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RARY

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창조설계

뇌는 의식이 아니다 : 사람의 마음은 어떻게 있게 되었는가?

미디어위원회
2023-08-20

뇌는 의식이 아니다

: 사람의 마음은 어떻게 있게 되었는가?

(The Brain Is Not Conscious)

David F. Coppedge


    의식은 뇌를 사용하지만, 뇌의 물리적 물질은 이성을 설명할 수 없다.


    영혼(souls)은 의식이 있지만, 뇌(brain)는 그렇지 않다. 뇌는 시계가 오전 8시 39분이라는 개념을 인식하는 것 이상으로 자신을 인식하지 못한다. 컴퓨터가 실행 중인 프로그램을 이해하는가? 아니다, 전자(electrons)는 단지 마음(mind)의 지시에 따라 뇌를 통과할 뿐이다.

신경과학자인 크리스토프 코흐(Christof Koch)는 내기에서 패배한 후, 댓가를 지불했다. 그는 철학자 데이비드 찰머스(David Chalmers)에게 고급 포르투갈 와인 한 상자를 사줬다. 왜냐하면 25년 전 그는 찰머스에게 "2023년까지 뇌의 뉴런이 의식(consciousness)을 생성하는 메커니즘이 발견될 것"이라고 내기를 했기 때문이다. "메커니즘"이라는 핵심 단어에 집중해 보라. 의식은 물질에 의해 수행되는 한 메커니즘일까? 시계가 분침이 움직일 때, 오전 8시 39분을 이해하는 것과 같은 원리일까? 바위는 바위임을 인식하고 있을까? 또는 물이 젖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을까? 코흐의 회백질은 2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 내기에 지고, 그 댓가를 지불하는 도덕적 정직성을 인식하고 있을까?

 

수십 년에 걸친 의식에 대한 내기가 끝났다 - 철학자 대 신경과학자 1 : 0 (Nature News, 2023. 6. 24). 마리아나 렌하로(Mariana Lenharo)는 이 내기에 대해 보도하면서, 코흐와 찰머스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었다. 의식을 설명하기 위한 두 경쟁 이론인 '통합 정보 이론'(IIT, integrated information theory)이나, '전역 작업 공간 이론'(GNWT, global network workspace theory)의 의미를 이해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의식을 설명하기 위한 실험에서, 두 이론 모두 패자이기 때문이다. 코흐가 유물론으로 설명할 수 없었던 '의식의 어려운 문제'를 이해하려면, 2013년 유튜브 동영상에서 챌머스가 로버트 쿤(Robert Kuhn)에게 설명하는 것을 시청해보라.

더 많은 실험이 계획되어 있다고 렌하로는 말한다. 코흐는 여전히 과학이 의식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었지만, 25년을 더 기다릴 수는(나이를 고려하여)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다른 실험도 진행 중이다. 템플턴 재단 설립에 관여한 코흐는 동물 모델의 뇌에서 IIT와 GNWT를 테스트하는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찰머스는 의식에 대한 두 가지 다른 가설을 평가하는 또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경쟁 이론의 지지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독립적인 연구자들이 자신의 예측을 테스트하는 것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드문 일이라고 멜로니(Melloni)는 말한다. "그들에게는 많은 용기와 신뢰가 필요했다." 멜로니는 이와 같은 프로젝트가 과학 발전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잘못된 전제하에서 실험을 수행한다면, 과학은 발전하지 않을 것이다. 과학은 제자리걸음을 할 것이다. 바쁘게 일한다고 반드시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마치 둥근 방에 있는 바보가 구석에 동전이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는 지칠 때까지 이리저리 뛰어다녔지만, 25년 동안의 노력은 칭찬받지 못했다.

여기서 '용기'와 '신뢰'는 개념적 영역에서 도덕적 가치의 사전 존재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 주목하라.

 

철학자가 승리했다 : 뇌에 의식의 자리는 없었다(Mind Matters, 2023. 6. 26). 지적설계를 지지하는 데니스 오리어리(Denyse O’Leary)는 이 패배를 이원론(정신과 물질은 별개의 실체라는 견해)의 승리라고 기뻐하고 있었다. 그녀는 Nature 지의 기사에서 몇 가지 용어를 설명하고, 다른 경쟁 이론에 대해 논의하며, 신경과학자 마이클 에그너(Michael Egnor, 또 다른 이원론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유물론자들이 의식을 정의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

 

베르너 폰 브라운(Wernher von Braun)은 인간을 "동물의 몸에 던져진 영혼(souls cast in animal bodies)"이라고 묘사했다.

25년 전, 세속적 신경과학자들은 신경과학의 발전으로 종교가 반박될 것이라고 약속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들에게 몇 년을 더 주어야 할까?

오리어리의 분석은 환영할 만하지만, 그녀는 (적어도 그녀의 기사에서) 의식에 대한 모든 유물론적 이론의 근본적인 결함, 즉 자기 반박을 다루지 않았다. 단어를 사용하는 유물론자들은 그들이 부정하는 바로 그것, 즉 비물질적인 개념의 의미를 사용하고 있었다. 의식을 정의하려는 시도조차도 의식을 전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바위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유물론자들은 소설을 설명하기 위해서, 줄거리가 종이와 잉크에서 나온다고 말하는 사기꾼과 같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의미(meaning)는 매체(medium)와는 독립적이다. 영화는 TV 화면의 깜박이는 픽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구성한 마음(mind)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모든 경우에서 의미는 비물질적인 마음의 산물이다. 월드 뉴스 그룹(World News Group)에서 코넬리(Connally)의 훌륭한 에세이 "단어란 무엇인가?(What Are Words?)"를 다시 읽어보라.

오리어리는 코흐와 찰머스의 견해는 그것들 스스로 반박하고 있기 때문에, 반박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한 문단에서 코흐와 찰머스를 모두 반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철학을 설명하려는 한 광대(clown)에게 진지한 관심을 기울일 수 있을까? 광대와 코흐의 유일한 차이점은 그들 무지의 정교함에 있다. 클라인 병(Klein bottle, 뫼비우스 띠의 3차원 버전)의 모퉁이에서 동전을 찾고 있는 코흐와 찰머스의 글을 읽을만한 가치는, 의식을 창조하신 창조주를 부정하려는 철학의 절망을 인식하는 데에 있다.

창세기 2:7절은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dust from ground)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the breath of life)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a living creature)이 되니라"고 말씀한다. 그것은 이원론(dualism)이다. 흙이 의식을 갖게 된 것이 아니라, 아담의 영혼(soul)이 의식을 갖게 된 것이다. 의식(consciousness)은 먼지의 "발생적 속성"이 아니다.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이 믿고 있는 것처럼, 먼지가 이미 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아담이 살아나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새로 창조된 감각을 통해 질감을 경험하고, 창조주에게 의미 있는 말로 응답할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숨결, 즉 지적이시고, 지혜로우시고, 창조적이시며, 스스로 존재하시고, 자각하시는 분, 즉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있는 자(“I AM”, 출 3:14)로 말씀해주신 분이 생기를 불어넣으셨기 때문이다.

물질주의(materialism)는 의식을 얻을 수 없다. 그리고 성경이 아닌 다른 어떤 철학에서도 의식을 얻을 수 없다. 불신자들의 정교한 클라인 병에 갇혀서, 길을 잃지 말라. 그 밖으로 나와서 그 안에 있는 광대들이 지쳐가는 모습을 지켜보라.

 

*관련기사 : 뇌는 어떻게 의식을 만들어낼까? (2023. 8. 11. 주간조선)

http://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27524

의식의 기원, 철학·신경과학자 25년된 내기의 결말 (2023. 8. 11. Science Monitor)

http://scimonitors.com/%EC%9D%98%EC%8B%9D%EC%9D%98-%EA%B8%B0%EC%9B%90-%EC%97%B0%EA%B5%AC-%EC%B2%A0%ED%95%99%C2%B7%EC%8B%A0%EA%B2%BD%EA%B3%BC%ED%95%99-%EC%88%98%EC%8B%AD%EB%85%84-%EB%82%B4%EA%B8%B0-%EA%B2%B0%EB%A7%90/

 

*참조 : 맹목적인 물질이 진화하면 ‘마음’이 만들어질까?

https://creation.kr/Worldview/?idx=1876303&bmode=view

이성과 도덕성이 진화될 수 없는 이유

https://creation.kr/Debate/?idx=1293670&bmode=view

진화론이 설명할 수 없는 4가지 관측 사실.

https://creation.kr/Debate/?idx=1757512&bmode=view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

https://creation.kr/Genesis/?idx=13683481&bmode=view

이타주의와 공생관계는 진화를 거부한다

https://creation.kr/NaturalSelection/?idx=1290266&bmode=view

사람과 침팬지의 뇌는 완전히 달랐다.

https://creation.kr/Apes/?idx=1852141&bmode=view

인간 진화론의 허구 : 인간 뇌의 진화는 하나의 특별한 사건이었다?

https://creation.kr/Mutation/?idx=1289732&bmode=view

생물의 뇌들이 모두 우연히? : 딱따구리, 초파리, 사람의 뇌

https://creation.kr/animals/?idx=3069629&bmode=view

인지지도와 뇌의 경이로운 복잡성

https://creation.kr/Human/?idx=15548660&bmode=view

뇌는 논리적으로 정보를 정리한다.

https://creation.kr/Human/?idx=11129177&bmode=view

과학과 과학주의는 서로 다른 것이다.

https://creation.kr/Science/?idx=10454917&bmode=view

 

출처 : CEH, 2023. 6. 27.

주소 : https://crev.info/2023/06/the-brain-is-not-conscious/

번역 : 양승원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26길 28-3

대표전화 02-419-6465  /  팩스 02-451-0130  /  desk@creation.kr

고유번호 : 219-82-00916             Copyright ⓒ 한국창조과학회

상호명 : (주)창조과학미디어  /  대표자 : 박영민

사업자번호 : 120-87-70892

통신판매업신고 : 제 2021-서울종로-1605 호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26길 28-5

대표전화 : 02-419-6484

개인정보책임자 : 김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