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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창조설계

생명의 분자적 기초에서 볼 수 있는 설계의 증거 : 눈, 섬모, 편모, 그리고 설계에 대한 이해

생명의 분자적 기초에서 볼 수 있는 설계의 증거 

: 눈, 섬모, 편모, 그리고 설계에 대한 이해


역주: 이 글은 미국 Lehigh 대학의 생화학 교수인 마이클 베히(Michael J. Behe)가 1999년 웨더스필드(Wethersfield) 연구소(미국 뉴욕 소재)에서 강연한 내용을 요약 정리한 글이다. 베히는 최근 그 영향력을 넓혀 가고 있는 '지적설계운동 '(intelligent design movement)의 대표적인 학자로서, 이 분야에 있어 그의 기념비적 저서인 <다윈의 블랙박스>를 통하여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저자가 카톨릭 신자인 관계로 추기경 라칭거(Ratzinger)의 글을 창조론 쪽의 대표적인 글로 인용하고 있으며, 성경적인 내용을 좀 더 강하게 전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순수 과학자로서 종교를 배제하고 어떻게 기원 문제에 새롭게 접근할 수 있는지를 최신의 생화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논리 정연하고 설득력 있게 잘 전달하고 있다. 따라서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으로 믿는다.

 

요소(尿素)와 목적

1828년 독일의 화학자 Friedrich Wohler는 실험실에서 암모늄 시안산염을 가열했을 때 거기서 요소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암모늄 시안산염은 생물체에는 존재하지 않는 무기화학물이지만, 요소는 생물체의 대사분비물이기 때문이었다.

이 일로 Wohler는 비생체물질이 생물체에 의해 생성되는 물질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보여준 첫 번째 사람이 되었다. 그의 실험은 당시까지 존재하던 생물과 무생물 사이의 구분에 대한 믿음을 깨뜨리게 되었고, 더 나아가 모든 생물체에 대한 과학적 연구의 길을 열게 되었다.  

만약 생물체도 바위나 기타 다른 물질과 같이 보통의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면, 과학적인 연구가 가능하다. 실제로 그 후 170년 이상 지난 오늘날, 과학은 생명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DNA의 구조가 밝혀졌으며, 유전암호를 해독하였고, 유전자와 세포, 그리고 전체 생물 개체까지도 복제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과학의 진보는 우주와 생명의 궁극적인 본성에 대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물론 많은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크게 두 개의 반대되는 견해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견해는 아마도 옥스퍼드 대학에서 과학의 대중적 이해를 가르치는 교수로 있는 리처드 도킨스(Richrd Dawkins)로 대표될 것이다. 도킨스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우리가 관찰하는 이 우주는 본질적으로 설계와 목적, 선과 악이 없이 단지 방향성 없는 무관심만 존재할 때에 우리가 볼 것으로 기대되는 성질들을 정확하게 갖고 있다.”1  분명히 이것은 매우 황량한 그러나 심각하게 제안된 견해이다.  

두 번째 견해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hn Paul Ⅱ)의 고문으로 있는 추기경 조세프 라칭거(Joseph Ratzinger)에 의해 대표된다. 약 15년 전 추기경 라칭거는 <태초에: 창조와 타락에 대한 카톨릭의 이해>(In the Beginning: A Catholic Understanding of the Story of Creation and the Fall)라는 제목의 작은 책을 썼는데, 그 책에 아래와 같이 썼다 :

”......진화론과 그 작용기작의 질문으로 직접 가 보자. 미생물학과 생화학의 발전은 혁명적인 통찰을 가져다주었다.....특별히 생물들 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나무(역주: 보통 계통도라고 알려진 것으로 생물간의 유연 관계를 보여 준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진화와 창조모델에 따라 서로 다른 계통도가 있다)가 어떻게 발전하고 새로운 가지가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자연과학의 일이고, 신앙의 문제는 아니다(역주: 여기서 추기경이 어떤 의도로 이런 말을 하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진화냐 창조냐 하는 문제가 신앙과 관련이 없다는 뜻은 아니고, 다만 구체적인 생물 다양성의 작용기작을 연구하는 일은 자연과학에서 다루어야 하는 일임을 강조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우리는 생명창조의 위대한 계획이 우연과 실수의 산물이 아니라고 말할 용기가 있어야만 한다....(그것은) 창조적인 이성을 가리키고, 창조적인 지성을 보여 준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오늘날 더 밝고 눈부시게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새로운 확신과 기쁨을 가지고 인류는 정말로 하나님의 계획이었으며, 오직 창조적인 지성이 그것을 잉태할 만큼 충분히 강하고 위대하며 대담하였기에 가능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인류는 실수가 아니라 어떤 의지의 산물인 것이다...”2

나는 추기경의 주장 가운데에서 세 가지 요점을 잡아내고 싶다.

첫째, 도킨스 교수와는 달리, 라칭거는 자연은 목적과 설계를 보여준다고 말하였다.

둘째, 자신의 주장을 지지하기 의해서 그는 물리적 증거 -”창조적 이성을 가리키는 살아있는 창조의 위대한 생산물들”-를 지적하였다. 철학적이거나 신학적 혹은 성경적 주장이 아니라, 바로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구조들을 지적하였다.  

셋째, 라칭거는 그의 결론과 특별히 관계 있는 것으로, 생명의 분자적 기초를 연구하는 학문인 생화학을 인용하였다.

왜 라칭거 추기경이 보다 더 강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왜 도킨스 교수가 이 우주의 목적 없음에 대하여 절망할 필요가 없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이 글을 쓴다.

 

눈을 설명함

물론 생명의 본성에 관한 많은 토론은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이 <종의 기원>을 출간한 1859년에 시작되었다. 그의 책에서 다윈은 그가 나기 전에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었던 일-생명의 대단한 다양성과 복잡성이 어떻게 누군가에 의해 안내되지 않고 자연과정만으로 생겨날 수 있었는가 설명한 것-을 제안하였다.  

그가 제안한 작용기작은 물론 무작위적 변이 위에서 작용하는 자연선택이었다. 아주 간단하게, 다윈은 모든 종 안에 변이가 있음을 인식하였다. 같은 종 안에서 어떤 것은 다른 것보다 크고, 어떤 것은 빠르고, 어떤 것은 색깔이 어둡다. 단순히 다윈은 그들이 모두 먹고 살 만한 먹이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한 종에 속하는 생물의 모든 개체들이 자손을 이어갈 수 있도록 생존하지는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연히 생존 경쟁에서 유리한 변이 개체가 생존하여 자손을 낳는 경향이 높다고 추론하였다. 만약 그 변이가 유전된다면 오랜 시간에 걸쳐 종의 특성이 변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다면, 아주 커다란 변화도 일어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윈의 이론은 매우 고상한 생각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이 아닌 이미 19 세기 중엽의 생물학자들도 다윈이 상상한 것과 같은 점진적인 방식으로 될 수 없는 몇 가지 생물체계를 알고 있었다. 특별히 그 중의 한 가지는 눈이었다.  

그 시대의 생물학자들도 눈이 렌즈, 망막, 눈물관, 안구근 등의 여러 가지 서로 다른 구성 요소를 갖는 매우 복잡한 구조물인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어떤 동물이 불행히도 그들 구성요소 중 어떤 하나를 갖지 않고 태어나면, 심하게 시력을 잃거나 장님이 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체계적인 구조가 여러 단계를 거친 자연선택에 의해 한데 모아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심하였다.  

하지만 다윈도 눈에 대하여 알고 있었다. 그리고 <종의 기원>에서 ”극단적으로 완벽하고 복잡한 기관”이라고 적당하게 제목을 붙인 한 섹션에서 눈에 대하여 적고 있는데, 거기에서 그는 눈이 어떻게 진화되어 왔는지 정말로 모르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리가 만약 현재 생물체들의 눈을 바라본다면, 상당한 변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썼다.

어떤 생물체들은 진짜 '눈'이 아니라, 단지 빛에 민감한 세포들의 집합체를 갖고 있을 뿐이다. 이런 구조는 밝은 곳에 있는지 혹은 어두운 곳에 있는지 알 수 있게 해주지만, 빛이 어느 방향에서 오는지를 알 수는 없다. 왜냐하면 어느 각도에서 빛이 오든지 빛에 민감한 세포들을 자극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의 어떤 생물체에서 보듯이 빛에 민감한 세포들의 집합체를 압축하여 놓으면, 어느 한쪽 측면에서 들어오는 빛은 빛에 민감한 한 부분을 중심으로 한쪽에는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고, 다른 한쪽은 밝게 비출 것이라고 다윈은 진술하였다.

이론적으로 그와 같은 구조는 생물체로 하여금 어느 방향에서 빛이 오는지를 알 수 있게 할 것이고 그것은 일종의 발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세포들을 컵 모양으로 압축할수록 방향을 찾는 능력이 증가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컵을 아교성 물질로 채운다면, 아직은 조악하지만 렌즈의 시작이 될 것이고 그것은 더욱 발전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논쟁을 통하여 다윈은 빛에 민감한 세포들의 집합과 같이 단순한 것으로부터 현대 척추동물의 눈과 같이 복잡한 것이 점진적인 진화의 경로를 통하여 생겨났다고 당시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진화론이 눈에 대하여 설명할 수 있다면, 다른 무엇인들 설명할 수 없었겠는가?

그러나 다윈의 이론적 구성에는 다루지 않은 질문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도대체 빛에 민감한 그 세포의 집합체는 어디서 왔는가 하는 점이다. 대부분 관찰되는 대상은 빛에 대하여 민감하지 않기 때문에 다윈의 주장은 이상한 출발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다윈은 그 같은 질문을 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는 ”어떻게 하나의 신경세포가 빛에 민감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은 어떻게 생명 그 자체가 기원하였는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다”라고 말하였다.3

지난 반세기 동안 과학은 시각의 작용기작과 생명의 기원, 두 질문에 모두 관심을 가져 왔다. 그렇지만 내 생각에 다윈이 그 같은 질문을 제기하지 않은 것은 옳았다. 왜냐하면 당시의 과학은 그것을 조사할 물리적이거나 개념적인 도구를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잠시 맛보기로 19세기 중엽의 과학 수준을 말해보면, 당시에는 모든 화학의 기초가 되는 원자에 대해서 단지 이론적인 존재로만 여겼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 어느 누구도 원자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확실히 알지 못했다.

우리가 오늘날 생명의 기초라고 알고 있는 세포도 당시에는 단지 현미경으로 관찰 가능한 작은 젤로 조각 이상의 어떤 것도 아닌 단순한 원형질 덩어리라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다윈은 질문을 제기하지 않고 미래에는 그의 이론을 지지해 줄 발견이 있으리라는 희망 아래 그것을 하나의 블랙박스로 남겨 놓았던 것이다.  

'블랙박스'란 흥미 있는 일을 하지만, 누구도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르는 어떤 기계나 체계를 지칭할 때 과학에서 사용되는 용어이다. 그 속을 들여다보며 관찰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작동을 볼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들이 매우 복잡하여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의 작용기작을 알 수 없다.

우리들 대부분(그리고 나의 경우 분명히)에게 있어 블랙박스의 좋은 예는 컴퓨터이다. 글을 쓰거나 게임을 하기 위하여 컴퓨터를 사용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작동되는지는 아주 희미하게도 알지 못한다. 심지어 겉을 뜯어내어 안에 있는 회로를 들여다보더라도 나는 여전히 컴퓨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말할 수 없다. 말하자면 다윈 시대의 과학자들에게 있어서는 세포가 하나의 블랙박스였다. 세포는 매우 흥미 있는 일을 하지만, 어느 누구도 어떻게 그 일이 이루어지는 줄 몰랐다.  

사람들은 블랙박스가 작동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어떤 간단한 작용기작, 즉 상자 안은 복잡하지 않아야 하고, 이해할 수 있는 원리로 작동해야 한다는 식으로 가정하는 심리적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바다 진흙 속에서 세포 생명체가 저절로 생겨났다고 믿는 믿음이다.

19세기에 두 명의 저명한 과학자이며 다윈의 지지자였던 헥켈(Ernest Haeckel)과 헉슬리(Thomas Huxley)는 탐험선이 퍼 올린 바다의 진흙 중 어떤 것은 살아 있는 세포일지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에게 있어 세포란, 헥켈의 말을 빌리면 ”하나의 단순하고 작은 탄소의 단백질성 조합의 덩어리”4였기 때문에 그렇게 믿을 수 있었다.

물론 금세기에 이루어진 생물학의 굉장한 발전으로 우리는 이와는 다르게 알고 있다. 이제 현대 과학이 세포의 블랙박스를 열었기 때문에, 다윈을 힘들게 했던 그 질문을 다시 제기해 볼 필요가 있다. 빛에 민감한 부위를 만들기 위하여 무엇이 필요한가? 빛의 광자가 망막에 부딪혔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하나의 광자가 처음에 망막에 부딪히면 11-씨스-레티날(11-cis-retinal)이라고 불리는 작은 유기분자와 작용을 한다.5 레티날의 모양은 보통 구부러져 있는데, 광자와 작용을 하면, 똑바로 펴지면서 트랜스-레티날 (trans-retinal)로 바뀌게 된다. 이것이 시각을 일으키는 하나의 전체적인 연쇄사건의 작동을 일으키는 신호가 된다.  

레티날은 모양을 바꿀 때 그것에 붙어 있는 다른 단백질 로돕신(rhodopsin)의 모양도 변하게 한다. 로돕신의 모양 변화는 다른 종류의 단백질인 트랜스듀신(transducin)이 달라붙을 연결 부위를 노출시킨다. 이제 로돕신과 결합된 트랜스듀신의 일부분이 떨어져 나가면서 포스포다이에스터라제(phosphodiesterase)라고 불리는 단백질과 결합을 한다.

그 일이 일어날 때, 포스포다이에스터라제는 싸이클릭 GMP(cyclic GMP)라고 불리는 작은 유기분자를 잘라내어 그것을 5-GMP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세포 내에는 많은 싸이클릭 GMP가 있고 그 중 어떤 것은 이온 통로 역할을 하는 다른 종류의 단백질에 달라붙는다.

정상적으로 이온 통로는 나트륨 이온을 세포 안에 들어가게 한다. 하지만 포스포다이에스터라제의 활동으로 싸이클릭 GMP의 농도가 줄어들면, 이온 통로에 붙어 있던 싸이클릭 GM가 떨어지며, 이온 통로의 모양이 변화돼 결국 통로를 닫게 한다. 그 결과 나트륨 이온은 세포 안으로 더 이상 들어갈 수 없게 되고, 세포 안의 나트륨 농도가 감소해 세포막을 가로지르는 전압이 변하게 된다.

그것이 차례로 전기적 극성을 띠는 파동을 일으켜 시신경 아래 뇌까지 전달된다. 그리고 이제 뇌가 받아들인 전기신호를 해석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시각이다. 바로 이것이 다윈이 말한 '간단한' 빛에 민감한 세포 부위가 어떻게 기능을 하는지에 대하여 현대과학이 발견한 것이다.

 

다윈의 판단 기준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명히 위에서 기술한 시각정보 처리과정이 복잡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단지 기능하는 시각체계가 실제로 필요로 하는 몇 가지 것들을 무시한, 시각의 화학적 성질의 간단한 그림에 불과하다. 가령 나는 체계의 복구, 즉 어떻게 시각체계가 다음 번에 들어오는 광자를 위해서 처음의 출발점으로 돌아가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위에 기술한 설명이 다윈과 그의 동시대 사람들이 간단한 출발점으로 여겼던 것이 사실은 다윈이 상상했던 그 어느 것보다도 훨씬 엄청나게 복잡하다는 것을 보여 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떻게 우리가 눈이나 혹은 다른 생물체들의 구조가 너무도 복잡해서 다윈의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는지의 여부를 말할 수 있을까? 사실은 다윈 자신이 우리에게 판단할 기준을 주었다. 그는 <종의 기원>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 ”만약 수많은 연속적인 작은 변화에 의해서 형성될 수 없는 어떤 복잡한 기관이 존재한다는 것이 보여질 수 있다면, 나의 이론은 절대적으로 깨어지고 말 것이다.”6

그러면 과연  ”수많은 연속적인 작은 변화”에 의해서 형성되지 않는 것은 어떤 종류의 기관이나 체계일까? 우선 그것은 환원불가능한 복잡성(irreducibly complex, 한 요소도 제거 불가능한 복잡성)을 가질 것이다.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이란 상상적인 어구이지만, 매우 간단한 개념을 나타낸다.

내가 <다윈의 블랙박스: 진화론에 대한 생화학적 도전>에서 쓴 것처럼,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을 갖는 체계란 ”기본적인 기능에 기여하는 몇 개의 잘 짝지어지고 상호 작용하는 부분들로 구성되어, 그 중의 어느 한 부분을 제거하면 효과적인 체계의 기능을 멈추게 하는 그런 하나의 체계를 말한다.”7  

덜 형식적으로 말하면,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이란 한 체계가 서로 상호 작용하는 몇 개의 부분들을 갖고 있는데, 만약 그 중의 하나라도 빠지게 되면 그 체계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찾을 수 있는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의 한 가지 좋은 예는 간단한 쥐덫이다.  

철물점에서 보통 살 수 있는 쥐덫은 일반적으로 밑에 나무판이 있고 거기에 다른 부분들이 붙어 있다. 또한 양끝이 연장된 스프링이 하나 있는데, 한쪽 끝은 나무판에 붙어 있고 다른 한쪽은 실제로 쥐를 붙잡는 역할을 하는 해머(hammer)라고 부르는 금속 부분에 연결되어 있다.

누군가 해머를 아래로 누르면 쥐가 그리로 지나갈- 때까지 그 위치에 그대로 있어야 하는데, 쥠막대(holding bar)가 그 일을 한다. 쥠막대 끝 부분도 고정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캣취(catch)라고 불리는 금속 조각에 붙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부품들은 다양한 꺾쇠에 의하여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제 만약 이 쥐덫이 스프링, 혹은 해머, 혹은 나무판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될까? 전에 하던 것의 절반 아니면, 1/4 정도만 쥐를 잡지 못하게 될까? 아니, 쥐를 전혀 잡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이것은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을 갖고 있다.

결과적으로 환원불가능한 복잡성 체계는 다윈의 이론에게는 두통거리가 되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다윈이 생각한 것과 같이 점진적으로 한 계단 한 계단 변해 가는 식으로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가 쥐덫을 진화시키기 원한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나무판으로 시작해서 비록 비효율적이지만 쥐 몇 마리를 잡을 수 있기를 바랄 수 있을까?  거기에 쥠막대를 첨가하고 효율을 조금 더 개선시킬까? 그리고는 한번에 하나씩 다른 부품들을 더해가면서 전체 장치를 꾸준히 향상시킬까? 아니, 그렇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쥐덫은 완전하게 조립될 때까지는 전혀 기능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윈주의에 대한 생화학적 도전

쥐덫은 그렇다 치지만, 생물학적 체계는 어떤가?  우리가 정말로 알고 싶은 것은 과연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을 갖는 어떤 생물학적 세포나 생화학적 체계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대답은 그와 같은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의 체계가 사실은 매우 많다는 것이다.  

두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첫 번째는 섬모이다. 섬모라는 것은 여러 형태의 세포 표면에 나와 있는 작은 머리털 같은 소기관이다. 섬모는 앞뒤로 채찍 모양의 움직임을 통하여 세포 표면 위로 액체를 움직이는 흥미로운 능력을 갖고 있다. 허파 내 어떤 조직에서는 각각의 세포가 수백 개의 섬모를 갖고 있으며, 그것들은 또한 동시에 움직일 수 있다.  

그림. 1  (위) 외부 미세관들의 융합된 이중-고리 구조, 중앙 미세관들의 단식-고리 구조, 연결 단백질들, 그리고 다이네인 발동기를 보여 주는 섬모의 단면도.  (아래) 이웃하는 미세관을 '걸어' 올라가는 다이네인에 의해 유도된 미끄럼 운동이 휘어지는 연결 단백질 넥신에 의하여 굴곡 운동으로 전환됨.

섬모성 세포 사이에는 가블릿(goblet) 세포라고 불리는 더 커다란 세포가 있는데, 허파의 벽면에 점액을 분비한다. 이 점액은 섬모의 운동에 의하여 목구멍까지 휩쓸려 가게 되고, 이 과정에서 허파에 들어갔을지도 모르는 어떤 먼지 입자나 다른 외부 물질들과 함께 기침을 통해 바깥으로 배출된다. 그러나 무엇이 작은 머리털 같은 소기관을 앞뒤로 채찍 같이 움직이게 하는가? 과거 수십 년간의 연구는 섬모가 사실은 매우 복잡한 분자기계라는 것을 보여 준다.  

섬모는 아홉 개의 이중 미세관(double microtubule)으로 이루어져 있다8 (그림 1 참조). 각각의 이중 미세관은 다시 각각 10개와 13개의 튜불린(tubulin) 단백질 줄로 이루어진 두 개의 고리를 가진다. 섬모의 중앙에는 두 개의 단식 미세관(single microtubule)이 있고, 모든 미세관들은 여러 형태의 연결 단백질에 의하여 서로 연결된다. 이웃하는 이중 미세관들은 넥신(nexin)이라는 단백질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

바깥쪽에 위치한 이중 미세관들은 안쪽의 단식 미세관에 방사상 단(radial spoke)을 통해 연결된다. 그리고 중심에 있는 두 개의 단식 미세관 끼리는 작은 연결 다리에 의하여 붙어 있다. 게다가 각각의 이중 미세관에는 두 개의 부속물이 붙어 있는데, 각각 바깥과 안쪽에 있는 다이네인(dynein) 다리이다.

비록 이 모든 것이 복잡해 보이지만, 이것은 단지 간략한 기술에 지나지 않으며, 이것으로 섬모 전체의 복잡성을 다 말했다고 할 수는 없다. 실제로 수많은 생화학적 연구를 통해 알게 된 바에 의하면, 섬모는 대략 200여 종류의 서로 다른 단백질 부품을 갖고 있다!  

그러면 섬모는 과연 어떻게 작동하는가? 지금까지의 연구를 통해 '섬유-미끄러짐 기작' (sliding-fiber mechanism)에 의하여 움직인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웃하는 미세관들은 섬유 (fiber)이고, 다이네인은 '발동 단백질'(motor protein)이다.

섬모가 작동할 때, 한쪽 튜불린 줄에 연결되어 있는 다이네인은 길게 뻗어 옆에 이웃하는 미세관에 달라붙어 그것을 아래로 잡아당긴다. 이 일이 일어날 때, 미세관들은 각각 서로에 대하여 미끄러져 움직이기 시작한다. 만약 연결 단백질인 넥신을 통해 서로 붙잡고 있지 않다면, 서로 떨어질 때까지 미끄러져 움직일 것이다.  

처음에는 상대적으로 헐거운 편이지만, 섬유가 미끄럼 운동을 하면서 넥신은 점점 더 긴장된다. 넥신과 미세관의 긴장 상태가 어떤 점 이상으로 증가되면, 미세관이 구부러지게 된다. 그러면 미끄럼 운동은 이제 굴곡 운동으로 바뀐다.  

누구나 이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섬모가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만약 미세관이 없다면, 미끄럼 운동은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만약 다이네인이 빠진다면, 섬모를 구성하는 전체 기구는 빳빳하고 무 운동 상태에 놓여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만일 넥신 연결체가 없다면, 다이네인이 미세관을 밀어내기 시작할 때 섬모를 구성하는 전체 기구가 서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이것은 넥신을 제거한 실험에서도 확인되었다.

쥐덫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섬모도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부품이 필요하다. 또한 쥐덫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 계단 한 계단 진행하는 다윈 식의 점진적인 방법으로 섬모가 생성되었다는 것은 매우 상상하기 어렵다.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을 갖는 생화학적 체계의 또 다른 한 예는, 운동을 위한 소기관이라는 점에서는 섬모와 비슷하다. 그러나 다른 점에서 볼 때는 완전히 다르다. 박테리아의 편모는, 박테리아가 헤엄쳐 움직일 수 있게 하는, 문자 그대로 배 밖에 붙어 있는 하나의 발동기 (motor)와 같다.9 (그림 2를 보라)

사람이 만든 모터보트에 힘을 주는 기계장치처럼 편모는 하나의 회전 기구여서, 회전하는 표면이 액체 매체를 밀어내면서 박테리아를 움직이는 힘을 얻는다. 추진기(propeller) 역할을 하는 편모의 부분은 기다란 채찍 같은 구조로 플라젤린(flagellin)이라고 부르는 단백질로 만들어진다.

추진기는 갈고리(hook) 단백질에 의해 구동축(drive shaft)에 붙어 있는데, 갈고리는 만능 이음새(universal joint) 역할을 하며 추진기와 구동축이 자유롭게 회전하게 한다. 구동축은 회전 발동기(rotary motor)에 붙어 있고, 회전 발동기는 그것을 돌아가게 하기 위한 힘을 얻기 위하여 박테리아의 바깥에서 안쪽으로 들어오는 산(acid)의 흐름을 사용한다.

구동축은 박테리아의 세포막을 뚫고 통과하여 박혀 있어야 하는데, 몇 가지 종류의 단백질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투관 물질(bushing material)로 사용된다. 여기까지만 말해도 편모가 복잡한 구조인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편모가 보여 주는 복잡성은 이보다 더하다.

기능을 제대로 하는 하나의 편모를 만들기 위해서는 편모 자체의 부품이나 세포 안에서 이것을 만드는 체계의 부분으로서 약 40여 개의 서로 다른 단백질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제까지의 철저한 유전적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의 단백질이 없는 경우 정상적인 편모의 절반 혹은 1/4 빠르기로 회전하는 편모를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편모가 아예 만들어지지 않거나, 만들어져도 전혀 작동되지 않는다.  

섬모나 쥐덫과 같이, 편모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부품을 동시에 필요로 한다.  따라서 섬모는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을 가지며, 그것의 기원은 다윈의 이론에 상당한 걸림돌이 된다.  

 

다윈 식의 상상

나는 섬모나 편모를 발견하지는 않았다. 그것의 작용 기작을 밝혀낸 사람은 내가 아니다.  그 일은 수십 년 동안 세계의 수많은 연구실에서 행해졌다. 그러나 내가 주장한 것처럼 이들 구조들이 다윈 식의 이론으로 설명될 수 없다면, 다른 과학자들은 분자 기계들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해왔을까?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분자진화학회 지(Journal of Molecular Evolution;JME)를 한 번 보자. 그 이름이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JME는 생명이 어떻게 생겨났으며 그 후 어떻게 다양해졌는지를 분자 수준에서 연구하기 위하여 특별히 만들어졌다. 흥미롭고 엄격한 자료를 출간하는 좋은 학회지로 편집위원을 맡고 있는 약 40 여명의 과학자 가운데 대략 15명 정도가 미국국립과학회의 회원이다.  

하지만 최근에 나온 어느 한 권을 보면 거의 대부분의 논문이 '배열분석'(sequence analysis)이라고 불리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간단히 말해, 분자 기계의 구성물질인 단백질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아미노산 '배열'로 이루어져 있다.

만일 누군가가 단백질(혹은 그것의 유전자)의 아미노산 배열을 안다면 다른 종에서 얻은 유사한 단백질의 배열과 비교할 수 있고 어디에서 두 배열이 똑같은지, 유사한지, 혹은 다른지 알 수 있다.

가령 어떤 사람이 개의 산소 운반 단백질인 헤모글로빈의 배열을 말의 것과 비교하였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우리는 두 개의 단백질 첫 번째 위치에 있는 아미노산이 같은지 다른지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위치에선 어떤지? 세 번째는? 네 번째는? 그 질문의 답을 아는 것은 흥미로울 일일 테고 두 종이 얼마나 관계가 가까운지 가르쳐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미노산 배열을 비교해 보는 것이 섬모나 편모와 같이 복잡한 분자 기계들이 어떻게 다윈식의 단계적 방법으로 생겨났는지에 대해서 결론을 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아마도 다음의 예를 통해 왜 그런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당신이 개 앞발에 있는 뼈와 말 앞발의 뼈를 비교한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은 뼈의 수가 똑같고, 유사한 양상으로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러한 사실을 아는 것은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또한 흥미로운 일은 그것들이 두 동물이 얼마나 서로 가까운지를 말해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개 앞발의 뼈와 말 앞발의 뼈를 비교한다고 해서 처음에 어디에서 뼈가 왔는지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모델을 만들고 실험을 하는 등등의 일을 해야만 한다.

지난 십 년 동안에 분자진화학회지에 실린 논문 중 그 같은 실험적인 작업이나 모델을 만드는 일을 했던 것은 거의 어느 것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10  발표되는 논문들은 압도적으로 배열 분석에 관심이 있다. 다시 말하지만 배열 분석은 흥미롭고 또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줄 수 있다. 그러나 배열 분석만으로는 어떻게 복잡한 분자 기계들이 다윈식의 방법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지 말할 수 없다.  

다른 학회지, 이를테면 미국국립과학학회 지(Proceedings of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세포(Cell), 분자생물학학회 지(Journal of Molecular Biology) 등을 조사해 본다 하더라도, 이야기는 똑같다.  

배열을 비교해 보는 연구는 수도 없이 많지만, 복잡한 분자 기계의 다윈 식 생성에 대한 연구는 거의 전무하다. 다윈 식의 진화론에 대한 문제들을 고려하는 몇 안 되는 연구들도 그나마 모두 다루는 범위가 너무 넓어서 엄밀하게 테스트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만약 과학적 문헌-학회지들-이 어떻게 다윈식의 과정이 그같이 정교한 분자 기계를 만들어낼 수 있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담고 있지 않다면, 왜 많은 과학자들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는 것일까?

자세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과학자들이 과학적 훈련의 한 부분으로 다윈주의가 사실이라고 교육을 받았다는 점이 답변의 일부분이 된다. 한 가지 좋은 예를 Voet와 Voet가 공동으로 저술한 훌륭한 교과서 <생화학>(Biochemistry)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림. 2  추진기, 갈고리, 그리고 내부와 외부의 세포막과 세포벽에 박혀 있는 발동기를 보여 주는 박테리아 편모의 그림.

첫 번째 장에는 학생들에게 세상에 대한 생화학적 견해를 소개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 땅에 생물이 생겨났고 다양해졌는가에 대한 진화론적 견해를 보여주는 믿기 어려운 칼라 그림이 있다.

그림을 3등분으로 나눴을 때 윗부분에는 화산, 번쩍이는 번갯불, 희미한 햇빛과 둘레에 가스들이 그려져 있고, 학생들로 하여금 어떻게 생명이 시작되었는지 말해주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그림의 가운데 부분에는 진화론자들이 생명이 처음 생겨났다고 믿는 원시바다에서 뻗어져 나오는 DNA가 박테리아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있어 우리에게 생명이 어떻게 발달해 왔는가를 설명해 준다.(박테리아는 한 개의 편모를 갖고 있는데, 아주 멀리서 봐서인지 한 개의 머리카락 같이 간단해 보인다.)  

그림의 밑부분에는 진화에 의해 만들어지는 수많은 동물들과 에덴 동산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그 중앙에는 벌거벗은 남녀의 모습이 있다(그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학생들의 관심을 끌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자가 남자에게 사과를 건네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은 그것이 어떻게 이 땅에 다양한 생명이 생겨났는가를 보여주는 것으로 암시적으로 믿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그런 과정들이 일어날 수 있었는가에 대해 심오한 과학적 답을 찾기 위하여 교과서를 뒤져본다면 답을 찾지 못할 것이다. <종의 기원>에서 다윈은 몇 군데에서 독자의 상상력에 호소하였다.

그러나 상상은 일종의 두 개의 날을 가진 칼과 같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놓치는 것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실제는 없는 어떤 것을 볼지도 모른다. 과학 문헌을 조사하면 할수록 다윈주의가 단지 상상의 세계에 갇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설계에 대한 이해

다윈주의에 대한 나의 비판들은 정말로 새로운 것은 아니다. 몇 명의 다른 과학자들이 이미 전에도 생명의 생화학은 너무 복잡해서 다윈이 제안한 점진적인 기작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했다.  

더 나아가 다른 과학자들이 과학적 문헌에는 생명의 분자적 기초의 기원에 대한 진짜 설명이 거의 없다는 것을 이미 지적해 왔다. 산타페(SantaFe) 연구소의 스튜어트 카우프만(Stuart Kauffman), 시카고 대학의 제임스 사피로(James Shapiro), 그리고 매사츄세츠 대학의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 같은 과학자들은 모두 자연선택이 좋은 설명이 되지 못한다고 진술했다.  

내가 그들과 다른 점은 내가 제안한 대안에 있다. 나는 만약 여러분이 섬모나 편모 혹은 다른 분자 기계들을 본다면, 그것들이 어떤 지성체에 의하여 의도적으로 설계되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썼다. 그 제안은 어느 정도 주목을 끌었다.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내가 로마 카톨릭 신자이고 따라서 지적설계의 제안은 종교적인 생각이지 과학적이 아님을 의미한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 경우 지적설계의 결론은 전적으로 경험적인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전적으로 물리적 증거에 기초한 그것은 어떤 사물이 설계되었다고 어떻게 결론을 맺게 되는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통해 더 잘 알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의식적이든 아니든, 우리는 어떤 것은 설계되었고 다른 것은 그렇지 않다고 결정한다. 어떻게 그렇게 하는가? 어떻게 우리는 그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는가?

어떤 사물이나 체계가 설계되었다는 결론을 어떻게 내릴 수 있는지 보기 위하여 한 번 이런 상상을 해 보자. 여러분이 친구와 함께 숲 속을 거닐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여러분의 친구가 넝쿨에 발목이 잡혀 끌려 올라가 공중에 매달리게 되었다. 이제 넝쿨을 잘라 친구를 구한 다음, 상황을 재구성해 본다. 주위를 살펴보다가 아래로 굽어져 말뚝에 의해 고정되어 있는 나뭇가지에 넝쿨이 묶여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나뭇잎으로 넝쿨이 덮여져 있어서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계속 발견해 간다.

각 부분들이 배열된 방식을 보면서 여러분은 이것이 우연이 아니고 설계된 올가미였다 라고 금새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이다. 그와 같은 결론은 종교적 신념에 기초한 것이 아니다. 확실히 물리적 증거에 기초를 둔 것이다.  

넝쿨 올가미에 대해서 몇 가지 질문을 더 해보기로 하자. 우선 그것을 설계한 사람은 누구인가? 잠시 생각해 본 후에, 그 질문에 답할 충분한 정보가 없음을 알게 된다. 아마도 당신의 적이거나 친구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저 장난꾸러기의 짓일 수도 있다. 더 많은 정보가 없이는 우리는 누가 올가미를 설계하였다고 결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가미를 구성하는 부분들 간의 상호작용으로부터 우리는 그것이 정말로 설계되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두 번째 질문은, 언제 올가미가 설계되었냐는 것이다.  잠시 생각한 후에, 우리는 그 질문에 답할 충분한 정보가 없음을 알게 된다. 더 많은 자료가 없이는 그 올가미가 한 시간, 하루, 아니면 일주일 전에 설계되었는지 결정할 수 없다. 그러나 올가미 부분들간의 상호작용을 볼 때 설계 그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부인할 수 없게 된다.

누가, 언제, 어디에서, 왜, 그리고 어떻게 올가미를 설계하였는가 하는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추가로 더 많은 정보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올가미가 설계되었다는 사실은 그 체계를 관찰함으로써 바로 이해된다.  

비록 우리가 설계의 사실을 쉽게 그리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은 학문적으로 엄격한 방법으로도 다룰 수 있다. 설계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엄격한 방법으로 다루는 일이 철학자이며 수학자인 윌리엄 뎀스키(William Dembski)에 의해 그의 전공논문인 <설계에 대한 추론: 작은 확률들을 통한 우연의 제거 (The Design Inference: Eliminating Chance through Small Probabilities)11>에서 훌륭하게 시작되었다.  

결론적으로 이 글을 시작하면서 인용한 내용에 다시 귀 기울이고 싶다. 내 견해로는 엄밀한 경험적 관찰을 토대로 볼 때 Ratzinger 추기경이 말한 대로 결론을 맺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생명창조의 위대한 계획은 우연과 실수의 산물이 아니다....(그것은) 창조적인 이성을 가리키고, 우리에게 창조적인 지성을 보여 준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오늘날 더 밝고 눈부시게 나타난다.”

 

참고문헌

1. G. Eastbrook, '과학과 하나님: 화해의 경향? (Science and God: A Warming Trend?)' Science 277 (1997): 890-93.

2. J. Ratzinger, <태초에: 창조와 타락에 대한 카톨릭의 이해 (In the Beginning: A Catholic Understanding of the Story of Creation and the Fall)>, Grand Rapids, Michigan: Eerdmans, 1986, pp. 54-56.

3. C. Darwin, <종의 기원 (On the Origin of Species)>, 1876; 재판, New York: New York 대학 출판부, 1988, p. 151.

4. J. Farley, <데카르트부터 오파린 까지의 우연 발생 논쟁 (The Spontaneous Generation Controversy from Descartes to Oparin)>, Baltimore: Johns Hopkins 대학 출판부, 1977, p. 73.

5. T. M. Devlin, <생화학 교과서 (Textbook of Biochemistry)>, New York: Wiley-Liss, 1977, chap.22.3.

6. Darwin, <기원 (Origin)>, p.154.

7. M. J. Behe, <다윈의 블랙박스: 진화론에 대한 생화학적 도전 (Darwin's Black Box: The Biochemical Challenge to Evolution)>, New York: Free Press, 1996, p. 39.

8. D. Voet and J. G. Voet, <생화학 (Biochemistry)>, New York: J. Wiley and Sons, 1995, pp. 1252-59.

9. 위의 책, pp. 1259-60.

10. Behe, 위의 7번 책, chap. 8.

11. W. Dembski, <설계에 대한 추론: 작은 확률들을 통한 우연의 제거 (The Design Inference: Eliminating Chance through Small Probabilities)>, Cambridge: Cambridge 대학 출판부, 1998.     

 


번역 - 김정훈 교수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amazement/a4/a4/a4c22.htm ,

출처 - 창조지, 제 135호 [2003. 1~3]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92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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