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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신앙

아인슈타인은 창조론자였는가 ?

아인슈타인은 창조론자였는가 ?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이제까지 살았던 가장 위대한 과학자 중 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또한 생명과 주위의 고통받는 사람들을 깊이 생각하는 인도주의자이기도 하였다. 나치의 박해를 경험한 유태인으로 그는 많은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외에도 그에게는 또 다른 면이 있었는데, 이것은 별로 이야기되지 않았었다.

페리스(Ferris)는 아인슈타인이 매우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아마도 그가 ”하나님은 세상을 가지고 주사위 놀음을 하지는 않으셨다”는 말을 자주 인용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창조주나 주권자로 생각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실제로 ”아인슈타인은 천주교 신부보다 하나님의 개념을 더 자주 사용하였다”고 조소했을 뿐이다.    

아인슈타인은 인간을 포함한 하나님의 창조뿐 아니라, 창조자로서의 그리고 주권자로서의 하나님을 예리하게 추구했다. 그는 한때 ”어떻게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였는가?” 를 알고 싶다고 했으며, 하나님을 친밀한 창조주로 생각하여 하나님을 창조자로 믿는가 라는 질문에 '예' 라고 대답하곤 했다. 덧붙여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조화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스피노자(Spinoza)의 신도 믿는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이러한 말 때문에 아인슈타인을 범신론자라고 생각하나, 창조에 대한 그의 표현을 보면 이는 틀린 것임을 알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하나님의 창조를 연구하면서 하나님을 알았다. 사실 창조와 하나님과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어 아인슈타인에게는 창조를 통해 창조자를 떠올렸고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예술 감정가가 화가와 그의 작품을 연관시키는 것, 즉 Renoir의 작품을 그냥 Renoir 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화가는 자신의 그림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그림은 화가를 표현하는 것 뿐 아니라, 그 화가의 이름을 그대로 부를 만큼 화가의 일부인 것이다. 이것은 이상한 논법이 아니다. 아인슈타인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끔 이와 같은 비유를 사용하는데 이는 매우 적절한 예인 것 같다.

한때 아인슈타인은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창조하였는지 알고 싶다. 또한 그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면서 ”과학이 결코 하나님을 대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가끔 우주의 질서에 관해 언급하면서 물질계의 무한한 정교함과 아름다움에 경이를 표하곤 했다. 아인슈타인의 신학적 믿음의 특성과 그가 자주 사용하는 각종 표현들의 정확한 의미 - 그의 저술에 신학적인 개념이나 사상은 계속 사용되었다 - 는 항상 명백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가 기원에 대한 문제를 생각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Clark는 말하기를 그는 우주의 질서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있어서 ”12살 이후 이런 견해를 속히 바꾸는 것이 하나의 과제였다”고 밝혔다. 그 후 나머지 생애에 있어서 다른 것들은 비교적 사소하였던 모양이다. 어떤 작가들은 실제 아인슈타인이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그리 심취되어 있지 않다고 말하기까지 하는데, 그 이유는 한때 그가 Ernst Straus에게 ”실질적인 나의 관심사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선택의 여지가 있었는지의 여부이다” 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가 신학에 대해 강력하고 특별하게 쓰지 않았던 주된 이유도 그의 믿음이 늘 확실치는 않았다는데 기인한다. 아인슈타인은 기독교 계통의 학교에 몇 년간 다녔지만 정규적인 신앙훈련은 받지 않았다 (다른 유태인학교보다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에). 그의 가족은 종교적 의식은 별로 중요시하지 않는 유태인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모든 면에 있어서 '질서와 조화'의 우주를 믿으며, 과학이 궁극적으로 과학과 종교의 공간을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아인슈타인에게 있어서 신앙심은 어릴 때 이후 그의 개성에 강하게 나타났다. ”소년기에 아인슈타인은 하나님을 위해서 찬송가를 작곡한 적은 없지만, 학교로 가는 길에 찬송가를 부르곤 했다. 어른이 되어, 양자물리학의 궁극적인 용도에 동의하지 않아 과학적 주류에서 고립되었을 때에, 평소처럼 오래된 찬송가를 부르면서 외로움을 달래곤 했다” 고 Ferris는 말했다. 한때 그는 물리학자 Max Boron에게 인과의 정확성 보다 확률에 의존하는 것 같은 '양자론(Quantum principle)'은 실제 우리에게 '창조주의 비밀'에 접근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고 편지를 썼다.

1930년 10월 27일 George Bernard Show는 런던에서 Einstein 교수를 위해 마련된 정찬에 초대되어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뉴턴은 300년간 지속되는 우주를 만들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내가 보기에 영원히 그치지 않을 우주를 만들고 있다. 나는 그것이 언제 끝날지 알지 못한다. 이 위대한 사람은 두 측면을 가진 인간성(humanity)중 한 측면의 표상이다. 우리는 그 한 측면을 종교라고, 그리고 다른 측면을 과학이라고 부른다. 종교는 항상 옳다. 종교는 우리가 반드시 직면하게 되는 심각한 문제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준다. 반면에 과학은 항상 틀린다. 왜냐하면 이는 너무나 인위적이기 때문이다. 과학은 10 개의 새로운 문제를 제기해 놓고서야 겨우 하나의 문제를 풀 수 있을 뿐이다.”

아인슈타인의 신앙심은 지식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하나의 인격체로 생각한데서 출발한다. 광대무변한 종교(Cosmic religion)란 이름의 집회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인간을 종교적인 생각이나 포괄적인 의미의 신앙으로 몰고 가는 감정이나 요구란 어떤 것일까?……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종교적인 생각이나 경험의 초기에는 매우 다양한 감정이 생기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사랑과 구원으로의 길을 가려는 인간의 욕망은 보호하고, 결정하고, 상주고, 벌주는 사회적이고 도덕적인 하나님의 섭리를 위해 자극제 역할을 한다.……오직 생을 사랑하는 인류의 삶을 위해 사랑하시고 예비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다. 그는 불행이나 욕구불만의 위로자요, 영혼의 보호자이시다……”

그러면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창조론에 투영된 창조주 하나님'을 어떻게 자신의 과학적 연구에 영향을 주는 존재로 생각하였는가? 그는 하나님의 개념이 도움을 준다고 느꼈다. 덧붙여 ”동시대 사람들이 말하듯이 거대한 물질만능 시대에 오직 깊은 신앙심을 가진 자만이 가장 진지한 연구가이다” 라는 그의 말에서도 신학자도, 세례를 받은 기독교인도 아니지만, 그의 생각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가 설교를 통해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나름대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했다고 말한다. 그의 생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그는 확실히 하나님이 가르쳐 준 많은 진리에 접했다.

독일에 사는 유태인으로서 가끔 그의 생활은 위협을 당했다. 한번은 한 젊은이가 그의 강의실로 뛰어 들어와 ”유태인을 몰아내라!”고 외치기까지 했었는데, 이러한 경험은 그에게 독일에 사는 유태인에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깨치는 것 뿐 아니라, 인간의 다른 한 측면을 예리하게 파헤치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는 인간이 죄를 가지고 출생한다는 것을 느꼈다. 아마도 그의 신앙심에 대해 가장 단적으로 나타내어 주는 말로는 다음과 같은 Barnett의 인용문을 들 수 있다. ”나의 신앙심이란 아주 조그맣고 세밀한 부분에까지 자신을 나타내시는 무한한 초월자에 대해 보잘 것 없는 찬사로 이루어졌을 뿐이며, 우리는 깨어지기 쉽고 약한 마음으로도 그것을 알 수 있다. 초월자의 권능이 실재한다는 깊은 마음속 확신은 심오한 우주에서 확실히 얻을 수 있다.' 또 그는 '과학은 진리에 대한 열망으로 꽉 찬 사람들에 의해서만 창조될 수 있는데, 이러한 감정의 근원은 종교적인 테두리에서 생겨난다. 나는 짙은 신앙심을 갖지 않은 진정한 과학자는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경지는 영감에 의해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앙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이고, 과학 없는 신앙은 장님일 뿐이다.”

아인슈타인이 인간이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신, 즉, ”인간의 피조물로서의 하나님' 논리에 경고를 한 것은 사실이다. 그는 인간은 있는 그대로의 하나님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인슈타인이 그의 글에서 과학에 대해 보편화된 오류를 되풀이한 것은 불행이다. (예를 들면 갈릴레오나 다아윈이 제안했던 것과 같은 교회와 대치되는 공통된 오류) 그럼에도 아인슈타인의 전체적인 생각과 표현은 일시적인 진화론적 사고보다는 창조론자들 부류와 더 가까웠던 것 같다. 한때 그는 '종교적인 경험이야말로 과학적인 연구의 가장 강력하고 고귀한 원천이다” 라고 말한 적도 있다.

몇 년 뒤 행성은 어디에 있을까를 계산하는 것 같은 간단한 인과법칙을 예견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많은 변수가 나타나는 현상학인 복합체(phenomenological complex)는 대부분 과학적인 방법으로도 해결하기 힘들다고 말하면서, 아인슈타인은 날짜와 진화론을 자주 예로 들었다. ”앞으로 몇 일간의 날씨를 예견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런 진화론의 경우 많은 변수들이 나타나기 때문에 예견하기는 불가능하고, 단지 이론(theory)의 타당성 여부만을 알아볼 수 있을 뿐이다.”

아인슈타인은 복잡한 사람이면서, 정식 기독교인도 물론 아니었지만, 어느 편에서건 답을 찾으려고 하는 열린 마음의 소유자였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분명 그 주위의 다른 사람들보다 현재의 창조론 운동을 서둘러 판단해 버리지 않았던 것 같다.



출처 - 창조지, 제 14호 [1984. 5]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65

참고 : 3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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