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RARY

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창조신앙

Ann Lamont
2005-07-13

블레이즈 파스칼 (Blaise Pascal, 1623-1662) 

: 뛰어난 과학자이며 헌신된 크리스천


      블레이즈 파스칼은 클러몬트-페란드(Clermont-Ferrand)라는 프랑스 시골 마을에서, 1623년 6월 19일에 3남매 중 하나로 태어났다. 불행히도 그가 세 살밖에 안되었을 때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그 후 가족 모두 파리로 이사했다.

그의 생애 동안 건강은 극도로 약했지만, 재기 넘치는 지성을 타고났었다. 처음에 그의 아버지는 파스칼이 수학을 배우면 심적으로 매우 어려워할 것으로 우려하였으나, 오히려 수학만이 그의 유일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14세에 파스칼은 매주 수학강좌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수학자들의 주별 모임이 후에 ‘프랑스 과학원(French Academy of Science)’으로 발전하게 된다. 단지 16세에, 파스칼은 원뿔곡선에 관한 논문을 썼다. 그 논문은 동시대 수학자들로부터 아르키메데스 시대 이후 "수학 분야에 가장 위대하고 가치 있는 기여를 한 논문"으로 갈채를 받았다. 이 논문은 원뿔곡선에 대한 현대적 접근방법의 기초가 되었다.


파스칼의 계산기

블레이즈 파스칼은 항상 실생활에 유용한 과학 및 수학을 추구하였다. 아직 십대였을 때, 그는 계산하는 첫 기계, 즉 덧셈과 뺄셈을 할 수 있는 대수기계를 발명하였다. 이 기계는 각각 0부터 9까지의 숫자를 가진 일련의 바퀴로 구성되어 있었고, 바퀴들은 여러 개의 기어로 연결되어 있어, 한 바퀴가 1회전하면 그 옆 바퀴는 십 분의 1만큼 회전하도록 고안되어 있었다. 이 기계는 세무법원의 판사인 아버지에게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었고, 점차로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파스칼의 계산기는 오늘날의 계산기와 컴퓨터의 발달을 가능케 한 디딤돌이 되었다.


크리스천 신조

1646년에 파스칼은 얀센파에 가담하였다. 얀센파는 선행보다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칼뱅주의에 동조하는 프랑스 내의 카톨릭의 한 파이었다. 파스칼은 ”인간의 마음은 어떤 피조물로도 채워질 수 없고, 오직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서만 채워질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계시된 하나님의 형상을 한 빈 공간(God-shaped vacuum)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파스칼은 창세기에 묘사된 사건들이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대영백과사전은 ”파스칼은 인간의 가증함은 오직 타락의 결과로서만 해석될 수 있고, 사도 바울에게 예수님은 첫 아담이 없으면 상상할 수도 없는 두 번째 아담인 것처럼, 자신에게도 두 번째 아담으로 믿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 적하기(積荷機; loader)의 앞에 있는 삽(shovel)을 작동시키는 데 사용되는 유압 장비는 파스칼의 발견에 근거한 것이다.


명확한 신념을 소유한 크리스천 파스칼은 계속해서 과학과 수학에 종사했다. 파스칼은 기압계를 사용한 실험을 통하여 오늘날에는 매우 익숙한 사실들을 증명하였다. 즉, 기압계의 수은주의 변화를 관찰하면 알 수 있듯이, 기압은 고도가 높아질수록 감소하며, 날씨의 변화에 따라서도 변한다는 사실들을 증명하였다. 또한 파스칼은 유체정역학과 유체역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는 "용기에 담긴 액체에 압력이 가해지면, 그 압력은 그 압력이 부하된 면적에 관계없이, 또한 거리에 관계없이 모든 방향으로 동일하게 전달된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 사실은 "파스칼의 법칙"으로 알려져 있으며, 파스칼이 설계한 유체 압축기의 기본 원리가 되었다.

유체에 관련한 이러한 실험 도중에 주사기를 발명하기도 하였다. 그는 또한 싸이클로이드(한 원이 직선을 따라 구를 때, 그 원주의 한 점이 그리는 궤적)를 연구하였다. 이러한 싸이클로이드에 관한 수많은 물리적/수학적 발견은 후에 다른 사람들에 의해 전개된 미적분학의 발달에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


확률론

파스칼은 페르마(Fermat)라는 수학자와 함께 확률이론에 대해 연구하였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간 편지를 통해 그들이 확률이론의 창시자로서 동등한 역할을 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비록 그들의 연구는 다양한 도박장에서 수행되었지만, 그 이론은 엄청난 적용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 이론은 모든 보험상품(설계)의 기초가 되었으며, 입자의 거동을 묘사할 때 확률을 사용하는 양자 물리학 등, 수많은 과학의 여러 분야에 유용한 이론이 되었다. 파스칼은 확률계산에 유용한 "파스칼의 삼각형"으로 알려진 간단한 도식적 방법을 제시하였다.


파스칼의 삼각형은 매우 간단하게 작성된다. 삼각형의 각 숫자는 바로 위에 있는 두 숫자의 합이다. 그것은 단 두 개의 결과만을 갖는 사상(event)의 확률을 구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여기에는 동전 던지기(앞면이냐 뒷면이냐) 또는 아이 낳는 것(남자냐 여자냐) 등이 포함된다. 예를 들어, 동전을 세 번 던지면 8개의 경우의 수가 있다: HHH, HHT, HTH, THH, TTH, THT, HTT, TTT.
삼각형의 세 번째 행을 보면 숫자가 1, 3, 3, 1이다. 이것은, 모두 앞면 또는 모두 뒷면을 얻을 경우의 수는 단 한 번이며, 앞면이 두 번 뒷면이 한번, 또는 뒷면이 두 번 앞면이 한번 나올 경우의 수는 3번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확률로 환산하면, 가능한 결과의 확률은: 3H - 1/8(8번 중에 한 번의 기회); 2H1T - 3/8,  2T1H - 3/8,  3T - 1/8
네 번째 행을 보면, 네 명의 자녀를 둔 가족에 대해 알아볼 수 있다. 딸 하나와 아들이 셋인 경우가, 딸이 없고 아들만 네 명인 경우보다 가능성이 네 배이다. 반면에, 아들이 둘이고 딸이 둘인 경우는  6배이다. 자녀가 4명인 가족이 모두 아들이거나 모두 딸인 경우는 16번 중의 한 번이다. 등등.

 

회개

파스칼은 도박이 열리는 많은 파티에 참석했으며, 불행히도 이런 생활방식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다. 그러나 1654년 마차가 튕겨 나가는 사고로부터 간신히 목숨을 건지는 일이 발생했다. 이때, 그의 말은 죽었으나 그 자신은 무사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보존케 하셨음을 확신하고, 그 당시 생활방식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때, 즉, 31세부터, 39세에 죽을 때까지 그는 오직 한 가지 소망을 가지고 살았다. 그 소망은 사람들의 생각을 구원자이신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 다시 돌아온 그 당시에 파스칼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 "확신! 기쁨! 평화! 나는 하나님 이외에는 세상과 모든 것을 다 잊는다...”  "나는 나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 자신을 전적으로 복종시킨다.”

파스칼은 생애 마지막 몇 년 동안 종교적 저술에 헌신하였다. 그는 "시골뜨기의 편지(Provincial Letters)"로 알려진 그 유명한 18개로 구성된 편지를 썼다. 그 편지들은 비평가들에 의해 현대 프랑스 산문의 시초로 간주된다. 파스칼은 또한 탁월한 저서 "팡세"(불어로 ‘사상’을 뜻함)를 저술하였다. 팡세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그 자신의 신념에 대해 논한 책이다.

파스칼은 인간은 자신의 지혜로는 완전한 지식에 도달할 수 없음을 인정하였다. 그는 기록하기를 ”믿음은 감각적으로 알 수 없는 것들을 알게 해 주며, 그것은 나타난 사실과 모순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또한 그는, 하나님은 단순한 창조자 이상이심을 알았다. 즉, 그분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또한 개개인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시며, 기독교인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위로의 하나님이심을 깨달았다.

파스칼은 구원문제에 확률의 개념을 적용한 "파스칼의 내기"라는 것으로 유명하다. 파스칼의 내기는 다음과 같이 쉽게 풀이된다. "크리스천이 되기로 선택한 사람들이 손해 볼 것은 무엇인가? 설사 그가 죽어서 하나님도 없고, 그의 믿음이 헛된 것이었다라고 판명되더라도 그는 잃을 것이 없다. 사실상 그는 믿지 않는 친구들보다 더 행복하게 산 사람이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도 계시고 천당과 지옥이 있다면, 그는 천국을 얻을 것이고, 그의 무신론자 친구들은 지옥에서 모든 것을 잃을 것이다.”

죽음이 임박했을 때, 파스칼은 기록하기를 "나는 나를 위해 고통 받고 죽으신 나의 구원자를 향해 팔을 펼치고 있다.” 파스칼은 파리에서 1662년(39세) 8월 19일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부단히 병고에 시달린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이 헌신된 크리스천은 과학, 수학 및 문학에 지대한 발자취를 남기고 갔다.

 


*참조 : Blaise Pascal

https://crev.info/?scientists=blaise-pascal

위대한 창조과학자들 (List of great Creation Scientists)
http://crev.info/?scientists=index


번역 - 이종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0/i1/scientist.asp ,

출처 - Creation 20(1): 38–39, December 1997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745

참고 :

김정훈
2005-06-24

어느 선교사의 죽음 : 전광호 선교사를 보내며


       서울대학교 학사와 카이스트 석사, 동경대학교 박사, 미국 국립보건연구소 연구원, 그 다음 이력으로는 뭐가 어울릴까? 명성 높은 어느 대학이나 혹은 어떤 세계적인 기업에서 계속 그 경력을 이어 갔다고 하면 어울렸을까?  그러나 그는 그의 전공인 생화학 분야에서 한창 연구가 무르익으며 경력에 불이 붙을 즈음에 홀연히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무대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는 선교사가 된 것이다.  

지난 5년간 그는 인도네시아라는 낯선 땅에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한 대학의 교수로 있으며 학생들에게 생화학을 가르쳤지만, 정작 그를 바쁘게 했던 것은 그 나라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전해야 했던 ‘진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갑자기 삶의 궤도 수정을 한 것도 결국은 그 ‘진리’에 대한 마음속의 오랜 부담이 인도네시아란 나라를 향해 나타났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진리’는 과학도였던 그가 드러내고자 했던 만물의 기원에 관한 진리였고, 그것은 다름 아닌 ‘창조’에 대한 증거였다. 그는 장래가 촉망되는 과학자로서 과학이 가리키는 만물의 기원은 어떤 지적존재에 의한 창조일 수밖에 없음을 양심선언 하였고,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이 바로 그 창조주임을 발견하고는 자신의 삶을 온전히 그분을 증거하는 일에 헌신하기로 매진한 것이었다.

모든 선교가 그렇듯이 창조과학 전문 선교도 결코 쉬울 수가 없었고, 그 어려움은 예상 외로 빨리 찾아 왔다. 다른 언어, 문화, 풍토 속에서 몸을 아끼지 않고 선교에 전력 하던 중, 유난히 폐질환을 많이 일으킨다는 그 나라 기후에 그만 폐암이라는 진단을 얻기에 이르렀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암이 많이 진행되어 간과 뇌로까지 퍼져 있었고, 급기야는 지난 6월 19일 새벽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전 광호 선교사님. 40대 중반의 한창일 시기에 그는 이렇게 우리 곁을 떠나갔다. 문득 그의 죽음에 대한 인간적인 슬픔을 뒤로 하고, 지난 5년간 낯선 인도네시아 땅에서 그가 전하고 다녔던 그 ‘창조의 진리’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사람이 오랜 세월 동안 아메바로부터 원숭이를 거쳐 진화해온 것이 아니라, 창조주에 의해 지음 받았다는 사실이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을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야 할 이유가 거기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원숭이로부터 진화되어 왔다면 에덴동산에서의 선악과 이야기는 역사가 아닌 한낱 상상에 지나지 않고 따라서 예수를 통한 구원도 무의미해지지만,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물이 과학적으로 봐도 누군가가 만들었다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진다면 이는 우리에게 그 만드신 분에대한 탐구를 촉구하여 신앙의 시발점이 될 뿐만 아니라, 결국 이는 예수의 부활과 구원으로 이어지는 기독교 신앙의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듯이, 그의 죽음 또한 그렇게 될 것이다. 그가 누비고 다녔던 인도네시아에서는 물론이거니와 또한 이곳 고국에서도 늘 그의 삶을 지켜보며 한 마음으로 그를 격려하던 우리들 남겨진 자들에게 그의 죽음은 새로운 생명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될 것이다. ‘창조의 진리’는 계속하여 외쳐질 것이다.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그 날까지.....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714

참고 :

이재만
2004-07-29

화학, 생물학의 기초자 

: 로버트 보일, 존 레이, 카롤루스 린네


      영국 학사원(the Royal Society)의 설립자인 로버트 보일(Robert Boyle, 1627-91)은 현대 화학의 아버지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다. 서양의 화학이 중세의 연금술 수준에서 벗어나도록 했던 장본인이라 할 수 있다. 보일의 이름은 중고등학교에서 입에 붙어 다니며 외우던 화학의 기본 보일-샤를의 법칙을 발견한 사람으로 귀에 익다. 즉 기체의 압력, 온도, 부피의 관계를 기체역학으로 설명한 가장 기초적인 법칙이다. 그의 기여도는 화학, 물리학 모두에서 수많이 발견된다.  보일은 겸손하며 자신이 믿는 증거를 좋아하는 기독교인이며, 성경 읽기에 부지런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교에 깊은 관심이 있어서 성서번역과 복음전파에 많은 돈을 기부하기도 하였다. 성서변증에도 유달리 강해서, 상대자에게 기독교를 변론하는 '보일의 강연”으로 유명했던 사람이다.


보일을 따라 영국 학사원을 같이 설립했던 영국박물관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존 레이(John Ray, 1627-1705)가 있다.  그도 역시 당시 식물학과 동물학에 가장 권위 있는 자로 신실한 기독교인이며, 창조론자였다.  레이는 수많은 자연신학에 관한 책들을 썼는데, 그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창조작품 속에 명백히 드러난 하나님의 지혜, The Wisdom of God Manifested in the Works of the Creation” 이다.  그의 책에는 "처음에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작품들은 그가 처음 만든 것과 똑 같은 상태와 조건으로 그에 의해서 오늘날에도 보존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많은 노력은 당시 이신론적(Deistic) 진화론자들을 정면으로 지적하였는데, 특별히 진화론이 나오기 전에 진화론적 사고를 갖고있던 데카르트(Decartes, 1596-1650)와 그의 추종자들이 이에 해당자 들이었다.


생물분류학의 아버지로 잘 알려진 사람이 바로 생물분류법으로 알려진 카롤루스 린네(Carolus Linnaeus, 1707-1778)이다. 식물계와 동물계로 그 분류의 기준이 아직까지 사용되고 있는데, 바로 린네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는 성경에 대한 열정과 경외함이 가득찬 사람이었는데, 엄청난 수의 생물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창세기의 "종류대로”란 말을 정리하고자 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즉 "종, species” 이란 개념을 성경의 "종류대로, kind”와 동일시 하기 위해서 시도된 것인데, 그는 변이(같은 종 내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하는 것)는 같은 종 안에서만 발생할 수 있으나, 종에서 다른 종으로 변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다.  즉 나중에 찰스 다윈에 의한 진화 가능성을 일찌감치 부정했다.  그는 종의 판별이 쉽지 않으며, 많은 실수들을 거친다는 것을 알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근본적인 "종의 불변성, fixity of species”을 믿고 있었다.  오늘날 종의 분류가 많은 부분에서 진화론적 영향을 받았지만, 분류학의 처음 시도는 성경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참조 : Carl Linnaeus: the scientist who saw evidence for God in everything in nature (CMI, Creation 37(4):52–55, October 2015)   http://creation.com/carl-linnaeus

서양이 중세과학에서 근대과학으로 넘어가는데, 화학과 생물학에 기초를 다졌던 사람들은 성경이 사실이라고 믿던 기독교인이었다.  하나님 이외에 어떠한 신도 허락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 하나님을 알고 있던 자(잠 1:7; 9:10)들에게 하나님께서 모든 과학자들의 머리가 되게 하신 일들을 볼 수 있다.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니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신 28:13-14)


구분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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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이재만
2004-07-28

베이컨 / 파스칼


       영국의 대법관이었던 프란시스 베이컨 (Francis Bacon, 1561-1626)은 소위 말하는 “과학적 방법”을 설정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가 과학자로서 직접 이룬 업적은 없지만, 근대과학으로 접어들게 한 사고의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그는 귀납법적 방법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는데, 즉 관찰과 그 결과를 요약하여 과학적 법칙으로 이끄는 형태를 지지하였다. 기존에 관찰이나 실험이 없이 결론으로 이끄는 식의 아리스토텔레스적 방법을 비판하면서, 전통에 영향을 받은 철학적인 사고가 아니라, 실험이 수행되어야 하며, 자료에서 유도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베이컨의 글들은 영국왕실의 기초를 세우는데 인정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의 사고는 19세기 초 미국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그 영향이란 과학이 사실을 고수하여야 하며, 직접적인 관찰 없이 확증 안된 가설들은 거부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베이컨은 성경을 확고히 믿는 사람이었는데, 그의 글에는 “우리 앞에는 실수를 막을 수 있는 두 권의 책이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의지가 계시된 성경이며, 그의 능력을 드러내는 피조물 이다” 라고 쓰여있다.

 

파스칼(Blaise Pascal, 1623-62)은 위대한 철학자요, 수학자며, 유체역학의 아버지요, 수리역학의 설립자로 알려진 사람이다. 수학에서 원추기하학, 미적분학, 확률에 대한 수학이론 등을 기초하였다. 원추기하학의 결론에서 “만약 이것이 계속적인 연구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주시는 한도까지 그것을 밀고 나가야 해야 할 것이다.”라고 단언하였다. 진공에 대한 연구로도 잘 알려졌으며, 이는 자연이 진공을 싫어하기 때문에 진공은 있을 수 없다는 식의 아리스토텔레스적 사고를 반박하였다. 이는 기압계의 발전으로 연결되었다. 그는 자연이 창조주의 뛰어난 솜씨를 표현한다고 믿었다. 그러면서도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의 진리를 자연에 대한 연구만으로는 불가능한 베일 뒤에 감추셨다고 믿었다. 파스칼은 성경이 말하는 사실 위에 기독교가 서있음을 분명히 하였다


그러한 과학적인 업적에도 불구하고 종교적인 자로서 잘 알려졌는데, 바로 그의 명상록 때문이다. 그는 카톨릭 교회 안에서 교회개혁의 정신을 주장했던 얀센파(Jansenists)로서 캘빈주의적 준 개신교인으로 잘 알려졌다. 또한 “파스칼의 내기 (Wager of Pascal)”로 유명한데, “기독교인이 되기로 선택한 사람이 잃을 것이 있을까? 그(기독교인)가 죽은 다음 내쫓을 하나님도 없고 그의 믿음이 허구라면, 그는 잃을 것도 없을 것이다. 반면에 그가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하나님을 믿는 덕택에) 더 행복한 삶 속에 있었다면, 그에게는 하나님이 있고 천국과 지옥이 있으며 결국에 그는 천국을 얻을 것이고, 그의 친구들은 지옥에서 모든 것을 잃을 것이다.” 그의 사실적이고 설득력 있는 결론은 새로운 형태의 변증학을 산출하기도 했다.


과학적 방법을 체계화한 기독교인 베이컨이나 파스칼 모두가 과학에 있어서 관찰과 실험이라는 귀납법적인 형태를 취하였지만, 그 귀납법적인 방법이 사실인 성경보다 앞서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성경이 사실이라는 것과 올바른 과학적 방법과 한계를 알고있는 두 사람의 생각은 지금도 똑같이 적용된다.


구분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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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이재만
2004-07-27

리스터 : 방부처리 외과수술의 개척자


      기독교인 과학자들 가운데 의학계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두 사람이 있다. 광견병, 디프테리아, 탄저병에 관한 백신을 발달케 했던 루이스 파스퇴르(1822-95)와 마취학의 기초를 세운 Chloroform을 발견한 제임스 심슨 (1811-70) 이다. 이번에 소개할 죠셉 리스터(Joseph Lister, 1827-1912)도 이들과 같이 의학계에 한 획을 그은 사람이다. 그의 공헌 가운데 가장 큰 것은 화학적 살균의 사용을 사용하여 방부처리 외과수술을 가능케 한 것이다. 제임스 심슨에 의한 마취학의 발견으로 환자가 통증을 줄이고 수술을 받도록 하는 데는 진전이 있었으나, 수술 후 세균이 상처를 통해 들어와 염증을 일으키거나 이로 인해 사망까지 이르게 하는 패혈증을 앓게 되는 것이 또 다른 문제였다. 리스터는 석탄산이 세균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는 사실을 발견하여 이를 외과 수술에 적용하여 성공한 것이다. 이는 인간 수명을 연장한다는 개념에서 파스퇴르의 기여도 다음으로 취급될 수 있을 만한 것이다. 


실제로 이 발견은 기독교인 과학자 파스퇴르의 생물속생설(생물은 그 생물을 통해서 나오지 스스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이론)의 연장선상에서 발견되었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당시 진화론자들의 주장처럼 세균이 몸에서 자생한다는 그릇된 생각들 가졌다면 방부처리는 도저히 접근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스터는 파스퇴르가 생물의 자연발생이 과학적으로 불가능 하다는 증명에 힘입어, 세균이 몸 안에서 자생하는 것이 아니라 몸 밖에서 들어온다는 확신이 있었다. 더 나아가 이를 차단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염증을 방지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 동안 소개했던 기독교인 과학자들의 대부분은 하나님의 지으신 피조물의 원리를 발견하였는데, 한결같이 진화론적인 사고에 벗어나 있었을 뿐 아니라, 성경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진화론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진화론 속(진화론이 맞다는 사고)에서는 진화를 증명할 수도 없고 진화가 무엇인지 알 수도 없다. 진화론적인 자세를 갖고는 진화의 방법을 사용하지도 않았던 하나님 피조물 속에 넣어둔 원리도 깨달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리스터는 그밖에 외과 수술에 관하여도 여러 기념비적인 기여를 했으며, 후에 그의 이름을 따서 런던에 리스터 예방의학 연구원이 설립되었다. 그는 왕실학회와 영국연합에 대표였으며 후에 귀족이 되었다. 그가 생전에 많은 영예를 받았다 할지라도 다른 기독교인 과학자와 마찬가지로 늘 겸손과 품위의 사람으로 잘 알려졌다. 그는 일생을 통하여 굳건한 믿음의 소유자였는데, “나는 기독교의 근본적인 교리를 신뢰한다”라는 고백을 기록하곤 하였다.


*참조 : Joseph Lister

https://crev.info/?scientists=joseph-lister

Index to Scientist Biographies (CEH)

https://crev.info/scientists/index/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122

참고 :


이재만
2004-07-26

제임스 심슨


      제임스 심슨 (James Simpson, 1811-70)은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성경으로 양육 받았다.  의학에서 부인과를 설립한 사람 중에 하나로서 알려진 그는 에딘버그 대학의 조산과 교수였다.  그렇지만 그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것은 1847년 클로로폼(Chloroform)을 발견 하면서이다.  클로로폼은 현대 마취학의 기초를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심슨이 클로로폼을 발견하게 된 동기를 말할 때면, 창세기에 하와를 창조하시는 모습에서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2:21)” 성경구절을 언급하였다.  그렇지만 그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내게 구원자가 있다!”는 고백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간증하였다.  그에 의해 쓰여진 복음에 관한 소책자의 결론에서 그는 마무리 하기를, “…그러나 나는 다시, 나를 위하여 채찍질 당하신,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대속자 예수를 바라봅니다.  내가 그를 바라보았을 때, 울었고, 나는 사함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아직도 그를 바라보지 못하고 살고 있다면, 나의 임무는 그 대속자를 당신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그의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



*참조 : James Simpson

https://crev.info/?scientists=james-simpson

Index to Scientist Biographies (CEH)

https://crev.info/scientists/index/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120

참고 :

이재만
2004-07-23

루이 파스퇴르


       루이 파스퇴르(Luis Pasteur, 1822-95)는 훈련된 물리학도요 화학자였으며, 그 분야에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유기체와 발효의 조절을 설명한 첫번째 사람이었으며, 더 나아가 박테리아를 연구함으로써 수많은 병원체가 더 이상 퍼지지 않게 하였고, 광견병, 디프테리아, 탄저병 등과 싸우는 백신을 발달하게 하였다. 또한 저온살균법, 살균소독의 발달도 그의 연구로부터 온 것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이는 인간수명을 연장하는데 가장 크게 기여한 연구가 되었으며, 과학자들로부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생물학자라고 불리게 하였다. 아울러 진화론에 대한 과학적 반론은 그를 과학과 의학 역사에서 더욱 빛나게 했다.


무기물에서 유기물, 그리고 생물로 진화된다는 화학진화론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수 천년 간에 걸쳐 절대 다수의 지식인과 과학자들에게 신봉되었었다. 특히 당시 프랑스 과학자 푸셰(Felix Pchet, 1800-72)의 엉성한 실험 때문에, 유기물질이 산소와 접촉을 하게 되면 물질에 내재했던 특수한 원리에 의해 현미경적 생물이 자연발생 한다는 진화론적 생각을 갖고 있던 시대였다. 한편 파스퇴르는 물리학과 화학 방법론을 생물학에 도입하여 자연발생에 대한 정밀한 반증실험을 함으로써 기존의 학설이 생물발생과 관계가 없음을 증명하였다. 이는 푸셰의 그릇된 실험을 바르게 지적함과 동시에 자연발생론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즉 그의 실험결과로 생명은 생명에서만 유래된다는 생물속생설이 증명된 것이다.


1864년 파스퇴르는 생물의 자연발생론을 반증하는 유명한 S(백조 목) 플라스크 실험결과를 발표했다. 이 실험은 미생물이 완전히 사라지도록 한 배양액에 공기가 통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 배양액 안에는 미생물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단순하고 분명한 실험은 생물이 자연적으로는 절대 발생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 첫 과학적 실험이었다. 이는 더 나아가 소독이나 식품의 장기 보존방법을 이론적으로 가능케 하였다.


그렇지만 그가 생물의 자연발생과 진화론을 반격한다는 이유로 당시에 모든 생물학계로부터 공격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인내와 꾸준한 분석실험으로서 대부분의 생물학자와 의학자들이 갖고있는 자연주의적 생명기원에 관한 생각을 버리게 하였다. 아울러 병에 대한 진화론적 접근도 포기토록 하였다.


파스퇴르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으며, 나이가 들면서 그의 신앙은 더 깊어졌다. 신앙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면, ”많은 것들을 알면 알수록, 나는 브레타뉴 농부의 신앙으로 다가 갑니다 (하나님 앞에 더욱 겸손해 집니다). 그러나 만약에 내가 모든 것을 알았다면, 나는 한 브레타뉴 농부 아내의 신앙을 가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지었다는 것을 훨씬 단순히 믿었을 것입니다).”


1865년 멘델을 통해 '종간의 진화”는 불가능하며, 종 안에서 변이만이 가능하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 뿐만 아니라 1864년 유기물질이 자연적으로 생물로 진화한다는 '화학진화”도 불가능 하다는 것이 파스퇴르에 의해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다. 이 모두가 1859년 종의 기원이 발표된 직후에 일어난 일들이었으며, 이때 진화론의 근본적 문제는 이미 정확히 지적되었다. 단지 하나님 없이 이론을 펴보고자 하는 당시 과학자들이 진화론을 택했을 뿐이다.

 

 

*참조 : Louis Pasteur’s Views on Creation, Evolution, and the Genesis of Germs.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rj/v1/n1/louis-pasteurs-views

Louis Pasteur

https://crev.info/?scientists=louis-pasteur

Index to Scientist Biographies (CEH)

https://crev.info/scientists/index/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117

참고 :

이재만
2004-07-22

요하네스 케플러


     천체물리학의 기초자로 일컬어지는 요한 케플러 (1571-1630)는 갈릴레오의 망원경을 사용했을 뿐 아니라, 코페르니쿠스와 티코 브라헤의 기존 연구를 발전시킨 사람이다.  그는 천체역학의 질서와 행성운동의 법칙을 발견했으며, 이는 태양계의 태양중심체계와 별의 운동을 추적하는 천체위치추산 도표를 발표하는데 까지 이르게 하였다.


케플러는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돌 때 정말 원운동을 하는지에 의심을 갖고 화성의 궤도를 면밀히 조사하였으며, 결국에 행성은 원운동이 아닌 타원운동을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즉 행성들은 태양뿐 아니라, 다른 하나의 중심이 있다는 것이다. 두 개의 중심으로 타원운동을 한다는 내용은 정말로 획기적인 것이었다. 이것은 행성운동의 가장 정확한 모습을 제공하였다. 바로 케플러 제 1법칙이라는 것이다.


또한 행성이 태양 주위를 돌 때 ,“동경(태양과 행성의 거리)은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면적을 스쳐 지나간다”는 제 2법칙과, “어떤 두 개의 행성에서 그것들의 공전주기의 제곱은 그것들과 태양 사이의 평균거리의 세제곱에 비례한다”는 제 3법칙도 발견하였다.


천문학의 지식과 함께 케플러는 누가복음에 나타나는 연대상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일에 주의를 기울였으며, 라틴 달력에 오류가 있음을 발견하고 예수께서 실제로 BC 4년에 탄생하였음을 계산하여, 누가의 기록의 신빙성을 변호하는 논문을 쓰기도 하였다.


케플러는 진실한 기독교인이었으며, 신학교에서 2년 동안 공부도 하였다. 더군다나 종교개혁이 얼마 안 지난 때에, 개신교를 지키려고 애쓰던 신앙인이었다. 천문학자로서 처음으로 “하나님 뒤에서 그(하나님)의 생각을 생각한다”고 했는데, 실재로 그의 고백은 후대의 많은 과학자들의 모토가 되기도 했다. 그는 천문학뿐 아니라 성경적 연대기를 계산하였으며, 우주의 나이는 성경 그대로라는 데에 확신을 갖고 있었다. 케플러는 그의 책에 “우리 천문학자는 자연이라는 책을 연구하는 지존하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다. 이러한 사고를 갖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도록 한다”라고 기록했다.

“나는 하나님의 섭리가 개입함으로써, 나 자신만의 노력으로는 결코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고 믿는다. 만약 코페르니쿠스가 말한 것이 참이라면 내가 성공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계속해서 기도했기 때문이다”

천체물리학의 기초를 다진 이 사람의 뒤에는 언제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깊은 마음이 있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잠1:7)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115

참고 :

이재만
2004-07-21

레오나도로 다빈치


        "나는 누구인가” "내 주위에 것들은 무엇인가?”라는 기본질문에 대한 이해는 세계관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내가 하나님의 형상이며 나머지 것들은 내가 다스려야 할 존재들이라는 시각은 삶의 영역뿐 아니라 과학자들에게는 자신의 연구분야의 열정과 방향설정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다.  이를 이해했던 서양 크리스천 과학자들의 모습을 보면 그들 연구의 원동력을 엿볼 수 있다.


중세에서 근세 또는 현대로의 길을 열었던 르네상스시대에 현대과학의 기초를 설립한 사람을 들라고 한다면 단연 레오나드로 다빈치(1452-1519)를 꼽는다.  그는 밀란(Milan)의 많은 구조를 디자인한 공학도이며 건축가였다.  그의 노트는 역학, 해부학, 물리학, 광학, 생물학, 수리학, 조선학에 관한 분석으로 가득 차 있다.  당시 의사들이 아직도 주문(呪文) 수준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을 때에 그의 인체해부학의 시도는 현대의학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소위 말하는 과학적 방법이 정의 되지 않았던 시기였을 지라도 '실험”을 중요시 하는 진정한 과학자의 기초를 다진 사람이었다.  또한 과학을 포함한 모든 면에서 도덕적이고 친절한 사람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의 글들이 예술과 과학에 관한 것들이었을 지라도 그의 사고의 기초는 교회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성경을 신실하게 믿는 신앙인 이었다는 것을 의심치 않게 한다.  최고의 걸작품인 "최후의 만찬” 속에는 그의 간증이 들어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인물들의 섬세한 묘사 속에서 그리스도와 제자들의 마음을 깊이 감찰했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참조 : Leonardo da Vinci

https://crev.info/?scientists=leonardo-da-vinci

Index to Scientist Biographies (CEH)

https://crev.info/scientists/index/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113

참고 :

미디어위원회
2004-07-20

가장 위대한 과학자 : 아이작 뉴턴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대부분 아이작 뉴턴 (Isaac Newton, 1642-1727)을 지목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광학분야에서 흰 빛이 여러 색들로 분해된다는 스팩트럼을 발견하였으며, 반사망원경을 발명하였다. 빛의 입자론도 발전시켰다. 수학분야에서는 이항 정리를 발견하였는데, 이 하나만으로도 그는 위대한 수학자의 대열에 낄 수 있을 정도이다. 쌍곡선의 면적을 소수점 이하 50자리까지 계산하여 미분법의 기초를 다지기도 하였는데, 이는 근대 수학의 초석이 되었다. 천문학분야에서 케플러의 제 2법칙과 제 3법칙을 수학적으로 증명하였으며, 갈릴레오가 발견한 목성의 위성들의 궤도, 태양과 달의 인력에 의한 조수 방식을 설명하였으며, 달의 운동을 수식으로 정확히 계산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만유인력 법칙의 발견으로 유명하다. 달로 하여금 27과 1/8일 동안 규칙적으로 지구 주위를 돌게 하는 힘에 관한 궁금증에서 시작하여, 계산을 통하여 지구가 지표면에 있는 물체를 잡아 당기는 힘의 1/3600의 힘으로 당겨지면서 지구 주위를 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즉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것을 수학적 계산으로 이끈 것이었다. 그의 세가지 운동법칙은 역학을 포함한 모든 과학의 기초이며, 수학까지 발전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엄청난 발견은 18세기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이 발달하는 단단한 골격을 제공했다.

뉴턴은 "과학”과 "가설”을 구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과학은 관찰로부터 입증될 수 있는, 즉 수학적 설명이 가능한 법칙들을 발견하는 것이라 하였다.  반면에 실험적 증명이 없는 가설은 거부하였다. "과학은 두 물체 사이에 어떻게(how) 인력이 작용하는지를 설명할 뿐이지, 그 이유(why)는 설명하지 않는다” 는 태도를 취했다. 이러한 태도는 과학자의 위치가 관찰과 실험에서 얻어진 결론만 취해야 함을 분명히 보여 준 것이다. 즉 궁극적으로 그는 "왜” 만유인력이 생기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는 창조주께 돌렸다. 이러한 과학의 한계에 대한 기준은 나중에 진화론이나 빅뱅과 같이 실험이 뒤따르지 않은 이론을 "믿는” 과학자들이 반드시 참고해야 할 자세임에 틀림없다.

이 거대한 지식의 사람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었으며,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원자로 믿는 신앙인이었다. 그는 성경적 주제로 많은 책을 썼는데, 특히 예언서에 관한 것이 많았다. 이러한 책들은 나이가 든 다음 시간이 남아서 쓴 책들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헌신 된 신앙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그는 창조시기를 성경의 족보를 그대로 계산했던 어셔(Ussher)의 연대기를 지지하는 책도 썼다. 대부분의 지질학적 현상을 고려하며 성경의 전세계적인 홍수가 있었다는 것과 6일 동안 창조되었다는 성경의 기록도 확실히 믿었다. 무신론을 비판하고 창조와 성경을 옹호하는 글도 썼다.

"나 자신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태고 아득히 놓여 있는 진리 바다의 바닷가에서 뛰놀며, 좀더 둥그스름한 조약돌을 찾았거나, 보통 것보다 더 예쁜 조개를 주웠다고 좋아하는 작은 소년에 불과합니다” 라고 고백했다. 그는 자연 자체에 결코 경탄하지 않았으며, 그 원대한 것을 창조하신 창조자 앞에서 겸손했다. 그의 마지막 말이다. "가장 극치의 철학(과학)이 되려면 하나님의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세속 역사의 어디에서도 성경만큼 믿을만한 것을 찾을 수 없다”


*참조 : Sir Isaac Newton

https://crev.info/?scientists=isaac-newton

Index to Scientist Biographies (CEH)

https://crev.info/scientists/index/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111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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