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RARY

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창조신앙

미디어위원회
2004-07-21

레오나도로 다빈치

이재만 


        "나는 누구인가” "내 주위에 것들은 무엇인가?”라는 기본질문에 대한 이해는 세계관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내가 하나님의 형상이며 나머지 것들은 내가 다스려야 할 존재들이라는 시각은 삶의 영역뿐 아니라 과학자들에게는 자신의 연구분야의 열정과 방향설정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다.  이를 이해했던 서양 크리스천 과학자들의 모습을 보면 그들 연구의 원동력을 엿볼 수 있다.


중세에서 근세 또는 현대로의 길을 열었던 르네상스시대에 현대과학의 기초를 설립한 사람을 들라고 한다면 단연 레오나드로 다빈치(1452-1519)를 꼽는다.  그는 밀란(Milan)의 많은 구조를 디자인한 공학도이며 건축가였다.  그의 노트는 역학, 해부학, 물리학, 광학, 생물학, 수리학, 조선학에 관한 분석으로 가득 차 있다.  당시 의사들이 아직도 주문(呪文) 수준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을 때에 그의 인체해부학의 시도는 현대의학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소위 말하는 과학적 방법이 정의 되지 않았던 시기였을 지라도 '실험”을 중요시 하는 진정한 과학자의 기초를 다진 사람이었다.  또한 과학을 포함한 모든 면에서 도덕적이고 친절한 사람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의 글들이 예술과 과학에 관한 것들이었을 지라도 그의 사고의 기초는 교회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성경을 신실하게 믿는 신앙인 이었다는 것을 의심치 않게 한다.  최고의 걸작품인 "최후의 만찬” 속에는 그의 간증이 들어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인물들의 섬세한 묘사 속에서 그리스도와 제자들의 마음을 깊이 감찰했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참조 : Leonardo da Vinci

https://crev.info/?scientists=leonardo-da-vinci

Index to Scientist Biographies (CEH)

https://crev.info/scientists/index/

미디어위원회
2004-07-20

가장 위대한 과학자 : 아이작 뉴턴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대부분 아이작 뉴턴 (Isaac Newton, 1642-1727)을 지목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광학분야에서 흰 빛이 여러 색들로 분해된다는 스팩트럼을 발견하였으며, 반사망원경을 발명하였다. 빛의 입자론도 발전시켰다. 수학분야에서는 이항 정리를 발견하였는데, 이 하나만으로도 그는 위대한 수학자의 대열에 낄 수 있을 정도이다. 쌍곡선의 면적을 소수점 이하 50자리까지 계산하여 미분법의 기초를 다지기도 하였는데, 이는 근대 수학의 초석이 되었다. 천문학분야에서 케플러의 제 2법칙과 제 3법칙을 수학적으로 증명하였으며, 갈릴레오가 발견한 목성의 위성들의 궤도, 태양과 달의 인력에 의한 조수 방식을 설명하였으며, 달의 운동을 수식으로 정확히 계산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만유인력 법칙의 발견으로 유명하다. 달로 하여금 27과 1/8일 동안 규칙적으로 지구 주위를 돌게 하는 힘에 관한 궁금증에서 시작하여, 계산을 통하여 지구가 지표면에 있는 물체를 잡아 당기는 힘의 1/3600의 힘으로 당겨지면서 지구 주위를 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즉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것을 수학적 계산으로 이끈 것이었다. 그의 세가지 운동법칙은 역학을 포함한 모든 과학의 기초이며, 수학까지 발전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엄청난 발견은 18세기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이 발달하는 단단한 골격을 제공했다.

뉴턴은 "과학”과 "가설”을 구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과학은 관찰로부터 입증될 수 있는, 즉 수학적 설명이 가능한 법칙들을 발견하는 것이라 하였다.  반면에 실험적 증명이 없는 가설은 거부하였다. "과학은 두 물체 사이에 어떻게(how) 인력이 작용하는지를 설명할 뿐이지, 그 이유(why)는 설명하지 않는다” 는 태도를 취했다. 이러한 태도는 과학자의 위치가 관찰과 실험에서 얻어진 결론만 취해야 함을 분명히 보여 준 것이다. 즉 궁극적으로 그는 "왜” 만유인력이 생기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는 창조주께 돌렸다. 이러한 과학의 한계에 대한 기준은 나중에 진화론이나 빅뱅과 같이 실험이 뒤따르지 않은 이론을 "믿는” 과학자들이 반드시 참고해야 할 자세임에 틀림없다.

이 거대한 지식의 사람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었으며,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원자로 믿는 신앙인이었다. 그는 성경적 주제로 많은 책을 썼는데, 특히 예언서에 관한 것이 많았다. 이러한 책들은 나이가 든 다음 시간이 남아서 쓴 책들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헌신 된 신앙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그는 창조시기를 성경의 족보를 그대로 계산했던 어셔(Ussher)의 연대기를 지지하는 책도 썼다. 대부분의 지질학적 현상을 고려하며 성경의 전세계적인 홍수가 있었다는 것과 6일 동안 창조되었다는 성경의 기록도 확실히 믿었다. 무신론을 비판하고 창조와 성경을 옹호하는 글도 썼다.

"나 자신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태고 아득히 놓여 있는 진리 바다의 바닷가에서 뛰놀며, 좀더 둥그스름한 조약돌을 찾았거나, 보통 것보다 더 예쁜 조개를 주웠다고 좋아하는 작은 소년에 불과합니다” 라고 고백했다. 그는 자연 자체에 결코 경탄하지 않았으며, 그 원대한 것을 창조하신 창조자 앞에서 겸손했다. 그의 마지막 말이다. "가장 극치의 철학(과학)이 되려면 하나님의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세속 역사의 어디에서도 성경만큼 믿을만한 것을 찾을 수 없다”


*참조 : Sir Isaac Newton

https://crev.info/?scientists=isaac-newton

Index to Scientist Biographies (CEH)

https://crev.info/scientists/index/



미디어위원회
2004-07-08

조지 워싱턴 카버

: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을 받은 미국의 과학자 

(George Washington Carver, 1864–1943)


     과학자들이나 발명가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들이 들은 것을 실행으로 옮겼다. 그 결과 인류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이와 같이 새로운 발견은 하나님 세미한 음성을 듣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 중에 미국의 위대한 과학자 죠지 워싱턴 카버(George Washington Carver)가 있다. 강한 믿음과 결단이 없이는 정복할 수 없었던 많은 난관이 있었으나, 그는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을 받아 그 모든 문제들을 극복하였다. 그 결과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영감은 미국과 전 세계를 변화시켰다.

남북전쟁말경 미조리에서 흑인 노예로 태어나 아기때 고아가 된 카버는 그의 어머니의 주인이었던 모세와 수잔 카버부부에 의하여 키워졌다. 그는 워낙 병약하여 힘든 일을 할 수 없었던 터라, 수잔의 집안일과 정원손질을 도왔는데, 그는 그러한 환경에서 늘 탐구하는 아이로 자라났다. 줄곧 그는 숲속에 가서 공부를 하며 꽃과 풀들에게 이야기 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하나님께서 창조물을 통하여 말씀하신다고 믿었으며, 모든 사물에 호기심이 많았다. 그가 사랑으로 돌보아주는 화초들은 잘 자랐으며, 곧 그는 '화초 의사'라고 불리워졌다. 나중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숲과 들은 나에게 하나님께서 계속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예배당과 같다.”


그의 꿈, 하나님의 계획을 추구하는 것

그는 만족할 줄 모르고 지식 탐구에 열중하였다. 이웃마을의 흑인 학교에 들어가기에 나이가 너무 어렸을 때에는 카버씨 집에서 웹스터의 철자법을 공부하였다. 그 이후에 어느 흑인 부부의 집에서 일을하며 학교를 다녔는데, 이미 예수님을 영접한 그는 주인부부에게서 성경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았다. 그는 그 성경을 평생토록 매일 읽었다. 카버부인은 그가 교육을 받아서 그것을 그의 민족을 위하여 사용할 것을 당부하였다. 그는 그의 인생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학문을 끊임없이 탐구한 결과 켄자스로 인도하심을 받기까지 그는 많은 시험과 막힘과 인종차별들을 이겨내야만 했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그는 과학 학사학위와 농업 및 미생물식물학 석사학위를 얻었다.

부커 워싱턴은 카버에게 그가 세운 알라바마의 터스키 흑인 교육 기관에서 근대 농업을 가르쳐줄 것을 제안하였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신 진정한 소명이었으며, 그는 그 소명을 위하여 지금까지 땀흘려 일해온 것이었다.

아이오와 주립대학의 교수직을 포기하고 터스키로 온 그는 벽에 부딪혔다. 경제적으로는 궁핍하였으며, 학교의 시설이라고는 작은 방 하나에 실험실이나 실험도구는 전무한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그 모든 상황을 변화시키도록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목적이 분명하였으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것을 성취해먀만 했다.

그는 학생들을 동원하여 먼저 온 마을의 쓰레기 더미를 파헤쳐서 쓸만한 병, 깡통, 혹은 무엇이든 실험실에서 쓸만한 것들을 수집하였다. 그는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비싼 기자제가 아니라, 오직 근면, 결단,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것을 가르쳤다.

40여년간 카버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연구와 가르침에 몰두한 결과 남부의 흑인 사회를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는데 공헌하였다. 몇백년간 목화 농사만 지어왔던 남부의 토지는 황폐하여 생산성이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의 가르침을 받은 학생들과 농부들은 작물을 돌아가며 골고루 심음으로써 토지의 생산성을 회복시켰다.

"이동학교"의 창시자라고나 할까. 그는 마차를 타고 순회하며 아무리 먼 곳에 있는 사람에게까지도 지식을 전달해주었다. 그는 농사법과 대체작물에 대하여 가르쳤으며, 야채 요리법이나 야채 씨앗도 보급하였다. 마침내 남부의 농부들은 땅콩, 고구마, 대두 등을 심어 토지를 기름지게 하였다. 한편 고기와 삶은 곡류, 설탕 등으로 주식을 삼던 지역민들은 펠라그라병으로 시달리고 있었다. 카버는 그들이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먹고 건강을 회복하도록 가르쳐주었다. 남부에 새 날이 도래한 것이다.


하나님의 작은 실험실

오랫동안 목화는 돈을 벌어들이는 작물이었으나, 황폐해진 남부에 마침내 목화를 대신하여 땅콩이 주작물이 되었다. 그러나 곧 땅콩이 과잉생산되어 엄청나게 많은 양이 팔리지 않고 남아돌게 되었다.

카버는 자신에게 그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고 해결책을 강구하였다.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창조주 하나님, 왜 땅콩을 창조하셨는지 그 용도를 제게 가르쳐주십시오.” 그러자 창조주께서는 그에게 ”땅콩을 분해한 후에 다시 합성해보아라” 고 가르쳐주셨다.

하나님께서는 땅콩, 고구마, 대두 등을 활용할 수 있는 수백가지 용도를 가르쳐주셨다. 카버는 남부의 농업뿐 아니라, 경제적인 문제까지 해결해주었다. 사실 오늘날 미국과 세계 곳곳에서는 그의 업적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예를 들어 수많은 종류의 음식, 페인트, 화장품, 산업용품, 의학용품 등은 얼핏보기에 미미한 이와 같은 농작물에서 파생된 상품이다.

그는 자신의 연구소를 ”하나님의 작은 실험실”이라고 이름짓고는, 연구소 안에 성경책이외에는 아무책도 구비해놓지 않았다. 그는 실험을 어떻게 실행해야하는지를 하나님께 여쭈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하나님께서 커튼을 제껴주시지 않는다면, 저는 무능할 따름입니다.”

그의 업적을 보고 놀라는 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모든 것은 창조주 하나님과 대화하는 법을 터득하는데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것이니라(잠언 8:1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숲속에 들어가 하나님께로부터 그날 해야 할 일을 받는다. 그리고 그의 연구실에 돌아와서 지시받은 것을 실행한다.(*영어성경에는 일찍(early)이라고 되어있음, 역자 주)

죠지 워싱턴 카버는 명예나 돈을 추구하지 않았으며, 그가 발견한 수많은 항목 중에 오직 소수만을 특허를 받았다. 헨리 포드, 토마스 에디슨, 마하트마 간디 등과 같은 세계적인 지도자나 과학자들에게 친구이자 조언을 해준 그는 훌류한 사업의 기회와 비싼 연봉을 마다하고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한 가지 길에 충실하였다. 그에게 성공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것은 간단합니다. 성경에 나와있지요.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언 3:6)”

그의 삶은 미국의 흑인들이 많은 불리한 역경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와 세계에 지속적으로 공헌할 수 있는 강한 영적인 유산을 남겨주었다.



*참조 : George Washington Carver

https://crev.info/?scientists=george-washington-carver

Index to Scientist Biographies (CEH)

https://crev.info/scientists/index/

미디어위원회
2004-06-29

세계 창조과학의 중심지

이재만 


       미국창조과학 연구소(ICR,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에 대하여 물어 보시는 분들이 많기에 지면을 이용하여 알려주고자 한다. 단지 ICR에 대한 정보만이 아니라 창조과학이라는 분야가 자리잡는 과정을 이해하는 의미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 이래로 과학자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 진화론적 사고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진화론이 사실인양 받아들이고 인간과 역사를 진화론적으로만 몰아가는 세상에 대하여 과학자로써 양심을 갖고 시작한 기독교인 과학자들이 바로 창조과학자들이다. 1900년도 초까지 양심을 가진 극소수의 기독교 과학자들에 의해 아슬아슬하게 명맥을 유지해왔던 창조과학은 1961년 헨리 모리스(Dr. Henry Morris) 박사의 유명한 책인 "창세기 대홍수(Genesis Flood)"가 출판됨에 따라 커다란 전기를 마련한다. 헨리 모리스 박사는 물에 관하여 연구하는 수리학에 정통한 과학자이며, 나중에는 ICR의 설립자가 되었다. 진화론이 대두된 이래로 전혀 과학과 함께 언급하지 못했던 성경이 이 책을 통하여 과학적으로도 전혀 문제가 없음이 분명하고 자신 있게 서술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출판을 기점으로 곳곳에 산발적으로 진행되던 창조과학 연구가 체계적이고 깊이 있게 연구되기 시작했는데, 그 중심이 바로 샌디에고에 위치한 ICR이다.


ICR은 설립 당시인 1970년에 샌디에고 동쪽에 위치한 크리스천 헤리티지 대학(Christian Heritage College)의 부속 기관으로 시작하였다. 이 대학도 설립 동기가 진화론 때문에 무너져가는 기독교 정신을 회복하기 위하여 설립된 학교이다. 두 학교 모두 앞에 소개한 헨리 모리스 박사와 몇몇 뜻 있는 분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1981년에 현재의 ICR 독립건물로 이전하면서 차원 높은 창조과학 연구와 함께, 지질학, 천체물리학, 생물학, 과학교육학의 대학원과정이 시작하였다. 기념할만한 것은 미국의 모든 학교가 진화론에만 근거한 연구가 진행되는 가운데 처음으로 캘리포니아 주정부에서 인정하는 성경에 근거한 과학분야의 대학원과정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현재는 20여명의 박사와 교수들이 각 분야에서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다. 각 분야에서 이미 명성이 나있는 과학자들이 이곳에 모여든 동기는 철저하게 과학자의 양심을 가지고 오직 진리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서였다.


ICR의 시작과 성공은 기원과 역사의 분야에서 모두 그릇된 방향으로 가고 있던 대세에, 하나의 횃불처럼 바른 방향으로 돌이키는 커다란 구심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에 '창조과학(Creation Science)'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탄생시켰을 뿐만 아니라, 각 나라에 창조과학회를 설립하게 하는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성경이라고 하면 과학과는 별개의 것으로 치부되었던 시대에, 천지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의 말씀은 과학과 별개의 관계가 아니라, 바른 과학은 성경을 완전히 지지한다는 생각을 일으키게 되었다. 현재 미국에만 해도 수백 개의 창조과학 단체가 있는데, ICR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결과는 불가능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ICR에 상주하고 있지는 않지만 미국 내 일반학교와 연구소에 종사하면서, ICR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수는 점점 늘어가고 있다.


대학원 과정뿐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창조사실을 '연구'할 뿐만 아니라, '전파'에도 노력하고 있다. 특히 ICR에는 훌륭한 창조과학 박물관이 있는데, 기회가 닿는 데로 설명할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세계에서 창조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한 번쯤 가보고 싶어하는 곳이 있는데 바로 샌디에고이다. 그 이유는 ICR이 있기 때문이다.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ICR)

https://www.icr.org/homepage/

미디어위원회
2004-06-11

스티브 오스틴 : 홍수지질학자

이재만 


      지질학자 스티브 오스틴(Dr. Steve Austin, 1952-)은 일찌감치 대학시절부터 격변론적인 사고를 갖고 있었는데 석탄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기존 동일과정설적 석탄이론인 습지이론(습지에서 나무가 쌓이고 쌓여서 시간이 지나 석탄이 되었다는 이론)에 반박하여 거대한 격변을 통하여 형성된다는 메트이론(격변에 의해 생성된 수 많은 나무들이 물에 떠다니는 도중 형성되었다는 이론)을 주장했다.  이는 그의 박사학위도 메트이론 논문으로 받았는데, 발표할 당시 동일과정설자들에게 많은 공격을 받았었다.  그러나 학위를 받은 지 1년 후 워싱톤 주의 세인트 헬렌 산이 화산폭발을 하면서 거대한 나무들이 뿌리 채 뽑히고 이들이 메트처럼 떠다니다가 나무껍질들이 물속에 가라앉으면서 부분적 탄화된 토탄이 바로 형성되었다. 그가 제안한 격변에 의해 나무들이 탄화가 된 것이다. 세인트 헬렌산의 화산폭발로 그의 석탄형성 이론이 확인되었을 때, 오히려 주위의 사람들이 놀랐는데 정작 자신은 ”We have the answer, 우리는 답을 가지고 있다”라고 담담하게 응수함으로 노아홍수를 사실로 믿고 석탄을 접근한 사람의 유리함을 표현하였다. 실제로 석탄은 시간을 중요시 하는 동일과정설적으로 절대 형성될 수 없다.


그밖에 그랜드 캐년에 대한 연구도 유명한데, ”그랜드 캐년 대격변의 기념비(Grand Canyon Monument to Catastrophe)” 책에서 그랜드캐년이 퇴적되는 것과 침식되는 모든 과정이 노아홍수의 격변을 통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설명하였다. 그는 순수한 과학자로서 전공논문 이외에는 거의 글을 쓰지 않는 그가 처음으로 일반인과 과학자 모두를 위해 쓴 책인데, 그랜드 캐년에 대한 지금까지의 어떠한 책보다 잘 설명한 책으로 평가된다. 또한 이 책은 격변론적 지질학들에게 그랜드캐년에 대한 교과서처럼 사용되고 있다. 그밖에 지질학 부분에서 기존 헨리 모리스의 격변론적인 생각을 더 자세히 뒷받침하는 많은 연구를 하였다.


그의 책의 초입부에서 ”우리 주님은 그가 우리에게 행하신 일들을 쉽게 잊어버릴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잘 잊어버릴 뿐 아니라 그 행하신 일을 다음세대에게 잘 전달하지도 않을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라고 하며 그랜드 캐년을 잘 잊어버리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남겨주신 기념비로 표현을 했다. 하나님의 심판을 잊어버리기 쉬운 우리 후손들이 그 심판의 현장을 그려볼 수 있도록 말이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열 두 사람을 불러서… 지파대로 각기 돌 한 개씩 취하여 어깨에 메라.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sign)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 자손이 물어 가로되 이 돌들이 무슨 뜻이뇨 하거든…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영한 기념(memorial)이 되리라 하라 (수 4:4-7)”의 성경구절을 인용하면서 그랜드 캐년을 노아홍수의 기념비로 표현하였다.

  


*참조 : Steven A. Austin, Ph.D. Creationist Geology Professor (USA)

https://creation.com/dr-steven-a-austin

Dr. Steve Austin Articles

https://answersingenesis.org/bios/steve-austin/


이재만
2004-06-10

헨리모리스 - 현대 창조과학의 아버지


      1800년대 말부터 성경적 지질학자를 찾는다는 것은 그리 쉽지않다. 지질학이 과학자들에게 진화론과 동일과정설의 패러다임을 주도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이는 진화론과 동일과정설이 검증된 사실이기 때문이 아니라 과학자들이 그 패러다임에서 벗어 버린다는 것 자체가 실재로 아주 어렵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일과정설은 1960년도부터 지질학계에서 일어난 실험적 방법에 여지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즉 퇴적층, 지형, 화산, 화석, 석탄 등 지질학의 기본이 되는 부분에서 실험을 시도할 때마다 “시간”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사건”이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 증명되어왔다. 여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 과학자를 소개하고자 한다.


헨리 모리스(Dr. Henry Morris, 1918-)는 창조과학의 아버지로 가장 잘 알려졌다. 학문분야는 수리학이지만 지질학에 영향을 많이 주었다.  어떤 퇴적물질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얼마의 물의 양이 필요한지 실험을 통해 수학적으로 계산하였다. 즉 바위나 모래의 크기에 따라 운반될 때 필요한 물의 양을 계산한 것이었다. 이 계산 결과는 지형이나 바위들을 볼 때 오랜 시간이 지나며 지금의 자리에 왔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버리게 한다. 그의 계산으로 볼 때 지금의 계곡을 메우고 있는 바위들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스스로 움직일 수 없으며 지금의 자리에 오게 만든 최소한 물의 양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당연히 이들이 움직였던 물의 양은 오늘날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물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구 위에 펼쳐있는 모든 산과 계곡이 보여주는 이러한 모습들은 전지구를 덮었던 격변의 결과로 결론을 내렸다. 그의 계산은 실재 홍수에 의한 피해예측에 적용될 수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돌들이 이동한다는 식의 막연한 사고로는 이러한 단순한 생각도 시작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진화론자들이 만든 지질계통표는 지구의 역사가 아니며 진화론적 허구의 결과로 단정 지었다. 그는 그밖에 화석, 석탄 등 다양한 부분에서도 노아홍수의 당위성을 논리적으로 설명하였으며, 창세기 1장의 셋째 날에 만들어진 땅과 홍수기간에 만들어진 땅의 구분을 통하여 지질학계의 고심하는 선캠브리아기와 고생대 경계 부분을 명쾌히 해결하기도 하였다. 특별히 1961년 출판된 그의 책 “창세기 대홍수(Genesis Flood)”를 통하여 이러한 내용을 자세히 기재하였는데, 많은 과학자들이 진화론을 벗어버리고 성경적 창조로 돌아오게 되는 전환기를 마련했다.


단지 과학분야 뿐 아니라 창세기, 욥기, 계시록, 시편 등에 관하여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주석을 썼으며, 성경에 기초한 기독교 교육학에 관한 책도 집필하였다. 그의 교육철학은 자신의 네 자녀에게 그대로 적용하였으며, 고등학교까지 홈스쿨로 창조교육을 기초하여 가르쳤다.  결과는 모두가 신학, 지질학, 생물학, 언어학의 각 분야의 손꼽히는 사람이 되었으며, 현재 자신들의 분야에서 하나님의 창조를 외치고 있다. 그의 성경에 대한 변증은 일반 과학자들에게 큰 설득력이 있어 마침내 1970년도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ICR)를 설립하였고 많은 기독교인 과학자들이 모여 성경에 기초한 연구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는 “창조과학, Creation Science”란 단어가 하나의 고유명사로 자리잡게 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를 만난 사람들은 누구나 그의 겸손함과 친절함에 놀란다. 진화론에 대한 직설적인 반박과는 대조적으로 그의 삶에서는 인자함이 배어나온다.  늘 글을 쓰는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84세의 고령에도 펜을 놓지 않는다. 지금까지 책이 자신의 나이와 비슷한 숫자이다. ICR에서 발행되는 Newsletter에 그의 고정 칼럼인 Back To Genesis를 쉬지 않고 연재하고 있으며, 지금도 3개월에 한번 발행되는 Days of Praise 라고 하는 매일의 묵상집은  대부분이 그의 묵상내용이다. “기원에 관한 어떤 주장이든지 그것이 옳다면 성경말씀과 결코 대치되지 않는다”  그의 말이다.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044

참고 :

미디어위원회
2004-04-27

창조과학자들과 그들의 전기 2 

(Creation scientists and other biographies of interest)


창조주를 믿었던 과거의 과학자들.

(이들 과학자들은 출생 년도에 따라 분류하였다).


초기

Francis Bacon (1561–1626) Scientific method

Johann Kepler (1571–1630) (WOH) Scientific astronomy

◦ Athanasius Kircher (1601–1680) Inventor

◦ John Wilkins (1614–1672)

◦ Walter Charleton (1619–1707) President of the Royal College of Physicians

Blaise Pascal (biography page) and article from Creation magazine (1623–1662) Hydrostatics; Barometer

◦ Sir William Petty (1623 –1687) Statistics; Scientific economics

Robert Boyle (1627–1691) (WOH) Chemistry; Gas dynamics

John Ray (1627–1705) Natural history

◦ Isaac Barrow (1630–1677) Professor of Mathematics

Nicolas Steno (1631–1686) Stratigraphy

◦ Thomas Burnet (1635–1715) Geology

◦ Increase Mather (1639–1723) Astronomy

◦ Nehemiah Grew (1641–1712) Medical Doctor, Botany


뉴튼의 시대

Isaac Newton (1642–1727) (WOH) Dynamics; Calculus; Gravitation law; Reflecting telescope; Spectrum of light (wrote more about the Bible than science, and emphatically affirmed a Creator. Some have accused him of Arianism, but it’s likely he held to a heterodox form of the Trinity—See Pfizenmaier, T.C., Was Isaac Newton an Arian?Journal of the History of Ideas68(1):57–80, 1997)

◦ Gottfried Wilhelm Leibnitz (1646–1716) Mathematician

◦ John Flamsteed (1646–1719) Greenwich Observatory Founder; Astronomy

◦ William Derham (1657–1735) Ecology

◦ Cotton Mather (1662–1727) Physician

◦ John Harris (1666–1719) Mathematician

◦ John Woodward (1665–1728) Paleontology

◦ William Whiston (1667–1752) Physics, Geology

◦ John Hutchinson (1674–1737) Paleontology

◦ Johathan Edwards (1703–1758) Physics, Meteorology

◦ Carolus Linneaus (1707–1778) Taxonomy; Biological classification system

◦ Jean Deluc (1727–1817) Geology

◦ Richard Kirwan (1733–1812) Mineralogy

William Herschel (1738–1822) Galactic astronomy; Uranus (probably believed in an old-earth)

◦ James Parkinson (1755–1824) Physician (old-earth compromiser*)

◦ John Dalton (1766–1844) Atomic theory; Gas law

◦ John Kidd, M.D. (1775–1851) Chemical synthetics (old-earth compromiser*)


다윈 직전

◦ The 19th Century Scriptural Geologists, by Dr Terry Mortenson

◦ Timothy Dwight (1752–1817) Educator

◦ William Kirby (1759–1850) Entomologist

◦ Jedidian Horse (1761–1826) Geographer

◦ Benjamin Barton (1766–1815) Botanist; Zoologist

◦ John Dalton (1766–1844) Father of the Modern Atomic Theory; Chemistry

◦ Georges Cuvier (1769–1832) Comparative anatomy, paleontology (old-earth compromiser*)

◦ Samuel Miller (1770–1840) Clergy

◦ Charles Bell (1774–1842) Anatomist

◦ John Kidd (1775–1851) Chemistry

◦ Humphrey Davy (1778–1829) Thermokinetics; Safety lamp

◦ Benjamin Silliman (1779–1864) Mineralogist (old-earth compromiser*)

◦ Peter Mark Roget (1779–1869) Physician; Physiologist

◦ Thomas Chalmers (1780–1847) Professor (old-earth compromiser*)

David Brewster (1781–1868) Optical mineralogy, Kaleidoscope (probably believed in an old-earth)

◦ William Buckland (1784–1856) Geologist (old-earth compromiser*)

◦ William Prout (1785–1850) Food chemistry (probably believed in an old-earth)

◦ Adam Sedgwick (1785–1873) Geology (old-earth compromiser*)

◦ Michael Faraday (1791–1867) (WOH) Electro magnetics; Field theory, Generator

◦ Samuel F. B. Morse (1791–1872) Telegraph

Charles Babbage (1792–1871) Operations research; Computer science; Ophthalmoscope (old-earth compromiser*)

◦ John Herschel (1792–1871) Astronomy (old-earth compromiser*)

◦ Edward Hitchcock (1793–1864) Geology (old-earth compromiser*)

◦ William Whewell (1794–1866) Anemometer (old-earth compromiser*)

◦ Joseph Henry (1797–1878) Electric motor; Galvanometer


다윈 직후

◦ Richard Owen (1804–1892) Zoology; Paleontology (old-earth compromiser*)

Matthew Maury (1806–1873) Oceanography, Hydrography (probably believed in an old-earth*)

◦ Louis Agassiz (1807–1873) Glaciology, Ichthyology (old-earth compromiser, polygenist*)

◦ Henry Rogers (1808–1866) Geology

◦ John Murray (1808–1892) Publisher

◦ James Glaisher (1809–1903) Meteorology

◦ Philip H. Gosse (1810–1888) Ornithologist; Zoology

◦ Sir Henry Rawlinson (1810–1895) Archeologist

◦ James Simpson (1811–1870) Gynecology, Anesthesiology

◦ James Dana (1813–1895) Geology (old-earth compromiser*)

◦ Sir Joseph Henry Gilbert (1817–1901) Agricultural Chemist

James Joule (1818–1889) Thermodynamics

◦ Thomas Anderson (1819–1874) Chemist

◦ Charles Piazzi Smyth (1819–1900) Astronomy

◦ George Stokes (1819–1903) Fluid Mechanics

◦ John William Dawson (1820–1899) Geology (probably believed in an old-earth*)

◦ Rudolph Virchow (1821–1902) Pathology

◦ Gregor Mendel (1822–1884) (WOH) Genetics

Louis Pasteur (1822–1895) (WOH) Bacteriology, Biochemistry; Sterilization; Immunization

◦ Henri Fabre (1823–1915) Entomology of living insects

William Thompson, Lord Kelvin (1824–1907) Energetics; Absolute temperatures; Atlantic cable (believed in an older earth than the Bible indicates, but far younger than the evolutionists wanted*)

◦ William Huggins (1824–1910) Astral spectrometry

◦ Bernhard Riemann (1826–1866) Non-Euclidean geometries

◦ Joseph Lister (1827–1912) Antiseptic surgery

◦ Balfour Stewart (1828–1887) Ionospheric electricity

James Clerk Maxwell (1831–1879) (WOH) Electrodynamics; Statistical thermodynamics

◦ P.G. Tait (1831–1901) Vector analysis

◦ John Bell Pettigrew (1834–1908) Anatomist; Physiologist

◦ John Strutt, Lord Rayleigh (1842–1919) Similitude; Model Analysis; Inert Gases

◦ Sir William Abney (1843–1920) Astronomy

◦ Alexander MacAlister (1844–1919) Anatomy

◦ A.H. Sayce (1845–1933) Archeologist

◦ George Romanes (1848–1894) Biology; Physiology (old-earth compromiser, polygenist*)

◦ John Ambrose Fleming (1849–1945) Electronics; Electron tube; Thermionic valve


최근

◦ Dr. Clifford Burdick, Geologist

George Washington Carver (1864–1943) Inventor

◦ L. Merson Davies (1890–1960) Geology; Paleontology

◦ Douglas Dewar (1875–1957) Ornithologist

◦ Howard A. Kelly (1858–1943) Gynecology

◦ Paul Lemoine (1878–1940) Geology

◦ Dr Frank Marsh, Biology

Dr John Mann, Agriculturist, biological control pioneer

◦ Edward H. Maunder (1851–1928) Astronomy

◦ William Mitchell Ramsay (1851–1939) Archeologist

◦ William Ramsay (1852–1916) Isotopic chemistry, Element transmutation

◦ Charles Stine (1882–1954) Organic Chemist

◦ A. Rendle-Short (1885–1955) Surgeon

◦ Sir Cecil P. G. Wakeley (1892–1979) Surgeon

◦ Dr Larry Butler, Biochemist

Prof. Verna Wright, Rheumatologist (deceased 1997)

◦ Arthur E. Wilder-Smith (1915–1995) Three science doctorates; a creation science pioneer



성경적 창조론에 반대하는 자들의 리스트.

A Who’s Who of Evolutionists

What’s wrong with Bishop Spong?

Q&A: Countering the Critics

 

기타

David Aikman, journalist

Basil of Caesarea

Hillmon Buckingham, Salvation Army Commissioner

Calvin says: Genesis means what it says

Steve Cardno, Creation Magazine art director

Betty Cuthbert, Olympic champion

Buddy Davis, sculptor, singer

Ralph DiCosimo, police officer

Pete Dobré, creationist photographer

Carol Drew, Creation photographer

Chang-Sha Fang, plant scientist

Jim Farquhar, geologist

Sergei Golovin, geophysicist

Russell Grigg

David and Doreen Hart

Johnny Hart, cartoonist

Dr Douglas Kelly, academic theologian

Dan Lietha, cartoonist

Dr George Lindsey, associate professor of science education

Prof. Marvin Lubenow, anthropology

Luther on Evolution, and What was Martin Luther’s stand on Creation/Evolution? (Christian Answers Network)

Lou Moss, photographer

Michael Oard, atmospheric scientist

Jules H Poirier, design engineer

Gary Raymond, law enforcement

Peter and Cathy Sparrow, Creation Bus

David C.C. Watson, author of ‘Myths and Miracles’

Dr John Whitcomb, theologian

John Woodmorappe, geologist


* 참조 :   Some scientists alive today who accept the biblical account of creation

https://creation.com/scientists-alive-today-who-accept-the-biblical-account-of-creation

Scientists of the past who believed in a Creator

https://creation.com/scientists-of-the-past-who-believed-in-a-creator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bios/default.asp 

출처 - AiG/Q&A

미디어위원회
2004-04-27

창조과학자들과 그들의 전기 1 

(Creation scientists and other biographies of interest)


서언, 그리고 믿지 않는 사람들


   많은 역사가(무신론자를 포함하여 여러 종교를 가지고 있는)들은 현대 과학은 기독교 문화였던 유럽에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들 역사가들은 우주는 합리적인 창조주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가정 위에, 현대과학의 기초가 세워져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질서정연한 우주는 질서의 창조주에 의해서 만들어졌을 때에 완전한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만약 창조주가 없다면, 그래서 제우스나 다른 신들에 의해서 관리되고 있다면, 우주의 정교한 질서들은 어떻게 유지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강한 기독교 신앙은 과학을 연구하는데 하나의 장애물이 아니라, 과학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래된 연대에 대한 믿음이 생겨난 후, 일부 과학자들은 굴복하여 버렸고, 그것에 맞게 성경을 재해석 하였다. 예를 들어 창세기 1장의 날들(days)은 실제로는 시대(ages)들이며, 노아의 홍수는 많은 격변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한 재해석이 오류임을 밝히는 증거들은 Q&A Genesis and Noah’s Flood Covered the Whole Earth 을 참고하라. 


그 해석은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잘못된 모델은 진화론자들에게 하나의 쉬운 표적이 되었다. 예를 들어, 섬의 종들은 자주 근처 대륙의 종들과 유사하였다는 다윈의 관측은 유행하던 이론(각 생물 종들은 현재의 위치에서 독립적으로 창조되었다는)과는 달랐음을 다윈은 지적했다. 그러나 그의 관측은 한 번의 전 지구적인 홍수가 있었고, 동물들은 아라랏산으로부터 이웃한 육지를 통해 섬으로 이동하였다는 진정한 성경적 관점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이었다.


성경의 명백한 의미를 과학과 일치하도록 타협하여야 한다고 가르치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이것은 하나의 교훈이 되어져야만 한다. 그것은 오류 많은 인간들의 의견에서 벗어나 오류없는 하나님의 말씀에 권위를 둠으로서, 성경으로부터 더 많은 출발을 할 수 있는 길을 닦는 일이 될 것이다.    

  

* 우리가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여기에 나열된 과거의 창조과학자들은 문자 그대로의 창세기를 믿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아래의 과거의 창조과학자 리스트에는 포함시켰다. 왜냐하면 성경의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일반적인 믿음은 진화론과는 반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의 창조과학자들 중에서 오래된 지구 연대를 믿는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알아야하기 때문에 일부러 포함시키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구가 수십억년 되었다는 오래된 지구 연대 개념은 결국 무너져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Some scientists alive today who accept the biblical account of creation

https://creation.com/scientists-alive-today-who-accept-the-biblical-account-of-creation

Scientists of the past who believed in a Creator

https://creation.com/scientists-of-the-past-who-believed-in-a-creator


성경적 창조론을 믿는 오늘날의 과학자들.

(양해 : 과학 관련 분야의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들만을 나열하였다.)


◦ Dr Paul Ackerman, Psychologist

Dr James Allan, Geneticist

Dr Steve Austin, Geologist

◦ Dr S.E. Aw, Biochemist

◦ Dr Thomas Barnes, Physicist

Dr Don Batten, Plant physiologist, tropical fruit expert

Dr John Baumgardner, Electrical Engineering, Space Physicist, Geophysicist, expert in supercomputer modeling of plate tectonics

Dr Jerry Bergman, Psychologist

◦ Dr Kimberly Berrine, Microbiology & Immunology

◦ Prof. Vladimir Betina, Microbiology, Biochemistry & Biology

Dr Raymond G. Bohlin, Biologist

◦ Dr Andrew Bosanquet, Biology, Microbiology

◦ Dr David R. Boylan, Chemical Engineer

Prof. Linn E. Carothers, Associate Professor of Statistics

Dr David Catchpoole, Plant Physiologist

◦ Prof. Sung-Do Cha, Physics

Dr Eugene F. Chaffin, Professor of Physics

◦ Dr Choong-Kuk Chang, Genetic Engineering

◦ Prof. Jeun-Sik Chang, Aeronautical Engineering

Dr Donald Chittick, Physical Chemist

◦ Prof. Chung-Il Cho, Biology Education

◦ Dr Harold Coffin, Palaeontologist

Dr Bob Compton, DVM

Dr Ken Cumming, Biologist

Dr Jack W. Cuozzo, Dentist

Dr William M. Curtis III, Th.D., Th.M., M.S., Aeronautics & Nuclear Physics

◦ Dr Malcolm Cutchins, Aerospace Engineering

◦ Dr Lionel Dahmer, Analytical Chemist

Dr Raymond V. Damadian, M.D., Pioneer of magnetic resonance imaging

◦ Dr Chris Darnbrough, Biochemist

Dr Bryan Dawson, Mathematics

◦ Dr Douglas Dean, Biological Chemistry

Prof. Stephen W. Deckard, Assistant Professor of Education

Dr David A. DeWitt, Biology, Biochemistry, Neuroscience

Dr Don DeYoung, Astronomy, atmospheric physics, M.Div

Dr Geoff Downes, Creationist Plant Physiologist

Dr Ted Driggers, Operations research

Dr André Eggen, Geneticist

Prof. Dennis L. Englin, Professor of Geophysics

Prof. Danny Faulkner, Astronomy

Prof. Carl B. Fliermans, Professor of Biology

Prof. Robert H. Franks, Associate Professor of Biology

Dr Alan Galbraith, Watershed Science

Dr Duane Gish, Biochemist

Dr Werner Gitt, Information Scientist

Dr Dianne Grocott, Psychiatrist

Dr Stephen Grocott, Industrial Chemist

◦ Dr Donald Hamann, Food Scientist

◦ Dr Barry Harker, Philosopher

◦ Dr Charles W. Harrison, Applied Physicist, Electromagnetics

Dr John Hartnett, Physicist and Metrologist

Dr George Hawke, Environmental Scientist

Dr Margaret Helder, Science Editor, Botanist

◦ Dr Harold R. Henry, Engineer

◦ Dr Jonathan Henry, Astronomy

◦ Dr Joseph Henson, Entomologist

◦ Dr Robert A. Herrmann, Professor of Mathematics, US Naval Academy

Dr Andrew Hodge, Head of the Cardiothoracic Surgical Service

Dr Kelly Hollowell, Molecular and Cellular Pharmacologist

Dr Ed Holroyd, III, Atmospheric Science

Dr Neil Huber, Physical Anthropologist

Dr Russell Humphreys, Physicist

Dr Pierre Jerlström, Creationist Molecular Biologist

◦ Dr Jonathan W. Jones, Plastic Surgeon

Dr Raymond Jones, Agricultural Scientist

◦ Prof. Leonid Korochkin, Molecular Biology

◦ Dr Valery Karpounin, Mathematical Sciences, Logics, Formal Logics

◦ Dr Dean Kenyon, Biologist

◦ Prof. Gi-Tai Kim, Biology

◦ Prof. Harriet Kim, Biochemistry

◦ Prof. Jong-Bai Kim, Biochemistry

◦ Prof. Jung-Han Kim, Biochemistry

◦ Prof. Jung-Wook Kim, Environmental Science

◦ Prof. Kyoung-Rai Kim, Analytical Chemistry

◦ Prof. Kyoung-Tai Kim, Genetic Engineering

◦ Prof. Young-Gil Kim, Materials Science

◦ Prof. Young In Kim, Engineering

◦ Dr John W. Klotz, Biologist

◦ Dr Vladimir F. Kondalenko, Cytology/Cell Pathology

◦ Dr Leonid Korochkin, M.D., Genetics, Molecular Biology, Neurobiology

◦ Prof. Jin-Hyouk Kwon, Physics

◦ Prof. Myung-Sang Kwon, Immunology

◦ Prof. John Lennox, Mathematics

◦ Dr John Leslie, Biochemist

Prof. Lane P. Lester, Biologist, Genetics

◦ Dr Alan Love, Chemist

Dr Ian Macreadie, molecular biologist and microbiologist:

Dr John Marcus, Molecular Biologist

Dr George Marshall, Eye Disease Researcher

Dr Ralph Matthews, Radiation Chemist

Prof. Andy McIntosh, Combustion theory, aerodynamics

Dr David Menton, Anatomist

◦ Dr Angela Meyer: Creationist Plant Physiologist

Dr John Meyer , Physiologist

◦ Dr John N. Moore, Science Educator

Dr Henry M. Morris, Hydrologist

Dr John D. Morris , Geologist

◦ Dr Len Morris, Physiologist

◦ Dr Graeme Mortimer, Geologist

◦ Prof. Hee-Choon No, Nuclear Engineering

◦ Dr David Oderberg, Philosopher

◦ Prof. John Oller, Linguistics

Prof. Chris D. Osborne, Assistant Professor of Biology

◦ Dr John Osgood, Medical Practitioner

◦ Dr Charles Pallaghy, Botanist

Dr Gary E. Parker, Biologist, Cognate in Geology (Paleontology)

Dr David Pennington, Plastic Surgeon

Prof. Richard Porter

Dr John Rankin, Cosmologist

◦ Dr A.S. Reece, M.D.

Prof. J. Rendle-Short, Pediatrics

◦ Dr Jung-Goo Roe, Biology

◦ Dr David Rosevear, Chemist

Dr Jonathan D. Sarfati, Physical chemist / spectroscopist

Dr Joachim Scheven Palaeontologist:

◦ Dr Ian Scott, Educator

Dr Saami Shaibani, Forensic physicist

◦ Dr Young-Gi Shim, Chemistry

◦ Prof. Hyun-Kil Shin, Food Science

◦ Dr Mikhail Shulgin, Physics

Dr Emil Silvestru, Geologist/karstologist

◦ Dr Roger Simpson, Engineer

◦ Dr Harold Slusher, Geophysicist

Dr Andrew Snelling , Geologist

◦ Prof. Man-Suk Song, Computer Science

Prof. James Stark , Assistant Professor of Science Education

Prof. Brian Stone, Engineer

Dr Esther Su, Biochemistry

◦ Dr Charles Taylor, Linguistics

Dr Michael Todhunter, Forest Genetics

◦ Dr Lyudmila Tonkonog, Chemistry/Biochemistry

Dr Royal Truman, Organic Chemist:

Dr Larry Vardiman, Atmospheric Science

Prof. Walter Veith, Zoologist

◦ Dr Joachim Vetter, Biologist

Dr Tas Walker, Mechanical Engineer and Geologist

Dr Jeremy Walter, Mechanical Engineer

Dr Keith Wanser, Physicist

◦ Dr Noel Weeks, Ancient Historian (also has B.Sc. in Zoology)

Dr A.J. Monty White, Chemistry/Gas Kinetics

Dr Carl Wieland, Medical doctor

Dr Lara Wieland, Medical doctor

◦ Dr Clifford Wilson, Psycholinguist and archaeologist

Dr Kurt Wise, Palaeontologist

Dr Bryant Wood, Creationist Archaeologist

◦ Prof. Seoung-Hoon Yang, Physics

Dr Thomas (Tong Y.) Yi, Ph.D., Creationist Aerospace & Mechanical Engineering

◦ Dr Ick-Dong Yoo, Genetics

◦ Dr Sung-Hee Yoon, Biology

Dr Patrick Young, Chemist and Materials Scientist

◦ Prof. Keun Bae Yu, Geography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bios/default.asp 

출처 - AiG/Q&A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910

참고 :

미디어위원회
2003-11-18

아인슈타인은 창조론자였는가 ?

Jerry Bergman Ph. D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이제까지 살았던 가장 위대한 과학자 중 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또한 생명과 주위의 고통받는 사람들을 깊이 생각하는 인도주의자이기도 하였다. 나치의 박해를 경험한 유태인으로 그는 많은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외에도 그에게는 또 다른 면이 있었는데, 이것은 별로 이야기되지 않았었다.

페리스(Ferris)는 아인슈타인이 매우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아마도 그가 ”하나님은 세상을 가지고 주사위 놀음을 하지는 않으셨다”는 말을 자주 인용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창조주나 주권자로 생각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실제로 ”아인슈타인은 천주교 신부보다 하나님의 개념을 더 자주 사용하였다”고 조소했을 뿐이다.    

아인슈타인은 인간을 포함한 하나님의 창조뿐 아니라, 창조자로서의 그리고 주권자로서의 하나님을 예리하게 추구했다. 그는 한때 ”어떻게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였는가?” 를 알고 싶다고 했으며, 하나님을 친밀한 창조주로 생각하여 하나님을 창조자로 믿는가 라는 질문에 '예' 라고 대답하곤 했다. 덧붙여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조화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스피노자(Spinoza)의 신도 믿는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이러한 말 때문에 아인슈타인을 범신론자라고 생각하나, 창조에 대한 그의 표현을 보면 이는 틀린 것임을 알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하나님의 창조를 연구하면서 하나님을 알았다. 사실 창조와 하나님과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어 아인슈타인에게는 창조를 통해 창조자를 떠올렸고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예술 감정가가 화가와 그의 작품을 연관시키는 것, 즉 Renoir의 작품을 그냥 Renoir 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화가는 자신의 그림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그림은 화가를 표현하는 것 뿐 아니라, 그 화가의 이름을 그대로 부를 만큼 화가의 일부인 것이다. 이것은 이상한 논법이 아니다. 아인슈타인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끔 이와 같은 비유를 사용하는데 이는 매우 적절한 예인 것 같다.

한때 아인슈타인은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창조하였는지 알고 싶다. 또한 그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면서 ”과학이 결코 하나님을 대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가끔 우주의 질서에 관해 언급하면서 물질계의 무한한 정교함과 아름다움에 경이를 표하곤 했다. 아인슈타인의 신학적 믿음의 특성과 그가 자주 사용하는 각종 표현들의 정확한 의미 - 그의 저술에 신학적인 개념이나 사상은 계속 사용되었다 - 는 항상 명백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가 기원에 대한 문제를 생각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Clark는 말하기를 그는 우주의 질서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있어서 ”12살 이후 이런 견해를 속히 바꾸는 것이 하나의 과제였다”고 밝혔다. 그 후 나머지 생애에 있어서 다른 것들은 비교적 사소하였던 모양이다. 어떤 작가들은 실제 아인슈타인이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그리 심취되어 있지 않다고 말하기까지 하는데, 그 이유는 한때 그가 Ernst Straus에게 ”실질적인 나의 관심사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선택의 여지가 있었는지의 여부이다” 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가 신학에 대해 강력하고 특별하게 쓰지 않았던 주된 이유도 그의 믿음이 늘 확실치는 않았다는데 기인한다. 아인슈타인은 기독교 계통의 학교에 몇 년간 다녔지만 정규적인 신앙훈련은 받지 않았다 (다른 유태인학교보다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에). 그의 가족은 종교적 의식은 별로 중요시하지 않는 유태인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모든 면에 있어서 '질서와 조화'의 우주를 믿으며, 과학이 궁극적으로 과학과 종교의 공간을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아인슈타인에게 있어서 신앙심은 어릴 때 이후 그의 개성에 강하게 나타났다. ”소년기에 아인슈타인은 하나님을 위해서 찬송가를 작곡한 적은 없지만, 학교로 가는 길에 찬송가를 부르곤 했다. 어른이 되어, 양자물리학의 궁극적인 용도에 동의하지 않아 과학적 주류에서 고립되었을 때에, 평소처럼 오래된 찬송가를 부르면서 외로움을 달래곤 했다” 고 Ferris는 말했다. 한때 그는 물리학자 Max Boron에게 인과의 정확성 보다 확률에 의존하는 것 같은 '양자론(Quantum principle)'은 실제 우리에게 '창조주의 비밀'에 접근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고 편지를 썼다.

1930년 10월 27일 George Bernard Show는 런던에서 Einstein 교수를 위해 마련된 정찬에 초대되어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뉴턴은 300년간 지속되는 우주를 만들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내가 보기에 영원히 그치지 않을 우주를 만들고 있다. 나는 그것이 언제 끝날지 알지 못한다. 이 위대한 사람은 두 측면을 가진 인간성(humanity)중 한 측면의 표상이다. 우리는 그 한 측면을 종교라고, 그리고 다른 측면을 과학이라고 부른다. 종교는 항상 옳다. 종교는 우리가 반드시 직면하게 되는 심각한 문제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준다. 반면에 과학은 항상 틀린다. 왜냐하면 이는 너무나 인위적이기 때문이다. 과학은 10 개의 새로운 문제를 제기해 놓고서야 겨우 하나의 문제를 풀 수 있을 뿐이다.”

아인슈타인의 신앙심은 지식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하나의 인격체로 생각한데서 출발한다. 광대무변한 종교(Cosmic religion)란 이름의 집회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인간을 종교적인 생각이나 포괄적인 의미의 신앙으로 몰고 가는 감정이나 요구란 어떤 것일까?……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종교적인 생각이나 경험의 초기에는 매우 다양한 감정이 생기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사랑과 구원으로의 길을 가려는 인간의 욕망은 보호하고, 결정하고, 상주고, 벌주는 사회적이고 도덕적인 하나님의 섭리를 위해 자극제 역할을 한다.……오직 생을 사랑하는 인류의 삶을 위해 사랑하시고 예비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다. 그는 불행이나 욕구불만의 위로자요, 영혼의 보호자이시다……”

그러면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창조론에 투영된 창조주 하나님'을 어떻게 자신의 과학적 연구에 영향을 주는 존재로 생각하였는가? 그는 하나님의 개념이 도움을 준다고 느꼈다. 덧붙여 ”동시대 사람들이 말하듯이 거대한 물질만능 시대에 오직 깊은 신앙심을 가진 자만이 가장 진지한 연구가이다” 라는 그의 말에서도 신학자도, 세례를 받은 기독교인도 아니지만, 그의 생각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가 설교를 통해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나름대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했다고 말한다. 그의 생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그는 확실히 하나님이 가르쳐 준 많은 진리에 접했다.

독일에 사는 유태인으로서 가끔 그의 생활은 위협을 당했다. 한번은 한 젊은이가 그의 강의실로 뛰어 들어와 ”유태인을 몰아내라!”고 외치기까지 했었는데, 이러한 경험은 그에게 독일에 사는 유태인에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깨치는 것 뿐 아니라, 인간의 다른 한 측면을 예리하게 파헤치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는 인간이 죄를 가지고 출생한다는 것을 느꼈다. 아마도 그의 신앙심에 대해 가장 단적으로 나타내어 주는 말로는 다음과 같은 Barnett의 인용문을 들 수 있다. ”나의 신앙심이란 아주 조그맣고 세밀한 부분에까지 자신을 나타내시는 무한한 초월자에 대해 보잘 것 없는 찬사로 이루어졌을 뿐이며, 우리는 깨어지기 쉽고 약한 마음으로도 그것을 알 수 있다. 초월자의 권능이 실재한다는 깊은 마음속 확신은 심오한 우주에서 확실히 얻을 수 있다.' 또 그는 '과학은 진리에 대한 열망으로 꽉 찬 사람들에 의해서만 창조될 수 있는데, 이러한 감정의 근원은 종교적인 테두리에서 생겨난다. 나는 짙은 신앙심을 갖지 않은 진정한 과학자는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경지는 영감에 의해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앙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이고, 과학 없는 신앙은 장님일 뿐이다.”

아인슈타인이 인간이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신, 즉, ”인간의 피조물로서의 하나님' 논리에 경고를 한 것은 사실이다. 그는 인간은 있는 그대로의 하나님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인슈타인이 그의 글에서 과학에 대해 보편화된 오류를 되풀이한 것은 불행이다. (예를 들면 갈릴레오나 다아윈이 제안했던 것과 같은 교회와 대치되는 공통된 오류) 그럼에도 아인슈타인의 전체적인 생각과 표현은 일시적인 진화론적 사고보다는 창조론자들 부류와 더 가까웠던 것 같다. 한때 그는 '종교적인 경험이야말로 과학적인 연구의 가장 강력하고 고귀한 원천이다” 라고 말한 적도 있다.

몇 년 뒤 행성은 어디에 있을까를 계산하는 것 같은 간단한 인과법칙을 예견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많은 변수가 나타나는 현상학인 복합체(phenomenological complex)는 대부분 과학적인 방법으로도 해결하기 힘들다고 말하면서, 아인슈타인은 날짜와 진화론을 자주 예로 들었다. ”앞으로 몇 일간의 날씨를 예견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런 진화론의 경우 많은 변수들이 나타나기 때문에 예견하기는 불가능하고, 단지 이론(theory)의 타당성 여부만을 알아볼 수 있을 뿐이다.”

아인슈타인은 복잡한 사람이면서, 정식 기독교인도 물론 아니었지만, 어느 편에서건 답을 찾으려고 하는 열린 마음의 소유자였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분명 그 주위의 다른 사람들보다 현재의 창조론 운동을 서둘러 판단해 버리지 않았던 것 같다.


출처 - 창조지, 제 14호 [1984. 5]


미디어위원회
2003-10-06

창조론을 믿었던 과학자들

임번삼


      역사적으로 많은 창조과학자들이 찬란한 실적을 남겼다. 이들의 예를 들자면 엄청난 지면이 필요할 것이다. 불행스럽다 할까 아니면 아이로니칼하다고 할까 그들이 이룬 업적들이 오늘날 흡사 진화론을 증거라도 하는 듯이 진화학자들에게 도용(?)되고 있는 현상은 차라리 놀랍다는 생각마저 든다. 예컨데, 다윈의 진화론과 대립되는 이론이라 하여 한때 진화론자들에게 매장되었던 멘델의 유전법칙이 지금은 흡사 진화론의 분자진화설을 증거하는 자료인 양 오용되고 있다. 이 밖에도, 자연발생설과 치열하게 싸웠던 파스퇴르의 생물발생설, 버효등의 세포설, 린네의 종의 불변설에 기초한 생물분류학, 갈릴레이, 케플러, 뉴톤과 같은 신실한 창조과학자들이 확립한 우주론등이 진화론자들에게 오용되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기본적인 자연법칙들은 창조과학자들이 발견한 데 반하여 진화론은 가설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으므로, 두 이론을 평면적으로 비교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진화론의 주축인 라마르크의 용불용설, 다윈의 생물진화론, 헥켈의 배발생도와 계통발생설, 리비히의 효소작용에 대한 분자진동설, 드브리스의 돌연변이진화설, 도브쟌스키 등의 집단진화설, 굴드의 바람직한 괴물설, 라이엘의 동일과정설, 오파린의 자연발생설, 루이솅코의 후천획득형질의 유전설, 진화론적 인류기원설, 우주기원에 관한 빅뱅설 등 우리가 생물, 물리, 지구과학, 인류학에서 배운 거의 모든 진화론적인 이론들은 실험적으로 증명된 것이 아니며, 증명될 수도 없는 추리와 상상의 산물들이다. 추리는 맞을 수도 안 맞을 수도 있다. 반반의 확률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실증을 요구하는 자연과학이 될 수 없다. 이에 반하여 창조과학자들이 수립한 많은 법칙이나 원리는 대개가 실험적으로 증명된 것이며, 재현성이 있는 것들이다. 더 이상 진화론자들이 창조론적 이론을 마치 진화론을 변호하는 것처럼 아전인수하는 식으로 인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3.1 생명과학 분야

앞에서 설명한대로 이 분야에서는 자연발생설의 잘못을 증명한 이태리의 의사인 레디(Redi), 독실한 카톨릭과학자인 스팔란짜아니(Spallanzani), 린네우스, 큐비에 등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러한 창조론적 학문의 전통은 미생물학자인 파스퇴르, 곤충학자인 파브르(Henry Fabre), 유전의 법칙을 발견한 멘델, 해부학자이면서 예술가인 다빈치(Leonard da Vincci), 미국의 빙하지질학자인 하버드대학의 아가씨즈, 독일의 세포학자인 버효(Verchow), 페니실린을 발견한 영국의 레밍 등으로 이어졌다.


린네우스(Carolus Linnaeus 1707-1778, 본명은 Carl Linne)는 스웨덴의 한 개신교 가정에서 태어나 웁살라 대학에서 의학과 식물학을 전공하고, 중세 박물학(natural history)의 개조가 되었다. 그는 자연계의 지적설계에 의한 창조를 강조했으나, 지적설계(intellectual design)는 오늘날 진화론자들에 의해 상동성(homology)이라는 용어로 대체되어 가고 있다. 그는 자연계에 나타난 불변의 질서를 보고 모든 동식물은 물론 광물에 대해서도 이명법(二名法)으로 분류하는 체계를 수립하였다. 그는 저등생물에서 고등생물로 배열한 자신의 분류표는 “진화계통이 아닌 형태적 배열(not phylogeny but taxonomy)'이라고 하였다. 그는 자연계에 불변의 질서가 있기 때문에 자신이 자연계를 체계적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고 하였다. 그는 창세기에 “종류대로 창조”되었다는 ‘종류’(kind)를 ‘종’(species)로 해석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은 강에서 목을, 목에서 속을, 속에서 종을 만드셨다. 단, 종은 불변하도록“ 이라고 하여 <종의 불변설>(fixity of species)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사상은 ”자연의 체계'(Systema Naturae, 1735) 등에 잘 정리되어 있다.


8세기의 생물학계를 지배한 대학자인 큐비에(George Civier 1776-1832)는 고생물학(paleontology)을 개설한 학자였다. 루터교 가정에서 출생한 그는 부인의 헌신적인 신앙의 도움으로 확고한 창조신앙을 구축하고 진화론자들과 투쟁하였다. 그는 지층에 나타나는 생물종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다중격변설>을 주장하였다. 그는 이렇게 피력하였다. “태초에 창조주는 초자연적으로 모든 생물들을 만드셨다. 지구상에는 동식물을 멸종시킬 수 있는 홍수가 여러 번 일어났었다. 이 때, 국지적으로 살아 남은 생물들에 의해 새로이 생물들이 번식하곤 하였다.... 최후에 전 지구를 뒤덮는 대홍수가 일어났으며, 모든 생물의 종류가 노아의 방주에 들어가 생존하게 되었다.” 그러나, 창조로부터 노아의 홍수 이전의 기간에 대해서는 불가지론적 입장을 견지하였다. “노아홍수 이전의 초기 기간에 대해 창조주는 우리에게 아무런 상세한 내용도 알려주지 않았다. 단지, 그 고요한 기간의 기록만 주셨을 뿐이다.“ 그는 종의 불변설을 주장했으며, 라마르크가 주장한 원숭이로부터 인간으로의 진화사상이 퍼지지 않도록 하였다.


큐비에의 제자였던 아가씨즈(Louis Agassiz 1807-1873)는 미국으로 건너가 가장 활발한 창조과학활동을 펼쳤던 자연주의적 빙하지질학자였다. 그는 하버드대학에서 유신진화론자인 그레이(Asa Grey)와 격렬하게 논쟁하였으나, 불행스럽게도 그가 먼저 서거하는 바람에 하버드대학은 전통적인 창조론에서 유신진화론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1895)는 발효미생물학과 면역학의 기초를 세움으로써 현대 생명과학의 초석을 놓은 분이다. 그는 “자연발생설에 대한 실험적 검토(1861)“를 통하여 "생명은 생명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증명함으로써, 진화론의 기본이 되는 자연발생설을 침묵케 하였다. 그는 유럽의 여러 나라를 돌면서 자연발생주의자들과 논쟁하여 모두 승리로 이끌었다. 그는 생명은 신이 창조한 것이며, 자연법칙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1964). ”만일, 자연발생이 되려면 배아가 발생하여야만 생명의 기원문제가 풀리게 될 것이다. 이는 무생물이 적절한 환경조건에서 저절로 탄생했다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생명의 창조주는 더 이상 불필요한 존재가 되며물질이 신의 자리를 대신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신은 단지 우주의 운행을 주관하는 존재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페일리(William Paley 1743-1805)는 캠브리지대학에서 다윈에게 자연신학을 가르친 자연주의자였다. 그는 자연속에 숨어 있는 질서와 조화에서 창조주를 발견하도록 가르쳤으나, 다윈은 그러한 조화가 적자생존에 의한 자연의 선택 결과 때문이라고 판단하였다. 아이러니칼한 현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는 자연 속에 숨어 있는 신의 능력과 신성을 이용하여 창조주를 증명하려 하였다.


오스트리아의 카톨릭 수도사였던 멘델(Gregor Mendel 1822-1884)은 수도원에서 완두콩과 분꽃을 재배하면서, 모계의 형질만이 자손으로 전해진다는 유전의 법칙을 발견하였다. 독립의 법칙, 우열의 법칙, 분리의 법칙으로 표현되는 그의 유전학은 현대 분자생물학의 탄생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그의 실험적인 결과들은 허구적이며 추론적인 다윈의 이론과 상충되었기 때문에, 그의 생전에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는 죽으면서(1885) “언젠가 나의 시대가 올 것이다”고 유언을 하였다고 한다.


독일의 저명한 병리학자인 베르린의 버효(Rudolf Verchow 1821-1902)는 “세포는 세포로부터 나온다”는 세포설(cell theory)을 슈라이덴(동물), 슈반(식물)등과 더불어 주장하였다. 즉, 세포내에 있는 형질만이 자손에게 전달된다는 것으로, 이는 새로운 종이 나타나 오늘의 다양한 생물종들이 태어나게 되었다는 진화론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이론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병리학적인 관점에서 수많은 네안데르탈인들의 유골을 검토하고, 이들은 공통적으로 비타민 D의 섭취가 부족하여 관절염과 구루병을 앓고 있었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이들은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듯이 작은 키(145cm 이하)가 아니라 매우 컸으며(170cm), 두뇌의 평균용적(1,600cc)도 현대인(1,500cc)보다 오히려 컸다고 하였다.


런던자연사박물관의 초대관장을 지낸 오웬(Richard Owen 1804-1892)은 저명한 해부학로서 영국에서 큐비에에 필적할만한 명성을 누렸다. 그는 다윈의 진화론을 적극적으로 비판하였으며, 헉슬리와 윌버포스주교간의 진화론 논쟁시(옥스포드대학, 1860.6.30) 윌버포스에게 창조론적인 지원을 해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적의 약’으로 알려진 페니실린을 발견한 플레밍((John Ambrose Fleming 1849-1945)은 독실한 크리스쳔 의사로서, 후일 페니실린 정제법을 개발하여 대량생산의 길을 열게 한 체인과 훌로리(Ernst Chain & Howard Florey) 등과 공동으로 노벨상을 수상(1945)하였다. 체인은 이렇게 진화론을 비판하였다. “적자생존과 진화가 전적으로 돌연변이에 의해 유발된다는 가정은 내가 보기에 증거가 없고 사실과는 다른 것으로 보인다....나는 그토록 오랫동안 수많은 과학자들이 한마디의 불평도 없이 그러한 진화론을 수용했다는 사실에 그저 놀랄 뿐이다.” [D.T. Rosevear; Scientists Critical of Evolutin, Evolution Protestant Movement Phamphlet No. 224, July, p 4, 1980].


독일 엘란겐 대학의 플라이쉬만(Albert  Fleischmann) 교수도 이렇게 진화론을 비판하였다. “나는 진화론이 한물간 것으로 생각하며 이를 거부한다. 1830년부터 형성되어 온 해부학, 조직학, 세포학, 발생학 등의 지식이 진화론의 기본개념들과 일치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만일, 사람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헛된 신화를 사랑하려는 본능이 없었더라면 근거없는 환상적 구축물인 진화론은 이미 오래전에 끝장이 났을 것이다.” [Captain Bemard Acworth; Darwin and Natural Selection, Evolution Protestant Phamphlet, p 6, 1960]


3.2 물리학 분야

천체물리학에서도 광활한 우주속에 숨어있는 우주의 법칙들을 찾아내고서 창조주를 찬양한 많은 과학자들이 있었다. 중세기의 천동설을 부정하고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루니쿠스(Nicholas Copernicus 1473-1543)는 독실한 크리스쳔으로서, 16세기의 ‘과학의 혁명’에 불을 붙인 사람이다. 그는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1543)라는 저서를 통하여 “지구는 공처럼 둥글고 자전과 공전을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선언으로 종래의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관과 아리스토텔레스적 자연관이 붕괴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두 권의 책을 주셨는데 하나는 성경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 이라고 하였다. 자연을 연구함으로써 그것을 창조하신 창조주의 품성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내게 망원경을 주면 무신론자들을 격파하겠다.”고 했으며, 자신의 지동설이 성경과 결코 모순되지 않다고 설명한 편지 두 통을 대공비(大公妃)인 크리스티아나와 친구 카스텔리에게 보내기도 하였다. 그는 종교재판(1633)을 받고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Eppur si muove)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그의 과학정신은 제자들이 설립한 과학아카데미(1657, 피렌체)에 의해 면면히 이어지게 되었다.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는 20년 이상 우주를 관측하고서 타원형으로 운행하는 행성의 세 법칙들을 발견함으로써, 코페르니쿠스의 보수적 원(圓)의 개념을 깨뜨렸다. 그는 “이러한 발견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는다면 내 이름은 영원히 없어져도 좋다”고 고백하였다 한다.


뉴톤(Issac Newton 1642-1727)은 시공의 절대개념과 뉴톤역학을 정립하여 고전물리학을 세운 근세 최대의 과학자이다. 그가 쓴 프린키피아(원명은 ‘자연철학에 관한 수학적 원리', 1687)는 16-17세기의 과학의 혁명을 마무리한 저작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소문난 신앙의 소유자였다. 그의 신앙적인 면면은 다음의 일화에서 엿볼 수 있다.

어느 날, 그는 한 기술자에게 부탁하여 태양계의 별들이 한 동작에 의해 일시에 작동하는 태양계의 모형을 만들었다. 그리고, 무신론자인 친구가 찾아 왔을 때 그는 모형을 작동시키려고 크랑크를 돌렸다. 그러자, 여러 개의 행성들이 톱니바뀌에 맞물려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정교하게 돌기 시작하였다. 신기하게 여긴 친구가 뉴톤에게 이 모형은 누가 만든 것이냐고 물었다. 뉴톤은 그것이 어느 날 저절로 만들어졌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화를 내면서 사람을 바보로 취급하느냐고 흥분하며 항의하였다. 그 때, 뉴톤은 친구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한다. “이것은 장엄한 태양계를 흉내 내어 만든 조잡한 작은  모형물에 불과하다. 태양계를 지배하는 법칙들을 그대도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이토록 간단한 모형도 내가 저절로 생겨 났다고 했더니 자네는 성을 내면서 믿을 수 없다고 하지 않았나? 하물며, 저 광대한 태양계가 설계와 제작자가 없이 저절로 생겨났다고 한다면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 자네는 태양계가 무슨 방식으로  저절로 생겨 났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었는지 오히려 나에게 설명을 해 주게나.”

그는 <프린키피아>(Pricipia)에서 이렇게 고백하였다. “태양, 혹성, 혜성으로 구성된 너무나도 아름다운 천체는 지성(知性)을 가진 강력한 실존(實存)의 의도와 통제가 있으며, 그 분은 태초부터 존재하셨다고 믿을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지존하신 하나님은 영원무궁히 완전히 완벽하신 분이시다.” 그는 자신의 모든 발견들이 기도의 응답으로 이루어졌으며, “종교와 과학은 충돌하지 않으며 이성은 종교의 적이 아닌 벗”이라고도 하였다.


이 밖에도, 현대우주론의 기초를 쌓은 윌리엄 허쉘(William Herschel 1738-1822)과 그의 아들인 죤 허쉘(John Herschel 1792-1871), 벨지움의 카톨릭사제였던 라메뜨리도 빼어 놓을 수 없는 크리스쳔 과학자들이다.


파스칼(Blaise Pascal)은 기압계를 발명하고 분압의 법칙인 파스칼의 원리를 발견하였다. 그는 독실한 사상가로 <팡세>(暝想錄 Thoughts)와 같은 주옥같은 인생안내서를 남기도 하였다. 그는 “(파스칼의) 내기” 라는 이야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은 존재하든가 부재하든가 둘 중에 하나이다. 만일, 당신이 그 내기에서 신이 존재한다는 쪽에 당신의 삶을 건다면 모든 것을 얻을 것이다. 이 경우, 설사 당신이 틀렸다 할지라도 당신은 잃을 것이 전혀 없다. 반대로, 하나님이 존재치 않는다는 쪽에 걸어서 당신의 말이 맞게 된다면 당신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당신이 맞지 않을 경우엔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유동수; ibid., p 178].


19세기에 가장 위대한 천재 중 하나로 추앙받는 맥스웰(James C. Maxwell 1831-1879)은 광학, 전기학, 자기학을 통합하는 수학방정식을 수립하고 뉴톤역학과 더불어 고전물리학을 구축한 인물이다.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업적을 뉴톤이래 최대의 발견이라고 격찬하였다. 그는 암으로 죽을 때까지 겸손과 순종으로 일관한 크리스쳔이었다.


19세기 최대의 과학자중 일인으로 평가받는 패러디(Michael Faraday 1791-1867)는 패러디의 전기법칙을 발견하였다. 그는 신실한 기독교인으로서 50세부터는 정규적인 설교가 되었으며, 다윈의 진화론을 강력히 비판하였다. 무선통신을 발명한 모르스(Samuel F.B. Morse 1791-1872)는 동생에게 “그것은 하나님의 작품이다. 오직 그 분만이 나의 모든 시도를 통하여 지금의 위치에 이르게 하셨다”고 고백하였다.


절대온도를 발견한 캘빈(Lord W. Kalvin 1824-1907, 舊名은 William Thompson)은 열역학 제2법칙을 발견한 사람으로서 진화론을 강력히 비판하였다. 그는 “이 지구상에서 생명의 시작은 어떤 화학적이거나 전기적인 활동 또는 분자들의 결합에 의해 유도되는 것이 아니다...우리는 잠시 멈추고 생물창조의 기적과 신비를 직접 들여다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라디오 진공관을 발명한 영국의 플레밍(John Fleming, 1849-1945)은 대중강연을 다니면서, 다윈의 진화론은 증명되지 않은 비과학적인 이론이라고 논박하였다. 그리고, 성경은 인간의 소산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강조하였다고 한다.

상대성원리와 양자론(Quantun Theory)으로 현대물리학의 초석을 놓은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유태계 독일인으로 20세기 최대의 과학자로 손꼽힌다(사진 1). 그는 우주를 시간-공간-물질이 연속체로 존재한다는 현대우주론을 수립했는데, 이는 태초(시간), 하늘(공간), 땅(물질)을 동시에 창조하였다는 창세기(창1;1)의 선언을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그는 주일 아침마다 교회에 나가 예배하던 크리스쳔 과학자로서 “나는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흔적을 찾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는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하여 “종교없는 과학은 절름발이며, 과학없는 종교는 장님(Science without religion is lame, and the religion without science is blind)' 이라고 하였다(1954).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아폴로우주계획을 지휘했던 사람이 독일태생의 미국인 과학자인 브라운 박사(Werhner von Braun 1912-1977)이다(사진 2). 그는 새턴(Saturn Ⅴ) 로케트를 개발하여 닐 암스트롱(Neil Amstrong)을 달나라에 착륙시킨('69. 7. 20)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어렸을 때 루터교 신자인 어머니가 준 망원경을 가지고 우주에 대한 꿈을 키웠다. 13세때 로케트연구자인 루마니아의 과학자 오버쓰(Herman Oberth)의 저서를 읽고 우주여행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18세 되던 해에 샤로텐버그 대학(Charlotenburg Universitat)에서 오버쓰의 조교가 되어 로케트엔진의 개발에 참여하였다. 그는 베르린 대학에서 학위를 마친 후, 독일군에 입대하여 80명의 과학자들과 더불어 10여년간 연구한 결과 V-2로 알려진 장거리 탄도미사일의 개발에 성공하였다. 이 로케트 수천발이 런던과 파리로 발사되자(1944. 9) 브라운은 힘러(Heinrich Himmler)사령관의 협조를 거부하다가 투옥되었다.

2차대전 후 그는 가족 및 100여명의 과학자들과 함께 미국으로 넘겨져 소련과의 우주경쟁에 나섰다. 소련이 먼저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리자(1957.10), 브라운 연구팀도 넉달후에 엑스플러러 1호를 발사하였다(1958.1). 같은 해에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창설되면서, 그는 우주비행센터의 책임자로 활약하였다. 이렇게 하여, 미국 최초의 우주비행사인 셰퍼드(Alan B. Sheperd)가 우주로 비행한데 이어(1961) 머큐리, 제미니, 아폴로우주계획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마침내, 아폴로우주선이 암스트롱과 올드린(Buzz Aldrin)을 태우고 달표면에 도착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것은 브라운이 개발한 새턴 v로케트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유인 우주비행은 놀라운 업적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있어서 그것은 장엄한 우주를 바라보기 위한 작은 문을 연 것에 불과하다. 이 작은 구멍을 통하여 우주의 광대한 신비를 바라볼 때 그것은 우주에 대한 창조주께 대한 우리 믿음을 더욱 굳게 해 줄 뿐이다.” 그는 항상 기도하는 사람으로 “성경은 하나님의 성품과 사랑의 계시"라고 하였다. 그는 진화론에 대해 명백히 반대하였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교육위원회의 요청을 받고서 다음과 같은 답신편지(1974.9.14)를 보냈다고 한다.

 “우주와 생명, 인간의 기원에 대한 설계에 의한 창조가 믿을만한가에 대한 부탁말씀에 제 의견을 기쁘게 답변하고자 합니다. 내 생각에 창조란 누군가 설계하지 않고서는 생각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어느 누구도 우주의 법칙과 질서를 보고서 그 뒤에는 반드시 설계와 목적이 있어야만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우주와 그 속의 모든 기묘한 현상들을 이해할수록 그 속에 있는 내적 설계에 더욱 놀라게 됩니다...우주의 모든 것이 우연히 생겼다고 믿도록 강요하는 것은 과학의 객관성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게중엔 우주가 비규칙적인 과정으로 진화했다고 믿는 사람도 있으나, 도대체 어떤 비규칙적인 과정이 사람의 뇌며 눈과 같이 정밀한 기관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입니까?...(진화론자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라고 요구하지만 우리가 어디에나 있는 태양을 보기 위해 촛불을 켜야 한다는 말입니까?...물리학자가 전자를 그려낼 수 있다는 말입니까?...자신들이 우주의 설계자를 생각할 수 없다는 이유로 창조주에 대한 믿음을 거부한다면 전자가 있다고 믿는 그들은 어떤 근거로 그 같은 이론을 세우는 것입니까?...그 이유는 다른 분야에서 매우 제한적인 자료를 가져와 전자에 대한 모델을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모델을 만들 수 있을지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우리가 달에 보낸 아폴로가 성공을 거두게 된 이유는..."우리가 그 어떤 사실도 간과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정직성의 관점에서 학생들에게...우주, 생명, 인간의 기원에 관하여 진화론과는 다른 이론이 제시되어야 하리라고 제안하는 바입니다. 우주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계획되었을 가능성을 간과하는 것은 큰 실수입니다.“ [이종헌 역; 우주탐험의 선구자 폰 브라운, 창조 109호, pp 11-16, 1998, 원문은 Ann Lamont; Creatio ex nihilo, 94-2], [유동수; ibid, p 165-166].

(Horace Lamb 1849-1934), 가우스(Karl Gauss 1777-1855), 바안즈(Barnes 1971)로 이어지는 지자기학(geomagnetism)은 라이엘의 지구역사가 길다는 이론에 반하는 수많은 자료들을 제공하였다. 이 밖에, 열역학법칙을 발견한 주울(James Joule 1818-1889), 전동기와 검류계(galvanometer)를 개발한 헨리(Joseph Henry 1797-1878), 틴달현상을 발견하고 생명의 자연발생설을 강력하게 비판한 틴달(Tyndall), 콤푸톤 효과를 발견한 콤프톤(Compton) 등도 잊을 수 없는 독실한 크리스쳔 과학자들이었다.


3.3 화학/지질학 분야

화학자로서 보일의 법칙을 발견한 보일, 리스터, 심프손, 불활성기체를 발견한 램세이(William Ramsay 1852-1916), 게이버(Dennis Gaber)등이 빼 놓을 수 없는 화학자들이다. 노벨상 수상자(1971)인 게이버는 “나는 모든 것이 무작위적인 돌연변이에 의해 진화되었다는 것을 결코 믿을 수 없다”고 하였다. [Edward F. Blick; Special Creation versus Evolution, p 3] ‘화학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보일(Robert Boyle 1627-1691)은 아침마다 성경을 읽었으며, 선교와 성경번역사업에 열성적이었다고 한다. 방부제 수술법을 개발한 리스터(Joseph Liser 1827-1912), 클로로포름을 발견했고 부인과의학(Gynecology)의 기초를 놓은 심프손(James Simpson 1811-1870) 등도 의학계에서 활약한 창조과학자들이다. 심프손은 한 공개모임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내가 구주를 모시고 있는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한다.


프랑스 지질학회 회장이며 파리 자연사박물관 관장인 레모인(P. Lemoine)의 비판은 더욱  강렬한 것이다. “젊은이들이 심각한 속임수에 걸려 넘어지고 있는 진화론은 이 세상에서 계속 가르쳐지고 있는 하나의 교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동식물학자들은 대개가 진화론이 적합치 못하다고 확신하고 있다. 우리는 진화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하였다. (유동수; ibid., p 167). 광학광물학(optical mineralogy)의 브루스터(David Brewster 1781-1868), 지층학(stratigraphy)의 스테노(Nicholaus Steno 1638-1686), 시편에 기술한 해로(海路)를 찾아 해양학(oceanography)을 개척한 마우리(Mathew Maury 1806-1873), 화석학(paleontology)의 우드워드(John Woodward 1665-1728) 등도 지구과학의 이론에 기여한 창조과학자들이었다.


3.4 기타

이 밖에도, 수많은 과학자들이 창조론에 입각하여 활약을 하였다. 열운동역학의 데이비(Humphrey Davy 1778-1829), 유체역학의 스톡스(George Stokes 1819-1903), 계산기를 만든 베비지(Charles Babbage 1792-1871) 등을 들 수 있다.



*참조 : Index to Scientist Biographies (CEH)

https://crev.info/scientists/index/


출처 - 도서,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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