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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창조신앙

창조론을 믿었던 과학자들

창조론을 믿었던 과학자들

임번삼


      역사적으로 많은 창조과학자들이 찬란한 실적을 남겼다. 이들의 예를 들자면 엄청난 지면이 필요할 것이다. 불행스럽다 할까 아니면 아이로니칼하다고 할까 그들이 이룬 업적들이 오늘날 흡사 진화론을 증거라도 하는 듯이 진화학자들에게 도용(?)되고 있는 현상은 차라리 놀랍다는 생각마저 든다. 예컨데, 다윈의 진화론과 대립되는 이론이라 하여 한때 진화론자들에게 매장되었던 멘델의 유전법칙이 지금은 흡사 진화론의 분자진화설을 증거하는 자료인 양 오용되고 있다. 이 밖에도, 자연발생설과 치열하게 싸웠던 파스퇴르의 생물발생설, 버효등의 세포설, 린네의 종의 불변설에 기초한 생물분류학, 갈릴레이, 케플러, 뉴톤과 같은 신실한 창조과학자들이 확립한 우주론등이 진화론자들에게 오용되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기본적인 자연법칙들은 창조과학자들이 발견한 데 반하여 진화론은 가설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으므로, 두 이론을 평면적으로 비교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진화론의 주축인 라마르크의 용불용설, 다윈의 생물진화론, 헥켈의 배발생도와 계통발생설, 리비히의 효소작용에 대한 분자진동설, 드브리스의 돌연변이진화설, 도브쟌스키 등의 집단진화설, 굴드의 바람직한 괴물설, 라이엘의 동일과정설, 오파린의 자연발생설, 루이솅코의 후천획득형질의 유전설, 진화론적 인류기원설, 우주기원에 관한 빅뱅설 등 우리가 생물, 물리, 지구과학, 인류학에서 배운 거의 모든 진화론적인 이론들은 실험적으로 증명된 것이 아니며, 증명될 수도 없는 추리와 상상의 산물들이다. 추리는 맞을 수도 안 맞을 수도 있다. 반반의 확률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실증을 요구하는 자연과학이 될 수 없다. 이에 반하여 창조과학자들이 수립한 많은 법칙이나 원리는 대개가 실험적으로 증명된 것이며, 재현성이 있는 것들이다. 더 이상 진화론자들이 창조론적 이론을 마치 진화론을 변호하는 것처럼 아전인수하는 식으로 인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3.1 생명과학 분야

앞에서 설명한대로 이 분야에서는 자연발생설의 잘못을 증명한 이태리의 의사인 레디(Redi), 독실한 카톨릭과학자인 스팔란짜아니(Spallanzani), 린네우스, 큐비에 등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러한 창조론적 학문의 전통은 미생물학자인 파스퇴르, 곤충학자인 파브르(Henry Fabre), 유전의 법칙을 발견한 멘델, 해부학자이면서 예술가인 다빈치(Leonard da Vincci), 미국의 빙하지질학자인 하버드대학의 아가씨즈, 독일의 세포학자인 버효(Verchow), 페니실린을 발견한 영국의 레밍 등으로 이어졌다.


린네우스(Carolus Linnaeus 1707-1778, 본명은 Carl Linne)는 스웨덴의 한 개신교 가정에서 태어나 웁살라 대학에서 의학과 식물학을 전공하고, 중세 박물학(natural history)의 개조가 되었다. 그는 자연계의 지적설계에 의한 창조를 강조했으나, 지적설계(intellectual design)는 오늘날 진화론자들에 의해 상동성(homology)이라는 용어로 대체되어 가고 있다. 그는 자연계에 나타난 불변의 질서를 보고 모든 동식물은 물론 광물에 대해서도 이명법(二名法)으로 분류하는 체계를 수립하였다. 그는 저등생물에서 고등생물로 배열한 자신의 분류표는 “진화계통이 아닌 형태적 배열(not phylogeny but taxonomy)'이라고 하였다. 그는 자연계에 불변의 질서가 있기 때문에 자신이 자연계를 체계적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고 하였다. 그는 창세기에 “종류대로 창조”되었다는 ‘종류’(kind)를 ‘종’(species)로 해석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은 강에서 목을, 목에서 속을, 속에서 종을 만드셨다. 단, 종은 불변하도록“ 이라고 하여 <종의 불변설>(fixity of species)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사상은 ”자연의 체계'(Systema Naturae, 1735) 등에 잘 정리되어 있다.


8세기의 생물학계를 지배한 대학자인 큐비에(George Civier 1776-1832)는 고생물학(paleontology)을 개설한 학자였다. 루터교 가정에서 출생한 그는 부인의 헌신적인 신앙의 도움으로 확고한 창조신앙을 구축하고 진화론자들과 투쟁하였다. 그는 지층에 나타나는 생물종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다중격변설>을 주장하였다. 그는 이렇게 피력하였다. “태초에 창조주는 초자연적으로 모든 생물들을 만드셨다. 지구상에는 동식물을 멸종시킬 수 있는 홍수가 여러 번 일어났었다. 이 때, 국지적으로 살아 남은 생물들에 의해 새로이 생물들이 번식하곤 하였다.... 최후에 전 지구를 뒤덮는 대홍수가 일어났으며, 모든 생물의 종류가 노아의 방주에 들어가 생존하게 되었다.” 그러나, 창조로부터 노아의 홍수 이전의 기간에 대해서는 불가지론적 입장을 견지하였다. “노아홍수 이전의 초기 기간에 대해 창조주는 우리에게 아무런 상세한 내용도 알려주지 않았다. 단지, 그 고요한 기간의 기록만 주셨을 뿐이다.“ 그는 종의 불변설을 주장했으며, 라마르크가 주장한 원숭이로부터 인간으로의 진화사상이 퍼지지 않도록 하였다.


큐비에의 제자였던 아가씨즈(Louis Agassiz 1807-1873)는 미국으로 건너가 가장 활발한 창조과학활동을 펼쳤던 자연주의적 빙하지질학자였다. 그는 하버드대학에서 유신진화론자인 그레이(Asa Grey)와 격렬하게 논쟁하였으나, 불행스럽게도 그가 먼저 서거하는 바람에 하버드대학은 전통적인 창조론에서 유신진화론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1895)는 발효미생물학과 면역학의 기초를 세움으로써 현대 생명과학의 초석을 놓은 분이다. 그는 “자연발생설에 대한 실험적 검토(1861)“를 통하여 "생명은 생명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증명함으로써, 진화론의 기본이 되는 자연발생설을 침묵케 하였다. 그는 유럽의 여러 나라를 돌면서 자연발생주의자들과 논쟁하여 모두 승리로 이끌었다. 그는 생명은 신이 창조한 것이며, 자연법칙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1964). ”만일, 자연발생이 되려면 배아가 발생하여야만 생명의 기원문제가 풀리게 될 것이다. 이는 무생물이 적절한 환경조건에서 저절로 탄생했다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생명의 창조주는 더 이상 불필요한 존재가 되며물질이 신의 자리를 대신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신은 단지 우주의 운행을 주관하는 존재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페일리(William Paley 1743-1805)는 캠브리지대학에서 다윈에게 자연신학을 가르친 자연주의자였다. 그는 자연속에 숨어 있는 질서와 조화에서 창조주를 발견하도록 가르쳤으나, 다윈은 그러한 조화가 적자생존에 의한 자연의 선택 결과 때문이라고 판단하였다. 아이러니칼한 현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는 자연 속에 숨어 있는 신의 능력과 신성을 이용하여 창조주를 증명하려 하였다.


오스트리아의 카톨릭 수도사였던 멘델(Gregor Mendel 1822-1884)은 수도원에서 완두콩과 분꽃을 재배하면서, 모계의 형질만이 자손으로 전해진다는 유전의 법칙을 발견하였다. 독립의 법칙, 우열의 법칙, 분리의 법칙으로 표현되는 그의 유전학은 현대 분자생물학의 탄생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그의 실험적인 결과들은 허구적이며 추론적인 다윈의 이론과 상충되었기 때문에, 그의 생전에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는 죽으면서(1885) “언젠가 나의 시대가 올 것이다”고 유언을 하였다고 한다.


독일의 저명한 병리학자인 베르린의 버효(Rudolf Verchow 1821-1902)는 “세포는 세포로부터 나온다”는 세포설(cell theory)을 슈라이덴(동물), 슈반(식물)등과 더불어 주장하였다. 즉, 세포내에 있는 형질만이 자손에게 전달된다는 것으로, 이는 새로운 종이 나타나 오늘의 다양한 생물종들이 태어나게 되었다는 진화론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이론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병리학적인 관점에서 수많은 네안데르탈인들의 유골을 검토하고, 이들은 공통적으로 비타민 D의 섭취가 부족하여 관절염과 구루병을 앓고 있었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이들은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듯이 작은 키(145cm 이하)가 아니라 매우 컸으며(170cm), 두뇌의 평균용적(1,600cc)도 현대인(1,500cc)보다 오히려 컸다고 하였다.


런던자연사박물관의 초대관장을 지낸 오웬(Richard Owen 1804-1892)은 저명한 해부학로서 영국에서 큐비에에 필적할만한 명성을 누렸다. 그는 다윈의 진화론을 적극적으로 비판하였으며, 헉슬리와 윌버포스주교간의 진화론 논쟁시(옥스포드대학, 1860.6.30) 윌버포스에게 창조론적인 지원을 해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적의 약’으로 알려진 페니실린을 발견한 플레밍((John Ambrose Fleming 1849-1945)은 독실한 크리스쳔 의사로서, 후일 페니실린 정제법을 개발하여 대량생산의 길을 열게 한 체인과 훌로리(Ernst Chain & Howard Florey) 등과 공동으로 노벨상을 수상(1945)하였다. 체인은 이렇게 진화론을 비판하였다. “적자생존과 진화가 전적으로 돌연변이에 의해 유발된다는 가정은 내가 보기에 증거가 없고 사실과는 다른 것으로 보인다....나는 그토록 오랫동안 수많은 과학자들이 한마디의 불평도 없이 그러한 진화론을 수용했다는 사실에 그저 놀랄 뿐이다.” [D.T. Rosevear; Scientists Critical of Evolutin, Evolution Protestant Movement Phamphlet No. 224, July, p 4, 1980].


독일 엘란겐 대학의 플라이쉬만(Albert  Fleischmann) 교수도 이렇게 진화론을 비판하였다. “나는 진화론이 한물간 것으로 생각하며 이를 거부한다. 1830년부터 형성되어 온 해부학, 조직학, 세포학, 발생학 등의 지식이 진화론의 기본개념들과 일치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만일, 사람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헛된 신화를 사랑하려는 본능이 없었더라면 근거없는 환상적 구축물인 진화론은 이미 오래전에 끝장이 났을 것이다.” [Captain Bemard Acworth; Darwin and Natural Selection, Evolution Protestant Phamphlet, p 6, 1960]


3.2 물리학 분야

천체물리학에서도 광활한 우주속에 숨어있는 우주의 법칙들을 찾아내고서 창조주를 찬양한 많은 과학자들이 있었다. 중세기의 천동설을 부정하고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루니쿠스(Nicholas Copernicus 1473-1543)는 독실한 크리스쳔으로서, 16세기의 ‘과학의 혁명’에 불을 붙인 사람이다. 그는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1543)라는 저서를 통하여 “지구는 공처럼 둥글고 자전과 공전을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선언으로 종래의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관과 아리스토텔레스적 자연관이 붕괴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두 권의 책을 주셨는데 하나는 성경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 이라고 하였다. 자연을 연구함으로써 그것을 창조하신 창조주의 품성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내게 망원경을 주면 무신론자들을 격파하겠다.”고 했으며, 자신의 지동설이 성경과 결코 모순되지 않다고 설명한 편지 두 통을 대공비(大公妃)인 크리스티아나와 친구 카스텔리에게 보내기도 하였다. 그는 종교재판(1633)을 받고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Eppur si muove)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그의 과학정신은 제자들이 설립한 과학아카데미(1657, 피렌체)에 의해 면면히 이어지게 되었다.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는 20년 이상 우주를 관측하고서 타원형으로 운행하는 행성의 세 법칙들을 발견함으로써, 코페르니쿠스의 보수적 원(圓)의 개념을 깨뜨렸다. 그는 “이러한 발견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는다면 내 이름은 영원히 없어져도 좋다”고 고백하였다 한다.


뉴톤(Issac Newton 1642-1727)은 시공의 절대개념과 뉴톤역학을 정립하여 고전물리학을 세운 근세 최대의 과학자이다. 그가 쓴 프린키피아(원명은 ‘자연철학에 관한 수학적 원리', 1687)는 16-17세기의 과학의 혁명을 마무리한 저작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소문난 신앙의 소유자였다. 그의 신앙적인 면면은 다음의 일화에서 엿볼 수 있다.

어느 날, 그는 한 기술자에게 부탁하여 태양계의 별들이 한 동작에 의해 일시에 작동하는 태양계의 모형을 만들었다. 그리고, 무신론자인 친구가 찾아 왔을 때 그는 모형을 작동시키려고 크랑크를 돌렸다. 그러자, 여러 개의 행성들이 톱니바뀌에 맞물려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정교하게 돌기 시작하였다. 신기하게 여긴 친구가 뉴톤에게 이 모형은 누가 만든 것이냐고 물었다. 뉴톤은 그것이 어느 날 저절로 만들어졌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화를 내면서 사람을 바보로 취급하느냐고 흥분하며 항의하였다. 그 때, 뉴톤은 친구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한다. “이것은 장엄한 태양계를 흉내 내어 만든 조잡한 작은  모형물에 불과하다. 태양계를 지배하는 법칙들을 그대도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이토록 간단한 모형도 내가 저절로 생겨 났다고 했더니 자네는 성을 내면서 믿을 수 없다고 하지 않았나? 하물며, 저 광대한 태양계가 설계와 제작자가 없이 저절로 생겨났다고 한다면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 자네는 태양계가 무슨 방식으로  저절로 생겨 났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었는지 오히려 나에게 설명을 해 주게나.”

그는 <프린키피아>(Pricipia)에서 이렇게 고백하였다. “태양, 혹성, 혜성으로 구성된 너무나도 아름다운 천체는 지성(知性)을 가진 강력한 실존(實存)의 의도와 통제가 있으며, 그 분은 태초부터 존재하셨다고 믿을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지존하신 하나님은 영원무궁히 완전히 완벽하신 분이시다.” 그는 자신의 모든 발견들이 기도의 응답으로 이루어졌으며, “종교와 과학은 충돌하지 않으며 이성은 종교의 적이 아닌 벗”이라고도 하였다.


이 밖에도, 현대우주론의 기초를 쌓은 윌리엄 허쉘(William Herschel 1738-1822)과 그의 아들인 죤 허쉘(John Herschel 1792-1871), 벨지움의 카톨릭사제였던 라메뜨리도 빼어 놓을 수 없는 크리스쳔 과학자들이다.


파스칼(Blaise Pascal)은 기압계를 발명하고 분압의 법칙인 파스칼의 원리를 발견하였다. 그는 독실한 사상가로 <팡세>(暝想錄 Thoughts)와 같은 주옥같은 인생안내서를 남기도 하였다. 그는 “(파스칼의) 내기” 라는 이야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은 존재하든가 부재하든가 둘 중에 하나이다. 만일, 당신이 그 내기에서 신이 존재한다는 쪽에 당신의 삶을 건다면 모든 것을 얻을 것이다. 이 경우, 설사 당신이 틀렸다 할지라도 당신은 잃을 것이 전혀 없다. 반대로, 하나님이 존재치 않는다는 쪽에 걸어서 당신의 말이 맞게 된다면 당신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당신이 맞지 않을 경우엔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유동수; ibid., p 178].


19세기에 가장 위대한 천재 중 하나로 추앙받는 맥스웰(James C. Maxwell 1831-1879)은 광학, 전기학, 자기학을 통합하는 수학방정식을 수립하고 뉴톤역학과 더불어 고전물리학을 구축한 인물이다.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업적을 뉴톤이래 최대의 발견이라고 격찬하였다. 그는 암으로 죽을 때까지 겸손과 순종으로 일관한 크리스쳔이었다.


19세기 최대의 과학자중 일인으로 평가받는 패러디(Michael Faraday 1791-1867)는 패러디의 전기법칙을 발견하였다. 그는 신실한 기독교인으로서 50세부터는 정규적인 설교가 되었으며, 다윈의 진화론을 강력히 비판하였다. 무선통신을 발명한 모르스(Samuel F.B. Morse 1791-1872)는 동생에게 “그것은 하나님의 작품이다. 오직 그 분만이 나의 모든 시도를 통하여 지금의 위치에 이르게 하셨다”고 고백하였다.


절대온도를 발견한 캘빈(Lord W. Kalvin 1824-1907, 舊名은 William Thompson)은 열역학 제2법칙을 발견한 사람으로서 진화론을 강력히 비판하였다. 그는 “이 지구상에서 생명의 시작은 어떤 화학적이거나 전기적인 활동 또는 분자들의 결합에 의해 유도되는 것이 아니다...우리는 잠시 멈추고 생물창조의 기적과 신비를 직접 들여다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라디오 진공관을 발명한 영국의 플레밍(John Fleming, 1849-1945)은 대중강연을 다니면서, 다윈의 진화론은 증명되지 않은 비과학적인 이론이라고 논박하였다. 그리고, 성경은 인간의 소산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강조하였다고 한다.

상대성원리와 양자론(Quantun Theory)으로 현대물리학의 초석을 놓은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유태계 독일인으로 20세기 최대의 과학자로 손꼽힌다(사진 1). 그는 우주를 시간-공간-물질이 연속체로 존재한다는 현대우주론을 수립했는데, 이는 태초(시간), 하늘(공간), 땅(물질)을 동시에 창조하였다는 창세기(창1;1)의 선언을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그는 주일 아침마다 교회에 나가 예배하던 크리스쳔 과학자로서 “나는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흔적을 찾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는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하여 “종교없는 과학은 절름발이며, 과학없는 종교는 장님(Science without religion is lame, and the religion without science is blind)' 이라고 하였다(1954).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아폴로우주계획을 지휘했던 사람이 독일태생의 미국인 과학자인 브라운 박사(Werhner von Braun 1912-1977)이다(사진 2). 그는 새턴(Saturn Ⅴ) 로케트를 개발하여 닐 암스트롱(Neil Amstrong)을 달나라에 착륙시킨('69. 7. 20)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어렸을 때 루터교 신자인 어머니가 준 망원경을 가지고 우주에 대한 꿈을 키웠다. 13세때 로케트연구자인 루마니아의 과학자 오버쓰(Herman Oberth)의 저서를 읽고 우주여행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18세 되던 해에 샤로텐버그 대학(Charlotenburg Universitat)에서 오버쓰의 조교가 되어 로케트엔진의 개발에 참여하였다. 그는 베르린 대학에서 학위를 마친 후, 독일군에 입대하여 80명의 과학자들과 더불어 10여년간 연구한 결과 V-2로 알려진 장거리 탄도미사일의 개발에 성공하였다. 이 로케트 수천발이 런던과 파리로 발사되자(1944. 9) 브라운은 힘러(Heinrich Himmler)사령관의 협조를 거부하다가 투옥되었다.

2차대전 후 그는 가족 및 100여명의 과학자들과 함께 미국으로 넘겨져 소련과의 우주경쟁에 나섰다. 소련이 먼저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리자(1957.10), 브라운 연구팀도 넉달후에 엑스플러러 1호를 발사하였다(1958.1). 같은 해에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창설되면서, 그는 우주비행센터의 책임자로 활약하였다. 이렇게 하여, 미국 최초의 우주비행사인 셰퍼드(Alan B. Sheperd)가 우주로 비행한데 이어(1961) 머큐리, 제미니, 아폴로우주계획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마침내, 아폴로우주선이 암스트롱과 올드린(Buzz Aldrin)을 태우고 달표면에 도착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것은 브라운이 개발한 새턴 v로케트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유인 우주비행은 놀라운 업적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있어서 그것은 장엄한 우주를 바라보기 위한 작은 문을 연 것에 불과하다. 이 작은 구멍을 통하여 우주의 광대한 신비를 바라볼 때 그것은 우주에 대한 창조주께 대한 우리 믿음을 더욱 굳게 해 줄 뿐이다.” 그는 항상 기도하는 사람으로 “성경은 하나님의 성품과 사랑의 계시"라고 하였다. 그는 진화론에 대해 명백히 반대하였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교육위원회의 요청을 받고서 다음과 같은 답신편지(1974.9.14)를 보냈다고 한다.

 “우주와 생명, 인간의 기원에 대한 설계에 의한 창조가 믿을만한가에 대한 부탁말씀에 제 의견을 기쁘게 답변하고자 합니다. 내 생각에 창조란 누군가 설계하지 않고서는 생각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어느 누구도 우주의 법칙과 질서를 보고서 그 뒤에는 반드시 설계와 목적이 있어야만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우주와 그 속의 모든 기묘한 현상들을 이해할수록 그 속에 있는 내적 설계에 더욱 놀라게 됩니다...우주의 모든 것이 우연히 생겼다고 믿도록 강요하는 것은 과학의 객관성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게중엔 우주가 비규칙적인 과정으로 진화했다고 믿는 사람도 있으나, 도대체 어떤 비규칙적인 과정이 사람의 뇌며 눈과 같이 정밀한 기관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입니까?...(진화론자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라고 요구하지만 우리가 어디에나 있는 태양을 보기 위해 촛불을 켜야 한다는 말입니까?...물리학자가 전자를 그려낼 수 있다는 말입니까?...자신들이 우주의 설계자를 생각할 수 없다는 이유로 창조주에 대한 믿음을 거부한다면 전자가 있다고 믿는 그들은 어떤 근거로 그 같은 이론을 세우는 것입니까?...그 이유는 다른 분야에서 매우 제한적인 자료를 가져와 전자에 대한 모델을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모델을 만들 수 있을지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우리가 달에 보낸 아폴로가 성공을 거두게 된 이유는..."우리가 그 어떤 사실도 간과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정직성의 관점에서 학생들에게...우주, 생명, 인간의 기원에 관하여 진화론과는 다른 이론이 제시되어야 하리라고 제안하는 바입니다. 우주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계획되었을 가능성을 간과하는 것은 큰 실수입니다.“ [이종헌 역; 우주탐험의 선구자 폰 브라운, 창조 109호, pp 11-16, 1998, 원문은 Ann Lamont; Creatio ex nihilo, 94-2], [유동수; ibid, p 165-166].

(Horace Lamb 1849-1934), 가우스(Karl Gauss 1777-1855), 바안즈(Barnes 1971)로 이어지는 지자기학(geomagnetism)은 라이엘의 지구역사가 길다는 이론에 반하는 수많은 자료들을 제공하였다. 이 밖에, 열역학법칙을 발견한 주울(James Joule 1818-1889), 전동기와 검류계(galvanometer)를 개발한 헨리(Joseph Henry 1797-1878), 틴달현상을 발견하고 생명의 자연발생설을 강력하게 비판한 틴달(Tyndall), 콤푸톤 효과를 발견한 콤프톤(Compton) 등도 잊을 수 없는 독실한 크리스쳔 과학자들이었다.


3.3 화학/지질학 분야

화학자로서 보일의 법칙을 발견한 보일, 리스터, 심프손, 불활성기체를 발견한 램세이(William Ramsay 1852-1916), 게이버(Dennis Gaber)등이 빼 놓을 수 없는 화학자들이다. 노벨상 수상자(1971)인 게이버는 “나는 모든 것이 무작위적인 돌연변이에 의해 진화되었다는 것을 결코 믿을 수 없다”고 하였다. [Edward F. Blick; Special Creation versus Evolution, p 3] ‘화학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보일(Robert Boyle 1627-1691)은 아침마다 성경을 읽었으며, 선교와 성경번역사업에 열성적이었다고 한다. 방부제 수술법을 개발한 리스터(Joseph Liser 1827-1912), 클로로포름을 발견했고 부인과의학(Gynecology)의 기초를 놓은 심프손(James Simpson 1811-1870) 등도 의학계에서 활약한 창조과학자들이다. 심프손은 한 공개모임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내가 구주를 모시고 있는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한다.


프랑스 지질학회 회장이며 파리 자연사박물관 관장인 레모인(P. Lemoine)의 비판은 더욱  강렬한 것이다. “젊은이들이 심각한 속임수에 걸려 넘어지고 있는 진화론은 이 세상에서 계속 가르쳐지고 있는 하나의 교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동식물학자들은 대개가 진화론이 적합치 못하다고 확신하고 있다. 우리는 진화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하였다. (유동수; ibid., p 167). 광학광물학(optical mineralogy)의 브루스터(David Brewster 1781-1868), 지층학(stratigraphy)의 스테노(Nicholaus Steno 1638-1686), 시편에 기술한 해로(海路)를 찾아 해양학(oceanography)을 개척한 마우리(Mathew Maury 1806-1873), 화석학(paleontology)의 우드워드(John Woodward 1665-1728) 등도 지구과학의 이론에 기여한 창조과학자들이었다.


3.4 기타

이 밖에도, 수많은 과학자들이 창조론에 입각하여 활약을 하였다. 열운동역학의 데이비(Humphrey Davy 1778-1829), 유체역학의 스톡스(George Stokes 1819-1903), 계산기를 만든 베비지(Charles Babbage 1792-1871) 등을 들 수 있다.



*참조 : Index to Scientist Biographies (CEH)

https://crev.info/scientists/index/


출처 - 도서,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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