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성
2012-01-17

진화론이 세상에 널리 퍼지게 된 이유


   진화론이 타당성이 없는 이론이라면 어떻게 세상에 널리 퍼질 수 있었습니까?

과학적 증거가 충분하지 못한데도 불구하고, 진화론이 어떻게 전 세계에 널리 퍼져서 오늘날 모든 학교에서 가르치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다윈(Darwin)이 진화론을 발표할 당시(1859년)의 과학이 진화론의 허구성을 지적할 만큼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는 부모의 형질이 어떻게 자손에게 전해지는지조차 확실히 알지 못하던 시대였습니다. 1900년경이 되어서야 멘델이 완두콩을 이용한 실험을 통해서 유전법칙을 발견하게 되어 유전자에 대한 개념이 확립되었고, 그 유전자(DNA)의 정체에 대해서 정확히 알게 된 것은 훨씬 후인 1953년에 와트슨과 크릭에 의해 DNA의 분자구조가 밝혀지면서부터입니다. 유전학과 분자생물학에 대해 무지했던 시대였기 때문에 진화론의 등장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만약 오늘날에 다윈이 진화론을 내놓았다면 인정을 받기는커녕 ”진화를 뒷받침할만한 화석상의 근거가 어디 있느냐?” ”어떻게 DNA의 유전정보가 저절로 만들어지고 바뀐다는 것이냐?”라고 다른 과학자들로부터 빗발치는 공격을 당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진화론이 검증을 받기도 전에 일반대중에 널리 퍼지게 되었고, 고고학, 인류학, 지질학, 역사학, 천문학, 등 주위의 학문들이 진화론에 맞추어 체계를 세워나갔기 때문에 진화론은 오히려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아성을 구축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이 진화론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열광적으로 받아들인 이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다음과 같은 사회적 배경이 작용하였습니다.


첫째, 일반 대중이 진화론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19세기 중엽은 미국을 비롯해서 많은 서양나라들이 자유주의 물결에 휩싸이고 있을 때였습니다. 종교적인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은 욕망이 팽배했던 사람들에게 진화론은 하나님을 떠나는데 아주 적당한 구실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손을 잡고 가다보면 처음엔 즐겁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 손을 놓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고 싶어질 때가 있지 않습니까? 인류의 역사에서 다윈이 진화론을 내놓을 때가 바로 이 무렵에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정치가들이 진화론을 이용했습니다.

당시의 과학,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던 영국에서는 의회제도가 있었으나, 통치자의 권력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라는 성경에 근거를 둔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에 따라 절대권력을 왕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왕으로부터 권력을 빼앗으려는 국회의원들은 성경과 왕권과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 성경의 오류를 지적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이때 마침 등장한 진화론은 성경의 오류를 증명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로 이용되었습니다.

당시에 순수 학문인 지질학, 생물학, 천문학을 연구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귀족계급이거나 의사, 변호사와 같은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었기 때문에 자연히 정치성향이 강했습니다. 이들 중에서 진화론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을 앞장 세워서 성경의 권위를 무너뜨림으로써 왕으로부터 권력을 빼앗게 된 것입니다.


셋째, 고용주들이 진화론을 이용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등장한 현대적 공장의 고용주들은 생존경쟁에서 적합한 자만이 살아남고(적자생존), 적합하지 않은 자는 사라지게 된다(자연도태)는 진화론의 논리를 노동자들을 혹사시키고 착취하는데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진화론은 반가운 이론이었습니다.


구분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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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a Cosner
2012-01-13

다윈주의와 제1차 세계대전 

(Darwinism and World War One)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의 진화론은 20세기 서양 세계의 많은 지도자들에게 파괴적인 영향을 끼쳤다. 특별히 다윈주의(Darwinism)를 열정적으로 받아들였던 초기의 사람들 중에 독일의 지성인들이 있었다. 그리고 인간 사회에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의 사상을 적용시켰다. 그들은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 또는 삶의 투쟁에 용감히 맞서는 인종의 보존을 적용했다. 이것의 가장 악명 높은 결과는 홀로코스트(Holocaust)였다.[1] 그러나 사회 다윈주의(social Darwinism)는 또한 제1차 세계대전을 발발시키는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던 시기의 지성인들은 기독교 신앙과 윤리를 대체하는 것으로 다윈주의와 그 사상의 윤리적 의미를 환영하고 받아들였다. 그 시대 가장 유명한 독일의 다윈주의자이자, 배아 발생 그림의 위조범이었던[2] 헤켈(Ernst Haeckel, 1834~1919)은 ”진화론은 인류의 세계관에 완벽한 혁명을 가져올 것”으로 믿었다.[3] 그는 다윈주의는 기독교적 윤리의 포기를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다윈주의의 출현 전까지, 인간 생명의 고귀함은 유럽의 법률과 사상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많은 독일의 지성인들이 사회에서 가치 있는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권리를 가진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비균등은 인종(race)에 주로 기초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윈주의자들은 또한 같은 인종 내에서도 열등한 개체가 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면 동물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칼 보그트(Karl Vogt, 1817~1895)는 정신적 장애를 가진 아이는 그의 부모보다 더 유인원(ape)에 가깝다고 주장했다.[4] 그러므로 다윈의 사촌인 프란시스 갤톤(Francis Galton, 1822~1911)에 의해 설립된 개념인 우생학(eugenics)이 독일에서 발달하며 세계 최초로 우생학 협회가 설립됐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6]

독일의 사회 다윈주의자들은 노르딕 또는 게르만(Nordic or Germanic) 민족이 ‘지배자 인종(master race)’이라 환상에 빠져들었다. 우생학자인 알프레드 플뢰츠(Alfred Ploetz, 1860~1940)는 ‘인종 위생학(racial hygiene, Rassenhygiene)’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후에 나치는 이것을 환영하며 받아들였고, 실행으로 옮겼다. 독일인이 우월하다는 믿음은 나치로 하여금 ‘탐탁치 않은(undesirable)’ 사람들을 제거하도록 이끌었고, 제1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의 다윈주의자들은 같은 개념으로 열등한 인종에 대한 전쟁을 정당화하는 데에 사용했다. 그들은 우월한 인종의 운명은 하위 인종을 지배하거나 제거해야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이것을 달성하기 위한 가장 명백한 길은 전쟁을 통해서였다. 그들의 관점에서 모든 인종들과 나라들은 생존 경쟁에 놓여있었고, 전쟁을 수행하지 않는 인종이나 나라는 사라질 것이었다.[7] 다른 말로 해서,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평화는 인종과 그룹 사이에서 생존을 위한 지속적인 전투에서 잠시의 휴전이었다.[8]

‘생활권(Lebensraum)'이라는 개념은 독일이 두 번의 세계대전에서 그들의 이웃 나라들을 점령하는 것을 정당화했던 변론 중 하나였다. 독일은 인구가 넘치지 않은 반면, 다른 인종들은 많아지고 있는 중이며, ”전쟁이 없다면, 하위의 또는 부패된 인종들이 싹트는 건강한 인종의 성장을 쉽게 질식시켜버릴 것이며, 세계적인 부패가 초래될 것이다”라고 믿었다.[9] 막스 베버(Max Weber)는 이러한 인종 경쟁을 강조했다 :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가 그들에게 물려줄 경제 조직의 종류에 대해서보다, 오히려 우리가 투쟁을 통해 얻은 그리고 뒤에 남겨놓은 속박으로부터의 자유(elbow-room, Ellbogenraum)에 대해 책임을 물을 것이다.”[10]

흥미롭게도, 독일의 다윈주의자들은 전쟁이 지배 인종에 유익한 지에 관해서 나뉘어졌다. 헤켈을 포함한 일부는 반전론자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전쟁이 지배 인종의 최고 구성원들을 죽여버릴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인류학자인 오토 암몬(Otto Ammon, 1842~1916)은 전쟁은 나라가 더 강해지고, 적자인 반대자에 위대한 승리를 시험하는(최적자가 되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다.[11] 물론 독일의 인구 중에도 탐탁하지 않은 개인들이 있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플뢰츠는 이들을 전쟁의 최전선으로 내보내 더 적합한 사람들보다 앞서서 죽임을 당하도록 할 것을 제안했다.[12]

전쟁을 진화의 도구로써 보는 이러한 관점 때문에, 독일의 지도자들은 승리에 대한 확신이 없을 지라도, 전쟁을 바람직한 선택으로 간주했다. 또한 거기에 숙명론적인 요소도 있었다. 즉, 그들은 전쟁은 그들의 운명이고, 그들은 ”세계의 발전에 예정된 역할”을 완수하고 있었다고 믿었다.[13]

어떤 사람들은 다윈이 직접적으로 사회진화론(social Darwinism)의 원리를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용어는 그리고 진화론적 사고와의 연결은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윈은 동물 사회에서 살육은 진화가 진행되기 위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

”그것은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여왕벌이 자신의 딸인 어린 여왕벌들이 태어나자마자 즉시 죽여버리는 야만적이고 본능적인 증오는 동경해야 한다. 의심 없이 이것은 사회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어미의 사랑과 어미의 증오(이것은 다행스럽게도 매우 드물지만)는 자연선택의 냉혹한 원리에서 모두 같은 것이다.”[14]

다윈은 단순이 이 이론을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을 탐탁하지 않아 했다. 그러나 독일의 사회 다윈주의자들은 다윈의 거리낌을 공유하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을 유발한 다른 요소들이 있었지만, 사회 다윈주의와 반기독교 윤리 체계에 대한 독일 지도자들의 보편적인 믿음은 그들의 군국주의를 정당화했으며, 그것을 도덕적 선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Related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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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utation of New Scientist’s Evolution: 24 myths and misconceptions (Nazi-Darwin link)


Further reading
Communism and Nazism Questions and Answers


References and notes
1. Weikart, R., From Darwin to Hitler: Evolutionary Ethics, Eugenics, and Racism in Germany, Palgrave Macmillan, New York, USA, 2004; reviewed at creation.com/weikart. Dr Richard Weikart is professor of modern European history at California State University, Stanislaus.
2. Grigg, R., Ernst Haeckel: Evangelist for evolution and apostle of deceit, Creation 18(2):33–36, 1996; creation.com/Haeckel; Fraud rediscovered, Creation 20(2):49–51, 1998; creation.com/fraud.
3. Weikart, R., Darwinism and death: devaluing human life in Germany 1859–1920, Journal of the History of Ideas 63(2):323–344, 2002; p. 325.
4. Weikart, ref. 3, p. 333.
5. Greek: εὐ– (eu–) meaning 'well” and γένος (genos) meaning 'kind” or 'offspring”.
6. Grigg, R., Eugenics … death of the defenceless: The legacy of Darwin’s cousin Galton, Creation 28(1):18–22, 2005; creation.com/eugenics.
7. Hamilton, R. and Herwig, H., 'World wars: definitions and causes”, in: Hamilton, R. and Herwig, H., eds., The Origins of World War One, p. 26,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3.
8. Weikart, R., The origins of social Darwinism in Germany: 1859–1895, Journal of the History of Ideas 54(3): 469–489; p. 485.
9. Evans, R., The Coming of the Third Reich, p. 35, Penguin, 2005.
10. Weikart, ref. 8, p. 482.
11. Weikart, ref. 8, p. 482.
12. Evans, ref. 9, p. 35.
13. Herwig, H., 'Germany” in: The Origins of World War One, Ref. 7; p. 186.
14. Quoted from Weikart, ref. 3, pp. 331–332. See also Muehlenberg, B., 'Darwin and eugenics: Darwin was indeed a ‘Social Darwinist’”, creation.com/darwin-and-eugenics, 18 March 2009.



번역 - 정윤창

링크 - http://creation.com/darwinism-and-world-war-one

출처 - Creation magazine, April 2010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270

참고 : 3717|3369|3077|3057|1176|496|682|4636

미디어위원회
2011-10-20

노르웨이의 학살자 

: 문화적 기독교인, 실질적 진화론자 

(Norway Killer Cultural Christian, Practical Darwinian)

David F. Coppedge


      지난 7월 23일 노르웨이에서 90명 이상의 시민들을 대량 학살한 앤더스 브레빅(Anders Breivik)에 대한 초기의 언론 보도들은 그를 ”우익 기독교 근본주의자”라고 묘사하였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1500 페이지에 달하는 그의 성명서에 따르면, 그는 문화적, 정치적으로 기독교와 관련되어 있었지만, 개인적인 신앙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의 행동의 주요 동기는 기독교적 유럽의 정치적 공정성과, 다문화주의를 야기시키는 이슬람화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가 쓴 글들을 살펴보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기보다는, 세속적 과학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진화론자에 가까운 사람으로 나타났다.

WND(World Net Daily)는 7월 23일 브레빅을 기독교인으로 보도했으나, 24일 브레빅의 전체 성명서를 통해, 브레빅은 진화론자일뿐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으며 그를 구원자요 주님으로 믿는 일반적인 의미의 기독교인이 결코 아닌 것으로 발표하였다. (WND, Terrorist proclaimed himself 'Darwinian,' not 'Christian')

브레빅은 성경을 광범위하게 인용함과 동시에 다른 역사책과 철학책들도 인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인용들은 자신의 테러 행위를 국가적 정당방위 행위와 동일한 것이라고 합리화하기 위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그의 관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돕는 것이 아니라, 일인 십자군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기위한 그의 계획을 정당화하려는 것임이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또한 그의 일인 십자군 계획은 무슬림들을 직접적으로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각에서 서구 시민사회를 파괴하는 장본인이라고 생각하는 노르웨이의 자유노동당을 반대하기 것이라는 것도 드러났다.

그의 성명서에서 진화론을 지지하는 생각들은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 :  

▶ 그는 페미니스트들이 결혼을 파괴하는 것에 대하 논박하면서 말했다 : ”결혼은 ‘여성을 억압하기위한 음모’가 아니라 우리가 이곳에 존재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결혼은 종교적인 어떤 것도 아니다. 엄격한 무신론적 진화론에 의하면, 생명의 목적은 번식하는데 있다.”

▶ 정치적 공정성에 대하여 비난하면서, 그는 사회진화론을 찬성하는 말을 했다 : ”사회 다위니즘(Social-darwinism)은 1950년 이전에는 사회적 표준이었다. 그 이전에는 우리가 느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용인되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유전적 우월주의자라고 낙인찍힐까봐 두려워서, 우리가 선호하는 것을 말하지 못하고 숨겨야만 한다.”

▶ 아프리카에 대한 차별을 지지하면서, 그는 말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근시안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아프리카 차별 정책을 냉소적인 또는 진화론적 사고로 간주한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 정책은 가장 인간적이고 책임 있는 접근방식이다.”

▶ 완전한 유럽에 대한 그의 비전을 묘사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논리적인 이성주의자들의 생각(어느 정도의 국가적 진화론)은 우리 사회의 근본이 되어야 한다.”

그의 가족 배경을 살펴보면, 그의 부모나 양부모 혹은 형제들 중 누구도 성경을 믿는 기독교인을 발견할 수 없으며, 그의 삶과 신념에 대한 장문의 글을 살펴보면, 성경적인 기독교는 그의 이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그의 ‘보수주의’는 신-나치 (우파적) 힙합과 (좌파적) 헤비메탈 중에 어떤 것을 택하느냐 하는 정도이다. 그의 개인적인 정치적 견해는 ”문화적 보수주의, 혁명적 보수주의, 유럽의 반이슬람주의, 경제적 자유주의”로 요약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종교적 견해를 ”개신교 기독교인이지만, 나는 가톨릭에 의해서 흡수되는 개신교의 개혁을 지지한다. 전형적인 ‘개신교 노동당 교회’(Protestant Labour Church)는 그 탄생이 교회를 파괴하려고 시도임으로 해체되어야만 한다”라고 기술하고 있었다. 또한 그는 계속해서 ”나는 온건한 불가지론자에서 온건한 종교론자로 변화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부분들에서는 그가 개인적으로 기독교인이 아니라, 단지 기독교 문화에 익숙한 사람임을 명확히 보여주는 부분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만약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종교적인 기독교인이다. 나 자신이나 혹은 나와 같은 많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가질 필요가 없다. 우리는 기독교를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우리의 정체성으로, 그리고 도덕의 기본바탕으로 삼고 있다. 이것이 우리를 기독교인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이와 같은 기독교인의 정의를 받아들이기를 주저한다. 때문에 그가 자신을 ”100% 기독교인”이라고 부를 때, 그는 단순히 서구의 기독교 정치의 전통과 가깝다는 뜻이지, 결코 그가 예수님께 순종하는 기독교인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는 ”하지만 나는 현재 자멸하고 있는 가톨릭 교회의 방식, 특별히 개신교 교회의 방식에 강력하게 반대한다. 나는 자기 방어의 신념을 가진 교회, 자신의 교리와 가치를 위해서 싸울 수 있는 교회, 자신들을 점차 몰살시키려고 하는 시도에 대해서 최소한 저항은 할 수 있는 교회를 지지한다”라고 말하면서, 그는 무슬림이 자신의 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었다. 그가 넓은 의미에서 단지 문화적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더 많은 증거들이 그의 혁명적인 운동을 위하여 발췌한 글들에서 나타난다. ”당신이 십자가를 위하여 싸우고 ‘순교자의 십자가’ 아래에서 죽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행동하는 기독교인, 불가지론자 기독교인, 혹은 무신론적 기독교인(문화적 기독교인)이 되어야만 한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과 당신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관계보다 문화적인 요소들이 더 중요하다. 심지어 오딘주의자(Odinist)들도 이 싸움에서 그들이 우리의 기본적 교리를 받아들인다면, 우리와 함께 또는 우리 편에서 형제로서 함께 싸울 수 있다.” 오딘주의자는 노르웨이 신화를 믿는 이교도들이다.

확실히 성경적 창조론은 그의 세계관에서 찾아 볼 수 없다. ”교회와 과학에 관해서 말할 때, 논쟁할 필요도 없이 반드시 과학이 성경적 가르침보다 우선 순위를 가져야 한다. 유럽은 항상 과학의 요람이었고, 앞으로도 항상 그 길을 걸어야만 한다. 하나님과 나의 개인적인 관계에 대해서는, 나는 열성적인 종교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무엇보다도 논리주의자이다. 하지만 나는 동일한 기독교 문화의 유럽을 지지하는 사람이다”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또한 그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책은 다윈의 종의 기원이며, 홉스, 마키아벨리, 막스, 엥겔스, 아인 랜드(Ayn Rand)의 책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그는 노르웨이 민족을 멸종으로부터 보존하기위해서 우생학(eugenics)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의 긴 선언문에는 대량살상을 위한 폭탄과 무기 제조법 등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커다란 자신의 사진으로 끝을 맺고 있었다. 그 사진들 중에는 최첨단 바주카포를 들고 ”다문화-반역자 사냥 허가”를 의미하는 ”막시스트 사냥꾼(Marxist Hunter)”과 같은 문구가 새겨진 띠를 두른 사진도 있었다.

브레빅의 관점에 대한 더 자세한 해설을 위해 Uncommon Descent를 보라.



그는 빌딩을 폭파시키고 7명의 사람을 죽인 후, 청소년 캠프장에서 냉혹하게 80명의 청소년들을 총으로 살해한 사람이다. 이것은 병적인 자아도취증 환자이며, 외국인을 혐오하는 이기주이자이며, 정신 나간 미치광이의 혼란스러운 이야기이다. 그는 노르웨이에서 무슬림들에게 나쁜 기억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에 대항하여 자신만의 십자군전쟁을 수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는 이것을 그의 노르웨이의 유산이라고 규정했다. 그를 보수적 우익 기독교 근본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은, 나치당을 보수적 우익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고 부르는 것처럼 말이 되지 않는다. 히틀러도 문화적 기독교인들 혹은 노르웨이 유산을 지키고자 했던 이교도들이 그의 나치당에 참여하는 것을 환영했다. 그리고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방해가 되는 사람들은 누구나 죽여 버렸다. (이것은 물론 ”정당방위”라는 명분으로 행해졌다).

매우 긴 그의 연설문과 성경과 기독교를 자주 인용하는 모습 때문에, 그가 다윈의 지지자로 드러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그의 목적 중 어느 것이 예수 그리스도나 바울 혹은 다른 사도들의 그것과 비슷한 것이 있는가? 명백하게 아니다. 그것은 정반대되는 것이다. 극단적 종파주의자처럼 브레빅은 그의 '정당방위”를 지지해줄 수 있는 근거가 되는 문구를 찾아서 성경을 헤메고 다녔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방어적인 행동이 결코 아니었으며, 방어할 수 없는 시민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던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증오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역사와 책들을 이용한 미치광이의 비겁한 이기적인 행동이었다. 기독교적 신앙은 성경의 말씀과 완전히 반대되는 많은 모습들 때문에 비난을 받고 있다. 어떤 크리스천들은 바로 그러한 이유로 기독교라는 이름을 땅에 떨어뜨리고 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라는 말은 공허한 말이 되고 있다. (”기독교적 무신론자”란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명백히 앤더스 브레빅은 명목상 기독교인(CINO: Christian in name only)이며,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아니다. 그의 진심은 다윈과 함께 하고 있다. 다시 한번 우리는 진화론적 세계관이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보게 된다. 컬럼바인의 살인자(11/22/2006), 십대 허무주의자(11/12/2009), 핀란드의 살인마(11/08/2007), 제임스 본 브런(06/14/2009) 등과 같이 앤더스 브레빅은 치명적인 계획을 날조해 내고, 마오쩌둥과 폴포트의 전통 하에서 적자생존의 이름으로 냉혹하게 조직적으로 행해졌던 가증스런 살인을 저지르는데 다윈의 사상을 활용했던 것이다.

진정한 기독교인들은 언론 매체들이 정치적 광신도인 사회진화론자들과,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예수 그리스도를 연관지으려 할 때, 언론 매체들의 실수를 지적해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참조 : 노르웨이 테러, 90여 명 사망…'범행 시인” (2011. 7. 24. KBS News)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2328950

노르웨이 총기난사 테러  (2011. 7. 25.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IIS20110725000200365

노르웨이 연쇄테러 최소 91명 사망 (2011. 7. 23.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488713.html

노르웨이 "용의자는 '기독교 근본주의자'" (2011. 7. 23. 한국경제) 

https://www.hankyung.com/international/article/2011072356378

"노르웨이 테러 기독교와 결부시키지 말아야" (2011. 7. 25.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110725111200005


번역 - 주영환

링크 - http://crev.info/content/110724-norway_killer_cultural_christian_practical_darwinian 

출처 - CEH, 2011. 7. 24.

미디어위원회
2011-06-18

스티븐 호킹의 무신론

고건 


      최근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의 '위대한 설계(The Grand Design)'라는 책이 전 세계적으로 무신론을 부추기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우주는 (중력법칙과 양자이론에 따라) 無에서 자연 발생됐다. 우주는 ‘빅뱅’에서 출발했고, 빅뱅은 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중력 법칙에 의해 우주만물을 스스로 창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뉴스를 접할 때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은 그의 말이 참인지 아닌지를 우리의 짧은 식견으로는 판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선택은 다른 유명한 과학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주시하는 것이다. 만일 스티븐 호킹의 주장이 참이라면, 그의 주장이 모든 과학자들 의견을 대변하는 것이라면, 아래와 같은 일들이 뒤따라야 한다. 아래와 같은 일들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호킹의 주장이 과학자들의 동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

1. 호킹의 주장이 참이라면 생의 기원을 연구하는 생물학자나, 지구진화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자리는 양자역학, 상대성이론, 중력법칙 학자들로 대체될 것이다. (호킹 주장대로라면) 생의 기원에 관한 문제들은 다 중력법칙으로 설명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과학자들이 이 주장에 동의하는 것 같지 않다.

2. 호킹은 ”물리학에 정통한 사람이라면 신이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호킹이 이처럼 무신론을 과학적으로 증명해낸 것이라면, 전 세계 모든 기독교 물리학자와 천문학자들은 교회를 스스로 떠날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노벨상을 탔던 기독교 과학자들도 (뒤늦었지만 이제라도) 다 교회를 떠날 것이다. 그러나 내 주변에서는 그러한 움직임이 전혀 안 보인다. 나 자신부터 호킹의 주장보다 성경이 더 신뢰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런 일은 일어날 것 같지 않다.

3. 호킹의 주장이 참이라면 앞으로 과학교과서에서는 ”無에서 물질과 에너지가 스스로 생겨날 수 있다”고 가르칠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 역시 ”물질/에너지가 無에서 저절로 생겨날 수는 없다는 것이 과학계의 정설”인 것을 감안할 때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내용이 아닌 것 같다 (E = MC^2 공식 참조).

4. 호킹의 주장이 참이라면 스티븐 호킹은 신의 문제를 과학적으로 최종 해결한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과학자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그러나 동료 물리학자들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그의 영향력은 -- 무신론을 주장한지 이미 여러 해가 지났는데도 -- 물리학자 가운데서도 40등 정도의 위치에 머무르고 있다고 한다.

그의 주장의 진위 여부는 전적으로 빅뱅론이 옳은가 아닌가 여부에 달려 있는데 '우주론 저널'이라는 2010년 4월 미국 과학저널에 실린 ”Big Bang Model? A Critical Review”에 의하면 백뱅 이론은 아직도 많은 모순과 미비점을 노출하고 있어 정설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점은 스티븐 호킹이 아직도 노벨상을 타고 있지 못하는 근본적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무엇보다 스티븐 호킹이 무신론을 주장하기 위해 택한 통로는 전문적 과학논문지가 아니라 자신의 책을 통해서였다는 점이다. 이 점이 왜 중요한가 하면 -- 과학논문지는 동료 과학자들에 의해 엄정한 과학적 검증과정을 거치지만, 책은 그러한 검증과정을 안거치기 때문이다. 토마스 라퀘르(Thomas W. Laqueur)라는 유명한 역사학자는 ”현대과학의 가장 큰 특징은 논문이 출판되기 전에 동료전문가들에 의한 검증받는 제도(Peer-Review)”라고 지적하고 있다. 즉 스티븐 호킹의 무신론 주장은 동료과학자들의 검증을 받은 적이 없고, 자신의 의견을 자의적으로 담은 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주시해야 한다. 스티븐 호킹의 두 권의 책이 많이 팔려나가고 있는데 그 책들은 '과학의 소개'라는 관점에서는 별로 두각을 나타낼만한 책이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그 책들이 많이 팔리는 진짜 이유는 -- 그 책들이 과학보다는 (과학과는 별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글들로 시종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많은 서평들이 그가 책을 계속 써내는 진짜 동기를 의심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얕은 물리학 지식을 한탄하기에 앞서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살펴보아야 한다. 과연 하나님은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을 잘 아는 사람만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그러한 신에 대해 매우 섭섭해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천국에는 천재들만 입장이 허락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같이 물리, 수학 성적이 안 좋은 사람들은 천국행 생각을 아예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 양자역학을 모르면 어떤가? 오히려 겸손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정결한 자 --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천국에 가야하지 않겠는가? 천국이 (머리는 안 좋아도) 이러한 겸손하고 따뜻한 사람들로 채워지려면 하나님은 양자역학만 잘하는 (그러나 교만하고 사랑 없는) 사람은 어떻게 다루실까? 하나님은 그러한 과학자들에게는 혹시 그 자신을 스스로 숨기시지 않으실까?

V. 메쏘리는 ”기독교의 하나님만이 스스로를 숨기시는 분”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교만하고 사랑 없는 과학자에게는 끝까지 그 자신을 숨기시는 분이시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오직 사랑하는 만큼만, 그리고 겸손하고 정결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만큼만 (참고로 호킹은 두 번 다 이혼하였다) 하나님을 알게 해주신다고 거듭 기술하고 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한일서 4:8)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마태복음 11:25-28)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고린도전서 1:19)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린도전서 1:21)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린도전서 1:26)

기독교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계시뿐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때 하나님은 과학도 계시를 주시는 방도의 하나로 사용하실 수 있다. 인류역사에서 근대과학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케플러, 뉴턴은 모두 신실한 기독교 신자들이었다. 그들은 ”신이 창조한 우주가 고대 그리스 학자들 주장처럼 복잡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여 지동설을 연구하게 되었다. 케플러와 뉴턴은 우주가 수학공식에 따라 운행되는 것을 발견하며 ”하나님은 이러한 물리학 법칙을 통해 찬양받고 계시다”고 고백하였다. 스티븐 호킹은 결코 과학적 발견 때문에 무신론자가 된 것이 아니다. 그는 과학을 시작하기 이전에 이미 철저한 무신론자였다. 그는 자신의 무신론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과학을 동원한 것뿐이다. 그의 어머니 이사벨(Isabel)은 1930년대부터 영국에서 공산당원으로 활동했었다. 그는 가정에서부터 무신론과 유물론을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 스티븐 호킹은 13세 때 무신론자로 유명한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을 우상처럼 받들었다고 전한다.

한 가지 극명하게 대비되는 사실은 ”우주가 만유인력과 같은 과학적 법칙에 의해 움직인다”는 사실이 뉴턴이나 케플러에게는 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중요한 통로로 사용된데 반해, 그 동일한 과학적 사실이 스티븐 호킹에게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통로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과학은 가치중립적이다. 믿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과학이 믿음의 도구로 사용되고, 안 믿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그 동일한 과학적 진리가 신을 부정하는 도구로 사용될 뿐이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믿고자 하는 자에게는 그에 합당한 계시를 주시고, 불신을 고집하는 사람에게는 얼마든지 자유를 허락하시는 분이시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우리의 자유의지를 가장 존중하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 믿으려 고집하는 자에게는 결코 계시나 이적을 강제로 보여주지 않으시는, 아니 보여주지 못하시는 분이 바로 기독교의 하나님이시다.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 마태복음 13:58.

마지막으로 컴퓨터공학 전공자로서 호킹이 ”사람은 컴퓨터와 같아서 일부 부품이 고장나면 영원히 그 컴퓨터를 못 쓰게 된다”고 주장한 것은 잘못된 비유임을 지적한다. 왜냐하면 요즈음에는 컴퓨터 주기억장치도 비휘발성 기술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어떤 부품이 고장 나더라도 그 부분만 교체하면 컴퓨터는 얼마든지 다시 가동을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손으로 태양을 가려서 그림자를 만들 수 있지만, 태양 자체에 전혀 영향을 줄 수 없듯이, 어떤 이론으로 무신론을 주장하더라도, 실재하시는 하나님의 존재가 흔들릴 수는 없다. 우리의 몫은 과학을 통해 진정 위대한 디자이너이신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을 더 잘 보이게 하는 것뿐이다.


*참조 : Stephen Hawking: the closed mind of a dogmatic atheist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4093

Stephen Hawking: Is there meaning to life?

      https://creation.com/stephen-hawking-meaning-to-life

Into the Universe with Stephen Hawking: Aliens

      https://creation.com/stephen-hawking-aliens

Hawking atheopathy. Famous physicist goes beyond the evidence

     https://creation.com/stephen-hawking-god

Stephen Hawking’s end of the universe

     https://creation.com/hawkings-end-of-the-universe

Here’s the Intel; Stephen Hawking fears robots could wipe us out

     https://creation.com/hawking-fears-robots-could-wipe-us-out

Stephen Hawking: Key to the Cosmos

     https://creation.com/key-to-the-cosmos


*참조 : 호킹 ”천국·사후세계? 꾸며낸 동화일 뿐” (2011. 5. 16. 문화일보)
: 英 가디언紙와 인터뷰… '죽음 이후 뇌는 고장난 컴퓨터” 주장 논란 일 듯
http://media.daum.net/digital/view.html?cateid=1046&newsid=20110516120109214&p=munhwa

스티븐 호킹, ”우주는 자발적으로 창조” 주장 논란 (2010. 9. 7. 크리스천투데이)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40638

스티븐 호킹, 이번엔 ”신학은 불필요하다” 주장 (2010. 9. 14. 크리스천투데이)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40816

스티븐 호킹 ”결국 과학이 이길 것” (2010. 6. 10.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6/10/2010061002002.html

스티븐 호킹 ”외계인은 존재한다…만나면 피하라” (2010. 4. 26.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4261106051&code=930401

Creation Moments
2010-11-08

믿음의 힘 

(The Power Of Faith)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디모데후서 3:13)

과학의 역사, 특히 진화론을 지지하는 과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것이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어떤 것을 찾을 것이라는 기대의 힘을 발견한다. 1859년 다윈의 책이 출판된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소위 primordial slime(원시 점액: 생명의 근원이 된다고 상상되는 끈적끈적한 점액물질)으로부터 생명이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헥켈(Ernst Haeckel)은 이 원시점액으로 부터 생겨난 최초의 단세포 생물로부터 발생한 많은 생물군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러한 생물들이 심해 해저에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H.M.S. Challenger 탐사선이 해저로 부터 샘플을 채취했다. 

형체가 없는 원형질물이 채취한 샘플병의 바닥에서 발견되었다. 과학자들은 헤켈의 예언적인 발언을 확인하고자 이것들을 ”진행 중인 생명(life in the making)”이라고 선언하면서 Bathybius haeckeli 이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수년 후 한 화학자가 병의 바닥에 사용된 보존제는 알콜이었고, 바닷물이 이 알콜에 부어졌을 때 석회 황산염의 무형질의 침적물이 생성되었다고 말했다. 이것은 생명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으로서 이 당혹스런 사실은 영국 언론에서 결코 보도되지 않았다.

실제로 만약 당신이 하나님이 없다고 확신하면 하나님의 증거를 보는 것이 아주 어려울 것이다. 만약 마녀가 빗자루를 타고 날 수 있다고 믿으면 당신은 그에 대한 증거를 찾으려 들 것이다. 인간들은 이러한 일들을 수세대에 걸쳐 행해왔다. 오늘날도 계속해서 진화론자들은 자신들이 사실일 거라고 기대하는 바에 대한 증거를 찾고있다.

 

Notes: Creation, 12/00-2: 2001, pp. 36-41, 'Life from life...or not?'

Copyright 2010 Creation Moments. All Rights Reserved.



번역 - 김계환

링크 - http://www.creationmoments.com/radio/transcripts/power-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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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965

참고 : 3423|3368|3002|2997|2710|904|624|1922|2132|2399|2580|1016

Creation Moments
2010-09-09

인종차별의 기원 

(The Origin of Racism)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 (사도행전 17:26)

하나님께서 다른 인종간의 결혼을 인정하실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인종이라는 개념을 생각해봐야 한다.  성경은 우리 모두가 아담으로 부터 태어났다고 가르친다.  성경은 또한 우리 모두는 한 핏줄이라고 말하며, 결코 인종의 개념을 사용하지 않는다.

함의 후손들은 저주를 받았는데, 이들이 바로 가나안 족속이었다. 그러나 가나안인인 라합이 하나님을 진실하게 믿었을 때 그녀는 믿는 자와 결혼할 수 있도록 환영받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녀를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는 족보에 포함시키셨다.

찰스 다윈이 1859년 자신의 그 유명한 책인 '종의 기원'을 썼을 때까지, 교회에서의 다른 인종이라는 개념은 다른 종교와 구별되듯이 그리 대단한 문젯거리가 되지 못했다. 다윈은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으로 관점이 극도로 인종차별주의적이어서 유색인종들을 언제나 야만인들이라고 부르곤 했다.

진화론을 주장하기 위한 그의 책의 의도적인 과학적 논거들 중의 하나는 여러 인종들 중 일부의 인종들은 다른 인종들보다도 더 많이 진화되었다는 주장이었다. 교회 밖과 안에서 이러한 주장이 받아들여지면서 인종차별주의는 공공연하게 조직화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한 사람과 다른 사람간의 유전적 차이가 보통 0.2%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과학적으로 말하자면, 성경이 분명하게 가르치는 것처럼 인류는 하나인 것이다. 교회는 이 지구상의 모든 인류가 실제 인간인 아담 한사람으로 부터 갈라져 내려온 한 피를 공유하는 한 몸임을 선포함으로서 인종차별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이다.

교회는 또한 모든 신앙인들은 우리를 구속하시고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신 두 번째 아담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인 후손들이라는 복음을  선포해야 할 것이다.

 

References: Ken Ham, Inter-racial marriage: is it biblical?, Creation 21(3) June-August, 1999.

© 2009 Creation Moments • All Rights Reserved •



번역 - 김계환

링크 - http://www.creationmoments.com/content/origin-rac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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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952

참고 : 2358|1176|4626|3744|2582|2584|2588|2580|2426|2578|1204|518

조민완
2009-12-04

인류학에서의 진화이론과 창조과학적 접근

(Evolutionary theory in Anthropology and Creationistic approach)


요지 : 인류학은 ‘사람에 대한 연구(study of Human)’를 목적으로 하는 분야로 인문과학과 사회과학, 자연과학의 방법론을 받아들여 ‘인류학’만의 독특한 학문분야로 자리잡았는데, 그 중심에는 다윈이 주장한 진화론이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인류학내에서 진화론은 모든 이론과 방법론을 통제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체질(생물)인류학에서는 사람의 뼈대에 대한 분석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이를 고인류학에 적용하여 인류의 진화 계통을 그리고 있으며, 사회-문화인류학에서는 단순한 생물학적 인간의 진화에서 더 나아가 사회조직과 문화의 진화를 설명하려 하며, 고고학에서는 이러한 생물학적인 인간, 그리고 사회조직과 기술의 진화, 그리고 오랜지구의 근거로 삼는 갖가지 연대측정법들을 사용하여 인간과 문화, 사회조직을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진화론이 인류학 안에서 강하게 영향을 끼치고 이러한 진화이론만이 인간에 대한 모든 설명들로 이해되는 상황속에서 이떻게 성경적인 패러다임, 특별히 창조론적 세계관을 세워 인간에 대한 본질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을지 하는 고민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특별히 저자는 대학원 내에서 체질(생물)인류학과 고인류학을 공부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어떤 전략과 지혜로 인간이 원숭이의 형상에서 진화된 존재가 아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특별한 존재임을 이러한 인본주의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학문세계 내에서 선포할 수 있는가 하는 것들을 모든 이들과 함께 고민해보고자 한다.


인류학(anthropology)은 인간에 대한 인문학적, 사회학적, 자연과학적 연구로 학문자체의 형성과정에서 진화론의 깊은 영향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특별히 인류학은 20세기 이후 고고학(archaeology), 사회-문화인류학(social-cultural anthropology), 생물인류학(biologica anthropology), 언어인류학(linguistic anthropology) 등으로 세분화되어 더욱 진화론적 이론을 견고히 받아들여 학문의 틀을 만들어나갔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인류학에 대한 창조과학적 대응은 생물인류학(고인류학)에서 언급하는 인류 진화론에 대한 반박에 머물렀고, 생물(체질)인류학의 성립근거가 되었지만, 이미 1970년대에 사회 생물학으로 대체되었던 ‘인종학(우생학)’에 대한 표면적인 비판에만 머물러 있어 인류학 전체 담론을 지배하는 진화론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과 비판, 그리고 대안제시에는 아직 역부족인 상황으로 여겨진다.

이 논문에서는 인류학의 학문적 특성과 진화론이 인류학에서 차지하는 학문적 위치와 이러한 진화론적 세계관에 맞서 창조론적 세계관을 심을 수 있는 대응방안을 찾아보기로 한다.

 

Ⅰ. 인류학의 정의와 진화이론

1. 인류학의 정의와 분화

인류학(人類學, anthropology)은 인간에 관한 모든 것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이해되며, 인류학의 연구대상이 되는 '인간(human being, Homo sapiens)'은 통상적으로 ‘members of the species Homo sapiens, which arose in Africa around 200,000 BP’으로 정의되고 있다. [1]

인류학은 크게는 인류의 신체적 측면을 연구하는 체질인류학(형질(생물)인류학, physical anthropology), 사회문화적 측면을 연구하는 사회문화인류학(socio-cultural anthropology), 과거의 유물을 통해 인류의 과거를 연구하는 고고학(archaeology), 그리고 언어의 인류학적 측면을 연구하는 언어인류학(linguistic anthropology) 등으로 크게 나눈다. 이밖에도 민족학(ethnology), 민속학(folklore) 등을 인류학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인류학은 16세기부터 시작된 대항해시대 이후 유럽 이외의 세계에 대한 관심으로 학문적 토대가 만들어졌으나 인류학이 현대적인 학문으로 형성되는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진화론’이었다. 1859년 다윈은 자신의 저서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에서 인류의 진화에 대하여 ‘light will be thrown on the origin of man and his history'라고 아주 짧게 언급하였으나, 이는 인류학에서 진화론이 기본적 이론적 토대가 되었으며, 또한 인류의 조상이라고 여겨지는 화석들이 대량으로 발견되면서 생물(체질)인류학과 고인류학이 새로운 학문으로 대두하게 된다.

인류학은 각각의 세부분야가 19세기와 20세기에 분화된 후에 서로 다른 방법론과 대상을 가지고 발전하였지만, 인류학의 목적인 ‘사람에 대한 연구’라는 전제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적절한 해결점을 준다고 여겨졌던 진화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기 때문에, 진화론이 각 분야에서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인류학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성경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새로운 인류학을 세워나가는 첫 단추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지면을 통하여 언어인류학을 제외한 고고학, 사회-문화인류학, 생물(체질)인류학 가운데서 진화론이 구성해 놓은 이론들을 함께 알아보고자 한다.


2. 고고학(Archaeology)에서의 진화론

19세기 중엽에 학문으로 처음 자리를 잡은 고고학은 초기에는 ”과거 인류가 남긴 물질적인 자료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간단히 정의되었으나 오늘날에는 ”과거 인류들이 남긴 물질적 자료(고고학 자료)를 통해 당시의 문화, 즉 행위, 사회적 조직, 이념 등을 복원하고 그들의 문화가 어떻게 그리고 왜 변했는가를 연구하는 학문”(Sharer and Ashmore 1993)으로 정의되고 있다.

고고학은 17세기 말부터 유럽 등지에서 유행한 ‘胡考主義’, 즉 골동품의 수집과 전시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시작되었으나, 진화론을 수용하면서부터 현대적인 학문적 모습을 갖추게 된다.

고고학이 학문적 모습을 갖추게 된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중엽 사이에 지질학자 허턴(J. Hutton, 1726~1797)이 제공한 동일과정설과 라이엘(Lyell, 1797~1875)에 제시한 ‘지층 누중의 법칙’은 이전의 퀴비에(G. Cuvier)등이 주장한 대격변(다중격변설)을 무력화시켰으며, 지질의 변천과정, 지구의 구조와 층위, 그리고 절멸화석 등에 대한 균일론적 설명을 제시하였는데, 이는 단순히 지구의 역사뿐 아니라 인류와 함께 관련되어 있는 동식물들의 역사가 성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아주 짧은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동안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하는 의식적 변화를 야기한 기폭제가 되었다.

또한 덴마크의 박물학자 톰센(C.J. Thomsen, 1788~1865)이 제시한 삼시대법(돌의 시대, 청동의 시대, 철의 시대)는 후에 연대결정법(상대연대결정법, 절대연대결정법)과 결합하여 인류의 역사에 대한 단계적인 시대구분법의 기초를 마련하게 된다.

1859년 이후 다윈의 진화론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이론들은 다윈의 진화론과 결부되어 발전되기 시작되는데, 다윈의 저작들은 피트리버스, 존 에반스, 그리고 오스카 몬텔리우스 같은 초기 고고학자들에게 직접 영향을 주어 유물을 형식학적으로 연구하는 토대를 놓게 하였다.

아우구스투스 래인폭스 피트리버스 장군(1827~1900)은 생애의 많은 기간을 직업군인으로 보냈던 경험을 살려 처음으로 잘 조직된 고고학 발굴작업을 수행한 인물로서, 그는 인간들이 만들어낸 도구들의 컬렉션, 즉 박물관을 통해서 인류 문화의 진화 과정을 보여줄 수 있다고 믿었으며, 문화의 진화란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와 마찬가지로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고도의 형태로 진화되어 왔다고 주장하였다.

스웨덴의 고고학자 오스카 몬텔리우스(Oscar Montelius, 1843.9.9~1921.11.4)는 북부 유럽의 청동기시대를 연구하면서 진화론적 이론을 자신의 연구에 대입하여 오늘날 고고학계에서 널리 사용되는 방법론 중 하나인 ‘형식학적 방법’을 주장하였다.

그는 유물의 편년적 위치를 아는 방법으로는 상대적 연대가 있고, 상대적 연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층위적 방법을 이용해야 하나, 층위적인 방법만을 가지고는 유물의 상대적인 연대를 설정한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시기의 선후 관계를 결정하기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 방법으로 ‘형식학적 방법’을 제시하였다.

그는 형식을 생물학에서의 ‘종’으로 파악하고, 형식 상호간에 나타나는 내적 관계를 추적하여 종과 같이 한 개의 형식이 다른 형식으로 진화되는 상황을 밝혀야 한다고 보았다.

이처럼 물질문화의 선후관계와 인간 전체를 구성하는 문화와의 관계 규명을 위해 대입된 진화론은 문화의 발전도 생물학에서의 진화와 같이 환경에 적응(adaptation)함으로써 진화한다는 견해를 제시하였으며, 이는 사회-문화 인류학에서도 다루게 되는 사회 진화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낳게 하였다.[2]


3. 사회-문화 인류학에서의 진화론

보통 문화인류학으로 불리는 ‘사회-문화 인류학’은 인류가 걸어온 역사와 현존의 인류에 의한 각종 소산(所産)을 대상으로 문화를 관찰 ·분석하고 그것을 종합하여 문화의 법칙성 또는 규칙성과 변이(變異)를 탐구하는 과학이다. 문화인류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미국의 경우이며, 영국에서는 사회조직과 친족연구를 중시하여 사회인류학이라고 부르며, 독일 ·오스트리아 그 밖의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민족학이라고 부른다.

문화인류학의 이론적 기초를 이루는 문화에 대한 개념은 영국의 인류학자 타일러(E.B. Tylor)가 정리했는데, 그는 ‘문화란 사회구성원에 의해 습득된 지식, 신앙, 예술, 법, 도덕, 관습 및 인간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획득한 어떤 다른 능력이나 습관 등을 포함한 복합총체’라고 정의하였다. 이 정의는 진화론을 배경으로 제시되었으며, 지금까지 널리 통용되고 있다.

인류학에서는 진화론을 주로 사회구조 형성과 변천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적 도구로 사용하였는데, 특별히 인류학이 이론적 토대를 갖추던 시기에 단순 진화론을 전파한 학자는 헨리 루이스 모건이었다. 그는 그의 저서 <고대사회(Ancient Society,1877)>에서 인류 사회의 발전단계를 야만, 미개, 문명으로 나누고 이를 더욱 세분화하여 인류 사회 발전단계가 하위단계의 야만 (단순채집)→중간단계의 야만(단순한 어로, 불의 사용)→상위단계의 야만 (활과 화살의 사용)→하위단계의 미개(토기사용)→중간단계의 미개(동식물의 재배 및 사육)→상위단계의 미개(철기의 사용)→ 문명단계(문자의 사용)로 변천된다고 파악하였다.[3]

인류학자 애드워드 타일러는 이러한 생각을 받아들여 현존하는 제도들은 오직 과거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만이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역사과정은 갑자기 일어나는 도약 같은 것이 없이 느리게 지속된다는 진화론적 전제를 받아들였다.

이러한 모건과 타일러의 문화에 대한 단선진화론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는데, 엥겔스는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The Origins of the Family, Private Property and the State)라는 저서에서 선계급(pre-class)사회는 선혈연(pre-clean), 모가장혈연(matriarchal clan), 가부장혈연(patriarchal clan), 최종혈연(terminal clan) 단계로, 계급사회는 노예 봉건, 자본주의 사회로 구분되며, 궁극적으로는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체제로 갈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엥겔스의 연구는 모건의 <고대사회>의 영향을 받아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사례연구를 통해 도출된 것이었다.

이렇게 단선진화론적 설명은 인류학, 고고학 및 사회학에 큰 영향을 주었으나, 19세기 말에 이러한 단선진화론에 대항하여 전파론(傳播論)이 등장하면서 크게 위축되게 된다. 전파론(diffusionism)은 문화의 변동을 주로 외부적인 영향인 전파에 기인한다고 보는 관점인데, 전파(diffusion)란 문화요소들이 한 지역에서 발생하여 다른 지역으로 이주, 무역, 전쟁 및 다른 접촉들에 의해 확산되어 가는 것을 말한다.

문화인류학에서의 진화론은 다시 신진화론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등장하게 되는데, 미국에서 정립된 신진화론은 1940년대 이후 인류학에, 1950년대 말에 고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신 진화론은 다선진화론이라고도 불리게 되는데, 이는 지난 19세기 말 모건과 테일러가 제시한 단선진화론에서 설명하지 못했던 서로 다른 사회발전 단계를 지닌 다양한 사회구조에 대한 설명을 시도하려는 데서 비롯되었다.

신진화론의 선구자인 레슬리 화이트(Leslie White, 1900~1975)는 자신을 모건과 타일러의 직접 후계자로 자처했는데, 그는 열역학적 관점을 도입하여 ‘다른 요인들이 일정할 때, 문화는 단위 에너지양의 증가, 곧 에너지의 효율이 증가함에 따라 진화한다’(White 1959:368-9)라고 하였는데, 화이트 퇴임기념논문집에서 메거스는 ”에너지의 역할과 문화진화에 대한 연구는 1943년 화이트가 처음 시작하였다...이 법칙은 문화는 기술, 사회조직, 철학이라는 세 가지 현상으로 이루어졌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가운데가 가장 중심적이어서 다른 두 요소, 곧 사회와 철학의 내용과 형태를 결정한다.(Meggers 1960:302-3)”라고 논평하였다.

즉, 화이트는 기술계제를 가장 우선시되는 문화의 영역이며, 여기에서 에너지가 모여 체계에 공급되는 식으로 다른 모든 사회생활의 요소들이 에너지활용(energy processing)단위를 중심으로 배열되어 있다고 보았는데, 이러한 화이트의 진화이론은 초기 원시인류사회에서 20세기까지 인류사의 커다란 전환까지를 포괄하는 것으로 보통 ‘일반 진화(General evolution)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에 반하여 줄리안 스튜어드(Julian Steward, 1902~1972)는 일반진화 과정이 모든 인류사 저변에 깔려 있음을 인정하였지만, 지역적 진화연쇄는 지역의 조건에 따라 상이한 방향으로 일어난다고 보았다. 즉, 그는 비슷한 자연 배경에서는 비슷한 문화적 반응이 나타나며 문화는 핵심 특성을 중심으로 여러 성격들이 결합된 것이며, 주로 생계행위의 성격을 바탕으로 형성되지만, 경제, 정치 및 종교적 유형들이 포괄되어 있다고 여겨졌다. 이러한 스튜어트의 방법은 ‘문화생태학(cultural ecology)’이라 알려졌으며, 오늘날 문화와 생태계 사이의 상호연결에 초점을 맞춘 생태인류학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화이트와 스튜어트의 이론을 더욱 발전시킨 다음 세대의 신진화론자들로는 살린스와 엘만 서비스를 들 수 있다.

마샬 살린스(Mashall Sahlins)와 엘만 서비스는 문화나 사회구조에 대한 진화이론을 일반진화와 특수진화로 구분하여 화이트가 강조하였던 ‘모든 인간사회들에 적용되는 보편적인 움직임’을 ‘일반진화’로, 스튜어드가 강조하였던 ‘집단이나 개인의 지역 환경에 대한 적응’을 ‘특수진화’로 구분하고,l 이들은 또한 모든 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이른바 ‘사회발전단계설’을 주장한다.

엘만 서비스가 주장하였던 ‘사회발전단계설’은 이른바 ‘인류사는 군집사회(band)에서 부족(tribe), 족장(Cheifdom), 그리고 최종적으로 국가(state)단계로 진화한다는 주장이다.

프리드(Fried)는 이를 수정하여 평등사회(egalitarian society)-계급(서열)사회(ranked-society)-계층사회(stratified society)-국가(state) 등의 사회 발전 모델을 제시하였다.[3]

이러한 사회발전단계설은 고고학에서 고대 국가의 형성과정을 설명하고 이해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별히 196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신고고학(과정고고학)에서는 신진화론의 이론들을 가지고 사회조직을 밝히려고 노력하였다.

이러한 문화인류학에서의 진화론(특별히 ‘신진화론’)은 문화를 설명하는 수많은 이론들 중의 하나로 존재할 뿐 특별한 위력을 가지지는 않으며, 오히려 고고학에서의 사회발전단계설로 더 많이 언급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의 단선진화론과 신진화론(다선진화론)은 이론 자체의 형성과정에서 초기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인류 사회의 발전단계를 설명하려고 했다는 점에서는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4. 생물인류학에서의 진화론

생물인류학은 그 자체가 다윈의 진화론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형성된 분야로, 주로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생물학적 진화와 변이를 연구한다. 생물인류학은 그 범위가 매우 광범위하기 때문에, 크게 고인류학, 영장류학, 인류의 다양성 연구로 나누어진다.

고인류학은 인류의 생물학적 역사를 다루는데, 지금껏 창조과학 내에서 가장 많이 비판하고 반박했던 분야가 이 고인류학 분야이다.

영장류학은 인류와 가장 가까운 영장류의 진화와 행위를 연구하며, 이를 토대로 오늘날 현존하는 다양한 인류와 그들의 생물학적인 환경적응방법을 유추하여 연구하고 있다.

인류의 다양성 연구에서는 인류가 다른 영장류와 어떻게, 그리고 왜 다른가를 생물학적 입장에서 다루며 또한 인류의 경우, 문화와 생물학적 특성이 어떻게 상호 관련이 있는지를 연구대상으로 한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생물인류학(고인류학)에 대한 창조과학적 비판은 대부분 ‘지금껏 발견되어진 인류의 조상화석들은 모두 원숭이 또는 인간이지 인간과 유인원을 잇는 중간단계의 화석이 아니다’하는 것에 맞추어져 있을 뿐, 그 외 생물학적 인간에 대한 올바른 학문적 접근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생물인류학 자체를 진화론의 영향으로 출현한 ‘우생학의 사생아’ 정도로만 여겨왔다는 것이다.

사실 생물인류학의 탄생 자체가 우생학을 통해서 시작되긴 하였지만, 이 분야가 기본적인 학문의 틀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준 것은 바로 하버드 대학의 곤충행동학자인 윌슨(Edward Willson)이 주창한 사회생물학이라고 할 수 있다. 윌슨은 1975년《사회생물학-그 새로운 이론》이라는 저서를 통해서 동물과 사람에 있어 나타나는 모든 형태의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생물학적 요인(유전)으로 파악하면서 동물집단에서 관찰되는 행위들을 설명할 수 있는 일반 법칙을 발전시켜 이 법칙을 인간에게 적용시키고자 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생물학자들과 사회과학자들에게 동물과 사람의 행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게끔 커다란 영향을 주었으며, 동시에 사회과학자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불러 일으켰다.[4]

이 외에도 생물인류학에서는 인종에 대한 개념이나 인종의 다양성 문제, 인류의 적응과 성의 문제에서도 좀더 다선적인 진화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Ⅱ. 인류학에 대한 창조과학적 접근

1. 인류학에 기존의 시각과 중요성

현재까지의 창조과학운동은 주로 자연과학적 영역에서 활동이 이루어졌으며, 예전에 활동하였던 창조사학회에서도 인류학이나 역사학 이론연구 자체보다는 아라랏산 탐사나 고대근동학 연구를 통한 이스라엘민족과 한민족과의 관계 연구에 치중하였음을 볼 수 있다.

또한 성경적으로 접근하였던 성서고고학이나 선교인류학도 마찬가지로 인류학이나 고고학 이론에 대한 성찰과 성경적 검증보다도 성경과 관련 있는 유물, 유적 및 지명을 파악하거나 복음을 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문화’라는 개념을 이용한 것에 그치고 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한편으로는 성경을 통한 지식추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knowing God)’에 집중되어 있었고 ‘사람을 아는 지식(knowing human)'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보다는 격이 떨어지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모든 만물을 만드신 목적이 바로 ‘사람’에게 있고 인간에게 청지기의 권한을 주셔서 이 땅의 모든 만물을 다스리고 정복하게 하신 것을 인식할 때, ‘사람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만큼 매우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에베소서 2장 10절의 표현대로 ‘우리는 그의 만드신 (ποίημα, 포이에마, ’작품‘)’라고 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어떻게 만들어졌고 이 만물 속에서 인간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성경적인 인류학의 목표를 이루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2. 인류화석과 분류학에 대한 태도

실제 인류학 전체에서 진화론은 문자 그대로 제왕처럼 군림하며 하위분야의 이론들과 방법론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생물인류학과 고인류학은 그 자체가 생물진화론의 연장선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인류 진화에 대한 가설을 뒷받침하였던 것은 지금까지 세계도처에서 발견된 수많은 인류화석들이다. 사실 지금까지 발견된 인류화석들은 창조과학 도서에 소개된 것보다 더 많으며, 화석 하나하나에 매우 큰 의미를 두고 있기 때문에, 어떤 화석에 대한 출처나 본질들을 더욱 세밀하게 연구하지 않으면 오히려 진화론자들의 역공을 받을 공산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특별히 이러한 인류화석들은 린네의 분류법을 마치 진화계통도처럼 변형을 하여 각기 철저한 분류법을 가지고 분류를 하고 발표를 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인류화석에 대한 비판을 하기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조건이 바로 ‘분류법’에 대한 새로운 정리와 의미부여가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즉, 생물진화론 및 생물인류학에서는 린네의 분류법이 고정된 ‘종’의 개념을 강요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지금껏 수많은 ‘종의 개념’에 대한 변형을 하여 마치 분류법 자체가 진화론을 정당화시키고 증명하는 것처럼 인식시키고 교육시켜왔다. 때문에 생물인류학 및 고인류학 내에서 창조과학적 입장을 표명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진화론적 입장을 대변하는 분류법에 대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보여지며, 이와 함께 고고학과 생물인류학의 시간적 패러다임을 결정하고 있는 동일과정설 및 균일설들을 무너뜨릴 수 있는 대홍수 이론 등을 인류학계 안에 도입시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3. 인류문화에 대한 성경적 이해

인류학이라는 학문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자연과학처럼 단순히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만이 아닌, 더 나아가 논리적으로 ‘사람’이 무엇인가 라는 문제를 해석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

때문에 인간의 생물학적 문제 뿐 아니라, 사회적 문제, 역사적 문제 까지 모두 서술하는 서사적 구조를 함께 포함하고 있다. 이는 성경에서 취하는 유사한 구조로, 천지창조에서 인간의 타락, 그리고 대홍수와 바벨탑 사건을 통한 대확산 등의 문제가 바로 성경의 인류학적 문제들이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천지창조부터 바벨탑을 통한 인류의 대확산까지의 문제를 통해서 우리는 단순히 어떤 과거의 사실을 확실히 아는 것뿐만 아니라, 이러한 성경적 사실들이 현재 인류에 미친 영향,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피조물 사이의 관계도 규명하는 것이 성경적 인류학의 또 하나의 목표가 되리라 여겨진다.



Ⅲ. 결론

인류학은 태동기부터 진화론을 양분삼아 발전하여 왔고, 과거와 현대사회를 규명하는 중추적인 학문으로 발전해왔으나 진화론에 갇힌 인류학은 아직까지도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아주 기본적인 질문조차도 제대로 답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이유는 모든 질문의 뿌리를 하나님께 두지 않고 인간에게 두고 인간 안에서만 답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이러한 아주 근본적인 대답에 아주 간단하면서도 명료한 대답을 하고 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셨으며, 그 모습도 동물과는 다르게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지음 받아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 땅을 다스리고 있는 청지기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화론에 갇혀있는 인류학을 다시 말씀으로 새롭게 하여 인간과 사회의 시작, 역사와 문화의 시작이 창세기에 있고 성경에 있다고 선포하는 것은 지금껏 제대로 시도되어 본적이 없었고, 어떠한 학문적인 선례도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러한 일들이 시도되어야 하고 시작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모든 이론을 파하고,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라”는 말씀처럼 하나님보다 더 높아진 인간의 교만함을 인류학이 담고 있다면, 그 교만한 이론을 파하고 인간을 본래의 위치로 되돌리는 것이 바로 성경적 인류학의 본질이자 목적이 될 것이다.



Ⅳ. 참고문헌

[1] http://en.wikipedia.org/wiki/Human
[2] 최성락, 2007, 고고학입문, 학연문화사
[3] 크리스 고스든 지음, 성춘택 옮김, 인류학과 고고학, 사군자
[4] 박선주, 2003, 생물인류학, 도서출판 개신


출처 - 2009. 10. 10. 한국창조과학회 학술대회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782

참고 :

미디어위원회
2009-11-16

창조론과 진화론이 교회에 미치는 영향

이억섭 


Ⅰ. 서론

   2009년은 다윈 탄생 200주년, 다윈의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을 맞아 세계적으로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많은 관련 서적이 출판 되고 있다. 또한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된 당시의 기독교뿐만 아니라 현재의 기독교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관계로 '과학과 종교”라는 제목의 서적이 많이 출판 되고 있다[예를 들면, 1]. 우주 만물의 기원이 성경의 창세기에 분명하게 기술된 대로 하나님의 창조에 의한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진화론에 의해서 공격을 받기 시작한 이후에, 과학의 발전에 따라 성경의 창조론이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조차  온전하게 받아 드려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론을 주장하는 기독교인들 중에도 하나님의 창조를 받아들이는 정도(程度, degree)가 넓은 스펙트럼으로 나타나고 있다[2].

필자가 2003년 미국의 피츠버그 부근에서 열린 미국 창조과학회 연례회의에 참석하여 미국의 많은 과학자들이 젊은 지구의 창조론을 지지하는 과학 기술 논문을 발표하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3]. 또한 이 학회에 참석한 미국 침례교회 목사님의 진화론이 성경을 믿는 미국 대학생들의 믿음을 허물어뜨리고 있는 예를 듣고 다시 한번 놀랐다(note; 고등학교까지 신실하게 믿음을 지켜온 학생들이 대학교에 들어가 대학을 졸업할 즈음에는 거의 모두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무신론자가 된다는 요지였다).

간단하게 살펴본 바와 같이, 국내외적으로 지금까지 이런 저런 모양으로 갈등과 화해 양면성을 가지고 창조론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진화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기독교 교리의 안팎에서 자기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실정이다[예를 들면, 4].

특히 미국에서 최근에 수행한 대중 여론조사에서 미국 국민의 45-50% 정도가 진화론을 부정하고 창조론을 지지할 뿐만 아니라, 인류가 약 10,000년 전에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다고 믿는다고 밝혀졌으며[5], 많은 과학자들이 6일 동안의 창조를 지지한다는 서적도 출판되고 있다[6].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창조론과 진화론의 본격적인 대결은 지금부터라는 견해도 만만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위에서 창조론과 진화론이 대중과 학생들의 신앙에 미치는 영향을 아주 개략적으로 살펴보았다. 필자는 성경의 창세기가 선언하는 하나님의 천지 창조는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인 교리이며, 21세기 과학 시대에 하나님을 올바로 이해하고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견지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창조과학회의 도움을 받아 여러 교회에서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한 세미나를 3 시간 정도 베푼 후 설문지에 직접 응답한 402명의 응답 내용을 교회의 직분별, 연령별, 성별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본 논문에서는 그 분석한 내용을 소개하고 교회가 어떻게 진화론과 진화론적인 세계관에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기로 한다.  


Ⅱ. 대상 및 설문 조사 방법

설문 응답자의 구성을 그림 1에 나타내었다 (note; 본 논문에서는 그림은 생략하였다. 그림은 논문 발표 시에 슬라이드로 제시될 것이다).


Ⅲ. 자료 처리

각 질문 문항에 대한 응답은 통계적으로 처리하였으며 표본오차는 96%의 신뢰수준에서 ±4.9%이다.


Ⅳ. 세미나 내용과 설문지 내용

창조와 진화에 대한 내용을 주제로 한 9개의 테마로 3 시간가량 진행되었다. 9가지의 주제 테마는 다음과 같다: 1) 기원의 중요성 2) '창조”와 '진화”란 무엇인가? 3) 진화-증명된 것인가 아닌가? 4) 진화에 반대하는 이유들 5) 방사선 측정으로 지구의 나이를 측정할 수 있는가? 6) 노아홍수와 지질학상의 기둥 7) 공학적인 유사 8) 하나님 창조 증거의 요약 9) 기계 공학적인 완벽한 설계; 지적인 설계의 증거.

설문지의 내용은 객관식으로 응답하는 28 개의 문항으로 이루어졌다(note; 구체적인 문항내용은 본문에서는 생략함).


Ⅴ. 응답 결과 분석

창조론적인 세계관과 진화론적인 세계관에 입각하여 이루어진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응답 결과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Ⅴ-1. 목회자의 세계관

(1) 목회자의 32%는 창조론에 대한 과학적인 내용을 듣거나 읽은 적이 없다. 그러나 응답한 목회자의 100%가 하나님의 천지 창조를 믿는다고 응답하였다.

(2) 그러나 놀랍게도 응답자의 30% 정도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70% 정도 받아들이고 있다고 응답하였다. 유신론적 진화론이 이미 많은 목사님들에게 침투되어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목회자들의 이런 현황은 유신진화론적인(note; 유신진화론에 대한 설명은 논문 발표 시에 요약될 것임) 패러다임에 기인하는 세계관으로 성경의 진리를 왜곡하여 전파할 우려가 있다고 사료된다.

(3)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은 외양적인 능력에 따라 상대적으로 비교하여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장 인상 갚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것은 한국의 문화가, 진화론적인 패러다임에 기인하는 세계관과 일맥상통하는, 외양적인 면이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이해된다.

(4) 창조론과 진화론은 모두 과학이 아니라 신앙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된 사항으로 응답한 목회자는 가가 25%와 11% 정도로 나타났다.

(5) 70% 정도는 젊은 지구의 나이에 동의하고 있으며, 지구의 나이를 46억년 정도로 응답한 목회자가 약 39% 정도였다. 그러나 응답자가 모두가 노아의 홍수가 지구 전체를 덮었다는 것을 역사적인 사실로 인식하고 있었다. 지구의 나이에 대한 응답은 진화론적인 세계관에 입각하여 보도하는 메스컴의 영향이 지대한 것으로 사료된다.

(6) 최근 국내외 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생명 복제에 대한 응답은 우리 교계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응답한 목회자의 약 68%정도는 생명복제를 반대하고 있으나, 32% 정도는 이 문제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을 표시하고 있지 않다.

(7) 응답한 목회자들은 모두가 세상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고 응답하고 있다. 응답자의 32%는 성공의 기준을 권력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상당히 의외로운 결과로 받아들여졌다.

(8) 다른 하나의 놀라운 사실은 응답자의 30% 정도가 과학의 능력이 하나님의 능력보다 더 크다고 답하고 있다는 것이다.       


Ⅴ-2. 성도들의 세계관

(1)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전연 믿지 않는 응답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평신도 중 40% 정도는 천지 창조를 100% 믿지 않고 40-70% 정도 믿는다는 응답을 하고 있다. 이 응답 결과는 1993년 미국인을 상대로 '인류의 기원”에 대한 설문 조사에서 유신진화론을 믿는 사람들의 숫자와 비슷한 결과이어서 흥미롭다[7].

본 연구의 결과에서는 20 세 이하와 21-35세의 응답자 중 각각 35%, 15% 정도가 유신 진화론적인 응답을 택하였다. 나이가 적은 성도일수록 진화론적인 패러다임에 기인한 세계관에 큰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여성(20%)보다는 남성(28%)이 하나님의 천지창조에 대한 의구심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평신도의 36%, 일반봉사자의 10% 정도는 천지창조를 40-70% 정도만 신뢰하고 있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천지창조는 기독교의 '뿌리”이다. 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성경에 기술되어 있는 대로 믿지 않은 상태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고 특히 나이가 어릴수록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결과는 공교육은 물론이고 교회교육도 심각한 상태에 이르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라 사료된다.

우리나라의 건전한 미래목회를 위하여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진화론적인 패러다임에 기인한 세계관을 창조론적인 패러다임에 기인한 세계관으로 전환 시켜줄 수 있는 대책이 시급히 간구되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2)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전연 믿지 않는다는 응답자의 수가 약 70%정도인 것은 1963년 미국 북가주의 교인 중 47% 정도가 진화론을 반대했다는 조사에 비하여 상당히 고무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직분자 중 약 5%는 진화론을 100% 믿는다고 응답하여 조사자를 놀라게 하였다. 직분자의 100%가 창조론을 믿는다는 응답을 기억하면 유신론적 진화론을 믿고 있는 성도들이 많은 것이 밝혀진 것이다.

남녀로 구분한 응답의 결과는 남녀  모두 약 60-70%는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나 30-40%는 진화론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을 하고 있다. 20세 이하의 40%는, 그 정도(程度, degree)는 다르지만, 진화론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결과는 기독교인 대학생 중 40-58%가 진화론은 과학적인 증거가 있다고 응답한 결과와 비슷하다[7]. 또한 이 결과는 우리나라 고등학교 학생 67%(미국인 70%, 한국생물교사 43%) 정도는 생명의 기원에 대해 창조론과 진화론을 모두 가르쳐야 한다는 응답과 유사한 결과이다[9].

성도들 중,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유신진화론자가 되어 있는 것 같다. 이런 가슴(마음)에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역사와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구원 사역, 성령의 오심,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메시지가 온전하게 전해지겠는가? 이것은 한국교회의 미래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한국교회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3) 일등만이 각광을 받아야 한다는 사고를 창조론적인 사고로 응답한 경우가 전체적으로 20%정도 되었다. 하나님은 이등도 기억하신다는 사실을 성도들에게 주지시켜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4) 나이와 남녀에 크게 관계없이 22%의 정도의 성도들(직분자 20%, 일반봉사자 28%, 평신도 17%)에게는 적자생존의 개념이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들의 생활에 역사하심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은 나이가 작을수록 크게 나타났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자기가 지고 가겠다는 것이다. 성도의 30% 정도는 내 힘과 내 능력으로 살아가겠다는 진화론적인 패러다임에 기인하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5) 20% 내외의 성도들이 인물과 사회적인 지위를 보고 잘난 사란과 못난 사람을 구분한다고 응답을 하고 있고, 나이가 젊을수록 그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 응답의 책임의 일부는 교회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라 사료된다.

(6) 모든 연령, 남녀 구별 없이, 일반봉사자와 평신도의 80% 정도는 믿음을 가장 중요시하고 있으나 20% 내외가 하나님께서 행실로 사람을 평가하신다고 응답하고 있다.

(7)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 중에서 성도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자유의지, 자연, 가정, 교회의 손서로 응답하였다. 성도들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크게 간섭하지 않으면서 굳건한 신앙생활을 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 패러다임이 창조론적인 패러다임의 중요성이 입증 된 것으로 사료된다.

(8) 성도들의 50% 이상이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수십억 년을 지구의 나이로 응답하고 있다. 이 경향은 젊을수록 크게 나타나고 있으며 20세 이하에서는 70% 정도가 진화론적인 응답을 하고 있다. 공교육에서 실시하고 있는 진화론적인 패러다임에 의한 교육의 영향이 그대로 들어나는 결과이다. 이 결과에 대해서는 교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교회에서 젊은이들에게 창조론적인 패러다임에 대한 세계관을 함양시키지 못한 결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진화론적인 패러다임에 기인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성경 말씀이 진실되게 증거될 수 없다. 모래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

(9) 20세 이하의 젊은이들 중 20% 정도가 돈을 성공의 기준으로 응답하고 있음을 교회는 주목해야 한다. 지금 교회의 많은 젊은이들이 진화론적인 세계관으로 자기의 주위를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음을 직시하고 창조론적인 패러다임에 기인하는 세계관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시키는 일에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여서는 안 된다 생각된다.

(10) 20세 이하 32%, 21-35세 72%, 36-50세 50%, 51세 이상 57% 정도가 창조론에 대한 과학적인 내용을 듣거나 읽은 적이 있다는 응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진화론적인 패러다임에 기인한 세계관에 의해서 크게 영향을 받고 있음이 분명하게 때문에 창조론을 듣게 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될 것으로 사료된다. 듣게 하고. 이해시키고, 믿게 하여, 진화론적인 패러다임에 기인하는 세계관을 극복하고 승리를 이루게 해야 할 것이다.      


Ⅵ. Concluding Remarks

위 5절에서 논의한 사항은 논의이자 결론적인 사항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따로 결론을 제시하지 않기로 한다(note; 논문 발표 시 요약한 결론을 말씀드릴 것임). 단 여기에서는 본 논문과 관련된 미래의 연구 방향과 테마를 정리해 보기로 한다.

(1) 진화론적인 패러다임에 기인한 세계관의 영향이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여러 각도에서 분석하여 목회에 적용하여야 한다.

(2) 창조론적인 패러다임에 기인한 세계관과 진화론적인 패러다임에 관한 세계관으로 목회자들의 설교를 분석하여 진화론적인 설교 내용을 지양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체계적인 연구가 수행되어야 한다.

(3) 과학과 신학을 통합에 관한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연구가 수행되어 21세기 과학시대의 목회자들이 목회 현장에서 응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4) 감성을 터치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젊은이들에 대한 목회 패러다임을 이성을 올바로 세우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목회 패러다임으로 전환시키는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시급하다고 생각된다.

(5) 진화론적인 목회 패러다임이 창조론적인 목회 패러다임으로 전환되는 추이를 지속적으로 모니터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하도록 한다.


Ⅶ. 참고 문헌 

[1] Dixon, Thomas, 'Science and Religion; a Very Short Introduction', Oxford, 2009.
[2] ibid, pp. 87-93, 'Varieties of creationism'.
[3] 미국 피츠버그 미국 창조과학회 학술대회, 2003.
[4] Bickel Bruce and Jantz Stan, 'Creation & Evolution 101, A guide to Science and the Bible in Plain Language', Harvest House Publishers, Eugene, Oregon USA, 2001.
[5] Dixon, Thomas, 'Science and Religion; a Very Short Introduction', p.95, Oxford, 2009.
[6] John f. Ashton, F. John(edited), 'in six days with fifty scientists choose to believe in creation', Master Books, April 2009(7th printing)
[7] Gallup poll, 1993.
[8] 이웅상, 이형복, ”대학에서 창조과학 가르치기”, 창조 11-12월호, pp. 4-12, 2002.
[9] 조정일, ”도마 위에 오른 진화론 교육”, 창조 7-8월호, p. 15, 2002.


출처 - 2009. 10. 10. 한국창조과학회 학술대회

미디어위원회
2009-10-07

도킨스의 최근의 책 : 지상 최대의 거짓말 

(Dawkins' Latest Book : The Greatest Lie on Earth)

by Brian Thomas, Ph.D.


     오늘날 아마도 가장 유명한 진화론자인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이 달에 서점에 등장할 새로운 책을 한 권 발간했다. ”지상 최대의 쇼(The Greatest Show on Earth)”라는 제목의 책은 그의 기준으로 독창적이고 확신하는 진화론 이야기를 선보일 예정으로 있다.

”진화론은 하나님을 아무런 할 일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책의 발간을 앞두고 도킨스는 월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한 기사에서 이렇게 썼다. 그는 놀랄만한 범신론적 믿음을 드러내면서, ”생명체는 물리 법칙들이 만들어낸 가장 놀랍고 아름다운 산물이다”라고 주장하였다.[1]

하지만 그의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들이 동일한 물리 법칙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일까? 가디언 지에 실린 한 호의적인 리뷰글은, ‘지상 최대의 쇼’는 ”다시 한번 설명가로서 도킨스의 노련함을 입증하였다”고 했지만, 그 책에서 다루고 있는 과학은 ‘꽤 표준 재료’들을 대부분 재탕하고 있었음을 지적하고 있었다.[2] 

월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도킨스의 글도 물리 법칙들이 어떻게 우연히 자연발생적으로 생명체를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에 관해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를 놓치고 있었던 것처럼, 그의 새 책도 그가 전파하려는 진화론을 부정하는 수많은 강력한 증거들을 설명하는 데에 실패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그 책은 진화론이 주장하는 장구한 시간 동안의 끊임없는 변화와 일치하지 않는, 많은 생물 종들의 변화정지(stasis) 문제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2]   

생명체의 탄생에 있어서 물리적 힘에 호소하고 있는 도킨스의 주장은 허공을 치고 있는 것이었다. 물리적 상호 작용들은 언어(language)라고 불리는, 생명체의 특징인 암호화된 생물학적 정보(coded biological information)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도킨스 자신도 ”생명체는 디지털 정보들이 조금씩 조금씩 조금씩 쌓여서 이루어진다”고 인정했었다.[3] 하지만 그러한 정보가 자연적으로 우연히(지성의 개입 없이) 발생했다는 그 어떠한 관측 사실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도킨스는 물리학이 언어를 발명했음을 보여주는 단 하나의 사례도 제시하는 데에 실패하고 있었다. (참조 : Was Dawkins Stumped?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5712/)

물리학에 대한 연구들은 물질들의 상호작용을 설명하고 있다. 음성 언어처럼, 생물학적 언어도 물질들의 존재 없이도 ‘한 요소도 제거 불가능한 복잡성(irreducibly complex)’으로 되어있다. 생물학적 언어는 기호들, 기호들의 의미들, 해석을 위한 문법적 구조 등을 갖추고 있다. 이들 3가지의 기본적 특성들 중 하나라도 제거된다면, 그 정보 시스템은 소실된다. 물리학은 기호나 문법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러므로 물리학은 생명의 기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생명체는 암호화된 정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물리학이 부적격자라면, 그러면 도대체 무엇이 그리고 누가 생명체에 들어있는 정보의 진정한 저자가 될 수 있는 것일까?[4] 만약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면, 그리고 그 저자가 성경의 하나님이라면, 그러면 사도 요한이 기록한 것처럼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1,3)라는 말씀은 신뢰될 수 있는 것이다.

도킨스의 말 중에서 한 가지 맞는 말은, 진화론은 하나님을 아무런 할 일 없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화론적 생명의 기원이나, 단세포에서 복잡한 생물로의 대진화는 관측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진화론은 기본적인 정보과학뿐만 아니라, 진화론과 맞지 않는 고생물학적 증거들을 무시하고 있다. 그것은 일종의 광대극(farce)이다. 관측되는 생물학적 정보들은 하나님이 태초부터 많은 일들을 하셨음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References

[1] Dawkins, R. Man vs. God. The Wall Street Journal. Posted on wsj.com September 12, 2009, accessed September 16, 2009.
[2] Fortey, R. The Greatest Show on Earth by Richard Dawkins. The Guardian. Posted on guardian.co.uk September 5, 2009, accessed September 16, 2009.
[3] Dawkins, R. 1995. River Out of Eden: A Darwinian View of Life. New York: Basic Books, 19.
[4] Former atheist Antony Flew concluded that God was that author. See Thomas, B. Why Did Life Evolve Beyond Bacteria? ICR News. Posted on icr.org December 5, 2008, accessed September 16, 2009. 

 

*참조 : Darwinopterus v Dawkins : Pterosaur ‘missing link’ poses problems for a Dawkins’ evolutionary story in The Greatest Show on Earth
http://creation.com/richard-dawkins-v-darwinopterus

첨단과학으로 무장한 진화론, 다시 신의 존재를 묻다 (2009. 12. 11.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3918898#home

도킨스, 아직도 신을 믿는 이들을 꾸짖다 (2009. 12. 10.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culture/2009/12/10/0901000000AKR20091210151600005.HTML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4965/ 

출처 - ICR, 2009. 9. 23.

미디어위원회
2009-06-13

대중문화는 진화론을 과학으로 선전하고 있다. 

(Pop Culture Parades Darwinism as Science)

Christine Dao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은 1859년에 발간한 ‘종의 기원’에서 생물체들의 기원을 설명해보려고 시도하였다. 150여년 후에, 자연선택에 의해서 수정된 그의 이론은 진행되는 진화가 결코 관측된 적도 없고, 논란의 여지가 없는 증거들로 지지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기적적으로 과학적 방법론과 실험적 연구법과 동등하게 생각되고 있다. 다윈의 진화 철학은 과학교육의 커리큘럼을 점령해 버렸을 뿐만 아니라, 오락 분야와 대중문화에서도 확고한 자리를 잡고 있다.   

MythBusters(호기심 해결사,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방영)의 아담 세비지(Adam Savage)는 지난 9월에 Popular Mechanics 지에서 말했다 : ”진화론 대 창조론을 다루고 있는 신문들은 종교를 가지고 과학을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다.”[1] MSNBC’s Hardball의 크리스 매튜(Chris Matthew)는 창조론에 관한 그의 믿음에 대하여 한 공화당 의원으로부터 도전을 받았을 때, 그 이슈를 정치적으로 다루었다. 2009년 5월 5일 대중적인 토크 쇼인 The View에서 조이 베허(Joy Behar)는 어린이에게 진화론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아동학대(child abuse)’라고 말했다.

고생물학자인 메리 슈바이처(Mary Schweitzer)가 몬태나 주에서 발굴한 공룡 티라노사루스 렉스(Tyrannosaurus rex)의 뼈들에서, 추정되는 6800만년 전이라는 연대가 사실이라면 오래 전에 분해되었을 연부조직과 적혈구들이 남아있는 것을 발견하기 1년 전인 1990년에, 마이클 크라이튼(Michael Crichton)은 ‘쥐라기 공원(Jurassic Park)’을 발간했었다.[3]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는 1993년에 크라이튼의 책을 소재로 블록버스터 영화를 히트시킴으로서 오래된 연대 이론을 확산시켰다.

영국의 모터 쇼인 Top Gear의 참가자들도 새로운 스포츠카의 선전에 ‘진화’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자동차의 진화, 최고로 진화된 자동차...등등. 미츠비시 모터스는 1992년 이후로 ‘창기병의 진화(Lancer Evolution)’, 또는 에보(Evo) 라고 불리는 스포츠카를 제조해오고 있다.

진화가 실제로 일어난 것인지에 관한 토론과 논란이 과학계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논란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 자체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서) 진화 가설은 대대적으로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홍보되고 선전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만물이 자연적으로 저절로 우연히 생겨났다는 가설은 오늘날 문화가 되었고, 그러한 이론은 증거들의 결여에도 불구하고 과학이 되었으며, 창조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비과학적인 종교적 맹신자로 매도되고 있으며,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의 글을 읽어보지도 않고, 교회와 정부는 분리되어야한다고 주장되고 있다.[4]  

종의 기원이 출간되기 전후에, 다윈은 그의 이론을 변호해주고 홍보해줄 다윈의 불독(bulldogs)들인 토마스 헉슬리(Thomas H. Huxley)와 다른 친구들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날 진화론은 그 이론의 근간을 부정하는 수많은 새로운 증거들과 연구들이 계속 발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을 홍보해주는 헐리우드와 대중문화의 도움을 받아 지속적으로 선전되고 있다.

이제 진화론은 무신론자들의 일종의 종교가 되었고, 과학은 과학 없이도 선전되는 상태가 되었다. 무신론자들에게 다윈은 과학적 사실과 관계없이 숭배되어야 하는 것이다.



References

[1] Dao, C. MythBuster Mistakes Evolution for Science. ICR News. Posted on icr.org November 13, 2008, accessed May 12, 2009.
[2] Interview with Rep. Mike Pence on Hardball with Chris Matthews, May 5, 2009.
[3] Fields, H. May 2006. Dinosaur Shocker. Smithsonian.
[4] The concept of ”the 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 was advocated to protect religious rights (i.e., the church) from governmental control (i.e., the state), not to bar religion from the public arena. The phrase was first used by Thomas Jefferson in his 1802 letter to a group that called themselves the Danbury Baptists. The text of the original letter is available on the Library of Congress website at www.loc.gov. Despite popular belief (and in part, distorted education and bad press), the phrase does not appear in the U.S. Constitution’s First Amendment, which reads, ”Congress shall make no law respecting an establishment of religion, or prohibiting the free exercise thereof.”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4640/

출처 - ICR News, 2009.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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