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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창조설계

창조의 증거로서의 설계에 의한 논증

창조의 증거로서의 설계에 의한 논증


1. 들어가며 

어떤 것을 입증하고자 할 때 일반적으로 두 가지 접근 방법이 있다. 직접적인 접근방법과 간접적인 접근 방법이 그것이다. 간접적인 접근 방법이라 하면 결론의 부정을 가정하고 모순을 이끌어내는 귀류법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창조를 입증하는 데 있어서 귀류법이라고 한다면 창조가 없었다고 가정할 경우, 즉 무목적적인 진화를 가정할 경우 필연적으로 내적인 문제들 사이에서의 모순이나 외적인 증거와의 불일치를 가져온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는 창조과학운동이 주력해왔던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와 함께 창조에 대한 직접적인 접근 방법을 취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롬 1:20)

하나님께 만드신 만물들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반영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그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분명히 보여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 하게 될 시도는 이것이다. 만물에 깃들어 있는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보임으로써 비록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창조를 증명할 수는 없을지라도 아무도 핑계를 댈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이미 지나간 일, 단 한번 밖에 일어나지 않은 일을 논의하는 데는 근본적인 어려움이 따른다. 재생할 수도 없고 직접 관측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가정하지 않고 논의를 이끌어 나갈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현재 관측 가 능한 사실들만을 가지고 창조를 입증하고자 하였다. 즉 만물에는 그것이 현재 존재하는 방식을 보건대 반드시 설계자(disigner)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 생명의 설계 

…..풀밭을 걸어가다가 〈돌〉 하나가 발에 채였다고 상상해 보자.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거기에 있게 되었는지 의문을 품는다고 가정해 보자.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그것은 항상 거기에 놓여 있었다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답의 어리석음을 입증하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돌이 아니라 〈시계〉를 발견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어떻게 그것이 그 장소에 있게 되었는지 답해야 한다면, 앞에서 했던 것 같은 대답, 즉 잘은 모르지만 그 시계는 항상 거기에 있었다는 대답은 거의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시계는 제작자가 있어야 한다. 즉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선가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의 제작자들이 존재해야 한다. 그는 의도적으로 그것을 만들었다. 그는 시계의 제작법을 알고 있으며, 그것의 용도를 설계했다….. 시계속에 존재하는 설계의 증거, 그것이 설계되었다는 모든 증거는 자연의 작품에도 존재한다. 그런데 그 차이점은 자연의 작품쪽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또는 그 이상으로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것이다.....1) - William Paley 

19세기 초에 자연신학자 윌리엄 페얼리는 필자가 이 글에서 하려는 시도와 본질적으로 같은 시도를 하였다. 그는 당시에 알려져 있는 생물학적 지식들에 기초하여 생명체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복잡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분자생물학이 발달해 있는 지금 우리가 알 수 있는 생명체의 복잡함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사람의 몸에는 대략 1015(1억×천만) 개의 세포가 있다. 그리고 하나의 세포는 대략 1012(1조) 개에 이르는 원자들을 포함하고 있다. 물론 세포에 따라 크게 다를 것이나 정확한 숫자는 중요치 않다. 이렇게 거대한 구조물이 분자 수준에서부터 얼마나 정밀하게 작동하는지 살펴보면 정말 놀랍기 그지 없다. 여기다 예를 들기는 쉽지 않겠지만 생체분자들의 작동 메커니즘은 정말 감탄을 절로 자아낸다. 

리처드 도킨스는 ”눈먼 시계공” 이라는 제목의 아주 유명한 책을 썼다. 그 책의 앞부분에서 도킨스는 생명체가 참으로 복잡하고 놀라우며 그 기원이 특별한 설명을 필요로 한다는데 대해서 페얼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그 특별한 설명으로서 그가 제시하는 것은 자연선택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는 맹목적이며 무의식적이고 무목적적인 누적적 자연선택으로 생명체의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문제를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자연선택이 설명하는 바가 창조로 설명되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무슨 말인지 설명하자면 이렇다. 자연선택에 따르면 가장 잘 적응한 것이 살아 남는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생명의 놀라운 적응성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창조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당연히 가장 잘 적응될 형태로 생명을 만드셨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생명의 놀라운 적응성이 역시 설명된다. 이런 점에서 설령 실제로는 창조의 결과라 할지라도 거의 다 자연선택에 의해서 잘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그 둘이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마땅히 그 차이점에 대해서 논해보아야 하겠으나 그러면 양이 너무 많아질 것 같다. 그것은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좀 다른 쪽에 초점을 맞추어 보겠다. 그것은 말하자면 자연선택의 시작에 관한 것이다. 

DNA는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화학물질이다. DNA에 관하여 특기할 만한 점 몇 가지를 들어 볼 수 있겠는데, 첫째로 자기복제이다. 짝을 이루고 있는 두 가닥에 동일한 정보가 들어 있어서 각각의 가닥이 역시 동일한 정보가 들어 있는 새로운 가닥들을 만들어 낼 수가 있다. 또 한 가지 특기할 점은 화학적 안정성이다. RNA와 DNA는 산소가 하나 있고 없고 하는 차이인데 그 안정성에서는 매우 큰 차이가 난다. RNA는 비교적 불안정하여 쉽게 깨어지는데 비해 DNA는 몹시 안정한데 이는 각각의 역할에 완전히 부합하는 것이다. 이렇게 DNA는 유전정보를 저장, 보관, 복제하기 위한 목적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참으로 놀라운 설계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위의 자연선택과 관련하여 생각해보면, 생체에는 DNA 복제에 관여하는 효소들이 있는데, 이 효소들은 DNA 없이 존재할 수 없고 DNA는 이 효소들 없이 복제되지 않는다. 기본적인 자기복제 체계가 없이는 자연선택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눈먼 시계공' 이 DNA를 설계할 수는 없다. 

물론 여기에 대한 반론도 있다. 그레이엄 케언즈 스미스는 DNA가 최초의 자기복제체계가 아니며 더 단순한 자기복제 체계(점토)로부터 진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2) 여기에 대해 자세히 다루기는 어려우나 이 점은 확실한 것 같다. 무신론(또는 자연주의)의 입장에서는 복잡한 구조의 기원을 설명하는데 자연선택 외에는 다른 가능성이 없다. 따라서 결국 어떤 설명이든 자연선택으로 환원될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자연선택이 기능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은 최초에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었겠는가? 우연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스미스의 견해는 그 우연의 가능성을 조금 높이고 자연선택의 줄을 좀 더 길게 한 것에 불과하다. 생명체의 복잡한 구조의 기원으로서 자연선택은 창조의 대안으로 제안되었고, 수많은 진화론자들의 노력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반박하는 일은 간단치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한 논의는 아마도 이 글의 범위를 넘을 것이므로 이쯤에서 그만두어야만 하겠다. 그러나 자연선택은 생명체에만 적용될 수 있다. 반면 하나님의 창조는 모든 만물에 해당된다. 그러면 생명체로부터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보기로 하자. 

 

3. 생명을 위한 설계 

지구의 질량, 지자기장의 크기, 대기 조성, 대기의 층상구조, 적절한 알베도(albedo), 기울어진 자전축, 태양과의 거리, 적절한 자전시간 등 대단히 많은 요소가 지구상에 생명체가 사는 데에 적합하도록 대단히 정밀하게 조정되어 있다.

물은 매우 특별한 화합물로서 생명에 반드시 필요하다. 비열, 응고열과 기화열, 열전도도가 모두 커서 생체와 지구의 온도유지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물과 다른 화합물의 여러 수치들을 비교해 볼 때 오직 물만이 지금 물이 하고 있는 열적인 역할에 유일하게 적합하다고 생각되어진다. 뿐만 아니라 4도 이하에서는 냉각하면서 오히려 부피가 팽창하는데 이는 수중생물에게 몹시 중요한 점이다. 강이나 호수의 물이 얼기 시작할 때 0℃의 물이 4℃의 물보다 가볍기 때문에 표면부터 얼기 시작한다. 표면에 생긴 얼음층은 보온 덮개 역할을 하고 그 아래의 물은 쉽게 얼지 않게 된다. 거기에서 수중 생물들은 겨울을 나는 것이다. 만일 물이 아래에서부터 얼기 시작한다면 많은 수중생물들이 겨울을 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물은 유전상수가 상당히 큰데 이는 생체분자들이 어떤 작용을 할 수 있으면서 적절히 안정한 상태로 존재하게 하는 데에 매우 중요하다. 또 물은 매우 큰 표면장력을 갖는데 이는 모세관 현상을 통해 올라갈 수 있는 높이가 높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식물이 물을 빨아들이는 데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편 생명체는 그 성격상 복잡한 구조를 가져야 한다. 그 복잡한 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원소는 오직 탄소뿐이다. 탄소가 없었다면 복잡한 구조들도, 따라서 당연히 생명도 존재할 수 없다. 내게는 탄소화합물들의 다양성과 안정성을 가능케 하는 탄소라는 원소의 특이한 성질이 몹시 비정상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원소가 존재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우리의 존재를 제외하면), 이러한 원소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운 것이다. 물론 그런 세상엔 우린 있을 수 없겠지만, 수많은 탄소화합물들의 특이하고 생명에 이바지하는 성질을 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 존재하는 생명은 기본적으로 탄소의 성질에 의존하고 있다. 

이쯤에서 반론을 다루어야 할 것 같다. 반론은 주로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환경이 생명에 맞추어진 것이 아니라 생명이 자연선택을 통하여 환경에 맞추어졌다는 것이다. 즉 환경이 생명에 잘 맞추어져 있는 것처럼 보일 형태로 생명이 진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반론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생명이 그 환경에 맞게 진화할 수 있다는 것을 함의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적어도 태양계에는 지구이외에는 생명체가 없으며 생명체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어떤 종류의 생명도 결코 맞출 수 없는 환경이 (그런 별이) 많다는 것이다.

두번째 반론은 약한 인류학적 원리(weak anthropic principle)라고 불리우는 것인데 바로 이와 같은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 도입되었다. 그것은 말하자면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크거나 무한한 우주에서 지적 생물이 발달하기에 필요한 조건은, 오직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한정된 특정한 구역에서만 충족된다. 그러므로 이런 구역의 지적생물은 우주 안에서 그의 고장이 그의 생존에 필요한 조건을 충촉하고 있다는 것을 관측해도 놀라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4) 이 점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지구가 얼마나 특별한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구가 충분히 특별해서 우연히 그러한 행성이 존재할 확률이 매우 작다면 약한 인류학적 원리는 충분히 긴 시간이 있으면 우연히 생명이 생길 수도 있다는 주장과 논리적으로 다른 점이 없다. 지구가 과연 충분히 특별한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국지적이지도 않고 생명의 특수한 형태에 의존하지도 않는 측면은 두 반론에 의해서 반박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이러한 측면의 극단적인 예들을 보기로 하자. 

 

4. 설계된 법칙들 

…..만일 우리가 기본 상수값들 중 하나를 바꾼다면 무언가 반드시 잘못되어 우리가 알고 있는바 이 우주가 생명체가 살기에 적절치 못하게 될 것이다. 이 우주는 인간을 위해 설계된 것인가?…5)- John Gribbin & Martin Rees

두 개의 양성자 사이에 작용하는 전기력은 중력의 약 1036이다. 어째서 자연계의 기본적인 힘들이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그래야 생명이 존재할 수 있다. 전기력은 분자수준에서 중요한 힘이고 중력은 아주 큰 스케일에서 중요한 힘이다. (전하가 양전하, 음전하로 나누어져 있어 큰 스케일에서는 모두 상쇄되는 것도 음미해 볼만하다. 전기력은 기본적으로는 작은 수준에서의 작용을 위하여 설계된 듯하다.) 생명은 기본적으로 복잡해야 하고 구조의 기본단위(여기서는 분자 또는 원자)와 비교하여 몹시 커야 한다. 그러나 중력이 너무 강하면 어느 정도의 물질만 모여도 붕괴해버려 태양처럼 되어버린다. 중력이 없다면 태양과 같은 에너지의 원천이 생길 수도 없거니와 물질들은 별을 이루지 못하고 뿔뿔히 흩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 전기력이 중력의 1026배라면? 이 경우에는 태양의 수명이 1년쯤 될 것이다. 강한 핵력은 어떤가? 강한 핵력이 조금만 더 약했다면 오직 수소밖에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강한 핵력은 아마도 복잡한 생명의 구성을 위하여 기본단위의 다양성을 목표로 설계된 것이 아닌가 한다. 강한 핵력 역시 극도로 짧은 거리에서만 작용하도록 하여 전자기력이 중요한 영역에서는 영향을 주지 않도록 되어있는 것이 또한 설계의 묘인 것 같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원자핵이 되어 버렸을 것이다.

양성자와 전자의 질량차이(= 1836 : 1)는 왜 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좀 엉뚱한 질문을 던져보자. 왜 전자는 원자핵에 가서 붙어버리지 않는 것일까? 답은 불확정성 원리이다. 전자에게는 원자핵 만한 크기에 갇혀 있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양성자는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질량이 무겁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자구조는 원자가 identity를 가지면서도 다른 것과 상호작용하면서 어느 정도 스스로 변할 수 있는 여지를 주기 위한 설계일 것이다.

어째서 원자의 에너지는 양자화되어 있는가? 이 질문이 의미하는 바는 왜 양자역학 법칙들이 원자의 에너지가 양자화되도록 세워졌는가 하는 것이다. 만일 전자가 원자핵을 임의의 궤도를 돈다면 같은 원자핵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서로 완전히 같은 원자로 간주될 수 있을까? (이것이 Bohr가 원자 에너지의 양자화를 제안했을 때 가졌던 생각이었다. 그는 어째서 모든 수소원자가 그렇게 완전히 동일한가? 하는 의문을 품었다.) 만일 원자들이 서로 완전히 같지 않다면 어떻게 생명이 자기복제를 할 수 있겠는가?

어째서 공간은 3차원인가? 중력은 거리의 (공간차원-1)제곱에 반비례함이 알려져 있다. 그리고 역제곱 법칙만이 궤도운동을 안정되게 할 수 있다.

소수의 기본 입자들과 소수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생명과 같은 복잡한 존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자연스럽지는 않다. 만일 임의로 법칙을 준다면 절대다수의 경우에 입자들이 한데 뭉치거나, 아니면 균일하게 퍼지기가 쉬울 것이다. 모든 기본 법칙들이 생명의 존재를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라면 무슨 설명을 할 수 있겠는가? 어떤 의미에서든 법칙들을 포함한 거의 모든 것들이 생명이 존재할 수 있게 하는 대단히 잘 조정된 상태로 존재하는 것은 바로 그것(생명의 존재)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5. 맺으며 

”…하나님께서 세상을 아시는 것도 이와 같을 게야. 만드시기 전에 그분 뜻으로 이리저리 재셨을 터이니. 그러나 우리는 이 안에 살기 때문에, 만들어지고 나서 보았기 때문에 그 이치를 알지 못하는 것일 게다.” ”밖에서 보아야 사물을 꿰뚫어 보기에 용이하다는 말씀이신지요?”  ”예술이 창조한 것은 그렇다. 우리의 마음으로 그 일을 이룬 장인의 마음을 짚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의 피조물은 안된다. 그것은 우리 마음과 비슷한 장인의 마음이 빚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6)

뉴턴 이전 시기에는 과학은 반드시 현상의 의미(이유 또는 목적)를 설명해야 했다고 한다.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표하자 만유인력의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므로 그것은 진정한 과학이론이 아니라는 반박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를 우리가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점차 과학자들은 올바르게도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 와서는 현상 또는 존재 양식 또는 법칙들에 어떤 의미(이유 또는 목적)를 부여하는 것이 아주 이상한 일처럼 되어 버리고 말았고, 이유나 목적이 없다고 믿는 경향이 만연해졌다.

이 글에서 여러 수준에서의 설계의 흔적들을 다루었다. 지적인 설계자가 있다는 생각은 여러 수준에서 일관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일관성의 측면에서 개별적인 현상 또는 법칙들에 의미를 일부 추측해 보는 것도 가능했다. 무신론(또는 자연주의)적인 관점도 이러저러한 설명들을 제시하고 있으나 거의 전적으로 자연선택과 우연에 의존하고 있어서 한계가 있다.

물론 '증명' 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서로 다른 수준에서 동일한 목적을 향한 설계가 존재함을 볼 수 있다면 일관된 설계자가 있어야 함을 생각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닐 듯 하다. 설계는 설계자가 있음을 보여준다.

 

 

번역 -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amazement/a4/a4/a4c3.htm ,

출처 - 창조지, 제 116호 [1999. 9~10]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6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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