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에 대한 신화
(A Look as Some Myths about Scientists)
오늘날 사람들은 창조과학(creation science)이 현실과학(real science) 보다 더 편향적이고 '외골수' 라는 관념을 상식처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창조론자들이 결국에는 성경에서 시작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러니 어떻게 창조과학자들이 현실과학자들처럼 객관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겠는가? 라고 묻는다. 그런데, 우리는 과거를 연구함에 있어서 기원의 전제를 배제하고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이미 수없이 많은 글들에서 역설하였다.
본 글은 그 점을 거듭 거론하려는 의도로 쓰여진 것이 아니며, 또한 진화론의 종교적인 본질을 재삼 지적하려는 의도로 쓰여진 것도 아니다.
그 대신에, 본 글은 과학자들이 견지하는 증거에 대한 접근방법이 누가 뭐라고 해도 중립적이며 항상 객관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그들의 강력한 신화(myth)를 직접 다루어 보려는 것이다. 이 일을 추진함에 있어서 우리는 반과학(anti-science)이나, 반과학자(anti-scientist)적인 태도가 아님을 천명해둔다. 우리가 이룬 발견들은 창조론자로서의 우리의 설득이 포함되어 있지만, 어쨌거나 그 내용이 모든 과학자들에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자들도 여느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인간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우선 주목하려 한다.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1980 년에 사회학적인 조사를 시행한 적이 있었다.1 주제는 과학자들과 그들의 직업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전통적 믿음들을 그들이 어떤 태도로 대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믿음 (Belief) 1 : ”과학은 조직화된 회의론이다. 이 말의 뜻은 … 지식에 대한 과학자의 연구는 정밀한 분석 없이 수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과학자는 남의 발견들은 물론 자신의 발견에 대해서도 반드시 의심을 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2
조사대상이었던 과학자들 중 약 4분의 3은 이 믿음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사실상 자신의 생각(사상)과 합치하는 주제를 수용하는 것은 비정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학사를 살펴보면… 과학자들은 자주 주관적인 방법으로 일을 추진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과학 분야에 발생하였던 몇몇 주요한 개념상의 변화에 대한 최소한의 실험적 증명은 그 중요도에서 철학적 주장에 비하여 2 차적인(부수적인) 것으로 되어있음도 알 수 있다.”3
믿음 2 : ”감정적인 중립. 이 말은 과학자는 특정한 사상이나 이론에 감정적으로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사대상 과학자들의 대부분이 이 믿음을 아주 강력하게 거부하였다. 그들의 이런 반응을 보고 본 저자는 다른 연구를 참조하면서4 이렇게 지적하였다. 즉, 과학은 객관적이며 사심(私心)이 없는 사람들에 의해서 추진되는 무감정적인 기획이라는 신화는 이제 더 이상 효력이 없다. 더욱이 감정적 이해관계에 무관심하고 객관적이어야 하는 과학자의 자세는, 오직 초심자나 젊은 과학도만이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 조사와 유사한 조사에서 드러난 흥미로운 사실은, 과학자에 대한 일반적인 인상(즉 과학자들은 객관적이라는)이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과, 전문가들은 과학자들의 감정적 참여가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그러는 것이 정상적이라고 인정한다는 사실이었다. 과학탐구에 대한 고전적 관념은 더 이상 추구하지 말아야할 이상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왜 그런가 하면, 응답자들은 자신의 발견들과 새로운 정보들을 동료들과 공유하는 객관적이며, 비판적이고, 사심 없는 진리탐구자로서, 이상적인 과학자의 인상에 알맞게 행동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물론 스테픈 굴드 (Stephen J. Gould)가 ”(과학을 언급하면서) 본질적으로 가장 순수한 인간적인 행동” 이라고 말했을 때에 예견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과학자들의 대다수는 인간 기원에 대한 어떤 관념에 깊이 감정적으로 탐닉해버렸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자기를 지은 이와 회복시켜주는 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고 한다. 그런 사상이야말로 그들로 하여금 죄와 심판의 관념 없이도 살 수 있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
References
1. Nina Toren, 'The New Code of Scientists', 1333 Transactions on Engineering Management, Volume EM-27, No.3, August 1980.
2. N.W. Storer, The Social System of Science, Holt, Rinehart, Winston, New York, 1966, p.79.
3. S.G. Brush, 'Should the History of Science be Rated X?' Science, Volume 188, March 22, 1974, p.183; T.S. Kuhn,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0.
4.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Volume 39, August, 1974, pp.579-95.
*CARL WIELAND, M.B., B.S., is managing director of Australia's Creation Science Foundation in Brisbane. He is also actively involved in speaking and writing on creation science.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magazines/docs/v11n3_myths.asp
출처 - AiG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10
참고 :
진화론자들의 오만
(Evolutionary Arrogance)
Dr. Henry M. Morris
”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너희만 참으로 사람이로구나 너희가 죽으면 지혜도 죽겠구나”(욥기 12:1-2).
진화론 사상에 무엇이 있기에, 그 많은 진화론의 대변인들을 오만하게 만들까? 그들은 진화론의 이념이 우주질서의 기원서부터 종교의 기원까지를 망라하는 모든 분야의 문제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 광범위하다고 주장한다. 어떤 진화론자들은 과학 그 자체를 '神'으로 삼고 스스로를 그 신의 선지자나 성직자가 된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데, 그것은 이 사상이 하나님의 필요성을 배제하는 것처럼 행세하기 때문에 생기는 결과다. 사실상 그들의 내림굿을 받은 자들 가운데 한 사람은 그들을 진화론(이라는 신)의 '무당(shaman)'들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들은 우리의 지도자들에게 복종하고, 우리의 어른들에게 존경을 표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무당들의 지시를 따릅니다. 이 시대가 과학의 시대이기에, 과학주의의 무당들은 우리에게 당연히 존경을 요구합니다. … 과학자들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주도적인 신화창조자들입니다.” 1
저들의 위대한 무당들 가운데 한 사람, 언필칭 생존 중인 우두머리 진화론자는 하버드 대학교의 에른스트 메이어(Ernst Mayr) 교수다. 그는 진화론이 생명에 관한 그 엄청난 질문, '왜' 에 대해서까지 정답을 내놓을 수 있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과학자들까지를 포함하여 보통 수준의 지성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다들 '무엇'과 '어디에' 그리고 '어떻게' 라는 질문들은 다룰 수 있겠지만 '왜' 라는 질문만은 그럴 수 없는 것이다. 이 마지막 문제는 신학적인 대답을 요구한다. 최소한 철학적인 대답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메이어 무당께서는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즉, ”진화론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생물학에 관한 '왜'의 질문에 적절한 답을 내놓을 수 없다.” 2
셔머(Shermer)는 결국, ”우주론과 진화론은 전통적으로 종교와 신학의 영역에 속하던 궁극적 기원에 관한 질문들을 묻고 있지 않는가!” 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진화론 사상은 용감하게 초자연주의적인 대답을 대신하여 자연주의적인 대답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 정신적인 자양분까지도 공급하고 있다.” 3 라고 말한다.
이 지도자들이 진화론 신앙에 그와 같은 거만한 권위의 옷을 입히려고 하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그들의 마음속에 창조론과 같은 반대론에 대한 깊은 초조감만 생기게 할 것이다. 그들은 대진화의 과학적 증거들을 들고 나와서 창조론자들에 대항하는 대신에 욕설과 조롱에 기대려 하고있다. 미주리 주에 있는 어느 대학의 교수 한 분은 ”창조론자들의 몽상적인 직해(直解)주의”4와 특히 ”헨리 모리스(Henry M. Morris)와 같은 지도급 창조주의자들의 황당한 이론”5에 분통을 터트렸다.
높은 존경을 만끽하던 사리가 밝은 故 굴드 (Stephen Jay Gould)와 같은 진화론자들까지도 그의 운명 직전에 출판된 1433쪽에 달하는 두툼한 자기 저서에서 분노 섞인 목소리로 '창조주의자들을 재난'6 이라고 언급하였다. 그는 어느 실력 있는 창조론 과학자와 토론을 갖자는 초대를, 그것은 창조론과 그들의 과학자들의 위상만 높여주는 실수를 범할 뿐이라며, 사뭇 자존적이며 오도(誤導)할 위험성마저 있는 설명을 섞어서 거절하였던 적이 있다.
기쉬 박사(Dr. Gish)와 몇몇 창조주의자들과 벌였던 여러 번의 토론에서 패배를 맛본 맛시모 피굴리우치 박사 (Dr. Massimo Pigliucci)는, ”수많은 미국사람들이 이름조차 자가당착적인 소위 창조과학회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7의 죤 모리스와 듀안 기쉬와 같은 (퇴물)공룡들에게 지금도 현혹되어 있다”니 참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며 비탄을 토로하였다.
토론에 응하면 적지 않은 재정적 인센티브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굴드 박사는 창조과학자들과의 토론을 결코 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돌아서자마자 유인물을 통해서 창조과학자들을 비평하는 데는 재빠르기 이를 데 없었다. 그는 창조과학자들을 ”통상적인 냉소주의와 무식을 노정하면서 스스로를 '창조과학자' 라고 호칭하는 근본주의자들”8 이라고 비하하였다. 사실상 굴드는 자기 입장을 지지하는 사실 증거를 가지지 못할 때면 언제나 욕설과 인신공격적인 토론 기술에 매달려왔던 것이 비일비재하였다.
굴드 박사는 진화론의 발전과정을 역사적으로 조명하는 걸작을 남겼다. 그 저서는 진화론자들 간에 벌어졌던 수많은 갈등들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1433쪽에 달하는 거대 역작은 대진화의 증거를 단 한 가지도 담지 못하고 있다. 존귀하신(?) 에른스트 메이어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도 그의 최근 교재9에 그런 증거를 제시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뻔뻔스럽게도 ”지식인들은 모두가 다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유래됐다는 것을 인정한다.” 10 라고 선언했던 것이다.
굴드의 말에 따른다면, 이론상 이 주제에 관해서 아는 것이 없는 우리 무식한 창조론자들은 주요 전략으로서 ”언제나 과학 원전들을 틀리게 인용하는데 의뢰한다.” 11 또한 그의 말에 의하면, 창조론자들은 무식할 뿐만 아니라 거짓말쟁이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그의 묵중한 여러 저서들은 말할 것도 없이 앞서 언급한 1433쪽짜리 역작에서도 구울드 박사는 창조론자들이 틀리게 인용하였다는 원전을 단 한 건도 밝힐 수 없었던 것이다.
창조주의자들도 물론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인간이다. 그리고 우리가 진화론자들을 인용한 수 천 가지들 가운데 몇 개쯤은 틀린 것이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드문 경우임에 틀림없다. 물론 고의적인 실수는 더더구나 아니다.
만약에 공간만 주어진다면 진화론자들이 과학적인 증거 대신에 상대방을 험담으로 비하하고 모욕하는 사례들을 얼마든지 내놓을 수 있다. 더 어이없는 행태는 지성인이라면 어느 누가 진화론자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하고 거듭거듭 주장하는 진화론자들의 오만한 태도다. 가히 놀랍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작가는, 1996년에 교황이 가톨릭 교회가 진화론을 인정한다는 것을 재확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가톨릭교 신도들의 40%가 하나님이 10,000년 전에 인간을 창조하였다는 것을 믿는 다는 2001년의 갤럽 여론조사를 보고 비애를 느낀다고 한탄했다. 사실상 전체 미국인의 45%가 창조주의자의 견해를 지지하고 있다.” 12
Evolution 지에 기고한 고명하신 두 분 작가들의 중요한 기사에서 그들은, 이것(위의 갤럽 여론조사 내용)은 단순히 ”일반대중의 진화론에 대한 이해의 결핍을” 시사할 뿐이라고 역설하고는 이와 같은 무식의 발로는 ”진화론 사상과 반진화론 사상에 대한 대중매체의 보도 태도의 결과로 생겼을 것”이라고 암시하고 있다.13
아마 이 작가들이 조롱하자는 뜻으로 쓴 글은 아닐는지! 그들도 모든 매체들이 실질적으로 진화론을 강력히 홍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틀림없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일반대중'은 공교육기관이나 세속적인 최고학부를 거치는 동안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전 생애를 통해서 오직 진화론만을 교육받아왔다는 사실을 그들이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와 같은 그들의 세뇌활동이 여하튼 간에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중은 왜 창조론을 지지하는가? '일반대중'의 소수만이 교회나 주일학교에 나간다는 통계이고 보면, 그들이 창조론 지지하게 되는 데는 혹시 진화론이 증거나 상식과는 모순 되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진화론이 틀렸다는 것을 감지하였기 때문은 아닐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의 증거들을 그들 나름으로 연구한 결과 진화론이 결국은 전혀 과학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보았기 때문은 아닐까!?
고등교육도 크게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 같다. 알터즈(Alters)와 넬슨(Nelson)은 이 분야에 대해서 상당한 조사보고를 발표한바 있다.
”조사자들이 시행하였던 조사의 결과를 보면, 전공 학생과 입문단계의 비전공 학생 간에 생긴 생물학 성적의 차이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컨대 1200명의 학생에게 생태학과 진화론적 생물학에 대한 예비 시험을 실시하였던 바, 생물학 전공 학생들의 점수가 비전공 학생들보다 겨우 6%만 높게 나타났다. 같은 학생들에게 다음 학기 첫날에 사후 시험을 실시하였던 결과를 보고, 조사자들은 ”이 자료를 더욱 집중 교수를 받았던 전공 학생들이 비전공 학생들과 같은 정도의 이해 수준을 나타냈다!”라고 결론을 맺고 있다.” 14
과학 분야를 전공하는 학생들도 진화론과 관련이 있는 교과목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비타협적이라는 형상을 나타내는데, 이것은 아마 종교가 원인인 것이 틀림없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그들은 말한다!
”종교교육이 심화되면 될수록 더욱더 많은 증거들이 종교적 신앙과 모순을 느끼지 않는 학생들의 시각과 다른 시각으로 조망되었다.” 15
그렇다, 일리 있는 이야기다. 만약에 진화론자들이 학생들을 설득시켜 무신론자로 만들 수 있다면, 그들을 진화론자로 전향시키는 일이 한결 수월할 것이다!
하지만, 과학적인 일반화를 추진하려면 최소한 과학적인 사실에 근거하여야한다는 것을 믿고 있는 학생들을 설득하는 데는 언제나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을 그들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더욱 어려운 것은 창조에 대한 성경의 설명이 창조주 자신이 계시를 통해서 보여준 진리라고 믿는 학생들을 설득하는 문제다.
신의(神意)에 의한 '진화의 계시'나 대진화의 참 과학적 증거도 내놓지 못하면서, 지성의 우월성을 내세우는 저들의 도전적인 태도 (심지어 온전히 실력을 갖춘 수천을 헤아리는 창조과학자들까지도 깔보려는 태도)를 진화론자들의 오만의 소치라고 밖에 달리 이해할 수 없지 않은가!
References
1. Michael Shermer, 'The Shaman of Scientism,' Scientific American (June 2002), p.35.
2. Ernst Mayr, What Evolution Is (New York: Basic Books, 2001), p. xiii
3. Michael Shermer, op cit., p.35.
4. Taner Edis, 'Darwin in Mind,' Skeptical Inquirer (vol. 25, no. 2, march/April 2001), p.36.
5. Ibid., p.35.
6. Stephen Jan Gould, The structure of Evolutionary Theory (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2002), p.984
7. Massimo Pigliucci, 'Defending Evolution, as Strange as It May Seem,' Evolution (vol. 56, no. 1, 2002), p. 206.
8. Stephen Jay Gould, op cit., p.101, footnote.
9. Ernst Mayr, op cit.
10. Ernst Mayr, 'Interview,' Omni (March/April 1988), p.46, emphasis supplied.
11. Gould, op cit., p.986.
12. Roger Doyle, 'Down with Evolution,' Scientific American (vol. 286, March 2002), p. 30.
13. Brian J. Alters and craig E. Nelson, 'Perspective: Teaching Evolution in Higher Education,' Evolution (vol.56, October 2002), p.1892. Dr. Alters was the lead author of Defending Evolution (Boston: Jones & Bartlett, 2001, 261 pp), an anti-creationist book which was reviewed in the september 2001 issue of ICR's Acts & Facts. Dr. Nelson is a professor at the University of Indiana who has unsuccessfully debated for evolution several times.
14. Ibid.
15. Ibid., p. 1898.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www.icr.org/article/evolutionary-arrogance
출처 - ICR, 2009. 7. 1.
진화론의 미술
(The Art of Evolution)
미술은 진화론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사실상 관련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상당히 많이 있다. 자연사 박물관들에는 소위 잃어버린 고리 처럼 보이는 벽화들로 가득 차있다. 순전히 상상력에 의존한 그림임에도, 과학적으로 입증된 잃어버린 고리의 모습처럼 벽화들을 이용하고 있다.
어떤 대상을 전혀 색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종전의 시야를 넓히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그래서 추상미술의 시각으로 진화론의 개념들을 전개하면, 어떤 그림이 될지 그 귀추가 궁금해진다.
추상미술은 아무나 이해할 수 있는 예술은 아니다. 훌륭한 추상미술들 중에는 현실에 굴절을 가하는 정도가 지나치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은 사실화가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것이 사실이다. 즉, 추상미술은 저자가 가장 중요한 요점들을 한 두 단락에 집중시키는 문서의 요점발췌와 유사하다. 그런 발췌문은 기술적인 세부설명들을 배제함으로써 기본적인 문제에 주의를 집중시키게 한다. 이것은 혼란상태의 정보들을 제거하여 중요한 요점들만을 강조하는 효과가 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추상 화가는 중요한 특징들만을 내포하는 그림을 그린다. 그런 추상화는 중요하지 않은 세부사항들을 배제하여 핵심 포인트로부터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정보혼란 상태의 그림이 되지 않게 한다. 왼편에 있는 그림은 추상화가가 늑대의 얼굴을 어떻게 그리는가를 설명하는 하나의 예다.
늑대는 머리 정수리에 두 개의 커다란 귀를 가지고 있다. (이 그림에 그려놓은 유별난 귀로해서 주의가 딴 곳으로 팔리지 말기를 바란다). 늑대는 밀접하게 마주 접근한 두 눈, 그리고 기다란 코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유명한 모나리자의 눈을 마주 붙이고, 코를 기다랗게 밑으로 쳐진 채 붙여주었다. 우리가 그린 좁디좁은 늑대의 얼굴 안에 얼굴이 가지고 있는 특징들을 모두 차곡차곡 쌓아놓았다.
이 그림을 그린 추상화가가 고래의 얼굴을 그린다면 아래의 그림과 같이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추상적인 고래 그림의 특징들은 고래의 특징들과 그 모습이 차이가 있다. 고래는 귀를 머리 위에 가지지 않는다. 그런데 코는 머리 위에 붙어있다! 두 귀와 눈, 그리고 하나의 입이 대강 동일 선상에 수평으로 놓여있다. 그래서 하나의 선을 긋고 그 위에 그것들을 배열할 수 있다. 좁게 마주 붙은 늑대의 눈과는 다르게 고래의 두 눈은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어서 우리는 한 눈에 두 눈을 볼 수 없다. 더욱이 고래한테 유별스런 두 귀를 (그러나 못지 않게 유명한 귀) 달아놓아, 고래는 늑대의 귀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고래는 두 귀를 반향정위 (反響定位)의 용도로 사용하지만 늑대의 귀는 그렇지 않다.
진화론자들은 어떤 늑대 닮은 괴상한 동물이 고래로 진화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고래로 진화되는 중간의 과도기 형태가 있어서, 두 눈 사이에 코가 위치하고, 중간형태의 두 귀를 달고 있어서, 아래의 그림과 같은 동물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비슷한 얼굴을 한 동물의 화석 따윈 일찍이 발견된 적이 없다. 로드호세투스(Rodhocetus), 앰블로세투스(Ambulocetus), 그리고 바실로사우르스(Basilosaurus)는 두 눈 아래에 있는 하나의 주먹코 끝에 두 콧구멍이 나있다. 이것들은 소위 ”고래의 진화과도기의 중간 화석”이라고 주장되는 것들인데, 이것들 중 어떤 것도 코가 두 눈 사이를 지나서 머리 정수리 위로 이동하였다는 설명을 전혀 하지 못한다.
여러분들은 어쩌면 '과도기 형태'에 대한 진화론자들의 미술 개념들 안에서 이와 같은 맹점을 인지하지 못하였을는지 모르겠다. 그것은 아마도 여러분들이 미술가의 '현실적' 개념 속에서 늑대 닮은 신체가 고래 닮은 신체로의 변화가 원활해서 쉽게 인지하지 못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여러분들이 그러한 신체의 변화과정의 기본이 될 수 있는 골격을 본 적이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우리도 본 적이 없다. 그 신체를 그린 화가들도 보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왜 그런가 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한, 그 어떤 파키세투스(Pakicetus), 앰블로세투스, 로드호세투스, 인도세투스, 또는 프로토세투스의 후-두개(post-cranial) 골은 아직까지 발견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연구에 이용하는 대상이라 것들은 기껏 해봐야 두개골(skull) 이든가, 어떤 경우에는 두개골 파편들이 전부다. 신체의 모양은 치아의 모양에 따라 결정되어진다.
단 한 개의 치아에 근거하여 구성한 네브라스카(Nebraska) 인의 그림을 여러분들도 보았을 것이다. 그 그림은 (어떤 사람들한테는) 매우 설득력이 있는 것 같았지만, 나머지 치아들이 돼지 턱의 치아라는 것이 확인되고는 그만이었다.
아래에 예시된 그림은 National Geographic 에 게재되었던 그림이다. 이것은 영국의 Boxgrove에서 발견된 두 개의 치아, 한 쪽 다리의 정강이뼈, 독일의 Heidelberg 근처에서 발견된 아래턱뼈, 그리고 에티오피아의 보도(Bodo)에서 가져온 두개골을 근거로 한 그림이다. 이 파편들이 동일한 개체의 것들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럼에도 진화론자들은 이 모든 파편들이 그들이 Homo heidelbergensis 라고 부르는 종(種)의 것들이라고 주장한다.
위에 전시된 늑대와 고래의 추상화 그림들은 실물을 왜곡하고 있으나 받아들일 만하다. 실물 늑대나 고래는 그 그림과 꼭 닮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추상화는 해당 동물의 얼굴의 핵심 요소들의 위치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어서 하나의 얼굴이 다른 얼굴로 진화하려면 어떤 변화를 거쳐야하는가를 알려준다.
진화론자들의 과도기형태의 그림은 이들 추상화 그림보다 훨씬 정직하지 못하다. 왜 그런가 하면, 사실적 양식에 기준을 두고 볼 때, 그들의 그림에서 어느 부분들이 사실에 근거하고 있는지, 어느 부분들이 진화론적 믿음에 근거하고 있는지를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술을 사랑한다. 그러나 우리는 미술이 과학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미술은 과학일 수도, 과학이 아닐 수도 있는 일종의 이념표현의 방법이다. 미술가의 관념들은 과학적인 증거는 아니다. 그것들은 단순히 하나의 영상(image)을 표현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그림을 지나치게 믿지 않는 것이 좋다.
Footnotes
1. Taylor, The Illustrated Origins Answer Book, page 67 (CR)
2. Defense mapping Agency Technical Report DMA TR 8350. 2, September 30, 1987, page 6-1.
3. Ibid. Table 6. 1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ridgenet.net/~do_while/sage/v4i3f.htm
출처 - 기타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13
참고 : 6582|6553|6486|6550|6149|6132|5081|5130|4639|5740|5683|5420|5994|6449|4821|6263|6018|6468|6148|6474|5510|5947|5954|5591|6211|5589|5602|5966|4837|6090|485|3890|390|2349|3782|6438|4510|5474|6495|5458|6243|5863|2698|6399|5460|6489|5135|5000|4828|6118|6394|6168|6138|5996|774|5497|5827|5158|5962|6358|6258|6119|4066|5544|5443|6556|6501|6096|5459|5274|5450|5909|6461|6436|5586|4542|5041|3391|6393|6476|6292|5796|5768|6271|5462|6146|6439|3591|6125|3426|6285|6152|6153|6022|6286|5725|6586
진화론 : 역사의 평가
19세기 엄청난 발전을 이룬 과학 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에 의하여 제창된 진화론이었다. 이 진화론은 특이하게 학문적 영역에서보다도 사회에 더 큰 영향을 끼쳤다. 다윈은 뉴턴이 물리학에서 달성한 것을 생물학에서 이루었다. 생물학을 일반법칙에 토대를 둔 과학적 학문으로 만들며, 다윈은 코페르니쿠스와 비견될 지식혁명을 선도하였다.
계몽주의가 풍미하던 시대, 생명의 시작은 모두 신으로부터 비롯되었고, 성경말씀에 의지하여 만물은 하나님의 피창조물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온 우주와 자연에 그가 창조한 만물을 배치하였고, 만물은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솜씨를 찬양할 뿐이었다. 이 같은 생각은 신이 만물창조를 약 6천여 년 전에 끝냈다는 확고한 믿음 속에서 사람들의 머릿속에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1830년대초 찰스 라이엘(Chales Lyell)이 '지질학 원칙' 이라는 세 권의 책을 출판하여 별들이 오랜 시일에 걸쳐 진화하였다고 설명하였고, 찰스 다윈의 조부인 에라스무스 다윈은 '유기적 생명의 법칙(Zoonomia)' 이라는 책에서 '지구는 인간이 나타나기 수백만 년 전에 이미 생성되어 존재하였고, 동물들이 진화하였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같은 견해들은 가설로서는 자리를 잡을 수 있었으나, 실증적 증거가 없었으므로 별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 따라서 만물이 신의 창조로부터 존재한다는 믿음은 굳건히 그 지위를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1859년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판하고, 187l년 '인류의 혈통' 저술하였을 때, 이 글들이 사회에 던진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다. 왜냐하면 다윈은 많은 증거를 제시하며 동물들의 여러 변종이 수백만 년의 진화의 결과라고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맬서스의 이론 틀을 사용하여 자기 주장을 폈는데, 그것은 식량의 증가가 인구의 증가를 감당하지 못하므로 필연적인 '생존경쟁'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모든 어린 생명이 다 생존하는 것은 아니며, 더욱 늙어서 죽는 것이 아니다. 자연도태의 원칙에 있어 생존에 적합한 종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게 되고, 부적합한 종은 멸종한다. 예를 들면 기린은 살아남기 위하여 목이 그처럼 길게 발달되었으며, 카멜레온은 피부색을 바꾸는 생체조직을 개발하였다. 아주 조그마한 생체조직의 변화가 있어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종은 계속 그 생체조직을 발전시켜 수 세대에 걸쳐 이러한 변화가 지속되면 낡은 형태는 소멸되고 새로운 형질이 나타나서 새로운 종을 이룬다. 지구가 처음 생성될 때 존재하였던 종이 현존하는 것은 극히 드물고 현존하는 종은 원형으로부터 형질이 변화하여 현재에 생존하는데 유리하도록 바뀐 것들이다. 인간도 이 같은 자연의 법칙으로 진화되어 오늘의 모습에 이르렀다.”
다윈의 주장은 우선 종교분야와 정면으로 충돌하였다. 약 6천여년 전 확정된 수의 생물이 순간적으로 신에 의하여 창조되었다는 종교적 믿음은 다윈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다윈의 주장은 '성경말씀' 을 거짓으로 밝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측에서는 다윈의 진화론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성경의 진리를 수호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일부 성직자들은 이와는 달리 다윈의 진화론까지 포용하며 신의 창조설을 확대 적용하려는 노력을 시도했다. 이들은 신의 창조가 있었고, 진화의 과정도 신의 섭리에 의한 것이라고 믿었다.
결국 다윈의 진화론은 성경에 만사, 특히 과학의 문제에 있어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왔던 갈릴레이 이래의 종교적 권위주의를 끝장나게 만든 것이었다. 이것은 세속화의 경향을 가속화시켰고 자연과 인간을 종교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종교는 순수한 신앙의 차원으로 위축되었고, 과거와 같은 사회의 지도적 위치를 결코 되찾을 수 없게 되었다. 급진적 사회사상가들은‘신은 죽었다’고 공공연히 주장하였고, '인간은 창조주와 특별한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진화과정 중에서 우연히 나타난 종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코페르니쿠스가 우주의 중심으로서 지구를 부정하고 지구가 태양계에 위치한 혹성에 불과함을 밝혀내자 사람들은 무엇인가 불안함을 느꼈는데, 이제 다윈이 인간은 신의 특별한 창조물이 아니고, 원숭이 종으로부터 진화한 종에 불과함을 다시 밝혀내자, 사람들은 더욱 막연한 불안감에 빠지게 되었다. 인간이 신의 각별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그저 무수한 삼라만상 중 티끌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은 인간의 자기에 대한 신뢰를 상실케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다윈의 설은 다시 사회사상가들에게 수용되어 소위 '사회적 다윈주의(Social Darwinism)로 발전하였다. 다윈의 생물학적 생존경쟁을 경제, 사회, 정치 등 모든 분야로 확대시킨 사회적 다윈주의자들은 정치적으로는 보수주의와 경제적으로는 자유방임, 개인주의를 자연의 법칙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이들은 성공한 기업가란 치열한 기업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던 그 능력을 증거한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이들의 성공은 자연의 법칙을 따른 정당한 것이며 사회유지에 유익하게 기능한다고 주장한 사회진화론자들은, 그러므로 기존의 지배질서 전반을 자연의 질서로 정당화하였고, 이러한 질서에의 도전은 자연질서를 어지럽히는 나쁜 것으로 생각되었던 것이다. 더욱 다윈의 주장처럼 진화는 단기간에 급속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사회는 진화도 급격하게 진행되어서는 자연질서와 어긋나는 것으로 판단되어졌다. 따라서 보수주의자들은 다윈의 진화론에서 그들이 기댈 수 있는 좋은 의지처를 발견하였다.
다윈의 영향은 여기에서 그친 것이 아니었다. 서구인들은 다윈의 설을 빌려 제국주의, 인종차별, 민족주의, 군국주의를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시행할 수 있었다. 현실에 가장 잘 적응한 생명체가 생존할 자격이 있고, 또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이들의 생각은 우수한 인종이 열등한 인종을 착취하는 것을 당연한 자연의 계율로서 받아들였고, 한 생명의 번성을 위하여 다른 생명이 말살되는 것도 당연시하였다. 미국의 의원 비버리지는'우리는 정복하는 민족이다. 따라서 우리는 피에 복종하여 필요하다면 새로운 영토를 점령하고 새로운 시장을 빼앗아야 한다.”라고 말하기조차 하였다. 프러시아의 장군 베른하르디는 '독일과 다음 전쟁' 에서'전쟁은 가장 본질적인 생물학적 욕구이다.”라고 지적하였다.
그러므로 정복민족을 자처하는 여러 민족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앵글로색슨 계통의 영국과 미국인들, 튜튼 계통의 독일인들은 인종적 우월감에 빠져서 자신들이 아시아, 아프리카, 슬라브족을 정복하고 다스릴 사명을 위임받았다고 외치며 군사적 제국주의의 침략전쟁을 자연현상으로 덮어 씌웠다. 다윈의 설에 직접 영향을 받지 않았으나, 진화론에 동조한 월리스는 1864년 다음과 같이 썼다. '유럽인들은 신체적 자질에서와 마찬가지로 지적 및 도덕적 자질에서 다른 인종보다 우월하다. 방황하며 야만생활을 하던 유럽인들을 오늘의 문화와 진보로 이끈 그 능력과 힘은 유럽인들이 야만인과 접촉할 때 정복하고 자신의 수를 늘어나게 하였다'
결국 사회진화론자들은 계몽철학의 전통을 위험하게 만드는 데까지 나아갔다. 즉 계몽철학자들의 주장인 평등과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천부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무시하고 진화론자들은 인류를 열등한 인종과 우월한 인종으로 가르는가 하면, 인종과 인종 사이, 또는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를 서로 적대시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민족과 국가는 생존할 권리가 있으며, 패배한 민족과 국가는 멸절되어야 하는 논리가 진화론자들에 의하여 정당화되었던 것이다. 이들에게는 휴머니즘과 범세계시민주의란 찾아볼 수 없는 덕성이었다. 따라서 진화론자들은 '무엇을 위한 진보인가?' 라는 궁극적 물음에는 답을 할 자격이 없었다.
진화론 그 자체는 인간 이성이 이룩한 훌륭한 업적임에 틀림없으나 사회적 진화론자들은 이것을 변용하여 영토확장, 군비증대, 민족 간 불신, 국가 간 적대감을 악화시키는 일에 사용하여 제 1차 세계대전에 이르는 길을 예비하였다.
출처 - 도서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47
참고 :
진화론자들의 목적
(Evolutionists Explain Their Objectives)
진화론자들이 그들의 이론이 가치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아래에 적어놓은 글들은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과학 대 진화이다. Creation - Evolution Encyclopedia은 당신에게 창조과학이 진실임을 알려줄 것이다.
내용 : 진화론자들의 목적
1. 그들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싶어하지 않는다.
2. 그들은 하나님과 분리되기를 원한다.
3. 그들은 성적으로 자유를 원한다.
4.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숨을 길을 원한다.
5. 그들은 동물처럼 살기를 원한다.
6. 그들은 하나님과 분리된 지식을 원한다.
7. 그들은 종교가 파괴되는 것을 원한다.
진화론의 증거가 처음부터 전혀 없었으며, 그 이후로 계속적으로 반증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을 끝까지 주장하는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것들은 매우 중요한 이유들이다. 이번 글에서는 왜 그들이 그리도 광적으로 허구적인 이론에 매달려 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다.
이유 1 : 그들은 어느 누구도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싶어하지 않는다.
”우주에 홀로 서있는 인간은 오랜기간, 무의식적이고, 비인격적인, 물질과정에 의한 독특한 생성물로서 특별한 이해력과 잠재력을 가진 존재이다. 이 인간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 빚지고 있다. 그리고 책임져야하는 것은 자기 자신인 것이다. 인간은 통제불능의 불분명한 힘에 의한 창조물이 아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 주인인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고, 이끌어 나갈 수 있으며, 그렇게 하여야 한다.” - *George G. Simpson, 'The World into Which Darwin Led Us,' in Science, 131 (1960), p. 966.
이유 2 : 그들은 하나님과 분리되고 짐승과 동일화 되기를 원한다.
”실제 이슈는 사람이 이 세상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야만 하느냐 아니면 인간의 정신을 동물과 같이 무질서한 사실로서 여기느냐 하는 것이다....진화론적 사고는 탁월한 창조주의 지식으로부터 스스로를 떨어뜨려 생각하려는 인간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생각이며, 인간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믿기에 대중화된 것이다.” - *G.L. Bahnsen, 'On Worshipping the Creature Rather than the Creator,' in Journal of Christian Reconstruction, 1 (1974), p. 89.
이유 3 : 그들은 성적으로 자유를 원한다.
”내가 진화론을 주장하는 동기는 의미를 가지는 세상을 원치 않기 때문이며, 결과적으로 세상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가정하게 된다. 그리고 이 가정을 만족시킬만한 증거를 확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세상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철학자는 순수 형이상학의 문제에 독점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허무주의 철학이 해방(자유방임)의 도구에 필수적이라는 것을 나 자신뿐만 아니라 동료들 대부분도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가 바라는 자유는 정치적, 경제적인 구조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동시에 도덕적인 어떤 구조들에 관한 것들을 포함한 일체의 자유이다. 우리는 도덕성을 반대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성적 자유(sexual freedom)를 막기 때문이다.” - *Aldous Huxley, 'Confessions of a Professed Atheist,' Report: Perspective on the News, Vol. 3, June, 1966, p. 19. [Grandson of evolutionist *Thomas Huxley, *Aldous Huxley was one of the most influential writers and philosophers of the 20th century.]
이유 4 :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숨을 길을 원한다.
”다윈니즘은 합리적인 토론의 영역에서 생명체의 창조주로서 하나님이라는 일체의 개념을 제거하였다. 다윈은 초자연적 설계자가 필요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자연선택이 다른 새로운 종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진화론에는 초자연적 존재의 틈을 주지 않는다.” - *Julian Huxley, 'At Random, A Television Preview,' in Evolution after Darwin (1960), p. 41.
이유 5 : 그들은 동물처럼 살기를 원하고, 그것을 재고해 보려하지 않는다.
”다윈의 세계에서는, 인간이 다른 종들과 특별히 구별되는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동물의 한 종류일 뿐이다. 인간은 자연에 대한 많은 상식을 가지고 있는, 결코 그들과 분리되지않는 존재이다. 비유적인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인간은 아메바, 촌충, 벼룩, 해초, 참나무, 원숭이와 같이 살아있는 모든 것과 동종이다. 물론 관계성에 있어 깊이는 어느 정도 다르다. 우리가 원숭이와 형제라는 것에 비해 촌충과 42촌 간이라는 말은 덜 와닿을 수 있다.” - *George Gaylord Simpson, 'The World into Which Darwin Led Us,' Science, 131 (1960), p. 970.
이유 6 : 그들은 하나님과 분리된 지식을 원한다.
”신을 없애버리고, 우주의 신비를 설명하는 이 하나의 주장으로 새롭고 무한한 지식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 *Ernst Haeckel, The Riddle of the Universe (1899), p. 337.
이유 7 : 그들은 종교를 파괴하고자 한다.
”전통적 과학에 충격을 준 것을 너머서, 다윈니즘은 보수신학을 파괴시켰다.” - *D. Nelkin, Science Textbook Controversies and the Politics of Equal Time (1977), p. 11.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www.sdadefend.com/pathlights/ce_encyclopedia/Encyclopedia/20hist13.htm
출처 - Creation-Evolution Encyclopedia
인본주의 운동의 실상
이양림
목적 :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인본주의 운동의 영향력은 교회 밖에서는 물론 교회 안에서 까지 대단히 크다. 이러한 영향에 힘입어 교회 밖에서는 인간성이 상실되고, 윤리관이 몰락되는 반면에, 교회 안에서는 교회가 세속화 되고있다. 이러한 운동이 아직까지 우리 사회와 교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지는 못하지만, 우리 사회와 교회에 인본주의적 요소가 잠재해 있다면 언젠가는 우리 교회도 그러한 영향권 속으로 잠식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인본주의 운동의 실상을 파악함으로써 마지막 시대에 교회안으로 침투하여 교회를 세속화하는 인본주의 영향에 대처해야 할 것이다.
1. 서 론
인본주의는 아담과 이브가 타락할 때부터 있었고, 인류역사를 통해서 그 모양은 달리 했을지라도 한번도 지구상에서 그 정체를 보이지 않았든 때는 없다. 그러나 최근 미국과 구라파를 비롯하여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인본주의 운동은 겉으로는 매력적이면서도 속으로는 파괴적인 요소를 가지고 확산되고 있다. 더구나 이러한 인본주의 운동은 단순한 사상이나 이념의 수준을 넘어서 하나의 종교로서 부상하고 있다. 오늘날의 인본주의는 지구상의 모든 철학, 사상 및 이념을 담고 있다. 뿐만 아니라 힌두교, 불교를 비롯한 종교까지도 인본주의는 흡수하고 있다.
인본주의는 기독교까지도 흡수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인본주의가 교회 안으로 침투할 경우 교회는 쉽게 세속화한다. 교회의 목표가 하나님에게 있지 않고 사람에게 있게 된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인본주의 운동의 실상을 파악하는 것은 교회 안으로 인본주의가 침투하는 것을 막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2. 미국의 인본주의 운동의 실상
기독교적 신앙을 토대로 하였던 미국의 교육이념과 사회윤리관이 최근에 와서 급변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교육이념은 변질되고 있고, 사회윤리관은 몰락하고 있다.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신앙이 오히려 인간적인 성공, 자기존중 및 자기개발과 같은 인본주의적인 신념으로 대치되는 현상이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을 출현시킨 뒷 배경에는 크게 두 가지 형태의 인본주의 운동이 관여하고 있다.
가. 인본주의자 선언 I 과 Ⅱ (Humanist manifesto Ⅰ and Ⅱ)
1933년 미국의 교육학자, 심리학자, 과학자들은 신으로부터 해방되어 인간의 힘으로 인간성을 회복하자는 15개 조항의 '인본주의자 선언 I'을 내놓았다. 그 내용을 분석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P6. 도표참조).
인본주의와 신본주의의 비교 | ||
기 준 | 신본주의 | 인본주의 |
세계관의 초점 인류의 구원자 세계관의 기초 우주와 인류 탄생 생 명 관 윤 리 관 삶 의 목 표 생 활 철 학 | 하 나 님 하 나 님 성 서 창 조 영적존재 절대윤리 내 세 적 예수 중심주의 | 인 간 인 간 과학주의 진 화 물질적인 존재 상황윤리 현 세 적 자기 중심주의 |
이러한 기준에서 특히 인본주의적 세계관의 기초가 되는 것은 과학주의, 진화사상 및 유물론적인 생명관이다. 이러한 세 가지 기준이 말해주는 것은 한마디로 '하나님은 없다”이다. 그 외의 인본주의를 위한 기준은 오히려 이와 같은 기본적인 기준에서 이차적으로 발전된 것이다. 즉 상황윤리와 자기중심주의적 생활철학이 정당화되고, 인간을 세계관의 초점으로 삼을 수 있는 근거는 과학주의, 진화사상 및 유물론적 생명관이 사실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사실처럼 인식되어 하나님은 없다는 생각을 가능하게 하는데 있다. 1973년 인본주의자들은 17개 조항으로 된 '인본주의자 선언Ⅱ'를 내놓으면서 선언 I을 재확인하였다.
나. 새시대 운동 (New Age movement)
새시대 운동은 앞에서 언급한 인본주의 운동과 맥을 같이 하지만 더 적극적이고 폭이 넓은 인본주의 운동이다. 오늘날의 세계는 기근, 핵무기, 공해, 에너지, 식량과 같은 공통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인본주의자들은 이러한 공통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계 단일정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세계 단일정부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전세계 인류를 하나로 만들어야하고, 인류를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는 인류에게 가장 설득력 있는 법, 즉 운동의 형태로 출현한 것이다. 그 종교의 내용은 인간의 잠재력을 개발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을 개발하여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고 설득하는 것이다. 여기에 인간의 개발의 구체적인 방법으로 가장 설득력있게 이용되는 것이 동양 신비주의에서 나온 최면술, 명상, 요가, 텔레파시 등과 같은 것이 제시되었고, 과학은 이러한 것들이 모두 과학적으로 타당하다고 뒷받침해 주었다. 단순히 과학주의, 진화사상 및 유물론적인 생명관을 기초로하여 출발한 인본주의 운동은 이와 같이 동양신비주의에서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더구나 새시대 운동은 마치 물병과 같아서 동양신비주의만이 아니라, 모든 사상과 이념, 종교 그리고 기독교까지도 인간개발의 도구로 흡수하고 있다.
새시대운동에 참여한 인본주의자들은 인간은 물질에서부터 저절로 만들어진 존재로서 절대적인 과학에 의지하여 엄청나게 진화된 존재로서 변신할 수 있다는 꿈을 꾸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새시대운동은 교회밖에서만 일어날지라도 기독교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지만, 이러한 운동이 교회안으로 들어올 때 그 영향은 엄청나다. 만약에 교회가 순수한 복음을 유지하며, 하나님의 죄인 구속사업에만 교회의 목표를 두고 있다면, 새시대운동과 같은 인본주의 운동은 쉽게 교회속으로 수용될 수 있다. 만약에 과학주의, 진화사상 및 유물론적인 생명관이 교회속에 막연하게나마 존재할 때 인본주의의 수용력은 한층 더 커진다.
3. 한국교회의 인본주의적 요소
미국에서 일어난 인본주의 운동이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교육기관에서의 교육내용 및 이념에는 인본주의적 요소가 대단히 많다. 이러한 교육을 받고 있는 우리의 자녀들과 앞으로 받을 후손들이 인본주의적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기도 대단히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같은 교회밖의 인본주의적 사회분위기 속에 처해있는 한국교회는 두 가지 점에서 인본주의적 요소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즉 복과 인권에 초점을 맞춘 기독교인의 꿈이 오히려 한국 교회속에 잠재해 있는 인본주의적 요소가 될 수 있다. 복은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것이기 때문에 약속된 복을 받을 지라도 잘못이 있을 수 없으나, 복이 교회의 목적이 되는 한, 교회도 인본주의 운동의 영향을 쉽게 받게 된다. 또한 인권은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신 것으로 인권을 위해서 일을 할지라도 나쁠 것이 없으나, 교회의 목적이 인권에 있다면, 교회는 인본주의의 테두리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된다. 교회의 목적은 복과 인권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죄인 구속사업에 있다. 신앙적인 목표의 초점이 하나님에서 벗어나 인간에게 겨냥될 경우 인본주의적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복과 인권은 방법일 뿐이며 목적이 아니다.
4. 결 론
그러면 이러한 인본주의 세력에 대하여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첫째는 복음을 순수하게 유지함과 동시에 교회의 궁극적인 목적을 명백하게 확인하는 것이다. 즉 복음전파 혹은 죄인구속사업을 교회의 최선의 목적으로 양육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다.
둘째는 인본주의의 기초가 되는 과학주의, 진화사상, 유물론적 생명관의 허구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즉 과학은 절대적이 아니며, 한계성이 있고, 진화는 사실이 아니고, 생명은 단순한 물질의 집합체가 아님을 주지시키는 반면에, 창조신앙을 과학적으로 보다는 신앙적으로 정립해 나가고, 아직도 과학으로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신비한 생명 현상을 인식시키는 것이다.
5. 참고문헌
.Hunt Dave and Macmahon, Seduction of christianty.
.Hunt Dave, Peace, Prosperity, and the coming holocaust - The New Age movement in prophecy(1983).
.Simonds R. L., Communicating a Christian World View in the Classroom (1983).
제 72호 [1990. 11~12]
진화론자들은 당신이 말하는 것에 어떻게 응답하는가?
(How Do Evolutionists Respond to What You Say?)
그들은 대개 그것을(창조론자들의 말을) 무시한다. 소수는 내가 응답할 수 없는 포럼에서 증거들을 비판할 것이다. 1년 또는 2년에 한 번 정도 식견이 있는 진화론자는 엄격한 대화식 토론에 동의할 것이다. 이 토론은 대개 활기 있고 진지할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2시간 반 정도를 넘지 않을 것이고, 토론의 내용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대대적으로 배포되거나, 연구되거나, 상기되지 않을 것이다.
창조-진화 토론을 명백하게 하기위한 최선의 방법은, 엄격한 과학적 토론의 전체 내용을 기록하고 출판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기록한 수많은 증거들처럼 양측에서 그들의 주장을 지지하는 증거들을 제시하고, 서로 하나 씩 하나 씩 각각의 증거들에 대해서 응답하는 것이다. 그리고 양측은 완료된 서로의 응답 내용들을 출판하고 권리를 가지는 것이다. 나는 1980년 이후로 그러한 교환을 할 것을 제안해 왔었다. 그러나 진지하고 자질을 갖춘 수락자를 찾지 못했다. 많은 저명한 진화론자들은 그 제안을 알고 있다. 내가 대학에서 강의했을 때, 학생들에게 토론을 완전히 끝마칠 수 있는 한 명의 진화론 교수를 발견할 수 있다면, 나는 그 학생에게 200 달러를 주겠다고 제안했었다. 나는 그러한 한 명의 과학 교수를 발견할 수 있는 첫 학생에게 여기서도 그 제안을 반복해서 제안한다.
다음은 진화론자들이 말하고 있는 여러 변명들이다.
1. ”시간이 없다”
응답 : 많은 사람들은 시간이 없다고 한다. 물론, 그들은 토론에 참여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창조론자들을 공격하고 왜곡하는 책들을 쓰는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시대착오적인 진화론적 생각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이 가르치고 있는 것을 방어해야하는 토론장에는 나오지 않고 있다. 만약 당신이 어떤 것을 가르치고 있다면, 당신은 그것을 방어하기 위해서 기꺼이 나서야 한다. 특별히 납세자들이 당신의 봉급을 지불하고 있다면 말이다.
2. ”창조는 종교적 생각이다. 그것은 과학이 아니다.”
응답 : 창조는 확실히 종교적 함축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많은 과학적 증거들은 그 주제와 관계가 있다. 이 문서화된 토론에서는 오직 과학적 내용만이 허용될 것이다. 서로의 응답을 교환할 때, 편집자는 어떠한 종교적인, 또는 반종교적인 해석들을 제거시킬 것이다. 만약 나의 응답이 오로지 종교적이라면, 편집자는 토론에서 그것을 삭제할 것이다. 나는 나의 응답이 삭제됨으로서 진화론자가 승리하도록 그렇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진화론도 또한 종교적인 함축성을 가지고 있다)
3. ”나는 창조론자와 포럼을 갖기를 원하지 않는다.”
응답 : 수천의 과학적 논쟁들 중에서, 창조-진화 논쟁은 드물며 몇몇 과학자들은 증거들을 교환하고 토의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것은 비과학적인 태도이며, 닫힌 마음 자세이다.
4. ”나는 진화론에 대해서 충분히 알지 못한다” (칼 세이건의 말), 또는 ”나는 진화론의 단지 한 부분만을 전공하고 있다.”
응답 : 한 팀으로 된 진화론자들이 토론에 참여할 수 있었다.
5. ”어떠한 토론도 공인된 과학 학술지에서 실시되어야 한다.”
응답 : 어떠한 학술지도 그러한 토론 내용을 게재할 지면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과학 학술지들은 진화론자들에 의해서 조절된다. 그래서 그들의 믿음 체계를 비판하는 글들은 게재될 수 없다. 그리고 진화론의 문제점들을 제시하고 창조론을 지지하는 어떠한 연구물도 출판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러한 글들을 게재되었다면, 그 학술지의 편집자들은 그 잡지의 독자와 광고주들로부터 심각한 비난에 직면할 것이다. (대화식 창조-진화 토론에 참여했던 소수의 진화론자들은 토론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진화론자들에게 매우 심한 비난을 받았음을 자주 인정하고 있다.) 잘 알려진 사실로, Scientific American과 같은 학술지는 매우 실력있는 부편집장을 고용하려던 계약을 취소하였는데, 이유는 그가 창조론자였기 때문이었다.
만약 누군가 기록 출판하는 토론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페이지 334-336을 보라. 그러나 당신이 자격이 있는 진화론자에게 참여할 것인지를 물어보려 한다면, 위의 변명을 살펴보라.
진화론자들은 창조에 대한 과학적 사례들에 대해 어떻게 응답하는가? 대부분 그것을 무시한다. 당신이 위의 변명에서 볼 수 있듯이, 자격이 있는 진화론자들까지도 과학적 증거들에 대한 응답들을 서로 직접 교환하는 것을 피하고 있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creationscience.com/onlinebook/FAQ416.html#wp1675667
출처 - CSC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785
참고 : 6553|6486|6550|6149|6132|5081|5130|4639|5740|5683|5420|5994|6449|4821|6263|6018|6468|6148|6474|5510|5947|5954|5591|6211|5589|5602|5966|4837|6090|485|3890|390|2349|3782|6438|4510|5474|6495|5458|6243|5863|2698|6399|5460|6489|5135|5000|4828|6118|6394|6168|6138|5996|774|5497|5827|5158|5962|6358|6258|6119|4066|5544|5443|6556|6501|6096|5459|5274|5450|5909|6461|6436|5586|4542|5041|3391|6393|6476|6292|5796|5768|6271|5462|6146|6439|3591|6125|3426|6285|6152|6153|6022
제4장 유한한 우주의 침묵 : 자연주의
I. 자연주의의 중요성
우리의 입장에서 자연주의에 대한 이해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 첫 번째 이유는 현대의 거의 모든 학문이 자연주의적인 전제를 공개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채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앙과 학문의 통합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는 피할 수 없는 주제일 것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지적 설계와 관련된 것이다. 창조과학이 진화론을 그 적으로 삼은 것과 같이 지적 설계는 자연주의를 적으로 삼고 있다. 지피지기이면 백전백승이라는 말도 있거니와 지적 설계에 대한 이해는 자연주의를 이해함으로써 더 깊어질 수 있는 것이다.
II. 자연주의로의 이행
유신론 ---> 이신론 ---> 자연주의 (1600-1750)
* René Descartes (1596-1650) - 유신론자였으나 우주는 '물질'로 구성된 거대한 기계이며 인간의 '정신'에 의해서 파악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 John Locke (1632-1714) - 유신론자였으나 하나님이 주신 인간의 이성(Man's God-given reason)이 성경에 기록된 '계시'의 진위를 평가하는 심판자라고 생각하였다.
* Julien Offray de La Mattrie (1709-1751) - "신의 존재란 실제적 가치가 거의 없는 하나의 이론적 진리에 불과한 것이다."
III. 자연주의의 기본내용
1. 물질은 영원히 존재하며 존재하는 것의 전부이다.
"The Cosmos is all that is or ever was or ever will be." - Carl Sagan
이신론에서 별 역할을 인정받지 못했던 하나님의 개념은 이제 완전히 제거되었다. 이신론에서 하나님의 유일한 역할은 제1원인(First Cause)이었다. 우주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것을 만든 하나님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면,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만든 어떤 존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이에 대한 전형적인 대답은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우주가 스스로 있는 존재일 수는 없는가? 오캄의 면도날로 하나님의 개념을 제거해 버릴 수도 있게 되었다.
2. 우주는 폐쇄 체계 속에서 인과율의 일치체로 존재한다.
"우리는 우주가 공간, 시간, 물질 등이 내적으로 결합된 연속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영적' 부분과 교통하기 위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거나 물질과 멀리 떨어져 존재하는 분이 아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역시 우리와 동일한 진화의 산물이라는 사실에 대처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 David Jobling (신학교수)
이 점에 있어서는 이신론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우주는 초월적인 재조정이나 자율적이며 자기 초월적인 인간의 재조정에 대해서 닫혀 있다. 전자의 이유는 '1.'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초월적 존재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며 후자의 이유는 '3.'에서 다루게 된다.
3. 인간은 하나의 복잡한 '기계'이다. 인격이란 우리가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화학적, 물리적 성질의 상호 관계이다.
"간이 담즙을 분비하듯이 뇌는 생각을 분비한다."- Pierre Jean Georges Cabinis
데카르트는 사람을 부분적으로는 기계이며 부분적으로는 정신이라고 보았다. 자연주의는 정신을 기계의 작용으로 본다. 비록 인간은 여러 특수성 - 개념적 사고, 언어사용, 문화, 도덕 등등 -을 지니고 있으나 그것은 기계적 작용의 범주를 넘지 않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비록 그 기계적 복합성이 아직 이해되고 있지는 않지만. 이런 사고방식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비록 어떤 자연주의자는 자연주의와 자유의지가 양립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는 분명치 않다.
4. 사망은 인격과 개체성의 소멸이다.
"나는 인간의 존재가 사망시에 종료된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 A.J. Ayer
이런 결론은 앞의 내용을 받아들이는 한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5. 역사는 인과율에 의해 연결된 사건의 직선적 연속이며, 전체적인 목적성은 없다.
"Man is the result of a purposeless and natural process that did not have him in mind." - Goerge Gaylord Simpson
자연의 역사와 인간의 역사는 공히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의미를 줄 수 있는 존재를 모두 제거해 버렸기 때문에 이 또한 피할 수 없는 귀결이다.
6. 윤리는 단지 인간에게만 관계된 것이다.
"우리는 도덕적 가치의 근원이 인간의 경험에 있음을 확신한다. 윤리는 자율적이며 상황적인 것으로서 신학적 혹은 사상적 재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윤리는 인간의 필요와 관심에서부터 발생한다." - Humanist Manifesto II
의미를 줄 수 있는 존재를 제거한 것과 정확히 동일하게 자연주의는 윤리적 기준을 줄 수 있는 존재를 제거하였다. 그러나 자연주의자들은 윤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정도로 자기 전제에 충실하지는 못했다. 그들은 윤리를 자연주의와 조화시키려는 여러 노력을 하였다. 그들이 내리게 된 결론은 대체로 "선한 행동이란 집단이 승인하고 생존을 증대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는 식으로 주어지게 된다. 그들이 '윤리'라고 말할 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든 간에, 자연주의로부터의 논리적 결과로써, 그들의 '윤리'는 '현상'일 수는 있어도 '당위'일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을 과연 '윤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가?
IV. 주목할 만한 두 가지 형태의 자연주의
1. 세속적 인문주의
"인간은 인간을 위한 최고의 존재이다." - Karl Marx
세속적 인문주의(많은 경우 인본주의라고 부르기도 함)는 기독교 인문주의와 구분하여 이해해야 한다. 기독교 인문주의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세속적 인문주의는 다르다.
유신론은 하나님께서 왕이심을 인정한다. 이신론은 그가 군림하나 통치하지 않는다고 선언하였다. 자연주의는 그의 폐위를 선언하였다. 그리고 세속적 인문주의는 '인간'의 즉위를 선언하였다.
2. 마르크스주의
"마르크스주의는 기독교 이단이다." - ?
*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0) - 세계와 구분할 수 없는 신, 또는 절대정신(absolute spirit)이 자기를 변증법적으로 실현해 나간다고 주장.
* Ludwig Feuerbach (1804-1872) - 인간은 '그가 먹는 것'(what he eat)이며 종교는 인간의 발명품이라고 주장.
* 변증법적 유물론 또는 사적 유물론 - Marx는 Hegel의 견해와 Feuerbach의 견해를 결합하여 인간과 종교의 본질에 대해서는 Feuerbach와 같은 입장에서, 인간역사가 변증법적 투쟁을 통하여 이상적인 인간사회를 향하여 발전한다고 생각.
* 하부구조(경제체제)가 상부구조(정치, 예술, 종교 등)를 결정. 계급투쟁. 프롤레타리아트 혁명.
* 문제점 - 역사의 의미. 도덕적 기반. 인간의 본성.
V. 자연주의의 지속성
어떻게 자연주의는 오랜 기독교 전통이 있는 곳을 포함하여 전세계를 석권할 수 있었는가? 어떻게 자연주의는 이신론과는 다르게 금방 소멸하지 않고 몇 세기에 걸쳐 지속될 수 있었는가? 어떻게 자연주의는 거의 모든 학문분야의 공개적, 또는 암묵적 전제가 될 수 있었는가? 그 저력은 어디서부터 나온 것일까?
이 책의 1장에서는 일곱 가지 기본질문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러나 여기서는 여섯 가지밖에 답하지 않았다. 그 나머지 하나를 살펴봄으로써 자연주의가 어떻게 이런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는지 답을 구해보자.
그 나머지 하나의 질문은 "지식이 가능한 까닭은 무엇인가?"이다. 유신론에서 이신론을 거쳐 자연주의로 이행된 시기가 대체로 1600년에서 1750년 정도라고 보면 당시의 사람들이 생각한 '지식이 가능한 까닭'은 실증주의적인 기반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자연주의가 힘을 얻은 것은 실증주의에게서 힙 입은 바가 큰 것 같다.
실증주의는 실증된 것만을 지식으로 인정한다. 그러므로 인식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어떠한 지식도 가질 수 없고, 따라서 그런 것은 무시되었다. 그런 식으로 점점 과학활동을 하는 데에 자연주의가 암묵적인 가정이 되었다.
자연주의가 과학활동의 암묵적인 전제가 되자 그것은 자체 강화 시스템으로 작동하였다. 자연주의를 전제로 하여 이루어진 과학활동의 결과가 자연주의에 부합할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전제를 더욱 강화해 주었다.
실증주의가 믿어지는 시기에는, 즉 과학활동이 진정 객관적이라고 믿어지는 시기에는 그런 결과들이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받아들여졌고 "우리는 초자연적 존재를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말이 설득력 있게 들릴 수 있었다. 그러나 실증주의는 20세기에 집중포화를 맞고 침몰해버렸다. 아직도 자연주의를 지지할 만한 근거가 있는가?
자연주의의 여러 치명적인 약점들은 다음 장 '영점: 허무주의'에서 다루게 된다.
출처 - 창조지
구분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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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역사에 끼친 진화론의 해악
진화론은 근대 역사에 깊은 뿌리를 두고 인류를 사망의 길로 빠뜨리고 있다.
진화론은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엄청난 재앙을 끼쳤다. 반면에 아무도 진화론의 심각한 해악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아니, 골치가 아프기 때문에 피하려는 경향인 것으로 보인다.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의 사촌 갤튼은 인종우생학을 만들어 백인 위주의 인종 차별을 주도하였다. 그의 영향으로 일부 구미 국가에서는 백인과 유색인 간의 혼혈을 막으려고 이민제한법을 제정하였다. 또 단종법을 만들어 신체 부자유자와 유전 질환자를 제거할 목적으로 금혼 조치도 내렸다. 이 법에 근거해 나치 정권은 무려 200만 명 이상을 처형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 인간 게놈 구조가 해명되면서 우량 인간을 복제하려는 움직임이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이는 새로운 인종우생학의 부활을 의미하는데,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인간배아 복제 역시 21세기 바벨탑을 쌓으려는 위험한 시도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생물에 대한 위해성을 사전에 저지하기 위한 생명윤리법 제정에 기독교계가 앞장서야 한다.
진화론에 뿌리 둔 대량 학살
약육강식에 의한 자연 선택의 원리를 내세운 진화론은 군국주의자들에게 약소국을 침공할 수 있는 논리를 제공해 주었다. 대표적인 예가 독일, 일본, 이탈리아에서 태동한 군국주의다. 독일 진화론자 헤켈은 나치 전신인 툴레당(Thule Geselschaft)의 비밀요원이었다. 툴레당 선서식에 참석한 히틀러는 정권을 잡으면서 나치 강령에 진화론의 이론을 첨부하였다. 그리고 헤켈이 그의 저서 「생명의 신비」에서 주장한대로, 팔벤사 레버쿠젠 공장에서 2억 2천만 명을 살상할 수 있는 양의 독가스를 생산해 32회나 사용했다. 그 중 최악의 사례가 유태인 600만 명을 죽인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집단 독살 사건이다.
일본에서 메이지(明治) 유신 후기에 기독교가 허용되었다. 이에 대항하는 세력들은 당시 대표적인 진화론자 모올스(Edward Morse)를 동경대에 초청해 대학생들을 모아놓고 진화론으로 세뇌시켰다. 그리고 창조론과 진화론을 병행해서 교육시키려던 모리(森) 문부상을 암살했다.
그 후 일본은 진화론적 약육강식의 논리에 입각해 국력이 쇠약한 조선, 청나라, 러시아를 차례로 침략하는 제국주의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들의 침략은 상대 국가의 고통으로 직결되었다. 이처럼 진화론은 사랑과 공생의 원리가 아닌 힘의 논리에 따른 지배 원리를 확산시켰다.
인간은 운명의 주인?
미국 교육기관에서 종교의 자유를 내세워 창조론 교육을 축출하고 진화론 교육으로 대체시키는 데에 진화론자들이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이 운동에 앞장선 진화 교육자 존 듀이는 인본주의선언(Humanist Manifesto)을 초안하였다. 그는 “신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자”고 역설하며 진화론적 과학주의를 제창하였다. 바야흐로 21세기 과학주의가 새로운 종교로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이 ‘종교로부터의 자유’를 선언했다. 미국의 모든 국공립 기관에서 기도와 성경을 축출하고 청교도적 창조 신앙을 추방하는 결과를 낳았다. 공교육 기관에서는 창조론적 기독교 교육이 사라지고 진화론이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
이처럼 세속 인본주의는 진화론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다. 미국인본주의협회는 “인본주의란 자기 운명을 만들어 가는 존재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유신론적 종교가 아니라 삶의 한 방식인 건설적인 철학이다”라고 주장한다.
역시 영국인본주의협회도 철저하게 유신론을 배격한다. “우리는 신을 믿지 않는다. 유신론 교육을 어린이에게 가르치는 것은 비교육적이다. 종교 교육은 없어져야 한다. 종교는 단지 역사적 관심거리로 가르치면 그만이다. 종교는 인본주의, 막스주의, 모택동 사상, 공산주의를 포함한다. 우리는 비종교적인 도덕성을 신봉하며 용서받아야 할 죄가 없다고 판단한다. 무엇보다 무덤 너머에 생명이 없고 영원한 죽음만 있을 뿐이다.”
헉슬리의 손자 줄리안 헉슬리는 진화론에 입각해 유네스코 헌장을 작성하였다. 그는 핵무기, 식량 부족, 에너지 고갈, 전쟁, 공해 등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소수 엘리트 집단이 지배하는 세계 정부의 구성을 제안하였다. 그리고 그 정부를 이끌 세계 총통의 출현을 갈망하였다. 진화론은 이처럼 유엔을 통해 전 세계 교육계로 침투할 수 있는 교두보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인간 존엄성마저 파괴
인본주의자들의 최종 목표는 소수 엘리트 집단에 의한 사회주의 건설에 있다. 이런 반신본적인 세속 인본주의는 요가, 명상, 선 등 동양의 신비주의와 접목하면서 뉴에지 운동과 연계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진화론은 공산주의자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러시아의 민중 봉기 이론을 수립한 허잔, 볼셰비키 혁명을 주도한 레닌, 피의 숙청을 단행한 스탈린 그리고 중국 공산당을 창건한 모택동 등은 진화론에 입각해 수많은 인명을 살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레닌과 스탈린은 다윈을 지식의 영웅으로 추앙하여 모스크바에 그를 기념하는 다윈 박물관도 세웠다. 모택동은 다윈과 헤켈 및 히틀러에게 심취해 공산당원들에게 약육강식 사상을 집중적으로 교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일부 공산 국가에서는 샤르뎅의 유신 진화론을 가르치고 있다.
진화론이 끼친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점은 인간 존엄성 거부와 전통 윤리관 붕괴이다. 그들은 인간이 유인원에서 진화한 것으로 믿기 때문에 인간 존엄에 근거한 기존 윤리관은 당연히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진화론자들은 진리나 가치관을 상대화시켰고 상황 윤리와 다원주의를 확산시켰다. 다원주의는 일면 합리적인 듯하지만, 이 사상에서 만민구원설을 주장하는 종교 다원주의가 출현하여 흠 없고 순전한 복음을 오염시키고 있다.
누구를 믿든 구원받을 수 있다면 굳이 예수를 믿어야 할 당위성이 사라지게 된다. 이것이 복음에 대한 정면 도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evolution/e1/e14/e14o4.htm
출처 -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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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88
참고 :
비글호의 항해 - 창조주를 위한 봉사
(The Voyage Of The Beagle - In The Creator's Service)
Louis Lavellee
국왕 폐하의 함선 비글호 (His Majesty's Ship (HMS) Beagle)의 1831년부터 1836년에 걸친 유명한 항해에 박물학자 찰스 다윈도 동승하고 있었다. 이 배의 항해 목적은 창조주에게 봉사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항해의 주목적은 남아메리카 대륙의 남단 해안에 대한 탐사(探査)였다. 그 탐사는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창세기 1:28 절의 개척명령을 받들어 영국 선박의 안전한 항해를 확보하려는데 있었다. 다윈의 자연관찰 성과로 인해서 그 지역에 분포된 자연 자원들에 대한 인간의 지식을 넓힐 수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선장 로버트 피츠로이 (Robert Fitzroy)의 또 다른 하나의 목적은 남아프리카 대륙 남단에 위치한 티에라 델 푸에고(Tierra del Fuego)에 세 명의 푸에고 원주민을 그들 고향 땅에 귀향시키는 것이었다. 다윈은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원주민들을 제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여 정착시키려는 생각이 피츠로이 선장이 이번 항해를 결심하게 된 주 동인 중의 하나였다” (1:222). Anglican Mission Society의 리차드 매튜 (Richard Matthews) 목사가 그 원주민들과 동행하고 있었다. 매튜 목사는 마태복음 28:19-20의 위대한 선교의 명령을 좇아, 푸에고 사람들을 위한 선교 구역을 설립하기를 희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초기의 전도 사역은 퇴박을 맞았지만, 나중에는 푸에고 사람들 속에 폭 넓은 효과를 거두었다.
문화 명령을 완수하다 (Fulfilling the Cultural Mandate)
비글호는 해안지방의 육지 지형과 하천에 관한 상세한 조사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였다. 그 임무는 거치른 기후와 병마, 그리고 심지어 죽음까지도 무릅쓰고 진행하여만 했다. 한번은 선체 수리를 위해 비글호를 바닷가에 끌어올렸던 적이 있었다. 또 한번은 다윈까지 포함한 무장한 선원들이 몬테비데오(Montevideo)의 질서유지를 위해 지방경찰을 도운 적도 있었다. 보통 때에는 선원들이 답사를 하고 있는 동안, 다윈은 각종 동식물을 관찰하고 샘플을 채집하였다. 그리고 채집된 샘플들은 보관되었다가 영국으로 옮겨졌다.
3년 반 동안 계속된 탐사를 갈라파고스(Galapagos) 군도의 조사를 끝으로 마감하고, 비글호는 세계일주 항해를 계속하였다. 비글호는 타히티,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그리고 남아프리카에 있는 여러 항구도시들을 기항(寄港)하였다. 영국으로 귀국 후 피츠로이 선장은 왕실지도협회로부터는 금메달을, 그리고 의회로부터는 감사장을 받았다. 피츠로이와 다윈 두 사람이 기록한 항해일기는 인기리에 1839 년 동시 출판되었다. 그런데 이 두 책 중 어느 책도 진화에 관한 언급은 없었지만, 장차 다가올 논쟁의 암시를 남겨 놓았다.
위대한 전도사명에 순종하다 (Obeying the Great Commission)
피츠로이 선장은 예전 항해 시에 도난 당했던 보트를 되찾기 위하여 몇 사람의 인질을 잡아왔었다. 그 중 4명을 영국으로 데리고 왔던 것이다. 피츠로이의 설명은 이랬다.
”푸에고 해안을 떠날 차비를 하고 있을 때, 나는 네 사람의 원주민을 상선시키기로 결심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매우 즐거워하고 만족하는 것 같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한 동안 영국에서 생활해보면 여러 측면에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 나는 이 사람들에게 적절한 교육을 마련해 주어야 하겠다. 2, 3년 후에는 제 나라로 돌려보내야겠지.” (2:54)
선원들은 그들에게 이름을 지었다. 보트 메모리, 요크 민스터, 푸에고 바스켓, 지미 버튼 이라는 이름들이 그것이다. 그들은 모두 다 백신을 맞았지만, 보트 메모리는 마마로 죽고 말았다. 피츠로이 선장은 나머지 세 사람을 런던 근교에 자리한 월댐스토우(Walthamstow)에 있는 어느 학교에서 살게 하였다. 그들은 윌리엄 윌슨(Rev. William Wilson) 목사 부부의 감독을 받게 하였다. 그들은 영어와 기독교 교리, 그리고 농사법을 배웠다. 그들이 왕과 왕비를 알현하였을 때, 왕비는 그들에게 자기 머리에서 모자(bonnets) 하나와 자기 손가락에서 가락지 하나, 그리고 지참금으로 선물들을 하사하였다.
해군성은 피츠로이 선장이 푸에고 인들과 선교단을 티에라 델 푸에고(Tierra del Fuego)로 돌려보내도록 허락하였다. 월덤스토우 교회에서는 보급물자를 제공하였으며, 그 배의 키잡이 제임즈 벤네트(James Benett)가 예전처럼 푸에고 인들을 돌보기로 하였다. 젊은 전도사 리차드 매튜(Richard Matthews)는 푸에고 인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한편, 자기는 일 년여의 항해 기간에 저들의 언어를 공부하였다.
다윈은 비글호에서 푸에고 인을 처음 보았다. 그는 지미 버튼을 제일 좋아했다.
”지미는 쾌활하고 웃음이 헤픈 편이었다. 그러나 어느 누가 아프면 그는 크게 동정심을 보였다. 풍랑이 심해 내가 멀미라도 하면, 그는 내 곁에 다가와서 푸념하듯 ”가련해라, 가련한 친구!” 하곤 했다.” 다윈은 그 푸에고 인들이 언어 습득에 소질이 있다는 것과 시력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아봤다. ”요크와 지미는 우리 선원들 어느 누구보다도 훨씬 우수했다. 그들은 먼 바다에 있는 물체를 알아본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다른 선원들이 그들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지만, 망원경으로 살펴보고는 그들의 말이 맞는다는 것이 증명되곤 하였던 것이다” (1:222-3).
1833년 1월에 한바탕 심한 폭풍을 만난 후, 배는 드디어 지미네 부족들이 사는 고장에 도착하였다. 풍광은 숨을 멈추게 할 만큼 아름다웠다. 그러나 다윈은 푸에고 원주민들의 형편을 보고 두려움 같은 감정을 느꼈다.
”그들은 내가 어느 곳에서도 본적이 없었던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비참한 사람들이었다. … 그 가엾은 사람들은 발육중단 상태에 있었다. 그들의 무시무시한 얼굴에는 더덕더덕 회칠을 하고 있었다. 온 몸의 피부는 더럽게 개기름이 번질거렸고, 머리카락은 뒤엉켜져 있었다. 목소리는 귀에 거슬렸고 몸짓은 거칠었다.” (1:228).
배 안의 세 명의 푸에고 인들도 알몸을 하고 있는 동족들을 처음 보는 순간 충격을 받았다. 항해사 햄몬드 (Hamond)는 탄식하듯 이렇게 내뱉었다. ”이 멋진 친구들을 어떻게 저토록 야만적인 상황에 내버려두고 떠난다지!”(2:92). 우리의 푸에고 친구들을 걱정하는 또 한 사람의 장교는 매일 빼지 않고 시편을 읽는다고 알려진 항해사 설리반 (B.J. Sullivan)이었다. 그는 나중에 해군 제독이 된 다음에도 푸에고 선교사역을 충실히 지원한 사람이다.
선교 본부 위치로 마땅한 한 곳을 울랴(Woolya)에서 찾았다. 그 곳은 정원이나 목장의 개발에 알맞은 땅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잘 보호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선원들은 세 채의 통나무집을 짓고, 월댐스토우에서 가져온 보급품을 하역하고, 두 곳에 정원을 개발하면서 분주하게 애를 썼다. 도난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한결같은 감시가 필요하였다. 모든 것이 정돈을 갖추자, 비글호는 열흘 계획으로 탐사항해를 떠났다.
탐사항해에서 돌아온 비글호 선원이 리넨과 바둑무늬 모직 옷을 걸친 원주민들을 지나쳤다. 그들은 매튜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머리가 온전치 못했다. 다윈의 말은 이랬다.
”매튜는 푸에고 인들의 행동을 하도 나쁘게 평하는 바람에 피츠로이 선장은 그를 비글호로 다시 데리고 와야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리고 그는 결국은 뉴질랜드로 옮겨졌다. 거기엔 그의 형이 전도사역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울랴를 떠나자마자 그 곳에서는 일종의 조직적 약탈이 규칙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밤낮없이 매튜는 원주민들 속에 둘러싸여 끝도 없이 들려오는 그들의 소란스러운 소음들이 마침내 그의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고 했다… 나는 우리가 알맞은 시간에 돌아왔기에 그의 생명을 건졌다고 생각하였다” (1:241).
그곳을 떠나야 한다는 의견에 매튜도 동의했다. 그러나 지미와 요크, 그리고 푸에고는 남기를 원했다. 8일간 떠났다 돌아온 피츠로이 선장은 그들을 일일이 심사했다. 짓밟히기는 했어도 정원에는 작물이 돋아나고 있었다. 지미는 더 많은 도난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것말고는 모든 게 다 말짱하였다. 피츠로이는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그들을 통해서 우리가 그들을 영국에 데리고 갔던 우리의 충정과 동기를 그들의 동족들에게 알려지고 이해되어, 장차 우리가 다시 이 곳에 돌아왔을 때, 그들이 우리들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면, 매튜가 이곳을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었지만, 상황이 허락하지 않아 뒤로 미루었던 전도사역을 훨씬 더 많은 성공할 확률을 가지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나는 생각하였다” (2:103).
한 일년이 지나고 비글호가 1833년 3월 5일에 울랴에 마지막으로 들렸다. 그곳엔 인적이라곤 없었다. 카누 한 척이 우리 배로 다가오더니, 카누를 타고 온 그들 중 한 사람이 얼굴의 회칠을 물로 씻고 있었다. 이에 관한 다윈의 글은 이러했다.
”그 사람은 처량하게도 지미였다 - 앙상하고 초췌한 몰골을 한 야만인이 다 되어 긴 머리카락은 헝클어졌고, 허리에 두른 한 조각 담요 말고는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 … 우리가 그를 남기고 떠날 때 그는 포동포동하게 살이 찌고 말쑥한 몸에 좋은 옷을 입고 있었지 않았던가! 나로서는 그렇게도 완벽하고 처량하게 변한 몰골은 본 적이 없었다” (1:244).
다윈은 이어서 지미와의 마지막 해우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어쨌거나 그는 옷을 갈아입자마자 … 피츠로이 선장과 마주 앉아 식사를 했다. 그의 식사 매너는 예전처럼 정갈하였다. 그는 먹기엔 ”너무 많습니다.” (충분하다는 뜻으로) 라고 말했다. 그는 여러 말을 했다. 춥지 않다, 친척들은 아주 좋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영국으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다. 저녁에 그의 잘 생긴 젊은 아내가 도착하고서야 우리는 지미의 기분이 보여준 이렇듯 큰 변화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여전한 그의 착한 감정으로 그는 그가 제일 친하게 지내던 두 선원에게 아름다운 수달피 가죽을 선사하였다. 그리고 손수 만든 몇 점의 창끝과 화살촉을 선장에게 선사하였다. … 지미는 바닷가에 도착하자 봉화를 피워놓고 연기를 날려서 망망대해로 선수를 돌리고 떠나려는 우리 배에게 길고 긴 마지막 작별 인사를 올리고 있었다.” (1:244-5).
지미의 고향에 전도 본부가 다시 세워지기는, 그 때부터 30년 이란 세월이 지나는 동안 수없이 거듭된 실패와 순교를 경험한 다음이었다. 그러나 피츠로이와 다윈은 타히티와 뉴질랜드에서는 선교사역의 성공 사례를 볼 수 있었다. 다윈은 자기 누이 캐롤라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곳에서 우리들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영악한 야만인으로 알려진 부족들에 휩싸여있지만, 선교단의 덕분으로 영국 땅에서와 마찬가지로 안전하게 걸어 다닐 수 있었다”(3;176). 그의 책에서 다윈은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남태평양 전역에서는 기독교 도입의 결과로 된 진보의 행진이 자력으로 된 것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쿠크(Cook)조차도 그런 변화의 개연성을 예견하지 못했던 때부터 겨우 60년도 못된 기간에 이런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기억하고 다시 한번 놀랬다. 그런데 쿠크의 훌륭한 판단력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1:532).
비글호의 항해와 진화론 (The Voyage and Evolution)
남아프리카에 머물고 있는 동안 피츠로이와 다윈은 원주민들 속에서 펼친 전도사역을 옹호하는 기사를 공동으로 집필하였다. 그런데 그들이 항해를 끝내고 3년여가 지난 다음부터 그 항해에 대한 평가에서 이들 두 사람의 세계관이 달라지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다윈이 지향하는 목표가 어딘지 예견하고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피츠로이는 항해에 대한 설명을 성경의 진리를 믿을 것을 촉구하는 말로서 끝맺음을 하고 있다. 그는 모든 인간은 소아시아에서 기원한 조상을 뿌리로 가지고 있는 친척이라고 강조하였으며, 6일 동안의 창조설을 옹호하였다. 그리고 그는 또 전 세계적인 규모의 홍수가 지질학과 모순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2:176-9). 이에 반해 다윈의 설명에는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의 책 '지질학의 원리(오늘날의 침식과 퇴적율을 기초하여 과거의 변화를 설명하려는 시도)에서 즐겨 참조한 내용들을 얼마쯤 포함하고 있었다. (1:965, 132,188, 346, 494). 다윈은 긴 항해 기간 중에 최근 창조설과 세계규모의 대홍수설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방하고 있는 이 장편 저서를 읽었던 것이다.
갈라파고스(Galapagos) 섬의 핀치(finch) 새에 관해서, 다윈은 이렇게 기술하였다. ”상호 밀접하게 관련된 조그만 새들의 한 집단에 개재하는 구조상의 이종(異種)과 변종들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로 이런 환상을 떠올릴 법도 하였다. 이 군도(群島) 내에 있는 새들의 원종에서부터 한 종이 취해져서 여러 목적에 따라 다르게 부분적인 변화를 겪었으리라는 상상이다”(1:402). 그러나 새들은 새들일 따름이었다. 다윈은 진화론적 이론을 제기하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이렇게 결론을 맺고 있다.
”… 나그네가 가는 곳마다 잠시 동안씩만 머문다면, 나그네의 기술(記述)은 상세한 관찰 대신에 일반적으로 단순한 스케치 이상의 것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순전히 나 혼자 힘으로 지식과 현실간의 넓은 괴리를 부정확하고 피상적인 가정으로 채워보려는 경향이 집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1:532-3).
1859년에 들어서는 다윈이 그와 같은 조심성을 제쳐놓은 것이 확실하였다. 그는 '종의 기원'을 출판했던 것이다.
”박물학자로서 비글호를 타고 항해하면서, 나는 남아메리카 대륙에 서식하는 유기체의 분포에서 어떤 특정 사실들을 발견하고, 또한 지리학적 관계에서 그 대륙의 과거의 서식생물들과 현재의 서식생물들과의 사이에 어떤 특정 사실들을 발견하고 크게 충격을 받았다. 본 저서의 후반부에서 볼 수 있겠지만, 그 사실들은 종의 기원에 대하여 어떤 빛을 밝혀주는 것 같았다 …” (4:6).
비글호가 진화론의 이론을 위해 이용되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19세기에 살던 많은 영국 사람들처럼 비글호의 선원들도 성경적 세계관을 견지하고 있었다. 항해기간동안 그들은 매 주일 예배를 보았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의 항해목적의 성공을 허락하셨던 것이다. 그들이 수없이 많은 어려움들을 무릅쓰고 해안탐사를 진행하고 있는 동안, 다윈은 식물과 동물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들은 티에라 델 푸에고에서 최초의 전도사역을 도왔으며, 또 비글호의 항해를 유명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원전 : (1:222)와 같은 참조 표시는 원전을 표시한다, 즉 1(아래), 그리고 222 쪽을 가리킨다.
1. Charles Darwin, The Voyage of the Beagle, Harvard Classics 29, New York: P. F. Collier & Son, 1909 [1839].
2. H.E.L. Mellersh, Fitzroy of the Beagle, Mason & Lipscomb, 1968.
3. Adrian Desmond & James Moore, Darwin, New York, Warner Books, 1991.
4. Charles Darwin, 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Great Books of the Western World, 49, Chicago: Encyclopedia Britannica, 1952 [1859].
*Mr. Louis Lavellee (M.S., M.Div.) is an environmental engineer in Mississippi.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s://www.icr.org/article/voyage-beagle-creators-service
출처 - ICR, Impact No. 358,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