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nus Verbrugg
2004-07-26

유물론, 애니미즘, 그리고 진화론 

(Materialism, Animism and Evolutionism)


       인간은 창조된 이후 줄곧 스스로의 창조 여부에 관한 질문과 맞닥트려 싸워왔다. 유태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 신자들은 전통적으로 창조론을 지지하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창조론을 지지하는 과학자들은 거의 없다. 그들이 창조주를 부인하게 된 것은 현대과학이 이룩한 발견의 결과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을 부인한 역사는 실질적으로 인간의 죄만큼이나 오래된 일이다.

고대 힌두교도의 경우를 보면, 그들은 브라마(Brahma) 신(神)은 우주만물이 마모됐을 때 어떻게든 기존의 물질을 재생시키어 새로운 우주를 형성하는 현실적인 현상으로만 믿었다. 이와 비슷하게, 후기의 고대희랍 철학자들은 물질은 영원한 것으로 굳게 믿고 있었던 까닭에 그들도 역시 창조주를 몰랐다. 그들은 물질에는 내재하는 어떤 힘이 있어서 생명력을 부여한다고 믿었다. 희랍인들은 이 '종교적” 신앙을 철학체계로 완성시켰다. 오늘날 애니미즘 (物活論)으로 알려진 철학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은 가시적인 물체로부터 개념을 추상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하여 정신적 기능을 구사할 수 있는 존재임을 자각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창조주를 모르는 가운데서도, 많은 사람들은 자연현상의 배후에는 어떤 숨겨진 힘(power), 또는 불가시적인 정령(spirit)이 존재한다는 인식을 갖기 시작했다. 그런 믿음을 오늘날 애니미즘이라고 한다. 미생물 부문 노벨상 수상자 쟈크 모노(Jacque Monod)는 애니미즘을 이렇게 정의했다. 즉, 애니미즘은 "중추신경계통의 기능을....무생명적인 것 (inanimate nature)으로 인식하고, 그 자각을....자연현상에 대한 설명처럼 인간의 주관적인 방법으로 설명될 수도 또 설명되어야 한다는 가설로 객관화하는 것” 이라고 하였다.1 플라톤(Plato)은 사유의 추상을 통해서 혼돈한 물질로부터 모든 물체를 형성하는 힘을 데미우르고스(Demiurg)라고 의인화하였다.

위대한 자연주의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생명이란 모든 생물체의 배후에 존재하는 특별한 힘(power)이라고 선언하고, 이를 애너머(anima: 생명이라는 라틴어)라 불렀다. 이는 입김, 즉 영어의 ‘breath'에 해당하는 단어이다. 무생명체 안에 생명력의 투입이라는 그의 애니미즘은 창조주를 대신하는 그의 이론이다. 이렇게 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물론이 생기설(生氣說. vitalism)의 형식을 갖추게 되었다. 그 이후부터 베르그송(Bergson), 드리시(Driesch), 드 샤르댕(de Chardin)을 포함하여 많은 과학자와 철학자들이 그의 유물론적 생기설에 형식상의 수정을 가하며 이를 옹호하여 왔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유물론자들은 생명력(vital forces)이 물리화학적인 분류법과 계기로는 측정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생기설을 부인한다. 그리고 중력, 전자기력(electromagnetism), 그리고 원자력과 같은 오직 물리력 만이 실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측정되지 않는 힘은 인간의 상상력의 산물로 간주하고, 그것을 '초자연적 (supernatural)'이라고 선언했다.

 세계적인 마르크스주의적 생화학자인 오파린(A.I. Oparin)은 "생명이란 세상의 모든 물체와 마찬가지로 물질이다… 그러나 그 고유 특성은 물질의 일반적인 특성의 한계 안에 제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물질운동의 어떤 특수한 형태”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하여 유물론자들은 생명은 물리적 에너지와는 실질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나아가 물리적 에너지로 변질될 수 있는 어떤 특별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고수한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명에는 물질과 뚜렷이 구별되는 그 어떤 것도 없다. "그렇지만, 인간의 출현과 동시에 물질운동의 새로운 사회적인 형식이 대두한다..”라고 하였다.


생명체의 과학적인 분석  데이터

오래 전부터 인체는 80%가 물로 되어 있고, 나머지 부분은 주로 탄소, 질소, 산소, 인, 그리고 미미할 정도의 몇 가지 다른 원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 인체는 먹은 음식(대개가 단백질, 지방질, 그리고 녹말)을 먼저 미세한 분자들로 분해한 후 복합분자들로 만들어내고 있다. 예컨대, 특수 단백질인 효소는 수천번 씩 인체 내에서 화학작용을 촉진시킬 수 있다. 수십만 개의 서로 다른 단백질들은 각기 나름대로의 특수 구조와 기능을 가지고 있다. DNA와 RNA 그리고 개별 생명체의 세포분열과 세포번식과 관련된 몇 가지 다른 분자들의 기능들이 알려져 있다. 한 세포 내에 있는 각각의 분자는 세포의 전반적인 기능에 꼭 필요한 분자 나름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한 분자를 세포에서 떼어냈을 때 그 분자는 세포 내에 있을 때와 같은 화학반응을 여전히 일으키지만, 반응은 제멋대로 된다. 통제된 화학반응은 간 데 없어진다.


과학적 허구의 간극을 뛰어넘어

과연 유물론자들은 창조주 없이도 물질이 살아있는 유기체를 어떻게 생성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을까? 그들은 실험실에서 생명을 생산해 냈다는 그 어떤 실험흔적이라도 남겼던가?

물질과 생명과의 사이에 있는 간극에 연결 가교를 놓아보려는 기도로 수십억 달러의 돈이 쓰였다. 그렇지만, 비전문가들은 이런 섬세한 문제로 신경을 쓸 필요까지는 없다는 충고를 듣게 마련이다. 오파린(A.I. Oparin)과 마르크스주의적 변증법을 대변하는 러시아의 어느 이론가는 매우 영향력이 큰 저서를 집필했다. 세르기우스 모르구리스(Sergius Morgulis)가 그 책의 이름을 <생명의 원천>이라고 번역한바 있다.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기술하였다.

"그 생물학자는 마치 비전문가처럼 식물의 생명과 동물의 생명을 구분하는 경계선도 모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생명체와 생명체의 구별도 모른다. 그런 차별성은 전적으로 개념적인 것이지, 실체와는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4

이렇듯이, 모르구리스는 생명체와 무생명체 간에 그 어떤 간극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독단적으로 선언하였다. 그의 스승인 오파린은 죽은 물체에 생명을 주는 힘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고 했다. 그것은 운동(motion)으로 알았다:

"물질은 끊임없이 운동한다, 그리고 … 생명은 운동의 특수한 형식으로 생성된다.”5

이와 같은 엉뚱한 관념은 공산주의자 프리드릭 엥겔스(Friedrich Engels)로부터 왔던 것이다. 엥겔스는 새로운 자연 '법칙”을 발견하였다고 했다.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질적 차이는 화학적 구성물의 차이에 있던가, 에너지의 양적 또는 형식적 차이에 있다. … 어쩌면 그 둘 다의 차이에도 있을 것이다.”6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생명체에게 창조력을 주는 힘이 애너머(anima) 였듯이, 엥겔스와 그의 제자 오파린한테는 물리력, 즉 에너지가 그러했다. 모노(Monod)는 이것을 '우주적 물활력(cosmic animism)이라고 불렀다.7 원론적으로 우주적 물활론(cosmic animism)은 숲과 돌의 신들을 숭배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렇지만, 변증법적 유물론은 현대의 과학자들 사이에 상당히 인기가 높다. 몽따랑띠(G. Montalenti)도 ‘생물 철학의 연구(Studies in Philosophy of Biology)’에서 유물론적 변증법을 사용하였다:

"양적 변화는 질적 변화를 결정한다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원리는 잘 알려져 있다. …분자들이 개별적으로 차별성과 재생을 시작할 때 … 물리학과 화학의 법칙들이 실질적으로 역할을 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생명을 시작시키는 일이다… 재생의 힘이 문제다. …”8

이 생명재생의 과정에 대해 딜론(Dillon)은 도발적인 시나리오를 썼다.

"상호간에 복제가 가능할 만큼 모순이 없었던 폴리 아미노산 연쇄고리(poly amino acid chain)의 접촉은 우연히 시작한다. (혹은, 그 대신에 자력-복제를 하는 개별 peptoid 분자가 생긴다.) …이것이…최초의 생명의 존재였다.”9

그는 두 개의 분자가 화학적 연결로 결합되었을 때 새로운 분자 하나가 생긴다는 것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어떻게 죽은 분자가 갑자기 자력-복제의 기능을 시작할 수 있는가 하는 데 대해서도 언급이 없었다.

물리학자 엘사쎄르 (Elsasser)는, 폴리 아미노산 연쇄고리의 무작위적인 편성과 상호간의 '우연한” 접촉의 가능성은 통계학적으로 영(零)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모노 (Monod)의 지론(持論)을 저지하지는 않는다.

"...생물권은 (물리학의) 제1법칙들과 양립할 수 있지만, 그 법칙들로부터 연역되지 않는다. … 내 손에 들려 있는 이 조약돌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들의 독특한 배열이 예측불허라는 바로 그 이유와 동일한 이유로 그것(폴리아미노산 연쇄고리의 접촉. 譯者註)도 예측불허이다.”10

그렇지만 일단 그것들(폴리 아미노산 연쇄고리의 무작위적인 편성과 상호간의 우연한 접촉. 譯者註)이 일어나면, 그것들은 "화학적 장치(chemical machines)”11로 간주돼버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그런 것이 일어났을까? 여기 그 대답이 있다:

"무작위적인 편성이 날개를 달게 되고, 보존되고, 재생된다. …그렇게 되어 질서, 법칙, 필연으로 변화한다. 전체적인 맹목적 과정이 아무 것으로도 될 수 있다: 그것은 가시적인 것 그 자체로 될 수도 있다.”12

이와 같이 해서, '당연히(by definition)' 불가능한 일이 능히 생겨날 수 있게 되었다!

해롤드 불럼(Harold Blum)은 독특한 방법으로 유물론 운동(cause)을 도왔다. 왜 단백질 분자들의 생성이 "자연발생적일까?”하고 그는 자문한다. 그리고는 "만약에 생명 체계(system)가 진화한다는 것이 …(하나의 사실)이라면,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은 자연발생적인 단백질 분자의 생성을 받아들였을 것이 틀림없다."13

현대 철학의 정교한 합리적 설명의 한 예를 딜론(L. Dillon) 박사의 생명의 정의에서 엿볼 수 있다. "대사(代謝)작용으로 분해된 단백질의 양을 보충하기에 충분한 양의 단백질을 정상적인 과정을 통해 합성하는 능력”14을 생명이라고 그는 정의한다. 이 말은 생명체들도 화학적인 실체들이라는 것을 뜻한다. 그런 다음 그는

"이것으로 생명체의 근본적인 특성들이 일반적인 물리-화학적 용어로 기술될 수 있다는 이유가 충분해 진다. 이런 까닭에 그 정도로서도 유기체 세계에 대한 일반화된 기계론적 관념이 공고한 지지를 받을 수 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15


잃었던 과학을 되찾다 (Science Regained)

유물론자들은 크리스천들이 과학에 초자연적인 힘을 도입하려 한다고 거듭거듭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유물론자들은 죽은 분자들 속에 창조력으로 가장한 숨은 정령(spirits)이나 정령신앙(animism)을 과학에 도입하기를 원하고 있다. 크리스천은 더 이상 이교도의 철학이 발명한 정령들을 수용할 필요가 없다. 오늘날 진화론을 부인하는 과학적인 이론들이 수없이 많이 대두되고 있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더욱이 유물론 철학의 실추가 허만 두위어드(Herman Dooyeweerd) 박사에 의해서 속속 밝혀지고 있다. 두위어드 박사의 필생의 노작은 크리스천들에게 유물론자들에 대항할 수 있는 엄청난 철학적 무장을 제공해 주었다. 실체의 법상(實體의 法相; modal aspects of reality)에 관한 이론을 요약한 그의 글에서 볼 수 있듯이, 이 탁월한 화란의 철학자는, 과학자들이라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피조물을 지배하고 있는 다양한 법칙들이 상호간에 치환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상호치환의 불가능은 물론이고, 그보다는 오히려 각 실체는 변별적이고, 치환이 불가능하며, 그 실체의 독특한 법상으로 특별히 창조되었다 고 했다.

그가 지적한 바에 의하면, 인본주의자들은 생명체 안에 존재하는 어떤 힘에게 창조의 능력(creative powers)을 할당해 주고 있다. 그것이 그들의 실질적인 신으로 되었다. 이념들(-isms)간의 차이는 여러 철학자들이 제 각각 한 가지 힘을 선택하고, 그것으로 여타의 힘들을 통분할 수 있다고 보는 데서 생긴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우상신 (偶像神)을 숭배한다. 그것은 생명이 없는 물질로 된 우상이다. 고대의 인류들이 모시던 돌 우상들만큼이나 허망한 우상을 숭배하는 꼴이 되었다.


지금이야말로 크리스천 과학자들은 유물론이 어디서부터 잘못되기 시작했는가를 알려줄 수 있을 때다. 뿐만 아니라, 크리스천 과학자들은 성경적 기초 위에서 과학적 탐구노력을 쌓아가야 할 때다.

만약에 우리가 이 우주(cosmos)의 원천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스스로를 계시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지상 성의(至上 聖意) 이다”16 라고 간증한다면, 우리는 이 법칙들, 즉 하나님께서 당신의 피조물인 이 세계를 보전하시는 데 쓰시는 우주법칙(cosmonomy)을 탐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껏 수많은 분야에서 과학을 희생시켰던 허구들로부터 과학은 구조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신실하다면, 하나님의 법칙들을 탐구하는 과학자가 된 자신이 거듭거듭 명예로울 것이다.


 

References

1. Monod, Jacques, Chance and Necessity, NY: Affred A. Knopf, Inc. 1972, p. 30

2. Parin, A.I., Life, its Nature, Origin and Development, NT: Academic Press, 1962. pp.5-6

3. Ibid., P.7.

4. Oparin, A.I., The Origin of Life, NY: dover Pub., 1938 Translation by Morguiis, S., p. viii

5. Oparin, A.I. op. cit., (1962) p. 6.

6. Engels, Friedrich, Dialectics of Nature, NY: International Pub., (1940), 1960, p.27

7. Monod, J., op. cit., p. 31

8. Montalenti, G. in Studies in the Philosophy of Biology, London: MacMillan, F.J., and Dobzhansky, Th., Eds., 1974, pp. 12-13

9. Dillon, Lawrence, S., The Genetic Mechanism and the Origin of Life, NY: Plenum Press, 1978, p. 412.

10. Monod, J., op. cit., p. 44.

11. Ibid., p. 45.

12. Ibid., p. 98.

13. Blum, Harold, Time's arrow and Evolution, NY: Harper & Bros., 1955, p. 164 and 173.

14. Dillon, L.S.,op. cit., p. 411.

15. Dillon, L.S., op. cit., p. 426.

16. Dooueweerd, Herman, A New Critique of Theoretical Thought, amsterdam and Philadelphia: H.J. Paris and the Presbytarian and Reformed Pub. Co., Vol. I. 1953, p. 101.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pubs/imp/imp-094.htm

출처 - ICR, Impact No. 94, 1981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11

참고 :

jerry Bergman
2004-07-26

다윈사상이 도덕률과 기독교 신앙에 끼친 영향

(The Effect of Darwinism on Morality and Christianity)


      사람이 다윈주의자가 되면서 동시에 크리스챤으로도 될 수 있다는 주장이 가끔씩 제기되어 왔다 (Miller). 한편 종교와 다윈사상은 서로 섞일 수 없는 별도 분야이기 때문에 양립할 수 없다는 주장도 들린다 (Gould).

그러나 사실상 다윈사상에 의한 세계관이 생명의 근원, 목적 그리고 궁극적 의미에 관한한 일종의 도덕적, 그리고 종교적 가르침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윈사상의 가르침은 기독교, 유태교 그리고 이슬람교적인 신앙과 정면으로 반대하는 입장에 서있다.

”문제는 다윈주의자들이 어느 순간에는 신(神)이나 종교를 다루지 않는다고 확실히 천명하고 돌아서서는 우주의 생성에는 그 어떤 목적도 없다고 철저하게 단언하고 있다는 점이 종교적이다.” (Johnson, p.118).

어떤 과학자들은 밀러(Miller)나 구울드(Gould)보다 더 개방적이고 솔직한가 하면, 또 몇몇 다른 과학자들은 "과학과 종교는 전혀 다른 분야에 속한다" 라고 주장하면서 무엇인가 정직하지 못한 이기적인 책략을 품기도 한다.(Dawkins, p. 62). 대부분의 진화론자들은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에 벌어지는 논쟁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Futuyma는 ”창세기의 내용을 글자 그대로 역사적 사실로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결같이 ”진화론의 사상과 전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세계관 …”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pp. 12-13). 이어서 그는, 다윈주의자들은 생명의 ”유물론적, 기계론적 기원”을 고집하고 있는 데 반해 ”창세기를 믿는 사람들”은 생명의 기원에 대한 설명을 '하나님' 한테서 구한다고 주장한다.

역사학자들은 다윈사상이 기독교 교리뿐만 아니라 유신론에 대해서도 파괴적인 충격을 안겼다는 사실을 세세히 기록하였다.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창세기의 내용에 오류가 있다고 믿게 만든 장본인이 다름 아닌 다윈사상이라고 인정하는 과학자들이 적지 않다. 다윈사상이 유신론이라는 카드로 만들어진 집을 모조리 무너뜨렸다고 보았던 것이다.

”만약에 성경이 창세기 첫 장부터 틀렸다면, 성경의 전체 계획의 신빙성은 결국 의심을 받게 될 것은 확실하다. 진화론은 단지 하나의 과학이론 이라기보다는, 그것은 하나의 폭탄으로서 … 무신론자들한테서는 환영을 받았고 유신론자들한테는 두려움을 주었다.” (Raymo, p.138).

다윈사상의 광범위한 수용의 결과로, 사회에서의 기독교적 도덕기반은 손상되었다. 더욱이, 다윈도 ”자기가 주창한 새로운 사상이 정치, 사회, 그리고 종교에 미칠 영향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특히 종교분야가 잃을 것이 많을 것으로 보고 있었다.” (Raymo, p. 138).

많은 과학자들은 일반화된 다윈사상의 수용이 초래한 결과로, 인간은 ”우연적, 우발적, 찰나적 피조물의 일부분이지, 만물의 영장도 아니며”, 모든 유신론적 종교교리가 표방(標榜)하는 ”우주의 존재 이유 (raison d'etre of the universe)”도 아니라고 지적한다. (Raymo, p. 163).

노벨상 수상자, 스티븐 와인버그(Steven Weinberg)의 말로 대표되는 바와 같이, 다윈사상은 많은 탁월한 과학자들로 하여금 ”우주에 관해 더 많이 알면 알수록, 우주의 무의미성(無意味性)이 더욱더 드러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하는 주된 요인이었다.(p.154). 다윈사상은 이렇게 가르친다. 즉, ”우리의 삶은 우주 안에 있는 삼라만상 가운데서 찰나적이며 대수롭지 않은 존재”라고 하였고 (Raymo, p. 110), 그리고 천당과 지옥은 물론이고 사후의 삶 따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인생에는 궁극적인 목적이 있을 수 없다. 또한 ”우리는 육신을 떠나 존재하는 그 어떤 살아있는 힘이라든가, 물질이 아닌 정령, 또는 특별히 창조된 종(種)으로서 필요로 하는 생명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라고 하였다. (Raymo, p.42).

레이모(Raymo)는 ”갈릴레오(Galileo) 이후, 우리가 과학을 통해 배운 것은, 우주는… 우리의 운명 따위엔 아랑곳도 않고 있다는 것이며, [그리고] 무덤이 우리의 종착역이라는 암시뿐이다.” (Raymo, p.66-67).

가장 저명한 진화론 학자 중의 한 사람인 하버드 대학의 고생물학자, 조지 게이로드 심프슨(George Gaylord Simpson)은 사람이란 ”목적 없는 자연의 과정 중에 우연히 생긴 결과다” (p.35) 라고 가르쳤다.

레이모는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즉, 다윈의 이론은 ”우리가 듣기 싫어한다.” 그것은 오랫동안 우리는 스스로를 ”하나님의 눈동자로서 피조물의 중심과 정점에 있다고 배워 온” 때문이기도 하며, 또 우리는 ”우주론적 구조 내의 삼라만상 중에서 예외적인 존재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태어난 찰나적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p.129).

레이모는, 우주나 인간한테는 뭔가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는 우리의 믿음을 다윈사상이 깡그리 분쇄해버린 이상, 우리 교육 체계는 젊은이들에게 ”계보상 파충류나 아메바를 조상으로 가진 후손처럼 차갑고 축축한 진리를 가르쳐야 한다” 라고 부언한다. 이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조상들의 선례를 따라, 우리도 우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 우주 속에서 우주의 양육으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위안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 그러나 진실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진화는 따사롭지 못하고 우울하다. 그 뿐만 아니라 변덕스럽고 때로는 잔인하기까지 하다.” (p. 144).

잔인하던지 아니던지 그 여부와는 상관없이, ”다윈이론은 그 어떤 과학 기준에서도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의 취학 어린이들은 지적인 보호 담요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p.144)” 라고 레이모는 진술한다. 어쨌거나, 다윈사상의 함축은 ”아마도 인류의 사상사(思想史)에서 가장 혁명적이란 것” 만은 분명한 것 같다.

”우리는 우리가 무대에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던 우주적 존재의 우연한 일부분에 불과한 왜소한 존재이다. … 하루살이가 지구 안에서 찰나적인 존재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주 속에서는 찰나적인 것말고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 소식을 처음 듣는 순간, 우리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사실이지, 대다수의 우리는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 우리의 삶이 순간적이라니!, 우리의 운명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니!” (p.222 emphasis his).

존경받는 옥스퍼드 대학의 동물학자 리차드 도킨즈(Richard Dawkins)는 다윈사상의 함축에 대하여 광범위하게 저술한 바가 있다. ”신을 반대하는 과학자의 경우 (A Scientist's Case Against God)” 라는 제목으로 펼친 그의 연설에서 도킨즈는, 다윈사상이 ”보다 더 높은 목적이란 것이 환상이란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라고 주장하면서, 그는 우주가 ”이기적인 유전인자들 (selfish genes)”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상처받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행운을 잡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들은 왜 그래야 하는지 그 까닭을 알 수 없다” 라고 했다. (Easterbrook, p. 892).

도킨즈는 인생이 어떤 목적을 위해서 창조되었다고 믿는 것은 오해에 기인한 것일 뿐만 아니라 무식의 소치라고 믿었다. ”오직 과학적으로 무식한 자들” 만이 인생이 보다 높은 목적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믿는다. 과학적으로 유식한 자들은 인생의 존재에 이유란 것은 없고, 어쩌다가 역사 속에 우연히 ”존재하게 됐을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도킨즈는 더 나아가서, 유신론을 지지하는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날 조그만 더 공부한 사람이면 누구나 그것을 인정한다” 라고 가르치고 있다. (Easterbrook, p. 892).

리차드 도킨즈의 방대한 저서가 전하고 있는 중심 메시지는 이런 것이다. 즉, 만약에 우주가 ”어떤 설계도, 목적도, 악이나 선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오직 의미없는 무관심만을 가졌다면”, 그 우주는 우리가 그런 우주한테 기대할 수 있을 만큼의 특성만을 보여줄 것이다. (Easterbrook, p.892). 도킨즈는 자신의 베스트셀러 저서인 '이기적인 유전인자(The Selfish Gene)' 를 통해 기도했던 바가 이런 것이라고 인정했다. 즉, 개체들은 종들(species)의 선을 위해 행동한다 라는 과학에서 일반적으로 말하고 있는 잘못된 가정들을 그는 ”뻔뻔스러울 정도로 잘못된 관념”으로 간주하고, ”반드시 폭로 돼야 할 오류를 폭로하는 최선의 방법은… 진화론을 유전인자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이라고 했다. (Easterbrook, p. 892). 그런 다음 도킨즈는, <이기적인 유전인자>가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그 책이 인간의 존재 이유에 관해서 '진실'을 설명하기 때문이라고 부언하였다. 그의 설명은 ”인간은 …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인간의 이기적인 유전인자를 번식시키기 위해 여기 던져져 있을 뿐이다. 인생한테 보다 높은 목적 따위는 없다. 누군가 그의 <이기적인 유전인자>를 읽고 사흘 밤이나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그의 전 생애가 공허해지고 우주는 더 이상 뜻이 없어진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Bass에서 인용, p. 66).

도킨즈는 자기 책이 사람들을 낙담시켰다는 데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심지어 레이모의 주장에 의하면, 현대의 다윈주의자들 사이에서 지배적인 관념은 인간의 마음은 ”단순한 고기 덩어리로 된 컴퓨터에 지나지 않는다” (pp.187-188) 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거의 모든 과학자들”이 인간영혼의 존재를 '파탄 난 관념'으로 보았던 결과로 인간의 마음은 ”단순한 고기 덩어리로 된 컴퓨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을 '하나의 공리(公理)'에 가까운 관념이라고 간주하기에 이르렀다고 했다. (pp. 192-193, emphasis his).

Futuyma의 말에 따르면, ”만약에 피조물을 품고 있는 세계가 순전히 물질과 물리력에 의해서 발전되고 있다면, 그것은 설계된 세계일 수 없으며, 또 목적이나 목표 따위도 가지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pp. 12-13). 더욱이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즉, 이와는 대조적으로 창조론자들은 세계의 모든 물체 하나하나, 즉 각 종(種)들은 … 어떤 지적 고안자가 목적을 가지고 설계(design)하였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인류의 종을 설계된 피조물이 아니고, 피조의 목적도 없는 단순한 물질의 기계론적 산물로 보는 관념을 진화론적인 메시지로만 치부해 버린다” 라고 하였다. (pp. 12-13).

이러한 비관적, 무신론적, 그리고 허무주의적인 인생관은 널리 보급된 관념일까? 어떤 조사자는, ”내가 만났던 조사 대상자들 가운데 99%의 과학자들은 도킨즈의 생각, 즉 진화를 부인하는 사람은 모두 다 무식하든가, 바보이든가, 미쳤든가, 아니면 비뚤어진 사람이다 라는 생각을 지지하고 있다” 라고 주장했다. (Rorsch, p. F3). 하지만 그들이 자주 들먹이는 이 주장은 전적으로 허위다. 미국 내에 있는 약 1만 여명이 넘는 과학자들과 전 세계에서 10만 여명에 가까운 창조론 지지 과학자들은 다윈사상을 거부하고 있으며, 그 대신에 창조론적 세계관을 견지하고 있다. (Bergman). 모든 부모들과 조부모들이 이 문제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모두들 ”과연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인생이란 아무런 궁극적인 목적도 없으며, 우리의 마음도 단순히 고기 덩어리로 된 컴퓨터에 지나지 않는다” 라고 가르치기를 원하는가? 하고 자문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보면,

”……다윈사상이 함축하고 있는 뜻은 이렇다. 즉, 생명에는 전통적 종교의 의미로서의 '목적' 따위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생명은 궁극적으로 무작위적인 과정(process)에 불과하다. …  다윈사상은 인간의 기원을 설명하려 기도했다는 이유로 해서 과학 이론들 가운데서도 독특하다…” (Leith, p. 9, emphasis his).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은 저 비관적이고, 허무주의적이며, 우울한 다윈의 이론을 믿을까? 그 이유 중 하나는 과학이 다윈이론을 진리라고 증명하였다고 확신해 버리는 데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많은 과학자들은 수없이 많은 증거들이 창조론을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엘리트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진화론의 비과학적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 과학자들도 수없이 많다. 샬리즈(Shallis)는 이렇게 주장한다.

”즉, 스티븐 와인버그(Steven Weinberg)의 말처럼 우주는 목적이 없다 라고 말하는 것이 이설(異說)이 아니라면, 호일(Hoyle)의 말처럼 '우주는 목적이 있다' 라고 말하는 것도 이설이 아니다. 이 두 이론이 다루고 있는 분야는 과학이 아닌 형이상학적인 관념이다. … 바로 여기서 나는 이런 결론을 유추해 본다. 즉, 과학이 이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관념을 허락한 결과로 스스로를 종교로 간주하게 되었다, 그것은 하나의 무신론적인 종교와 다를 바가 없다.” (pp. 42-43).

다윈주의자들은 지난 100 여년 동안 가히 비극적일 만큼 파괴적인 사상으로 판명된 세계관을 우리 사회에 주입시켜오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필트다운(Piltdown) 인이라는 가짜 두개골을 들고 나오기 이전부터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수많은 교과서들 속에 전시하고 있는 그런 유형의 허위 증거들을 가지고 그 파괴적인 사상을 우리들에게 주입하고 있다. (Wells).

감사 : Bert Thompson, Ph. D., and Clifford L. Lillo for their insight.

 


REFERENCES:

.Bass, Thomas, 1990. Interview. Omni, 12(4):58-89

.Bergman, Jerry. 1999. ' The Attitude of Various Populations Toward Teaching  Creation and Evolution in Public Schools.' CEN Tech J, 13(2):118-123

.Dawkins, Richard. 1999. 'You can't Have It Both Ways: Irreconcilable Differences?' Skeptical Inquirer, July/August, pp. 62-63.

.Easterbrook, Gregg. 1997. 'Of Genes and Meaninglessness.' Science, 277:892,  August 15.

.Futuyma, Douglas, 1983. Science on Trial. NY: Pantheon Books.

.Gould, stephen Jay. 1999. Rocks of Ages: Science and Religion in the Fullness of Life. NY: Ballantine.

.Johnson, Phillip. 1991. Darwin on Trial. Washington, D.C.: RegneryGateway.

.Leith, brian. 1982. The Descent of Darwinism. London; Collins.

.Miller, Kenneth R. 1999. Finding Darwin's God: A Scientis's Search for Common  Ground Between God and Evolution. NY: Cliff Street Books.

.Raymo, Chet. 1998. Skeptics and True believers. New York, NY: Walker.

.Rorsch, A. 1999. 'Mutation Research Frontiers: Challenges to Evolution Theory.'  Mutation Research, 423:F3F19.

.Shallis, M. 1984. 'In the Eye of a Storm.' New Scientist, Hanuary 19, pp. 42-43.

.Simpson, George Gaylord. 1970. The Meaning of Evolution. New Haven, CT: Yale  University Press.

.Weinberg, Steven. 1977. The First Three Minutes. NY: Basic Books.

.Well, Honathan. 2000. Icons of Evolution: Science or Myth. Washington, D.C.:  RegneryGateway.  

  

*참조 : Kinsey, Darwin and the sexual revolution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0_3/j20_3_111-117.pdf

The Evolution of Morality   01/20/2008    
http://creationsafaris.com/crev200801.htm#20080120a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pubs/imp/imp-336.htm

출처 - ICR, Impact No. 336, 2001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96

참고 : 5462|5461|5413|5272|5211|5210|5112|4766|4765|4636|4635|4542|4140|4039|3812|3682|3426|3423|3244|3241|3077|3055|3041|3039|3037|3024|2864|2579|2359|2353|2330|2307|2114|2039|2016|1174

Jonathan Sarfati
2004-07-26

나치의 기독교 말살 계획

(Nazis planned to exterminate Christianity)


       나치 전범에 대한 뉘른베르크 (Nuremberg) 국제재판은 무려 6백만의 유태인을 살해한 Holocaust 사건을 나치의 인종학살 계획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것을 증명하고 고발하였다. 미국의 고소인 단을 이끌었던 윌리엄 도노반 장군 (General William Donovan)은 나치가 유태인 학살뿐만 아니라 기독교에 대한 체계적 파괴도 계획하였다는 내용을 담은 방대한 분량의 문서들을 제출하였다.


도노반의 문서들―무려 150 권에 달하는 장정본(裝幀本)―은 1959년 도노반이 죽은 후에 코넬(Cornel) 대학교에 보관되었다. 지금은 Rutgers Journal of Law and Religion에서 internet을 통해 찾아볼 수 있다. 이 범죄적 음모에는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선전부장 요셉 게벨스(Joseph Goebbels), 히틀러 소년단의 지도자 그리고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의 피고인 발두어 시라크(Baldure Schirach)를 포함한 나치당의 정상급 핵심 요원들이 연루되어 있었다.


이 문서에 의하면, 나치는 기독교회가 애초부터 나치의 인종차별과 정복전쟁 계획에 반대 입장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제압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고 했다.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하여 나치는 교회의 내부에 침입하려 하였다. 즉, 중상모략, 체포, 습격 등을 획책하고  목회자를 살해하고, 신도의 사상을 개조하며, 교회 학교와 청소년 조직에 침입하는 계획을 세웠다는 것이다.


성경 중심의 복음주의 교회는 타협적인 교회에 반대하면서 대(對) 나치 항거의 전면에 나섰다. 성경의 무오설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견지 하지 못했던 자유주의 교회들은 집권자의 친-진화론적 이념에 기독교 교리를 끼어 맞추려는 기도의 일환으로 기독교 교리를 서슴없이 ‘재해석’하려 하였다. 그것은 오늘날 다윈의 ‘과학’적 이론에 추종하려는 현상과 유사했다.


일찍이 1937년에 벌써,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은 나치 정책에 반대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러자 나치는 이를 보복하기 위하여 700명의 목회자를 체포 구금하였다.


인본주의자와 자칭 ‘민간 자유주의 단체’ 는 ‘창조설을 교회 내에 국한’ 시키자, 그리고 모든 기독교의 영향을 대중의 생활과 학교로부터 말살하자, 하고 외쳤다. 이 불길한 외침에 보조를 맞추어  ‘여러 교파의 교회들도 … 종교 활동을 가능한 한 좁은 범위 안으로 한정하려 하였다. 그런데 그들의 자진하여 축소한 활동범위 위에 더 많은 제약을 막무가내로 가하려 하던 나치의 방해 공작에 교회는 속수무책이었다.


기독교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이러한 현상은 나치의 ‘점진적 잠식을 위한 용의주도한 기독교 말살 계획’을 진전시키는데 도움을 주었고, 교회의 조직체계를 나치의 정치목적에 이용당하게 하였다.


 

*참조 : The Darwinian roots of the Nazi tree (Weikart review)
http://creation.com/the-darwinian-roots-of-the-nazi-tree-weikart-review

Darwinism and the Nazi race Holocaust
http://creation.com/darwinism-and-the-nazi-race-holocaust

The Darwinian foundation of communism
http://creation.com/the-darwinian-foundation-of-communism

Stalin’s ape-man Superwarrior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5198/

Resurrecting Stalin’s Ghost  
http://creationsafaris.com/crev200809.htm#20080907a

Darwin and Hitler: A Trumped-Up Connection?  
http://creationsafaris.com/crev200804.htm#20080416a

Nazi-Era Scientists Were Willing Colluders    
http://creationsafaris.com/crev200802.htm#20080217a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4/i3/nazi.asp

출처 - Creation 24(3):47, June 2002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87

참고 :

Carl Wieland
2004-07-26

린치버그의 거짓말 

- 어떻게 미국의 진화론 학자들이 나치를 가르쳤는가.

 (The lies of Lynchburg)


     최근에 상영된 어느 T.V 다큐멘터리가1) 폭로한 기록은 진화론적인 사고가 초래할 수 있는 불온(不穩)한 결과가 얼마나 전율스러운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1920년대 초부터 수천을 헤아리는 사람들이 미국에서 자기 의사에 관계없이 강제로 ‘바람직하지 못한 번식’을 중단시킨다는 목적 때문에 거세(去勢) 되었다는 내용이다. 무려 8,000여 명이 넘는 소위 ‘탐탁치 못한 자’로 분류된 사람들이 버지니아 주의 린치버그 (Lynchburg, Virginia)에 있는 시설로 보내져서 거세 절차를 거치게 되었다.


그 희생자들 가운데에는 그 정도가 다양한 정신지체자들도 얼마쯤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 보다는 가정 파괴의 결과로 자포자기한 사람들, 또는 이런저런 사회적 불운(不運) 때문에 고통 받던 사람들이 많았다. 거기에는 학교의 우등생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이 기관의 절차가 ‘그들 자신을 위한 일’이라든가 아니면 ‘그들의 건강을 위한 일’이라는 이야기를 포함하여 온갖 거짓말을 정규적으로 들어야 했다. 그들이 받아야 할 수술 뒤에 감추어진 목적을 어떻게든 알아낸 노인들은 수술을 받기 전에는 이 곳을 떠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인지하였다.


그 다큐멘터리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기관의 전반적인 노력은 우생학적 개념에 근거를 두고 있었던 것으로 되어있었다. 이들이 추진한 우생학 운동은 프랜시스 갤튼 경 (Sir Francis Galton)―찰스 다윈의 사촌 아우―이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는 ‘적자의 생존’의 이념을 인간 사회에 적용 내지는 권장하고자 했다. 이 목적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적용시키는 데는 ‘부적합한 자’로 간주될 수 있는 사람들을 강제로 거세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좌익 우익 구별 없이 모든 사회개혁 운동가들’을 솔깃하게 만들었었다. 그런데, 이 중에는 조지 버나드 쇼 (George Bernard Shaw)와 윈스턴 처칠 (Winston Churchill)도 끼어 있었다.


자기 고향에서 시행된 거세 수술의 대부분의 책임이 있던 린치버그의 주임 의사는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과업이 사회의 ‘과학적 선(善)'을 위한 일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다윈주의에 헌신적인 그에게는 절대 정(正)이나 절대 오(誤)의 개념은 ‘하층민중’을  보다 큰 선으로 인도하는 길에 방해가 되는 구식 걸림돌이라고 생각했었다. 미국 헌법 (창조이론에 근거한)이 보장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는 인권 조항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그의 행동을 엄폐할 필요성을 인식한 그는 진화론을 지지하고 있는 미국의 지도급 생물학자 해리 로린 박사 (Dr. Harry Laughlin)가 마련하였던 모범 입법 안에 매혹되었던 것이다.


로린 법률안은 ‘정신박약자들’ 뿐만 아니라, 맹인, 마약 중독자, 결핵이나 매독 환자, 간질병 환자,2) 극빈자, 귀머거리 그리고 무숙자들에 대한 강제 거세를 요구했다. 그 법률안은 이 부류의 사람들은 ‘악성 유전인자’의 희생자들임이 명백한 이상, 이 민족을 타락시킬 저들한테 후손 생식을 중단시킴으로써 ‘이 나라의 백인의 인종적 순수성’을 유지하는 것을 공공연한 입법 목적으로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험 대상이다. 다시 말해서 이 법안이 헌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선언할 것을 보증하는 ‘희생양’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그들은 가지고 있었다. 미국시민자유동맹 (the 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이 송사를 벌였던 저 유명한 스코우프스 (Scopes)재판을3) 긍정적으로 온건하게 보이게 하기 위하여 노골적으로 조작한 재판에서, 어느 젊은 여성이 ‘삼 대(三代)를 걸쳐 정신박약’한 가족의 출신이라는 이유 때문에 거세의 대상으로 선별되었다. 그녀의 변호사는 대법원에까지 상소하면서 로린(Laughlin) 법에 도전하였다. 그러나 그는 실상은 그녀를 위한 변호 대신에 우생학 정책을 수립하는 단체의 일에 깊이 관여하였던 것이다!


그 젊은 여성에게 더욱 불행하게도, 1924년에 이 사건을 주재한 대법원의 주임 판사 오리버 웬델 홈즈 (Oliver Wendell Holmes)는 유력한 다윈주의자로서4) 미국에서 세속적 인본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한 많은 사업에 법적 근거를 마련한 사람이었다. 홈즈가 그 법 (Laughlin 법)이 합헌적이라고 언도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니었다. 주 정부가 ‘사회적 부적합자’로 간주되는 사람들에게 거세를 강요하는 일은 수용될 수 있다는 판결이었다. 순진한 희생자에게 거세를 강요하는 일이 진행되었다. 뒤이어 추진된 일련의 조사에서 그녀가 ‘수 대(代)에 걸친 정신박약자 가족’ 출신이라는 저들의 이야기는 온전히 가공이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


그 대법원의 판결이 있은 이후로는 우생학 이론이 미국의 여러 주 정부에서 채택한 사회정책의 주요 항목이 되었다. 


1933년에 집권하자마자 히틀러(그는 적나라한 진화론―적자생존―운동을 전개했다)는 최초로 입법한 법안들 가운데 우생학에 관한 법도 포함시켰다. ‘부적합자’에 대한 나치의 강제거세  프로그램은 미국에서 박수갈채를 받은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프로그램은 실제로는 로린이 입안했던 법안을 표본으로 삼고 있었던 만큼, 나중에 히틀러 정부는 로린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였다. 정신병동을 가득 채운 정신병자들 전원에게 나치가 안락-살인을 진행시키고 있을 때, 그들의 ‘인종 보건’ 정책에 대한 ‘과학적’이라고 하는 감탄이 줄어들지 않았다. 어느 미국의 진화론 학자는 실제로 이렇게 진술한 적도 있었다. 즉, ‘독일 사람들은 우리가 마련한 게임에서 우리를 이겼다.’ 라고.


일단 ‘게르만 인종의 정화(淨化)’를 실질적으로 실행한 과업을  ‘도덕적’ 이라고 인정한 이상, 그 출발선에서부터 더 나아가 홀로코스트 (Holocaust; 유태인 대학살)라는 대규모의 공포 프로그램까지 가는 길은 마냥 짧고도 논리적인 길이 되어 있어야 했다.5)


세계 2차 대전 후, 진화론적 ‘인종 위생학(衛生學)’의 이름으로 자행된 상상을 초월한 잔혹행위에 경악한 미국 대중의 공포는 결국 우생학 실천운동을 지하로 잠입시키고 말았다. 그 운동은 이름을 바꾸었으나 1970년 이후까지 계속 이어졌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무려 70,0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타의에 의한 거세로 고통 받았던 것이다.


당시 미국시민자유동맹 (ACLU) (이 단체는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의 경우 진화론적 사고에 편들어 준 실적을 가지고 있다)에 소속되어 있던 젠니 크로케트 (Jenny Crockett)라는 사람의 노력으로, 정부의 엄폐(掩蔽) 기도에도 불구하고  ‘인종 위생 운동’의 스캔들은 세상에 알려지고 말았다. 결과는 불분명한 사과의 변(辯)과 ‘전신건강 상담’을 제공하겠다는 것이 진화론의 가정(假定)으로 인해서 삶이 파괴된 많은 사람들한테 주는 보상의 전부이었다.


전체적으로 교회는 진화론자 (그 때 이후 변화했으며 또 계속 변화하고 있는)의 ‘과학적’ 주장에 ‘위압’에 억눌려서 인간과 세계의 참된 역사를 강력히 옹호하지 못한 책임의 일단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그렇게 하기 보다는, 오늘날 교회는 대체로 이 문제에 대해 외면하던가 아니면 불안한 타협을 유지하고 있는―혹은 그보다도 더 못한―게 실상이다.6) 우리 주 예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어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지 못할 것이요.’ (마태 5:13-14)


만약 우리가 소금과 빛이 될 준비를 갖추지 못하고 또 성경적 현실의 실현을 위해 분연히 일어서지 못한다면, 우리는 자행되고 있는 사회악을 단순히 ‘사회’의 죄라고 탓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참조와 주석

1) ‘린치버그 사건 (The Lynchburg story)'는 부루스 이디 (Bruce Eadie)에 의해 출판되었고, 1993년에 Discovery Networks 와 Channel Four와 합동으로 Worldview Pictures에 의해서 기록영화로 제작됨. 이 이야기는 그 책에 기록된 정보에 근거하고 있다.

2) 아이러니하게도, 로린은 만년에 간질병에 걸렸다. 그 이후 그가 후손출산을 중단시키려 그토록 애썼던 그의 노력의 대상인 소위 ‘백인 쓰레기’의 한 사람으로 되어버린 그도 진화론적 우생학회 동려들의 기피 대상자로 전략했다.

3) The ACLU = the 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은 통상적으로 좌익 친-인본주의 운동의 챔피언이었다. 1925년에 있었던 유명한 Scopes의 ‘monkey trial’ (원숭이 재판: 인간은 원숭이에서 진화했다는 진화론파와 신이 창조했다는 천지창조파 간에 벌어지고 있는 재판)에서 이 단체는 진화론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을 방지하는 테니씨 법에 도전하기 위하여 누군가 엉뚱한 사람을 찾아내어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허위자백을 유도하여 진화론 운동에 대중적 동정심을 노렸으며, 또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선전과업을 전개하였다.

4) 법학 교수 필립 죤슨 (Phillip Johnson)은 홈즈 (Holmes)를 ‘확신에 찬 다윈주의자로서 다윈 이론의 철학적 함축을 깊게 이해하고 있다.’고 하고 또 그러기 때문에 홈즈는 ‘도덕률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을 싫어했다.’라고 갈파했다.  존슨은, 이 유력한 판사가 미래의 법학자들한테  ‘모든 도덕적 관념들을 접어두고, 법을 … 근본적으로 국가적 강제의 과학으로 보는 입장에서 접근하라고 부추겼다,’ 라고 말했다. See David Menton, 'Inherit the Wind: An Hostorical Analysis' Creation 19(1):35-38, December 1996

5) 2차대전을 연구한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나중에 강제수용소에서 사용한 Zyklon-B gas를 포함한 대량학살의 기구들은 ‘우생학’ 운동을 목적으로 하고 설립된 의학/심리학/생물학회의 요원들로 일하던 존경받는 독일 학자들에 의해서 실제로 개발된 것들이었다.

6) 고(故) B. B. Warfield와 같은 성서의 무오류성(無誤謬性)을 옹호하는 유명한 인사들까지도 성서 옹호와 동시에 다윈의 진화론도 지지하였다.

*Oliver Wendell Holmes (1841-1935), 유력한 미국의 대법원 판사로서 강제 거세를 인정하였다. 그의 진화론적 인본주의 신념은 미국의 법률에 돌이킬 수 없는 자국을 남겼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법을 세속화시켜 피도 눈물도 없는 법으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19/i4/lynchburg.asp

출처 - Creation 19(4):22-23, September 1997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86

참고 :

Barry Woolley
2004-07-26

다윈과 트로츠키의 관계 

(The Darwin/Trotsky connection)


       레온 트로츠키(Leon Trotsky) (1879-1940)는 1917년의 혁명에 뒤이어 러시아의 정권을 탈취한 공산당의 조직, 선전, 그리고 군대를 총괄하는 지도자였다. 그는 독재자 레닌의 후계자로 있다가 마침내 스탈린으로부터 그 자리를 박탈당했다. 대범하지 못한 도량에 재치 없고 성급한 성격의 트로츠키는 마르크스주의에 무한한 믿음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다윈의 사상 때문에 그의 마르크스주의 사상은 더욱 견고해졌다.


마르크스주의와 다윈의 사상에 대한 그의 광신에 가까운 신념과 무산계급의 적(敵)에 대한 그의 분노는 러시아 내전 (1918-1920)의 와중에서 태어난 소비에트의 적들을 괴멸시키기 위해 붉은군대 까지 동원하기에 이르렀다. 이어 그는 노동자의 군대화 (軍隊化) 농민의 식량 징발을 제도화하였다. 그는 무정부주의자 네스토 마크노 (Nestor Makhno) (1889-1934)가 이끈 우크라이나의 반란 농민 게릴라군을 괴멸시켰다. 결국 마크노는 중상을 입고 가족들과 함께 국외로 도주했다. 마크노는 볼셰비키가  백계 러시아 군과 대결하고 싸울 때 트로츠키와 동맹 관계에 있었던 사람이다. 트로츠키는 크론스타트 (Kronstadt)1)에서 소비에트의 수병 (水兵)들의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폭력을 서슴없이 자행하였다. 그러한 그의 잔학행위는 ‘프로레타리아트를 옹위하기 위한 것이며, 불퇴전 (不退轉)의 혁명 목적 기여한다는 절대적 확신’ 때문이었다.2)


러시아 내전의 종식 이후에도, 트로츠키는 정력적으로 행정부의 세부 업무와 ‘신(神) 없는 사회’의 지도자 과업을 수행했다.  이 단체는 소비에트에서 무신론을 선전하는 과업을 책임지고 있었다. 열렬한 무신론자였던 그는 ‘종교를 무신론으로 대체 (代替)하라‘고 주장했다. 이 목적을 위한 과업으로 종교의식 대신에 연극을 이용하고, ‘붉은’ 세례, ‘붉은’ 결혼, ‘붉은부활제’ 같은 것들을3) 권장했다. 그는 크리스쳔들을 핍박하고, 교회의 신성 (神性)을 모독하였다. 그리고 나아가 중산계급의 도덕심을 증오하기에 이르렀다.


트로츠키는 불퇴전의 혁명운동을 세계적 규모로 확대하라고 주장했다.4) 그리고 독일을 비롯해서 폭력적 혁명의 기운이 성숙하였다고 생각되는 여러 나라에서 공산당은 정권을 쟁취하라고 부르짖었다.


부유한 유태인 지주5)의 아들로 태어난 트로츠키가 어찌 되어서 자기 아버지가 속한 사회계급과 종교에 그토록 악의적인 편견을 품게 되었을까? 그것은 실패한 그의 대학 생활과 비정상적인 그의 여성문제와 크게 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나이 17살에 어느 혁명 단체 (revolutionary commune)에 참가하기 위해 대학을 중단했다. 이 단체의 조직원들 가운데 유일한 공산주의자 알렉산드라 르보나 소코로브스카야 (Alexandra Lvona Sokolovskaya)는 그보다 6살 연상의 여자이었다. 처음에 그는 그녀는 물론 그녀의 마르크스주의적 세계관을 맹렬하게 비난했었다. 심지어, 1896년 신년 만찬 모임에서 그는 ‘살아있는 모들 것을 어렵고 무미건조하게 만드는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저주를!’이라고 말하며 건배를 제의한 적도 있었다.6)


그러나 그는 곧 그녀와 정분이 나고 말았다. 그 일로 해서 그는 그녀의 마르크스 사상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 단체가 추진한 사회운동으로 말미암아 결국 조직원들은 제정 러시아의 형무소7)에 수감되는 죄수의 몸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수감 생활 동안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자기 사상을 개발하는 기회로 삼았다.


오뎃사(Odessa)의 형무소 감방에서, 트로츠키는 다윈의 종의 기원과 그의 자서전을 정독했다. 그런지 수 년 후 그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다윈은 나한테 남아있던 마지막 이념적 파편들 마저 무너뜨려 버렸다. … 오뎃사의 형무소 감방에서 나는 과학이라는 견고한 기초 위에 우뚝 선 나 자신을 발견했다. 사실 (事實)을 어떤 확실한 체계 속에서 스스로를 세우기 시작했다. 진화론과 결정론 (determinism)이라는 이념 즉, 점진적 발전은 물질 세계의 특성에 의해 계속되고 있다는 이념은 나를 완전히 사로잡고 말았다.


나에게 있어서 다윈은 거대한 우주라는 사원의 출입문을 지키고 서있는 위대한 문지기와 같은 존재였다. 나는 그의 세밀, 정확, 정직 그리고 동시에 강력한 사상에 취하고 말았다. 나는 그의 글, 즉 그가 신에 대한 신앙8)을 견지하고 있다는 글을 일고 경악했다. 나는 종의 기원은 자연의 선별 (選別)에 의해 그리고 성(性)적 선별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이론을 세운 사람도 신에 대한 신앙을 한 머리로 사고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으며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다.9)


세부 내용은 나중에 언급하기로 하자. 어쨌거나 기독교 창조 이론가인 제임즈 클러크 맥스웰 (James Clerk Masxwell)이나 루이 페스튜어 (Louis Pasteur) 같은 위대한 과학자들의 시대에 산 트로츠키가 마르크스와 다윈의 이념을 받아들였다는 것이 이상하였다. 그의 사상 전향의 경험은 순수하고도 철저하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 사상 전향이 물려준 유산은 그의 손에 의해 흘린 소용돌이치는 유혈로 기록되었다.


1940년, 멕시코에서 생활하고 있던 트로츠키는 이 또한 다윈을 탐독하고 무신론적인 인생관으로 전향한 죠셉 스탈린 (Josef Stalin)의 지령을 받은 자객의 손에 의해 암살 당했다. 스탈린은 아마도 역사상 최대의 대량 학살자 일는지 모른다. 스탈린이나 트로츠키는 그들의 사상적 전제 (前提)에 충실하게 일관된 행동을 했다: 만약 나를 창조한 자가 없다면, 나를 지배할 자도 없다. 그리고 절대 정(正)?오(誤)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그것이다. 그와 같은 진화론적 세계관에서 조망하면, 사람들을 살해하는 일이, 심지어 그게 수백만을 헤아린다 해도, 본질적으로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BARRY WOOLLEY, M. S.

Barry Woolley는 연구기계공학자 (Research Mechanical Engineer)로서 운동의 양극항등식 (plate equations of motions)과 소리와 구조의 상호작용 (interaction of sound and structures) 분야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러한 주제들에 관한 문서를 미국 음향학회 (Acoustical Society of America)의 간행물 (Journal)에 발표하였다.


1) 크론스타트 (Kronstadt)는 페트로그라드 (오늘날의 성-페테스브르그)의 앞바다에 위치한 도서에 서있는 군항으로서 20,000 명의 수병이 주둔하고 있었다. 1921년 3월 그 수병들(그들 가운데 농민의 아들이 많았다)은 자기네 부모들이 당한 알곡 도난 사건에 대해 항의하고 또 근로자의 자유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봉기하였다. 트로츠키의 명령을 받아, 백색 제복으로 위장한 붉은군대는 빙판 위를 횡단하여 해군 기지를 함락한 후 수병들을 학살하였다.

2) Woolley, B. L., Adherent of Permanent Revolution: A History of the Fourth (Trotskyist) International, University Press of America, Lanham, Maryland. p.2, 1999.

3) Heller, M., Cogs in the Soviet Wheel, London, p.204, 1988.

4) '전쟁은 혁명과 마찬가지로 협박에 근거를 두고 수행한다. 전쟁에서 승리한 군대는 패배한 군대의 어느 부분만을 괴멸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상례다. 그렇게 함으로써 적군의 나머지 부분을 겁먹게 하고 또 그들의 의지를 꺾는 호과를 얻어낸다.  혁명도 같은 수법으로 과업을 추진한다. 혁명은 몇 사람만을 죽이고 수천 사람을 겁먹게 한다.‘ 라고 그는 기록했다. Ref. 3, p.119, which quotes Trotsky, L., Terrorizm i Kommunizm, Moscow, 0. 57, 1920.

5) 트로츠키는 Lev Davidovich Bronstein이란 이름으로 태어났다. 나중에 그는 Odessa의 감방에서 동료들 가운데 한 사람의 이름을 자신의 혁명 아호 (雅號)로 취해 사용하며 자기가 유태 출신아란 사실을 감추었다.

6) Carmichael, J., Trotsky: an Appreciation of his Life, Hodder and Stoughton, London, p. 43. 1975.

7) 트로츠키와 알렉산드라가 동부 시베리아로 4년간의 유배형을 선고 받은후, 1900년 모스크바를 통과하는 어느 이송 (移送) 형무소의 감방 안에서 유태인 군목의 주례로 그들은 결혼했다. 시베리아에 있는 동안 그녀는 그의 두 딸을 출산했다. 그리고 그녀는 1938년 사망할 때까지 브론스타인 부인 (Mrs. Bronstein)이란 이름을 고수했다. 그녀의 도움 (그녀는 며칠 동안 병상에 누어 ‘환자’ 마네킹을 품고 있었다)으로 그는 그곳을 탈출하여 1902년 파리로 갔다. 파리에서 그는 나탈랴 이바노브나 세도바 (Natalya Ivanovna Sedova)를 만났다. 그녀는 나중에 그의 정부가 되었다. 비록 알렉스산드라가 법적으로 결혼한 트로츠키의 아내였지만, 나탈랴는 ‘트로츠키 부인’으로 행세하면서 그의 두 아들을 낳았다. 그녀는 1904년 그가 죽을 때까지 그와 동거하였다.

8) 다윈의 종의 기원의 마지막 단락에서 언급한 ‘창조주’에 대한 그의 생각, 그리고 다분히 영국 목사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서 2판에서 6판에 걸쳐 추가로 언급한 그의 ‘창조주’에 대한 생각 때문에 트로츠키는 다윈을 오해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아무튼 다윈은 그의 나이 40에 가서 기독교를 포기 하였던 것이다. See Brentnall, J. Grigg. T., Darwin's slippery slide into unbelief. Creation 18 (1): 34, 1995.

9) Eastman. M., Trotsky: A protratit of his Youth, New York, pp. 117-118, 1925.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3/i2/darwin_trotsky.asp

출처 - Creation 23(2):54-55, March 2001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67

참고 :

한국창조과학회
2004-07-26

피로 물든 ‘진화론의 세기’ 

(The Blood-stained 'century of evolution')


     기독교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때때로 그리스도의 이름과 교회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많은 종교전쟁과 잔학행위들을 지적한다. 그들은 ‘크리스천’으로 자처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따르는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동서고금을 통해서 종교전쟁으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사람의 수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단지 20세기 한 세기 동안에 종교의 이름이 아닌 다른 이유로 해서 죽임을 당한, 그것도 대개는 자기 나라 정부에 의해서 학살된 인명의 수가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1) 문제는 이 살육(殺戮)행위가 기독교의 성경적 가르침에 공개적으로 적대적인 철학 때문에 저질러졌다데 있다. 이 철학은 진화론을 신봉하는 데서부터 발원(發源)한다.


나치주의는 그 이념적 근거를 다윈(Darwin)에 두고 있다고 공언하였다.2) 그들은 인종간에도 약육강식(弱肉强食)은 당연하고 도덕적이라고 까지 주장했다. 약한 인종을 동정(同情)하는 것은 자연법을 거부하는 행위라고도 했다. 이러한 잔인무도한 이념으로서의 진화론(進化論)이 ‘과학적’ 이라는 지주목이 없었더라면, 바흐(Bach)나 루터(Leuther)와 같은 위인을 우리에게 보내주었던 민족을 그렇게 까지 송두리째 현혹할 수 있었을까 의심스럽다.


또한 공산주의자들도 자기들 이념의 논리적 결론으로 진화론을 내세운다. 만약에 모든 것이 ‘자연법’에 따라 진화하고 있다면, 그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사람의 의사(意思)가 정(正)?오(誤)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가령 노동계급이 무장투쟁을 통해서 권력을 쟁취하는 게 마땅하다고 한다면, 그 때에는 사회주의 천국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의 과정에서 죽임을 당하는 생명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과는 관계없이 그 이론이 옳다고 해야 할 것이다. 공산주의에 의해 살해된 생명의 수가 나치주의의 그것을 훨씬 능가한다 - 아마도 전 세계에 걸쳐 9천만 명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3)


스탈린의 잔학 행위는 혁명의 이상(理想)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에 어쩔 수 없이 수반되는 일시적 ‘일탈행위(逸脫行爲)’ 라고 암시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다. 어쨌거나, ‘대량 살육의 과학을 완성한’ 사람, 그리고 정치적 통제의 궁극적 방법으로써 전체적이고도 무자비한 잔인성을 완성한 사람은 러시아 혁명의 ‘아버지’인 레닌 바로 그 사람이었다.4) 진화론은 공산주의자들이 대중을 ‘과학적 무신론자’로 세뇌하는 데 사용한 주된 도구였다. 만약 모든 것이 마땅히 진화된 것이라면, 그 때엔 모든 것은 강자(强者)의 변덕에 좌지우지될 것이며, 그 이후로는 인간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물을 창조주의 존재는 없어질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스탈린의 신념, 즉 수백만의 인명을 도살하는 것이 잔디를 깎는 것보다 나쁠 것이 없다는 믿음이 비롯되었다. (잔디는 진화론의 이념에 있어서는 우리 사촌이다.)


마오쩌둥의 공포와 허위의 통치는 결과적으로 수천 수백만의 생명을 주검으로 내몰았다. 그가 애독했던 책이 두 진화론자, 즉 다윈과 헉슬리(Huxley)의 저서들이라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그가 강요한 기아(飢餓)로 인해서 수백만의 생명이 죽어나가는 마당에 마오는, ‘우리 인민의 수가 무수히 많으니까, 몇 명쯤 잃어도 끄떡없다.’ 라고 했다는 기록을 그의 주치의가 남겼다.5)그 이후 그의 후계자들은 수천 수만의 생명을 억압하고 살해하였다.


이와 같은 국가적 악(惡)의 영향을 받아, 타락한 모든 인간들에 내재하고 있는 악에 대해서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내용을 우리들은 망각하기 쉽다. 지금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의 기본 철학은 아직도 단단히 지속되고 있다. (예: 신의 뜻이 아닌 인간의 의사가 궁극적인 권위다.) 더 이상 베를린 장벽을 넘으려는 사람들이 사살되지는 않지만, ‘민주주의’ 국가들 안에서조차 수억의 생명들이 어머니 자궁 내에서 찢기어 죽어가고 있다.


오늘날, ‘힘은 정당하다’ 라는 표어에 직결되는 소위 초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이념은 날로 높아만 가고 있다. 성경도 당연히 사유재산과 상품의 자유롭고 공정한 유통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성경은 정부가 사악한 인간 본성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음을 인정하고, 그러기를 권장한다. 심지어 억만장자 죠지 소로스(George Soros)조차 족쇄 풀린 자본주의의 ‘적자생존(適者生存)’ 이론에 반대하여 이를 경고하면서, ‘예전에는 교역의 수단이었던 것이 지금에 와서는 근본적 가치의 자리를 강탈하고 말았다.’ 라고 말했다. 성공한다는 것이 반드시 정당하다는 것과는 같을 수가 없다.6)


소로스의 논평은 불변의 가치와 절대권리가 존재할 때만 이치에 맞는다. 그런데 불변의 가치와 절대권리는 불변의 진리를 자신의 피조물에게 확실히 드러내 보이는 창조주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창조/진화의 문제는 단지 태생(胎生)에 관한 문제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사(人間事)의 근본을 따지는 데 있어서 어느 쪽 기원설이 정당한가 하는 문제 - 말씀으로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계시(啓示)인가, 아니면 인간의 의사인가 - 를 여는 열쇠가 된다. 하나님이시여, 원컨대 이 생명의 진리, 창조 진리의 복음을 널리 전파하고 있는 창조지(Creation magazine)를 축복하여 주옵소서.



References and notes

1. 약 1억3천만 명이 20세기 한 세기동안에 무신론의 이름으로 살해됨 (낙태로 살해된 수억명의 생명은 제외), 반면에 기록된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살해된 인명은 최대로 잡아 약 1천7백만 명이다. See James Kennedy and Jerry Newcombe, What if Jesus had never been born? Thomas Nelson, Nashville, 1994.

2. 진화론자 아더 키스 경(Sir Arthur Keith)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 나는 변함없이 독일 총통은 진화론자이다 라는 주장을 견지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의식적으로 독일에서 진화론의 이론을 실제 문제에 적용하는 실험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Evolution and Ethics (NY: Putnam, 1947), p. 230.

3.'Black Book of Communism', The Courier-Mail Weekend, Brisbane, December 13, 1997, p. 8.

4.'Men who taught the world to hate', The Sunday Mail, Brisbane, July 6, 1997, p. 67.

5.'The Great Dying', The Sunday Mail, Brisbane, February 2, 1997, pp. 59-60.

6. G. Soros, in News Weekly, February 8, 1997, p. 24.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0/i3/blood.asp 

출처 - Creation 20(3), June 1998.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65

참고 :

임번삼
2004-07-26

진화론, 창조론, 그리고 유신진화론


자연을 바라보는 두가지 시각

우리는 자연을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에 잠기곤 한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이러한 생각들이 모여서 학문으로 발전하였다. 따라서 학문은 자연에 대한 해석체계로서 자연계에 내재되어 있는 우주의 법칙을 찾아내려는 합리적이고도 체계적인 활동인 것이다.

우주의 법칙 자체를 신격화한 것이 범신론(pantheism)인데, 기독교를 제외한 여러 종교와 진화론을 포함한 많은 학문이 이에 속한다. 이에 반해 우주법칙을 만든 초월적이며 인격적인 신을 진리의 본체로 믿는 인격신론(personal theism)에는 개신교를 비롯하여 카톨릭, 유대교 및 이슬람교가 있다.

학문은 그리스의 이오니아학파로부터 출발했다. 지금부터 2,700여 년 전의 일이다. 당시 학문의 주된 관심사는 자연과 인간의 본질(en arche)에 관한 것이었다. 우주와 생명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어떻게 탄생하였는지 추구하려는 것이었다. 이것이 오늘의 자연, 사회, 인문 분야로 발전하였다.

따라서 모든 학문의 공통목표는 우주와 생명의 실체, 즉 진리의 본질을 탐구하려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물질과 에너지를 대상으로 하는 자연과학만으로는 진리를 찾을 수 없으며, 인문 및 사회과학과 서로 손을 잡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역사적으로 진리를 찾으려는 노력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학문, 사상 및 종교의 형태로 추구되어 왔다.

학문분야에서는 자연에 대한 해석이 두 가지 시각으로 대립하여 왔다. 창조론과 진화론이 그것이다. 생명과학의 역사는 세 가지 테마에 대한 논쟁사라 할 수 있는데, 이 분야에서도 두 시각이 첨예하게 대립하여 왔다.

첫째는, 태초에 생명이 어떻게 탄생했는가 하는 기원의 문제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저절로 태어났다는 자연발생설과 창조주가 무로부터 창조했다는 창조론이 대립하여 왔다.

둘째는, 오늘의 수많은 동식물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나 하는 생물다양성(biodiversity)에 관한 문제이다. 여기에 대해서도 두 설이 극명하게 대립하였다. 무기물에서 단세포가 발생한 후, 지금과 같은 여러 종류의 동식물로 발달했다는 진화론(evolutionism)과 창조주가 처음부터 종류대로 완벽한 형태로 만들었다는 창조론(creationism)이 그것이다. 이 밖에 다른 천체로부터 생명의 씨앗이 지구로 날라 와서 부화했다는 우주유입설(panspermia)이 있으나 그 씨앗이 태초에 어떻게 탄생했느냐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므로 결국 모든 문제는 창조냐 진화냐 하는 문제로 귀결됨을 알 수 있다.
셋째는, 고생물의 흔적인 화석(fossils)과 그것을 품고 있는 지층(geological strata)의 형성에 관한 문제이다. 진화론자들은 지층이 오랜 세월에 걸쳐 쌓이면서 그 시대에 진화되어 살고 있었던 생물군이 화석으로 매몰되었다는 동일과정설을 주장한다. 그러나 창조론자들은 대홍수에 의한 격변으로 조산활동이 일어나고 그에 따라 지각이 변동하면서 지층과 화석이 짧은 기간에 생성되었다는 격변설을 주장한다.

어떤 문제이든 과거에 일어난 일이므로 정확한 실상을 알 수 없으며 단회적 사건(?)이었으므로 실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다만 그렇게 되었으리라고 설명하는 해석체계이면서 신념이요 신앙일 뿐이다.

진화론은 무신론적이며 유물론적 신앙이며 창조론은 목적론적이며 인격신에 대한 신앙이라 할 수 있다. 두 이론은 주장하는 내용이 대립적이므로 물과 기름처럼 타협될 수가 없다. 그리고 자연에 대한 학문적 해석체계는 이 두 이론뿐이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은 거짓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조화될 수 없는 두 이론을 하나로 엮어 놓은 것으니 유신진화론(theistic evolutionism)이다. 말하자면 유신론적 유물론(theistic materialism)이 탄생한 셈이다. 이질적인 요소가 봉합되었으니 여러모로 자가당착(自家撞着)적인 현상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유신진화론은 이론상 많은 모순을 내포하고 있으며 주장하는 내용이 산만한 느낌을 준다.

실험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 창조론이나 진화론은 모두 비과학(non-science)이다. 그런데 오늘날 모든 교육기관에서 오로지 진화론만이 실험적으로 증명된 이론인 양 가르쳐지고 있다. 반면 창조론은 창세기에 근거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교리적인 비과학으로 매도되고 있다. 그러나 진화론은 과학으로 위장된 비과학이며 창조론은 비과학으로 매도되고 있는 초과학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뒤에서 차차로 설명할 것이다.

최근에 미국에서 실시한 어느 여론조사(John Hulley 1995)는 흥미있는 사실을 보여준다. 노벨상 수상자들(1900-1990)의 종교 분포에서 개신교가 64%로 수위를 점하였고, 카톨릭(22%), 유대교(11%), 정교회(1.6%)가 그 뒤를 따랐다. 기독교계가 98.6%로 압도적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의 기원'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조사(Gallup poll 1993)에서도 매우 놀랄만한 결과가 나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창조론을 지지하는 비율이 47%이었으나 진화론은 9%에 불과하였다. 반면 유신진화론이 40%를 차지했다.

위의 두 여론조사 결과는 미국사회에서 진화론이 유신진화론으로 급속히 선회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유신진화론의 정체에 대해 좀 더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유신진화론은 오랜 역사를 가진 것으로 다윈의 진화론 형성에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다가 다윈의 <종의 기원>이 발표된 20세기 후반부터는 진화론이 반대로 유신진화론에 영향을 주고 있는 형국이 되었다.

이들은 성경의 기적들을 부인하며 하나님이 모든 생물을 진화론적으로 창조했다고 믿는다. 이러한 유신진화론이 오늘날 기독교계로 깊속히 침투하고 있어 우리의 각성이 요구되고 있다. 말세에 교회에 '양의 가죽을 쓴 이리'가 들어온다면 그 중 하나는 이 유신진화론이라고 나는 분명하게 말하고 싶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신학자들과 교역자들이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그다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 관심마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러면서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이러한 유신진화 사상으로 서서히 세뇌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머지 않아 기독교는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정체성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 같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진전된 것은 창조과학자들의 게으름이 큰 몫을 했음을 자성해야 할 것 같다. 지금부터라도 창조과학자들은 기독교계에 유신진화론에 대한 경종을 울리면서 체계적인 대처방안을 모색하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하여야 할 것이다.

 

우주의 기원에 대한 논쟁사

앞에서도 기술했듯이, 생명과학의 역사는 생명의 기원과 다양성 및 고생물의 흔적인 화석과 지층의 형성에 대한 논쟁사라 할 수 있다. 진화론에서는 우주와 지구 및 생명체가  저절로 발생하였고, 유인원으로부터 현생인류가 진화했다고 가르친다. 유신진화론에서는 하나님이 창조의 주체라는 사실만 다를 뿐, 진화론의 주장에 거의 동의한다. 즉 하나님이 자연법칙에 따라 진화론적으로 우주만물을 만드셨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창조론에서는 6일 동안 하나님이 무에서 우주를 창조하셨고 모든 생명체들은 처음부터 종류대로 완벽한 형태로 만드셨다고 말한다. 따라서 진화라는 용어가 개입할 여지를 허락하지 않는다. 사상(事狀)은 하나인데 해석이 이처럼 확연하게 다른 것이다.

우주, 태양, 지구 등의 나이에 대해서도 진화론에서는 긴 연대(각각 120억 년, 50억 년, 46억 년)를 주장하나, 창조론에서는 모두 10만년 이내(7-8천여 년)로 추정한다. 지층형성이나 그 속에 들어 있는 화석의 기원에 대해서도 진화론과 유신진화론에서는 장기간에 서서히 쌓였다는 동일과정설(uniformitarianism)을 주장하지만 창조론에서는 노아홍수에 의한 천재지변으로 갑자기 만들어졌다는 격변설(catastrophism)을 주장한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학설을 예시해 보면 진화론에서는 자연발생설, 화학진화설, 생물진화설, 동일과정설, 빅뱅설등이 있으며 유신진화론에는 다중격변설, 간격설, 날-연대설, 진행적 창조설, 골격가설 등을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창조론에는 생명속생설, 세포설, 종의 불변설, 유전법칙, 격변설(노아 홍수에 의한) 등이 있다.

진화론이나 유신진화론의 특징은 모두 예외 없이 추리에서 출발하여 추측으로 끝을 맺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문장의 기술방식은 대개 '...라면', '...일 경우', '...로 추측된다', '...일 것이다', '...라 생각된다' 등과 같은 표현을 쓰고 있다.

이에 반해 창조론은 대부분 실험에 의해 확인된 확고부동한 사실들이다. 오늘의 생명과학 이론들은 거의 창조과학자들에 의해 수립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조론과 싸우고 있는 진화론자들이 최근에는 이러한 창조과학적 이론을 진화론을 옹호하는 것처럼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해석은 사실 자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세 이론간의 논쟁은 매우 치열하였다. 생물의 진화문제에 대해서는 종의 가변설(evolution of species)을 주장한 뷰퐁-라마르크(1744-1829)팀이 종의 불변설(immutability of species)을 주장한 린네-큐비에팀과 부딪혀 창조론적인 종의 불변설이 승리를 거두었다.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는 창조론측의 레디(1626-97), 스팔란쨔니(1729-99), 파스퇴르(1822-95), 틴달(1823-93) 등의 생명속생설(biogenesis)이 각각 진화론측의 헬몬트, 뷔퐁1708-88), 니이덤과 푸셰(1800-72), 베스쳔(1837-1915) 등의 자연발생설(abiogenesis)과 격돌했으나 창조론측의 승리로 돌아갔다. 특히 파리에서 프랑스과학아카데미 주선으로 열렸던 파스퇴르와 푸셰간의 대결은 공개논쟁의 개시를 알리는 첫 신호탄이기도 하였다.

이후, 한동안 생명의 기원논쟁은 잠잠하여진 듯 했으나 20세기초(1936)에 소련의 오파린이 다시 화학진화설(chemical evolutionism)을 들고 나옴으로써 생명발생설에 대한 두번째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유물론적 주장은 생명을 단순한 자동기계로 해석하려는 생명기계론으로 연계되어 발전하고 있다.

이처럼 19세기 중반까지는 창조론이 연속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나 다윈의 <종의 기원>(1859)이 발표되면서 상황은 진화론 측에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오스트리아의 수도사인 멘델은 6년간 수도원에서 완두콩과 분꽃을 재배하면서 발견한 '유전법칙'을 오스트리아의 부린학회에서 공식 발표했으나(1866) 그 내용이 다윈의 진화론과 상치되었기 때문에 생물학계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빛나는 그의 업적은 1900년도에 그의 법칙이 재발견될 때까지 그의 죽음(1884)과 더불어 무덤 속에 들어가 침묵을 강요당하였다.

영국의 런던에서 공개적으로 열렸던 '옥스포드논쟁'(1860)에서는 창조론 측의 윌버포스 주교가 진화론자인 헉슬리에게 판정패를 당하였다. 이 논쟁은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첫 번째 공개논쟁이었으므로 매우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갖는 사건이었다. 그 영향으로 진화론은 영국은 물론 구미제국으로 급속히 확산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러한 싸움은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서도 계속되었다. 하버드대학에서는 그레이(Asa Grey)와 아가시즈가 격돌하여 유신진화론이 승리한 데 이어 예일대학, 프린스턴대학, 맥길대학 등이 1880년대에 진화사상을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고등학교 교과서에 처음으로 진화론이 등장하게 되었으며, 20세기초부터는 창조론이 교과서에서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추세에 위협을 느낀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변호사는 반진화운동을 전개하여 테네시주(1925), 미시시피주(1926), 아칸소주(1928) 등이 진화론 교육을 금지시키도록 법제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실제로 스코프스 재판이 끝난 직후인 1927년에 13개 주에서 반진화론 입법이 상정되었다.

이에 반발한 진화론 측의 시민자유주의연맹(ACLU; 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은 이러한 법규들의 실효성을 실험할 목적으로 스코프스(John Thomas Scopes)라는 교사의 협조를 얻어 테네시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는 내용을 가르친 사건을 연출토록 하였다.

이를 알게 된 한 학부형의 고발로 테네시주의 데이튼이라는 지방 법정에서 '원숭이재판'(1925. 7)이 열리게 된다. 세계 최초로 열린 이 법정재판에서 스코프스의 변호를 맡았던 ACLU측의 대로우(Clarence Darrow)가 제시한 네브라스카인(1922)과 필트다운인(1912)의 자료의 뒷받침으로 진화론측이 승리하였다.

 

*관련기사 : 유신 진화론은 복음을 어떻게 파괴하는가? (2016. 1. 9. 기독일보)


출처 - 창조지, 제 129호 [200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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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리
2004-07-26

시카고 학회의 결론 요약


     1980년 10월 16일부터 19일까지 시카고의 자연박물관에서 160명의 세계정상급 진화론자들이 모여 '대진화'란 주제로 회의를 가졌었다. 공식회의 자료로 그 회의에 제출된 논문들로 편집된 논문집(proceedings)을 출판하지 않기로 했으나, 기자 레윈(Roger Lewin)이 회의 내용과 몇몇 참석 학자들과의 대담 등을 Science지에  종합하여 발표했다.(Science, Vol 210, 21, Nov. 1980).


"불타 없어져 가는 진화이론(Evolutionary theory under fire)"이란 제목의 이 기사는 이번 회의를 진화론의 큰 전환점이 될 역사적 회의였다고 평가한다. 왜냐하면 이번 회의에서 소진화가 쌓여 대진화를 이룬다는 종래의 진화론의 기본 명제가 부정되었기 때문이다. 종(種) 내에서의 작은 변이, 즉 소진화(microevolution)가 일어난다 해서 그것을 연장하여 한 종에서 더 진보된 다른 종으로 변화한다는 대진화(macroevolution)가 일어난다고 할 수 있겠는가 라는 중심 제목을 두고 회의를 했으나, 그 대답은 분명히 No! 라고 결론지었다.

1946년 프린스턴 회의에서 제기된 현대 종합이론(modern synthesis theory)이 지금 까지 거의 40여년간 진화론의 주요 메커니즘으로 해석되어 왔었다. 이것은 1942년 헉슬리(Julian Huxley)가 다윈설을 집단생물학 및 집단유전학적으로 설명한 것으로 요점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①유기체내에서의 다양성은 유전인자內의 변이 때문이다. 진화가 일어나는 것은 집단에서 유전자 빈도의 변화 때문이다. 새로운 종이 생기는 것은 이런 작은 유전적 變異가 점점 쌓여서 된 것이다. 종합이론에서도 이런 진화는 아주 서서히 수 백 만년이 걸려 일어난다고 본다.

   ②진화가 이루어지는 방향은 자연도태에 의해 결정된다. 작은 변이에서 살아남는 것은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변이다. 따라서 생물체의 형태는 적응성에 따라 나타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현대종합이론에서는 작은 유전적 변이가 집단의 유전자 빈도의 변화로 생기고, 이것이 수 백 만년에 걸쳐 축적되어 점점 더 진화된 다른 종으로 변화되고, 이것을 화석이 보여 준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대부분 화석학자들은 화석은 이것을 보여주지 않고, 오히려 종은 변하지 않고 항상 같은 것으로 남아 있다고 증거했다. 이들에 의하면 화석은 어느 때가 되면 한 종이 끝나버리고, 더 다양하고 복잡해진 새로운 것이 갑자기 시작되는 것을 보여 준다고 한다. 즉, 먼저 있던 종에서 다음 종으로 가는 그 전이 과정이 연속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새로운 종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 수 백 만년이 지나도 화석에서 보여주는 종은 불변이다. 다윈은 이 점에 대해 화석이 아직 충분히 많이 모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다윈이 진화론을 발표한지 120여 년이 지난 현재도 화석 자료는 충분하나 대진화를 보여 주지는 않는다. 화석 학자들은 화석 자료가 불충분한 것이 아니라, 종이 진화했다는 진화론의 주장에 근본적 잘못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미국에서 현대종합이론의 제일 지지자인 아얄라(Francisco Ayala)는 말하기를 화석학자들이 제시한 자료와 주장을 보고 작은 변이들이 축적되지 않음에 이제 확신한다고 했다.

 

이제까지의 점진적 진화론에 반해 이번에 새로이 제기된 '단속(중단)평형이론(Punctuated equilibria)'은 1940년에 캘리포니아 대학의 유전학자 골드슈미트(Richard B. Goldschmidt)에 의해 처음 제기되었으나, 그동안 내내 무시되어 오다가 1972년에 하버드 대학의 굴드(Stephan Jay Gould)와 뉴욕에 있는 박물관의 엘리드지(Nile Eldridge)에 의해 다시 제창되었다. 이 이론에서는 종의 분화는 점차적으로 되는 게 아니요, 한 종이 오백만 년 내지 천만 년동안 불변으로 지나다가 어떤 순간에 새로운 종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순간이란 오만 년 정도의 기간을 말하는 것으로, 오백만 년이나 천만 년에 비하면 순간이라고 볼 수 있다는 그런 주장이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점진적으로 집단 유전인자 풀(gene pool)의 변이가 축적되어 대진화를 이룬다는 이제가지의 주장과 이론도 사실이요 일어나는 것이지만, 갑작스런 변이를 뜻하는 중단된 평형 과정이 가장 많이 일어날 뿐 아니라, 진화의 주된 메커니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어떻게 갑작스런 변이가 일어나는지에 대하여는 앞으로 종합적 연구와 설명이 나오게 될 것이라고 요약된다.

얼마 전 뉴스위크誌 과학란 에서는 최근의 이런 진화론의 변혁을 70년 전 양자론이 물리학을 혁신시켰던 것과 비슷하다고 논평했다. 이 단속평형이론(Punctuated equilibria)을 한편 희망적 괴물이론(Hopeful monster)이라고 부른다. 돌연변이로 갑작 새로운 종이 생길 때 대부분 괴물같은 것들이 생기지만, 오랜 세월동안 여러 번 이런 괴물들이 생기다 보면, 언젠가는 혹 생체에 이롭고 좋은 괴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뜻이 포함된 이론이라 하겠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evolution/e1/e11/e11c21.htm 

출처 - 창조지, 제 2호 [1981. 7]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51

참고 :

Paul G. Humber
2004-07-26

스탈린의 잔인성과 진화론


      믿음과 종교는 전능자에 대한 고백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녔다고 하는 잘못된 관념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또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믿음을 시험한다 (즉 신(神)을 배제한 상태로). 이것도 역시 종교는 종교인 것이다. 세상에서 각자의 입장과 역할에 대하여 기본적인 믿음의 체계를 가지고 섬기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확실히 믿음이요 종교인 것이다.

비록 무신론자이었을지라도 스탈린(Joseph Stalin)은 신앙인이었다. 엄청나게 잔인한 결과를 가져다준 믿음이었기는 하나 그렇더라도 이것도 믿음인 것이다! 이와 같은 믿음은 과연 무엇인가? 그와 같은 것은 스탈린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특별한 경우인가? 역시 어떻게 그와 같이 잔인할 수 있겠는가? 이 글의 목적은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 어떤 해답을 제공하고, 덧붙여서 러시아의 노벨상 작가인 솔제니친(Alexander Solzhenitsyn)의 뛰어난 작가적 통찰력을 통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스탈린의 믿음 -그것은 무엇이었는가? 

종종 개인적 믿음은 몇몇 종류의 서적에 상당히 밀착되어 있다. 모슬렘은 코란을 지녔으며, 힌두교는 그들의 베다경전(Veda),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바이블이 있다. 공자와 부처 그리고 모택동의 저서들은 어떤 다른 집단들과 비슷한 목적을 제공한다. 스탈린의 경우에 있어,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리고 레닌의 저서는 그를 자극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는 것은 아직 이르다. 여기 스탈린에게 더욱 결정적인 영향을 준 책과 사람이 있다. 특히 그가 젊었던 시절, 상상력이 풍부하던 시기에 영향을 준 것들이다. 그 사람은 찰스 다윈이며, 책은 찰스 다윈이 쓴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 이다. 

이와 같은 것에 대한 기록은,「스탈린의 생애에 있어서의 라마르크」라는 제목으로 모스크바에서 출간된 책에 처음 언급되었다. 스탈린의 '전성기(glory)' 동안에 쓰여진 이 책은 그를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인용된 구절에 주목해보면, 다윈의 믿음과 그의 '책'은 전능자에 대한 믿음에 있어서 현저한 차이가 난다.

”아주 어린 시절, 교회학교의 학생 시절에 스탈린 동지는 비판적인 생각과 혁명적인 감정이 생겨났다. 그는 다윈의 저서를 읽기 시작하였으며 무신론자가 되었다.” 스탈린의 어린 시절 친구였던 글루드지즈(G. Glurdjidze) 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하나님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스탈린은 내 말을 듣더니, 잠시동안 침묵이 흐른 후에 ”그래, 그들은 우리를 조롱하고 있어, 하나님은 없다”고 말하였다. 나는 이 같은 말에 매우 놀랐다. 나는 전에는 그와 같은 어떤 말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 그와 같이 말할 수 있느냐?”고 나는 외쳤다. ”네가 읽어볼 책 한 권을 내가 빌려주지, 이 책은 너에게 세상과 살아있는 모든 세계에 대해서 네가 상상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면을 보여줄 것이고,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은 완전히 넌센스이다"라고 스탈린은 말했다. "그 책이 무슨 책이냐?”고 내가 물었다. ”다윈의 책이다. 너는 그 책을 읽어보아야만 한다”고 스탈린은 내게 강조하였다.1)

수 페이지를 지나서 스탈린의 젊은 시절에 영향을 준 것들이 소개된다. ”세상이 6일 동안에 창조되었다는 신화에 대하여 우리 학교 학생들의 어리석은 마음을 깨우쳐주기 위하여 우리는, 지구의 지질학적 기원과 연령을 스스로 알아야만 했으며, 또한 그것들을 토론을 통하여 증거할 수 있으며, 우리는 다윈의 가르침에 정통해야만 하였다.”1)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리고 레닌은 같은 믿음을 소유하였는가? 

스탈린이 이들의 저서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이미 언급되었다. 이것이 그에 대한 다윈의 영향력을 희석시키는가? 아니면 이들도 역시 이 영국 박물학자에 의하여 영향받았는가?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긍정적이다. 펜실베니아 대학 식물학 교수인 저클(Conmay Zirkle)은 "진화론, 마르크스의 생물학 그리고 사회 현상"이라는 1959년 출간된 책에서 엥겔스와 마르크스 사이에는 서신 교환이 있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1859년 12월 12일, 엥겔스는 마르크스에게 쓰기를 (종의 기원이 출판된 지 단지 수개월 후) ”제가 지금 방금 읽고 있는 다윈의 책은 매우 놀랍다"고 하였다. 약 일년 후(1860년 12월 19일), 공산주의의 시조(始祖) 마르크스는 "나의 보잘것없는 생애 가운데, 지난 몇 주간 나는 모든 종류의 것을 읽었다. 이 가운데 자연도태에 관한 다윈의 책은 비록 조잡한 영어 문체로 전개하였기는 하나 우리들의 입장에 대하여 자연 세계 역사의 기초를 내포하고 있다”고 하였다. 사람들에게 라셀(Ferdinand Lassalle)은 쓰기를 ”다윈의 책은 매우 중요하며 내게 역사에 있어서 계급투쟁에 대한 자연과학적 기초를 제공한다”고 하였다. 저클은 역시 마르크스가 다윈에게 자본론(Das Kapitol)을 헌정(獻呈)하기를 원했음을 지적하였다.2) 진화론에 대한 현대의 맹렬한 옹호론자인 하버드 대학의 굴드(Stephen Jay Gould) 교수도 마르크스에 의하여 쓰여진 마르크스의 최초의 서적에 있는 다윈에 대한 묘사를 보았음을 보고하므로서 이 사실을 확증하였다. 마르크스는 이 영국의 박물학자를 '진정한 숭배자'(sincere admirer)로 묘사한다.3) (사진참조)

루이스(Ruis)는 다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한 점을 통하여 레닌(Vladimir Lenin)의 입장을 추측한다.『'다윈은 동물과 식물의 종이 우연에 의하지 않고는 서로 연관을 맺을 수 없다는 믿음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것들은 신에 의하여 창조되었으며 그러므로 그것들은 변할 수 없다.』4) 

(사진 : 칼 마르크스가 다윈에게 바친 '자본론'의 속표지 - 마르크스의 자필로 이렇게 쓰여져 있다. ”찰스 다윈 선생께, 그 분을 진심으로 숭배하는 칼 마르크스로부터, 1873년 6월 16일 런던에서”. 이와 같은 사실은 현대세계에 미친 진화론의 영향의 범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광범위함을 보여준다.)


스탈린의 믿음은 얼마나 잔인하였는가?
 

20세기에는 일련의 잔학행위와 대량학살이 있었다. 사람들은 단지 폴 포트 정권 하에서 자행된 2백만 캄보디아 인의 학살, 히틀러에 의하여 몰살된 600만 유대인, 아메리카에서 낙태된 2,000만 유아만을 기억한다. 그러나 잔악한 방법에 의하여, 스탈린의 살인자적 제도하에서 수 백 만의 러시아인들이 제거되었다. 뉴욕 타임즈지의 살리즈버리(Harrison E. Salisbury) 는 소련의 감옥수용소 제도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공포의 전(全)대륙… 소비에트의 공포제도 하에서 수십만 명의 강제 처형된 사람들과 죽음에 이른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 오히려 황제 시대는 아주 온순한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이같이 3~4백만 혹은 그 이상의 남녀가 해마다 강제 노동과 영원한 추방을 선고받는 이 조직적이고 일상화된 악에 대하여 생각하게 될 때 움찔해지는 것이다. 너무나 무심한 상태가 되어 죄수들은 그들에 대한 죄명이 무엇인지도 들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5)


솔제니친의 통찰력
 

1983년, 1970년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알렉산더 솔제니친(Alexander I. Solzhenitsyn)은 그와 같은 크나큰 죄악이 그의 백성들에게 닥치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하여 런던에서 연설하였다.

『반세기보다 더 오래 전, 아직 내가 어렸던 시절에 나는 많은 노인들께서 러시아에서 일어난 커다란 재앙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들었음을 회상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렸다. 그것이 이 모든 일이 일어난 이유이다.” 그 이래로 나는 혁명의 역사 속에서 거의 50 평생을 허비하였고, 그 과정에서 나는 수백 권의 책을 섭렵하였으며, 수백 명의 사람들의 개인적 증언을 수집하였고, 격변기에 남겨진 찌꺼기들을 씻어버리기 위한 노력으로 나 자신 8권 분량의 책을 펴냈습니다. 비록 6,000만의 우리 동포들을 휩쓸어버린 파괴적 혁명의 주요 원인을 오늘날 내가 명백히 언급한다고 할지라도, 나는 후회한다는 말 이상 더 정확하게 그것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렸다. 그것이 이 모든 일이 일어난 이유이다"』6)

그러나 솔제니친은 소비에트의 억압 정치를 포함한 모든 관계에 있어 스탈린의 공포정치와 기원에 대한 다윈의 이론을 염두에 두었는가? 솔제니친은 그의 유명한 책 '수용소 군도(The Gulag Archipelago)'에서 1937-38년 모스크바 지방의 지방당 대회(a district Party conference meeting)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다. 당서기는 스탈린 동지에 경의를 표하였다. 새로운 당서기를 포함한 모인 무리들은 경애하는 지도자에게 기립하여 박수를 보냈다. 일 분간의 열광적인 박수로 기력을 소비하였지만, 이 경우에 그 이상 '열광적 분위기'가 지속되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3분, 4분, 5분 점점 더 시간이 흘러갔다. 양손이 피곤할 정도로! 그런데 이 같은 경우에 과연 누가 박수를 멈추는 모험을 감수할 수 있었겠는가? 7, 8, 9분이 경과하였다.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최후의 11분이 지난 후, 어느 한 지방 공장 책임자가 박수를 멈추고 자리에 앉았다. 모든 사람이 따라서 앉았다. 그러나 그 날 밤 한 사람이 체포되었으며, 10년형을 언도 받았다! 그는 ”박수를 먼저 멈추지를 마라”는 말을 들었다. 솔제니친이 질문하였다. ”그러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어떻게 박수를 멈출 수 있는가?”7) 이와 같은 글의 입장과 조화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이것이 다윈의 자연도태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사람을 우둔해지도록 괴롭히는 것이다.”


결론
 

앞선 논문에서8) 저자는 히틀러가 광적인 진화론자임을 주제로 서술하였다. 진화론적인 언어와 용어는 히틀러의 작품인 '나의 투쟁(Mein Kampf)' 에서도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 케이쓰경(Sir Arthur Keith)은 ”히틀러, 이 완고한 진화론자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진화론적인 설명에서 그것을 찾아야 한다”9)고 압축하여 설명한다. 이 논문은 공산주의의 시조와 더불어서 스탈린을 같은 개념으로 언급한다. 다윈에 대한 이들의 집착은 명백해졌다. 그리고 또한 만일 우리가 그들의 행동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진화론적인 설명을 포함시키는 것이 현명한 것처럼 보인다. 히틀러에게 있어 그가 살상한 수백만 명을 설명하고, 또 다른 이들, 특히 스탈린이 처형한 수천만 명에 대해서도! 물론 어느 이론도 진화론 그 자체를 증거하거나 논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악이 다윈의 진화론의 비호 아래에서 (물론 다윈 자신은 이것을 예측한 것은 아니지만 - 譯註) 세상에 스며들었음을 강력히 암시한다. 

오스본 (Henry Fairfield Osborn)은 한때 ”진화론에 있어서의 선천적인 윤리적 원리는 오직 최고의 존재만이 살아남게 되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이다.”10) 라고 진술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병든 자들과 불구자들을 치료하시는데 관심을 갖고 계셨다. 그는 힘없고 연약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분의 관심과 방법은 진화론적 원리와는 정반대였던 것이다 - 譯註). 진화론의 '윤리적 원리'의 추종자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시는 그분이시다. 그럼에도 또다시,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이와 같은 사실을 기대하지 않는 것 같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렸다. 그것이 이 모든 일이 일어난 이유이다.” 

(글쓴이 Humber는 필라델피아지역 대학입학 예비학교의 교장으로 재직중임. 원제는 「STALIN'S BRUTAL FAITH」.

 

*참조 : Stalin’s ape-man Superwarrior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5198/

Resurrecting Stalin’s Ghost (Headlines,2008. 9. 7)
http://creationsafaris.com/crev200809.htm#20080907a

  

참고문헌
1. E. Yaroslavsky, Landmarks in the Life of Stalin(Moscow : Foreign Languages Publishing 033House, 1940), pp.8. 12.

2. Conway Zirkle, Zirkle, Evolurion, Marxian Biology, and the Social Scene (Philadelphia : University of Pennsylvania Press, 1959), pp.85-87.

3. Stephen Jay Gould, Ever Since Darwin (New York : W. W. Norton and Co., Inc., 1977). p.26.

4. Eduardo del Rio(pseudonym='Rius'), Marx for Beginners (New York : Pantheon Books, 1976), Glossary, n.p.

5. Harrison E. Salisbury, 'Reading The Gulag Archipelago is like no other reading experience of our day,' Book-of-the-Month Club NEWS, Midsummer, 1974, pp.4, 5.

6. Edward E. Ericson Jr., 'Solzhenitsyn Voice from the Gulag,' Eternity, October 1985, pp.23, 24.

7. Alexander I. Solzhenitsyn, The Gulag Archipelage (New York : Harper Row, 1973), p.7.

8. Paul G. Humber, 'The Ascent Racism,' Impact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February 1987).

9. Sir Arthur Keith, Evolution and Ethics (New York : G. P. Putnam's Sons 1947), p. 14.

10. Henry Fairfield Osborn, Evolution and Religion in Education (London : Charles Scribner's Sons, 1926), p. 48. 참조

 

제 54호 [1988. 7]

출처 - 창조지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30

참고 : 5397|3722|4069|5179|3077|330|518|5470|6112|3186|4140|3682|4647|6152|6153|5376|3778|5809

임번삼
2004-07-26

진화론이 학문세계에 끼친 영향


       ”생명체가 어떻게 탄생되었는가”하는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인류 최대의 질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의 이론이 있음은 이미 주지하시는 사실이라고 생각됩니다. 진화론과 창조론이 바로 그것입니다.

진화론은 몇몇 원소들이 우연히 결합하여 단세포 생명체가 자연적으로 발생하게 되었고, 이것이 오랜 세월에 걸쳐서 진화를 거듭하여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가설을 말하며, 창조론은 초자연적 존재인 창조주의 의도적인 설계에 따라서 모든 생물들이 그 종류대로, 처음부터 독립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는 이론을 말합니다.

따라서,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물이 물질에서 진화되었다고 하는 진화론은, 물질론 적이며, 창조주를 부인하는 무신론적인, 일종의 신앙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진화론은 과학적인 이론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반면, 창조론은 과학이 아닌 종교문제라고 오해하는 경향이 많으나, 우리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진화론이나 창조론 모두 증명될 수 없는 이론들이라는 점입니다.

진화론은 이제 더이상 단순한 과학상의 문제만은 아니며, 모든 인류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하나의 무신론적인 신앙입니다. 여기에서 신앙이라고 하는 이유는 증명 불가능한 이론, 즉 모든 생물이 자연발생 되었고 그 후로 진화되었거나 진화되고 있다고 하는 이론들을 믿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화론은 과학을 앞세운 비과학적인 신앙이라 할 수 있는 반면에, 창조론은 비과학으로 오도되어온 초과학적인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 이론은 모두 신앙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나, 문제는 어느 이론이 더욱 과학적 이론에 가까운가 하는 것을 따져 볼 수 있을 따름입니다. 물론 이 방법 역시도 절대적인 것은 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과학은 부단히 발전하면서 변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중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생물, 지리교육이 진화론을 지지하는 것처럼 알려지고 있으나, 파스퇴르에 의한 생명발생설이나 멘델의 유전법칙에서 보듯이 현행 교과서 내용의 최소한 50% 이상의 부분이 창조론을 지지하는 내용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잘못 인식되어 온 진화론의 실체를 파헤치고 올바른 학문체계를 세우는, 실로 엄청난 과제에 대하여 진지한 대책을 수립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진화론이 학문적으로 어떠한 부분이 잘못되었는가 하는 점은 다른 기회에 설명 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진화론이 다른 학문분야에 끼친 영향에 대하여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 

진화론은 우리 인간생명의 출발을 물질에 두었을 뿐만 아니라, 단세포가 물고기, 파충류, 조류, 원숭이를 거쳐서 사람으로 진화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어서, 역사적으로 정치, 경제, 사상, 종교, 문학 등의 모든 분야에 지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는데, 그 중 몇 가지 실례만 들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로, 생명현상을 '단순한 물성(物性)과 그 상호작용의 결과”로 해석하기 때문에 생명, 특히 인간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근거가 상실되게 하였습니다. 얼마전 북경 천안문 사건때 중공정권이 무자비하게 탱크로 시위대를 밀어 붙여서 유혈이 낭자하게 사태를 진압하고서도 이 사건에 대하여 사죄와 반성은커녕 오히려 유혈진압을 정당화시키고 있는 이유는 공산주의 이론으로 인간을 기본적으로 하나의 물질로 보기 때문입니다. 물질이기 때문에 인권 따위가 보장되어야 할 아무런 근원적인 근거가 없다고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물질로 만들어졌고, 동물(원숭이)의 연장선상에 있는 또 다른 호모사피엔스라는 동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생명체를 물질적으로 분석하게 되면서 '생명기계론(生命機械論)'이 대두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생명의 존엄은 물론 내세관에 대한 소망과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현실 위주적인 삶의 방식을 가져다 주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쾌락주의, 배금주의, 한탕주의, 이기주의 등이 자연스럽게 팽배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생명 존엄 사상에 근거한 전통적인 윤리관이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과연 이대로 나가다가 인류사회의 질서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인지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셋째, 다원의 적자생존 이론과 자연선택 이론은 칼·막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그는 결국 자연선택 이론을 '계급투쟁의 과학적 정당성”에 응용하게 되었습니다. 진화론이나 공산주의나 모두 유물론적이며 자연선택적이고 적자생존적인 이론을 내세우는 점에서 그 이론의 바탕이 매우 근접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북한을 포함한 공산세계에서는 무신론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서 진화론 교육을 더욱 강화하고 있는 사실도 결코 우연적인 일이 아닙니다. 

넷째, 진화론의 영향으로 다윈과 종형제지간이던 C. Calton(1883)은 인종우생학(Eugenics)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만들었는데, 이는 인류자체를 유전학적으로 개량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신박약아, 불구자, 유전적 질병을 가진 자 등은 아이를 낳지 못하도록 하는 비인도주의적인 소위 '임의 단종 법안'을 만들어서 미국의 일부 주정부와 나치 독일에서 실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같은 우생학은 1907년 영국에서, 1926년 미국에서 학회의 설립을 보게 되었는데, 미국 우생학회가 당시에 주장한 내용의 일부를 보면, 미국內의 백인종은 유색인종들 보다 우수하며, 백인 중에서는 북유럽계 백인(Nordic white)이 가장 우수하다는 내용입니다. 그 결과 유색인종에 대한 이민제한법이 제정되기에 이르렀고, 37 개 주에서 단종법이 발효되었는데, 1935년까지의 한 통계에 의하면 캘리포니아주에서만 총 9,931 건의 단종이 실시되었다고 합니다. 이 법이 그 뒤에도 덴마크, 스위스, 독일, 노르웨이, 스웨덴 등의 북부유럽국가들에 의해 채택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근세 구라파의 생물학자들이 저질렀던 또 하나의 범죄적인 사건 중 하나가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잡아온 흑인들을 대상으로 이들이 사람인지, 진화 중에 있는 동물인지의 여부를 연구하는 것이 한때 주요한 생물학적 과제로 검토되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역사란 망각하는 자에게는 또 다시 똑 같은 상황을 연출해 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생학자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의 유전자를 화학적으로 개량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우량아동을 탄생시킬 목적으로 특수유전자를 염색체內로 이식시킬 연구계획도 추진 중에 있다고 합니다. 참으로 무섭고도 삭막한 세계를 살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다섯째로, 진화론은 인종우생학 및 니체의 초인주의와 결합되어서 히틀러의 나치즘을 탄생케 하였습니다. W, 후우퍼가 저술한 나치즈 다큐멘트에 의하면 '히틀러는 진화론을 그의 행동의 이론적인 근거로 삼아서 유태인들을 게르만 민족의 번영을 위해서는 기생충과 같은 존재들이라는 이유로 없애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국수주의적인 발상은 최근 이웃 일본에서도 대동아 전쟁을 통하여 나타난 바 있으며, 역사적으로는 앵글로색슨주의, 게르만주의 , 슬라브주의 등등이 이러한 국수주의적인 민족주의를 표방하여 일어난 반역사적 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적인 움직임은 종국적으로는, 성경이 지구역사의 종말에 대하여 한 예언에서 알 수 있듯이 적그리스도의 탄생과 全인류에 대한 가혹한 통치로 인류생활이 처참한 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견이 되어 전율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앞에서 지적한 상황들에 대하여 현명하게 대처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먼저, 국내 모대학의 진화론 학자 한 분은 이렇게 그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생명은 신비하고 존엄하다고 초 중등 교육을 통하여 강조함으로써, 생명물질론의 충격을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생명은 물질론적으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지구상의 현존하는 모든 생물은 기나긴 진화의 소산이며, 또 인류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이 다 현재로서는 진화의 극치에 도달해 있는 고귀한 존재라는 개념을 교육의 초기에서부터 강조하는 것은 생명물질론에 대하여 완충작용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인간은 인간이 걸어온 길로 진화한 것이며, 다른 생물, 예컨데 세균은 세균대로의 진화의 길을 걸어와서 각자가 자신의 환경에서는 그리고, 현재로서는 최고도로 진화되어 있는 생물이라고 교육시켜야 할 것이다.”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처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이 동물에서 진화되었다고 믿는다면, 인간을 하나의 동물로 인정하고 동물답게 사는 방안에 대해서 거론하는 편이 오히려 솔직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낸 진화론과 그로부터 잘못 파생된 주의 주장이나 학문으로부터 우리가 해방되어 참 인생을 살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할 때에만 가능하며, 인간 존엄성의 회복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창조되었다고 하는 창세기의 놀라운 선언을 믿고 받아드릴 때에만 가능하리라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신본주의적인 삶을 살아갈 때에 역설적으로 우리는 참다운 인본주의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되찾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인간성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1:27-28) 


※참고 문헌 :

1. 동아원색 세계대백과사전, vol, 22 pp. 69 동아출판사, 서울(1988)

2. The new encyclopedia Britanica, 15th ed, vol. 30, pp. 1023-1026, 7-23(1984)

3. W. 호우퍼 : 나치즈 다큐멘트 …13 단계의 길, pp. 45-48 東京, 論爭社

 


번역 -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evolution/e1/e14/e14c2.htm 

출처 - 창조지, 제 70호 [1990. 7~8]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29

참고 : 5462|5461|5413|5272|5211|5210|5112|4766|4765|4636|4635|4542|4140|4039|3077|3426|3812|3244|3241|3041|3039|3037|3024|2864|2307|2039|2016|1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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