈만 제대로 자라났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다윈 자신도 일생을 갖가지 병으로 고생을 했다고 한다. 윈슬로우(J. H. Winslow)는 그가 비소축적 독에 걸렸다고 했으며(Colp 1977), 애들러 교수(Saul Adler)는 샤가스씨병(Chagas disease, Triatoma infestans)에 걸렸을 것으로 진단하였다(Colp 1977). 다른 학자들은 니코틴중독이나 정신적, 심리적 질환을 추측하기도 한다.

  그의 병력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한 콜프(Colp)에 의하면 다윈은 공교롭게도 진화사상을 품기 시작한 젊은 시절(1837.7)부터 각종 질환을 앓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사망, 비글호를 운전했던 피츠로이선장의 자살, <종의 기원>을 발표했을 때(1859) 받은 거센 사회적인 비난 등으로 신경쇠약과 위장병을 앓았으며, 얼굴에 퍼진 습진 때문에 그 유명한 수염을 기르게 되었다고 한다. [Ralph Colp; To be an invalid, p 142, University of Chicago press, Chicago, 1977] 다윈은 1882년 4월 19일, 런던근교에서 심장마비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감하였다. 무신론자인 그의 시신은 유신진화론자인 훼드릭 템플의 노력과 영국상원의 청원에 힘입어 기독교의 심장부인 웨스트민스터 교회에 묻히게 되었다.

  다윈의 사촌인 갤튼(Francis Galton)은 미래사회를 지배할 우수 엘리트의 육종에 대해 광범위한 저술활동을 하였다. 그는 한 저서에서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보다 적합한 인종이나 혈통종자를 만들려면 덜 적응적인 인종보다 빠르게 증식하는 보다 좋은 기회를.....인종우생학이라는 단어가 이러한 아이디어를 충분히 표현해 준다' [Francis Galton; Heredity Genius, p 24, Macmillan, London, 1869]

 


출처 -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서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43

참고 :


임번삼
2004-07-26

<지상강좌> 진화론, 창조론, 그리고 유신진화론


자연을 바라보는 두가지 시각

우리는 자연을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에 잠기곤 한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이러한 생각들이 모여서 학문으로 발전하였다. 따라서 학문은 자연에 대한 해석체계로서 자연계에 내재되어 있는 우주의 법칙을 찾아내려는 합리적이고도 체계적인 활동인 것이다.

우주의 법칙 자체를 신격화한 것이 범신론(pantheism)인데, 기독교를 제외한 여러 종교와 진화론을 포함한 많은 학문이 이에 속한다. 이에 반해 우주법칙을 만든 초월적이며 인격적인 신을 진리의 본체로 믿는 인격신론(personal theism)에는 개신교를 비롯하여 카톨릭, 유대교 및 이슬람교가 있다.

학문은 그리스의 이오니아학파로부터 출발했다. 지금부터 2,700여 년 전의 일이다. 당시 학문의 주된 관심사는 자연과 인간의 본질(en arche)에 관한 것이었다. 우주와 생명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어떻게 탄생하였는지 추구하려는 것이었다. 이것이 오늘의 자연, 사회, 인문 분야로 발전하였다.

따라서 모든 학문의 공통목표는 우주와 생명의 실체, 즉 진리의 본질을 탐구하려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물질과 에너지를 대상으로 하는 자연과학만으로는 진리를 찾을 수 없으며, 인문 및 사회과학과 서로 손을 잡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역사적으로 진리를 찾으려는 노력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학문, 사상 및 종교의 형태로 추구되어 왔다.

학문분야에서는 자연에 대한 해석이 두 가지 시각으로 대립하여 왔다. 창조론과 진화론이 그것이다. 생명과학의 역사는 세 가지 테마에 대한 논쟁사라 할 수 있는데, 이 분야에서도 두 시각이 첨예하게 대립하여 왔다.

첫째는, 태초에 생명이 어떻게 탄생했는가 하는 기원의 문제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저절로 태어났다는 자연발생설과 창조주가 무로부터 창조했다는 창조론이 대립하여 왔다.

둘째는, 오늘의 수많은 동식물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나 하는 생물다양성(biodiversity)에 관한 문제이다. 여기에 대해서도 두 설이 극명하게 대립하였다. 무기물에서 단세포가 발생한 후, 지금과 같은 여러 종류의 동식물로 발달했다는 진화론(evolutionism)과 창조주가 처음부터 종류대로 완벽한 형태로 만들었다는 창조론(creationism)이 그것이다. 이 밖에 다른 천체로부터 생명의 씨앗이 지구로 날라 와서 부화했다는 우주유입설(panspermia)이 있으나 그 씨앗이 태초에 어떻게 탄생했느냐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므로 결국 모든 문제는 창조냐 진화냐 하는 문제로 귀결됨을 알 수 있다.

셋째는, 고생물의 흔적인 화석(fossils)과 그것을 품고 있는 지층(geological strata)의 형성에 관한 문제이다. 진화론자들은 지층이 오랜 세월에 걸쳐 쌓이면서 그 시대에 진화되어 살고 있었던 생물군이 화석으로 매몰되었다는 동일과정설을 주장한다. 그러나 창조론자들은 대홍수에 의한 격변으로 조산활동이 일어나고 그에 따라 지각이 변동하면서 지층과 화석이 짧은 기간에 생성되었다는 격변설을 주장한다.

어떤 문제이든 과거에 일어난 일이므로 정확한 실상을 알 수 없으며 단회적 사건(?)이었으므로 실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다만 그렇게 되었으리라고 설명하는 해석체계이면서 신념이요 신앙일 뿐이다.

진화론은 무신론적이며 유물론적 신앙이며 창조론은 목적론적이며 인격신에 대한 신앙이라 할 수 있다. 두 이론은 주장하는 내용이 대립적이므로 물과 기름처럼 타협될 수가 없다. 그리고 자연에 대한 학문적 해석체계는 이 두 이론뿐이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은 거짓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조화될 수 없는 두 이론을 하나로 엮어 놓은 것으니 유신진화론(theistic evolutionism)이다. 말하자면 유신론적 유물론(theistic materialism)이 탄생한 셈이다. 이질적인 요소가 봉합되었으니 여러모로 자가당착(自家撞着)적인 현상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유신진화론은 이론상 많은 모순을 내포하고 있으며 주장하는 내용이 산만한 느낌을 준다.

실험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 창조론이나 진화론은 모두 비과학(non-science)이다. 그런데 오늘날 모든 교육기관에서 오로지 진화론만이 실험적으로 증명된 이론인 양 가르쳐지고 있다. 반면 창조론은 창세기에 근거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교리적인 비과학으로 매도되고 있다. 그러나 진화론은 과학으로 위장된 비과학이며 창조론은 비과학으로 매도되고 있는 초과학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뒤에서 차차로 설명할 것이다.

최근에 미국에서 실시한 어느 여론조사(John Hulley 1995)는 흥미있는 사실을 보여준다. 노벨상 수상자들(1900-1990)의 종교 분포에서 개신교가 64%로 수위를 점하였고, 카톨릭(22%), 유대교(11%), 정교회(1.6%)가 그 뒤를 따랐다. 기독교계가 98.6%로 압도적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의 기원'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조사(Gallup poll 1993)에서도 매우 놀랄만한 결과가 나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창조론을 지지하는 비율이 47%이었으나 진화론은 9%에 불과하였다. 반면 유신진화론이 40%를 차지했다.

위의 두 여론조사 결과는 미국사회에서 진화론이 유신진화론으로 급속히 선회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유신진화론의 정체에 대해 좀 더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유신진화론은 오랜 역사를 가진 것으로 다윈의 진화론 형성에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다가 다윈의 <종의 기원>이 발표된 20세기 후반부터는 진화론이 반대로 유신진화론에 영향을 주고 있는 형국이 되었다.

이들은 성경의 기적들을 부인하며 하나님이 모든 생물을 진화론적으로 창조했다고 믿는다. 이러한 유신진화론이 오늘날 기독교계로 깊속히 침투하고 있어 우리의 각성이 요구되고 있다. 말세에 교회에 '양의 가죽을 쓴 이리'가 들어온다면 그 중 하나는 이 유신진화론이라고 나는 분명하게 말하고 싶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신학자들과 교역자들이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그다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 관심마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러면서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이러한 유신진화 사상으로 서서히 세뇌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머지 않아 기독교는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정체성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 같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진전된 것은 창조과학자들의 게으름이 큰 몫을 했음을 자성해야 할 것 같다. 지금부터라도 창조과학자들은 기독교계에 유신진화론에 대한 경종을 울리면서 체계적인 대처방안을 모색하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하여야 할 것이다.

 

우주의 기원에 대한 논쟁사

앞에서도 기술했듯이, 생명과학의 역사는 생명의 기원과 다양성 및 고생물의 흔적인 화석과 지층의 형성에 대한 논쟁사라 할 수 있다. 진화론에서는 우주와 지구 및 생명체가  저절로 발생하였고, 유인원으로부터 현생인류가 진화했다고 가르친다. 유신진화론에서는 하나님이 창조의 주체라는 사실만 다를 뿐, 진화론의 주장에 거의 동의한다. 즉 하나님이 자연법칙에 따라 진화론적으로 우주만물을 만드셨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창조론에서는 6일 동안 하나님이 무에서 우주를 창조하셨고 모든 생명체들은 처음부터 종류대로 완벽한 형태로 만드셨다고 말한다. 따라서 진화라는 용어가 개입할 여지를 허락하지 않는다. 사상(事狀)은 하나인데 해석이 이처럼 확연하게 다른 것이다.

우주, 태양, 지구 등의 나이에 대해서도 진화론에서는 긴 연대(각각 120억 년, 50억 년, 46억 년)를 주장하나, 창조론에서는 모두 10만 년 이내(7-8천여 년)로 추정한다. 지층형성이나 그 속에 들어 있는 화석의 기원에 대해서도 진화론과 유신진화론에서는 장기간에 서서히 쌓였다는 동일과정설(uniformitarianism)을 주장하지만 창조론에서는 노아홍수에 의한 천재지변으로 갑자기 만들어졌다는 격변설(catastrophism)을 주장한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학설을 예시해 보면 진화론에서는 자연발생설, 화학진화설, 생물진화설, 동일과정설, 빅뱅설등이 있으며 유신진화론에는 다중격변설, 간격설, 날-연대설, 진행적 창조설, 골격가설 등을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창조론에는 생명속생설, 세포설, 종의 불변설, 유전법칙, 격변설(노아 홍수에 의한) 등이 있다.

진화론이나 유신진화론의 특징은 모두 예외 없이 추리에서 출발하여 추측으로 끝을 맺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문장의 기술방식은 대개 '...라면', '...일 경우', '...로 추측된다', '...일 것이다', '...라 생각된다' 등과 같은 표현을 쓰고 있다.

이에 반해 창조론은 대부분 실험에 의해 확인된 확고부동한 사실들이다. 오늘의 생명과학 이론들은 거의 창조과학자들에 의해 수립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조론과 싸우고 있는 진화론자들이 최근에는 이러한 창조과학적 이론을 진화론을 옹호하는 것처럼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해석은 사실 자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세 이론간의 논쟁은 매우 치열하였다. 생물의 진화문제에 대해서는 종의 가변설(evolution of species)을 주장한 뷰퐁-라마르크(1744-1829)팀이 종의 불변설(immutability of species)을 주장한 린네-큐비에팀과 부딪혀 창조론적인 종의 불변설이 승리를 거두었다.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는 창조론측의 레디(1626-1697), 스팔란쨔니(1729-1799), 파스퇴르(1822-1895), 틴달(1823-1893) 등의 생명속생설(biogenesis)이 각각 진화론측의 헬몬트, 뷔퐁(1708-1788), 니이덤과 푸셰(1800-1872), 베스쳔(1837-1915) 등의 자연발생설(abiogenesis)과 격돌했으나 창조론측의 승리로 돌아갔다. 특히 파리에서 프랑스과학아카데미 주선으로 열렸던 파스퇴르와 푸셰간의 대결은 공개논쟁의 개시를 알리는 첫 신호탄이기도 하였다.

이후, 한동안 생명의 기원논쟁은 잠잠하여진 듯 했으나 20세기초(1936)에 소련의 오파린이 다시 화학진화설(chemical evolutionism)을 들고 나옴으로써 생명발생설에 대한 두번째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유물론적 주장은 생명을 단순한 자동기계로 해석하려는 생명기계론으로 연계되어 발전하고 있다.

이처럼 19세기 중반까지는 창조론이 연속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나 다윈의 <종의 기원>(1859)이 발표되면서 상황은 진화론 측에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오스트리아의 수도사인 멘델은 6년간 수도원에서 완두콩과 분꽃을 재배하면서 발견한 '유전법칙'을 오스트리아의 부린학회에서 공식 발표했으나(1866) 그 내용이 다윈의 진화론과 상치되었기 때문에 생물학계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빛나는 그의 업적은 1900년도에 그의 법칙이 재발견될 때까지 그의 죽음(1884)과 더불어 무덤 속에 들어가 침묵을 강요당하였다.

영국의 런던에서 공개적으로 열렸던 '옥스포드논쟁'(1860)에서는 창조론 측의 윌버포스 주교가 진화론자인 헉슬리에게 판정패를 당하였다. 이 논쟁은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첫 번째 공개논쟁이었으므로 매우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갖는 사건이었다. 그 영향으로 진화론은 영국은 물론 구미제국으로 급속히 확산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러한 싸움은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서도 계속되었다. 하버드대학에서는 그레이(Asa Grey)와 아가시즈가 격돌하여 유신진화론이 승리한 데 이어 예일대학, 프린스턴대학, 맥길대학 등이 1880년대에 진화사상을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고등학교 교과서에 처음으로 진화론이 등장하게 되었으며, 20세기초부터는 창조론이 교과서에서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추세에 위협을 느낀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변호사는 반진화운동을 전개하여 테네시주(1925), 미시시피주(1926), 아칸소주(1928) 등이 진화론 교육을 금지시키도록 법제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실제로 스코프스 재판이 끝난 직후인 1927년에 13개 주에서 반진화론 입법이 상정되었다.

이에 반발한 진화론 측의 시민자유주의연맹(ACLU; 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은 이러한 법규들의 실효성을 실험할 목적으로 스코프스(John Thomas Scopes)라는 교사의 협조를 얻어 테네시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는 내용을 가르친 사건을 연출토록 하였다.

이를 알게 된 한 학부형의 고발로 테네시주의 데이튼이라는 지방 법정에서 '원숭이재판'(1925. 7)이 열리게 된다. 세계 최초로 열린 이 법정재판에서 스코프스의 변호를 맡았던 ACLU 측의 대로우(Clarence Darrow)가 제시한 네브라스카인(1922)과 필트다운인(1912)의 자료의 뒷받침으로 진화론측이 승리하였다.

진화론자들이 제시했던 그러한 자료들은 후일 네브라스카인의 어금니는 멧돼지의 것으로(1928), 필트다운인의 유골은 오랑우탕의 턱뼈에 인간의 두개골을 조립한 사기극으로 드러 났으나(1953) 진화론을 미국 전역으로 확산시키는 데에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자유주의자들은 스코프스사건을 근본주의와 모더니즘간의 상징적인 충돌이며 따라서 창조론을 변호했던 브라이언의 패배를 근본주의의 몰락으로 의도적으로 몰고 갔다.

1960년대에는 소련의 스푸투닉호 발사에 자극을 받은 미국정부가 과학교육을 강화하게 되었다. 그 일환으로 진화론이 생물교과서에 재등장하여 창조론을 대체하게 되었다. 그러나, 카터(Paul Carter), 산딘(Ernest Sandeen), 마스덴(George Marsden) 등의 수정주의자들은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스코프스 재판으로 근본주의가 몰락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결속하게 되었으며 근본주의는 오랜 지적 전통을 지닌 운동이라고 지적하였다.  

1970년에는 국공립학교에서 종교교육을 금지하는 미국헌법조항(Establishment Clause)을 피하기 위한 방안으로, 헨리 모리스(Henry Morries)를 비롯한 창조론자들은 성경적 창조론(biblical creationism)과 과학적 창조론(scientific creationism)을 구분하고 이 중에서 과학적 창조론을 진화론과 같은 비율로 가르치도록 하는 동등시간법(equal time law)을 채택하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1981년에 아칸소주와 루이지아나에서 이 법안을 채택하는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이에 대해 ACLU는 창조과학이 과학이 아닌 종교교리라고 법정에 고소하였다. 아칸소주의 법정에서 열린 재판정에서 일주일간 양측은 전문가를 동원하여 변론에 임했다. 진화론 측의  루스(Michael Ruse)는 창조과학이 과학의 요구 조건인 자연법칙성, 실측성, 재현성, 잠정성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과학으로 성립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의 변론 내용을 에 수용한 담당판사 William Overton는 동등시간법에 대해 위헌판정을 내렸다.

뒤이어 루이지애나 법정에서도 이와 유사한 판결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반창조론자인 라우든(Larry Lauden)등은 루스가 주장한 것처럼 창조론이 비과학적인 요소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더구나 그의 주장대로라면 진화론을 포함한 많은 역사적인 과학적 사건들이 과학의 범주에서 배제되어야 할 것이라고 반박하였다.

지층형성에 대해서도 허튼-라이엘의 동일과정설과 큐비에의 다중격변설 및 성경적 격변설이 격돌하여 왔으나 지금은 동일과정설이 일방적 승리를 거둔 상태이다. 그러나, 최근(1980) 미국 시애틀에서 세인트 헬렌산이 폭발하면서 지층과 호수가 단기간에 형성됨으로써 지구연령에 대한 논쟁을 재연시키게 되었다. 영국의 대표적 지질학자인 스완시대학의 지질학과장인 에이거 역시 짧은 지질연대를 내세우며 신격변설(neo-catastrophism 1976)을 주장하고 나섰다.

심지어 진화론의 대표주자격인 스티븐 굴드(1975)까지도 '격변주의자들이 라이엘보다 더 실증적이다. 지질학적 기록은 격변을 요구하는 것 같다. 암석들은 갈라져 있으며 비틀어져 있다. 모든 동물군들은 멸종되었다. 이러한 실제적인 상황을 속이려고 라이엘은 자신의 상상력을 증거로 동원하였다.'고 비판하였다.

창조론적 지질학자인 헨리 모리스(1987)는 앞으로의 학술논쟁의 촛점은 <창조냐 진화냐>에서 <지층의 연대>문제로 이행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진화론과 창조론간의 이러한 논쟁은 그후 여러 국가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KBS-2(1988)와 '과학동아' 및 매스컴을 통해 양측간의 학술논쟁이 여러 번 전개된 바 있다. 당시에 진화론 측을 변호했던 세 학자들은 장로를 포함한 기독교인들이었다고 한다.

유신진화론과 창조론간의 싸움도 끊이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세기 영국의 한  카톨릭교회 내에서 벌어졌던 진화론적인 와이즈맨(1802-1865)과 창조론적인 매닝(1808-1892)간의 논쟁(19C), 하버드대학에서의 '진화론의 전도사'라는 별명을 가진 아사 그레이(1810-1898)와 빙하고생물학자인 아가씨즈(1807-1873)간의 논쟁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싸움은 총칼은 들지 않았지만 인간의 생명과 영혼을 담보로 한 것이기에 양보할 수 없는 전투라 할 수 있다. 단순한 학술논쟁이 아니라, 영혼을 죽이고 살리는 처절한 영적 전투인 것이다. 크리스쳔 엘리트라면 이러한 전투대열에 참여하는 것이 '착하고 충성된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출처 - 창조지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34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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